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ahāmālukyasuttaṃ
4. 말루꺄 긴 경
129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세존이시여, 예.”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bhikkhavo’’ti.
“비구들이여.”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가르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그대들은 기억하고 있는가?”
‘‘dhāretha no tumhe, bhikkhave, mayā desitāni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이렇게 물으시자 말룽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가르치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Evaṃ vutte,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말루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ahaṃ kho, bhante, dhāremi bhagavatā desitāni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가르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Yathā kathaṃ pana tvaṃ, mālukyaputta, dhāresi mayā desitāni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말루꺄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가르치신 첫째는 유신견, 곧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의심이고, 셋째는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입니다. 넷째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의욕이고, 다섯째는 악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세존께서 가르치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Sakkāyadiṭṭhi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desitaṃ dhāremi;
“세존이시여, 저는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를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설하신 것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vicikicch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desitaṃ dhāremi;
세존이시여, 저는 의심을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설하신 것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sīlabbataparāmās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desitaṃ dhāremi;
세존이시여, 저는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을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설하신 것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kāmacchand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desitaṃ dhāremi;
세존이시여, 저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를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설하신 것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byāpād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desitaṃ dhāremi.
세존이시여, 저는 악의를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족쇄로 설하신 것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Evaṃ kho ahaṃ, bhante, dhāremi bhagavatā desitāni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이렇게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이 다섯 가지 족쇄가 그렇게 가르쳐졌다고, 도대체 누구를 두고 기억하는가?
‘‘Kassa kho nāma tvaṃ, mālukyaputta, imāni evaṃ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desitāni dhāresi?
“말루꺄뿟따여, 그대는 대체 누가 설한 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그렇게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말룽꺄뿟따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어 그대를 몰아세우지 않겠는가?
Nanu, mālukyaputta,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iminā taruṇūpamena upārambhena upārambhissanti?
말루꺄뿟따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이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어 논박하지 않겠는가?
말룽꺄뿟따여, 갓난아이는 어리고 여려서 반듯이 누워만 있다. 그에게는 ‘자기 존재’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유신견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유신견의 잠재 성향이 잠복해 있다.
Daharassa hi, mālukyaputta,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sakkāyotipi na hoti, kuto panassa uppajjissati sakkāyadiṭṭhi?
말루꺄뿟따여,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에게는 ‘자기 존재’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그에게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가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Anusetvevassa sakkāyadiṭṭhānusayo.
그에게는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을 뿐이다.
말룽꺄뿟따여, 어리고 여려서 반듯이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법들’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법들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의심의 잠재 성향이 잠복해 있다.
Daharassa hi, mālukyaputta,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dhammātipi na hoti, kuto panassa uppajjissati dhammesu vicikicchā?
말루꺄뿟따여,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에게는 ‘법’이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그에게 법들에 대한 의심이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Anusetvevassa vicikicchānusayo.
그에게는 의심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을 뿐이다.
말룽꺄뿟따여, 어리고 여려서 반듯이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계율’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그 집착의 잠재 성향이 잠복해 있다.
Daharassa hi, mālukyaputta,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sīlātipi na hoti, kuto panassa uppajjissati sīlesu sīlabbataparāmāso?
말루꺄뿟따여,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에게는 ‘계’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그에게 계들에 대한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Anusetvevassa sīlabbataparāmāsānusayo.
그에게는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을 뿐이다.
말룽꺄뿟따여, 어리고 여려서 반듯이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감각적 욕망’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의욕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잠재 성향이 잠복해 있다.
Daharassa hi, mālukyaputta,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kāmātipi na hoti, kuto panassa uppajjissati kāmesu kāmacchando?
말루꺄뿟따여,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에게는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그에게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감각적 욕망의 욕구가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Anusetvevassa kāmarāgānusayo.
그에게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을 뿐이다.
말룽꺄뿟따여, 어리고 여려서 반듯이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중생’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중생들에 대한 악의가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악의의 잠재 성향이 잠복해 있다.
Daharassa hi, mālukyaputta,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sattātipi na hoti, kuto panassa uppajjissati sattesu byāpādo?
