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Māgaṇḍiyasuttaṃ
5. 마간디야 경
20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꾸루 사람들의 읍인 깜마사담마에 계셨다.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이 불을 모시는 방에 마른 풀을 깔아 둔 자리가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곳에 머무셨다. 오전에 옷을 갖추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탁발하러 깜마사담마로 들어가셨다. 탁발을 마치고 공양을 드신 뒤에는 낮 동안 쉬려고 어느 숲으로 가셨다. 숲 깊숙이 들어가 어느 나무 밑에 앉아 쉬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ṃ nāma kurūnaṃ nigamo,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agyāgāre tiṇasanthārake.
한때 세존께서 꾸루에 머무셨는데, 깜마사담마라는 꾸루 사람들의 성읍에서,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불의 집에 풀을 깔아 놓은 자리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kammāsadhamma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깜마사담마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Kammāsadhamm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yena aññataro vanasaṇḍo tenupasaṅkami divāvihārāya.
깜마사담마에서 탁발하고,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낮을 지내려고 어떤 숲으로 다가가셨다.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divāvihāraṃ nisīdi.
그 숲으로 들어가 어떤 나무 아래에 낮을 지내려고 앉으셨다.
그때 유행자 마간디야가 이리저리 거닐며 산책하다가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불 모신 방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마른 풀로 깐 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마간디야는 그것을 보고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말했다. "바라드와자 선생, 이 방의 풀자리는 누구를 위해 깔아 둔 것이오? 사문이 눕는 자리 같은데."
Atha kho māgaṇḍiyo paribbājako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yena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agyāgāraṃ tenupasaṅkami.
그때 유행자 마간디야가 다리를 풀려고 이리저리 거닐고 두루 돌아다니다가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불의 집으로 다가갔다.
Addasā kho māgaṇḍiyo paribbājako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agyāgāre tiṇasanthārakaṃ paññattaṃ.
유행자 마간디야는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불의 집에 풀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bhāradvājagottaṃ brāhmaṇaṃ etadavoca –
보고 나서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kassa nvayaṃ bhoto bhāradvājassa agyāgāre tiṇasanthārako paññatto, samaṇaseyyānurūpaṃ maññe’’ti?
“바라드와자 존자의 불의 집에 이 풀자리는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입니까? 사문의 잠자리에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마간디야여, 사꺄족의 아들로 사꺄 집안에서 출가한 사문 고타마가 계시네. 그 고타마 존자에 대해서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다네. '그분 세존은 공양받아 마땅한 분이고, 바르고 완전하게 깨달은 분이며, 밝은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네. 행복한 길을 가신 분이고, 세상을 아는 분이며, 위없이 사람을 길들이는 조련사이시네.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고, 깨달은 분, 세존이시네.' 이 자리는 그 고타마 존자를 위해 깔아 둔 잠자리라네."
‘‘Atthi, bho māgaṇḍiya, samaṇ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마간디야 존자시여, 사꺄의 아들로서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있습니다.
Taṃ kho pana bhavantaṃ gotamaṃ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그 고따마 존자께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고, 길들일 사람을 이끄시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라고.
Tassesā bhoto gotamassa seyyā paññattā’’ti.
그 고따마 존자를 위해 이 잠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바라드와자 선생, 참으로 못 볼 것을 보았소. 참으로 못 볼 것을 보았소, 바라드와자 선생! 생명을 해치는 자나 다름없는 그 고타마의 잠자리를 보다니."[불확실]
‘‘Duddiṭṭhaṃ vata, bho bhāradvāja, addasāma;
“바라드와자 존자시여, 우리는 참으로 흉한 것을 보았습니다.
duddiṭṭhaṃ vata, bho bhāradvāja, addasāma!
바라드와자 존자시여, 우리는 참으로 흉한 것을 보았습니다!
Ye mayaṃ tassa bhoto gotamassa bhūnahuno seyyaṃ addasāmā’’ti.
우리는 그 고따마 존자, 생장을 죽이는 자의 잠자리를 보았으니 말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간디야여, 그런 말은 삼가게. 그런 말은 삼가게, 마간디야여. 그 고타마 존자에게는 맑은 믿음을 내어 거룩한 이치와 바른 법과 선한 길로 이끌려 훈련받은 이들이 많다네. 현명한 크샤트리아도, 현명한 바라문도, 현명한 장자도, 현명한 사문도 있다네."
‘‘Rakkhassetaṃ, māgaṇḍiya, vācaṃ;
“마간디야 존자시여, 그 말을 삼가십시오.
rakkhassetaṃ, māgaṇḍiya, vācaṃ.
마간디야 존자시여, 그 말을 삼가십시오.
Bahū hi tassa bhoto gotamassa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samaṇapaṇḍitāpi abhippasannā vinītā ariye ñāye dhamme kusale’’ti.
그 고따마 존자께는 지혜로운 왕족도, 지혜로운 바라문도, 지혜로운 장자도, 지혜로운 사문도 많이들 깊이 믿음을 내어, 성스럽고 바른 이치인 유익한 법으로 이끌렸습니다.”
"바라드와자 선생, 우리가 그 고타마 존자를 직접 마주 대한다 해도 면전에서 그렇게 말할 것이오.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 왜냐고? 우리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오."[불확실]
‘‘Sammukhā cepi mayaṃ, bho bhāradvāj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passeyyāma, sammukhāpi naṃ vadeyyāma –
“바라드와자 존자시여, 우리는 그 고따마 존자를 마주 보게 되더라도 마주 대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Evañhi no sutte ocaratī’’ti.
우리의 경전에 이렇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간디야 선생이 언짢아하지 않는다면, 그 말을 사문 고타마께 전하겠네." "걱정할 것 없소, 바라드와자 선생. 내가 한 말이니 그대로 그분께 전하시오."[불확실]
‘‘Sace taṃ bhoto māgaṇḍiyassa agaru āroceyyāmi taṃ samaṇassa gotamassā’’ti.
“마간디야 존자께 거북하지 않으시다면, 저는 그것을 사문 고따마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Appossukko bhavaṃ bhāradvājo vuttova naṃ vadeyyā’’ti.
“바라드와자 존자께서는 개의치 마시고, 말해진 그대로 그에게 말씀하십시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08
세존께서는 맑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늘귀로, 바라드와자 바라문과 유행자 마간디야가 나눈 이 대화를 들으셨다. 저녁때가 되자 홀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불 모신 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깔려 있는 풀자리에 앉으셨다.
Assosi kho bhagav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māgaṇḍiyena paribbājakena saddhiṃ imaṃ kathāsallāpaṃ.
세존께서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신성한 귀의 요소로,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이 유행자 마간디야와 나눈 이 대화를 들으셨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agyāgār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불의 집으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nisīdi bhagavā paññatte tiṇasanthārake.
다가가서 세존께서 마련된 풀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유행자 마간디야와 바로 이 풀자리를 두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Atha kho bhāradvājagott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bhāradvājagottaṃ brāhmaṇ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hu pana te, bhāradvāja, māgaṇḍiyena paribbājakena saddhiṃ imaṃyeva tiṇasanthārakaṃ ārabbha kocideva kathāsallāpo’’ti?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유행자 마간디야와 바로 이 풀자리를 두고 무슨 대화라도 나눈 것이 있는가?”
이 말씀에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놀라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세존께 말씀드렸다. "저희는 바로 그 일을 고타마 존자께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리기도 전에 고타마 존자께서 먼저 말씀해 버리셨습니다." 세존과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다.
Evaṃ vutte, bhāradvājagotto brāhmaṇo saṃviggo lomahaṭṭhajā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은 놀라 털이 곤두선 채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etadeva kho pana mayaṃ bhoto gotamassa ārocetukāmā.
“저희는 바로 그것을 고따마 존자께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Atha ca pana bhavaṃ gotamo anakkhātaṃyeva akkhāsī’’ti.
그런데 고따마 존자께서 말하지 않은 것을 벌써 말씀하셨습니다.”
Ayañca hi bhagavato bhāradvājagottena brāhmaṇena saddhiṃ antarākathā vippakatā hoti.
그리고 세존과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이 이야기는 도중에 끊겼다.
