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라빤나사 빠알리Mūlapaṇṇāsapāḷi
3. Opammavaggo
3. 비유 품
1. Kakacūpamasuttaṃ
1. 톱의 비유 경
222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숲, 아나타삥디까 동산에 계셨다. 그때 모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지나치게 가깝게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ativelaṃ saṃsaṭṭho viharati.
그런데 그때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도를 넘게 뒤섞여 지냈다.
그 모습은 이러했다. 어떤 비구가 존자 앞에서 비구니들을 나쁘게 말하면, 존자는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걸었다. 반대로 어떤 비구가 비구니들 앞에서 존자를 나쁘게 말하면, 비구니들이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걸었다. 모리야팍구나 존자는 이렇게 비구니들과 어울려 지냈다.
Evaṃ saṃsaṭṭho āyasmā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ti –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냈다 —
sace koci bhikkhu āyasmato moḷiyaphaggunassa sammukhā tāsaṃ bhikkhunīnaṃ avaṇṇaṃ bhāsati, tenāyasmā moḷiyaphagguno kupito anattamano adhikaraṇampi karoti.
만일 어떤 비구가 몰리야팍구나 존자 앞에서 그 비구니들을 헐뜯으면, 그 때문에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Sace pana koci bhikkhu tāsaṃ bhikkhunīnaṃ sammukhā āyasmato moḷiyaphaggunassa avaṇṇaṃ bhāsati, tena tā bhikkhuniyo kupitā anattamanā adhikaraṇampi karonti.
그런데 만일 어떤 비구가 그 비구니들 앞에서 몰리야팍구나 존자를 헐뜯으면, 그 때문에 그 비구니들이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Evaṃ saṃsaṭṭho āyasmā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ti.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구가 세존을 찾아갔다. 그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리야팍구나 존자가 비구니들과 지나치게 가깝게 어울려 지냅니다. 그 모습은 이러합니다. 어떤 비구가 존자 앞에서 비구니들을 나쁘게 말하면, 존자는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겁니다. 또 어떤 비구가 비구니들 앞에서 존자를 나쁘게 말하면, 비구니들이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겁니다. 세존이시여, 모리야팍구나 존자는 이렇게 비구니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Atha kho aññataro bhikkhu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āyasmā, bhante,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ativelaṃ saṃsaṭṭho viharati.
“세존이시여, 몰리야팍구나 존자가 비구니들과 도를 넘게 뒤섞여 지냅니다.
Evaṃ saṃsaṭṭho, bhante, āyasmā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ti –
세존이시여,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냅니다 —
sace koci bhikkhu āyasmato moḷiyaphaggunassa sammukhā tāsaṃ bhikkhunīnaṃ avaṇṇaṃ bhāsati, tenāyasmā moḷiyaphagguno kupito anattamano adhikaraṇampi karoti.
만일 어떤 비구가 몰리야팍구나 존자 앞에서 그 비구니들을 헐뜯으면, 그 때문에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합니다.
Sace pana koci bhikkhu tāsaṃ bhikkhunīnaṃ sammukhā āyasmato moḷiyaphaggunassa avaṇṇaṃ bhāsati, tena tā bhikkhuniyo kupitā anattamanā adhikaraṇampi karonti.
그런데 만일 어떤 비구가 그 비구니들 앞에서 몰리야팍구나 존자를 헐뜯으면, 그 때문에 그 비구니들이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합니다.
Evaṃ saṃsaṭṭho, bhante, āyasmā moḷiyaphagguno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tī’’ti.
세존이시여,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냅니다.”
223
세존께서 한 비구를 부르셨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내 말을 전하여 모리야팍구나 비구를 불러라. ‘팍구나 도반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이렇게 말하여라.”
Atha kho bhagavā aññataraṃ bhikkhu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어떤 비구를 부르셨다 —
‘‘ehi tvaṃ, bhikkhu, mama vacanena moḷiyaphaggunaṃ bhikkhuṃ āmantehi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로 몰리야팍구나 비구를 불러라 —
‘satthā taṃ, āvuso phagguna, āmantetī’’’ti.
‘벗 팍구나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예,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모리야팍구나 존자에게 가서 말했다. “팍구나 도반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 모리야팍구나 존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세존께 갔다. 그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so bhikkhu bhagavato paṭissutvā yenāyasmā moḷiyaphagguno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서 몰리야팍구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moḷiyaphaggunaṃ etadavoca –
다가가서 몰리야팍구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tthā taṃ, āvuso phagguna, āmantetī’’ti.
“벗 팍구나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Evamāvuso’’ti kho āyasmā moḷiyaphagguno tassa bhikkhuno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예, 벗이여” 하고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그 비구에게 대답하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moḷiyaphaggun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몰리야팍구나 존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팍구나여, 네가 비구니들과 지나치게 가깝게 어울려 지낸다는 것이 정말이냐? 네가 비구니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이러하다고 한다. 어떤 비구가 네 앞에서 비구니들을 나쁘게 말하면, 너는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건다. 또 어떤 비구가 비구니들 앞에서 너를 나쁘게 말하면, 비구니들이 화를 내고 언짢아하며 시비를 건다. 팍구나여, 네가 비구니들과 이렇게 어울려 지낸다는 것이 정말이냐?”
‘‘Saccaṃ kira tvaṃ, phagguna, bhikkhunīhi saddhiṃ ativelaṃ saṃsaṭṭho viharasi?
“팍구나여, 그대가 비구니들과 도를 넘게 뒤섞여 지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Evaṃ saṃsaṭṭho kira tvaṃ, phagguna,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si –
팍구나여, 그대가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
sace koci bhikkhu tuyhaṃ sammukhā tāsaṃ bhikkhunīnaṃ avaṇṇaṃ bhāsati, tena tvaṃ kupito anattamano adhikaraṇampi karosi.
