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Kaṇṇakatthalasuttaṃ
10. 깐나깟탈라 경
375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우룬냐의 칸나까탈라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볼일이 있어 우룬냐에 와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uruññāyaṃ viharati kaṇṇakatthale migadāye.
한때 세존께서 우룬냐의 깐나깟탈라 녹야원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pasenadi kosalo uruññaṃ anuppatto ho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무슨 볼일이 있어 우룬냐에 이르러 있었다.
왕이 어떤 사람을 불러 말했다. “여보게, 세존께 가게.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리게. 그리고 안부를 여쭈어 보게.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쭙게.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쭙게. 이렇게 말하면 되네. ‘세존이시여,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쭙니다.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또 이렇게 전하게. ‘세존이시여, 왕께서 오늘 식사를 마친 뒤에 세존을 뵈러 오겠다고 하십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aññataraṃ purisaṃ āmantesi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어떤 사람을 불렀다 —
‘‘ehi tvaṃ, ambho puris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이보게, 그대는 세존께 가라;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가서는 내 말로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라 —
‘rājā, bhante, pasenadi kosal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세존이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라고.
Evañca vadehi –
그리고 이렇게 말하여라 —
‘ajja kira, bhante, rājā pasenadi kosalo pacchābhattaṃ bhuttapātarāso bhagavantaṃ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세존이시여, 오늘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서 세존을 뵈러 올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알겠습니다, 폐하.” 그 사람은 왕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갔다.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쭙니다.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또 이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왕이 오늘 식사를 마친 뒤에 세존을 뵈러 오겠다고 합니다.’”[불확실]
‘‘Evaṃ, devā’’ti kho so puris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예, 신이시여” 하고 그 사람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나아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o puris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그 사람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rājā, bhante, pasenadi kosal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세존이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evañca vadeti –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ajja kira bhante, rājā pasenadi kosalo pacchābhattaṃ bhuttapātarāso bhagavantaṃ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세존이시여, 오늘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서 세존을 뵈러 올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소식을 들었다. “오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식사를 마치고 세존을 뵈러 간다고 한다.” 두 자매는 왕이 식사하는 자리로 찾아가 말씀드렸다. “대왕님, 그렇다면 저희 이름으로도 세존께 안부를 여쭈어 주십시오.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려 주십시오.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쭈어 주십시오.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쭈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리며 안부를 여쭙니다.’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Assosuṃ kho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들었다 —
‘‘ajja kira rājā pasenadi kosalo pacchābhattaṃ bhuttapātarāso bhagavantaṃ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오늘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서 세존을 뵈러 갈 것이라고 한다”라고.
Atha kho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rājānaṃ pasenadiṃ kosalaṃ bhattābhihāre upasaṅkamitvā etadavocuṃ –
그때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공양을 올리는 때에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
‘‘tena hi, mahārāja, amhākampi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대왕이시여, 그러시다면 저희 말로도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 주십시오 —
‘somā ca, bhante,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세존이시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라고.”
376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식사를 마치고 세존께 갔다.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쭙니다.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쭙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pacchābhattaṃ bhuttapātarās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서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omā ca, bhante,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세존이시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대왕이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는 다른 심부름꾼을 구하지 못했는가?”
‘‘Kiṃ pana, mahārāja,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aññaṃ dūtaṃ nālatthu’’nti?
“대왕이여, 그런데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는 다른 심부름꾼을 얻지 못했는가?”
“세존이시여, 두 자매가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식사를 마치고 세존을 뵈러 간다고 한다.’ 그러자 두 자매가 제가 식사하는 자리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대왕님, 그렇다면 저희 이름으로도 세존께 안부를 여쭈어 주십시오.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려 주십시오. 병은 없으신지,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여쭈어 주십시오. 몸은 가벼우신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쭈어 주십시오.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리며 안부를 여쭙는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Assosuṃ kho, bhante,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
“세존이시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들었습니다 —
‘ajja kira rājā pasenadi kosalo pacchābhattaṃ bhuttapātarāso bhagavantaṃ dassanāya upasaṅkamissatī’ti.
‘오늘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서 세존을 뵈러 갈 것이라고 한다’라고.
Atha kho, bhante,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maṃ bhattābhihāre upasaṅkamitvā etadavocuṃ –
세존이시여, 그때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공양을 올리는 때에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
‘tena hi, mahārāja, amhākampi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대왕이시여, 그러시다면 저희 말로도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 주십시오 —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리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힘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라고.”
