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Samaṇamuṇḍikasuttaṃ
8. 사마나문디까 경
260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정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유행자 웃가하마나 사마나문디까풋따는 말리까의 정원에 머물고 있었다. 오백 명쯤 되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였다. 그곳은 띤두까찌라의 외채 건물로, '논쟁의 장'이라 불렸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samayappavādake tindukācīre ekasālake mallikāya ārāme paṭivasati mahatiyā paribbājakaparisāya saddhiṃ pañcamattehi paribbājakasatehi.
그때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이 띤두까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강당이 하나뿐인, 말리까 원림의 논쟁장에, 오백 명쯤 되는 유행자들로 이루어진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때 목수 빤짜깡가가 한낮에 세존을 뵈러 사왓티를 나섰다. 길을 가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세존을 뵙기에 알맞은 때가 아니다. 세존께서는 홀로 선정에 들어 계신다. 마음을 닦는 비구들도 홀로 선정에 들어 있으니, 그분들을 뵙기에도 때가 아니다. 차라리 말리까의 정원으로 가서 유행자 웃가하마나를 만나 보자." 그리하여 빤짜깡가는 '논쟁의 장'이라 불리는 그 정원으로 가서 웃가하마나 사마나문디까풋따를 찾아갔다.
Atha kho pañcakaṅgo thapati sāvatthiyā nikkhami divā divassa bhagavantaṃ dassanāya.
그때 판짜깡가 목수가 세존을 뵈러 한낮에 사왓티를 나섰다.
Atha kho pañcakaṅgassa thapatissa etadahosi –
그때 판짜깡가 목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kālo kho tāva bhagavantaṃ dassanāya;
‘지금은 세존을 뵐 때가 아니다;
paṭisallīno bhagavā.
세존께서는 홀로 앉아 계신다.
Manobhāvaniyānampi bhikkhūnaṃ asamayo dassanāya;
존경할 만한 비구들을 뵙기에도 때가 아니다;
paṭisallīnā manobhāvaniyā bhikkhū.
존경할 만한 비구들도 홀로 앉아 계신다.
Yaṃnūnāhaṃ yena samayappavādako tindukācīro ekasālako mallikāya ārāmo yena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tenupasaṅkameyya’’nti.
나는 띤두까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강당이 하나뿐인, 말리까 원림의 논쟁장,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 보면 어떨까.’
Atha kho pañcakaṅgo thapati yena samayappavādako tindukācīro ekasālako mallikāya ārāmo yena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tenupasaṅkami.
그리하여 판짜깡가 목수는 띤두까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강당이 하나뿐인, 말리까 원림의 논쟁장,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이 있는 그곳으로 갔다.
그때 웃가하마나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리는 소란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갖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임금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운 일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꽃다발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 이야기, 마을 이야기, 소읍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골목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들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 이야기, 바다 이야기, 이렇게 되었다 저렇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mahatiyā paribbājakaparisāya saddhiṃ nisinno hoti unnādiniyā uccāsaddamahāsaddāya anekavihitaṃ tiracchānakathaṃ kathentiyā, seyyathidaṃ –
그때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은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무리는 떠들썩하고 소리 높고 시끄럽게 여러 가지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곧 —
rājakathaṃ corakathaṃ mahāmattakathaṃ senākathaṃ bhayakathaṃ yuddhakathaṃ annakathaṃ pānakathaṃ vatthakathaṃ sayanakathaṃ mālākathaṃ gandhakathaṃ ñātikathaṃ yānakathaṃ gāmakathaṃ nigamakathaṃ nagarakathaṃ janapadakathaṃ itthikathaṃ sūrakathaṃ visikhākathaṃ kumbhaṭṭhānakathaṃ pubbapetakathaṃ nānattakathaṃ lokakkhāyikaṃ samuddakkhāyikaṃ itibhavābhavakathaṃ iti vā.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움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마실 것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 이야기, 마을 이야기, 읍내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길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들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세상의 기원 이야기, 바다의 기원 이야기, 있음과 없음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다.
