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Mahāsakuludāyisuttaṃ
7. 마하사꿀루다이 경
237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벨루바나, 칼란다까니와빠에 머무셨다. 그 무렵 이름난 유행자들이 여럿 모라니와빠 유행자 정원에 머물고 있었다. 안나바라, 와라다라, 유행자 사꿀루다이, 그 밖에도 이름난 유행자들이 있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먹이 주는 곳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bhiññātā abhiññātā paribbājakā moranivāpe paribbājakārāme paṭivasanti, seyyathidaṃ –
그때 이름나고 이름난 유행자 여럿이 공작 먹이 주는 곳, 유행자들의 원림에 머물고 있었으니, 곧[불확실]
불확실 —
annabhāro varadharo sakuludāyī ca paribbājako aññ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paribbājakā.
안나바라, 와라다라, 그리고 유행자 사꿀루다이와 그 밖의 이름나고 이름난 유행자들이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탁발하러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드셨다. “라자가하에서 탁발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모라니와빠 유행자 정원에 있는 유행자 사꿀루다이에게 찾아가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모라니와빠 유행자 정원으로 가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rājagaha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갖추어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라자가하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tippago kho tāva rājagahe piṇḍāya carituṃ.
‘라자가하로 탁발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Yaṃnūnāhaṃ yena moranivāpo paribbājakārāmo yena sakuludāyī paribbājako tenupasaṅkameyya’’nti.
나는 공작 먹이 주는 곳,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유행자 사꿀루다이가 있는 곳으로 가 보리라.’
Atha kho bhagavā yena moranivāpo paribbājakārām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공작 먹이 주는 곳,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가셨다.
그때 유행자 사꿀루다이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리는 높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온갖 부질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운 일 이야기, 전쟁 이야기가 오갔다. 음식 이야기, 마실 것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꽃다발 이야기, 향 이야기도 있었다. 친척 이야기, 탈것 이야기, 마을 이야기, 읍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길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 이야기도 나왔다. 잡다한 이야기, 세상 이야기, 바다 이야기,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이야기 따위였다.
Tena kho pana samayena sakuludāyī paribbājako mahatiyā paribbājakaparisāya saddhiṃ nisinno hoti unnādiniyā uccāsaddamahāsaddāya anekavihitaṃ tiracchānakathaṃ kathentiyā, seyyathidaṃ –
그때 유행자 사꿀루다이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무리는 떠들썩하게 높고 큰 소리를 내며 갖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곧 —
rājakathaṃ corakathaṃ mahāmattakathaṃ senākathaṃ bhayakathaṃ yuddhakathaṃ annakathaṃ pānakathaṃ vatthakathaṃ sayanakathaṃ mālākathaṃ gandhakathaṃ ñātikathaṃ yānakathaṃ gāmakathaṃ nigamakathaṃ nagarakathaṃ janapadakathaṃ itthikathaṃ sūrakathaṃ visikhākathaṃ kumbhaṭṭhānakathaṃ pubbapetakathaṃ nānattakathaṃ lokakkhāyikaṃ samuddakkhāyikaṃ itibhavābhavakathaṃ iti vā.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움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마실 것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수레 이야기, 마을 이야기, 읍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들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된다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었다.
유행자 사꿀루다이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자기 무리를 진정시켰다. “여러분, 조용히들 하시오. 소리를 내지 마시오. 저기 사문 고타마가 오고 있소. 그분은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을 칭찬하는 분이오. 조용한 무리를 보시면 혹시 가까이 와도 되겠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오.” 그러자 그 유행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Addasā kho sakuludāyī paribbājako bhagavantaṃ dūratova āgacchantaṃ.
유행자 사꿀루다이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sakaṃ parisaṃ saṇṭhāpeti –
보고서 자기 무리를 다잡았다 —
‘‘appasaddā bhonto hontu;
“존자들은 조용히 하십시오.
mā bhonto saddamakattha.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Ayaṃ samaṇo gotamo āgacchati;
저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appasaddakāmo kho pana so āyasmā appasaddassa vaṇṇavādī.
저 존자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함을 칭찬하는 분입니다.
Appeva nāma appasaddaṃ parisaṃ viditvā upasaṅkamitabbaṃ maññeyyā’’ti.
조용한 무리임을 아시면 다가와 볼 만하다고 여기실지도 모릅니다.”
Atha kho te paribbājakā tuṇhī ahesuṃ.
그러자 그 유행자들은 조용해졌다.
세존께서는 유행자 사꿀루다이에게 다가가셨다. 사꿀루다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렇게 이곳까지 걸음하시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앉으십시오, 세존이시여. 이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꿀루다이도 낮은 자리 하나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그렇게 한쪽에 앉은 사꿀루다이에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yena sakuludāyī paribbājak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유행자 사꿀루다이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Atha kho sakuludāyī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유행자 사꿀루다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etu kho, bhante, bhagavā.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십시오.
Svāgataṃ,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잘 오셨습니다.
Cirassaṃ kho, bhante, bhagavā imaṃ pariyāyamakāsi yadidaṃ idhāgamanāy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오랜만에 이런 걸음을 하셨습니다. 곧 여기로 오신 일 말입니다.
Nisīdatu, bhante, bhagavā;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앉으십시오.
idamāsanaṃ paññatta’’nti.
이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세존께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Sakuludāyīpi kho paribbājako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유행자 사꿀루다이도 낮은 자리 하나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sakuludāyiṃ paribbājak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유행자 사꿀루다이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238
“우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로 모여 앉아 있었는가? 그대들이 하다가 만 이야기는 또 무엇이었는가?”
‘‘Kāyanuttha, udāyi,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우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로 함께 앉아 있었으며, 그대들이 하다가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가 지금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는 그냥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세존께서 들으시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여러 다른 교단의 사문과 바라문들이 토론장에 모여 앉아 있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앙가와 마가다 사람들은 참으로 복이 많구나. 앙가와 마가다 사람들은 참으로 큰 이득을 얻었구나!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리며 무리의 스승인 사문과 바라문들이 우안거를 지내려고 라자가하에 와 있다.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이들이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훌륭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여기 뿌라나 깟사빠가 있다. 그도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그를 훌륭하게 여긴다. 그 역시 우안거를 지내려고 라자가하에 와 있다. 여기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도 있다. 이들도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훌륭하게 여긴다. 이들 역시 우안거를 지내려고 라자가하에 와 있다. 여기 사문 고타마도 있다. 그도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그를 훌륭하게 여긴다. 그 역시 우안거를 지내려고 라자가하에 와 있다. 교단을 이끌고 한 파를 세운 이 사문과 바라문들 가운데 누가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공경받고 높임받고 공양받는가? 또 제자들은 누구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내는가?’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Tiṭṭhatesā, bhante, kathā yāya mayaṃ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세존이시여, 저희가 지금 함께 앉아 나누던 그 이야기는 접어 두시지요.
Nesā, bhante, kathā bhagavato dullabhā bhavissati pacchāpi savanāya.
세존이시여,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 들으시더라도 얻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Purimāni, bhante, divasāni purimatarāni nānātitthiyān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kutūhalasālāyaṃ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ayamantarākathā udapādi –
세존이시여, 요 며칠 전, 그보다 더 앞선 날에, 여러 외도의 사문·바라문들이 논의당에 함께 앉아 모였을 때 이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
‘lābhā vata, bho, aṅgamagadhānaṃ, suladdhalābhā vata, bho, aṅgamagadhānaṃ!
‘여러분, 앙가와 마가다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득입니다. 여러분, 앙가와 마가다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잘 얻은 이득입니다!
Tatrime samaṇabrāhmaṇā saṅghino gaṇino gaṇācariyā ñātā yasassino titthakarā sādhusammatā bahujanassa rājagahaṃ vassāvāsaṃ osaṭā.
여기 이 사문·바라문들, 승가를 거느린 이들, 무리를 거느린 이들, 무리의 스승들,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들,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들이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Ayampi kho pūraṇo kassap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뿌라나 깟사빠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sopi rājagahaṃ vassāvāsaṃ osaṭo.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Ayampi kho makkhali gosālo…pe… ajito kesakambalo… pakudho kaccāyano… sañjayo belaṭṭhaputto… nigaṇṭho nāṭ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막칼리 고살라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이 아지따 께사깜발리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이 빠꾸다 깟짜야나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이 산자야 벨랏타뿟따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이 니간타 나타뿟따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38.7 ~ PN:mn77/238.8에서 되살렸습니다.
sopi rājagahaṃ vassāvāsaṃ osaṭo.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Ayampi kho samaṇo gotam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사문 고따마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입니다.
sopi rājagahaṃ vassāvāsaṃ osaṭo.
그도 라자가하로 우안거를 지내러 와 있습니다.
Ko nu kho im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ṅghīnaṃ gaṇīnaṃ gaṇācariyānaṃ ñātānaṃ yasassīnaṃ titthakarānaṃ sādhusammatānaṃ bahujanassa sāvakānaṃ sakkato garukato mānito pūjito, kañca pana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ī’’’ti?
