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ahāsīhanādasuttaṃ
2. 큰 사자후 경
14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베살리 바깥, 아파라푸라의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릿차비족의 아들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베살리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bahinagare aparapure vanasaṇḍe.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의 성 밖 서쪽 지역 숲속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akkhatto licchaviputto acirapakkanto hoti imasmā dhammavinayā.
그때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에서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
So vesāliyaṃ parisati evaṃ vācaṃ bhāsati –
그는 웨살리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한다 —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 없다. 성스러운 앎과 봄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경지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때려 맞추고 따져 가며 더듬어 낸 법을 설할 뿐이다. 제 머리에서 나온 법일 뿐이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마찬가지다. 그 법은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ṃ.
사문 고따마는 추론으로 벼려낸 법을, 탐구를 따라간 것이자 제 착상에서 나온 것을 설한다.
Yassa ca khvāssa atthāya dhammo desito so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그리고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어 낸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겉옷을 챙겨 탁발하러 베살리로 들어갔다. 그러다 수낙캇따가 베살리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웨살리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Assosi kho āyasmā sāriputto sunakkhattassa licchaviputtassa vesāliyaṃ parisati evaṃ vācaṃ bhāsamānassa –
사리뿟따 존자는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가 웨살리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 없다. 성스러운 앎과 봄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경지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때려 맞추고 따져 가며 더듬어 낸 법을 설할 뿐이다. 제 머리에서 나온 법일 뿐이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마찬가지다. 그 법은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ṃ.
사문 고따마는 추론으로 벼려낸 법을, 탐구를 따라간 것이자 제 착상에서 나온 것을 설한다.
Yassa ca khvāssa atthāya dhammo desito so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그리고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어 낸다.”
사리뿟따 존자는 베살리에서 탁발을 마치고 공양을 끝낸 뒤, 돌아와 세존께 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웨살리에서 탁발하고,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릿차비족의 아들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살리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sunakkhatto, bhante, licchaviputto acirapakkanto imasmā dhammavinayā.
“세존이시여,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가 이 법과 율에서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So vesāliyaṃ parisati evaṃ vācaṃ bhāsati –
그는 웨살리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합니다 —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 없다. 성스러운 앎과 봄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경지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때려 맞추고 따져 가며 더듬어 낸 법을 설할 뿐이다. 제 머리에서 나온 법일 뿐이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마찬가지다. 그 법은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ṃ.
사문 고따마는 추론으로 벼려낸 법을, 탐구를 따라간 것이자 제 착상에서 나온 것을 설한다.
Yassa ca khvāssa atthāya dhammo desito so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그리고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어 낸다.’”
147
“사리뿟따야,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화를 잘 내는 자다. 그가 그런 말을 한 것도 화가 나서다. ‘험담을 하겠다’ 하고 나섰지만, 실은 여래를 칭송하는 셈이다. 이런 말이 여래를 칭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끈다.’
‘‘Kodhano heso, sāriputta, sunakkhatto moghapuriso.
“사리뿟따여, 저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는 성을 잘 내는 자다.
Kodhā ca panassa esā vācā bhāsitā.
게다가 그가 한 이 말은 성냄에서 나온 것이다.
‘Avaṇṇaṃ bhāsissāmī’ti kho, sāriputta, sunakkhatto moghapuriso vaṇṇaṃyeva tathāgatassa bhāsati.
사리뿟따여, ‘헐뜯는 말을 하리라’ 하면서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는 도리어 여래를 기리는 말을 하고 있다.
Vaṇṇo heso, sāriputta, tathāgatassa yo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래를 기리는 말이다 —
‘yassa ca khvāssa atthāya dhammo desito so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그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어 낸다’라고.
사리뿟따야,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나를 법에 따라 헤아려 보는 앎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분 세존은 아라한이시다.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밝은 앎과 실천을 갖추셨고, 좋은 곳으로 가신 분이다. 세상을 아시는 분이며, 위없는 분이다. 사람을 길들이는 이들 가운데 으뜸가는 조련사이시고,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깨달은 분이시며, 세존이시다.’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이런 법의 추론조차 없을 것이다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으로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마부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라고.
사리뿟따야,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나를 법에 따라 헤아려 보는 앎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분 세존은 여러 가지 신통을 누리신다. 한 몸이었다가 여럿이 되시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한 몸이 되신다. 모습을 드러내시기도 하고 감추시기도 한다. 담과 성벽과 산을 막힘없이 지나가시니, 마치 허공을 가는 듯하다. 땅에서도 솟았다 잠기시니, 물속에서 그러는 듯하다. 물 위를 걸으셔도 가라앉지 않으시니, 땅 위를 걷는 듯하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시는 모습은 날개 달린 새와 같다. 저 해와 달은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녔는데, 그것마저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으신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유자재 하신다.’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이런 법의 추론조차 없을 것이다 —
‘itipi so bhagavā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여러 가지 신통의 종류를 몸소 누리신다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시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신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나타나시고, 사라지신다;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가신다, 마치 허공에서처럼;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솟았다 잠겼다 하신다, 마치 물에서처럼;
udakepi abhi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aṃ;
물에서도 갈라지지 않고 가신다, 마치 땅에서처럼;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로 가신다,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ati parimajjati;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으신다;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ī’ti.
브라흐마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뜻대로 다스리신다’라고.
사리뿟따야,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나를 법에 따라 헤아려 보는 앎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분 세존은 청정하고 인간의 귀를 뛰어넘는 하늘의 귀로 두 가지 소리를 들으신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를 모두 들으신다.’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이런 법의 추론조차 없을 것이다 —
‘itipi so bhagav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들으신다 —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ā’ti.
신성한 소리와 인간의 소리,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이라고.
사리뿟따야,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나를 법에 따라 헤아려 보는 앎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분 세존은 다른 중생,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꿰뚫어 아신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다고, 탐욕을 벗어난 마음은 벗어났다고 아신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역시 있는 마음은 있다고, 벗어난 마음은 벗어났다고 아신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들었다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졌다고 아신다. 넓게 커진 마음은 넓게 커졌다고, 그렇지 못한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고 아신다. 더 위가 있는 마음은 더 위가 있다고, 더 위가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아신다. 집중된 마음과 집중되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과 해탈하지 못한 마음도 그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아신다.’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자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이런 법의 추론조차 없을 것이다 —
‘itipi so bhagavā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다른 존재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감싸 아신다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아신다;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아신다;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아신다;
saṃkhittaṃ vā cittaṃ saṃ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아시고,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고 아신다;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아시고,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아신다;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아시고, 위없는 마음을 위없는 마음이라고 아신다;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아시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아신다;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ī’ti.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아시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아신다’라고.
148
사리뿟따야, 여래에게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어떤 열 가지인가?
‘‘Dasa kho panimān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āni yehi bal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그런데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런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으니, 그 힘들을 갖추었기에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Katamāni dasa?
무엇이 그 열인가?
사리뿟따야, 여기서 여래는 있는 그대로 안다. 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다고, 될 수 없는 것은 될 수 없다고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Idha, sāriputta, tathāgato 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사리뿟따여, 여기 여래는 도리를 도리대로, 도리 아닌 것을 도리 아닌 것대로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도리를 도리대로, 도리 아닌 것을 도리 아닌 것대로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지은 업의 과보를 안다. 그 경우와 원인에 따라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업 지음들의 과보를, 그 자리로 보나 원인으로 보나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업 지음들의 과보를, 그 자리로 보나 원인으로 보나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모든 곳으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모든 곳으로 가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모든 곳으로 가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갖가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anekadhātunānādhātulo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여러 요소와 갖가지 요소로 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anekadhātunānādhātulo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여러 요소와 갖가지 요소로 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중생들의 갖가지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중생들이 갖가지 성향을 지녔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중생들이 갖가지 성향을 지녔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들의 능력이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다른 존재들, 다른 사람들의 기능이 뛰어나고 못함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다른 존재들, 다른 사람들의 기능이 뛰어나고 못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것이 오염되는 것과 깨끗해지는 것, 거기서 일어나는 것도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의 더러움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의 더러움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을 기억한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마흔 번, 쉰 번의 생을 기억한다. 백 번, 천 번, 십만 번의 생도 기억한다. 세계가 무너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도 기억한다. 세계가 다시 이루어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도 기억한다. 무너지고 이루어지기를 거듭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도 그렇게 기억한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하는 겁도, 여러 팽창하는 겁도, 여러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
‘그곳에서 나는 이러이러한 이름이었고, 이러이러한 성이었고, 이러이러한 모습이었다. 이러이러한 음식을 먹었고, 이러이러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러이러한 수명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저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러이러한 이름이었고, 이러이러한 성이었고, 이러이러한 모습이었다. 이러이러한 음식을 먹었고, 이러이러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러이러한 수명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처럼 모습과 내용을 갖춘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와 같이 특징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사리뿟따야, 여래는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에서 시작하여 이처럼 모습과 내용을 갖춘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이것도 사리뿟따야,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사리뿟따여, 여래가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것,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하는 겁도, 여러 팽창하는 겁도, 여러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 ‘저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 이와 같이 특징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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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중생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도 안다.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행을 하고, 말로 나쁜 행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을 했다. 성인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고, 그릇된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행을 하고, 말로 좋은 행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을 했다. 성인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불확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한 이와 훌륭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곧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참으로 이 존자들인 중생들은 몸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고, 말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었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러나 이 존자들인 중생들은 몸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고, 말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도 안다. 사리뿟따야, 여래가 이렇게 안다는 것, 곧[불확실]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한 이와 훌륭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곧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사리뿟따여, 여래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한 이와 훌륭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곧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아는 것[불확실]
불확실 —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행을 하고, 말로 나쁜 행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을 했다. 성인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고, 그릇된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행을 하고, 말로 좋은 행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을 했다. 성인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참으로 이 존자들인 중생들은 몸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고, 말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었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러나 이 존자들인 중생들은 몸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고, 말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도 안다. 이것도 사리뿟따야,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불확실]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한 이와 훌륭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곧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사리뿟따야, 여래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룬다.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고 지낸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sāriputta, tathāgat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또 다시, 사리뿟따여, 여래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문다.
