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Dhammacetiyasuttaṃ
9. 담마쩨띠야 경
36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카족의 도시 메달루파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은 볼일이 있어 나가라카에 와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akkesu viharati medāḷup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한때 세존께서 사꺄 사람들 가운데, 메다룹빠라는 사꺄족의 마을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pasenadi kosalo nagarakaṃ anuppatto ho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무슨 볼일이 있어 나가라까에 이르러 있었다.
파세나디 왕이 디가 카라야나를 불러 말했다. “여보게 카라야나, 훌륭한 수레들을 준비하게. 풍광 좋은 동산을 보러 가세.” “알겠습니다, 폐하.” 디가 카라야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수레들을 준비시킨 뒤 왕에게 아뢰었다. “폐하, 훌륭한 수레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편하실 때 떠나십시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dīghaṃ kārāyanaṃ āmantesi –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디가 까라야나를 불렀다 —
‘‘yojehi, samma kārāyana,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uyyānabhūmiṃ gacchāma subhūmiṃ dassanāyā’’ti.
“여보게 까라야나, 좋은 수레들을 매게. 우리는 좋은 터를 보러 동산으로 가겠네.”
‘‘Evaṃ, devā’’ti kho dīgho kārāyan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ssutvā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yojāpetvā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vedesi –
“예, 신이시여” 하고 디가 까라야나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에게 응낙하고서, 좋은 수레들을 매게 한 뒤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에게 알렸다 —
‘‘yuttāni kho te, deva,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신이시여, 좋은 수레들이 매어졌습니다.
Yassadāni kālaṃ maññasī’’ti.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소서.”
파세나디 왕은 훌륭한 수레에 올랐다. 다른 수레들을 거느리고, 왕의 위세도 당당하게 나가라카를 떠났다. 동산을 향해 가다가 수레가 닿는 곳까지는 수레로 갔다. 그다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동산에 들어갔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dr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rehi bhadrehi yānehi nagarakamhā niyyāsi mahaccā rājānubhāvena.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좋은 수레에 올라, 좋은 수레들로 큰 왕의 위엄을 갖추고 나가라까에서 나섰다.
Yena ārāmo tena pāyāsi.
원림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ova ārāmaṃ pāvisi.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로 가서,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원림으로 들어갔다.
왕은 동산에서 다리도 풀 겸 이리저리 거닐다가 나무 아래 자리들을 보았다. 보기에 좋고 마음이 맑아지는 곳이었다. 소리도 소란도 없고, 인적이 드물어 바람만 스쳐 갔다. 사람들이 몰래 모이기에 알맞고, 홀로 고요히 앉아 수행하기에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보자 왕에게 세존이 떠올랐다. ‘바로 이곳이 그 나무 아래 자리들이구나. 보기에 좋고 마음이 맑아지며, 소리도 소란도 없다. 인적이 드물어 바람만 지나가고, 사람들이 몰래 모이기에 알맞으며, 홀로 고요히 앉아 수행하기에 어울린다. 우리가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을 모시고 섬기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불확실]
Addasā kho rājā pasenadi kosalo ārāme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rukkhamūlāni pāsādikāni pasādanīyān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원림에서 다리를 풀며 이리저리 거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보기 좋고 마음이 맑아지고 소리가 적고 떠드는 소리가 없고 사람의 기척이 없고 사람들에게서 외떨어지고 홀로 앉기에 알맞은 나무 밑들을 보았다.
Disvāna bhagavantaṃyeva ārabbha sati udapādi –
보고 나서 바로 그분 세존을 두고 마음챙김이 일어났다[불확실]
불확실 —
‘‘imāni kho tāni rukkhamūlāni pāsādikāni pasādanīyān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yattha sudaṃ mayaṃ taṃ bhagavantaṃ payirupāsāma arahantaṃ sammāsambuddha’’nti.
“보기 좋고 마음이 맑아지고 소리가 적고 떠드는 소리가 없고 사람의 기척이 없고 사람들에게서 외떨어지고 홀로 앉기에 알맞은 바로 이런 나무 밑들에서, 우리는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가까이 모시곤 했지.”
365
파세나디 왕이 디가 카라야나를 불러 말했다. “여보게 카라야나, 이곳이 바로 그 나무 아래 자리들이로세. 보기에 좋고 마음이 맑아지며, 소리도 소란도 없지. 인적이 드물어 바람만 지나가고, 사람들이 몰래 모이기에 알맞으며, 홀로 고요히 앉아 수행하기에 어울리는 곳일세. 우리가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을 모시고 섬기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지. 그런데 카라야나,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dīghaṃ kārāyanaṃ āmantesi –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디가 까라야나를 불렀다 —
‘‘imāni kho, samma kārāyana, tāni rukkhamūlāni pāsādikāni pasādanīyān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yattha sudaṃ mayaṃ taṃ bhagavantaṃ payirupāsāma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여보게 까라야나, 보기 좋고 마음이 맑아지고 소리가 적고 떠드는 소리가 없고 사람의 기척이 없고 사람들에게서 외떨어지고 홀로 앉기에 알맞은 바로 이런 나무 밑들에서, 우리는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가까이 모시곤 했네.
