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odhirājakumārasuttaṃ
5. 보디 왕자 경
324
이렇게 들었습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박가 사람들의 땅에 계셨다. 수수마라기리에 있는 헤사칼라 숲, 사슴동산이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bhaggesu viharati susumāragire bhesakaḷāvane migadāye.
한때 세존께서 박가국의 수수마라기라, 베사깔라 숲 녹야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때 보디 왕자에게는 코카나다라는 누각이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 밖의 누구든 아직 들어가 머문 적이 없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bodhissa rājakumārassa kokanado nāma pāsādo acirakārito hoti anajjhāvuṭṭho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kenaci vā manussabhūtena.
그때 보디 왕자에게 꼬까나다라는 이름의 저택이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사람인 그 누구도 아직 그곳에 살지 않았다.
어느 날 보디 왕자가 산지카풋타 청년을 불러 말했다. “여보게 산지카풋타, 세존께 가 주게.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을 올리게. 병은 없으신지, 불편은 없으신지 여쭈어 주게. 가볍게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어떠신지, 편히 지내시는지도 여쭈어 주게. 이렇게 말씀드리게. ‘세존이시여, 보디 왕자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은 없으신지 여쭙니다. 가볍게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어떠신지, 편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전하게. ‘세존이시여, 내일 보디 왕자의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십시오.’”[불확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sañjikāputtaṃ māṇavaṃ āmantesi –
그때 보디 왕자가 산지까뿟따 학도를 불렀다[불확실]
불확실 —
‘‘ehi tvaṃ, samma sañjikāputt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이리 오게, 산지까뿟따 벗이여, 그대는 세존께 나아가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나아가서 내 말로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뿐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게[불확실]
불확실 —
‘bodhi, bhante, rājakumār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세존이시여, 보디 왕자가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며,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뿐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라고.
Evañca vadehi –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
‘adhivāsetu kira, bhante, bhagavā bodhissa rājakumārassa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부디 보디 왕자의 내일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소서’라고.”
산지카풋타 청년은 “알겠습니다, 나리”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세존께 갔다.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고, 기쁘고 정겨운 인사말이 오간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불확실]
‘‘Evaṃ, bho’’ti kho sañjikāputto māṇavo bodhissa rājakumārassa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러겠습니다” 하고 산지까뿟따 학도는 보디 왕자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나아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나아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añjikāputt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산지까뿟따 학도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고타마 존자시여, 보디 왕자가 고타마 존자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은 없으신지 여쭙니다. 가볍게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어떠신지, 편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또 이렇게 전했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내일 보디 왕자의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십시오.’”
‘‘bodhi kho rājakumāro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보디 왕자가 고따마 존자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며,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뿐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Evañca vadeti –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adhivāsetu kira bhavaṃ gotamo bodhissa rājakumārassa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고따마 존자께서는 부디 보디 왕자의 내일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소서’라고.”
세존께서는 말없이 수락하셨다. 산지카풋타 청년은 세존께서 수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보디 왕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불확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Atha kho sañjikāputto māṇavo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uṭṭhāyāsanā yena bodhi rājakumāro tenupasaṅkami;
그때 산지까뿟따 학도는 세존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디 왕자에게 나아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bodhiṃ rājakumāraṃ etadavoca –
나아가서 보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왕자님의 말씀을 받들어 고타마 존자께 이렇게 전했습니다. ‘보디 왕자가 고타마 존자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은 없으신지 여쭙니다. 가볍게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어떠신지, 편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또 이렇게 전했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내일 보디 왕자의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십시오.’ 사문 고타마께서 수락하셨습니다.”
‘‘avocumha bhoto vacanen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
“저희가 왕자님의 말씀으로 그 고따마 존자께 말씀드렸습니다 —
‘bodhi kho rājakumāro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보디 왕자가 고따마 존자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며,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뿐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Evañca vadeti –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adhivāsetu kira bhavaṃ gotamo bodhissa rājakumārassa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고따마 존자께서는 부디 보디 왕자의 내일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소서’라고.
Adhivuṭṭhañca pana samaṇena gotamenā’’ti.
그리고 사문 고따마께서 받아들이셨습니다.”
325
밤이 지나자 보디 왕자는 자기 집에서 맛있는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했다. 코카나다 누각에는 맨 아래 계단 끝까지 흰 천을 깔게 했다. 그리고 산지카풋타 청년을 불러 말했다.[불확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nivesan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kokanadañca pāsādaṃ odātehi dussehi santharāpetvā yāva pacchimasopānakaḷevarā, sañjikāputtaṃ māṇavaṃ āmantesi –
그때 보디 왕자는 그 밤이 지나고 자기 처소에서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하게 하고, 꼬까나다 저택을 흰 천으로 맨 아래 계단까지 깔게 한 뒤, 산지까뿟따 학도를 불렀다[불확실]
불확실 —
“여보게 산지카풋타, 세존께 가서 공양 때가 되었음을 알려 드리게.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ehi tvaṃ, samma sañjikāputt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이리 오게, 산지까뿟따 벗이여, 그대는 세존께 나아가게;
upasaṅkamitvā bhagavato kālaṃ ārocehi –
나아가서 세존께 때를 알리게 —
‘kālo, bhante, niṭṭhitaṃ bhatta’’’nti.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산지카풋타 청년은 “알겠습니다, 나리”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세존께 가서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고타마 존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Evaṃ, bho’’ti kho sañjikāputto māṇavo bodhissa rājakumārassa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러겠습니다” 하고 산지까뿟따 학도는 보디 왕자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o kālaṃ ārocesi –
나아가서 세존께 때를 알렸다 —
‘‘kālo, bho gotama, niṭṭhitaṃ bhatta’’nti.
“고따마 존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오전에 아랫옷을 두르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보디 왕자의 집으로 가셨다. 보디 왕자는 세존을 기다리며 바깥 대문 곁에 서 있었다. 멀리서 오시는 세존이 보이자 마중을 나가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세존을 앞세워 코카나다 누각으로 갔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yena bodhissa rājakumār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오전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보디 왕자의 처소로 나아가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bodhi rājakumāro bahidvārakoṭṭhake ṭhito hoti bhagavantaṃ āgamayamāno.
그때 보디 왕자는 바깥 문간에 서서 세존을 기다리고 있었다.
Addasā kho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dūratova āgacchantaṃ.
보디 왕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paccuggan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urakkhatvā yena kokanado pāsādo tenupasaṅkami.
보고서 마중 나가 세존께 절하고, 세존을 앞세우고 꼬까나다 저택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맨 아래 계단 끝에 멈추어 서 계셨다. 보디 왕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천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수가타시여, 천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오래도록 저에게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Atha kho bhagavā pacchimaṃ sopānakaḷevaraṃ nissāya aṭṭhāsi.
그때 세존께서 맨 아래 계단에 기대어 서셨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ruhatu, bhante, bhagavā dussāni, abhiruhatu sugato dussān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천을 밟고 오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천을 밟고 오르소서;
yaṃ mama assa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그것이 저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래도 잠자코 계셨다.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보디 왕자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세존이시여, 올라가 주십시오. 수가타시여, 천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오래도록 저에게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gavā tuṇhī ahosi.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utiyampi kho…pe… tatiyampi kho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천을 밟고 오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천을 밟고 오르소서; 그것이 저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세 번째로도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25.13 ~ PN:mn85/325.16에서 되살렸습니다.
‘‘abhiruhatu, bhante, bhagavā.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르소서.
Dussāni, abhiruhatu sugato dussāni;
천을 밟고,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천을 밟고 오르소서;
yaṃ mama assa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그것이 저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326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바라보셨다. 아난다 존자가 보디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 천을 거두십시오. 세존께서는 천 조각을 밟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후대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십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apalokesi.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바라보셨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bodhiṃ rājakumār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보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ṃharatu, rājakumāra, dussāni;
“왕자여, 천을 거두시오;
na bhagavā celapaṭikaṃ akkamissati.
세존께서는 천 깔개를 밟지 않으실 것이오.
Pacchimaṃ janataṃ tathāgato anukampatī’’ti.
여래께서는 뒷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신다오.”
보디 왕자는 천을 거두게 하고 코카나다 누각 위층에 자리를 마련했다. 세존께서는 누각에 올라 비구 승가와 함께 그 자리에 앉으셨다. 보디 왕자는 붓다를 으뜸으로 하는 비구 승가에 맛있는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가득 대접했다. 더 드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dussāni saṃharāpetvā uparikokanadapāsāde āsanāni paññapesi.
그때 보디 왕자는 천을 거두게 하고 꼬까나다 저택 위층에 자리를 마련했다.
Atha kho bhagavā kokanadaṃ pāsādaṃ abhiruh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saddhiṃ bhikkhusaṅghena.
그때 세존께서 꼬까나다 저택에 올라, 마련된 자리에 비구 승가와 함께 앉으셨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buddhappamukhaṃ bhikkhusaṅghaṃ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그때 보디 왕자는 붓다를 앞세운 비구 승가를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으로 손수 흡족하게 대접하고 만족시켰다.
세존께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보디 왕자는 낮은 자리를 하나 잡아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즐거움으로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즐거움은 괴로움으로 얻어야 한다.’”
Atha kho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bhuttāviṃ onītapattapāṇiṃ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그때 보디 왕자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거두시자, 낮은 자리 하나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mayhaṃ kho, bhante, evaṃ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
‘na kho sukhena sukhaṃ adhigantabbaṃ, dukkhena kho sukhaṃ adhigantabba’’’nti.
‘즐거움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없고, 괴로움으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327
“왕자여, 나도 깨닫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살이던 때였다. ‘즐거움으로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즐거움은 괴로움으로 얻어야 한다.’[불확실]
‘‘Mayhampi kho, rājakumār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왕자여, 나에게도 깨닫기 전, 아직 바르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na kho sukhena sukhaṃ adhigantabbaṃ, dukkhena kho sukhaṃ adhigantabba’nti.
‘즐거움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없고, 괴로움으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왕자여, 그 뒤 나는 아직 젊어서 머리칼이 검었고, 인생의 첫 시기를 빼어난 청춘으로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원치 않아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나는 그 곁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승복을 입은 채 집을 떠나 출가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aparena samayena daharova samāno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akāmakānaṃ mātāpitūnaṃ assumukhānaṃ rudantān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
왕자여, 그런 나는 뒷날, 아직 젊고 머리칼이 새까맣고 좋은 젊음을 갖춘 한창때에, 원치 않는 부모가 눈물 젖은 얼굴로 우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나아갔다.
