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ahādukkhakkhandhasuttaṃ
3. 큰 괴로움 무더기 경
163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여러 비구가 아침 일찍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챙겨 탁발하러 사밧티로 들어갔다. 그런데 비구들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밧티에서 탁발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차라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머무는 동산으로 가 보면 어떨까?’ 비구들은 그 동산으로 갔다. 유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반갑고 기억에 남을 덕담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sambahulā bhikkhū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ṃ piṇḍāya pāvisiṃsu.
그때 여러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사왓티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Atha kho tesaṃ bhikkhūnaṃ etadahosi –
그때 그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tippago kho tāva sāvatthiyaṃ piṇḍāya carituṃ, yaṃ nūna mayaṃ yena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ārāmo tenupasaṅkameyyāmā’’ti.
“사왓티로 탁발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우리가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가면 어떨까.”
Atha kho te bhikkhū yena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ārām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그 비구들은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갔다.
upasaṅkamitvā tehi aññatitthiyehi paribbājakehi saddhiṃ sammodiṃsu;
가서는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유행자들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물질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물질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느낌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느낌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이 점에서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 무엇이 다릅니까? 무슨 특별한 점이 있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가르침을 펴는 것은 가르침을 펴는 것대로, 훈계하는 것은 훈계하는 것대로 말입니다.”[불확실]
Ekamantaṃ nisinne kho te bhikkhū t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tadavocuṃ –
한쪽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
‘‘samaṇo, āvuso, gotamo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감각적 욕망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samaṇo, āvuso, gotamo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물질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물질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samaṇo, āvuso, gotamo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느낌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느낌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idha no, āvuso,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ṃ nānākaraṇaṃ samaṇassa vā gotamassa amhākaṃ vā –
그렇다면 벗들이여, 여기서 우리에게 무슨 차이가 있고, 무슨 어긋남이 있으며, 무엇이 다른 점인가,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불확실]
불확실 —
yadidaṃ dhammadesanāya vā dhammadesanaṃ, anusāsaniyā vā anusāsani’’nti?
곧 법문에 견주어 법문이, 훈계에 견주어 훈계가?”
비구들은 유행자들의 말에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세존 곁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자.’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tha kho te bhikkhū tesaṃ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su, nappaṭikkosiṃsu;
그때 그 비구들은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말을 받아들여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su –
기뻐하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
‘‘bhagavato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ṃ ājānissāmā’’ti.
“세존의 곁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자.”
164
비구들은 사밧티에서 탁발을 마치고 공양한 뒤, 돌아와 세존께 갔다.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아침 일찍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챙겨 탁발하러 사밧티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밧티에서 탁발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차라리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머무는 동산으로 가 보면 어떨까?’ 그래서 저희는 그 동산으로 갔습니다. 유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반갑고 기억에 남을 덕담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Atha kho te bhikkhū sāvatth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때 그 비구들은 사왓티에서 탁발하고,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는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ā kho te bhikkhū bhagavantaṃ etadavocuṃ –
한쪽에 앉은 그 비구들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dha mayaṃ, bhante,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ṃ piṇḍāya pāvisimha.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사왓티로 탁발하러 들어갔습니다.
Tesaṃ no, bhante, amhākaṃ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희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atippago kho tāva sāvatthiyaṃ piṇḍāya carituṃ, yaṃ nūna mayaṃ yena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ārāmo tenupasaṅkameyyāmā’ti.
‘사왓티로 탁발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우리가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가면 어떨까.’
Atha kho mayaṃ, bhante, yena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ārāmo tenupasaṅkamimha;
세존이시여, 그때 저희는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원림으로 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tehi aññatitthiyehi paribbājakehi saddhiṃ sammodimha;
가서는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mha.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때 유행자들이 저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물질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물질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도반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느낌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느낌을 완전히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이 점에서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 무엇이 다릅니까? 무슨 특별한 점이 있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가르침을 펴는 것은 가르침을 펴는 것대로, 훈계하는 것은 훈계하는 것대로 말입니다.’[불확실]
Ekamantaṃ nisinne kho amhe, bhante, t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tadavocu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은 저희에게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samaṇo, āvuso, gotamo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감각적 욕망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Samaṇo, āvuso, gotamo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물질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물질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Samaṇo, āvuso, gotamo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ti, mayampi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apema.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느낌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우리도 느낌에 대한 온전한 앎을 밝혀 보인다.