Kahaṃ nu kho, samma kārāyana, etarahi so bhagavā viharati arahaṃ sammāsambuddho’’ti?
여보게 까라야나,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신가?”
“대왕이시여, 사카족의 도시 메달루파라는 곳이 있습니다.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는 지금 거기에 계십니다.” “카라야나, 나가라카에서 메달루파까지는 얼마나 먼가?” “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3요자나이니 해가 남은 시간 안에 갈 수 있습니다.”
‘‘Atthi, mahārāja, medāḷup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대왕이시여, 메다룹빠라는 사꺄족의 마을이 있습니다.
Tattha so bhagavā etarahi viharati arahaṃ sammāsambuddho’’ti.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지금 거기에 머물고 계십니다.”
‘‘Kīvadūre pana, samma kārāyana, nagarakamhā medāḷup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hotī’’ti?
“여보게 까라야나, 그러면 나가라까에서 메다룹빠라는 사꺄족의 마을까지는 얼마나 먼가?”
‘‘Na dūre, mahārāja;
“대왕이시여, 멀지 않습니다.
tīṇi yojanāni;
세 요자나입니다.
sakkā divasāvasesena gantu’’nti.
남은 낮 동안에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카라야나, 훌륭한 수레들을 준비하게.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을 뵈러 가겠네.” “알겠습니다, 폐하.” 디가 카라야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수레들을 준비시킨 뒤 왕에게 아뢰었다. “폐하, 훌륭한 수레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편하실 때 떠나십시오.”
‘‘Tena hi, samma kārāyana, yojehi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gamissāma mayaṃ taṃ bhagavantaṃ dassanāya arahantaṃ sammāsambuddha’’nti.
“그렇다면 여보게 까라야나, 좋은 수레들을 매게. 우리는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뵈러 가겠네.”
‘‘Evaṃ, devā’’ti kho dīgho kārāyan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ssutvā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yojāpetvā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vedesi –
“예, 신이시여” 하고 디가 까라야나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에게 응낙하고서, 좋은 수레들을 매게 한 뒤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에게 알렸다 —
‘‘yuttāni kho te, deva, bhadrāni bhadrāni yānāni.
“신이시여, 좋은 수레들이 매어졌습니다.
Yassadāni kālaṃ maññasī’’ti.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소서.”
파세나디 왕은 훌륭한 수레에 올라 다른 수레들을 거느리고 나가라카를 떠났다. 사카족의 도시 메달루파를 향해 가서,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왕은 동산으로 나아갔다. 수레가 닿는 곳까지는 수레로 가고, 거기서 내려서는 걸어서 동산에 들어갔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dr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rehi bhadrehi yānehi nagarakamhā yena medāḷup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tena pāyāsi.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좋은 수레에 올라, 좋은 수레들로 나가라까에서 메다룹빠라는 사꺄족의 마을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Teneva divasāvasesena medāḷupaṃ nāma sakyānaṃ nigamaṃ sampāpuṇi.
바로 그 남은 낮 동안에 메다룹빠라는 사꺄족의 마을에 다다랐다.
Yena ārāmo tena pāyāsi.
원림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ova ārāmaṃ pāvisi.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로 가서,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원림으로 들어갔다.
366
그때 많은 비구들이 바깥 빈터를 거닐고 있었다. 파세나디 왕이 그 비구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존자님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저희는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을 뵙고 싶습니다.” “대왕이시여, 문이 닫혀 있는 저 처소가 그곳입니다. 소리 내지 말고 다가가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회랑으로 들어가 헛기침을 한 뒤 빗장을 두드리십시오. 세존께서 대왕께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abbhokāse caṅkamanti.
그때 여러 비구가 노지에서 거닐고 있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i;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그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e bhikkhū etadavoca –
다가가서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kahaṃ nu kho, bhante, etarahi so bhagavā viharati arahaṃ sammāsambuddho?
“존자들이시여,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Dassanakāmā hi mayaṃ ta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nti.
저희는 그분 세존,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뵙고자 합니다.”
‘‘Eso, mahārāja, vihāro saṃvutadvāro.
“대왕이여, 저것이 문이 닫힌 처소이다.
Tena appasaddo upasaṅkamitvā ataramāno āḷindaṃ pavisitvā ukkāsitvā aggaḷaṃ ākoṭehi.
그리로 소리를 내지 말고 다가가, 서두르지 말고 툇마루에 들어가서, 인기척을 내고 빗장을 두드려라.
Vivarissati bhagavā te dvāra’’nti.