만일 어떤 비구가 그대 앞에서 그 비구니들을 헐뜯으면, 그 때문에 그대는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Sace pana koci bhikkhu tāsaṃ bhikkhunīnaṃ sammukhā tuyhaṃ avaṇṇaṃ bhāsati, tena tā bhikkhuniyo kupitā anattamanā adhikaraṇampi karonti.
그런데 만일 어떤 비구가 그 비구니들 앞에서 그대를 헐뜯으면, 그 때문에 그 비구니들이 성내고 언짢아하여 시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Evaṃ saṃsaṭṭho kira tvaṃ, phagguna, bhikkhunīhi saddhiṃ viharasī’’ti?
팍구나여, 그대가 비구니들과 이렇게 뒤섞여 지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팍구나여, 너는 좋은 가문의 아들로서 믿음을 갖고 집을 떠나 출가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Evaṃ, bhante’’ti.
“예, 세존이시여.”
‘‘Nanu tvaṃ, phagguna,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ti?
“팍구나여, 그대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음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이 아닌가?”
‘‘Evaṃ, bhante’’ti.
“예, 세존이시여.”
224
“팍구나여, 믿음으로 집을 떠나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이 비구니들과 지나치게 가깝게 어울리는 것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 네 앞에서 비구니들을 나쁘게 말하더라도, 너는 그때 집에 얽매인 욕망과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럴 때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 성내는 마음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이로움과 연민을 품고 지내리라.’ 팍구나여,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Na kho te etaṃ, phagguna, patirūpaṃ kulaputta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assa, yaṃ tvaṃ bhikkhunīhi saddhiṃ ativelaṃ saṃsaṭṭho vihareyyāsi.
“팍구나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음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인 그대가 비구니들과 도를 넘게 뒤섞여 지내는 것, 그것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Tasmātiha, phagguna, tava cepi koci sammukhā tāsaṃ bhikkhunīnaṃ avaṇṇaṃ bhāseyya, tatrāpi tvaṃ, phagguna, ye gehasitā chandā ye gehasitā vitakkā te pajaheyyāsi.
그러니 팍구나여, 누가 그대 앞에서 그 비구니들을 헐뜯더라도,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재가에 매인 욕구들과 재가에 매인 사유들,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Tatrāpi te, phagguna, evaṃ sikkhitabbaṃ –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
‘na ceva me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i, hitānukampī ca viharissāmi mettacitto, na dosantaro’ti.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으리라. 자애의 마음으로 이로움을 바라고 가엾이 여기며 지내리라. 안으로 성냄을 품지 않으리라.’
Evañhi te, phagguna, sikkhitabbaṃ.
팍구나여, 그대는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또 누군가 네 앞에서 비구니들을 손으로 때리고, 흙덩이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너는 그때에도 집에 얽매인 욕망과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럴 때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 성내는 마음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이로움과 연민을 품고 지내리라.’ 팍구나여,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Tasmātiha, phagguna, tava cepi koci sammukhā tāsaṃ bhikkhunīnaṃ pāṇinā pahāraṃ dadeyya, leḍḍunā pahāraṃ dadeyya, daṇḍena pahāraṃ dadeyya, satthena pahāraṃ dadeyya.
“그러니 팍구나여, 누가 그대 앞에서 그 비구니들을 손으로 때리고, 흙덩이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때리더라도.
Tatrāpi tvaṃ, phagguna, ye gehasitā chandā ye gehasitā vitakkā te pajaheyyāsi.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재가에 매인 욕구들과 재가에 매인 사유들,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Tatrāpi te, phagguna, evaṃ sikkhitabbaṃ ‘na ceva me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i, hitānukampī ca viharissāmi mettacitto, na dosantaro’ti.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으리라. 자애의 마음으로 이로움을 바라고 가엾이 여기며 지내리라. 안으로 성냄을 품지 않으리라.’
Evañhi te, phagguna, sikkhitabbaṃ.
팍구나여, 그대는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또 누군가 네 앞에서 너를 나쁘게 말하더라도, 너는 그때에도 집에 얽매인 욕망과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럴 때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 성내는 마음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이로움과 연민을 품고 지내리라.’ 팍구나여,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Tasmātiha, phagguna, tava cepi koci sammukhā avaṇṇaṃ bhāseyya, tatrāpi tvaṃ, phagguna, ye gehasitā chandā ye gehasitā vitakkā te pajaheyyāsi.
“그러니 팍구나여, 누가 그대 앞에서 그대를 헐뜯더라도,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재가에 매인 욕구들과 재가에 매인 사유들,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Tatrāpi te, phagguna, evaṃ sikkhitabbaṃ ‘na ceva me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i, hitānukampī ca viharissāmi mettacitto, na dosantaro’ti.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으리라. 자애의 마음으로 이로움을 바라고 가엾이 여기며 지내리라. 안으로 성냄을 품지 않으리라.’
Evañhi te, phagguna, sikkhitabbaṃ.
팍구나여, 그대는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또 누군가 너를 손으로 때리고, 흙덩이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친다 하더라도, 너는 그때에도 집에 얽매인 욕망과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럴 때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 성내는 마음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이로움과 연민을 품고 지내리라.’ 팍구나여, 너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Tasmātiha, phagguna, tava cepi koci pāṇinā pahāraṃ dadeyya, leḍḍunā pahāraṃ dadeyya, daṇḍena pahāraṃ dadeyya, satthena pahāraṃ dadeyya, tatrāpi tvaṃ, phagguna, ye gehasitā chandā ye gehasitā vitakkā te pajaheyyāsi.
“그러니 팍구나여, 누가 그대를 손으로 때리고, 흙덩이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때리더라도,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재가에 매인 욕구들과 재가에 매인 사유들,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Tatrāpi te, phagguna, evaṃ sikkhitabbaṃ ‘na ceva me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i, hitānukampī ca viharissāmi mettacitto, na dosantaro’ti.
거기서도 팍구나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으리라. 자애의 마음으로 이로움을 바라고 가엾이 여기며 지내리라. 안으로 성냄을 품지 않으리라.’
