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五)中阿含王相應品烏鳥喻經第一
(65)중아함 왕 상응품 까마귀 새의 비유 경 첫째
주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제목은 경 이름이라 烏鳥喻經을 「까마귀 새의 비유 경」으로 뜻으로 옮기고, 王相應品은 王·相應·品 순서로 옮겼다(사전 相應 ①, 品 ① 이 역자 쓰임 참조). 품·경 이름의 음독 관행과 뜻 옮김 가운데 어느 쪽을 정본이 택하는지는 정도평 몫이다. 이문: 明本은 `中阿含`과 `經`이 없고 `一` 대신 `八第二小土城誦`으로 읽는다. 저본(大正)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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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聞如是: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주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개경 정형구(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220). 사전 我聞 ③ 용례 ma100/0586b04.1과 같은 꼴이다. 如是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라 「이와 같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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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時,佛遊王舍城,在竹林加蘭哆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노니시며 대나무 숲 가란다 동산에 계셨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바로 다음 좌표에서는 같은 분을 世尊으로 부른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王舍城은 3분할 표가 王舍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형 「왕사성」을 쓰는 정착어로 처리했다. 이름의 뜻은 「왕이 머무는 성」(王舍; 전거 王舍城 팔리형 Rājagaha). 竹林은 뜻으로 「대나무 숲」, 加蘭哆는 음역이라 독음을 쓰되 哆를 `다`로 읽었다(전거 加蘭哆園 팔리형 Kalandakanivāpa). 哆의 독음 선택은 정도평 확인이 필요하다. 遊는 머물며 거닐다의 뜻이라 「노니시며」로 옮겼다. 대응: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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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世尊告諸比丘:「昔轉輪王欲試珠寶時,便集四種軍,象軍、馬軍、車軍、步軍,集四種軍已,於夜闇中竪立高幢,安珠置上,出至園觀,珠之光耀,照四種軍,明之所及,方半由延。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바퀴를 굴리는 왕이 구슬 보배를 시험하려 할 때, 곧 네 가지 군대를 모았으니 코끼리 군대·말 군대·수레 군대·걸어가는 군대였다. 네 가지 군대를 모은 뒤 밤의 어둠 속에 높은 깃대를 세우고 구슬을 안치해 그 위에 올려 두고, 나가 동산과 누각에 이르렀는데, 구슬의 빛남이 네 가지 군대를 비추어 밝음이 미치는 곳이 사방 반 유연이었다.
주 世尊은 [구속] 세존. 바로 앞 좌표에서는 佛이라 했으므로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佛/世尊); 확정역이 각각 있어 부처님/세존으로 각각 옮겼다. 轉輪王은 3분할 표가 의역이라 「바퀴를 굴리는 왕」으로 옮겼다(전거는 다른 부 대역이라 참고만). 由延은 음역이라 독음 「유연」(전거 Yojana). 方半由延의 方은 「사방」으로 읽었다; 「바야흐로」로 읽을 여지가 있어 불확실로 남긴다. 園觀은 음의 園觀 「官換反 樓觀也」를 인용해 「동산과 누각」으로 옮겼다(사전 園觀 ① 이 역자 용례 참조). 光耀는 「빛남」. 幢은 「깃대」로 옮겼다. 步軍은 「걸어가는 군대」로 뜻을 풀었다.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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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時,有一梵志而作是念:『我寧可往見轉輪王及四種軍,觀琉璃珠。』
그 무렵 한 청정을 따르는 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차라리 가서 바퀴를 굴리는 왕과 네 가지 군대를 보고 유리 구슬을 구경하는 편이 낫겠다.’
주 梵志는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하고 확정역이 없다. 음독(범지)을 피하고 梵(청정)+志(뜻)의 뜻으로 「청정을 따르는 이」로 옮겼다. 한 경 안에서 통일한다. 琉璃는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음의 琉璃(吠琉璃耶, 近山寶)가 보여 주듯 음역 계통의 낱말이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 「유리」를 쓴다. 寧可는 「차라리 ~하는 편이 낫겠다」로 옮겼다. 見과 觀은 「보고」/「구경하고」로 갈랐다.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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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梵志復作是念:『且置見轉輪王及四種軍、觀琉璃珠,我寧可往至彼林間。』
그때 청정을 따르는 이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바퀴를 굴리는 왕과 네 가지 군대를 보고 유리 구슬을 구경하는 일은 우선 접어 두고, 나는 차라리 저 숲속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
주 且置는 음의 「置 捨也」(廣雅)와 사전 且置 ① 발화 첫머리 5/11을 근거로 「우선 접어 두고」로 옮겼다. 復는 앞 생각에 이은 다시 일어난 생각이라 「또」를 세웠다.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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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梵志便往詣林,到已入中,至一樹下,坐已未久,有一獺獸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獺獸!汝從何來,為欲何去?』
이에 청정을 따르는 이는 곧 숲에 가 이르렀고, 이르러서는 그 안에 들어가 한 나무 아래에 이르러 앉았는데, 앉은 지 오래지 않아 수달 짐승 한 마리가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수달 짐승이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善來는 3분할 표 의역이라 「잘 왔구나」로 옮겼다(사전 善來 ① 발화 첫머리 31/42; 음의 없음). 獺獸는 「수달 짐승」, 이후 짐승·새 이름은 이름+종류어(獸·鳥)를 모두 옮겨 통일한다. 梵志가 짐승에게 하는 말은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로 했다(존칭 정합 판단은 정도평 확인).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이 조각 투입물에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실려 있지 않아 대응 좌표를 잡지 못했다(`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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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此池本時清泉盈溢,饒藕多華,魚龜滿中,我昔所依,而今枯熇。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이 못은 본래 맑은 샘물이 가득 넘치고, 연뿌리가 넉넉하며 꽃이 많고, 물고기와 거북이 그 안에 가득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의지하던 곳인데 지금은 말라 바싹 타 버렸습니다.