말루꺄뿟따여,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아기에게는 ‘중생’이라는 것조차 없는데, 하물며 그에게 중생들에 대한 악의가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Anusetvevassa byāpādānusayo.
그에게는 악의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을 뿐이다.
말룽꺄뿟따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어 그대를 몰아세우지 않겠는가?”
Nanu, mālukyaputta,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iminā taruṇūpamena upārambhena upārambhissantī’’ti?
말루꺄뿟따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이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어 논박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지금이 바로 세존께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가르쳐 주실 때입니다.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잘 기억할 것입니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etassa, bhagavā, kālo, etassa, sugata, kālo yaṃ bhagavā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deseyya.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세존께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이야기하겠다.” “예,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Tena hānanda,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그러면 아난다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30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배움이 없는 범부는 성자들을 만나 보지 못했다. 성자의 법에 밝지 못하고, 성자의 법으로 길들여지지 못했다. 참된 사람들도 만나 보지 못했다. 참된 사람의 법에 밝지 못하고, 그 법으로 길들여지지 못했다. 그래서 유신견에 사로잡힌 마음, 유신견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Idhānanda,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sakkāyadiṭṭhi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sakkāyadiṭṭhiparetena;
“아난다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길들지 못했으며, 참된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길들지 못하여,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고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이미 일어난 유신견에서 벗어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 유신견은 뿌리를 내려 다스려지지 않은 채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uppannāya ca sakkāyadiṭṭhiyā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Tassa sā sakkāyadiṭṭhi thāmagatā appaṭivinī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그에게 그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는 굳어지고 제거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는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 의심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 의심은 뿌리를 내려 다스려지지 않은 채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Vicikicchā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vicikicchāparetena;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고 의심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문다.
uppannāya ca vicikicchāy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Tassa sā vicikicchā thāmagatā appaṭivinītā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그에게 그 의심은 굳어지고 제거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는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 그 집착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 집착은 뿌리를 내려 다스려지지 않은 채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Sīlabbataparāmās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sīlabbataparāmāsaparetena;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고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문다.
uppannassa ca sīlabbataparāmās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Tassa so sīlabbataparāmāso thāmagato appaṭivinīto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그에게 그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은 굳어지고 제거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 그 탐욕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그 탐욕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 탐욕은 뿌리를 내려 다스려지지 않은 채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Kāmarāg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kāmarāgaparetena;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문다.
uppannassa ca kāmarāg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Tassa so kāmarāgo thāmagato appaṭivinīto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그에게 그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은 굳어지고 제거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는 악의에 사로잡힌 마음, 악의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 악의는 뿌리를 내려 다스려지지 않은 채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Byāpād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byāpādaparetena;
악의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고 악의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문다.
uppannassa ca byāpād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Tassa so byāpādo thāmagato appaṭivinīto orambhāgiyaṃ saṃyojanaṃ.
그에게 그 악의는 굳어지고 제거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131
“그러나 아난다여, 배움이 있는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만나 보았다. 성자의 법에 밝고, 성자의 법으로 잘 길들여졌다. 참된 사람들도 만나 보았다. 참된 사람의 법에 밝고, 그 법으로 잘 길들여졌다. 그래서 유신견에 사로잡힌 마음, 유신견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Sutavā ca kho, ānanda, ariyasāvako ariyānaṃ dassāvī ariyadhammassa kovido ariyadhamme suvinīto, sappurisānaṃ dassāvī sappurisadhammassa kovido sappurisadhamme suvinīto na sakkāyadiṭṭhi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sakkāyadiṭṭhiparetena;
“그러나 아난다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보고 성자의 법에 능숙하고 성자의 법에 잘 길들었으며, 참된 사람들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잘 길들어,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일어난 유신견에서 벗어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에게 그 유신견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uppannāya ca sakkāyadiṭṭhiyā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sā sakkāyadiṭṭhi sānusayā pahīyati.
그에게 그 자기 존재가 있다는 견해는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그는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 의심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안다. 그에게 그 의심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Na vicikicchā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vicikicchāparetena;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의심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물지 않는다.
uppannāya ca vicikicchāy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sā vicikicchā sānusayā pahīyati.
