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Pāsarāsisuttaṃ
6. 빠사라시 경
272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숲, 아나타삔디까의 정원에 머물고 계셨다. 어느 날 오전, 세존께서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탁발하러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하러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를 찾아가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우리는 세존 앞에서 법문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세존 앞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불확실]
Atha kho sambahulā bhikkhū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여러 비구가 아난다 존자께 다가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uṃ –
다가가서는 아난다 존자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cirassutā no, āvuso ānanda, bhagavato sammukhā dhammī kathā.
“아난다 벗이여, 저희가 세존 앞에서 법다운 말씀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Sādhu mayaṃ, āvuso ānanda, labheyyāma bhagavato sammukhā dhammiṃ kathaṃ savanāyā’’ti.
아난다 벗이여, 저희가 세존 앞에서 법다운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로 가 보시오. 거기서 세존 앞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Tena hāyasmanto yena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tenupasaṅkamatha;
“그렇다면 존자들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로 다가가십시오;
appeva nāma labheyyātha bhagavato sammukhā dhammiṃ kathaṃ savanāyā’’ti.
그러면 아마도 세존 앞에서 법다운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으실 것입니다.”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ānandassa paccassosuṃ.
“예, 벗이여” 하고 그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러고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가자. 동쪽 정원의 미가라 어머니 강당으로 낮 동안 쉬러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그 강당으로 낮 동안 쉬러 가셨다. 저녁 무렵 세존께서는 선정에서 일어나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가자. 동쪽 목욕장으로 몸을 씻으러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sāvatth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탁발하시고 공양을 마치신 뒤 탁발에서 돌아와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pubbārāmo migāramātupāsādo tenupasaṅkamissāma divāvihārāyā’’ti.
“가자, 아난다여, 동쪽 원림의 미가라 어머니의 강당으로 가자. 낮 동안 머물기 위해서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yena pubbārāmo migāramātupāsādo tenupasaṅkami divāvihārāya.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원림의 미가라 어머니의 강당으로 가셨다. 낮 동안 머물기 위해서였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저녁 무렵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pubbakoṭṭhako tenupasaṅkamissāma gattāni parisiñcitu’’nti.
“가자, 아난다여, 뿝바꼿타까로 가자. 몸을 씻기 위해서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273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목욕장으로 가 몸을 씻으셨다. 물에서 나온 세존께서는 겉옷 한 벌만 걸치고 서서 몸을 말리고 계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 암자는 아름답고 보기에 흐뭇합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그 암자에 가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말없이 받아들이셨다. 그러고서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로 가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yena pubbakoṭṭhako tenupasaṅkami gattāni parisiñcituṃ.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뿝바꼿타까로 가셨다. 몸을 씻기 위해서였다.
Pubbakoṭṭhake gattāni parisiñcitvā paccuttaritvā ekacīvaro aṭṭhāsi gattāni pubbāpayamāno.
뿝바꼿타까에서 몸을 씻고 물에서 나와, 옷 하나만 걸치고 서서 몸을 말리셨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yaṃ, bhante,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avidūre.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가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Ramaṇīyo, bhante,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는 아름답습니다;
pāsādiko, bhante,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는 보기 좋습니다.
Sādhu, bhante, bhagavā yena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tenupasaṅkamatu anukampaṃ upādāyā’’ti.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연민을 내시어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로 다가가 주십시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Atha kho bhagavā yena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로 다가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암자에 모여 앉아 법담을 나누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문간 바깥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는 헛기침을 하며 빗장을 두드리셨다. 비구들이 문을 열어 드렸다. 세존께서는 암자에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e dhammiyā kathāya sannisinnā honti.
그때 여러 비구가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에서 법다운 이야기로 함께 앉아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āsi kathāpariyosānaṃ āgamayamāno.
그때 세존께서 바깥 문간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Atha kho bhagavā kathāpariyosānaṃ viditvā ukkāsitvā aggaḷaṃ ākoṭesi.
그때 세존께서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헛기침을 하시고 빗장을 두드리셨다.
Vivariṃsu kho te bhikkhū bhagavato dvāraṃ.
그 비구들이 세존께 문을 열어 드렸다.
Atha kho bhagavā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aṃ pavis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그때 세존께서 람마까 바라문의 암자에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앉았느냐? 너희가 하다가 만 이야기는 무엇이냐?”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에 관한 법담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kāya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로 함께 앉아 있는가?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Bhagavantameva kho no, bhante, ārabbha dhammī kathā vippakatā, atha bhagavā anuppatto’’ti.
“세존이시여, 저희는 바로 세존에 대해 법다운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좋구나, 비구들이여! 너희는 믿음으로 집을 떠나 출가한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다. 그런 너희가 법담을 나누며 모여 앉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다. 비구들이여, 너희가 모였을 때 할 일은 두 가지다.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Sādhu, bhikkhave!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Etaṃ kho, bhikkhave, tumhākaṃ patirūpaṃ kulaputtānaṃ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naṃ yaṃ tumhe dhammiyā kathāya sannisīdeyyātha.
비구들이여,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인 그대들이 법다운 이야기로 함께 앉는 것, 이것이 그대들에게 어울린다.
Sannipatitānaṃ vo, bhikkhave, dvayaṃ karaṇīyaṃ –
비구들이여, 함께 모인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
dhammī vā kathā, ariyo vā tuṇhībhāvo’’.
법다운 이야기이거나, 성스러운 침묵이다.”
274
“비구들이여, 구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늙음을 본성으로 하면서 늙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하기도 한다. 병듦도, 죽음도, 슬픔도, 더러움에 물듦도 똑같다.
‘‘Dvemā, bhikkhave, pariyesanā –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구함이 있다 —
ariyā ca pariyesanā, anariyā ca pariyesanā.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않은 구함이다.
‘‘Katamā ca, bhikkhave, anariyā pariyesanā?
“비구들이여, 성스럽지 않은 구함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aṃyeva pariyesa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이는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태어남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금과 은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jāti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jātidhammaṃ, dāsidāsaṃ jātidhammaṃ, ajeḷakaṃ jāti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jāti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jātidhammaṃ, jātarūparajataṃ jāti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금과 은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Jāti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늙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늙음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금과 은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늙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늙음을 본성으로 하면서, 늙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jarā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jarādhammaṃ, dāsidāsaṃ jarādhammaṃ, ajeḷakaṃ jarā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jarā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jarādhammaṃ, jātarūparajataṃ jarā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금과 은이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Jarā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늙음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병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병듦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병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병듦을 본성으로 하면서, 병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byādhi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byādhidhammaṃ, dāsidāsaṃ byādhidhammaṃ, ajeḷakaṃ byādhi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byādhi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byādhi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Byādhi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병듦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죽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죽음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죽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음을 본성으로 하면서, 죽음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maraṇa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maraṇadhammaṃ, dāsidāsaṃ maraṇadhammaṃ, ajeḷakaṃ maraṇa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maraṇa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maraṇa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Maraṇa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죽음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슬픔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슬픔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슬픔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슬픔을 본성으로 하면서, 슬픔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soka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sokadhammaṃ, dāsidāsaṃ sokadhammaṃ, ajeḷakaṃ soka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soka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soka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Soka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슬픔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아내와 자식은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한다. 남녀 하인도, 염소와 양도, 닭과 돼지도,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도, 금과 은도 그렇다.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든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하면서,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한다.