그때 유행자 마간디야가 이리저리 거닐며 산책하다가,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불 모신 방으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그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māgaṇḍiyo paribbājako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yena bhāradvājagottassa brāhmaṇassa agyāgāraṃ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유행자 마간디야가 다리를 풀려고 이리저리 거닐고 두루 돌아다니다가 바라드와자 성을 가진 바라문의 불의 집으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māgaṇḍiyaṃ paribbājak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유행자 마간디야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09
"마간디야여, 눈은 형색을 즐긴다. 형색을 좋아하고, 형색에 기뻐한다. 여래는 그 눈을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다. 그리고 그 단속을 위해 법을 가르친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바로 이것을 두고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라고 말했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 왜냐하면 저희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불확실]
‘‘Cakkhuṃ kho, māgaṇḍiya, rūpārāmaṃ rūparataṃ rūpasammuditaṃ.
“마간디야여, 눈은 형색을 즐기고, 형색을 좋아하고, 형색에 기뻐한다.
Taṃ tathāgatassa dantaṃ guttaṃ rakkhitaṃ saṃvutaṃ, tassa ca saṃvarāya dhammaṃ deseti.
그것을 여래는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으며, 그것의 단속을 위해 법을 설한다.
Idaṃ nu te etaṃ, māgaṇḍiya, sandhāya bhāsitaṃ –
마간디야여, 그대가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인가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tadeva kho pana me, bho gotama, sandhāya bhāsit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제가 바로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Evañhi no sutte ocaratī’’ti.
우리의 경전에 이렇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간디야여, 귀는 소리를 즐기고, 코는 냄새를 즐긴다. 혀는 맛을 즐긴다. 맛을 좋아하고, 맛에 기뻐한다. 여래는 그 혀를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다. 그리고 그 단속을 위해 법을 가르친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바로 이것을 두고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라고 말했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 왜냐하면 저희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불확실]
‘‘Sotaṃ kho, māgaṇḍiya, saddārāmaṃ…pe… ghānaṃ kho, māgaṇḍiya gandhārāmaṃ… jivhā kho, māgaṇḍiya, rasārāmā rasaratā rasasammuditā.
“마간디야여, 귀는 소리를 즐기고, 소리를 좋아하고, 소리에 기뻐한다. 마간디야여, 코는 냄새를 즐기고, 냄새를 좋아하고, 냄새에 기뻐한다. 마간디야여, 혀는 맛을 즐기고, 맛을 좋아하고, 맛에 기뻐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09.1에서 되살렸습니다.
Sā tathāgatassa dantā guttā rakkhitā saṃvutā, tassā ca saṃvarāya dhammaṃ deseti.
그것을 여래는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으며, 그것의 단속을 위해 법을 설한다.
Idaṃ nu te etaṃ, māgaṇḍiya, sandhāya bhāsitaṃ –
마간디야여, 그대가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인가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tadeva kho pana me, bho gotama, sandhāya bhāsit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제가 바로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Evañhi no sutte ocaratī’’ti.
우리의 경전에 이렇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간디야여, 몸은 감촉을 즐기고 감촉을 좋아한다. 마음은 법을 즐긴다. 법을 좋아하고, 법에 기뻐한다. 여래는 그 마음을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다. 그리고 그 단속을 위해 법을 가르친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바로 이것을 두고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라고 말했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문 고타마는 생명을 해치는 자다.' 왜냐하면 저희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불확실]
‘‘Kāyo kho, māgaṇḍiya, phoṭṭhabbārāmo phoṭṭhabbarato…pe… mano kho, māgaṇḍiya, dhammārāmo dhammarato dhammasammudito.
“마간디야여, 몸은 감촉을 즐기고, 감촉을 좋아하고, 감촉에 기뻐한다. 마간디야여, 마음은 법을 즐기고, 법을 좋아하고, 법에 기뻐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09.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tathāgatassa danto gutto rakkhito saṃvuto, tassa ca saṃvarāya dhammaṃ deseti.
그것을 여래는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했으며, 그것의 단속을 위해 법을 설한다.
Idaṃ nu te etaṃ, māgaṇḍiya, sandhāya bhāsitaṃ –
마간디야여, 그대가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인가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tadeva kho pana me, bho gotama, sandhāya bhāsit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제가 바로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bhūnahu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생장을 죽이는 자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Evañhi no sutte ocaratī’’ti.
우리의 경전에 이렇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210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예전에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을 누려 왔다고 하자. 그 형색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웠다.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뒤 형색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안다. 달콤함과 폐해도, 거기서 벗어남도 안다. 그래서 형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형색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갈증을 떠난다. 그는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낸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idhekacco cakkhuviññeyyehi rūpehi paricāritapubbo assa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so aparena samayena rūp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rūpataṇhaṃ pahāya rūp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areyya.
‘여기 어떤 사람이 눈으로 알아지는 형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형색들로 예전에 즐긴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바로 그 형색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형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형색에 대한 열병을 몰아내어, 목마름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고 하자.
Imassa pana te, māgaṇḍiya, kimassa vacanīya’’’nti?
마간디야여, 이 사람에게 무어라 말해야 하겠는가?’”
‘‘Na kiñci, bho gotama’’.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예전에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을 누려 왔다고 하자.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도 누려 왔다고 하자. 그 감촉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웠다.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뒤 감촉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안다. 달콤함과 폐해도, 거기서 벗어남도 안다. 그래서 감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촉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갈증을 떠난다. 그는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낸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idhekacco sotaviññeyyehi saddehi…pe… ghānaviññeyyehi gandhehi… jivhāviññeyyehi rasehi… kāyaviññeyyehi phoṭṭhabbehi paricāritapubbo assa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so aparena samayena phoṭṭhabb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phoṭṭhabbataṇhaṃ pahāya phoṭṭhabb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areyya.
‘여기 어떤 사람이 귀로 알아지는 소리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로, 코로 알아지는 냄새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로, 혀로 알아지는 맛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로,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로 예전에 즐긴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바로 그 감촉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감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촉에 대한 열병을 몰아내어, 목마름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고 하자.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0.2에서 되살렸습니다.
Imassa pana te, māgaṇḍiya, kimassa vacanīya’’’nti?
마간디야여, 이 사람에게 무어라 말해야 하겠는가?’”
‘‘Na kiñci, bho gotama’’.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11
"마간디야여, 나도 예전에 재가자로 살던 때에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누렸다.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을 누렸다. 그것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웠다.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형색들이었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도 그렇게 누렸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 또한 바라던 대로이고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궁전이 셋 있었다. 하나는 우기용, 하나는 겨울용, 하나는 여름용이었다.
‘‘Ahaṃ kho pana, māgaṇḍiya, pubbe agāriyabhūto samān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siṃ cakkhuviññeyyehi rūp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sotaviññeyyehi saddehi…pe… ghānaviññeyyehi gandhehi… jivhāviññeyyehi rasehi… kāyaviññeyyehi phoṭṭhabb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마간디야여, 나도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겼다 — 눈으로 알아지는 형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형색들로, 귀로 알아지는 소리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로, 코로 알아지는 냄새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로, 혀로 알아지는 맛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로,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로 즐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0.2에서 되살렸습니다.
Tassa mayhaṃ, māgaṇḍiya, tayo pāsādā ahesuṃ –
마간디야여, 그런 내게는 세 채의 궁전이 있었다 —
eko vassiko, eko hemantiko, eko gimhiko.
하나는 우기용, 하나는 겨울용, 하나는 여름용이었다.
마간디야여, 나는 우기용 궁전에서 우기 넉 달을 지냈다. 남자 없이 여자들만의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겼고, 아래층 궁전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뒤 나는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알았다. 달콤함과 폐해도, 거기서 벗어남도 알았다. 그래서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욕망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갈증을 떠났다. 나는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낸다.
So kho ahaṃ, māgaṇḍiya, vassike pāsāde vassike cattāro māse nippurisehi tūriyehi paricārayamāno na heṭṭhāpāsādaṃ orohāmi.
