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Kāyagatāsatisuttaṃ
9.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153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그때 여러 비구가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강당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Atha kho sambahulānaṃ bhikkhūnaṃ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ṃ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ayamantarākathā udapādi –
그때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당에 함께 앉아 모여 있던 여러 비구에게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다 —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알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열매와 큰 이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acchariyaṃ, āvuso, abbhutaṃ, āvuso!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Yāvañcidaṃ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vuttā mahānisaṃsā’’ti.
저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참으로 그러합니다.”
비구들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 홀로 앉아 계시던 데서 일어나 강당으로 오셨다.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Ayañca hidaṃ tesaṃ bhikkhūnaṃ antarākathā vippakatā hoti,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그 비구들의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세존께서 저녁 무렵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집회당으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너희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앉았느냐? 중간에 끊긴 이야기는 무엇이냐?”
‘‘kāya 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여기 무슨 이야기로 함께 앉아 있으며, 또 그대들의 어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강당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알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열매와 큰 이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의 이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Idha, bhante, amhākaṃ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ṃ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ayamantarākathā udapādi –
“세존이시여, 여기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집회당에 함께 앉아 모여 있던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
‘acchariyaṃ, āvuso, abbhutaṃ, āvuso!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Yāvañcidaṃ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vuttā mahānisaṃsā’ti.
저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참으로 그러합니다.’
Ayaṃ kho no, bhante, antarākathā vippakatā, atha bhagavā anuppatto’’ti.
세존이시여, 저희의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을 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154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혀야 큰 열매와 큰 이익이 있느냐?
‘‘Kathaṃ bhāvitā ca, bhikkhave, kāyagatāsati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숲에 가거나 나무 밑에 가거나 빈집에 간다. 그곳에서 다리를 틀고 앉아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바로 앞에 둔다.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쉬면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쉬면 ‘짧게 내쉰다’고 안다. 그는 ‘온몸을 느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온몸을 느끼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또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두어 앉는다.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안다;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안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면서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온몸을 느끼면서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ṃ,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을 때는 ‘걷고 있다’고 알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다’고 안다.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다’고 안다.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때그때 그대로 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gacchanto vā ‘gacchāmī’ti pajānāti, ṭhito vā ‘ṭhitomhī’ti pajānāti, nisinno vā ‘nisinnomhī’ti pajānāti, sayāno vā ‘sayānomhī’ti pajānāti.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면서 ‘나는 간다’고 알고, 서서 ‘나는 서 있다’고 알고, 앉아서 ‘나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서 ‘나는 누워 있다’고 안다.
Yathā yathā vā panassa kāyo paṇihito hoti, tathā tathā naṃ pajānāti.
또 그의 몸이 어떠어떠하게 놓여 있든, 그러그러하게 그것을 안다.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나아가고 물러설 때, 앞을 보고 둘러볼 때, 굽히고 펼 때 그렇게 한다. 가사와 발우를 지닐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대소변을 볼 때도 그렇게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설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가사와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살펴본다.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인 이 몸이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위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아래로는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살갗으로 둘러싸인,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으로 살펴본다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 창자, 창자막, 위 속의 것,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이 가득 담긴 것과 같다. 멥쌀, 벼, 녹두, 콩, 참깨, 쌀이 들어 있다.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어 놓고 살펴본다. ‘이것은 멥쌀, 이것은 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쌀이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ṃ –
비구들이여,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가 갖가지 곡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같으니, 곧 —
sālīnaṃ vīhīnaṃ muggānaṃ māsānaṃ tilānaṃ taṇḍulānaṃ, tamenaṃ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