세존께서 그대에게 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그러자 파세나디 왕은 그 자리에서 칼과 머리띠를 디가 카라야나에게 건네주었다. 디가 카라야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왕께서는 홀로 계시려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 머물러야겠다.’ 파세나디 왕은 닫힌 문 앞으로 소리 내지 않고 다가갔다. 서두르지 않고 회랑으로 들어가 헛기침을 하고 빗장을 두드렸다. 세존께서 문을 열어 주셨다. 왕은 처소로 들어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그리고 세존의 발에 입을 맞추고 두 손으로 주무르며 자기 이름을 밝혔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tattheva khaggañca uṇhīsañca dīghassa kārāyanassa pādāsi.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바로 그 자리에서 칼과 두건을 디가 까라야나에게 건넸다.
Atha kho dīghassa kārāyanassa etadahosi –
그때 디가 까라야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rahāyati kho dāni rājā, idheva dāni mayā ṭhātabba’’nti.
“이제 왕은 은밀한 자리를 찾는구나. 이제 나는 바로 여기에 서 있어야겠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yena so vihāro saṃvutadvāro tena appasaddo upasaṅkamitvā ataramāno āḷindaṃ pavisitvā ukkāsitvā aggaḷaṃ ākoṭesi.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문이 닫힌 그 처소가 있는 곳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 서두르지 않고 툇마루에 들어가서, 인기척을 내고 빗장을 두드렸다.
Vivari bhagavā dvāraṃ.
세존께서 문을 여셨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vihāraṃ pavisitvā bhagavato pādesu sirasā nipatitvā bhagavato pādāni mukhena ca paricumbati, pāṇīhi ca parisambāhati, nāmañca sāveti –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처소에 들어가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의 두 발에 입을 맞추고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름을 알렸다 —
“세존이시여, 저는 코살라의 왕 파세나디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코살라의 왕 파세나디입니다.”
‘‘rājāhaṃ, bhante, pasenadi kosalo;
“세존이시여, 저는 왕 빠세나디, 꼬살라 사람입니다.
rājāhaṃ, bhante, pasenadi kosalo’’ti.
세존이시여, 저는 왕 빠세나디, 꼬살라 사람입니다.”
367
“대왕이여, 그대는 어떤 이로움을 보고 이 몸에게 이토록 몸을 낮추고, 다정한 벗의 예를 보이는가?”
‘‘Kiṃ pana tvaṃ, mahārāja, atthavasaṃ sampassamāno imasmiṃ sarīre evarūpaṃ paramanipaccakāraṃ karosi, mittūpahāraṃ upadaṃsesī’’ti?
“대왕이여, 그대는 어떤 뜻을 보기에 이 몸에 이토록 지극히 몸을 낮추어 예를 다하고, 벗의 정을 드러내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 대해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이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앎입니다.”
‘‘Atth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이 있습니다 —
‘ho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청정한 수행을 닦는 것을 봅니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 하고 기한을 정해 놓고 닦습니다. 그들은 얼마 뒤 목욕을 말끔히 하고 향유를 바르며 머리와 수염을 매만집니다. 그런 채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마음껏 누리며 즐깁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 비구들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온전하고 청정한 수행을 닦는 것을 봅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렇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온전하고 청정한 수행을 하는 다른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Idhāhaṃ, bhante, passāmi eke samaṇabrāhmaṇe pariyantakataṃ brahmacariyaṃ carante dasapi vassāni, vīsampi vassāni, tiṃsampi vassāni, cattārīsampi vassāni.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기한을 정해 놓고 청정한 삶을 닦는 것을 봅니다 — 십 년도, 이십 년도, 삼십 년도, 사십 년도.
Te aparena samayena sunhātā suvilittā kappitakesamassū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ā samaṅgībhūtā paricārenti.
그들은 나중에 잘 씻고 잘 바르고 머리와 수염을 다듬고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요소를 갖추고 두루 갖추어 마음껏 누립니다.
Idha panāhaṃ, bhante, bhikkhū passāmi yāvajīvaṃ āpāṇakoṭikaṃ 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carante.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비구들이 목숨이 다하도록,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닦는 것을 봅니다.
Na kho panāhaṃ, bhante, ito bahiddhā aññaṃ evaṃ 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samanupassāmi.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다른 삶을 보지 못합니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68
또 세존이시여, 왕들도 왕들과 다투고, 크샤트리아도 크샤트리아와 다툽니다. 바라문도 바라문과 다투고, 장자도 장자와 다툽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어머니와 다투며, 아버지와 아들도 서로 다툽니다. 형제와 자매도 서로 다투고, 친구도 친구와 다툽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 비구들이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는 것을 봅니다. 물과 우유가 섞이듯 어우러져 서로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화합하는 모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Puna caparaṃ, bhante, rājānopi rājūhi vivadanti, khattiyāpi khattiyehi vivadanti, brāhmaṇāpi brāhmaṇehi vivadanti, gahapatayopi gahapatīhi vivadanti, mātāpi puttena vivadati, puttopi mātarā vivadati, pitāpi puttena vivadati, puttopi pitarā vivadati, bhātāpi bhaginiyā vivadati, bhaginīpi bhātarā vivadati, sahāyopi sahāyena vivadati.