“대왕이여,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Sukhiniyo hontu tā, mahārāja, somā ca bhaginī sakulā ca bhaginī’’ti.
“대왕이여, 그 소마 자매와 사꿀라 자매가 행복하기를.”
377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문 고타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며, 남김없이 알고 본다고 자처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까? 사실이 아닌 말로 세존을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법에 맞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같은 법의 입장에서 주고받는 논의가 비난받을 일은 없겠습니까?”[불확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utaṃ metaṃ, bhante, samaṇo gotamo evamāha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 —
‘natthi s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o sabbaññū sabbadassāvī aparisesaṃ ñāṇadassanaṃ paṭijānissa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아 남김없는 앎과 봄을 자처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라고.
Ye te, bhante, evamāhaṃsu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
‘samaṇo gotamo evamāha –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 —
natthi s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o sabbaññū sabbadassāvī aparisesaṃ ñāṇadassanaṃ paṭijānissa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아 남김없는 앎과 봄을 자처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
kacci te, bhante, bhagavato vuttavādino, na ca bhagavantaṃ abhūtena abbhācikkhanti, dhammassa cānudhammaṃ byākaronti, na ca koci sahadhammiko vādānuvādo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atī’’ti?
세존이시여, 그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자들이며, 사실 아닌 것으로 세존을 헐뜯지 않으며, 법에 맞게 법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치에 맞는 어떤 반론도 비난받을 만한 자리에 이르지 않겠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대왕이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며, 남김없이 알고 본다고 자처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내가 한 말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Ye te, mahārāja, evamāhaṃsu –
“대왕이여,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
‘samaṇo gotamo evamāha –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 —
natthi s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o sabbaññū sabbadassāvī aparisesaṃ ñāṇadassanaṃ paṭijānissa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아 남김없는 앎과 봄을 자처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
na me te vuttavādino, abbhācikkhanti ca pana maṃ te asatā abhūtenā’’ti.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없는 것으로, 사실 아닌 것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378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위따뚜바 장군을 불러 말했다. “장군, 이 이야기를 왕궁에서 처음 꺼낸 자가 누구인가?” “대왕이시여, 바라문 산자야 아까사고따입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viṭaṭūbhaṃ senāpatiṃ āmantesi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위따뚜바 장군을 불렀다 —
‘‘ko nu kho, senāpati, imaṃ kathāvatthuṃ rājantepure abbhudāhāsī’’ti?
“장군이여, 누가 이 이야깃거리를 왕궁 안에서 꺼냈는가?”
‘‘Sañjayo, mahārāja, brāhmaṇo ākāsagotto’’ti.
“대왕이시여,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입니다.”
왕이 어떤 사람을 불러 말했다. “여보게, 내 이름으로 바라문 산자야 아까사고따를 불러오게. ‘선생,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당신을 부릅니다.’ 이렇게 말하게.” “알겠습니다, 폐하.” 그 사람은 대답하고 산자야 아까사고따에게 갔다. 가서 말했다. “선생,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당신을 부릅니다.”[불확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aññataraṃ purisaṃ āmantesi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어떤 사람을 불렀다 —
‘‘ehi tvaṃ, ambho purisa, mama vacanena sañjayaṃ brāhmaṇaṃ ākāsagottaṃ āmantehi –
“이보게, 그대는 내 말로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을 불러오라 —
‘rājā taṃ, bhante, pasenadi kosalo āmantetī’’’ti.
‘존자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그대를 부릅니다’라고.”
‘‘Evaṃ, devā’’ti kho so puris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aṭissutvā yena sañjayo brāhmaṇo ākāsagotto tenupasaṅkami;
“예, 신이시여” 하고 그 사람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대답하고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에게 나아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sañjayaṃ brāhmaṇaṃ ākāsagottaṃ etadavoca –
나아가서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rājā taṃ, bhante, pasenadi kosalo āmantetī’’ti.
“존자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그대를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왕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다른 뜻으로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다르게 알아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존께서는 그 말씀을 어떻게 하신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iyā nu kho, bhante, bhagavatā aññadeva kiñci sandhāya bhāsitaṃ, tañca jano aññathāpi paccāgaccheyy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다른 어떤 것을 두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달리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Yathā kathaṃ pana, bhante, bhagavā abhijānāti vācaṃ bhāsitā’’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하십니까?”