멥쌀, 벼, 녹두, 콩, 참깨, 찧은 쌀로 가득 차 있는데,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풀어서 살펴본다면[불확실]
불확실 —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이것은 멥쌀이다, 이것은 벼다, 이것은 녹두다, 이것은 콩이다, 이것은 참깨다, 이것은 찧은 쌀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도 그와 같다.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인 이 몸이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살펴본다.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위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아래로는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살갗으로 둘러싸인,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으로 살펴본다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 창자, 창자막, 위 속의 것,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요소별로 살펴본다. 몸이 놓인 대로, 자세 잡은 대로 살펴본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한 그대로, 요소별로 살펴본다 —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솜씨 좋은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았다고 하자. 그가 소를 갈래갈래 나누어 놓고 네거리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비구도 그와 같다. 이 몸이 놓인 대로, 자세 잡은 대로 요소별로 살펴본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gāviṃ vadhitvā catumahāpathe bilaso vibhajitvā nisinno assa;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소백정이나 소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아 네거리에서 부위별로 발라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한 그대로, 요소별로 살펴본다 —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체 버리는 숲에 버려진 시체를 본다고 하자. 죽은 지 하루, 이틀, 사흘이 되어 부풀고 퍼렇게 되고 곪아 문드러진 시체이다. 그는 이 몸에 견주어 본다. ‘이 몸도 이러한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ekāhamataṃ vā dvīhamataṃ vā tīhamataṃ vā uddhumātakaṃ vinīlakaṃ vipubbakajātaṃ.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하루 지나 죽었거나 이틀 지나 죽었거나 사흘 지나 죽어, 부풀고 검푸르고 고름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집에 얽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이 안으로 자리 잡는다. 마음은 가라앉아 하나로 모이고 집중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체 버리는 숲에 버려진 시체를 본다고 하자. 까마귀, 매, 독수리, 왜가리가 쪼아 먹고 있다. 개, 호랑이, 표범, 자칼이 뜯어 먹고 있다. 온갖 벌레도 갉아 먹고 있다. 그는 이 몸에 견주어 본다. ‘이 몸도 이러한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kākehi vā khajjamānaṃ kulalehi vā khajjamānaṃ gijjhehi vā khajjamānaṃ kaṅkehi vā khajjamānaṃ sunakhehi vā khajjamānaṃ byagghehi vā khajjamānaṃ dīpīhi vā khajjamānaṃ siṅgālehi vā khajjamānaṃ vividhehi vā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ṃ.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까마귀들에게 먹히거나, 솔개들에게 먹히거나, 독수리들에게 먹히거나, 왜가리들에게 먹히거나, 개들에게 먹히거나, 호랑이들에게 먹히거나, 표범들에게 먹히거나, 자칼들에게 먹히거나, 갖가지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4.41 ~ PN:mn119/154.42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체 버리는 숲에 버려진 시체를 본다고 하자. 살과 피가 아직 붙은 채 힘줄로 이어진 해골이다. … 살은 없고 피만 묻은 채 힘줄로 이어진 해골이다. …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이다. … 뼈들이 이어지지 않고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다.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가 있다. 또 복사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엉덩이뼈, 갈빗대, 등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뼈, 두개골이 따로따로 널려 있다. 그는 이 몸에 견주어 본다. ‘이 몸도 이러한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aṭṭhikasaṅkhalikaṃ s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asaṅkhalikaṃ nimmaṃsalohitamakk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asaṅkhalikaṃ apagat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vidisāvikkhittāni aññena hatthaṭṭhikaṃ aññena pādaṭṭhikaṃ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ṃ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ṃ aññena ūruṭṭhikaṃ aññena kaṭiṭṭhikaṃ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ṃ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ṃ aññena khandhaṭṭhikaṃ aññena gīvaṭṭhikaṃ aññena hanukaṭṭhikaṃ aññena dantaṭṭhikaṃ aññena sīsakaṭāhaṃ.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살과 피가 붙은 채 힘줄로 이어진 뼈사슬인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살은 없고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이어진 뼈사슬인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살과 피가 사라지고 힘줄로 이어진 뼈사슬인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이 이어짐이 사라져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뼈들인 것을 보는 것과 같다 — 다른 데에 손뼈, 다른 데에 발뼈, 다른 데에 발목뼈, 다른 데에 정강이뼈, 다른 데에 넓적다리뼈, 다른 데에 엉덩이뼈, 다른 데에 갈비뼈, 다른 데에 등뼈, 다른 데에 어깨뼈, 다른 데에 목뼈, 다른 데에 턱뼈, 다른 데에 이뼈, 다른 데에 머리뼈.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4.44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4.41 ~ PN:mn119/154.42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체 버리는 숲에 버려진 시체를 본다고 하자. 뼈들이 조개껍데기 빛깔처럼 하얗다. … 뼈들이 쌓여 있고 한 해가 지났다. … 뼈들이 썩어 가루가 되었다. 그는 이 몸에 견주어 본다. ‘이 몸도 이러한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
또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시체 버리는 곳에 버려진 몸을 보는 것과 같다 —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 …pe…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pe…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뼈들이 하얗게 되어 소라 빛깔 같은 것을, 뼈들이 무더기로 쌓여 한 해가 지난 것을, 뼈들이 삭아 가루가 된 것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172.18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내는 그에게서 …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재가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자리 잡고, 가라앉고, 하나가 되고, 삼매에 든다. 이와 같이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4.41 ~ PN:mn119/154.42에서 되살렸습니다.