‘‘Kiñca, bhikkhave, saṃkilesadhammaṃ vadetha?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는가?
Puttabhariyaṃ, bhikkhave, saṃkilesadhammaṃ, dāsidāsaṃ saṃkilesadhammaṃ, ajeḷakaṃ saṃkilesa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saṃkilesa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saṃkilesadhammaṃ, jātarūparajataṃ saṃkilesadhammaṃ.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하녀와 하인이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염소와 양이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닭과 돼지가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코끼리·소·수말·암말이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고, 금과 은이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Saṃkilesa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오염의 성질을 지닌 재생 바탕이다.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aṃyeva pariyesati.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사로잡혀,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Ayaṃ, bhikkhave, anariyā pariyesanā.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럽지 않은 구함이다.
275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도 그 위험을 안다. 그래서 태어남이 없고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다. 늙음을 본성으로 하면서도 그 위험을 알고, 늙음이 없고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다. 병듦과 죽음과 슬픔에 대해서도 같다. 병이 없고, 죽음이 없고, 슬픔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다. 더러움에 물듦을 본성으로 하면서도 그 위험을 알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구함이다.
‘‘Katamā ca, bhikkhave, ariyā pariyesanā?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ekacc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byādhi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ma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ok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이는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태어남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늙음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병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불사인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슬픔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오염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Ayaṃ, bhikkhave, ariyā pariyesanā.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구함이다.
276
비구들이여, 나 또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했다. 늙음, 병듦, 죽음, 슬픔, 더러움에 물듦에서도 똑같이 그랬다. 스스로 그것을 본성으로 하면서, 그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했다.
‘‘Ahampi sudaṃ, bhikkhave,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o bodhisattova samān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aṃyeva pariyesāmi.
“비구들이여, 나도 바르게 깨닫기 전, 아직 바르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고,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고,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고,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고,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고,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했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째서 스스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는 것만 구하는가?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슬픔과 더러움에 물듦에서도, 어째서 그런 것만 구하는가? 차라리 나는 스스로 태어남을 본성으로 하면서도 태어남의 위험을 알고, 태어남이 없고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면 어떨까?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슬픔과 더러움에 물듦에 대해서도 각각 그 위험을 알고, 그런 것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ṃ nu kho ahaṃ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āmi, attanā jarādhammo samāno…pe… byādhidhammo samāno… maraṇadhammo samāno… sokadhammo samāno…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aṃyeva pariyesāmi?
‘나는 어찌하여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바로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을 구하는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76.1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nūnāhaṃ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ṃ,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ṃ,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byādhi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ṃ,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ma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ṃ,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ok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ṃ,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eyya’nti.
나는 차라리 자신이 태어남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태어남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태어남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자신이 늙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늙음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늙음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자신이 병듦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병듦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병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자신이 죽음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죽음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불사인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자신이 슬픔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슬픔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슬픔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자신이 오염의 성질을 지녔으면서도 오염의 성질을 지닌 것에서 위험을 알고서 오염 없는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리라.’ 하고.
277
비구들이여, 그 뒤 나는 아직 젊었다.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한창 좋은 청년기의 첫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원치 않아 눈물 젖은 얼굴로 울고 계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을 뒤로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승복을 입은 채 집을 떠나 출가했다.
‘‘So kho ahaṃ, bhikkhave, aparena samayena daharova samāno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akāmakānaṃ mātāpitūnaṃ assumukhānaṃ rudantān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뒤 아직 젊어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복된 젊음을 갖춘 인생의 첫 시기에, 원하지 않는 부모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우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출가한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찾으며 위없는 평온의 최상의 경지를 구했다. 그러다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말했다. ‘벗 깔라마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 싶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내게 대답했다. ‘머무르시오, 존자여. 이 법은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직접 알 수 있는 법이오. 그것을 실현하여 갖추고 머물 수 있소.’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 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그렇게 출가한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를 찾고 위없이 빼어난 고요의 자리를 구하면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icchāmahaṃ, āvuso kālāma,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깔라마 벗이여, 저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Evaṃ vutte, bhikkhave, āḷāro kālāmo maṃ etadavoca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viharatāyasmā;
‘존자여, 머무십시오;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이 법은 슬기로운 사람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것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물 만한 그런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곧바로 익혔다. 입술로 읊고 되뇌는 정도만으로도 지혜의 말과 장로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다른 이들도 ‘나는 안다, 나는 본다’라고 자처했다.
So kho ahaṃ, bhikkhave,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익혔다.
So kho ahaṃ, bhikkhave,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저 입술을 놀리고 말한 것을 되뇌는 그만큼으로 앎을 말하고 장로의 말을 말했으며,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나도 다른 이들도 그렇게 인정했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문다고 말한 것이다. 분명히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물었다. ‘벗 깔라마여, 어디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문다고 선언하시오?’ 이렇게 묻자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를 선언했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알라라 깔라마가 이 법을 오직 믿음만으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문다」고 알리는 것이 아니다;
addhā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ī’ti.
알라라 깔라마는 분명히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ki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깔라마 벗이여, 어느 정도까지 이 법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문다고 알리십니까?’
Evaṃ vutte, bhikkhave, āḷāro kālāmo ākiñcaññāyatanaṃ pavedes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알렸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있는 이는 알라라 깔라마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도, 알아차림도, 삼매도, 지혜도 알라라 깔라마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다.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문다고 선언한 그 법을, 나도 실현하려고 애써 보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믿음이 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vīriyaṃ, mayhaṃpatthi vīriyaṃ;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정진이 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ti, mayhaṃpatthi sati;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mādhi, mayhaṃpatthi samādhi;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삼매가 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통찰지가 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āḷāro kāl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나는 차라리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문다」고 알리는 그 법, 그 법의 실현을 위해 힘써 노력하리라.’ 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곧바로 그 법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물렀다. 그러고서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말했다. ‘벗 깔라마여, 이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었다고 선언하시오?’ ‘벗이여, 나는 이 정도까지를 두고 그렇게 선언하오.’ ‘벗이여, 나 또한 이 정도로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물고 있소.’
So kho ahaṃ, bhikkhave,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E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깔라마 벗이여,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알리십니까?’
‘Ettāvatā kho ahaṃ, āvus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ī’ti.
