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Cūḷasaccakasuttaṃ
5. 짧은 삿짜까 경
353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 큰 숲의 뾰족집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웨살리에는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말솜씨가 좋고 논변에 능한 학자였다. 많은 사람이 그를 훌륭한 이로 존경했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ṃ.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의 큰 숲,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saccako nigaṇṭhaputto vesāliyaṃ paṭivasati bhassappavādako paṇḍitavādo sādhusammato bahujanassa.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웨살리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논쟁을 일삼는 자요, 현자로 자처하는 자요,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자였다.
삿짜까는 웨살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곧잘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와 논쟁을 벌이고도 떨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겨드랑이에 땀도 흐르지 않을 사람 말이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렇다. 교단의 우두머리든 무리의 스승이든 그렇다. 스스로 아라한이자 정등각자라고 내세우는 이라 해도 그렇다. 감각 없는 기둥에게 논쟁을 걸어도, 그 기둥조차 내 앞에서 떨고 흔들리고 전율할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불확실]
So vesāliyaṃ parisati evaṃ vācaṃ bhāsati –
그는 웨살리의 회중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
‘‘nāhaṃ taṃ passāmi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saṅghiṃ gaṇiṃ gaṇācariyaṃ, api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paṭijānamānaṃ, yo mayā vādena vādaṃ samāraddho na saṅkampeyya na sampakampeyya na sampavedheyya, yassa na kacchehi sedā mucceyyuṃ.
“나는 그런 사문이나 바라문을, 곧 무리를 거느리고 대중을 거느리고 대중의 스승인 자를, 나아가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이라고 자처하는 자마저도, 내가 논쟁으로 맞붙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떨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을 자를, 겨드랑이에서 땀이 흐르지 않을 자를 보지 못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hūṇaṃ cepāhaṃ acetanaṃ vādena vādaṃ samārabheyyaṃ, sāpi mayā vādena vādaṃ samāraddhā saṅkampeyya sampakampeyya sampavedheyya.
내가 의식 없는 기둥을 상대로 논쟁으로 맞붙는다 해도, 그 기둥마저 나와 논쟁으로 맞붙으면 흔들리고 떨리고 요동할 것이다.
Ko pana vādo manussabhūtassā’’ti?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어느 날 아침, 아싸지 존자가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하러 웨살리에 들어갔다. 삿짜까는 웨살리에서 산책 삼아 이리저리 거닐다가, 멀리서 오는 아싸지 존자를 보았다. 그는 존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이 오간 뒤에는 한쪽에 섰다. 그리고 아싸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싸지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을 어떻게 이끄십니까? 그분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집니까?”
Atha kho āyasmā assaji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앗사지 존자가 오전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웨살리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Addasā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vesāliyaṃ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āyasmantaṃ assajiṃ dūratova āgacchantaṃ.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웨살리에서 다리를 풀며 이리저리 거닐고 돌아다니다가, 앗사지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yenāyasmā assaji tenupasaṅkami;
보고서 앗사지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assajin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는 앗사지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āyasmantaṃ assajiṃ etadavoca –
한쪽에 서서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앗사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kathaṃ pana, bho assaji, samaṇo gotamo sāvake vineti, kathaṃbhāgā ca pana samaṇassa gotamassa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ī’’ti?
“그런데 앗사지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어떻게 제자들을 이끕니까? 그리고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에게는 어떤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집니까?”
“악기웨사나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끄십니다. 세존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이런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없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들도, 의식도 덧없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들도, 의식도 자아가 아니다. 모든 형성은 덧없고, 모든 법은 자아가 아니다.’ 악기웨사나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끄십니다. 세존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이런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Evaṃ kho, aggivessana, bhagavā sāvake vineti, evaṃbhāgā ca pana bhagavato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i –
“아기웨사나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끄시고, 세존의 제자들에게는 이런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진다 —
‘rūpaṃ, bhikkhave, aniccaṃ, vedanā aniccā, 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ṃ aniccaṃ.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형성작용들은 무상하다, 의식은 무상하다.
Rūpaṃ, bhikkhave, anattā, vedanā anattā, saññā anattā, saṅkhārā anattā, viññāṇaṃ anattā.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인식은 자아가 아니다, 형성작용들은 자아가 아니다,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ti.
모든 형성작용은 무상하다, 모든 법은 자아가 아니다.’
Evaṃ kho, aggivessana, bhagavā sāvake vineti, evaṃbhāgā ca pana bhagavato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ī’’ti.
아기웨사나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끄시고, 세존의 제자들에게는 이런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진다.”
“아싸지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가 그런 주장을 한다니, 참으로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고따마 존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의 그릇된 견해를 떨쳐 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Dussutaṃ vata, bho assaji, assumha ye mayaṃ evaṃvādiṃ samaṇaṃ gotamaṃ assumha.
“앗사지 존자시여,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사문 고따마의 말을 들었다면, 참으로 잘못 들은 것입니다.
Appeva nāma mayaṃ kadāci karahaci tena bhotā gotamena saddhiṃ samāgaccheyyāma, appeva nāma siyā kocideva kathāsallāpo, appeva nāma tasmā pāpakā diṭṭhigatā viveceyyāmā’’ti.
저희가 언제 어느 때고 그 고따마 존자와 만나게 되기를, 어떤 대화라도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 나쁜 견해에서 그를 떼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54
그때 릿차위 오백 명가량이 어떤 일로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삿짜까는 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시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시오. 오늘 나는 사문 고따마와 논쟁을 벌일 것이오. 사문 고따마가 제자 아싸지 비구처럼 버틴다면, 나는 논쟁으로 그를 이리 끌고 저리 끌고 사방으로 끌고 다닐 것이오. 힘센 사내가 털이 긴 양의 털을 움켜쥐고 끌고 다니듯이 말이오. 힘센 술 빚는 일꾼이 커다란 술거르개를 깊은 물웅덩이에 던져 넣고 그 귀퉁이를 잡아 이리저리 사방으로 끌고 다니듯, 나도 사문 고따마를 그렇게 끌고 다닐 것이오. 힘센 술꾼이 털로 짠 술체의 귀퉁이를 잡고 흔들고 털고 두들기듯, 나도 사문 고따마를 흔들고 털고 두들길 것이오. 예순 살 된 코끼리가 깊은 연못에 뛰어들어 ‘삼베 빨래’라는 놀이를 즐기듯, 나도 사문 고따마를 상대로 그 삼베 빨래 놀이를 즐길 것이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시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시오. 오늘 나는 사문 고따마와 논쟁을 벌일 것이오.”[불확실]
Tena kho pana samayena pañcamattāni licchavisatāni santhāgāre sannipatitāni hon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오백 명쯤 되는 릿차위들이 무슨 볼일이 있어 회당에 모여 있었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yena te licchavī tenupasaṅkami;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그 릿차위들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e licchavī etadavoca –
다가가서는 그 릿차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abhikkamantu bhonto licchavī, abhikkamantu bhonto licchavī, ajja me samaṇena gotamena saddhiṃ kathāsallāpo bhavissati.
“릿차위 여러분, 나오십시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십시오. 오늘 저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대화가 있을 것입니다.