출가한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찾았다. 위없는 평온의 길을 구하며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벗 깔라마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불확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그렇게 나아간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 찾으며,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여 알라라 깔라마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icchāmahaṃ, āvuso kālāma,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벗 깔라마여, 저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왕자여,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대답했다. ‘머무시오, 존자여.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 수 있는 법이오.’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그 법을 익혔다.
Evaṃ vutte, rājakumāra, āḷāro kālāmo maṃ etadavoca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viharatāyasmā,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존자는 머무시게. 이 법은 이러하여,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이네’라고.
So kho ahaṃ, rājakumār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빨리 그 법을 다 배웠다.
왕자여, 나는 입술만 놀려 읊조리는 정도로 그 법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혜의 말, 장로의 말을 한다고 나도 말하고 남들도 말했다. 나는 ‘안다, 본다’고 주장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왕자여, 그런 나는 그저 입술을 놀리고 말한 것을 되뇌는 그만큼으로, 나도 남들도 앎을 말하고 장로의 말을 말하며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자처하였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한 것이다. 분명히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무는 것이다.’[불확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na kho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알라라 깔라마는 오직 믿음만으로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리는 것이 아니다;
addhā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ī’ti.
알라라 깔라마는 분명히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문다’고.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물었다. ‘벗 깔라마여, 어느 정도까지를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까?’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왕자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ki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벗 깔라마여, 어디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리십니까?’라고.
내가 이렇게 묻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선언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알라라 깔라마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도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마음챙김도, 집중도, 지혜도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있다.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한 그 법을, 나도 직접 이루도록 애써 보면 어떨까.’[불확실]
Evaṃ vutte, rājakumāra, āḷāro kālāmo ākiñcaññāyatanaṃ pavedesi.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알렸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vīriyaṃ…pe… sati… samādh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27.19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āḷāro kāl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리는 그 법을,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힘써 보리라’고.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그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말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빨리 그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왕자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벗 깔라마여, 당신이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하는 것이 여기까지입니까?’ ‘벗이여, 내가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하는 것은 여기까지요.’ ‘벗이여, 나도 여기까지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고 있습니다.’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이오. 크나큰 이득이오. 당신 같은 도반을 만나다니. 내가 선언하는 법을 당신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무는구려. 당신이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하오. 내가 아는 법을 당신도 알고, 당신이 아는 법을 나도 아오. 내가 그러한 사람이면 당신도 그러하고,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면 나도 그러하오. 자, 벗이여, 이제 우리 둘이서 이 무리를 이끕시다.’
‘e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 깔라마여, 이만큼을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리십니까?’라고.
‘Ettāvatā kho ahaṃ, āvus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ī’ti.
‘벗이여, 나는 이만큼을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리네’라고.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벗이여, 저 또한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뭅니다’라고.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이네, 벗이여, 우리에게 큰 소득이네, 우리가 존자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게 되었으니.
Iti yā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리는 그 법을, 그대는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무네.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ma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그대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무는 그 법을, 나는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리네.
Iti yāhaṃ dhammaṃ jānām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그 법을 그대가 알고;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mahaṃ dhammaṃ jānāmi.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아네.
Iti yādiso ahaṃ, tādiso tuvaṃ;
이와 같이 내가 그러하듯 그대도 그러하고;
yādiso tuvaṃ tādiso ahaṃ.
그대가 그러하듯 나도 그러하네.
Ehi dāni, āvuso, ubhova santā imaṃ gaṇaṃ pariharāmā’ti.
벗이여, 이제 오게, 우리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끌어 가세’라고.
이처럼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기와 똑같은 자리에 세워 주었다. 그리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욕망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오로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태어나는 데까지만 이끌 뿐이다.’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법에 싫증이 나서 떠났다.[불확실]
Iti kho, rājakumāra, āḷāro kālāmo ācariyo me samāno (attano) antevāsiṃ maṃ samānaṃ attanā samasa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왕자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이면서도 자기 제자인 나를 자기와 똑같이 세우고, 훌륭한 예우로 나를 예우하였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ākiñc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온전히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고, 다만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태어남으로 이끌 뿐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왕자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히 여기지 않고, 그 법에 마음이 떠나 물러났다.
328
왕자여,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찾으며 위없는 평온의 길을 구하다가 웃다까 라마풋타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벗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왕자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 찾으며,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여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icchāmahaṃ, āvuso,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벗이여, 저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라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풋타가 대답했다. ‘머무시오, 존자여.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 수 있는 법이오.’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그 법을 익혔다.
Evaṃ vutte, rājakumāra, udako rāmaputto maṃ etadavoca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viharatāyasmā,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존자는 머무시게. 이 법은 이러하여,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이네’라고.
So kho ahaṃ, rājakumār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빨리 그 법을 다 배웠다.
왕자여, 나는 입술만 놀려 읊조리는 정도로 그 법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혜의 말, 장로의 말을 한다고 나도 말하고 남들도 말했다. 나는 ‘안다, 본다’고 주장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왕자여, 그런 나는 그저 입술을 놀리고 말한 것을 되뇌는 그만큼으로, 나도 남들도 앎을 말하고 장로의 말을 말하며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자처하였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한 것이다. 분명히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물렀을 것이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r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i;
‘라마는 오직 믿음만으로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린 것이 아니다;
addhā r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āsī’ti.
라마는 분명히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물렀다’고.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풋타를 찾아가 물었다. ‘벗이여, 라마는 어느 정도까지를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했습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웃다까 라마풋타는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세계를 선언했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왕자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ki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어디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렸습니까?’라고.
Evaṃ vutte, rājakumāra, udako rāmaputt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pavedesi.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알렸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도 라마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 마음챙김도, 집중도, 지혜도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있다.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문다고 선언한 그 법을, 나도 직접 이루도록 애써 보면 어떨까.’[불확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rāmasseva ahos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 kho rāmasseva ahosi vīriyaṃ…pe… sati… samādh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28.16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문다고 알리는 그 법을,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힘써 보리라’고.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그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웃다까 라마풋타를 찾아가 말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빨리 그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왕자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나아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벗이여, 라마가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한 것이 여기까지입니까?’ ‘벗이여, 라마가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한 것은 여기까지요.’ ‘벗이여, 나도 여기까지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물고 있습니다.’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이오. 크나큰 이득이오. 당신 같은 도반을 만나다니. 라마가 선언한 그 법을 당신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머무는구려. 당신이 머무는 그 법을 라마도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고 선언했소. 라마가 알았던 법을 당신도 알고, 당신이 아는 법을 라마도 알았소. 라마가 그러한 사람이었듯 당신도 그러하고,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듯 라마도 그러했소. 자, 벗이여, 이제 당신이 이 무리를 이끄시오.’
‘e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을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렸습니까?’라고.
‘Ettāvatā kh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을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렸네’라고.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벗이여, 저 또한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뭅니다’라고.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이네, 벗이여, 우리에게 큰 소득이네, 우리가 존자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게 되었으니.
Iti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와 같이 라마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린 그 법을, 그대는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무네.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그대가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머무는 그 법을, 라마는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들어 알렸네.
Iti y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이와 같이 라마가 온전히 안 그 법을 그대가 알고;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라마가 온전히 알았네.
Iti yādiso rāmo ahosi tādiso tuvaṃ, yādiso tuvaṃ tādiso rāmo ahosi.
이와 같이 라마가 그러하였듯 그대도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하듯 라마도 그러하였네.
Ehi dāni, āvuso, tuvaṃ imaṃ gaṇaṃ pariharā’ti.
벗이여, 이제 오게, 그대가 이 무리를 이끌어 가게’라고.
이처럼 동료 수행자였던 웃다까 라마풋타는 나를 스승의 자리에 세워 주었다. 그리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욕망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세계에 태어나는 데까지만 이끌 뿐이다.’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법에 싫증이 나서 떠났다.
Iti kho, rājakumāra, udako rāmaputto sabrahmacārī me samāno ācariyaṭṭhāne 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왕자여, 이와 같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의 동료 수행자이면서도 나를 스승의 자리에 세우고, 훌륭한 예우로 나를 예우하였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온전히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고, 다만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태어남으로 이끌 뿐이다’라고.
So kho ahaṃ, rājakumāra,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왕자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히 여기지 않고, 그 법에 마음이 떠나 물러났다.
329
왕자여, 그때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찾고 있었다. 위없이 고요한 최상의 경지를 구하며 마가다 땅을 차례차례 거닐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 마을에 이르렀다. 거기서 나는 아름다운 땅을 보았다. 숲은 보기 좋았고 맑은 물이 흘렀다. 물가에는 건너기 좋은 나루가 있었고, 사방에는 탁발하기 좋은 마을들이 있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magadhesu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uruvelā senānigamo tadavasariṃ.
“왕자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를 찾고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면서, 마가다 지방을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Tatthaddasaṃ ramaṇīyaṃ bhūmibhāgaṃ, pāsādikañca vanasaṇḍaṃ, nadīñca sandantiṃ setakaṃ supatitthaṃ, ramaṇīyaṃ samantā ca gocaragāmaṃ.
거기서 나는 즐거운 땅과, 보기 좋은 숲과, 맑고 기슭이 좋게 흐르는 강과, 사방으로 즐거운 탁발 마을을 보았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구나. 숲은 보기 좋고 강물은 맑다. 나루는 건너기 좋고, 둘레에는 탁발하기 좋은 마을들이 있다. 정진하려는 좋은 집안의 사람이 정진하기에 이만하면 충분하겠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ramaṇīyo vata, bho, bhūmibhāgo, pāsādiko ca vanasaṇḍo, nadiñca sandantiṃ setakā supatitthā, ramaṇīyā samantā ca gocaragāmo.
‘아, 참으로 즐거운 땅이로구나. 보기 좋은 숲이며, 맑고 기슭이 좋게 흐르는 강이며, 사방으로 즐거운 탁발 마을이다.
Alaṃ vatidaṃ kulaputtassa padhānatthikassa padhānāyā’ti.
애쓰려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애쓰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곳에 앉았다. '여기라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 왕자여, 그때 내게 세 가지 비유가 떠올랐다. 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tattheva nisīdiṃ –
왕자여, 그런 나는 바로 거기에 앉았다 —
‘alamidaṃ padhānāyā’ti.