‘벗이여, 나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알립니다.’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저도 벗이여,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뭅니다.’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이고 큰 복이오. 그대 같은 존자를 함께 수행하는 이로 만나다니. 내가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었다고 선언하는 법을, 그대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고 머무는구려. 그대가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갖추었다고 선언하오.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내가 아오. 내가 그러하듯 그대도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하듯 나도 그러하오. 벗이여, 자, 이제 우리 둘이서 이 무리를 이끕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라라 깔라마는 스승이면서도 제자인 나를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 세우고 극진히 공경해 주었다.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입니다, 벗이여, 우리에게 큰 행운입니다. 우리가 존자와 같은 그런,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를 보다니.
Iti yā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알리는 그 법을 그대는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뭅니다.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ma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그대가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무는 그 법을 나는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 들어 알립니다.
Iti yāhaṃ dhammaṃ jānām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mahaṃ dhammaṃ jānāmi.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그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나는 압니다.
Iti yādiso ahaṃ tādiso tuvaṃ, yādiso tuvaṃ tādiso ahaṃ.
이와 같이 내가 그러하듯 그대도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하듯 나도 그러합니다.
Ehi dāni, āvuso, ubhova santā imaṃ gaṇaṃ pariharāmā’ti.
자, 벗이여, 이제 우리 둘이서 이 무리를 함께 이끌어 갑시다.’
Iti kho, bhikkhave, āḷāro kālāmo ācariyo me samāno (attano) antevāsiṃ maṃ samānaṃ attanā samasa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알라라 깔라마는 내 스승이면서도 (자기) 제자인 나를 자신과 똑같이 세웠고, 나를 높은 예우로 예우했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겨우 무소유처에 태어나는 데까지만 이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떠났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ākiñc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완전한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오직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태어나기 위한 것일 뿐이다.’
So kho ahaṃ, bhikkhave,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히 여기지 않아, 그 법을 싫어하여 떠나 거기서 물러났다.
278
비구들이여, 나는 무엇이 참으로 좋은 것인지 찾고 있었다. 위없는 고요함, 그 가장 뛰어난 경지를 구하던 끝에 웃다까 라마풋따를 찾아갔다. 그에게 말했다. “도반이여, 나는 이 법과 율 안에서 청정한 삶을 닦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풋따가 대답했다. “장로여, 머무십시오.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승이 이룬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고 체득하여 지낼 수 있는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익혔다. 입술을 달싹이며 그가 가르친 말을 되뇌기만 해도 ‘나는 안다, 나는 본다’ 하며 지혜를 말하고 장로의 가르침을 말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이들도 그렇게 인정했다.[불확실]
‘‘So kho ahaṃ, bhikkhave, kiṃ 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를 찾는 자로서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면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icchāmahaṃ, āvuso,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벗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한다.’
Evaṃ vutte, bhikkhave, udako rāmaputto maṃ etadavoca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viharatāyasmā;
‘존자여, 머무십시오;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물 수 있는, 그러한 것입니다.’
So kho ahaṃ, bhikkhave,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참으로 빠르게 그 법을 배워 익혔다.
So kho ahaṃ, bhikkhave,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저 그만큼, 입술을 놀리는 정도와 말을 되뇌는 정도로 앎의 말과 확신의 말을 말했고,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나도 다른 이들도 자처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는 이 법을 믿음만으로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낸다고 공언한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며 지냈을 것이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r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i;
‘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문다」고 알린 것이 아니다;
addhā r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āsī’ti.
라마는 참으로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물렀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나는 웃다까 라마풋따를 찾아가 물었다. “도반이여, 라마께서는 이 법을 어디까지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낸다고 공언하셨는가?” 내가 이렇게 묻자 웃다까 라마풋따는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경지를 일러 주었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ki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어느 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문다」고 알렸는가?’
Evaṃ vutte, bhikkhave, udako rāmaputt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pavedes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알렸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있는 이가 라마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과 새김, 집중과 지혜도 마찬가지로 라마만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모두 있다. 라마가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낸다고 공언한 그 법을 나도 직접 이루려고 애써 보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rāmasseva ahos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도 믿음이 있다;
na kho rāmasseva ahosi vīriyaṃ, mayhaṃpatthi vīriyaṃ;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도 정진이 있다;
na kho rāmasseva ahosi sati, mayhaṃpatthi sati;
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na kho rāmasseva ahosi samādhi, mayhaṃpatthi samādhi, na kho rāmasseva ahos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도 삼매가 있고, 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도 통찰지가 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문다」고 알린 그 법을, 나도 실현하기 위해 애써 보면 어떨까.’
비구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그 안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웃다까 라마풋따를 찾아가 물었다. “도반이여, 라마께서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체득했다고 공언하신 것이 이 정도까지인가?” 웃다까 라마풋따가 대답했다. “도반이여, 라마가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체득했다고 공언한 것은 이 정도까지입니다.” 내가 말했다. “도반이여, 나도 이 정도까지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내고 있다.”
So kho ahaṃ, bhikkhave,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참으로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E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렀다고 알렸는가?’
‘Ettāvatā kh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렀다고 알렸습니다.’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벗이여, 나도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문다.’
웃다까 라마풋따가 말했다. “도반이여, 우리에게는 이익이고 큰 행운입니다. 당신 같은 분을 함께 청정한 삶을 닦는 도반으로 만났으니 말입니다. 라마가 스스로 알고 체득했다고 공언한 그 법을 당신도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알고 체득하여 지내는 그 법을 라마도 스스로 알고 체득했다고 공언했습니다. 라마가 알았던 법을 당신이 알고, 당신이 아는 법을 라마가 알았습니다. 라마가 어떠했는지 당신도 그러하고, 당신이 어떠한지 라마도 그러했습니다. 자, 도반이여, 이제 당신이 이 대중을 이끄십시오.”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 이득입니다, 벗이여, 우리가 잘 얻었습니다. 우리가 존자와 같은 그러한 동료 수행자를 봅니다.
Iti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처럼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알린 그 법을, 그대는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뭅니다.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그대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머무는 그 법을, 라마는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이르러 알렸습니다.
Iti y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이처럼 라마가 곧바로 안 그 법을 그대는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라마가 곧바로 알았습니다.
Iti yādiso rāmo ahosi tādiso tuvaṃ, yādiso tuvaṃ tādiso rāmo ahosi.
이처럼 라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대가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한 것처럼 라마가 그러했습니다.
Ehi dāni, āvuso, tuvaṃ imaṃ gaṇaṃ pariharā’ti.
벗이여, 이제 오십시오, 그대가 이 무리를 이끄십시오.’
비구들이여, 이렇게 웃다까 라마풋따는 도반인 나를 스승의 자리에 앉히고 큰 공경으로 나를 높였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기껏해야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경지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떠나왔다.