주 짐승·새가 梵志에게 하는 말은 청자가 윗사람이라 보고 높임으로 통일했다(烏鳥만 예외; 0506c22.1 참조). 本時는 「본래」(사전 本時 ①). 盈溢은 음의 「夷質反 滿也」를 인용해 「가득 넘치고」. 熇는 大正 본문을 따라 두고 「바싹 타 버렸다」로 옮겼다; 이문 `稿`(宋元明)는 저본이 아니다. 이 대답은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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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志當知!我欲捨去,入彼大河,我今欲去,唯畏於人。』
청정을 따르는 이여, 아십시오! 저는 이곳을 버리고 떠나 저 큰 강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當知는 당위 어미로 흡수해 「아십시오」. 唯는 한정이라 조사 「만」으로 흡수했다. 捨去의 목적어는 한문에 없어 보태지 않았다.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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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彼獺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때 그 수달 짐승은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論是已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捨而去는 「두고 떠났다」, 故坐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故=여전히).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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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究暮鳥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究暮鳥!汝從何來,為欲何去?』
또 구모 새가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구모 새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究暮는 새 이름의 음역으로 보고 독음 「구모」를 쓰고 鳥는 뜻으로 「새」를 붙였다; 소리인지 뜻인지 3분할 표에 없어 판별 근거는 이름이 소리글자 조합으로 읽힌다는 것뿐이다. 이문: 明本 `來`→`哉`.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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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此池本時清泉盈溢,饒藕多華,魚龜滿中,我昔所依,而今枯熇。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이 못은 본래 맑은 샘물이 가득 넘치고, 연뿌리가 넉넉하며 꽃이 많고, 물고기와 거북이 그 안에 가득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의지하던 곳인데 지금은 말라 바싹 타 버렸습니다.
주 0506b23.1과 같은 문장이다(수달 짐승의 대답과 한문이 같다). 이 대답은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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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志當知!我欲捨去,依彼死牛聚處栖宿,或依死驢,或依死人聚處栖宿,我今欲去,唯畏於人。』
청정을 따르는 이여, 아십시오! 저는 이곳을 버리고 떠나 저 죽은 소가 모인 곳에 의지해 깃들어 자려 합니다. 혹은 죽은 나귀에 의지하고, 혹은 죽은 사람이 모인 곳에 의지해 깃들어 자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栖宿은 「깃들어 자다」. 聚處는 「모인 곳」.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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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究暮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 구모 새는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0506b26.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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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鷲鳥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鷲鳥!汝從何來,為欲何去?』
또 독수리 새가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독수리 새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鷲는 「독수리」로 옮겼다. 시체를 먹는 새로 읽히나 한문 자체는 이름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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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我從大墓復至大墓殺害而來,我今欲食死象之肉,死馬、死牛、死人之肉,我今欲去,唯畏於人。』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저는 큰 무덤에서 또 큰 무덤으로 죽이고 해치며 왔습니다. 제가 지금 죽은 코끼리의 고기와 죽은 말·죽은 소·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으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復至는 「또 ~로」, 殺害而來는 「죽이고 해치며 왔다」. 한문에 `我今欲食…我今欲去`가 겹쳐 있어 두 번 모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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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彼鷲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때 그 독수리 새는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0506b26.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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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食吐鳥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食吐鳥!汝從何來,為欲何去?』
또 토한 것을 먹는 새가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토한 것을 먹는 새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食吐鳥는 이름이 뜻으로 읽히는 의역이라 「토한 것을 먹는 새」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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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汝見向者鷲鳥去耶?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그대는 방금 독수리 새가 가는 것을 보았습니까?
주 向者는 「방금」,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했다. 이 대답은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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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食彼吐,我今欲去,唯畏於人。』
저는 그가 토한 것을 먹습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彼吐의 彼는 앞 좌표의 독수리 새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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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食吐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 토한 것을 먹는 새는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0506b26.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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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犲獸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犲獸!汝從何來,為欲何去?』
또 승냥이 짐승이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승냥이 짐승이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犲는 豺(승냥이)의 이체로 읽었다. 판본은 `獸`를 `狩`로 읽는 이문이 있다(宋); 저본 大正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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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我從深㵎至深㵎,從榛莽至榛莽,從僻靜至僻靜處來,我今欲食死象肉,死馬、死牛、死人之肉,我今欲去,唯畏於人。』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저는 깊은 골짜기에서 깊은 골짜기로, 덤불에서 덤불로, 외지고 고요한 곳에서 외지고 고요한 곳으로 왔습니다. 제가 지금 죽은 코끼리 고기와 죽은 말·죽은 소·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으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榛莽은 음의 「說文 木藂生曰榛 眾草曰莾也」를 인용해 「덤불」로 옮겼다. 㵎은 澗의 이체로 읽어 「골짜기」. 僻靜은 「외지고 고요한」. 이문: 宋元 `死象之肉`(之 있음). 저본 大正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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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彼犲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때 그 승냥이 짐승은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0506b26.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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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烏鳥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烏鳥!汝從何來,為欲何去?』
또 까마귀 새가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까마귀 새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烏鳥는 「까마귀 새」. 경 이름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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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汝強額癡狂,何為問我:「汝從何來,為欲何去?」』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그대는 이마가 억세고 어리석고 미쳤구나. 어찌하여 내게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하고 묻는가?’
주 이 새만 梵志를 꾸짖으므로 평서로 했다. 強額癡狂은 「이마가 억세고 어리석고 미쳤다」로 글자대로 옮겼고 관용 뜻은 비고에 붙이지 않는다. 何為는 「어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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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時,烏鳥面訶梵志已,便捨而去,梵志故坐。
그 무렵 까마귀 새는 청정을 따르는 이를 얼굴 맞대고 꾸짖은 뒤 곧 두고 떠났고,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 面訶는 「얼굴 맞대고 꾸짖다」(사전 訶 ① 이 경 0506c23.1). 彼時는 「그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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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有狌狌獸來,梵志見已而問之曰:『善來,狌狌獸!汝從何來,為欲何去?』
또 성성이 짐승이 왔다. 청정을 따르는 이는 그를 보고 물어 말했다. ‘잘 왔구나, 성성이 짐승이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주 狌狌은 음의 猩(猩猩)과 같은 짐승 이름으로 읽어 「성성이」. 山海經 인용은 음의에 있다(능히 말하는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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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我從園至園,從觀至觀,從林至林,飲清泉水,食好果來,我今欲去,不畏於人。』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저는 동산에서 동산으로, 누각에서 누각으로, 숲에서 숲으로 맑은 샘물을 마시고 좋은 과일을 먹으며 왔습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주 觀은 0506b13.1의 園觀과 같이 「누각」으로 읽었다. 이문: 元明 `食好果`를 `念好果`로 읽는다. 저본 大正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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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狌狌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 성성이 짐승은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다.”
