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Araṇavibhaṅgasuttaṃ
9. 다툼 없음의 분석 경
323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존귀하신 분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다툼 없음의 분석'을 설하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비구들은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raṇavibhaṅgaṃ vo, bhikkhave, desessām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툼 없음의 분석을 설하겠다.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그것을 잘 들어라, 마음을 다해 새겨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도 없다. 또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다.
‘‘Na kāmasukhamanuyuñjeyya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na ca attakilamathānuyogamanuyuñjeyya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 몰두해서는 안 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는 중도를 깨달았다. 이 길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든다. 고요함과 곧바른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Ete kho,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추켜세움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도 알아야 한다. 이 둘을 알아서 추켜세우지도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
Ussādanañca jaññā, apasādanañca jaññā;
치켜세움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을 알아야 한다.
ussādanañca ñatvā apasādanañca ñatvā nevussādeyya, na apasādeyya, dhammameva deseyya.
치켜세움을 알고 깎아내림을 알고서, 치켜세우지도 말고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서 안으로 얻는 즐거움에 힘써야 한다.
Sukhavinicchayaṃ jaññā;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sukhavinicchayaṃ ñatvā ajjhattaṃ sukhamanuyuñjeyya.
즐거움의 판별을 알고서 안으로 즐거움에 몰두해야 한다.
뒤에서 몰래 흉보지 말라. 면전에서 모욕하는 말도 하지 말라. 서두르지 말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 말해서는 안 된다.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말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말라.
Rahovādaṃ na bhāseyya, sammukhā na khīṇaṃ bhaṇe.
몰래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면전에서 헐뜯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Ataramānova bhāseyya, no taramāno.
서두르지 않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서는 안 된다.
Janapadaniruttiṃ nābhiniveseyya, samaññaṃ nātidhāveyyāti –
지방 말을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통칭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
이것이 '다툼 없음의 분석'의 요약이다.
ayamuddeso araṇavibhaṅgassa.
이것이 다툼 없음의 분석의 개요이다.
324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도 없다. 또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Na kāmasukhamanuyuñjeyya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na ca attakilamathānuyogamanuyuñjeyya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nti –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 몰두해서는 안 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는 이가 기쁨에 몰두한다. 이는 저열하고 촌스럽다.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며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이 없다.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Yo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iko anariy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는 자의,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함,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는 이가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다. 이는 저열하고 촌스러운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며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이 없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Yo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anuyogo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지 않음,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다.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Yo attakilamathānuyogo dukkho anariy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함,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Yo attakilamathānuyogaṃ ananuyogo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 않음,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도 없다. 또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Na kāmasukhamanuyuñjeyya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na ca attakilamathānuyogaṃ anuyuñjeyya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nti –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 몰두해서는 안 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25
'비구들이여, 여래는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는 중도를 깨달았다. 이 길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든다. 고요함과 곧바른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Ete kho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ī’ti –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바로 이 여덟 갈래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새김, 바른 집중이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바로 이 여덟 갈래의 성스러운 길이니, 곧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는 중도를 깨달았다. 이 길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든다. 고요함과 곧바른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Ete kho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ī’ti –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26
'추켜세움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도 알아야 한다. 이 둘을 알아서 추켜세우지도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Ussādanañca jaññā, apasādanañca jaññā;
‘치켜세움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을 알아야 한다;
ussādanañca ñatvā apasādanañca ñatvā nevussādeyya, na apasādeyya, dhammameva deseyyā’ti –
치켜세움을 알고 깎아내림을 알고서, 치켜세우지도 말고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어떻게 하면 추켜세움과 깎아내림만 있고 법을 설함은 없게 되는가?
Kathañca, bhikkhave, ussādanā ca hoti apasādanā ca, no ca dhammadesanā?
비구들이여, 어떻게 치켜세움이 있고 깎아내림이 있으며, 법을 설함은 없는가?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며 기쁨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깎아내린다.
‘Ye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uyuttā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면서,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apa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깎아내린다.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추켜세운다.
‘‘‘Ye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anuyuttā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us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치켜세운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깎아내린다.