다시 또 세존이시여, 왕들도 왕들과 다투고, 끄샤뜨리야들도 끄샤뜨리야들과 다투고, 바라문들도 바라문들과 다투고, 장자들도 장자들과 다투고, 어머니도 아들과 다투고, 아들도 어머니와 다투고, 아버지도 아들과 다투고, 아들도 아버지와 다투고, 형제도 자매와 다투고, 자매도 형제와 다투고, 벗도 벗과 다툽니다.
Idha panāhaṃ, bhante, bhikkhū passāmi samagge sammodamāne avivadamāne khīrodakībhūte aññamaññaṃ piyacakkhūhi sampassante viharante.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비구들이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이 섞이듯 되어 서로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머무는 것을 봅니다.
Na kho panāhaṃ, bhante, ito bahiddhā aññaṃ evaṃ samaggaṃ parisaṃ samanupassāmi.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화합하는 다른 무리를 보지 못합니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69
또 세존이시여, 저는 이 동산에서 저 동산으로, 이 공원에서 저 공원으로 거닐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을 봅니다. 그들은 여위고 거칠고 안색이 나쁘며, 누렇게 뜨고 핏줄이 불거져 있습니다.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분명 이 존자들은 청정한 수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숨겨 둔 나쁜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래서 여위고 거칠고 안색이 나쁘며, 누렇게 뜨고 핏줄이 불거져서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하는 듯한 것이다.’ 저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존자님들은 어째서 이렇게 여위고 거칠고 안색이 나쁘며, 누렇게 뜨고 핏줄이 불거져서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하는 듯합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우리는 집안 내림병이 있습니다.’
‘‘Puna caparāhaṃ, bhante, ārāmena ārāmaṃ, uyyānena uyyānaṃ anucaṅkamāmi anuvicarāmi.
다시 또 세존이시여, 저는 원림에서 원림으로, 동산에서 동산으로 이리저리 거닐고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Sohaṃ tattha passāmi eke samaṇabrāhmaṇe kise lūkhe dubbaṇṇe uppaṇḍuppaṇḍukajāte dhamanisanthatagatte, na viya maññe cakkhuṃ bandhante janassa dassanāya.
거기서 저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마르고 거칠고 낯빛이 나쁘고 몹시 창백하고 온몸에 핏줄이 드러나, 사람들이 보아도 눈길을 붙들지 못할 듯한 것을 봅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addhā ime āyasmanto anabhiratā vā brahmacariyaṃ caranti, atthi vā tesaṃ kiñci pāpaṃ kammaṃ kataṃ paṭicchannaṃ;
‘분명 이 존자들은 청정한 삶을 즐기지 못하면서 닦고 있거나, 아니면 이들에게 감추어 둔 어떤 나쁜 업이 있으리라.
tathā hi ime āyasmanto kisā lūkhā dubbaṇṇā uppaṇḍuppaṇḍukajātā dhamanisanthatagattā, na viya maññe cakkhuṃ bandhanti janassa dassanāyā’ti.
그러기에 이 존자들은 마르고 거칠고 낯빛이 나쁘고 몹시 창백하고 온몸에 핏줄이 드러나, 사람들이 보아도 눈길을 붙들지 못할 듯하다.’
Tyāh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dāmi –
저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
‘kiṃ nu kho tumhe āyasmanto kisā lūkhā dubbaṇṇā uppaṇḍuppaṇḍukajātā dhamanisanthatagattā, na viya maññe cakkhuṃ bandhatha janassa dassanāyā’ti?
‘존자들이시여, 그대들은 어찌하여 마르고 거칠고 낯빛이 나쁘고 몹시 창백하고 온몸에 핏줄이 드러나, 사람들이 보아도 눈길을 붙들지 못할 듯합니까?’
Te evamāhaṃsu –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bandhukarogo no, mahārājā’ti.
‘대왕이여, 우리에게는 집안 내림 병이 있다.’
그런데 저는 여기 비구들이 기뻐서 들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들은 환하고 즐거워 보이며 감각기관이 맑습니다. 걱정이 적어 몸과 마음이 느긋하고, 남이 주는 것으로 살면서도 사슴 같은 마음으로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분명 이 존자들은 저 세존의 가르침에서 갈수록 더 높아지는 빼어난 경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존자들은 기뻐서 들떠 있고, 환하고 즐거워 보이는 것이다. 감각기관이 맑고 걱정이 적으며, 몸과 마음이 느긋하다. 남이 주는 것으로 살면서도 사슴 같은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Idha panāhaṃ, bhante, bhikkhū passāmi haṭṭhapahaṭṭhe udaggudagge abhiratarūpe pīṇindriye appossukke pannalome paradattavutte migabhūtena cetasā viharante.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비구들이 기뻐하고 크게 기뻐하며, 뛸 듯이 들뜨고 더없이 들뜨며, 즐거워하는 모습이고, 감각기능이 생기 있고, 걱정이 적고, 털이 눕듯 편안하고, 남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며, 사슴 같은 마음으로 머무는 것을 봅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addhā ime āyasmanto tassa bhagavato sāsane uḷāraṃ pubbenāparaṃ visesaṃ jānanti;
‘분명 이 존자들은 그분 세존의 가르침에서 앞과 뒤가 다른 크나큰 특별함을 알고 있으리라.
tathā hi ime āyasmanto haṭṭhapahaṭṭhā udaggudaggā abhiratarūpā pīṇindriyā appossukkā pannalomā paradattavuttā migabhūtena cetasā viharantī’ti.
