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hayabheravasuttaṃ
4. 두려움과 공포 경
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바라문 자눗소니가 세존을 찾아갔다. 그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에는 한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바라문 자눗소니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고따마 존자님, 존자님을 믿고 따라 집을 떠나 출가한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따마 존자님은 앞장서 이끄는 분입니다. 크게 도움을 주는 분이고, 길을 이끌어 주는 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따마 존자님의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yeme, bho gotama, kulaputtā bhavantaṃ got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bhavaṃ tesaṃ gotamo pubbaṅgamo, bhavaṃ tesaṃ gotamo bahukāro, bhavaṃ tesaṃ gotamo samādapetā;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 이 좋은 가문의 아들들, 그들에게 고따마 존자께서는 앞서 가시는 분이시고, 그들에게 고따마 존자께서는 크게 도움 되시는 분이시며, 그들에게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끌어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bhoto ca pana gotamassa s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ī’’ti.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고따마 존자를 보고 그대로 따릅니다.”
"그렇다, 바라문이여. 정말 그렇다, 바라문이여! 나를 믿고 따라 집을 떠나 출가한 좋은 집안의 아들들에게, 나는 앞장서 이끄는 사람이다. 크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 견해를 따른다."
‘‘Evametaṃ, brāhmaṇa, evametaṃ, brāhmaṇa!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Ye te, brāhmaṇa,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haṃ tesaṃ pubbaṅgamo, ahaṃ tesaṃ bahukāro, ahaṃ tesaṃ samādapetā;
바라문이여, 나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 그들에게 나는 앞서 가는 자이고, 그들에게 나는 크게 도움 되는 자이며, 그들에게 나는 이끌어 일으키는 자다;
mama ca pana s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ī’’ti.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대로 따른다.”
"고따마 존자님, 숲속의 외진 처소에서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홀로 떨어져 지내기도 어렵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기도 어렵습니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은 숲이 앗아 가는 듯합니다."
‘‘Durabhisambhavāni hi kho, bho gotama,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고따마 존자시여,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는 참으로 견뎌 내기 어렵고, 홀로 지냄은 행하기 어려우며, 혼자 있음은 즐기기 어렵습니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는 숲이 마음을 앗아 가는 듯합니다.”
"그렇다, 바라문이여. 정말 그렇다, 바라문이여! 숲속의 외진 처소에서 지내기는 어렵다. 홀로 떨어져 지내기도 어렵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기도 어렵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은 숲이 앗아 가는 듯하다."
‘‘Evametaṃ, brāhmaṇa, evametaṃ, brāhmaṇa!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Durabhisambhavāni hi kho, brāhmaṇa,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바라문이여,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는 참으로 견뎌 내기 어렵고, 홀로 지냄은 행하기 어려우며, 혼자 있음은 즐기기 어렵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는 숲이 마음을 앗아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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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나도 깨닫기 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살이던 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숲속의 외진 처소에서 지내기는 어렵다. 홀로 떨어져 지내기도 어렵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기도 어렵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은 숲이 앗아 가는 듯하다.'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몸으로 짓는 행위가 깨끗하지 못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깨끗하지 못한 몸의 행위라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몸의 행위가 깨끗하지 못한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몸의 행위가 깨끗하다. 몸의 행위가 깨끗하여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몸의 행위가 깨끗함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불확실]
‘‘Mayhampi kho, brāhmaṇ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바라문이여, 나에게도 깨달음 이전, 아직 바르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durabhisambhavāni hi kh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dukkaraṃ pavivekaṃ, durabhiramaṃ ekatte, haranti maññe mano vanāni samādhiṃ alabhamānassa bhikkhuno’ti.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는 참으로 견뎌 내기 어렵고, 홀로 지냄은 행하기 어려우며, 혼자 있음은 즐기기 어렵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에게는 숲이 마음을 앗아 가는 듯하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parisuddhakāyakamman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aparisuddhakāyakamman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parisuddhakāyakammantohamasmi.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한 자다.