주 故坐가 없다(성성이 이야기에서는 梵志가 앉은 채로 있다는 말이 없다). 부처님의 말씀을 닫는 따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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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諸比丘:「吾說此喻,欲令解義,汝等當知此說有義。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비유를 말하는 것은 뜻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너희는 이 말에 뜻이 있음을 알라.
주 佛은 [구속] 부처님. 0506b13.1에서 같은 분을 世尊이라 했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欲令解義는 사역의 令을 「~하게 하려는 것」으로 흡수했다. 當知는 「알라」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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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彼獺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때 그 수달 짐승은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다.
주 부처님이 비유를 되짚어 풀이하기 시작하는 자리다. 0506b26.1에서 故坐가 이어졌으나 여기에는 없다.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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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말하는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吾說此喻有何義耶: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 有는 존재 서술이라 「뜻이 있는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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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有比丘依村邑行,比丘平旦著衣持鉢,入村乞食,不護於身,不守諸根,不立正念,而彼說法,或佛所說,或聲聞所說,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을을 의지해 다니는데,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몸을 지키지 않고, 여러 감관을 지키지 않고, 바른 생각을 세우지 않으며, 그가 법을 설하는데 혹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고 혹은 성문이 설한 것이며, 이로 인해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온갖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은 뒤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며 버리고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依村邑行은 「마을을 의지해 다니다」. 諸根은 사전 諸根 ①(앞 不護 23)과 문맥(護·守)으로 감각 기능으로 읽어 「감관」; 信勤念定慧의 五根으로 읽을 여지가 남는다. 觸猗는 이 경 밖 용례를 못 찾았다. 染著(사전 染著 ① 뒤 觸猗 6)과 이어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로 글자대로 옮겼다. 災患은 「재앙과 근심」. 利는 이익, 衣被는 「옷과 이불」. 聲聞은 정착어 성문. 若은 연결어미 「만약 ~면」 대신 「만약 어떤」으로 주어를 세우고 서술은 「-는데」로 이었다. 能(不能捨離)은 「~ㄹ 수 없다」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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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比丘行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獺獸已,而問之曰:『善來,獺獸!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악한 계를 행하고 악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피폐하고 썩어 문드러짐이 생겨나며, 청정한 행이 아니면서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따르는 이가 수달 짐승을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잘 왔구나, 수달 짐승이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하는 것과 같다.
주 最在其邊은 어느 가장자리인지 한문이 말하지 않아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로 글자대로 옮기고, 生弊腐敗는 生을 동사, 弊腐敗를 결과로 읽어 「피폐하고 썩어 문드러짐이 생겨나며」로 옮겼다;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일 수 있다. 梵行은 3분할 표 의역이라 「청정한 행」(확정 술어 정형구 행의 `청정한 삶`은 확정역이 아니다), 沙門은 음역이라 독음 「사문」(정착어). 非…稱…은 「~이 아니면서 ~이라 일컫는다」. 猶如는 「마치 ~와 같다」. 梵志 처리는 0506b17.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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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此池本時清泉盈溢,饒藕多華,魚龜滿中,我昔所依,而今枯熇。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이 못은 본래 맑은 샘물이 가득 넘치고, 연뿌리가 넉넉하며 꽃이 많고, 물고기와 거북이 그 안에 가득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의지하던 곳인데 지금은 말라 바싹 타 버렸습니다.
주 0506b23.1과 같은 문장이다. 비유를 되풀이해 비구에 맞대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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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志當知!我欲捨去,入彼大河,我今欲去,唯畏於人。』
청정을 따르는 이여, 아십시오! 저는 이곳을 버리고 떠나 저 큰 강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0506b25.1과 같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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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說比丘亦復如是,入惡不善穢汙法中,為當來有本煩熱苦報、生老病死因,是以比丘莫行如獺,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내가 말하노니,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악하고 선하지 않은 더럽고 오염된 법 속에 들어가 앞으로 올 존재의 뿌리가 되고, 번민의 열기와 괴로운 과보,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비구는 수달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 가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러 쓰레기를 쓸어 모은 옷을 입고,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남에 머물기를 즐겨 부지런히 닦음을 익히고, 바른 생각·바른 앎·바른 선정·바른 지혜를 세워 늘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當來有本은 사전 當來(뒤 有本 21)에 따라 한 덩어리로 보고 「앞으로 올 존재의 뿌리」로 옮겼다; 煩熱 이하를 같은 층위로 끊었으나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일 수 있다. 亦은 비구도 수달과 같다는 비교라 「또한」을 살렸다. 以自存命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當·應은 어미(-라/-야 한다)로 흡수, 莫은 「-지 말라」. 無事는 3분할 표 의역이라 「일 없는 곳」. 糞掃衣는 3분할 표가 의역이라 뜻으로 「쓰레기를 쓸어 모은 옷」으로 옮겼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분소의)도 있어 어느 쪽이 정본인지 정도평 몫이다. 正智는 「바른 앎」, 正慧는 「바른 지혜」로 갈랐다(둘 다 확정 술어에 없다). 遠離는 「멀리 떠남」. 이 말씀은 다음 좌표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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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究暮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 구모 새는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다.