Evañhi te, phagguna, sikkhitabba’’nti.
팍구나여, 그대는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225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비구들은 내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해 주었다. 그때 나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하루 한 끼만 먹으니 병이 적고 앓는 일이 적으며, 몸이 가볍고 힘이 있으며 편안히 지낸다는 것을 안다. 너희도 오라. 하루 한 끼만 먹어라. 그러면 너희도 병이 적고 앓는 일이 적으며, 몸이 가볍고 힘이 있으며 편안히 지내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에게는 내가 따로 가르칠 일이 없었다. 다만 마음 챙김을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되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ārādhayiṃsu vata me, bhikkhave, bhikkhū ekaṃ samayaṃ cittaṃ.
“비구들이여, 한때 비구들이 참으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Idhāhaṃ, bhikkhave, bhikkhū āmantesiṃ –
비구들이여, 여기서 나는 비구들을 불렀다 —
ahaṃ kho, bhikkhave, ekāsanabhojanaṃ bhuñjāmi.
‘비구들이여, 나는 한자리에서 하는 공양을 한다.
Ekāsanabhojanaṃ kho ahaṃ, bhikkhave, bhuñjamāno appābādhatañca sañjānāmi appātaṅkatañca lahuṭṭhānañca balañca phāsuvihārañca.
비구들이여, 나는 한자리에서 하는 공양을 하면서 병이 적음과 탈이 적음과 몸의 가뿐함과 힘과 편안히 머묾을 안다.
Etha tumhepi, bhikkhave, ekāsanabhojanaṃ bhuñjatha.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와서 한자리에서 하는 공양을 하라.
Ekāsanabhojanaṃ kho, bhikkhave, tumhepi bhuñjamānā appābādhatañca sañjānissatha appātaṅkatañca lahuṭṭhānañca balañca phāsuvihārañcāti.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한자리에서 하는 공양을 하면 병이 적음과 탈이 적음과 몸의 가뿐함과 힘과 편안히 머묾을 알게 되리라.’
N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nusāsanī karaṇīyā ahosi;
비구들이여, 나는 그 비구들에게 훈계를 할 필요가 없었다;
satuppādakaraṇīyamev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hosi.
비구들이여, 나는 그 비구들에게 다만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되었다.
비구들이여, 평평하고 좋은 땅의 네거리에 잘 길든 말이 끄는 수레가 있다고 하자. 수레는 채찍을 내려놓은 채 멈춰 서 있다. 말 길들이는 데 능숙한 마부가 그 수레에 올라,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는다. 그는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앞으로도 몰고 뒤로도 몬다. 이와 같이 그 비구들에게는 내가 따로 가르칠 일이 없었고, 다만 마음 챙김을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되었다.
‘‘Seyyathāpi, bhikkhave, subhūmiyaṃ catumahāpathe ājaññaratho yutto assa ṭhito odhastapatodo.
“비구들이여, 마치 평탄한 땅 네거리에 좋은 혈통의 말을 맨 수레가 채찍을 내려놓은 채 서 있는 것과 같다.
Tamenaṃ dakkho yoggācariyo assadammasārathi abhiruhitvā, vāmena hatthena rasmiyo gahetvā, dakkhiṇena hatthena patodaṃ gahetvā, yenicchakaṃ yadicchakaṃ sāreyyapi paccāsāreyyapi.
그것에 능숙한 조련사, 길들일 말을 모는 마부가 올라타서,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대로 몰기도 하고 되돌리기도 할 것이다.
Evameva kho, bhikkhave, na me tesu bhikkhūsu anusāsanī karaṇīyā ahosi, satuppādakaraṇīyamev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hos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나는 그 비구들에게 훈계를 할 필요가 없었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 비구들에게 다만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너희도 해로운 것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에 힘써라. 그러면 너희도 이 법과 율 안에서 자라고 번성하고 크게 이루게 될 것이다.
Tasmātiha, bhikkhave, tumhepi akusalaṃ pajahatha, kusalesu dhammesu āyogaṃ karotha.
그러니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나쁘고 해로운 것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에 몰두하라.
Evañhi tumhepi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ssatha.
그러면 그대들도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뻗어남과 가득 참에 이르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마을이나 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살라나무 숲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숲이 에란다 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그때 숲이 잘되기를 바라고, 이롭기를 바라고, 안온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살라나무 가지 가운데 구부러져 양분을 빼앗는 것들을 잘라 밖으로 내다 버린다. 숲 안도 말끔히 치운다. 그리고 곧게 뻗고 잘 자란 가지들은 잘 보살핀다. 그러면 그 살라나무 숲은 시간이 지나 자라고 번성하고 크게 이루어질 것이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gāmassa vā nigamassa vā avidūre mahantaṃ sālavanaṃ.
“비구들이여, 마치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살라 숲이 있다고 하자.
Tañcassa eḷaṇḍehi sañchannaṃ.
그런데 그 숲이 아주까리나무로 뒤덮여 있다고 하자.
Tassa kocideva puriso uppajjeyya atthakāmo hitakāmo yogakkhemakāmo.
그 숲에 이로움을 바라고 유익을 바라고 안온을 바라는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자.
So yā tā sālalaṭṭhiyo kuṭilā ojāpaharaṇiyo tā chetvā bahiddhā nīhareyya, antovanaṃ suvisodhitaṃ visodheyya.
그는 굽고 진액을 빨아먹는 그 살라 나무의 어린 줄기들, 그것들을 잘라 밖으로 내다 버리고, 숲 안을 잘 손질하여 깨끗이 할 것이다.
Yā pana tā sālalaṭṭhiyo ujukā sujātā tā sammā parihareyya.
그러나 곧고 잘 자란 그 살라 나무의 어린 줄기들, 그것들은 바르게 돌볼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ñhetaṃ, bhikkhave, sālavanaṃ aparena samayena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그리하여 그 살라 숲은 나중에 자라남과 뻗어남과 가득 참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너희도 해로운 것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에 힘써라. 그러면 너희도 이 법과 율 안에서 자라고 번성하고 크게 이루게 될 것이다.