마간디야여, 그런 나는 우기용 궁전에서 우기의 넉 달 동안 남자가 없는 악사들에게 시중받으며 궁전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So aparena samayena kām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kāmataṇhaṃ pahāya kām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arāmi.
그런 나는 나중에 바로 그 감각적 욕망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을 몰아내어, 목마름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
나는 다른 중생들을 본다. 그들은 욕망에서 탐욕을 떠나지 못했다. 욕망의 갈애에 갉아 먹히고, 욕망의 열기에 시달리면서도 욕망을 즐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다.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마간디야여, 욕망을 떠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난 곳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하늘의 행복마저 넘어선다. 나는 그 기쁨을 누리기에 저열한 것이 부럽지 않고,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So aññe satte passāmi kāmesu avītarāge kāmataṇhāhi khajjamāne kāmapariḷāhena pariḍayhamāne kāme paṭisevante.
그런 나는 다른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에 타면서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것을 본다.
So tesaṃ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런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āhayaṃ, māgaṇḍiya, ra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
마간디야여, 감각적 욕망과도 떨어지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떨어진 이 기쁨은 —
api dibbaṃ sukhaṃ samadhigayha tiṭṭhati –
하늘의 즐거움조차 넘어서서 서 있으니 —
tāya ratiyā ramamāno hīnassa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 기쁨을 누리기에 나는 저열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212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보자. 재산과 재물이 많은 부유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있다. 그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누린다.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에서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까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우며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것들이다. 그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행을 했다고 하자. 그는 죽어 몸이 무너진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삼십삼천 신들 틈에 나는 것이다. 그는 그곳 난다나 숲에서 천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인다. 그리고 하늘의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누린다. 그런 그가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누리는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본다고 하자.
‘‘Seyyathāpi, māgaṇḍiya,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ḍḍho mahaddhano mahābhog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yya cakkhuviññeyyehi rūpehi…pe… phoṭṭhabb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부유하고 재산이 많고 재물이 넉넉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긴다고 하자 — 눈으로 알아지는 형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형색들로, 귀로 알아지는 소리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로, 코로 알아지는 냄새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로, 혀로 알아지는 맛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로,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로 즐긴다고 하자.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0.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kāyena sucaritaṃ caritvā vācāya sucaritaṃ caritvā manasā sucaritaṃ cari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eyya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sahabyataṃ.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삼십삼천의 신들과 함께 나겠다.
So tattha nandane vane accharāsaṅghaparivuto dibbe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yya.
그는 거기 난다나 숲에서 천녀 무리에 둘러싸여, 하늘의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기겠다.
So passeyya gahapatiṃ vā gahapatiputtaṃ vā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aṃ samaṅgībhūtaṃ paricārayamānaṃ.
그는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기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보겠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다나 숲에서 천녀들에게 둘러싸여 하늘의 욕망을 마음껏 누리는 그 천신의 아들이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부러워하겠는가?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과 인간의 욕망에 이끌리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보다 하늘의 욕망이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api nu so devaputto nandane vane accharāsaṅghaparivuto dibbe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ayamāno amussa gahapatissa vā gahapatiputtassa vā piheyya, mānusakānaṃ vā pañcannaṃ kāmaguṇānaṃ mānusakehi vā kāmehi āvaṭṭeyy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다나 숲에서 천녀 무리에 둘러싸여 하늘의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기는 그 천자가,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부러워하겠는가? 또는 인간의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으로 되돌아가겠는가? 또는 인간의 감각적 욕망에 이끌려 되돌아가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Mānusakehi, bho gotama, kāmehi dibbakāmā abhikkantatarā ca paṇītatarā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인간의 감각적 욕망보다 하늘의 감각적 욕망이 더 빼어나고 더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처럼 마간디야여, 나도 예전에 재가자로 살던 때에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누렸다.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을 누렸다. 그것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웠다.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형색들이었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도 그렇게 누렸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 또한 바라던 대로이고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다 얼마 뒤 나는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알았다. 달콤함과 폐해도, 거기서 벗어남도 알았다. 그래서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욕망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갈증을 떠났다. 나는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낸다. 나는 다른 중생들을 본다. 그들은 욕망에서 탐욕을 떠나지 못해 욕망의 갈애에 갉아 먹히고, 욕망의 열기에 시달리면서도 욕망을 즐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고,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Evameva kho ahaṃ, māgaṇḍiya, pubbe agāriyabhūto samān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siṃ cakkhuviññeyyehi rūp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sotaviññeyyehi saddehi…pe… ghānaviññeyyehi gandhehi… jivhāviññeyyehi rasehi… kāyaviññeyyehi phoṭṭhabb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마간디야여, 꼭 그와 같이 나도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겼다 — 눈으로 알아지는 형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형색들로, 귀로 알아지는 소리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로, 코로 알아지는 냄새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로, 혀로 알아지는 맛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로,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로 즐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0.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aparena samayena kām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kāmataṇhaṃ pahāya kām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arāmi.
그런 나는 나중에 바로 그 감각적 욕망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을 몰아내어, 목마름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
So aññe satte passāmi kāmesu avītarāge kāmataṇhāhi khajjamāne kāmapariḷāhena pariḍayhamāne kāme paṭisevante, so tesaṃ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런 나는 다른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에 타면서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것을 보며, 그런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마간디야여, 욕망을 떠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난 곳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하늘의 행복마저 넘어선다. 나는 그 기쁨을 누리기에 저열한 것이 부럽지 않고,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āhayaṃ, māgaṇḍiya, ra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
마간디야여, 감각적 욕망과도 떨어지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떨어진 이 기쁨은 —
api dibbaṃ sukhaṃ samadhigayha tiṭṭhati –
하늘의 즐거움조차 넘어서서 서 있으니 —
tāya ratiyā ramamāno hīnassa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 기쁨을 누리기에 나는 저열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213
"마간디야여, 또 예를 들어 보자.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몸에 상처가 나 곪았고, 벌레에게 뜯어 먹히고 있다. 그는 손톱으로 상처 입구를 긁어 대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쬔다. 그의 벗들과 동료들, 친척과 혈육이 의사를 불러온다. 외과 의사다. 그 의사가 그에게 약을 지어 준다. 그는 약 덕분에 나병에서 벗어난다. 병이 없어지고, 행복하고, 자유로워 스스로를 다스리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러다 몸에 상처가 나 곪고 벌레에게 뜯어 먹히는 다른 나병 환자를 본다. 그 환자는 손톱으로 상처 입구를 긁어 대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쬐고 있다.
‘‘Seyyathāpi, māgaṇḍiya,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ṃ paritāpeyya.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나병에 걸린 사람이 온몸에 상처가 나고 온몸이 곪아 벌레들에 파먹히면서, 손톱으로 상처 자리를 긁어 헤치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진다고 하자.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이 의사인 외과의를 불러 대겠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bhesajjaṃ kareyya.
그 의사인 외과의가 그에게 약을 지어 주겠다.
So taṃ bhesajjaṃ āgamma kuṭṭhehi parimucceyya, arogo assa sukhī serī sayaṃvasī yena kāmaṃ gamo.
그는 그 약에 힘입어 나병에서 벗어나, 병 없고 편안하며 자유롭고 제 뜻대로 하여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다.
So aññaṃ kuṭṭhiṃ purisaṃ passeyya arugattaṃ pakkagattaṃ kimīhi khajjamānaṃ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aṃ aṅgārakāsuyā kāyaṃ paritāpentaṃ.
그는 다른 나병에 걸린 사람이 온몸에 상처가 나고 온몸이 곪아 벌레들에 파먹히면서, 손톱으로 상처 자리를 긁어 헤치며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지는 것을 보겠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저 나병 환자를 부러워하겠는가? 숯불 구덩이를, 또는 약을 쓰는 일을 부러워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왜냐하면 병이 있을 때에야 약이 필요하고,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api nu so puriso amussa kuṭṭhissa purisassa piheyya aṅgārakāsuyā vā bhesajjaṃ paṭisevanāya v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저 나병에 걸린 사람을 부러워하겠는가? 숯불 구덩이나 약을 쓰는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Roge hi, bho gotama, sati bhesajjena karaṇīyaṃ hoti, roge asati na bhesajjena karaṇīyaṃ hotī’’ti.