‘애쓰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Apissu maṃ, rājakumāra, tisso upamā paṭibhaṃsu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게다가 내게 세 가지 비유가 떠올랐으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왕자여, 물기를 머금은 젖은 나무토막이 물속에 던져져 있다고 해 보자. 그때 한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리라. 열을 내리라.'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속의 젖은 나무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빈다면,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Seyyathāpi, rājakumār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udake nikkhittaṃ.
“왕자여, 예컨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이 물속에 놓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내리라’ 한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api nu so puriso amuṃ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udak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속에 놓인 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을,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그 나무토막은 젖어서 물기를 머금고 있고, 게다가 물속에 던져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No hid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ante,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tañca pana udake nikkhittaṃ,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세존이시여, 저것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인 데다 물속에 놓여 있으니, 그 사람은 다만 피로와 곤경의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왕자여, 이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몸과 마음으로 여러 욕망에서 떠나 있지 못하다. 욕망을 향한 욕망과 애착, 도취와 갈증, 열병이 안으로 버려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이런 사문·바라문들이 애쓴 끝에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해도,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없다. 왕자여, 이것이 내게 첫 번째로 떠오른 비유였다. 전에는 들어 본 적 없지만,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Evameva kho, rājakumār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a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na suppahīno hoti, na suppaṭippassaddho.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쾌락에서 떨어져 지내지 않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그들의 욕구·애착·혼미·갈증·달아오름이 안으로 잘 버려지지도 않고 잘 가라앉지도 않았다면,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No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Ayaṃ kho maṃ, rājakumāra, paṭham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이것이 내게 떠오른 첫 번째 비유이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330
왕자여, 두 번째 비유도 내게 떠올랐다. 전에는 들어 본 적 없지만,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물기를 머금은 젖은 나무토막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고 해 보자. 그때 한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리라. 열을 내리라.'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먼 땅의 젖은 나무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빈다면,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Aparāpi kho maṃ, rājakumāra, du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또 다른 두 번째 비유가 내게 떠올랐으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Seyyathāpi, rājakumār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왕자여, 예컨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내리라’ 한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api nu so puriso amuṃ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인 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을,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그 나무토막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있어도 여전히 젖어서 물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No hid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ante,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kiñcāpi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세존이시여, 저것은 물기 있고 수액이 밴 나뭇조각이라, 비록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 해도, 그 사람은 다만 피로와 곤경의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왕자여, 이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몸과 마음으로 여러 욕망에서 떠나 살고 있다. 그러나 욕망을 향한 욕망과 애착, 도취와 갈증, 열병이 안으로 버려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이런 사문·바라문들이 애쓴 끝에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해도,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없다. 왕자여, 이것이 내게 두 번째로 떠오른 비유였다. 전에는 들어 본 적 없지만,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Evameva kho, rājakumār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na suppahīno hoti, na suppaṭippassaddho.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쾌락에서 떨어져 지낸다 해도, 감각적 쾌락에 대한 그들의 욕구·애착·혼미·갈증·달아오름이 안으로 잘 버려지지도 않고 잘 가라앉지도 않았다면,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No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Ayaṃ kho maṃ, rājakumāra, du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이것이 내게 떠오른 두 번째 비유이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331
왕자여, 세 번째 비유도 내게 떠올랐다. 전에는 들어 본 적 없지만,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바싹 마른 나무토막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고 해 보자. 그때 한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리라. 열을 내리라.'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먼 땅의 바싹 마른 나무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빈다면,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Aparāpi kho maṃ, rājakumāra, ta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또 다른 세 번째 비유가 내게 떠올랐으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Seyyathāpi, rājakumāra,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왕자여, 예컨대 마르고 진액이 빠진 나뭇조각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내리라’ 한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api nu so puriso amuṃ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인 저 마르고 진액이 빠진 나뭇조각을,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그 나무토막은 바싹 말랐고, 게다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불확실]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ante,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tañca pana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nti.
세존이시여, 저것은 마르고 진액이 빠진 나뭇조각인 데다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왕자여, 이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몸과 마음으로 여러 욕망에서 떠나 살고 있다. 욕망을 향한 욕망과 애착, 도취와 갈증, 열병도 안으로 잘 버려지고 잘 가라앉았다. 이런 사문·바라문들이 애쓴 끝에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면,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얻을 수 있다. 왕자여, 이것이 내게 세 번째로 떠오른 비유였다. 전에는 들어 본 적 없지만, 신기할 것도 없는 비유였다. 왕자여, 이 세 가지 비유가 바로 그렇게 내게 떠올랐다.
‘‘Evameva kho, rājakumār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suppahīno hoti suppaṭippassaddho.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쾌락에서 떨어져 지내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그들의 욕구·애착·혼미·갈증·달아오름이 안으로 잘 버려지고 잘 가라앉았다면,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No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Ayaṃ kho maṃ, rājakumāra, ta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이것이 내게 떠오른 세 번째 비유이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Imā kho maṃ, rājakumāra, tisso upamā paṭibhaṃsu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왕자여, 내게 떠오른 이 세 가지 비유가 이러하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요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332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 마음을 눌러 붙들고 짓눌러 태워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 마음을 눌러 붙들고 짓눌러 태웠다. 그러자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마치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붙잡고 눌러 짓누르며 괴롭히는 것 같았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eyyaṃ abhinippīḷeyyaṃ abhisantāpeyya’nti.
‘나는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른 채, 마음으로 마음을 억누르고 짓누르고 태워 버리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āmi abhinippīḷemi abhisantāpemi.
왕자여, 그런 나는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른 채, 마음으로 마음을 억누르고 짓누르고 태웠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ato abhinippīḷayato abhisantāpayato kacchehi sedā muccanti.
왕자여,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른 채 마음으로 마음을 억누르고 짓누르고 태우는 내게,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Seyyathāpi, rājakumāra, balavā puriso dubbalataraṃ purisaṃ sīse vā gahetvā khandhe vā gahetvā abhiniggaṇheyya abhinippīḷeyya abhisantāpeyya;
왕자여, 예컨대 힘센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을 머리를 붙잡거나 어깨를 붙잡아 억누르고 짓누르고 태우듯이;
evameva kho me, rājakumār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ato abhinippīḷayato abhisantāpayato kacchehi sedā muccanti.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른 채 마음으로 마음을 억누르고 짓누르고 태우는 내게,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333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을 닦아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귀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바람 때문에 소리가 몹시 컸다. 마치 대장장이가 풀무를 불 때 나는 소리처럼 컸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나는 숨 없는 선정을 닦으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입으로도 코로도 들숨과 날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kaṇṇasotehi vātānaṃ nikkhamantānaṃ adhimatto saddo hoti.
왕자여, 입으로도 코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귓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Seyyathāpi nāma kammāragaggariyā dhamamānāya adhimatto saddo hoti, evameva kho me,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kaṇṇasotehi vātānaṃ nikkhamantānaṃ adhimatto saddo hoti.
예컨대 대장장이의 풀무를 불 때 엄청난 소리가 나듯이,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입으로도 코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귓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왕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을 닦아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머리를 쑤셔 대는 것 같았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나는 숨 없는 선정을 닦으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왕자여,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엄청난 바람이 정수리를 쳐 댔다.
Seyyathāpi, rājakumāra, balavā puriso tiṇhena sikharena muddhani abhimattheyya, evameva kho me,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왕자여, 예컨대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정수리를 후벼 파듯이,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엄청난 바람이 정수리를 쳐 댔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왕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을 닦아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머리에 몹시 심한 두통이 일었다. 마치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동여매어 죄는 것 같았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나는 숨 없는 선정을 닦으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honti.
왕자여,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머리에 엄청난 두통이 일어났다.
Seyyathāpi, rājakumāra, balavā puriso daḷhena varattakkhaṇḍena sīse sīsaveṭhaṃ dadeyya;
왕자여, 예컨대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 토막으로 머리에 머리띠를 조이듯이;
evameva kho me,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honti.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머리에 엄청난 두통이 일어났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왕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을 닦아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배를 도려내듯 휘저었다.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제자가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배를 도려내는 것 같았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나는 숨 없는 선정을 닦으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kucchiṃ parikantanti.
왕자여,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엄청난 바람이 배를 도려냈다.
Seyyathāpi, rājakumāra,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tiṇhena govikantanena kucchiṃ parikanteyya, evameva kho me,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kucchiṃ parikantanti.
왕자여, 예컨대 솜씨 좋은 소백정이나 소백정의 제자가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배를 도려내듯이,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엄청난 바람이 배를 도려냈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왕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을 닦아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몸 안에 몹시 심한 열기가 일었다.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굽고 또 달구는 것 같았다. 왕자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정진을 시작했고, 새김도 흐트러짐 없이 확립해 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스러운 정진에 시달린 탓에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나는 숨 없는 선정을 닦으면 어떨까.’
So kho a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왕자여, 그런 나는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o kāyasmiṃ ḍāho hoti.
왕자여,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몸에 엄청난 열이 났다.
Seyyathāpi, rājakumāra, dve balavanto purisā dubbalataraṃ purisaṃ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yā santāpeyyuṃ samparitāpeyyuṃ, evameva kho me, rājakumār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o kāyasmiṃ ḍāho hoti.
왕자여, 예컨대 힘센 두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의 서로 다른 팔을 각기 붙잡아 숯불 구덩이 위에서 굽고 태우듯이, 왕자여, 꼭 그와 같이 입으로도 코로도 귀로도 들숨과 날숨이 막힌 내게, 몸에 엄청난 열이 났다.
Āraddhaṃ kho pana me, rājakumār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런데 왕자여, 내 정진은 다부지게 일어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나, 바로 그 괴로운 애씀 탓에 애씀에 시달린 내 몸은 달아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왕자여, 그때 나를 본 신들이 말했다. '사문 고따마가 죽었다.'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죽은 것이 아니다. 다만 죽어 가고 있다.' 또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죽은 것도 아니고 죽어 가는 것도 아니다.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원래 이런 모습으로 머무는 법이다.'
‘‘Apissu maṃ, rājakumāra, devatā disvā evamāhaṃsu –
“왕자여, 게다가 신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kālaṅkat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가 죽었다.’
Ekaccā devatā evamāhaṃsu –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laṅkato samaṇo gotamo, api ca kālaṅkarotī’ti.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다. 다만 죽어 가고 있다.’
Ekaccā devatā evamāhaṃsu –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laṅkato samaṇo gotamo, nāpi kālaṅkaroti.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고, 죽어 가지도 않는다.