Sace me samaṇo gotamo tathā patiṭṭhissati yathā ca me ñātaññatarena sāvakena assajinā nāma bhikkhunā patiṭṭhitaṃ,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dīghalomikaṃ eḷakaṃ lomesu gahetvā ākaḍḍheyya parikaḍḍheyya samparikaḍḍheyya, evamevāhaṃ samaṇaṃ gotamaṃ vādena vādaṃ ākaḍḍhissāmi parikaḍḍhissāmi samparikaḍḍhissāmi.
만일 사문 고따마가 제게, 그의 널리 알려진 제자 가운데 하나인 앗사지라는 비구가 제게 세운 그대로 세운다면, 마치 힘센 사람이 털이 긴 염소를 털을 잡고 끌어당기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마구 끌고 다니듯, 꼭 그렇게 저는 사문 고따마를 논쟁으로 끌어당기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마구 끌고 다닐 것입니다.
Seyyathāpi nāma balavā soṇḍikākammakāro mahantaṃ soṇḍikākiḷañjaṃ gambhīre udakarahade pakkhipitvā kaṇṇe gahetvā ākaḍḍheyya parikaḍḍheyya samparikaḍḍheyya, evamevāhaṃ samaṇaṃ gotamaṃ vādena vādaṃ ākaḍḍhissāmi parikaḍḍhissāmi samparikaḍḍhissāmi.
마치 힘센 술도가 일꾼이 큰 술 거르는 발을 깊은 물웅덩이에 담근 뒤 귀퉁이를 잡고 끌어당기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마구 끌고 다니듯, 꼭 그렇게 저는 사문 고따마를 논쟁으로 끌어당기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마구 끌고 다닐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nāma balavā soṇḍikādhutto vālaṃ kaṇṇe gahetvā odhuneyya niddhuneyya nipphoṭeyya evamevāhaṃ samaṇaṃ gotamaṃ vādena vādaṃ odhunissāmi niddhunissāmi nipphoṭessāmi.
마치 힘센 술도가 젓는 일꾼이 털로 짠 거르개를 귀퉁이를 잡고 흔들어 내리고 털어 내고 두들겨 대듯, 꼭 그렇게 저는 사문 고따마를 논쟁으로 흔들어 내리고 털어 내고 두들겨 댈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nāma kuñjaro saṭṭhihāyano gambhīraṃ pokkharaṇiṃ ogāhetvā sāṇadhovikaṃ nāma kīḷitajātaṃ kīḷati, evamevāhaṃ samaṇaṃ gotamaṃ sāṇadhovikaṃ maññe kīḷitajātaṃ kīḷissāmi.
마치 예순 살 먹은 코끼리가 깊은 연못에 들어가 삼 씻기라는 놀이를 하듯, 꼭 그렇게 저는 사문 고따마를 삼 씻기 놀이 하듯 다룰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bhikkamantu bhonto licchavī, abhikkamantu bhonto licchavī, ajja me samaṇena gotamena saddhiṃ kathāsallāpo bhavissatī’’ti.
릿차위 여러분, 나오십시오. 릿차위 여러분, 나오십시오. 오늘 저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릿차위 가운데 몇몇이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가 삿짜까의 주장을 꺾을까, 아니면 삿짜까가 사문 고따마의 주장을 꺾을까?” 또 몇몇 릿차위는 이렇게 말했다. “삿짜까가 뭐라고 세존의 주장을 꺾겠는가? 오히려 세존께서 삿짜까의 주장을 꺾으실 것이다.”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릿차위 오백 명에게 둘러싸여 큰 숲의 뾰족집 강당으로 갔다.
Tatrekacce licchavī evamāhaṃsu –
거기서 어떤 릿차위들은 이렇게 말했다 —
‘‘kiṃ samaṇo gotamo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vādaṃ āropessati,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samaṇassa gotamassa vādaṃ āropessatī’’ti?
“사문 고따마가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의 주장을 논박할 것인가, 아니면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사문 고따마의 주장을 논박할 것인가?”
Ekacce licchavī evamāhaṃsu –
어떤 릿차위들은 이렇게 말했다 —
‘‘kiṃ so bhavamāno saccako nigaṇṭhaputto yo bhagavato vādaṃ āropessati, atha kho bhagavā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vādaṃ āropessatī’’ti?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무엇이기에 세존의 주장을 논박하겠는가? 도리어 세존께서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의 주장을 논박하실 것이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pañcamattehi licchavisatehi parivuto yena 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오백 명쯤 되는 릿차위들에게 둘러싸여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다가갔다.
355
그때 많은 비구가 바깥 빈터에서 거닐고 있었다. 삿짜까는 그 비구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러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고따마 존자를 뵙고 싶습니다.” “악기웨사나여, 세존께서는 큰 숲 깊이 들어가 어느 나무 밑에서 낮 동안 앉아 쉬고 계십니다.”[불확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abbhokāse caṅkamanti.
그때 여러 비구가 노지에서 거닐고 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i;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e bhikkhū etadavoca –
다가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kahaṃ nu kho, bho, etarahi so bhavaṃ gotamo viharati?
“존자들이시여, 지금 그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Dassanakāmā hi mayaṃ taṃ bhavantaṃ gotama’’nti.
저희는 그 고따마 존자를 뵙고자 합니다.”
‘‘Esa, aggivessana, bhagavā mahāvanaṃ ajjhogāhe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divāvihāraṃ nisinno’’ti.
“아기웨사나여, 저분 세존께서는 큰 숲으로 들어가 어떤 나무 밑에서 낮 동안 머무시려고 앉아 계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삿짜까는 릿차위의 큰 무리와 함께 큰 숲 깊이 들어가 세존께 다가갔다. 그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이 오간 뒤에는 한쪽에 앉았다. 릿차위들도 한쪽에 앉았다. 어떤 이들은 세존께 절하고 앉았고, 어떤 이들은 세존과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앉았다.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앉은 이들이 있었고, 세존 앞에서 자기 이름과 가문을 밝히고 앉은 이들이 있었다. 말없이 앉은 이들도 있었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mahatiyā licchaviparisāya saddhiṃ mahāvanaṃ ajjhogāh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릿차위들의 큰 회중과 함께 큰 숲으로 들어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Tepi kho licchavī appekacce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bhagavatā saddhiṃ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그 릿차위들도 어떤 이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고, 어떤 이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Appekacce yena bhagavā tenañjaliṃ paṇām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bhagavato santike nāmagottaṃ sāv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tuṇhībhūtā ekamantaṃ nisīdiṃsu.
어떤 이들은 세존께 합장하고 한쪽에 앉았고, 어떤 이들은 세존 앞에서 이름과 성을 밝히고 한쪽에 앉았고, 어떤 이들은 잠자코 한쪽에 앉았다.
356
한쪽에 앉은 삿짜까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 질문에 답할 기회를 주신다면, 몇 가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악기웨사나여, 묻고 싶은 것을 물으시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자들을 어떻게 이끄십니까? 고따마 존자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집니까?”
Ekamantaṃ nisinno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puccheyy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kiñcideva desaṃ, sace me bhavaṃ gotamo okāsaṃ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고따마 존자께 어떤 점을 여쭙고 싶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제 물음에 답해 주실 틈을 내 주신다면 말입니다.”