주 0507a02.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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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말하는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0507a03.1과 같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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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有比丘依村邑行,比丘平旦著衣持鉢,入村乞食,不護於身,不守諸根,不立正念,彼入他家教化說法,或佛所說,或聲聞所說,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을을 의지해 다니는데,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몸을 지키지 않고, 여러 감관을 지키지 않고, 바른 생각을 세우지 않으며, 그는 다른 집에 들어가 가르쳐 이끌며 법을 설하는데 혹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고 혹은 성문이 설한 것이며, 이로 인해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온갖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은 뒤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며 버리고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0507a03.2와 달리 而彼說法 대신 彼入他家教化說法이다(그는 다른 집에 들어가 가르쳐 이끌며 법을 설한다). 他는 自와 짝이 아니라 「다른」으로 옮겼다. 教化는 사전 教化 ①(이 경 0507c02.2)을 참조해 「가르쳐 이끌며」. 依村邑行은 「마을을 의지해 다니다」. 諸根은 사전 諸根 ①(앞 不護 23)과 문맥(護·守)으로 감각 기능으로 읽어 「감관」; 信勤念定慧의 五根으로 읽을 여지가 남는다. 觸猗는 이 경 밖 용례를 못 찾았다. 染著(사전 染著 ① 뒤 觸猗 6)과 이어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로 글자대로 옮겼다. 災患은 「재앙과 근심」. 利는 이익, 衣被는 「옷과 이불」. 聲聞은 정착어 성문. 若은 연결어미 「만약 ~면」 대신 「만약 어떤」으로 주어를 세우고 서술은 「-는데」로 이었다. 能(不能捨離)은 「~ㄹ 수 없다」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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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比丘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究暮已,而問之曰:『善來,究暮!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계가 악하고 악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피폐하고 썩어 문드러짐이 생겨나며, 청정한 행이 아니면서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따르는 이가 구모를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잘 왔구나, 구모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하는 것과 같다.
주 행(行)이 없다: `彼比丘惡戒`. 이문: 宋元明은 `彼比丘行惡戒`로 읽어 다른 비구 문장과 같아진다. 저본 大正을 따라 「계가 악하고」로 옮겼다. 구모는 鳥 없이 이름만 쓰였다. 나머지는 0507a08.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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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此池本時清泉盈溢,饒藕多華,魚龜滿中,我昔所依,而今枯熇。
대답했다. ‘청정을 따르는 이여! 이 못은 본래 맑은 샘물이 가득 넘치고, 연뿌리가 넉넉하며 꽃이 많고, 물고기와 거북이 그 안에 가득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의지하던 곳인데 지금은 말라 바싹 타 버렸습니다.
주 0506b23.1과 같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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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志當知!我今欲去,依彼死牛聚處栖宿,或依死驢,或依死人聚處栖宿,我今欲去,唯畏於人。』
청정을 따르는 이여, 아십시오! 저는 지금 가서 저 죽은 소가 모인 곳에 의지해 깃들어 자려 합니다. 혹은 죽은 나귀에 의지하고, 혹은 죽은 사람이 모인 곳에 의지해 깃들어 자려 합니다. 제가 지금 가려 하는데, 사람만이 두렵습니다.’
주 0506c02.1과 달리 `我欲捨去`가 아니라 `我今欲去`이다(버리고 떠난다는 말이 없다). 그대로 두 번째 `我今欲去`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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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說比丘亦復如是,依惡不善穢汙之法,為當來有本煩熱苦報、生老病死因,是以比丘莫行如究暮,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내가 말하노니,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악하고 선하지 않은 더럽고 오염된 법에 의지해 앞으로 올 존재의 뿌리가 되고, 번민의 열기와 괴로운 과보,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비구는 구모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 가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러 쓰레기를 쓸어 모은 옷을 입고,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남에 머물기를 즐겨 부지런히 닦음을 익히고, 바른 생각·바른 앎·바른 선정·바른 지혜를 세워 늘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0507a15.1과 달리 `入惡不善穢汙法中`이 아니라 `依惡不善穢汙之法`이다(들어간다가 아니라 의지한다). 그러므로 `莫行如獺` 자리에 `莫行如究暮`가 선다. 나머지 처리는 0507a15.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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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彼鷲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때 그 독수리 새는 이 청정을 따르는 이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 두고 떠났다.
주 0507a02.1과 같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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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말하는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0507a03.1과 같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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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有比丘依村邑行,比丘平旦著衣持鉢,入村乞食,不護於身,不守諸根,不立正念,彼入他家教化說法,或佛所說,或聲聞所說,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을을 의지해 다니는데,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몸을 지키지 않고, 여러 감관을 지키지 않고, 바른 생각을 세우지 않으며, 그는 다른 집에 들어가 가르쳐 이끌며 법을 설하는데 혹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고 혹은 성문이 설한 것이며, 이로 인해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온갖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은 뒤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며 버리고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0507a22.2와 같은 문장이다. 이문: 宋元明은 `他家`를 `大家`로 읽는다. 저본 大正을 따랐다. 依村邑行은 「마을을 의지해 다니다」. 諸根은 사전 諸根 ①(앞 不護 23)과 문맥(護·守)으로 감각 기능으로 읽어 「감관」; 信勤念定慧의 五根으로 읽을 여지가 남는다. 觸猗는 이 경 밖 용례를 못 찾았다. 染著(사전 染著 ① 뒤 觸猗 6)과 이어 「물들어 집착하고 닿고 기대어」로 글자대로 옮겼다. 災患은 「재앙과 근심」. 利는 이익, 衣被는 「옷과 이불」. 聲聞은 정착어 성문. 若은 연결어미 「만약 ~면」 대신 「만약 어떤」으로 주어를 세우고 서술은 「-는데」로 이었다. 能(不能捨離)은 「~ㄹ 수 없다」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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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比丘行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鷲鳥已,而問之曰:『善來,鷲鳥!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악한 계를 행하고 악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피폐하고 썩어 문드러짐이 생겨나며, 청정한 행이 아니면서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따르는 이가 독수리 새를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잘 왔구나, 독수리 새여!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느냐?’ 하는 것과 같다.
주 0507a08.1과 같은 꼴이다. 부분 1의 마지막 좌표이며 이 문장은 부분 2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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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梵志!我從大墓復至大墓殺害而來,我今欲食死象之肉,死馬、死牛、死人之肉,我今欲去,唯畏於人。』
대답하였다. 『청정을 지향하는 이여! 나는 큰 무덤에서 다시 큰 무덤에 이르러 죽이고 해치며 왔다. 나는 이제 죽은 코끼리의 고기, 죽은 말·죽은 소·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자 하고, 나는 이제 가고자 하나 오직 사람이 두렵다.』
주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 투입물이 없어 대응은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梵志는 3분할표상 의역이라 음독(범지)하지 않고 뜻으로 옮겼다 — 梵을 청정으로 읽고(음의 慧琳 0698c19 梵行 항 「梵言梵摩此云清淨」 인용), 志는 지향으로 풀었다. 이 경 안에서 「청정을 지향하는 이」로 통일. 殺害而來는 「죽이고 해치며 왔다」(而는 흡수). 唯는 한정의 뜻이 실려 「오직」.