Arahaṃ samaṇo gotamo.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Vihārotveva so arahato evarūpo hotī’ti.
아라한에게는 그런 머묾이 있을 뿐이다.’
334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예 음식을 완전히 끊는 길로 나아가 보면 어떨까.' 그러자 신들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존자여, 음식을 완전히 끊는 길로 나아가지 마십시오. 그대가 음식을 완전히 끊는다면, 저희가 하늘의 영양분을 그대의 털구멍으로 스며들게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그대는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음식을 완전히 끊었다고 말한다 하자. 그런데 이 신들이 하늘의 영양분을 내 털구멍으로 스며들게 하고,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게 거짓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그 신들을 물리쳤다. '됐다' 하고 말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eyya’nti.
‘나는 음식을 아주 끊는 길을 걸으면 어떨까.’
Atha kho maṃ, rājakumāra,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uṃ –
왕자여, 그때 신들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mā kho tvaṃ, mārisa,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i.
‘어르신이시여, 음식을 아주 끊는 길을 걷지 마십시오.
Sace kho tvaṃ, mārisa,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issasi, tassa te mayaṃ dibbaṃ ojaṃ lomakūpehi ajjhohāressāma, tāya tvaṃ yāpessasī’ti.
어르신이시여, 만약 어르신께서 음식을 아주 끊는 길을 걸으신다면, 저희가 어르신께 천상의 자양분을 털구멍으로 넣어 드릴 것이고, 어르신은 그것으로 지탱하실 것입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hañceva kho pana sabbaso ajajjitaṃ paṭijāneyyaṃ.
‘내가 아주 먹지 않는다고 자처하면서,
Imā ca me devatā dibbaṃ ojaṃ lomakūpehi ajjhohāreyyuṃ, tāya cāhaṃ yāpeyyaṃ, taṃ mamassa musā’ti.
이 신들이 내게 천상의 자양분을 털구멍으로 넣고 내가 그것으로 지탱한다면, 그것은 내게 거짓이 될 것이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tā devatā paccācikkhāmi.
왕자여, 그런 나는 그 신들을 물리쳤다.
‘Hala’nti vadāmi.
‘됐다’고 말했다.
왕자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음식을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만 먹어 보면 어떨까. 녹두 즙이든 콩 즙이든 완두 즙이든 병아리콩 즙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만 먹었다. 녹두 즙이든 콩 즙이든 완두 즙이든 병아리콩 즙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먹으니 내 몸은 극도로 야위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eyyaṃ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nti.
‘나는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 음식을 먹으면 어떨까 — 녹두 국물이든, 말콩 국물이든, 동부 국물이든, 완두 국물이든.’
So kho ahaṃ, rājakumāra,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ṃ.
왕자여, 그런 나는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 음식을 먹었다 — 녹두 국물이든, 말콩 국물이든, 동부 국물이든, 완두 국물이든.
Tassa mayhaṃ, rājakumāra,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ayato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ṃ, adhimattakasimānaṃ patto kāyo hoti.
왕자여,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 — 녹두 국물이든, 말콩 국물이든, 동부 국물이든, 완두 국물이든 — 음식을 먹는 내 몸은 극도로 여윔에 이르렀다.
먹는 것이 그토록 적었기 때문에 몸이 이렇게 변했다. 팔다리는 아시띠까 덩굴이나 까알라 덩굴의 마디 같았다. 엉덩이는 낙타 발자국처럼 움푹 패었다. 등뼈는 둥글게 엮어 놓은 구슬 줄처럼 올록볼록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갈비뼈는 낡은 건물의 서까래가 허물어져 기울어진 듯 앙상하게 어긋났다. 눈구멍 깊이 들어간 눈동자는 깊은 우물 바닥에 비친 별빛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반짝였다. 머리 가죽은 덜 익었을 때 잘라 낸 쓴 박처럼 바람과 햇볕에 말라 쪼그라들고 시들었다.
Seyyathāpi nāma āsītikapabbāni vā kāḷapabbāni vā, evamevassu me aṅgapaccaṅgāni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아시띠까 덩굴의 마디나 깔라 덩굴의 마디처럼,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팔다리 마디마디가 그렇게 되었다.
Seyyathāpi nāma oṭṭhapadaṃ, evamevassu me ānisadaṃ hoti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낙타 발굽처럼,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엉덩이가 그렇게 되었다.
Seyyathāpi nāma vaṭṭanāvaḷī, evamevassu me piṭṭhikaṇṭako uṇṇatāvan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구슬 꿴 줄처럼,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등뼈가 울퉁불퉁 드러났다.
Seyyathāpi nāma jarasālāya gopānasiyo oluggaviluggā bhavanti, evamevassu me phāsuḷiyo oluggaviluggā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낡은 집의 서까래가 내려앉고 어긋나듯이,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갈비뼈가 내려앉고 어긋났다.
Seyyathāpi nāma gambhīre udapāne udaka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evamevassu me akkhikūpesu akkhi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깊은 우물에 물빛이 깊이 잠겨 움푹 보이듯이,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눈구멍에서 눈동자가 깊이 잠겨 움푹 보였다.
Seyyathāpi nāma tittakālābu āmakacchinno vātātapena saṃphuṭito hoti sammilāto, evamevassu me sīsacchavi saṃphuṭitā hoti sammilātā tāyevappāhāratāya.
예컨대 설익은 채 잘린 쓴 조롱박이 바람과 볕에 쭈그러들고 시들듯이, 꼭 그와 같이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머릿가죽이 쭈그러들고 시들었다.
왕자여, 나는 '뱃가죽을 만져 보아야지'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 보아야지'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먹는 것이 그토록 적어서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나는 '대소변을 보아야겠다' 하고 일어서다가 그 자리에 고꾸라져 엎어졌다. 이 몸을 달래 보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먹는 것이 그토록 적었기 때문에 뿌리가 썩은 털이 몸에서 빠져 떨어졌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udaracchaviṃ parimasissāmī’ti piṭṭhikaṇṭakaṃyeva pariggaṇhāmi, ‘piṭṭhikaṇṭakaṃ parimasissāmī’ti udaracchaviṃyeva pariggaṇhāmi.
왕자여, 그런 나는 ‘뱃가죽을 만져 보리라’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 보리라’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Yāvassu me, rājakumāra, udaracchavi piṭṭhikaṇṭakaṃ allīnā hoti tāyevappāhāratāya.
왕자여,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내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vaccaṃ vā muttaṃ vā karissāmī’ti tattheva avakujjo papatāmi tāyevappāhāratāya.
왕자여, 그런 나는 ‘대변이나 소변을 보리라’ 하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졌으니,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이었다.
So kho ahaṃ, rājakumāra, imameva kāyaṃ assāsento pāṇinā gattāni anumajjāmi.
왕자여, 그런 나는 이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문질렀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pāṇinā gattāni anumajjato pūtimūlāni lomāni kāyasmā papatanti tāyevappāhāratāya.
왕자여, 손으로 팔다리를 문지르는 내게서,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뿌리가 썩은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왕자여, 그때 나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은 것이 아니라 거무스름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은 것도 거무스름한 것도 아니라 살갗이 누르스름하다.' 먹는 것이 그토록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도 맑고 깨끗하던 내 살갗의 빛깔이 상해 버렸다.
Apissu maṃ, rājakumāra, manussā disvā evamāhaṃsu –
왕자여, 게다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kāḷo samaṇo gotamo’ti, ekacce manussā evamāhaṃsu –
‘사문 고따마는 검다’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ḷo samaṇo gotamo, sām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검지 않다. 사문 고따마는 거무스름하다.’
Ekacce manussā evamāhaṃsu –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ḷo samaṇo gotamo, napi sāmo, maṅguracchavi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검지도 않고 거무스름하지도 않다. 사문 고따마는 살빛이 누르께하다.’
Yāvassu me, rājakumāra, tāva parisuddho chavivaṇṇo pariyodāto upah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왕자여, 바로 그 적은 음식 탓에 그토록 맑고 밝던 내 살빛이 상하고 말았다.
335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과거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몸을 갉아 대는 고통스럽고 격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겠지만,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도 이보다 더한 느낌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사문이나 바라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이 쓰라린 고행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자다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지 못한다. 혹시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ṃsu,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과거에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스스로 애써 일으킨,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만큼이 최고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Yepi hi keci anāga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ss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미래에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스스로 애써 일으킨,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느낄 것이라 하더라도, 이만큼이 최고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Yepi hi keci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지금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스스로 애써 일으킨,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만큼이 최고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Na kho panāh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adhigacchām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그런데 나는 이 혹독한 고행으로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한다;
siyā nu kho añño maggo bodhāyā’ti.
깨달음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그때 나는, 왕자여,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사까의 농사일을 보던 때가 떠오른다. 나는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나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선정이었다. 혹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그러자 그 기억을 따라 나에게 의식이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나는 아버지 삭까 사람의 일터에서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 이였음을 기억한다;
siyā nu kho eso maggo bodhāyā’ti.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기억을 따르는 의식이 일어났다 —
‘eseva maggo bodhāyā’ti.
‘바로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저 즐거움을 두려워하는가?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를 떠나서 얻는 즐거움이 아닌가.’ 이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런 즐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이토록 여윈 몸으로는 그 즐거움을 얻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거친 음식, 곧 밥과 죽을 먹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왕자여, 밥과 죽을 먹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ṃ nu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감각적 욕망과는 다른 것이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다른 것인 그 행복을, 나는 어찌하여 두려워하는가?’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감각적 욕망과는 다른 것이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다른 것인 그 행복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taṃ sukaraṃ sukhaṃ adhigantuṃ evaṃ adhimattakasimānaṃ pattakāyena.
‘이처럼 극도로 여윈 몸에 이른 자로서는 그 행복을 얻기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yyaṃ odanakummāsa’nti.
나는 이제 밥과 죽 같은 거친 음식을 먹으리라.’
So kho ahaṃ, rājakumār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왕자여, 그런 나는 밥과 죽 같은 거친 음식을 먹었다.
그때 다섯 비구가 나를 곁에서 시중들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기대했다. ‘사문 고따마가 법을 얻으면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밥과 죽을 먹자, 왕자여, 다섯 비구는 실망하여 나를 떠나 버렸다. ‘사문 고따마는 사치스러워져 정진을 포기하고 풍족한 생활로 돌아갔다.’ 하면서.