Yampi, sāriputta, tathāgat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무는 것, 사리뿟따여, 이것도 여래에게 있는 여래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사리뿟따야, 이것이 여래의 열 가지 여래의 힘이다. 이 힘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Imāni kho, sāriputta, dasa tathāgatassa tathāgatabalāni yehi bal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이것이 여래에게 있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니, 그 힘들을 갖추었기에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149
사리뿟따야,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데도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 없다. 성스러운 앎과 봄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경지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때려 맞추고 따져 가며 더듬어 낸, 제 머리에서 나온 법을 설할 뿐이다.’ 사리뿟따야,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실려 와 내려놓이듯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Yo kho maṃ, sāriputta, evaṃ jānantaṃ evaṃ passantaṃ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nti, taṃ, sāriputta,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문 고따마는 추론으로 벼려낸 법을, 탐구를 따라간 것이자 제 착상에서 나온 것을 설한다’라고 — 사리뿟따여, 그가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계와 삼매와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앎을 얻는다. 사리뿟따야, 그에게도 그와 같은 결과가 따른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실려 와 내려놓이듯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Seyyathāpi, sāriputta,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evaṃ sampadamidaṃ, sāriputta, vadāmi.
예컨대,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통찰지를 갖춘 비구가 지금 여기서 구경의 앎을 이루듯이, 사리뿟따여, 이것도 그와 같은 귀결이라고 나는 말한다.
Taṃ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150
사리뿟따야, 여래에게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이 있다. 이 자신감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어떤 네 가지인가?
‘‘Cattārimāni, sāriputta, tathāgatassa vesārajjāni yehi vesārajj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이런 네 가지 확신이 있으니, 그 확신들을 갖추었기에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Katamāni cattāri?
무엇이 그 넷인가?
‘그대는 스스로 바르게 깨달았다고 하지만, 이러이러한 법들은 깨닫지 못했다.’ 이에 대해 법에 따라 나를 책망할 근거를 나는 보지 못한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천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에게서도 그렇다. 사리뿟따야, 나는 그런 근거를 보지 못하므로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 지낸다.
‘‘‘Sammāsambuddhassa te paṭijānato ime dhammā anabhisambuddhā’ti.
“‘바르게 깨달은 이라고 자처하는 그대에게 이 법들은 온전히 깨달아지지 않았다’라고.
Tatra vata m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devo vā māro vā brahmā vā koci vā lokasmiṃ sahadhammena paṭicode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참으로 나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나 세상의 그 누구라도 이치에 맞게 힐난하리라’ — 사리뿟따여, 나는 그런 표상을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나는 그 표상을 보지 못하기에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그대는 번뇌가 다했다고 하지만, 이러이러한 번뇌들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에 따라 나를 책망할 근거를 나는 보지 못한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천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에게서도 그렇다. 사리뿟따야, 나는 그런 근거를 보지 못하므로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 지낸다.
‘‘‘Khīṇāsavassa te paṭijānato ime āsavā aparikkhīṇā’ti.
“‘번뇌를 다한 이라고 자처하는 그대에게 이 번뇌들은 다 없어지지 않았다’라고.
Tatra vata m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devo vā māro vā brahmā vā koci vā lokasmiṃ sahadhammena paṭicode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참으로 나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나 세상의 그 누구라도 이치에 맞게 힐난하리라’ — 사리뿟따여, 나는 그런 표상을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나는 그 표상을 보지 못하기에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그대가 장애가 되는 법이라고 말한 것들을 누려도 장애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에 대해 법에 따라 나를 책망할 근거를 나는 보지 못한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천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에게서도 그렇다. 사리뿟따야, 나는 그런 근거를 보지 못하므로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 지낸다.
‘‘‘Ye kho pana te antarāyikā dhammā vuttā, te paṭisevato nālaṃ antarāyāyā’ti.
“‘그런데 그대가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말한 것들, 그것들은 그것을 따르는 이에게 장애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
Tatra vata m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devo vā māro vā brahmā vā koci vā lokasmiṃ sahadhammena paṭicode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참으로 나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나 세상의 그 누구라도 이치에 맞게 힐난하리라’ — 사리뿟따여, 나는 그런 표상을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나는 그 표상을 보지 못하기에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그대가 누구를 위해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 이에 대해 법에 따라 나를 책망할 근거를 나는 보지 못한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천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에게서도 그렇다. 사리뿟따야, 나는 그런 근거를 보지 못하므로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 지낸다.
‘‘‘Yassa kho pana te atthāya dhammo desito, so na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그런데 그대가 어떤 목적으로 법을 설했든, 그 법은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어 내지 못한다’라고.
Tatra vata m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devo vā māro vā brahmā vā koci vā lokasmiṃ sahadhammena paṭicode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참으로 나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나 세상의 그 누구라도 이치에 맞게 힐난하리라’ — 사리뿟따여, 나는 그런 표상을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나는 그 표상을 보지 못하기에 안온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문다.
사리뿟따야, 이것이 여래의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이다. 이 자신감이 있기에 여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선언한다. 모임 가운데서 사자의 포효를 외치고,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Imāni kho, sāriputta, cattāri tathāgatassa vesārajjāni yehi vesārajj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사리뿟따여, 이것이 여래에게 있는 네 가지 확신이니, 그 확신들을 갖추었기에 여래는 황소와 같은 자리를 자처하고, 무리 가운데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사리뿟따야,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데도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 없다. 성스러운 앎과 봄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경지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때려 맞추고 따져 가며 더듬어 낸, 제 머리에서 나온 법을 설할 뿐이다.’ 사리뿟따야,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실려 와 내려놓이듯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Yo kho maṃ, sāriputta, evaṃ jānantaṃ evaṃ passantaṃ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nti, taṃ, sāriputta,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추론으로 벼려낸 법을, 탐구를 따라간 것이자 제 착상에서 나온 것을 설한다’라고 — 사리뿟따여, 그가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계와 삼매와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앎을 얻는다. 사리뿟따야, 그에게도 그와 같은 결과가 따른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실려 와 내려놓이듯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Seyyathāpi, sāriputta,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evaṃ sampadamidaṃ, sāriputta, vadāmi.
예컨대,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통찰지를 갖춘 비구가 지금 여기서 구경의 앎을 이루듯이, 사리뿟따여, 이것도 그와 같은 귀결이라고 나는 말한다.
Taṃ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151
사리뿟따여, 이 모임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어떤 여덟인가? 끄샤뜨리야의 모임, 바라문의 모임, 장자의 모임, 사문의 모임이 있다. 사대왕천의 모임, 삼십삼천의 모임, 마라의 모임, 범천의 모임도 있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여덟 가지 모임이다.
‘‘Aṭṭha kho imā, sāriputta, parisā.
“사리뿟따여, 이러한 여덟 가지 회중이 있다.
Katamā aṭṭha?
무엇이 여덟인가?
Khattiyaparisā, brāhmaṇaparisā, gahapatiparisā, samaṇaparisā, cātumahārājikaparisā, tāvatiṃsaparisā, māraparisā, brahmaparisā –
끄샷띠야 회중, 바라문 회중, 장자 회중, 사문 회중, 사대왕천 회중, 삼십삼천 회중, 마라 회중, 범천 회중 —
imā kho, sāriputta, aṭṭha parisā.
사리뿟따여, 이것이 여덟 가지 회중이다.
사리뿟따여, 여래는 이 네 가지 자신감을 갖추고서 여덟 모임에 다가가 그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수백 군데의 끄샤뜨리야 모임에 다가갔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사리뿟따여, 그곳에서 두려움이나 주눅이 나를 덮치리라는 조짐을 나는 전혀 보지 못한다. 그런 조짐을 보지 못하니, 나는 평안하고 두려움 없이 지낸다. 자신감을 갖추고 지낸다.
Imehi kho, sāriputta, catūhi vesārajjehi samannāgato tathāgato imā aṭṭha parisā upasaṅkamati ajjhogāhati.
사리뿟따여, 이 네 가지 확신을 갖춘 여래는 이 여덟 가지 회중에 다가가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sāriputta, anekasataṃ khattiyaparisaṃ upasaṅkamitā.
사리뿟따여, 나는 수백의 끄샷띠야 회중에 다가간 적이 있음을 분명히 안다.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ñ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은 적이 있고,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전에 대화에 든 적이 있다.
Tatra vata maṃ bhayaṃ vā sārajjaṃ vā okkami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내게 두려움이나 위축이 닥치리라’고 할, 그런 표상을 사리뿟따여, 나는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그 표상을 보지 않기에 나는 안온에 이르고 두려움 없음에 이르고 확신에 이르러 머문다.
사리뿟따여, 나는 바라문의 모임, 장자의 모임, 사문의 모임에도 수백 군데나 다가갔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사대왕천의 모임, 삼십삼천의 모임, 마라의 모임, 범천의 모임에도 수백 군데 다가갔다.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사리뿟따여, 그곳에서 두려움이나 주눅이 나를 덮치리라는 조짐을 나는 전혀 보지 못한다. 그런 조짐을 보지 못하니, 나는 평안하고 두려움 없이 지낸다. 자신감을 갖추고 지낸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sāriputta, anekasataṃ brāhmaṇaparisaṃ…pe… gahapatiparisaṃ… samaṇaparisaṃ… cātumahārājikaparisaṃ… tāvatiṃsaparisaṃ… māraparisaṃ… brahmaparisaṃ upasaṅkamitā.
“사리뿟따여, 나는 수백의 바라문 회중에 다가간 적이 있음을 분명히 안다. 장자 회중에도, 사문 회중에도, 사대왕천 회중에도, 삼십삼천 회중에도, 마라 회중에도, 범천 회중에도 다가간 적이 있음을 분명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2:151.6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ñ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은 적이 있고,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전에 대화에 든 적이 있다.
Tatra vata maṃ bhayaṃ vā sārajjaṃ vā okkamissatīti nimittametaṃ, sāriputta, na samanupassāmi.
‘거기서 내게 두려움이나 위축이 닥치리라’고 할, 그런 표상을 사리뿟따여, 나는 보지 못한다.
Etamahaṃ, sāriputta, nimittaṃ asamanupassanto khemappatto abhayappatto vesārajjappatto viharāmi.