Ye hi vo ariyā parisuddhakāyakamman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몸의 행위가 청정하여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parisuddhakāyakamm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몸의 행위의 청정함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36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말의 행위나 생각의 행위, 생계가 깨끗하지 못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깨끗하지 못한 생계라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생계가 깨끗하지 못한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계가 깨끗하다. 생계가 깨끗하여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생계가 깨끗함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isuddhavacīkammantā…pe… aparisuddhamanokammantā …pe… aparisuddhājīv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parisuddhājīv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말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말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마음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마음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4:35.4에서 되살렸습니다.
Na kho panāhaṃ aparisuddhājīv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parisuddhājīvohamasmi.
나는 생계가 청정한 자다.
Ye hi vo ariyā parisuddhājīv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생계가 청정하여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parisuddhājīv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생계의 청정함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37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탐욕스럽고 욕망의 대상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탐욕과 욕망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탐욕스럽고 욕망의 대상에 강하게 집착하는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탐욕스럽지 않다. 탐욕스럽지 않아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탐욕스럽지 않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bhijjhālū kāmesu tibbasārāg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bhijjhālukāmesutibbasārāg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감각적 욕망에 탐욕스럽고 애착이 극심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감각적 욕망에 탐욕스럽고 애착이 극심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abhijjhālu kāmesu tibbasārāg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감각적 욕망에 탐욕스럽고 애착이 극심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anabhijjhālūhamasmi.
나는 탐욕스럽지 않은 자다.
Ye hi vo ariyā anabhijjhāl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탐욕스럽지 않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anabhijjhālu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탐욕스럽지 않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38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악의를 품은 마음으로 성내는 생각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악의를 품고 성내는 생각을 하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악의를 품은 마음으로 성내는 생각을 하면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게 자애로운 마음이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byāpannacittā paduṭṭhamanasaṅkapp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byāpannacittapaduṭṭhamanasaṅkapp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마음이 악의에 차고 뜻과 생각이 사악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마음이 악의에 차고 뜻과 생각이 사악한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byāpannacitto paduṭṭhamanasaṅkapp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마음이 악의에 차고 뜻과 생각이 사악한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mettacittohamasmi.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지닌 자다.
Ye hi vo ariyā met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자애로운 마음을 지녀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mettacitt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자애로운 마음을 지님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39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해태와 혼침을 벗어났다. 해태와 혼침을 벗어나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해태와 혼침을 벗어났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thīnamiddhapariyuṭṭhi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hīnamiddhapariyuṭṭhā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thīnamiddhapariyuṭṭhi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힌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vigatathīnamiddhohamasmi.
나는 해태와 혼침이 사라진 자다.
Ye hi vo ariyā vigatathīnamidd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해태와 혼침이 사라져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vigatathīnamidd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해태와 혼침이 사라졌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0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들뜨고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들뜨고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들뜨고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마음이 고요하다. 마음이 고요하여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마음이 고요함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ddhatā avūpas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uddhataavūpasantacit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들뜨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들뜨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uddhato avūpasantacit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들뜨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vūpasantacittohamasmi.
나는 마음이 가라앉은 자다.
Ye hi vo ariyā vūpas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마음이 가라앉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vūpasantacitt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마음이 가라앉았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1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의심하고 망설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의심하고 망설이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의심하고 망설이는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의심을 건넜다. 의심을 건너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의심을 건넜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aṅkhī vicikicc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kaṅkhivicikicchi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의혹을 품고 의심하는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의혹을 품고 의심하는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kaṅkhī vicikicc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의혹을 품고 의심하는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tiṇṇavicikicchohamasmi.
나는 의심을 건너간 자다.
Ye hi vo ariyā tiṇṇavicikicc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의심을 건너가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tiṇṇavicikicc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의심을 건너갔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2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추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자신을 추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추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면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신을 추켜세우지도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자신을 추켜세우지도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으면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자신을 추켜세우지도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ttukkaṃsakā 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ttukkaṃsanaparavambha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attukkaṃsako 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anattukkaṃsako aparavambhīhamasmi.
