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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30

쭐라사로빠마 경

Cūḷasāropamasutt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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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ūḷasāropamasuttaṃ

10. 쭐라사로빠마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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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사위성의 제따숲, 아나타삔디까의 정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핑갈라코차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주고받은 뒤에는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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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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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a kho piṅgalakocch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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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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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PN:mn30/312.5 · 검토 전

Ekamantaṃ nisinno kho piṅgalakoccho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PN:mn30/312.6 · 검토 전

고타마 존자시여, 승단을 이끌고 무리를 거느린 스승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개척자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훌륭한 이로 여기는 사문과 바라문들이지요. 푸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주장대로 참으로 알았습니까? 아니면 모두 알지 못했습니까? 혹은 더러는 알았고 더러는 알지 못했습니까?

‘‘yeme, bho gotama, samaṇabrāhmaṇā saṅghino gaṇino gaṇācariyā ñātā yasassino titthakarā sādhusammatā, bahujanassa, seyyathidaṃ –

“고따마 존자시여, 승가를 거느리고 무리를 거느리며 무리의 스승이고,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있으며, 교단을 세운 이들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저 사문과 바라문들, 곧 —

PN:mn30/312.7 · 검토 전

pūraṇo kassapo, makkhali gosālo, ajito kesakambalo, pakudho kaccāyano, sañcayo belaṭṭhaputto, nigaṇṭho nāṭaputto,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aṃsu sabbeva nābbhaññaṃsu, udāhu ekacce abbhaññaṃsu ekacce nābbhaññaṃsū’’ti?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타뿟따, 니간타 나따뿟따, 이들은 모두 자기가 내세운 주장대로 곧바로 알았습니까, 모두 곧바로 알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이는 곧바로 알았고 어떤 이는 곧바로 알지 못했습니까?”

PN:mn30/312.8 · 검토 전

그만두어라, 바라문이여. 그 일은 놓아 두어라. 이들이 모두 알았는지, 모두 몰랐는지, 더러는 알고 더러는 몰랐는지는 따지지 말자. 바라문이여,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다. 잘 듣고 곰곰이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Alaṃ, brāhmaṇa, tiṭṭhatetaṃ –

“그만하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대로 두어라 —

PN:mn30/312.9 · 검토 전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aṃsu sabbeva nābbhaññaṃsu, udāhu ekacce abbhaññaṃsu ekacce nābbhaññaṃsūti.

이들은 모두 자기가 내세운 주장대로 곧바로 알았는가 모두 곧바로 알지 못했는가, 아니면 어떤 이는 곧바로 알았고 어떤 이는 곧바로 알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PN:mn30/312.10 · 검토 전

Dhammaṃ te, brāhmaṇa, desessāmi,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법을 일러 주겠다. 그것을 들어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PN:mn30/312.11 · 검토 전

핑갈라코차 바라문은 “그렇게 하십시오, 존자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불확실]

‘‘Evaṃ, bho’’ti kho piṅgalakoccho brāhmaṇo bhagavato paccassosi.

“예, 존자시여” 하고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대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30/312.12 · 검토 전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mn30/312.13 · 검토 전

313

바라문이여, 속살을 바라고 속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 이르렀다. 그런데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과 겉껍질을 모두 지나쳤다. 그러고는 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살이다’ 하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속살을 알지 못했구나. 겉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속살을 찾아 헤매던 이가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과 겉껍질을 지나치고, 가지와 잎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atikkamma papaṭikaṃ, sākhāpalās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바라문이여, 예컨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이,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 잔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다고 하자.

PN:mn30/313.1 · 검토 전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30/313.2 · 검토 전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사람은 참으로 속심을 알지 못했고, 겉살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잔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PN:mn30/313.3 · 검토 전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atikkamma papaṭikaṃ, sākhāpalās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사람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 잔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것이다.

PN:mn30/313.4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13.5 · 검토 전

314

바라문이여, 속살을 바라고 속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 이르렀다. 그런데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겉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살이다’ 하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속살을 알지 못했구나. 겉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속살을 찾아 헤매던 이가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vā pana,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papaṭik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또는 바라문이여, 예컨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이,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쳐, 겉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다고 하자.