Idha no, āvuso,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ṃ nānākaraṇaṃ samaṇassa vā gotamassa amhākaṃ vā, yadidaṃ dhammadesanāya vā dhammadesanaṃ anusāsaniyā vā anusāsani’nti.
그렇다면 벗들이여, 여기서 우리에게 무슨 차이가 있고, 무슨 어긋남이 있으며, 무엇이 다른 점인가,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 곧 법문에 견주어 법문이, 훈계에 견주어 훈계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희는 유행자들의 말에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세존 곁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자.’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Atha kho mayaṃ, bhante, tesaṃ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bhāsitaṃ neva abhinandimha, nappaṭikkosimha;
세존이시여, 그때 저희는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의 말을 받아들여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mha –
기뻐하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
‘bhagavato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ṃ ājānissāmā’’’ti.
‘세존의 곁에서 이 말의 뜻을 알아보자.’”
165
“비구들이여, 그렇게 말하는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에게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도반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그 위험은 무엇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물질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그 위험은 무엇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느낌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그 위험은 무엇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유행자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질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의 영역이 아닌 것을 물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세상을 둘러보자. 사문과 바라문, 신과 사람을 통틀어 보아도 이 물음에 답하여 마음에 들게 해 줄 수 있는 이는 없다. 오직 여래나 여래의 제자, 또는 그들에게 들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불확실]
‘‘Evaṃvādin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massu vacanīyā –
비구들이여, 그렇게 말하는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ko panāvuso, kāmānaṃ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ṃ?
“그렇다면 벗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Ko rūpānaṃ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ṃ?
물질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Ko vedanānaṃ assādo, ko ādīnavo, kiṃ nissaraṇa’nti?
느낌의 달콤함은 무엇이고, 위험은 무엇이며, 벗어남은 무엇인가?”
Evaṃ puṭṭh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na ceva sampāyissanti, uttariñca vighātaṃ āpajjissan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물으면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은 대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곤혹에 빠질 것이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athā taṃ, bhikkhave, avisayasmiṃ.
비구들이여, 마치 자기 영역이 아닌 데서 그러하듯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āhaṃ taṃ, bhikkhave,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o imesaṃ pañhānaṃ veyyākaraṇena cittaṃ ārādheyya, aññatra tathāgatena vā tathāgatasāvakena vā, ito vā pana sutvā.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마음을 흡족하게 할 자를 나는 보지 못한다. 여래나 여래의 제자, 또는 이로부터 들은 이를 빼고는.
166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은 무엇인가?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은 바람직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호감이 간다.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탐할 만하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이 다섯 가지 대상을 의지해서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이다.
‘‘Ko ca, bhikkhave, kāmānaṃ assādo?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은 무엇인가?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이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
눈으로 알아지는 물질로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욕을 일으키는 것, 귀로 알아지는 소리로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욕을 일으키는 것, 코로 알아지는 냄새로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욕을 일으키는 것, 혀로 알아지는 맛으로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욕을 일으키는 것, 몸으로 알아지는 감촉으로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것, 감각적 욕망과 결부된 것, 탐욕을 일으키는 것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22:190.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kho, bhikkhave, pañca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이다.
Yaṃ kho, bhikkhave, ime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거움과 기쁨 —
ayaṃ kāmānaṃ assādo.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이다.
167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위험은 무엇인가? 좋은 집안의 아들이 어떤 기술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하자. 손가락셈이든 계산이든 회계든, 농사든 장사든 소 치기든, 활쏘기든 왕의 시종이든, 그 밖의 어떤 기술이든 좋다. 그는 추위와 더위에 시달린다. 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햇볕과 기어 다니는 벌레에 닿아 고통받고,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을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Ko ca,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위험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kulaputto yena sippaṭṭhānena jīvikaṃ kappeti –
비구들이여, 여기 좋은 가문의 아들이 어떤 기술로 생계를 꾸린다 —
yadi muddāya yadi gaṇanāya yadi saṅkhānena yadi kasiyā yadi vaṇijjāya yadi gorakkhena yadi issatthena yadi rājaporisena yadi sippaññatarena –
손가락셈이든, 셈이든, 계산이든, 농사든, 장사든, 소치기든, 활쏘기든, 왕을 섬기는 일이든, 그 밖의 어떤 기술이든 —
sītassa purakkhato uṇhassa purakkhato ḍaṃsamakasavātātapasarīṃsapasamphassehi rissamāno khuppipāsāya mīyamāno;
추위를 앞에 두고 더위를 앞에 두고, 등에와 모기와 바람과 햇볕과 기어다니는 것들에 닿아 상하며,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 가면서.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비구들이여, 그 좋은 집안의 아들이 이렇게 일어나 애쓰고 노력하는데도 재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슬퍼하고 지치고 탄식한다. 가슴을 치며 울다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 노력은 정말 헛되구나. 내 애씀은 정말 열매가 없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Tassa ce, bhikkhave, kulaputtassa evaṃ uṭṭhahato ghaṭato vāyamato te bhogā nābhinipphajjanti.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이렇게 일어나고 애쓰고 힘써도 그 재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
그는 슬퍼하고 지치고 비탄하며 가슴을 치며 울고 혼미에 빠진다 —
‘moghaṃ vata me uṭṭhānaṃ, aphalo vata me vāyāmo’ti.
