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Mahākammavibhaṅgasuttaṃ
6. 업의 큰 갈래 풀이 경
298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벨루와나, 칼란다카 먹이터에 머무셨다. 그때 사밋디 존자는 숲속 오두막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유행자 포탈리풋타가 다리도 풀 겸 이리저리 거닐다가 사밋디 존자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포탈리풋타는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먹이 주는 곳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samiddhi araññakuṭikāyaṃ viharati.
그때 사밋디 존자는 숲속 작은 오두막에 머물고 있었다.
Atha kho potaliputto paribbājako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yenāyasmā samiddhi tenupasaṅkami;
그때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다리를 풀려고 이리저리 걷고 두루 거닐다가 사밋디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samiddhin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사밋디 존자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potaliputto paribbājako āyasmantaṃ samiddhi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사밋디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사밋디여, 나는 사문 고타마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듣고 직접 받아 지녔네. '몸으로 짓는 업도 헛되고 말로 짓는 업도 헛되며, 오직 마음으로 짓는 업만이 참되다.' 또 그 경지에 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선정을 얻을 수 있다고도 하던데, 정말인가?"
‘‘sammukhā metaṃ, āvuso samiddhi, samaṇassa gotamassa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벗 사밋디여,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이것을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다 —
‘moghaṃ kāyakammaṃ moghaṃ vacīkammaṃ, manokammameva sacca’nti.
‘몸의 업은 헛되고 말의 업은 헛되다. 마음의 업만이 참되다’라고.
Atthi ca sā samāpatti yaṃ samāpattiṃ samāpanno na kiñci vediyatī’’ti?
그리고 그런 증득이 있어서, 그 증득에 든 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던데, 그런가?”
"도반 포탈리풋타여, 그렇게 말하지 말게. 세존을 헐뜯지 말게. 그런 비방은 옳지 않네. 세존께서는 결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네. '몸으로 짓는 업도 헛되고 말로 짓는 업도 헛되며, 오직 마음으로 짓는 업만이 참되다.' 도반이여, 그 경지에 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선정은 분명히 있네."[불확실]
‘‘Mā hevaṃ, āvuso potaliputta, avaca;
“벗 뽀딸리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mā hevaṃ, āvuso potaliputta, avaca;
(벗 뽀딸리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 mā bhagavantaṃ abbhācikkhi.
) 세존을 헐뜯지 마라.
Na hi sādhu bhagavato abbhakkhānaṃ.
세존을 헐뜯는 것은 좋지 않다.
Na hi bhagavā evaṃ vadeyya –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
‘moghaṃ kāyakammaṃ moghaṃ vacīkammaṃ, manokammameva sacca’nti.
‘몸의 업은 헛되고 말의 업은 헛되다. 마음의 업만이 참되다’라고.
Atthi ca kho sā, āvuso, samāpatti yaṃ samāpattiṃ samāpanno na kiñci vediyatī’’ti.
그러나 벗이여, 그 증득에 든 이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그런 증득은 있다.”
"도반 사밋디여,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오래되지 않았네, 도반이여. 삼 년이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장로 비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새내기 비구가 스승을 지켜 드려야 한다고 여기다니. 도반 사밋디여,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고 나면 그는 무엇을 느끼는가?" "도반 포탈리풋타여,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고 나면 그는 괴로움을 느끼네." 그러자 포탈리풋타는 사밋디 존자의 말에 기뻐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불확실]
‘‘Kīvaciraṃ pabbajitosi, āvuso samiddhī’’ti?
“벗 사밋디여,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Na ciraṃ, āvuso!
“오래되지 않았다, 벗이여!
Tīṇi vassānī’’ti.
삼 년이다.”
‘‘Ettha dāni mayaṃ there bhikkhū kiṃ vakkhāma, yatra hi nāma evaṃnavo bhikkhu satthāraṃ parirakkhitabbaṃ maññissati.
“이제 우리가 여기서 장로 비구들에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이렇게 갓 들어온 비구가 스승을 감싸 드려야 한다고 여긴다면.
Sañcetanikaṃ, āvuso samiddhi, kammaṃ katvā kāyena vācāya manasā kiṃ so vediyatī’’ti?
벗 사밋디여, 의도를 지닌 업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짓고서 그는 무엇을 느끼는가?”