吾說比丘亦復如是,是以比丘莫行如鷲鳥,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나는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독수리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목숨을 보존하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고, 쓰레기 더미의 옷을 입으며,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나 머묾을 즐기고 부지런한 정진을 익히며, 바른 새김·바른 앎·바른 집중·바른 지혜를 세우고, 늘 멀리 떠나야 하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鷲鳥(여기)와 鷲(0508c02.2)는 같은 새를 가리키는 한역의 다른 표기(약칭)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梵行=청정한 행(3분할 의역), 無事=일 없는 곳, 糞掃衣=쓰레기 더미의 옷(의역; 정착형 분소의는 쓰지 않았다. 음의 慧琳 0372a02 「拾取人間所棄糞掃中破帛…補納成衣」 인용), 正念·正智·正定·正慧는 확정역이 없어 정념=바른 새김, 정지=바른 앎, 정정=바른 집중, 정혜=바른 지혜로 가름 — 낱말 선택 신고. 當·應은 어미(-라/-야 한다)로 흡수, 自存命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 亦復는 「또한」으로 한 번만, 而는 흡수. 淨口、意行은 淨(口行·意行)으로 읽어 「입과 뜻의 행」.
「彼食吐鳥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 토한 것을 먹는 새는 이 청정을 지향하는 이와 함께 이것을 논하고 나서 곧 버리고 떠나갔다.
주 食吐鳥는 「토한 것을 먹는 새」로 풀었다(구조상 動+賓+鳥). 論是已의 是는 지시(이것), 已는 완료. 捨而去의 捨는 목적어가 없어 「버리고」로 두었다.
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설한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吾說此喻有何義耶 —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라 「뜻이 있는가」로 두었다. 耶는 의문 어미.
若有比丘依村邑行,比丘平旦著衣持鉢,入村乞食,不護於身,不守諸根,不立正念,彼入比丘尼房教化說法,或佛所說,或聲聞所說,彼比丘尼入若干家說好說惡,受信施物持與比丘,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을에 의지하여 다니면, 그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몸을 보호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을 지키지 않고 바른 새김을 세우지 않으며, 그가 비구니의 방에 들어가 가르쳐 교화하고 법을 설하니, 혹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고 혹은 성문이 설한 것이다. 그 비구니는 몇몇 집에 들어가 좋은 것을 말하고 나쁜 것을 말하며, 믿음으로 바친 물건을 받아 비구에게 가져다주니, 이로 인하여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여러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고 나서 물들어 집착하고 닿아 기대며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고 버려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染著觸猗는 染著 / 觸猗로 끊어 「물들어 집착하고 닿아 기대며」로 옮겼으나 觸猗가 한 낱말인지 불분명(사전·음의에 항 없음). 若有의 若은 「-면」, 有는 「어떤」으로 주어화. 所說은 관형절(설하신 것). 彼入比丘尼房 이하 주어는 앞의 彼(그 비구), 彼比丘尼入若干家의 주어는 비구니로 읽었다. 信施物=믿음으로 바친 물건. 諸는 「여러」(根·生活具). 得은 획득.
彼比丘行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食吐鳥已,而問之曰:『善來,食吐鳥!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나쁜 계를 행하고 나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낡고 썩음이 생겨, 청정한 행이 아닌데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닌데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지향하는 이가 토한 것을 먹는 새를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는 것과 같다. 『잘 왔다, 토한 것을 먹는 새여!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주 生弊腐敗는 주어·구문이 불분명해 「낡고 썩음이 생겨」로 풀었다(음의 慧琳 0419c15 腐 「肉敗也·爛也」 인용). 沙門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사문; 팔리형은 비고 생략 — 증언 없음). 善來=잘 왔다(의역). 為欲何去의 為는 흡수.
答曰:『梵志!汝見向者鷲鳥去耶?
대답하였다. 『청정을 지향하는 이여! 너는 아까 독수리가 가는 것을 보았는가?
주 向者는 「아까」(앞서 있었던 때). 닫는 』는 다음 좌표(0507c13.1)에서 닫힌다.
我食彼吐,我今欲去,唯畏於人。』
나는 그가 토한 것을 먹었고, 나는 이제 가고자 하나 오직 사람이 두렵다.』
주 彼吐=그가 토한 것. 唯 한정, 於는 조사로 흡수.
吾說比丘亦復如是,是以比丘莫行如食吐鳥,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나는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토한 것을 먹는 새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목숨을 보존하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고, 쓰레기 더미의 옷을 입으며,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나 머묾을 즐기고 부지런한 정진을 익히며, 바른 새김·바른 앎·바른 집중·바른 지혜를 세우고, 늘 멀리 떠나야 하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0507b25.1과 같은 정형이고 비유 동물만 食吐鳥로 바뀐다. 용어 선택은 0507b25.1과 동일.
「時,彼犲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때 그 승냥이 짐승은 이 청정을 지향하는 이와 함께 이것을 논하고 나서 곧 버리고 떠나갔다.
주 犲는 豺의 이체로 보아 승냥이로 옮겼다(사전·음의에 항 없음, 뜻은 자형에 의거).
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설한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0507c02.1과 같은 문장.
若有比丘依貧村住,彼若知村邑及城郭中多有智慧精進梵行者,即便避去,若知村邑及城郭中無有智慧精進梵行者,而來住中,或九月,或十月。
만약 어떤 비구가 가난한 마을에 의지하여 머물면, 그가 마을과 성곽 안에 지혜롭고 정진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이가 많이 있음을 알면 곧 피해 떠나고, 마을과 성곽 안에 지혜롭고 정진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이가 없음을 알면 와서 그 안에 머무는데, 혹은 아홉 달, 혹은 열 달이다.
주 智慧精進梵行者는 「지혜롭고 정진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이」로 읽었다(智慧·精進·梵行者 병렬 대신 수식으로 읽는 것이 한 갈래 — 구두는 이 읽기로 고정). 即便은 「곧」 하나. 梵行者의 者는 명사화. 貧村=가난한 마을.
