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오십 경 모음Mūlapaṇṇāsapāḷi
1. Mūlapariyāyavaggo
1. 뿌리 법문 품
1. Mūlapariyāyasuttaṃ
1. 뿌리 법문 경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1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욱까타의 수바가 숲, 사라왕 나무 아래에 머물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ukkaṭṭhāyaṃ viharati subhagavane sālarājamūle.
한때 세존께서 욱깟타의 수바가 숲에 있는 살라나무 왕의 뿌리 곁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법의 뿌리에 관한 법문을 설하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라. 이제 말하겠다.”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bhikkhavo’’ti.
“비구들이여”라고.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sabbadhammamūlapariyāyaṃ vo, bhikkhave, desessām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법의 뿌리 법문을 가르치리라.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그것을 들어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2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다. 그는 성자들을 보지 못했다. 성자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 길들여지지도 않았다. 참된 사람들도 보지 못했다. 참된 사람의 법에도 능숙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 길들여지지도 않았다.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자의 법에 길들지 않았으며, 참된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의 법에 길들지 않아 —
그는 땅을 땅으로 인식한다. 땅을 땅으로 인식하고 나면 땅을 생각한다. 땅 안에서 생각하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땅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pathaviṃ pathavito sañjānāti;
땅을 땅으로 인식한다;
pathaviṃ pathavito saññatvā pathaviṃ maññati, pathaviyā maññati, pathavito maññati, pathaviṃ meti maññati, pathaviṃ abhinandati.
땅을 땅으로 인식하고서 땅을 여긴다, 땅에서 여긴다, 땅으로부터 여긴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긴다, 땅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물을 물로 인식한다. 물을 물로 인식하고 나면 물을 생각한다. 물 안에서 생각하고,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Āpaṃ āpato sañjānāti;
물을 물로 인식한다;
āpaṃ āpato saññatvā āpaṃ maññati, āpasmiṃ maññati, āpato maññati, āpaṃ meti maññati, āpaṃ abhinandati.
물을 물로 인식하고서 물을 여긴다, 물에서 여긴다, 물로부터 여긴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긴다, 물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불을 불로 인식한다. 불을 불로 인식하고 나면 불을 생각한다. 불 안에서 생각하고, 불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불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Tejaṃ tejato sañjānāti;
불을 불로 인식한다;
tejaṃ tejato saññatvā tejaṃ maññati, tejasmiṃ maññati, tejato maññati, tejaṃ meti maññati, tejaṃ abhinandati.
불을 불로 인식하고서 불을 여긴다, 불에서 여긴다, 불로부터 여긴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긴다, 불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바람을 바람으로 인식한다. 바람을 바람으로 인식하고 나면 바람을 생각한다. 바람 안에서 생각하고, 바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람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람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Vāyaṃ vāyato sañjānāti;
바람을 바람으로 인식한다;
vāyaṃ vāyato saññatvā vāyaṃ maññati, vāyasmiṃ maññati, vāyato maññati, vāyaṃ meti maññati, vāyaṃ abhinandati.
바람을 바람으로 인식하고서 바람을 여긴다, 바람에서 여긴다, 바람으로부터 여긴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긴다, 바람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3
그는 생명들을 생명들로 인식한다. 생명들을 생명들로 인식하고 나면 생명들을 생각한다. 생명들 안에서 생각하고, 생명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생명들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명들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Bhūte bhūtato sañjānāti;
존재들을 존재들로 인식한다;
bhūte bhūtato saññatvā bhūte maññati, bhūtesu maññati, bhūtato maññati, bhūte meti maññati, bhūte abhinandati.
존재들을 존재들로 인식하고서 존재들을 여긴다, 존재들에서 여긴다, 존재들로부터 여긴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긴다, 존재들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신들을 신들로 인식한다. 신들을 신들로 인식하고 나면 신들을 생각한다. 신들 안에서 생각하고, 신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신들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들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Deve devato sañjānāti;
신들을 신들로 인식한다;
deve devato saññatvā deve maññati, devesu maññati, devato maññati, deve meti maññati, deve abhinandati.
