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3)
주 제목 자리에는 경명이 없고 목차 번호 三(大正 3)만 실려 있어 숫자로 옮겼다. 이 경 전체에서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대응 줄은 모두 「없음확인」(absent)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으로 적는다. 대정장 교감주 「cf. Divyāvadāna, pp. 246-254.」는 편자가 단 산스크리트 병행 참조이며 증언 좌표가 아니라서 SF 항에 걸지 않고 여기에만 인용한다(판정하지 않음).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앵커 如(비유·가정)는 如是의 일부로 「이렇게」라는 굳은 지시어라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한문에 주어 我가 없어 주어 없이 옮겼다(주어를 지어 넣지 않음). 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16/1578, 이 경 0.2.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여기는 佛, 다음 좌표부터는 世尊, 0597b15.1에는 為佛·眾祐. 확정역대로 佛=부처님, 世尊=세존, 眾祐=세존으로 고정했다. 舍衛는 정착어(사위)로 옮겼고 뜻은 이러하다: 팔리형 Sāvatthī(전거 舍衛 ⚠다른 부(DA)의 대역), 음의 舍衛國(慧琳 0367c24)은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으로 풀이한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이 5자 이상 「보류」로 분류했는데, §⑤의 정착어(기수급고독원)로 판별해 정착형을 썼다. 祇樹는 기타 태자가 남긴 나무(음의 祇樹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給孤獨은 의역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給孤獨 慧琳 0368a05 「亦義譯也…阿那邠邸」), 園은 동산이다. 팔리형은 Jetavana·Anāthapiṇḍika(전거 祇樹給孤獨園, ⚠다른 부(DA)의 대역). 정착형과 의역이 한 이름에 섞인 합성어라 을 남긴다. 一時는 사전 一時 ① 459회의 고정 개경 정형구다.
爾時,世尊與無央數之眾圍遶說法。
그때 세존께서는 끝없는 수의 대중과 함께 에워싸인 채 법을 설하셨다.
주 無央數는 「끝없는 수」(음의 無央 慧琳 0359b21 「央盡也」, 無央數 慧琳 0435c16). 이문: 央→鞅【宋】(음의 無央數 慧琳 0496a17은 「經從革作鞅非也」라 한다), 之는 【宋】【元】【明】에 없다. 與…圍遶說法은 동반의 與 뒤에 圍遶(에워싸임)와 說法이 이어지는 연속 동사로 읽었다. 앵커 확인: 이 좌표에는 걸린 허사 없음.
是時,曇摩留支在靜室中,獨自思惟,入禪三昧,觀見前身在大海中作魚,身長七百由旬。
이때 담마류지는 고요한 방 안에 머물며 홀로 깊이 생각하다가 선 삼매에 들어, 이전의 몸이 큰 바다 가운데서 물고기가 되어 몸의 길이가 칠백 유순인 것을 살펴 보았다.[불확실]
불확실 曇摩留支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담마류지)으로 적는다. 대정장 편자 대역주(cb:tt 0597011)는 Dharmaruci로 적는데 이는 범어형 표기이며 계통은 판정하지 않는다. 앵커 自(재귀)는 獨自의 일부로 自↔他 대조가 없어 「홀로」에 흡수했다. 思惟는 3분할이 의역이라 「깊이 생각하다」로 옮겼다. 禪三昧는 禪(음)+三昧(혼합: 음의 三昧 慧琳 0358c10 「三摩地…此云等持」)로 보아 「선 삼매」로 적었다. 由旬은 음의 慧琳 0484a15 踰繕那(거리의 단위)에 따라 한자 독음 「유순」이다. 3분할 혼합 두 항목(三昧·由旬)의 처리를 밝혀 을 남긴다. 前身은 「이전의 몸」(사전 前身 ① 5회)이다. 靜室는 「고요한 방」(사전 靜室).
即從靜室起,猶如力士屈申臂頃,便往至大海中故死屍上而經行。
곧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 바로 큰 바다 가운데 옛 죽은 시체 위로 가서 거닐었다.
주 앵커 如(猶如)는 「~처럼」 어미로 흡수했고, 而(接續)는 흡수했다. 即「곧」과 便「바로」을 구분해 옮겼다. 力士는 「힘센 사람」, 屈申(이문 伸【宋】【元】【明】)은 「굽혔다 펴는」. 故死屍의 故는 「옛」으로 읽었으며 어느 시체를 가리키는지는 이 좌표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經行은 「거닐다」(사전 經行 ① 48회).
爾時,曇摩留支便說此偈:
그때 담마류지는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偈는 「게송」. 다음 여섯 좌표가 그 게송이다.
「生死無數劫,流轉不可計;
「나고 죽는 셀 수 없는 겁, 흘러 돌기를 헤아릴 수 없다;
주 生死는 「나고 죽는」, 無數劫은 「셀 수 없는 겁」, 流轉은 「흘러 돌다」(사전 流轉 ① 21회; 음의 流轉 慧琳 0625b15 「梵言僧娑洛…循環往來不絕」). 앵커 諸·所 해당 없음. 게송 좌표는 행을 유지했다.
各各求所安,數數受苦惱。
저마다 편안한 곳을 구하며 자주자주 괴로움과 시달림을 받는다.
주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편안한 곳」으로 관형절로 풀었다. 數數는 「자주자주」(음의 數數 慧琳 0355a13 「數數頻繁也」). 苦惱의 惱는 煩惱(번뇌)와 섞이지 않게 「시달림」으로 옮겼다.
設復見身已,意欲造舍宅;
다시 몸을 보고 나면 마음은 집을 지으려 한다;
주 設(가정)는 연결어미 「-면」으로 흡수했고 復는 「다시」로 두었다. 이문 舍宅=屋舍【宋】【元】【明】. 주어(몸을 보는 이)와 설령(양보) 쪽인지 조건 쪽인지가 이 좌표에서는 정해지지 않아 조건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一切支節壞,形體不得全。
모든 팔다리 마디가 무너져 형체가 온전할 수 없다.
주 앵커 得(가능)은 「-ㄹ 수 없다」로 흡수했다. 支節은 이문 肢【宋】【元】【明】.
心已離諸行,愛著永無餘;
마음은 이미 모든 행을 떠났고, 애착은 영원히 남음이 없다;
주 諸行은 확정역이 없어 「모든 행」으로 두었다(사전 諸行 표제 있음). 愛著은 「애착」, 永無餘는 「영원히 남음이 없다」. 앵커 諸(복수)는 「모든」으로 옮겼다.
更不受此形,長樂涅槃中。」
다시는 이 형체를 받지 않고, 오래도록 열반 가운데서 즐긴다.」
주 涅槃은 3분할 혼합(음의 涅槃 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으로 두 글자 모두 소리를 옮긴 것으로 보고 한자 독음 「열반」을 썼다. 長樂의 長은 부사 「오래도록」이다.
爾時,尊者曇摩留支說此偈已,即從彼沒,來至舍衛祇洹精舍,往至世尊所。
그때 존자 담마류지는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그곳에서 사라져, 사위의 기환정사에 와서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주 祇洹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기환」으로 적었다(음의 祇洹 慧琳 0398a16 「梵語彼方精舍名」). 0.3의 祇樹給孤獨園과 같은 곳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보이나 이 좌표만으로는 단정하지 않는다. 이문 祇洹=祇桓【明】. 舍衛(사위)의 뜻은 0.3 비고와 같다.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계신 곳」 관형절로 풀었고, 者·即은 「존자」·「곧」으로 두었다. 沒은 「사라지다」.
爾時,世尊見曇摩留支來,作是告曰:「善哉!曇摩留支!久來此間。」
그때 세존께서는 담마류지가 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담마류지여! 이곳에 오래 머물렀구나.」
주 앵커 哉(감탄종결)는 어미 「-구나」가 진다. 善哉는 칭찬의 감탄으로 「훌륭하구나」(사전 善哉 ① 발화 첫머리 87/151). 久來此間은 「오래도록 이곳에 (있었다)」로 옮겼다. 來는 「~이래」의 시간 표지로 읽었으며, 오가는 동사 「오다」로는 읽지 않았다.
曇摩留支白世尊曰:「如是。
담마류지가 세존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주 如是는 응답의 「그렇습니다」다(앵커 如는 굳은 지시어). 이문: 曇【CB】, 瞿【大】(교감주(add)) — 대정장 원문은 瞿이고 CBETA가 曇으로 고쳤다. 瞿曇이면 고따마가 되므로 사람이 달라지는 읽기라 이 좌표 본문은 CBETA 저본의 曇摩留支를 따랐다. 청자가 윗사람(세존)이라 존댓말로 통일했다.