“대왕이여,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알고 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Evaṃ kho ahaṃ, mahārāja, abhijānāmi vācaṃ bhāsitā –
“대왕이여, 나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
‘natthi s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o sakideva sabbaṃ ñassati, sabbaṃ dakkhi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볼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세존께서는 이유가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거까지 갖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이유와 근거가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입니다. 이 네 신분 사이에 어떤 차이나 다름이 있겠습니까?”
‘‘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치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sa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근거를 갖추어 말씀하셨습니다 —
‘natthi s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o sakideva sabbaṃ ñassati, sabbaṃ dakkhi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볼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라고.
‘‘Cattārome, bhante, vaṇṇā –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이 있습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입니다.
Imesaṃ nu kho, bhante, catunnaṃ vaṇṇānaṃ siyā viseso siyā nānākaraṇa’’nti?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에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이다. 이 가운데 두 신분이 으뜸이라 불린다. 곧 크샤트리아와 바라문이다. 인사를 받고, 일어서서 맞이받고, 합장을 받고, 공손한 예우를 받는 점에서 그렇다.”
‘‘Cattārome, mahārāja, vaṇṇā –
“대왕이여, 이 네 계급이 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이다.
Imesaṃ kho, mahārāja, catunnaṃ vaṇṇānaṃ dve vaṇṇā aggamakkhāyanti –
대왕이여, 이 네 계급 가운데 두 계급이 으뜸이라 일컬어진다 —
khattiyā ca brāhmaṇā ca –
캇띠야와 바라문이니 —
yadidaṃ abhivādanapaccuṭṭhānaañjalikammasāmīcikammānī’’ti.
곧 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합장하고, 예를 갖추어 대하는 일에서다.”
“세존이시여, 저는 현세의 일을 여쭙는 것이 아닙니다. 내세의 일을 여쭙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입니다. 이 네 신분 사이에 어떤 차이나 다름이 있겠습니까?”
‘‘Nāhaṃ, bhante, bhagavantaṃ diṭṭhadhammikaṃ pucchām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지금 여기의 일을 여쭙는 것이 아닙니다;
samparāyikāhaṃ, bhante, bhagavantaṃ pucchām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다음 생의 일을 여쭙는 것입니다.
Cattārome, bhante, vaṇṇā –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이 있습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입니다.
Imesaṃ nu kho, bhante, catunnaṃ vaṇṇānaṃ siyā viseso siyā nānākaraṇa’’nti?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에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겠습니까?”
379
“대왕이여, 정진을 이루는 요소가 다섯 가지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비구는 믿음이 있다.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Pañcimāni, mahārāja, padhāniyaṅgāni.
“대왕이여, 이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가 있다.
Katamāni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Idha, mahārāja, bhikkhu saddho hoti, 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ṃ –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있어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
‘그분은 세존이시고 아라한이시다.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지혜와 실천을 갖추셨고, 바르게 가신 분이다. 세간을 아시고, 위없는 분이시다. 사람을 길들이는 분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깨달은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이렇게 믿는 것이다.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시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라고;
병이 적고 앓는 데가 적다. 소화가 고르고, 너무 차지도 덥지도 않아 정진을 견딜 수 있다. 정직하고 속임이 없다. 스승에게도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에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진을 일으킨다. 해로운 것은 버리고 이로운 것은 갖추려 굳세게 힘쓴다. 이로운 것을 닦는 일에서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지혜가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성스러운 지혜를 갖춘다. 그 지혜는 번뇌를 꿰뚫고, 괴로움을 바르게 끝내는 데 이르게 한다.
appābādho hoti appātaṅko samavepākiniyā gahaṇiyā samannāgato nātisītāya nāccuṇhāya majjhimāya padhānakkhamāya;
병이 적고 탈이 적으며, 너무 차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고 알맞아 노력을 견딜 만한, 고르게 삭이는 소화력을 갖추었다;
asaṭho hoti amāyāvī yathābhūtaṃ attānaṃ āvikattā satthari vā viññūsu vā sabrahmacārīsu;
속임이 없고 거짓이 없어, 스승이나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āraddhavīriyo viharati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āya, thāmavā daḷhaparakkamo anikkhittadhuro kusalesu dhammesu;
정진을 다하여 머문다 —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갖추기 위해; 힘이 있고 굳세게 밀고 나가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paññavā hoti udayatthagāminiyā paññāya samannāgato ariyāya nibbedhikāya sammādukkhakkhayagāminiyā –
통찰지가 있어,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나아가는, 성스럽고 꿰뚫으며 괴로움의 바른 소멸로 이끄는 통찰지를 갖추었다 —
대왕이여, 이것이 정진을 이루는 다섯 요소이다.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이다. 그들이 모두 이 다섯 요소를 갖추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imāni kho, mahārāja, pañca padhāniyaṅgāni.