신들을 신들로 인식하고서 신들을 여긴다, 신들에서 여긴다, 신들로부터 여긴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긴다, 신들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쁘라자빠띠를 쁘라자빠띠로 인식한다. 쁘라자빠띠를 쁘라자빠띠로 인식하고 나면 쁘라자빠띠를 생각한다. 쁘라자빠띠 안에서 생각하고, 쁘라자빠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쁘라자빠띠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쁘라자빠띠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Pajāpatiṃ pajāpatito sañjānāti;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인식한다;
pajāpatiṃ pajāpatito saññatvā pajāpatiṃ maññati, pajāpatismiṃ maññati, pajāpatito maññati, pajāpatiṃ meti maññati, pajāpatiṃ abhinandati.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인식하고서 빠자빠띠를 여긴다, 빠자빠띠에서 여긴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긴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긴다, 빠자빠띠를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브라흐마를 브라흐마로 인식한다. 브라흐마를 브라흐마로 인식하고 나면 브라흐마를 생각한다. 브라흐마 안에서 생각하고, 브라흐마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브라흐마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브라흐마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Brahmaṃ brahmato sañjānāti;
범천을 범천으로 인식한다;
brahmaṃ brahmato saññatvā brahmaṃ maññati, brahmasmiṃ maññati, brahmato maññati, brahmaṃ meti maññati, brahmaṃ abhinandati.
범천을 범천으로 인식하고서 범천을 여긴다, 범천에서 여긴다, 범천으로부터 여긴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긴다, 범천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광음천을 광음천으로 인식한다. 광음천을 광음천으로 인식하고 나면 광음천을 생각한다. 광음천 안에서 생각하고, 광음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광음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광음천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Ābhassare ābhassarato sañjānāti;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인식한다;
ābhassare ābhassarato saññatvā ābhassare maññati, ābhassaresu maññati, ābhassarato maññati, ābhassare meti maññati, ābhassare abhinandati.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인식하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긴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긴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긴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긴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변정천을 변정천으로 인식한다. 변정천을 변정천으로 인식하고 나면 변정천을 생각한다. 변정천 안에서 생각하고, 변정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변정천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Subhakiṇhe subhakiṇhato sañjānāti;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인식한다;
subhakiṇhe subhakiṇhato saññatvā subhakiṇhe maññati, subhakiṇhesu maññati, subhakiṇhato maññati, subhakiṇhe meti maññati, subhakiṇhe abhinandati.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인식하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광과천을 광과천으로 인식한다. 광과천을 광과천으로 인식하고 나면 광과천을 생각한다. 광과천 안에서 생각하고, 광과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광과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광과천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Vehapphale vehapphalato sañjānāti;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인식한다;
vehapphale vehapphalato saññatvā vehapphale maññati, vehapphalesu maññati, vehapphalato maññati, vehapphale meti maññati, vehapphale abhinandati.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인식하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긴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긴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긴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긴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압도하는 자를 압도하는 자로 인식한다. 압도하는 자를 압도하는 자로 인식하고 나면 압도하는 자를 생각한다. 압도하는 자 안에서 생각하고, 압도하는 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압도하는 자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압도하는 자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불확실]
‘‘Abhibhuṃ abhibhūto sañjānāti;
지배자를 지배자로 인식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bhibhuṃ abhibhūto saññatvā abhibhuṃ maññati, abhibhusmiṃ maññati, abhibhūto maññati, abhibhuṃ meti maññati, abhibhuṃ abhinandati.
