10. Vekhanasasuttaṃ
10. 웨카나사 경
278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유행자 베카나사가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세존과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섰다. 그리고 세존 곁에서 감흥에 겨워 이렇게 읊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vekhanaso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웨카나사 유행자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기쁘고 정다운 이야기를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kamantaṃ ṭhito kho vekhanas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udānaṃ udānesi –
한쪽에 선 웨카나사 유행자는 세존 앞에서 감흥어를 읊었다 —
“이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이다. 이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이다.” “카차나여, 그대는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 ‘이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이다. 이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이다’라고 말이다. 카차나여, 그 가장 뛰어난 빛깔이란 어떤 것인가?” “고타마 존자시여, 이 빛깔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다른 빛깔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입니다.” “카차나여, 이 빛깔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다른 빛깔이 없다는 그 빛깔은 대체 어떤 것인가?” “고타마 존자시여, 이 빛깔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다른 빛깔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입니다.”
‘‘ayaṃ paramo vaṇṇo, ayaṃ paramo vaṇṇo’’ti.
“이것이 최상의 광채다, 이것이 최상의 광채다”라고.
‘‘Kiṃ pana tvaṃ, kaccāna, evaṃ vadesi –
“깟짜나여,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말하는가 —
‘ayaṃ paramo vaṇṇo, ayaṃ paramo vaṇṇo’ti?
‘이것이 최상의 광채다, 이것이 최상의 광채다’라고?
Katamo, kaccāna, so paramo vaṇṇo’’ti?
깟짜나여, 그 최상의 광채란 어떤 것인가?”
‘‘Yasmā, bho gotama,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i so paramo vaṇṇo’’ti.
“고따마 존자시여, 그 광채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는, 그것이 최상의 광채입니다.”
‘‘Katamo pana so, kaccāna, vaṇṇo yasmā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ī’’ti?
“그러면 깟짜나여, 그 광채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다는 그 광채란 어떤 것인가?”
‘‘Yasmā, bho gotama,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i so paramo vaṇṇo’’ti.
“고따마 존자시여, 그 광채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는, 그것이 최상의 광채입니다.”
“카차나여, 그대의 이 말은 얼마든지 길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고타마 존자시여, 이 빛깔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다른 빛깔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빛깔이 무엇인지는 가리켜 보이지 못한다.”[불확실]
‘‘Dīghāpi kho te esā, kaccāna, phareyya –
“깟짜나여, 그대의 이 말은 길게 뻗어 가기만 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
‘yasmā, bho gotama,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i so paramo vaṇṇo’ti vadesi, tañca vaṇṇaṃ na paññapesi.
‘고따마 존자시여, 그 광채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는, 그것이 최상의 광채입니다’라고 그대는 말하면서, 정작 그 광채를 밝히지는 않는다.
카차나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사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그대가 원하고 사랑한다는 그 지방 제일의 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왕족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평민 여인인지, 천민 여인인지 말이오.’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그 미녀가 이러이러한 이름에 이러이러한 가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키가 큰지 작은지 보통인지, 피부가 검은지 갈색인지 황금빛인지 알고 있소? 어느 마을이나 읍이나 도시에 사는지도 알고 있소?’ 이렇게 물으면 그는 이번에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여인을 원하고 사랑한다는 말이오?’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Seyyathāpi, kaccāna, puriso evaṃ vadeyya –
깟짜나여, 마치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
‘ahaṃ yā imasmiṃ janapade janapadakalyāṇī, taṃ icchāmi taṃ kāmemī’ti.
‘나는 이 고장의 미녀, 그 여인을 원하고 그 여인을 욕망한다’라고.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
‘여보시오, 그대가 원하고 욕망하는 그 미녀를, 그대는 그 미녀가 —
khattiyī vā brāhmaṇī vā vessī vā suddī vā’ti?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와이샤 여인인지 수드라 여인인지 아시오?’라고.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evaṃnāmā evaṃgottāti vāti…pe… dīghā vā rassā vā majjhimā vā kāḷī vā sāmā vā maṅguracchavī vāti… amukasmiṃ gāme vā nigame vā nagare vā’ti?
‘여보시오, 그대가 원하고 욕망하는 그 미녀를, 그대는 그 미녀가 이러이러한 이름에 이러이러한 성씨라고 아시오? 그대가 원하고 욕망하는 그 미녀를, 그대는 그 미녀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살빛이 검은지 거무스름한지 누르스름한지 아시오? 그대가 원하고 욕망하는 그 미녀를, 그대는 그 미녀가 아무 마을이나 아무 읍이나 아무 도시에 산다고 아시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0:278.19에서 되살렸습니다.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ṃ tvaṃ icchasi kāmesī’’’ti?