諸比丘見已,便問:『賢者!何處遊行?』
비구들이 보고 나서 곧 물었다. 『어진 이여! 어디를 다니는가?』
주 賢者는 호칭(어진 이). 遊行=다닌다. 비구 상호 간이라 평서로 통일.
彼即答曰:『諸賢!我依某處貧村邑行。』
그가 곧 대답하였다. 『어진 이들이여! 나는 아무 곳 가난한 마을에 의지하여 다닌다.』
주 某處=아무 곳. 諸賢은 복수 호칭.
諸比丘聞已即作是念:『此賢者難行而行。
비구들이 듣고 나서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어진 이는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한다.
주 難行而行은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한다」(而 흡수).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는 관용구 「까닭이 무엇인가」.
此賢者乃能依某貧村邑行。』
이 어진 이는 아무 가난한 마을에 의지하여 다닐 수 있다.』
주 乃能의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諸比丘等便共恭敬禮事供養,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비구들이 곧 함께 공경하고 예로 섬기며 공양하니, 이로 인하여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여러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고 나서 물들어 집착하고 닿아 기대며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고 버려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諸比丘等의 等은 복수 표지로 흡수. 染著觸猗의 끊기는 0507c02.2와 같다.
彼比丘行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犲獸已,而問之曰:『善來,犲獸!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나쁜 계를 행하고 나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낡고 썩음이 생겨, 청정한 행이 아닌데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닌데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지향하는 이가 승냥이 짐승을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는 것과 같다. 『잘 왔다, 승냥이 짐승이여!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주 0507c09.1과 같은 정형(동물만 犲獸).
答曰:『梵志!我從深㵎至深㵎,從榛莽至榛莽,從僻靜至僻靜處來,我今欲食死象之肉,死馬、死牛、死人之肉,我今欲去,唯畏於人。』
대답하였다. 『청정을 지향하는 이여!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깊은 골짜기에 이르고, 우거진 덤불에서 우거진 덤불에 이르고, 외지고 고요한 곳에서 외지고 고요한 곳에 이르러 왔다. 나는 이제 죽은 코끼리의 고기, 죽은 말·죽은 소·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자 하고, 나는 이제 가고자 하나 오직 사람이 두렵다.』
주 深㵎의 㵎은 澗의 이체로 보아 골짜기. 榛莽=우거진 덤불(음의 慧琳 0651b20 「木藂生曰榛眾草曰莾」 인용). 僻靜=외지고 고요함. 0507b22.1과 달리 殺害가 없다.
吾說比丘亦復如是,是以比丘莫行如犲,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나는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승냥이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목숨을 보존하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고, 쓰레기 더미의 옷을 입으며,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나 머묾을 즐기고 부지런한 정진을 익히며, 바른 새김·바른 앎·바른 집중·바른 지혜를 세우고, 늘 멀리 떠나야 하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犲獸(앞 좌표)와 犲(여기)는 같은 짐승의 다른 표기(약칭). 이문: 食(大)을 宋·元은 命으로 읽는다(app_id 0508001) — 이 좌표 저본 글자에서 食의 자리가 분명하지 않아 저본(大正) 읽기를 따랐고 영향이 없다. 莫依非法 앞 글자가 앵커에서 깨져 보이나 저본은 莫이다. 용어 선택은 0507b25.1과 동일.
「彼時,烏鳥面訶梵志已,便捨而去。
「그때 까마귀는 청정을 지향하는 이를 면전에서 꾸짖고 나서 곧 버리고 떠나갔다.
주 面訶는 「얼굴을 마주 대하고 꾸짖음」(訶=呵). 彼時=그때. 烏鳥=까마귀.
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설한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0507c02.1과 같은 문장.
若有比丘依貧無事處而受夏坐,彼若知村邑及城郭中多有智慧精進梵行者,即便避去,若知村邑及城郭中無有智慧精進梵行者,而來住中二月、三月。
만약 어떤 비구가 가난한 일 없는 곳에 의지하여 여름 안거를 받으면, 그가 마을과 성곽 안에 지혜롭고 정진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이가 많이 있음을 알면 곧 피해 떠나고, 마을과 성곽 안에 지혜롭고 정진하며 청정한 행을 닦는 이가 없음을 알면 와서 그 안에서 두 달, 석 달을 머문다.
주 受夏坐는 3분할 의역이라 「여름 안거를 받다」(안거는 정착형). 貧無事處=가난한 일 없는 곳. 二月、三月은 「두 달, 석 달」(월명 아님). 나머지 구문은 0507c20.2와 같다.
諸比丘見已,問曰:『賢者!何處夏坐?』
비구들이 보고 나서 물었다. 『어진 이여! 어디서 여름 안거를 하였는가?』
주 夏坐=여름 안거(사전 夏坐 ① 중아함 8회, 이 경 0508a17.1 인용).
答曰:『諸賢!我今依某貧無事處而受夏坐,我不如彼諸愚癡輩,作床成就,具足五事而住於中,中前中後、中後中前,口隨其味,味隨其口,求而求,索而索。』
대답하였다. 『어진 이들이여! 나는 이제 아무 가난한 일 없는 곳에 의지하여 여름 안거를 받았다. 나는 저 어리석은 무리들이 침상을 만들어 갖추고, 다섯 가지를 구족하여 그 안에 머물며, 낮 전과 낮 후, 낮 후와 낮 전에 입은 그 맛을 따르고 맛은 그 입을 따르며, 구하고 구하며 찾고 찾는 것과 같지 않다.』
주 我不如彼諸愚癡輩 이하를 「저 무리가 …하는 것과 같지 않다」로 배선했다(不如가 뒤 전체를 지배한다고 읽음). 中前中後、中後中前의 中은 낮(정오)으로 읽었다. 五事는 내용이 저본에 없다. 이문: 就를 宋·元·明은 訖로 읽는다(app_id 0508002) — 저본(大正) 읽기를 따라 「이루다」.
時,諸比丘聞已,即作是念:『此賢者難行而行。
그때 비구들이 듣고 나서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어진 이는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한다.
주 0507c25.2와 같은 구문.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0507c26.1과 같은 구.