Evameva kho, bhikkhave, tumhepi akusalaṃ pajahatha, kusalesu dhammesu āyogaṃ karotha.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나쁘고 해로운 것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에 몰두하라.
Evañhi tumhepi imasmiṃ dhammavinaye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issatha.
그러면 그대들도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남과 뻗어남과 가득 참에 이르게 되리라.
226
비구들이여, 옛날 바로 이 사왓티에 베데히까라는 여자 집주인이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이런 좋은 평판이 퍼져 있었다. ‘베데히까 부인은 온화하고, 겸손하고, 차분하다.’ 그런데 베데히까에게는 깔리라는 여종이 있었다. 깔리는 일솜씨가 좋고 게으르지 않았으며 맡은 일을 잘 챙겼다.
‘‘Bhūtapubbaṃ, bhikkhave, imissāyeva sāvatthiyā vedehikā nāma gahapatānī ahosi.
“비구들이여, 옛날에 바로 이 사왓티에 베데히까라는 이름의 장자 부인이 있었다.
Vedehikāya, bhikkhave, gahapatāniyā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에게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었다 —
‘soratā vedehikā gahapatānī, nivātā vedehikā gahapatānī, upasantā vedehikā gahapatānī’ti.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온화하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겸손하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고요하다.’
Vedehikāya kho pana, bhikkhave, gahapatāniyā kāḷī nāma dāsī ahosi dakkhā analasā susaṃvihitakammantā.
그런데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에게는 깔리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었는데, 손이 빠르고 게으르지 않고 일을 잘 갈무리하였다.
어느 날 여종 깔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마님에게는 이런 좋은 평판이 퍼져 있다. 「베데히까 부인은 온화하고, 겸손하고, 차분하다.」 그런데 마님은 정말 속에 화가 없어서 화를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화가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내가 일을 잘 챙기니 마님이 속의 화를 드러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화가 없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마님을 한번 시험해 보면 어떨까.’[불확실]
‘‘Atha kho, bhikkhave, kāḷiyā dāsiyā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mayhaṃ kho ayyāya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내 마님께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다 —
‘‘soratā vedehikā gahapatānī, nivātā vedehikā gahapatānī, upasantā vedehikā gahapatānī’’ti.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온화하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겸손하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고요하다.”
Kiṃ nu kho me ayyā santaṃyeva nu kho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udāhu asantaṃ udāhu mayhamevete kammantā susaṃvihitā yena me ayyā santaṃyeva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no asantaṃ?
그런데 우리 마님은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바로 내가 이 일들을 잘 갈무리해 놓아서, 그 때문에 우리 마님이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닐까?
Yaṃnūnāhaṃ ayyaṃ vīmaṃseyya’nti.
내가 마님을 시험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깔리는 대낮에야 일어났다. 베데히까가 깔리를 불렀다. “얘, 깔리야.” “무슨 일이신가요, 마님?” “얘야, 왜 대낮에야 일어났느냐?” “마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계집종아. 아무 일도 없는데 대낮에야 일어났단 말이냐?” 베데히까는 화가 나 언짢은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Atha kho, bhikkhave, kāḷī dāsī divā uṭṭhāsi.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는 낮에 일어났다.
Atha kho, bhikkhave, vedehikā gahapatānī kāḷiṃ dāsi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이 깔리 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
‘he je kāḷī’ti.
‘얘, 깔리야.’
‘Kiṃ, ayye’ti?
‘무슨 일이신지요, 마님?’
‘Kiṃ, je, divā uṭṭhāsī’ti?
‘얘, 왜 낮에 일어났느냐?’
‘Na khvayye, kiñcī’ti.
‘아무 일도 없습니다, 마님.’
‘No vata re kiñci, pāpi dāsi, divā uṭṭhāsī’ti kupitā anattamanā bhākuṭiṃ akāsi.
‘아무 일도 없다니, 이것아, 못된 하녀야, 낮에 일어났으면서!’ 하며 성내고 언짢아하여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깔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마님은 정말 속에 화가 없어서 화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잘 챙겨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마님을 한 번 더 시험해 보면 어떨까.’[불확실]
Atha kho, bhikkhave, kāḷiyā dāsiyā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santaṃyeva kho me ayyā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no asantaṃ;
‘우리 마님은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mayhamevete kammantā susaṃvihitā, yena me ayyā santaṃyeva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no asantaṃ.
바로 내가 이 일들을 잘 갈무리해 놓아서, 그 때문에 우리 마님이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Yaṃnūnāhaṃ bhiyyosomattāya ayyaṃ vīmaṃseyya’’’nti.
내가 마님을 더 심하게 시험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깔리는 더 늦은 대낮에야 일어났다. 베데히까가 깔리를 불렀다. “얘, 깔리야.” “무슨 일이신가요, 마님?” “얘야,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느냐?” “마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계집종아. 아무 일도 없는데 이렇게 늦게 일어났단 말이냐?” 베데히까는 화가 나 언짢은 마음에 거친 말을 내뱉었다.
‘‘Atha kho, bhikkhave, kāḷī dāsī divātaraṃyeva uṭṭhāsi.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는 더 늦게 일어났다.
Atha kho, bhikkhave, vedehikā gahapatānī kāḷiṃ dāsi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이 깔리 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
‘he je, kāḷī’ti.
‘얘, 깔리야.’
‘Kiṃ, ayye’ti?
‘무슨 일이신지요, 마님?’
‘Kiṃ, je, divātaraṃ uṭṭhāsī’ti?
‘얘, 왜 더 늦게 일어났느냐?’
‘Na khvayye, kiñcī’ti.
‘아무 일도 없습니다, 마님.’
‘No vata re kiñci, pāpi dāsi, divātaraṃ uṭṭhāsī’ti kupitā anattamanā anattamanavācaṃ nicchāresi.