이 존경스러운 사문·바라문들, 승가를 거느린 이들, 무리를 거느린 이들, 무리의 스승들,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들,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들 가운데 누가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존중받고 받들어지고 공양받으며, 또 제자들은 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까?’ ”
239
“거기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뿌라나 깟사빠는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훌륭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공경받지 못하고 높임받지 못하고 공양받지 못한다. 제자들도 뿌라나 깟사빠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내지 않는다. 전에 뿌라나 깟사빠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제자 한 사람이 소리쳤다. “여러분, 뿌라나 깟사빠에게 이 일을 묻지 마시오. 그는 이것을 알지 못하오. 우리가 이것을 아니, 우리에게 이 일을 물으시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소.” 또 전에는 뿌라나 깟사빠가 두 팔을 치켜들고 이렇게 울부짖으며 호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분, 조용히들 하시오. 소리를 내지 마시오. 이들은 여러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 것이오. 우리가 이들에게 설명해 주겠소.” 뿌라나 깟사빠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논쟁을 걸어 놓고는 떠나갔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어찌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되게 행하고 나는 바르게 행한다. 내 말은 이치에 맞고 그대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먼저 말할 것을 나중에 말하고 나중에 말할 것을 먼저 말했다. 그대가 오래 익힌 것은 뒤집혔다. 그대의 주장은 논파되었고, 그대는 졌다. 주장에서 벗어나려거든 돌아다니며 애써 보라. 할 수 있다면 풀어 보라.” 이렇게 뿌라나 깟사빠는 제자들에게 존경도 공경도 높임도 공양도 받지 못한다. 제자들도 그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내지 않는다. 게다가 뿌라나 깟사빠는 법의 이름으로 욕까지 먹었다.’”
‘‘Tatrekacce evamāhaṃsu –
“거기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ayaṃ kho pūraṇo kassap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뿌라나 깟사빠는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so ca kho sāvakānaṃ na sakkato na garukato na mānito na pūjito, na ca pana pūraṇaṃ kassap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뿌라나 깟사빠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Bhūtapubbaṃ pūraṇo kassapo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예전에 뿌라나 깟사빠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 일이 있었다.
Tatraññataro pūraṇassa kassapassa sāvako saddamakāsi –
그때 뿌라나 깟사빠의 어떤 제자가 소리를 냈다 —
‘‘mā bhonto pūraṇaṃ kassapaṃ etamatthaṃ pucchittha;
“존자들이여, 뿌라나 깟사빠에게 그 뜻을 묻지 마십시오.
neso etaṃ jānāti;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mayametaṃ jānāma, amhe etamatthaṃ pucchatha;
우리가 그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그 뜻을 물으십시오.
mayametaṃ bhavantānaṃ byākarissāmā’’ti.
우리가 그것을 존자들께 설명하겠습니다.”
Bhūtapubbaṃ pūraṇo kassapo bāhā paggayha kandanto na labhati –
예전에 뿌라나 깟사빠가 팔을 치켜들고 외쳐도 얻지 못한 일이 있었다 —
‘‘appasaddā bhonto hontu, mā bhonto saddamakattha.
“존자들이여,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들이여,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Nete, bhavante, pucchanti, amhe ete pucchanti;
저들은 존자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mayametesaṃ byākarissāmā’’ti.
우리가 저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
Bahū kho pana pūraṇassa kassapassa sāvakā vādaṃ āropetvā apakkantā –
그런데 뿌라나 깟사빠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논박을 걸고서 떠나갔다 —
‘‘na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si, ah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mi, kiṃ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issasi?
“너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네가 무슨 이 법과 율을 알겠느냐?
Micchā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paṭipanno, sahitaṃ me, asahitaṃ te, purevacanīyaṃ pacchā avaca, pacchāvacanīyaṃ pure avaca, adhiciṇṇaṃ te viparāvattaṃ, āropito te vādo, niggahito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너는 그릇되게 닦는 자다. 나는 바르게 닦는 자다. 내 말은 조리 있고 네 말은 조리 없다. 앞에 말했어야 할 것을 뒤에 말했고, 뒤에 말했어야 할 것을 앞에 말했다. 네가 익혀 온 것은 뒤집혔다. 네게 논박이 걸렸다. 너는 논파되었다. 말을 벗어나 보려거든 나서 보아라, 아니면 할 수 있거든 빠져나와 보아라.”
Iti pūraṇo kassapo sāvakānaṃ na sakkato na garukato na mānito na pūjito, na ca pana pūraṇaṃ kassap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이와 같이 뿌라나 깟사빠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뿌라나 깟사빠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Akkuṭṭho ca pana pūraṇo kassapo dhammakkosenā’’’ti.
게다가 뿌라나 깟사빠는 법의 비난으로 욕을 먹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도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훌륭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공경받지 못하고 높임받지 못하고 공양받지 못한다.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내지 않는다. 전에 니간타 나따뿟따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제자 한 사람이 소리쳤다. “여러분,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 일을 묻지 마시오. 그는 이것을 알지 못하오. 우리가 이것을 아니, 우리에게 이 일을 물으시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소.” 또 전에는 니간타 나따뿟따가 두 팔을 치켜들고 이렇게 울부짖으며 호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분, 조용히들 하시오. 소리를 내지 마시오. 이들은 여러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 것이오. 우리가 이들에게 설명해 주겠소.”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논쟁을 걸어 놓고는 떠나갔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어찌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되게 행하고 있고, 나는 바르게 행하고 있다. 내 말은 이치에 맞고 그대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먼저 말할 것을 나중에 말하고 나중에 말할 것을 먼저 말했다. 그대가 오래 익힌 것은 뒤집혔다. 그대의 주장은 논파되었고, 그대는 졌다. 주장에서 벗어나려거든 돌아다니며 애써 보라. 할 수 있다면 풀어 보라.” 이렇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존경도 공경도 높임도 공양도 받지 못한다. 제자들도 그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내지 않는다. 게다가 니간타 나따뿟따는 법의 이름으로 욕까지 먹었다.’”
‘‘Ekacce evamāhaṃsu –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ayampi kho makkhali gosālo…pe… ajito kesakambalo… pakudho kaccāyano… sañjayo belaṭṭhaputto… nigaṇṭho nāṭ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막칼리 고살라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막칼리 고살라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이 아지따 께사깜발리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아지따 께사깜발리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이 빠꾸다 깟짜야나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빠꾸다 깟짜야나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이 산자야 벨랏타뿟따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이 니간타 나타뿟따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39.2 ~ PN:mn77/239.3에서 되살렸습니다.
so ca kho sāvakānaṃ na sakkato na garukato na mānito na pūjito, na ca pana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니간타 나타뿟따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Bhūtapubbaṃ nigaṇṭho nāṭaputto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예전에 니간타 나타뿟따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 일이 있었다.
Tatraññataro nigaṇṭhassa nāṭaputtassa sāvako saddamakāsi –
그때 니간타 나타뿟따의 어떤 제자가 소리를 냈다 —
mā bhonto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etamatthaṃ pucchittha;
존자들이여, 니간타 나타뿟따에게 그 뜻을 묻지 마십시오.
neso etaṃ jānāti;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mayametaṃ jānāma, amhe etamatthaṃ pucchatha;
우리가 그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그 뜻을 물으십시오.
mayametaṃ bhavantānaṃ byākarissāmāti.
우리가 그것을 존자들께 설명하겠습니다.
Bhūtapubbaṃ nigaṇṭho nāṭaputto bāhā paggayha kandanto na labhati –
예전에 니간타 나타뿟따가 팔을 치켜들고 외쳐도 얻지 못한 일이 있었다 —
‘‘appasaddā bhonto hontu, mā bhonto saddamakattha.
“존자들이여,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들이여,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Nete bhavante pucchanti, amhe ete pucchanti;
저들은 존자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mayametesaṃ byākarissāmā’’ti.
우리가 저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
Bahū kho pana nigaṇṭhassa nāṭaputtassa sāvakā vādaṃ āropetvā apakkantā –
그런데 니간타 나타뿟따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논박을 걸고서 떠나갔다 —
‘‘na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si, ah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mi.
“너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Kiṃ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issasi?
네가 무슨 이 법과 율을 알겠느냐?
Micchāpaṭipanno tvamasi.
너는 그릇되게 닦는 자다.
Ahamasmi sammāpaṭipanno.
나는 바르게 닦는 자다.
Sahitaṃ me asahitaṃ te, purevacanīyaṃ pacchā avaca, pacchāvacanīyaṃ pure avaca, adhiciṇṇaṃ te viparāvattaṃ, āropito te vādo, niggahito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내 말은 조리 있고 네 말은 조리 없다. 앞에 말했어야 할 것을 뒤에 말했고, 뒤에 말했어야 할 것을 앞에 말했다. 네가 익혀 온 것은 뒤집혔다. 네게 논박이 걸렸다. 너는 논파되었다. 말을 벗어나 보려거든 나서 보아라, 아니면 할 수 있거든 빠져나와 보아라.”
Iti nigaṇṭho nāṭaputto sāvakānaṃ na sakkato na garukato na mānito na pūjito, na ca pana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이와 같이 니간타 나타뿟따는 제자들에게 존경받지도 존중받지도 받들어지지도 공양받지도 못하며, 제자들은 니간타 나타뿟따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내지도 않는다.
Akkuṭṭho ca pana nigaṇṭho nāṭaputto dhammakkosenā’’’ti.
게다가 니간타 나타뿟따는 법의 비난으로 욕을 먹는다.’
240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문 고타마도 교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무리의 스승이며,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다. 한 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이 훌륭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공경받고 높임받고 공양받는다. 제자들도 사문 고타마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낸다. 전에 사문 고타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기침을 했다. 그러자 한 도반이 무릎으로 그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존자여, 조용히 하시오. 소리를 내지 마시오. 우리 스승이신 세존께서 법을 설하고 계시오.” 사문 고타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는 때에는, 제자들 사이에서 재채기 소리도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큰 무리는 기대에 차서 기다리고 있다. “세존께서 설해 주실 법을 우리는 듣겠다” 하면서. 마치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티 없는 벌꿀을 짠다고 하자. 그러면 큰 무리가 기대에 차서 그 곁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사문 고타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는 때에는, 제자들 사이에서 재채기 소리도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큰 무리는 기대에 차서 기다리고 있다. “세존께서 설해 주실 법을 우리는 듣겠다” 하면서.
