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Mahādhammasamādānasuttaṃ
6. 마하담마사마다나 경
473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bhikkhavo’’ti.
“비구들이여” 하고.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대부분의 중생은 이렇게 바라고 원하고 마음먹는다. ‘아,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줄어들었으면.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났으면.’ 그런데 비구들이여, 이렇게 마음먹는 중생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그 까닭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yebhuyyena, bhikkhave, sattā evaṃkāmā evaṃchandā evaṃadhippāyā –
“비구들이여, 대개 중생들은 이런 바람, 이런 욕구, 이런 뜻을 지닌다 —
‘aho vata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eyyuṃ,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eyyu’nti.
‘아, 참으로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은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은 늘어나기를’이라고.
Tes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kāmānaṃ evaṃchandānaṃ evaṃadhippāyānaṃ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비구들이여, 그런 바람, 그런 욕구, 그런 뜻을 지닌 그 중생들에게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은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은 줄어든다.
Tatra tumhe, bhikkhave, kaṃ hetuṃ paccethā’’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거기서 어떤 원인을 드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께서 뿌리이시고, 이끄시며, 의지처이십니다. 이 말씀의 뜻을 세존께서 직접 밝혀 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저희 비구들은 세존께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잘 들으라. 마음을 기울여 새기라. 내가 말하겠다.”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Bhagavaṃmūlakā no, bhante, dhammā, bhagavaṃnettikā, bhagavaṃpaṭisaraṇā.
“세존이시여, 저희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인도자로 하며, 세존을 의지처로 합니다.
Sādhu vata, bhante, bhagavantaññeva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세존이시여, 부디 이 말씀의 뜻이 세존께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지니겠습니다.”
‘‘Tena hi, bhikkhave,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474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만나 보지 못했다. 성자의 법에 밝지 못하고, 그 법에 길들지 못했다. 참사람들도 만나 보지 못했다. 참사람의 법에 밝지 못하고, 그 법에도 길들지 못했다. 그래서 가까이해야 할 법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을 알지 못한다. 따라야 할 법과 따르지 말아야 할 법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을 가까이하고, 가까이해야 할 법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따르지 말아야 할 법을 따르고, 따라야 할 법은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하니 그에게는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sevitabbe dhamme na jānāti asevitabbe dhamme na jānāti, bhajitabbe dhamme na jānāti abhajitabbe dhamme na 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밝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길들지 않았으며, 참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법에 밝지 못하고 참사람의 법에 길들지 않아,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며, 사귀어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고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한다.
So sevitabbe dhamme ajānanto asevitabbe dhamme ajānanto, bhajitabbe dhamme ajānanto abhajitabbe dhamme ajānanto, asevitabbe dhamme sevati sevitabbe dhamme na sevati, abhajitabbe dhamme bhajati bhajitabbe dhamme na bhajati.
그는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며, 사귀어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고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지 못하여,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고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사귀고 사귀어야 할 법들을 사귀지 않는다.
Tassa asevitabbe dhamme sevato sevitabbe dhamme asevato, abhajitabbe dhamme bhajato bhajitabbe dhamme abhaj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그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고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사귀고 사귀어야 할 법들을 사귀지 않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줄어든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aviddasuno.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들은 바 있는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만나 보았다. 성자의 법에 밝고, 그 법에 잘 길들었다. 참사람들도 만나 보았다. 참사람의 법에 밝고, 그 법에도 잘 길들었다. 그래서 가까이해야 할 법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을 안다. 따라야 할 법과 따르지 말아야 할 법도 안다. 알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은 가까이하지 않고, 가까이해야 할 법을 가까이한다. 따르지 말아야 할 법은 따르지 않고, 따라야 할 법을 따른다. 이렇게 하니 그에게는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줄어든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Sutavā ca kho, bhikkhave, ariyasāvako, ariyānaṃ dassāvī ariyadhammassa kovido ariyadhamme suvinīto, sappurisānaṃ dassāvī sappurisadhammassa kovido sappurisadhamme suvinīto, sevitabbe dhamme jānāti asevitabbe dhamme jānāti, bhajitabbe dhamme jānāti abhajitabbe dhamme jānāti.
