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Samaṇabrāhmaṇasuttaṃ
4. 사문·바라문 경
103
나는 이렇게 들었다. 이것은 세존, 곧 아라한께서 하신 말씀이다.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는 것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하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하는 것도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런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들 사이에서 사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바라문들 사이에서도 바라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 존자들은 사문의 목적도 바라문의 목적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루지 못한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
na me te,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samaṇesu vā samaṇasammatā brāhmaṇesu vā brāhmaṇasammatā, na ca panete āyasmanto sāmaññatthaṃ vā brahmaññatthaṃ vā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i.
비구들이여, 그런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내게 있어 사문들 가운데서 사문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바라문들 가운데서 바라문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또한 그 존자들은 사문됨의 목적도 바라문됨의 목적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여 갖추어 머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는 것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하는 것도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그런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들 사이에서 사문으로 인정받는다. 바라문들 사이에서도 바라문으로 인정받는다. 그 존자들은 사문의 목적과 바라문의 목적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이룬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면 —
te kho me,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samaṇesu ceva samaṇasammatā brāhmaṇesu ca brāhmaṇasammatā, te ca panāyasmanto sāmaññatthañca brahmaññatth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ti.
비구들이여, 그런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참으로 내게 있어 사문들 가운데서 사문으로 인정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 바라문으로 인정된다. 또한 그 존자들은 사문됨의 목적도 바라문됨의 목적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여 갖추어 머문다.”
세존께서 이 뜻을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이렇게 읊으셨다.
Etamatthaṃ bhagavā avoca.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Tatthetaṃ iti vuccati –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해진다 —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 괴로움이 생겨나는 까닭도 알지 못하며
‘‘Ye dukkhaṃ nappajānanti, atho dukkhassa sambhavaṃ;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또한 괴로움의 생겨남을 알지 못하며;
괴로움이 남김없이 / 온전히 사라지는 곳도 알지 못하고
Yattha ca sabbaso dukkhaṃ, asesaṃ uparujjhati;
어디에서 괴로움이 모조리, 남김없이 그치는지도 알지 못하며;
괴로움을 가라앉히는 / 그 길마저 알지 못하는 이들
Tañca maggaṃ na jānanti, dukkhūpasamagāminaṃ.
괴로움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그 길도 알지 못하는 이들.
마음의 해탈에도 이르지 못하고, / 통찰지의 해탈에도 이르지 못해
‘‘Cetovimuttihīnā te, atho paññāvimuttiyā;
“그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여의었고, 또한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도 여의었다;
끝을 맺을 수 없으니, / 그들은 끝내 태어남과 늙음으로 가네
Abhabbā te antakiriyāya, te ve jātijarūpagā.
그들은 끝을 짓지 못하니, 그들은 참으로 태어남과 늙음으로 나아간다.
괴로움을 알고 / 괴로움이 생겨나는 까닭도 아는 이들
‘‘Ye ca dukkhaṃ pajānanti, atho dukkhassa sambhavaṃ;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또한 괴로움의 생겨남을 알며;
괴로움이 남김없이 / 온전히 사라지는 곳도 알고
Yattha ca sabbaso dukkhaṃ, asesaṃ uparujjhati;
어디에서 괴로움이 모조리, 남김없이 그치는지도 알며;
괴로움을 가라앉히는 / 그 길까지 아는 이들
Tañca maggaṃ pajānanti, dukkhūpasamagāminaṃ.
괴로움의 가라앉음으로 이끄는, 그 길도 아는 이들.
마음의 해탈을 갖추고, / 통찰지의 해탈도 갖추어
‘‘Cetovimuttisampannā, atho paññāvimuttiyā;
“그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갖추었고, 또한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도 갖추었다;
끝을 맺을 수 있으니, /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으로 가지 않네
Bhabbā te antakiriyāya, na te jātijarūpagā’’ti.
그들은 끝을 지을 수 있으니,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뜻도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이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Catutthaṃ.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