‘‘Ekacce evamāhaṃsu –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ayampi kho samaṇo gotam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이 사문 고따마도 승가를 거느린 이요 무리를 거느린 이요 무리의 스승이요,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있고 교단을 세운 이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다.
so ca kho sāvakānaṃ sakkato garukato mānito pūjito, samaṇañca pana gotam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존중받고 받들어지고 공양받으며,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낸다.
Bhūtapubbaṃ samaṇo gotamo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si.
예전에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 일이 있었다.
Tatraññataro samaṇassa gotamassa sāvako ukkāsi.
그때 사문 고따마의 어떤 제자가 기침을 했다.
Tamenāññataro sabrahmacārī jaṇṇukena ghaṭṭesi –
그러자 다른 동료 수행자가 그를 무릎으로 툭 건드렸다 —
‘‘appasaddo āyasmā hotu, māyasmā saddamakāsi, satthā no bhagavā dhammaṃ desesī’’ti.
“존자는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는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우리의 스승이신 세존께서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Yasmiṃ samaye samaṇo gotamo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neva tasmiṃ samaye samaṇassa gotamassa sāvakānaṃ khipitasaddo vā hoti ukkāsitasaddo vā.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할 그때에는, 그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에게서 재채기 소리도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Tamenaṃ mahājanakāyo paccāsīsamānarūpo paccupaṭṭhito hoti –
그때 많은 사람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둘러서 있다 —
‘‘yaṃ no bhagavā dhammaṃ bhāsissati taṃ no sossāmā’’ti.
“세존께서 우리에게 어떤 법을 말씀하시든 우리는 그것을 들으리라.”
Seyyathāpi nāma puriso cātummahāpathe khuddamadhuṃ anelakaṃ pīḷeyya.
마치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순수한 잔벌 꿀을 짜내는 것과 같다.
Tamenaṃ mahājanakāyo paccāsīsamānarūpo paccupaṭṭhito assa.
그러면 많은 사람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둘러설 것이다.
Evameva yasmiṃ samaye samaṇo gotamo anekasatāya parisāya dhammaṃ deseti, neva tasmiṃ samaye samaṇassa gotamassa sāvakānaṃ khipitasaddo vā hoti ukkāsitasaddo vā.
꼭 그와 같이,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무리에게 법을 설할 그때에는, 그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에게서 재채기 소리도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Tamenaṃ mahājanakāyo paccāsīsamānarūpo paccupaṭṭhito hoti –
그때 많은 사람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둘러서 있다 —
‘‘yaṃ no bhagavā dhammaṃ bhāsissati taṃ no sossāmā’’ti.
“세존께서 우리에게 어떤 법을 말씀하시든 우리는 그것을 들으리라.”
“사문 고타마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도반들과 얽혀 수행을 버리고 속된 삶으로 돌아간 이들이 있다. 그들조차 스승을 칭찬하고 법을 칭찬하고 승가를 칭찬한다. 그들은 남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 탓한다. “우리가 복이 없었다. 우리가 공덕이 적었다. 우리는 이렇게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하고서도 평생 온전하고 깨끗한 수행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절의 일꾼이 되거나 재가 신자가 되어 다섯 가지 학처를 받아 지키며 산다. 이렇게 사문 고타마는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공경받고 높임받고 공양받는다. 제자들도 그를 존경하고 공경하며 의지하여 지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Yepi samaṇassa gotamassa sāvakā sabrahmacārīhi sampayojetvā sikkhaṃ paccakkhāya hīnāyāvattanti tepi satthu ceva vaṇṇavādino honti, dhammassa ca vaṇṇavādino honti, saṅghassa ca vaṇṇavādino honti, attagarahinoyeva honti anaññagarahino, ‘‘mayamevamhā alakkhikā mayaṃ appapuññā te mayaṃ evaṃ svākkhāte dhammavinaye pabbajitvā nāsakkhimhā yāvajīvaṃ 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caritu’’nti.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가운데 동료 수행자들과 다투고 배움을 저버리고 속가의 낮은 자리로 되돌아가는 이들조차도 스승을 칭찬하고 법을 칭찬하고 승가를 칭찬하며, 남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탓하는 이들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야말로 복이 없다, 우리는 공덕이 적다, 그런 우리는 이렇게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하고서도 목숨이 다하도록 원만하고 깨끗한 청정한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Te ārāmikabhūtā vā upāsakabhūtā vā pañcasikkhāpade samādāya vattanti.
그들은 원림지기가 되거나 재가신자가 되어 다섯 가지 학습 계율을 받아 지니고 살아간다.
Iti samaṇo gotamo sāvakānaṃ sakkato garukato mānito pūjito, samaṇañca pana gotamaṃ sāvakā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ī’’’ti.
이와 같이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존중받고 받들어지고 공양받으며,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를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낸다.’ ”
241
“우다이여, 그대는 내게서 몇 가지 법을 보는가? 그 때문에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낸다고 하는가?”
‘‘Kati pana tvaṃ, udāyi, mayi dhamme samanupassasi, yehi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ī’’ti?
“그런데 우다이여, 그대는 내게서 몇 가지 법을 보기에, 그 법들 때문에 내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낸다고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있는 다섯 가지 법을 봅니다. 그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그 다섯은 무엇인가 하면 이렇습니다. 세존께서는 적게 드시고, 적게 드시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첫째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또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옷에 만족하시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둘째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또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탁발 음식에 만족하시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셋째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또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거처에 만족하시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넷째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또 세존께서는 멀리 떨어져 홀로 지내시고, 홀로 지내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다섯째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있는 이 다섯 가지 법을 봅니다. 그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높이고 받들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Pañca kho ahaṃ, bhante, bhagavati dhamme samanupassāmi yehi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다섯 가지 법이 있음을 봅니다. 그 법들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입니까?
Bhagavā hi, bhante, appāhāro, appāhāratāya ca vaṇṇavādī.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음식을 적게 드시고, 음식을 적게 드심을 칭찬하십니다.
Yampi, bhante, bhagavā appāhāro, appāhāratāya ca vaṇṇavādī im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i paṭhamaṃ dhammaṃ samanupassāmi yena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음식을 적게 드시고 음식을 적게 드심을 칭찬하시는 것,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께 있는 첫 번째 법으로 봅니다. 그 법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cīvarena, itarītaracīvar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세존이시여, 또한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옷으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십니다.
Yampi,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cīvarena, itarītaracīvar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im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i dutiyaṃ dhammaṃ samanupassāmi yena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런저런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옷으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시는 것,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께 있는 두 번째 법으로 봅니다. 그 법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piṇḍapātena, itarītarapiṇḍapāt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세존이시여, 또한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십니다.
Yampi,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piṇḍapātena, itarītarapiṇḍapāt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im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i tatiyaṃ dhammaṃ samanupassāmi yena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런저런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시는 것,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께 있는 세 번째 법으로 봅니다. 그 법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senāsane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세존이시여, 또한 세존께서는 이런저런 어떤 거처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거처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십니다.
Yampi, bhante, bhagavā santuṭṭho itarītarena senāsane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 im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i catutthaṃ dhammaṃ samanupassāmi yena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런저런 어떤 거처로도 만족하시고 이런저런 어떤 거처로도 만족함을 칭찬하시는 것,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께 있는 네 번째 법으로 봅니다. 그 법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bhagavā pavivitto, pavivekassa ca vaṇṇavādī.
세존이시여, 또한 세존께서는 홀로 떨어져 지내시고, 홀로 떨어져 지냄을 칭찬하십니다.
Yampi, bhante, bhagavā pavivitto, pavivekassa ca vaṇṇavādī, im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i pañcamaṃ dhammaṃ samanupassāmi yena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홀로 떨어져 지내시고 홀로 떨어져 지냄을 칭찬하시는 것,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께 있는 다섯 번째 법으로 봅니다. 그 법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Ime kho ahaṃ, bhante, bhagavati pañca dhamme samanupassāmi yehi bhagavant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ī’’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 다섯 가지 법이 있음을 봅니다. 그 법들 때문에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며, 존경하고 존중하며 의지하여 지냅니다.”
242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사문 고타마는 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한다’ 하여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한다고 하자.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나를 의지해 지낸다고 하자. 그런데 내 제자 중에는 한 줌만 먹는 이가 있다. 반 줌만 먹는 이도 있고, 벨루바 열매 하나만 먹는 이도 있고, 반 개만 먹는 이도 있다. 그런데 우다이야, 나는 때로 이 발우를 가득 채워 배불리 먹고도 더 먹는다. 그러니 한 줌, 반 줌, 열매 하나, 반 개만 먹는 내 제자들은 이런 이유로는 나를 존경하거나 공경하거나 받들거나 예우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의지해 지내지도 않을 것이다.
‘‘‘Appāhāro samaṇo gotamo, appāhāratāya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santi kho pana me, udāyi, sāvakā kosakāhārāpi aḍḍhakosakāhārāpi beluvāhārāpi aḍḍhabeluvāhārāpi.
“‘사문 고따마는 적게 먹으며 적게 먹음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그런데 내 제자들 가운데는 작은 그릇 하나만큼 먹는 이도 있고, 작은 그릇 반만큼 먹는 이도 있고, 벨루바 열매만큼 먹는 이도 있고, 벨루바 열매 반만큼 먹는 이도 있다.
Ahaṃ kho pana, udāyi, appekadā iminā pattena samatittikampi bhuñjāmi bhiyyopi bhuñjāmi.
그런데 우다이여, 나는 때로 이 발우에 꼭 차게 먹기도 하고, 그보다 더 먹기도 한다.