웃가하마나는 빤짜깡가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자기 무리를 조용히 시켰다. "여러분, 조용히 하시오. 떠들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목수 빤짜깡가가 오고 있소. 사왓티에 사는 흰옷 입은 재가 제자들 가운데 이 빤짜깡가도 한 사람이오. 그분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하게 훈련받았으며, 조용함을 칭찬하는 이들이오. 조용한 무리임을 알면 찾아올 마음을 낼지도 모르오." 그러자 유행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Addasā kho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pañcakaṅgaṃ thapatiṃ dūratova āgacchantaṃ.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은 판짜깡가 목수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sakaṃ parisaṃ saṇṭhāpesi –
보고서 자기 무리를 다잡았다 —
‘‘appasaddā bhonto hontu, mā bhonto saddamakattha;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ayaṃ samaṇassa gotamassa sāvako āgacchati pañcakaṅgo thapati.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판짜깡가 목수가 오고 있습니다.
Yāvatā kho pana samaṇassa gotamassa sāvakā gihī odātavasanā sāvatthiyaṃ paṭivasanti ayaṃ tesaṃ aññataro pañcakaṅgo thapati.
사왓티에 사는, 흰옷을 입은 재가자이면서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이들 가운데 이 판짜깡가 목수도 그 하나입니다.
Appasaddakāmā kho pana te āyasmanto appasaddavinītā appasaddassa vaṇṇavādino;
그 존자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하도록 다듬어졌으며, 조용함을 칭찬합니다;
appeva nāma appasaddaṃ parisaṃ viditvā upasaṅkamitabbaṃ maññeyyā’’ti.
우리 무리가 조용한 것을 알면 다가와 볼 만하다고 여기실지도 모릅니다.”
Atha kho te paribbājakā tuṇhī ahesuṃ.
그러자 그 유행자들은 조용해졌다.
261
빤짜깡가는 웃가하마나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는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웃가하마나가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pañcakaṅgo thapati yena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tenupasaṅkami;
그때 판짜깡가 목수는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upasaṅkamitvā uggāhamānena paribbājakena samaṇamuṇḍikāputtena saddhiṃ sammodi.
가서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pañcakaṅgaṃ thapatiṃ uggāhamāno paribbājako samaṇamuṇḍikāputto etadavoca –
한쪽에 앉은 판짜깡가 목수에게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
"장자여, 나는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을 사문이라고 말하오.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오. 어떤 네 가지인가? 장자여, 여기 사람이 몸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나쁜 말도 하지 않소. 나쁜 생각을 품지 않고 나쁜 생계로 살지도 않소. 장자여, 나는 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하오."
‘‘catūhi kho ahaṃ, gahapat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sampannakusalaṃ paramakusalaṃ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ṃ.
“장자여, 나는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라고 천명한다.
Katamehi catūhi?
어떤 네 가지인가?
Idha, gahapati, na kāyena pāpakammaṃ karoti, na pāpakaṃ vācaṃ bhāsati, na pāpakaṃ saṅkappaṃ saṅkappeti, na pāpakaṃ ājīvaṃ ājīvati –
장자여, 여기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의도를 품지 않고, 나쁜 생계로 살지 않는다 —
imehi kho ahaṃ, gahapati, catūh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sampannakusalaṃ paramakusalaṃ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nti.
장자여, 나는 이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라고 천명한다.”
빤짜깡가는 웃가하마나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세존 앞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리라.'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존께 가서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웃가하마나와 나눈 이야기를 하나도 빼지 않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Atha kho pañcakaṅgo thapati uggāhamānassa paribbājakassa samaṇamuṇḍikāputt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 nappaṭikkosi.
그러자 판짜깡가 목수는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았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
기뻐하지도 물리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
‘‘bhagavato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ṃ ājānissāmī’’ti.
“세존 앞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리라.”
Atha kho pañcakaṅgo tha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판짜깡가 목수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pañcakaṅgo thapati yāvatako ahosi uggāhamānena paribbājakena samaṇamuṇḍikāputtena saddhiṃ kathāsallāpo taṃ sabbaṃ bhagavato ārocesi.