고따마 존자시여, 병이 있을 때 약이 쓸모가 있고, 병이 없을 때는 약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로 그처럼 마간디야여, 나도 예전에 재가자로 살던 때에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누렸다.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을 누렸다. 그것은 바라던 대로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웠다. 욕망을 일으키고 마음을 끄는 형색들이었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도 그렇게 누렸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 또한 바라던 대로이고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다 얼마 뒤 나는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알았다. 달콤함과 폐해도, 거기서 벗어남도 알았다. 그래서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욕망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갈증을 떠났다. 나는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낸다. 나는 다른 중생들을 본다. 그들은 욕망에서 탐욕을 떠나지 못해 욕망의 갈애에 갉아 먹히고, 욕망의 열기에 시달리면서도 욕망을 즐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고,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Evameva kho ahaṃ, māgaṇḍiya, pubbe agāriyabhūto samān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siṃ, cakkhuviññeyyehi rūp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sotaviññeyyehi saddehi…pe… ghānaviññeyyehi gandhehi… jivhāviññeyyehi rasehi… kāyaviññeyyehi phoṭṭhabbehi iṭṭhehi kantehi manāpehi piyarūpehi kāmūpasaṃhitehi rajanīyehi.
“마간디야여, 꼭 그와 같이 나도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지니고서 즐겼다 — 눈으로 알아지는 형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형색들로, 귀로 알아지는 소리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로, 코로 알아지는 냄새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로, 혀로 알아지는 맛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로,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들, 곧 원하고 마음을 끌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감각적 욕망을 부르고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로 즐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0.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aparena samayena kām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kāmataṇhaṃ pahāya kām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arāmi.
그런 나는 나중에 바로 그 감각적 욕망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을 몰아내어, 목마름이 사라지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머문다.
So aññe satte passāmi kāmesu avītarāge kāmataṇhāhi khajjamāne kāmapariḷāhena pariḍayhamāne kāme paṭisevante.
그런 나는 다른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병에 타면서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것을 본다.
So tesaṃ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런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마간디야여, 욕망을 떠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난 곳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하늘의 행복마저 넘어선다. 나는 그 기쁨을 누리기에 저열한 것이 부럽지 않고, 그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āhayaṃ, māgaṇḍiya, rati,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
마간디야여, 감각적 욕망과도 떨어지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떨어진 이 기쁨은 —
api dibbaṃ sukhaṃ samadhigayha tiṭṭhati –
하늘의 즐거움조차 넘어서서 서 있으니 —
tāya ratiyā ramamāno hīnassa na pihemi, na tattha abhiramāmi.
그 기쁨을 누리기에 나는 저열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214
마간디야여,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온몸이 헐고 곪았으며 벌레에게 뜯어 먹힌다. 그는 손톱으로 상처 구멍을 긁어 헤치면서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쬔다.
‘‘Seyyathāpi, māgaṇḍiya,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ṃ paritāpeyya.
“마간디야여, 예컨대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어, 온몸이 헐고 짓무르고 벌레들에게 파먹히며 손톱으로 헌데의 입구를 긁어 헤치면서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진다고 하자.
그의 벗과 동료, 친척과 혈족이 그를 위해 외과 의사를 데려온다.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들이 의사이자 외과의를 불러 온다고 하자.
그 의사가 그에게 약을 지어 준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bhesajjaṃ kareyya.
그를 위해 그 의사이자 외과의가 약을 짓는다고 하자.
그는 그 약 덕분에 나병에서 벗어난다. 병이 없어지고 몸이 편안해져서 자유로워진다. 이제 스스로 뜻대로 살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So taṃ bhesajjaṃ āgamma kuṭṭhehi parimucceyya, arogo assa sukhī serī sayaṃvasī yena kāmaṃ gamo.
그가 그 약에 의지하여 나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병 없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가고 싶은 데로 가는 자가 된다고 하자.
그런데 힘센 두 사람이 나타나 그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고 숯불 구덩이로 끌고 간다고 하자.
Tamenaṃ dve balavanto purisā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ṃ upakaḍḍheyyuṃ.
그런 그를 힘센 두 사람이 양쪽 팔을 붙잡고 숯불 구덩이 쪽으로 끌어당긴다고 하자.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버티지 않겠는가?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api nu so puriso iti citiceva kāyaṃ sannāmeyy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몸을 이리로 저리로 비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불확실]
‘‘Evaṃ, bho gotama’’.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앵커 No.6 `Evaṃ`의 확정 문자열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가 세존께 대답했다」는 응낙 정형구여서 이 자리의 저본 `Evaṃ, bho gotama`에 실재하지 않으므로 저본대로 옮겼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4.7에서 되살렸습니다.
왜 그런가?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타마 존자시여, 저 불은 닿으면 괴롭고 몹시 뜨겁고 몹시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Asu hi, bho gotama, aggi dukkhasamphasso ceva mahābhitāpo ca mahāpariḷāho cā’’ti.
“고따마 존자시여, 저 불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불이 닿으면 괴롭고 몹시 뜨겁고 몹시 타오르는 것은 지금에야 그런가? 아니면 전에도 그런 불이었는가?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idāneva nu kho so aggi dukkhasamphasso ceva mahābhitāpo ca mahāpariḷāho ca udāhu pubbepi so aggi dukkhasamphasso ceva mahābhitāpo ca mahāpariḷāho c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불은 지금에야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오르는가, 아니면 이전에도 저 불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올랐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저 불은 지금도 닿으면 괴롭고 몹시 뜨겁고 몹시 타오릅니다. 전에도 그랬습니다.
‘‘Idāni ceva, bho gotama, so aggi dukkhasamphasso ceva mahābhitāpo ca mahāpariḷāho ca, pubbepi so aggi dukkhasamphasso ceva mahābhitāpo ca mahāpariḷāho ca.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도 저 불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오르며, 이전에도 저 불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올랐습니다.
다만 저 나병 환자는 온몸이 헐고 곪았으며 벌레에게 뜯어 먹히고 있었습니다. 손톱으로 상처를 긁어 대느라 감각도 상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닿으면 괴로운 불을 두고도 즐겁다고 뒤바뀌게 인식했던 것입니다.
Asu ca, bho gotama,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upahatindriyo dukkhasamphasseyeva aggismiṃ sukhamiti viparītasaññaṃ paccalatthā’’ti.
그리고 고따마 존자시여, 저 나병에 걸린 사람은 온몸이 헐고 짓무르고 벌레들에게 파먹히며 손톱으로 헌데의 입구를 긁어 헤치느라 감각기능이 상하여, 닿기에 괴로울 뿐인 그 불에 대해 ‘즐겁다’는 뒤집힌 인식을 얻은 것입니다.”
마간디야여, 욕망의 대상들도 이와 같다. 과거에도 닿으면 괴롭고 몹시 뜨겁고 몹시 타오르는 것이었다.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고, 지금 현재에도 그렇다.
‘‘Evameva kho, māgaṇḍiya, atītampi addhānaṃ kāmā dukkhasamphassā ceva mahābhitāpā ca mahāpariḷāhā ca, anāgatampi addhānaṃ kāmā dukkhasamphassā ceva mahābhitāpā ca mahāpariḷāhā ca, etarahipi paccuppannaṃ addhānaṃ kāmā dukkhasamphassā ceva mahābhitāpā ca mahāpariḷāhā ca.
“마간디야여, 바로 그와 같이 지나간 때에도 감각적 욕망들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올랐으며, 오지 않은 때에도 감각적 욕망들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오를 것이며, 지금 현재의 때에도 감각적 욕망들은 닿기에 괴롭고 몹시 뜨겁고 크게 타오른다.
그런데 마간디야여, 이 중생들은 욕망에서 탐욕을 떠나지 못했다. 욕망의 갈애에 뜯어 먹히고 욕망의 열기에 불타서 감각이 상해 있다. 그래서 닿으면 괴로운 욕망의 대상을 두고도 즐겁다고 뒤바뀌게 인식한다.