‘Appāhāro samaṇo gotamo, appāhāratāya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ye te, udāyi, mama sāvakā kosakāhārāpi aḍḍhakosakāhārāpi beluvāhārāpi aḍḍhabeluvāhārāpi na maṃ te iminā dhammena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사문 고따마는 적게 먹으며 적게 먹음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작은 그릇 하나만큼 먹는 이들, 작은 그릇 반만큼 먹는 이들, 벨루바 열매만큼 먹는 이들, 벨루바 열매 반만큼 먹는 이들, 그들은 이 법으로는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사문 고타마는 이런저런 옷에 만족하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 하여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의지해 지낸다고 하자. 그런데 내 제자 중에는 분소의를 입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거친 옷을 입는다. 무덤이나 쓰레기 더미나 가게 앞에서 헝겊 조각을 주워 모아 옷을 지어 입는다. 그런데 우다이야, 나는 때로 재가 신자들이 보시한 옷을 입는다. 튼튼한 옷도 있고, 거친 옷도 있고, 표주박 털처럼 부드러운 옷도 있다. 그러니 헝겊을 주워 지어 입는 분소의의 제자들은 이런 이유로는 나를 존경하거나 공경하거나 받들거나 예우하거나 의지해 지내지 않을 것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cīvarena, itarītaracīvar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santi kho pana me, udāyi, sāvakā paṃsukūlikā lūkhacīvaradharā te susānā vā saṅkārakūṭā vā pāpaṇikā vā nantakāni uccinitvā saṅghāṭiṃ karitvā dhārenti.
“‘사문 고따마는 어떤 옷이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옷으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그런데 내 제자들 가운데는 분소의를 입는 이들, 거친 옷을 걸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무덤터나 쓰레기 더미나 가게 앞에서 넝마를 주워 모아 대의를 지어 걸친다.
Ahaṃ kho panudāyi, appekadā gahapaticīvarāni dhāremi daḷhāni satthalūkhāni alābulomasāni.
그런데 우다이여, 나는 때로 재가자가 보시한 옷을 걸치기도 하니, 질기고, 칼로 자른 자리가 거칠고, 조롱박처럼 잔털이 인 옷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cīvarena, itarītaracīvar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ye te, udāyi, mama sāvakā paṃsukūlikā lūkhacīvaradharā te susānā vā saṅkārakūṭā vā pāpaṇikā vā nantakāni uccinitvā saṅghāṭiṃ karitvā dhārenti, na maṃ te iminā dhammena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사문 고따마는 어떤 옷이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옷으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분소의를 입는 이들, 거친 옷을 걸치는 이들, 무덤터나 쓰레기 더미나 가게 앞에서 넝마를 주워 모아 대의를 지어 걸치는 그들, 그들은 이 법으로는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사문 고타마는 이런저런 음식에 만족하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 하여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의지해 지낸다고 하자. 그런데 내 제자 중에는 탁발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며 남은 밥을 얻는 일을 즐긴다. 마을 안 집에 들어가 앉을 자리를 권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다이야, 나는 때로 초대를 받아 먹는다. 검은 알갱이를 골라낸 좋은 쌀밥에 갖가지 국과 갖가지 반찬이 딸려 나온다. 그러니 집집마다 걸식하며 남은 밥을 즐기는 제자들, 앉을 자리를 권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제자들은 이런 이유로는 나를 존경하거나 공경하거나 받들거나 예우하거나 의지해 지내지 않을 것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piṇḍapātena, itarītarapiṇḍapāt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santi kho pana me, udāyi, sāvakā piṇḍapātikā sapadānacārino uñchāsake vate ratā, te antaragharaṃ paviṭṭhā samānā āsanenapi nimantiyamānā na sādiyanti.
“‘사문 고따마는 어떤 탁발 음식이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탁발 음식으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그런데 내 제자들 가운데는 탁발만으로 사는 이들,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는 이들, 주워 모은 음식으로 사는 서약을 즐기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마을 집 안에 들어가서도 자리를 권해 받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Ahaṃ kho panudāyi, appekadā nimantanepi bhuñjāmi sālīnaṃ odanaṃ vicitakāḷakaṃ anekasūpaṃ anekabyañjanaṃ.
그런데 우다이여, 나는 때로 초청을 받아 먹기도 하니, 검은 알갱이를 골라낸 쌀밥에 여러 국과 여러 반찬을 곁들인 것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piṇḍapātena, itarītarapiṇḍapāt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ye te, udāyi, mama sāvakā piṇḍapātikā sapadānacārino uñchāsake vate ratā te antaragharaṃ paviṭṭhā samānā āsanenapi nimantiyamānā na sādiyanti, na maṃ te iminā dhammena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사문 고따마는 어떤 탁발 음식이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탁발 음식으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탁발만으로 사는 이들,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는 이들, 주워 모은 음식으로 사는 서약을 즐기는 이들, 마을 집 안에 들어가서도 자리를 권해 받아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 그들은 이 법으로는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사문 고타마는 이런저런 거처에 만족하고,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 하여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의지해 지낸다고 하자. 그런데 내 제자 중에는 나무 밑에서 지내는 이들이 있다. 노지에서 지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여덟 달 동안 지붕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다이야, 나는 때로 누각에서 지낸다. 안팎으로 회반죽을 바르고, 바람이 들지 않고, 빗장이 단단히 걸리고, 창문이 닫혀 있는 곳이다. 그러니 나무 밑과 노지에서 지내며 여덟 달 동안 지붕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 제자들은 이런 이유로는 나를 존경하거나 공경하거나 받들거나 예우하거나 의지해 지내지 않을 것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senāsane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santi kho pana me, udāyi, sāvakā rukkhamūlikā abbhokāsikā, te aṭṭhamāse channaṃ na upenti.
“‘사문 고따마는 어떤 거처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거처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그런데 내 제자들 가운데는 나무 아래 지내는 이들, 한데서 지내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여덟 달 동안 지붕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다.
Ahaṃ kho panudāyi, appekadā kūṭāgāresupi viharāmi ullittāvalittesu nivātesu phusitaggaḷesu pihitavātapānesu.
그런데 우다이여, 나는 때로 뾰족지붕 집에서 지내기도 하니, 안팎을 회칠하고, 바람이 들지 않고, 빗장이 꼭 맞는 문을 달고, 창을 닫아 둔 집이다.
‘Santuṭṭho samaṇo gotamo itarītarena senāsanena, itarītarasenāsanasantuṭṭhiyā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ye te, udāyi, mama sāvakā rukkhamūlikā abbhokāsikā te aṭṭhamāse channaṃ na upenti, na maṃ te iminā dhammena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사문 고따마는 어떤 거처든 그것으로 만족하며, 어떤 거처로든 만족함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나무 아래 지내는 이들, 한데서 지내는 이들, 여덟 달 동안 지붕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 그들, 그들은 이 법으로는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사문 고타마는 멀리 떨어져 지내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칭찬한다’ 하여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의지해 지낸다고 하자. 그런데 내 제자 중에는 숲에서 지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외딴 거처로, 숲속 깊고 외진 처소로 들어가 지낸다. 보름마다 계율을 외우는 포살을 위해서만 승가 가운데로 모인다. 그런데 우다이야, 나는 때로 비구, 비구니, 남자 신도, 여자 신도, 왕, 왕의 대신들, 다른 교단의 수행자들, 그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 그러니 숲에서 외따로 지내며 포살 때만 승가에 모이는 제자들은 이런 이유로는 나를 존경하거나 공경하거나 받들거나 예우하거나 의지해 지내지 않을 것이다.
‘‘‘Pavivitto samaṇo gotamo, pavivekassa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santi kho pana me, udāyi, sāvakā āraññikā pantasenāsa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ajjhogāhetvā viharanti, te anvaddhamāsaṃ saṅghamajjhe osaranti pātimokkhuddesāya.
“‘사문 고따마는 홀로 떨어져 지내며 홀로 떨어짐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그런데 내 제자들 가운데는 숲에 사는 이들, 외딴 거처에 지내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로 깊이 들어가 머물고, 보름마다 계목을 외우기 위해 승가 가운데로 내려온다.
Ahaṃ kho panudāyi, appekadā ākiṇṇo viharāmi bhikkhūhi bhikkhunīhi upāsakehi upāsikāhi raññā rājamahāmattehi titthiyehi titthiyasāvakehi.
그런데 우다이여, 나는 때로 비구들, 비구니들, 재가신자들, 여자 재가신자들, 왕, 왕의 대신들, 외도들, 외도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내기도 한다.
‘Pavivitto samaṇo gotamo, pavivekassa ca vaṇṇavādī’ti, iti ce maṃ, udāyi, sāva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ye te, udāyi, mama sāvakā āraññakā pantasenāsa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ajjhogāhetvā viharanti te anvaddhamāsaṃ saṅghamajjhe osaranti pātimokkhuddesāya, na maṃ te iminā dhammena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eyyuṃ.
‘사문 고따마는 홀로 떨어져 지내며 홀로 떨어짐을 칭찬하는 이다’ — 우다이여, 만일 제자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면, 우다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숲에 사는 이들, 외딴 거처에 지내는 이들,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로 깊이 들어가 머물고 보름마다 계목을 외우기 위해 승가 가운데로 내려오는 그들, 그들은 이 법으로는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는 것은 이 다섯 가지 때문이 아니다.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나를 의지해 지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다.
‘‘Iti kho, udāyi, na mamaṃ sāvakā imehi pañcahi dhammehi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우다이여, 이렇듯 내 제자들은 이 다섯 가지 법으로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는 것이 아니다.
243
우다이야, 이와는 다른 다섯 가지가 있다. 이 다섯 가지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한다.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의지해 지낸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우다이야, 첫째로 내 제자들은 나의 뛰어난 계행을 이렇게 칭송한다. ‘사문 고타마는 계를 갖추었다. 가장 높은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내 제자들이 뛰어난 계행을 두고 이렇게 칭송하는 바로 그것, 곧 ‘사문 고타마는 계를 갖추었다. 가장 높은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하는 이것이, 우다이야, 첫째 요인이다. 이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의지해 지낸다.