한쪽에 앉은 판짜깡가 목수는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262
이 말을 듣고 세존께서 빤짜깡가에게 말씀하셨다. "목수여, 웃가하마나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된다. 어리고 철없고 아직 누워서 뒤척이기만 하는 갓난아기가 사문이 되고 만다.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 말이다. 목수여,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에게는 '몸'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찌 몸으로 나쁜 짓을 하겠는가. 그저 버둥거릴 뿐이다. 목수여,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에게는 '말'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찌 나쁜 말을 하겠는가. 그저 울 뿐이다. 목수여,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조차 없다. 그런데 어찌 나쁜 생각을 품겠는가. 그저 옹알이할 뿐이다. 목수여,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에게는 '생계'라는 것조차 없다. 그런데 어찌 나쁜 생계로 살아가겠는가. 그저 어머니 젖을 먹을 뿐이다. 목수여, 웃가하마나의 말대로라면 어리고 철없고 아직 누워서 뒤척이기만 하는 갓난아기가 사문이 된다.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 말이다.
Evaṃ vutte, bhagavā pañcakaṅgaṃ thapati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 판짜깡가 목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evaṃ sante kho, thapati, daharo kumāro mando uttānaseyyako sampannakusalo bhavissati paramakusalo uttamapattipatto samaṇo ayojjho, yathā uggāhamānassa paribbājakassa samaṇamuṇḍikāputtassa vacanaṃ.
“목수여, 그렇다면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가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 될 것이다 —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의 말대로라면.
Daharassa hi, thapati,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kāyotipi na hoti, kuto pana kāyena pāpakammaṃ karissati, aññatra phanditamattā!
목수여,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에게는 ‘몸’이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겠는가? 그저 꿈틀거릴 뿐이다!
Daharassa hi, thapati,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vācātipi na hoti, kuto pana pāpakaṃ vācaṃ bhāsissati, aññatra roditamattā!
목수여,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에게는 ‘말’이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하겠는가? 그저 울 뿐이다!
Daharassa hi, thapati,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saṅkappotipi na hoti, kuto pana pāpakaṃ saṅkappaṃ saṅkappissati, aññatra vikūjitamattā!
목수여,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에게는 ‘의도’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나쁜 의도를 품겠는가? 그저 옹알거릴 뿐이다!
Daharassa hi, thapati,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ājīvotipi na hoti, kuto pana pāpakaṃ ājīvaṃ ājīvissati, aññatra mātuthaññā!
목수여,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에게는 ‘생계’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나쁜 생계로 살겠는가? 그저 어머니 젖을 빨 뿐이다!
Evaṃ sante kho, thapati, daharo kumāro mando uttānaseyyako sampannakusalo bhavissati paramakusalo uttamapattipatto samaṇo ayojjho, yathā uggāhamānassa paribbājakassa samaṇamuṇḍikāputtassa vacanaṃ.
목수여, 그렇다면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가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 될 것이다 — 웃가하마나 유행자, 사마나문디까의 아들의 말대로라면.
263
목수여, 나는 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이 선을 갖추었다고도, 최고의 선에 이르렀다고도, 가장 높은 경지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도 이것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목수여, 여기 몸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나쁜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쁜 생각을 품지 않고 나쁜 생계로 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목수여, 나는 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을 두고 선을 갖추었다고도, 최고의 선에 이르렀다고도, 가장 높은 경지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리고 철없는 갓난아기도 이것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Catūhi kho ahaṃ, thapat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na ceva sampannakusalaṃ na paramakusalaṃ na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ṃ, api cimaṃ daharaṃ kumāraṃ mandaṃ uttānaseyyakaṃ samadhigayha tiṭṭhati.
“목수여, 나는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춘 것도 아니고, 유익함이 지극한 것도 아니며, 최상의 도달을 이룬 것도 아니고, 맞설 수 없는 사문도 아니라고 천명한다. 다만 이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를 능가하여 서 있기는 하다.
Katamehi catūhi?
어떤 네 가지인가?
Idha, thapati, na kāyena pāpakammaṃ karoti, na pāpakaṃ vācaṃ bhāsati, na pāpakaṃ saṅkappaṃ saṅkappeti, na pāpakaṃ ājīvaṃ ājīvati –
목수여, 여기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의도를 품지 않고, 나쁜 생계로 살지 않는다 —
imehi kho ahaṃ, thapati, catūh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na ceva sampannakusalaṃ na paramakusalaṃ na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ṃ, api cimaṃ daharaṃ kumāraṃ mandaṃ uttānaseyyakaṃ samadhigayha tiṭṭhati.