Iti kho, bhikkhave, udako rāmaputto sabrahmacārī me samāno ācariyaṭṭhāne 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의 동료 수행자이면서도 나를 스승의 자리에 세웠고, 드높은 공경으로 나를 공경했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곧바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 다만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태어남으로 이끌 뿐이다.’
So kho ahaṃ, bhikkhave,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아, 그 법을 싫어하여 떠나 물러났다.
279
비구들이여, 나는 무엇이 참으로 좋은 것인지 찾으며 위없는 고요함의 가장 뛰어난 경지를 구했다. 그렇게 마가다 지방을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거기서 아름다운 땅과 마음을 끄는 숲을 보았다. 맑고 얕아 건너기 좋은 곳이 있는 강이 흐르고, 사방에는 탁발할 마을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고 마음을 끄는 숲이다. 맑은 강이 흐르고 건너기 좋은 곳이 있어 아름답고, 사방에 탁발할 마을도 있다. 정진하려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곳에 앉았다. ‘이곳이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o kho ahaṃ, bhikkhave, kiṃ 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magadhesu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uruvelā senānigamo tadavasar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를 찾는 자로서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면서, 마가다에서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Tatthaddasaṃ ramaṇīyaṃ bhūmibhāgaṃ, pāsādikañca vanasaṇḍaṃ, nadiñca sandantiṃ setakaṃ supatitthaṃ ramaṇīyaṃ, samantā ca gocaragāmaṃ.
거기서 나는 마음에 드는 땅과 아름다운 숲과, 맑게 흐르고 기슭이 좋아 마음에 드는 강과, 그 둘레의 탁발할 마을을 보았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ramaṇīyo vata, bho, bhūmibhāgo, pāsādiko ca vanasaṇḍo, nadī ca sandati setakā supatitthā ramaṇīyā, samantā ca gocaragāmo.
‘참으로 마음에 드는 땅이구나, 아름다운 숲이구나, 강은 맑게 흐르고 기슭이 좋아 마음에 들며, 둘레에는 탁발할 마을이 있구나.
Alaṃ vatidaṃ kulaputtassa padhānatthikassa padhānāyā’ti.
정진을 바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이것은 참으로 넉넉하다.’
So kho ahaṃ, bhikkhave, tattheva nisīdiṃ –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바로 거기 앉았다 —
alamidaṃ padhānāyāti.
이것은 정진하기에 넉넉하다고.
280
비구들이여, 나는 스스로 태어나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태어남의 허물을 알았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것을 얻었다. 스스로 늙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늙음의 허물을 알았다. 그래서 늙지 않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것을 얻었다. 스스로 병드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병듦의 허물을 알았다. 그래서 병들지 않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것을 얻었다. 스스로 죽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죽음의 허물을 알고서, 죽지 않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슬퍼하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슬픔의 허물을 알고서, 슬픔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번뇌에 물드는 성질을 지닌 몸이면서 번뇌에 물듦의 허물을 알았다. 그래서 물들지 않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것을 얻었다.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
‘‘So kho ahaṃ, bhikkhave,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byādhi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byādhi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ma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ok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스스로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태어남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늙음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병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병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불사이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슬픔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스스로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고, 오염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 없고 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281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고요하고 뛰어나며, 추론으로는 닿을 수 없고, 미묘해서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에서 즐거움을 찾고,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에 기뻐한다. 이렇게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어려운 이치가 있다. 하나는 이것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연기의 이치다. 또 하나는 모든 지어짐이 가라앉고, 모든 집착의 대상을 내려놓고, 갈애가 다하고,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는 열반의 이치다. 내가 법을 가르쳐도 남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로이고 괴로움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게송들도 내게 떠올랐다.[불확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dhigato kho myāyaṃ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빼어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라야 알 수 있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ṃ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들떠 있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ṃ pajā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ṃ idaṃ ṭhānaṃ yadidaṃ –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들뜬 이 사람들에게 이 도리는 보기 어렵다, 곧 —
idappaccayatā paṭiccasamuppādo.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성품,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남이다.
Idam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yadidaṃ –
이 도리 또한 보기 어렵다, 곧 —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Ahañceva kho pana dhammaṃ deseyyaṃ, pare ca me na ājāneyyuṃ,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그런데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남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곤한 일이고 그것은 내게 성가신 일이리라.’
Apissu maṃ, bhikkhav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ṃsu pubbe assutapubbā –
비구들이여, 게다가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놀랍지 않은 게송들이 내게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애써 겨우 얻은 이것을 / 이제 굳이 펼쳐 무엇하랴.[불확실]
‘Kicchena me adhigataṃ, halaṃ dāni pakāsituṃ;
‘내가 힘들여 얻은 것을, 이제 드러내어 무엇하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탐욕과 성냄에 휩싸인 이들 / 이 법을 쉬이 깨닫지 못하리.
Rāgadosaparet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탐욕과 성냄에 시달리는 이들은 이 법을 잘 깨닫지 못한다.
‘흐름을 거스르는 미묘한 것, /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한 것을
‘Paṭisotagāmiṃ nipuṇaṃ, gambhīraṃ duddasaṃ aṇuṃ;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것을;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하리, / 어둠 덩어리에 뒤덮였으니.’’’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한다, 어둠 덩어리에 덮여서.’
282
비구들이여, 이렇게 곰곰이 헤아리자 내 마음은 법을 가르치는 쪽이 아니라 애쓰지 않고 가만히 있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때 범천 사함빠띠가 내 마음속 생각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 세상이 망하는구나. 아, 세상이 무너지는구나.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의 마음이 법을 가르치는 쪽이 아니라 애쓰지 않고 가만히 있는 쪽으로 기울다니.’ 그러자 범천 사함빠띠는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편 팔을 굽히듯, 눈 깜짝할 사이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내게 합장하며 말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하면 퇴보하고 맙니다. 법을 들으면 알아들을 것입니다.” 범천 사함빠띠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이어 다시 이렇게 말했다.
‘‘Itiha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ṃ namati, no dhammadesanāya.
비구들이여, 이렇게 성찰하는 내게 마음은 애쓰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고, 법을 설하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Atha kho, bhikkhave, brahmuno sahampatissa mam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내 마음을 마음으로 알고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ṃ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세상은 참으로 망한다, 세상은 참으로 무너진다.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의 마음이 애쓰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법을 설하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으시다니.’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 –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 –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꼭 그처럼 —
brahmaloke antarahito mama purato pāturahosi.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yenāhaṃ tenañjaliṃ paṇāmetvā maṃ etadavoca –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에 윗옷을 걸치고 내가 있는 쪽으로 합장하여 절하고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ṃ, desetu sugato dhammaṃ.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해 주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법을 설해 주소서.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는데, 법을 듣지 못하여 물러납니다.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법을 알아들을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Idamavoca, bhikkhave, brahmā sahampati.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Idaṃ vatvā athāpar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
‘일찍이 마가다에 나타난 것은
‘Pāturahosi magadhesu pubbe,
‘전에 마가다에서 나타났습니다,
때 묻은 이들이 궁리해 낸 깨끗지 못한 법이었습니다.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때 묻은 이들이 생각해 낸 청정하지 못한 법이;
이제 불사의 문을 열어 주소서,
Apāpuretaṃ amatassa dvāraṃ,
이 불사의 문을 열어 주소서,
티 없는 이가 깨달은 법을 저들이 듣게 하소서.
