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ahāgopālakasuttaṃ
3. 마하고빨라까 경
346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bhikkhavo’’ti.
“비구들이여”라고.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를 갖춘 소치기는 소 떼를 돌보아 번성하게 할 수 없다. 어떤 열한 가지인가? 여기 이런 소치기가 있다. 소의 모양을 알지 못하고, 표식을 가려내는 데도 서툴다. 쇠파리 알을 털어 주지 못하고, 상처도 덮어 주지 못한다. 연기를 피워 주지 못하고, 나루터도 모른다. 소가 물 마시는 곳과 길도 모르고, 풀밭에도 밝지 못하다. 젖은 남김없이 다 짜 버린다. 소 떼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인 황소들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들지 않는다. 이런 열한 가지를 갖춘 소치기는 소 떼를 돌보아 번성하게 할 수 없다.[불확실]
‘‘Ekādasahi, bhikkhave, aṅgehi samannāgato gopālako abhabbo gogaṇaṃ pariharituṃ phātiṃ kātuṃ.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 요소를 갖춘 소치는 이는 소 떼를 돌볼 수 없고 번성하게 할 수 없다.
Katamehi ekādasahi?
어떤 열한 가지인가?
Idha, bhikkhave, gopālako na rūpaññū hoti, na lakkhaṇakusalo hoti, na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na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na dhūmaṃ kattā hoti, na titthaṃ jānāti, na pītaṃ jānāti, na vīthiṃ jānāti, na gocarakusalo hoti anavasesadohī ca hoti.
비구들이여, 여기 소치는 이는 형색을 아는 자가 아니고, 특징에 능숙한 자가 아니고, 파리 알을 없애는 자가 아니고, 상처를 덮어 주는 자가 아니고, 연기를 피우는 자가 아니고,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고, 마신 것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고, 풀밭에 능숙한 자가 아니고, 남김없이 짜내는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e te usabhā gopitaro go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소 떼의 아비이자 소 떼의 인도자인 우두머리 황소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들지 않는다.
Imehi kho, bhikkhave, ekādasahi aṅgehi samannāgato gopālako abhabbo gogaṇaṃ pariharituṃ phātiṃ kātuṃ.
비구들이여, 이 열한 가지 요소를 갖춘 소치는 이는 소 떼를 돌볼 수 없고 번성하게 할 수 없다.
이와 똑같이, 열한 가지를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지 못한다. 뻗어 나가 크게 불어나지도 못한다. 어떤 열한 가지인가? 여기 이런 비구가 있다. 물질을 알지 못하고, 표식을 가려내는 데도 서툴다. 쇠파리 알을 털어 내지 못하고, 상처도 덮지 못한다. 연기를 피우지 못하고, 나루터도 모른다. 물 마시는 곳과 길도 모르고, 풀밭에도 밝지 못하다. 받는 것은 남김없이 다 짜 버린다. 비구들 가운데 승가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인 장로들이 있다. 출가한 지 오래된 노련한 분들이다. 그런 장로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들지도 않는다.
Evameva kho, bhikkhave, ekādas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abhabbo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tu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늘어남과 넓어짐에 이를 수 없다.
Katamehi ekādasahi?
어떤 열한 가지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na rūpaññū hoti, na lakkhaṇakusalo hoti, na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na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na dhūmaṃ kattā hoti, na titthaṃ jānāti, na pītaṃ jānāti, na vīthiṃ jānāti, na gocarakusalo hoti, anavasesadohī ca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가 아니고, 특징에 능숙한 자가 아니고, 파리 알을 없애는 자가 아니고, 상처를 덮어 주는 자가 아니고, 연기를 피우는 자가 아니고,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고, 마신 것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고, 풀밭에 능숙한 자가 아니고, 남김없이 짜내는 자다.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들지 않는다.