“아, 내 일어남은 헛되었구나. 아, 내 애씀은 열매가 없구나.”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비구들이여, 이번에는 그 사람이 이렇게 일어나 애쓰고 노력해서 재물이 생겼다고 하자. 그는 그 재물을 지켜야 하므로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어떻게 하면 내 재물을 왕들이 빼앗아 가지 않고, 도둑들이 훔쳐 가지 않을까? 불이 태우지 않고, 물이 쓸어 가지 않고, 미운 상속자들이 가져가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걱정한다. 그렇게 지키고 보호하는데도 재물을 잃는 일이 생긴다. 왕들이 빼앗아 가기도 하고, 도둑들이 훔쳐 가기도 한다. 불이 태우기도 하고, 물이 쓸어 가기도 하고, 미운 상속자들이 가져가기도 한다. 그는 슬퍼하고 지치고 탄식한다. 가슴을 치며 울다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게 있던 것이 이제 없어졌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Tassa ce, bhikkhave, kulaputtassa evaṃ uṭṭhahato ghaṭato vāyamato te bhogā abhinipphajjanti.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이렇게 일어나고 애쓰고 힘써서 그 재물이 이루어진다면.
So tesaṃ bhogānaṃ ārakkhādhikaraṇ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
그는 그 재물을 지키느라 괴로움과 불만을 겪는다 —
‘kinti me bhoge neva rājāno hareyyuṃ, na corā hareyyuṃ, na aggi daheyya, na udakaṃ vaheyya, na appiyā dāyādā hareyyu’nti.
“어떻게 하면 내 재물을 왕들이 가져가지 않고, 도둑이 가져가지 않고, 불이 태우지 않고, 물이 쓸어가지 않고, 달갑지 않은 상속자들이 가져가지 않을까.”
Tassa evaṃ ārakkhato gopayato te bhoge rājāno vā haranti, corā vā haranti, aggi vā dahati, udakaṃ vā vahati, appiyā vā dāyādā haranti.
그가 이렇게 지키고 보호하는데도 그 재물을 왕들이 가져가거나, 도둑이 가져가거나, 불이 태우거나, 물이 쓸어가거나, 달갑지 않은 상속자들이 가져간다.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
그는 슬퍼하고 지치고 비탄하며 가슴을 치며 울고 혼미에 빠진다 —
‘yampi me ahosi tampi no natthī’ti.
“내게 있던 것마저 이제는 없구나.”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168
비구들이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다툰다. 왕은 왕과, 크샤트리아는 크샤트리아와 다툰다. 바라문은 바라문과, 장자는 장자와 다툰다. 어머니는 아들과, 아들은 어머니와 다툰다. 아버지는 아들과, 아들은 아버지와 다툰다. 형제는 형제와, 형제는 자매와, 자매는 형제와 다툰다. 친구는 친구와 다툰다. 그들은 싸움과 분쟁과 언쟁에 휘말려 서로 주먹으로 치고, 흙덩이로 치고, 몽둥이로 치고, 칼로 친다. 그러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rājānopi rājūhi vivadanti, khattiyāpi khattiyehi vivadanti, brāhmaṇāpi brāhmaṇehi vivadanti, gahapatīpi gahapatīhi vivadanti, mātāpi puttena vivadati, puttopi mātarā vivadati, pitāpi puttena vivadati, puttopi pitarā vivadati, bhātāpi bhātarā vivadati, bhātāpi bhaginiyā vivadati, bhaginīpi bhātarā vivadati, sahāyopi sahāyena vivadati.