世尊!久來此間。」
세존이시여! 이곳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 앞 좌표(0597b09.1)에서 이어지는 같은 발화다. 久來此間은 0597b07.1과 같은 표현을 같은 말로 옮겼다.
爾時,上坐及諸比丘各生斯念:「此曇摩留支恒在世尊左右,然今世尊告曰:『善哉!曇摩留支!久來此間。』」
그때 윗자리에 앉은 이와 여러 비구들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 「이 담마류지는 늘 세존의 좌우에 있었으나, 이제 세존께서 『훌륭하구나! 담마류지여! 이곳에 오래 머물렀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주 上坐는 「윗자리에 앉은 이」(이문 上座【宋】【元】【明】; 한국어 「상좌」는 다른 뜻이라 쓰지 않았다). 앵커 諸는 「여러」, 哉는 어미로 흡수했다. 然은 「그러나」로 두었다. 안긴 인용 속 세존의 말은 평서로 유지했다.
爾時,世尊知諸比丘心中所念,欲斷狐疑故,便告諸比丘:「非為曇摩留支久來此間,故我言此義。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아시고, 여우 같은 의심을 끊으려 하시므로 곧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담마류지가 이곳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내가 이 뜻을 말한 것이 아니다.
주 앵커 為(위하여·피동)는 非為…故 구문의 「~ 때문이 아니다」로 읽었다. 所(피동·명사화)는 「품은」 관형절, 諸는 「여러」. 狐疑는 「여우 같은 의심」으로 글자대로 옮겼다. 斷…故의 故는 「~하시므로」.
所以然者,昔者過去無數劫時,有定光如來、至真、等正覺、明行成為、善逝、世間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為佛、眾祐,出現於世,治在鉢摩大國,與大比丘眾十四萬八千人俱。
그렇게 된 까닭은, 옛날 지나간 셀 수 없는 겁의 때에 정광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 온전히 이루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위없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께서 부처님, 세존으로서 세상에 나타나셨으니, 다스림은 발마 대국에 있었고 큰 비구 대중 십사만 팔천 명과 함께하셨다.
주 여래 호칭 구는 확정역 그대로다(如來=여래, 至真=아라한, 等正覺, 明行成為, 善逝, 世間解, 無上士, 道法御, 天人師). 為佛과 眾祐는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데 한역이 한 구 안에서 佛·世尊·眾祐를 갈마들여 쓴다(한자 흔들림); 확정역에 따라 부처님, 세존으로 고정하고 한자 차이는 저본에 남는다. 定光(주석 cb:tt 0597018: Dīpaṅkara)은 정착형 「정광」으로 쓰고 뜻을 적는다 — 이문 錠光【元】【明】은 등잔 받침을 뜻하는 글자이고, 사전 定光 ⑥(후대)도 「錠光佛·然燈佛」이라 하여 「作定非」라 한다. 곧 뜻은 등불의 빛 쪽이다. 鉢摩는 소리로 옮긴 이름으로 판별해 「발마」라 하고, 원어는 투입물이 주지 않는다. 治在는 「다스림은 …에 있었고」로 글자대로 옮겼으나 治가 다스림인지 치소(머무는 곳)인지는 이 좌표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有는 존재 서술을 주어 「~께서」로 흡수했다. 앵커 如·於·以는 흡수했고, 者(이문 【宋】【元】【明】에 없음)는 「~은」으로 두었다. 無數(셀 수 없는)와 無央數(끝없는 수, 0597a23.1)는 서로 다른 한문이라 다른 말로 옮겼다.
爾時,四部之眾不可稱計,國王、臣吏、人民之類,皆來供養給其所須。
그때 네 부류의 대중은 일컬어 헤아릴 수 없었고, 국왕과 신하와 관리, 백성의 무리가 모두 와서 공양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대어 주었다.
주 四部之眾은 「네 부류의 대중」으로 글자대로 옮겼다(네 부류의 구성은 이 좌표가 말하지 않는다).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필요로 하는 것」으로 관형절로 풀었다. 給은 「대어 주다」.
「爾時,有梵志名耶若達,在雪山側住,看諸祕讖,天文、地理靡不貫博,書䟽文字亦悉了知,諷誦一句五百言大人之相亦復了知,事諸火神、日月、星宿,教五百弟子宿夜不惓。
「그때 야야달이라는 이름의 청정에 뜻을 둔 이가 눈 덮인 산의 곁에 머물며, 여러 비밀스러운 예언서를 보아 천문과 지리를 꿰뚫어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서적과 주석의 문자도 모두 환히 알았으며, 한 구절이 오백 마디인 것을 외워 읊고 위대한 사람의 상도 또한 환히 알았고, 여러 불의 신과 해·달·별자리를 섬기며, 오백 제자를 가르쳐 밤을 새우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주 梵志는 3분할이 의역이라 음독(범지)을 피하고 「청정에 뜻을 둔 이」로 옮겼다. 근거: 음의 梵天 慧琳 0482c23 「梵摩此云寂靜或云清淨」, 사전 梵志 ⑥(후대) 「志求梵天之法者」 — 梵의 뜻이 청정인지 범천인지는 갈리므로 청정 쪽을 택했다. 이 경 전체에서 같은 말로 통일한다. 耶若達은 음역으로 판별해 「야야달」이라 했다(若을 야로 읽는 것은 般若·蘭若의 불교 음역 관용을 따름; 앵커 若·耶는 이 이름의 음역자이지 가정·의문 허사가 아니다). 雪山과 山側은 3분할이 의역이라 「눈 덮인 산의 곁」으로 옮겼다(3분할 山側의 팔리 Isigili-passa는 다른 곳의 기계 적중이다). 祕讖은 「비밀스러운 예언서」. 一句五百言은 「한 구절이 오백 마디」(뒤의 五百言誦과 같은 마디셈). 宿夜의 宿은 「밤을 새우다」로 읽었으나 夙(이른)의 이체일 가능성이 있어 신고한다. 惓은 이문 倦【宋】【元】【明】. 爾時는 이문 爾因【宋】. 앵커 教(가르침)는 「가르쳐」, 亦·復는 「도 또한」으로 합쳐 옮겼다.
耶若達梵志有弟子名曰雲雷,顏貌端政,世之希有,髮紺青色。
야야달, 청정에 뜻을 둔 이에게는 이름이 구름우레라는 제자가 있었고, 얼굴 모양은 단정하여 세상에 드물었으며, 머리털은 검푸른 빛이었다.
주 雲雷는 이문 雷雲【宋】【元】【明】이 있으나 이 이름은 의역으로 보아 「구름우레」로 옮긴다(이 경 전체에서 통일). 髮은 이문 眼【宋】【元】【明】이라 머리털/눈 어느 쪽인지가 갈리며, 저본(髮)을 따랐다. 紺青은 음의 紺青 慧琳 0439a02 「深青而伴赤色」에 따라 「검푸른」. 端政은 이문 端正. 앵커 有(존재)는 「제자가 있었고」로 두었다(주어화 불가한 자리).
雲雷梵志聰明博見,靡事不通,恒為耶若達所見愛敬,不去須臾。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귀 밝고 눈 밝아 두루 보았으며 통하지 않는 일이 없어, 늘 야야달에게 사랑받고 공경받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주 聰明은 3분할이 의역이라 음독(총명)을 피해 글자대로 「귀 밝고 눈 밝아」로 옮겼다. 為…所見愛敬은 피동 「~에게 사랑받고 공경받아」(앵커 為·所). 須臾는 「잠시」(음의 須臾 慧琳 0440b19 「俄頃」). 이문 雲雷=雷雲.
是時,婆羅門所行呪術,盡皆備舉。
이때 바라문이 행하는 주술을 모두 다 갖추어 들었다.
주 婆羅門은 확정역 「바라문」이다(일반 지칭이며 특정 인물이 아니다). 備舉의 주어(구름우레인지 서술자의 요약인지)와 舉의 뜻(거론하다/들다)이 정해지지 않아 「갖추어 들었다」로 글자대로 두고 신고한다.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행하는」 관형절.