PN:mn30/314.1 · 검토 전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30/314.2 · 검토 전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사람은 참으로 속심을 알지 못했고, 겉살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잔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PN:mn30/314.3 · 검토 전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papaṭik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사람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쳐 겉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것이다.

PN:mn30/314.4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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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속살을 바라고 속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 이르렀다. 그런데 속살과 겉살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속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살이다’ 하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속살을 알지 못했구나. 겉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속살을 찾아 헤매던 이가 속살과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vā pana,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tac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또는 바라문이여, 예컨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이,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쳐, 속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다고 하자.

PN:mn30/315.1 · 검토 전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30/315.2 · 검토 전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사람은 참으로 속심을 알지 못했고, 겉살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잔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PN:mn30/315.3 · 검토 전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tac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사람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쳐, 속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것이다.

PN:mn30/315.4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15.5 · 검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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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속살을 바라고 속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 이르렀다. 그런데 속살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겉살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살이다’ 하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속살을 알지 못했구나. 겉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속살을 찾아 헤매던 이가 속살을 지나치고, 겉살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vā pana,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pheggu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또는 바라문이여, 예컨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이,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쳐, 겉살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다고 하자.

PN:mn30/316.1 · 검토 전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30/316.2 · 검토 전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사람은 참으로 속심을 알지 못했고, 겉살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잔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PN:mn30/316.3 · 검토 전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pheggu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사람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쳐, 겉살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것이다.

PN:mn30/316.4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16.5 · 검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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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속살을 바라고 속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 이르렀다. 그리고 속살만을 잘라 들고, 속살인 줄 알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속살을 알았구나. 겉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았구나. 속살을 찾아 헤매던 이가 속살만을 잘라 들고, 속살인 줄 알며 떠났으니 말이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룰 것이다.’

‘‘Seyyathāpi vā pana,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jānamāno.

“또는 바라문이여, 예컨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이,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바로 그 속심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알면서 떠난다고 하자.

PN:mn30/317.1 · 검토 전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30/317.2 · 검토 전

‘aññāsi vatāyaṃ bhavaṃ puriso sāraṃ, aññāsi phegguṃ, aññāsi tacaṃ, aññāsi papaṭikaṃ,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사람은 참으로 속심을 알았고, 겉살도 알았고, 속껍질도 알았고, 겉껍질도 알았고, 잔가지와 잎도 알았다.

PN:mn30/317.3 · 검토 전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jānamāno.

그러기에 이 사람은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바로 그 속심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알면서 떠난 것이다.

PN:mn30/317.4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anubhavissatī’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룰 것이다.’

PN:mn30/317.5 · 검토 전

318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낼 길이 드러나지 않겠는가.’[불확실]

‘‘Evameva kho, brāhmaṇa, idhekacco puggal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불확실]

불확실 —

PN:mn30/318.1 · 검토 전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온 괴로움 무더기를 끝내는 일이 드러나기를.’

PN:mn30/318.2 · 검토 전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본다. ‘나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누린다. 그런데 저 다른 비구들은 이름 없고 힘없는 자들이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PN:mn30/318.3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진다.

PN:mn30/318.4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PN:mn30/318.5 · 검토 전

‘ahamasmi lābhasakkārasilokavā, ime panaññe bhikkhū appaññātā appesakkhā’ti.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지녔는데, 이 다른 비구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보잘것없다.’

PN:mn30/318.6 · 검토 전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지 않는다. 애쓰지도 않고, 위축되어 해이하게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는 속살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과 겉껍질을 지나치고, 가지와 잎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난 것과 같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이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Lābhasakkārasilok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na chandaṃ janeti, na vāyamati, olīnavuttiko ca hoti sāthaliko.

그리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지 않고 애쓰지 않으며, 게으르게 지내고 느슨해진다.

PN:mn30/318.7 · 검토 전

Seyyathāpi so,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atikkamma papaṭikaṃ, sākhāpalās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바라문이여, 마치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 잔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저 사람과 같다.

PN:mn30/318.8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18.9 · 검토 전

Tathūpamāhaṃ, brāhmaṇa, imaṃ puggalaṃ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을 그에 견주어 말한다.

PN:mn30/318.10 · 검토 전

319

바라문이여, 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낼 길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러나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PN:mn30/319.1 · 검토 전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온 괴로움 무더기를 끝내는 일이 드러나기를.’