지배자를 지배자로 인식하고서 지배자를 여긴다, 지배자에서 여긴다, 지배자로부터 여긴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긴다, 지배자를 기뻐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4
그는 허공이 끝없는 경지를 허공이 끝없는 경지로 인식한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를 허공이 끝없는 경지로 인식하고 나면 허공이 끝없는 경지를 생각한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안에서 생각하고, 허공이 끝없는 경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허공이 끝없는 경지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Ākāsānañcāyatanaṃ ākāsānañcāyatanato sañjānāti;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인식한다;
ākāsānañcāyatanaṃ ākāsānañcāyatanato sañña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smiṃ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to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ṃ meti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ṃ abhinandati.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인식하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의식이 끝없는 경지로 인식한다.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의식이 끝없는 경지로 인식하고 나면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생각한다.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안에서 생각하고, 의식이 끝없는 경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의식이 끝없는 경지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Viññāṇ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to sañjānāti;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인식한다;
viññāṇ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to sañña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ṃ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smiṃ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to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meti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abhinandati.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인식하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인식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인식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 안에서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Ākiñcaññ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to sañjānāti;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인식한다;
ākiñcaññ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to saññatvā ākiñcaññāyatanaṃ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smiṃ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to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ṃ meti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ṃ abhinandati.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인식하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를 바로 그 경지로 인식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그 경지를 생각한다. 그 경지 안에서 생각하고, 그 경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경지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경지를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sañjānāti;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인식한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sañña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miṃ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meti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abhinandati.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인식하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5
그는 본 것을 본 것으로 인식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인식하고 나면 본 것을 생각한다. 본 것 안에서 생각하고, 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 것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Diṭṭhaṃ diṭṭhato sañjānāti;
본 것을 본 것으로 인식한다;
diṭṭhaṃ diṭṭhato saññatvā diṭṭhaṃ maññati, diṭṭhasmiṃ maññati, diṭṭhato maññati, diṭṭhaṃ meti maññati, diṭṭhaṃ abhinandati.
본 것을 본 것으로 인식하고서 본 것을 여긴다, 본 것에서 여긴다, 본 것으로부터 여긴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긴다, 본 것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인식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인식하고 나면 들은 것을 생각한다. 들은 것 안에서 생각하고, 들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들은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은 것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Sutaṃ sutato sañjānāti;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인식한다;
sutaṃ sutato saññatvā sutaṃ maññati, sutasmiṃ maññati, sutato maññati, sutaṃ meti maññati, sutaṃ abhinandati.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인식하고서 들은 것을 여긴다, 들은 것에서 여긴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긴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긴다, 들은 것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느낀 것을 느낀 것으로 인식한다. 느낀 것을 느낀 것으로 인식하고 나면 느낀 것을 생각한다. 느낀 것 안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느낀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Mutaṃ mutato sañjānāti;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인식한다;
mutaṃ mutato saññatvā mutaṃ maññati, mutasmiṃ maññati, mutato maññati, mutaṃ meti maññati, mutaṃ abhinandati.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인식하고서 감지한 것을 여긴다, 감지한 것에서 여긴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긴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긴다, 감지한 것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의식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인식한다. 의식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인식하고 나면 의식한 것을 생각한다. 의식한 것 안에서 생각하고, 의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의식한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식한 것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Viññātaṃ viññātato sañjānāti;
안 것을 안 것으로 인식한다;
viññātaṃ viññātato saññatvā viññātaṃ maññati, viññātasmiṃ maññati, viññātato maññati, viññātaṃ meti maññati, viññātaṃ abhinandati.
안 것을 안 것으로 인식하고서 안 것을 여긴다, 안 것에서 여긴다, 안 것으로부터 여긴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긴다, 안 것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6
그는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인식한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인식하고 나면 하나임을 생각한다. 하나임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임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임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Ekattaṃ ekattato sañjānāti;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인식한다;
ekattaṃ ekattato saññatvā ekattaṃ maññati, ekattasmiṃ maññati, ekattato maññati, ekattaṃ meti maññati, ekattaṃ abhinandati.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인식하고서 하나임을 여긴다, 하나임에서 여긴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긴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긴다, 하나임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인식한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인식하고 나면 여럿임을 생각한다. 여럿임 안에서 생각하고, 여럿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럿임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럿임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Nānattaṃ nānattato sañjānāti;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인식한다;
nānattaṃ nānattato saññatvā nānattaṃ maññati, nānattasmiṃ maññati, nānattato maññati, nānattaṃ meti maññati, nānattaṃ abhinandati.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인식하고서 여럿임을 여긴다, 여럿임에서 여긴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긴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긴다, 여럿임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인식한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인식하고 나면 모든 것을 생각한다. 모든 것 안에서 생각하고, 모든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Sabbaṃ sabbato sañjānāti;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인식한다;
sabbaṃ sabbato saññatvā sabbaṃ maññati, sabbasmiṃ maññati, sabbato maññati, sabbaṃ meti maññati, sabbaṃ abhinandati.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인식하고서 모든 것을 여긴다, 모든 것에서 여긴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긴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긴다, 모든 것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인식한다. 열반을 열반으로 인식하고 나면 열반을 생각한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반을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그가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Nibbānaṃ nibbānato sañjānāti;
열반을 열반으로 인식한다;
nibbānaṃ nibbānato saññatvā nibbānaṃ maññati, nibbānasmiṃ maññati, nibbānato maññati, nibbānaṃ meti maññati, nibbānaṃ a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인식하고서 열반을 여긴다, 열반에서 여긴다, 열반으로부터 여긴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긴다, 열반을 기뻐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범부를 다룬 첫째 방식이 끝났다.