사리뿟따여, 그 표상을 보지 않기에 나는 안온에 이르고 두려움 없음에 이르고 확신에 이르러 머문다.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법이 없다.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뛰어남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다져 놓고 탐색으로 더듬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법을 설할 뿐이다.’ 사리뿟따여, 그가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사리뿟따여, 계와 삼매와 지혜를 갖춘 비구가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앎을 이루듯, 이 일도 그와 꼭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Yo kho maṃ, sāriputta, evaṃ jānantaṃ evaṃ passantaṃ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를 두고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nti, taṃ, sāriputta,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사유로 두들겨 만든 법을, 탐구를 좇아 이루고 스스로 떠오른 대로 설한다’라고.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Seyyathāpi, sāriputta,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evaṃ sampadamidaṃ, sāriputta, vadāmi.
사리뿟따여, 마치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통찰지를 갖춘 비구가 지금 여기서 궁극의 앎을 성취하듯이, 사리뿟따여, 나는 이것도 그와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Taṃ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152
사리뿟따여, 태어나는 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어떤 넷인가? 알에서 태어나는 길, 태에서 태어나는 길, 습기에서 태어나는 길, 홀연히 태어나는 길이다. 사리뿟따여, 알에서 태어나는 길이란 무엇인가? 알껍질을 깨고 나와 태어나는 중생들이 있다. 이것을 알에서 태어나는 길이라 한다. 사리뿟따여, 태에서 태어나는 길이란 무엇인가? 태의 막을 터뜨리고 나와 태어나는 중생들이 있다. 이것을 태에서 태어나는 길이라 한다. 사리뿟따여, 습기에서 태어나는 길이란 무엇인가? 썩은 물고기, 썩은 시체, 썩은 죽, 연못, 시궁창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중생들이 있다. 이것을 습기에서 태어나는 길이라 한다. 사리뿟따여, 홀연히 태어나는 길이란 무엇인가? 천신들, 지옥 중생들, 일부 인간들, 일부 악처에 떨어진 이들이 그렇게 태어난다. 이것을 홀연히 태어나는 길이라 한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태어나는 네 가지 길이다.
‘‘Catasso kho imā, sāriputta, yoniyo.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가지 태생이 있다.
Katamā catasso?
무엇이 넷인가?
Aṇḍajā yoni, jalābujā yoni, saṃsedajā yoni, opapātikā yoni.
알에서 생기는 태생, 모태에서 생기는 태생, 습기에서 생기는 태생, 저절로 생기는 태생이다.
Katamā ca, sāriputta, aṇḍajā yoni?
사리뿟따여, 알에서 생기는 태생이란 무엇인가?
Ye kho te, sāriputta, sattā aṇḍakosaṃ abhinibbhijja jāyanti –
사리뿟따여, 알껍질을 깨뜨리고 태어나는 중생들 —
ayaṃ vuccati, sāriputta, aṇḍajā yoni.
사리뿟따여, 이를 일러 알에서 생기는 태생이라 한다.
Katamā ca, sāriputta, jalābujā yoni?
사리뿟따여, 모태에서 생기는 태생이란 무엇인가?
Ye kho te, sāriputta, sattā vatthikosaṃ abhinibbhijja jāyanti –
사리뿟따여, 태막을 깨뜨리고 태어나는 중생들 —
ayaṃ vuccati, sāriputta, jalābujā yoni.
사리뿟따여, 이를 일러 모태에서 생기는 태생이라 한다.
Katamā ca, sāriputta, saṃsedajā yoni?
사리뿟따여, 습기에서 생기는 태생이란 무엇인가?
Ye kho te, sāriputta, sattā pūtimacche vā jāyanti pūtikuṇape vā pūtikummāse vā candanikāye vā oḷigalle vā jāyanti –
사리뿟따여, 썩은 물고기에서 태어나거나, 썩은 시체에서든 썩은 죽에서든 구정물 웅덩이에서든 시궁창에서든 태어나는 중생들 —
ayaṃ vuccati, sāriputta, saṃsedajā yoni.
사리뿟따여, 이를 일러 습기에서 생기는 태생이라 한다.
Katamā ca, sāriputta, opapātikā yoni?
사리뿟따여, 저절로 생기는 태생이란 무엇인가?
Devā, nerayikā, ekacce ca manussā, ekacce ca vinipātikā –
신들, 지옥 중생들, 일부 인간들, 일부 파멸처의 중생들 —
ayaṃ vuccati, sāriputta, opapātikā yoni.
사리뿟따여, 이를 일러 저절로 생기는 태생이라 한다.
Imā kho, sāriputta, catasso yoniyo.
사리뿟따여, 이것이 네 가지 태생이다.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법이 없다.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뛰어남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다져 놓고 탐색으로 더듬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법을 설할 뿐이다.’ 사리뿟따여, 그가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사리뿟따여, 계와 삼매와 지혜를 갖춘 비구가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앎을 이루듯, 이 일도 그와 꼭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Yo kho maṃ, sāriputta, evaṃ jānantaṃ evaṃ passantaṃ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를 두고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nti, taṃ, sāriputta,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사유로 두들겨 만든 법을, 탐구를 좇아 이루고 스스로 떠오른 대로 설한다’라고.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Seyyathāpi, sāriputta,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evaṃ sampadamidaṃ, sāriputta, vadāmi.
사리뿟따여, 마치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통찰지를 갖춘 비구가 지금 여기서 궁극의 앎을 성취하듯이, 사리뿟따여, 나는 이것도 그와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Taṃ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153
사리뿟따여, 가서 나는 곳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지옥, 짐승의 모태, 아귀의 영역, 인간, 천신이다.
‘‘Pañca kho imā, sāriputta, gatiyo.
“사리뿟따여, 이러한 다섯 가지 갈 곳이 있다.
Katamā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Nirayo, tiracchānayoni, pettivisayo, manussā, devā.
지옥, 축생의 태, 아귀의 세계, 인간, 신이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을 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알고, 그리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나는지도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짐승의 모태를 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그리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짐승의 모태에 나는지도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의 영역을 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그리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의 영역에 나는지도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을 안다. 인간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알고, 그리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나는지도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천신을 안다. 천상 세계로 가는 길을 알고, 그리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나는지도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열반을 안다. 열반으로 가는 길을 알고, 열반으로 가는 실천도 안다. 어떻게 실천한 사람이 번뇌를 다하는지도 안다. 그는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낸다.
Niraya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nirayagāmiñca maggaṃ, niraya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을 꿰뚫어 알고, 지옥으로 가는 길도, 지옥으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Tiracchānayoni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tiracchānayonigāmiñca maggaṃ, tiracchānayoni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축생의 태를 꿰뚫어 알고, 축생의 태로 가는 길도, 축생의 태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축생의 태에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Pettivisayaṃ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pettivisayagāmiñca maggaṃ, pettivisaya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의 세계를 꿰뚫어 알고, 아귀의 세계로 가는 길도, 아귀의 세계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Manusse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manussalokagāmiñca maggaṃ, manussaloka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들을 꿰뚫어 알고, 인간 세계로 가는 길도, 인간 세계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Deve 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devalokagāmiñca maggaṃ, devaloka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신들을 꿰뚫어 알고, 신들의 세계로 가는 길도, 신들의 세계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Nibbānañcāhaṃ, sāriputta, pajānāmi, nibbānagāmiñca maggaṃ, nibbānagāminiñca paṭipadaṃ;
사리뿟따여, 나는 열반을 꿰뚫어 알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열반으로 가는 도닦음도 꿰뚫어 안다.
yathā paṭipanno ca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tañca pajānāmi.
그리고 어떻게 도를 닦은 이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무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154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나 있다.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사람 키보다 깊은 숯불 구덩이가 있는 것과 같다. 불꽃도 연기도 없는 숯이 이글거리며 가득 차 있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구덩이를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숯불 구덩이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나 있다.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다.
‘‘Idh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ṃ, ekanta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aṅgārakāsu sādhikaporisā pūrā aṅgārānaṃ vītaccikānaṃ vītadhūmānaṃ.
사리뿟따여, 마치 사람 키보다 깊은 숯불 구덩이가 불꽃도 없고 연기도 없는 숯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aṅgārakāsu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숯불 구덩이를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yaṃ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ṃyeva aṅgārakāsu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숯불 구덩이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ssā aṅgārakāsuyā patitaṃ, ekanta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숯불 구덩이에 떨어져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ṃ, ekanta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또 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짐승의 모태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짐승의 모태에 나 있다.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사람 키보다 깊은 똥구덩이가 있는 것과 같다.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구덩이를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똥구덩이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똥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짐승의 모태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짐승의 모태에 나 있다. 괴롭고 극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다.
‘‘Idha pan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또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축생의 태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nnaṃ,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축생의 태에 태어나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gūthakūpo sādhikaporiso, pūro gūthassa.
사리뿟따여, 마치 사람 키보다 깊은 똥구덩이가 똥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gūthakūpa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똥구덩이를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yaṃ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ṃyeva gūthakūpa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똥구덩이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smiṃ gūthakūpe patitaṃ,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똥구덩이에 떨어져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축생의 태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tiracchānayoniṃ upapannaṃ,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축생의 태에 태어나 괴롭고 극심하며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또 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의 영역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영역에 나 있다.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울퉁불퉁한 땅에 자란 나무가 있는 것과 같다. 잎은 성기고 그늘도 얼룩덜룩하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나무를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나무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눕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겪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의 영역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영역에 나 있다.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겪고 있다.
‘‘Idha pan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또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nnaṃ, duk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rukkho visame bhūmibhāge jāto tanupattapalāso kabaracchāyo.
사리뿟따여, 마치 울퉁불퉁한 땅에 난 나무가 잎과 가지가 성글어 그늘이 얼룩덜룩하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rukkha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나무를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yaṃ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ṃyeva rukkha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나무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ssa rukkhassa chāyāya nisinnaṃ vā nipannaṃ vā duk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ettivisayaṃ upapannaṃ, duk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 괴로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또 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으로 나 있다.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평평한 땅에 자란 나무가 있는 것과 같다. 잎은 무성하고 그늘은 짙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나무를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나무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눕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겪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으로 나 있다.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겪고 있다.
‘‘Idha pan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또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nnaṃ, su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나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rukkho same bhūmibhāge jāto bahalapattapalāso sandacchāyo.