347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물질을 알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어떤 물질이든 ‘네 가지 큰 요소와, 그 요소에 의지해 생긴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질을 알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rūpaññū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sabbaṃ rūpaṃ ‘cattāri mahābhūtāni,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물질이든 모든 물질을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rūpaññū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표식을 가려내는 데 서툰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어리석은 이는 행위가 표식이고, 현명한 이도 행위가 표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표식을 가려내는 데 서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lakkhaṇ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특징에 능숙한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kammalakkhaṇo bālo, kammalakkhaṇo paṇḍito’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미련한 자는 행위가 그 특징이고, 슬기로운 자는 행위가 그 특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lakkhaṇ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특징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쇠파리 알을 털어 내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의 생각이 일어나면 받아들이고서 버리지 않는다. 몰아내지도, 끝장내지도, 없애 버리지도 않는다. 악의의 생각이 일어나도,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도 받아들이고서 버리지 않고, 몰아내지 않으며, 끝장내지 않고, 없애 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쇠파리 알을 털어 내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파리 알을 없애는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uppannaṃ kāmavitakkaṃ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 karoti na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물리치지 않고 끝장내지 않고 없애 버리지 않는다.
Uppannaṃ byāpādavitakkaṃ…pe… uppannaṃ vihiṃsāvitakkaṃ…pe… uppannuppanne pāpake akusale dhamme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 karoti na anabhāvaṃ gameti.
이미 일어난 악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물리치지 않고 끝장내지 않고 없애 버리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해코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물리치지 않고 끝장내지 않고 없애 버리지 않는다. 일어나고 일어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물리치지 않고 끝장내지 않고 없애 버리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3:347.8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파리 알을 없애는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상처를 덮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상을 보고는 전체 인상을 붙잡고 세부 특징을 붙잡는다.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런데도 그는 단속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눈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단속하지도 않는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전체 인상과 세부 특징을 붙잡는다.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런데도 그는 단속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단속하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상처를 덮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상처를 덮어 주는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imittaggāhī hoti anubyañjanaggāhī.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na paṭipajjati, na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na saṃvaraṃ āpajjati.
그것을 원인으로,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눈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눈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pe… jivhāya rasaṃ sāyitvā…pe…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pe…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imittaggāhī hoti a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그것을 원인으로, 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귀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코로 냄새를 맡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그것을 원인으로, 코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코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코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혀로 맛을 보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그것을 원인으로, 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혀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그것을 원인으로, 몸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몸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몸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33:347.12 ~ PN:mn33/347.13에서 되살렸습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na paṭipajjati, na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na saṃvaraṃ āpajjati.
그것을 원인으로,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니,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지 않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지 않고, 마음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르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상처를 덮어 주는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연기를 피우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의 법을 남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연기를 피우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dhūmaṃ kat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연기를 피우는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na vitthārena paresaṃ desetā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남들에게 자세히 설해 주는 자가 아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dhūmaṃ kat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연기를 피우는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나루터를 알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전승을 이어받았으며 법과 율과 논모를 지닌 비구들을 때때로 찾아가 묻지 않는다. ‘존자님,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존자들도 그에게 열리지 않은 것을 열어 주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해 주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여러 법에 대한 의심도 풀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나루터를 알지 못한다.[불확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titth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te kālena kālaṃ upasaṅkamitvā na paripucchati, na paripañha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많이 배우고 전승에 정통하고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논모를 지닌 비구들, 그들에게 때때로 다가가 묻지 않고 캐묻지 않는다 —
‘idaṃ, bhante, kathaṃ?