‘‘Sañcetanikaṃ, āvuso potaliputta, kammaṃ katvā kāyena vācāya manasā dukkhaṃ so vediyatī’’ti.
“벗 뽀딸리뿟따여, 의도를 지닌 업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짓고서 그는 괴로움을 느낀다.”
Atha kho potaliputto paribbājako āyasmato samiddhi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 nappaṭikkosi;
그러자 유행자 뽀딸리뿟따는 사밋디 존자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기뻐하지도 반박하지도 않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99
포탈리풋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밋디 존자는 아난다 존자를 찾아갔다. 둘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사밋디 존자는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포탈리풋타와 나눈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아난다 존자에게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난다 존자가 사밋디 존자에게 말했다.
Atha kho āyasmā samiddhi acirapakkante potaliputte paribbājake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그때 사밋디 존자는 유행자 뽀딸리뿟따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amiddhi yāvatako ahosi potaliputtena paribbājakena saddhiṃ kathāsallāpo taṃ sabbaṃ āyasmato ānandassa ārocesi.
한쪽에 앉은 사밋디 존자는 유행자 뽀딸리뿟따와 나눈 대화가 어떠했든 그것 전부를 아난다 존자께 아뢰었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āyasmantaṃ samiddhi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가 사밋디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사밋디여, 이 이야기는 세존을 뵙고 말씀드릴 만한 것이네. 세존께 가세. 가서 이 일을 말씀드리고, 세존께서 어떻게 설명해 주시든 그대로 받아 지니세."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여." 사밋디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atthi kho idaṃ, āvuso samiddhi, kathāpābhataṃ bhagavantaṃ dassanāya.
“벗 사밋디여, 이것은 세존을 뵈러 갈 만한 이야깃거리다.
Āyāmāvuso samiddh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ssāma;
벗 사밋디여, 가자. 세존께 나아가자.
upasaṅkamitvā etamatthaṃ bhagavato ārocessāma.
나아가서 이 일을 세존께 아뢰자.
Yathā no bhagavā byākarissati tathā naṃ dhāressāmā’’ti.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대로 그대로 지니자.”
‘‘Evamāvuso’’ti kho āyasmā samiddhi āyasmato ānandassa paccassosi.
“그러겠습니다, 벗이여” 하고 사밋디 존자가 아난다 존자께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갔다. 두 사람은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아난다 존자는 사밋디 존자가 포탈리풋타와 나눈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이 말을 들은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āyasmā ca ānando āyasmā ca samiddh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리하여 아난다 존자와 사밋디 존자는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나아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yāvatako ahosi āyasmato samiddhissa potaliputtena paribbājakena saddhiṃ kathāsallāpo taṃ sabbaṃ bhagavato ārocesi.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밋디 존자가 유행자 뽀딸리뿟따와 나눈 대화가 어떠했든 그것 전부를 세존께 아뢰었다.
Evaṃ vutte,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난다야, 나는 유행자 포탈리풋타를 본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어찌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겠느냐? 이 어리석은 사밋디는 나누어서 답해야 할 포탈리풋타의 질문에 한 가지로만 잘라 답해 버렸다."
‘‘dassanampi kho ahaṃ, ānanda, potaliputtassa paribbājakassa nābhijānāmi, kuto panevarūpaṃ kathāsallāpaṃ?
“아난다여, 나는 유행자 뽀딸리뿟따를 본 적조차 없다. 하물며 그런 대화가 어디서 있었겠는가?
Iminā ca, ānanda, samiddhinā moghapurisena potaliputtassa paribbājakassa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ekaṃsena byākato’’ti.
그런데 아난다여, 이 어리석은 사람 사밋디는 유행자 뽀딸리뿟따에게, 갈라서 답해야 할 물음을 한쪽으로 잘라 답했다.”
그러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혹시 사밋디 존자가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무엇이든 느끼는 것은 모두 괴로움에 속한다는 뜻으로 말입니다."[불확실]
Evaṃ vutte, āyasmā udāyī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ace pana, bhante, āyasmatā samiddhinā idaṃ sandhāya bhāsitaṃ –
“그러나 세존이시여, 사밋디 존자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라면[불확실]
불확실 —
yaṃ kiñci vedayitaṃ taṃ dukkhasmi’’nti.
‘무엇이든 느껴진 것, 그것은 괴로움이다’라는 것을 두고 말입니다.”