「爾時,雲雷梵志便作是念:『我今所應學者悉皆備已。』
「그때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배워야 할 것을 모두 갖추어 마쳤다.』
주 앵커 應(당위)는 「배워야」의 어미로 흡수했고 所…者는 「배워야 할 것」으로 풀었다. 3분할 學者(팔리 Sandiṭṭhika)는 기계 적중이며 여기서는 所應學+者라 복합어가 아니다(전거 學者 ⚠다른 부(SA)의 대역 — 뜻 일치 미확인).
然復自念:『書籍所載,諸有學梵志行術過者,當報師恩。
그러나 다시 생각하였다: 『서적에 실린 말에, 배우는 청정에 뜻을 둔 이들 가운데 술법의 행함이 넘어선 이는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주 앵커 自(재귀)는 自念의 일부로 대조가 없어 흡수했고, 當(당위·미래)은 어미 「-야 한다」, 所·者·諸·有는 관형절·「들 가운데」로 풀었다. 行術過者의 過는 「넘어서다」이며 무엇을 넘는지(스승)는 한문에 없어 목적어를 넣지 않았다(뒤의 其有試術過者도 같은 過).
又我今日所應學者皆復知之,我今宜可報於師恩。
또 내가 오늘 배워야 할 것을 모두 또 알았으니, 나는 이제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 좋겠다.
주 이문 又=如【宋】【元】【明】(「또」인지 「~같이」인지로 문장 첫머리가 갈린다); 저본(又)을 따랐다. 皆復의 復는 「또」로 옮겼다. 앵커 宜(당위)는 「-는 것이 좋겠다」로,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然復貧匱,空無所有可用供養師者;宜當往詣國界求所須者。』
그러나 다시 가난하고 궁핍하여, 텅 비어 스승을 공양하는 데 쓸 수 있는 가진 것이 없다; 나라의 경계로 가서 필요한 것을 구해야겠다.』
주 貧匱는 「가난하고 궁핍하여」(음의 貧匱 慧琳 0361a17 「匱亦乏也」). 國界는 「나라의 경계」로 글자대로 옮겼다. 앵커 宜·當은 하나의 당위로 「-야겠다」에 흡수했고, 所·者는 관형절로 풀었다.
「爾時,雲雷梵志便往至師所,而白師曰:『梵志所學技術之法,今悉知已,然復書籍所載,諸有學術過者,當報師恩。
「그때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스승께 아뢰었다: 『청정에 뜻을 둔 이가 배우는 재주와 술법의 방도를 이제 모두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서적에 실린 말에, 여러 배운 술법이 넘어선 이는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주 技術은 「재주와 술법」(음의 技術 慧琳 0325c21 「藝也…術道也」; 현대어 「기술」과 겹치지 않게 글자대로 풀었다). 이문 技=伎【宋】【元】【明】, 교감주(add) [*]. 학술(學術)은 「배운 술법」. 앵커 所·而·當·復·諸·有·者는 관형절·어미로 흡수했고, 스승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통일했다.
然復貧乏,無有金銀珍寶可用供養者,今欲詣國界求索財物,用供養師。』
그러나 다시 가난하고 모자라, 공양하는 데 쓸 만한 금·은·보배가 없습니다. 이제 나라의 경계로 가서 재물을 구하여 스승을 공양하고자 합니다.』
주 無有는 「없습니다」(존재 부정). 求索은 「구하다」(음의 求索 慧琳 0488c15 「乞也求也」). 앞 좌표 0597c04.1에서 이어지는 같은 발화다.
「爾時,耶若達婆羅門便作是念:『此雲雷梵志我之所愛,不去心首。
「그때 야야달 바라문은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로, 마음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 같은 야야달을 0597b20.1에서는 梵志, 여기서는 婆羅門으로 부른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婆羅門은 확정역 「바라문」이고 梵志는 「청정에 뜻을 둔 이」로 서로 다른 말로 옮겨 한자 차이를 남겼다. 心首는 「마음의 머리」로 글자대로 두었으며 心과 首의 병렬인지 '마음의 으뜸'인지가 정해지지 않는다. 앵커 若·耶는 이름의 음역자, 所(피동·명사화)는 「내가 사랑하는 이」 관형절.
設吾死者尚不能別離,何況今日欲捨吾去。
내가 죽는다 해도 오히려 헤어질 수 없는데, 하물며 오늘 나를 버리고 가려 함이랴.
주 設…者는 「-ㄴ다 해도」로 조건·양보를 어미에 맡겼다. 앵커 能(가능)은 「-ㄹ 수 없다」, 者(명사화)는 조건절의 표지로 흡수했다. 何況은 「하물며」(음의 何況 慧琳 0440b18).
我今當作何方宜,使留得住耶?』
내가 지금 어떤 알맞은 방도를 지어, 머물러 살게 할 수 있겠는가?』
주 앵커 當(당위·미래)·宜(당위)·使(사역)·得(가능)·耶(의문종결)는 모두 어미에 맡겼다(「-게 하다」, 「-ㄹ 수 있겠는가」). 何方宜는 「어떤 알맞은 방도」.
「是時,耶若達梵志即告雲雷曰:『汝梵志!今故有婆羅門所應學者,卿尚不知。』
「이때 야야달,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구름우레에게 말했다: 『그대, 청정에 뜻을 둔 이여! 지금도 바라문이 배워야 할 것이 있으니, 그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주 야야달을 여기서는 梵志로 부른다(0597c09.1은 婆羅門).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를 썼다. 今故의 故는 「여전히」, 尚은 「아직」. 앵커 應·所·者·有는 「배워야 할 것이 있으니」로 흡수했다.
是時,雲雷梵志便前白師:『唯願見教,何者未誦?』
이때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앞으로 나아가 스승께 아뢰었다: 『바라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어떤 것을 아직 외우지 못했습니까?』
주 見教는 「가르쳐 주시다」(見이 상대의 행위를 나에게 미치게 하는 표지)로 읽었다. 唯(한정)는 「바라건대」. 何者未誦은 「어떤 것을 아직 외우지 못했습니까」. 존댓말 통일.
是時,耶若達梵志便思惟造五百言誦,告雲雷曰:『今有此書名五百言誦,汝可受之。』
이때 야야달,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곰곰이 생각하여 오백 마디 외움을 지어, 구름우레에게 말했다: 『지금 이름이 오백 마디 외움인 이 책이 있으니, 그대는 이것을 받으라.』
주 思惟는 3분할 의역에 따라 「곰곰이 생각하다」. 五百言誦은 「오백 마디 외움」(뒤 0597c18.1·0597c19.1의 같은 이름). 이문 교감주(add) [*](대정장) — CBETA가 삭제한 표기이며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汝可受之의 可는 「-라」 권유로 옮겼다.
雲雷白言:『願師見授,欲得諷誦!』
구름우레가 아뢰었다: 『스승께서 주시기를 원합니다. 외워 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見授는 0597c14.1의 見教와 같은 꼴로 「주시다」. 앵커 得(가능·획득)은 欲得諷誦을 「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로 옮겼다. 諷誦은 「외워 읊다」(음의 諷誦 慧琳 0340c01).
「比丘當知,爾時,耶若達便授弟子此五百言誦。
「비구들이여, 알라. 그때 야야달은 곧 제자에게 이 오백 마디 외움을 주었다.
주 比丘當知는 세존의 청중 호칭으로 「비구들이여, 알라」(앵커 當은 어미 「-라」). 이문 弟子此=此弟子【宋】【元】【明】(어순 차이, 뜻 불변). 앵커 若·耶는 이름의 음역자. 세존의 말이므로 평서.
未逕幾日,悉皆流利。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거침없이 익숙해졌다.
주 逕은 이문 經【宋】【元】【明】(지나다). 流利는 「거침없이 익숙해지다」로 글자대로 풀었다.
是時,耶若達婆羅門告五百弟子曰:『此雲雷梵志技術悉備,無事不通,即以立名,名曰超術。
이때 야야달 바라문은 오백 제자에게 말했다: 『이 구름우레, 청정에 뜻을 둔 이는 재주와 술법을 모두 갖추어 통하지 않는 일이 없으니, 곧 이름을 세워 「술법을 넘어선 이」라고 이름한다.』
주 超術은 본문이 스스로 풀어 주는 이름(재주와 술법을 다 갖추어서 붙인 이름)이라 의역으로 보아 「술법을 넘어선 이」로 옮기고 이 경 전체에서 통일한다(음독 「초술」은 한역자가 살린 뜻을 죽이는 조작). 이름을 지은 쪽의 한자는 超術이고 앞 이름 雲雷와 같은 사람이다. 야야달을 여기서는 婆羅門(바라문)으로 부른다(0597c12.1은 梵志). 앵커 以(수단·이유)는 흡수했다.