다시 또,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여, 왕들도 왕들과 다투고, 끄샤뜨리야들도 끄샤뜨리야들과 다투고, 바라문들도 바라문들과 다투고, 장자들도 장자들과 다투고, 어머니도 아들과 다투고, 아들도 어머니와 다투고, 아버지도 아들과 다투고, 아들도 아버지와 다투고, 형제도 형제와 다투고, 형제도 자매와 다투고, 자매도 형제와 다투고, 벗도 벗과 다툰다.
Te tattha kalahaviggaha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pāṇīhipi upakkamanti, leḍḍūhipi upakkamanti, daṇḍehipi upakkamanti, satthehipi upakkamanti.
그들은 거기서 다툼과 싸움과 논쟁에 빠져 서로에게 주먹으로도 덤벼들고, 흙덩이로도 덤벼들고, 몽둥이로도 덤벼들고, 칼로도 덤벼든다.
Te tattha maraṇampi nigacchanti, maraṇamattampi dukkhaṃ.
그들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움에 이르기도 한다.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비구들이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터로 뛰어든다.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통을 매고서, 양쪽으로 진을 친 곳으로 들어간다. 화살이 날아다니고 창이 날아다니며 칼날이 번쩍이는 곳이다. 그들은 거기서 화살에 맞고, 창에 찔리고, 칼에 목이 잘린다. 그러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asicammaṃ gahetvā, dhanukalāpaṃ sannayhitvā, ubhatobyūḷhaṃ saṅgāmaṃ pakkhandanti usūsupi khippamānesu, sattīsupi khippamānāsu, asīsupi vijjotalantesu.
다시 또,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여,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양쪽으로 진을 친 싸움터로 뛰어든다. 화살이 날아들고, 창이 날아들고, 칼이 번쩍이는 가운데.
Te tattha usūhipi vijjhanti, sattiyāpi vijjhanti, asināpi sīsaṃ chindanti.
그들은 거기서 화살로 찌르기도 하고, 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칼로 머리를 베기도 한다.
Te tattha maraṇampi nigacchanti, maraṇamattampi dukkhaṃ.
그들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움에 이르기도 한다.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비구들이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성벽으로 돌진한다.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통을 매고서, 진흙을 바른 성벽으로 달려든다. 화살이 날아다니고 창이 날아다니며 칼날이 번쩍이는 곳이다. 그들은 거기서 화살에 맞고, 창에 찔린다. 끓는 쇠똥물을 뒤집어쓰고, 무거운 문짝에 깔리고, 칼에 목이 잘린다. 그러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asicammaṃ gahetvā, dhanukalāpaṃ sannayhitvā, addāvalepanā upakāriyo pakkhandanti usūsupi khippamānesu, sattīsupi khippamānāsu, asīsupi vijjotalantesu.
다시 또,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여,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젖은 진흙을 바른 요새로 뛰어든다. 화살이 날아들고, 창이 날아들고, 칼이 번쩍이는 가운데.
Te tattha usūhipi vijjhanti, sattiyāpi vijjhanti, chakaṇakāyapi osiñcanti, abhivaggenapi omaddanti, asināpi sīsaṃ chindanti.
그들은 거기서 화살로 찌르기도 하고, 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끓는 쇠똥을 끼얹기도 하고, 내리치는 무기로 짓뭉개기도 하고, 칼로 머리를 베기도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tattha maraṇampi nigacchanti, maraṇamattampi dukkhaṃ.