PN:mn30/319.2 · 검토 전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PN:mn30/319.3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도 않는다.

PN:mn30/319.4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19.5 · 검토 전

Lābhasakkārasilok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19.6 · 검토 전

그는 계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그리고 계를 갖춘 것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계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본다. ‘나는 계를 지키며 선한 성품을 지녔다. 그런데 저 다른 비구들은 계를 어기고 나쁜 성품을 지녔다.’ 그는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지 않는다. 애쓰지도 않고, 위축되어 해이하게 지낸다.

S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계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19.7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진다.

PN:mn30/319.8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PN:mn30/319.9 · 검토 전

‘ahamasmi sīlavā kalyāṇadhammo, ime panaññe bhikkhū dussīlā pāpadhammā’ti.

‘나는 계를 지키고 좋은 성품을 지녔는데, 이 다른 비구들은 계를 지키지 않고 나쁜 성품을 지녔다.’

PN:mn30/319.10 · 검토 전

Sīla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na chandaṃ janeti, na vāyamati, olīnavuttiko ca hoti sāthaliko.

그리고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지 않고 애쓰지 않으며, 게으르게 지내고 느슨해진다.

PN:mn30/319.11 · 검토 전

바라문이여, 이는 속살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속살과 겉살과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난 것과 같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이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so,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papaṭik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바라문이여, 마치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쳐, 겉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저 사람과 같다.

PN:mn30/319.12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19.13 · 검토 전

Tathūpamāhaṃ, brāhmaṇa, imaṃ puggalaṃ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을 그에 견주어 말한다.

PN:mn30/319.14 · 검토 전

320

바라문이여, 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낼 길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러나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PN:mn30/320.1 · 검토 전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온 괴로움 무더기를 끝내는 일이 드러나기를.’

PN:mn30/320.2 · 검토 전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PN:mn30/320.3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도 않는다.

PN:mn30/320.4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0.5 · 검토 전

Lābhasakkārasilok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0.6 · 검토 전

그는 계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계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계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계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0.7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0.8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0.9 · 검토 전

Sīla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0.10 · 검토 전

그는 삼매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그리고 삼매를 갖춘 것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삼매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본다. ‘나는 마음이 고요히 모여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런데 저 다른 비구들은 마음이 모이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그는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지 않는다. 애쓰지도 않고, 위축되어 해이하게 지낸다.

S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삼매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0.11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진다.

PN:mn30/320.12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PN:mn30/320.13 · 검토 전

‘ahamasmi samāhito ekaggacitto, ime panaññe bhikkhū asamāhitā vibbhantacittā’ti.

‘나는 삼매에 들어 마음이 한곳에 모였는데, 이 다른 비구들은 삼매에 들지 못해 마음이 흩어졌다.’

PN:mn30/320.14 · 검토 전

Samādhi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na chandaṃ janeti, na vāyamati, olīnavuttiko ca hoti sāthaliko.

그리고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지 않고 애쓰지 않으며, 게으르게 지내고 느슨해진다.

PN:mn30/320.15 · 검토 전

바라문이여, 이는 속살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속살과 겉살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난 것과 같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이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so,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tac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바라문이여, 마치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치고 겉살을 지나쳐, 속껍질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저 사람과 같다.

PN:mn30/320.16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20.17 · 검토 전

Tathūpamāhaṃ, brāhmaṇa, imaṃ puggalaṃ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을 그에 견주어 말한다.

PN:mn30/320.18 · 검토 전

321

바라문이여, 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에 빠져 있다. …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낼 길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러나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PN:mn30/321.1 · 검토 전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pe…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온 괴로움 무더기를 끝내는 일이 드러나기를.’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0:318.2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30/321.2 · 검토 전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PN:mn30/321.3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도 않는다.

PN:mn30/321.4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1.5 · 검토 전

Lābhasakkārasilok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1.6 · 검토 전

그는 계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계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계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계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1.7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1.8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1.9 · 검토 전

Sīla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1.10 · 검토 전

그는 삼매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삼매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삼매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삼매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1.11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1.12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1.13 · 검토 전

Samādhi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1.14 · 검토 전

그는 앎과 봄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앎과 봄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앎과 봄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본다. ‘나는 알고 보며 지낸다. 그런데 저 다른 비구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하며 지낸다.’ 그는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지 않는다. 애쓰지도 않고, 위축되어 해이하게 지낸다.