그에게 그 의심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그는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 그 집착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안다. 그에게 그 집착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Na sīlabbataparāmās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sīlabbataparāmāsaparetena;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물지 않는다.
uppannassa ca sīlabbataparāmās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so sīlabbataparāmāso sānusayo pahīyati.
그에게 그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 그 탐욕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그 탐욕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안다. 그에게 그 탐욕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Na kāmarāg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kāmarāgaparetena;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물지 않는다.
uppannassa ca kāmarāg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so kāmarāgo sānusayo pahīyati.
그에게 그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은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그는 악의에 사로잡힌 마음, 악의에 휩싸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안다. 그에게 그 악의는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Na byāpād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byāpādaparetena;
악의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악의에 짓눌린 마음으로 머물지 않는다.
uppannassa ca byāpād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리고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so byāpādo sānusayo pahīyati.
그에게 그 악의는 잠재 성향과 함께 버려진다.
132
“아난다여,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 있다. 그 도닦음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이 족쇄들을 알거나 보거나 버리게 되리라고 한다면, 그럴 이치는 없다.
‘‘Yo, ānanda, maggo y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taṃ maggaṃ taṃ paṭipadaṃ anāgamm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ñassati vā dakkhati vā pajahissati vāti –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도닦음이 있는데, 그 길과 그 도닦음에 의지하지 않고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아난다여, 심재를 지닌 큰 나무가 서 있다고 하자. 껍질을 자르지 않고 겉나무도 자르지 않은 채 심재만 잘라 내게 되리라고 한다면, 그럴 이치는 없다.
Seyyathāpi, ānanda,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tacaṃ acchetvā phegguṃ acchetvā sāracchedo bhavissatīti –
아난다여, 마치 심재를 지닌 큰 나무가 서 있는데, 껍질을 자르지 않고 무른 목질을 자르지 않고 심재를 잘라 낼 것이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그처럼 아난다여, 그 도닦음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다섯 가지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리게 되리라고 한다면, 그럴 이치는 없다.
evameva kho, ānanda, yo maggo y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taṃ maggaṃ taṃ paṭipadaṃ anāgamm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ñassati vā dakkhati vā pajahissati vāti –
아난다여, 꼭 그와 같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도닦음이 있는데, 그 길과 그 도닦음에 의지하지 않고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그러나 아난다여, 그 도닦음에 의지한다면 다섯 가지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리게 되리라는 것, 그럴 이치는 있다.
‘‘Yo ca kho, ānanda, maggo y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taṃ maggaṃ taṃ paṭipadaṃ āgamm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ñassati vā dakkhati vā pajahissati vāti –
“그러나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도닦음이 있는데, 그 길과 그 도닦음에 의지하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i.
그런 도리가 있다.
아난다여, 심재를 지닌 큰 나무가 서 있다고 하자. 껍질을 자르고 겉나무도 잘라서 심재를 잘라 내게 되리라는 것, 그럴 이치는 있다.
Seyyathāpi, ānanda,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tacaṃ chetvā phegguṃ chetvā sāracchedo bhavissatīti –
아난다여, 마치 심재를 지닌 큰 나무가 서 있는데, 껍질을 자르고 무른 목질을 자르고 심재를 잘라 낼 것이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i;
그런 도리가 있다.
그처럼 아난다여, 그 도닦음에 의지한다면 다섯 가지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리게 되리라는 것, 그럴 이치는 있다.
evameva kho, ānanda, yo maggo y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taṃ maggaṃ taṃ paṭipadaṃ āgamm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ñassati vā dakkhati vā pajahissati vāti –
아난다여, 꼭 그와 같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도닦음이 있는데, 그 길과 그 도닦음에 의지하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i.
그런 도리가 있다.
아난다여, 강가 강이 물로 가득 차서 까마귀가 가장자리에서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고 하자. 그때 힘이 약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르며 비스듬히 건너 무사히 건너편에 닿아야겠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건너 무사히 건너편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처럼 아난다여, 유신이 소멸하도록 법을 설해 주는데도 마음이 뛰어들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이 맑아지지 않고, 자리 잡지 못하고, 풀려나지 못한다. 그들은 저 힘이 약한 사람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Seyyathāpi, ānanda, gaṅgā nadī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아난다여, 마치 강가 강이 물이 가득 차 언저리까지 넘실거려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하다고 하자.