155
비구들이여, 비구는 또 갖가지 욕망에서 멀리 떠나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하면 이렇다. 솜씨 좋은 목욕 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놋쇠 대야에 목욕 가루를 뿌리고, 물을 조금씩 끼얹어 가며 반죽한다. 그러면 가루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고 두루 스며서 안팎이 물기로 가득해진다. 그래도 물이 줄줄 새지는 않는다. 비구도 이와 같이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pe…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ṃ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ṃ paripphosakaṃ sanneyya, sāyaṃ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iṇī;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목욕 시중꾼이나 목욕 시중꾼의 제자가 청동 그릇에 목욕 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뿌려 가며 반죽하면, 그 목욕 가루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고 물기에 젖어 안팎으로 물기가 스며 있으면서도 방울져 흐르지는 않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세속에 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굳게 서고, 가라앉고, 한곳에 모이고,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5.26 ~ PN:mn119/155.27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또 생각과 헤아림이 가라앉아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하면 바닥에서 물이 솟는 깊은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는 동쪽에도 서쪽에도 북쪽에도 남쪽에도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없다.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려 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호수 속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호수를 차가운 물로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호수의 어느 곳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비구도 이와 같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일으킨 생각도 지속적 고찰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그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bhikkhave,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비구들이여, 마치 깊고 물이 솟아오르는 못이 있는데,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그 못에는 동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서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북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고, 남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입구도 없으며,
devo ca na kālena kālaṃ sammā dhāraṃ anuppaveccheyya;
하늘도 때때로 비를 알맞게 내려 주지 않는데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ṃ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바로 그 못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바로 그 못을 차가운 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여, 그 못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며,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세속에 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굳게 서고, 가라앉고, 한곳에 모이고,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5.26 ~ PN:mn119/155.27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또 기쁨에서도 마음이 멀어져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기쁨이 없는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하면 푸른 연꽃 못, 붉은 연꽃 못, 흰 연꽃 못이 있다. 그 못에서 어떤 연꽃은 물속에서 나고 물속에서 자란다.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란다. 이 꽃들은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스미고, 가득 차서 두루 배어 있다. 어느 부분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비구도 이와 같이 기쁨이 없는 즐거움으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워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그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pe…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bhikkhave,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ṃ uppalānaṃ vā padumānaṃ vā puṇḍarīkānaṃ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비구들이여, 마치 청련 못이나 홍련 못이나 백련 못에서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밖으로 솟아오르지 않은 채 물속에 잠겨 자라는데, 그것들은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로 적셔지고 흠뻑 적셔지고 채워지고 두루 퍼져,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며,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Tassa evaṃ appamattassa…pe…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세속에 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굳게 서고, 가라앉고, 한곳에 모이고,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19:155.26 ~ PN:mn119/155.27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또 즐거움도 버리고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머리까지 하얀 천을 둘러쓰고 앉아 있다. 그의 온몸 어디에도 하얀 천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다. 비구도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그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처럼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써 지내는 그에게서 집안 살림에 매인 기억과 생각이 사라진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마음은 안으로 고요히 자리 잡는다. 마음이 가라앉아 한 곳으로 모이고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pe…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앞서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앉아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ṃ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ṃ assa;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흰 천으로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앉아 있어,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앉아 있으며,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머무는 그에게, 세속에 매인 기억과 생각들이 버려진다.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그것들이 버려지므로 안으로 마음이 굳게 서고, 가라앉고, 한곳에 모이고, 삼매에 든다.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156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지혜에 보탬이 되는 좋은 법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 비유하면 이렇다. 누군가 마음으로 큰 바다를 두루 헤아려 안다면,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강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지혜에 보탬이 되는 좋은 법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antogadhāvāssa kusalā dhammā ye keci vijjābhāgiyā.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지혜에 이바지하는 유익한 법들은 그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 있다.