대왕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이다.
Cattārome, mahārāja, vaṇṇā –
대왕이여, 이 네 계급이 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이다.
Te cassu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ā;
그들이 이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를 갖추었다고 하자;
ettha pana nesaṃ assa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그러면 여기서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세존이시여,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입니다. 그들이 모두 이 다섯 요소를 갖추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나 다름이 있겠습니까?”
‘‘Cattārome, bhante, vaṇṇā –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이 있습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입니다.
Te cassu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ā;
그들이 이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를 갖추었다고 하겠습니다;
ettha pana nesaṃ, bhante, siyā viseso siyā nānākaraṇa’’n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여기서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겠습니까?”
“그 경우에 나는 그들 사이에 정진의 정도 차이는 있다고 말한다. 대왕이여, 예를 들어 보자. 길들일 코끼리, 말, 소가 각각 둘씩 있다. 둘은 잘 길들여지고 훈련되었다. 다른 둘은 길들여지지 않았고 훈련되지 않았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길들여진 코끼리, 말, 소 둘은 길든 채로 길들임의 일을 해내겠는가? 길든 채로 길든 경지에 이르겠는가?”
‘‘Ettha kho nesāhaṃ, mahārāja, padhānavemattataṃ vadāmi.
“대왕이여, 여기서 나는 그들 사이에 노력의 차이를 말한다.
Seyyathāpissu, mahārāja, dve hatthidammā vā assadammā vā godammā vā sudantā suvinītā, dve hatthidammā vā assadammā vā godammā vā adantā avinītā.
대왕이여, 예를 들면 길들일 코끼리나 길들일 말이나 길들일 소 둘은 잘 길들여지고 잘 훈련되었고, 길들일 코끼리나 길들일 말이나 길들일 소 둘은 길들여지지 않고 훈련되지 않았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ye te dve hatthidammā vā assadammā vā godammā vā sudantā suvinītā, api nu te dantāva dantakāraṇaṃ gaccheyyuṃ, dantāva dantabhūmiṃ sampāpuṇeyyu’’nti?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길들여지고 잘 훈련된 그 길들일 코끼리나 길들일 말이나 길들일 소 둘은, 길들여진 것으로서 길들여진 자의 일에 이르고, 길들여진 것으로서 길들여진 경지에 다다르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길들여지지 않은 코끼리, 말, 소 둘은 어떠한가? 잘 길들여진 둘처럼, 길들지 않은 채로 길들임의 일을 해내겠는가? 길들지 않은 채로 길든 경지에 이르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Ye pana te dve hatthidammā vā assadammā vā godammā vā adantā avinītā, api nu te adantāva dantakāraṇaṃ gaccheyyuṃ, adantāva dantabhūmiṃ sampāpuṇeyyuṃ, seyyathāpi te dve hatthidammā vā assadammā vā godammā vā sudantā suvinītā’’ti?
“그러면 길들여지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그 길들일 코끼리나 길들일 말이나 길들일 소 둘은,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길들여진 자의 일에 이르고,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길들여진 경지에 다다르겠는가 — 잘 길들여지고 잘 훈련된 그 길들일 코끼리나 길들일 말이나 길들일 소 둘처럼?”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여, 이와 같다. 믿음 있고, 병이 적고, 정직하고, 속임 없고, 정진을 일으키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룰 수 있다. 그것을 믿음 없고, 병이 많고, 간사하고, 속이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이 이루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yaṃ taṃ saddhena pattabbaṃ appābādhena asaṭhena amāyāvinā āraddhavīriyena paññavatā taṃ vata assaddho bahvābādho saṭho māyāvī kusīto duppañño pāpuṇissatīti –
“대왕이여, 이와 같이 믿음 있는 이가, 병 적은 이가, 속임 없는 이가, 거짓 없는 이가, 정진을 다하는 이가, 통찰지 있는 이가 이를 그것을, 믿음 없고 병 많고 속이고 거짓되고 게으르고 통찰지가 없는 이가 이르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
380
“세존께서는 이유가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거까지 갖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신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크샤트리아, 바라문, 바이샤, 수드라입니다. 그들이 모두 이 다섯 요소를 갖추었고, 모두 바르게 정진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나 다름이 있겠습니까?”