此賢者乃能依某貧無事處而受夏坐。』
이 어진 이는 아무 가난한 일 없는 곳에 의지하여 여름 안거를 받을 수 있다.』
주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諸比丘等便共恭敬禮事供養,因此得利衣被、飲食、床褥、湯藥、諸生活具,彼得利已,染著觸猗,不見災患,不能捨離,隨意而用。
비구들이 곧 함께 공경하고 예로 섬기며 공양하니, 이로 인하여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요, 탕약, 여러 생활 도구의 이익을 얻고, 그는 이익을 얻고 나서 물들어 집착하고 닿아 기대며 재앙과 근심을 보지 못하고 버려 떠날 수 없어 뜻대로 쓴다.
주 0507c27.2와 같은 문장.
彼比丘行惡戒,成就惡法,最在其邊,生弊腐敗,非梵行稱梵行,非沙門稱沙門,猶如梵志見烏鳥已,而問之曰:『善來,烏鳥!汝從何來,為欲何去?』
그 비구는 나쁜 계를 행하고 나쁜 법을 성취하여 가장 그 가장자리에 있고, 낡고 썩음이 생겨, 청정한 행이 아닌데 청정한 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닌데 사문이라 일컬으니, 마치 청정을 지향하는 이가 까마귀를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는 것과 같다. 『잘 왔다, 까마귀여!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주 0507c09.1과 같은 정형(동물만 烏鳥).
答曰:『梵志!汝強額癡狂,何為問我:汝從何來,為欲何去?』
대답하였다. 『청정을 지향하는 이여! 너는 이마가 억센 어리석은 미치광이다. 왜 나에게 묻는가: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주 強額은 글자대로 「이마가 억세다」로만 옮겼다 — 비유(뻔뻔함 등)인지 저본 문맥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癡狂=어리석고 미침. 何為問我의 何為는 「왜」.
吾說比丘亦復如是,是以比丘莫行如烏,莫依非法以自存命;當淨身行,淨口、意行,住無事中,著糞掃衣,常行乞食,次第乞食,少欲知足,樂住遠離而習精勤,立正念、正智、正定、正慧,常當遠離,應學如是。
나는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까마귀처럼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목숨을 보존하지 말라. 몸의 행을 깨끗이 하고, 입과 뜻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 없는 곳에 머물고, 쓰레기 더미의 옷을 입으며, 늘 걸식을 행하고, 차례대로 걸식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을 알며, 멀리 떠나 머묾을 즐기고 부지런한 정진을 익히며, 바른 새김·바른 앎·바른 집중·바른 지혜를 세우고, 늘 멀리 떠나야 하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주 烏鳥(앞 좌표들)와 烏(여기)는 같은 새의 다른 표기(약칭)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용어 선택은 0507b25.1과 동일.
「彼狌狌獸與此梵志共論是已,便捨而去。
「그 성성이 짐승은 이 청정을 지향하는 이와 함께 이것을 논하고 나서 곧 버리고 떠나갔다.
주 狌狌=성성이(猩猩의 이체; 음의 慧琳 0693c13 「又作猩…能言鳥也」 인용). 獸는 「짐승」.
吾說此喻有何義耶?
내가 설한 이 비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주 0507c02.1과 같은 문장.
若有比丘依村邑行,比丘平旦著衣持鉢,入村乞食,善護於身,守攝諸根,立於正念,彼從村邑乞食已竟,食訖,中後收舉衣鉢,澡洗手足,以尼師檀著於肩上,或至無事處,或至樹下,或至空屋中,敷尼師檀,結加趺坐,正身正願,反念不向,斷除貪伺,心無有諍,見他財物、諸生活具,不起貪伺,欲令我得。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을에 의지하여 다니면, 그 비구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몸을 잘 보호하고 여러 감각기능을 지켜 거두며 바른 새김에 선다. 그가 마을에서 걸식을 마치고 먹기를 마친 뒤, 낮 뒤에 옷과 발우를 거두어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닦아,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혹은 일 없는 곳에 이르고 혹은 나무 아래에 이르고 혹은 빈 집 안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맺고 앉아, 몸을 바르게 하고 원을 바르게 하며, 생각을 돌이켜 향하지 않고, 탐내어 엿봄을 끊어 없애, 마음에 다툼이 없고, 남의 재물과 여러 생활 도구를 보고도 내가 얻게 하고자 하는 탐내어 엿봄을 일으키지 않는다.
주 尼師檀은 3분할표에 없는 음역(앉는 깔개; 팔리형은 투입물에 없어 적지 않는다)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니사단」, 한 경 안에서 통일. 이문: 檀을 大正은 擅으로, 宋·元·明은 壇으로 읽는다(app_id 0508003, CB 교정은 檀) — CB 교정 읽기를 따랐다. 結加趺坐는 「가부좌를 맺고 앉아」(음의 慧琳 0483a19 加趺 항: 加는 跏의 뜻으로 쓰임, 인용). 加·反의 이문(0508004 加→跏, 0508005 反→及)은 宋·元·明 읽기라 저본(大正)을 따랐다. 反念不向은 「생각을 돌이켜 향하지 않고」로 옮겼으나 구두·뜻 확정이 어렵다. 貪伺=탐내어 엿봄. 中後=낮 뒤. 他는 自와 짝이 아니라 단순 「남의」.
彼於貪伺淨除其心。
그는 탐내어 엿봄에서 그 마음을 깨끗이 덜어낸다.
주 淨除其心의 其는 그의. 於는 조사로 흡수.
如是瞋恚、睡眠、調悔,斷疑度惑,於善法中無有猶豫,彼於疑惑淨除其心,彼已斷此五蓋——心穢、慧羸,離欲,離惡不善之法,至得第四禪成就遊。
이와 같이 성냄, 졸음, 들뜸과 뉘우침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의심을 끊고 미혹을 건너 선한 법 가운데 망설임이 없다. 그는 의심과 미혹에서 그 마음을 깨끗이 덜어낸다. 그는 이미 이 다섯 덮개—마음의 더러움, 지혜의 약함—를 끊고, 욕망을 떠나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4선을 얻음에 이르러 성취하여 머문다.