Atha dubbalako puriso āgaccheyya –
그때 힘없는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haṃ imissā gaṅgāya nadiyā tiriyaṃ bāhāya sotaṃ chetvā sotthinā pāraṃ gacchissāmī’ti;
‘나는 이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고.
so na sakkuṇeyya gaṅgāya nadiyā tiriyaṃ bāhāya sotaṃ chetvā sotthinā pāraṃ gantuṃ.
그러나 그는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없을 것이다.
Evameva kho, ānanda, yesaṃ kesañci sakkāyanirodhāya dhamme desiyamāne cittaṃ na pakkhandati nap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a vimuccati;
아난다여, 꼭 그와 같이, 누구든 자기 존재의 소멸을 위한 법이 설해질 때 그 마음이 뛰어들지 않고 깨끗해지지 않고 머물지 않고 해탈하지 않으면,
seyyathāpi so dubbalako puriso evamete daṭṭhabbā.
그들은 저 힘없는 사람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아난다여, 강가 강이 물로 가득 차서 까마귀가 가장자리에서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고 하자. 그때 힘센 사람이 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르며 비스듬히 건너 무사히 건너편에 닿아야겠다.’ 그러면 그는 그렇게 건너 무사히 건너편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아난다여, 유신이 소멸하도록 법을 설해 주면 마음이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이 맑아지고, 자리 잡고, 풀려난다. 그들은 저 힘센 사람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Seyyathāpi, ānanda, gaṅgā nadī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아난다여, 마치 강가 강이 물이 가득 차 언저리까지 넘실거려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하다고 하자.
Atha balavā puriso āgaccheyya –
그때 힘센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haṃ imissā gaṅgāya nadiyā tiriyaṃ bāhāya sotaṃ chetvā sotthinā pāraṃ gacchissāmī’ti;
‘나는 이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고.
so sakkuṇeyya gaṅgāya nadiyā tiriyaṃ bāhāya sotaṃ chetvā sotthinā pāraṃ gantuṃ.
그리고 그는 강가 강을 팔로 물살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Evameva kho, ānanda, yesaṃ kesañci sakkāyanirodhāya dhamme desiyamāne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muccati;
아난다여, 꼭 그와 같이, 누구든 자기 존재의 소멸을 위한 법이 설해질 때 그 마음이 뛰어들고 깨끗해지고 머물고 해탈하면,
seyyathāpi so balavā puriso evamete daṭṭhabbā.
그들은 저 힘센 사람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133
“아난다여,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은 무엇이고 도닦음은 무엇인가?
‘‘Katamo cānanda, maggo, katam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그러면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은 무엇이고 도닦음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가 집착의 바탕에서 멀리 떠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린다. 그는 몸의 거친 무거움을 온전히 가라앉힌다. 그리하여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법들에서 벗어난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Idhānanda, bhikkhu upadhivivekā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 sabbaso kāyaduṭṭhullānaṃ paṭippassaddhiyā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재생 바탕에서 떠남으로써,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으로써, 몸의 굼뜸을 온전히 가라앉힘으로써,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법들, 곧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형성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에 속하는 것들을 이렇게 본다. 그것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고, 재앙이고, 질환이다. 남의 것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텅 빈 것이고, 나 아닌 것이다.[불확실]
So yadeva tattha hoti rūpagataṃ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 te dhamme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samanupassati.
그는 거기에 있는 물질에 속한 것, 느낌에 속한 것, 인식에 속한 것, 형성에 속한 것, 의식에 속한 것 — 그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롭다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공하다고, 무아라고 살펴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마음을 돌린 뒤에는 죽음 없는 경지로 마음을 향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모든 형성의 가라앉음, 모든 집착 바탕의 내려놓음,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i.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vā amatāya dhātuyā cittaṃ upasaṃharati –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리고서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다 —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법에 대한 애착과 그 법을 즐김 때문에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가 다한다. 그는 화생하는 자가 되어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가 된다.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서서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no ce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만일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냄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아난다여, 이것 또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다.