‘‘‘Ye attakilamathānuyogaṃ anuyuttā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apa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깎아내린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추켜세운다.
‘‘‘Ye attakilamathānuyogaṃ ananuyuttā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 않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us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치켜세운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아직 끊지 못한 이들은 누구든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깎아내린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ṃyojanaṃ appahīn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누구든 존재의 족쇄를 버리지 못한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apa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깎아내린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이미 끊은 이들은 누구든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추켜세운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ṃyojanaṃ pahīn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누구든 존재의 족쇄를 버린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iti vadaṃ ittheke ussādeti.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이들을 치켜세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추켜세움과 깎아내림만 있고 법을 설함은 없게 된다.
Evaṃ kho, bhikkhave, ussādanā ca hoti apasādanā ca, no ca dhammadesanā.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치켜세움이 있고 깎아내림이 있으며, 법을 설함은 없다.
327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하면 추켜세움도 깎아내림도 없이 법을 설하게 되는가?
‘‘Kathañca, bhikkhave, nevussādanā hoti na apasādanā, dhammadesanā ca?
비구들이여, 어떻게 치켜세움도 없고 깎아내림도 없으며, 법을 설함이 있는가?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며 기쁨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몰두하면,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른다. 그것은 잘못된 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uyuttā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면서,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Anuyogo ca kh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몰두함, 그것이야말로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는 법이다;
micchāpaṭipadā’ti –
그릇된 도닦음이다’라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그것은 바른 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anuyuttā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Ananuyogo ca kho,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몰두하지 않음, 그것이야말로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는 법이다;
sammāpaṭipadā’ti –
바른 도닦음이다’라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몰두하면,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른다. 그것은 잘못된 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 attakilamathānuyogaṃ anuyuttā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Anuyogo ca kh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몰두함, 그것이야말로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는 법이다;
micchāpaṭipadā’ti –
그릇된 도닦음이다’라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그것은 바른 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 attakilamathānuyogaṃ ananuyuttā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 않는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Ananuyogo ca kho,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몰두하지 않음, 그것이야말로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는 법이다;
sammāpaṭipadā’ti –
바른 도닦음이다’라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아직 끊지 못한 이들은 누구든 모두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르고 번민이 따르고 열병이 따르는,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아직 끊지 못했다면, 존재 또한 아직 끊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ṃyojanaṃ appahīn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ti –
‘누구든 존재의 족쇄를 버리지 못한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으며 그릇되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Bhavasaṃyojane ca kho appahīne bhavopi appahīno hotī’ti –
‘존재의 족쇄가 버려지지 않았을 때 존재도 버려지지 않는다’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이미 끊은 이들은 누구든 모두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는,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존재에 묶는 속박을 끊었다면, 존재 또한 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ṃyojanaṃ pahīnaṃ, sabbe te adukkhā anupaghātā anupāyāsā apariḷāhā sammāpaṭipannā’ti –
‘누구든 존재의 족쇄를 버린 자들, 그들은 모두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으며 바르게 닦는 자들이다’라고 —
na evamāha.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Bhavasaṃyojane ca kho pahīne bhavopi pahīno hotī’ti –
‘존재의 족쇄가 버려졌을 때 존재도 버려진다’고 —
iti vadaṃ dhammameva deseti.
이렇게 말하면서 오직 법만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추켜세움도 깎아내림도 없이 법을 설하게 된다. '추켜세움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도 알아야 한다. 이 둘을 알아서 추켜세우지도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Evaṃ kho, bhikkhave, nevussādanā hoti na apasādanā, dhammadesanā ca.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치켜세움도 없고 깎아내림도 없으며, 법을 설함이 있다.