그들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움에 이르기도 한다.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169
비구들이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짓는다. 남의 집 벽을 뚫고 재물을 약탈한다. 외딴집을 털고,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강도질을 한다. 남의 아내와 간통하기도 한다. 왕들은 그런 자를 붙잡아 갖가지 형벌을 가한다. 채찍으로도 때리고, 회초리로도 때리고, 굵은 몽둥이로도 때린다. 손도 자르고, 발도 자르고, 손과 발을 함께 자른다. 귀도 자르고, 코도 자르고, 귀와 코를 함께 자른다. 머리 가죽을 벗기고 뇌를 끓이는 형벌도 가한다. 소라 모양으로 머리털을 뽑기도 하고, 라후의 입처럼 입을 벌려 불을 채우기도 한다. 온몸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손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껍질을 끈처럼 벗겨 내기도 하고, 나무껍질 옷처럼 가죽을 벗기기도 한다. 영양처럼 팔꿈치와 무릎을 쇠고리로 꿰어 세우기도 한다. 갈고리로 살을 베어 내기도 하고, 동전만큼씩 살을 도려내기도 한다. 잿물을 끼얹어 긁어내기도 하고, 빗장처럼 몸을 비틀어 돌리기도 한다. 짚방석처럼 뼈를 으깨기도 한다. 펄펄 끓는 기름을 끼얹기도 하고, 개들에게 먹이기도 한다. 산 채로 꼬챙이에 꿰기도 하고, 칼로 목을 베기도 한다. 그들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sandhimpi chindanti, nillopampi haranti, ekāgārikampi karonti, paripanthepi tiṭṭhanti, paradārampi gacchanti.
다시 또,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여, 집의 벽을 뚫기도 하고, 약탈물을 가져가기도 하고, 외딴집을 털기도 하고, 길목을 지키고 서 있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한다.
Tamenaṃ rājāno gahetvā vividhā kammakāraṇā kārenti –
그를 왕들이 붙잡아 갖가지 고문을 가한다 —
kasāhipi tāḷenti, vettehipi tāḷenti, aḍḍhadaṇḍakehipi tāḷenti;
채찍으로 때리기도 하고,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고, 반 토막 몽둥이로 때리기도 한다.
hatthampi chindanti, pādampi chindanti, hatthapādampi chindanti, kaṇṇampi chindanti, nāsampi chindanti, kaṇṇanāsampi chindanti;
손을 자르기도 하고, 발을 자르기도 하고, 손발을 자르기도 하고, 귀를 자르기도 하고, 코를 자르기도 하고, 귀와 코를 자르기도 한다.
bilaṅgathālikampi karonti, saṅkhamuṇḍikampi karonti, rāhumukhampi karonti, jotimālikampi karonti, hatthapajjotikampi karonti, erakavattikampi karonti, cīrakavāsikampi karonti, eṇeyyakampi karonti, baḷisamaṃsikampi karonti, kahāpaṇikampi karonti, khārāpatacchikampi karonti, palighaparivattikampi karonti, palālapīṭhakampi karonti, tattenapi telena osiñcanti, sunakhehipi khādāpenti, jīvantampi sūle uttāsenti, asināpi sīsaṃ chindanti.
‘시큼한 죽 항아리’를 가하기도 하고, ‘소라 껍질처럼 밀기’를 가하기도 하고, ‘라후의 입’을 가하기도 하고, ‘불꽃 화환’을 가하기도 하고, ‘손 횃불’을 가하기도 하고, ‘풀줄기 감기’를 가하기도 하고, ‘나무껍질 옷 입히기’를 가하기도 하고, ‘검은 사슴’을 가하기도 하고, ‘갈고리로 살 뜯기’를 가하기도 하고, ‘동전 오려 내기’를 가하기도 하고, ‘잿물로 살 벗기기’를 가하기도 하고, ‘빗장 돌리기’를 가하기도 하고, ‘짚 방석’을 가하기도 하고, 끓는 기름을 끼얹기도 하고, 개들에게 뜯어 먹게 하기도 하고, 산 채로 말뚝에 꿰기도 하고, 칼로 머리를 베기도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tattha maraṇampi nigacchanti, maraṇamattampi dukkhaṃ.
그들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움에 이르기도 한다.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ndiṭṭh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비구들이여, 또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한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 불행한 곳, 나쁜 곳, 파멸의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은 다음 생에서 겪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다. 오직 감각적 욕망 때문에,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바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kāyena duccaritaṃ caranti, vācāya duccaritaṃ caranti, manasā duccaritaṃ caranti.
다시 또,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Te kāyena duccaritaṃ caritvā, vācāya duccaritaṃ caritvā, manasā duccaritaṃ cari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nti.
그들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Ayampi, bhikkhave, kāmānaṃ ādīnavo samparāyiko, dukkhakkhandho kāmahetu kāmanidānaṃ kāmādhikaraṇaṃ kāmānameva hetu.
비구들이여, 이것도 감각적 욕망의 위험이니, 다음 생에 속하는 것이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이유로 하고 오직 감각적 욕망만을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 무더기다.
170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의욕과 탐욕을 다스려 없애고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Kiñca, bhikkhave, kāmānaṃ nissaraṇ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이란 무엇인가?