‘‘Atthi kho, udāyi, aññe ca pañca dhammā yehi pañcahi dhammehi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우다이여, 그런데 다른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그 다섯 가지 법으로 내 제자들은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낸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Idhudāyi, mamaṃ sāvakā adhisīle sambhāventi –
우다이여, 여기 내 제자들은 높은 계를 두고 나를 우러른다 —
‘sīlavā samaṇo gotamo param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ti.
‘사문 고따마는 계를 갖추었고, 으뜸가는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라고.
Yampudāyi, mamaṃ sāvakā adhisīle sambhāventi –
우다이여, 내 제자들이 높은 계를 두고 나를 우러르는 것 —
‘sīlavā samaṇo gotamo param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ti, ayaṃ kho, udāyi, paṭhamo dhammo yena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사문 고따마는 계를 갖추었고, 으뜸가는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라고 하는 것, 우다이여, 이것이 내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첫 번째 법이다.
244
또 우다이야, 내 제자들은 나의 뛰어난 앎과 봄을 이렇게 칭송한다. ‘사문 고타마는 알면서 “안다” 하고 말씀하신다. 보면서 “본다” 하고 말씀하신다. 사문 고타마는 곧바로 알고서 법을 설하시며, 곧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설하지 않으신다. 사문 고타마는 까닭을 갖추어 법을 설하시며, 까닭 없이는 설하지 않으신다. 사문 고타마는 놀라운 힘이 따르는 법을 설하시며, 그런 힘이 없는 법은 설하지 않으신다.’ 내 제자들이 뛰어난 앎과 봄을 두고 이렇게 칭송하는 바로 그것, 곧 ‘사문 고타마는 알면서 “안다” 하고 말씀하신다. 보면서 “본다” 하고 말씀하신다. 사문 고타마는 곧바로 알고서 법을 설하시며, 곧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설하지 않으신다. 사문 고타마는 까닭을 갖추어 법을 설하시며, 까닭 없이는 설하지 않으신다. 사문 고타마는 놀라운 힘이 따르는 법을 설하시며, 그런 힘이 없는 법은 설하지 않으신다’ 하는 이것이, 우다이야, 둘째 요인이다. 이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의지해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mamaṃ sāvakā abhikkante ñāṇadassane sambhāventi –
“우다이여, 또한 내 제자들은 빼어난 앎과 봄을 두고 나를 우러른다 —
‘jānaṃyevāha samaṇo gotamo –
‘사문 고따마는 알면서 말한다 —
jānāmīti, passaṃyevāha samaṇo gotamo –
「나는 안다」고. 사문 고따마는 보면서 말한다 —
passāmīti;
「나는 본다」고.
abhiññāya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nabhiññāya;
사문 고따마는 곧바로 알고서 법을 설하지, 곧바로 알지 못한 채 설하지 않는다.
sanidān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nidānaṃ;
사문 고따마는 근거를 갖추어 법을 설하지, 근거 없이 설하지 않는다.
sappāṭihāriy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ppāṭihāriya’nti.
사문 고따마는 효험을 갖추어 법을 설하지, 효험 없이 설하지 않는다’라고.
주 [불확실 — sappāṭihāriya는 「신통을 갖춘」과 「감복시키는·설득력 있는」으로 뜻이 갈린다]
Yampudāyi, mamaṃ sāvakā abhikkante ñāṇadassane sambhāventi –
우다이여, 내 제자들이 빼어난 앎과 봄을 두고 나를 우러르는 것 —
‘jānaṃyevāha samaṇo gotamo –
‘사문 고따마는 알면서 말한다 —
jānāmīti, passaṃyevāha samaṇo gotamo –
「나는 안다」고. 사문 고따마는 보면서 말한다 —
passāmīti;
「나는 본다」고.
abhiññāya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nabhiññāya;
사문 고따마는 곧바로 알고서 법을 설하지, 곧바로 알지 못한 채 설하지 않는다.
sanidān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nidānaṃ;
사문 고따마는 근거를 갖추어 법을 설하지, 근거 없이 설하지 않는다.
sappāṭihāriy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no appāṭihāriya’nti, ayaṃ kho, udāyi, dutiyo dhammo yena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사문 고따마는 효험을 갖추어 법을 설하지, 효험 없이 설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 우다이여, 이것이 내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두 번째 법이다.
주 [불확실 — sappāṭihāriya는 「신통을 갖춘」과 「감복시키는·설득력 있는」으로 뜻이 갈린다]
245
또 우다이야, 내 제자들은 나의 뛰어난 지혜를 이렇게 칭송한다. ‘사문 고타마는 지혜를 갖추었다. 가장 높은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아직 오지 않은 논쟁의 길을 보지 못할 리 없다. 이미 일어난 남의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지 못할 리 없다. 그럴 수는 없다.’ 우다이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처럼 알고 이처럼 보는 내 제자들이 내 말 중간중간에 끼어들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서 가르침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내 제자들이 나에게서 가르침을 바란다. 내 제자들이 뛰어난 지혜를 두고 이렇게 칭송하는 바로 그것, 곧 ‘사문 고타마는 지혜를 갖추었다. 가장 높은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아직 오지 않은 논쟁의 길을 보지 못할 리 없다. 이미 일어난 남의 주장을 이치에 맞게 꺾지 못할 리 없다. 그럴 수는 없다’ 하는 이것이, 우다이야, 셋째 요인이다. 이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의지해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mamaṃ sāvakā adhipaññāya sambhāventi –
“우다이여, 또한 내 제자들은 높은 지혜를 두고 나를 우러른다 —
‘paññavā samaṇo gotamo paramena paññākkhandhena samannāgato;
‘사문 고따마는 지혜롭고, 으뜸가는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taṃ vata anāgataṃ vādapathaṃ na dakkhati, uppannaṃ vā parappavādaṃ na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ṇhissatīti –
그가 앞으로 올 논의의 길을 내다보지 못하리라거나,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에 맞게 잘 눌러 논파하지 못하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럴 도리는 없다’라고.
Taṃ kiṃ maññasi, udāyi, api nu me sāvakā evaṃ jānantā evaṃ passantā antarantarā kathaṃ opāteyyu’’nti?
우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제자들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서 중간중간 말을 끊고 끼어들겠는가?”
주 [불확실 — 앵커 No.6 `Evaṃ`의 확정 문자열(“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은 이 자리에 실재하지 않는다. 저본의 `evaṃ`은 `evaṃ jānantā evaṃ passantā`의 부사 「이렇게」이므로 저본대로 옮겼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Na kho panāhaṃ, udāyi, sāvakesu anusāsaniṃ paccāsīsāmi;
“우다이여, 그런데 나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기대하지 않는다.
aññadatthu mamayeva sāvakā anusāsaniṃ paccāsīsanti.
도리어 내 제자들이 내게 가르침을 기대한다.
‘‘Yampudāyi, mamaṃ sāvakā adhipaññāya sambhāventi –
“우다이여, 내 제자들이 높은 지혜를 두고 나를 우러르는 것 —
‘paññavā samaṇo gotamo paramena paññākkhandhena samannāgato;
‘사문 고따마는 지혜롭고, 으뜸가는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taṃ vata anāgataṃ vādapathaṃ na dakkhati, uppannaṃ vā parappavādaṃ na sahadhammena niggahitaṃ niggaṇhissatīti –
그가 앞으로 올 논의의 길을 내다보지 못하리라거나,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에 맞게 눌러 논파하지 못하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럴 도리는 없다’라고.
Ayaṃ kho, udāyi, tatiyo dhammo yena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우다이여, 이것이 내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세 번째 법이다.
246
또 우다이야, 내 제자들이 어떤 괴로움에 잠기고 짓눌려 나를 찾아온다. 그들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는다. 나는 질문을 받고 그 진리를 설명해 준다. 내가 질문에 답하면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또 그들은 괴로움의 발생도 묻고, 괴로움의 소멸도 묻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도 묻는다. 나는 질문을 받고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해 준다. 이번에도 내가 질문에 답하면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내 제자들이 괴로움에 짓눌려 나를 찾아와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내가 설명하여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바로 그것이, 우다이야, 넷째 요인이다. 이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받들고 예우하며, 존경하고 공경한 끝에 의지해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mama sāvakā yena dukkhena dukkhotiṇṇā dukkhaparetā te maṃ upasaṅkamitvā dukkhaṃ ariyasaccaṃ pucchanti, tesāh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uṭṭho byākaromi, tesāhaṃ cittaṃ ārādhemi pañhassa veyyākaraṇena;
“우다이여, 또한 내 제자들은 어떤 괴로움으로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내게 다가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는다. 그들이 물으면 나는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답해 주고, 물음에 답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te maṃ dukkhasamudayaṃ… dukkhanirodhaṃ… dukkh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riyasaccaṃ pucchanti, tesāhaṃ dukkh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riyasaccaṃ puṭṭho byākaromi, tesāhaṃ cittaṃ ārādhemi pañhassa veyyākaraṇena.
그들은 내게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는다. 그들이 물으면 나는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답해 주고, 물음에 답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6.1에서 되살렸습니다.
Yampudāyi, mama sāvakā yena dukkhena dukkhotiṇṇā dukkhaparetā te maṃ upasaṅkamitvā dukkhaṃ ariyasaccaṃ pucchanti, tesāh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uṭṭho byākaromi, tesāhaṃ cittaṃ ārādhemi pañhassa veyyākaraṇena.
우다이여, 내 제자들이 어떤 괴로움으로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내게 다가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그들이 물으면 내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답해 주고, 물음에 답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
Te maṃ dukkhasamudayaṃ … dukkhanirodhaṃ… dukkh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riyasaccaṃ pucchanti.