Ime ca, māgaṇḍiya, sattā kāmesu avītarāgā kāmataṇhāhi khajjamānā kāmapariḷāhena pariḍayhamānā upahatindriyā dukkhasamphassesuyeva kāmesu sukhamiti viparītasaññaṃ paccalatthuṃ.
그리고 마간디야여, 이 중생들은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탐욕을 벗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파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에 타면서, 감각기능이 상하여 닿기에 괴로울 뿐인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즐겁다’는 뒤집힌 인식을 얻었다.
215
마간디야여,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온몸이 헐고 곪았으며 벌레에게 뜯어 먹힌다. 그가 손톱으로 상처 구멍을 긁어 헤치면서 숯불 구덩이에 몸을 쬐고 있다.
‘‘Seyyathāpi, māgaṇḍiya,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ṃ paritāpeti.
“마간디야여, 예컨대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어, 온몸이 헐고 짓무르고 벌레들에게 파먹히며 손톱으로 헌데의 입구를 긁어 헤치면서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진다.
마간디야여, 저 나병 환자는 숯불에 몸을 쬐면 쬘수록 상처 구멍이 더 더러워지고 더 악취가 나고 더 곪는다. 그래도 얼마간 시원하고 맛볼 만한 느낌은 있다.
Yathā yathā kho, māgaṇḍiya, asu kuṭṭhī puriso arugatto pakkagatto kimīhi khajjamāno nakhehi vaṇamukhāni vippatacchamāno aṅgārakāsuyā kāyaṃ paritāpeti tathā tathā’ssa tāni vaṇamukhāni asucitarāni ceva honti duggandhatarāni ca pūtikatarāni ca, hoti ceva kāci sātamattā assādamattā –
마간디야여, 저 나병에 걸린 사람이 온몸이 헐고 짓무르고 벌레들에게 파먹히며 손톱으로 헌데의 입구를 긁어 헤치면서 숯불 구덩이에 몸을 지지면 지질수록, 그만큼 그의 그 헌데의 입구들은 더 더러워지고 더 고약한 냄새가 나고 더 썩어 가지만, 그러면서도 얼마간의 시원함과 얼마간의 달콤함은 있으니 —
그것은 상처 구멍을 긁는 데서 오는 것일 뿐이다.
yadidaṃ vaṇamukhānaṃ kaṇḍūvanahetu;
곧 헌데의 입구를 긁는 데서 오는 것이다;
마간디야여, 중생들도 이와 같다. 욕망에서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망의 갈애에 뜯어 먹히고, 욕망의 열기에 불타면서 욕망의 대상들을 누린다.
evameva kho, māgaṇḍiya, sattā kāmesu avītarāgā kāmataṇhāhi khajjamānā kāmapariḷāhena ca pariḍayhamānā kāme paṭisevanti.
마간디야여, 바로 그와 같이 중생들은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탐욕을 벗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파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에 타면서 감각적 욕망들을 누린다.
그렇게 욕망의 대상들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 중생들의 욕망의 갈애는 더욱 늘어난다. 욕망의 열기에도 더욱 불타게 된다. 그래도 얼마간 시원하고 맛볼 만한 느낌은 있다.
Yathā yathā kho, māgaṇḍiya, sattā kāmesu avītarāgā kāmataṇhāhi khajjamānā kāmapariḷāhena ca pariḍayhamānā kāme paṭisevanti tathā tathā tesaṃ tesaṃ sattānaṃ kāmataṇhā ceva pavaḍḍhati, kāmapariḷāhena ca pariḍayhanti, hoti ceva sātamattā assādamattā –
마간디야여,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탐욕을 벗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파먹히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에 타면서 감각적 욕망들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만큼 그 중생들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는 더 자라나고 그들은 감각적 욕망의 열기에 더 타지만, 그러면서도 얼마간의 시원함과 얼마간의 달콤함은 있으니 —
그것은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에 기대어 생기는 것일 뿐이다.[불확실]
yadidaṃ pañcakāmaguṇe paṭicca.
곧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앵커 No.75·146 `paṭicca`의 확정 문자열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는 이 자리의 저본 `yadidaṃ pañcakāmaguṇe paṭicca`에 실재하지 않으므로 저본대로 옮겼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5.6에서 되살렸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이나 왕의 대신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갖추어 즐긴다고 하자. 그가 욕망의 갈애를 버리지 않고 욕망의 열기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갈증을 여의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냈다거나, 지내고 있다거나, 지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대는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api nu te diṭṭho vā suto vā rājā vā rājamahāmatto vā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ayamāno kāmataṇhaṃ appahāya kāmapariḷāhaṃ ap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āsi vā viharati vā viharissati v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이든 왕의 대신이든,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구족하여 즐기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지 않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를 몰아내지 않은 채, 목마름이 가시고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지냈거나 지내거나 지내게 될 자를, 그대가 본 적이 있는가, 들은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마간디야여!
‘‘Sādhu, māgaṇḍiya!
“훌륭하다, 마간디야여!
마간디야여, 나 또한 그런 이야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왕이나 왕의 대신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갖추어 즐긴다고 하자. 그가 욕망의 갈애를 버리지 않고 욕망의 열기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갈증을 여의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냈다거나, 지내고 있다거나, 지낼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Mayāpi kho etaṃ, māgaṇḍiya, neva diṭṭhaṃ na sutaṃ rājā vā rājamahāmatto vā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ayamāno kāmataṇhaṃ appahāya kāmapariḷāhaṃ appaṭivinodetvā vigatapipāso ajjhattaṃ vūpasantacitto vihāsi vā viharati vā viharissati vā.
마간디야여, 나 또한 이것을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 왕이든 왕의 대신이든,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구족하여 즐기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지 않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를 몰아내지 않은 채, 목마름이 가시고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지냈거나 지내거나 지내게 될 자를.
마간디야여, 갈증을 여의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냈거나 지내고 있거나 지낼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 모두 그렇다. 그들은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리고 욕망의 갈애를 버리고 욕망의 열기를 가라앉힌다. 그렇게 해서 갈증을 여의고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지냈거나 지내고 있거나 지낼 것이다.
Atha kho, māgaṇḍiy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vigatapipāsā ajjhattaṃ vūpasantacittā vihāsuṃ vā viharanti vā viharissanti vā sabbe te kāmānaṃyev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kāmataṇhaṃ pahāya kāmapariḷāhaṃ paṭivinodetvā vigatapipāsā ajjhattaṃ vūpasantacittā vihāsuṃ vā viharanti vā viharissanti vā’’ti.
그렇지만 마간디야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목마름이 가시고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지냈거나 지내거나 지내게 될 이들, 그들은 모두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바로 그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열기를 몰아내어, 목마름이 가시고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지냈거나 지내거나 지내게 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그 자리에서 이 감흥의 노래를 읊으셨다.
Atha kho bhaga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세존께서 이 감흥어를 읊으셨다 —
“건강이 으뜸가는 이로움이요, 열반이 으뜸가는 즐거움이라;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며;
길 가운데서는 여덟 갈래 길이, 불사로 가는 안온한 길이니라.”
Aṭṭhaṅgiko ca maggānaṃ, khemaṃ amatagāmina’’nti.
길들 가운데 여덟 갈래의 길이, 안온하여 불사로 이끄는 길이다.”
216
이 말씀을 듣고 유행자 마간디야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Evaṃ vutte, māgaṇḍiy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놀랍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acchariyaṃ, bho gotama, abbhutaṃ, bho gotama!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타마 존자께서는 참으로 말씀을 잘하셨습니다.
Yāva subhāsitaṃ cidaṃ bhotā gotamena –
고따마 존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잘 말씀하신 것입니다 —
‘건강이 최상의 이익이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nti.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다’라고.
저도 예전 유행자들, 곧 스승의 스승 되는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Mayāpi kho etaṃ, bho gotama, sutaṃ pubbakānaṃ paribbāj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저 또한 이것을, 옛 유행자들, 스승들의 스승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건강이 최상의 이익이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nti;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다’라고;
고타마 존자시여, 그것이 지금 하신 말씀과 꼭 들어맞습니다.
tayidaṃ, bho gotama, samet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것이 이것과 들어맞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예전 유행자들, 곧 스승의 스승 되는 이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Yaṃ pana te etaṃ, māgaṇḍiya, sutaṃ pubbakānaṃ paribbāj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
“마간디야여, 그런데 그대가 들었다는 그것, 옛 유행자들, 스승들의 스승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그것 —
‘건강이 최상의 이익이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그 건강이란 무엇이고, 그 열반이란 무엇인가?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nti, katamaṃ taṃ ārogyaṃ, katamaṃ taṃ nibbāna’’nti?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다’라는 그것에서, 그 건강이란 무엇이고, 그 열반이란 무엇인가?”