목수여, 나는 이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춘 것도 아니고, 유익함이 지극한 것도 아니며, 최상의 도달을 이룬 것도 아니고, 맞설 수 없는 사문도 아니라고 천명한다. 다만 이 어리고 미숙하여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아이를 능가하여 서 있기는 하다.
목수여, 나는 열 가지를 갖춘 사람을 사문이라고 말한다.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다.
‘‘Dasahi kho ahaṃ, thapat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sampannakusalaṃ paramakusalaṃ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ṃ.
“목수여, 나는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라고 천명한다.
이것이 해로운 계행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로운 계행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로운 계행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아가면 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로운 계행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운 계행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운 계행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아가면 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해로운 생각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로운 생각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로운 생각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아가면 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로운 생각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운 생각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운 생각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아가면 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수여, 나는 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Ime akusalā sīlā;
‘이것들이 나쁘고 해로운 계행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tosamuṭṭhānā akusalā sīlā;
‘나쁘고 해로운 계행은 여기서 일어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dha akusalā sīl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Evaṃ paṭipanno a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이렇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me kusalā sīlā;
“‘이것들이 유익한 계행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tosamuṭṭhānā kusalā sīlā;
‘유익한 계행은 여기서 일어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dha kusalā sīl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유익한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Evaṃ paṭipanno 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이렇게 닦는 이가 유익한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me akusalā saṅkappā;
“‘이것들이 나쁘고 해로운 의도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tosamuṭṭhānā akusalā saṅkappā;
‘나쁘고 해로운 의도는 여기서 일어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dha akusalā saṅkapp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의도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Evaṃ paṭipanno a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이렇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me kusalā saṅkappā;
“‘이것들이 유익한 의도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tosamuṭṭhānā kusalā saṅkappā;
‘유익한 의도는 여기서 일어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Idha kusalā saṅkapp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유익한 의도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Evaṃ paṭipanno 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이렇게 닦는 이가 유익한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tamahaṃ, thapati, veditabbanti vadāmi.
목수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264
목수여, 해로운 계행이란 무엇인가? 해로운 몸의 행위, 해로운 말의 행위, 그리고 나쁜 생계이다. 목수여, 이것을 해로운 계행이라고 한다. 목수여, 이 해로운 계행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마음인가? 마음에는 많은 종류와 갖가지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거기에서 해로운 계행이 일어난다.
‘‘Katame ca, thapati, akusalā sīlā?
“그러면 목수여, 나쁘고 해로운 계행이란 무엇인가?
Akusalaṃ kāyakammaṃ, akusalaṃ vacīkammaṃ, pāpako ājīvo –
나쁘고 해로운 몸의 행위, 나쁘고 해로운 말의 행위, 나쁜 생계 —
ime vuccanti, thapati, akusalā sīlā.
목수여, 이것들을 나쁘고 해로운 계행이라고 한다.
‘‘Ime ca, thapati, akusalā sīlā kiṃsamuṭṭhānā?
“그러면 목수여, 이 나쁘고 해로운 계행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Samuṭṭhānampi nesaṃ vuttaṃ.
그것들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해 두었다.
‘Cittasamuṭṭhānā’tissa vacanīyaṃ.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Katamaṃ cittaṃ?
어떤 마음인가?
Cittampi hi bahuṃ anekavidhaṃ nānappakārakaṃ.
마음도 많고 여러 가지이며 갖가지다.
Yaṃ cittaṃ sarāgaṃ sadosaṃ samohaṃ, itosamuṭṭhānā akusalā sīlā.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나쁘고 해로운 계행은 거기서 일어난다.
목수여, 이 해로운 계행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사라지는가? 그것이 사라지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목수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좋은 행실을 닦는다. 말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좋은 행실을 닦으며,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좋은 행실을 닦는다. 또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삶을 꾸려 간다. 바로 여기에서 이 해로운 계행이 남김없이 사라진다.
‘‘Ime ca, thapati, akusalā sīlā kuhiṃ aparisesā nirujjhanti?
“그러면 목수여, 이 나쁘고 해로운 계행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Nirodhopi nesaṃ vutto.