Suṇantu dhammaṃ vimalenānubuddhaṃ.
때 없는 분께서 깨달으신 법을 그들이 듣게 하소서.
‘바위산 꼭대기에 선 이가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바위산 꼭대기에 선 이가,
사방 둘레 사람들을 내려다보듯,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사방의 사람들을 두루 내려다보듯이;
슬기로운 이여, 그와 같이 법으로 지은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a,
그와 같이, 지혜로우신 분이시여, 법으로 이루어진,
누각에 올라, 두루 보는 눈을 지닌 이여,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높은 누각에 오르시어, 두루 보는 눈을 지니신 분이시여;
슬픔을 벗은 이여, 슬픔에 빠진 사람들,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슬픔을 여의신 분께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사람들을 굽어보소서.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ṃ.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이들을 굽어보소서.
‘일어나소서, 영웅이여, 싸움에서 이긴 이여,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일어나소서, 영웅이시여, 싸움에서 이기신 분이시여,
대상의 길잡이여, 빚 없는 이여, 세상을 거니소서.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무리를 이끄는 분이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을 다니소서;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Desassu bhagavā dhammaṃ,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알아들을 이들이 있으리이다.’’’
Aññātāro bhavissantī’’’ti.
알아들을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283
그래서 비구들이여, 나는 범천의 간청을 알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과 많이 낀 중생이 보였다. 근기가 날카로운 이와 둔한 이, 성품이 좋은 이와 나쁜 이, 가르치기 쉬운 이와 어려운 이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내세의 잘못과 두려움을 보며 지내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한 채 지내는 것도 보였다. 이는 푸른 연꽃 못, 붉은 연꽃 못, 흰 연꽃 못에서 벌어지는 일과 같다. 어떤 푸른 연꽃과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지 못한 채 물속에 잠겨 자란다. 어떤 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과 같은 높이에 서 있다. 또 어떤 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다. 바로 그처럼 비구들이여,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며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과 많이 낀 중생을 보았다. 근기가 날카로운 이와 둔한 이, 성품이 좋은 이와 나쁜 이, 가르치기 쉬운 이와 어려운 이도 보았다. 어떤 이들은 내세의 잘못과 두려움을 보며 지내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한 채 지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나는 범천 사함빠띠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Atha kho ahaṃ, bhikkhave, brahmuno ca ajjhesanaṃ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ṃ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siṃ.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범천의 청을 알고 또 중생들에 대한 연민을 조건으로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Addasaṃ kho ahaṃ, bhikkhave,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비구들이여, 나는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면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과 티끌이 많은 중생, 기능이 예리한 이와 기능이 무딘 이, 좋은 자질을 지닌 이와 나쁜 자질을 지닌 이, 가르치기 쉬운 이와 가르치기 어려운 이,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의 허물과 두려움을 보며 머물고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의 허물과 두려움을 보지 않으며 머무는 것을 보았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samodakaṃ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aṃ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마치 청련 못이나 홍련 못이나 백련 못에서,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물속에 잠겨 자라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물과 같은 높이로 서 있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은 채 서 있듯이;
evameva kho ahaṃ, bhikkhave,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addasaṃ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나는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면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과 티끌이 많은 중생, 기능이 예리한 이와 기능이 무딘 이, 좋은 자질을 지닌 이와 나쁜 자질을 지닌 이, 가르치기 쉬운 이와 가르치기 어려운 이,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의 허물과 두려움을 보며 머물고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의 허물과 두려움을 보지 않으며 머무는 것을 보았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brahmānaṃ sahampatiṃ gāthāya paccabhāsiṃ –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답했다 —
‘불사의 문들이 그들에게 열렸다,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내어라.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내라;
괴롭힘이 될까 여겨 나는 말하지 않았다,
Vihiṃsasaññī paguṇaṃ na bhāsiṃ,
성가시리라는 생각에 나는 익숙한 법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이 정교하고 빼어난 법을, 범천이여.’’’
Dhammaṃ paṇītaṃ manujesu brahme’’’ti.
사람들 가운데서 그 빼어난 법을, 범천이여.’
그러자 비구들이여, 범천 사함빠띠는 ‘나는 세존께서 법을 가르치실 기회를 열어 드렸다’ 하고 내게 절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 ‘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m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ntaradhāyi.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허락을 얻었다’고 하고서, 내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바로 거기서 사라졌다.
284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가르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그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현명하고 유능하며 총명하다. 오랫동안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사람이기도 하다. 알라라 깔라마에게 먼저 법을 가르치면 어떨까. 그라면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그때 비구들이여, 어떤 천신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습니다.” 내게도 앎과 봄이 일어났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죽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큰 손실을 입었다. 그가 이 법을 들었다면 빨리 알아들었을 텐데.’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빠르게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yaṃ kho āḷāro kālām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ṃ apparajakkhajātiko.
‘이 알라라 깔라마는 슬기로운 자이고 노련하고 지혜로우며, 오랫동안 눈에 티끌이 적은 이다.
Yaṃnūnāhaṃ āḷārassa kālāmassa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내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S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그는 이 법을 빠르게 알아들을 것이다.’
Atha kho maṃ, bhikkhave,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비구들이여, 그때 어떤 천신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sattāhakālaṅkato, bhante, āḷāro kālāmo’ti.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임종했습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sattāhakālaṅkato āḷāro kālāmo’ti.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임종했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mahājāniyo kho āḷāro kālāmo.
‘알라라 깔라마는 큰 손실을 입었다.
Sace hi so imaṃ dhammaṃ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참으로 빠르게 알아들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가르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그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풋따는 현명하고 유능하며 총명하다. 오랫동안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사람이기도 하다. 웃다까 라마풋따에게 먼저 법을 가르치면 어떨까. 그라면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그때 비구들이여, 어떤 천신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풋따는 어젯밤에 죽었습니다.” 내게도 앎과 봄이 일어났다. ‘웃다까 라마풋따는 어젯밤에 죽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풋따는 큰 손실을 입었다. 그가 이 법을 들었다면 빨리 알아들었을 텐데.’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빠르게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yaṃ kho udako rāmaputt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ṃ apparajakkhajātiko.
‘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슬기로운 자이고 노련하고 지혜로우며, 오랫동안 눈에 티끌이 적은 이다.
Yaṃnūnāhaṃ udakassa rāmaputtassa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내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S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그는 이 법을 빠르게 알아들을 것이다.’