此超術梵志極為高才,天文、地理靡不觀博,書䟽文字亦悉了知。』
이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지극히 높은 재주를 지녔고, 천문과 지리를 살펴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서적과 주석의 문자도 모두 환히 안다.』
주 이문 觀=貫【宋】【元】【明】(0597b20.1의 貫博과 같은 말로 읽힘); 저본(觀)을 따라 「살펴」로 옮겼다. 極為高才의 為는 「~이 되다」로 읽어 「지녔고」. 앵커 亦는 뜻이 실린 「도」로 두었다.
爾時,超術梵志復經數日,復白師曰:『梵志所學技術之法,今悉知已,然復書籍所載,諸有學術過者,當報師恩。
그때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다시 며칠이 지나 다시 스승께 아뢰었다: 『청정에 뜻을 둔 이가 배우는 재주와 술법의 방도를 이제 모두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서적에 실린 말에, 여러 배운 술법이 넘어선 이는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주 復經數日,復白師는 「다시 며칠이 지나 다시 아뢰었다」로 앞뒤 復을 모두 살렸다. 나머지는 0597c04.1과 같은 말로 옮겼다(이문 技=伎【宋】【元】【明】).
加復貧乏,無有金銀珍寶可用供養師者,今欲詣國界求索財物,用供養師,唯願聽許!』爾時,耶若達梵志告曰:『汝知是時。』
게다가 다시 가난하고 모자라, 스승을 공양하는 데 쓸 만한 금·은·보배가 없습니다. 이제 나라의 경계로 가서 재물을 구하여 스승을 공양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들어 허락해 주십시오!』 그때 야야달, 청정에 뜻을 둔 이는 말했다: 『그대는 이때임을 안다.』
주 加復는 「게다가 다시」. 聽許는 「들어 허락하다」(음의 聽許 慧琳 0316a10). 汝知是時는 글자대로 「그대는 이때임을 안다」로 옮겼으며 때를 알라는 허락의 말인지 '이때임을 안다'는 서술인지 정해지지 않는다. 야야달은 여기서 梵志다. 앞 인용(제자의 말)은 존댓말, 스승의 말은 평서.
超術梵志前禮師足,便退而去。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앞으로 나아가 스승의 발에 예를 올리고, 곧 물러나 떠났다.
주 禮師足은 「스승의 발에 예를 올리다」(머리를 발에 대는 頭面이 한문에 없으므로 넣지 않음). 이문 超術=是超術【宋】【元】【明】. 앵커 而(접속)는 흡수했다.
「爾時,鉢摩大國去城不遠,有眾梵志普集一處,欲共大祠,亦欲講論。
「그때 발마 대국의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청정에 뜻을 둔 이들이 한곳에 두루 모여 함께 큰 제사를 올리고자 하였고, 또한 강론하고자 하였다.
주 去城不遠은 「성에서 멀지 않은 곳」. 有眾梵志…集은 존재 서술을 「많은 …들이 모여」로 주어화했다(앵커 有). 亦欲講論의 亦은 앞 欲共大祠와 나란한 「또한」이라 뜻이 실려 살렸다. 祠는 「제사」.
時,有八萬四千梵志共集。
그때 팔만 사천의 청정에 뜻을 둔 이들이 함께 모였다.
주 앵커 有(존재)는 주어화했다. 숫자 八萬四千은 글자대로 옮겼다(0598a07.1에서 다시 나온다).
第一上坐亦復諷誦外道書䟽,莫不練知,天文、地理、星宿變怪,皆悉了知。
으뜸가는 윗자리에 앉은 이는 또한 외도의 서적과 주석을 외워 읊어 익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천문과 지리와 별자리의 변괴를 모두 환히 알았다.
주 莫不은 이중 부정이라 앵커 莫(금지)의 「-지 말라」로 읽지 않고 「~하지 않음이 없다」로 옮겼다. 亦復는 「또한」. 變怪는 「변괴」(변하고 괴이한 일). 第一上坐는 上坐(0597b10.1)와 같은 말에 第一이 붙은 꼴이라 「으뜸가는 윗자리에 앉은 이」로 옮겼다.
各欲散時,便以五百兩金及金杖一枚,金澡罐一枚,牛千頭,用奉上師,與第一上坐。
저마다 흩어지려 할 때, 곧 오백 냥의 금과 금 지팡이 한 개, 금 물단지 한 개, 소 천 마리로써 윗스승에게 바치며 으뜸가는 윗자리에 앉은 이에게 주었다.
주 澡罐은 음의 澡罐 慧琳 0395b13 「洗手…盛淨水瓶」에 따라 「물단지」. 이문 罐=灌【宋】【元】. 上師(윗스승)가 第一上坐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이 좌표에서 정해지지 않아 글자대로 두고 신고한다. 앵커 以(수단·이유)는 「~로써」.
「爾時,超術梵志聞,去鉢摩大國不遠,有諸梵志八萬四千集在一處,其有試術過者,便與五百兩金及金杖一枚,金澡罐一枚,大牛千頭。
「그때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발마 대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청정에 뜻을 둔 이 팔만 사천이 한곳에 모여 있고, 그중 술법을 시험하여 넘어선 이가 있으면 곧 오백 냥의 금과 금 지팡이 한 개, 금 물단지 한 개, 큰 소 천 마리를 준다는 것을 들었다.
주 이 좌표는 앞 좌표(0598a06.1)의 상금 목록을 되풀이하되 「大牛」로 쓴다(앞은 牛). 이문 교감주(add): 枚【CB】, 杖【大】 — 대정장 원문은 「杖」이고 CBETA가 「枚」로 고쳤다. 그에 따라 「금 물단지 한 개」(金澡罐一枚)로 옮겼다. 其有試術過者는 「그중 술법을 시험하여 넘어선 이가 있으면」으로 앵커 者·有를 관형절·조건으로 풀었다. 앵커 諸는 「여러」.
是時,超術梵志自念:『我今何故家家乞求?
이때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어찌하여 집집마다 구걸하는가?
주 앵커 自(재귀)는 自念의 일부로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했다. 家家乞求는 「집집마다 구걸하다」.
不如詣彼大眾共捔技術。』
저 큰 대중에게 가서 함께 재주와 술법을 겨루는 것만 못하다.』
주 앵커 如(不如)는 「-것만 못하다」 비교 구문에 흡수했다. 捔은 「겨루다」. 이문 技=伎【宋】【元】【明】. 앞 좌표 0598a11.1에서 이어지는 같은 생각이다.
是時,超術梵志便往至大眾所。
이때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큰 대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주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있는 곳」 관형절로 풀었다. 大眾은 「큰 대중」.
「爾時,眾多梵志遙見超術梵志,各各高聲喚曰:『善哉!祠主,今獲大利,乃使梵天躬自下降。』
「그때 많은 청정에 뜻을 둔 이들이 멀리서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를 보고, 저마다 큰 소리로 불러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제사의 주인이시여, 지금 큰 이익을 얻었으니 마침내 범천께서 몸소 내려오시게 하였습니다.』
주 梵天은 확정역 「범천」. 祠主는 「제사의 주인」. 乃使…는 「마침내 …시게 하였다」, 躬自의 自는 躬과 한 덩어리라 「몸소」에 흡수했다. 앵커 使(사역)·哉(감탄종결)는 어미에 맡겼다. 청자를 높여 존댓말로 통일했다.
時,八萬四千諸梵志等各起共迎,異口同音而作是語:『善來,大梵神天!』時,超術梵志便生此念:『此諸梵志謂呼吾是梵天,然復吾亦非梵天。』
그때 팔만 사천의 여러 청정에 뜻을 둔 이들이 저마다 일어나 함께 맞이하며, 입은 달라도 소리는 같게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큰 범천 신이신 하늘이시여!』 그때 술법을 넘어선 이, 청정에 뜻을 둔 이는 곧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 『이 여러 청정에 뜻을 둔 이들이 나를 불러 범천이라 하지만, 나는 범천이 아니다.』
주 같은 개념을 앞 좌표(0598a13.1)는 梵天, 여기는 大梵神天·梵天으로 쓴다(한자 흔들림). 확정역 梵天=범천을 지키고 大梵은 「큰 범천」으로 옮겨 차이를 남겼다. 善來는 3분할 의역이라 「잘 오셨습니다」(음독 「선래」를 피함). 異口同音은 「입은 달라도 소리는 같게」(사전 異口同音 ① 이 경에만, ⑥ 「人數多時,眾人為同一之語也」). 然復吾亦非梵天에서 앵커 復·亦은 「그러나 …아니다」로 흡수했다. 앵커 諸·而·亦·復 확인.