‘‘Puccha, aggivessana, yadākaṅkhasī’’ti.
“아기웨사나여, 묻고 싶은 것을 물어라.”
‘‘Kathaṃ pana bhavaṃ gotamo sāvake vineti, kathaṃbhāgā ca pana bhoto gotamassa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ī’’ti?
“그런데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이끄십니까? 그리고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에게는 어떤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집니까?”
“악기웨사나여, 나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끈다. 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이런 모습으로 이어진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없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들도, 의식도 덧없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들도, 의식도 자아가 아니다. 모든 형성은 덧없고, 모든 법은 자아가 아니다.’ 악기웨사나여, 나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끈다. 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주로 이런 모습으로 이어진다.”
‘‘Evaṃ kho ahaṃ, aggivessana, sāvake vinemi, evaṃbhāgā ca pana me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i –
“아기웨사나여, 나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끌고, 내 제자들에게는 이런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진다 —
‘rūpaṃ, bhikkhave, aniccaṃ, vedanā aniccā, 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ṃ aniccaṃ.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형성작용들은 무상하다, 의식은 무상하다.
Rūpaṃ, bhikkhave, anattā, vedanā anattā, saññā anattā, saṅkhārā anattā, viññāṇaṃ anattā.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인식은 자아가 아니다, 형성작용들은 자아가 아니다,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ti.
모든 형성작용은 무상하다, 모든 법은 자아가 아니다.’
Evaṃ kho ahaṃ, aggivessana, sāvake vinemi, evaṃbhāgā ca pana me sāvakesu anusāsanī bahulā pavattatī’’ti.
아기웨사나여, 나는 이렇게 제자들을 이끌고, 내 제자들에게는 이런 갈래로 가르침이 흔히 행해진다.”
“고따마 존자시여, 제게 비유 하나가 떠오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악기웨사나여, 그 비유가 떠오르는 대로 말해 보시오.”
‘‘Upamā maṃ, bho gotama, paṭibhā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저에게 비유가 떠오릅니다.”
‘‘Paṭibhātu taṃ, aggivessanā’’ti bhagavā avoca.
“아기웨사나여, 떠올려 보아라” 하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고따마 존자시여, 씨앗이나 식물이 자라고 불어나고 무성해지는 것은 모두 땅에 의지하고 땅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씨앗과 식물은 자라고 불어나고 무성해집니다. 또 힘을 들여 해야 하는 일도 모두 땅에 의지하고 땅 위에 서서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일들을 해냅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은 물질을 자아로 삼고 물질에 서서 공덕이나 비공덕을 짓습니다. 느낌, 인식, 형성들,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을 자아로 삼고 거기에 서서 공덕이나 비공덕을 짓습니다.”[불확실]
‘‘Seyyathāpi, bho gotama, ye kecime bījagāmabhūtagāmā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anti, sabbe te pathaviṃ nissāya pathaviyaṃ patiṭṭhāya.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자라고 뻗고 커지는 온갖 씨앗과 초목이 다 땅에 의지하고 땅에 서서 그리하듯,
Evamete bījagāmabhūtagāmā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anti.
이 씨앗과 초목은 이렇게 자라고 뻗고 커집니다.
Seyyathāpi vā pana, bho gotama, ye kecime balakaraṇīyā kammantā karīyanti, sabbe te pathaviṃ nissāya pathaviyaṃ patiṭṭhāya.
또는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힘써 해야 하는 온갖 일이 다 땅에 의지하고 땅에 서서 이루어지듯,
Evamete balakaraṇīyā kammantā karīyanti.
이 힘써 해야 하는 일들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Evameva kho, bho gotama, rūpattāyaṃ purisapuggalo rūpe patiṭṭhāya puññaṃ vā apuññaṃ vā pasavati, vedanattāyaṃ purisapuggalo vedanāyaṃ patiṭṭhāya puññaṃ vā apuññaṃ vā pasavati, saññattāyaṃ purisapuggalo saññāyaṃ patiṭṭhāya puññaṃ vā apuññaṃ vā pasavati, saṅkhārattāyaṃ purisapuggalo saṅkhāresu patiṭṭhāya puññaṃ vā apuññaṃ vā pasavati, viññāṇattāyaṃ purisapuggalo viññāṇe patiṭṭhāya puññaṃ vā apuññaṃ vā pasavatī’’ti.
꼭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시여, 물질을 자아로 삼기에 이 사람은 물질에 서서 공덕이나 악덕을 낳고, 느낌을 자아로 삼기에 이 사람은 느낌에 서서 공덕이나 악덕을 낳고, 인식을 자아로 삼기에 이 사람은 인식에 서서 공덕이나 악덕을 낳고, 형성작용들을 자아로 삼기에 이 사람은 형성작용들에 서서 공덕이나 악덕을 낳고, 의식을 자아로 삼기에 이 사람은 의식에 서서 공덕이나 악덕을 낳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소? ‘물질은 나의 자아이고, 느낌은 나의 자아이고, 인식은 나의 자아이고, 형성들은 나의 자아이고, 의식은 나의 자아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분명 이렇게 말합니다. ‘물질은 나의 자아이고, 느낌은 나의 자아이고, 인식은 나의 자아이고, 형성들은 나의 자아이고, 의식은 나의 자아다.’ 여기 모인 이 많은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악기웨사나여, 많은 사람이 그대에게 무슨 상관이오? 자, 그대 자신의 주장이나 풀어 보시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분명 이렇게 말합니다. ‘물질은 나의 자아이고, 느낌은 나의 자아이고, 인식은 나의 자아이고, 형성들은 나의 자아이고, 의식은 나의 자아다.’”
‘‘Nanu tvaṃ, aggivessana,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그대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
‘rūpaṃ me attā, vedanā me attā, saññā me attā, saṅkhārā me attā, viññāṇaṃ me attā’’’ti?
‘물질이 나의 자아다, 느낌이 나의 자아다, 인식이 나의 자아다, 형성작용들이 나의 자아다, 의식이 나의 자아다’라고?”
‘‘Ahañhi, bho gotama, evaṃ vadāmi –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
‘rūpaṃ me attā, vedanā me attā, saññā me attā, saṅkhārā me attā, viññāṇaṃ me attā’ti, ayañca mahatī janatā’’ti.
‘물질이 나의 자아다, 느낌이 나의 자아다, 인식이 나의 자아다, 형성작용들이 나의 자아다, 의식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리고 이 큰 무리도 그러합니다.”
‘‘Kiñhi te, aggivessana, mahatī janatā karissati?
“아기웨사나여, 이 큰 무리가 그대에게 무엇을 해 주겠는가?
Iṅgha tvaṃ, aggivessana, sakaññeva vādaṃ nibbeṭhehī’’ti.
아기웨사나여, 자,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주장을 풀어 보아라.”
‘‘Ahañhi, bho gotama, evaṃ vadāmi –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
‘rūpaṃ me attā, vedanā me attā, saññā me attā, saṅkhārā me attā, viññāṇaṃ me attā’’’ti.
‘물질이 나의 자아다, 느낌이 나의 자아다, 인식이 나의 자아다, 형성작용들이 나의 자아다, 의식이 나의 자아다’라고.”