Puthujjanavasena paṭham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범부에 관한 첫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7
비구들이여, 아직 배우는 중인 비구가 있다. 그는 마음이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고, 위없는 안온을 바라며 지낸다. 그런 이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땅 안에서 생각해서도 안 되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땅을 즐거워해서도 안 된다. 왜 그런가? ‘그가 두루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Yopi so, bhikkhave, bhikkhu sekkho appattamānaso anuttaraṃ yogakkhemaṃ patthayamāno viharati,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배우는 이로서 뜻한 바에 이르지 못하고 멍에에서 벗어난 위없는 안온을 바라며 머무는 그 비구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mā maññi, pathaviyā mā maññi, pathavito mā maññi, pathaviṃ meti mā maññi, pathaviṃ mābhinand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땅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땅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eyy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열반 안에서 생각해서도 안 되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열반을 즐거워해서도 안 된다. 왜 그런가? ‘그가 두루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배우는 이를 다룬 둘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물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물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불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불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불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바람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신들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신들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범천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범천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본 것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본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 것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7.1 ~ PN:mn1/7.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mā maññi, nibbānasmiṃ mā maññi, nibbānato mā maññi, nibbānaṃ meti mā maññi, nibbānaṃ mābhinand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열반에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열반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eyy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가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Sekkhavasena dutiy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배우는 이에 관한 두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8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 비구가 있다. 그는 청정한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으며, 짐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끊었으며, 바른 앎으로 해탈했다. 그런 이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가 두루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번뇌가 다하고, 살아야 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가 다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그 비구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가 두루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번뇌가 다한 이를 다룬 셋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8.1 ~ PN:mn1/8.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것은 그에게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Khīṇāsavavasena tatiy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번뇌가 다한 이에 관한 세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9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 비구가 있다. 그는 청정한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으며, 짐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끊었으며, 바른 앎으로 해탈했다. 그런 이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탐욕이 다했고 탐욕을 떠났기 때문이다.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번뇌가 다하고, 살아야 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가 다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그 비구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탐욕이 다했고 탐욕을 떠났기 때문이다. 번뇌가 다한 이를 다룬 넷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9.1 ~ PN:mn1/9.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Khīṇāsavavasena catutth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번뇌가 다한 이에 관한 네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10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 비구가 있다. 그는 청정한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으며, 짐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끊었으며, 바른 앎으로 해탈했다. 그런 이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성냄이 다했고 성냄을 떠났기 때문이다.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번뇌가 다하고, 살아야 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가 다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그 비구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성냄이 다했고 성냄을 떠났기 때문이다. 번뇌가 다한 이를 다룬 다섯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0.1 ~ PN:mn1/10.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성냄이 다했기 때문이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Khīṇāsavavasena pañcam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번뇌가 다한 이에 관한 다섯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11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 비구가 있다. 그는 청정한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으며, 짐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끊었으며, 바른 앎으로 해탈했다. 그런 이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어리석음이 다했고 어리석음을 떠났기 때문이다.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pi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번뇌가 다하고, 살아야 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가 다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그 비구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어리석음이 다했고 어리석음을 떠났기 때문이다. 번뇌가 다한 이를 다룬 여섯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1.1 ~ PN:mn1/11.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어리석음이 다했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Khīṇāsavavasena chaṭṭh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번뇌가 다한 이에 관한 여섯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12
비구들이여, 여래, 곧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여래에게는 두루 앎이 완성되어 있다’라고 나는 말한다.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ātantaṃ tathāgatassā’ti vadāmi.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여래에게는 두루 앎이 완성되어 있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래를 다룬 일곱째 방식이 끝났다.