이 말을 듣자 유행자 마간디야는 자기 팔다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Evaṃ vutte, māgaṇḍiyo paribbājako sakāneva sudaṃ gattāni pāṇinā anomajjati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행자는 바로 제 몸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건강이고 이것이 열반입니다.
‘‘idantaṃ, bho gotama, ārogyaṃ, idantaṃ nibbānaṃ.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이 바로 그 건강이고, 이것이 바로 그 열반입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저는 지금 병이 없고 행복합니다. 저를 괴롭히는 병은 하나도 없습니다.
Ahañhi, bho gotama, etarahi arogo sukhī, na maṃ kiñci ābādha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지금 병 없고 행복하며, 아무것도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217
마간디야여,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Seyyathāpi, māgaṇḍiya, jaccandho puriso;
“마간디야여, 예컨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 것과 흰 것을 보지 못한다. 푸른 빛깔도, 노란 빛깔도, 붉은 빛깔도, 진홍빛도 보지 못한다. 평평함과 울퉁불퉁함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도, 달과 해도 보지 못한다.[불확실]
so na passeyya kaṇhasukkāni rūpāni, na passeyya nīlakāni rūpāni, na passeyya pītakāni rūpāni, na passeyya lohitakāni rūpāni, na passeyya mañjiṭṭhakāni rūpāni, na passeyya samavisamaṃ, na passeyya tārakarūpāni, na passeyya candimasūriye.
그는 검고 흰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푸른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노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붉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진홍의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고른 것과 고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달과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rūpa`의 확정역 「물질」이 이 자리의 뜻과 어긋나 저본대로 「형색」으로 옮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가 눈 밝은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So suṇeyya cakkhumato bhāsamānassa –
그가 눈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고 하자 —
‘아, 여러분,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은 참 훌륭하구나!’
‘chekaṃ vata, bho,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아, 여보시오, 흰 옷은 참 좋기도 하지,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구려!’라고.
그는 흰 옷을 찾아 돌아다닌다.
So odātapariyesanaṃ careyya.
그가 흰 것을 찾아 나선다고 하자.
그러자 어떤 사람이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로 그를 속인다.
Tamenaṃ aññataro puriso telamalikatena sāhuḷicīrena vañceyya –
그런 그를 어떤 사람이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로 속인다고 하자 —
‘여보시오, 여기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이 있소.’
‘idaṃ te, ambho purisa,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여보시오, 이 사람아, 이것이 그대의 흰 옷이오,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오’라고.
그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치고는, 기뻐하며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So taṃ paṭiggaṇheyya, paṭiggahetvā pārupeyya, pārupetvā attamano attamanavācaṃ nicchāreyya –
그가 그것을 받고, 받아서는 걸쳐 입고, 걸쳐 입고서는 흡족하여 흡족한 말을 내뱉는다고 하자 —
‘아, 여러분,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은 참 훌륭하구나!’
‘chekaṃ vata, bho,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아, 여보시오, 흰 옷은 참 좋기도 하지,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구려!’라고.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날 때부터 눈먼 그 사람이 알고 보면서 저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를 받아 걸쳤겠는가? 기뻐하며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겠는가?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api nu so jaccandho puriso jānanto passanto amuṃ telamalikataṃ sāhuḷicīraṃ paṭiggaṇheyya, paṭiggahetvā pārupeyya, pārupetvā attamano attamanavācaṃ nicchāreyya –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알고 보면서 저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를 받고, 받아서는 걸쳐 입고, 걸쳐 입고서는 흡족하여 흡족한 말을 내뱉겠는가 —
‘아, 여러분,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은 참 훌륭하구나!’ 아니면 눈 밝은 사람을 믿어서 그랬겠는가?
‘chekaṃ vata, bho,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udāhu cakkhumato saddhāyā’’ti?
‘아, 여보시오, 흰 옷은 참 좋기도 하지,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구려!’라고. 아니면 눈 있는 이를 믿어서 그러겠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날 때부터 눈먼 그 사람은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저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를 받아 걸치고, 기뻐하며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Ajānanto hi, bho gotama, apassanto so jaccandho puriso amuṃ telamalikataṃ sāhuḷicīraṃ paṭiggaṇheyya, paṭiggahetvā pārupeyya, pārupetvā attamano attamanavācaṃ nicchāreyya –
“고따마 존자시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에 그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저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를 받고, 받아서는 걸쳐 입고, 걸쳐 입고서는 흡족하여 흡족한 말을 내뱉을 것입니다 —
‘아, 여러분,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은 참 훌륭하구나!’ 그것은 눈 밝은 사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chekaṃ vata, bho,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cakkhumato saddhāyā’’ti.
‘아, 여보시오, 흰 옷은 참 좋기도 하지,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구려!’라고. 눈 있는 이를 믿어서 그럴 것입니다.”
마간디야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도 이와 같다. 그들은 눈이 멀어 볼 수 없으니 건강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런 시를 읊는다.
‘‘Evameva kho, māgaṇḍiya,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andhā acakkhukā ajānantā ārogyaṃ, apassantā nibbānaṃ, atha ca panimaṃ gāthaṃ bhāsanti –
“마간디야여, 바로 그와 같이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은 눈멀고 눈이 없어 건강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하면서도, 이 게송을 읊는다 —
‘건강이 최상의 이익이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nti.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다’라고.
마간디야여, 이 시는 예전의 아라한이자 바르게 깨달은 분들이 읊으신 것이다.
Pubbakehesā, māgaṇḍiya, arahantehi sammāsambuddhehi gāthā bhāsitā –
마간디야여, 이 게송은 옛적의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께서 읊으신 것이다 —
‘건강이 으뜸가는 이로움이요, 열반이 으뜸가는 즐거움이라;
‘Ārogyaparamā lābhā,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이득은 건강이 으뜸이고, 열반은 으뜸가는 즐거움이며;
길 가운데서는 여덟 갈래 길이, 불사로 가는 안온한 길이니라.’
Aṭṭhaṅgiko ca maggānaṃ, khemaṃ amatagāmina’nti.
길들 가운데 여덟 갈래의 길이, 안온하여 불사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218
그 시가 지금은 차츰 범부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
‘‘Sā etarahi anupubbena puthujjanagāthā.
“그것이 지금은 차츰차츰 범부의 게송이 되었다.
마간디야여, 이 몸은 병이요 종기요 화살이요 재난이요 질환이다. 그런데 그대는 병이요 종기요 화살이요 재난이요 질환인 이 몸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건강이고 이것이 열반입니다.’
Ayaṃ kho pana, māgaṇḍiya, kāyo rogabhūto gaṇḍabhūto sallabhūto aghabhūto ābādhabhūto, so tvaṃ imaṃ kāyaṃ rogabhūtaṃ gaṇḍabhūtaṃ sallabhūtaṃ aghabhūtaṃ ābādhabhūtaṃ –
그런데 마간디야여, 이 몸은 병이 된 것이고 종기가 된 것이고 화살이 된 것이고 재앙이 된 것이고 앓이가 된 것인데, 그런 그대가 병이 된 것이고 종기가 된 것이고 화살이 된 것이고 재앙이 된 것이고 앓이가 된 이 몸을 두고 —
‘idantaṃ, bho gotama, ārogyaṃ, idantaṃ nibbāna’nti vades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이 바로 그 건강이고, 이것이 바로 그 열반입니다’라고 말한다.
마간디야여, 그대에게는 그 성스러운 눈이 없다. 그 눈이 있어야 그대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Tañhi te, māgaṇḍiya, ariyaṃ cakkhuṃ natthi yena tvaṃ ariyena cakkhunā ārogyaṃ jāneyyāsi, nibbānaṃ passeyyāsī’’ti.