357
“그렇다면 악기웨사나여, 이 점을 도로 그대에게 묻겠소. 그대가 좋다고 여기는 대로 대답하시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관정을 받은 왕족 왕은 자기 영토에서 죽일 자를 죽이고, 벌할 자를 벌하고, 내쫓을 자를 내쫓을 권한이 있겠소? 이를테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나 웨데히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처럼 말이오.” “고따마 존자시여, 관정을 받은 왕족 왕은 자기 영토에서 그런 권한이 있습니다. 죽일 자를 죽이고, 벌할 자를 벌하고, 내쫓을 자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나 웨데히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처럼 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공화 연합들과 무리들도 자기 영토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왓지족과 말라족이 그렇습니다. 그들도 죽일 자를 죽이고, 벌할 자를 벌하고, 내쫓을 자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나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 같은 관정을 받은 왕족 왕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고, 또 있어 마땅합니다.”[불확실]
‘‘Tena hi, aggivessan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아기웨사나여,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그대에게 되물으리니, 그대에게 맞는 대로 그것을 대답하여라.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vatteyya rañño khattiyassa muddhāvasittassa sakasmiṃ vijite vaso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에게 자기 영토에서 이런 힘이 행해지겠는가 —
ghātetāyaṃ vā ghātetuṃ, jāpetāyaṃ vā jāpetuṃ, pabbājetāyaṃ vā pabbājetuṃ, seyyathāpi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seyyathāpi vā pana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ā’’ti?
죽일 자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을 자에게서 빼앗고, 내쫓을 자를 내쫓는 힘이 말이다. 이를테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처럼, 또는 웨데히의 아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에게처럼.”
‘‘Vatteyya, bho gotama, rañño khattiyassa muddhāvasittassa sakasmiṃ vijite vaso –
“고따마 존자시여,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에게 자기 영토에서 이런 힘이 행해질 것입니다 —
ghātetāyaṃ vā ghātetuṃ, jāpetāyaṃ vā jāpetuṃ, pabbājetāyaṃ vā pabbājetuṃ, seyyathāpi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seyyathāpi vā pana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죽일 자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을 자에게서 빼앗고, 내쫓을 자를 내쫓는 힘이 말입니다. 이를테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처럼, 또는 웨데히의 아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에게처럼.
Imesampi hi, bho gotama, saṅghānaṃ gaṇān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이 승가들과 무리들에게도 —
seyyathidaṃ, vajjīnaṃ mallānaṃ –
이를테면 왓지 사람들과 말라 사람들에게도 —
vattati sakasmiṃ vijite vaso –
자기 영토에서 이런 힘이 행해집니다 —
ghātetāyaṃ vā ghātetuṃ, jāpetāyaṃ vā jāpetuṃ, pabbājetāyaṃ vā pabbājetuṃ.
죽일 자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을 자에게서 빼앗고, 내쫓을 자를 내쫓는 힘이 말입니다.
Kiṃ pana rañño khattiyassa muddhāvasittassa, seyyathāpi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seyyathāpi vā pana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하물며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에게야, 이를테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야, 또는 웨데히의 아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에게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Vatteyya, bho gotama, vattituñca marahat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 힘이 행해질 것이고, 또 행해질 만도 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물질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라.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rūpaṃ me attā’ti, vattati te tasmiṃ rūpe vaso –
‘물질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물질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내 물질은 이렇게 되어라, 내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삿짜까는 입을 다물었다. 세존께서는 두 번째로도 삿짜까에게 말씀하셨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물질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라.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두 번째로도 삿짜까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삿짜까에게 말씀하셨다. “악기웨사나여, 이제 대답하시오. 이제는 잠자코 있을 때가 아니오. 악기웨사나여, 누구든 여래가 법에 맞는 질문을 세 번까지 했는데도 대답하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갈라지오.”[불확실]
Evaṃ vutte, saccako nigaṇṭha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씀하시자,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잠자코 있었다.
Dutiyampi kho bhagavā saccakaṃ nigaṇṭhaputt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세존께서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rūpaṃ me attā’ti, vattati te tasmiṃ rūpe vaso –
‘물질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물질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내 물질은 이렇게 되어라, 내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Dutiyampi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tuṇhī ahosi.
두 번째로도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잠자코 있었다.
Atha kho bhagavā saccakaṃ nigaṇṭhaputtaṃ etadavoca –
그러자 세존께서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byākarohi dāni, aggivessana, na dāni te tuṇhībhāvassa kālo.
“아기웨사나여, 이제 대답하여라. 지금은 그대가 잠자코 있을 때가 아니다.
Yo koci, aggivessana tathāgatena yāvatatiyaṃ sahadhammikaṃ pañhaṃ puṭṭho na byākaroti, etthevassa sattadhā muddhā phalatī’’ti.
아기웨사나여, 여래가 세 번째까지 이치에 맞는 물음을 물었는데도 대답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쪼개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때 와지라빠니 야차가 불꽃을 내며 활활 타오르는 쇠 금강저를 들고, 삿짜까의 머리 위 허공에 서 있었다. ‘만일 이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세존께서 법에 맞는 질문을 세 번까지 하셨는데도 대답하지 않으면, 바로 이 자리에서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쪼개 버리겠다.’ 그 야차는 세존과 삿짜까, 오직 두 사람의 눈에만 보였다. 삿짜까는 겁에 질려 두려워 떨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오직 세존께만 보호를 구하고, 피난처를 구하고, 의지처를 구하며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물으십시오. 제가 대답하겠습니다.”[불확실]
Tena kho pana samayena vajirapāṇi yakkho āyasaṃ vajiraṃ ādāya ādittaṃ sampajjalitaṃ sajotibhūtaṃ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uparivehāsaṃ ṭhito hoti –
그때 손에 금강저를 든 야차가 불타오르고 활활 타며 이글거리는 쇠 금강저를 들고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의 머리 위 허공에 서 있었다 —
‘sacāyaṃ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tā yāvatatiyaṃ sahadhammikaṃ pañhaṃ puṭṭho na byākarissati etthevassa sattadhā muddhaṃ phālessāmī’ti.
‘만일 이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세존께서 세 번째까지 이치에 맞는 물음을 물으시는데도 대답하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쪼개 버리리라’ 하고.
Taṃ kho pana vajirapāṇiṃ yakkhaṃ bhagavā ceva passati saccako ca nigaṇṭhaputto.
그런데 그 손에 금강저를 든 야차를 세존과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만이 보았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hīto saṃviggo lomahaṭṭhajāto bhagavantaṃyeva tāṇaṃ gavesī bhagavantaṃyeva leṇaṃ gavesī bhagavantaṃyeva saraṇaṃ gavesī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러자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두렵고 떨리고 털이 곤두서서, 오직 세존을 보호처로 구하고 오직 세존을 피난처로 구하고 오직 세존을 귀의처로 구하여,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불확실]
불확실 —
‘‘pucchatu maṃ bhavaṃ gotamo, byākarissāmī’’ti.
