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다섯)
주 증언(팔리·산스크리트)이 투입되지 않은 직역단독 국면이라 대응은 「아직 안 잡음」(미대응)으로 둔다. 저본은 제목 자리의 번호 표지 「(五)」이며 수사를 우리말 수사로 옮겼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저본에 「나는(我)」이 없어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증보 금지). `如是`가 「이와 같이」를 한 덩어리로 진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은 `[구속]` 확정역. 이 경은 같은 분을 `佛`(0.3, a16.2)·`世尊`(c27.1)·`如來`(a02.1, a15.1)로 달리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셋 다 확정역이 있어 각각 고정했다. `舍衛`(사위)는 3분할 표 유형 「정착어」라 정착형을 쓰고 뜻을 적는다: 음의 慧琳 0367c24는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의 의역을 전하고 『善見律』을 따라 사람 이름에서 나온 국호라는 설도 싣는다. 전거 대장은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가 갈리는 것으로 싣는다 — 판정하지 않고 인용한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분류했다. 이름 전체를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판별해 정착형을 쓰고 신고한다. 구성: 祇(음, 祇陀 태자)+樹(뜻, 숲)+給孤獨(뜻,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 誓救孤獨」)+園(동산); 慧琳 0368a03은 태자가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께 바쳐 「祇樹」라 줄여 부른다 한다. 전거 대장 팔리형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 대역 ⚠).
爾時,世尊告諸比丘:「有四辯。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네 가지 말솜씨가 있다.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는 `[구속]`.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 하나로만 세웠다. `有四辯`의 `有`는 네 가지의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로 옮겼다. `辯`은 확정역이 없는 낱말이다 — 「말솜씨」로 옮기고, 같은 개념이 `四辯`(c27.1·a12.1)과 `四辯才`(a13.1·a15.1)로 달리 쓰인다는 점은 한자 흔들림으로 신고한다(`辯才`는 「말솜씨의 재능」). 인용은 이 좌표에서 열리고 a16.1에서 닫힌다.
云何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진다. `為`는 계사.
所謂義辯、法辯、辭辯、應辯。
이른바 뜻의 말솜씨, 법의 말솜씨, 말의 말솜씨, 응하는 말솜씨이다.
주 `義辯`=뜻의 말솜씨, `法辯`=법의 말솜씨, `辭辯`=말의 말솜씨(`辭`는 말·언사; a06.2의 풀이가 말의 종류를 든다). `應辯`의 `應`은 「응하다」와 「마땅하다」로 갈릴 수 있으나 a10.1의 풀이(법을 설할 때 겁이 없고 대중을 기쁘게 함)가 상대에 응하는 쪽에 가까워 「응하는」으로 옮겼다(신고). 사전 義辯 ⑥ 丁福保는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만 본다. 이문: `辭`가 【宋】에서 `報`(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所謂`는 한 덩어리 「이른바」.
「彼云何名為義辯?
「그것은 무엇을 뜻의 말솜씨라 이름하는가?
주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진다. `名為`는 「~라 이름하다」로 옮기고, 이 경의 모든 `名為`를 같게 고정했다.
所謂義辯者,彼彼之所說,若天、龍、鬼神之所說,皆能分別其義,是謂名為義辯也。
이른바 뜻의 말솜씨란, 저마다 말하는 것, 가령 하늘·용·귀신이 말하는 것의 그 뜻을 모두 분별할 수 있는 것, 이를 뜻의 말솜씨라 이름한다.
주 `彼彼之所說`은 「저마다 말하는 것」, `若`은 가정 어미가 아니라 예를 드는 자리라 「가령」으로 옮겼다. `能`=「-ㄹ 수 있다」, `皆`=「모두」, `者`는 명사화, `也`는 흡수. `天`은 「하늘」, `龍`은 「용」, `鬼神`은 「귀신」(뜻으로 읽히는 낱말이라 풀지 않았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彼云何名為法辯?
「그것은 무엇을 법의 말솜씨라 이름하는가?
주 앞 좌표 c28.2와 같은 꼴이라 같게 옮겼다.
十二部經如來所說,所謂契經、祇夜、本末、偈、因緣、授決、已說、造頌、生經、方等、合集、未曾有,及諸有為法、無為法,有漏法、無漏法,諸法之實不可沮壞,所可總持者,是謂名為法辯。
십이부경은 여래가 설하신 것으로, 이른바 계경, 기야, 본말, 게, 인연, 결정을 내려 줌, 이미 말한 것, 송을 지음, 태어남의 경, 방등, 합하여 모음, 일찍이 없던 것, 그리고 여러 함이 있는 법과 함이 없는 법, 새어 나옴이 있는 법과 새어 나옴이 없는 법, 모든 법의 참됨은 무너뜨릴 수 없으니, 모두 지닐 수 있는 것, 이를 법의 말솜씨라 이름한다.