사리뿟따여, 마치 평평한 땅에 난 나무가 잎과 가지가 무성하여 그늘이 짙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rukkha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나무를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yaṃ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meva rukkha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나무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ssa rukkhassa chāyāya nisinnaṃ vā nipannaṃ vā su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manussesu upapannaṃ, sukhabahul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인간들 가운데 태어나 즐거움이 많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또 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나 있다.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누각이 있고, 그 안에 뾰족지붕 방이 있는 것과 같다. 방은 안팎으로 회칠이 되어 있고 바람이 들지 않는다. 빗장이 잘 걸리고 창이 닫혀 있다. 방에는 침상이 있다. 긴 털의 모포와 흰 모직 덮개와 꽃무늬 모직 덮개가 깔려 있다. 영양 가죽으로 만든 최상품 깔개와 차양이 갖추어져 있고, 양쪽 끝에는 붉은 베개가 놓여 있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누각을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누각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그 누각의 방 안, 그 침상에 앉거나 눕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날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천안으로 그를 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나 있다.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다.
‘‘Idha pan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또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ṃ,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pāsādo, tatrāssa kūṭāgāraṃ ullittāvalittaṃ nivātaṃ phusitaggaḷaṃ pihitavātapānaṃ.
사리뿟따여, 마치 저택이 있고 그 안에 안팎으로 회칠한, 바람이 들지 않고 빗장이 꼭 맞물리며 창문이 닫힌 뾰족지붕 방이 있다고 하자.
Tatrāssa pallaṅko gonakatthato paṭikatthato paṭalikatthato kadalimigapavarapaccattharaṇo sauttaracchado ubhatolohitakūpadhāno.
그 안에는 양털 깔개를 깔고, 흰 모직 깔개를 깔고, 수를 놓은 두꺼운 모직 깔개를 깔고, 최상급 까달리 사슴 가죽 덮개를 덮고, 위에는 천개가 있고 양쪽에는 붉은 베개가 놓인 긴 의자가 있다.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pāsāda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저택을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yaṃ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ṃyeva pāsāda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저택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smiṃ pāsāde tasmiṃ kūṭāgāre tasmiṃ pallaṅke nisinnaṃ vā nipannaṃ vā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저택의 그 뾰족지붕 방 그 긴 의자에 앉거나 누워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ṃ,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또 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낼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그를 본다. 그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낸다. 그가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다. 사리뿟따여, 마치 연못이 있는 것과 같다. 물이 맑고 달고 시원하다. 하얀 모래가 깔려 있고, 물가로 내려서기 좋아 아름답다. 그 가까이에는 울창한 숲이 있다. 그때 한 사람이 외길을 따라 바로 그 연못을 향해 온다고 하자. 그는 뙤약볕에 달구어지고 더위에 짓눌려 지쳤고, 목마르고 갈증에 시달린다. 눈 밝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걷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바로 이 연못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연못에 들어가 목욕하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온갖 열기와 피로와 괴로운 더위를 가라앉히고 물에서 나오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가 숲에 앉거나 누워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사리뿟따여, 꼭 그처럼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꿰뚫어 이렇게 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천하고 이렇게 행동하며, 이런 길에 올라 있다.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낼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뒤 그를 본다. 그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이 생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낸다. 그가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다.[불확실]
‘‘Idha panāhaṃ, sāriputta, ekaccaṃ puggal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또 사리뿟따여,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āsavānaṃ khayā anās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aṃ,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그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며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Seyyathāpi, sāriputta, pokkharaṇī acchodakā sātodakā sītodakā setakā supatitthā ramaṇīyā.
사리뿟따여, 마치 물이 맑고 물맛이 좋고 물이 차며 깨끗하고, 기슭이 좋고 보기 좋은 연못이 있다고 하자.
Avidūre cassā tibbo vanasaṇḍo.
그리고 그 가까이에는 울창한 숲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ghammābhitatto ghammapareto kilanto tasito pipāsito ekāyanena maggena tameva pokkharaṇiṃ paṇidhāya.
그때 더위에 타고 더위에 시달리며, 지치고 떨리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그리로만 이어지는 외길로 바로 그 연못을 향해 온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ṃ vad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thā bhavaṃ puris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imaṃyeva pokkharaṇiṃ āgamissatī’ti.
‘이 어진 사람은 이렇게 나아가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바로 이 연못에 이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taṃ pokkharaṇiṃ ogāhetvā nhāyitvā ca pivitvā ca sabbadarathakilamathapariḷāhaṃ paṭippassambhetvā paccuttaritvā tasmiṃ vanasaṇḍe nisinnaṃ vā nipannaṃ vā,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사람이 그 연못에 들어가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서 온갖 괴로움과 피로와 열기를 가라앉히고 나와, 그 숲에 앉거나 누워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볼 것이다.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idh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 –
사리뿟따여, 꼭 이와 같이 나는 여기 어떤 사람을 두고 내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이렇게 꿰뚫어 안다 —
tathāyaṃ puggalo paṭipanno tathā ca iriyati tañca maggaṃ samārūḷho, yathā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ī’ti.
‘이 사람은 이렇게 도를 닦고 이렇게 처신하며 그 길에 올라섰으니,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 것이다’라고.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aṃ, ekantasukhā vedanā vedayamānaṃ.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그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물며 오로지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가서 나는 다섯 곳이다.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사문 고타마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법이 없다.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뛰어남도 없다. 사문 고타마는 추론으로 다져 놓고 탐색으로 더듬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법을 설할 뿐이다.’ 사리뿟따여, 그가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사리뿟따여, 계와 삼매와 지혜를 갖춘 비구가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앎을 이루듯, 이 일도 그와 꼭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가 그 말과 그 마음과 그 견해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짊어져 와서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Imā kho, sāriputta, pañca gatiyo.
사리뿟따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갈 곳이다.
‘‘Yo kho maṃ, sāriputta, evaṃ jānantaṃ evaṃ passantaṃ evaṃ vadeyya –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를 두고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 걸맞은 앎과 봄의 특별함이 없다.
takkapariyāhataṃ samaṇo gotamo dhammaṃ deseti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nti taṃ, sāriputta,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문 고따마는 사유로 두들겨 만든 법을, 탐구를 좇아 이루고 스스로 떠오른 대로 설한다’라고.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
Seyyathāpi, sāriputta, bhikkhu sīlasampanno samādhisampanno paññāsampanno diṭṭheva dhamme aññaṃ ārādheyya, evaṃ sampadamidaṃ, sāriputta, vadāmi ‘taṃ vācaṃ appahāya taṃ cittaṃ appahāya taṃ diṭṭhiṃ appaṭinissajjitvā yathābhataṃ nikkhitto evaṃ niraye’.
사리뿟따여, 마치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통찰지를 갖춘 비구가 지금 여기서 궁극의 앎을 성취하듯이, 사리뿟따여, 나는 이것도 그와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떠메어다 내려놓듯 그렇게 지옥에 놓인다’라고.
155
사리뿟따여, 나는 네 가지를 갖춘 청정한 수행을 해 본 적이 있다. 고행으로는 누구보다 심한 고행자였고, 거칠기로는 누구보다 거친 자였다. 꺼리기로는 누구보다 꺼리는 자였고, 홀로 떨어져 지내기로는 누구보다 외딴 곳에 머문 자였다. 사리뿟따여, 먼저 내 고행은 이러하였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sāriputta, caturaṅgasamannāgataṃ brahmacariyaṃ caritā –
“사리뿟따여, 그리고 나는 네 요소를 갖춘 청정한 삶을 닦아 온 자임을 스스로 안다 —
tapassī sudaṃ homi paramatapassī, lūkho sudaṃ homi paramalūkho, jegucchī sudaṃ homi paramajegucchī, pavivitto sudaṃ homi paramapavivitto.
나는 참으로 고행하는 자였으니 지독히 고행하는 자였고, 참으로 거친 자였으니 지독히 거친 자였고, 참으로 혐오하는 자였으니 지독히 혐오하는 자였고, 참으로 홀로 떨어진 자였으니 지독히 홀로 떨어진 자였다.
Tatrāssu me idaṃ, sāriputta, tapassitāya hoti –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고행은 이러하였다 —
나는 옷을 입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였으며, 손을 핥아 먹었다. 누가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하고 불러도 가지 않았다. '서십시오, 어르신' 해도 멈추지 않았다. 가져다주는 음식도, 나를 위해 따로 만든 음식도, 초대받은 음식도 받지 않았다.
acelako homi muttācāro hatthāpalekhano, na ehibhaddantiko na tiṭṭhabhaddantiko;
나는 옷을 걸치지 않은 자였고, 관습을 벗어난 자였고, 손을 핥는 자였으며, ‘오십시오, 존자시여’ 해도 오지 않는 자였고 ‘멈추십시오, 존자시여’ 해도 멈추지 않는 자였다;
nābhihaṭaṃ na uddissakataṃ na nimantanaṃ sādiyāmi.