“고따마 존자께서 저에게 물어 주십시오.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358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물질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라. 나의 물질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잘 새겨 보시오. 잘 새긴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소. 앞의 말은 뒤의 말과 어긋나고, 뒤의 말은 앞의 말과 어긋나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rūpaṃ me attā’ti, vattati te tasmiṃ rūpe vaso –
‘물질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물질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내 물질은 이렇게 되어라, 내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Manasi karohi, aggivessana;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겨라.
manasi karitvā kho, aggivessana, byākarohi.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기고서 대답하여라.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ṃ pacchimena vā purimaṃ.
그대에게는 앞말과 뒷말이, 뒷말과 앞말이 들어맞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느낌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느낌이여, 이러하라. 나의 느낌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잘 새겨 보시오. 잘 새긴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소. 앞의 말은 뒤의 말과 어긋나고, 뒤의 말은 앞의 말과 어긋나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vedanā me attā’ti, vattati te tissaṃ vedanāyaṃ vaso –
‘느낌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느낌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vedanā hotu, evaṃ me vedanā mā ahosī’’ti?
내 느낌은 이렇게 되어라, 내 느낌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Manasi karohi, aggivessana;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겨라.
manasi karitvā kho, aggivessana, byākarohi.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기고서 대답하여라.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ṃ, pacchimena vā purimaṃ.
그대에게는 앞말과 뒷말이, 뒷말과 앞말이 들어맞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인식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인식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인식이여, 이러하라. 나의 인식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잘 새겨 보시오. 잘 새긴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소. 앞의 말은 뒤의 말과 어긋나고, 뒤의 말은 앞의 말과 어긋나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saññā me attā’ti, vattati te tissaṃ saññāyaṃ vaso –
‘인식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인식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saññā hotu, evaṃ me saññā mā ahosī’’ti?
내 인식은 이렇게 되어라, 내 인식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Manasi karohi, aggivessana;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겨라.
manasi karitvā kho, aggivessana, byākarohi.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기고서 대답하여라.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ṃ, pacchimena vā purimaṃ.
그대에게는 앞말과 뒷말이, 뒷말과 앞말이 들어맞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형성들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형성들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형성들이여, 이러하라. 나의 형성들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잘 새겨 보시오. 잘 새긴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소. 앞의 말은 뒤의 말과 어긋나고, 뒤의 말은 앞의 말과 어긋나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saṅkhārā me attā’ti, vattati te tesu saṅkhāresu vaso –
‘형성작용들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형성작용들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saṅkhārā hontu, evaṃ me saṅkhārā mā ahesu’’nti?
내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어라, 내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Manasi karohi, aggivessana;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겨라.
manasi karitvā kho, aggivessana, byākarohi.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기고서 대답하여라.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ṃ, pacchimena vā purimaṃ.
그대에게는 앞말과 뒷말이, 뒷말과 앞말이 들어맞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대는 ‘의식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오. 그렇다면 그 의식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소? ‘나의 의식이여, 이러하라. 나의 의식이여, 이러하지 말라.’ 하고 말할 수 있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잘 새겨 보시오. 잘 새긴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소. 앞의 말은 뒤의 말과 어긋나고, 뒤의 말은 앞의 말과 어긋나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aṃ tvaṃ evaṃ vadesi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
‘viññāṇaṃ me attā’ti, vattati te tasmiṃ viññāṇe vaso –
‘의식이 나의 자아다’라고. 그 의식에 대해 그대에게 이런 힘이 행해지는가 —
evaṃ me viññāṇaṃ hotu, evaṃ me viññāṇaṃ mā ahosī’’ti?
내 의식은 이렇게 되어라, 내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아라 하는 힘이 말이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Manasi karohi, aggivessana;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겨라.
manasi karitvā kho, aggivessana, byākarohi.
아기웨사나여, 마음에 새기고서 대답하여라.
Na kho te sandhiyati purimena vā pacchimaṃ, pacchimena vā purimaṃ.
그대에게는 앞말과 뒷말이, 뒷말과 앞말이 들어맞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물질은 항상하오, 덧없소?” “덧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덧없는 것은 괴롭소, 즐겁소?” “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과연 이렇게 보는 것이 옳겠소?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Aniccaṃ, bho gotama’’.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Dukkhaṃ, bho gotama’’.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옳은가 —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느낌도 … 인식도 … 형성들도 …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의식은 항상하오, 덧없소?” “덧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덧없는 것은 괴롭소, 즐겁소?” “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과연 이렇게 보는 것이 옳겠소?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vedanā…pe… saññā…pe… saṅkhārā…pe…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viññāṇ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작용들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5:358.36 ~ PN:mn35/358.42에서 되살렸습니다.
‘‘Aniccaṃ, bho gotama’’.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Dukkhaṃ, bho gotama’’.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옳은가 —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괴로움에 달라붙고 괴로움에 다가가 괴로움에 푹 빠져서, 괴로움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사람 말이오. 그런 사람이 스스로 괴로움을 완전히 알거나 괴로움을 다 없애고 지낼 수 있겠소?”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그대 자신이야말로 괴로움에 달라붙고 괴로움에 다가가 괴로움에 푹 빠진 것 아니오? 그래서 괴로움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보고 있는 것 아니오?” “어찌 아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yo nu kho dukkhaṃ allīno dukkhaṃ upagato dukkhaṃ ajjhosito, dukkha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samanupassati, api nu kho so sāmaṃ vā dukkhaṃ parijāneyya, dukkhaṃ vā parikkhepetvā vihareyyā’’ti?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괴로움에 달라붙고 괴로움에 다가가고 괴로움에 붙박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자가, 스스로 괴로움을 온전히 알거나 괴로움을 떨쳐 내고 머물 수 있겠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iñhi siyā, bho gotama?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No hidaṃ, bho gotamā’’ti.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aggivessana, nanu tvaṃ evaṃ sante dukkhaṃ allīno dukkhaṃ upagato dukkhaṃ ajjhosito, dukkhaṃ –
“아기웨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대야말로 괴로움에 달라붙고 괴로움에 다가가고 괴로움에 붙박여, 괴로움을 두고 —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samanupassasī’’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Kiñhi no siyā, bho gotama?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Evametaṃ bho gotamā’’ti.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59
“아기웻사나여, 이런 사람을 떠올려 보아라. 속심이 단단한 나무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속심을 찾아 헤매다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곧게 자란 커다란 파초 줄기를 만났다. 아직 어리고 열매도 맺지 않은 줄기였다. 그는 밑동을 자르고, 이어 꼭대기를 잘랐다. 그러고는 잎사귀를 겹겹이 벗겨 냈다. 아무리 벗겨도 겉재목조차 얻지 못할 텐데, 어찌 속심을 얻겠느냐?
‘‘Seyyathāpi, aggivessan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tiṇhaṃ kuṭhāriṃ ādāya vanaṃ paviseyya.
“예컨대, 악기웨사나여, 어떤 사람이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심재를 탐색하며 다니다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간다고 하자.
So tattha passeyya mahantaṃ kadalikkhandhaṃ ujuṃ navaṃ akukkukajātaṃ.
그는 거기서 크고 곧고 새로 돋은, 굽지 않고 자란 파초 줄기를 본다고 하자.
Tamenaṃ mūle chindeyya, mūle chetvā agge chindeyya, agge chetvā pattavaṭṭiṃ vinibbhujeyya.