Ayampi kho, ānanda, maggo ayaṃ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아난다여, 이것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도 도닦음이다.
또 다른 것이 있다, 아난다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가라앉아 두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어서 세 번째 선정, 네 번째 선정에도 들어 머문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됨을 갖추어,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희열에 대한 탐욕이 사라져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을 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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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기에 있는 물질·느낌·인식·형성·의식에 속하는 법들을 앞에서와 같이 본다. 그리하여 그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가 된다. 아난다여, 이것 또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다.
So yadeva tattha hoti rūpagataṃ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그는 거기에 있는 물질에 속한 것, 느낌에 속한 것, 인식에 속한 것, 형성에 속한 것, 의식에 속한 것 — 그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롭다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공하다고, 무아라고 살펴본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리고서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다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만일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냄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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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mpi kho, ānanda, maggo ayaṃ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아난다여, 이것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도 도닦음이다.
또 다른 것이 있다, 아난다여.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온전히 넘어선다. 부딪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는 ‘허공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허공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인식·형성·의식에 속하는 법들을 앞에서와 같이 본다. 그리하여 그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가 된다. 아난다여, 이것 또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다.
So yadeva tattha hoti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pe…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에 속한 것, 인식에 속한 것, 형성에 속한 것, 의식에 속한 것 — 그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롭다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공하다고, 무아라고 살펴본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리고서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다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만일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냄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4:133.3 ~ PN:mn64/133.8에서 되살렸습니다.
Ayampi kho, ānanda, maggo ayaṃ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아난다여, 이것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도 도닦음이다.
또 다른 것이 있다, 아난다여. 비구는 무한한 허공의 영역을 온전히 넘어선다. 그는 ‘의식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의식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인식·형성·의식에 속하는 법들을 앞에서와 같이 본다. 그리하여 그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가 된다. 아난다여, 이것 또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다.
So yadeva tattha hoti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pe…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에 속한 것, 인식에 속한 것, 형성에 속한 것, 의식에 속한 것 — 그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롭다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공하다고, 무아라고 살펴본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리고서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다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만일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냄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4:133.3 ~ PN:mn64/133.8에서 되살렸습니다.
Ayampi kho, ānanda, maggo ayaṃ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아난다여, 이것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도 도닦음이다.
또 다른 것이 있다, 아난다여. 비구는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온전히 넘어선다. 그는 ‘아무것도 없다’ 하며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인식·형성·의식에 속하는 법들을 앞에서와 같이 본다. 그리하여 그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가 된다. 아난다여, 이것 또한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다.”
So yadeva tattha hoti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pe…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에 속한 것, 인식에 속한 것, 형성에 속한 것, 의식에 속한 것 — 그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롭다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앙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공하다고, 무아라고 살펴본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에서 마음을 돌리고서 불사의 요소로 마음을 향한다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번뇌의 다함에 이른다. 만일 번뇌의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냄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고,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4:133.3 ~ PN:mn64/133.8에서 되살렸습니다.
Ayampi kho, ānanda, maggo ayaṃ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ā’’ti.
아난다여, 이것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도 도닦음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를 버리게 하는 길이고 도닦음이라면, 어찌하여 이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어떤 비구들은 통찰지의 해탈을 얻습니까?”
‘‘Eso ce, bhante, maggo esā paṭipad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atha kiñcarahi idhekacce bhikkhū cetovimuttino ekacce bhikkhū paññāvimuttino’’ti?
“세존이시여, 만일 이것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한 길이고 이것이 도닦음이라면, 어찌하여 여기 어떤 비구들은 마음의 해탈을 이루고 어떤 비구들은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이룹니까?”
“아난다여, 이 점에서 나는 기능들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Ettha kho panesāhaṃ, ānanda, indriyavemattataṃ vadāmī’’ti.
“아난다여, 여기에 대해 나는 기능의 차이를 말한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큰 말룽꺄 경」이 끝났다. 네 번째.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아난다 존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Mahāmāluky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말루꺄 긴 경이 끝났다. 네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