주 如是 뒤 瞋恚、睡眠、調悔는 동사가 없어 앞 문장(貪伺淨除其心)의 서술을 잇는 생략으로 읽었다 — 「~에 대해서도 그러하며」는 우리가 이은 읽기다. 調는 宋·元·明이 掉로 읽는다(app_id 0508006); 저본(大正) 調를 따라 「들뜸」(調悔 = 들뜸과 뉘우침). 睡眠=졸음(3분할 의역), 瞋恚=성냄, 五蓋=다섯 덮개, 心穢·慧羸는 五蓋의 동격 풀이로 둠. 遊는 成就遊 정형(사전 第四禪 ③ 용례 ma102/0589c13.1 「得第四禪成就遊」)의 「머물다」 자리로 읽었다(遊行의 「다니다」와 구별) — 한자 단독으로는 다의. 第四禪=제4선.
彼得如是,定心清淨,無穢無煩,柔軟善住,得不動心,趣向漏盡智通作證,彼便知此苦如真,知此苦習,知此苦滅,知此苦滅道如真,知此漏,知此漏習,知此漏滅,知此漏滅道如真。
그는 이와 같이 얻어, 집중한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더러움이 없고 번거로움이 없으며, 부드럽고 잘 머물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직접 증득하는 데로 향한다. 그는 곧 이 괴로움을 참된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쌓임을 알고, 이 괴로움의 없어짐을 알고, 이 괴로움이 없어지는 길을 참된 그대로 알며, 이 번뇌를 알고, 이 번뇌의 쌓임을 알고, 이 번뇌의 없어짐을 알고, 이 번뇌가 없어지는 길을 참된 그대로 안다.
주 柔軟은 확정술어 [참고]에 sukhumāla=「곱게 자람」이 걸려 있으나 이 자리는 마음의 성질(부드럽다)이라 저본이 이겨 「부드럽고」로 옮겼다(확정역_오적중에 해당). 淸淨도 3분할표의 Sobhavatī(도시명)가 아니라 형용사 「맑고 깨끗하며」. 習(쌓임)은 이문 集(元·明, app_id 0508007)이 있고 [정형구 행]에서 集=samudaya로 일어남 계열이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저본 習의 뜻대로 「쌓임」. 滅=없어짐, 漏=번뇌(정형구 행 참조; 낱말 확정역은 없음), 作證=직접 증득. 知此苦如真(3분할 보류)은 정형구 조각으로 읽어 「이 괴로움을 참된 그대로 알고」.
彼如是知,如是見已,則欲漏心解脫,有漏、無明漏心解脫,解脫已,便知解脫,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真。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나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하고 나서 곧 해탈하였음을 알고, 태어남이 다했고, 청정한 행이 섰고, 해야 할 일을 마쳤으며, 다시 존재를 받지 않음을 참된 그대로 안다.
주 無明은 3분할표 혼합(音義合璧) 항목 — 「밝음 없음」의 뜻을 살린 한역 의역어이나 한국 정착형 「무명」을 쓰고 뜻을 여기에 적는다. 欲漏=욕망의 번뇌, 有漏=존재의 번뇌(有=존재; 낱말 확정역 없음). 則는 귀결로 흡수. 所作已辦=해야 할 일을 마침. 知如真은 「참된 그대로 안다」가 앞 네 절 전체를 받는 것으로 읽었다.
猶如梵志見狌狌已,而問之曰:『善來,狌狌!汝從何來,為欲何去?』
마치 청정을 지향하는 이가 성성이를 보고 그에게 물어 말하는 것과 같다. 『잘 왔다, 성성이여!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주 앞 좌표들의 猶如 정형과 같다. 앞부분 狌狌獸와 여기 狌狌는 같은 짐승의 다른 표기(약칭).
答曰:『梵志!我從園至園,從觀至觀,從林至林,飲清泉水,噉好果來,我今欲去,不畏於人。』
대답하였다. 『청정을 지향하는 이여! 나는 동산에서 동산에 이르고, 누각에서 누각에 이르고, 숲에서 숲에 이르러, 맑은 샘물을 마시고 좋은 과일을 먹으며 왔다. 나는 이제 가고자 하며 사람이 두렵지 않다.』
주 觀은 「보다」가 아니라 園과 짝을 이루는 장소어로 읽어 누각(음의 慧琳 0488a14 「園觀」 항 「樓觀也」 인용). 不畏於人의 不은 앞 좌표들의 唯畏於人과 대비.
吾說比丘亦復如是。
나는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주 亦復는 「또한」 하나로 옮겼다.
「是以比丘莫行如獺,莫行如究暮,莫行如鷲,莫行如食吐鳥,莫行如犲,莫行如烏,當行如狌狌。
「그러므로 비구는 수달처럼 행하지 말고, 구모처럼 행하지 말고, 독수리처럼 행하지 말고, 토한 것을 먹는 새처럼 행하지 말고, 승냥이처럼 행하지 말고, 까마귀처럼 행하지 말며, 성성이처럼 행하라.
주 鷲(독수리)·犲(승냥이)·烏(까마귀)·狌狌(성성이)는 앞의 鷲鳥·犲獸·烏鳥·狌狌獸와 같은 동물의 다른 표기(약칭)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究暮는 3분할표에 없고 뜻 풀이도 없어 소리로 보고 한자 독음 「구모」로 적는다(이 조각 앞부분에서 나온 비유 동물과의 일치는 확인 못 함). 獺=수달. 當은 어미 「-라」로 흡수.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0507c26.1과 같은 구.
世中無著真人如狌狌獸。」
세상에서 집착 없는 참된 사람은 성성이 짐승과 같다.」
주 無著真人의 真人은 의역으로 「참된 사람」(음의 慧琳 0497c07 「此即阿羅漢也…亦云無著果」 인용 — 아라한을 가리키는 칭호로 전해지나 본문은 한자대로).
佛說如是。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聞佛所說의 所說은 관형절. 歡喜奉行은 정형 결어.
烏鳥喻經第一竟
까마귀 비유의 경 제1을 마침
주 이문: 宋·元은 「烏鳥喻經第一」(竟 없음), 明은 이 줄 전체가 없다(app_id 0508008, 0508009); 저본(大正) 「第一竟」을 따랐다. 경 이름 烏鳥喻經은 사전상 이 경에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