그들은 내게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묻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6.1에서 되살렸습니다.
Tesāhaṃ dukkh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riyasaccaṃ puṭṭho byākaromi.
그들이 물으면 나는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답해 준다.
Tesāhaṃ cittaṃ ārādhemi pañhassa veyyākaraṇena.
물음에 답해 나는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Ayaṃ kho, udāyi, catuttho dhammo yena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우다이여, 이것이 내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예경하며, 공경하고 중히 여기고서 의지하여 지내게 하는 네 번째 법이다.
247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네 가지 새김의 확립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며 지낸다. 열심히 알아차리고 새김을 갖추어,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에서 법을 따라 관찰하며 지낼 때에도 그렇게 한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7.2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네 가지 바른 노력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상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의욕을 낸다.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상태를 버리려고도 같은 방식으로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상태가 일어나게 하려고도 그렇게 한다. 이미 일어난 좋은 상태가 머물고, 사라지지 않고, 더욱 늘고, 커지고, 닦여서 가득 채워지게 하려고도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cattāro sammappadhāne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네 가지 바른 노력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써 나아간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써 나아간다.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써 나아간다.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잊지 않고, 더욱 커지게 하고, 넓히고, 닦아서 원만히 채우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써 나아간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의욕과 삼매와 힘씀의 의지를 갖춘 신통의 바탕을 닦는다. 정진과 삼매와 힘씀의 의지를 갖춘 신통의 바탕도 닦는다. 마음과 삼매와 힘씀의 의지를 갖춘 신통의 바탕도 닦고, 탐구와 삼매와 힘씀의 의지를 갖춘 신통의 바탕도 닦는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cattāro iddhipāde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vīriy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citt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vīmaṃsā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고, 정진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고, 마음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고, 검증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다섯 가지 능력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고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믿음의 능력을 닦는다. 정진의 능력, 새김의 능력, 삼매의 능력도 닦는다. 고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능력도 닦는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pañcindriyāni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다섯 기능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saddhindriyaṃ bhāveti upasamagāmiṃ sambodhagāmiṃ;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믿음의 기능을 닦는다.
vīriyindriyaṃ bhāveti…pe… satindriyaṃ bhāveti… samādhindriyaṃ bhāveti… paññindriyaṃ bhāveti upasamagāmiṃ sambodhagāmiṃ.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정진의 기능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마음챙김의 기능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삼매의 기능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기능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7.15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다섯 가지 힘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고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믿음의 힘을 닦는다. 정진의 힘, 새김의 힘, 삼매의 힘도 닦는다. 고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힘도 닦는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pañca balāni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다섯 힘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saddhābalaṃ bhāveti upasamagāmiṃ sambodhagāmiṃ;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믿음의 힘을 닦는다.
vīriyabalaṃ bhāveti…pe… satibalaṃ bhāveti… samādhibalaṃ bhāveti… paññābalaṃ bhāveti upasamagāmiṃ sambodhagāmiṃ.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정진의 힘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마음챙김의 힘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삼매의 힘을 닦고, 고요함으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힘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7.19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새김의 깨달음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것은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여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다. 법의 탐구, 정진, 기쁨, 편안함, 삼매의 깨달음 구성요소도 닦는다. 평정의 깨달음 구성요소도 닦는데, 이것 역시 멀리 떠남과 탐욕이 사라짐과 소멸에 의지하여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sattabojjhaṅge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일곱 깨달음 요소를 닦는다.
Idhudāyi, bhikkhu sat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를 닦는다.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bhāveti…pe… vīriyasambojjhaṅgaṃ bhāveti… pītisambojjhaṅgaṃ bhāveti… passaddhisambojjhaṅgaṃ bhāveti… samādhisambojjhaṅgaṃ bhāveti… upekkhā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를 닦고,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정진의 깨달음 요소를 닦고,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희열의 깨달음 요소를 닦고,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를 닦고,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삼매의 깨달음 요소를 닦고,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탐욕이 사라짐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며, 온전히 내려놓음으로 무르익는 평온의 깨달음 요소를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47.23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또 우다이야, 나는 제자들에게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대로 닦아 가는 내 제자들은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을 닦는다. 우다이야, 여기 비구는 바른 견해를 닦고, 바른 생각을 닦고, 바른 말을 닦고, 바른 행위를 닦는다. 바른 생계를 닦고, 바른 노력을 닦고, 바른 새김을 닦고, 바른 삼매를 닦는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높은 앎으로 완성의 저 언덕에 이르러 지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riyaṃ aṭṭhaṅgikaṃ maggaṃ bhāventi.
“우다이여, 또한 나는 제자들에게 닦는 길을 일러 주었고, 그 길을 따라 닦아 내 제자들은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sammādiṭṭhiṃ bhāveti, sammāsaṅkappaṃ bhāveti, sammāvācaṃ bhāveti, sammākammantaṃ bhāveti, sammāājīvaṃ bhāveti, sammāvāyāmaṃ bhāveti, sammāsatiṃ bhāveti, sammāsamādhiṃ bhāveti.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바른 견해를 닦고, 바른 사유를 닦고, 바른 말을 닦고, 바른 행위를 닦고, 바른 생계를 닦고, 바른 정진을 닦고, 바른 마음챙김을 닦고, 바른 삼매를 닦는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른 앎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48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수행의 길을 가르쳤다. 이 길을 따라 닦는 제자들은 여덟 가지 해탈을 닦는다. 물질적 형상을 지닌 채 형상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안으로는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에 쏠려 있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ṭṭha vimokkhe bhāventi.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설했으니, 그대로 도를 닦은 내 제자들은 여덟 가지 해탈을 닦는다.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ṃ paṭhamo vimokkho;
물질을 지닌 이가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ṃ dutiyo vimokkho;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ṃ tatiyo vimokkho;
‘아름답다’고 마음을 기울인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형상에 대한 인식을 모두 넘어선다. 부딪힘에 대한 인식은 가라앉고, 갖가지 인식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허공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허공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무한한 허공의 영역마저 넘어선다. 그리고 ‘의식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의식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atuttho vimokkho;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pañcamo vimokkho;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
무한한 의식의 영역마저 넘어선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하며 아무것도 없는 영역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 아무것도 없는 영역마저 넘어서서,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영역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그 영역마저 넘어서서, 인식과 느낌이 소멸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haṭṭho vimokkho;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sattamo vimokkho;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aṭṭhamo vimokkho.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이 길을 따라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로 아는 지혜를 완성했다. 그들은 그 끝에 이르러 지내고 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를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49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수행의 길을 가르쳤다. 이 길을 따라 닦는 제자들은 여덟 가지 뛰어넘는 경지를 닦는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을 지닌 채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하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ṭṭha abhibhāyatanāni bhāventi.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설했으니, 그대로 도를 닦은 내 제자들은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를 닦는다.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paṭh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을 지닌 채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하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dutiy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하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tatiy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하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catutth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 아마꽃이 그렇다.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옷감도 그렇다. 둘 다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 바로 그와 같이 그 사람이 보는 형상들도 푸르게 빛난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푸르고 푸른 빛깔에 푸른 모습에 푸른 광채인 것들을 본다.
Seyyathāpi nāma umāpupp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seyyathāpi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마치 아마꽃이 푸르고 푸른 빛깔에 푸른 모습에 푸른 광채이듯, 또는 바라나시산 천을 양면으로 곱게 다듬어 푸르고 푸른 빛깔에 푸른 모습에 푸른 광채이듯,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바로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푸르고 푸른 빛깔에 푸른 모습에 푸른 광채인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pañc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난다. 까니까라꽃이 그렇다.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옷감도 그렇다. 둘 다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난다. 바로 그와 같이 그 사람이 보는 형상들도 노랗게 빛난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누렇고 누런 빛깔에 누런 모습에 누런 광채인 것들을 본다.
Seyyathāpi nāma kaṇikārapupp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seyyathāpi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마치 깐니까라꽃이 누렇고 누런 빛깔에 누런 모습에 누런 광채이듯, 또는 바라나시산 천을 양면으로 곱게 다듬어 누렇고 누런 빛깔에 누런 모습에 누런 광채이듯,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바로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누렇고 누런 빛깔에 누런 모습에 누런 광채인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chaṭṭh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 반두지와까꽃이 그렇다.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옷감도 그렇다. 둘 다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 바로 그와 같이 그 사람이 보는 형상들도 붉게 빛난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붉고 붉은 빛깔에 붉은 모습에 붉은 광채인 것들을 본다.
Seyyathāpi nāma bandhujīvakapupp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seyyathāpi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마치 반두지와까꽃이 붉고 붉은 빛깔에 붉은 모습에 붉은 광채이듯, 또는 바라나시산 천을 양면으로 곱게 다듬어 붉고 붉은 빛깔에 붉은 모습에 붉은 광채이듯,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바로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붉고 붉은 빛깔에 붉은 모습에 붉은 광채인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 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satt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이는 안으로 형상이라는 인식 없이 밖의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 샛별이 그렇다.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옷감도 그렇다. 둘 다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 바로 그와 같이 그 사람이 보는 형상들도 희게 빛난다. 그는 ‘나는 이것들을 뛰어넘어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뛰어넘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희고 흰 빛깔에 흰 모습에 흰 광채인 것들을 본다.
Seyyathāpi nāma osadhitārakā odātā odātavaṇṇā odātanidassanā odātanibhāsā, seyyathāpi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odātaṃ odātavaṇṇaṃ odātanidassanaṃ odātanibhāsaṃ;
마치 샛별이 희고 흰 빛깔에 흰 모습에 흰 광채이듯, 또는 바라나시산 천을 양면으로 곱게 다듬어 희고 흰 빛깔에 흰 모습에 흰 광채이듯,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바로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떤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희고 흰 빛깔에 흰 모습에 흰 광채인 것들을 본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지배하여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이렇게 인식한다.