‘존자시여, 이것은 어떻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massa ko attho’ti?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Tassa te āyasmanto avivaṭañceva na vivaranti, anuttānīkatañca na uttānī karonti, anekavihitesu ca kaṅkhāṭhānīyesu dhammesu kaṅkhaṃ na paṭivinodenti.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주지 않고, 밝혀지지 않은 것을 밝혀 주지 않고, 갖가지 의심스러운 법들에 대해 의심을 없애 주지 않는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titth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여래가 밝힌 법과 율을 가르치는데도 그는 뜻의 환희를 얻지 못하고, 법의 환희를 얻지 못하며, 법에 이어진 기쁨도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알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pīt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마신 것을 알지 못하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na labhati atthavedaṃ, na labhati dhammavedaṃ, na labhati 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을 설할 때 뜻에서 오는 감흥을 얻지 못하고, 법에서 오는 감흥을 얻지 못하고, 법과 이어진 환희를 얻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pīt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마신 것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길을 알지 못하는가? 여기 비구가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길을 알지 못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vīthi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길을 알지 못하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ariyaṃ aṭṭhaṅgikaṃ magg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덟 가지 갈래의 성스러운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vīthi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길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풀밭에 밝지 못한가? 여기 비구가 마음챙김의 네 가지 토대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풀밭에 밝지 못하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gocar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풀밭에 능숙한 자가 아닌가?
Idha, bhikkhave, bhikkhu cattāro satipaṭṭhāne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gocar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풀밭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남김없이 다 짜 버리는가? 여기 믿음 있는 집주인들이 비구에게 필수품을 가득 가져와 받으시라고 청한다. 가사,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 약품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 비구는 받을 만큼의 양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남김없이 다 짜 버린다.[불확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navasesadohī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남김없이 짜내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ṃ saddhā gahapatikā abhihaṭṭhuṃ pavārenti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tatra bhikkhu mattaṃ na jānāti paṭiggahaṇāya.
비구들이여, 여기 믿음 있는 장자들이 비구에게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자를 위한 약품이라는 필수품을 가져와 권하는데, 거기서 비구는 받는 데 알맞은 양을 알지 못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anavasesadohī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남김없이 짜내는 자다.
승가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이며 출가한 지 오래된 노련한 장로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이분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들지 않는가? 여기 비구는 그런 장로들에게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내보이지 않는다.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말의 행위와 마음의 행위 역시 자애롭게 내보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그런 장로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들지 않는다. 이 열한 가지를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고 뻗어 나가 크게 불어날 수 없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들지 않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su na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에게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내지 않는다.
na mettaṃ vacī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자애로운 말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내지 않는다.
na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내지 않는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na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들지 않는다.
‘‘Imehi kho bhikkhave ekādas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abhabbo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tuṃ.
비구들이여, 이 열한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늘어남과 넓어짐에 이를 수 없다.
348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를 갖춘 소치기는 소 떼를 돌보아 번성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열한 가지인가? 여기 이런 소치기가 있다. 소의 모양을 알고, 표식을 가려내는 데도 능하다. 쇠파리 알을 털어 주고, 상처도 덮어 준다. 연기를 피워 주고, 나루터도 안다. 소가 물 마시는 곳과 길도 알고, 풀밭에도 밝다. 젖은 남겨 두고 짠다. 소 떼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인 황소들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든다. 이런 열한 가지를 갖춘 소치기는 소 떼를 돌보아 번성하게 할 수 있다.[불확실]
‘‘Ekādasahi, bhikkhave, aṅgehi samannāgato gopālako bhabbo gogaṇaṃ pariharituṃ phātiṃ kātuṃ.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 요소를 갖춘 소치는 이는 소 떼를 돌볼 수 있고 번성하게 할 수 있다.
Katamehi ekādasahi?
어떤 열한 가지인가?
Idha, bhikkhave, gopālako rūpaññū hoti, lakkhaṇakusalo hoti,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dhūmaṃ kattā hoti, titthaṃ jānāti, pītaṃ jānāti, vīthiṃ jānāti, gocarakusalo hoti, sāvasesadohī ca hoti.
비구들이여, 여기 소치는 이는 형색을 아는 자이고, 특징에 능숙한 자이고, 파리 알을 없애는 자이고, 상처를 덮어 주는 자이고, 연기를 피우는 자이고, 물 마시는 곳을 알고, 마신 것을 알고, 길을 알고, 풀밭에 능숙한 자이고, 남기고 짜내는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e te usabhā gopitaro gopariṇāyakā te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소 떼의 아비이자 소 떼의 인도자인 우두머리 황소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든다.