是時,超術梵志語諸婆羅門曰:『止!止!諸賢!勿呼吾是梵天也。
이때 초술 범지가 바라문들에게 말했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여러 현자들이여! 나를 범천이라 부르지 말라.
주 梵志(초술)와 婆羅門(대중)이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한자대역 표: 둘 다 brāhmaṇa 계열).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婆羅門·梵天은 확정역(바라문·범천). 梵志는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나 확정역이 없고, 뜻을 푼 말(慧琳 음의 梵=寂靜·清淨, 丁福保 梵志=志求梵天之法者)이 길어 이 구간에서는 한국 불교계 정착형 「범지」로 통일했다 — 이 선택은 정도평 판정 몫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超術은 표에 없는 이름이라 독음(초술)하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 名曰超術이라 사람 이름으로 읽히나 뜻옮김일 수 있다. 勿呼吾是梵天也의 也는 종결이라 흡수.
汝等豈不聞乎?
너희는 어찌 듣지 못했느냐?
주 豈…乎 반문. 앞 좌표의 연속 발화라 이 구간 밖 문맥은 불필요.
雪山北有大梵志眾師,名耶若達,天文、地理靡不貫練。』
눈 덮인 산 북쪽에 큰 범지들의 스승이 있으니, 이름은 야약달이다. 천문과 지리에 꿰뚫어 익히지 않은 것이 없다.』
주 雪山은 의역(표)이라 「눈 덮인 산」. 耶若達은 음역으로 읽어 독음(야약달)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배선 앵커가 耶를 의문종결로 표시했으나 이름 안의 글자다.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으니」를 세웠다(근거: 장소 뒤 존재문).
諸梵志曰:『吾等聞之,但不見耳!』超術梵志曰:『我是其弟子,名曰超術。』
여러 범지들이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들었으나, 다만 보지 못했을 뿐이다!』 초술 범지가 말했다. 『나는 그의 제자로, 이름을 초술이라 한다.』
주 저본 이문: 不見耳 (大) / 不曾見 (宋).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보지 못했을 뿐」. 但은 「들었다」와 「보지 못했다」의 대비가 실려 「다만」을 세웠다. 대중과 초술은 동배라 평서.
是時,超術梵志便向彼眾第一上坐而告之曰:『設知技術者,向吾說之。』
이때 초술 범지는 곧 저 대중의 첫째 윗자리에 앉은 이를 향해 일러 말했다. 『기술을 아는 이가 있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하라.』
주 저본 이문: 技 (大) / 伎 (宋·元·明). 設…者는 가정 어미로 흡수. 第一上坐는 대중 안 최상석 앉은 이.
「爾時,彼眾第一上坐即向超術梵志誦三藏技術,無有漏失。
그때 저 대중의 첫째 윗자리에 앉은 이가 곧 초술 범지를 향해 삼장의 기술을 외웠는데, 새거나 빠진 것이 없었다.
주 저본 이문: 技 (大) / 伎 (宋·元·明). 三藏은 한국 정착어(삼장)로 두되, 여기서 한역자가 가리키는 것은 베다 계통 학문 전반으로 읽힌다 — 단정하지 않는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無有漏失의 有는 존재 서술이나 부정 관용이라 「~이 없었다」로 흡수.
時,超術婆羅門復語彼上坐曰:『一句五百言,今可說之。』
때에 초술 바라문이 다시 저 윗자리 앉은 이에게 말했다. 『한 구절 오백 말을 이제 말할 수 있다.』
주 같은 인물을 앞 좌표들은 超術梵志로, 여기는 超術婆羅門으로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可說之의 주어가 상좌인지 화자인지 한문이 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是時,彼上坐曰:『我不解此義,何等是一句五百言者?』
이때 저 윗자리 앉은 이가 말했다. 『나는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이 한 구절 오백 말이라는 것인가?』
주 何等是…者 의문사구 + 명사화 者를 「~이라는 것인가」로 흡수.
時,超術梵志告曰:『諸賢!默然聽說一句五百言大人之相。』
때에 초술 범지가 일러 말했다. 『여러 현자들이여! 잠자코 한 구절 오백 말 대인의 모습을 말하는 것을 들으라.
주 聽說은 「말하는 것을 들으라」(화자가 말하고 청자가 듣는 구문)로 옮겼다. 相은 「모습」으로 두었다 — 이후 좌표에서 같은 표현을 같게 유지한다.
「比丘當知,爾時,超術梵志便誦三藏之術,及一句五百言大人之相。
「비구들이여, 알라. 그때 초술 범지는 곧 삼장의 기술과 한 구절 오백 말 대인의 모습을 외웠다.
주 붓다 발화는 평서. 比丘當知의 當은 명령 어미(「알라」)로 흡수.
爾時,八萬四千梵志歎未曾有:『甚奇!甚特!我等初不聞一句五百言大人之相,今尊者宜在上頭第一上坐。』
그때 팔만사천 범지들이 일찍이 없던 일이라 탄식했다. 『매우 기이합니다! 매우 특별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 구절 오백 말 대인의 모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존자께서는 맨 위 첫째 윗자리에 계심이 마땅합니다.』
주 未曾有는 의역(표)으로 「일찍이 없던 일」. 八萬四千은 숫자 그대로. 대중이 초술을 尊者로 부르므로 존댓말로 통일. 宜는 어미(「마땅합니다」)가 진다.
「爾時,超術梵志移彼上坐已,便在第一上頭坐。
「그때 초술 범지는 저 윗자리 앉은 이를 옮기고 나서, 곧 맨 위 첫째 자리에 앉았다.
주 移…已는 완료 접속으로 「옮기고 나서」.
爾時,彼眾上坐極懷瞋恚,發此誓願:『今此人移我坐處,自補其處。
그때 저 대중의 윗자리 앉은 이가 몹시 성냄을 품고 이 서원을 일으켰다. 『지금 이 사람이 내 앉은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를 채웠다.
주 瞋恚는 의역(표)이라 「성냄」. 誓願은 정착어 「서원」. 自補其處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我今所誦經籍,持戒苦行,設當有福者,盡持用作誓:「此人所生之處,所欲作事,我恒當壞敗其功。」』
내가 지금 외운 경서와 계를 지니고 고행한 것에 만약 복이 있다면, 모두 가져다 서원으로 삼겠다. 「이 사람이 태어나는 곳과 하고자 하는 일마다 나는 늘 그 공을 무너뜨리겠다.」』
주 苦行은 표에서 音義 혼합으로 분류되나 저본에서는 持戒와 병렬된 「괴로운 수행」으로 읽어 정착어 「고행」을 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設當有福者는 가정(設…者)과 미래(當)를 어미 「-다면」「-겠다」가 진다. 인용 안의 恒當은 「늘 …겠다」.
「是時,彼施之主即出五百兩金及金杖一枚,金澡罐一枚,牛千頭,好女一人,持用與上坐使呪願。
「이때 저 보시의 주인이 곧 금 오백 냥과 금 지팡이 한 개, 금 물병 한 개, 소 천 마리, 좋은 여인 한 사람을 내어 가져다 윗자리 앉은 이에게 주어 축원하게 했다.
주 저본 이문: 一枚 (大) / 一放 (宋). 澡罐은 「씻는 물병」(慧琳 음의: 澡=洗, 罐=盛淨水瓶; 0395b13). 使呪願은 사역이라 「축원하게 했다」.
爾時,上坐告主人曰:『我今受此五百兩金及金杖、金澡罐,當用供養師。
그때 윗자리 앉은 이가 주인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금 오백 냥과 금 지팡이, 금 물병을 받아 스승께 공양하는 데 쓰겠다.
주 當用은 의지의 어미 「-겠다」로 흡수. 供養은 정착어.
此女人,及牛千頭還施主人。
이 여인과 소 천 마리는 도로 시주에게 돌려 베푼다.
주 施主人은 앞 좌표의 彼施之主와 같은 사람. 還施는 「도로 베푼다」.