300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너는 이 어리석은 우다이가 불쑥 끼어드는 것을 보았느냐?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끼어들면 이 어리석은 우다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끼어들 것임을."[불확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passasi no tvaṃ, ānanda, imassa udāyissa moghapurisassa ummaṅgaṃ?
“아난다여, 그대는 이 어리석은 사람 우다이가 불쑥 끼어드는 것을 보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ññāsiṃ kho ahaṃ, ānanda –
아난다여, 나는 알고 있었다 —
‘idānevāyaṃ udāyī moghapuriso ummujjamāno ayoniso ummujjissatī’ti.
‘바로 지금 이 어리석은 사람 우다이가 물 위로 떠오르되 이치에 맞지 않게 떠오르겠구나’라고.
"아난다야, 포탈리풋타는 처음부터 세 가지 느낌을 물은 것이다. 만약 이 어리석은 사밋디가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면 어땠겠느냐. '도반 포탈리풋타여,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즐거운 느낌을 낳을 업을 지으면 그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도반 포탈리풋타여,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괴로운 느낌을 낳을 업을 지으면 그는 괴로움을 느낍니다. 도반 포탈리풋타여,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지었다고 합시다. 그 업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낳으면,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낍니다.' 사밋디가 이렇게 답했다면 포탈리풋타에게 바르게 답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야, 어리석고 미숙한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여래의 큰 업의 분석을 어찌 알겠느냐? 너희가 여래의 큰 업의 분석 풀이를 직접 들으면 좋겠구나."[불확실]
Ādiṃyeva, ānanda, potaliputtena paribbājakena tisso vedanā pucchitā.
아난다여, 유행자 뽀딸리뿟따는 처음부터 세 가지 느낌을 물었다.
Sacāyaṃ, ānanda, samiddhi moghapuriso potaliputtassa paribbājakassa evaṃ puṭṭho evaṃ byākareyya –
아난다여, 만일 이 어리석은 사람 사밋디가 유행자 뽀딸리뿟따에게 그렇게 물음을 받고 이렇게 답했더라면 —
‘sañcetanikaṃ, āvuso potaliputta, kammaṃ katvā kāyena vācāya manasā sukhavedanīyaṃ sukhaṃ so vedayati;
‘벗 뽀딸리뿟따여, 의도를 지닌, 즐거움으로 느껴질 업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짓고서 그는 즐거움을 느낀다.
sañcetanikaṃ, āvuso potaliputta, kammaṃ katvā kāyena vācāya manasā dukkhavedanīyaṃ dukkhaṃ so vedayati;
벗 뽀딸리뿟따여, 의도를 지닌, 괴로움으로 느껴질 업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짓고서 그는 괴로움을 느낀다.
sañcetanikaṃ, āvuso potaliputta, kammaṃ katvā kāyena vācāya manasā adukkhamasukhavedanīyaṃ adukkhamasukhaṃ so vedayatī’ti.
벗 뽀딸리뿟따여, 의도를 지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느껴질 업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짓고서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라고.
Evaṃ byākaramāno kho, ānanda, samiddhi moghapuriso potaliputtassa paribbājakassa sammā (byākaramāno) byākareyya.
아난다여, 이렇게 답한다면 어리석은 사람 사밋디는 유행자 뽀딸리뿟따에게 바르게 답하는 것이 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pi ca, ānanda, ke ca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bālā abyattā ke c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aṃ jānissanti?
또한 아난다여, 어리석고 미숙한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이 누구이기에, 그들이 여래의 업의 큰 갈래 풀이를 알겠는가?
Sace tumhe, ānanda, suṇeyyāth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aṃ vibhajantassā’’ti.
아난다여, 만일 그대들이 여래가 업의 큰 갈래를 갈라 보이는 것을 듣겠다면.”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행복하게 가신 분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큰 업의 분석을 풀어 주실 때입니다. 세존께 듣고 비구들이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야, 들어라. 잘 새겨들어라. 말하겠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tassa, bhagavā, kālo, etassa, sugata, kālo yaṃ bhagavā mahākammavibhaṅgaṃ vibhajeyya.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세존께서 업의 큰 갈래를 갈라 보이실 때입니다.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지닐 것입니다.”
‘‘Tena hānanda,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그렇다면 아난다여,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난다야,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네 부류인가? 아난다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애욕을 행한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다.