Atha kho maṃ, bhikkhave,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비구들이여, 그때 어떤 천신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abhidosakālaṅkato, bhante, udako rāmaputto’ti.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임종했습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abhidosakālaṅkato udako rāmaputto’ti.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에 임종했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mahājāniyo kho udako rāmaputto.
‘웃다까 라마뿟따는 큰 손실을 입었다.
Sace hi so imaṃ dhammaṃ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참으로 빠르게 알아들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가르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그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섯 비구는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정진에 몰두할 때 시중을 들어 주었다. 다섯 비구에게 먼저 법을 가르치면 어떨까.’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섯 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비구들이여, 나는 맑고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천안으로 다섯 비구가 와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우루웰라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머문 뒤 와라나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누가 이 법을 빠르게 알아들을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bahukārā kho me pañcavaggiyā bhikkhū, ye maṃ padhānapahitattaṃ upaṭṭhahiṃsu.
‘한 무리를 이룬 다섯 비구는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내가 애써 정진할 때 나를 시중들었다.
Yaṃnūnāhaṃ pañcavaggiyānaṃ bhikkhūn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nti.
내가 한 무리를 이룬 다섯 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kahaṃ nu kho etarahi pañcavaggiyā bhikkhū viharantī’ti?
‘지금 한 무리를 이룬 다섯 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Addasaṃ kho ahaṃ, bhikkhav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pañcavaggiye bhikkhū bārāṇasiyaṃ viharante isipatane migadāye.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으로, 한 무리를 이룬 다섯 비구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uruvel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yena bārāṇasī tena cārikaṃ pakkamiṃ.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우루웰라에서 원하는 만큼 머문 뒤 바라나시로 유행을 떠났다.
285
비구들이여, 가야와 보리수 사이의 길을 가고 있는 나를 아지와까 수행자 우빠까가 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말했다. “도반이여, 그대의 감각기관은 맑고 얼굴빛은 깨끗하고 밝습니다! 그대는 누구를 따라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법을 좋아합니까?” 비구들이여, 그가 이렇게 묻자 나는 아지와까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Addasā kho maṃ, bhikkhave, upako ājīvako antarā ca gayaṃ antarā ca bodhiṃ addhānamaggappaṭipannaṃ.
비구들이여, 아지와까인 우빠까가 가야와 보리수 사이의 큰길을 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Disvāna maṃ etadavoca –
보고 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vippasannāni kho te, āvuso, indriyāni, parisuddho chavivaṇṇo pariyodāto!
‘벗이여, 그대의 감각기능들은 참으로 맑고, 살빛은 깨끗하고 밝습니다!
Kaṃsi tvaṃ, āvuso, uddissa pabbajito, ko vā te satthā, kassa vā tvaṃ dhammaṃ rocesī’ti?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해 출가했습니까, 누가 그대의 스승입니까, 또 그대는 누구의 법을 좋아합니까?’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upakaṃ ājīvakaṃ gāthāhi ajjhabhāsi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아지와까인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이, 모든 것을 아는 이, / 모든 법에 물들지 않았다.
‘Sabbābhibhū sabbavidūhamasmi,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자요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니, 온갖 법에 물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갈애가 다해 해탈했으니, / 스스로 꿰뚫어 알았거늘 누구를 스승이라 하랴.
Sabbañjaho taṇhākkhaye vimutto, sayaṃ abhiññāya kamuddiseyyaṃ.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갈애의 다함으로 해탈했으니, 스스로 곧바로 알았거늘 누구를 스승으로 가리키겠는가.
‘내게는 스승이 없고 / 나와 같은 이도 없다.
‘Na me ācariyo atthi, sadiso me na vijjati;
‘내게는 스승이 없고, 나와 같은 이도 없다;
신들을 아우른 이 세상에 / 나와 견줄 이 하나 없다.
Sadevakasmiṃ lokasmiṃ, natthi me paṭipuggalo.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 나와 맞설 이가 없다.
‘참으로 나는 세상의 아라한, / 나는 위없는 스승이다.
‘Ahañhi arahā loke, ahaṃ satthā anuttaro;
‘나야말로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나는 위없는 스승이다;
나 홀로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 / 서늘해졌고 꺼져 고요하다.
Ekomhi sammāsambuddho, sītibhūtosmi nibbuto.
나 홀로 바르게 깨달은 자이고, 서늘해져 꺼진 자다.
‘법의 바퀴를 굴리러 / 까시의 도성으로 가노라.
‘Dhammacakkaṃ pavattetuṃ, gacchāmi kāsinaṃ puraṃ;
‘법의 바퀴를 굴리려고,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간다;
눈먼 이 세상에 / 불사의 북을 울리리라.’
Andhībhūtasmiṃ lokasmiṃ, āhañchaṃ amatadundubhi’nti.
눈먼 세상에서 불사의 북을 울리리라.’
“도반이여, 그대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그대는 끝없는 승리자일 수 있겠습니다!”
‘Yathā kho tvaṃ, āvuso, paṭijānāsi, arahasi anantajino’ti!
‘벗이여, 그대가 자처하는 대로라면, 그대는 끝없는 승리자일 만합니다!’
‘나와 같은 이들이 참으로 승리자이니, / 번뇌의 다함에 이른 이들이다.
‘Mādisā ve jinā honti, ye pattā āsavakkhayaṃ;
‘번뇌의 다함에 이른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나와 같은 승리자다;
나는 악한 법들을 이겼으니, / 그러므로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다.’
Jitā me pāpakā dhammā, tasmāhamupaka jino’ti.
나쁜 법들을 내가 이겼으니, 우빠까여, 그래서 나는 승리자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한 뒤 아지와까 우빠까는 “그럴 수도 있겠소, 도반이여” 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서서 떠나갔다.
‘‘Evaṃ vutte, bhikkhave, upako ājīvako ‘hupeyyapāvuso’ti vatvā sīsaṃ okampetvā ummaggaṃ gahetvā pakkām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아지와까인 우빠까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벗이여’라고 말하고서, 고개를 흔들고 샛길로 접어들어 떠나갔다.
286
"비구들이여, 나는 차례로 길을 걸어 바라나시에 닿았다. 이시파타나 사슴동산,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다섯 비구는 멀리서 오는 나를 보았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약속했다. '벗들이여, 저기 사문 고타마가 온다.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간 자다. 그에게 인사해서도 안 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아서도 안 된다. 그의 발우와 가사도 받아 들지 말자. 다만 자리는 마련해 두자. 앉고 싶다면 앉겠지.' 그런데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섯 비구는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 사람은 마중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다. 다른 사람은 자리를 펴 주고, 또 다른 사람은 발 씻을 물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벗이여'라고 불렀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bārāṇasī isipatanaṃ migadāyo yena pañcavaggiyā bhikkhū tenupasaṅkamiṃ.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차례로 유행하다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Addasaṃsu kho maṃ, bhikkhave, pañcavaggiyā bhikkhū dūrato āgacchantaṃ.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내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Disvāna aññamaññaṃ saṇṭhapesuṃ –
보고 나서 그들은 서로 이렇게 약조하였다 —
‘ayaṃ kho, āvuso, samaṇo gotamo āgacchat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벗들이여, 이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다. 사치스럽고, 정진을 저버렸고, 사치로 되돌아간 자다.