Imehi kho, bhikkhave, ekādasahi aṅgehi samannāgato gopālako bhabbo gogaṇaṃ pariharituṃ phātiṃ kātuṃ.
비구들이여, 이 열한 가지 요소를 갖춘 소치는 이는 소 떼를 돌볼 수 있고 번성하게 할 수 있다.
이와 똑같이, 열한 가지를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고 뻗어 나가 크게 불어날 수 있다. 어떤 열한 가지인가? 여기 이런 비구가 있다. 물질을 알고, 표식을 가려내는 데도 능하다. 쇠파리 알을 털어 내고, 상처도 덮는다. 연기를 피우고, 나루터도 안다. 물 마시는 곳과 길도 알고, 풀밭에도 밝다. 받을 때는 남겨 두고 짠다. 비구들 가운데 승가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인 장로들이 있다. 출가한 지 오래된 노련한 분들이다. 그런 장로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든다.
Evameva kho, bhikkhave, ekādas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bhabbo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tu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늘어남과 넓어짐에 이를 수 있다.
Katamehi ekādasahi?
어떤 열한 가지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rūpaññū hoti, lakkhaṇakusalo hoti,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dhūmaṃ kattā hoti, titthaṃ jānāti, pītaṃ jānāti, vīthiṃ jānāti, gocarakusalo hoti, sāvasesadohī ca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이고, 특징에 능숙한 자이고, 파리 알을 없애는 자이고, 상처를 덮어 주는 자이고, 연기를 피우는 자이고, 물 마시는 곳을 알고, 마신 것을 알고, 길을 알고, 풀밭에 능숙한 자이고, 남기고 짜내는 자다.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든다.
349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물질을 아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어떤 물질이든 ‘네 가지 큰 요소와, 그 요소에 의지해 생긴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질을 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rūpaññū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sabbaṃ rūpaṃ ‘cattāri mahābhūtāni,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rūp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물질이든 모든 물질을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rūpaññū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질을 아는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표식을 가려내는 데 능한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어리석은 이는 행위가 표식이고, 현명한 이도 행위가 표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표식을 가려내는 데 능하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lakkhaṇ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특징에 능숙한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kammalakkhaṇo bālo, kammalakkhaṇo paṇḍit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미련한 자는 행위가 그 특징이고, 슬기로운 자는 행위가 그 특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lakkhaṇ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특징에 능숙한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쇠파리 알을 털어 내는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의 생각이 일어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린다. 몰아내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악의의 생각이 일어나도,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며, 몰아내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쇠파리 알을 털어 낸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파리 알을 없애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uppannaṃ kāmavitakkaṃ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 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물리치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Uppannaṃ byāpādavitakkaṃ…pe… uppannaṃ vihiṃsāvitakkaṃ…pe… uppannuppanne pāpake akusale dhamme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 karoti anabhāvaṃ gameti.
이미 일어난 악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물리치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이미 일어난 해코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물리치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일어나고 일어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물리치고 끝장내고 없애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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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ṃ kho, bhikkhave, bhikkhu āsāṭikaṃ hār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파리 알을 없애는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상처를 덮는가?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상을 보고도 전체 인상을 붙잡지 않고 세부 특징을 붙잡지 않는다.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래서 그는 단속하려고 나선다. 눈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전체 인상과 세부 특징을 붙잡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래서 그는 단속하려고 나선다.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상처를 덮는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상처를 덮어 주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그것을 원인으로,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눈의 기능을 지키고, 눈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pe… jivhāya rasaṃ sāyitvā…pe…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pe…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원인으로, 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귀의 기능을 지키고, 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코로 냄새를 맡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원인으로, 코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코의 기능을 지키고, 코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혀로 맛을 보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원인으로, 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혀의 기능을 지키고, 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원인으로, 몸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몸의 기능을 지키고, 몸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표상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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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그것을 원인으로,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그에게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마음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vaṇaṃ paṭicchād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상처를 덮어 주는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연기를 피우는가?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의 법을 남에게 자세히 설명해 준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연기를 피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dhūmaṃ kat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연기를 피우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vitthārena paresaṃ desetā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남들에게 자세히 설해 주는 자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dhūmaṃ kat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연기를 피우는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나루터를 아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전승을 이어받았으며 법과 율과 논모를 지닌 비구들을 때때로 찾아가 묻고 질문한다. ‘존자님,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그 존자들은 그에게 열리지 않은 것을 열어 주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해 준다. 의심스러운 여러 법에 대한 의심도 풀어 준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나루터를 안다.[불확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titth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아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te kālena kālaṃ upasaṅkamitvā paripucchati, paripañha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많이 배우고 전승에 정통하고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논모를 지닌 비구들, 그들에게 때때로 다가가 묻고 캐묻는다 —
‘idaṃ, bhante, kathaṃ?