‘‘Cattārome, ānanda,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아난다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Katame cattāro?
네 부류란 무엇인가?
Idhānanda, ekacco puggalo idha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 kāmesumicchācārī hoti, musāvādī hoti, pisuṇavāco hoti, pharusavāco hoti, samphappalāpī hoti, abhijjhālu hoti, byāpannacitto hoti, micchādiṭṭhi hoti.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런데 아난다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애욕을 행한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다. 그런데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ha panānanda, ekacco puggalo idha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 kāmesumicchācārī hoti, musāvādī hoti, pisuṇavāco hoti, pharusavāco hoti, samphappalāpī hoti, abhijjhālu hoti, byāpannacitto hoti, micchādiṭṭhi hoti.
그런데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애욕을 행하지 않는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멀리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품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hānanda, ekacco puggal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nabhijjhālu hoti, abyāpannacitto hoti, sammādiṭṭhi hoti.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그런데 아난다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애욕을 행하지 않는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멀리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품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그런데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다.
‘‘Idha panānanda, ekacco puggal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nabhijjhālu hoti, abyāpannacitto hoti, sammādiṭṭhi hoti.
그런데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301
아난다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열성과 정진과 거듭된 노력과 방일하지 않음과 바르게 마음 기울임으로 마음의 집중을 얻는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애욕을 행하는 사람이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다. 사문은 이런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악한 업은 정말 있구나. 나쁜 행위의 과보도 있구나. 나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등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등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은 누구든 이렇게 된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 그것을 완강하게 움켜쥔다. 그리고 고집스레 이렇게 주장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Idhānanda,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amuṃ puggalaṃ passati –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열심함에 힘입어, 애씀에 힘입어, 몰두함에 힘입어, 게으르지 않음에 힘입어, 바르게 마음 기울임에 힘입어, 그러한 마음의 삼매에 닿는다.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었을 때, 맑고 사람의 것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저 사람을 본다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 kāmesumicchācāriṃ musāvādiṃ pisuṇavācaṃ pharusavācaṃ samphappalāpiṃ abhijjhāluṃ byāpannacittaṃ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at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ṃ.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본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atthi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atthi duccaritassa vipāko.
‘여보게, 참으로 나쁜 업이 있고,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nti.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yo kira, b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여보게,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라고.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이렇게 그는 자기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알아차린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고집스레 움켜쥐고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그런데 아난다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열성과 정진과 거듭된 노력과 방일하지 않음과 바르게 마음 기울임으로 마음의 집중을 얻는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등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다. 사문은 이런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악한 업은 없구나. 나쁜 행위의 과보도 없구나. 나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등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등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은 누구든 이렇게 된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 그것을 완강하게 움켜쥔다. 그리고 고집스레 이렇게 주장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Idha panānanda,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amuṃ puggalaṃ passati –
“그런데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열심함에 힘입어, 애씀에 힘입어, 몰두함에 힘입어, 게으르지 않음에 힘입어, 바르게 마음 기울임에 힘입어, 그러한 마음의 삼매에 닿는다.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었을 때, 맑고 사람의 것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저 사람을 본다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at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ṃ.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natthi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natthi duccaritassa vipāko.
‘여보게, 참으로 나쁜 업이란 없고, 나쁜 행위의 과보란 없다.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nti.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yo kira, b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여보게,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내고,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라고.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이렇게 그는 자기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알아차린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고집스레 움켜쥐고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아난다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열성과 정진과 거듭된 노력과 방일하지 않음과 바르게 마음 기울임으로 마음의 집중을 얻는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애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멀리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품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다. 사문은 이런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선한 업은 정말 있구나. 좋은 행위의 과보도 있구나. 나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등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등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누구든 이렇게 된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 그것을 완강하게 움켜쥔다. 그리고 고집스레 이렇게 주장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Idhānanda,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amuṃ puggalaṃ passati –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열심함에 힘입어, 애씀에 힘입어, 몰두함에 힘입어, 게으르지 않음에 힘입어, 바르게 마음 기울임에 힘입어, 그러한 마음의 삼매에 닿는다.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었을 때, 맑고 사람의 것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저 사람을 본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 adinnādānā paṭivirataṃ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aṃ musāvādā paṭivirataṃ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aṃ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aṃ samphappalāpā paṭivirataṃ anabhijjhāluṃ abyāpannacittaṃ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at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ṃ.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본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atthi kira, bho, kalyāṇāni kammāni, atthi sucaritassa vipāko.