가져다 놓은 것도, 나를 위해 따로 마련한 것도, 초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솥 아가리에서 곧바로 받지 않았고, 단지 아가리에서도 받지 않았다. 문지방 너머로도 받지 않았고, 막대기 사이나 절굿공이 사이로도 받지 않았다. 둘이 함께 먹고 있는 자리에서는 받지 않았다. 임신한 여인에게도, 젖먹이는 여인에게도, 남자와 함께 누웠던 여인에게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을 모아 나눠 주는 배식에서는 받지 않았다. 개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나 파리가 떼지어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받지 않았다.[불확실]
So na kumbhimukhā paṭiggaṇhāmi, na kaḷopimukhā paṭiggaṇhāmi, na eḷakamantaraṃ, na daṇḍamantaraṃ, na musalamantaraṃ, na dvinnaṃ bhuñjamānānaṃ, na gabbhiniyā, na pāyamānāya, na purisantaragatāya, na saṅkittīsu, na yattha sā upaṭṭhito hoti, na yattha makkhikā saṇḍasaṇḍacārinī;
그런 나는 항아리 아가리에서 받지 않았고, 그릇 아가리에서 받지 않았고, 문지방 사이에서도, 막대기 사이에서도, 절굿공이 사이에서도,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도, 임신한 여자에게서도, 젖 먹이는 여자에게서도, 남자와 함께 있는 여자에게서도, 나누어 주는 자리에서도, 개가 옆에 서 있는 곳에서도, 파리가 떼 지어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받지 않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물고기도 고기도 마시지 않았고, 곡주도 과실주도 곡식 발효 음료도 마시지 않았다.
na macchaṃ na maṃsaṃ na suraṃ na merayaṃ na thusodakaṃ pivāmi;
물고기도, 고기도, 곡주도, 과실주도, 겨 뜨물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한 집에서만 탁발하여 한 입만 먹기도 했다. 두 집에서만 탁발하여 두 입만 먹기도 했고, 그렇게 일곱 집에서 일곱 입만 먹기도 했다. 한 번 담아 주는 만큼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두 번 담아 주는 만큼으로 연명하기도 했고, 그렇게 일곱 번 담아 주는 만큼으로 연명하기도 했다.[불확실]
so ekāgāriko vā homi ekālopiko, dvāgāriko vā homi dvālopiko…pe… sattāgāriko vā homi sattālopiko;
그런 나는 한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한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두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두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세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세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네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네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다섯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다섯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여섯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여섯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일곱 집만 다니는 자이기도 하고 일곱 입만 먹는 자이기도 하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kissāpi dattiyā yāpemi, dvīhipi dattīhi yāpemi…pe… sattahipi dattīhi yāpemi;
한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두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세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네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다섯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여섯 접시로도 연명하였고, 일곱 접시로도 연명하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했고, 이틀에 한 끼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이레에 한 끼를 먹기도 했다. 이렇게 보름에 한 번 먹는 순번 식사에 이르기까지 몰두하며 지냈다.[불확실]
ekāhikampi āhāraṃ āhāremi, dvīhikampi āhāraṃ āhāremi…pe… sattāhikampi āhāraṃ āhāremi;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사흘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나흘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닷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엿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고, 이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ti evarūpaṃ addhamāsikampi pariyāyabhattabhojanānuyogamanuyutto viharāmi.
이와 같이 보름에 한 번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때를 두고 밥을 먹는 수행에 몰두하며 지냈다.
나는 채소를 먹기도 하고, 피를 먹기도 하고, 야생 쌀을 먹기도 했다. 가죽 부스러기, 수초, 쌀겨도 먹었다. 밥 눌은 거품, 깻묵, 풀, 소똥도 먹었다. 숲의 뿌리와 열매를 먹었고,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으며 연명했다.
‘‘So sākabhakkho vā homi, sāmākabhakkho vā homi, nīvārabhakkho vā homi, daddulabhakkho vā homi, haṭabhakkho vā homi, kaṇabhakkho vā homi, ācāmabhakkho vā homi, piññākabhakkho vā homi, tiṇabhakkho vā homi, gomayabhakkho vā homi, vanamūlaphalāhāro yāpemi pavattaphalabhojī.
그런 나는 나물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피를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들벼를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가죽 부스러기를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물풀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쌀겨를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뜨물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깻묵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풀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고, 쇠똥을 먹는 자이기도 하였으며, 숲의 뿌리와 열매를 먹고 연명하며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였다.
나는 삼베옷도 입고, 삼 섞인 옷도 입었다. 시체를 덮었던 천도, 버려진 누더기도, 나무껍질 천도 입었다. 영양 가죽도 걸치고, 영양 가죽 조각도 걸쳤다. 꾸사 풀로 짠 옷, 나무껍질 옷, 널빤지 옷도 걸쳤다. 머리카락 담요, 말총 담요, 올빼미 깃털도 걸쳤다.
‘‘So sāṇānipi dhāremi, masāṇānipi dhāremi, chavadussānipi dhāremi, paṃsukūlānipi dhāremi, tirīṭānipi dhāremi, ajinampi dhāremi, ajinakkhipampi dhāremi, kusacīrampi dhāremi, vākacīrampi dhāremi, phalakacīrampi dhāremi, kesakambalampi dhāremi, vāḷakambalampi dhāremi, ulūkapakkhampi dhāremi;
그런 나는 삼베옷도 걸쳤고, 섞어 짠 옷도 걸쳤고, 시체를 쌌던 천도 걸쳤고, 버려진 천 조각도 걸쳤고, 나무껍질 옷도 걸쳤고, 영양 가죽도 걸쳤고, 영양 가죽을 째서 만든 것도 걸쳤고, 꾸사 풀로 엮은 옷도 걸쳤고, 나무껍질을 엮은 옷도 걸쳤고, 나무판을 엮은 옷도 걸쳤고, 사람 머리털로 짠 담요도 걸쳤고, 짐승 털로 짠 담요도 걸쳤고, 올빼미 깃으로 만든 것도 걸쳤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매달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았다. 자리에 앉기를 마다하고 늘 서 있었다. 쪼그려 앉는 자세를 힘써 닦으며 쪼그려 앉아 지냈다. 가시 위에서 지내는 자가 되어 가시 침상에 누웠다.
kesamassulocakopi homi kesamassulocanānuyogamanuyutto;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자이기도 하여,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하였다;
ubbhaṭṭhakopi homi āsanapaṭikkhitto;
자리를 물리치고 줄곧 서 있는 자이기도 하였다;
ukkuṭikopi homi ukkuṭikappadhānamanuyutto;
쭈그려 앉는 자이기도 하여, 쭈그려 앉는 정진에 몰두하였다;
kaṇṭakāpassayikopi homi kaṇṭakāpassaye seyyaṃ kappemi;
가시 자리에 눕는 자이기도 하여, 가시 자리에 잠자리를 폈다;
저녁까지 하루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일에 몰두했다. 이렇게 갖가지 방법으로 몸을 달구고 괴롭히며 지냈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고행이었다.
sāyatatiyakampi udakorohanānuyogamanuyutto viharāmi –
저녁을 세 번째 때로 삼아 물에 들어가는 수행에 몰두하며 지냈다 —
iti evarūpaṃ anekavihitaṃ kāyassa ātāpanaparitāpanānuyogamanuyutto viharāmi.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몸을 태우고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며 지냈다.
Idaṃsu me, sāriputta, tapassitāya hoti.
사리뿟따여, 나의 고행은 이러하였다.
156
사리뿟따여, 다음으로 내 거칠음은 이러하였다. 여러 해 동안 쌓인 먼지와 때가 몸에 앉아 딱지가 되었다. 여러 해 묵은 띤두까 나무 그루터기에 딱지가 앉듯이, 내 몸에도 먼지와 때가 딱지처럼 앉았다.
‘‘Tatrāssu me idaṃ, sāriputta, lūkhasmiṃ hoti –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거칢은 이러하였다 —
nekavassagaṇikaṃ rajojallaṃ kāye sannicitaṃ hoti papaṭikajātaṃ.
여러 해 묵은 먼지와 때가 몸에 쌓여 딱지처럼 일어났다.
Seyyathāpi, sāriputta, tindukakhāṇu nekavassagaṇiko sannicito hoti papaṭikajāto, evamevāssu me, sāriputta, nekavassagaṇikaṃ rajojallaṃ kāye sannicitaṃ hoti papaṭikajātaṃ.
사리뿟따여, 마치 띤두까 나무 그루터기에 여러 해 묵은 것이 쌓여 껍질처럼 일어나듯, 사리뿟따여, 꼭 그와 같이 나에게도 여러 해 묵은 먼지와 때가 몸에 쌓여 딱지처럼 일어났다.
그래도 사리뿟따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내가 이 먼지와 때를 손으로 문질러 닦았으면. 아니면 다른 누가 닦아 주었으면.'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거칠음이었다.
Tassa mayhaṃ, sāriputta, na evaṃ hoti –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
‘aho vatāhaṃ imaṃ rajojallaṃ pāṇinā parimajjeyyaṃ, aññe vā pana me imaṃ rajojallaṃ pāṇinā parimajjeyyu’nti.
‘아, 내가 이 먼지와 때를 손으로 문질러 없애면 좋으련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내 이 먼지와 때를 손으로 문질러 없애 주면 좋으련만.’
Evampi me, sāriputta, na hoti.
사리뿟따여, 나에게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Idaṃsu me, sāriputta, lūkhasmiṃ hoti.
사리뿟따여, 나의 거칢은 이러하였다.
사리뿟따여, 다음으로 내 꺼림은 이러하였다. 나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아갔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물러났다. 물방울 하나에까지도 연민이 일어났다. '험한 곳에 있는 작은 생명들을 내가 짓눌러 해치지 말아야지.'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꺼림이었다.
‘‘Tatrāssu me idaṃ, sāriputta, jegucchismiṃ hoti –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혐오는 이러하였다 —
so kho ahaṃ, sāriputta, satova abhikkamāmi, satova paṭikkamāmi, yāva udakabindumhipi me dayā paccupaṭṭhitā hoti –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마음챙기며 나아가고 마음챙기며 물러났으며, 물 한 방울에까지도 나의 연민이 일어나 있었다 —
‘māhaṃ khuddake pāṇe visamagate saṅghātaṃ āpādesi’nti.
‘내가 험한 곳에 든 작은 생명들을 해치지 않기를.’
Idaṃsu me, sāriputta, jegucchismiṃ hoti.
사리뿟따여, 나의 혐오는 이러하였다.
사리뿟따여, 다음으로 내 홀로 떨어져 지냄은 이러하였다. 나는 어느 숲속 깊이 들어가 지냈다. 소 치는 이나 양 치는 이, 풀 베는 이, 땔나무 하는 이, 숲에서 일하는 이를 보면 달아났다. 숲에서 숲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달아났다.
‘‘Tatrāssu me idaṃ, sāriputta, pavivittasmiṃ hoti –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홀로 떨어짐은 이러하였다 —
so kho ahaṃ, sāriputta, aññataraṃ araññāyatanaṃ ajjhogāhetvā viharā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어떤 숲으로 깊이 들어가 지냈다.
Yadā passāmi gopālakaṃ vā pasupālakaṃ vā tiṇahārakaṃ vā kaṭṭhahārakaṃ vā vanakammikaṃ vā, vanena vanaṃ gahanena gahanaṃ ninnena ninnaṃ thalena thalaṃ saṃpatāmi.
소치는 이나 짐승 치는 이나 풀 베는 이나 나무하는 이나 숲일 하는 이를 보면, 숲에서 숲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달아났다.