Yo kho, bhikkhave, kāmesu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와 탐욕을 없앰, 욕구와 탐욕을 버림 —
idaṃ kāmānaṃ nissaraṇaṃ.
이것이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스스로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 수는 없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kām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kāme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kāme parijānissatīti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있지 않다.
반대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하자. 그런 이라면 스스로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 수 있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kām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kāme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kāme parijānissatīti –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면,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있다.
171
비구들이여, 형상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크샤트리아나 바라문이나 장자의 딸이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쯤 되었다고 하자. 키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다. 몸은 너무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다. 얼굴빛은 너무 검지도 희지도 않다. 비구들이여, 그때 그녀의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은 더없이 빼어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 때문에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형상의 즐거움이다.
‘‘Ko ca, bhikkhave, rūpānaṃ assādo?
“그러면 비구들이여, 물질의 달콤함이란 무엇인가?
Seyyathāpi, bhikkhave, khattiyakaññā vā brāhmaṇakaññā vā gahapatikaññā vā pannarasavassuddesikā vā soḷasavassuddesikā vā, nātidīghā nātirassā nātikisā nātithūlā nātikāḷī nāccodātā paramā sā, bhikkhave, tasmiṃ samaye subhā vaṇṇanibhāti?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끄샤뜨리야 처녀나 바라문 처녀나 장자의 딸이 열다섯 살이나 열여섯 살쯤 되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고, 너무 마르지도 너무 살찌지도 않고, 너무 검지도 너무 희지도 않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때가 그 여인의 아름답고 고운 빛깔이 가장 빼어난 때가 아니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Yaṃ kho, bhikkhave, subhaṃ vaṇṇanibh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비구들이여,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거움과 기쁨 —
ayaṃ rūpānaṃ assādo.
이것이 물질의 달콤함이다.
비구들이여, 형상의 위험은 무엇인가? 훗날 어떤 사람이 바로 그 누이를 다시 본다고 하자. 그녀는 여든이나 아흔이나 백 살이 되었다. 서까래처럼 늙어 휘고 구부정하다. 지팡이를 짚고 떨면서 걷는다. 병들었고 젊음은 가 버렸다. 이는 빠지고 머리는 세었다. 머리카락은 성글어 대머리가 되었고, 주름진 몸에는 검버섯이 가득하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불확실]
‘‘Ko ca,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그러면 비구들이여, 물질의 위험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āsītikaṃ vā nāvutikaṃ vā vassasatikaṃ vā jātiyā, jiṇṇaṃ gopānasivaṅkaṃ bhoggaṃ daṇḍaparāyanaṃ pavedhamānaṃ gacchantiṃ āturaṃ gatayobbanaṃ khaṇḍadantaṃ palitakesaṃ, vilūnaṃ khalitasiraṃ valinaṃ tilakāhatagattaṃ.
비구들이여, 여기 바로 그 자매를 나중에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이나 백 살이 되어, 늙고, 서까래처럼 굽고, 꺾이고, 지팡이에 의지하고, 떨면서 걸어가고, 병약하고, 젊음이 가고, 이가 부러지고, 머리가 세고, 머리털이 빠져 정수리가 벗어지고, 주름지고, 온몸에 검버섯이 돋은 것을 본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또 그 누이가 병들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녀는 심하게 앓고 있다. 제 똥오줌 속에 빠져 누워 있다. 남들이 일으켜 주고 남들이 뉘어 주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ābādhikaṃ dukkhitaṃ bāḷhagilānaṃ, sake muttakarīse palipannaṃ semānaṃ, aññehi vuṭṭhāpiyamānaṃ, aññehi saṃvesiyamānaṃ.
“또한 비구들이여, 바로 그 자매가 병들고 괴로워하며 몹시 앓아, 제 똥오줌에 파묻혀 누워 있고, 남들이 일으켜 주고 남들이 눕혀 주는 것을 본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172
비구들이여, 또 그 누이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내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지났다. 몸은 부풀고 검푸르게 변해 곪아 간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
“또한 비구들이여, 바로 그 자매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
ekāhamataṃ vā dvīhamataṃ vā tīhamataṃ vā, uddhumātakaṃ vinīlakaṃ vipubbakajātaṃ.