所以然者,吾不習欲,亦不積財。』
그러한 까닭은, 나는 욕망을 익히지 않으며 또한 재물을 쌓지 않기 때문이다.』
주 亦는 「욕망」과 「재물」 두 항을 병렬하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所以然者는 「그러한 까닭은 …때문이다」로 흡수.
「是時,超術梵志受此金杖、澡罐已,便往詣鉢摩大國。
「이때 초술 범지는 이 금 지팡이와 물병을 받고 나서 곧 발마대국으로 나아갔다.
주 鉢摩大國은 음역 계열의 나라 이름이라 독음(발마대국)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澡罐은 앞 좌표와 같게 「물병」으로 줄여 적었으나 앞 좌표에서 「씻는 물병」을 한 번 풀었다 — 같은 낱말이다.
其王名曰光明。
그 왕의 이름은 광명이라 한다.
주 光明은 뜻으로 읽을 수 있는 이름이나(전거표: 범어 vabhasa는 당대 일반어 대역일 뿐 이 이름의 근거가 아니다) 한국어 낱말 「광명」과 독음이 같아 이대로 둔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時,彼國王請定光如來及比丘眾衣食供養。
때에 저 나라 왕이 정광 여래와 비구 대중을 청해 옷과 음식으로 공양했다.
주 定光은 표에 없는 이름이다.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사전 定光 표제에 丁福保가 提洹羯(Dipaṁkara)의 譯 錠光·然燈을 든다 — 후대 주석이라 인용만 한다. 뜻을 풀면 한역자가 하지 않은 판단이므로 독음(정광)하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如來는 확정역. 請…供養은 「청해 공양했다」.
時,彼國王告令城內:『其有人民有香華,盡不得賣,若有賣者當重罰之;吾自出買,不須轉賣。』
때에 저 나라 왕이 성 안에 알려 명했다. 『그 인민 가운데 향과 꽃이 있는 이는 모두 팔 수 없다. 파는 이가 있으면 무겁게 벌하겠다. 나는 직접 내어 사들일 것이니, 다시 팔아넘길 필요가 없다.』
주 저본 이문: 盡 (大) / 者盡 (宋·元·明); 買 (大) / 價 (宋·元·明) — 본문은 大正. 若有賣者當重罰之는 「-면」과 「-겠다」가 지는 구문. 自出買는 인민에게는 팔지 못하게 하고 왕은 직접 산다는 대조가 실려 「직접」을 세웠다. 得賣는 가능.
復勅人民,掃灑令淨,勿使有土沙穢惡;懸繒幡蓋,香汁塗地,作倡妓樂,不可稱計。
다시 인민에게 명하여 쓸고 물을 뿌려 깨끗하게 하고, 흙과 모래와 더러운 것이 있게 하지 말며, 비단 깃발과 일산을 걸고, 향즙을 땅에 바르고, 광대와 기녀의 음악을 지으니, 헤아릴 수 없었다.
주 저본 이문: 土 (大) / 土石 (宋·元·明). 作倡妓樂은 慧琳 음의에 倡=俳優戱笑, 妓=女樂(0465a21)으로 「광대와 기녀의 음악」. 勅…令…勿使는 사역·금지가 이어진 명령문.
「爾時,彼梵志見已,便問行道人曰:『今是何日?
「그때 저 범지가 보고 나서 곧 길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주 行道人은 「길 가는 사람」. 梵志는 앞 좌표들과 같게 「범지」.
掃灑道路,除治不淨,懸繒幡蓋,不可稱計。
길을 쓸고 물을 뿌리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없애 다스렸으며, 비단 깃발과 일산을 걸어 헤아릴 수 없다.
주 掃灑에 慧琳 음의(0497a02): 灑=以水歛塵. 앞 좌표의 掃灑와 같게 옮겼다.
將非國主太子有所娉娶?』
혹시 나라 주인의 태자가 장가들어 맞이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주 將非…는 추측 의문 「혹시 …이 아닌가」. 有所娉娶의 有所는 「~하는 바가 있다」 훈독투를 피해 「일이 있는」으로 풀었다. 國主는 「나라 주인」.
彼行道人報曰:『梵志不知耶?
저 길 가는 사람이 답해 말했다. 『범지는 알지 못합니까?
주 耶는 의문 어미가 진다. 행인이 梵志를 윗사람으로 대하는지 한문은 말하지 않으나 존대 어휘 없이 묻는 화행이라, 정중 어미를 택하되 [불확실:격·태·구문].
鉢摩大國王今請定光如來、至真、等正覺,衣食供養,故平治道路,懸繒幡蓋耳。』
발마대국 왕이 지금 정광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청해 옷과 음식으로 공양하려 하므로, 길을 평평히 다스리고 비단 깃발과 일산을 걸었을 뿐입니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如來·至真·等正覺은 확정역(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耳는 한정 종결이라 「~뿐」. 故는 앞 절의 이유.
然梵志祕記亦有此語:『如來出世,甚難得遇,時時乃出,實不可見,猶如優曇鉢華,時時乃出。』
그러나 범지의 비밀 기록에도 이 말이 있습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옴은 만나기 매우 어렵고, 때때로 비로소 나오며, 실로 볼 수 없으니, 마치 우담발화가 때때로 비로소 나오는 것과 같다.』
주 祕記는 「비밀 기록」. 優曇鉢華는 한역이 음역(優曇鉢, 慧琳 0485a01 鄔曇鉢羅 瑞應花)과 뜻(華)을 합친 이름으로, 한국 정착형 「우담발화」를 썼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亦有此語의 亦은 앞 인용(행인 자신의 말)에 대한 비밀 기록의 호응이라 「도」로 흡수. 猶如는 비유.
此亦如是,如來出現於世,甚不可值。
이 또한 이와 같아, 여래가 세상에 나타남은 만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주 정형구 표의 `亦如是`(이 경 1회)와 글자가 같으나, 여기서는 앞 비유를 이어 받아 다음 구절이 풀어 쓰이는 비유의 결어이지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가 아니라고 읽었다. 그래서 `[생략표지]`를 달지 않는다. 판단이 갈리면 정도평 몫.
又梵志書亦有語:『有二人出世甚難得值。
또 범지의 글에도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만나기 매우 어렵다.
주 저본 이문: 語 (大) / 此語 (宋·元·明). 앞 좌표의 祕記와 달리 書라 「글」.
云何二人?
어떤 두 사람인가?
주 云何는 의문사구, 어미 의문형으로 흡수.
如來及轉輪聖王。
여래와 전륜성왕이다.
주 轉輪聖王은 한국 정착어 「전륜성왕」. 이 이름은 확정 술어표에 없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此二人出現甚難得值。』
이 두 사람이 나타남은 만나기 매우 어렵다.』
주 得值는 「만나다」, 得는 가능.
爾時,彼復作是念:『我今可急速報佛恩,今且以此五百兩金奉上定光如來。』
그때 그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서둘러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좋겠다. 지금 우선 이 금 오백 냥을 정광 여래께 받들어 올리자.』
주 저본 이문: 可 (大) / 何 (宋·元·明); 佛 (大) / 師 (宋·元·明); 定光 (大) / 錠光 (元·明). 본문은 大正. 한역이 같은 대상을 如來·佛로 달리 쓴다(둘 다 확정역: 여래·부처님). 可는 「~하는 것이 좋겠다」.
復作是念:『書記所載,如來不受金銀珍寶;我可持此五百兩金,用買華香,散如來上。』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기록에 실려 있기로 여래는 금과 은, 진귀한 보배를 받지 않는다. 나는 이 금 오백 냥을 가져다 꽃과 향을 사서 여래 위에 뿌리는 것이 좋겠다.』
주 저본 이문: 華香 (大) / 香華 (宋·元·明). 書記所載의 所는 「~하는 바」 훈독투를 피해 「실려 있기로」로 풀었다.
「是時,梵志即入城內求買華香。
「이때 범지는 곧 성 안으로 들어가 꽃과 향을 사려고 구했다.
주 저본 이문: 華香 (大) / 香華 (宋·元·明). 即은 앞 동작에 곧바로 이어져 「곧」을 세웠다.
爾時,城中行人報曰:『梵志不知耶?
그때 성 안의 행인이 답해 말했다. 『범지는 알지 못합니까?
주 저본 이문: 城中 (大) / 城內 (宋·元·明). 耶는 의문 어미가 진다. 정중 어미는 0598b25.1과 같은 판단이다 [불확실:격·태·구문].