‘Ussādanañca jaññā, apasādanañca jaññā;
‘치켜세움을 알아야 하고, 깎아내림을 알아야 한다;
ussādanañca ñatvā apasādanañca ñatvā nevussādeyya, na apasādeyya, dhammameva deseyyā’ti –
치켜세움을 알고 깎아내림을 알고서, 치켜세우지도 말고 깎아내리지도 말고, 오직 법만을 설해야 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28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서 안으로 얻는 즐거움에 힘써야 한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Sukhavinicchayaṃ jaññā;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sukhavinicchayaṃ ñatvā ajjhattaṃ sukhamanuyuñjeyyā’ti –
즐거움의 판별을 알고서 안으로 즐거움에 몰두해야 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이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 가운데 원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다운 것이 있다. 욕망과 맞닿아 욕정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 코로 알 수 있는 냄새, 혀로 알 수 있는 맛,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도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
눈으로 알아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키는 물질들, 귀로 알아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키는 소리들, 코로 알아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키는 냄새들, 혀로 알아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키는 맛들, 몸으로 알아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키는 감촉들 —
ime kho, bhikkhave, pañca kāmaguṇā.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이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대상에 기대어 생겨나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이것을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오물 같은 즐거움, 범부의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이라 한다. '이 즐거움은 가까이하지 말고, 닦지 말고, 거듭하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Yaṃ kho, bhikkhave, ime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idaṃ vuccati kāmasukhaṃ mīḷhasukhaṃ puthujjanasukhaṃ anariyasukhaṃ.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거움과 기쁨, 이것을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 더러운 즐거움, 범부의 즐거움, 성스럽지 않은 즐거움이라 한다.
‘Na āsevitabbaṃ, na bhāvetabbaṃ, na bahulīkātabbaṃ, bhāyitabbaṃ etassa sukhassā’ti –
‘이 즐거움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고, 닦아서는 안 되고, 많이 익혀서는 안 되며, 두려워해야 한다’고
vadāmi.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고 해로운 상태에서 떠난다. 그는 거친 생각과 미세한 숙고가 있고, 홀로 떨어짐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이윽고 거친 생각과 미세한 숙고가 가라앉는다.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한곳으로 모인다. 그는 거친 생각도 미세한 숙고도 없이 집중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불확실]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기쁨마저 사라져 평정하게 지낸다. 이어서 셋째 선정에 들고, 다시 넷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이것을 벗어남의 즐거움, 홀로 떨어짐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이라 한다.[불확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pe…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희열이 잦아들어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근심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ṃ vuccati nekkhammasukhaṃ pavivekasukhaṃ upasamasukhaṃ sambodhisukhaṃ.
이것을 출리의 즐거움, 홀로 떨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이라 한다.
'이 즐거움은 가까이하고, 닦고, 거듭해야 하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서 안으로 얻는 즐거움에 힘써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Āsevitabbaṃ, bhāvetabbaṃ, bahulīkātabbaṃ, na bhāyitabbaṃ etassa sukhassā’ti –
‘이 즐거움은 가까이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익혀야 하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vadāmi.
나는 말한다.
‘Sukhavinicchayaṃ jaññā;
‘즐거움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sukhavinicchayaṃ ñatvā ajjhattaṃ sukhamanuyuñjeyyā’ti –
즐거움의 판별을 알고서 안으로 즐거움에 몰두해야 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29
'뒤에서 몰래 흉보지 말라. 면전에서 모욕하는 말도 하지 말라.'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Rahovādaṃ na bhāseyya, sammukhā na khīṇaṃ bhaṇe’ti –
‘몰래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면전에서 헐뜯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뒷말이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으며 이롭지도 않음을 알면, 그런 뒷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사실이고 근거가 있더라도 이롭지 않음을 알면, 그것 역시 말하지 않도록 배워야 한다. 사실이고 근거가 있으며 이로운 뒷말임을 알면, 그 말을 할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Tatra, bhikkhave, yaṃ jaññā rahovādaṃ abhūtaṃ atacchaṃ anatthasaṃhitaṃ sasakkaṃ taṃ rahovādaṃ na bhāseyya.
비구들이여, 거기서 몰래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고 참되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것임을 알면, 될 수 있는 한 그 몰래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Yampi jaññā rahovādaṃ bhūtaṃ tacchaṃ anatthasaṃhitaṃ tassapi sikkheyya avacanāya.
몰래 하는 말이 사실이고 참되지만 이익을 주지 않는 것임을 알면, 그것도 말하지 않도록 익혀야 한다.