그는 그것을 밑동에서 자르고, 밑동을 자르고 나서 끝을 자르고, 끝을 자르고 나서 잎집을 벗겨 낸다고 하자.
So tattha pattavaṭṭiṃ vinibbhujanto pheggumpi nādhigaccheyya, kuto sāraṃ?
그가 거기서 잎집을 벗겨 내면서 겉재목조차 얻지 못할 텐데, 하물며 심재이겠는가?
아기웻사나여, 너도 바로 그와 같다. 내가 네 주장을 두고 묻고, 따져 묻고, 캐물었다. 그러자 너는 속이 텅 비어 잘못에 빠지고 말았다. 너는 웨살리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와 논쟁을 벌이고도 떨지 않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몸서리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겨드랑이에 땀도 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렇다. 교단을 거느린 이든 무리를 이끄는 이든 무리의 스승이든 그렇다. 스스로 아라한이자 바르게 깨달은 분이라 말하는 이도 예외가 아니다. 의식 없는 기둥이라 해도 내가 논쟁을 걸면 떨고 몸서리치고 흔들릴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Evameva kho tvaṃ, aggivessana, mayā sakasmiṃ vāde samanuyuñjiyamāno samanugāhiyamāno samanubhāsiyamāno ritto tuccho aparaddho.
바로 이와 같이, 악기웨사나여, 그대는 나에게 자기 주장에 대해 따져 물어지고 캐물어지고 추궁받아, 텅 비고 헛되고 어긋났다.
Bhāsitā kho pana te esā, aggivessana, vesāliyaṃ parisati vācā –
그런데 악기웨사나여, 그대가 웨살리의 회중에서 한 이런 말이 있다 —
‘nāhaṃ taṃ passāmi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saṅghiṃ gaṇiṃ gaṇācariyaṃ, api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paṭijānamānaṃ, yo mayā vādena vādaṃ samāraddho na saṅkampeyya na sampakampeyya na sampavedheyya, yassa na kacchehi sedā mucceyyuṃ.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승가를 거느리고 무리를 거느리고 무리의 스승이며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도, 나에게 논쟁으로 논쟁이 걸렸을 때 흔들리지 않고 떨지 않고 전율하지 않을 자,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나오지 않을 자를 보지 못한다.
Thūṇaṃ cepāhaṃ acetanaṃ vādena vādaṃ samārabheyyaṃ sāpi mayā vādena vādaṃ samāraddhā saṅkampeyya sampakampeyya sampavedheyya.
내가 생각 없는 기둥에게 논쟁으로 논쟁을 걸어도, 그것마저 나에게 논쟁으로 논쟁이 걸리면 흔들리고 떨고 전율할 것이다.
Ko pana vādo manussabhūtassā’ti?
하물며 사람인 자에 대해서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기웻사나여, 지금 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몇 방울 흘러내려 윗옷을 적시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 내 몸에는 땀이 없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 모임 한가운데서 황금빛 몸을 드러내 보이셨다. 이 말씀을 들은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말없이 풀이 죽었다. 어깨를 떨구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Tuyhaṃ kho pana, aggivessana, appekaccāni sedaphusitāni nalāṭā muttāni, uttarāsaṅgaṃ vinibhinditvā bhūmiyaṃ patiṭṭhitāni.
그런데 악기웨사나여, 그대에게는 이마에서 땀방울 몇 개가 흘러나와, 윗옷을 뚫고 땅에 떨어져 있다.
Mayhaṃ kho pana, aggivessana, natthi etarahi kāyasmiṃ sedo’’ti.
그런데 악기웨사나여, 나에게는 지금 몸에 땀이 없다.”
Iti bhagavā tasmiṃ parisati suvaṇṇavaṇṇaṃ kāyaṃ vivari.
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께서는 그 회중에서 황금빛 몸을 드러내 보이셨다.
Evaṃ vutte, saccako nigaṇṭhaputto tuṇhībhūto maṅkubhūto pattakkhandho adhomukho pajjhāyanto appaṭibhāno nisīdi.
이렇게 말씀하시자, 삿짜까 니간타뿟따는 말이 없어지고 풀이 죽고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겨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앉아 있었다.
360
그때 릿차비의 아들 둠무카가 삿짜까를 보았다. 삿짜까는 말없이 풀이 죽어 어깨를 떨구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둠무카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게 비유 하나가 떠오릅니다.” “둠무카여, 떠오르는 대로 말해 보아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tha kho dummukho licchaviputto saccakaṃ nigaṇṭhaputtaṃ tuṇhībhūtaṃ maṅkubhūtaṃ pattakkhandhaṃ adhomukhaṃ pajjhāyantaṃ appaṭibhānaṃ vid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둠무카 릿차위뿟따가, 삿짜까 니간타뿟따가 말이 없어지고 풀이 죽고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겨 아무 대꾸도 못하는 것을 알고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upamā maṃ, bhagavā, paṭibhātī’’ti.
“세존이시여, 저에게 비유가 떠오릅니다.”
‘‘Paṭibhātu taṃ, dummukhā’’ti bhagavā avoca.
“그대에게 떠오르는 대로 하라, 둠무카여”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어 마을이나 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 연못에는 게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이 여럿 그 마을에서 나와 연못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연못에 들어가 게를 물 밖으로 끌어내어 뭍에 올려놓습니다. 게가 집게발을 뻗을 때마다 아이들은 나무토막이나 사금파리로 그 발을 칩니다. 그러면 발이 끊기고 부서지고 으스러집니다. 집게발이 모두 그렇게 되고 나면, 게는 예전처럼 연못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부리던 억지와 몸부림과 발버둥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그 모두를 끊고 부수고 으스러뜨리셨습니다. 이제 삿짜까는 논쟁할 마음을 먹고 다시 세존께 다가올 수 없을 것입니다.”
‘‘Seyyathāpi, bhante, gāmassa vā nigamassa vā avidūre pokkharaṇī.
“예컨대, 세존이시여,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Tatrāssa kakkaṭako.
거기에 게가 한 마리 있다고 하겠습니다.
Atha kho, bhante, sambahulā kumārakā vā kumārikā vā tamhā gāmā vā nigamā vā nikkhamitvā yena sā pokkharaṇī tenupasaṅkameyyuṃ;
그때, 세존이시여, 여러 사내아이나 계집아이가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나와 그 연못으로 다가간다고 하겠습니다;
upasaṅkamitvā taṃ pokkharaṇiṃ ogāhetvā taṃ kakkaṭakaṃ udakā uddharitvā thale patiṭṭhāpeyyuṃ.
다가가서는 그 연못에 뛰어들어 그 게를 물에서 건져 내어 마른땅에 놓아둔다고 하겠습니다.
Yaññadeva hi so, bhante, kakkaṭako aḷaṃ abhininnāmeyya taṃ tadeva te kumārakā vā kumārikā vā kaṭṭhena vā kathalena vā sañchindeyyuṃ sambhañjeyyuṃ sampalibhañjeyyuṃ.
그리고 세존이시여, 그 게가 집게발을 내밀 때마다 바로 그것을 그 사내아이들이나 계집아이들이 막대기나 자갈로 잘라 내고 부러뜨리고 산산이 부수어 버린다고 하겠습니다.