마간디야여, 그대에게는 그 성스러운 눈이 없다. 그 성스러운 눈으로라야 그대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터인데.”
저는 고타마 존자께 이토록 깊이 믿음이 갑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oto gotamassa!
“저는 고따마 존자께 이만큼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제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Pahoti me bhavaṃ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ārogyaṃ jāneyyaṃ, nibbānaṃ passeyy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습니다.”
219
마간디야여,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Seyyathāpi, māgaṇḍiya, jaccandho puriso;
“마간디야여, 예컨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 것과 흰 것을 보지 못한다. 푸른 빛깔도, 노란 빛깔도, 붉은 빛깔도, 진홍빛도 보지 못한다. 평평함과 울퉁불퉁함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도, 달과 해도 보지 못한다.
so na passeyya kaṇhasukkāni rūpāni, na passeyya nīlakāni rūpāni, na passeyya pītakāni rūpāni, na passeyya lohitakāni rūpāni, na passeyya mañjiṭṭhakāni rūpāni, na passeyya samavisamaṃ, na passeyya tārakarūpāni, na passeyya candimasūriye.
그는 검고 흰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푸른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노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붉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진홍의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고른 것과 고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달과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벗과 동료, 친척과 혈족이 그를 위해 외과 의사를 데려온다.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들이 의사이자 외과의를 불러 온다고 하자.
그 의사가 그에게 약을 지어 준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bhesajjaṃ kareyya.
그를 위해 그 의사이자 외과의가 약을 짓는다고 하자.
그러나 그는 그 약을 써도 눈이 생기지 않고, 눈이 맑아지지도 않는다.
So taṃ bhesajjaṃ āgamma na cakkhūni uppādeyya, na cakkhūni visodheyya.
그가 그 약에 의지하고도 눈을 생기게 하지 못하고, 눈을 맑게 하지 못한다고 하자.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의사는 오직 피곤과 괴로움만 얻지 않겠는가?[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māgaṇḍiya, nanu so vejjo yāvadeva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의사는 오직 지치고 성가시기만 할 몫이지 않겠는가?” (앵커 No.169 `yāvadeva`의 확정 문자열 「장난도 아니고, 자만도 아니고, 치장도 아니고, 꾸밈도 아니며, 오직 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일 뿐」은 이 자리의 저본 `yāvadeva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a`에 실재하지 않으므로 저본대로 옮겼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19.6에서 되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불확실]
‘‘Evaṃ, bho gotama’’.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앵커 No.6 `Evaṃ` 동일 사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간디야여, 나도 이와 같다. 내가 그대에게 이렇게 법을 설한다고 하자.
‘‘Evameva kho, māgaṇḍiya, ahañce te dhammaṃ deseyyaṃ –
“마간디야여, 바로 그와 같이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하여 —
‘이것이 건강이고 이것이 열반이다.’ 그런데 그대는 건강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할 것이다.
‘idantaṃ ārogyaṃ, idantaṃ nibbāna’nti, so tvaṃ ārogyaṃ na jāneyyāsi, nibbānaṃ na passeyyāsi.
‘이것이 바로 그 건강이고, 이것이 바로 그 열반이다’라고 하더라도, 그런 그대가 건강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내게 피곤이 되고 괴로움이 될 것이다.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그것은 나에게 지침이 되고, 그것은 나에게 성가심이 될 것이다.”
저는 고타마 존자께 이토록 깊이 믿음이 갑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oto gotamassa.
“저는 고따마 존자께 이만큼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제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Pahoti me bhavaṃ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ārogyaṃ jāneyyaṃ, nibbānaṃ passeyy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가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습니다.”
220
마간디야여,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Seyyathāpi, māgaṇḍiya, jaccandho puriso;
“마간디야여, 예컨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 것과 흰 것을 보지 못한다. 푸른 빛깔도, 노란 빛깔도, 붉은 빛깔도, 진홍빛도 보지 못한다. 평평함과 울퉁불퉁함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도, 달과 해도 보지 못한다.
so na passeyya kaṇhasukkāni rūpāni, na passeyya nīlakāni rūpāni, na passeyya pītakāni rūpāni, na passeyya lohitakāni rūpāni, na passeyya mañjiṭṭhakāni rūpāni, na passeyya samavisamaṃ, na passeyya tārakarūpāni, na passeyya candimasūriye.
그는 검고 흰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푸른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노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붉은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진홍의 형색들을 보지 못하고, 고른 것과 고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고, 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달과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가 눈 밝은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So suṇeyya cakkhumato bhāsamānassa –
그가 눈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고 하자 —
‘아, 여러분,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은 참 훌륭하구나!’
‘chekaṃ vata, bho,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아, 여보시오, 흰 옷은 참 좋기도 하지,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구려!’라고.
그는 흰 옷을 찾아 돌아다닌다.
So odātapariyesanaṃ careyya.
그가 흰 것을 찾아 나선다고 하자.
그러자 어떤 사람이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로 그를 속인다.
Tamenaṃ aññataro puriso telamalikatena sāhuḷicīrena vañceyya –
그런 그를 어떤 사람이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로 속인다고 하자 —
‘여보시오, 여기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이 있소.’
‘idaṃ te, ambho purisa,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여보시오, 이 사람아, 이것이 그대의 흰 옷이오,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오’라고.
그는 그것을 받아서 몸에 걸친다.
So taṃ paṭiggaṇheyya, paṭiggahetvā pārupeyya.
그가 그것을 받고, 받아서는 걸쳐 입는다고 하자.
그의 벗과 동료, 친척과 혈족이 그를 위해 외과 의사를 데려온다.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들이 의사이자 외과의를 불러 온다고 하자.
그 의사가 그를 위해 약을 짓는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bhesajjaṃ kareyya –
그를 위해 그 의사이자 외과의가 약을 짓는다고 하자 —
곧 토하게 하는 약, 설사하게 하는 약, 안약, 연고, 코에 넣는 약이다.
uddhaṃvirecanaṃ adhovirecanaṃ añjanaṃ paccañjanaṃ natthukammaṃ.
위로 토하게 하는 약, 아래로 설사하게 하는 약, 눈에 바르는 약, 눈에 덧바르는 약, 코에 넣는 약을.
그는 그 약 덕분에 눈이 생기고 눈이 맑아진다.
So taṃ bhesajjaṃ āgamma cakkhūni uppādeyya, cakkhūni visodheyya.
그가 그 약에 의지하여 눈을 생기게 하고, 눈을 맑게 한다고 하자.
눈이 생기는 즉시, 저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에 대한 욕심과 애착이 사라진다.
Tassa saha cakkhuppādā yo amusmiṃ telamalikate sāhuḷicīre chandarāgo so pahīyetha.
그에게는 눈이 생김과 동시에, 저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에 대한 욕구와 탐욕이 버려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고 적으로 여긴다. 심지어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할 것이다.
Tañca naṃ purisaṃ amittatopi daheyya, paccatthikatopi daheyya, api ca jīvitā voropetabbaṃ maññeyya –
그리고 그는 그 사람을 원수로도 여기고, 적으로도 여기며, 나아가 목숨을 빼앗아야 마땅하다고까지 여길 것이다 —
‘아,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저 사람에게 속고 기만당하고 홀렸구나. 기름때 묻은 더러운 누더기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는 “여보시오, 여기 희고 아름답고 때 없이 깨끗한 옷이 있소.” 하고 말했지.’
‘dīgharattaṃ vata, bho, ahaṃ iminā purisena telamalikatena sāhuḷicīrena nikato vañcito paluddho –
‘아, 여보시오, 나는 오랜 세월 이 사람에게 기름때에 절은 거친 삼베 누더기로 속고 기만당하고 꾀임을 당했구나 —
idaṃ te, ambho purisa, odātaṃ vatthaṃ abhirūpaṃ nimmalaṃ sucī’ti.
여보시오, 이 사람아, 이것이 그대의 흰 옷이오, 보기 좋고 티 없고 깨끗하오, 하면서’라고.
마간디야여, 나도 이와 같다. 내가 그대에게 이렇게 법을 설한다고 하자.