Seyyathāpi, bhikkhave, yassa kassaci mahāsamuddo cetasā phuṭo, antogadhāvāssa kunnadiyo yā kāci samuddaṅgamā;
비구들이여, 마치 누구든 마음으로 큰 바다를 감싼 사람에게는,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강들은 그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antogadhāvāssa kusalā dhammā ye keci vijjābhāgiyā.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지혜에 이바지하는 유익한 법들은 그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 있다.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자주 거듭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는다. 마라가 붙잡을 곳도 얻는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무거운 돌덩이를 젖은 진흙 더미에 던진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무거운 돌덩이가 젖은 진흙 더미에서 틈을 얻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자주 거듭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고, 붙잡을 곳도 얻는다.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ṃ,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ṃ.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는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garukaṃ silāguḷaṃ allamattikāpuñje pakkhipeyya.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무거운 돌덩이를 젖은 진흙 무더기에 던진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aṃ garukaṃ silāguḷaṃ allamattikāpuñje labhetha otāra’’n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무거운 돌덩이가 젖은 진흙 무더기에서 틈을 얻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ṃ,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바싹 마른 속 빈 나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피워 내야겠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바싹 마른 속 빈 나무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비면 불을 일으키고 열을 피워 낼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자주 거듭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고, 붙잡을 곳도 얻는다.
Seyyathāpi, bhikkhave,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비구들이여, 마치 메마르고 물기 없는 나무토막이 있는데,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부싯나무 윗막대를 들고 와서 —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내리라’고 한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ṃ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저 메마르고 물기 없는 나무토막에 부싯나무 윗막대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ṃ,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물을 담는 항아리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이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이 물을 한 짐 지고 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을 부을 자리를 얻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자주 거듭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고, 붙잡을 곳도 얻는다.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ritto tuccho ādhāre ṭhapito;
비구들이여, 마치 받침대 위에 놓인, 비어서 텅 빈 물동이가 있는데,
atha puriso āgaccheyya udakabhāraṃ ādāya.
그때 어떤 사람이 물을 한 짐 지고 온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labhetha udakassa nikkhepana’’n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을 부어 둘 자리를 얻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abhāvitā abahulīkatā, labhati tassa māro otāraṃ, labhati tassa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는다.”
157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한다. 마라가 붙잡을 곳도 얻지 못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가벼운 실뭉치를 단단한 심재로 만든 빗장 널빤지에 던진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던진 가벼운 실뭉치가 그 단단한 빗장 널빤지에서 틈을 얻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붙잡을 곳도 얻지 못한다.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ṃ,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지 못하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지 못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lahukaṃ suttaguḷaṃ sabbasāramaye aggaḷaphalake pakkhipeyya.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가벼운 실뭉치를 단단한 심재로만 된 빗장 널빤지에 던진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taṃ lahukaṃ suttaguḷaṃ sabbasāramaye aggaḷaphalake labhetha otāra’’n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 가벼운 실뭉치로 단단한 심재로만 된 빗장 널빤지에서 틈을 얻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ṃ,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지 못하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물기가 배어 있는 생나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피워 내야겠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기 배어 있는 생나무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피워 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붙잡을 곳도 얻지 못한다.
Seyyathāpi, bhikkhave,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비구들이여, 마치 젖고 물기 있는 나무토막이 있는데,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부싯나무 윗막대를 들고 와서 —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내리라’고 한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amuṃ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저 젖고 물기 있는 나무토막에 부싯나무 윗막대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ṃ,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지 못하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물을 담는 항아리가 물로 가득 차 있다.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넘실거리는 채로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이 물을 한 짐 지고 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을 부을 자리를 얻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에게는 마라가 틈을 얻지 못하고, 붙잡을 곳도 얻지 못한다.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pūro udakassa samatittiko kākapeyyo ādhāre ṭhapito;
비구들이여, 마치 받침대 위에 놓인, 물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서 까마귀가 마실 만한 물동이가 있는데,
atha puriso āgaccheyya udakabhāraṃ ādāya.