그러기에 이 존자들은 기뻐하고 크게 기뻐하며, 뛸 듯이 들뜨고 더없이 들뜨며, 즐거워하는 모습이고, 감각기능이 생기 있고, 걱정이 적고, 털이 눕듯 편안하고, 남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며, 사슴 같은 마음으로 머문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70
또 세존이시여, 저는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 왕입니다. 저는 죽여야 할 자를 죽일 수 있습니다. 벌금을 물려야 할 자에게 벌금을 물리고, 추방해야 할 자를 추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제가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말 중간중간에 끼어듭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말 중간에 끼어들지 마시오.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시오.’ 그런데도 그들은 제 말 중간중간에 끼어듭니다.
‘‘Puna caparāhaṃ, bhante, rājā khattiyo muddhāvasitto;
다시 또 세존이시여, 저는 머리에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입니다.
pahomi ghātetāyaṃ vā ghātetuṃ, jāpetāyaṃ vā jāpetuṃ, pabbājetāyaṃ vā pabbājetuṃ.
저는 죽여야 할 자를 죽일 수도 있고, 재산을 빼앗아야 할 자에게서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고, 내쫓아야 할 자를 내쫓을 수도 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aḍḍakaraṇe nisinnassa antarantarā kathaṃ opātenti.
그런데 세존이시여, 그런 제가 재판에 앉아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따금 말을 가로챕니다.
Sohaṃ na labhāmi –
그런 저는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
‘mā me bhonto aḍḍakaraṇe nisinnassa antarantarā kathaṃ opātetha, kathāpariyosānaṃ me bhonto āgamentū’ti.
‘여러분, 내가 재판에 앉아 있을 때 이따금 말을 가로채지 마시오. 여러분,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시오.’
Tassa mayhaṃ, bhante, antarantarā kathaṃ opātenti.
세존이시여, 그런 제게 사람들은 이따금 말을 가로챕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비구들에게서 이런 것을 봅니다. 세존께서 수백 명의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는 동안에는 제자들의 재채기 소리도 헛기침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언젠가 세존께서 수백 명의 대중에게 법을 설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세존의 제자 한 사람이 헛기침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도반 한 사람이 무릎으로 그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존자여, 조용히 하십시오.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스승이신 세존께서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Idha panāhaṃ, bhante, bhikkhū passāmi;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비구들을 봅니다 —
yasmiṃ samaye bhagavā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neva tasmiṃ samaye bhagavato sāvakānaṃ khipitasaddo vā hoti ukkāsitasaddo vā.
세존께서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실 때, 그때 세존의 제자들에게는 재채기 소리도 기침 소리도 없습니다.
Bhūtapubbaṃ, bhante, bhagavā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세존이시여, 예전에 세존께서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셨습니다.
Tatraññataro bhagavato sāvako ukkāsi.
거기서 세존의 어떤 제자가 기침을 했습니다.
Tamenaṃ aññataro sabrahmacārī jaṇṇukena ghaṭṭesi –
그러자 다른 어떤 동료 수행자가 무릎으로 그를 툭 쳤습니다 —
‘appasaddo āyasmā hotu, māyasmā saddamakāsi;
‘존자께서는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시여,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satthā no bhagavā dhammaṃ desetī’ti.
우리 스승이신 세존께서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놀랍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몽둥이도 칼도 없이 이렇게 잘 다스려진 대중이 있을 수 있다니!’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잘 다스려진 대중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참으로 놀랍구나, 여보게. 참으로 신기하구나, 여보게!
Adaṇḍena vata kira, bho, asatthena evaṃ suvinītā parisā bhavissatī’ti!
몽둥이 없이도, 여보게, 칼 없이도 참으로 이토록 잘 다스려진 무리가 있으리라니!’
Na kho panāhaṃ, bhante, ito bahiddhā aññaṃ evaṃ suvinītaṃ parisaṃ samanupassāmi.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는 이 밖에서 이처럼 잘 다스려진 다른 무리를 보지 못합니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71
또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서 크샤트리아 현자들을 봅니다. 그들은 영리하고 날카로우며 논쟁 경험이 많아, 머리카락도 쪼갤 만한 솜씨를 지녔습니다. 자기 지혜로 남의 견해를 깨뜨리며 다니는 듯합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문 고타마께서 어느 마을이나 도시에 오신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질문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가지고 사문 고타마께 가서 여쭙자. 우리가 여쭈었을 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시면 우리는 이렇게 반박하자. 또 저렇게 대답하시면 저렇게 반박하자.’