‘아무 일도 없다니, 이것아, 못된 하녀야, 더 늦게 일어났으면서!’ 하며 성내고 언짢아하여 언짢은 말을 내뱉었다.
그때 깔리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마님은 정말 속에 화가 없어서 화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잘 챙겨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마님을 한 번 더 시험해 보면 어떨까.’[불확실]
Atha kho, bhikkhave, kāḷiyā dāsiyā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santaṃyeva kho me ayyā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no asantaṃ.
‘우리 마님은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Mayhamevete kammantā susaṃvihitā, yena me ayyā santaṃyeva ajjhattaṃ kopaṃ na pātukaroti, no asantaṃ.
바로 내가 이 일들을 잘 갈무리해 놓아서, 그 때문에 우리 마님이 안에 성냄이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Yaṃnūnāhaṃ bhiyyosomattāya ayyaṃ vīmaṃseyya’nti.
내가 마님을 더 심하게 시험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깔리는 이번에도 더 늦은 대낮에야 일어났다. 베데히까가 깔리를 불렀다. “얘, 깔리야.” “무슨 일이신가요, 마님?” “얘야, 왜 대낮에야 일어났느냐?” “마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계집종아. 아무 일도 없는데 대낮에야 일어났단 말이냐?” 베데히까는 화가 나 언짢은 마음에 문빗장을 집어 들어 깔리의 머리를 내리쳤다. 깔리의 머리가 터졌다.
‘‘Atha kho, bhikkhave, kāḷī dāsī divātaraṃyeva uṭṭhāsi.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는 더 늦게 일어났다.
Atha kho, bhikkhave, vedehikā gahapatānī kāḷiṃ dāsi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이 깔리 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
‘he je, kāḷī’ti.
‘얘, 깔리야.’
‘Kiṃ, ayye’ti?
‘무슨 일이신지요, 마님?’
‘Kiṃ, je, divā uṭṭhāsī’ti?
‘얘, 왜 낮에 일어났느냐?’
‘Na khvayye, kiñcī’ti.
‘아무 일도 없습니다, 마님.’
‘No vata re kiñci, pāpi dāsi, divā uṭṭhāsī’ti kupitā anattamanā aggaḷasūciṃ gahetvā sīse pahāraṃ adāsi, sīsaṃ vobhindi.
‘아무 일도 없다니, 이것아, 못된 하녀야, 낮에 일어났으면서!’ 하며 성내고 언짢아하여 문빗장 핀을 집어 머리를 내리쳐, 머리를 깨뜨렸다.
깔리는 터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이웃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다. “여러분, 온화한 분이 하신 짓을 보세요. 겸손한 분이 하신 짓을 보세요. 차분한 분이 하신 짓을 보세요! 하나뿐인 여종이 대낮에 일어났다고, 화가 나 문빗장으로 머리를 내리쳐 터뜨리다니요.”
Atha kho, bhikkhave, kāḷī dāsī bhinnena sīsena lohitena galantena paṭivissakānaṃ ujjhāpesi –
그때, 비구들이여, 깔리 하녀는 깨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채로 이웃들에게 하소연하였다 —
‘passathayye, soratāya kammaṃ;
‘보십시오, 마님들, 온화한 이가 한 짓을;
passathayye, nivātāya kammaṃ, passathayye, upasantāya kammaṃ!
보십시오, 마님들, 겸손한 이가 한 짓을, 보십시오, 마님들, 고요한 이가 한 짓을!
Kathañhi nāma ekadāsikāya divā uṭṭhāsīti kupitā anattamanā aggaḷasūciṃ gahetvā sīse pahāraṃ dassati, sīsaṃ vobhindissatī’ti.
어찌 하나뿐인 하녀에게 낮에 일어났다고 성내고 언짢아하여 문빗장 핀을 집어 머리를 내리치고, 머리를 깨뜨린단 말입니까!’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데히까에게는 이런 나쁜 평판이 퍼졌다. ‘베데히까 부인은 사납고, 거만하고, 거칠다.’
‘‘Atha kho, bhikkhave, vedehikāya gahapatāniyā aparena samayena evaṃ pāpako kittisaddo abbhuggacchi –
“그때, 비구들이여, 베데히까 장자 부인에게 나중에 이런 나쁜 명성이 퍼졌다 —
‘caṇḍī vedehikā gahapatānī, anivātā vedehikā gahapatānī, anupasantā vedehikā gahapatānī’ti.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사납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겸손하지 않다, 베데히까 장자 부인은 고요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비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 닿지 않는 동안에는 더없이 온화하고 겸손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 닿을 때에야 비로소 그 비구가 정말 온화하고 겸손하고 차분한지 알아볼 수 있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bhikkhu tāvadeva soratasorato hoti nivātanivāto hoti upasantūpasanto hoti yāva na amanāpā vacanapathā phusan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말들이 닿지 않는 동안에만 더없이 온화하고 더없이 겸손하고 더없이 고요하다.
Yato ca, bhikkhave, bhikkhuṃ amanāpā vacanapathā phusanti, atha bhikkhu ‘sorato’ti veditabbo, ‘nivāto’ti veditabbo, ‘upasanto’ti veditabbo.
그런데 비구들이여, 마음에 들지 않는 말들이 비구에게 닿을 때, 그때 그 비구를 ‘온화하다’고 알아야 하고, ‘겸손하다’고 알아야 하고, ‘고요하다’고 알아야 한다.
옷, 음식, 거처, 병구완 약품 같은 필수품 때문에 말을 잘 듣고 말 잘 듣는 모습을 보이는 비구를, 나는 ‘말을 잘 듣는 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 비구는 이런 필수품을 얻지 못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말 잘 듣는 모습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Nāhaṃ taṃ, bhikkhave, bhikkhuṃ ‘suvaco’ti vadāmi yo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ahetu suvaco hoti, sovacassataṃ āpajjati.
