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ahāsāropamasuttaṃ
9. 마하사로빠마 경
307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깃자꾸따 산에 머물고 계셨다. 데바닷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데바닷따를 두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acirapakkante devadatte.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 데와닷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Tatra kho bhagavā devadattaṃ ārabbha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데와닷따를 두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누리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이름 없고 힘없는 자들이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Idh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lābhasakkārasilokavā, ime panaññe bhikkhū appaññātā appesakkhā’ti.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지녔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세력도 없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심재를 갖춘 우뚝 선 큰 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심재를 지나쳤고, 겉나무를 지나쳤고, 속껍질을 지나쳤고, 겉껍질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심재를 알지 못했고, 겉나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던 이 사람은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심재와 겉나무와 속껍질과 겉껍질을 모두 지나쳤다. 그리고 가지와 잎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심재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atikkamma papaṭikaṃ, sākhāpalās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비구들이여, 마치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 가지와 잎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나는 것과 같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어른은 참으로 고갱이를 알지 못했고, 겉재목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atikkamma papaṭikaṃ, sākhāpalās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어른은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면서,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 가지와 잎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난 것이다.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고갱이로 해야 할 일, 그 목적을 그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꼭 그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것을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누리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이름 없고 힘없는 자들이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가지와 잎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불확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ahamasmi lābhasakkārasilokavā, ime panaññe bhikkhū appaññātā appesakkhā’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지녔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세력도 없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sākhāpalāsaṃ aggahesi brahmacariyassa;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가지와 잎을 잡았다고 한다;
tena ca vosānaṃ āpādi.
그리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여겼다.
308
비구들이여, 또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계행의 원만함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계를 지키는 선한 성품의 사람이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계를 어기는 악한 성품이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런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sīlavā kalyāṇadhammo, ime panaññe bhikkhū dussīlā pāpadhammā’ti.
‘나는 계를 지키고 좋은 성품을 지녔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계를 어기고 나쁜 성품을 지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심재를 갖춘 우뚝 선 큰 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심재를 지나쳤고, 겉나무를 지나쳤고, 속껍질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겉껍질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심재를 알지 못했고, 겉나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던 이 사람은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심재와 겉나무와 속껍질을 모두 지나쳤다. 그리고 겉껍질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심재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papaṭik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비구들이여, 마치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쳐, 겉껍질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나는 것과 같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어른은 참으로 고갱이를 알지 못했고, 겉재목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atikkamma tacaṃ, papaṭik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어른은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면서,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쳐, 겉껍질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난 것이다;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고갱이로 해야 할 일, 그 목적을 그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꼭 그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계행의 원만함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계를 지키는 선한 성품의 사람이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계를 어기는 악한 성품이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겉껍질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sīlavā kalyāṇadhammo, ime panaññe bhikkhū dussīlā pāpadhammā’ti.
‘나는 계를 지키고 좋은 성품을 지녔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계를 어기고 나쁜 성품을 지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papaṭikaṃ aggahesi brahmacariyassa;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겉껍질을 잡았다고 한다;
tena ca vosānaṃ āpādi.
그리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여겼다.
309
비구들이여, 또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삼매의 원만함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마음이 모여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마음이 모이지 않고 산란하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런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samāhito ekaggacitto, ime panaññe bhikkhū asamāhitā vibbhantacittā’ti.
‘나는 삼매에 들어 마음이 한곳에 모였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져 있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심재를 갖춘 우뚝 선 큰 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심재를 지나쳤고, 겉나무를 지나쳤다. 그러고는 속껍질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심재를 알지 못했고, 겉나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던 이 사람은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심재와 겉나무를 지나쳤다. 그리고 속껍질을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심재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taca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비구들이여, 마치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쳐, 속껍질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나는 것과 같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어른은 참으로 고갱이를 알지 못했고, 겉재목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atikkamma phegguṃ taca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어른은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면서,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쳐, 속껍질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난 것이다.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고갱이로 해야 할 일, 그 목적을 그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꼭 그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삼매의 원만함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마음이 모여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마음이 모이지 않고 산란하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속껍질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samāhito ekaggacitto, ime panaññe bhikkhū asamāhitā vibbhantacittā’ti.
‘나는 삼매에 들어 마음이 한곳에 모였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흩어져 있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tacaṃ aggahesi brahmacariyassa;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속껍질을 잡았다고 한다;
tena ca vosānaṃ āpādi.
그리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여겼다.
310
비구들이여, 또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앎과 봄을 이룬다. 그는 그 앎과 봄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앎과 봄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알고 보면서 지내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채 지낸다.’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런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앎과 봄을 이룬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jānaṃ passaṃ viharāmi.
‘나는 알고 보면서 지낸다.
Ime panaññe bhikkhū ajānaṃ apassaṃ viharantī’ti.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서 지낸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심재를 갖춘 우뚝 선 큰 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심재를 지나쳤다. 그러고는 겉나무를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심재를 알지 못했고, 겉나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구나.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던 이 사람은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심재를 지나쳤다. 그리고 겉나무를 잘라 들고 그것을 심재라 여기며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심재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phegguṃ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비구들이여, 마치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쳐, 겉재목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나는 것과 같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na vatāyaṃ bhavaṃ puriso aññāsi sāraṃ na aññāsi phegguṃ na aññāsi tacaṃ na aññāsi papaṭikaṃ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어른은 참으로 고갱이를 알지 못했고 겉재목도 알지 못했고 속껍질도 알지 못했고 겉껍질도 알지 못했고 가지와 잎도 알지 못했다.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ṃ phegguṃ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그러기에 이 어른은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면서,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를 그냥 지나쳐, 겉재목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여기면서 떠난 것이다.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nānubhavissatī’ti.