나는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깎아내리지 않는 자다.
Ye hi vo ariyā anattukkaṃsakā aparavambh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고 남을 깎아내리지 않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anattukkaṃsakataṃ aparavambhi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음과 남을 깎아내리지 않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3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겁이 많고 두려움을 잘 타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겁 많고 두려움 잘 타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겁이 많고 두려움을 잘 타는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소름 끼치는 공포에서 벗어났다. 소름 끼치는 공포에서 벗어나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소름 끼치는 공포에서 벗어났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chambhī bhīrukajātik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chambhibhīrukajātik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겁에 질리고 본디 두려움이 많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겁에 질리고 본디 두려움이 많은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chambhī bhīrukajātik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겁에 질리고 본디 두려움이 많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vigatalomahaṃsohamasmi.
나는 털이 곤두서는 일이 사라진 자다.
Ye hi vo ariyā vigatalomahaṃs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털이 곤두서는 일이 사라져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vigatalomahaṃs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털이 곤두서는 일이 사라졌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4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몹시 바라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몹시 바라는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몹시 바라면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바라는 것이 적다. 바라는 것이 적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이 적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lābhasakkārasilokaṃ nikāmayamā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lābhasakkārasilokanikāmana 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lābhasakkārasilokaṃ nikāmayam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면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appicchohamasmi.
나는 바라는 것이 적은 자다.
Ye hi vo ariyā appicch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바라는 것이 적어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appicch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바라는 것이 적음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5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게으르고 정진하는 힘이 약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문다고 하자. 그들은 게으르고 정진하는 힘이 약한 허물 때문에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나는 게으르고 정진하는 힘이 약한 채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진을 힘차게 일으켰다. 정진을 힘차게 일으켜 숲속의 외진 처소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가 정진을 힘차게 일으켰음을 보았다. 그래서 숲에 머무는 일에 한층 더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usītā hīnavīriy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kusītahīnavīriy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무릇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이들은,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더러움을 원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kusīto hīnavīriy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채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지 않는다;
āraddhavīriyohamasmi.
나는 정진을 다하는 자다.
Ye hi vo ariyā āraddhavīriy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정진을 다하여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를 의지해 지내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āraddhavīriya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내 안에서 이 정진을 다함을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6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챙김을 놓치고 알아차림도 없이 외딴 숲에 머무는 사문과 바라문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놓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없음이 바로 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마음챙김이 확립된 사람이다. 마음챙김이 확립된 채로 외딴 숲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다면,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내게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있음을 보니 숲에 머무를 용기가 더욱 솟았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muṭṭhassatī asampajā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muṭṭhassatiasampajān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누구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마음챙김을 놓치고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이들은, 마음챙김을 놓치고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결함 때문에, 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muṭṭhassati asampaj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마음챙김을 놓치고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upaṭṭhitassatihamasmi.
나는 마음챙김이 확립된 자다.
Ye hi vo ariyā upaṭṭhitassat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upaṭṭhitassatit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이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있음을 내 안에서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7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채로 외딴 숲에 머무는 사문과 바라문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고요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이 바로 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삼매를 갖춘 사람이다. 삼매를 갖춘 채로 외딴 숲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다면,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내게 삼매가 갖추어져 있음을 보니 숲에 머무를 용기가 더욱 솟았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samāhitā vibbhantacitt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asamāhitavibbhantacitt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누구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이들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그 결함 때문에, 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asamāhito vibbhantacitt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samādhisampannohamasmi.
나는 삼매를 갖춘 자다.
Ye hi vo ariyā samādhisampan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삼매를 갖추고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samādhisampad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삼매를 갖춤을 내 안에서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48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혜가 없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리석은 채로 외딴 숲에 머무는 사문과 바라문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지혜 없음과 어리석음이 바로 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지혜를 갖춘 채로 외딴 숲에 머무는 성자들이 있다면,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라문이여, 내게 지혜가 갖추어져 있음을 보니 숲에 머무를 용기가 더욱 솟았다. 열여섯 가지 방식이 끝났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duppaññā eḷamūg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duppaññaeḷamūgasandosahetu have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aṃ bhayabheravaṃ avhāyanti.