‘‘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치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sa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근거를 갖추어 말씀하셨습니다.
Cattārome, bhante, vaṇṇā –
세존이시여, 이 네 계급이 있습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캇띠야, 바라문, 웻사, 숫다입니다.
Te cassu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ā te cassu sammappadhānā;
그들이 이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를 갖추고, 또 그들이 바르게 노력한다고 하겠습니다;
ettha pana nesaṃ, bhante, siyā viseso siyā nānākaraṇa’’n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여기서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겠습니까?”
“그 경우에 나는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도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곧 해탈과 해탈 사이에서는 그렇다.
‘‘Ettha kho nesāhaṃ, mahārāja, na kiñci nānākaraṇaṃ vadāmi –
“대왕이여, 여기서 나는 그들 사이에 아무런 다름도 말하지 않는다 —
yadidaṃ vimuttiyā vimuttiṃ.
곧 해탈과 해탈 사이에서.
대왕이여,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마른 사까 나무토막으로 불을 일으켜 불꽃을 피운다. 또 한 사람은 마른 살라 나무토막으로 불을 일으켜 불꽃을 피운다. 또 한 사람은 마른 망고 나무토막으로, 또 한 사람은 마른 무화과 나무토막으로 불을 일으켜 불꽃을 피운다.[불확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sukkhaṃ sākakaṭṭha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a;
대왕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마른 사까 나무 장작을 가지고 불을 일으켜 불꽃을 드러낸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āparo puriso sukkhaṃ sālakaṭṭha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a;
또 다른 사람이 마른 살라 나무 장작을 가지고 불을 일으켜 불꽃을 드러낸다고 하자;
athāparo puriso sukkhaṃ ambakaṭṭha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a;
또 다른 사람이 마른 망고나무 장작을 가지고 불을 일으켜 불꽃을 드러낸다고 하자;
athāparo puriso sukkhaṃ udumbarakaṭṭha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a.
또 다른 사람이 마른 우둠바라 나무 장작을 가지고 불을 일으켜 불꽃을 드러낸다고 하자.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로 다른 나무로 일으킨 이 불들에 차이가 있겠는가? 불길과 불길, 빛깔과 빛깔, 밝기와 밝기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siyā nu kho tesaṃ aggīnaṃ nānādāruto abhinibbattānaṃ kiñci nānākaraṇaṃ acciyā vā acciṃ, vaṇṇena vā vaṇṇaṃ, ābhāya vā ābha’’nti?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로 다른 나무에서 일어난 그 불들 사이에, 불꽃과 불꽃, 빛깔과 빛깔, 광명과 광명의 어떤 다름이 있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여, 이와 같다. 애써 문질러 일으키고 정진으로 피워 낸 불에 대해, 나는 어떤 차이도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곧 해탈과 해탈 사이에서는 그렇다.”
‘‘Evameva kho, mahārāja, yaṃ taṃ tejaṃ vīriyā nimmathitaṃ padhānābhinibbattaṃ, nāhaṃ tattha kiñci nānākaraṇaṃ vadāmi –
“대왕이여, 이와 같이 정진으로 비벼 일으키고 노력으로 생겨난 그 불꽃에 대해, 나는 거기에 아무런 다름도 말하지 않는다 —
yadidaṃ vimuttiyā vimutti’’nti.
곧 해탈과 해탈 사이에서.”
“세존께서는 이유가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거까지 갖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신들이 있습니까?”
‘‘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치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saheturūpaṃ, bhante, bhagavā āh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근거를 갖추어 말씀하셨습니다.
Kiṃ pana, bhante, atthi devā’’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신들은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어째서 이렇게 묻는가? ‘세존이시여, 신들이 있습니까?’ 하고 말이다.”
‘‘Kiṃ pana tvaṃ, mahārāja, evaṃ vadesi –
“대왕이여,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
‘kiṃ pana, bhante, atthi devā’’’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신들은 있습니까?’라고?”
“세존이시여, 그 신들은 이 세상에 다시 옵니까, 오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번민이 있는 신들은 이 세상에 다시 온다. 번민이 없는 신들은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는다.”
‘‘Yadi vā te, bhante, devā āgantāro itthattaṃ yadi vā anāgantāro itthattaṃ’’?
“세존이시여, 그 신들이 이 상태로 돌아오는 자들인지, 아니면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인지요?”
‘‘Ye te, mahārāja, devā sabyābajjhā te devā āgantāro itthattaṃ, ye te devā abyābajjhā te devā anāgantāro itthatta’’nti.