‘‘Puna caparāhaṃ, bhante, passāmi idhekacce khattiyapaṇḍite nipuṇe kataparappavāde vālavedhirūpe.
다시 또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어떤 끄샤뜨리야 현자들이 정교하고, 남의 주장에 밝고, 터럭도 꿰뚫는 명궁 같은 것을 봅니다.
Te bhindantā maññe caranti paññāgatena diṭṭhigatāni.
그들은 제 지혜로 견해들을 부수며 다니는 듯합니다.
Te suṇanti –
그들은 듣습니다 —
‘samaṇo khalu, bho, gotamo amukaṃ nāma gāmaṃ vā nigamaṃ vā osarissatī’ti.
‘여보게들, 사문 고따마가 아무 마을이나 아무 읍에 들른다고 하네.’
Te pañhaṃ abhisaṅkharonti –
그들은 물음을 꾸밉니다 —
‘imaṃ mayaṃ pañhaṃ samaṇaṃ gotamaṃ upasaṅkamitvā pucchissāma.
‘우리는 이 물음을 가지고 사문 고따마에게 다가가 물으리라.
Evaṃ ce no puṭṭho evaṃ byākarissati, evamassa mayaṃ vādaṃ āropessāma;
우리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논박을 걸리라.
evaṃ cepi no puṭṭho evaṃ byākarissati, evampissa mayaṃ vādaṃ āropessāmā’ti.
또 우리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논박을 걸리라.’
그들은 다시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문 고타마께서 어느 마을이나 도시에 와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존께 갑니다. 세존께서는 법을 말씀하시어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해 주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법을 듣고 깨우치고 받아들이고 용기를 얻고 기뻐하고 나면, 세존께 질문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반박하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세존의 제자가 되고 맙니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Te suṇanti –
그들은 듣습니다 —
‘samaṇo khalu, bho, gotamo amukaṃ nāma gāmaṃ vā nigamaṃ vā osaṭo’ti.
‘여보게들, 사문 고따마가 아무 마을이나 아무 읍에 들렀다고 하네.’
Te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nti.
그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갑니다.
Te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i samādapeti samuttejeti sampahaṃseti.
세존께서는 법다운 말씀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십니다.
Te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ṃsitā na ceva bhagavantaṃ pañhaṃ pucchanti, kuto vādaṃ āropessanti?
세존께 법다운 말씀으로 보임을 받고, 받아들이게 되고, 북돋워지고, 기뻐진 그들은 세존께 물음을 여쭙지조차 못하는데, 어찌 논박을 걸겠습니까?
Aññadatthu bhagavato sāvakā sampajjanti.
도리어 그들은 세존의 제자가 됩니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72
또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서 바라문 현자들과 장자 현자들과 사문 현자들을 봅니다. 그들은 영리하고 날카로우며 논쟁 경험이 많아, 머리카락도 쪼갤 만한 솜씨를 지녔습니다. 자기 지혜로 남의 견해를 깨뜨리며 다니는 듯합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문 고타마께서 어느 마을이나 도시에 오신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질문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가지고 사문 고타마께 가서 여쭙자. 우리가 여쭈었을 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시면 우리는 이렇게 반박하자. 또 저렇게 대답하시면 저렇게 반박하자.’
‘‘Puna caparāhaṃ, bhante, passāmi idhekacce brāhmaṇapaṇḍite…pe… gahapatipaṇḍite…pe… samaṇapaṇḍite nipuṇe kataparappavāde vālavedhirūpe.
다시 또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어떤 바라문 현자들이 정교하고, 남의 주장에 밝고, 터럭도 꿰뚫는 명궁 같은 것을 봅니다. 어떤 장자 현자들이 정교하고, 남의 주장에 밝고, 터럭도 꿰뚫는 명궁 같은 것을 봅니다. 어떤 사문 현자들이 정교하고, 남의 주장에 밝고, 터럭도 꿰뚫는 명궁 같은 것을 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89:371.1에서 되살렸습니다.
Te bhindantā maññe caranti paññāgatena diṭṭhigatāni.
그들은 제 지혜로 견해들을 부수며 다니는 듯합니다.
Te suṇanti –
그들은 듣습니다 —
‘samaṇo khalu, bho, gotamo amukaṃ nāma gāmaṃ vā nigamaṃ vā osarissatī’ti.
‘여보게들, 사문 고따마가 아무 마을이나 아무 읍에 들른다고 하네.’
Te pañhaṃ abhisaṅkharonti –
그들은 물음을 꾸밉니다 —
‘imaṃ mayaṃ pañhaṃ samaṇaṃ gotamaṃ upasaṅkamitvā pucchissāma.
‘우리는 이 물음을 가지고 사문 고따마에게 다가가 물으리라.
Evaṃ ce no puṭṭho evaṃ byākarissati, evamassa mayaṃ vādaṃ āropessāma;
우리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논박을 걸리라.
evaṃ cepi no puṭṭho evaṃ byākarissati, evampissa mayaṃ vādaṃ āropessāmā’ti.