‘여보게, 참으로 좋은 업이 있고,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 adinnādānā paṭivirataṃ…pe…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nti.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5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yo kira, bh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여보게, 참으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5에서 되살렸습니다.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라고.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이렇게 그는 자기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알아차린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고집스레 움켜쥐고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그런데 아난다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열성과 정진과 거듭된 노력과 방일하지 않음과 바르게 마음 기울임으로 마음의 집중을 얻는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등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다. 사문은 이런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선한 업은 없구나. 좋은 행위의 과보도 없구나. 나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등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등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누구든 이렇게 된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인 지옥에 태어난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 그것을 완강하게 움켜쥔다. 그리고 고집스레 이렇게 주장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Idha panānanda,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amuṃ puggalaṃ passati –
“그런데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열심함에 힘입어, 애씀에 힘입어, 몰두함에 힘입어, 게으르지 않음에 힘입어, 바르게 마음 기울임에 힘입어, 그러한 마음의 삼매에 닿는다.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었을 때, 맑고 사람의 것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저 사람을 본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pe…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at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ṃ.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5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natthi kira, bho kalyāṇāni kammāni, natthi sucaritassa vipāko.
‘여보게, 참으로 좋은 업이란 없고, 좋은 행위의 과보란 없다.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 adinnādānā paṭivirataṃ…pe…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nti.
여기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1.25에서 되살렸습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yo kira, bh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여보게, 참으로 살아 있는 것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며, 애욕에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5에서 되살렸습니다.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라고.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이렇게 그는 자기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알아차린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고집스레 움켜쥐고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302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러분, 악업은 분명히 있고 나쁜 행실에는 과보가 있다.’ 이 말은 내가 인정한다. 그가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런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보았다.’ 이 말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이는 누구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반드시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또 그가 이렇게 말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보고 깨달은 바에 매달려 집착한 채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이 말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난다여, 여래가 큰 업을 분별하여 아는 앎은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Tatrānanda, yvāy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māha –
“거기서 아난다여, 이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
‘atthi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atthi duccaritassa vipāko’ti idamassa a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나쁜 업들이 있고,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한다;
yampi so evamāha –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nti idampissa anujānāmi;
여기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yo kira, b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ī’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mpi so evamāha –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idampissa nānujānāmi;
달리 아는 이들은 그들의 앎이 그릇된 것이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mp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그가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겪어 안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완고하게 거머쥐고 집착하여 말하는 것도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idampissa nānujānāmi.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ññathā hi, ānand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e ñāṇaṃ hoti.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큰 업의 분석에 대한 앎이 달리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러분, 악업은 없고 나쁜 행실의 과보도 없다.’ 이 말은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런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보았다.’ 이 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이는 누구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반드시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 또 그가 이렇게 말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보고 깨달은 바에 매달려 집착한 채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이 말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난다여, 여래가 큰 업을 분별하여 아는 앎은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Tatrānanda, yvāy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māha –
“거기서 아난다여, 이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
‘natthi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natthi duccaritassa vipāko’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나쁜 업들이 없고, 나쁜 행위의 과보가 없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nti idamassa anujānāmi;
여기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yo kira, b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ī’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mpi so evamāha –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idampissa nānujānāmi;