그것들의 소멸도 이미 말해 두었다.
Idha, thapati, bhikkhu kāyaduccaritaṃ pahāya kāyasucaritaṃ bhāveti, vacīduccaritaṃ pahāya vacīsucaritaṃ bhāveti, manoduccaritaṃ pahāya manosucaritaṃ bhāveti, micchājīvaṃ pahāya sammājīvena jīvitaṃ kappeti –
목수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몸으로 짓는 좋은 행실을 닦고, 말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말로 짓는 좋은 행실을 닦고,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실을 닦고, 삿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살아간다 —
etthete akusalā sīl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이 나쁘고 해로운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목수여, 어떻게 나아가야 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인가?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버리기 위해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운 것들이 생기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이로운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머물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그것이 늘어나 널리 퍼지고 닦여서 가득 차도록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렇게 나아가면 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Kathaṃ paṭipanno, thapati, a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목수여, 어떻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인가?
Idha, thapati,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잊지 않고, 더욱 키우고, 넓히고, 닦아 완성하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Evaṃ paṭipanno kho, thapati, a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목수여, 이렇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265
목수여, 이로운 계행이란 무엇인가? 이로운 몸의 행위와 이로운 말의 행위이다. 또한 나는 생계가 깨끗한 것도 계행에 든다고 말한다. 목수여, 이것을 이로운 계행이라고 한다. 목수여, 이 이로운 계행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마음인가? 마음에는 많은 종류와 갖가지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 거기에서 이로운 계행이 일어난다.
‘‘Katame ca, thapati, kusalā sīlā?
“그러면 목수여, 유익한 계행이란 무엇인가?
Kusalaṃ kāyakammaṃ, kusalaṃ vacīkammaṃ, ājīvaparisuddhampi kho ahaṃ, thapati, sīlasmiṃ vadāmi.
유익한 몸의 행위, 유익한 말의 행위, 그리고 청정한 생계까지도, 목수여, 나는 계행에 든다고 말한다.
Ime vuccanti, thapati, kusalā sīlā.
목수여, 이것들을 유익한 계행이라고 한다.
‘‘Ime ca, thapati, kusalā sīlā kiṃsamuṭṭhānā?
“그러면 목수여, 이 유익한 계행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Samuṭṭhānampi nesaṃ vuttaṃ.
그것들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해 두었다.
‘Cittasamuṭṭhānā’tissa vacanīyaṃ.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Katamaṃ cittaṃ?
어떤 마음인가?
Cittampi hi bahuṃ anekavidhaṃ nānappakārakaṃ.
마음도 많고 여러 가지이며 갖가지다.
Yaṃ cittaṃ vītarāgaṃ vītadosaṃ vītamohaṃ, itosamuṭṭhānā kusalā sīlā.
탐욕이 사라지고 성냄이 사라지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마음, 유익한 계행은 거기서 일어난다.
목수여, 이 이로운 계행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사라지는가? 그것이 사라지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목수여, 여기 비구는 계행을 지키되 계행에 얽매이지 않는다.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있는 그대로 안다. 바로 거기에서 그의 이로운 계행이 남김없이 사라진다.
‘‘Ime ca, thapati, kusalā sīlā kuhiṃ aparisesā nirujjhanti?
“그러면 목수여, 이 유익한 계행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Nirodhopi nesaṃ vutto.
그것들의 소멸도 이미 말해 두었다.
Idha, thapati, bhikkhu sīlavā hoti no ca sīlamay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계를 갖추었으나 계로 이루어진 자는 아니며, 그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tthassa te kusalā sīlā aparisesā nirujjhanti.
거기서 그에게 그 유익한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목수여, 어떻게 나아가야 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인가?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버릴 때도,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운 것들을 일으킬 때도 앞에서와 같이 한다. 이미 생긴 이로운 것들이 머물러 사라지지 않고 늘어나 널리 퍼지고 닦여서 가득 차게 할 때도 그렇게 한다. 곧 의욕을 내고 애쓰며,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렇게 나아가면 이로운 계행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Kathaṃ paṭipanno ca, thapati, 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그러면 목수여, 어떻게 닦는 이가 유익한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인가?