비구들이여,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자를 위한 약품이라는 필수품 때문에 훈계를 잘 받아들이고 순순함에 이르는 그런 비구를 나는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Tañhi so, bhikkhave, bhikkhu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aṃ alabhamāno na suvaco hoti, na sovacassataṃ āpajjati.
비구들이여, 그런 비구는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자를 위한 약품이라는 필수품을 얻지 못하면 훈계를 잘 받아들이지 않고, 순순함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법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받들고, 공경하여 말을 잘 듣고 말 잘 듣는 모습을 보이는 비구, 나는 그를 ‘말을 잘 듣는 이’라고 한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이렇게 다짐하라. ‘우리는 오직 법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받들고, 공경하여 말을 잘 듣고, 말 잘 듣는 모습을 보이리라.’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Yo ca kho, bhikkhave, bhikkhu dhammaṃyeva sakkaronto, dhammaṃ garuṃ karonto, dhammaṃ mānento, dhammaṃ pūjento, dhammaṃ apacāyamāno suvaco hoti, sovacassataṃ āpajjati, tamahaṃ ‘suvaco’ti vadāmi.
그러나 비구들이여, 법을 존중하고, 법을 무겁게 여기고, 법을 받들고, 법을 공경하고, 법에 순종하기에 훈계를 잘 받아들이고 순순함에 이르는 비구, 그런 이를 나는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이’라고 말한다.
Tasmātiha, bhikkhave, ‘dhammaṃyeva sakkarontā, dhammaṃ garuṃ karontā, dhammaṃ mānentā, dhammaṃ pūjentā, dhammaṃ apacāyamānā suvacā bhavissāma, sovacassataṃ āpajjissāmā’ti.
그러니 비구들이여, ‘우리는 법을 존중하고, 법을 무겁게 여기고, 법을 받들고, 법을 공경하고, 법에 순종하여,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이가 되고 순순함에 이르리라’고.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27
비구들이여, 남들이 너희에게 말을 걸 때 쓰는 말투는 다섯 가지다. 때에 맞게 말하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말씨가 부드러울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하는 이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하는 이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은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할 수도 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도 있다.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속에 미움을 품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가엾이 여기며, 그가 이롭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낼 것이다.’ ‘그 사람을 자애가 가득 찬 마음으로 온통 채우며 지낼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온 세상도 그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Pañcime, bhikkhave, vacana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가 말의 길이니, 남들이 그대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로 말할 것이다 —
kālena vā akālena vā;
때에 맞게든 때 아닌 때에든;
bhūtena vā abhūtena vā;
사실로든 사실 아닌 것으로든;
saṇhena vā pharusena vā;
부드럽게든 거칠게든;
atthasaṃhitena vā anatthasaṃhitena vā;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든;
mettacittā vā dosantarā vā.
자애로운 마음으로든 속에 성냄을 품고서든.
Kāl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kāl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 아닌 때에 말할 수도 있다;
bhū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bhū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사실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saṇh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pharus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atthasaṃhi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natthasaṃhi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mettacittā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dosantarā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성냄을 품고서 말할 수도 있다.
Tatrāpi vo,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 –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na ceva no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a, hitānukampī ca viharissāma mettacittā, na dosantarā.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Tañca puggal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pharitvā viharissām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ittena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28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삽과 바구니를 들고 온다고 해 보자. 그가 말한다. ‘나는 이 큰 땅을 땅이 아니게 만들겠다.’ 그는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흩뿌린다.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땅이 아니게 되어라, 땅이 아니게 되어라.’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이 큰 땅을 땅이 아니게 만들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인가? 세존이시여, 이 큰 땅은 깊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땅이 아니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겪을 뿐입니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로 남들이 너희에게 말을 걸 때 쓰는 말투는 다섯 가지다. 때에 맞게 말하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말씨가 부드러울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하는 이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하는 이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은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할 수도 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도 있다.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속에 미움을 품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가엾이 여기며, 그가 이롭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낼 것이다.’ ‘그 사람을 자애가 가득 찬 마음으로 온통 채우며 지낼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온 세상을 땅과 같은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āgaccheyya kudālapiṭakaṃ ādāya.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괭이와 바구니를 들고 온다고 하자.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haṃ imaṃ mahāpathaviṃ apathaviṃ karissāmī’ti.
‘나는 이 큰 땅을 땅 아닌 것으로 만들겠다’라고.
So tatra tatra vikhaṇeyya, tatra tatra vikireyya, tatra tatra oṭṭhubheyya, tatra tatra omutteyya –
그는 여기저기 파헤치고, 여기저기 흩뿌리고, 여기저기 침을 뱉고, 여기저기 오줌을 누면서 —
‘apathavī bhavasi, apathavī bhavasī’ti.
‘너는 땅 아닌 것이 된다, 너는 땅 아닌 것이 된다’라고 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imaṃ mahāpathaviṃ apathaviṃ kar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 큰 땅을 땅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yañhi, bhante, mahāpathavī gambhīrā appameyyā.
세존이시여, 이 큰 땅은 깊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Sā na sukarā apathavī kātuṃ;
그것을 땅 아닌 것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러니 그 사람은 그저 지치고 시달릴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bhikkhave, pañcime vacana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가 말의 길이니, 남들이 그대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로 말할 것이다 —
kālena vā akālena vā;
때에 맞게든 때 아닌 때에든;
bhūtena vā abhūtena vā;
사실로든 사실 아닌 것으로든;
saṇhena vā pharusena vā;
부드럽게든 거칠게든;
atthasaṃhitena vā anatthasaṃhitena vā;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든;
mettacittā vā dosantarā vā.
자애로운 마음으로든 속에 성냄을 품고서든.
Kāl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kāl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 아닌 때에 말할 수도 있다;
bhū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bhū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사실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saṇh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pharus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atthasaṃhi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natthasaṃhi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mettacittā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dosantarā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성냄을 품고서 말할 수도 있다.