달리 아는 이들은 그들의 앎이 그릇된 것이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mp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그가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겪어 안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완고하게 거머쥐고 집착하여 말하는 것도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idampissa nānujānāmi.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ññathā hi, ānand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e ñāṇaṃ hoti.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큰 업의 분석에 대한 앎이 달리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러분, 선업은 분명히 있고 좋은 행실에는 과보가 있다.’ 이 말은 내가 인정한다. 그가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런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보았다.’ 이 말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이는 누구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반드시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 또 그가 이렇게 말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보고 깨달은 바에 매달려 집착한 채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이 말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난다여, 여래가 큰 업을 분별하여 아는 앎은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Tatrānanda, yvāy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māha –
“거기서 아난다여, 이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
‘atthi kira, bho, kalyāṇāni kammāni, atthi sucaritassa vipāko’ti idamassa a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좋은 업들이 있고,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한다;
yampi so evamāha –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 adinnādānā paṭivirataṃ…pe…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nti idampissa anujānāmi;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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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yo kira, bh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ī’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mpi so evamāha –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idampissa nānujānāmi;
달리 아는 이들은 그들의 앎이 그릇된 것이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mp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그가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겪어 안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완고하게 거머쥐고 집착하여 말하는 것도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idampissa nānujānāmi.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ññathā hi, ānand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e ñāṇaṃ hoti.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큰 업의 분석에 대한 앎이 달리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러분, 선업은 없고 좋은 행실의 과보도 없다.’ 이 말은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런 사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보았다.’ 이 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이는 누구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반드시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또 그가 이렇게 말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달리 아는 이들의 앎은 그릇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알고 보고 깨달은 바에 매달려 집착한 채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다.’ 이 말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난다여, 여래가 큰 업을 분별하여 아는 앎은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Tatrānanda, yvāy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māha –
“거기서 아난다여, 이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
‘natthi kira, bho, kalyāṇāni kammāni, natthi sucaritassa vipāko’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좋은 업들이 없고, 좋은 행위의 과보가 없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나는 저 사람을 보았다 —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ṃ adinnādānā paṭivirataṃ…pe… samm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a’nti idamassa anujānāmi;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 것을 나는 본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yo kira, bh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ī’ti idamassa nānujānāmi;
‘존자여, 참으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그 모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이것은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yañca kho so evamāha –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한 것 —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이렇게 아는 이들은 바르게 아는 것이고;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idampissa nānujānāmi;
달리 아는 이들은 그들의 앎이 그릇된 것이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yamp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그가 스스로 안 것, 스스로 본 것, 스스로 겪어 안 것, 바로 그것만을 거기서 완고하게 거머쥐고 집착하여 말하는 것도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idampissa nānujānāmi.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이것도 그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ññathā hi, ānanda, tathāgatassa mahākammavibhaṅge ñāṇaṃ hoti.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큰 업의 분석에 대한 앎이 달리 있기 때문이다.
303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면 까닭이 있다. 이전에 괴로운 느낌으로 익을 악업을 지었거나, 나중에 그런 악업을 지었거나, 죽을 때 그릇된 견해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데 따른 과보는 따로 남는다. 그는 그 과보를 지금 여기에서 겪거나, 다음 생에 태어나 겪거나, 그 뒤의 다른 생에서 겪는다.
‘‘Tatrānanda, yvāyaṃ puggalo idha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pubbe vāssa taṃ kataṃ hoti pāpakammaṃ dukkhavedanīyaṃ, pacchā vāssa taṃ kataṃ hoti pāpakammaṃ dukkhavedanīyaṃ, maraṇakāle vāssa hoti micchādiṭṭhi samattā samādinnā.
“거기서 아난다여, 여기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인 그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면, 그에게는 앞서 지은 그 나쁜 업, 곧 괴로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뒤에 지은 그 나쁜 업, 곧 괴로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죽을 때에 그릇된 견해를 온전히 갖추어 받아 지닌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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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로 말미암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pe… micch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그런데 그가 여기서 살생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이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인 그것, 그것의 과보를 그는 지금 여기서 겪거나, 태어나서 겪거나, 그 뒤의 어느 때에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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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면 까닭이 있다. 이전에 즐거운 느낌으로 익을 선업을 지었거나, 나중에 그런 선업을 지었거나, 죽을 때 바른 견해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 이 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닌 데 따른 과보는 따로 남는다. 그는 그 과보를 지금 여기에서 겪거나, 다음 생에 태어나 겪거나, 그 뒤의 다른 생에서 겪는다.
‘‘Tatrānanda, yvāyaṃ puggalo idha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pubbe vāssa taṃ kataṃ hoti kalyāṇakammaṃ sukhavedanīyaṃ, pacchā vāssa taṃ kataṃ hoti kalyāṇakammaṃ sukhavedanīyaṃ, maraṇakāle vāssa hoti sammādiṭṭhi samattā samādinnā.