Evameva kho, māgaṇḍiya, ahañce te dhammaṃ deseyyaṃ –
마간디야여, 바로 그와 같이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하여 —
‘이것이 건강이고 이것이 열반이다.’
‘idantaṃ ārogyaṃ, idantaṃ nibbāna’nti.
‘이것이 바로 그 건강이고, 이것이 바로 그 열반이다’라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대는 건강을 알고 열반을 볼 것이다.
So tvaṃ ārogyaṃ jāneyyāsi, nibbānaṃ passeyyāsi.
그러면 그런 그대는 건강을 알게 되고, 열반을 보게 될 것이다.
눈이 생기는 즉시, 그대의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에 대한 욕심과 애착이 사라질 것이다.
Tassa te saha cakkhuppādā yo pañcasupādānakkhandhesu chandarāgo so pahīyetha;
그런 그대에게는 눈이 생김과 동시에, 다섯 취착의 무더기에 대한 욕구와 탐욕이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api ca te evamassa –
나아가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아,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이 마음에 속고 기만당하고 홀렸구나.
‘dīgharattaṃ vata, bho, ahaṃ iminā cittena nikato vañcito paluddho.
‘아, 여보시오, 나는 오랜 세월 이 마음에게 속고 기만당하고 꾀임을 당했구나.
나는 물질만을 취착하며 취착했구나. 느낌만을, 인식만을, 형성들만을, 의식만을 취착하며 취착했구나.
Ahañhi rūpaṃyeva upādiyamāno upādiyiṃ, vedanaṃyeva upādiyamāno upādiyiṃ, saññaṃyeva upādiyamāno upādiyiṃ, saṅkhāreyeva upādiyamāno upādiyiṃ, viññāṇaṃyeva upādiyamāno upādiyiṃ.
나는 물질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느낌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인식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형성작용들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의식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다.
그런 나에게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생겨난다.
Tassa me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그런 나에게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이 모든 괴로움의 덩어리가 일어난다.’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ī’’’ti.
이와 같이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일어남이 있다’라고.”
저는 고타마 존자께 이토록 깊이 믿음이 갑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oto gotamassa!
“저는 고따마 존자께 이만큼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제가 눈먼 상태에서 벗어나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Pahoti me bhavaṃ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mhā āsanā anandho vuṭṭhaheyy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가 이 자리에서 눈멀지 않은 채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습니다.”
221
그렇다면 마간디야여, 그대는 참된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Tena hi tvaṃ, māgaṇḍiya, sappurise bhajeyyāsi.
“그렇다면 마간디야여, 그대는 참된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마간디야여, 그대가 참된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그때 그대는 바른 법을 듣게 될 것이다.
Yato kho tvaṃ, māgaṇḍiya, sappurise bhajissasi tato tvaṃ, māgaṇḍiya, saddhammaṃ sossasi;
마간디야여, 그대가 참된 사람들을 가까이하게 되면, 그때 마간디야여, 그대는 바른 법을 듣게 될 것이다;
마간디야여, 그대가 바른 법을 들으면 그때 그대는 법에 맞게 차례로 실천하게 될 것이다.
yato kho tvaṃ, māgaṇḍiya, saddhammaṃ sossasi tato tvaṃ, māgaṇḍiya, dhammānudhammaṃ paṭipajjissasi;
마간디야여, 그대가 바른 법을 듣게 되면, 그때 마간디야여, 그대는 법에 따르는 법을 닦게 될 것이다;
마간디야여, 그대가 법에 맞게 차례로 실천하면 그때 그대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yato kho tvaṃ, māgaṇḍiya, dhammānudhammaṃ paṭipajjissasi tato tvaṃ, māgaṇḍiya, sāmaṃyeva ñassasi, sāmaṃ dakkhissasi –
마간디야여, 그대가 법에 따르는 법을 닦게 되면, 그때 마간디야여, 그대는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
‘이것들이 병이요 종기요 화살이다.’
ime rogā gaṇḍā sallā;
‘이것들이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다;
‘여기에서 병과 종기와 화살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불확실]
idha rogā gaṇḍā sall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에서 병과 종기와 화살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앵커 No.117 `idha`의 확정 문자열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으로 시작하는 비구 정형구여서 이 자리의 저본 `idha rogā gaṇḍā sallā aparisesā nirujjhanti`에 실재하지 않으므로 저본대로 옮겼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5:221.6에서 되살렸습니다.
‘나에게 취착이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지고, 존재가 사라지면 태어남이 사라진다.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사라진다.’
Tassa me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그런 나에게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므로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소멸한다;
‘이렇게 해서 이 모든 괴로움의 덩어리가 사라진다.’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이와 같이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소멸이 있다’라고.”
222
이 말씀을 듣고 유행자 마간디야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Evaṃ vutte, māgaṇḍiy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훌륭하십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타마 존자시여,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어 주듯이 말입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이 형색들을 보리라 하듯이;
고타마 존자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존자와 법과 비구 승가를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Es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고타마 존자 곁에서 출가를 얻고 구족계를 받고 싶습니다.
Labheyyāhaṃ bhoto gotamassa santike pabbajjaṃ, labheyyaṃ upasampada’’nti.
저는 고따마 존자 곁에서 출가를 얻고자 하며, 구족계를 얻고자 합니다.”
마간디야여,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이 이 법과 율에서 출가와 구족계를 바란다면, 그는 넉 달 동안 별도로 지내야 한다.
‘‘Yo kho, māgaṇḍiya, aññatitthiyapubbo imasmiṃ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ṃ, ākaṅkhati upasampadaṃ, so cattāro māse parivasati;
“마간디야여, 전에 다른 교파에 속했던 이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를 바라고 구족계를 바라면, 그는 넉 달을 따로 지낸다;
넉 달이 지나면 마음에 든 비구들이 그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가 되게 한다.
catunnaṃ mā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넉 달이 지나면 비구들이 만족한 뒤에 출가시키고,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준다.
다만 나는 이 일에서 사람마다 다름이 있음을 알고 있다.
Api ca mettha puggalavemattatā viditā’’ti.
그렇지만 여기에서 사람에 따른 차이는 나에게 알려져 있다.”
세존이시여,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들은 이 법과 율에서 출가와 구족계를 바라며 넉 달 동안 별도로 지냅니다. 넉 달이 지나면 마음에 든 비구들이 그들을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가 되게 합니다. 그것이 그러하다면 저는 넉 해 동안 별도로 지내겠습니다. 넉 해가 지나 마음에 든 비구들께서 저를 출가시켜 주시고 구족계를 주시어 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Sace, bhante, aññatitthiyapubbā imasmiṃ dhammavinaye ākaṅkhantā pabbajjaṃ, ākaṅkhantā upasampadaṃ cattāro māse parivasanti, catunnaṃ mā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다른 교파에 속했던 이들이 이 법과 율에서 출가를 바라고 구족계를 바라며 넉 달을 따로 지내고, 넉 달이 지나면 비구들이 만족한 뒤에 출가시키고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준다면;
ahaṃ cattāri vassāni parivasissāmi, catunnaṃ vas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u, upasampādentu bhikkhubhāvāyā’’ti.
저는 사 년을 따로 지내겠습니다. 사 년이 지나면 비구들이 만족한 뒤에 출가시켜 주시고,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주십시오.”
유행자 마간디야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도 얻었다.
Alattha kho māgaṇḍiy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alattha upasampadaṃ.
마간디야 유행자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간디야 존자는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지냈다. 그러다 오래지 않아 양가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목적에 이르렀다. 그것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아 이루고 갖추어 지냈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māgaṇḍiy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 –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마간디야 존자는 홀로 떨어져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지내다가,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 목적인 위없는 것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청정한 삶의 완성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지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알았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다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그는 곧바로 알았다.
마간디야 존자는 아라한들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Aññataro kho panāyasmā māgaṇḍiyo arahataṃ ahosīti.
그리하여 마간디야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마간디야 경」이 끝났다. 다섯째.
Māgaṇḍiyasuttaṃ niṭṭhitaṃ pañcamaṃ.
마간디야 경이 끝났다. 다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