왜 그랬는가? 그들이 나를 보지 않기를, 나도 그들을 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Mā maṃ te addasaṃsu ahañca mā te addasanti.
‘그들이 나를 보지 말기를, 그리고 나도 그들을 보지 말기를’ 해서였다.
숲에 사는 사슴은 사람을 보면 숲에서 숲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달아난다.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달아난다. 나도 그 사슴처럼, 소 치는 이나 양 치는 이, 풀 베는 이, 땔나무 하는 이, 숲에서 일하는 이를 보면 그렇게 달아났다. 왜 그랬는가? 그들이 나를 보지 않기를, 나도 그들을 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Seyyathāpi, sāriputta, āraññako mago manusse disvā vanena vanaṃ gahanena gahanaṃ ninnena ninnaṃ thalena thalaṃ saṃpatati, evameva kho ahaṃ, sāriputta, yadā passāmi gopālakaṃ vā pasupālakaṃ vā tiṇahārakaṃ vā kaṭṭhahārakaṃ vā vanakammikaṃ vā vanena vanaṃ gahanena gahanaṃ ninnena ninnaṃ thalena thalaṃ saṃpatāmi.
사리뿟따여, 마치 숲에 사는 사슴이 사람들을 보고 숲에서 숲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달아나듯, 사리뿟따여, 꼭 그와 같이 나도 소치는 이나 짐승 치는 이나 풀 베는 이나 나무하는 이나 숲일 하는 이를 보면 숲에서 숲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달아났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Mā maṃ te addasaṃsu ahañca mā te addasanti.
‘그들이 나를 보지 말기를, 그리고 나도 그들을 보지 말기를’ 해서였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홀로 떨어져 지냄이었다.
Idaṃsu me, sāriputta, pavivittasmiṃ hoti.
사리뿟따여, 나의 홀로 떨어짐은 이러하였다.
사리뿟따여, 소 치는 이가 떠나고 소들이 나가 버린 외양간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네 발로 기어가서 젖을 빠는 어린 송아지들의 똥을 먹었다. 내 오줌과 똥이 아직 다하지 않은 동안에는 내 오줌과 똥도 먹었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크게 역겨운 음식 먹기였다.
‘‘So kho ahaṃ, sāriputta, ye te goṭṭhā paṭṭhitagāvo apagatagopālakā, tattha catukkuṇḍiko upasaṅkamitvā yāni tāni vacchakānaṃ taruṇakānaṃ dhenupakānaṃ gomayāni tāni sudaṃ āhāre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소가 나가고 소치는 이가 떠난 외양간에 네 발로 기어 들어가, 어리고 젖 먹는 송아지들의 쇠똥을 먹었다.
Yāvakīvañca me, sāriputta, sakaṃ muttakarīsaṃ apariyādinnaṃ hoti, sakaṃyeva sudaṃ muttakarīsaṃ āhāremi.
사리뿟따여, 나 자신의 똥오줌이 다하지 않은 동안은 바로 나 자신의 똥오줌을 먹었다.
Idaṃsu me, sāriputta, mahāvikaṭabhojanasmiṃ hoti.
사리뿟따여, 나의 크게 역겨운 먹거리는 이러하였다.
157
사리뿟따여, 나는 어느 섬뜩한 숲속에 들어가 지냈다. 그 숲의 섬뜩함은 이러하였다. 탐욕을 떠나지 못한 사람이 그 숲에 들어가면 대개 털이 곤두선다.
‘‘So kho ahaṃ, sāriputta, aññataraṃ bhiṃsanak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viharā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어떤 무시무시한 숲 덤불로 깊이 들어가 지냈다.
Tatrāssudaṃ, sāriputta, bhiṃsanakassa vanasaṇḍassa bhiṃsanakatasmiṃ hoti –
사리뿟따여, 그 무시무시한 숲 덤불의 무시무시함은 이러하였다 —
yo koci avītarāgo taṃ vanasaṇḍaṃ pavisati, yebhuyyena lomāni haṃsanti.
탐욕을 여의지 못한 자는 누구든 그 숲 덤불에 들어가면 대개 털이 곤두섰다.
한겨울 눈이 내리고 서리가 내리는 차가운 밤에는, 밤새 노지에서 지내고 낮에는 숲속에서 지냈다. 여름의 마지막 달에는 거꾸로 낮에 노지에서 지내고 밤에 숲속에서 지냈다. 사리뿟따여, 그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라운 시구가 저절로 내게 떠올랐다.
So kho ahaṃ, sāriputta, yā tā rattiyo sītā hemantikā antaraṭṭhakā himapātasamayā tathārūpāsu rattīsu rattiṃ abbhokāse viharāmi, divā vanasaṇḍe;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춥고 겨울철이고 한겨울 여드레이며 눈 내리는 때인 그런 밤들에는, 밤에는 노천에서 지내고 낮에는 숲 덤불에서 지냈다;
gimhānaṃ pacchime māse divā abbhokāse viharāmi, rattiṃ vanasaṇḍe.
더위의 마지막 달에는 낮에는 노천에서 지내고 밤에는 숲 덤불에서 지냈다.
Apissu maṃ, sāriputta, ayaṃ anacchariyagāthā paṭibhāsi pubbe assutapubbā –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게송이 저절로 떠올랐다 —
‘더위에 타고 추위에 얼며, / 무시무시한 숲에 홀로 머물고,
‘‘Sotatto sosinno ceva, eko bhiṃsanake vane;
“몹시 데워지고 또 몹시 얼어붙어, 무시무시한 숲에 홀로;
벌거벗은 몸으로 불가에도 앉지 않은 채 / 구함에 몰두하는 성자라네.’
Naggo na caggimāsīno, esanāpasuto munī’’ti.
벌거벗고 불도 곁에 두지 않은 채, 구함에 매인 성자로다.”
사리뿟따여, 나는 무덤가에서 죽은 이의 뼈를 베개 삼아 누웠다. 마을 아이들이 다가와 내게 침을 뱉고, 오줌을 누고, 흙먼지를 끼얹었다. 귓구멍에 막대기를 찔러 넣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나쁜 마음을 일으킨 기억이 없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내 평정하게 지냄이었다.[불확실]
‘‘So kho ahaṃ, sāriputta, susāne seyyaṃ kappemi chavaṭṭhikāni upadhāya.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무덤가에서 시체의 뼈를 베고 잠자리를 폈다.
Apissu maṃ, sāriputta, gāmaṇḍalā upasaṅkamitvā oṭṭhubhantipi, omuttentipi, paṃsukenapi okiranti, kaṇṇasotesupi salākaṃ pavesenti.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 마을 아이들이 다가와 침을 뱉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흙을 끼얹기도 하고, 귓구멍에 나뭇가지를 찔러 넣기도 하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 kho panāhaṃ, sāriputta, abhijānāmi tesu pāpakaṃ cittaṃ uppādetā.
사리뿟따여,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나쁜 마음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알지 못한다.
Idaṃsu me, sāriputta, upekkhāvihārasmiṃ hoti.
사리뿟따여, 나의 평온에 머묾은 이러하였다.
158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음식으로 청정해진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대추 열매로 연명한다.' 그들은 대추도 먹고, 대추 가루도 먹고, 대추 물도 마신다. 대추로 만든 갖가지 음식을 먹는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āhārena suddhī’ti.
‘음식으로 청정해진다’고.
Te evamāhaṃsu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kolehi yāpemā’ti.
‘우리는 대추로 연명한다’고.
Te kolampi khādanti, kolacuṇṇampi khādanti, kolodakampi pivanti –
그들은 대추도 씹어 먹고, 대추 가루도 씹어 먹고, 대추 물도 마신다 —
anekavihitampi kolavikatiṃ paribhuñjanti.
여러 가지로 만든 대추 음식을 먹는다.
사리뿟따여, 나는 대추 한 알만 먹고 지낸 적이 있다. 너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대추가 틀림없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때에도 대추는 지금과 똑같은 크기였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sāriputta, ekaṃyeva kolaṃ āhāraṃ āhāritā.
사리뿟따여, 그런데 나는 오직 대추 하나만을 음식으로 먹은 자였음을 스스로 안다.
Siyā kho pana te, sāriputta, evamassa –
사리뿟따여, 그런데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mahā nūna tena samayena kolo ahosī’ti.
‘그때에는 대추가 컸으리라’고.
Na kho panetaṃ, sāriputta, evaṃ daṭṭhabbaṃ.
사리뿟따여,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Tadāpi etaparamoyeva kolo ahosi seyyathāpi etarahi.
그때에도 대추는 지금과 꼭 마찬가지로 이만한 것이 고작이었다.
사리뿟따여, 대추 한 알만 먹고 지내던 나는 몸이 극도로 여위었다. 덩굴 마디나 검은 풀 마디처럼 내 팔다리가 앙상해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sāriputta, ekaṃyeva kolaṃ āhāraṃ āhārayato adhimattakasimānaṃ patto kāyo hoti.
사리뿟따여, 오직 대추 하나만을 음식으로 먹는 그런 나의 몸은 극도로 여윔에 이르렀다.
Seyyathāpi nāma āsītikapabbāni vā kāḷapabbāni vā, evamevassu me aṅgapaccaṅgāni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아시띠까 덩굴의 마디나 깔라 덩굴의 마디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팔다리 마디마디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낙타 발자국처럼 내 엉덩이가 움푹 패였다. 구슬을 꿴 줄처럼 등뼈가 솟았다 꺼졌다 하였다. 낡은 건물의 서까래가 무너져 기울듯이 갈비뼈도 무너져 기울었다. 모두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eyyathāpi nāma oṭṭhapadaṃ, evamevassu me ānisadaṃ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낙타 발굽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엉덩이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Seyyathāpi nāma vaṭṭanāvaḷī, evamevassu me piṭṭhikaṇṭako unnatāvan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구슬 꿰미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등뼈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오르내리며 드러났다.
Seyyathāpi nāma jarasālāya gopānasiyo oluggaviluggā bhavanti, evamevassu me phāsuḷiyo oluggaviluggā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낡은 집의 서까래들이 내려앉고 뒤틀리듯, 꼭 그와 같이 나의 갈비뼈들이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내려앉고 뒤틀렸다.