죽은 지 하루가 되었거나 이틀이 되었거나 사흘이 되어, 부풀고 검푸르고 고름이 흐르는 것을.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또 그 누이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내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까마귀와 솔개와 독수리와 왜가리가 몸을 쪼아 먹는다. 개와 호랑이와 표범과 자칼이 물어뜯는다. 온갖 벌레들도 파먹는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
“또한 비구들이여, 바로 그 자매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
kākehi vā khajjamānaṃ, kulalehi vā khajjamānaṃ, gijjhehi vā khajjamānaṃ, kaṅkehi vā khajjamānaṃ, sunakhehi vā khajjamānaṃ, byagghehi vā khajjamānaṃ, dīpīhi vā khajjamānaṃ, siṅgālehi vā khajjamānaṃ, vividhehi vā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ṃ.
까마귀들에게 먹히고, 매들에게 먹히고, 독수리들에게 먹히고, 왜가리들에게 먹히고, 개들에게 먹히고, 호랑이들에게 먹히고, 표범들에게 먹히고, 자칼들에게 먹히고, 온갖 작은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또 그 누이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내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해골 뼈대가 힘줄로 이어져 있다. 살과 피가 아직 붙어 있기도 하다. 살은 없이 피만 묻어 있기도 하다.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져 있기도 하다. 이어짐이 풀린 뼈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다. 여기에는 손뼈가 있고 저기에는 발뼈가 있다. 발목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엉덩이뼈, 갈비뼈, 등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이 흩어져 있다. 해골도 그 가운데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
“또한 비구들이여, 바로 그 자매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
aṭṭhikasaṅkhalikaṃ s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 aṭṭhikasaṅkhalikaṃ nimaṃsalohitamakkhitaṃ nhārusambandhaṃ, aṭṭhikasaṅkhalikaṃ apagat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vidisāvikkhittāni –
뼈로 된 사슬이 살과 피가 붙은 채 힘줄로 이어진 것, 뼈로 된 사슬이 살은 없고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이어진 것, 뼈로 된 사슬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 이어진 것, 뼈들이 이어진 데가 풀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것 —
aññena hatthaṭṭhikaṃ, aññena pādaṭṭhikaṃ,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ṃ,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ṃ, aññena ūruṭṭhikaṃ, aññena kaṭiṭṭhikaṃ,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ṃ,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ṃ, aññena khandhaṭṭhikaṃ, aññena gīvaṭṭhikaṃ, aññena hanukaṭṭhikaṃ, aññena dantaṭṭhikaṃ, aññena sīsakaṭāhaṃ.
다른 데에 손뼈, 다른 데에 발뼈, 다른 데에 발목뼈, 다른 데에 정강이뼈, 다른 데에 넓적다리뼈, 다른 데에 엉덩이뼈, 다른 데에 갈비뼈, 다른 데에 등뼈, 다른 데에 어깨뼈, 다른 데에 목뼈, 다른 데에 턱뼈, 다른 데에 이빨, 다른 데에 두개골.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또 그 누이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내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뼈들은 조개껍데기처럼 하얗다. 무더기로 쌓인 채 해를 넘겼다. 썩어서 가루가 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의 아름답고 빛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험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도 형상의 위험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tameva bhaginiṃ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
“또한 비구들이여, 바로 그 자매의 몸이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것을 본다고 하자 —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뼈들이 하얗게 되어 소라 빛깔 같은 것, 뼈들이 한 해가 넘도록 무더기로 쌓인 것, 뼈들이 삭아 가루가 된 것을.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ā purimā subhā vaṇṇanibhā sā antarahitā, ādīnavo pātubhūto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의 그 아름답고 고운 빛깔은 사라지고 위험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Ayampi, bhikkhave, rūpānaṃ ādīnavo.
비구들이여, 이것도 물질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형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형상에 대한 의욕과 탐욕을 다스려 없애고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형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Kiñca, bhikkhave, rūpānaṃ nissaraṇ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물질에서 벗어남이란 무엇인가?
Yo, bhikkhave, rūpesu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비구들이여, 물질들에 대한 욕구와 탐욕을 없앰, 욕구와 탐욕을 버림 —
idaṃ rūpānaṃ nissaraṇaṃ.
이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형상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스스로 형상을 철저히 알 수는 없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형상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rūpe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rūpe parijānissatīti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물질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물질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있지 않다.
반대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형상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하자. 그런 이라면 스스로 형상을 철저히 알 수 있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형상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rūpe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rūpe parijānissatīti –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면,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물질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물질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있다.