Tatrāpi vo,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 –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na ceva no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a, hitānukampī ca viharissāma mettacittā na dosantarā.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Tañca puggal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pharitvā viharissām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pathavisam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땅과 같은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29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락 염료나 심황, 쪽빛이나 꼭두서니 물감을 들고 온다고 해 보자. 그가 말한다. ‘나는 이 허공에 형상을 그려 내겠다. 형상이 나타나게 하겠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이 허공에 형상을 그려 내고 나타나게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인가? 세존이시여, 허공은 형상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형상을 그려 나타나게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겪을 뿐입니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로 남들이 너희에게 말을 걸 때 쓰는 말투는 다섯 가지다. 때에 맞게 말하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앞에서와 같이 이어 간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그 사람을 시작으로 온 세상을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āgaccheyya lākhaṃ vā haliddiṃ vā nīlaṃ vā mañjiṭṭhaṃ vā ādāya.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붉은 락이나 강황이나 쪽빛 물감이나 꼭두서니를 들고 온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haṃ imasmiṃ ākāse rūpaṃ likhissāmi, rūpapātubhāvaṃ karissāmī’ti.
‘나는 이 허공에 형상을 그려서, 형상이 드러나게 하겠다’라고.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imasmiṃ ākāse rūpaṃ likheyya, rūpapātubhāvaṃ kar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 허공에 형상을 그려서 형상이 드러나게 할 수 있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yañhi, bhante, ākāso arūpī anidassano.
세존이시여, 이 허공은 형상이 없고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Tattha na sukaraṃ rūpaṃ likhituṃ, rūpapātubhāvaṃ kātuṃ;
거기에 형상을 그려서 형상이 드러나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러니 그 사람은 그저 지치고 시달릴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bhikkhave, pañcime vacana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kālena vā akālena vā …pe… ‘na cev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ākāsasam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가 말의 길이니, 남들이 그대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로 말할 것이다 — 때에 맞게든 때 아닌 때에든; 사실로든 사실 아닌 것으로든; 부드럽게든 거칠게든;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든; 자애로운 마음으로든 속에 성냄을 품고서든.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 아닌 때에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사실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성냄을 품고서 말할 수도 있다.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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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30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활활 타는 풀 횃불을 들고 온다고 해 보자. 그가 말한다. ‘나는 이 풀 횃불로 갠지스강을 뜨겁게 달구고 펄펄 끓게 하겠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풀 횃불로 갠지스강을 뜨겁게 달구고 펄펄 끓게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인가? 세존이시여, 갠지스강은 깊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풀 횃불로 그 강을 끓게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겪을 뿐입니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로 남들이 너희에게 말을 걸 때 쓰는 말투는 다섯 가지다. 때에 맞게 말하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앞에서와 같이 이어 간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그 사람을 시작으로 온 세상을 갠지스강과 같은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āgaccheyya ādittaṃ tiṇukkaṃ ādāya.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불붙은 풀 횃불을 들고 온다고 하자.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haṃ imāya ādittāya tiṇukkāya gaṅgaṃ nadiṃ santāpessāmi saṃparitāpessāmī’ti.
‘나는 이 불붙은 풀 횃불로 강가 강을 달구고 온통 태우겠다’라고.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ādittāya tiṇukkāya gaṅgaṃ nadiṃ santāpeyya saṃparitāp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불붙은 풀 횃불로 강가 강을 달구고 온통 태울 수 있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Gaṅgā hi, bhante, nadī gambhīrā appameyyā.
세존이시여, 강가 강은 깊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Sā na sukarā ādittāya tiṇukkāya santāpetuṃ saṃparitāpetuṃ;
그것을 불붙은 풀 횃불로 달구고 온통 태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러니 그 사람은 그저 지치고 시달릴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bhikkhave, pañcime vacana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kālena vā akālena vā…pe… ‘na cev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gaṅgāsam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가 말의 길이니, 남들이 그대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로 말할 것이다 — 때에 맞게든 때 아닌 때에든; 사실로든 사실 아닌 것으로든; 부드럽게든 거칠게든;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든; 자애로운 마음으로든 속에 성냄을 품고서든.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 아닌 때에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사실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성냄을 품고서 말할 수도 있다.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강가 강과 같은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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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31
비구들이여, 고양이 가죽 자루가 있다고 해 보자.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거듭 문질러서, 솜처럼 부드러워졌다. 바스락 소리도 부스럭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막대기나 질그릇 조각을 들고 온다. 그가 말한다. ‘이 자루는 문질러서 솜처럼 부드러워졌다. 나는 막대기나 질그릇 조각으로 여기서 바스락 소리와 부스럭 소리가 나게 하겠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막대기나 질그릇 조각으로 저 자루에서 바스락 소리와 부스럭 소리가 나게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인가? 세존이시여, 저 자루는 거듭 문질러서 솜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바스락 소리도 부스럭 소리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소리 나게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로움만 겪을 뿐입니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로 남들이 너희에게 말을 걸 때 쓰는 말투는 다섯 가지다. 때에 맞게 말하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말씨가 부드러울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하는 이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하는 이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하는 이도 있다. 비구들이여, 남들은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에 맞지 않게 말할 수도 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도 있다.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이로운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고, 이롭지 않은 뜻을 담아 말할 수도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미움을 품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속에 미움을 품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가엾이 여기며, 그가 이롭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낼 것이다.’ ‘그 사람을 자애가 가득 찬 마음으로 온통 채우며 지낼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온 세상을 고양이 가죽 자루와 같은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biḷārabhastā madditā sumadditā suparimadditā, mudukā tūlinī chinnasassarā chinnabhabbharā.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고양이 가죽 자루가 있어 주무르고 잘 주무르고 구석구석 잘 주물러서, 부드럽고 솜처럼 보드라우며 바스락 소리가 끊기고 사각 소리가 끊겼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puriso āgaccheyya kaṭṭhaṃ vā kathalaṃ vā ādāya.