“대왕이여, 괴롭힘이 있는 그 신들은 이 상태로 돌아오는 자들이고, 괴롭힘이 없는 그 신들은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이다.”
381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위따뚜바 장군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번민이 있어 이 세상에 다시 오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 신들이, 번민이 없어 다시 오지 않는 신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거나 내몰 수 있겠습니까?”
Evaṃ vutte, viṭṭūbho senāpati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위따뚜바 장군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ye te, bhante, devā sabyābajjhā āgantāro itthattaṃ te devā, ye te devā abyābajjhā anāgantāro itthattaṃ te deve tamhā ṭhānā cāvessanti vā pabbājessanti vā’’ti?
“세존이시여, 괴롭힘이 있어 이 상태로 돌아오는 그 신들이, 괴롭힘이 없어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그 신들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겠습니까?”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따뚜바 장군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아들이다.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이제 아들이 아들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yaṃ kho viṭaṭūbho senāpati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putto;
“이 위따뚜바 장군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의 아들이다;
ahaṃ bhagavato putto.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Ayaṃ kho kālo yaṃ putto puttena manteyyā’’ti.
지금이 아들이 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아난다 존자가 위따뚜바 장군을 불러 말했다. “장군, 내가 그 점을 그대에게 되묻겠다. 마음에 드는 대로 대답하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영토 안에서는 왕이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 그곳에 복이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복이 없는 이도,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고 하자. 왕은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내거나 내보낼 수 있는가?”
Atha kho āyasmā ānando viṭaṭūbhaṃ senāpatiṃ āmantesi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위따뚜바 장군을 불렀다 —
‘‘tena hi, senāpati, taṃ yevettha paṭipucchissāmi;
“장군이여,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그대에게 되물어보겠다;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그대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대로 그것에 답하라.
Taṃ kiṃ maññasi, senāpati, yāvatā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vijitaṃ yattha ca rājā pasenadi kosalo issariyādhipaccaṃ rajjaṃ kāreti, pahoti tattha rājā pasenadi kosal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puññavantaṃ vā apuññavantaṃ vā brahmacariyavantaṃ vā abrahmacariyavantaṃ vā tamhā ṭhānā cāvetuṃ vā pabbājetuṃ vā’’ti?
장군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정복한 만큼의 땅, 그리고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주권과 지배로 다스리는 그곳에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공덕이 있는 자든 공덕이 없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든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을 수 있는가?”
“존자여, 왕의 영토 안에서 왕은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복이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복이 없는 이든,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왕은 그를 그곳에서 쫓아내거나 내보낼 수 있습니다.”
‘‘Yāvatā, bh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vijitaṃ yattha ca rājā pasenadi kosalo issariyādhipaccaṃ rajjaṃ kāreti, pahoti tattha rājā pasenadi kosal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puññavantaṃ vā apuññavantaṃ vā brahmacariyavantaṃ vā abrahmacariyavantaṃ vā tamhā ṭhānā cāvetuṃ vā pabbājetuṃ vā’’ti.
“어르신이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정복한 만큼의 땅, 그리고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주권과 지배로 다스리는 그곳에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공덕이 있는 자든 공덕이 없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든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을 수 있습니다.”
“장군,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의 영토 밖은 왕이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다스리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왕은 복이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복이 없는 이든,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그를 쫓아내거나 내보낼 수 있는가?” “존자여, 그럴 수 없습니다. 왕의 영토 밖은 왕이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다스리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왕은 어떤 사람도 쫓아내거나 내보낼 수 없습니다.”
‘‘Taṃ kiṃ maññasi, senāpati, yāvatā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avijitaṃ yattha ca rājā pasenadi kosalo na issariyādhipaccaṃ rajjaṃ kāreti, tattha pahoti rājā pasenadi kosal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puññavantaṃ vā apuññavantaṃ vā brahmacariyavantaṃ vā abrahmacariyavantaṃ vā tamhā ṭhānā cāvetuṃ vā pabbājetuṃ vā’’ti?
“장군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정복하지 못한 만큼의 땅, 그리고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주권과 지배로 다스리지 않는 그곳에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공덕이 있는 자든 공덕이 없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든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을 수 있는가?”
‘‘Yāvatā, bho,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avijitaṃ yattha ca rājā pasenadi kosalo na issariyādhipaccaṃ rajjaṃ kāreti, na tattha pahoti rājā pasenadi kosal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puññavantaṃ vā apuññavantaṃ vā brahmacariyavantaṃ vā abrahmacariyavantaṃ vā tamhā ṭhānā cāvetuṃ vā pabbājetuṃ vā’’ti.