‘존자시여, 이것은 어떻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massa ko attho’ti?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Tassa te āyasmanto avivaṭañceva vivaranti, anuttānīkatañca uttānī karonti, anekavihitesu ca kaṅkhāṭhānīyesu dhammesu kaṅkhaṃ paṭivinodenti.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주고, 밝혀지지 않은 것을 밝혀 주고, 갖가지 의심스러운 법들에 대해 의심을 없애 준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titth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물 마시는 곳을 아는가? 여기 비구가 있다. 여래가 밝힌 법과 율을 가르치면 그는 뜻의 환희를 얻고, 법의 환희를 얻으며, 법에 이어진 기쁨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물 마시는 곳을 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pīt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마신 것을 아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labhati atthavedaṃ, labhati dhammavedaṃ, labhati 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을 설할 때 뜻에서 오는 감흥을 얻고, 법에서 오는 감흥을 얻고, 법과 이어진 환희를 얻는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pīta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마신 것을 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길을 아는가? 여기 비구가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길을 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vīthi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길을 아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ariyaṃ aṭṭhaṅgikaṃ magg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덟 가지 갈래의 성스러운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vīthiṃ jānā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길을 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풀밭에 밝은가? 여기 비구가 마음챙김의 네 가지 토대를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풀밭에 밝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gocar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풀밭에 능숙한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cattāro satipaṭṭhāne yathābhūt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있는 그대로 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gocar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풀밭에 능숙한 자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남겨 두고 짜는가? 여기 믿음 있는 집주인들이 비구에게 필수품을 가득 가져와 받으시라고 청한다. 가사,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 약품 같은 것들이다. 그럴 때 그 비구는 받을 만큼의 양을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남겨 두고 짠다.[불확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āvasesadohī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남기고 짜내는 자인가?
Idha, bhikkhave, bhikkhuṃ saddhā gahapatikā abhihaṭṭhuṃ pavārenti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비구들이여, 여기 믿음 있는 장자들이 비구에게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자를 위한 약품이라는 필수품을 가져와 권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a bhikkhu mattaṃ jānāti paṭiggahaṇāya.
거기서 비구는 받는 데 알맞은 양을 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āvasesadohī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남기고 짜내는 자다.
승가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이며 출가한 지 오래된 노련한 장로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이분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드는가? 여기 비구는 그런 장로들에게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내보인다.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말의 행위와 마음의 행위 역시 자애롭게 내보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그런 장로들을 각별한 존경으로 받든다. 이 열한 가지를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고 뻗어 나가 크게 불어날 수 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드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su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에게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낸다.
mettaṃ vacī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자애로운 말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낸다.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āpeti āvi ceva raho ca.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드러낸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atirekapūjāya pūjetā ho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승가의 아비이자 승가의 인도자인 비구들, 그들을 각별한 공경으로 받든다.
‘‘Imehi kho, bhikkhave, ekādas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bhabbo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tu’’nti.
비구들이여, 이 열한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늘어남과 넓어짐에 이를 수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큰 소치기 경’이 끝났다. 세 번째 경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gopālakasuttaṃ niṭṭhitaṃ tatiyaṃ.
마하고빨라까 경이 끝났다. 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