또 우리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논박을 걸리라.’
그들은 다시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문 고타마께서 어느 마을이나 도시에 와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존께 갑니다. 세존께서는 법을 말씀하시어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해 주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법을 듣고 깨우치고 받아들이고 용기를 얻고 기뻐하고 나면, 세존께 질문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반박하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세존께 집을 떠나 출가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세존께서는 그들을 출가시키십니다.
Te suṇanti –
그들은 듣습니다 —
‘samaṇo khalu, bho, gotamo amukaṃ nāma gāmaṃ vā nigamaṃ vā osaṭo’ti.
‘여보게들, 사문 고따마가 아무 마을이나 아무 읍에 들렀다고 하네.’
Te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nti.
그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갑니다.
Te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i samādapeti samuttejeti sampahaṃseti.
세존께서는 법다운 말씀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십니다.
Te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ṃsitā na ceva bhagavantaṃ pañhaṃ pucchanti, kuto vādaṃ āropessanti?
세존께 법다운 말씀으로 보임을 받고, 받아들이게 되고, 북돋워지고, 기뻐진 그들은 세존께 물음을 여쭙지조차 못하는데, 어찌 논박을 걸겠습니까?
Aññadatthu bhagavantaṃyeva okāsaṃ yācanti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jāya.
도리어 그들은 바로 세존께,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나아가 출가하도록 자리를 내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Te bhagavā pabbājeti.
세존께서는 그들을 출가시키십니다.
그렇게 출가한 그들은 홀로 떨어져,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힘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지냅니다. 그러다 머지않아 위없는 청정한 수행의 완성에 이릅니다. 선남자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지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우리는 하마터면 망할 뻔했구나. 아아, 우리는 하마터면 파멸할 뻔했구나. 우리는 전에는 사문이 아니면서도 사문이라 자처했다. 바라문이 아니면서도 바라문이라 자처했고, 아라한이 아니면서도 아라한이라 자처했다. 이제야 우리는 참으로 사문이고, 참으로 바라문이며, 참으로 아라한이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Te tathāpabbajitā samānā ekā vūpakaṭṭhā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ntā nacirasseva –
그렇게 출가한 그들은 홀로 떨어져 지내고,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고, 스스로를 다잡고 머물면서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i.
곧 청정한 삶의 완성을 바로 지금 여기서 스스로 잘 알아 실현하고, 그것에 이르러 머뭅니다.
Te evamāhaṃsu –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manaṃ vata, bho, anassāma;
‘여보게, 우리는 참으로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다.
manaṃ vata, bho, panassāma’.
여보게, 우리는 참으로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다.’
Mayañhi pubbe assamaṇāva samānā samaṇāmhāti paṭijānimhā, abrāhmaṇāva samānā brāhmaṇāmhāti paṭijānimhā, anarahantova samānā arahantāmhāti paṭijānimhā.
우리는 전에 사문이 아니면서 ‘우리는 사문이다’라고 자처했고, 바라문이 아니면서 ‘우리는 바라문이다’라고 자처했고, 아라한이 아니면서 ‘우리는 아라한이다’라고 자처했다.
‘Idāni khomha samaṇā, idāni khomha brāhmaṇā, idāni khomha arahanto’ti.
‘이제야 우리는 사문이고, 이제야 우리는 바라문이고, 이제야 우리는 아라한이다.’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73
또 세존이시여, 건축가 이시닷타와 푸라나는 제 밥을 먹고 제 수레를 타는 자들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생계를 대 주고 명예를 높여 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세존께 하듯이 저에게 공손히 몸을 낮추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언젠가 제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을 때입니다. 저는 두 건축가를 시험해 보려고 비좁은 숙소 한 곳에 함께 묵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법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는 세존께서 계신 쪽으로 머리를 두고, 저는 발치로 둔 채 누웠습니다.
‘‘Puna caparāhaṃ, bhante, ime isidattapurāṇā thapatayo mamabhattā mamayānā, ahaṃ nesaṃ jīvikāya dātā, yasassa āhattā;
다시 또 세존이시여, 이시닷따와 뿌라나라는 이 목수들은 제 밥을 먹고 제 수레를 타며, 제가 그들에게 생계를 주는 자이고 명성을 가져다주는 자입니다.
atha ca pana no tathā mayi nipaccakāraṃ karonti yathā bhagavati.
그런데도 그들은 세존께 하듯 저에게 몸을 낮추어 예를 다하지는 않습니다.
Bhūtapubbāhaṃ, bhante, senaṃ abbhuyyāto samāno ime ca isidattapurāṇā thapatayo vīmaṃsamāno aññatarasmiṃ sambādhe āvasathe vāsaṃ upagacchiṃ.
세존이시여, 예전에 저는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을 때, 이 이시닷따와 뿌라나 목수들을 시험해 보려고 어떤 비좁은 숙소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Atha kho, bhante, ime isidattapurāṇā thapatayo bahudeva rattiṃ dhammiyā kathāya vītināmetvā, yato ahosi bhagavā tato sīsaṃ katvā maṃ pādato karitvā nipajjiṃsu.