‘여보시오,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오?’라고.
Iti puṭṭho ‘āmā’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소’라고 말할 것이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그런 경우라면 분명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카차나여, 그대도 이와 같다. 그대는 ‘고타마 존자시여, 이 빛깔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다른 빛깔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빛깔이 무엇인지는 가리켜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Evameva kho tvaṃ, kaccāna, ‘yasmā, bho gotama,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i so paramo vaṇṇo’ti vadesi;
“깟짜나여, 그대도 꼭 이와 같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 광채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는, 그것이 최상의 광채입니다’라고 그대는 말하면서,
tañca vaṇṇaṃ na paññapesī’’ti.
정작 그 광채를 밝히지는 않는다.”
“고타마 존자시여, 흠이 없고 좋은 태생이며 팔각으로 잘 다듬어진 청옥 보석이 있습니다. 이것을 황백색 모직 담요 위에 놓으면 환히 빛나고 이글거리며 눈부십니다. 그와 같이 빛깔을 지닌 자아는 죽은 뒤에도 병이 없습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paṇḍukambale nikkhitto bhāsate ca tapate ca virocati ca, evaṃ vaṇṇo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잘 다듬어진 여덟 모의 아름답고 훌륭한 베루리야 보석을 흰 모직 담요 위에 놓으면 빛나고 이글거리고 환히 빛나는 것처럼, 자아는 죽은 뒤에 그러한 광채를 지니고 병 없이 있습니다.”
279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청옥 보석은 흠이 없고 좋은 태생이며 팔각으로 잘 다듬어졌다. 이것을 황백색 모직 담요 위에 놓으면 환히 빛나고 이글거리며 눈부시다. 이 청옥과 캄캄한 밤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벌레,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캄캄한 밤의 반딧불이 벌레가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o vā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paṇḍukambale nikkhitto bhāsate ca tapate ca virocati ca,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kimi khajjopanako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다듬어진 여덟 모의 아름답고 훌륭한 베루리야 보석을 흰 모직 담요 위에 놓아 빛나고 이글거리고 환히 빛나는 것과, 캄캄한 한밤중의 반딧불이 벌레와,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rattandhakāratimisāya kimi khajjopanako,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캄캄한 한밤중의 반딧불이 벌레,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밤의 반딧불이 벌레와 캄캄한 밤의 기름등불을 견주어 보자.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캄캄한 밤의 기름등불이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kimi khajjopanako,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telappadīpo,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한밤중의 반딧불이 벌레와, 캄캄한 한밤중의 기름등불과,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rattandhakāratimisāya telappadīpo,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캄캄한 한밤중의 기름등불,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밤의 기름등불과 캄캄한 밤의 커다란 불더미를 견주어 보자.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캄캄한 밤의 커다란 불더미가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telappadīpo,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mahāaggikkhandho,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한밤중의 기름등불과, 캄캄한 한밤중의 큰 불무더기와,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rattandhakāratimisāya mahāaggikkhandho,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캄캄한 한밤중의 큰 불무더기,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밤의 커다란 불더미와, 새벽녘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에 뜬 샛별을 견주어 보자.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새벽녘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에 뜬 샛별이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o vā rattandhakāratimisāya mahāaggikkhandho, yā vā rattiyā paccūsasamayaṃ viddhe vigatavalāhake deve osadhitārakā,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캄캄한 한밤중의 큰 불무더기와, 새벽녘 맑고 구름 걷힌 하늘의 샛별과,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rattiyā paccūsasamayaṃ viddhe vigatavalāhake deve osadhitārakā,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새벽녘 맑고 구름 걷힌 하늘의 샛별,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새벽녘 맑게 갠 하늘의 샛별과, 포살일인 보름날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의 한밤중 달을 견주어 보자.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포살일인 보름날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의 한밤중 달이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ā vā rattiyā paccūsasamayaṃ viddhe vigatavalāhake deve osadhitārakā, yo vā tadahuposathe pannaras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abhido aḍḍharattasamayaṃ cando,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새벽녘 맑고 구름 걷힌 하늘의 샛별과, 포살하는 그날 보름날에 맑고 구름 걷힌 하늘에서 한밤중 무렵에 뜬 달과,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tadahuposathe pannaras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abhido aḍḍharattasamayaṃ cando,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포살하는 그날 보름날에 맑고 구름 걷힌 하늘에서 한밤중 무렵에 뜬 달,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살일인 보름날 한밤중의 달과,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철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의 한낮 태양을 견주어 보자. 이 두 빛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가?” “고타마 존자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철 구름이 걷혀 맑게 갠 하늘의 한낮 태양이 이 두 빛깔 가운데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kaccāna, yo vā tadahuposathe pannaras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abhido aḍḍharattasamayaṃ cando, yo vā vassānaṃ pacchime māse saradasamay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abhido majjhanhikasamayaṃ sūriyo,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katamo vaṇṇo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깟짜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살하는 그날 보름날에 맑고 구름 걷힌 하늘에서 한밤중 무렵에 뜬 달과,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철에 맑고 구름 걷힌 하늘에서 한낮 무렵에 뜬 해와, 이 둘의 광채 가운데 어느 광채가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난가?”
