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Kāmūpapattisuttaṃ
6. 감각적 욕망으로 태어남 경(Kāmūpapattisutt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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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라한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나는 들었다.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요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
비구들이여, 욕계에 태어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눈앞에 놓인 욕망의 대상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남이 만든 것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이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욕계에 태어나는 세 가지 길이다.
‘‘Tisso imā, bhikkhave, kāmūpapattiyo.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감각적 욕망으로 태어남이 있다.
Katamā tisso?
무엇이 그 셋인가?
Paccupaṭṭhitakāmā, nimmānaratino, paranimmitavasavattino –
눈앞에 나타난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자들, 창조하기를 즐기는 자들,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자들 —
imā kho, bhikkhave, tisso kāmūpapattiyo’’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감각적 욕망으로 태어남이다.”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여기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Etamatthaṃ bhagavā avoca.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Tatthetaṃ iti vuccati –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해진다 —
욕망이 눈앞에 갖춰진 / 타화자재천의 신들
‘‘Paccupaṭṭhitakāmā ca, ye devā vasavattino;
“눈앞에 나타난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자들과, 지배력을 행사하는 신들과,
즐거움을 스스로 만드는 화락천의 신들 / 그 밖에 욕망을 누리는 다른 이들도
Nimmānaratino devā, ye caññe kāmabhogino;
창조하기를 즐기는 신들과, 그 밖에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다른 자들,
이렇게 되고 달리 되며 거듭 떠도는 / 윤회를 넘어서지 못하네
Itthabhāvaññathābhāvaṃ, saṃsāraṃ nātivattare.
이런 존재와 저런 존재로 이어지는 윤회를 그들은 넘어서지 못한다.
이 허물을 알고서 / 욕망의 누림에서 슬기로운 자는
‘‘Etamādīnavaṃ ñatvā, kāmabhogesu paṇḍito;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일에 이런 위험이 있음을 알고서, 슬기로운 자는
하늘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 모든 욕망을 버리네
Sabbe pariccaje kāme, ye dibbā ye ca mānusā.
모든 감각적 욕망을 남김없이 버려야 하리라, 천상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마음에 드는 모습과 즐거움에 달라붙은 / 건너기 어려운 흐름을 끊고
‘‘Piyarūpasātagadhitaṃ, chetvā sotaṃ duraccayaṃ;
“사랑스러운 모습과 즐거움에 묶인, 건너기 어려운 흐름을 끊고서,
남김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고 / 남김없이 괴로움을 건넜네
Asesaṃ parinibbanti, asesaṃ dukkhamaccaguṃ.
그들은 남김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고, 남김없이 괴로움을 넘어섰다.
성스러움을 보고 앎에 통달한 슬기로운 자들은 / 바르게 알아서[불확실]
‘‘Ariyaddasā vedaguno, sammadaññāya paṇḍitā;
“성스러운 것을 본 이들, 앎의 끝에 이른 이들, 바르게 완전히 알아 슬기로운 자들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태어남의 다함을 곧바로 알아 / 다시 존재로 돌아오지 않네
Jātikkhayamabhiññāya, nāgacchanti punabbhava’’nti.
태어남의 다함을 곧바로 알아, 다시 존재함으로 오지 않는다.”
이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이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Chaṭṭhaṃ.
여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