Idha, thapati,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pe…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pe…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잊지 않고, 더욱 키우고, 넓히고, 닦아 완성하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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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ṃ paṭipanno kho, thapati, kusalānaṃ sīl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목수여, 이렇게 닦는 이가 유익한 계행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266
목수여, 해로운 생각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욕망의 생각, 악의의 생각, 해치려는 생각이다. 목수여, 이것을 해로운 생각이라고 한다. 목수여, 이 해로운 생각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인식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인식인가? 인식에는 많은 종류와 갖가지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 욕망의 인식, 악의의 인식, 해치려는 인식이다. 여기에서 해로운 생각이 일어난다.
‘‘Katame ca, thapati, akusalā saṅkappā?
“그러면 목수여, 나쁘고 해로운 의도란 무엇인가?
Kāmasaṅkappo, byāpādasaṅkappo, vihiṃsāsaṅkappo –
감각적 욕망의 의도, 악의의 의도, 해치려는 의도 —
ime vuccanti, thapati, akusalā saṅkappā.
목수여, 이것들을 나쁘고 해로운 의도라고 한다.
‘‘Ime ca, thapati, akusalā saṅkappā kiṃsamuṭṭhānā?
“그러면 목수여, 이 나쁘고 해로운 의도는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Samuṭṭhānampi nesaṃ vuttaṃ.
그것들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해 두었다.
‘Saññāsamuṭṭhānā’tissa vacanīyaṃ.
‘인식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Katamā saññā?
어떤 인식인가?
Saññāpi hi bahū anekavidhā nānappakārakā.
인식도 많고 여러 가지이며 갖가지다.
Kāmasaññā, byāpādasaññā, vihiṃsāsaññā –
감각적 욕망의 인식, 악의의 인식, 해침의 인식 —
itosamuṭṭhānā akusalā saṅkappā.
나쁘고 해로운 의도는 거기서 일어난다.
목수여, 이 해로운 생각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사라지는가? 그것이 사라지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목수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나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바로 여기에서 이 해로운 생각이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어떻게 나아가야 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인가?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버릴 때도,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운 것들을 일으킬 때도 앞에서와 같이 한다. 이미 생긴 이로운 것들이 머물러 사라지지 않고 늘어나 널리 퍼지고 닦여서 가득 차게 할 때도 그렇게 한다. 곧 의욕을 내고 애쓰며,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렇게 나아가면 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불확실]
‘‘Ime ca, thapati, akusalā saṅkappā kuhiṃ aparisesā nirujjhanti?
“그러면 목수여, 이 나쁘고 해로운 의도는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Nirodhopi nesaṃ vutto.
그것들의 소멸도 이미 말해 두었다.
Idha, thapati, bhikkhu vivicceva kāmehi…pe…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에서 완전히 떨어지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에서 떨어져, 거친 사유가 있고 미세한 사유가 있으며, 떨어짐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tthete akusalā saṅkapp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이 나쁘고 해로운 의도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Kathaṃ paṭipanno ca, thapati, a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그러면 목수여, 어떻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인가?
Idha, thapati,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pe…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pe…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잊지 않고, 더욱 키우고, 넓히고, 닦아 완성하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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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ṃ paṭipanno kho, thapati, a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목수여, 이렇게 닦는 이가 나쁘고 해로운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267
목수여, 이로운 생각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떠나려는 생각, 악의 없는 생각, 해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목수여, 이것을 이로운 생각이라고 한다. 목수여, 이 이로운 생각은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인식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인식인가? 인식에는 많은 종류와 갖가지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떠나려는 인식, 악의 없는 인식, 해치지 않으려는 인식이다. 여기에서 이로운 생각이 일어난다.
‘‘Katame ca, thapati, kusalā saṅkappā?
“그러면 목수여, 유익한 의도란 무엇인가?
Nekkhammasaṅkappo, abyāpādasaṅkappo, avihiṃsāsaṅkappo –
출리의 의도, 악의 없음의 의도, 해치지 않음의 의도 —
ime vuccanti, thapati, kusalā saṅkappā.
목수여, 이것들을 유익한 의도라고 한다.
‘‘Ime ca, thapati, kusalā saṅkappā kiṃsamuṭṭhānā?
“그러면 목수여, 이 유익한 의도는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Samuṭṭhānampi nesaṃ vuttaṃ.