“어르신이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정복하지 못한 만큼의 땅, 그리고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주권과 지배로 다스리지 않는 그곳에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공덕이 있는 자든 공덕이 없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든 청정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든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을 수 없습니다.”
“장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여. 저는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여기 계신 왕께서도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어 알고 계십니다.”
‘‘Taṃ kiṃ maññasi, senāpati, sutā te devā tāvatiṃsā’’ti?
“장군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Evaṃ, bho.
“그렇습니다, 어르신이시여.
Sutā me devā tāvatiṃsā.
저는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었습니다.
Idhāpi bhotā raññā pasenadinā kosalena sutā devā tāvatiṃsā’’ti.
여기 계신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께서도 삼십삼천의 신들에 대해 들으셨습니다.”
“장군, 어떻게 생각하는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삼십삼천의 신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거나 내보낼 수 있는가?” “존자여, 왕은 삼십삼천의 신들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찌 그곳에서 쫓아내거나 내보내겠습니까?”
‘‘Taṃ kiṃ maññasi, senāpati, pahoti rājā pasenadi kosalo deve tāvatiṃse tamhā ṭhānā cāvetuṃ vā pabbājetuṃ vā’’ti?
“장군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삼십삼천의 신들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을 수 있는가?”
‘‘Dassanampi, bho, rājā pasenadi kosalo deve tāvatiṃse nappahoti, kuto pana tamhā ṭhānā cāvessati vā pabbājessati vā’’ti?
“어르신이시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삼십삼천의 신들을 보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겠습니까?”
“장군, 이와 같다. 번민이 있어 이 세상에 다시 오는 신들은, 번민이 없어 다시 오지 않는 신들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 어찌 그곳에서 쫓아내거나 내보내겠는가?”
‘‘Evameva kho, senāpati, ye te devā sabyābajjhā āgantāro itthattaṃ te devā, ye te devā abyābajjhā anāgantāro itthattaṃ te deve dassanāyapi nappahonti;
“장군이여, 이와 같이 괴롭힘이 있어 이 상태로 돌아오는 그 신들은, 괴롭힘이 없어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그 신들을 보지도 못한다;
kuto pana tamhā ṭhānā cāvessanti vā pabbājessanti vā’’ti?
하물며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거나 내쫓겠는가?”
382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난다라고 한다, 대왕이여.”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konāmo ayaṃ, bhante, bhikkhū’’ti?
“세존이시여,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Ānando nāma, mahārājā’’ti.
“대왕이여, 아난다라고 한다.”
“아난다라니요! 과연 그 이름처럼 기쁨을 주는 분이시군요!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유가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거까지 갖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브라흐마가 있습니까?”[불확실]
‘‘Ānando vata, bho, ānandarūpo vata, bho!
“참으로 아난다이시군요, 어르신이시여. 참으로 기쁨의 모습이시군요, 어르신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Heturūpaṃ, bhante, āyasmā ānando āha;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치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saheturūpaṃ, bhante, āyasmā ānando āha.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근거를 갖추어 말씀하셨습니다.
Kiṃ pana, bhante, atthi brahmā’’ti?
그런데 세존이시여, 범천은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어째서 이렇게 묻는가? ‘세존이시여, 브라흐마가 있습니까?’ 하고 말이다.”
‘‘Kiṃ pana tvaṃ, mahārāja, evaṃ vadesi –
“대왕이여,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
‘kiṃ pana, bhante, atthi brahmā’’’ti?
‘그런데 세존이시여, 범천은 있습니까?’라고?”
“세존이시여, 그 브라흐마는 이 세상에 다시 옵니까, 오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번민이 있는 브라흐마는 이 세상에 다시 온다. 번민이 없는 브라흐마는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는다.”
‘‘Yadi vā so, bhante, brahmā āgantā itthattaṃ, yadi vā anāgantā itthatta’’nti?
“세존이시여, 그 범천이 이 상태로 돌아오는 자인지, 아니면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자인지요?”
‘‘Yo so, mahārāja, brahmā sabyābajjho so brahmā āgantā itthattaṃ, yo so brahmā abyābajjho so brahmā anāgantā itthatta’’nti.