주 `如來`=여래는 `[구속]`. 같은 분을 `世尊`(c27.1)·`佛`(0.3)으로도 쓴다(한자 흔들림). 십이부경 열두 이름은 3분할 표의 유형과 정착형 사이에서 후보가 갈려 신고한다(확정역 없음): 음역인 `祇夜`는 독음 「기야」(음의 慧琳 0442c14 「此云應頌也」, 0485a17 `祇焰應頌` — 뜻풀이를 참고로만 인용;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소리로 읽힌다), `偈`도 음역의 줄임으로 「게」, `契經`은 정착형 「계경」(사전 十二部經 ⑥ 丁福保: 修多羅의 번역, 「契於理契於機」 — 후대 풀이라 가볍게만 본다), `本末`·`因緣`·`方等`은 우리말에서 낱말 뜻이 서는 정착형으로 두었고, 한자 뜻이 그대로 풀리는 `授決`=결정을 내려 줌, `已說`=이미 말한 것, `造頌`=송을 지음, `生經`=태어남의 경(`生經`은 `[정형구 행]`뿐이고 낱말 확정역 없음), `合集`=합하여 모음, `未曾有`=일찍이 없던 것은 뜻으로 풀었다. 이 열두 이름이 팔리의 어느 분류에 해당하는지는 증언 대조 몫이라 본문에 들이지 않는다(전거 대장 팔리형은 비고에만 두는 참고). `有為法`·`無為法`·`有漏法`·`無漏法`은 3분할 표(無為·無漏: 의역)대로 뜻으로 풀어 「함이 있는 법·함이 없는 법·새어 나옴이 있는 법·새어 나옴이 없는 법」으로 옮겼다. `無為`·`漏`는 `[정형구 행]`뿐(낱말 확정역 없음)이고, 한국 정착형은 유위·무위·유루·무루이다 — 정착형으로 바꿀지는 정도평 판단 몫. `諸法之實不可沮壞`: `實`은 「참됨」, `沮壞`는 「무너뜨리다」(음의 慧琳 0437a12 `沮, 毀也`, 0328b10 `沮猶壞也`). `所可總持者`는 「모두 지닐 수 있는 것」(`總持`는 사전 總持 ① 5회; 丁福保 ⑥은 陀羅尼의 번역이라 하나 후대 눈이라 가볍게 본다). 이문: `實`이 【聖】에서 `寶`, `所`가 【宋】【元】【明】【聖】에 없다(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云何名為辭辯?
「그것은 무엇을 말의 말솜씨라 이름하는가?
주 앞의 `彼云何名為…辯` 꼴과 같게 옮겼다.
若前眾生,長短之語,男語,女語,佛語,梵志、天、龍、鬼神之語,阿須倫、迦留羅、甄陀羅彼之所說,隨彼根原與其說法,是謂名為辭辯。
가령 앞에 있는 중생의 길고 짧은 말, 남자의 말, 여자의 말, 부처님의 말, 청정한 뜻을 지닌 이·하늘·용·귀신의 말, 아수륜·가류라·견타라 그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의 근원에 따라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는 것, 이를 말의 말솜씨라 이름한다.
주 `若`은 가정 어미가 아니라 예를 드는 「가령」. `前眾生`의 `前`은 「앞에 있는」. `長短之語`는 「길고 짧은 말」(음의 慧琳 0459b16·0825b07은 `短` 자형 풀이뿐이라 뜻을 정해 주지 않는다). `佛`=부처님은 `[구속]`(여기서는 부처님이 하시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인 자리라 `[구속]`과 맞는다). `梵志`는 3분할 표 유형 「의역」이라 뜻으로 옮겼다: `梵`=청정(음의 慧琳 0482c23 `梵摩, 此云寂靜 或云清淨`) + `志`=뜻 → 「청정한 뜻을 지닌 이」. 한국 정착형은 「범지」이고 `婆羅門`(바라문)은 이 경에 없다 — 정착형으로 바꿀지는 정도평 판단 몫이라 신고한다. 전거 대장 팔리형 `Brāhmaṇa`(다른 부 대역 ⚠)는 참고로만 둔다. `阿須倫`·`迦留羅`·`甄陀羅`는 음역(`阿須倫`은 3분할 표도 음역)이라 한자 독음으로 「아수륜」·「가류라」·「견타라」. 전거 대장: `阿須倫` 팔리형 `Rāhu Asurinda`, 음의 慧琳 0356c15 「阿須羅 … 皆訛也」, `迦留羅` 慧琳 0374c08 「古云迦婁羅, 唐言金翅鳥」, `甄陀羅` 慧琳 0357c20 「真陀羅 … 緊那羅 … 是人又非人也」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隨彼根原與其說法`: `根原`은 「근원」, `與`는 「~에게 주다」의 뜻으로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는」. 이문: `原`이 【宋】【元】【明】【聖】에서 `元`(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云何名為應辯?