그때 어떤 사람이 물을 한 짐 지고 온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labhetha udakassa nikkhepana’’n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을 부어 둘 자리를 얻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na tassa labhati māro otāraṃ, na tassa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에게는, 마라가 그에게서 틈을 얻지 못하고, 마라가 그에게서 발판을 얻지 못한다.”
158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이 있다. 그가 곧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어떤 법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러면 그때마다 마음챙김의 자리가 있는 한, 바로 그 일에서 직접 증득할 수 있게 된다. 비유하면 물을 담는 항아리가 물로 가득 차 있다.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넘실거리는 채로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힘센 사람이 그것을 어느 쪽으로든 기울이면 물이 흘러나오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이 곧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어떤 법에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마다 마음챙김의 자리가 있는 한 바로 그 일에서 직접 증득할 수 있게 된다.[불확실]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법이든 그것을 직접 알아 실현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챙김의 토대가 있을 때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몸소 해낼 수 있게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udakamaṇiko pūro udakassa samatittiko kākapeyyo ādhāre ṭhapito.
비구들이여, 마치 받침대 위에 놓인, 물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서 까마귀가 마실 만한 물동이가 있다고 하자.
Tamenaṃ balavā puriso yato yato āviñcheyya, āgaccheyya udaka’’nti?
힘센 사람이 그것을 이쪽저쪽 어디로 기울이든 물이 나오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법이든 그것을 직접 알아 실현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챙김의 토대가 있을 때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몸소 해낼 수 있게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평평한 땅에 사방이 반듯한 연못이 있다. 연못은 둑으로 둘러싸여 있고,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물이 가득 차 있다. 힘센 사람이 어느 쪽으로든 둑을 터 주면 물이 흘러나오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이 곧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어떤 법에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마다 마음챙김의 자리가 있는 한 바로 그 일에서 직접 증득할 수 있게 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same bhūmibhāge caturassā pokkharaṇī assa āḷibandhā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비구들이여, 마치 평평한 땅에 둑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연못이 있어, 물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서 까마귀가 마실 만하다고 하자.
Tamenaṃ balavā puriso yato yato āḷiṃ muñceyya āgaccheyya udaka’’nti?
힘센 사람이 그 둑을 이쪽저쪽 어디로 트든 물이 나오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법이든 그것을 직접 알아 실현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챙김의 토대가 있을 때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몸소 해낼 수 있게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평탄한 땅의 네거리에 수레가 서 있다. 잘 길든 말이 끄는 수레이고, 채찍은 아래로 내려놓았다. 솜씨 좋은 마부, 곧 말 길들이는 이가 그 수레에 오른다. 그는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든다. 그리고 가고 싶은 대로 어디로든 앞으로도 몰고 뒤로도 물릴 수 있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거듭한 사람이 곧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어떤 법에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마다 마음챙김의 자리가 있는 한 바로 그 일에서 직접 증득할 수 있게 된다.[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subhūmiyaṃ catumahāpathe ājaññaratho yutto assa ṭhito odhastapatodo;
비구들이여, 마치 좋고 평평한 땅의 네거리에 좋은 말들을 맨 수레가 채찍을 걸쳐 둔 채 서 있는데,
tamenaṃ dakkho yoggācariyo assadammasārathi abhiruhitvā vāmena hatthena rasmiyo gahetvā dakkhiṇena hatthena patodaṃ gahetvā yenicchakaṃ yadicchakaṃ sāreyyāpi paccāsāreyyāpi;
솜씨 좋은 조련사, 곧 길들일 말을 모는 마부가 거기에 올라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들고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대로 몰기도 하고 되돌리기도 하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누구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힌 사람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법이든 그것을 직접 알아 실현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챙김의 토대가 있을 때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몸소 해낼 수 있게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59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익히고 닦고 자주 거듭한다고 하자. 그것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아 꾸준히 이어 가며 쌓고 잘 다듬으면, 열 가지 이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싫증과 즐거움을 이겨 낸다. 싫증이 그를 누르지 못하고, 그는 생겨난 싫증을 넘어서서 지낸다. 둘째,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 낸다.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누르지 못하고, 그는 생겨난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서 지낸다. 셋째,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딘다. 등에, 모기, 바람, 뙤약볕, 기어 다니는 벌레가 닿는 것도 견디고, 거칠고 나쁜 말도 견딘다. 몸에 일어난 느낌이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리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목숨마저 앗아 갈 듯해도 참아 내는 사람이 된다. 넷째, 마음을 높이는 네 가지 선정을 얻는다. 지금 여기서 누리는 즐거운 머묾을 바라는 대로, 어려움 없이 힘들이지 않고 얻는다.[불확실]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dasānisaṃsā pāṭikaṅkhā.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익히고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꾸준히 하고 몸에 배게 하고 힘써 시작하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Aratiratisaho hoti, na ca taṃ arati sahati, uppannaṃ aratiṃ abhibhuyya viharati.