國王有教令,其有香華賣者當重罰之。』
국왕에게 교령이 있으니, 향과 꽃을 파는 이는 무겁게 벌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주 教令은 「교령」(왕이 내린 명령). 其有…者當重罰之의 當은 어미 「-겠다」가 지고 者는 「~하는 이」. 앞 좌표(0598b18.1)의 告令과 같은 명령을 가리킨다.
時,彼超術梵志便作是念:『是我薄祐,求華不獲,將知如何?』
때에 저 초술 범지가 곧 이런 생각을 했다. 『이는 내 복이 박해서 꽃을 구해도 얻지 못함이니, 장차 어찌해야 할지 알겠는가?』
주 薄祐는 「박한 복」(慧琳 음의 0474a10: 祐=福). 將知如何의 如는 의문 「어찌」의 일부이지 비유가 아니다. 문장 전체가 반문인지 자문인지 한문이 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
便還出城,在門外立。
곧 도로 성을 나와 문 밖에 서 있었다.
주 在門外立은 「문 밖에 서 있었다」.
「爾時,有婆羅門女名曰善味,持水瓶行取水,手執五枚華。
「그때 선미라는 이름의 바라문 여인이 물병을 들고 가서 물을 길었는데, 손에 다섯 낱의 꽃을 쥐고 있었다.
주 善味는 표에 없는 이름이라 독음(선미)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뜻옮김이라면 「좋은 맛」이다. 婆羅門女의 婆羅門은 확정역(바라문). 有는 인물을 처음 세우는 존재 서술이나, 「~이 있어」는 훈독투 회피어라 쓰지 않고 有가 세우는 인물을 주어 「~이」로 세워 흡수한다(배선 앵커: 주어화 가능).
梵志見已,語彼女人曰:『大妹!我今須華,願妹見賣與我。』
범지가 보고 나서 그 여인에게 말했다. 『큰누이여! 내가 지금 꽃이 필요하니, 누이가 나에게 팔아 주기를 바란다.』
주 大妹는 「큰누이」. 見賣與我의 見은 화자에게 향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조사로 읽어 흡수했다.
梵志女曰:『我何時是汝妹?
범지의 딸이 말했다. 『내가 언제 너의 누이였느냐?
주 여인이 汝로 받아 평서. 梵志女의 梵志는 「범지」로 통일.
為識我父母不?』
내 부모를 알기나 하느냐?』
주 為識…不의 為는 앵커가 「위하여·피동」으로 표시했으나 為…所 구문이 아니고, 不로 맺는 의문의 앞머리 어기사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時,超術梵志復生此念:『此女人性行寬博,意在戲笑。』
때에 초술 범지가 다시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 『이 여인은 성품과 행실이 너그럽고 넓어, 뜻이 희롱하고 웃는 데 있다.』
주 戲笑는 慧琳 음의 0731c11에 戱=譃(농담). 復는 앞의 생각에 이은 반복이라 「다시」.
即復語言:『賢女!我當與價,是非見惠此華。』
곧 다시 말했다. 『어진 여인이여! 내가 값을 주겠다. 이는 이 꽃을 거저 베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주 當與價의 當은 어미 「-겠다」. 見惠는 「은혜로 베풀어 줌」.
梵志女曰:『豈不聞大王有嚴教,不得賣華乎?』
범지의 딸이 말했다. 『대왕께 엄한 분부가 있어 꽃을 팔 수 없음을 어찌 듣지 못했느냐?』
주 같은 왕의 명을 앞에서는 教令(0598c09.1), 여기서는 嚴教로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教令은 「교령」, 教는 「분부」로 옮겼다. 豈不聞…乎는 반문.
「梵志曰:『賢女!此事無苦,王不奈汝何!我今急須此五枚華,我得此華,汝得貴價。』
「범지가 말했다. 『어진 여인이여! 이 일은 괴로울 것이 없다. 왕이 너를 어찌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이 꽃 다섯 낱이 급히 필요하다. 내가 이 꽃을 얻으면 너는 귀한 값을 얻는다.』
주 王不奈汝何는 「왕이 너를 어찌하지 못한다」. 得는 두 번 모두 획득(꽃을 얻음 / 값을 얻음). 無苦는 「괴로울 것이 없다」.
梵志女曰:『汝急須華,欲作何等?』
범지의 딸이 말했다. 『네가 꽃이 급히 필요하다니, 무엇을 하려는가?』
주 欲作何等은 「무엇을 하려는가」.
梵志報曰:『我今見有良地,欲種此華。』
범지가 답해 말했다. 『나는 지금 좋은 땅이 있음을 보았으니, 이 꽃을 심으려 한다.』
주 見有良地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음」을 세웠다.
梵志女曰:『此華以離其根,終不可生。
범지의 딸이 말했다. 『이 꽃은 이미 그 뿌리에서 떠났으니 끝내 살 수 없다.
주 저본 이문: 以 (大) / 已 (宋·元·明). 大正 본문 以를 「이미」(已와 통하는 쓰임)로 읽었다 — 以의 수단 쓰임(「~로써」)이면 뜻이 서지 않는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云何方言我欲種之?』
어찌 바야흐로 내가 그것을 심으려 한다고 말하는가?』
주 云何는 의문사구. 方言의 方은 「바야흐로」로 옮겼으나 「함부로」의 뜻일 수 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梵志報曰:『如我今日所見良田,種死灰尚生,何況此華?』
범지가 답해 말했다. 『내가 오늘 본 좋은 밭 같으면, 죽은 재를 심어도 오히려 사는데, 하물며 이 꽃이겠는가?』
주 如는 가정의 「-면」이 진다. 所見은 관형절(「본」)로 풀었다. 何況은 「하물며」.
「梵志女曰:『何者是良田,種死灰乃生乎?』
「범지의 딸이 말했다. 『어떤 것이 좋은 밭이기에, 죽은 재를 심어 곧 살아나는가?』
주 梵志는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나 확정역이 없고, 뜻을 푼 말은 길어서 한국 불교계 정착형 「범지」를 이 구간에서 통일해 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何者是…乎는 의문, 者는 「어떤 것」. 乃는 앞 조건에 곧바로 이어지는 결과라 「곧」. 乎의 의문은 종결어미 「-는가」가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는다.
梵志報曰:『賢女!有定光佛、如來、至真、等正覺,出現於世。』
범지가 답해 말했다. 『어진 여인이여! 정광 부처님,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세상에 나타났다.』
주 佛·如來·至真·等正覺은 확정역(부처님·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定光은 표에 없는 이름이다.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丁福保 사전(後代)이 提洹羯(Dipaṁkara)의 譯 錠光·然燈이라 하나, 뜻을 풀면 한역자가 하지 않은 판단이 되므로 독음(정광)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有…出現於世의 有는 존재, 於는 처소 조사가 진다.
梵志女曰:『定光如來為何等類?』
범지의 딸이 말했다. 『정광 여래는 어떤 부류인가?』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為는 앵커가 「위하여·피동」으로 표시했으나 為…所 구문이 아니고 계사(「~이다」)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梵志即報彼女曰:『定光如來者,有如是之德,有如是之戒,成諸功德。』
범지가 곧 그 여인에게 답해 말했다. 『정광 여래는 이러한 덕이 있고 이러한 계가 있어, 여러 공덕을 이루었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如是之德·如是之戒는 「이러한 덕」「이러한 계」. 有는 덕과 계를 갖춤을 서술하는 존재.
梵志女曰:『設有功德者,欲求何等福?』
범지의 딸이 말했다. 『공덕이 있다면 어떤 복을 구하려 하는가?』
주 設…者는 가정 어미 「-다면」이 진다.
梵志報曰:『願我後生當如定光如來、至真、等正覺,禁戒、功德亦當如是。』
범지가 답해 말했다. 『원컨대 나는 다음 생에 정광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과 같게 되고, 금하는 계와 공덕도 이와 같기를 바란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後生은 「다음 생」. 當如는 「-게 되고」, 亦當如是는 앞 절과 병렬된 소원이라 「도」로 옮겼다. 禁戒는 「금하는 계」.
「梵志女曰:『設汝許我世世作夫婦,我便與汝華。』
「범지의 딸이 말했다. 『만약 네가 나에게 세세에 부부가 되기를 허락한다면, 나는 곧 네게 꽃을 주겠다.』
주 設汝許我…의 設은 가정. 世世作夫婦는 「세세에 부부가 되는 것」. 便은 「곧」.