“대왕이여, 괴롭힘이 있는 그 범천은 이 상태로 돌아오는 자이고, 괴롭힘이 없는 그 범천은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자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바라문 산자야 아까사고따가 왔습니다.”
Atha kho aññataro puriso rājānaṃ pasenadiṃ kosalaṃ etadavoca –
그때 어떤 사람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ñjayo, mahārāja, brāhmaṇo ākāsagotto āgato’’ti.
“대왕이시여,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이 왔습니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산자야 아까사고따에게 말했다. “바라문이여, 이 이야기를 왕궁에서 처음 꺼낸 자가 누구인가?” “대왕이시여, 위따뚜바 장군입니다.” 위따뚜바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바라문 산자야 아까사고따입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sañjayaṃ brāhmaṇaṃ ākāsagottaṃ etadavoca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ko nu kho, brāhmaṇa, imaṃ kathāvatthuṃ rājantepure abbhudāhāsī’’ti?
“바라문이여, 누가 이 이야깃거리를 왕궁 안에서 꺼냈는가?”
‘‘Viṭaṭūbho, mahārāja, senāpatī’’ti.
“대왕이시여, 위따뚜바 장군입니다.”
Viṭaṭūbho senāpati evamāha –
위따뚜바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
‘‘sañjayo, mahārāja, brāhmaṇo ākāsagotto’’ti.
“대왕이시여, 아까사곳따 상자야 바라문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수레를 타실 때입니다.”
Atha kho aññataro puriso rājānaṃ pasenadiṃ kosalaṃ etadavoca –
그때 어떤 사람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
‘‘yānakālo, mahārājā’’ti.
“대왕이시여, 떠나실 때입니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모든 것을 아는 지혜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지혜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은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하여, 저희는 기쁩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abbaññutaṃ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apucchimhā, sabbaññutaṃ bhagavā byākāsi;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모든 것을 아는 것에 대해 여쭈었고, 세존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에 대해 답해 주셨습니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
그리고 그것이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쁩니다.
저희는 세존께 네 신분의 청정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은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하여, 저희는 기쁩니다.
Cātuvaṇṇisuddhiṃ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apucchimhā, cātuvaṇṇisuddhiṃ bhagavā byākāsi;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네 계급의 청정에 대해 여쭈었고, 세존께서는 네 계급의 청정에 대해 답해 주셨습니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
그리고 그것이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쁩니다.
저희는 세존께 신들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은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하여, 저희는 기쁩니다.
Adhideve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apucchimhā, adhideve bhagavā byākāsi;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신들에 관하여 여쭈었고, 세존께서는 신들에 관하여 답해 주셨습니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
그리고 그것이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쁩니다.
저희는 세존께 브라흐마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브라흐마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은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하여, 저희는 기쁩니다. 저희가 여쭌 것마다 세존께서는 그대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도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하여, 저희는 기쁩니다.
Adhibrahmānaṃ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apucchimhā, adhibrahmānaṃ bhagavā byākāsi;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범천에 관하여 여쭈었고, 세존께서는 범천에 관하여 답해 주셨습니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
그리고 그것이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쁩니다.
Yaṃ yadeva ca mayaṃ bhagavantaṃ apucchimhā taṃ tadeva bhagavā byākāsi;
그리고 저희가 세존께 여쭌 것은 무엇이든 세존께서 바로 그것에 답해 주셨습니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
그리고 그것이 저희 마음에 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쁩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처리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여, 지금이 때라고 여겨지는 대로 하라.”
Handa, ca dāni mayaṃ, bhante, gacchāma;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bahukiccā mayaṃ bahukaraṇīyā’’ti.
저희는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Yassadāni tvaṃ, mahārāja, kālaṃ maññasī’’ti.
“대왕이여, 이제 그대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떠났다. 칸나까탈라의 경, 열 번째가 끝났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īti.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Kaṇṇakatthal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깐나깟탈라 경이 끝났다. 열 번째다.
Rājavaggo niṭṭhito catuttho.
왕의 품이 끝났다. 네 번째다.
Tassuddānaṃ –
그 요약 게송 —
Ghaṭikāro raṭṭhapālo, maghadevo madhuriyaṃ;
가띠까라와 랏타빨라, 마가데와와 마두라;
Bodhi aṅgulimālo ca, piyajātaṃ bāhitikaṃ;
보디와 앙굴리말라, 삐야자따와 바히띠까;
Dhammacetiyasuttañca, dasamaṃ kaṇṇakatthalaṃ.
담마쩨띠야 경과, 열 번째 깐나깟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