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넷)
주 증언(팔리·산스크리트)이 투입되지 않은 직역단독 국면이라 대응은 「아직 안 잡음」(미대응)으로 둔다. 저본은 제목 자리의 번호 표지 「(四)」이며 수사를 우리말 수사로 옮겼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저본에 「나는(我)」이 없어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증보 금지). `如是`가 「이와 같이」를 한 덩어리로 진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은 `[구속]` 확정역. 이 경은 같은 분을 `佛`(0.3, c25.1)과 `世尊`(c10.1)으로 달리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둘 다 확정역이 있어 각각 고정했다. `舍衛`(사위)는 3분할 표 유형 「정착어」라 정착형을 쓰고 뜻을 적는다: 음의 慧琳 0367c24는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의 의역을 전하고 『善見律』을 따라 사람 이름에서 나온 국호라는 설도 싣는다. 전거 대장은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가 갈리는 것으로 싣는다 — 판정하지 않고 인용한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분류했다.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판별해 정착형을 쓰고 신고한다. 구성: 祇(음, 祇陀 태자)+樹(뜻, 숲)+給孤獨(뜻,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 誓救孤獨」)+園(동산). 慧琳 0368a03: 태자가 자기 나무를 불·승께 바쳐 「祇樹」라 줄여 부른다. 전거 대장 팔리형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 대역 ⚠).
爾時,世尊告諸比丘:「眾生之類有四種食,長養眾生。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중생의 무리에는 네 가지 음식이 있고, 중생을 길러 키운다.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는 `[구속]`.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 하나로만 세웠다. `有四種食`의 `有`는 「~이 있어」 훈독투가 아니라 네 가지 음식의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고」로 옮겼다. `食`은 「음식」, `長養`은 「길러 키우다」. 인용은 이 좌표에서 열리고 c24.1에서 닫힌다.
何等為四?
어떤 것이 넷인가?
주 `何等`은 의문 어미가 지는 의문사구로 「어떤 것」. `為`는 계사. (음의 慧琳 0313c22에 `等為`가 `等`+`為`의 자형 풀이로 잡혀 있으나 이 자리와 무관한 자형 설명이다.)
所謂摶食或大、或小,更樂食、念食、識食,是謂四食。
이른바 덩이 음식은 혹 크고 혹 작으며, 겪는 즐거움의 음식, 생각의 음식, 의식의 음식이니, 이를 네 가지 음식이라 한다.
주 네 음식 이름은 뜻으로 옮겼다. `摶食`=덩이 음식(음의 慧琳 0425a09 「摶之令相合著」, 0480b13 「摶圜, 團」, 0663b24 「圓也」 — 뭉쳐 둥글게 한 것, 참고), `念食`=생각의 음식, `識食`=의식의 음식. `更樂`은 `[정형구 행]`뿐이라 낱말 확정역이 없고 3분할 표는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다. 두 글자 모두 뜻으로 읽히므로 음역 부분이 있다고 보지 않고 「겪는 즐거움」으로 옮긴다(더 잘 맞는 풀이가 있으면 정도평 판단 몫) — 신고. `所謂`는 한 덩어리 「이른바」. `或大、或小`는 「혹 크고 혹 작으며」. 이문: `摶`이 【宋】【元】【聖】에서 `揣`(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云何名為摶食?
「그것은 무엇을 덩이 음식이라 이름하는가?
주 `云何`는 의문 어미가 진다. `名為`는 「~라 이름하다」로 옮겼고, 이 좌표와 c13.1·c15.1·c18.1·c20.1의 `名為`는 모두 같게 고정했다. 이문: `為`가 【宋】【元】【明】에 없다(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摶食者,如今人中所食,諸入口之物可食噉者,是謂名為摶食。
그 덩이 음식이란, 지금 사람들 가운데서 먹는 것과 같으니, 입에 들어가는 여러 물건 가운데 먹고 씹을 수 있는 것, 이를 덩이 음식이라 이름한다.
주 `如今人中所食`의 `如`는 「~와 같다」, `所食`은 「먹는 것」(관형절). `諸入口之物`의 `諸`는 「여러」. `食噉`은 「먹고 씹다」(음의 慧琳 0487b05 「食也, 或與啖同」 인용 — 참고). `者`는 명사화. 이문: `摶`이 【元】에서 `揣`, `名為`가 【宋】【元】【明】에 없다 — 대정 저본을 따른다.
「云何名更樂食?
「무엇을 겪는 즐거움의 음식이라 이름하는가?
주 `云何名更樂食`은 「무엇을 ~이라 이름하는가」. `更樂`은 c11.2의 처리와 같다. 이문: `云`이 【宋】【元】【明】에서 `彼云`(대정 교감주) — 앞 좌표 `彼云何`와 같은 꼴이며 대정 저본을 따랐다.
所謂更樂食者,衣裳、繖蓋、雜香華、熏火及香油,與婦人集聚,諸餘身體所更樂者,是謂名為更樂之食。
「이른바 겪는 즐거움의 음식이란, 옷, 일산, 여러 가지 향과 꽃, 연기 피우는 불과 향유, 부인과 모임, 그 밖에 몸이 겪어 즐기는 모든 것, 이를 겪는 즐거움의 음식이라 이름한다.