Tena kho pana maṃ, rājakumāra, samayena pañcavaggiyā bhikkhū paccupaṭṭhitā honti –
왕자여, 그런데 그때 다섯 비구가 나를 시중들고 있었다 —
‘yaṃ kho samaṇo gotamo dhammaṃ adhigamissati taṃ no ārocessatī’ti.
‘사문 고따마가 어떤 법을 얻으면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Yato kho ahaṃ, rājakumār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atha me te pañcavaggiyā bhikkhū nibbijja pakkamiṃsu –
왕자여, 그런데 내가 밥과 죽 같은 거친 음식을 먹자, 그 다섯 비구는 나에게 싫증을 내고 떠나갔다 —
‘bāhulliko samaṇo gotam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ā’ti.
‘사문 고따마는 사치스러워졌고 정진에서 물러났으며 사치로 되돌아갔다.’
336
나는, 왕자여, 거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나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생각과 헤아림이 가라앉자 둘째 선정에 들었고, 이어서 셋째 선정, 넷째 선정에 차례로 들어 머물렀다.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흔들림 없는 경지였다. 이 경지에서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갖가지 전생이 기억났다. 한 번의 태어남, 두 번의 태어남 … 이렇게 모습과 내력까지 갖춘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냈다.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얻은 첫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다잡으며 지내는 사람에게 으레 그렇듯이.
‘‘So kho ahaṃ, rājakumār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tvā balaṃ gahetvā vivicceva kāmehi…pe…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왕자여, 그런 나는 거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물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35.8에서 되살렸습니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점에 모여,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물렀다; 희열을 떠나 평온하게 머물렀고,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꼈으니,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을 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말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물렀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물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6 ~ PN:mn26/287.30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그런 나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세계가 무너지는 여러 겁도, 세계가 이루어지는 여러 겁도, 세계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여러 겁도 기억한다 —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에 이르렀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에 이르렀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와 같이 특징과 함께 자세한 내용과 함께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68.26 ~ PN:mn6/68.29에서 되살렸습니다.
Ayaṃ kho me, rājakumār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첫 시각에 얻은 첫 번째 명지이니,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다;
tamo vihato, āloko uppanno –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다시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흔들림 없는 경지였다. 이 경지에서 나는 중생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으로 가는 이와 나쁜 곳으로 가는 이를 보았다. 중생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가게 됨도 분명히 알았다. …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경에 얻은 둘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다잡으며 지내는 사람에게 으레 그렇듯이.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pe… ayaṃ kho me, rājakumār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그런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죽고 태어나며 저열하고 빼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보고, 그 지은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꿰뚫어 안다 —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쁘게 행하고 말로 나쁘게 행하고 마음으로 나쁘게 행했으며, 성자들을 비방했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지옥에 태어났다; 그런데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게 행하고 말로 좋게 행하고 마음으로 좋게 행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간 시각에 얻은 두 번째 명지이니,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68.32 ~ PN:mn6/68.33에서 되살렸습니다.
tamo vihato, āloko uppanno –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또다시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흔들림 없는 경지였다. 이 경지에서 나는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들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자 내 마음은 해탈했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났다. 해탈하자 ‘해탈했다.’는 앎이 있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고,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다. 더 이상 이런 상태는 없다.’ 나는 이렇게 알았다.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경에 얻은 셋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다잡으며 지내는 사람에게 으레 그렇듯이.[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pe…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pe…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그런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났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은 다 마쳤으며,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나는 알았다.
Ayaṃ kho me, rājakumār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왕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마지막 시각에 얻은 세 번째 명지이니,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다;
tamo vihato, āloko uppanno –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337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얻은 이 법은 깊어서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고요하고 뛰어나며, 추론으로는 닿을 수 없고 미묘해서 현자라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에 빠져 있고, 집착에 기뻐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경지를 보기 어렵다. 그 경지란 이것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연기이다. 또 이 경지도 보기 어렵다. 모든 형성이 가라앉고, 모든 집착 대상을 버리고, 갈애가 다하고,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는 열반이다.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나에게는 피로가 되고 괴로움이 될 것이다.’ 왕자여, 그때 이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신기할 것 없는 게송들도 나에게 떠올랐다.[불확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dhigato kho myāyaṃ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빼어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고, 미묘하여, 슬기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ṃ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매우 기뻐한다.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ṃ idaṃ ṭhānaṃ yadidaṃ –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매우 기뻐하는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것이 이 도리이니, 곧 —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성품인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남이다.
Idam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
이 도리도 보기 어렵다 —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Ahañceva kho pana dhammaṃ deseyyaṃ, pare ca me na ājāneyyuṃ,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그런데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남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로가 될 것이고 그것은 내게 성가심이 될 것이다.’
Apissu maṃ, rājakumāra,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ṃsu pubbe assutapubbā –
왕자여, 그리고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다 할 것 없는 이 게송들이 내게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애써 얻은 이 깨침을, 이제 어찌 펼쳐 보이랴.
‘Kicchena me adhigataṃ, halaṃ dāni pakāsituṃ;
‘힘들게 내가 얻은 것을 이제 드러낸들 무엇하랴;
탐욕 성냄에 눌린 이들, 이 법 깨치기 어려우리.
Rāgadosaparet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자들이 이 법을 잘 깨닫지 못한다.
‘흐름을 거스르는 미묘한 법, 깊고 보기 어려운 섬세한 법을
‘Paṭisotagāmiṃ nipuṇaṃ, gambhīraṃ duddasaṃ aṇuṃ;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이것을;
탐욕에 물든 이는 보지 못하리, 어둠 덩이에 덮였으니.’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 ti.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 있기에.’
이렇게 곰곰이 헤아리자, 왕자여, 내 마음은 애써 설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기울었다. 법을 설하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Itiha me, rājakumāra,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ṃ namati no dhammadesanāya.
왕자여, 이렇게 성찰하는 내 마음은 관심 없음으로 기울었고 법을 설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338
그때, 왕자여, 사함빠티 범천이 내 마음속 생각을 알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세상이 망하는구나. 아아, 세상이 파멸하는구나. 여래,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의 마음이 애써 설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기울고 법을 설하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다니.’
‘‘Atha kho, rājakumāra, brahmuno sahampatissa mam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
왕자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마음으로 내 마음의 생각을 알고서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ssati vata, bho, loko;
‘아, 세상이 사라지는구나;
vinassati vata, bho, loko.
아, 세상이 무너지는구나.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ṃ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마음이 관심 없음으로 기울고 법을 설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다니.’
그러자, 왕자여, 사함빠티 범천이 움직였다.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고 편 팔을 굽히듯, 눈 깜짝할 사이였다. 범천은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내가 있는 쪽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하고 맙니다. 법을 아는 이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왕자여, 사함빠티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이어서 말했다.
Atha kho, rājakumāra, brahmā sahampati –
왕자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 –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꼭 그와 같이 —
brahmaloke antarahito mama purato pāturahosi.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rājakumāra, brahmā sahampati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yenāhaṃ tenañjaliṃ paṇāmetvā maṃ etadavoca –
왕자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내가 있는 쪽으로 합장하고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ṃ, desetu sugato dhammaṃ.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법을 설해 주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법을 설해 주소서.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ya dhammassa parihāyanti;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는데, 법을 듣지 못하여 쇠퇴하고 있습니다;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법을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Idamavoca, rājakumāra, brahmā sahampati;
왕자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idaṃ vatvā athāpar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
‘예전에 마가다에 나타났나이다,
‘Pāturahosi magadhesu pubbe,
‘예전에 마가다에 나타났었습니다,
때 묻은 이들이 궁리해 낸 깨끗지 못한 법이.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때 묻은 이들이 생각해 낸 청정하지 못한 법이;
이 불사의 문을 열어 주소서,
Apāpuretaṃ amatassa dvāraṃ,
불사의 이 문을 여소서,
때 없는 분이 깨달은 법을 저들이 듣게 하소서.
Suṇantu dhammaṃ vimalenānubuddhaṃ.
때 없는 분이 깨달으신 법을 그들이 듣게 하소서.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선 이가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산꼭대기 바위 위에 선 사람이,
둘레의 사람들을 두루 굽어보듯,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사방의 사람들을 두루 내려다보듯이;
그처럼 슬기로운 분이여, 법으로 지은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a,
지혜로우신 분이시여, 그와 같이 법으로 이루어진,
누각에 오르소서, 두루 보는 눈을 지닌 분이여.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궁전에 오르시어, 두루 보는 눈을 지니신 분이시여,
‘슬픔을 벗은 분이여, 슬픔에 잠긴 사람들,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슬픔을 여읜 분이시여,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나고 늙음에 짓눌린 저들을 굽어보소서.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ṃ;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그들을 굽어살피소서;
일어나소서 영웅이여, 싸움에 이긴 분이여,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일어나소서, 영웅이시여, 싸움에서 이기신 분이시여,
빚 없는 길잡이여, 세상을 다니소서.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무리를 이끄는 분이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을 두루 다니소서;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Desassu bhagavā dhammaṃ,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소서,
알아들을 이들이 있으리이다.’
Aññātāro bhavissantī’ti.
법을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339
그때 나는, 왕자여, 범천의 청을 알았다. 중생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러자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과 많은 중생이 보였다. 기능이 예리한 중생과 둔한 중생, 성품이 좋은 중생과 나쁜 중생, 가르치기 쉬운 중생과 어려운 중생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내세와 잘못의 두려움을 보며 지내고, 어떤 이들은 보지 못하고 지냈다. 마치 푸른 연꽃 못, 붉은 연꽃 못, 흰 연꽃 못과 같았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물속에 잠겨 자란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수면과 같은 높이에 서 있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다. 바로 그처럼 나도, 왕자여,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과 많은 중생을 보았다. 기능이 예리한 중생과 둔한 중생, 성품이 좋은 중생과 나쁜 중생, 가르치기 쉬운 중생과 어려운 중생도 보았다. 내세와 잘못의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이들과 보지 못하고 지내는 이들도 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왕자여, 사함빠티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brahmuno ca ajjhesanaṃ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ṃ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siṃ.