So neva abhivādetabbo, na paccuṭṭhātabbo;
그에게 절해서도 안 되고, 일어나 맞아서도 안 된다.
nāssa pattacīvaraṃ paṭiggahetabbaṃ.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어서도 안 된다.
Api ca kho āsanaṃ ṭhapetabbaṃ, sace ākaṅkhissati nisīdissatī’ti.
다만 자리는 마련해 두자. 원한다면 앉을 것이다.’
Yathā yathā kho ahaṃ, bhikkhave, upasaṅkamiṃ tathā tathā pañcavaggiyā bhikkhū nāsakkhiṃsu sakāya katikāya saṇṭhātuṃ.
그러나 비구들이여, 내가 다가갈수록 다섯 비구는 자기들의 약조를 지킬 수 없었다.
Appekacce maṃ paccuggantvā pattacīvaraṃ paṭiggahesuṃ, appekacce āsanaṃ paññapesuṃ, appekacce pādodakaṃ upaṭṭhapesuṃ.
어떤 이들은 나를 맞으러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어떤 이들은 자리를 마련했고, 어떤 이들은 발 씻을 물을 갖다 놓았다.
Api ca kho maṃ nāmena ca āvusovādena ca samudācaranti.
그러면서도 그들은 나를 이름으로, 또 ‘벗이여’라는 말로 불렀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벗이여'라고도 부르지 마라.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귀를 기울여라. 죽음 없는 경지를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이렇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은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그 위없는 목적이 곧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갖추고 머물게 될 것이다.'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이렇게 말하자,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mā, bhikkhave, tathāgataṃ nāmena ca āvusovādena ca samudācaratha.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으로, 또 「벗이여」라는 말로 부르지 마라.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amatamadhigataṃ,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얻어졌다. 내가 가르친다. 내가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저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말하자 다섯 비구는 내게 말했다. '벗 고타마여, 그대는 그런 행위와 그런 수행과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지 못했소. 그런데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는단 말이오?'
Evaṃ vutte, bhikkhave,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몸가짐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을 저버리고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에 빠지지 않았다. 정진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귀를 기울여라. 죽음 없는 경지를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이렇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은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그 위없는 목적이 곧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갖추고 머물게 될 것이다.'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na, bhikkhave, tathāgato bāhulliko, na padhānavibbhanto, na āvatto bāhullāya.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스럽지 않고, 정진을 저버리지 않았고, 사치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amatamadhigataṃ,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얻어졌다. 내가 가르친다. 내가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저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두 번째로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벗 고타마여, 그대는 그런 행위와 그런 수행과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지 못했소. 그런데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는단 말이오?'
Dutiyampi kho, bhikkhave,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두 번째로도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몸가짐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을 저버리고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비구들이여, 나도 두 번째로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에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한 말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갖추고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utiyampi kho ahaṃ, bhikkhave,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비구들이여, 두 번째로도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na, bhikkhave, tathāgato bāhulliko…pe…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스럽지 않고, 정진을 저버리지 않았고, 사치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은 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얻어졌다. 내가 가르친다.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저 위없는 —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게 되리라.’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6.21 ~ PN:mn26/286.26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세 번째로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벗 고타마여, 그대는 그런 행위와 그런 수행과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지 못했소. 그런데 지금 사치에 빠지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는단 말이오?'
Tatiyampi kho, bhikkhave,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세 번째로도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벗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몸가짐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사치스럽고 정진을 저버리고 사치로 되돌아간 그대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을 얻겠는가?’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전에 내가 이런 광채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pañcavaggiye bhikkhū etadavoca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abhijānātha me no tumhe, bhikkhave, ito pubbe evarūpaṃ pabhāvitameta’n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음을 아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귀를 기울여라. 죽음 없는 경지를 얻었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이렇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은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그 위없는 목적이 곧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갖추고 머물게 될 것이다.'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은 이다.
Odahatha, bhikkhave, sotaṃ, amatamadhigataṃ,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얻어졌다. 내가 가르친다. 내가 법을 설한다.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ā nacirasseva –
가르친 대로 그렇게 실천하면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저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나는 마침내 다섯 비구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나는 두 비구를 가르쳤고, 그동안 세 비구는 탁발하러 나갔다. 세 비구가 탁발해 가져온 것으로 우리 여섯이 먹고 지냈다. 이번에는 세 비구를 가르치고 두 비구가 탁발하러 나갔다. 두 비구가 탁발해 가져온 것으로 우리 여섯이 먹고 지냈다.
‘‘Asakkhiṃ kho ahaṃ, bhikkhave, pañcavaggiye bhikkhū saññāpetuṃ.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비구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Dvepi sudaṃ, bhikkhave, bhikkhū ovadāmi, tayo bhikkhū piṇḍāya caranti.
비구들이여, 나는 두 비구를 가르치고, 세 비구는 탁발하러 다녔다.
Yaṃ tayo bhikkhū piṇḍāya caritvā āharanti tena chabbaggiyā yāpema.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 그것으로 여섯이 함께 살아갔다.
Tayopi sudaṃ, bhikkhave, bhikkhū ovadāmi, dve bhikkhū piṇḍāya caranti.
비구들이여, 나는 세 비구를 가르치고, 두 비구는 탁발하러 다녔다.
Yaṃ dve bhikkhū piṇḍāya caritvā āharanti tena chabbaggiyā yāpema.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 그것으로 여섯이 함께 살아갔다.
그러다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내게 이렇게 가르침과 훈계를 받으며 열반에 이르렀다. 그들은 스스로 태어남을 겪는 존재이면서 태어남의 허물을 알았다. 그리고 태어남 없는 위없는 안온, 곧 열반을 찾아 그에 이르렀다. 스스로 늙음을 겪는 존재이면서 늙음의 허물을 알고, 늙음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에 이르렀다. 병듦과 죽음과 슬픔을 겪는 존재이면서도 그들은 똑같이 하였다. 스스로 오염을 겪는 존재이면서 오염의 허물을 알았고, 오염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찾아 그에 이르렀다.