그는 싫증과 즐김을 이겨내는 이가 되어, 싫증이 그를 이기지 못하고, 일어난 싫증을 이겨내며 머문다.
‘‘Bhayabheravasaho hoti, na ca taṃ bhayabheravaṃ sahati, uppannaṃ bhayabheravaṃ abhibhuyya viharati.
그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는 이가 되어,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이기지 못하고, 일어난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며 머문다.
‘‘Khamo hoti sītassa uṇhassa jighacchāya pipāsāya ḍaṃ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ānaṃ duruttānaṃ durāgatānaṃ vacanapathānaṃ, uppannānaṃ sārīrikānaṃ vedanānaṃ dukkhānaṃ tibbānaṃ kharānaṃ kaṭukānaṃ asātānaṃ amanāpānaṃ pāṇaharānaṃ adhivāsakajātiko hoti.
그는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등에와 모기와 바람과 햇볕과 기어다니는 것들이 닿는 것을 견디고, 거칠게 내뱉는 말과 험하게 들이대는 말투를 견디며, 몸에 일어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리고 언짢고 마음에 들지 않고 목숨을 앗아갈 듯한 느낌들을 참아내는 이가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Catunnaṃ jhānānaṃ ābhicetasikānaṃ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ṃ nikāmalābhī hoti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머무는, 높은 마음의 네 가지 선(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게, 힘들이지 않고 얻는다.
다섯째, 갖가지 신통을 경험한다.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고, 여럿이면서 다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유자재하다. 여섯째, 청정하고 사람의 귀를 뛰어넘는 하늘귀로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다. …… 일곱째,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꿰뚫어 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은 …… 성냄이 있는 마음은 … 성냄을 떠난 마음은 …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은 … 움츠러든 마음은 … 흩어진 마음은 … 커진 마음은 … 커지지 않은 마음은 … 위가 있는 마음은 … 위가 없는 마음은 … 삼매에 든 마음은 …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 해탈한 마음은 … 해탈하지 못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ānubhoti.
그는 여러 가지 신통을 나타낸다.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ṃ…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걸림 없이 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드나들고,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가라앉지 않고 걸어간다. 허공에서도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나아간다. 이토록 큰 힘과 이토록 큰 위력을 지닌 저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다스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8:82.12 ~ PN:mn108/82.17에서 되살렸습니다.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pe….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거나 가까운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8:82.19에서 되살렸습니다.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다른 중생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pe… s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vā cittaṃ… s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vā cittaṃ… saṃ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이 없는 마음은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없는 마음은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든 마음’이라고 안다.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위없는 마음은 ‘위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8:82.21에서 되살렸습니다.
여덟째,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낸다. 곧 한 생, 두 생 …… 이렇게 모습과 내용을 갖춘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낸다. 아홉째,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낮은 이와 높은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가는 곳도 안다. 열째,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들어 머문다.[불확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이를테면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줄어드는 여러 겁, 세계가 늘어나는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고. 이렇게 모습과 자취를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못나고 잘나고, 곱고 추하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지은 업에 따라 가는 대로 안다.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익히고 닦고 자주 거듭한다고 하자. 그것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아 꾸준히 이어 가며 쌓고 잘 다듬으면, 이 열 가지 이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이 끝났다. 아홉째이다.[불확실]
‘‘Kāyagatāya, bhikkhave, satiyā āsevitāya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ime dasānisaṃsā pāṭikaṅkhā’’ti.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익히고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꾸준히 하고 몸에 배게 하고 힘써 시작하면, 이 열 가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Kāyagatāsati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