Idaṃ aṭṭh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이 길을 따라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로 아는 지혜를 완성했다. 그들은 그 끝에 이르러 지내고 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를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0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수행의 길을 가르쳤다. 이 길을 따라 닦는 제자들은 열 가지 까시나의 경지를 닦는다. 어떤 이는 땅 까시나를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둘이 아니고 한량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물 까시나, 불 까시나, 바람 까시나도 그렇게 인식한다. 푸른 까시나, 노란 까시나, 붉은 까시나, 흰 까시나도 그렇다. 허공 까시나와 의식 까시나도 마찬가지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asa kasiṇāyatanāni bhāventi.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설했으니, 그대로 도를 닦은 내 제자들은 열 가지 까시나의 경지를 닦는다.
Pathavī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m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어떤 이는 땅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āpokasiṇameko sañjānāti…pe… tejokasiṇameko sañjānāti… vāyokasiṇameko sañjānāti… nīlakasiṇameko sañjānāti… pītakasiṇameko sañjānāti… lohitakasiṇameko sañjānāti… odātakasiṇameko sañjānāti… ākāsakasiṇameko sañjānāti … viññāṇa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m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어떤 이는 물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불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바람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푸름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누름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붉음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흼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허공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어떤 이는 의식의 까시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게, 한량없이 인식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50.2에서 되살렸습니다.
이 길을 따라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로 아는 지혜를 완성했다. 그들은 그 끝에 이르러 지내고 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를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1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수행의 길을 가르쳤다. 이 길을 따라 닦는 제자들은 네 가지 선정을 닦는다. 우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마음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처음 겨눔과 이어 살핌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솜씨 좋은 목욕사나 그의 제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놋쇠 대야에 목욕 가루를 뿌리고 물을 조금씩 끼얹어 가며 반죽한다. 그러면 가루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고 가득 차서, 안팎으로 물기가 두루 스민다. 그래도 겉으로 새어 나오지는 않는다. 우다이여, 바로 그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cattāri jhānāni bhāventi.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설했으니, 그대로 도를 닦은 내 제자들은 네 가지 선(禪)을 닦는다.
Idhudāyi,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udāyi,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ṃ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ṃ paripphosakaṃ sanneyya, sāyaṃ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o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iṇī;
우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목욕사나 목욕사의 제자가 청동 대야에 목욕가루를 붓고 물을 뿌리고 또 뿌려 반죽하면, 그 목욕가루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고 물기에 젖어 안팎으로 물기가 스미되 방울져 흐르지는 않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udāyi, bhikkhu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그와 같이 우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우다이여, 비구는 다시 처음 겨눔과 이어 살핌을 가라앉힌다. 마음은 안으로 맑고 고요해지고 하나로 모인다. 겨눔도 살핌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물이 솟아나는 깊은 호수가 있다고 하자. 이 호수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없다. 동쪽에도, 서쪽에도, 북쪽에도, 남쪽에도 없다. 하늘도 때맞춰 비를 내려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호수 바닥에서 찬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그 물이 호수 전체를 적시고,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진다. 호수 어디에도 찬물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바로 그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우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하나됨이 있으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6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udāyi,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우다이여, 마치 깊고 물이 솟아오르는 못이 있는데,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devo ca na kālena kālaṃ sammā dhāraṃ anuppaveccheyya;
그 못에는 동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서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북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남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으며, 하늘도 때때로 비를 제대로 내려 주지 않는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ṃ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그런데도 바로 그 못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바로 그 못을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여, 온 못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자.
Evameva kho, udāyi, bhikkhu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그와 같이 우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우다이여, 비구는 다시 기쁨에서 마음이 떠나 평정하게 지낸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하는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기쁨 없는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기쁨 없는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푸른 연꽃 못, 붉은 연꽃 못, 흰 연꽃 못이 있다고 하자. 그 못에서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물속에서 자란다. 물 밖으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란다. 이 꽃들은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찬물에 스며들고 흠뻑 젖어 가득 찬다. 푸른 연꽃이든 붉은 연꽃이든 흰 연꽃이든, 찬물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바로 그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기쁨 없는 즐거움으로 적신다. 흠뻑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기쁨 없는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Puna caparaṃ, udāyi, bhikkhu pītiyā ca virāgā…pe…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우다이여, 비구는 희열이 가시어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을 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8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udāyi,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ṃ, uppalānaṃ vā padumānaṃ vā puṇḍarīkānaṃ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우다이여, 마치 푸른 연꽃 못이나 붉은 연꽃 못이나 흰 연꽃 못에서 어떤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은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라는데, 그것들은 꼭대기까지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흠뻑 젖고 두루 젖고 가득 차고 고루 스며들어, 그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udāyi, bhikkhu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그와 같이 우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고루 퍼지게 하니,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우다이여, 비구는 다시 즐거움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린다.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은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정과 알아차림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비구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다이여, 어떤 사람이 머리까지 흰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고 하자.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우다이여, 바로 그와 같이 비구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우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앉아 있으니,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udāyi,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ṃ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ṃ assa;
우다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흰 천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앉아 있으면,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udāyi, bhikkhu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바로 그와 같이 우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앉아 있으니,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이 길을 따라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곧바로 아는 지혜를 완성했다. 그들은 그 끝에 이르러 지내고 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를 끝까지 이루어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2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형상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을 먹고 자란다. 또 덧없는 몸이어서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이 몸에 기대어 있고, 이 몸에 묶여 있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쌓아 올려졌으며, 무상하여 문질러 주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ṃ’.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매여 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유리 보석이 하나 있다고 하자. 맑고 아름다우며 타고난 품질이 좋은 보석이다. 팔각으로 잘 깎여 깨끗하고 투명하며, 어느 면으로 보아도 흠이 없다. 이 보석에는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또는 옅은 빛깔의 실이 꿰어져 있다.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손에 쥐고 살펴본다. 그러고는 이렇게 알아본다. ‘이것은 맑고 아름다운 유리 보석이다. 팔각으로 잘 깎여 깨끗하고 투명하다. 여기에는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또는 옅은 빛깔의 실이 꿰어져 있다.’[불확실]
Seyyathāpi, udāyi,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우다이여, 마치 아름답고 훌륭한 종류의 여덟 모가 난 유리 보석이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며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데,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거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옅은 갈색 실이 꿰어져 있는 것과 같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손에 놓고 살펴본다면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이 유리 보석은 아름답고 훌륭한 종류이며 여덟 모가 나고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며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다.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거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옅은 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라고 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형상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을 먹고 자란다. 또 덧없는 몸이어서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이 몸에 기대어 있고, 이 몸에 묶여 있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불확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쌓아 올려졌으며, 무상하여 문질러 주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매여 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3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이 몸에서 또 하나의 몸을 만들어 낸다. 그 몸은 형상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온갖 지체를 갖추었고, 감각기관에도 결함이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an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모두 갖추고 감각 기능이 모자람 없는 몸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문자 풀에서 속대를 뽑아낸다고 하자.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풀이고, 이것은 속대이다. 풀은 따로 있고 속대도 따로 있다. 속대는 풀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
Seyyathāpi, udāyi, puriso muñjamhā īsikaṃ pabbāheyya;
우다이여, 마치 사람이 문자 풀에서 속대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muñjo, ayaṃ īsikā;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속대다.
añño muñjo, aññā īsikā;
문자 풀이 다르고 속대가 다르다.
muñjamhātveva īsikā pabbāḷhā’ti.
그러나 속대는 바로 문자 풀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또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는다고 하자.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은 따로 있고 칼집도 따로 있다. 칼은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
Seyyathā vā panudāyi, puriso asiṃ kosiyā pabbāheyya;
또는 우다이여, 마치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si, ayaṃ kosi;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añño asi aññā kosi;
칼이 다르고 칼집이 다르다.
kosiyātveva asi pabbāḷho’ti.
그러나 칼은 바로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또 어떤 사람이 광주리에서 뱀을 꺼낸다고 하자.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광주리이다. 뱀은 따로 있고 광주리도 따로 있다. 뱀은 광주리에서 꺼내진 것이다.’
Seyyathā vā, panudāyi, puriso ahiṃ karaṇḍā uddhareyya;
또는 우다이여, 마치 사람이 바구니에서 뱀을 꺼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hi, ayaṃ karaṇḍo;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바구니다.
añño ahi, añño karaṇḍo;
뱀이 다르고 바구니가 다르다.
karaṇḍātveva ahi ubbhato’ti.
그러나 뱀은 바로 바구니에서 꺼내진 것이다.'라고.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이 몸에서 또 하나의 몸을 만들어 낸다. 그 몸은 형상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온갖 지체를 갖추었고, 감각기관에도 결함이 없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불확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an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모두 갖추고 감각 기능이 모자람 없는 몸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4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여러 가지 신통의 힘을 경험한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벽이든 담이든 산이든 허공을 가듯 걸림 없이 지나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솟아오르고 잠겨 든다. 물 위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땅 위에서처럼 걷는다. 가부좌를 튼 채 날개 달린 새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이토록 큰 신통력과 위세를 지닌 해와 달까지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몸으로 범천의 세계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nti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여러 가지 신통의 종류를 몸소 겪는다 —
ekopi hutvā bahudhā hon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고, 여럿이면서 하나가 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ā gacchanti, seyyathāpi ākāse;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간다, 마치 허공에서처럼.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n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솟아올랐다 잠겼다 한다, 마치 물에서처럼.
udakepi abhijjamāne gacchanti, seyyathāpi pathaviyaṃ;
물에서도 물을 가르지 않고 간다, 마치 땅에서처럼.