비구들이여, 그러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보고 성자의 법에 밝고 성자의 법에 잘 길들었으며, 참사람들을 보고 참사람의 법에 밝고 참사람의 법에 잘 길들어,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알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며, 사귀어야 할 법들을 알고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안다.
So sevitabbe dhamme jānanto asevitabbe dhamme jānanto, bhajitabbe dhamme jānanto abhajitabbe dhamme jānanto, asevitabbe dhamme na sevati sevitabbe dhamme sevati, abhajitabbe dhamme na bhajati bhajitabbe dhamme bhajati.
그는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알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며, 사귀어야 할 법들을 알고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알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며,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사귀지 않고 사귀어야 할 법들을 사귄다.
Tassa asevitabbe dhamme asevato sevitabbe dhamme sevato, abhajitabbe dhamme abhajato bhajitabbe dhamme bhaj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가까이해야 할 법들을 가까이하며, 사귀지 말아야 할 법들을 사귀지 않고 사귀어야 할 법들을 사귀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늘어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viddasuno.
비구들이여, 아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475
비구들이여, 법을 받아 지니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첫째는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둘째는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또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Cattārimāni, bhikkhave, dhammasamādānāni.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법의 받아 지님이 있다.
Katamāni cattāri?
무엇이 넷인가?
Atth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 있다;
atth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 있다;
atth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 있다;
atth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 있다.
476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으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appajānanto taṃ sevati, taṃ na parivajjeti.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Tassa taṃ sevato, taṃ a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줄어든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aviddasuno.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으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appajānanto taṃ sevati, taṃ na parivajjeti.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Tassa taṃ sevato, taṃ a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줄어든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aviddasuno.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한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하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appajānanto taṃ na sevati, taṃ parivajjeti.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한다.
Tassa taṃ asevato, taṃ 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줄어든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aviddasuno.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한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하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줄어든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자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avidvā avijjāgato yathābhūtaṃ appajānanto taṃ na sevati, taṃ parivajjeti.
그것을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한다.
Tassa taṃ asevato, taṃ 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늘어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줄어든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aviddasuno.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477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고 밝은 지혜를 지닌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아는 것이다. 그는 알고 밝은 지혜를 지녔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한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하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줄어든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른 자는 있는 그대로 안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anto taṃ na sevati, taṃ parivajjeti.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 아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한다.
Tassa taṃ asevato, taṃ 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늘어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viddasuno.
비구들이여, 아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고 밝은 지혜를 지닌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아는 것이다. 그는 알고 밝은 지혜를 지녔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한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피하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줄어든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른 자는 있는 그대로 안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anto taṃ na sevati, taṃ parivajjeti.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 아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한다.
Tassa taṃ asevato, taṃ 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늘어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viddasuno.
비구들이여, 아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고 밝은 지혜를 지닌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아는 것이다. 그는 알고 밝은 지혜를 지녔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으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줄어든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른 자는 있는 그대로 안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anto taṃ sevati, taṃ na parivajjeti.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 아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Tassa taṃ sevato, taṃ a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늘어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viddasuno.
비구들이여, 아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알고 밝은 지혜를 지닌 자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다.’ 하고 아는 것이다. 그는 알고 밝은 지혜를 지녔으므로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것을 가까이하고 피하지 않으니, 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긴다. 바라지 않고 반갑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줄어든다. 바라고 반갑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른 자는 있는 그대로 안다 —
‘idaṃ kho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nti.
‘이것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다’라고.
Taṃ vidvā vijjāgato yathābhūtaṃ pajānanto taṃ sevati, taṃ na parivajjeti.
그것을 알고 명지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 아는 그는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Tassa taṃ sevato, taṃ aparivajjayato,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dhammā parihāya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가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기에,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이 줄어들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법들이 늘어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viddasuno.
비구들이여, 아는 자에게 그러하듯, 이것은 그러한 것이다.