그가 고갱이로 해야 할 일, 그 목적을 그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꼭 그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앎과 봄을 이룬다. 그는 그 앎과 봄에 만족하고,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그 앎과 봄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린다. ‘나는 알고 보면서 지내지만, 저 다른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채 지낸다.’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진다. 방일해져서 괴롭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겉나무를 붙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앎과 봄을 이룬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긴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ānukkaṃseti, paraṃ vambheti –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본다 —
‘ahamasmi jānaṃ passaṃ viharāmi, ime panaññe bhikkhū ajānaṃ apassaṃ viharantī’ti.
‘나는 알고 보면서 지낸다. 그러나 이 다른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서 지낸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ṃ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ṃ viharati.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고 방심하며 게으름에 빠지고, 게을러진 채 괴롭게 지낸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phegguṃ aggahesi brahmacariyassa;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청정한 삶의 겉재목을 잡았다고 한다;
tena ca vosānaṃ āpādi.
그리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여겼다.
311
비구들이여, 또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앎과 봄을 이룬다. 그는 그 앎과 봄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때를 가리지 않는 해탈을 이룬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그 때를 가리지 않는 해탈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그런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앎과 봄을 이룬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asamayavimokkhaṃ ārādheti.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때에 매이지 않는 해탈을 이룬다.
Aṭṭhānametaṃ, bhikkhave, anavakāso yaṃ so bhikkhu tāya asamayavimuttiyā parihāyetha.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그 때에 매이지 않는 해탈에서 물러나는 일, 그런 경우는 없고 그럴 여지도 없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심재를 갖춘 우뚝 선 큰 나무를 만났다. 그는 심재만을 잘라 들고, 그것이 심재임을 알고서 떠난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심재를 알았고, 겉나무도 속껍질도 겉껍질도 가지와 잎도 알았구나. 심재를 바라며 찾아 헤매던 이 사람은 우뚝 선 큰 나무에서 심재만을 잘라 들었다. 그것이 심재임을 알고서 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심재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그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jānamāno.
비구들이여, 마치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만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알면서 떠나는 것과 같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ññāsi vatāyaṃ bhavaṃ puriso sāraṃ, aññāsi phegguṃ, aññāsi tacaṃ, aññāsi papaṭikaṃ, aññāsi sākhāpalāsaṃ.
‘이 어른은 참으로 고갱이를 알았고, 겉재목도 알았고, 속껍질도 알았고, 겉껍질도 알았고, 가지와 잎도 알았다.
Tathā hayaṃ bhavaṃ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ṃ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sāraññeva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jānamāno.
그러기에 이 어른은 고갱이를 원하고 고갱이를 찾아 고갱이를 구하러 다니면서, 고갱이를 지닌 채 서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갱이만을 베어 가지고 ‘고갱이다’라고 알면서 떠난 것이다.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ṃ tañcassa atthaṃ anubhavissatī’ti.
그가 고갱이로 해야 할 일, 그 목적을 그는 이룰 것이다.’
꼭 그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짓눌려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를 끝낼 길이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출가한 그는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얻는다. 그는 그 이익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지도,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계행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계행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삼매의 원만함을 이룬다. 그는 그 삼매의 원만함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앎과 봄을 이룬다. 그는 그 앎과 봄에 만족하지만, 바라던 바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거기에 취하고 들떠 방일에 빠지지도 않는다. 방일하지 않은 채 때를 가리지 않는 해탈을 이룬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그 때를 가리지 않는 해탈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괴로움과 불만과 절망에 잠겼다. 괴로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짓눌렸다. 부디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를 끝내는 길이 드러나기를.’
So evaṃ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ṃ abhinibbatt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고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일으킨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amano hoti, na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기뻐하지 않고,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īla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계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īla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īla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samādhisampadaṃ ārādheti.
그는 그 계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삼매의 갖춤을 이룬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ṃ ārādheti.
그는 그 삼매의 갖춤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앎과 봄을 이룬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그는 그 앎과 봄으로 기뻐하기는 하지만, 뜻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attānukkaṃseti, na paraṃ vambheti.
그는 그 앎과 봄으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는다.
So tena ñāṇadassanen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ṃ āpajjati, appamatto samāno asamayavimokkhaṃ ārādheti.
그는 그 앎과 봄에 취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되어 때에 매이지 않는 해탈을 이룬다.
Aṭṭhānametaṃ, bhikkhave, anavakāso yaṃ so bhikkhu tāya asamayavimuttiyā parihāyetha.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그 때에 매이지 않는 해탈에서 물러나는 일, 그런 경우는 없고 그럴 여지도 없다.
이렇듯 비구들이여, 이 청정한 삶은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이득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계행의 원만함이나 삼매의 원만함이나 앎과 봄을 이득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이 있다. 이것을 위하여 이 청정한 삶이 있다. 이것이 심재이며, 이것이 끝이다.[불확실]
‘‘Iti kho, bhikkhave, nayidaṃ brahmacariyaṃ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ṃ, na sīlasampadānisaṃsaṃ, na samādhisampadānisaṃsaṃ, na ñāṇadassanānisaṃsaṃ.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청정한 삶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계의 갖춤을 이익으로 삼지 않으며, 삼매의 갖춤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앎과 봄을 이익으로 삼지 않는다.
Yā ca kho ayaṃ, bhikkhave, akuppā cetovimutti –
비구들이여, 흔들리지 않는 이 마음의 해탈(心解脫)[불확실]
불확실 —
etadatthamidaṃ, bhikkhave, brahmacariyaṃ, etaṃ sāraṃ etaṃ pariyosāna’’nti.
비구들이여, 이 청정한 삶은 이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것이 고갱이이고 이것이 끝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심재의 큰 비유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sāropama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마하사로빠마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