‘누구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통찰지가 없고 멍청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이들은, 통찰지가 없고 멍청한 그 결함 때문에, 참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나쁘고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들인다.
Na kho panāhaṃ duppañño eḷamūg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그러나 나는 통찰지가 없고 멍청한 채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paññāsampannohamasmi.
나는 통찰지를 갖춘 자다.
Ye hi vo ariyā paññāsampann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ṃ aññataro’ti.
통찰지를 갖추고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성자들이 있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Etamahaṃ, brāhmaṇa, paññāsampadaṃ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ṃ araññe vihārāya.
바라문이여, 나는 이 통찰지를 갖춤을 내 안에서 보면서, 숲에 머무는 데 더욱 안온해졌다.
Soḷasapariyāyaṃ niṭṭhitaṃ.
열여섯 가지 방식이 끝났다.
49
바라문이여,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름난 밤들이 있다. 잘 알려진 밤들이다. 보름 중의 열나흘, 보름, 여드레 밤이 그러하다. 그런 밤에 동산의 사당, 숲의 사당, 나무의 사당 같은 곳에 머물러 보면 어떨까. 소름 끼치고 털이 곤두서는 곳이다. 어쩌면 그 두려움과 공포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yā tā rattiyo abhiññātā abhilakkhitā –
‘저 잘 알려지고 뚜렷이 정해진 밤들 —
cātuddasī pañcadasī aṭṭhamī ca pakkhassa –
보름의 열나흗날, 열닷샛날, 그리고 여드렛날 —
tathārūpāsu rattīsu yāni tāni ārāmacetiyāni vanacetiyāni rukkhacetiyāni bhiṃsanakāni salomahaṃsāni tathārūpesu senāsanesu vihareyyaṃ appeva nāmāhaṃ bhayabheravaṃ passeyya’nti.
그런 밤들에, 소름 끼치고 털이 곤두서는 저 동산의 사당들, 숲의 사당들, 나무의 사당들, 그런 거처들에 내가 머물면 어떨까. 그러면 나도 두려움과 공포를 보게 되리라.’
바라문이여, 얼마 뒤 나는 그 이름난 밤들에 그런 곳에 머물렀다. 보름 중의 열나흘, 보름, 여드레 밤마다 동산의 사당, 숲의 사당, 나무의 사당 같은, 소름 끼치고 털이 곤두서는 곳에서 지냈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aparena samayena yā tā rattiyo abhiññātā abhilakkhitā –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그 뒤 어느 때, 저 잘 알려지고 뚜렷이 정해진 밤들 —
cātuddasī pañcadasī aṭṭhamī ca pakkhassa –
보름의 열나흗날, 열닷샛날, 그리고 여드렛날 —
tathārūpāsu rattīsu yāni tāni ārāmacetiyāni vanacetiyāni rukkhacetiyāni bhiṃsanakāni salomahaṃsāni tathārūpesu senāsanesu viharāmi.
그런 밤들에, 소름 끼치고 털이 곤두서는 저 동산의 사당들, 숲의 사당들, 나무의 사당들, 그런 거처들에 머문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머무는 동안 짐승이 다가오기도 하고, 공작이 나뭇가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바람이 낙엽을 흩날리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가 틀림없이 이렇게 오는구나.’ 바라문이여,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왜 두려움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내는가? 두려움과 공포가 내가 어떤 자세로 있을 때 찾아오든, 바로 그 자세 그대로 다스리면 어떨까.’[불확실]
Tattha ca me, brāhmaṇa, viharato mago vā āgacchati, moro vā kaṭṭhaṃ pāteti, vāto vā paṇṇakasaṭaṃ ereti;
바라문이여, 거기서 내가 머물 때 사슴이 다가오거나, 공작이 나뭇가지를 떨어뜨리거나, 바람이 낙엽 더미를 흔든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etaṃ nūn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ī’ti.
‘바로 이것이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오는 것이로구나.’