173
비구들이여, 느낌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여기 어떤 비구가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난다. 해로운 것들에서도 벗어난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살핌이 있고, 홀로 있음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비구가 이렇게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낼 때, 그는 자신을 해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해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둘 모두를 해치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때 그는 해로움이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나는 해로움 없음이 으뜸인 것을 느낌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Ko ca, bhikkhave, vedanānaṃ assādo?
“그러면 비구들이여, 느낌의 달콤함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neva tasmiṃ samaye 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비구들이여, 비구가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무는 그때에는, 그때 자기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다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abyābajjhaṃyeva tasmiṃ samaye vedanaṃ vedeti.
그때 그는 해침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Abyābajjhaparamāhaṃ, bhikkhave, vedanānaṃ assādaṃ vadāmi.
비구들이여, 나는 해침 없음을 으뜸으로 하는 것을 느낌의 달콤함이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또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살핌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한곳으로 모인다. 그리하여 일으킨 생각도 살핌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셋째 선정에서는 기쁨에 대한 욕심마저 사라진다. 비구는 평온하게 지내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안다.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데, 성자들은 이를 두고 평온하고 알아차림이 있어 즐겁게 지낸다고 말한다. 비구는 그 셋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넷째 선정에서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이미 사라졌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알아차림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비구가 이렇게 지낼 때, 그는 자신을 해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해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둘 모두를 해치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때 그는 해로움이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나는 해로움 없음이 으뜸인 것을 느낌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pe…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무는 그때에는, 그때 자기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다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해침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나는 해침 없음을 으뜸으로 하는 것을 느낌의 달콤함이라고 말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이 가시고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껴,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희열이 가시고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성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그때에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173.3 ~ PN:mn13/173.5에서 되살렸습니다.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pe…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neva tasmiṃ samaye 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무는 그때에는, 그때 자기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다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해침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나는 해침 없음을 으뜸으로 하는 것을 느낌의 달콤함이라고 말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무는 그때에는, 그때 자기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다를 해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173.3 ~ PN:mn13/173.5에서 되살렸습니다.
abyābajjhaṃyeva tasmiṃ samaye vedanaṃ vedeti.
그때 그는 해침 없는 느낌만을 느낀다.
Abyābajjhaparamāhaṃ, bhikkhave, vedanānaṃ assādaṃ vadāmi.
비구들이여, 나는 해침 없음을 으뜸으로 하는 것을 느낌의 달콤함이라고 말한다.
174
비구들이여, 느낌의 위험은 무엇인가?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성질을 지녔다.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
‘‘Ko ca, bhikkhave, vedanānaṃ ādīnavo?
“그러면 비구들이여, 느낌의 위험이란 무엇인가?
Yaṃ, bhikkhave, vedanā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 –
비구들이여,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변하기 마련인 것 —
ayaṃ vedanānaṃ ādīnavo.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느낌에 대한 의욕과 탐욕을 다스려 없애고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느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Kiñca, bhikkhave, vedanānaṃ nissaraṇ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벗어남이란 무엇인가?
Yo, bhikkhave, vedanāsu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비구들이여, 느낌들에 대한 욕구와 탐욕을 없앰, 욕구와 탐욕을 버림 —
idaṃ vedanānaṃ nissaraṇaṃ.
이것이 느낌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느낌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스스로 느낌을 철저히 알 수는 없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느낌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vedanaṃ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vedanaṃ parijānissatīti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느낌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느낌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있지 않다.
반대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느낌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그 위험을 위험으로, 거기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고 하자. 그런 이라면 스스로 느낌을 철저히 알 수 있다. 남을 이끌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여 느낌을 철저히 알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ānaṃ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vata sāmaṃ vā vedanaṃ parijānissanti, paraṃ vā tathattāya samādapessanti yathā paṭipanno vedanaṃ parijānissatīti –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의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면, 그들이 참으로 스스로 느낌을 철저히 알거나, 닦아 나아간 이가 느낌을 철저히 알게 되는 그런 상태로 남을 이끌리라는 것 —
ṭhānametaṃ vijjatī’’ti.
이런 도리는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큰 괴로움 더미의 경, 셋째가 끝났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dukkhakkhandhasuttaṃ niṭṭhitaṃ tatiyaṃ.
「괴로움의 큰 무더기 경」이 끝났다. 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