Yañca kho jaññā rahovādaṃ bhūtaṃ tacchaṃ atthasaṃhitaṃ tatra kālaññū assa tassa rahovādassa vacanāya.
그러나 몰래 하는 말이 사실이고 참되고 이익을 주는 것임을 알면, 거기서 그 몰래 하는 말을 할 때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면전의 모욕이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으며 이롭지도 않음을 알면, 그런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사실이고 근거가 있더라도 이롭지 않음을 알면, 그것 역시 말하지 않도록 배워야 한다. 사실이고 근거가 있으며 이로운 말임을 알면, 그 말을 할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Tatra, bhikkhave, yaṃ jaññā sammukhā khīṇavādaṃ abhūtaṃ atacchaṃ anatthasaṃhitaṃ sasakkaṃ taṃ sammukhā khīṇavādaṃ na bhāseyya.
비구들이여, 거기서 면전에서 헐뜯는 말이 사실이 아니고 참되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것임을 알면, 될 수 있는 한 그 면전에서 헐뜯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Yampi jaññā sammukhā khīṇavādaṃ bhūtaṃ tacchaṃ anatthasaṃhitaṃ tassapi sikkheyya avacanāya.
면전에서 헐뜯는 말이 사실이고 참되지만 이익을 주지 않는 것임을 알면, 그것도 말하지 않도록 익혀야 한다.
Yañca kho jaññā sammukhā khīṇavādaṃ bhūtaṃ tacchaṃ atthasaṃhitaṃ tatra kālaññū assa tassa sammukhā khīṇavādassa vacanāya.
그러나 면전에서 헐뜯는 말이 사실이고 참되고 이익을 주는 것임을 알면, 거기서 그 면전에서 헐뜯는 말을 할 때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뒤에서 몰래 흉보지 말라. 면전에서 모욕하는 말도 하지 말라.'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Rahovādaṃ na bhāseyya, sammukhā na khīṇaṃ bhaṇe’ti –
‘몰래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면전에서 헐뜯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30
'서두르지 말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 말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Ataramānova bhāseyya no taramāno’ti –
‘서두르지 않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서두르며 말하는 사람은 몸이 지치고 마음이 상한다. 목소리도 상하고 목도 아프다. 서두르는 사람의 말은 또렷하지 않아 알아듣기 어렵다. 서두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몸도 지치지 않고 마음도 상하지 않는다. 목소리도 상하지 않고 목도 아프지 않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의 말은 또렷하여 알아듣기 쉽다.
Tatra, bhikkhave, taramānassa bhāsato kāyopi kilamati, cittampi upahaññati, saropi upahaññati, kaṇṭhopi āturīyati, avisaṭṭhampi hoti aviññeyyaṃ taramānassa bhāsitaṃ.
비구들이여, 거기서 서둘러 말하는 자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상하고, 목소리도 상하고, 목도 아프며, 서두르는 자가 말한 것은 또렷하지 않고 알아듣기 어렵다.
Tatra, bhikkhave, ataramānassa bhāsato kāyopi na kilamati, cittampi na upahaññati, saropi na upahaññati, kaṇṭhopi na āturīyati, visaṭṭhampi hoti viññeyyaṃ ataramānassa bhāsitaṃ.
비구들이여, 거기서 서두르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몸도 지치지 않고, 마음도 상하지 않고, 목소리도 상하지 않고, 목도 아프지 않으며, 서두르지 않는 자가 말한 것은 또렷하고 알아듣기 쉽다.
'서두르지 말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taramānova bhāseyya, no taramāno’ti –
‘서두르지 않고 말해야 하며,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31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말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말라.'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것인가?
‘‘‘Janapadaniruttiṃ nābhiniveseyya, samaññaṃ nātidhāveyyā’ti –
‘지방 말을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통칭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
iti kho panetaṃ vuttaṃ.
이렇게 말했다.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어떻게 하면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게 되는가?