ākāsepi pallaṅkena kaman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 나아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anti parimajjan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nti.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으며,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재함을 부린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솜씨 좋은 도공이나 그 제자가 있다고 하자. 이들은 잘 이겨 놓은 흙으로 원하는 그릇을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빚어낸다. 솜씨 좋은 상아 세공사나 그 제자도 마찬가지다. 잘 다듬어 놓은 상아로 원하는 세공품을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 낸다. 솜씨 좋은 금 세공사나 그 제자 또한 그렇다. 잘 다듬어 놓은 금으로 원하는 세공품을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 낸다.
Seyyathāpi, udāyi, dakkho kumbhakāro vā kumbh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āya mattikāya yaṃ yadeva bhājan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우다이여, 마치 솜씨 좋은 옹기장이나 옹기장이의 제자가 잘 다듬어진 진흙으로 어떤 그릇 모양이든 원하는 대로 그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udāyi, dakkho dantakāro vā dant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dantasmiṃ yaṃ yadeva dant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우다이여, 마치 솜씨 좋은 상아 세공인이나 상아 세공인의 제자가 잘 다듬어진 상아로 어떤 상아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그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udāyi, dakkho suvaṇṇakāro vā suvaṇṇ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suvaṇṇasmiṃ yaṃ yadeva suvaṇṇ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우다이여, 마치 솜씨 좋은 금 세공인이나 금 세공인의 제자가 잘 다듬어진 금으로 어떤 금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그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여러 가지 신통의 힘을 경험한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벽이든 담이든 산이든 허공을 가듯 걸림 없이 지나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솟아오르고 잠겨 든다. 물 위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땅 위에서처럼 걷는다. 가부좌를 튼 채 날개 달린 새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이토록 큰 신통력과 위세를 지닌 해와 달까지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몸으로 범천의 세계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nti –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여러 가지 신통의 종류를 몸소 겪는다 —
ekopi hutvā bahudhā hon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고, 여럿이면서 하나가 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ā gacchanti, seyyathāpi ākāse;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간다, 마치 허공에서처럼.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n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솟아올랐다 잠겼다 한다, 마치 물에서처럼.
udakepi abhijjamāne gacchanti, seyyathāpi pathaviyaṃ;
물에서도 물을 가르지 않고 간다, 마치 땅에서처럼.
ākāsepi pallaṅkena kaman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 나아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anti parimajjan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nti.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으며,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재함을 부린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5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맑고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늘의 귀로 두 종류의 소리를 듣는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다.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힘센 소라고둥 부는 이가 있다고 하자.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 소리를 알린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anti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신들의 소리와 인간들의 소리를,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Seyyathāpi, udāyi, balavā saṅkhadhamo appakasireneva cātuddisā viññāpeyya;
우다이여, 마치 힘센 소라 부는 사람이 아주 힘들이지 않고 네 방향에 알리는 것과 같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맑고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늘의 귀로 두 종류의 소리를 듣는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anti –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신들의 소리와 인간들의 소리를,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6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꿰뚫어 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다고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은 떠났다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다고 알고, 성냄을 떠난 마음은 떠났다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도 있는 그대로 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들었다고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졌다고 안다. 커진 마음과 커지지 않은 마음을 각각 그대로 안다.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은 그렇다고 알고, 더없이 높은 마음은 더없이 높다고 안다. 집중된 마음과 집중되지 않은 마음도 그렇게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했다고 알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은 해탈하지 못했다고 안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anti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감싸 안아 꿰뚫어 안다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an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anti;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an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anti;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an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anti;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saṃ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an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anti;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an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anti;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an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anti;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an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anti;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an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anti.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치장하기 좋아하는 젊은 여자나 남자가 있다고 하자. 맑고 깨끗한 거울이나 맑은 물그릇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본다. 얼룩이 있으면 있다고 알고, 없으면 없다고 안다.
Seyyathāpi, udāyi,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jāneyya;
우다이여, 마치 젊고 어린, 몸단장을 즐기는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맑은 거울이나 맑은 물 그릇에 제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으면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으면 '점이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꿰뚫어 안다. 탐욕이 있는 마음과 떠난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과 떠난 마음을 그렇게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떠난 마음, 움츠러든 마음과 흩어진 마음도 그렇게 안다. 커진 마음과 커지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더없이 높은 마음도 그렇다. 집중된 마음과 집중되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과 해탈하지 못한 마음도 그렇게 안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anti –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감싸 안아 꿰뚫어 안다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anti, vītarāgaṃ vā cittaṃ…pe… s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vā cittaṃ… s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anti.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56.2 ~ PN:mn77/256.9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7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을 기억한다.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도 기억한다. 백 생, 천 생, 십만 생을 기억한다.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숱한 겁도 거슬러 올라가 기억한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가문,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으며, 이런 수명을 누렸다.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가문,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으며, 이런 수명을 누렸다.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렇게 생김새와 내력까지 갖춘 여러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nti, seyyathidaṃ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여러 가지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낸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무너지는 겁도 여럿, 이루어지는 겁도 여럿,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도 여럿을 —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와 같이 모습과 자취를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낸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간다고 하자. 그는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온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갔다. 거기서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 마을에서 또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는 그 마을에서 내 마을로 돌아왔다.’[불확실]
Seyyathāpi, udāyi, puriso sakamhā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tamhāpi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우다이여, 마치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고,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가고,
so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ccheyya;
그가 그 마을에서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sakamhā gāmā aññaṃ gāmaṃ agacchiṃ, tatra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나는 내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갔고, 거기서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침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mhāpi gāmā amuṃ gāmaṃ agacchiṃ, tatrāpi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somhi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to’ti.
그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고,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침묵했다. 그런 나는 그 마을에서 다시 내 마을로 돌아왔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한 생부터 시작하여 생김새와 내력까지 갖춘 여러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nti, seyyathidaṃ –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여러 가지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낸다, 곧 —
ekampi jātiṃ…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nti.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무너지는 겁도 여럿, 이루어지는 겁도 여럿,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도 여럿을 —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모습과 자취를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 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57.2 ~ PN:mn77/257.4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258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맑고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가는 곳도 안다. ‘아,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헐뜯고 그릇된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의 곳인 지옥에 태어났다. 그리고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헐뜯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이렇게 안다. 맑고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늘의 눈으로 이처럼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가는 곳도 안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n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anti –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꿰뚫어 안다[불확실]
불확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아,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쁘게 행하고 말로 나쁘게 행하고 마음으로 나쁘게 행하였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런데 아,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게 행하고 말로 좋게 행하고 마음으로 좋게 행하였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n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anti.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꿰뚫어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문이 있는 집 두 채가 마주 서 있다고 하자. 눈 밝은 사람이 그 가운데 서 있다. 그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이리저리 거닐기도 하는 것을 본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맑고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가는 곳도 안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불확실]
Seyyathāpi, udāyi, dve agārā sadvārā.
우다이여, 마치 문이 있는 두 채의 집이 있는 것과 같다.
Tatra cakkhumā puriso majjhe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ṃ pavisantepi nikkhamantepi anucaṅkamantepi anuvicarantepi;
거기서 눈 있는 사람이 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이리저리 거니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볼 것이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n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anti…pe… tatra ca p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꿰뚫어 안다 — '아,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쁘게 행하고 말로 나쁘게 행하고 마음으로 나쁘게 행하였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런데 아,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게 행하고 말로 좋게 행하고 마음으로 좋게 행하였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꿰뚫어 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77:258.2 ~ PN:mn77/258.4에서 되살렸습니다.
259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수행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번뇌가 다한다. 그래서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직접 알고 이루어 머문다. 우다이여, 비유하자면 산자락에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은 호수가 있다고 하자. 눈 밝은 사람이 기슭에 서서 호수 속을 본다. 조개와 고둥, 자갈과 모래, 물고기 떼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호수는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다. 여기에 조개와 고둥, 자갈과 모래, 물고기 떼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한다.’ 우다이여, 내가 일러 준 길도 바로 이와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은 번뇌가 다한다. 그래서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직접 알고 이루어 머문다. 이 길에서 신통지로 완성의 피안에 이른 내 제자들이 많이 있다.[불확실]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i.
"또한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udāyi,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ṭ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우다이여, 마치 산속에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는 못이 있어, 거기서 눈 있는 사람이 기슭에 서서 조개와 소라도, 자갈과 조약돌도, 물고기 떼가 다니는 것도 머무는 것도 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ṭ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이 못은 맑고 투명하고 흐림이 없다. 여기 이 조개와 소라들도, 자갈과 조약돌들도, 물고기 떼들도 다니고 머문다.'라고.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i.
바로 이와 같이,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일러 주었고, 그렇게 도닦은 나의 제자들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최상의 지혜의 궁극과 완성에 이르러 머문다.
우다이여, 이것이 다섯 번째 법이다. 이 법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중하고 공경하며 귀하게 여긴다. 나를 받들고 의지하여 머문다. 우다이여, 이 다섯 가지 법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존중하고 공경하며 귀하게 여기고 받든다. 그래서 나를 의지하여 머문다.”
Ayaṃ kho, udāyi, pañcamo dhammo yena mama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i.
우다이여, 이것이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경하며, 존경하고 존중하여 의지해 머무는 다섯째 법이다.
‘‘Ime kho, udāyi, pañca dhammā yehi mamaṃ sāva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ntī’’ti.
"우다이여, 이것이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경하며, 존경하고 존중하여 의지해 머무는 다섯 가지 법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행자 사꿀루다이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큰 사꿀루다이 경」이 일곱 번째로 끝났다.[불확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sakuludāyī paribbājak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사꿀루다이 유행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Mahāsakuludāyisuttaṃ niṭṭhitaṃ sattamaṃ.
마하사꿀루다이 경이 끝났다. 일곱 번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