‘‘Yvāyaṃ, bho gotama, vassānaṃ pacchime māse saradasamay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abhido majjhanhikasamayaṃ sūriyo –
“고따마 존자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철에 맑고 구름 걷힌 하늘에서 한낮 무렵에 뜬 저 해 —
ayaṃ imesaṃ ubhinnaṃ vaṇṇānaṃ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이것이 이 둘의 광채 가운데 더 빼어나고 더 뛰어납니다.”
“카차나여, 이 달과 해의 빛을 누리지 못하는 신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빛깔보다 더 높고 훌륭한 다른 빛깔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카차나여, 그대는 반딧불이 벌레보다도 못하고 더 천한 빛깔을 두고 ‘이것이 가장 뛰어난 빛깔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빛깔이 무엇인지는 가리켜 보이지 못한다.”
‘‘Ato kho te, kaccāna, bahū hi bahutarā devā ye imesaṃ candimasūriyānaṃ ābhā nānubhonti, tyāhaṃ pajānāmi.
“깟짜나여, 이보다 더 많고 훨씬 더 많은 신들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이 달과 해의 빛이 미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안다.
Atha ca panāhaṃ na vadāmi –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
‘yasmā vaṇṇā añño vaṇṇo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natthī’ti.
‘그 광채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광채가 없다’라고.
Atha ca pana tvaṃ, kaccāna, ‘yvāyaṃ vaṇṇo kiminā khajjopanakena nihīnataro ca patikiṭṭhataro ca so paramo vaṇṇo’ti vadesi;
그런데도 깟짜나여, 그대는 ‘반딧불이 벌레보다 더 못하고 더 낮은 그 광채, 그것이 최상의 광채다’라고 말하면서,
tañca vaṇṇaṃ na paññapesi’’.
정작 그 광채를 밝히지는 않는다.”
280
“카차나여,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 가운데,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흐뭇하고 좋아할 만하며 욕망을 일으키고 탐나게 하는 것이 있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도 그러하고, 코로 알 수 있는 냄새도 그러하고, 혀로 알 수 있는 맛도 그러하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 가운데에도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흐뭇하고 좋아할 만하며 욕망을 일으키고 탐나게 하는 것이 있다. 카차나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카차나여, 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거움과 기쁨을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이처럼 욕망의 대상들에서 감각적 즐거움이 생긴다. 그 즐거움들 가운데 으뜸가는 감각적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으뜸이라고 말한다.”
‘‘Pañca kho ime, kaccāna, kāmaguṇā.
“깟짜나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
눈으로 아는 형색들 —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탐착을 일으키는 것들 —, 귀로 아는 소리들 —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탐착을 일으키는 것들 —, 코로 아는 냄새들 —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탐착을 일으키는 것들 —, 혀로 아는 맛들 —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탐착을 일으키는 것들 —, 몸으로 아는 감촉들 —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탐착을 일으키는 것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22:190.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kho, kaccāna, pañca kāmaguṇā.
깟짜나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Yaṃ kho, kaccāna, ime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idaṃ vuccati kāmasukhaṃ.
깟짜나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거움과 기쁨, 이것을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라 한다.
Iti kāmehi kāmasukhaṃ, kāmasukhā kāmaggasukhaṃ tattha aggamakkhāyatī’’ti.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들에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있고,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서 감각적 욕망의 으뜸가는 즐거움이 있으니, 거기서 그것이 으뜸이라 일컬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나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고타마 존자께서는 참으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욕망의 대상들에서 감각적 즐거움이 생기고, 그 즐거움들 가운데 으뜸가는 감각적 즐거움이 있어서 그것을 으뜸이라고 말한다’고 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욕망의 대상들에서 감각적 즐거움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그 즐거움들 가운데 으뜸가는 것을 으뜸이라고 말한다고도 하셨습니다.”