478
비구들이여,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은 어떤 것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산 목숨을 죽인다. 산 목숨을 죽이는 그 일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애욕에 대한 잘못된 행실도 그렇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그 행동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할 때에도 같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말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탐욕스럽거나 악의에 찬 마음을 품거나 그릇된 견해를 지닐 때도 그러하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런 마음과 견해를 지니고, 그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갈래,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라고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āṇātipātī hoti, pāṇātipāt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산 목숨을 죽이는 자가 되고,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dinnādāyī hoti, adinnādān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kāmesu micchācārī hoti, kāmesu micchācār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자가 되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musāvādī hoti, musāvād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거짓말하는 자가 되고, 거짓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isuṇavāco hoti, pisuṇavācā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되고,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harusavāco hoti, pharusavācā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거친 말을 하는 자가 되고, 거친 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samphappalāpī hoti, samphappalāp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가 되고, 쓸데없는 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bhijjhālu hoti, abhijjhā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탐내는 자가 되고, 탐냄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byāpannacitto hoti, byāpād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가 되고, 성냄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micchādiṭṭhi hoti, micchādiṭṭhi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되고,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라 한다.
479
비구들이여,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은 어떤 것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산 목숨을 죽인다. 산 목숨을 죽이는 그 일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애욕에 대한 잘못된 행실도 그렇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렇게 행동하고, 그 행동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할 때에도 같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말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탐욕스럽거나 악의에 찬 마음을 품거나 그릇된 견해를 지닐 때도 그러하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런 마음과 견해를 지니고, 그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갈래,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라고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āṇātipātī hoti, pāṇātipāt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산 목숨을 죽이는 자가 되고,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adinnādāyī hoti, adinnādān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kāmesumicchācārī hoti, kāmesumicchācār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자가 되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musāvādī hoti, musāvād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거짓말하는 자가 되고, 거짓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isuṇavāco hoti, pisuṇavācā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되고,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harusavāco hoti, pharusavācā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거친 말을 하는 자가 되고, 거친 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samphappalāpī hoti, samphappalāp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가 되고, 쓸데없는 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abhijjhālu hoti, abhijjhā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탐내는 자가 되고, 탐냄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byāpannacitto hoti, byāpād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가 되고, 성냄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micchādiṭṭhi hoti, micchādiṭṭhi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되고,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라 한다.
480
비구들이여,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은 어떤 것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을 멀리한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그 일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애욕에 대한 잘못된 행실을 멀리할 때도 그렇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 일들을 멀리하고, 멀리하는 그 일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멀리할 때에도 같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런 말을 멀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일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닐 때도 그러하다. 그는 괴로워하고 근심하면서도 그렇게 지내고, 그 때문에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갈래인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라고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pāṇātipātā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산 목숨을 죽이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거짓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거짓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이간하는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거친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거친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veramaṇī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쓸데없는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nabhijjhālu hoti, anabhijjhā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탐내지 않는 자가 되고, 탐내지 않음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abyāpannacitto hoti, abyāpāda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성내지 않는 마음을 지닌 자가 되고, 성내지 않음을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ahāpi dukkhena sahāpi domanassena sammādiṭṭhi hoti, sammādiṭṭhipaccayā ca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괴로움과 함께 또 근심과 함께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되고,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라 한다.
481
비구들이여,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은 어떤 것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을 멀리한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그 일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애욕에 대한 잘못된 행실을 멀리할 때도 그렇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 일들을 멀리하고, 멀리하는 그 일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멀리할 때에도 같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런 말을 멀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일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닐 때도 그러하다.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그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갈래인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법을 받아 지니는 네 가지 방식이다.
‘‘Katamañca,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pāṇātipātā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산 목숨을 죽이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을 삼가는 자가 되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그릇되게 행하는 것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거짓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거짓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이간하는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거친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거친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veramaṇī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가 되고, 쓸데없는 말에서 삼감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anabhijjhālu hoti, anabhijjhā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탐내지 않는 자가 되고, 탐내지 않음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abyāpannacitto hoti, abyāpāda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성내지 않는 마음을 지닌 자가 되고, 성내지 않음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ahāpi sukhena sahāpi somanassena sammādiṭṭhi hoti, sammādiṭṭhipaccayā ca sukhaṃ s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즐거움과 함께 또 기쁨과 함께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되고,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겪는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법의 받아 지님이라 한다.
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dhammasamādānāni.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법의 받아 지님이다.