Kathañca, bhikkhave, janapadaniruttiyā ca abhiniveso hoti samaññāya ca atisāro?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방 말을 고집함이 있고 통칭을 지나침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같은 물건을 어떤 지방에서는 '빠띠'라 알고, '빳따'라 알고, '윗따'라 알고, '사라와'라 알고, '다로빠'라 알고, '포나'라 알고, '삐실라와'라 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 지방 저 지방에서 알려진 대로 완강하게 붙들고 고집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Idha, bhikkhave, tadevekaccesu janapadesu ‘pātī’ti sañjānanti, ‘patta’nti sañjānanti, ‘vitta’nti sañjānanti, ‘sarāva’nti sañjānanti ‘dhāropa’nti sañjānanti, ‘poṇa’nti sañjānanti, ‘pisīlava’nti sañjānan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지방들에서는 바로 그것을 ‘빠띠’라고 알고, ‘빳따’라고 알고, ‘윗따’라고 알고, ‘사라와’라고 알고, ‘다로빠’라고 알고, ‘뽀나’라고 알고, ‘삐실라와’라고 안다.
Iti yathā yathā naṃ tesu tesu janapadesu sañjānanti tathā tathā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이렇게 그것을 저마다의 지방에서 아는 그대로, 그대로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집착하여 말한다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게 된다.
Evaṃ kho, bhikkhave, janapadaniruttiyā ca abhiniveso hoti samaññāya ca atisāro.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지방 말을 고집함이 있고 통칭을 지나침이 있다.
33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않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않게 되는가?
‘‘Kathañca, bhikkhave, janapadaniruttiyā ca anabhiniveso hoti samaññāya ca anatisāro?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방 말을 고집하지 않음이 있고 통칭을 지나치지 않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같은 물건을 어떤 지방에서는 '빠띠'라 알고, '빳따'라 알고, '윗따'라 알고, '사라와'라 알고, '다로빠'라 알고, '포나'라 알고, '삐실라와'라 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 지방 저 지방에서 알려진 대로 '이분들은 나를 두고 이렇게들 말하는구나' 하고 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집착 없이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않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않게 된다.
Idha, bhikkhave, tadevekaccesu janapadesu ‘pātī’ti sañjānanti, ‘patta’nti sañjānanti, ‘vitta’nti sañjānanti, ‘sarāva’nti sañjānanti, ‘dhāropa’nti sañjānanti, ‘poṇa’nti sañjānanti, ‘pisīlava’nti sañjānan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지방들에서는 바로 그것을 ‘빠띠’라고 알고, ‘빳따’라고 알고, ‘윗따’라고 알고, ‘사라와’라고 알고, ‘다로빠’라고 알고, ‘뽀나’라고 알고, ‘삐실라와’라고 안다.
Iti yathā yathā naṃ tesu tesu janapadesu sañjānanti ‘idaṃ kira me āyasmanto sandhāya voharantī’ti tathā tathā voharati aparāmasaṃ.
이렇게 그것을 저마다의 지방에서 아는 그대로, ‘존자들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구나’ 하여 그대로 움켜쥐지 않고 말한다.