Evaṃ vutte, vekhanas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웨카나사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cchariyaṃ, bho gotama, abbhutaṃ, bho gotama!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āva subhāsitaṃ cidaṃ bhotā gotamena –
고따마 존자께서 이것을 참으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
‘kāmehi kāmasukhaṃ, kāmasukhā kāmaggasukhaṃ tattha aggamakkhāyatī’ti.
‘감각적 욕망들에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있고,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서 감각적 욕망의 으뜸가는 즐거움이 있으니, 거기서 그것이 으뜸이라 일컬어진다’라고.”
(‘Kāmehi, bho gotama, kāmasukhaṃ, kāmasukhā kāmaggasukhaṃ, tattha aggamakkhāyatī’ti) –
(‘고따마 존자시여, 감각적 욕망들에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있고,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서 감각적 욕망의 으뜸가는 즐거움이 있으니, 거기서 그것이 으뜸이라 일컬어집니다’라고.) —
“카차나여, 그대는 다른 견해와 다른 신념과 다른 취향과 다른 수행과 다른 스승을 가졌다. 그런 그대에게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욕망이 무엇인지, 감각적 즐거움이 무엇인지, 으뜸가는 감각적 즐거움이 무엇인지 말이다. 카차나여, 아라한이 된 비구들이라면 그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번뇌가 다했고, 수행을 마쳤고, 할 일을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다. 참된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속박을 완전히 끊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이들이다. 그들은 욕망이 무엇인지, 감각적 즐거움이 무엇인지, 으뜸가는 감각적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안다.”
‘‘dujjānaṃ kho etaṃ, kaccāna, tayā aññadiṭṭhikena aññakhantikena aññarucikena aññatrayogena aññatrācariyakena –
“깟짜나여, 다른 견해를 지니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다른 것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따르고, 다른 스승을 섬기는 그대가 이것을 알기란 어렵다 —
kāmā vā kāmasukhaṃ vā kāmaggasukhaṃ vā.
감각적 욕망이 무엇인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감각적 욕망의 으뜸가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Ye kho te, kaccāna, bhikkhū arahanto khīṇāsavā vusitavanto katakaraṇīyā ohitabhārā anuppattasadatthā parikkhīṇabhavasaṃyojanā sammadaññā vimuttā te kho etaṃ jāneyyuṃ –
깟짜나여,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신의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다 부수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그 비구들, 그들이라면 이것을 알 것이다 —
kāmā vā kāmasukhaṃ vā kāmaggasukhaṃ vā’’ti.
감각적 욕망이 무엇인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감각적 욕망의 으뜸가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281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나사는 화가 나고 불쾌해졌다. 그는 오직 세존만을 헐뜯고 깎아내리고 비난하면서 ‘사문 고타마가 망신을 당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Evaṃ vutte, vekhanaso paribbājako kupito anattamano bhagavantaṃyeva khuṃsento bhagavantaṃyeva vambhento bhagavantaṃyeva vadamāno ‘‘samaṇo gotamo pāpito bhavissatī’’ti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웨카나사 유행자는 성이 나고 언짢아져서 바로 세존을 헐뜯고 바로 세존을 깎아내리고 바로 세존을 두고 말하면서 ‘사문 고따마는 욕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고타마 존자시여, 이 세상에는 일부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도 공공연히 말합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은 마쳤으며,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우리는 안다’고 말입니다. 그런 이들의 말은 웃음거리일 뿐이고, 이름뿐이고, 알맹이가 없고, 텅 비어 있을 뿐입니다.”
‘‘evameva panidhekacce samaṇabrāhmaṇā ajānantā pubbantaṃ, apassantā aparantaṃ atha ca pana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이처럼 여기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과거의 끝을 알지 못하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면서도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
pajānāmā’ti –
우리는 안다’라고 —
paṭijānanti.
선언합니다.
Tesamidaṃ bhāsitaṃ hassakaṃyeva sampajjati, nāmakaṃyeva sampajjati, rittakaṃyeva sampajjati, tucchakaṃyeva sampajjatī’’ti.
그들의 이 말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고, 이름뿐인 것이 될 뿐이고, 헛된 것이 될 뿐이고, 텅 빈 것이 될 뿐입니다.”