482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독이 섞인 쓴 조롱박이 있다고 하자. 그때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이 쓴 조롱박에는 독이 섞여 있소. 마시고 싶으면 마시시오. 마시는 동안에도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오.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오.’ 그는 이 말을 곰곰이 따져 보지 않고 그것을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마시는 동안에도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비구들이여, 지금도 괴롭고 앞날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나는 이것을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bhikkhave, tittakālābu visena saṃsaṭṭho.
“비구들이여, 마치 쓴 조롱박에 독이 섞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paṭikūlo.
그때 살고 싶어 하고 죽고 싶어 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mbho purisa, ayaṃ tittakālābu visena saṃsaṭṭho, sace ākaṅkhasi piva.
‘여보시오, 이 쓴 조롱박에는 독이 섞여 있소. 원한다면 마시시오.
Tassa te pivato ceva nac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maraṇaṃ vā nigacchas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그것은 그대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지 않을 것이고,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을 것이오’라고.
So taṃ appaṭisaṅkhāya piveyya, nappaṭinissajjeyya.
그는 그것을 살펴보지 않고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Tassa taṃ pivato ceva nacchādeyya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그것은 그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지 않을 것이고, 마시고 나면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Tathūpamāhaṃ, bhikkhave, imaṃ dhammasamādānaṃ vadāmi,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ñceva āyatiñca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나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곧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을 그와 같다고 말한다.
483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빛깔도 좋고 향도 좋고 맛도 좋은 음료가 담긴 청동 잔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음료에는 독이 섞여 있다. 그때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이 청동 잔에 담긴 음료는 빛깔도 좋고 향도 좋고 맛도 좋소. 그러나 독이 섞여 있소. 마시고 싶으면 마시시오. 마시는 동안에는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 것이오. 그러나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오.’ 그는 이 말을 곰곰이 따져 보지 않고 그것을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마시는 동안에는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겠지만,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비구들이여, 지금은 즐겁지만 앞날에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나는 이것을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bhikkhave,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비구들이여, 마치 빛깔을 갖추고 냄새를 갖추고 맛을 갖춘 음료 그릇이 있다고 하자.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그런데 그것에 독이 섞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paṭikūlo.
그때 살고 싶어 하고 죽고 싶어 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mbho purisa, ayaṃ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여보시오, 이 음료 그릇은 빛깔을 갖추고 냄새를 갖추고 맛을 갖추었소.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sace ākaṅkhasi piva.
그런데 그것에는 독이 섞여 있소. 원한다면 마시시오.
Tassa te pivatohi kho 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maraṇaṃ vā nigacchas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그것은 그대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을 것이나, 마시고 나면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을 것이오’라고.
So taṃ appaṭisaṅkhāya piveyya, nappaṭinissajjeyya.
그는 그것을 살펴보지 않고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Tassa taṃ pivatohi kho chādeyya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그것은 그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을 것이나, 마시고 나면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Tathūpamāhaṃ, bhikkhave, imaṃ dhammasamādānaṃ vadāmi,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ṃ āyatiṃ duk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나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곧 현재에는 즐겁고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을 그와 같다고 말한다.
484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약재를 섞은 묵힌 소의 오줌이 있다고 하자. 그때 황달을 앓는 사람이 왔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이것은 여러 가지 약재를 섞은 묵힌 오줌이오. 마시고 싶으면 마시시오. 마시는 동안에는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마시고 나면 편안해질 것이오.’ 그는 이 말을 곰곰이 따져 보고 그것을 마시며,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마시는 동안에는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마시고 나면 편안해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지금은 괴롭지만 앞날에는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나는 이것을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ūtimuttaṃ nānābhesajjehi saṃsaṭṭhaṃ.
“비구들이여, 마치 여러 약재가 섞인 삭힌 오줌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paṇḍukarogī.
그때 황달에 걸린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mbho purisa, idaṃ pūtimuttaṃ nānābhesajjehi saṃsaṭṭhaṃ, sace ākaṅkhasi piva.
‘여보시오, 이것은 여러 약재가 섞인 삭힌 오줌이오. 원한다면 마시시오.
Tassa te pivatohi kho nac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sukhī bhavissasī’ti.
그것은 그대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지 않을 것이나, 마시고 나면 그대는 편안해질 것이오’라고.