Evañhi so, bhante, kakkaṭako sabbehi aḷehi sañchinnehi sambhaggehi sampalibhaggehi abhabbo taṃ pokkharaṇiṃ puna otarituṃ, seyyathāpi pubbe.
그러면 세존이시여, 그 게는 집게발이 모두 잘리고 부러지고 산산이 부서져, 예전처럼 그 연못으로 다시 내려갈 수 없습니다.
Evameva kho, bhante, yāni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visūkāyitāni visevitāni vipphanditāni tānipi sabbāni bhagavatā sañchinnāni sambhaggāni sampalibhaggāni;
바로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삿짜까 니간타뿟따의 뒤틀린 짓과 어긋난 짓과 몸부림치는 짓, 그것들도 모두 세존께서 잘라 내고 부러뜨리고 산산이 부수셨습니다;
abhabbo ca dāni, bhante, saccako nigaṇṭhaputto puna bhagavantaṃ upasaṅkamituṃ yadidaṃ vādādhippāyo’’ti.
그리고 이제, 세존이시여, 삿짜까 니간타뿟따는 논쟁하려는 뜻을 품고 세존께 다시 다가올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릿차비의 아들 둠무카에게 말했다. “둠무카여, 잠깐 기다려라. 둠무카여, 잠깐 기다려라. 우리는 너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존경하는 고따마 존자와 이야기하고 있다.”[불확실]
Evaṃ vutte, saccako nigaṇṭhaputto dummukhaṃ licchaviput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삿짜까 니간타뿟따가 둠무카 릿차위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āgamehi tvaṃ, dummukha, āgamehi tvaṃ, dummukha ( ) na mayaṃ tayā saddhiṃ mantema, idha mayaṃ bhotā gotamena saddhiṃ mantema.
“그대는 기다려라, 둠무카여, 그대는 기다려라, 둠무카여 ( ) 우리는 그대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따마 존자와 이야기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361
“고따마 존자시여, 그 말은 저희와 다른 수많은 사문, 바라문들이 하던 말입니다. 그만두십시오. 부질없는 넋두리였던 듯합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의 제자는 어느 정도여야 가르침을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훈계대로 실천하고,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을 떨치는 사람 말입니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얻어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 안에서 지내는 사람 말입니다.”
‘‘Tiṭṭhatesā, bho gotama, amhākañceva aññesañca puthusamaṇabrāhmaṇānaṃ vācā.
“그 말은 그대로 두십시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의 말도, 다른 여러 사문과 바라문의 말도 그렇습니다.
Vilāpaṃ vilapitaṃ maññe.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이라 여깁니다.
Kittāvatā ca nu kho bhoto gotamassa sāvako sāsanakaro hoti ovādapatikar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ṃ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viharatī’’ti?
그런데 고따마 존자시여, 어느 만큼이면 고따마 존자의 제자가 가르침을 따르는 이가 되고, 훈계를 받아들이는 이가 되며,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이 사라지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 안에 머무는 것입니까?”
“아기웻사나여, 내 제자는 물질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물질이든 그렇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낮은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본다. 느낌도 그렇게 본다. 인식도, 형성도 그렇게 본다. 의식도 마찬가지다.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의식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낮은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아기웻사나여, 이 정도라야 내 제자가 가르침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훈계대로 실천하고,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을 떨친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얻어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 안에서 지내게 된다.”
‘‘Idha, aggivessana, mama sāvako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여기, 악기웨사나여, 나의 제자는 어떤 물질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yā kāci vedanā…pe… yā kāci saññā…pe… ye keci saṅkhārā…pe… yaṃ kiñci viññāṇ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viññāṇ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어떤 느낌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어떤 인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어떤 형성들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형성들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어떤 의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5:361.4에서 되살렸습니다.
Ettāvatā kho, aggivessana, mama sāvako sāsanakaro hoti ovādapatikar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ṃ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viharatī’’ti.
이만큼이면, 악기웨사나여, 나의 제자가 가르침을 따르는 이가 되고, 훈계를 받아들이는 이가 되며,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이 사라지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 안에 머문다.”
“고따마 존자시여, 비구는 어느 정도라야 아라한이라 할 수 있습니까? 번뇌가 다하고, 수행을 마치고, 할 일을 다하고, 짐을 내려놓은 사람 말입니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고, 존재의 속박을 완전히 끊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사람 말입니다.” “아기웻사나여, 비구는 물질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물질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낮은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느낌도 그렇고 인식도 그렇고 형성도 그렇다. 의식도 마찬가지다.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의식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낮은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아기웻사나여, 이 정도라야 비구는 아라한이 된다. 번뇌가 다하고, 수행을 마치고, 할 일을 다하고, 짐을 내려놓은 사람이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고, 존재의 속박을 완전히 끊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사람이다.”
‘‘Kittāvatā pana, bho gotama, bhikkhu arahaṃ hoti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ti?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어느 만큼이면 비구가 아라한이 되고, 번뇌가 다하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기 목적을 이루었고, 존재의 족쇄가 다 부서졌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이가 되는 것입니까?”
‘‘Idha, aggivessana,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
“여기, 악기웨사나여, 비구는 어떤 물질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yā kāci vedanā…pe… yā kāci saññā…pe… ye keci saṅkhārā…pe… yaṃ kiñci viññāṇ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viññāṇ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anupādā vimutto hoti.
어떤 느낌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어떤 인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어떤 형성들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형성들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어떤 의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집착 없이 해탈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5:361.8에서 되살렸습니다.
Ettāvatā kho, aggivessana, bhikkhu arahaṃ hoti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이만큼이면, 악기웨사나여, 비구가 아라한이 되고, 번뇌가 다하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기 목적을 이루었고, 존재의 족쇄가 다 부서졌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이가 된다.
아기웻사나여,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위없는 세 가지를 갖춘다. 곧 위없는 봄, 위없는 실천, 위없는 해탈이다.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오직 여래만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높이고, 받든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 세존께서는 깨달으셨기에 깨닫도록 법을 설하신다. 길들여지셨기에 길들이도록, 고요해지셨기에 고요해지도록, 건너셨기에 건너도록 법을 설하신다. 완전히 열반에 드셨기에 열반에 들도록 법을 설하신다.’”
Evaṃ vimuttacitto kho, aggivessana, bhikkhu tīhi anuttariyehi samannāgato hoti –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악기웨사나여, 세 가지 위없음을 갖춘다 —
dassanānuttariyena, paṭipadānuttariyena, vimuttānuttariyena.
봄의 위없음, 도닦음의 위없음, 해탈의 위없음이다.
Evaṃ vimuttacitto kho, aggivessana, bhikkhu tathāgataññeva sakkaroti garuṃ karoti māneti pūjeti –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악기웨사나여, 바로 여래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한다 —
buddho so bhagavā bodhāya dhammaṃ deseti, danto so bhagavā damathāya dhammaṃ deseti, santo so bhagavā samathāya dhammaṃ deseti, tiṇṇo so bhagavā taraṇāya dhammaṃ deseti, parinibbuto so bhagavā parinibbānāya dhammaṃ desetī’’ti.