‘‘Āpaṃ…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2.1 ~ PN:mn1/12.4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ariññātantaṃ tathāgatassā’ti vadāmi.
‘그것은 여래에게 끝까지 온전히 알려졌다’라고 나는 말한다.
Tathāgatavasena sattam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여래에 관한 일곱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13
비구들이여, 여래, 곧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도 땅을 땅으로 직접 안다. 땅을 땅으로 직접 안 뒤에는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즐김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또 ‘존재가 있어서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이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여래는 갈애를 모든 면에서 다하고, 욕심을 떠나고, 소멸시키고, 버리고, 내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불확실]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또한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안다;
pathaviṃ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ṃ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ṃ meti na maññati, pathaviṃ nābhinandati.
땅을 땅으로 완전히 알고서 땅을 여기지 않는다, 땅에서 여기지 않는다, 땅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땅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Nandī dukkhassa mūla’nti –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ṃ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vadāmi.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물, 불, 바람, 생명들, 신들, 쁘라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해서도 모두 위와 같다.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압도하는 자도 그렇다. 허공이 끝없는 경지, 의식이 끝없는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마찬가지다.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다르지 않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의식한 것, 하나임, 여럿임, 모든 것도 모두 같다. 그는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다. 열반을 열반으로 직접 안 뒤에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즐김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또 ‘존재가 있어서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이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여래는 갈애를 모든 면에서 다하고, 욕심을 떠나고, 소멸시키고, 버리고, 내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불확실]
‘‘Āpaṃ …pe… tejaṃ… vāyaṃ… bhūte… deve… pajāpatiṃ… brahmaṃ… ābhassare… subhakiṇhe… vehapphale… abhibhu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ekattaṃ… nānattaṃ… sabbaṃ… nibbānaṃ nibbānato abhijānāti;
물을 물로 완전히 안다; 물을 물로 완전히 알고서 물을 여기지 않는다, 물에서 여기지 않는다, 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안다; 불을 불로 완전히 알고서 불을 여기지 않는다, 불에서 여기지 않는다, 불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안다; 바람을 바람으로 완전히 알고서 바람을 여기지 않는다, 바람에서 여기지 않는다, 바람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바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안다; 존재들을 존재들로 완전히 알고서 존재들을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존재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안다; 신들을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로 완전히 알고서 빠자빠띠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에서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빠자빠띠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안다; 범천을 범천으로 완전히 알고서 범천을 여기지 않는다, 범천에서 여기지 않는다, 범천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범천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안다; 빛나는 신들을 빛나는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빛나는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빛나는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안다; 큰 결실의 신들을 큰 결실의 신들로 완전히 알고서 큰 결실의 신들을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에서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큰 결실의 신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안다; 지배자를 지배자로 완전히 알고서 지배자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에서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지배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완전히 알고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서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안다; 본 것을 본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본 것을 여기지 않는다, 본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본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들은 것을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들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안다; 감지한 것을 감지한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감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감지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안다; 안 것을 안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안 것을 여기지 않는다, 안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안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안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안다;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하나임을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나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안다; 여럿임을 여럿임으로 완전히 알고서 여럿임을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에서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럿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완전히 알고서 모든 것을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3.1 ~ PN:mn1/13.6에서 되살렸습니다.
nibbānaṃ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ṃ na maññati, nibbānasmiṃ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ṃ meti na maññati, nibbānaṃ nābhinandati.
열반을 열반으로 완전히 알고서 열반을 여기지 않는다, 열반에서 여기지 않는다, 열반으로부터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Nandī dukkhassa mūla’nti –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다’ —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이렇게 알고서, ‘존재로부터 태어남이 있고, 생겨난 것에게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ṃ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vadāmī’’ti.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여래는 모든 면에서 갈애들의 다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버림으로, 놓아버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나는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여래를 다룬 여덟째 방식이 끝났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다. 첫째 경, 뿌리 법문 경이 끝났다.
Tathāgatavasena aṭṭhamanayabhūmiparicchedo niṭṭhito.
여래에 관한 여덟 번째 방식의 단계 구분이 끝났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Na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그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다.
Mūlapariyāy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뿌리 법문 경이 끝났다,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