Atha kho, bhikkhave, pañcavaggiyā bhikkhū mayā evaṃ ovadiyamānā evaṃ anusāsiyamānā attanā jātidhammā samānā jāt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su, attanā jarādhammā samānā jarā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ā ajar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su, attanā byādhidhammā samānā…pe… attanā maraṇadhammā samānā… attanā sokadhammā samānā… attanā saṃkilesadhammā samānā saṃkiles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su.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훈계를 받은 다섯 비구는, 스스로 태어남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태어남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태어남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고, 스스로 늙음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늙음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늙음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고, 스스로 병듦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병듦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병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병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고, 스스로 죽음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죽음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불사이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불사이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고, 스스로 슬픔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슬픔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슬픔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 없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고, 스스로 오염의 법을 지닌 자이면서 오염의 법에서 위험을 알고, 오염되지 않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되지 않고 위없으며 속박에서 벗어난 안온인 열반을 얻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6.46에서 되살렸습니다.
그들에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우리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불확실]
Ñāṇañca pana nesaṃ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그들에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
‘akuppā no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우리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87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이 있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도 있다. 이것들은 바라는 만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답다.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탐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눈으로 아는 형색은 원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흡족한 것, 사랑스러운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할 만한 것이다. 귀로 아는 소리는 원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흡족한 것, 사랑스러운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할 만한 것이다. 코로 아는 냄새는 원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흡족한 것, 사랑스러운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할 만한 것이다. 혀로 아는 맛은 원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흡족한 것, 사랑스러운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할 만한 것이다. 몸으로 아는 감촉은 원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흡족한 것, 사랑스러운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할 만한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kho, bhikkhave, pañca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다섯 가지 대상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졌다고 하자. 그들은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날 지혜도 없이 그것을 누린다. 그런 자들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니,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들이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e pañca kāmaguṇe gat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assu veditabbā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묶이고 홀리고 빠져들어,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anayamāpannā byasanamāpannā yathākāmakaraṇīyā pāpimato’.
‘그들은 불행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며,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들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숲에 사는 사슴이 덫 더미 위에 묶인 채 누워 있다고 하자. 그 사슴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니, 사냥꾼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신세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원하는 곳으로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āraññako mago baddho pāsarāsiṃ adhisayeyya.
‘비구들이여, 마치 숲에 사는 사슴이 묶인 채 덫 무더기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anayamāpanno byasanamāpanno yathākāmakaraṇīyo luddassa.
그는 불행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며, 사냥꾼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다.
Āgacchante ca pana ludde yena kāmaṃ na pakkamissatī’ti.
그리고 사냥꾼이 오면 그는 원하는 곳으로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똑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다섯 가지 대상에 얽매이고 홀리고 빠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날 지혜 없이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니,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들이다.'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e pañca kāmaguṇe gat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assu veditabbā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묶이고 홀리고 빠져들어,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anayamāpannā byasanamāpannā yathākāmakaraṇīyā pāpimato’.
‘그들은 불행에 빠졌고 파멸에 빠졌으며,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다섯 가지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빠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그 허물을 보고 벗어날 지혜를 갖추고 누린다. 그런 자들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니,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e pañca kāmaguṇe agathitā amucchitā anajjhopannā ādīnavadassāvino 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assu veditabbā –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빠져들지 않아,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알면서 그것을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na anayamāpannā na byasanamāpannā na yathākāmakaraṇīyā pāpimato’.
‘그들은 불행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며,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들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숲에 사는 사슴이 덫 더미 위에 묶이지 않은 채 누워 있다고 하자. 그 사슴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니, 사냥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세가 아니다. 사냥꾼이 다가오면 원하는 곳으로 달아날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āraññako mago abaddho pāsarāsiṃ adhisayeyya.
“비구들이여, 마치 숲에 사는 사슴이 묶이지 않은 채 덫 무더기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는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na anayamāpanno na byasanamāpanno na yathākāmakaraṇīyo luddassa.
‘그는 불행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며, 사냥꾼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가 아니다.
Āgacchante ca pana ludde yena kāmaṃ pakkamissatī’ti.
그리고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는 원하는 곳으로 달아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똑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다섯 가지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빠지지 않아서, 그 허물을 보고 벗어날 지혜를 갖추고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불운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니, 악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e pañca kāmaguṇe agathitā amucchitā anajjhopannā ādīnavadassāvino 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assu veditabbā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빠져들지 않아,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알면서 그것을 누린다면, 그들은 이렇게 알려져야 한다 —
‘na anayamāpannā na byasanamāpannā na yathākāmakaraṇīyā pāpimato’.
‘그들은 불행에 빠지지 않았고 파멸에 빠지지 않았으며,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당하는 자들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숲에 사는 사슴이 깊은 숲속을 거닌다고 하자. 그 사슴은 마음 놓고 걷고, 마음 놓고 서고, 마음 놓고 앉고, 마음 놓고 눕는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사냥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Seyyathāpi, bhikkhave, āraññako mago araññe pavane caramāno vissattho gacchati, vissattho tiṭṭhati, vissattho nisīdati, vissattho seyyaṃ kappeti.
“비구들이여, 마치 숲에 사는 사슴이 숲속 덤불을 거닐며 마음 놓고 가고, 마음 놓고 서고, 마음 놓고 앉고, 마음 놓고 자리를 펴는 것과 같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nāpāthagato, bhikkhave, luddassa.
비구들이여, 사냥꾼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법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생각과 숙고가 있고 홀로 있음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을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마라를 눈멀게 하고 자취를 없앴으며,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생각과 숙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하여 생각도 숙고도 없고 삼매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을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이 사라져 평온하게 머문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알아차림이 있으며 즐겁게 머무는 자'라고 부르는 바로 그 즐거움이다. 이렇게 셋째 선정을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이 가시어 평온에 머물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무는 이’라고 일컫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이미 가라앉았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알아차림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을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근심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형상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선다. 부딪침에 대한 인식을 가라앉히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허공은 끝이 없다'며 공간이 끝없는 경지를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공간이 끝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의식은 끝이 없다'며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처럼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
Ayaṃ vuccati, bhikkhave…pe…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5에서 되살렸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리고 인식과 느낌이 소멸한 경지를 이루어 머문다. 지혜로 보아서 번뇌가 모두 다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두고 '마라를 눈멀게 하고 자취를 없앴으며, 악한 자의 눈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문다. 그리고 통찰지로 보아 그의 번뇌들이 다한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하여 발자취를 없앴고, 마라의 눈을 부수어 빠삐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넜다. 그래서 마음 놓고 걷고, 마음 놓고 서고, 마음 놓고 앉고, 마음 놓고 눕는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악한 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갔기 때문이다."
Tiṇṇo loke visattikaṃ vissattho gacchati, vissattho tiṭṭhati, vissattho nisīdati, vissattho seyyaṃ kappeti.
그는 세상의 얽어맴을 건너, 마음 놓고 가고, 마음 놓고 서고, 마음 놓고 앉고, 마음 놓고 자리를 편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nāpāthagato, bhikkhave, pāpimato’’ti.
비구들이여, 빠삐만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흡족해하며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덫 더미의 경, 여섯째가 끝났다.
Pāsarāsi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빠사라시 경이 끝났다. 여섯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