그때 어떤 사람이 나뭇조각이나 자갈을 들고 온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haṃ imaṃ biḷārabhastaṃ madditaṃ sumadditaṃ suparimadditaṃ, mudukaṃ tūliniṃ, chinnasassaraṃ chinnabhabbharaṃ kaṭṭhena vā kathalena vā sarasaraṃ karissāmi bharabharaṃ karissāmī’ti.
‘나는 주무르고 잘 주무르고 구석구석 잘 주물러서 부드럽고 솜처럼 보드라우며 바스락 소리가 끊기고 사각 소리가 끊긴 이 고양이 가죽 자루를 나뭇조각이나 자갈로 바스락 소리 나게 하고 사각 소리 나게 하겠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ṃ biḷārabhastaṃ madditaṃ sumadditaṃ suparimadditaṃ, mudukaṃ tūliniṃ, chinnasassaraṃ chinnabhabbharaṃ kaṭṭhena vā kathalena vā sarasaraṃ kareyya, bharabharaṃ kar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주무르고 잘 주무르고 구석구석 잘 주물러서 부드럽고 솜처럼 보드라우며 바스락 소리가 끊기고 사각 소리가 끊긴 저 고양이 가죽 자루를 나뭇조각이나 자갈로 바스락 소리 나게 하고 사각 소리 나게 할 수 있겠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mu hi, bhante, biḷārabhastā madditā sumadditā suparimadditā, mudukā tūlinī, chinnasassarā chinnabhabbharā.
세존이시여, 저 고양이 가죽 자루는 주무르고 잘 주무르고 구석구석 잘 주물러서, 부드럽고 솜처럼 보드라우며 바스락 소리가 끊기고 사각 소리가 끊겼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ā na sukarā kaṭṭhena vā kathalena vā sarasaraṃ kātuṃ bharabharaṃ kātuṃ;
그것을 나뭇조각이나 자갈로 바스락 소리 나게 하고 사각 소리 나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러니 그 사람은 그저 지치고 시달릴 몫만 얻을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bhikkhave, pañcime vacanapathā yehi vo pare vadamānā vadeyyuṃ kālena vā akālena vā;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가 말의 길이니, 남들이 그대들에게 말할 때 그것들로 말할 것이다 — 때에 맞게든 때 아닌 때에든;
bhūtena vā abhūtena vā;
사실로든 사실 아닌 것으로든;
saṇhena vā pharusena vā;
부드럽게든 거칠게든;
atthasaṃhitena vā anatthasaṃhitena vā;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든;
mettacittā vā dosantarā vā.
자애로운 마음으로든 속에 성냄을 품고서든.
Kāl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kāl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때에 맞게 말할 수도 있고 때 아닌 때에 말할 수도 있다;
bhū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bhū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사실로 말할 수도 있고 사실 아닌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saṇh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pharus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다;
atthasaṃhitena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anatthasaṃhitena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이로움과 이어진 것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이로움과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mettacittā vā, bhikkhave, pare vadamānā vadeyyuṃ dosantarā vā.
비구들이여, 남들이 말할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말할 수도 있고 속에 성냄을 품고서 말할 수도 있다.
Tatrāpi vo,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 –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na ceva no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a hitānukampī ca viharissāma mettacittā na dosantarā.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Tañca puggal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pharitvā viharissām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biḷārabhastāsam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고양이 가죽 자루와 같은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32
비구들이여, 도둑이나 강도가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톱으로 너희의 팔다리를 마디마디 잘라 낸다고 하자. 그때 마음을 더럽히는 자는 내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럴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속에 미움을 품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가엾이 여기며, 그가 이롭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낼 것이다.’ ‘그 사람을 자애가 가득 찬 마음으로 온통 채우며 지낼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온 세상을 자애가 가득 찬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해침도 없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불확실]
‘‘Ubhatodaṇḍakena cepi, bhikkhave, kakacena corā ocarakā aṅgamaṅgāni okanteyyuṃ, tatrāpi yo mano padūseyya, na me so tena sāsanakaro.
비구들이여, 설령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톱으로 도둑들이, 비천한 자들이 사지를 마디마디 잘라 낸다 해도, 그때 마음을 더럽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로써 내 가르침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āpi vo,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 –
거기서도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
‘na ceva no cittaṃ vipariṇataṃ bhavissati, na ca pāpikaṃ vācaṃ nicchāressāma, hitānukampī ca viharissāma mettacittā na dosantarā.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움을 바라며 가엾이 여기는 자로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머물 것이고, 속에 성냄을 품지 않을 것이다.
Tañca puggal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pharitvā viharissāma tadārammaṇañc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issāmā’ti.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며, 그를 대상으로 삼아 온 세상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넓고 크게 되고 헤아릴 수 없고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233
비구들이여, 너희는 톱의 비유로 준 이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겨라. 비구들이여, 너희가 참아 내지 못할 말투가 있느냐?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보이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톱의 비유로 준 이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겨라. 그것이 오랜 세월 너희에게 이로움과 행복이 될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톱의 비유 경이 첫째로 끝났다.[불확실]
‘‘Imañca tumhe, bhikkhave, kakacūpamaṃ ovādaṃ abhikkhaṇaṃ manasi kareyyātha.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톱의 비유로 든 이 가르침을 거듭거듭 마음에 새기도록 하라.
Passatha no tumhe, bhikkhave, taṃ vacanapathaṃ, aṇuṃ vā thūlaṃ vā, yaṃ tumhe nādhivāseyyāthā’’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참아 내지 못할 말의 길이, 작든 크든, 그대들에게 보이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smātiha, bhikkhave, imaṃ kakacūpamaṃ ovādaṃ abhikkhaṇaṃ manasikarotha.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톱의 비유로 든 이 가르침을 거듭거듭 마음에 새겨라.
Taṃ vo bhavissa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그것이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로움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Kakacūpam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톱의 비유 경이 끝났다. 첫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