왕자여, 그때 나는 범천의 청을 알고, 또 중생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Addasaṃ kho ahaṃ, rājakumār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왕자여,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면서 보았다 —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과 티끌이 많은 중생들, 감각기능이 예리한 이들과 무딘 이들, 자질이 좋은 이들과 나쁜 이들, 가르치기 쉬운 이들과 가르치기 어려운 이들, 어떤 이들은 저 세상의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며 머물고, 어떤 이들은 저 세상의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지 않으며 머무는 것을.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samodakaṃ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evameva kho ahaṃ, rājakumār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addasaṃ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마치 청련이 핀 못이나 홍련이 핀 못이나 백련이 핀 못에서,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물속에 잠겨 자라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물과 나란히 서 있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듯이, 왕자여, 꼭 그와 같이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면서 보았다 —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과 티끌이 많은 중생들, 감각기능이 예리한 이들과 무딘 이들, 자질이 좋은 이들과 나쁜 이들, 가르치기 쉬운 이들과 가르치기 어려운 이들, 어떤 이들은 저 세상의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며 머물고, 어떤 이들은 저 세상의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지 않으며 머무는 것을.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brahmānaṃ sahampatiṃ gāthāya paccabhāsiṃ –
왕자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
‘저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노라,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내어라.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귀 있는 자들은 믿음을 내라;
괴로움만 되리라 여겨 말하지 않았노라, 익히 다듬은
Vihiṃsasaññī paguṇaṃ na bhāsiṃ,
성가심이 되리라 여겨 나는 익숙히 아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빼어난 법을 사람들 가운데서, 범천이여.’
Dhammaṃ paṇītaṃ manujesu brahme’ti.
범천이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 빼어난 법을.’
340
그러자, 왕자여, 사함빠티 범천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기회를 내게 주셨다.’ 하고는 나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재빨리 알아들을까?’ 또 이렇게 생각했다. ‘알라라 깔라마는 현명하고 영리하며 총명하다. 오랫동안 눈에 먼지가 적은 성품이었다. 차라리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그라면 이 법을 재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Atha kho, rājakumāra, brahmā sahampati ‘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m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ntaradhāyi.
왕자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내가 기회를 얻었다’라고 하고서, 내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yaṃ kho āḷāro kālām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ṃ apparajakkhajātiko.
‘이 알라라 깔라마는 슬기로운 자, 노련한 자, 총명한 자이며, 오래도록 눈에 티끌이 적은 자이다.
Yaṃnūnāhaṃ āḷārassa kālāmassa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먼저 법을 설해야겠다;
s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그는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그때, 왕자여, 한 천신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습니다.’ 나에게도 앎과 봄이 일어났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다.’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알라라 깔라마는 큰 손해를 보았다.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재빨리 알았을 텐데.’
Atha kho maṃ, rājakumāra,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왕자여, 그때 한 천신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sattāhakālaṅkato, bhante, āḷāro kālāmo’ti.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습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sattāhakālaṅkato āḷāro kālāmo’ti.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mahājāniyo kho āḷāro kālāmo.
‘알라라 깔라마는 크게 잃었다.
Sace hi so imaṃ dhammaṃ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빨리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왕자여,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재빨리 알아들을까?’ 또 이렇게 생각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현명하고 영리하며 총명하다. 오랫동안 눈에 먼지가 적은 성품이었다. 차라리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그라면 이 법을 재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yaṃ kho udako rāmaputt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ṃ apparajakkhajātiko.
‘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슬기로운 자, 노련한 자, 총명한 자이며, 오래도록 눈에 티끌이 적은 자이다.
Yaṃnūnāhaṃ udakassa rāmaputtassa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먼저 법을 설해야겠다;
s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그는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그때, 왕자여, 한 천신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죽었습니다.’ 나에게도 앎과 봄이 일어났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죽었다.’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큰 손해를 보았다.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재빨리 알았을 텐데.’
Atha kho maṃ, rājakumāra,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왕자여, 그때 한 천신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abhidosakālaṅkato, bhante, udako rāmaputto’ti.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죽었습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abhidosakālaṅkato udako rāmaputto’ti.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죽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mahājāniyo kho udako rāmaputto.
‘웃다까 라마뿟따는 크게 잃었다.
Sace hi so imaṃ dhammaṃ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빨리 알아들었을 것이다.’
341
그때 나는, 왕자여,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재빨리 알아들을까?’ 또 이렇게 생각했다. ‘다섯 비구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정진에 전념하던 나를 곁에서 시중들었으니까. 차라리 다섯 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다섯 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bahukārā kho me pañcavaggiyā bhikkhū ye maṃ padhānapahitattaṃ upaṭṭhahiṃsu.
‘다섯 비구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 그들은 정진에 스스로를 다잡은 나를 시중들었다.
Yaṃnūnāhaṃ pañcavaggiyānaṃ bhikkhūn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nti.
나는 다섯 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해야겠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
왕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ahaṃ nu kho etarahi pañcavaggiyā bhikkhū viharantī’ti.
‘지금 다섯 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나는, 왕자여,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다섯 비구를 보았다. 그들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우루웰라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머문 뒤 바라나시를 향해 길을 나섰다. 왕자여, 가야와 보디 사이의 길을 가는 나를 아지와까 우빠까가 보았다.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벗이여, 그대의 감각기관이 맑군. 피부색도 깨끗하고 빛나는군.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위해 출가했는가?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그대는 누구의 법을 좋아하는가?’ 그렇게 묻자 나는, 왕자여, 아지와까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Addasaṃ khvāhaṃ, rājakumār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pañcavaggiye bhikkhū bārāṇasiyaṃ viharante isipatane migadāye.
왕자여,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다섯 비구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uruvel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yena bārāṇasī tena cārikaṃ pakkamiṃ.
왕자여, 그리고 나는 우루웰라에서 지낼 만큼 지낸 뒤 바라나시로 유행을 떠났다.
‘‘Addasā kho maṃ, rājakumāra, upako ājīvako antarā ca gayaṃ antarā ca bodhiṃ addhānamaggappaṭipannaṃ.
왕자여, 우빠까 아지와까가 가야와 보리수 사이의 큰길을 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Disvāna maṃ etadavoca –
보고 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vippasannāni kho te, āvuso, indriyāni, parisuddho chavivaṇṇo pariyodāto.
‘벗이여, 그대의 감각기능은 아주 맑고, 피부색은 깨끗하고 밝다.
Kaṃsi tvaṃ, āvuso, uddissa pabbajito?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해 출가했는가?
Ko vā te satthā?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Kassa vā tvaṃ dhammaṃ rocesī’ti?
그대는 누구의 법을 좋아하는가?’
Evaṃ vutte, ahaṃ, rājakumāra, upakaṃ ājīvakaṃ gāthāhi ajjhabhāsiṃ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우빠까 아지와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
‘나는 모두를 이긴 이, 모두를 아는 이,
‘Sabbābhibhū sabbavidūhamasmi,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자,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니,
모든 법에 물들지 않았노라.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모든 법에 물들지 않는다;
모두를 버리고 갈애 다하여 풀려났으니,
Sabbañjaho taṇhākkhaye vimutto,
모든 것을 버렸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으니,
스스로 깨쳐 알았거늘, 누구를 스승이라 하랴.
Sayaṃ abhiññāya kamuddiseyyaṃ.
스스로 알았거늘 누구를 스승으로 가리키랴.
‘내게는 스승이 없고, 나와 같은 이도 없노라.
‘Na me ācariyo atthi, sadiso me na vijjati;
‘내게는 스승이 없고, 나와 같은 이는 없다;
신들을 아우른 이 세상에, 나와 견줄 이 없노라.
Sadevakasmiṃ lokasmiṃ, natthi me paṭipuggalo.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 나와 견줄 이가 없다.
‘나는 세상의 아라한, 나는 위없는 스승,
‘Ahañhi arahā loke, ahaṃ satthā anuttaro;
‘나야말로 세상의 아라한이고, 나는 위없는 스승이며;
홀로 바르게 깨달은 이, 식어서 꺼졌노라.
Ekomhi sammāsambuddho, sītibhūtosmi nibbuto.
나 홀로 바르게 깨달은 자이고, 서늘해져 꺼진 자이다.
‘법의 바퀴 굴리려고, 까시의 성으로 가노라.
‘Dhammacakkaṃ pavattetuṃ, gacchāmi kāsinaṃ puraṃ;
‘법의 바퀴를 굴리려고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간다;
눈먼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리리라.’
Andhībhūtasmiṃ lokasmiṃ, āhañchaṃ amatadundubhi’nti.
눈먼 세상에서 나는 불사의 북을 울리리라.’
‘벗이여, 그대가 그렇게 주장하니 그대는 끝없는 승리자라 할 만하군.’
‘Yathā kho tvaṃ, āvuso, paṭijānāsi arahasi anantajino’ti.
‘벗이여, 그대가 인정하는 대로라면 그대는 끝없는 승리자일 만하다.’
‘나와 같은 이들이 참으로 승리자, 번뇌 다함에 이른 이들이라.
‘Mādisā ve jinā honti, ye pattā āsavakkhayaṃ;
‘번뇌의 다함에 이른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나와 같은 승리자이다;
악한 법들을 나는 이겼노라, 그러므로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로다.’
Jitā me pāpakā dhammā, tasmāhamupaka jino’ti.
나쁜 법들을 내가 이겼으니, 우빠까여, 그래서 나는 승리자이다.’
이렇게 말하자, 왕자여, 아지와까 우빠까는 ‘그럴 수도 있겠지, 벗이여.’ 하고는 머리를 흔들고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떠나갔다.
‘‘Evaṃ vutte, rājakumāra, upako ājīvako ‘hupeyyapāvuso’ti vatvā sīsaṃ okampetvā ummaggaṃ gahetvā pakkāmi.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우빠까 아지와까는 ‘그럴지도 모르지, 벗이여’라고 말하고서, 고개를 저으며 다른 길을 잡아 떠나갔다.
342
왕자여, 나는 차례로 길을 걸어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을 찾아갔다. 오비구가 있는 곳이었다. 오비구는 멀리서 오는 나를 보고 서로 약속하였다. “벗들이여, 저기 사문 고타마가 온다.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간 자다. 그에게는 인사하지 말고, 일어나 맞지도 말고, 발우와 가사도 받아 주지 말자. 다만 자리는 하나 마련해 두자. 앉고 싶으면 앉겠지.”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bārāṇasī isipatanaṃ migadāyo yena pañcavaggiyā bhikkhū tenupasaṅkamiṃ.
“그런데 왕자여, 나는 차례로 유행하다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Addasaṃsu kho m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dūratova āgacchantaṃ.