So taṃ paṭisaṅkhāya piveyya, nappaṭinissajjeyya.
그는 그것을 살펴보고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Tassa taṃ pivatohi kho nacchādeyya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sukhī assa.
그것은 그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지 않을 것이나, 마시고 나면 그는 편안해질 것이다.
Tathūpamāhaṃ, bhikkhave, imaṃ dhammasamādānaṃ vadāmi,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dukkhaṃ āyatiṃ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나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곧 현재에는 괴롭고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을 그와 같다고 말한다.
485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응유와 꿀과 버터기름과 당밀을 한데 섞은 것이 있다고 하자. 그때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이것은 응유와 꿀과 버터기름과 당밀을 한데 섞은 것이오. 마시고 싶으면 마시시오. 마시는 동안에도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 것이오. 마시고 나면 편안해질 것이오.’ 그는 이 말을 곰곰이 따져 보고 그것을 마시며,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마시는 동안에도 빛깔도 냄새도 맛도 마음에 들 것이다. 마시고 나면 편안해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나는 이것을 그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Seyyathāpi, bhikkhave, dadhi ca madhu ca sappi ca phāṇitañca ekajjhaṃ saṃsaṭṭhaṃ.
“비구들이여, 마치 응유와 꿀과 버터기름과 당밀을 한데 섞은 것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lohitapakkhandiko.
그때 이질에 걸린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ambho purisa, idaṃ dadhiṃ ca madhuṃ ca sappiṃ ca phāṇitañca ekajjhaṃ saṃsaṭṭhaṃ, sace ākaṅkhasi piva.
‘여보시오, 이것은 응유와 꿀과 버터기름과 당밀을 한데 섞은 것이오. 원한다면 마시시오.
Tassa te pivato ceva chādessati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sukhī bhavissasī’ti.
그것은 그대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을 것이고, 마시고 나면 그대는 편안해질 것이오’라고.
So taṃ paṭisaṅkhāya piveyya, nappaṭinissajjeyya.
그는 그것을 살펴보고 마시고, 내려놓지 않는다고 하자.
Tassa taṃ pivato ceva chādeyya vaṇṇenapi gandhenapi rasenapi, pivitvā ca pana sukhī assa.
그것은 그가 마실 때 빛깔로도 냄새로도 맛으로도 맞을 것이고, 마시고 나면 그는 편안해질 것이다.
Tathūpamāhaṃ, bhikkhave, imaṃ dhammasamādānaṃ vadāmi,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비구들이여, 나는 이 법의 받아 지님, 곧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을 그와 같다고 말한다.
486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우기의 마지막 달인 가을철에, 하늘이 맑게 개어 구름이 걷혔다고 하자. 그때 태양이 허공으로 솟아올라 허공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빛나고 뜨겁게 비추며 환히 밝힌다. 바로 그렇게, 비구들이여, 지금도 즐겁고 앞날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받아 지님이 있다. 이것은 다른 수많은 사문과 바라문의 주장들을 몰아낸다. 그리고 빛나고 뜨겁게 비추며 환히 밝힌다.”
‘‘Seyyathāpi, bhikkhave, vassānaṃ pacchime māse saradasamaye viddhe vigatavalāhake deve ādicco nabhaṃ abbhussakkamāno sabbaṃ ākāsagataṃ tamagataṃ abhivihacca bhāsate ca tapate ca virocate ca;
“비구들이여, 마치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철에 하늘이 맑고 구름이 걷혔을 때, 태양이 창공에 떠올라 허공에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빛나고 타오르고 밝게 비추듯이;
evameva kho, bhikkhave, yamidaṃ dhammasamādānaṃ paccuppannasukhañceva āyatiñca sukhavipākaṃ tadaññe puthusamaṇabrāhmaṇaparappavāde abhivihacca bhāsate ca tapate ca virocate cā’’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낳는 이 법의 받아 지님은 그 밖의 여러 사문·바라문들의 다른 주장들을 몰아내고 빛나고 타오르고 밝게 비춘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큰 법수지의 경, 여섯째를 마친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dhammasamādāna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마하담마사마다나 경이 끝났다. 여섯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