주 열거는 한문 쉼표대로 항목을 그대로 두었다. `衣裳`은 「옷」(복합어), `繖蓋`는 「일산」(음의 慧琳 0535c18 「繖即蓋也」 — 참고), `熏火`는 연기를 쐬는 불로 「연기 피우는 불」이라 옮겼으나 향 사르는 불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신고). `與婦人集聚`는 「부인과 모임」이라 문자대로 두고 풀지 않는다. `諸餘身體所更樂者`는 「그 밖에 몸이 겪어 즐기는 모든 것」. 이문: `繖`이 【聖】에서 `散`, `諸`가 【聖】에서 `語及`, `名為`와 `之`가 【宋】【元】【明】에 없다(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云何名為念食?
「그것은 무엇을 생각의 음식이라 이름하는가?
주 `念食`=생각의 음식(c11.2 참조). 이문: `為`가 【宋】【元】【明】에 없다(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諸意中所念想、所思惟者,或以口說,或以體觸,及諸所持之法,是謂名為念食。
여러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상념하는 것, 사유하는 것, 혹은 입으로 말하고 혹은 몸으로 닿고, 그리고 지니고 있는 여러 법, 이를 생각의 음식이라 이름한다.
주 `所念想、所思惟者`: `所念想`은 「생각하고 상념하는 것」(念+想 두 동작), `所思惟`는 「사유하는 것」 — `所`는 「~하는 바」 훈독투를 피해 관형절로 풀었다. `或以口說,或以體觸`이 앞 항목에 걸리는 서술인지(말해지고 닿는다) 독립 항목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문자 순서대로 두었다(신고). `及諸所持之法`은 「그리고 지니고 있는 여러 법」. `觸`은 `[정형구 행]`뿐이라 낱말 확정역이 없고 여기서는 동사 「닿다」로 옮겼다. `諸意中`의 `意`는 「마음」. 이문: `想`이 【宋】【元】【明】에서 `所想`(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彼云何為識食?
「그것은 무엇을 의식의 음식이라 하는가?
주 이 좌표는 `名為`가 아니라 `為`뿐이어서 「이름하는가」가 아닌 「하는가」로 옮겼다. 이문: `為`가 【宋】【元】【明】에서 `名`(대정 교감주) — 대정 저본을 따른다. `識食`=의식의 음식.
所念識者,意之所知,梵天為首,乃至有想、無想天,以識為食,是謂名為識食。
생각하는 바의 의식이란, 마음이 아는 것으로서 범천을 으뜸으로 하여 생각이 있는 하늘과 생각이 없는 하늘에 이르기까지, 의식을 음식으로 삼으니, 이를 의식의 음식이라 이름한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사이를 펴지 않고 「~에 이르기까지」로 접힌 대로 옮겼다 `[생략표지]`. `所念識者`의 `所念`이 `識`을 꾸미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생각하는 바의 의식」으로 문자대로 두었다(신고). `意之所知`는 「마음이 아는 것」. `梵天為首`: `梵天`=범천(`[구속]`이 3분할 표의 「의역」 분류보다 위), `為首`=「으뜸으로 하여」. `有想、無想天`: 천(天)이 둘 모두에 걸리는지 `無想`에만 걸리는지 서지 않는다 — 3분할 표가 `無想天`을 의역으로 분류하여 뜻으로 옮겼고 `有想`도 같게 맞췄다(신고). 전거 대장 팔리형 `Saññino vā asaññino`(참고, 본문에 들이지 않는다). `以識為食`은 「의식을 음식으로 삼다」(`以A為B`). 이문: `名為`가 【宋】【元】【明】에 없다 — 대정 저본을 따른다.
「是謂,比丘!有此四食,眾生之類以此四食,流轉生死,從今世至後世。
「이를 일러, 비구여! 이 네 가지 음식이 있으니, 중생의 무리는 이 네 가지 음식으로 생사를 흘러 구르며, 지금 세상에서 뒷세상에 이른다.
주 첫머리 `是謂,比丘!`는 뒤 구절 `有此四食`을 거느리는 정형으로 읽어 「이를 일러, 비구여!」로 끊었다(끊는 자리 신고). `有此四食`의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이 있으니」로 옮겼다. `流轉`은 「흘러 구르다」(음의 慧琳 0625b15 `梵言僧娑洛此云流轉, 謂於六趣循環往來不絕` 인용 — 참고). `生死`는 한국 정착형 그대로. `從今世至後世`는 「지금 세상에서 뒷세상에 이르다」.
是故,諸比丘!當共捨離此四食。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함께 이 네 가지 음식을 버려 떠나라.
주 `是故`=그러므로, `當`은 어미 「-라」가 진다(「마땅히」 불사용). `共`은 「함께」, `捨離`는 「버려 떠나다」.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如是`는 「이와 같이」,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가 진다. 인용이 이 좌표 끝에서 닫힌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구속]`), 이 경은 같은 분을 `世尊`(c10.1)으로도 쓴다(한자 흔들림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설하신 것」)로 풀었다. 종결 정형구 `歡喜奉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