그때 세존이시여, 이 이시닷따와 뿌라나 목수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법다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세존께서 계신 쪽으로 머리를 두고 저를 발 쪽에 두고 누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놀랍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이시닷타와 푸라나 두 건축가는 내 밥을 먹고 내 수레를 타며, 내가 생계를 대 주고 명예를 높여 준 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세존께 하듯이 나에게 공손히 몸을 낮추지 않는다. 분명 이 존자들은 저 세존의 가르침에서 갈수록 더 높아지는 빼어난 경지를 알고 있다.’ 이것 또한 세존에 대해 제가 법을 바탕으로 헤아려 얻은 앎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법은 세존께서 잘 설하셨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참으로 놀랍구나, 여보게. 참으로 신기하구나, 여보게!
Ime isidattapurāṇā thapatayo mamabhattā mamayānā, ahaṃ nesaṃ jīvikāya dātā, yasassa āhattā;
이시닷따와 뿌라나라는 이 목수들은 내 밥을 먹고 내 수레를 타며, 내가 그들에게 생계를 주는 자이고 명성을 가져다주는 자다.
atha ca pana no tathā mayi nipaccakāraṃ karonti yathā bhagavati.
그런데도 그들은 세존께 하듯 나에게 몸을 낮추어 예를 다하지는 않는다.
Addhā ime āyasmanto tassa bhagavato sāsane uḷāraṃ pubbenāparaṃ visesaṃ jānantī’ti.
분명 이 존자들은 그분 세존의 가르침에서 앞과 뒤가 다른 크나큰 특별함을 알고 있으리라.’
Ayamp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hoti –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도 세존에 대한 법의 추론입니다 —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세존께서는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잘 설해졌으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한다.’
374
또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시고 저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세존께서도 코살라 사람이시고 저도 코살라 사람입니다. 나이 또한 세존께서도 여든 살이시고 저도 여든 살입니다. 이렇듯 세존과 저는 같은 크샤트리아이고, 같은 코살라 사람이며, 같은 여든 살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로 이런 까닭으로도 제가 세존께 지극히 몸을 낮추고 다정한 벗의 예를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Puna caparaṃ, bhante, bhagavāpi khattiyo, ahampi khattiyo;
다시 또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저도 끄샤뜨리야입니다.
bhagavāpi kosalo, ahampi kosalo;
세존께서도 꼬살라 사람이시고 저도 꼬살라 사람입니다.
bhagavāpi āsītiko, ahampi āsītiko.
세존께서도 여든이시고 저도 여든입니다.
Yampi, bhante, bhagavāpi khattiyo ahampi khattiyo, bhagavāpi kosalo ahampi kosalo, bhagavāpi āsītiko ahampi āsītik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저도 끄샤뜨리야이며, 세존께서도 꼬살라 사람이시고 저도 꼬살라 사람이며, 세존께서도 여든이시고 저도 여든이니 —
imināvārahāmevāhaṃ, bhante, bhagavati paramanipaccakāraṃ kātuṃ, mittūpahāraṃ upadaṃsetuṃ.
세존이시여, 바로 이것만으로도 저는 세존께 지극히 몸을 낮추어 예를 다하고 벗의 정을 드러내기에 마땅합니다.
Handa, ca dāni mayaṃ, bhante, gacchāma;
자,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bahukiccā mayaṃ bahukaraṇīyā’’ti.
저희는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대왕이여, 때가 되었다고 여기면 그렇게 하라.” 그러자 파세나디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떠나갔다. 왕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 파세나디 왕은 법의 탑묘라 할 담마체티야들을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비구들이여, 담마체티야들을 배우고 익히고 마음에 새겨라. 비구들이여, 담마체티야들은 뜻이 담겨 있고 청정한 수행의 시작이 된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가이 받아들였다. 담마체티야경이 끝났다. 아홉째.
‘‘Yassadāni tvaṃ, mahārāja, kālaṃ maññasī’’ti.
“대왕이여, 이제 그대가 때에 맞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그때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assa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비구들을 부르셨다 —
‘‘eso, bhikkhave, rājā pasenadi kosalo dhammacetiyāni bhā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nto.
“비구들이여, 저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는 법의 탑묘를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Uggaṇhatha, bhikkhave, dhammacetiyāni;
비구들이여, 법의 탑묘를 익혀라.
pariyāpuṇātha, bhikkhave, dhammacetiyāni;
비구들이여, 법의 탑묘를 잘 배워라.
dhāretha, bhikkhave, dhammacetiyāni.
비구들이여, 법의 탑묘를 지녀라.
Atthasaṃhitāni, bhikkhave, dhammacetiyāni ādibrahmacariyakānī’’ti.
비구들이여, 법의 탑묘는 이로움을 갖추었고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된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Dhammacetiya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담마쩨띠야 경이 끝났다. 아홉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