S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앎과 봄을 이룬다.

PN:mn30/321.15 · 검토 전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진다.

PN:mn30/321.16 · 검토 전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PN:mn30/321.17 · 검토 전

‘ahamasmi jānaṃ passaṃ viharāmi, ime panaññe bhikkhū ajānaṃ apassaṃ viharantī’ti.

‘나는 알고 보면서 머무는데, 이 다른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서 머문다.’

PN:mn30/321.18 · 검토 전

Ñāṇadassan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na chandaṃ janeti, na vāyamati, olīnavuttiko ca hoti sāthaliko.

그리고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지 않고 애쓰지 않으며, 게으르게 지내고 느슨해진다.

PN:mn30/321.19 · 검토 전

바라문이여, 이는 속살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속살을 지나치고, 겉살을 잘라 속살이라 여기며 떠난 것과 같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이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so,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pheggu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바라문이여, 마치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속심을 지나쳐, 겉살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여기며 떠난 저 사람과 같다.

PN:mn30/321.20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PN:mn30/321.21 · 검토 전

Tathūpamāhaṃ, brāhmaṇa, imaṃ puggalaṃ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을 그에 견주어 말한다.

PN:mn30/321.22 · 검토 전

322

바라문이여, 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낼 길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러나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PN:mn30/322.1 · 검토 전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근심과 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온 괴로움 무더기를 끝내는 일이 드러나기를.’

PN:mn30/322.2 · 검토 전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PN:mn30/322.3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도 않는다.

PN:mn30/322.4 · 검토 전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2.5 · 검토 전

Lābhasakkārasilok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이득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2.6 · 검토 전

그는 계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계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계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계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2.7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2.8 · 검토 전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2.9 · 검토 전

Sīla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계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2.10 · 검토 전

그는 삼매를 갖추는 일을 이룬다. 삼매를 갖춘 것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삼매를 갖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삼매를 갖춤을 이룬다.

PN:mn30/322.11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2.12 · 검토 전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를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2.13 · 검토 전

Samādhisampadāy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삼매를 갖춤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2.14 · 검토 전

그는 앎과 봄을 이룬다. 그 앎과 봄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앎과 봄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그는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을 몸소 이루려는 열의를 내고 애쓴다. 위축되지 않고 해이하지도 않게 지낸다.

S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앎과 봄을 이룬다.

PN:mn30/322.15 · 검토 전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지만, 뜻한 바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PN:mn30/322.16 · 검토 전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 않는다.

PN:mn30/322.17 · 검토 전

Ñāṇadassanena ca ye aññe dhammā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tesaṃ dhammānaṃ sacchikiriy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anolīnavuttiko ca hoti asāthaliko.

그리고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다른 법들이 있는데, 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열의를 내고 애쓰며, 게으르게 지내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는다.

PN:mn30/322.18 · 검토 전

323

바라문이여,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이란 무엇인가?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고 해로운 법에서 떠난다. 그리고 거친 생각과 미세한 살핌이 있고, 홀로 떨어져 있어 생겨난 기쁨과 행복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Katame ca, brāhmaṇa, dhammā ñāṇadassanena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바라문이여,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법들이란 무엇인가?

PN:mn30/323.1 · 검토 전

Idha, brāhmaṇa,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2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3 · 검토 전

또 비구는 거친 생각과 미세한 살핌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마음이 맑아지고 하나로 모이며, 생각도 살핌도 없이 삼매에서 생겨난 기쁨과 행복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4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5 · 검토 전

또 비구는 기쁨에서도 벗어나 평온하게 지낸다. 바르게 깨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은 이 상태를 ‘평온하고 깨어 있으며 행복하게 지내는 이’라고 일컫는다. 비구는 이런 셋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희열에 대한 탐욕이 사라져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

PN:mn30/323.6 · 검토 전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7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8 · 검토 전

또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린다. 앞서 즐거움과 근심이 이미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평온과 깨어 있음으로 청정해진 넷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행복을 버리고 괴로움을 버리며,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깨끗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9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10 · 검토 전

또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선다. 부딪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허공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허공의 경지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11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12 · 검토 전

또 비구는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의식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의식의 경지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13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14 · 검토 전

또 비구는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하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15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16 · 검토 전

또 비구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들어 지낸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mn30/323.17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18 · 검토 전

또 비구는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인식과 느낌이 소멸한 경지에 들어 지내며, 지혜로 보아 번뇌가 완전히 다한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이다. 바라문이여, 이것들이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뛰어난 법들이다.