Tassa mayhaṃ, brāhmaṇa, etadahosi –
바라문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ṃ nu kho ahaṃ aññadatthu bhayapaṭikaṅkhī viharāmi?
‘나는 어찌하여 오로지 두려움만 기다리며 머무는가?
Yaṃnūnāhaṃ yathābhūtaṃ yathābhūtassa me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tathābhūtaṃ tathābhūt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yya’nti.
그 두려움과 공포가 내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모습으로 오든,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면 어떨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않고, 계속 걸으면서 그것을 다스렸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caṅkamant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바라문이여, 내가 거닐고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온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tiṭṭhāmi na nisīdāmi na nipajjāmi, yāva caṅkamant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거니는 그대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낼 때까지는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는다.
바라문이여, 내가 서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걷지도 앉지도 눕지도 않았다. 선 채로 그것을 다스렸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ṭhit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바라문이여, 내가 서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온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caṅkamāmi na nisīdāmi na nipajjāmi.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그때까지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는다.
Yāva ṭhit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서 있는 그대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낼 때까지.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눕지도 서지도 걷지도 않고, 앉은 채로 그것을 다스렸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nisinn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바라문이여, 내가 앉아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온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nipajjāmi na tiṭṭhāmi na caṅkamāmi, yāva nisinn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앉은 그대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낼 때까지는 눕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거닐지도 않는다.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않고, 누운 채로 그것을 다스렸다.
Tassa mayhaṃ, brāhmaṇa, nipannassa taṃ bhayabheravaṃ āgacchati.
바라문이여, 내가 누워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온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neva tāva nisīdāmi na tiṭṭhāmi na caṅkamāmi, yāva nipannova taṃ bhayabheravaṃ paṭivinemi.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누운 그대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낼 때까지는 앉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거닐지도 않는다.
50
바라문이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밤인데도 낮이라 여기고, 낮인데도 밤이라 여긴다. 나는 그들이 어리둥절한 채로 지낸다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밤이면 밤이라고 알고, 낮이면 낮이라고 안다.
‘‘Santi kho pana, brāhmaṇa, eke samaṇabrāhmaṇā rattiṃyeva samānaṃ divāti sañjānanti, divāyeva samānaṃ rattīti sañjānanti.
바라문이여, 그런데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밤인 것을 낮이라고 인식하고, 낮인 것을 밤이라고 인식한다.
Idamahaṃ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mmohavihārasmiṃ vadāmi.
나는 이것을 그 사문·바라문들이 미혹 속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한다.
Ahaṃ kho pana, brāhmaṇa, rattiṃyeva samānaṃ rattīti sañjānāmi, divāyeva samānaṃ divāti sañjānāmi.
그러나 바라문이여, 나는 밤인 것을 밤이라고 인식하고, 낮인 것을 낮이라고 인식한다.
바라문이여, 누군가를 바르게 말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존재가 세상에 나왔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연민하여,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나왔다.’ 그렇게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존재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연민하여,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불확실]
Yaṃ kho taṃ, brāhmaṇ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누가 바르게 말하면서 말한다면[불확실]
불확실 —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mameva taṃ sammā vadamāno vadeyya –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중생이 세상에 태어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연민하여, 신과 인간의 안녕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라고 할 터인데,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면서 말하는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미혹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중생이 세상에 태어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연민하여, 신과 인간의 안녕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라고.
51
바라문이여, 내게는 정진이 일어나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놓치지 않았고, 몸은 고요해져 들뜨지 않았으며, 마음은 집중되어 한곳에 모였다.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나고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났다. 그리고 생각과 숙고가 있고, 떠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불확실]
‘‘Āraddhaṃ kho pana me, brāhmaṇa, vīriyaṃ ahos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바라문이여, 그리고 내게는 정진이 시작되어 물러남이 없었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고, 몸이 편안하여 들뜸이 없었고, 마음이 삼매에 들어 한곳에 모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물렀다.
생각과 숙고가 가라앉아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나는 생각도 숙고도 없이 삼매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물렀다.