Evaṃ kho, bhikkhave, janapadaniruttiyā ca anabhiniveso hoti, samaññāya ca anatisāro.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지방 말을 고집하지 않음이 있고 통칭을 지나치지 않음이 있다.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말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말라.'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Janapadaniruttiṃ nābhiniveseyya samaññaṃ nātidhāveyyā’ti –
‘지방 말을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통칭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333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는 이가 기쁨에 몰두한다. 이는 저열하고 촌스러우며 범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이 없다.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o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iko anariy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는 자의,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함,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감각적 쾌락에 얽힌 즐거움을 누리는 이가 기쁨에 몰두하지 않는다. 이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이롭지 못한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o kāmapaṭisandhisukhino somanassānuyogaṃ ananuyogo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감각적 욕망과 이어진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기쁨에 몰두하지 않음,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4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다. 이 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o attakilamathānuyogo dukkho anariy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함,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것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로움이 없는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 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o attakilamathānuyogaṃ ananuyogo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 않음,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5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여래가 깨달은 중도가 있다.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어 고요함과 곧바른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길이다. 이 길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āyaṃ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가 바르게 깨달았고,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이 중도,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6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추켜세움과 깎아내림만 있고 법을 설함이 없는 경우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āyaṃ ussādanā ca apasādanā ca no ca dhammadesanā,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치켜세움이 있고 깎아내림이 있으며 법을 설함은 없는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추켜세움도 깎아내림도 없이 법을 설하는 경우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āyaṃ nevussādanā ca na apasādanā ca dhammadesanā ca,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치켜세움도 없고 깎아내림도 없으며 법을 설함이 있는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7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오물 같은 즐거움, 범부의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kāmasukhaṃ mīḷhasukhaṃ pothujjanasukhaṃ anariyasukhaṃ,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 더러운 즐거움, 범부의 즐거움, 성스럽지 않은 즐거움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벗어남의 즐거움, 홀로 떨어짐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nekkhammasukhaṃ pavivekasukhaṃ upasamasukhaṃ sambodhisukh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출리의 즐거움, 홀로 떨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8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으며 이롭지 않은 뒷말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rahovādo abhūto atacch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 아니고 참되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몰래 하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고 근거가 있더라도 이롭지 않은 뒷말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rahovādo bhūto tacch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고 참되지만 이익을 주지 않는 몰래 하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고 근거가 있으며 이로운 뒷말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rahovādo bhūto taccho atthasaṃhito,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고 참되고 이익을 주는 몰래 하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39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으며 이롭지 않은 면전의 모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sammukhā khīṇavādo abhūto atacch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 아니고 참되지 않고 이익을 주지 않는, 면전에서 헐뜯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고 근거가 있더라도 이롭지 않은 면전의 모욕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sammukhā khīṇavādo bhūto taccho anatthasaṃhit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고 참되지만 이익을 주지 않는, 면전에서 헐뜯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사실이고 근거가 있으며 이로운 면전의 모욕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sammukhā khīṇavādo bhūto taccho atthasaṃhito,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사실이고 참되고 이익을 주는, 면전에서 헐뜯는 말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40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서두르는 사람의 말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taramānassa bhāsitaṃ,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서두르는 자가 말한 것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서두르지 않는 사람의 말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amidaṃ ataramānassa bhāsitaṃ,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서두르지 않는 자가 말한 것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341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는 것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해침이 따른다. 번민과 열병도 따른다. 이것은 잘못된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janapadaniruttiyā ca abhiniveso samaññāya ca atisāro, sadukkho eso dhammo saupaghāto saupāyāso s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지방 말을 고집함과 통칭을 지나침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해침이 있고 고뇌가 있고 애태움이 있다.
micchāpaṭipadā.
그릇된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s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지방의 말투에 집착하지 않고 통용되는 이름을 넘어서지 않는 것에는 괴로움도 해침도 번민도 열병도 없다. 이것은 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것이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janapadaniruttiyā ca anabhiniveso samaññāya ca anatisāro, adukkho eso dhammo anupaghāto anupāyāso apariḷāho;
비구들이여, 거기서 지방 말을 고집하지 않음과 통칭을 지나치지 않음인 이것,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해침이 없고 고뇌가 없고 애태움이 없다.
sammāpaṭipadā.
바른 도닦음이다.
Tasmā eso dhammo araṇo.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우리는 다툼이 있는 법도 알고 다툼이 없는 법도 알겠다. 이 둘을 알아서 다툼 없는 길을 걷겠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Tasmātiha, bhikkhave, ‘saraṇañca dhammaṃ jānissāma, araṇañca dhammaṃ jānissāma;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우리는 다툼이 있는 법도 알고 다툼이 없는 법도 알리라;
saraṇañca dhammaṃ ñatvā araṇañca dhammaṃ ñatvā araṇapaṭipadaṃ paṭipajji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다툼이 있는 법을 알고 다툼이 없는 법을 알고서 다툼 없는 도닦음을 닦으리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수부티는 다툼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다툼 없음의 분석 경이 끝났다. 아홉째.
Subhūti ca pana, bhikkhave, kulaputto araṇapaṭipadaṃ paṭipanno’’ti.
그리고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수부띠는 다툼 없는 도닦음을 닦았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Araṇavibhaṅga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다툼 없음의 분석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