‘그분 세존께서는 깨달으신 분으로서 깨달음을 위해 법을 설하시고, 길들여지신 분으로서 길들임을 위해 법을 설하시고, 고요하신 분으로서 고요함을 위해 법을 설하시고, 건너신 분으로서 건넘을 위해 법을 설하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신 분으로서 완전한 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
362
이 말씀을 들은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가 무례하고 건방졌습니다. 저희는 고따마 존자께 논쟁을 걸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이 발정 난 코끼리와 맞닥뜨리고도 무사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맞닥뜨리고서는 무사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불더미와 맞닥뜨리고도 무사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맞닥뜨리고서는 무사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이 맹독을 지닌 독사와 맞닥뜨리고도 무사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맞닥뜨리고서는 무사할 수 없습니다.[불확실]
Evaṃ vutte,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삿짜까 니간타뿟따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mayameva, bho gotama, dhaṃsī, mayaṃ pagabbā, ye mayaṃ bhavantaṃ gotamaṃ vādena vādaṃ āsādetabbaṃ amaññimha.
“저희야말로, 고따마 존자시여, 무례했고, 저희는 뻔뻔했습니다. 저희가 고따마 존자께 논쟁으로 논쟁을 걸어 볼 만하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iyā hi, bho gotama, hatthiṃ pabhinnaṃ āsajja purisassa sotthibhāvo, na tveva bhavantaṃ gotamaṃ āsajja siyā purisassa sotthibhāvo.
고따마 존자시여, 발정 난 코끼리에게 덤벼도 사람이 무사할 수는 있겠지만, 고따마 존자께 덤벼서는 사람이 무사할 수 없습니다.
Siyā hi, bho gotama, pajjalitaṃ aggikkhandhaṃ āsajja purisassa sotthibhāvo, na tveva bhavantaṃ gotamaṃ āsajja siyā purisassa sotthibhāvo.
고따마 존자시여, 활활 타오르는 불더미에 덤벼도 사람이 무사할 수는 있겠지만, 고따마 존자께 덤벼서는 사람이 무사할 수 없습니다.
Siyā hi, bho gotama, āsīvisaṃ ghoravisaṃ āsajja purisassa sotthibhāvo, na tveva bhavantaṃ gotamaṃ āsajja siyā purisassa sotthibhāvo.
고따마 존자시여, 무서운 독을 지닌 독사에게 덤벼도 사람이 무사할 수는 있겠지만, 고따마 존자께 덤벼서는 사람이 무사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가 무례하고 건방졌습니다. 저희는 고따마 존자께 논쟁을 걸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제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말없이 받아들이셨다.[불확실]
Mayameva, bho gotama, dhaṃsī, mayaṃ pagabbā, ye mayaṃ bhavantaṃ gotamaṃ vādena vādaṃ āsādetabbaṃ amaññimha.
저희야말로, 고따마 존자시여, 무례했고, 저희는 뻔뻔했습니다. 저희가 고따마 존자께 논쟁으로 논쟁을 걸어 볼 만하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dhivāsetu me bhavaṃ gotamo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고따마 존자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363
그때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세존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았다. 그는 릿차비들에게 말했다. “릿차비 여러분,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사문 고따마를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공양에 초청했습니다. 여러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게 가져다주십시오.” 그리하여 릿차비들은 그 밤이 지나자 삿짜까에게 오백 그릇 가량의 요리를 공양거리로 가져왔다. 니간타의 아들은 자기 동산에서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했다. 그러고는 세존께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고따마 존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te licchavī āmantesi –
그때 삿짜까 니간타뿟따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그 릿차위들을 불렀다 —
‘‘suṇantu me bhonto licchavī, samaṇo me gotamo nimantito svātan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릿차위 여러분, 제 말을 들으십시오. 사문 고따마께서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공양에 저의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Tena me abhihareyyātha yamassa patirūpaṃ maññeyyāthā’’ti.
그러니 그분께 어울린다고 여기시는 것을 저에게 가져다주십시오.”
Atha kho te licchavī tassā rattiyā accayena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pañcamattāni thālipākasatāni bhattābhihāraṃ abhihariṃsu.
그러자 그 밤이 지나고, 그 릿차위들은 삿짜까 니간타뿟따에게 오백 접시쯤 되는 음식을 공양거리로 가져왔다.
Atha kho nigaṇṭhaputto sake ārām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ṃ ārocāpesi –
그때 니간타뿟따는 자기 원림에서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하고 세존께 때를 알리게 했다 —
‘‘kālo, bho gotama, niṭṭhitaṃ bhatta’’nti.
“고따마 존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갖추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의 동산으로 가셨다. 거기서 마련된 자리에 비구 승가와 함께 앉으셨다. 삿짜까는 부처님을 으뜸으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대접했다. 그리고 배불리 드시게 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yena saccakassa nigaṇṭhaputtassa ārām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삿짜까 니간타뿟따의 원림으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saddhiṃ bhikkhusaṅghena.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비구 승가와 함께 앉으셨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uddhappamukhaṃ bhikkhusaṅghaṃ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그때 삿짜까 니간타뿟따는 붓다를 앞세운 비구 승가에게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대접하여 흡족하게 하고 만족시켰다.
삿짜까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신 것을 보았다. 그는 낮은 자리 하나를 골라 한쪽에 앉아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보시에서 생기는 공덕과 공덕의 불어남이 보시한 이들의 행복이 되기를 바랍니다.”[불확실]
Atha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ntaṃ bhuttāviṃ onītapattapāṇiṃ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그때 삿짜까 니간타뿟따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낮은 자리 하나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accako nigaṇṭh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삿짜까 니간타뿟따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yamidaṃ, bho gotama, dāne puññañca puññamahī ca taṃ dāyakānaṃ sukhāya hotū’’ti.
“고따마 존자시여, 이 보시에 있는 공덕과 공덕의 풍성함, 그것이 보시한 이들의 행복이 되기를 바랍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아기웻사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아직 떠나지 못한 이가 있다. 그런 공양받을 만한 이를 만나 생긴 공덕은 보시한 이들의 것이 될 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난 이도 있다. 나 같은 공양받을 만한 이를 만나 생긴 공덕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Yaṃ kho, aggivessana, tādisaṃ dakkhiṇeyyaṃ āgamma avītarāgaṃ avītadosaṃ avītamohaṃ, taṃ dāyakānaṃ bhavissati.
“악기웨사나여,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성냄을 여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한, 그대와 같은 보시받을 만한 이를 의지해서 생기는 것, 그것은 보시한 이들의 것이 될 것이다.
Yaṃ kho, aggivessana, mādisaṃ dakkhiṇeyyaṃ āgamma vītarāgaṃ vītadosaṃ vītamohaṃ, taṃ tuyhaṃ bhavissatī’’ti.
악기웨사나여, 탐욕을 여의고 성냄을 여의고 어리석음을 여읜, 나와 같은 보시받을 만한 이를 의지해서 생기는 것,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짧은 삿짜까 경이 다섯 번째로 끝났다.
Cūḷasaccakasuttaṃ niṭṭhitaṃ pañcamaṃ.
쭐라삿짜까 경이 끝났다. 다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