나는 기쁨에도 매이지 않고 평온하게 머물렀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니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성자들은 이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한다. 나는 그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불확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āsiṃ,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siṃ;
희열이 가시어 평온한 자로 머물렀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성자들이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물렀다.
나는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렸다. 앞서 기쁨과 근심은 이미 사라졌다. 그렇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물렀다.
52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해졌다. 때가 없고 번뇌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 나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해 냈다. 이를테면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이다. 세계가 무너지는 많은 겁, 세계가 생겨나는 많은 겁, 무너지고 생겨나는 많은 겁도 기억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나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세상이 수축하는 겁도 여럿, 세상이 팽창하는 겁도 여럿, 세상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여럿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용모를 지녔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런 수명으로 생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용모를 지녔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런 수명으로 생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 이처럼 모습과 내력까지 갖춘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해 냈다.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씨였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가졌으며,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이와 같이 모습을 갖추고 특징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얻은 첫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부서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겼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사람에게 그러하듯이.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초경에 내가 얻은 첫 번째 명지다.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53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해졌다. 때가 없고 번뇌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중생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 나는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보았다.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대로 가는 것도 알았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하거나 수승하고, 잘생기거나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갔거나 나쁜 곳에 간, 지은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
‘참으로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나쁜 곳, 파멸의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참으로 이 존귀한 중생들은 몸으로 나쁘게 행하고 말로 나쁘게 행하고 마음으로 나쁘게 행하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혹은 이 존귀한 중생들은 몸으로 좋게 행하고 말로 좋게 행하고 마음으로 좋게 행하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이처럼 나는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보았다.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대로 가는 것도 알았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경에 얻은 둘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부서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겼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사람에게 그러하듯이.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하거나 수승하고, 잘생기거나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갔거나 나쁜 곳에 간, 지은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중경에 내가 얻은 두 번째 명지다.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54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해졌다. 때가 없고 번뇌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알았다. 또 ‘이것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알았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이것이 번뇌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자,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났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났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는 앎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경에 얻은 셋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부서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겼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사람에게 그러하듯이.[불확실]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그런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였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였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였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후경에 내가 얻은 세 번째 명지다.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55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타마는 지금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외딴 숲에 머무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두 가지 이로움을 보고서 외딴 숲에 머문다. 하나는 나 자신이 지금 여기서 누리는 즐거운 머묾이다. 다른 하나는 뒷세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다.
‘‘Siyā kho pana te, brāhmaṇa, evamassa –
바라문이여, 그런데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ajjāpi nūna samaṇo gotamo avītarāgo avītadoso avītamoho, tasm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tī’ti.
‘사문 고따마는 오늘도 탐욕을 여의지 못했고 성냄을 여의지 못했고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했으니, 그래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하는 것이다.’
Na kho panetaṃ, brāhmaṇa, evaṃ daṭṭhabbaṃ.
그러나 바라문이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Dve kho ahaṃ, brāhmaṇa, atthavase sampassam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
바라문이여, 나는 두 가지 이익을 보면서 숲과 밀림의 외딴 거처들을 의지한다 —
attano ca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ṃ sampassamāno, pacchimañca janataṃ anukampamāno’’ti.
나 자신이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머묾을 보면서, 또 뒷사람들을 연민하면서다.
56
참으로 고타마 존자께서는 뒷세대 사람들을 연민하셨군요.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은 분께서 그러하시듯이. 훌륭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훌륭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Anukampitarūpā vatāyaṃ bhotā gotamena pacchimā janatā, yathā taṃ arahatā sammāsambuddhena.
참으로 이 뒷사람들은 고따마 존자께서 연민해 주신 이들입니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걸맞게.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타마 존자시여,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 보이듯,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사람은 형상을 보리라’ 하며 기름등불을 들어 올리듯 하셨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이처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은 형색들을 보리라’ 하듯;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꼭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타마 존자께 귀의하겠습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겠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Es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두려움과 공포의 경, 넷째가 끝났다.
Bhayabherav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두려움과 공포 경」이 끝났다. 네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