「그것은 무엇을 응하는 말솜씨라 이름하는가?
주 `應辯`의 `應`은 c28.1과 같이 「응하는」으로 옮기고 신고한다(앞 좌표 참조).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진다.
當說法時,無有怯弱,無有畏懼,能和悅四部之眾,是謂名為應辯。
법을 설할 때 겁먹고 약해짐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네 부류의 대중을 화평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이를 응하는 말솜씨라 이름한다.
주 `當說法時`의 `當`은 당위가 아니라 「~할 때에 당하여」의 시점 틀이라 「설할 때」로 옮기고 어미에는 쓰지 않았다. `無有`는 「~이 없다」의 존재 부정으로 옮겼다. `怯弱`은 「겁먹고 약해짐」(음의 慧琳 0329c19 `怯, 懼也 … 弱, 無力也` 인용 — 참고). `能`=「-ㄹ 수 있다」. `和悅`은 「화평하고 기쁘게 하다」, `四部之眾`은 「네 부류의 대중」(뜻으로 읽히는 낱말이라 풀이를 보태지 않았다).
「我今當教勅汝,當如摩訶拘絺羅。
「내가 이제 너희를 가르쳐 타이르겠다. 마하구치라와 같이 하라.
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我今當教勅汝`의 `當`은 어미 「-겠다」가 진다. `教勅`은 「가르쳐 타이르다」(사전 教勅 ① 30회; 丁福保 ⑥ 「師父之戒勅」은 후대 눈이라 가볍게 본다). `當如`의 `當`은 어미 「-라」, `如`는 「~와 같이」. `摩訶拘絺羅`는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분류했다. 사람 이름이고 소리로 읽히는 한자이므로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마하구치라)으로 적는다. 음의 慧琳 0474c22는 「此云大膝也」라 뜻풀이를 싣는다 — 인용만 한다. 전거 대장: 팔리형 `Mahākoṭṭhika / Mahākoṭṭhita / Mahā-Koṭṭhita`와 근대 범어형 `Mahākauṣthilya`가 갈린다(다른 부 SA 대역 ⚠) — 판정하지 않고 인용한다.
所以然者,拘絺羅有此四辯,能與四部之眾廣分別說。
그러한 까닭은, 구치라가 이 네 가지 말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네 부류의 대중에게 널리 분별하여 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拘絺羅`는 a11.1의 `摩訶拘絺羅`에서 `摩訶`가 빠진 꼴이다 — 같은 사람을 달리 쓴다(한자 흔들림); 「구치라」로 옮겼다. `所以然者`는 「그러한 까닭은」, `有此四辯`의 `有`는 소유 서술로 「지니고 있으며」(「~이 있어」 훈독투를 피함). `能與四部之眾廣分別說`: `能`=「-ㄹ 수 있다」, `與`는 「~에게」.
如我今日觀諸眾中,得四辯才,無有出拘絺羅。
내가 오늘 여러 대중 가운데를 살펴보는 대로, 네 가지 말솜씨의 재능을 얻음에 구치라를 넘어서는 이가 없다.
주 `四辯才`는 a12.1의 `四辯`과 같은 개념으로 보이나 한자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如我今日觀諸眾中`의 `如`는 「~하는 대로」, `諸眾`의 `諸`는 「여러」. `得`은 「얻다」. `無有出`은 「넘어서는 이가 없다」. 이문: `羅`가 【宋】【元】【明】에서 `羅者`(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若此四辯,如來之所有,是故,當求方便,成四辯才。
이 네 가지 말솜씨로 말하면 여래가 가지신 것이니, 그러므로 방편을 구하여 네 가지 말솜씨의 재능을 이루라.
주 `若此四辯`의 `若`은 「~로 말하면」의 화제 표지로 읽었다(가정 어미 「-면」이 그 기능을 진다). `如來之所有`: `如來`=여래(`[구속]`), `所有`는 관형절 「가지신 것」. `是故`=그러므로, `當求`의 `當`은 어미 「-라」가 진다. `方便`은 정착형 「방편」을 썼고 확정역이 없는 낱말로 신고한다(사전 方便 ① 262회 · 앞 `當求` 94회; 丁福保 ⑥은 후대 눈이라 가볍게 본다; 전거 대장 근대 범어 후보 `Upāya`는 참고만). `四辯`/`四辯才`가 한 구절 안에 함께 나온다(한자 흔들림). 이문: `若`이 【聖】에서 `如`, `故`가 【宋】【元】【明】에서 `故諸比丘`(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如是`는 「이와 같이」,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가 진다. 인용이 이 좌표 끝에서 닫힌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구속]`). 이 경은 같은 분을 `世尊`(c27.1)·`如來`(a02.1)로도 쓴다(한자 흔들림).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종결 정형구 `歡喜奉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