왕자여, 다섯 비구는 내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aññamaññaṃ saṇṭhapesuṃ –
보고서 서로 이렇게 약속을 정했다 —
‘ayaṃ kho, āvuso, samaṇo gotamo āgacchat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벗이여, 이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다. 사치스럽고, 정진에서 물러났으며, 사치로 되돌아간 자다.
So neva abhivādetabbo, na paccuṭṭhātabbo, nāssa pattacīvaraṃ paṭiggahetabbaṃ;
그에게 인사해서도 안 되고, 일어나 맞아서도 안 되며,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서도 안 된다.
api ca kho āsanaṃ ṭhapetabbaṃ –
그러나 자리는 마련해 두어야 한다 —
sace so ākaṅkhissati nisīdissatī’ti.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앉을 것이다.’
그런데 왕자여,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비구는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떤 이는 마중 나와 내 발우와 가사를 받았다. 어떤 이는 자리를 펴 주었고, 어떤 이는 발 씻을 물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벗이여’ 하고 불렀다.
Yathā yathā kho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upasaṅkamiṃ, tathā tathā pañcavaggiyā bhikkhū nāsakkhiṃsu sakāya katikāya saṇṭhātuṃ.
그런데 왕자여, 내가 다섯 비구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다섯 비구는 자기들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Appekacce maṃ paccuggantvā pattacīvaraṃ paṭiggahesuṃ.
어떤 이들은 나를 맞이하러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았다.
Appekacce āsanaṃ paññapesuṃ.
어떤 이들은 자리를 마련했다.
Appekacce pādodakaṃ upaṭṭhapesuṃ.
어떤 이들은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Api ca kho maṃ nāmena ca āvusovādena ca samudācaranti.
그러나 그들은 나를 이름으로, 또 「벗이여」라는 말로 불렀다.
그러자 왕자여, 나는 오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벗이여’ 하고 부르지 마라.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죽음 없음을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이루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될 것이다.”
Evaṃ vutte,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mā, bhikkhave, tathāgataṃ nāmena ca āvusovādena ca samudācaratha;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으로도 「벗이여」라는 말로도 부르지 마라.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Amatamadhigataṃ.
불사가 얻어졌다.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오비구가 내게 말하였다. “벗 고타마여, 자네는 그 수행과 그 길, 그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지 못했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갔네. 그런 자네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겠는가?” 이렇게 말하자 왕자여, 나는 오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에 빠지지 않았고, 정진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죽음 없음을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이루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될 것이다.”
Evaṃ vutte,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그런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에서 물러났으며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Evaṃ vutte,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na, bhikkhave, tathāgato bāhulliko na padhānavibbhanto na āvatto bāhullāya.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스럽지 않고, 정진에서 물러나지 않았으며, 사치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Amatamadhigataṃ.
불사가 얻어졌다.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게 될 것이다.’
왕자여, 오비구는 두 번째로도 내게 말하였다. “벗 고타마여, 자네는 그 수행과 그 길, 그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지 못했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갔네. 그런 자네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겠는가?” 왕자여, 나도 두 번째로 오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에 빠지지 않았고, 정진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죽음 없음을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이루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될 것이다.”
Dutiyampi kho,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왕자여, 두 번째로도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그런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에서 물러났으며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Dutiyampi kho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왕자여, 두 번째로도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na, bhikkhave, tathāgato bāhulliko na padhānavibbhanto na āvatto bāhullāya.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스럽지 않고, 정진에서 물러나지 않았으며, 사치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Amatamadhigataṃ.
불사가 얻어졌다.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게 될 것이다.’
왕자여, 오비구는 세 번째로도 내게 말하였다. “벗 고타마여, 자네는 그 수행과 그 길, 그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지 못했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갔네. 그런 자네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넘는 법,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남을 얻겠는가?” 이렇게 말하자 왕자여, 나는 오비구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예전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은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죽음 없음을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이루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될 것이다.”[불확실]
Tatiyampi kho,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왕자여, 세 번째로도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그런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에서 물러났으며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Evaṃ vutte,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abhijānātha me no tumhe, bhikkhave, ito pubbe evarūpaṃ pabhāvitameta’n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안 적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Amatamadhigataṃ.
불사가 얻어졌다.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게 될 것이다.’
왕자여, 나는 이렇게 오비구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나는 비구 둘을 가르쳤고, 비구 셋은 탁발을 나갔다. 비구 셋이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우리 여섯이 연명하였다. 또 비구 셋을 가르치면, 비구 둘이 탁발을 나갔다. 비구 둘이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우리 여섯이 연명하였다.
‘‘Asakkhiṃ kho ahaṃ, rājakumāra, pañcavaggiye bhikkhū saññāpetuṃ.
“왕자여, 나는 다섯 비구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Dvepi sudaṃ, rājakumāra, bhikkhū ovadāmi.
왕자여, 나는 두 비구를 가르쳤다.
Tayo bhikkhū piṇḍāya caranti.
세 비구는 탁발하러 다녔다.
Yaṃ tayo bhikkhū piṇḍāya caritvā āharanti, tena chabbaggiyā yāpema.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이 살아갔다.
Tayopi sudaṃ, rājakumāra, bhikkhū ovadāmi, dve bhikkhū piṇḍāya caranti.
왕자여, 나는 세 비구를 가르쳤고, 두 비구는 탁발하러 다녔다.
Yaṃ dve bhikkhū piṇḍāya caritvā āharanti tena chabbaggiyā yāpema.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이 살아갔다.
343
왕자여, 그러자 오비구는 내가 이렇게 가르치고 일러 주는 대로 따라, 오래지 않아 그것을 이루었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오비구는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냈다.”
‘‘Atha kho,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mayā evaṃ ovadiyamānā evaṃ anusāsiyamānā nacirasseva –
“그러자 왕자여,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훈계를 받아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ṃsū’’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렀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보디 왕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면 얼마나 오랜 뒤에 이룰 수 있습니까?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입니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Evaṃ vutte,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kīva cirena nu kho, bhante,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세존이시여,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얼마나 오래 걸려서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게 됩니까?”
“그렇다면 왕자여, 이 일은 그대에게 도리어 묻겠다. 그대가 좋다고 여기는 대로 대답하라.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에 능숙한가?”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에 능숙합니다.”[불확실]
‘‘Tena hi, rājakumāra, taṃyevettha paṭipucchissāmi.
“왕자여,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그대에게 되묻겠다.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그대에게 옳게 여겨지는 대로 그것에 답하라.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kusalo tvaṃ hatthārūḷhe aṅkusagayhe sippe’’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에 능숙한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bhante, kusalo ahaṃ hatthārūḷhe aṅkusagayhe sippe’’ti.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에 능숙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보디 왕자는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 그의 곁에서 나도 그 기술을 배우겠다.’ 그런데 그가 믿음이 없다면, 믿음 있는 사람이 이를 수 있는 만큼을 이르지 못할 것이다. 병이 많다면, 병이 적은 사람만큼 이르지 못할 것이다. 간사하고 속임수가 많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만큼 이르지 못할 것이다. 게으르다면 정진에 힘쓰는 사람만큼, 지혜가 없다면 지혜로운 사람만큼 이르지 못할 것이다.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대 곁에서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울 수 있겠는가?”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idha puriso āgaccheyya –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이 와서 —
‘bodhi rājakumāro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jānāti;
‘보디 왕자는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
tassāhaṃ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issāmī’ti.
나는 그의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한다 하자.
So cassa assaddho;
그런데 그에게 믿음이 없다.
yāvatakaṃ saddhena pattabbaṃ taṃ na sampāpuṇeyya.
믿음 있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루지 못한다.
So cassa bahvābādho;
그리고 그는 병이 많다.
yāvatakaṃ appābādhena pattabbaṃ taṃ na sampāpuṇeyya.
병이 적은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루지 못한다.
So cassa saṭho māyāvī;
그리고 그는 속이고 거짓을 꾸민다.
yāvatakaṃ asaṭhena amāyāvinā pattabbaṃ taṃ na sampāpuṇeyya.
속이지 않고 거짓을 꾸미지 않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루지 못한다.
So cassa kusīto;
그리고 그는 게으르다.
yāvatakaṃ āraddhavīriyena pattabbaṃ taṃ na sampāpuṇeyya.
정진을 다하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루지 못한다.
So cassa duppañño;
그리고 그는 통찰지가 모자란다.
yāvatakaṃ paññavatā pattabbaṃ taṃ na sampāpuṇeyya.
통찰지를 갖춘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루지 못한다.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api nu so puriso tava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eyyā’’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대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겠는가?”
“스승이시여, 그런 사람은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갖추어도 제 곁에서 그 기술을 배울 수 없습니다. 다섯 가지를 다 갖춘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kamekenāpi, bhante, aṅgena samannāgato so puriso na mama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eyya, ko pana vādo pañcahaṅgehī’’ti!
“세존이시여, 그 요소를 하나하나 따로 갖추기만 해도 그 사람은 제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다섯 요소를 다 갖추었다면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344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보디 왕자는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 그의 곁에서 나도 그 기술을 배우겠다.’ 그런데 그가 믿음이 있다면, 믿음 있는 사람이 이를 수 있는 만큼을 이를 것이다. 병이 적다면, 병이 적은 사람만큼 이를 것이다. 간사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만큼 이를 것이다. 정진에 힘쓴다면 정진에 힘쓰는 사람만큼, 지혜롭다면 지혜로운 사람만큼 이를 것이다. 왕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대 곁에서 코끼리에 올라타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울 수 있겠는가?” “스승이시여, 그런 사람은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갖추어도 제 곁에서 그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를 다 갖춘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idha puriso āgaccheyya –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이 와서 —
‘bodhi rājakumāro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jānāti;
‘보디 왕자는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
tassāhaṃ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issāmī’ti.
나는 그의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한다 하자.
So cassa saddho;
그런데 그에게 믿음이 있다.
yāvatakaṃ saddhena pattabbaṃ taṃ sampāpuṇeyya.
믿음 있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룬다.
So cassa appābādho;
그리고 그는 병이 적다.
yāvatakaṃ appābādhena pattabbaṃ taṃ sampāpuṇeyya.
병이 적은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룬다.
So cassa asaṭho amāyāvī;
그리고 그는 속이지 않고 거짓을 꾸미지 않는다.
yāvatakaṃ asaṭhena amāyāvinā pattabbaṃ taṃ sampāpuṇeyya.
속이지 않고 거짓을 꾸미지 않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룬다.