깊은 우물 속에 물빛이 깊이 가라앉아 보이듯이, 눈구멍 속에서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 보였다. 덜 익은 쓴 박을 잘라 바람과 햇볕에 두면 쪼그라들고 시들듯이, 머리 가죽도 쪼그라들고 시들었다. 이것도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eyyathāpi nāma gambhīre udapāne udaka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evamevassu me akkhikūpesu akkhi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친 물빛이 깊이 가라앉아 움푹하게 보이듯, 꼭 그와 같이 나의 눈구멍에 든 눈동자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깊이 가라앉아 움푹하게 보였다.
Seyyathāpi nāma tittakālābuāmakacchinno vātātapena saṃphuṭito hoti sammilāto, evamevassu me sīsacchavi saṃphuṭitā hoti sammilātā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덜 익은 채 잘린 쓴 조롱박이 바람과 볕에 쭈그러들고 시들듯, 꼭 그와 같이 나의 머리 가죽이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쭈그러들고 시들었다.
사리뿟따여, 나는 배 가죽을 만지려 하면 등뼈를 붙잡았다. 등뼈를 만지려 하면 배 가죽을 붙잡았다. 배 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대소변을 보려 하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o kho ahaṃ, sāriputta, ‘udaracchaviṃ parimasissāmī’ti piṭṭhikaṇṭakaṃyeva pariggaṇhāmi, ‘piṭṭhikaṇṭakaṃ parimasissāmī’ti udaracchaviṃyeva pariggaṇhāmi, yāvassu me, sāriputta, udaracchavi piṭṭhikaṇṭakaṃ allīnā hot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뱃가죽을 만져 보리라’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 보리라’ 하면 뱃가죽이 잡혔으니, 사리뿟따여,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뱃가죽이 등뼈에 들러붙었던 것이다.
So kho ahaṃ, sāriputta, ‘vaccaṃ vā muttaṃ vā karissāmī’ti tattheva avakujjo papatām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똥이나 오줌을 누리라’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엎어졌으니,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이었다.
사리뿟따여, 나는 그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문질렀다. 그러면 뿌리가 썩은 털이 몸에서 빠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o kho ahaṃ, sāriputta, tameva kāyaṃ assāsento pāṇinā gattāni anomajjā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바로 그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쓸어내렸다.
Tassa mayhaṃ, sāriputta, pāṇinā gattāni anomajjato pūtimūlāni lomāni kāyasmā patant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손으로 팔다리를 쓸어내리는 그런 나에게서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이었다.
159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음식으로 청정해진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콩으로 연명한다. 깨로 연명한다. 쌀알로 연명한다.' 그들은 쌀알도 먹고, 쌀가루도 먹고, 쌀 우린 물도 마신다. 쌀로 만든 갖가지 음식을 먹는다.[불확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āhārena suddhī’ti.
‘음식으로 청정해진다’고.
Te evamāhaṃsu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muggehi yāpema…pe… tilehi yāpema…pe… taṇḍulehi yāpemā’ti.
‘우리는 녹두로 연명한다’고, ‘우리는 참깨로 연명한다’고, ‘우리는 쌀로 연명한다’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taṇḍulampi khādanti, taṇḍulacuṇṇampi khādanti, taṇḍulodakampi pivanti –
그들은 쌀도 씹어 먹고, 쌀가루도 씹어 먹고, 쌀뜨물도 마신다 —
anekavihitampi taṇḍulavikatiṃ paribhuñjanti.
여러 가지로 만든 쌀 음식을 먹는다.
사리뿟따여, 나는 쌀알 한 톨만 먹고 지낸 적이 있다. 너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쌀알이 틀림없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때에도 쌀알은 지금과 똑같은 크기였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sāriputta, ekaṃyeva taṇḍulaṃ āhāraṃ āhāritā.
사리뿟따여, 그런데 나는 오직 쌀 한 톨만을 음식으로 먹은 자였음을 스스로 안다.
Siyā kho pana te, sāriputta, evamassa –
사리뿟따여, 그런데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mahā nūna tena samayena taṇḍulo ahosī’ti.
‘그때에는 쌀이 컸으리라’고.
Na kho panetaṃ, sāriputta, evaṃ daṭṭhabbaṃ.
사리뿟따여,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Tadāpi etaparamoyeva taṇḍulo ahosi, seyyathāpi etarahi.
그때에도 쌀은 지금과 꼭 마찬가지로 이만한 것이 고작이었다.
사리뿟따여, 쌀알 한 톨만 먹고 지내던 나는 몸이 극도로 여위었다. 덩굴 마디나 검은 풀 마디처럼 내 팔다리가 앙상해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sāriputta, ekaṃyeva taṇḍulaṃ āhāraṃ āhārayato adhimattakasimānaṃ patto kāyo hoti.
사리뿟따여, 오직 쌀 한 톨만을 음식으로 먹는 그런 나의 몸은 극도로 여윔에 이르렀다.
Seyyathāpi nāma āsītikapabbāni vā kāḷapabbāni vā, evamevassu me aṅgapaccaṅgāni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아시띠까 덩굴의 마디나 깔라 덩굴의 마디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팔다리 마디마디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낙타 발자국처럼 내 엉덩이가 움푹 패였다. 구슬을 꿴 줄처럼 등뼈가 솟았다 꺼졌다 하였다. 낡은 건물의 서까래가 무너져 기울듯이 갈비뼈도 무너져 기울었다. 모두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eyyathāpi nāma oṭṭhapadaṃ, evamevassu me ānisadaṃ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낙타 발굽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엉덩이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Seyyathāpi nāma vaṭṭanāvaḷī, evamevassu me piṭṭhikaṇṭako unnatāvan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구슬 꿰미처럼, 꼭 그와 같이 나의 등뼈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오르내리며 드러났다.
Seyyathāpi nāma jarasālāya gopānasiyo oluggaviluggā bhavanti, evamevassu me phāsuḷiyo oluggaviluggā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낡은 집의 서까래들이 내려앉고 뒤틀리듯, 꼭 그와 같이 나의 갈비뼈들이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내려앉고 뒤틀렸다.
깊은 우물 속에 물빛이 깊이 가라앉아 보이듯이, 눈구멍 속에서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 보였다. 덜 익은 쓴 박을 잘라 바람과 햇볕에 두면 쪼그라들고 시들듯이, 머리 가죽도 쪼그라들고 시들었다. 이것도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eyyathāpi nāma gambhīre udapāne udaka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evamevassu me akkhikūpesu akkhi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친 물빛이 깊이 가라앉아 움푹하게 보이듯, 꼭 그와 같이 나의 눈구멍에 든 눈동자가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깊이 가라앉아 움푹하게 보였다.
Seyyathāpi nāma tittakālābu āmakacchinno vātātapena saṃphuṭito hoti sammilāto, evamevassu me sīsacchavi saṃphuṭitā hoti sammilātā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덜 익은 채 잘린 쓴 조롱박이 바람과 볕에 쭈그러들고 시들듯, 꼭 그와 같이 나의 머리 가죽이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쭈그러들고 시들었다.
사리뿟따여, 나는 배 가죽을 만지려 하면 등뼈를 붙잡았다. 등뼈를 만지려 하면 배 가죽을 붙잡았다. 배 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대소변을 보려 하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o kho ahaṃ, sāriputta, ‘udaracchaviṃ parimasissāmī’ti piṭṭhikaṇṭakaṃyeva pariggaṇhāmi, ‘piṭṭhikaṇṭakaṃ parimasissāmī’ti udaracchaviṃyeva pariggaṇhā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뱃가죽을 만져 보리라’ 하면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져 보리라’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Yāvassu me, sāriputta, udaracchavi piṭṭhikaṇṭakaṃ allīnā hot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뱃가죽이 등뼈에 들러붙었다.
So kho ahaṃ, sāriputta, ‘vaccaṃ vā muttaṃ vā karissāmī’ti tattheva avakujjo papatām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똥이나 오줌을 누리라’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엎어졌으니,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이었다.
사리뿟따여, 나는 그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문질렀다. 그러면 뿌리가 썩은 털이 몸에서 빠졌다. 그렇게 적게 먹었기 때문이다.
So kho ahaṃ, sāriputta, tameva kāyaṃ assāsento pāṇinā gattāni anomajjāmi.
사리뿟따여, 그런 나는 바로 그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쓸어내렸다.
Tassa mayhaṃ, sāriputta, pāṇinā gattāni anomajjato pūtimūlāni lomāni kāyasmā patanti tāyevappāhāratāya.
사리뿟따여, 손으로 팔다리를 쓸어내리는 그런 나에게서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바로 그 적은 음식 때문이었다.
사리뿟따여, 그런 행적과 그런 길과 그런 고행으로도 나는 특별한 경지를 얻지 못하였다. 인간의 상태를 넘어서는, 성자다운 앎과 봄을 얻지 못하였다. 왜 그런가? 바로 이 성스러운 지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지혜를 얻으면 벗어남으로 이끌려, 그것을 닦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끈다.
‘‘Tāyapi kho ahaṃ, sāriputt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aṃ uttariṃ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사리뿟따여, 나는 그런 몸가짐으로도, 그런 도닦음으로도, 그런 하기 어려운 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앎과 봄의 특별함에 이르지 못하였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Imissāyeva ariyāya paññāya anadhigamā, yāyaṃ ariyā paññā adhigatā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바로 이 성스러운 통찰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성스러운 통찰지는 얻으면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대로 행하는 이를 괴로움의 바른 소멸로 이끌어 낸다.
160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윤회로 청정해진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윤회하며 겪어 보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정거천의 신들 사이만 빼고 그렇다.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의 신들 사이를 윤회했더라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saṃsārena suddhī’ti.
‘윤회로 청정해진다’고.
Na kho pana so, sāriputta, saṃsāro sulabharūpo yo mayā asaṃsaritapubbo iminā dīghena addhunā, aññatra suddhāvāsehi devehi.
사리뿟따여, 그러나 정거천의 신들을 빼고는,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일찍이 윤회하지 않은 그런 윤회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Suddhāvāse cāhaṃ, sāriputta, deve saṃsareyyaṃ, nayimaṃ lokaṃ punarāgaccheyyaṃ.