“거기서 아난다여, 여기서 살생하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 거친 말을 하는 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탐내는 자,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인 그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면, 그에게는 앞서 지은 그 좋은 업, 곧 즐거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뒤에 지은 그 좋은 업, 곧 즐거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죽을 때에 바른 견해를 온전히 갖추어 받아 지닌 것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로 말미암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pe… micch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그런데 그가 여기서 살생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악의를 품은 마음을 지닌 자이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인 그것, 그것의 과보를 그는 지금 여기서 겪거나, 태어나서 겪거나, 그 뒤의 어느 때에 겪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면 까닭이 있다. 이전에 즐거운 느낌으로 익을 선업을 지었거나, 나중에 그런 선업을 지었거나, 죽을 때 바른 견해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세상에 태어난다.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데 따른 과보는 따로 남는다. 그는 그 과보를 지금 여기에서 겪거나, 다음 생에 태어나 겪거나, 그 뒤의 다른 생에서 겪는다.
‘‘Tatrānanda, yvāyaṃ puggal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pubbe vāssa taṃ kataṃ hoti kalyāṇakammaṃ sukhavedanīyaṃ, pacchā vāssa taṃ kataṃ hoti kalyāṇakammaṃ sukhavedanīyaṃ, maraṇakāle vāssa hoti sammādiṭṭhi samattā samādinnā.
“거기서 아난다여,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인 그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면, 그에게는 앞서 지은 그 좋은 업, 곧 즐거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뒤에 지은 그 좋은 업, 곧 즐거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죽을 때에 바른 견해를 온전히 갖추어 받아 지닌 것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그로 말미암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그런데 그가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이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이고, 거짓말을 삼가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이고, 거친 말을 삼가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이고, 탐내지 않는 자이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인 그것, 그것의 과보를 그는 지금 여기서 겪거나, 태어나서 겪거나, 그 뒤의 어느 때에 겪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면 까닭이 있다. 이전에 괴로운 느낌으로 익을 악업을 지었거나, 나중에 그런 악업을 지었거나, 죽을 때 그릇된 견해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불행한 곳, 나쁜 갈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이 세상에서 살생과 도둑질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지닌 데 따른 과보는 따로 남는다. 그는 그 과보를 지금 여기에서 겪거나, 다음 생에 태어나 겪거나, 그 뒤의 다른 생에서 겪는다.
‘‘Tatrānanda, yvāyaṃ puggal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adinnādānā paṭivirato…pe… sammādiṭṭh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pubbe vāssa taṃ kataṃ hoti pāpakammaṃ dukkhavedanīyaṃ, pacchā vāssa taṃ kataṃ hoti pāpakammaṃ dukkhavedanīyaṃ, maraṇakāle vāssa hoti micchādiṭṭhi samattā samādinnā.
“거기서 아난다여,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 거짓말을 삼가는 자,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 거친 말을 삼가는 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 탐내지 않는 자,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인 그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면, 그에게는 앞서 지은 그 나쁜 업, 곧 괴로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뒤에 지은 그 나쁜 업, 곧 괴로움으로 느껴질 업이 있거나, 죽을 때에 그릇된 견해를 온전히 갖추어 받아 지닌 것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그로 말미암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그런데 그가 여기서 살생을 삼가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는 자이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기를 삼가는 자이고, 거짓말을 삼가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자이고, 거친 말을 삼가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자이고, 탐내지 않는 자이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인 그것, 그것의 과보를 그는 지금 여기서 겪거나, 태어나서 겪거나, 그 뒤의 어느 때에 겪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6:300.21에서 되살렸습니다.
아난다여, 업은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뉜다. 과보를 낼 수 없는 업인데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업이 있다. 과보를 낼 수 없는 업인데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업도 있다. 과보를 낼 수 있는 업인데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업이 있다. 과보를 낼 수 있는 업인데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업도 있다.[불확실]
‘‘Iti kho, ānanda, atthi kammaṃ abhabbaṃ abhabbābhāsaṃ, atthi kammaṃ abhabbaṃ bhabbābhāsaṃ, atthi kammaṃ bhabbañceva bhabbābhāsañca, atthi kammaṃ bhabbaṃ abhabbābhāsa’’nti.
“아난다여, 이와 같이 효력 없고 효력 없어 보이는 업이 있고, 효력 없으면서 효력 있어 보이는 업이 있고, 효력 있고 또 효력 있어 보이는 업이 있고, 효력 있으면서 효력 없어 보이는 업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가이 받아들였다. 《큰 업 분별의 경》 여섯째가 끝났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아난다 존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Mahākammavibhaṅga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큰 업의 분석 경」이 끝났다. 여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