So cassa āraddhavīriyo;
그리고 그는 정진을 다한다.
yāvatakaṃ āraddhavīriyena pattabbaṃ taṃ sampāpuṇeyya.
정진을 다하는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룬다.
So cassa paññavā;
그리고 그는 통찰지를 갖추었다.
yāvatakaṃ paññavatā pattabbaṃ taṃ sampāpuṇeyya.
통찰지를 갖춘 이가 이를 만한 것을 그는 이룬다.
Taṃ kiṃ maññasi, rājakumāra, api nu so puriso tava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eyyā’’ti?
왕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대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겠는가?”
‘‘Ekamekenāpi, bhante, aṅgena samannāgato so puriso mama santike hatthārūḷhaṃ aṅkusagayhaṃ sippaṃ sikkheyya, ko pana vādo pañcahaṅgehī’’ti!
“세존이시여, 그 요소를 하나하나 따로 갖추기만 해도 그 사람은 제 곁에서 코끼리를 타고 갈고리를 다루는 기술을 배울 것입니다. 하물며 다섯 요소를 다 갖추었다면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왕자여, 이와 꼭 같이 정진에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왕자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있다. 그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그분은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며,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다. 좋은 길로 가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다. 위없이 사람을 길들이는 분이시고,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시며, 깨달은 분이시다. 그분이 바로 세존이시다.’
‘‘Evameva kho, rājakumāra, pañcimāni padhāniyaṅgāni.
“왕자여, 바로 그와 같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가 있다.
Katamāni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Idha, rājakumāra, bhikkhu saddho hoti;
왕자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있다.
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ṃ –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고, 사람을 길들이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그는 병이 적고 고통이 적다. 소화가 알맞아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으니, 고르게 정진을 견딜 수 있다. 그는 간사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 스승이나 지혜로운 도반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는 해로운 법을 버리고 이로운 법을 갖추기 위해 정진에 힘쓴다. 굳세고 단단히 노력하여, 이로운 법에서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appābādho hoti appātaṅko samavepākiniyā gahaṇiyā samannāgato nātisītāya nāccuṇhāya majjhimāya padhānakkhamāya;
병이 적고 탈이 적으며, 고르게 소화시키는 소화력을 갖추어 너무 차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고 알맞아 정진을 견딜 만하다.
asaṭho hoti amāyāvī yathābhūtaṃ attānaṃ āvikattā satthari vā viññūsu vā sabrahmacārīsu;
속이지 않고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스승에게나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āraddhavīriyo viharati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āya, thāmavā daḷhaparakkamo anikkhittadhuro kusalesu dhammesu;
정진을 다하여 머문다 —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갖추기 위해. 힘이 있고, 굳세게 나아가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는 지혜가 있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꿰뚫어 보며, 괴로움의 바른 소멸로 이끄는 성스럽고 꿰뚫는 지혜를 갖춘다. 왕자여, 이것이 정진에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이다.
paññavā hoti udayatthagāminiyā paññāya samannāgato ariyāya nibbedhikāya sammādukkhakkhayagāminiyā.
통찰지를 갖추었다 —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이끄는, 성스럽고 꿰뚫으며 괴로움의 바른 소멸로 이끄는 통찰지를 갖추었다.
Imāni kho, rājakumāra, pañca padhāniyaṅgāni.
왕자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이다.
345
왕자여,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칠 년이면 된다. 왕자여, 칠 년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rājakumāra,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왕자여,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satta vassān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칠 년이면.
Tiṭṭhantu, rājakumāra, satta vassāni.
왕자여, 칠 년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육 년, 오 년, 사 년, 삼 년, 이 년, 일 년이면 된다. 왕자여, 일 년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chabbassāni… pañca vassāni… cattāri vassāni… tīṇi vassāni… dve vassāni… ekaṃ vassaṃ.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육 년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오 년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사 년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삼 년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이 년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일 년이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45.3에서 되살렸습니다.
Tiṭṭhatu, rājakumāra, ekaṃ vassaṃ.
왕자여, 일 년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칠 개월이면 된다. 왕자여, 칠 개월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satta māsān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일곱 달이면.
Tiṭṭhantu, rājakumāra, satta māsāni.
왕자여, 일곱 달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육 개월, 오 개월, 사 개월, 삼 개월, 이 개월, 한 달, 보름이면 된다. 왕자여, 보름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cha māsāni… pañca māsāni… cattāri māsāni… tīṇi māsāni… dve māsāni… ekaṃ māsaṃ… aḍḍhamāsaṃ.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여섯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다섯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넉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석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두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한 달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반달이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45.3에서 되살렸습니다.
Tiṭṭhatu, rājakumāra, aḍḍhamāso.
왕자여, 반달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칠 일 밤낮이면 된다. 왕자여, 칠 일 밤낮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satta rattindivān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이레 밤낮이면.
Tiṭṭhantu, rājakumāra, satta rattindivāni.
왕자여, 이레 밤낮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까닭은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는 데 엿새, 닷새, 나흘, 사흘, 이틀, 하루 밤낮이면 된다. 왕자여, 하루 밤낮은 말할 것도 없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cha rattindivāni… pañca rattindivāni… cattāri rattindivāni… tīṇi rattindivāni… dve rattindivāni… ekaṃ rattindivaṃ.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엿새 밤낮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닷새 밤낮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나흘 밤낮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사흘 밤낮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이틀 밤낮이면.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온전히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것이다 — 하루 밤낮이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5:345.3에서 되살렸습니다.
Tiṭṭhatu, rājakumāra, eko rattindivo.
왕자여, 하루 밤낮은 접어 두라.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비구가 여래를 인도자로 만난다고 하자. 저녁에 가르침을 받으면 아침에 특별한 경지를 얻을 것이다. 아침에 가르침을 받으면 저녁에 특별한 경지를 얻을 것이다.”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sāyamanusiṭṭho pāto visesaṃ adhigamissati, pātamanusiṭṭho sāyaṃ visesaṃ adhigamissatī’’ti.
이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여래를 인도자로 얻은 비구는 저녁에 가르침을 받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고, 아침에 가르침을 받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보디 왕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아, 붓다시여! 아, 법이여! 아, 법이 이토록 잘 설해졌음이여! 저녁에 가르침을 받으면 아침에 특별한 경지를 얻고, 아침에 가르침을 받으면 저녁에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니요!”
Evaṃ vutte,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보디 왕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ho buddho, aho dhammo, aho dhammassa svākkhātatā!
“아, 깨달으신 분이시여! 아, 법이여! 아, 법이 잘 설해졌음이여!
Yatra hi nāma sāyamanusiṭṭho pāto visesaṃ adhigamissati, pātamanusiṭṭho sāyaṃ visesaṃ adhigamissatī’’ti!
저녁에 가르침을 받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고, 아침에 가르침을 받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는다니!”
346
이렇게 말하자 산지까의 아들 청년이 보디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보디 님께서는 ‘아, 붓다시여! 아, 법이여! 아, 법이 이토록 잘 설해졌음이여!’ 하고 말씀은 하시면서도, 그 고타마 님께 귀의하지 않으십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지 않으십니다.”
Evaṃ vutte, sañjikāputto māṇavo bodhiṃ rājakumār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산지까뿟따 학도가 보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evameva panāyaṃ bhavaṃ bodhi –
“그런데 보디 존자께서는 이렇게 —
‘aho buddho, aho dhammo, aho dhammassa svākkhātatā’ti ca vadeti;
‘아, 깨달으신 분이시여! 아, 법이여! 아, 법이 잘 설해졌음이여!’라고 말씀하시면서,
atha ca pana n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at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ā’’ti.
그러면서도 그 고따마 존자께, 그리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하지는 않으시는군요.”
“벗 산지까의 아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게. 벗 산지까의 아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게. 이 말은 내가 어머니께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닌 것일세.”
‘‘Mā hevaṃ, samma sañjikāputta, avaca;
“벗 산지까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mā hevaṃ, samma sañjikāputta, avaca.
벗 산지까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Sammukhā metaṃ, samma sañjikāputta, ayyāya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벗 산지까뿟따여, 나는 이것을 어머니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다.”
“벗 산지까의 아들이여, 한때 세존께서 꼬삼비의 고시따 동산에 머무르셨네. 그때 임신한 내 어머니께서 세존께 찾아가셨네.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으셨네. 그렇게 앉은 어머니께서 세존께 말씀드리셨네. ‘스승이시여, 제 배 속에 있는 이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아이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kamidaṃ, samma sañjikāputta, samayaṃ bhagavā kosambiyaṃ viharati ghositārāme.
“벗 산지까뿟따여, 한때 세존께서 꼬삼비의 고시따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me ayyā kucchimat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나의 어머니가 임신한 몸으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ā kho me ayyā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나의 어머니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yo me ayaṃ, bhante, kucchigato kumārako vā kumārikā vā so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at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제 뱃속에 든 이 아이가 사내아이든 여자아이든, 그 아이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t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께서는 그 아이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벗 산지까의 아들이여, 또 한때 세존께서 박가 사람들의 땅에 머무르셨네. 바로 이곳 수수마라기리의 베싸깔라 숲 사슴동산이었네. 그때 유모가 나를 안고 세존께 찾아갔네. 인사드리고 한쪽에 섰네. 한쪽에 선 유모가 세존께 말씀드렸네. ‘스승이시여, 이 보디 왕자가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아이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kamidaṃ, samma sañjikāputta, samayaṃ bhagavā idheva bhaggesu viharati susumāragire bhesakaḷāvane migadāye.
벗 산지까뿟따여, 한때 세존께서 바로 이곳 박가 사람들의 땅, 수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 녹야원에 머무셨다.
Atha kho maṃ dhāti aṅkena hari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유모가 나를 품에 안고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maṃ dhāti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유모는 나를 안고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yaṃ, bhante, bodhi rājakumāro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at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이 보디 왕자가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t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께서는 그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벗 산지까의 아들이여, 그러니 나는 이제 세 번째로 세존께 귀의하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네. 세존께서는 나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sāhaṃ, samma sañjikāputta, tatiyakampi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벗 산지까뿟따여, 그런 나는 세 번째로도 세존께 귀의한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한다.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께서는 나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보디 왕자의 경이 끝났다. 다섯째 경이다.
Bodhirājakumārasuttaṃ niṭṭhitaṃ pañcamaṃ.
보디 왕자 경이 끝났다. 다섯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