“카차나여,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도 공공연히 말하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고 하자.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은 마쳤으며,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우리는 안다’고 말이다. 그들에게는 바로 그것이 법에 맞는 정당한 책망이 된다. 그러나 카차나여, 과거는 그만두고 미래도 그만두자. 지혜로운 사람이 교활하지 않고 속임이 없는 곧은 마음으로 찾아오너라.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하겠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이렇게 해서 속박에서 바르게 벗어나는구나. 그 속박이란 곧 무명이다’라고.”[불확실]
‘‘Ye kho te, kaccāna, samaṇabrāhmaṇā ajānantā pubbantaṃ, apassantā aparantaṃ,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깟짜나여, 과거의 끝을 알지 못하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면서도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
pajānāmā’ti –
우리는 안다’라고 —
paṭijānanti;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들,
tesaṃ soyeva sahadhammiko niggaho hoti.
그들에게는 바로 그것이 법에 맞는 논박이 된다.
Api ca, kaccāna, tiṭṭhatu pubbanto, tiṭṭhatu aparanto.
그러나 깟짜나여, 과거의 끝은 그만두라, 미래의 끝도 그만두라.
Etu viññū puriso asaṭho amāyāvī ujujātiko,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속임 없고 거짓 없고 성품이 곧은 지혜로운 사람이 오라.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o nacirasseva sāmaññeva ñassati sāmaṃ dakkhiti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볼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
evaṃ kira sammā bandhanā vippamokkho hoti, yadidaṃ avijjā bandhanā.
이와 같이 참으로 속박에서 바르게 벗어남이 있으니, 곧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카차나여, 예를 들어 어리고 어리석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가 있다고 하자. 그 아기는 목을 포함해 다섯 군데를 실 끈으로 묶여 있다. 그가 자라서 감각기능이 무르익으면 그 끈들이 풀릴 것이다. 그는 ‘나는 풀려났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을 묶었던 끈은 알지 못한다. 카차나여, 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교활하지 않고 속임이 없는 곧은 마음으로 찾아오너라.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하겠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이렇게 해서 속박에서 바르게 벗어나는구나. 그 속박이란 곧 무명이다’라고.”[불확실]
Seyyathāpi, kaccāna, daharo kumāro mando uttānaseyyako kaṇṭhapañcamehi bandhanehi baddho assa suttabandhanehi;
깟짜나여, 마치 어리고 미숙하여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가 목을 다섯째로 하는 묶음, 곧 실로 된 묶음에 묶여 있다가,
tassa vuddhimanvāya indriyānaṃ paripākamanvāya tāni bandhanāni mucceyyuṃ;
그가 자라남에 따라, 기능들이 익어감에 따라 그 묶음들이 풀리면,
so mokkhomhīti kho jāneyya no ca bandhanaṃ.
그는 ‘나는 풀려났다’라고 알 뿐, 속박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kaccāna, etu viññū puriso asaṭho amāyāvī ujujātiko,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깟짜나여, 이와 꼭 같이, 속임 없고 거짓 없고 성품이 곧은 지혜로운 사람이 오라.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o nacirasseva sāmaññe ñassati, sāmaṃ dakkhiti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볼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
‘evaṃ kira sammā bandhanā vippamokkho hoti, yadidaṃ avijjā bandhanā’’’ti.
‘이와 같이 참으로 속박에서 바르게 벗어남이 있으니, 곧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나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훌륭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 고타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vaṃ vutte, vekhanas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웨카나사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bhikkantaṃ, bho gotama…pe…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거나, 덮인 것을 열어젖히거나,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거나,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며 어둠 속에 기름등불을 들어 주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0:486.3 ~ PN:mn100/486.6에서 되살렸습니다.
베카나사경이 끝났다. 열 번째 경이다.
Vekhanas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웨카나사 경이 끝났다. 열 번째이다.
Paribbājakavaggo niṭṭhito tatiyo.
유행자 품이 끝났다. 세 번째이다.
Tassuddānaṃ –
그 요약 게송 —
Puṇḍarī-aggisaha-kathināmo, dīghanakho puna bhāradvājagotto;
뿐다리, 악기사하, 까티나마, 디가나카, 그리고 다시 바라드와자 성씨의 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ndakaudāyimuṇḍikaputto, maṇiko tathākaccāno varavaggo.
산다까·우다이·문디까뿟따, 마니까, 그리고 깟짜나 — 훌륭한 품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