‘‘Puna caparaṃ, brāhmaṇa, bhikkhu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또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물고, 통찰지로 보아 그의 번뇌들이 다한다.

PN:mn30/323.19 · 검토 전

Ayampi kho, brāhmaṇa, dhammo ñāṇadassanena uttaritaro ca paṇītataro ca.

바라문이여, 이 법도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나다.

PN:mn30/323.20 · 검토 전

Ime kho, brāhmaṇa, dhammā ñāṇadassanena uttaritarā ca paṇītatarā ca.

바라문이여, 이러한 법들이 앎과 봄보다 더 높고 더 빼어난 법들이다.

PN:mn30/323.21 · 검토 전

324

바라문이여, 이는 속살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속살이 든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속살만을 잘라 들고, 속살인 줄 알며 떠난 것과 같다. 그가 속살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룰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이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so, brāhmaṇa,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ṃyeva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jānamāno.

“바라문이여, 마치 속심을 구하고 속심을 찾아 속심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속심을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바로 그 속심을 잘라 들고 ‘이것이 속심이다’라고 알면서 떠난 저 사람과 같다.

PN:mn30/324.1 · 검토 전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anubhavissati.

그가 속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룰 것이다.

PN:mn30/324.2 · 검토 전

Tathūpamāhaṃ, brāhmaṇa, imaṃ puggalaṃ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을 그에 견주어 말한다.

PN:mn30/324.3 · 검토 전

바라문이여, 이 청정한 수행의 목적은 이익과 존경과 명성이 아니다. 계를 갖추는 것도, 삼매를 갖추는 것도, 앎과 봄도 목적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이 있다. 이 수행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속살이고, 그것이 끝이다.[불확실]

‘‘Iti kho, brāhmaṇa, nayidaṃ brahmacariyaṃ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ṃ, na sīlasampadānisaṃsaṃ, na samādhisampadānisaṃsaṃ, na ñāṇadassanānisaṃsaṃ.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청정한 삶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이익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계를 갖춤을 이익으로 삼는 것도 아니며, 삼매를 갖춤을 이익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앎과 봄을 이익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PN:mn30/324.4 · 검토 전

Yā ca kho ayaṃ, brāhmaṇa, akuppā cetovimutti –

바라문이여, 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心解脫), 바로 이것이니[불확실]

불확실 —

PN:mn30/324.5 · 검토 전

etadatthamidaṃ, brāhmaṇa, brahmacariyaṃ, etaṃ sāraṃ etaṃ pariyosāna’’nti.

바라문이여, 이 청정한 삶은 이것을 위한 것이며, 이것이 속심이고 이것이 끝이다.”

PN:mn30/324.6 · 검토 전

이렇게 말씀하시자, 핑갈라코차 바라문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 고타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작은 속살의 비유 경」이 끝났다. 열 번째이다.[불확실]

Evaṃ vutte, piṅgalakoccho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PN:mn30/324.7 · 검토 전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pe…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30/324.8 · 검토 전

Cūḷasāropam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쭐라사로빠마 경이 끝났다. 열 번째다.

PN:mn30/324.9 · 검토 전

Opammavaggo niṭṭhito tatiyo.

비유 품이 끝났다. 세 번째다.

PN:mn30/324.10 · 검토 전

Tassuddānaṃ –

그 요약 게송은 —

PN:mn30/324.11 · 검토 전

Moḷiyaphaggunariṭṭhañca nāmo, andhavane kathipuṇṇaṃ nivāpo;

몰리야팍구나와 아릿타, 그리고 이름, 안다 숲, 이야기와 뿐나, 미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30/324.12 · 검토 전

Rāsikaṇerumahāgajanāmo, sārūpamo puna piṅgalakoccho.

무더기와 암코끼리와 큰 코끼리라는 이름, 속심의 비유, 그리고 다시 삥갈라꼿차.[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30/324.13 · 검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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