사리뿟따여, 만일 내가 정거천의 신들 가운데 윤회하였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태어남으로 청정해진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태어나 보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정거천의 신들 사이만 빼고 그렇다.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의 신들 사이에 태어났더라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upapattiyā suddhī’ti.
‘태어남으로 청정해진다’고.
Na kho pana sā, sāriputta, upapatti sulabharūpā yā mayā anupapannapubbā iminā dīghena addhunā, aññatra suddhāvāsehi devehi.
사리뿟따여, 그러나 정거천의 신들을 빼고는,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일찍이 태어나지 않은 그런 태어남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Suddhāvāse cāhaṃ, sāriputta, deve upapajjeyyaṃ, nayimaṃ lokaṃ punarāgaccheyyaṃ.
사리뿟따여, 만일 내가 정거천의 신들 가운데 태어났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머무는 곳으로 청정해진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머물러 보지 않은 거처는 찾기 어렵다. 정거천의 신들 사이만 빼고 그렇다. 사리뿟따여, 내가 정거천의 신들 사이에 머물렀더라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āvāsena suddhī’ti.
‘거처로 청정해진다’고.
Na kho pana so, sāriputta, āvāso sulabharūpo yo mayā anāvuṭṭhapubbo iminā dīghena addhunā, aññatra suddhāvāsehi devehi.
사리뿟따여, 그러나 정거천의 신들을 빼고는,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일찍이 머물지 않은 그런 거처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Suddhāvāse cāhaṃ, sāriputta, deve āvaseyyaṃ, nayimaṃ lokaṃ punarāgaccheyyaṃ.
사리뿟따여, 만일 내가 정거천의 신들 가운데 머물렀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제사로 청정해진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올려 보지 않은 제사는 찾기 어렵다. 왕이었든,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였든, 대부호 바라문이었든, 그런 신분으로 올렸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yaññena suddhī’ti.
‘제사로 청정해진다’고.
Na kho pana so, sāriputta, yañño sulabharūpo yo mayā ayiṭṭhapubbo iminā dīghena addhunā, tañca kho raññā vā satā khattiyena muddhāvasittena brāhmaṇena vā mahāsālena.
사리뿟따여,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일찍이 지내지 않은 그런 제사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것도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으로서거나 큰 재산을 지닌 바라문으로서 지낸 것이다.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불을 섬겨서 청정해진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섬겨 보지 않은 불은 찾기 어렵다. 왕이었든,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였든, 대부호 바라문이었든, 그런 신분으로 섬겼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aggiparicariyāya suddhī’ti.
‘불을 섬김으로 청정해진다’고.
Na kho pana so, sāriputta, aggi sulabharūpo yo mayā apariciṇṇapubbo iminā dīghena addhunā, tañca kho raññā vā satā khattiyena muddhāvasittena brāhmaṇena vā mahāsālena.
사리뿟따여,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일찍이 섬기지 않은 그런 불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것도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으로서거나 큰 재산을 지닌 바라문으로서 섬긴 것이다.
161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본다. '이 존자가 젊어서 검은 머리의 청년이고 아름다운 한창 나이일 때는, 최고의 지혜와 영민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존자가 늙고 노쇠하여 인생의 끝에 다다라, 여든이나 아흔이나 백 살이 되면, 그 지혜와 영민함이 쇠퇴한다.' 사리뿟따여,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Santi kho pana, sāriputt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사리뿟따여,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yāvadevāyaṃ bhavaṃ puriso daharo hoti yuvā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tāvadeva paramena paññāveyyattiyena samannāgato hoti.
‘이 사람이 젊고 어리며 검은 머리에 복된 젊음을 갖추어 인생의 첫 시기에 있는 동안, 꼭 그동안만 그는 더없는 지혜의 밝음을 갖추고 있다.
Yato ca kho ayaṃ bhavaṃ puriso jiṇṇo hoti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āsītiko vā nāvutiko vā vassasatiko vā jātiyā, atha tamhā paññāveyyattiyā, parihāyatī’ti.
그러나 이 사람이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세월이 흘러 인생의 끝에 이르러 태어난 지 여든이나 아흔이나 백 년이 되면, 그때에는 그 지혜의 밝음에서 물러난다’고.
Na kho panetaṃ, sāriputta, evaṃ daṭṭhabbaṃ.
사리뿟따여,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늙고 노쇠하여 인생의 끝에 다다랐다. 내 나이는 여든이다. 여기 백 년의 수명을 지니고 백 년을 사는 제자 넷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최고의 기억력과 이해력과 끈기를 갖추었고, 최고의 지혜와 영민함을 지녔다.[불확실]
Ahaṃ kho pana, sāriputta, etarahi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사리뿟따여, 그런데 나는 지금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세월이 흘러 인생의 끝에 이르렀으니, 나의 나이는 여든이 되어 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ha me assu, sāriputta, cattāro sāvakā vassasatāyukā vassasatajīvino, paramāya satiyā ca gatiyā ca dhitiyā ca samannāgatā paramena ca paññāveyyattiyena.
사리뿟따여, 여기 나에게 백 년의 수명을 지니고 백 년을 사는 네 제자가 있어, 더없는 마음챙김과 이해력과 확고함을 갖추고 더없는 지혜의 밝음을 갖추었다고 하자.
굳센 활을 가진 숙련된 궁수가 가벼운 화살을 쏜다고 하자. 그 화살은 야자나무 그림자 길이를 힘들이지 않고 가로질러 날아간다. 그 제자들은 그만큼 뛰어난 기억력과 이해력과 끈기를 갖추었고, 최고의 지혜와 영민함을 지녔다.[불확실]
Seyyathāpi, sāriputta, daḷhadhammā dhanuggaho sikkhito katahattho katūpāsano lahukena asanena appakasireneva tiriyaṃ tālacchāyaṃ atipāteyya, evaṃ adhimattasatimanto evaṃ adhimattagatimanto evaṃ adhimattadhitimanto evaṃ paramena paññāveyyattiyena samannāgatā.
사리뿟따여, 마치 굳센 활을 지닌 궁수가 훈련되고 손이 익고 연습을 쌓아 가벼운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야자나무 그림자를 가로질러 쏘아 보내듯, 그와 같이 지극한 마음챙김을 지니고, 그와 같이 지극한 이해력을 지니고, 그와 같이 지극한 확고함을 지니고, 그와 같이 더없는 지혜의 밝음을 갖추었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들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토대에 관해 하나하나 내게 질문한다고 하자. 나는 물을 때마다 그들에게 답할 것이다. 그들은 내 대답을 대답으로 잘 새길 것이고, 거듭 되묻지도 않을 것이다.
Te maṃ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upādāyupādāya pañhaṃ puccheyyuṃ, puṭṭho puṭṭho cāhaṃ tesaṃ byākareyyaṃ, byākatañca me byākatato dhāreyyuṃ, na ca maṃ dutiyakaṃ uttari paṭipuccheyyuṃ.
그들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하나하나 붙들어 나에게 물음을 묻고, 물을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고, 대답한 것을 그들이 대답한 그대로 지니고, 두 번째로 나에게 더 되묻지 않는다고 하자.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때가 있다. 대소변을 보는 때도 있고, 졸음과 피로를 푸는 때도 있다. 이런 때를 빼면, 여래의 법문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여래의 법의 말씀과 표현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여래가 질문에 응하는 재치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Aññatra asitapītakhāyitasāyitā aññatra uccārapassāvakammā, aññatra niddākilamathapaṭivinodanā apariyādinnāyevassa, sāriputta, tathāgatassa dhammadesanā, apariyādinnaṃyevassa tathāgatassa dhammapadabyañjanaṃ, apariyādinnaṃyevassa tathāgatassa pañhapaṭibhānaṃ.
사리뿟따여,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일을 빼고, 똥오줌 누는 일을 빼고, 잠과 피로를 푸는 일을 빼면, 여래의 법 설함은 다하지 않을 것이고, 여래의 법의 말과 구절은 다하지 않을 것이고, 여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백 년을 사는 그 네 제자가 백 년이 지나 죽을 것이다. 사리뿟따여, 너희가 나를 침상에 실어 모시고 다닌다 해도 여래의 지혜와 영민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Atha me te cattāro sāvakā vassasatāyukā vassasatajīvino vassasatassa accayena kālaṃ kareyyuṃ.
그러고 나서 백 년의 수명을 지니고 백 년을 사는 그 네 제자는 백 년이 지나 죽을 것이다.
Mañcakena cepi maṃ, sāriputta, pariharissatha, nevatthi tathāgatassa paññāveyyattiyassa aññathattaṃ.
사리뿟따여, 설령 그대들이 나를 침상에 실어 나른다 해도, 여래의 지혜의 밝음에는 달라짐이 없다.
사리뿟따여, 누군가 바르게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혹하지 않는 법을 지닌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하늘과 사람들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다.' 바르게 말한다면 바로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미혹하지 않는 법을 지닌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하늘과 사람들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다.'
Yaṃ kho taṃ, sāriputta, sammā vadamāno vadeyya –
사리뿟따여, 바르게 말하는 이가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mameva taṃ sammā vadamāno vadeyya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으니,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바르게 말하는 이가 말한다면 바로 나를 두고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으니,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할 것이다.”
162
그때 나가사말라 존자는 세존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nāgasamāl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ṃ bījayamāno.
그때 나가사말라 존자가 세존의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Atha kho āyasmā nāgasamāl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나가사말라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희한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법문을 듣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Api hi me, bhante, imaṃ dhammapariyāyaṃ sutvā lomāni haṭṭhāni.
세존이시여, 저는 이 법문을 듣고 털이 곤두섰습니다.
Konāmo ayaṃ, bhante, dhammapariyāyo’’ti?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나가사말라여, 너는 이 법문을 '소름 돋는 법문'이라고 새기도록 하라.
‘‘Tasmātiha tvaṃ, nāgasamāla, imaṃ dhammapariyāyaṃ lomahaṃsanapariyāyo tveva naṃ dhārehī’’ti.
“나가사말라여, 그러니 그대는 이 법문을 ‘털이 곤두서는 법문’이라고 바로 그렇게 지녀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가사말라 존자는 기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 큰 사자후의 경, 둘째 경이 끝났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āyasmā nāgasamāl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나가사말라 존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Mahāsīhanād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큰 사자후 경」이 끝났다.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