그것들이 일어나는 곳도 이미 말해 두었다.
‘Saññāsamuṭṭhānā’tissa vacanīyaṃ.
‘인식에서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Katamā saññā?
어떤 인식인가?
Saññāpi hi bahū anekavidhā nānappakārakā.
인식도 많고 여러 가지이며 갖가지다.
Nekkhammasaññā, abyāpādasaññā, avihiṃsāsaññā –
출리의 인식, 악의 없음의 인식, 해치지 않음의 인식 —
itosamuṭṭhānā kusalā saṅkappā.
유익한 의도는 거기서 일어난다.
목수여, 이 이로운 생각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사라지는가? 그것이 사라지는 곳도 이미 말하였다. 목수여, 여기 비구는 말과 생각의 일어남이 가라앉아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바로 여기에서 이 이로운 생각이 남김없이 사라진다. 목수여, 어떻게 나아가야 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인가?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내어 애쓴다.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버릴 때도, 아직 생기지 않은 이로운 것들을 일으킬 때도 앞에서와 같이 한다. 이미 생긴 이로운 것들이 머물러 사라지지 않고 늘어나 널리 퍼지고 닦여서 가득 차게 할 때도 그렇게 한다. 곧 의욕을 내고 애쓰며, 정진을 시작하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렇게 나아가면 이로운 생각을 없애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불확실]
‘‘Ime ca, thapati, kusalā saṅkappā kuhiṃ aparisesā nirujjhanti?
“그러면 목수여, 이 유익한 의도는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Nirodhopi nesaṃ vutto.
그것들의 소멸도 이미 말해 두었다.
Idha, thapati,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며, 거친 사유가 없고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tthete kusalā saṅkappā aparisesā nirujjhanti.
여기서 이 유익한 의도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Kathaṃ paṭipanno ca, thapati, 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그러면 목수여, 어떻게 닦는 이가 유익한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인가?
Idha, thapati,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pe…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pe…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잊지 않고, 더욱 키우고, 넓히고, 닦아 완성하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8:264.16 ~ PN:mn78/264.17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paṭipanno kho, thapati, kusalānaṃ saṅkappānaṃ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목수여, 이렇게 닦는 이가 유익한 의도의 소멸을 위해 닦는 것이다.
268
목수여, 내가 말하는 열 가지를 갖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다. 목수여, 여기 비구는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견해를 갖춘다.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 바른 앎, 바른 해탈도 갖춘다. 목수여, 나는 이 열 가지를 갖춘 사람을 사문이라고 말한다. 선을 갖추고 최고의 선에 이르러 가장 높은 경지를 얻은, 대적할 이 없는 사문이다."
‘‘Katamehi cāhaṃ, thapati, dasah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sampannakusalaṃ paramakusalaṃ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ṃ?
“그러면 목수여, 나는 어떤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라고 천명하는가?
Idha, thapati, bhikkhu asekhāya sammādiṭṭhiyā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saṅkappena samannāgato hoti, asekhāya sammāvācāya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kammantena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ājīvena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vāyāmena samannāgato hoti, asekhāya sammāsatiyā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samādhinā samannāgato hoti, asekhena sammāñāṇena samannāgato hoti, asekhāya sammāvimuttiyā samannāgato hoti –
목수여, 여기 비구는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견해를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의도를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말을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행위를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생계를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정진을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마음챙김을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삼매를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앎을 갖추고, 더 배울 것이 없는 바른 해탈을 갖춘다 —
imehi kho ahaṃ, thapati, dasahi dhammehi samannāgataṃ purisapuggalaṃ paññapemi sampannakusalaṃ paramakusalaṃ uttamapattipattaṃ samaṇaṃ ayojjha’’nti.
목수여, 나는 이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유익함을 갖추었고, 유익함이 지극하며, 최상의 도달을 이루었고, 맞설 수 없는 사문이라고 천명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수 빤짜깡가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사마나문디까 경이 끝났다. 여덟째 경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pañcakaṅgo thapati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판짜깡가 목수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Samaṇamuṇḍikasuttaṃ niṭṭhitaṃ aṭṭhamaṃ.
사마나문디까 경이 끝났다. 여덟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