梵志曰:『我今所行,意不著欲。』
범지가 말했다.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은 뜻이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다.』
주 我今所行의 所는 「~하는 바」 훈독투를 피해 관형절로 풀었다. 意不著欲의 意는 「뜻」(마음 작용)으로, 아함 사전 意 ①은 身口意 삼업의 意가 가장 흔하다 — 여기서도 같은 쓰임으로 보았다.
梵志女曰:『如我今身不求為汝作妻,使我將來世與汝作妻。』
범지의 딸이 말했다. 『내 지금 몸 같은 것으로는 네 아내가 되기를 구하지 않으니, 내가 앞으로 올 세상에 네 아내가 되게 하자.』
주 如我今身…의 如는 「~ 같은 것으로는」(제시)으로 읽었고 가정으로도 읽힌다. 為汝作妻의 為는 위하여/피동이 아니라 「~가 되다」의 앞 요소로 읽었다. 使는 사역·권유 「되게 하자」. 구문이 여럿 가능하다 [불확실:격·태·구문].
超術梵志曰:『菩薩所行,無有愛惜,設與我作妻者,必壞我心。』
초술 범지가 말했다. 『보살이 행하는 것은 아끼는 것이 없다. 나의 아내가 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내 마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주 菩薩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나 정형구 행(「보살이었을 때…」)이 있어 한국 정착어 「보살」을 썼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超術은 표에 없는 이름이라 독음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 名曰超術(0598a21.1)처럼 이름으로 쓰였다. 愛惜은 「아끼다」, 無有는 존재 부정이라 「없다」. 設與我作妻者는 「나의 아내가 되는 이가 있다면」.
梵志女曰:『我終不壞汝施意,正使持我身施與人者,終不壞施心。』
범지의 딸이 말했다. 『나는 끝내 네가 베푸는 뜻을 무너뜨리지 않겠다. 설사 내 몸을 가져다 남에게 베푼다 해도, 끝내 베푸는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겠다.』
주 正使…者는 양보 「설사 …해도」(양보가 실린 자리). 施意와 施心은 같은 글자 구성이 아니므로 「베푸는 뜻」「베푸는 마음」으로 달리 적었다.
是時,便持五百金錢,用買五枚華,與彼女人,共作誓願,各自別去。
이때 곧 금전 오백을 가져다 꽃 다섯 낱을 사서 저 여인에게 주고, 함께 서원을 짓고 각각 따로 떠났다.
주 저본 이문: 買 (大) / 賣 (宋·元) — 본문은 大正 買. 各自別去의 自는 대조가 아니라 「각각」의 일부라 흡수. 誓願은 「서원」.
「是時,定光如來、至真、等正覺時到著衣持鉢,與比丘僧前後圍繞,入鉢摩大國。
「이때 정광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때가 이르러 옷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비구 승가에 앞뒤로 둘러싸여 발마대국에 들어갔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時到 (大) / 到時 (宋). 鉢摩大國은 음역 계열의 나라 이름이라 독음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比丘僧은 「비구 승가」, 前後圍繞는 「앞뒤로 둘러싸여」.
時,超術梵志遙見定光如來顏貌端政,見莫不歡,諸根寂靜,行不錯亂,有三十二相、八十種好。
때에 초술 범지가 멀리서 정광 여래의 얼굴 모습이 단정한 것을 보았는데, 보는 이마다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고, 모든 감관이 고요하며 행동에 어지러움이 없고, 서른두 가지 상과 여든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來 (大) / 來來 (宋·元·明); 端政 (大) / 端正 (宋·元·明) — 본문은 大正 端政을 「단정」으로 읽었다. 莫不歡의 莫은 금지가 아니라 부정 대명사(「~하지 않는 이 없다」). 三十二相·八十種好는 숫자 그대로 옮겼다(慧琳 음의 0471b03·0471b05가 다른 경전 설명을 가리킬 뿐 이 경의 내용을 주지 않는다). 有는 갖춤을 서술하는 존재.
猶如澄水無有穢濁,光明徹照,無所罣礙。
마치 맑은 물에 더럽고 흐린 것이 없는 것 같고, 광명이 환히 비추어 막히는 것이 없었다.
주 猶如는 비유. 無所罣礙의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로 풀었다(「막히는 것이 없다」). 慧琳 음의 罣礙: 罣=網礙, 礙=止(0358c16).
亦如寶山,出諸山上。
또한 보배 산이 여러 산 위로 솟은 것 같았다.
주 亦은 앞 비유에 이은 둘째 비유라 「또한」을 세웠다. 諸는 「여러」.
見已,便發歡喜心,於如來所持此五莖華,至定光如來所。
보고 나서 곧 기쁜 마음을 내어, 여래 계신 곳을 향해 이 다섯 줄기 꽃을 가지고 정광 여래가 계신 곳에 이르렀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於如來所持此五莖華에서 於…所는 「~ 있는 곳을 향해」, 莖은 줄기 단위. 앞의 如來와 뒤의 定光如來가 같은 분인지 한문이 말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到已,在一面住。
이르고 나서 한쪽에 머물렀다.
주 在一面住는 「한쪽 면에 머물렀다」. 到已는 완료 접속.
「時,超術梵志白定光佛言:『願見採受,設世尊今不授決者,便當於此處斷其命根,不願此生。』
「때에 초술 범지가 정광 부처님께 사뢰어 말했다. 『원컨대 꽃을 받아 주십시오. 만약 세존께서 지금 결정을 내려 주지 않으시면, 곧 이 자리에서 그 목숨의 뿌리를 끊겠으며, 이 생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 定光佛과 世尊으로 달리 쓴다.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둘 다 확정역: 부처님·세존). 저본 이문: 設 — 大正 원문은 說, CBETA가 設로 교감했다(교감주 add: 設【CB】【麗-CB】, 說【大】). 본문은 현 저본 設. 授決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어 「결정을 내려 줌」으로 옮겼다 — 決이 장래의 판정(수기)임을 본문에 들이지 않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命根은 「목숨의 뿌리」. 청자가 윗사람이라 존댓말로 통일. 當은 의지의 어미 「-겠다」.
爾時,世尊告曰:『梵志!不可以此五莖華授無上等正覺。』
그때 세존께서 이르셨다. 『범지여! 이 다섯 줄기 꽃으로 위없는 바르게 깨달음을 줄 수 없다.』
주 世尊은 확정역. 無上等正覺은 확정 술어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 사람을 가리키는 칭호)의 자리가 아니라 추상적 「깨달음」으로 읽혀, 확정 문자열이 이 좌표에 그대로 서지 않는다 [불확실:확정역_오적중]. 붓다의 발화는 평서.
梵志白言:『願世尊與我說菩薩所行法!』定光佛告曰:『菩薩所行,無所愛惜。』
범지가 사뢰어 말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에게 보살이 행하는 법을 말해 주십시오!』 정광 부처님이 일러 말했다. 『보살이 행하는 것은 아끼는 것이 없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菩薩은 한국 정착어 「보살」(표는 의역이나 정형구 행이 있어 정착형 사용) [불확실:확정역_부재]. 定光佛과 世尊이 한 좌표 안에서 같은 분을 가리킨다(0599a19.1과 같은 한자 흔들림). 無所愛惜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앞 좌표(0599a07.1)의 無有愛惜과 한문 형태가 다르나(無有 / 無所) 같은 「아끼는 것이 없다」로 적었다.
「爾時,梵志便說偈言:
「그때 범지가 곧 게송을 말했다.
주 저본 이문: 偈言 (大) / 此偈 (宋·元·明). 본문은 大正 「게송을 말했다」.
「『不敢以父母,持施與外人;
「『감히 부모를 가져다 바깥 사람에게 베풀지 못하며;
주 게송 행을 유지했다. 不敢以…持施與는 「감히 …를 가져다 베풀지 못한다」. 以는 수단 조사가 아니라 持와 이어지는 「가져다」에 흡수.
諸佛真人長,亦復不敢施。
모든 부처님과 진인과 어른도 또한 다시 감히 베풀지 못한다;
주 諸佛真人長의 끊음이 둘 이상 가능하다(「부처님들·진인·어른」 / 「부처님들과 진인의 어른」) [불확실:구두·분절]. 真人은 慧琳 음의(0497c07)에 阿羅漢의 다른 이름이라 하나 후대 주석이므로 인용만 하고 본문은 「진인」으로 두었다. 亦復는 앞 행의 부모에 이은 것이라 「또한 다시」를 세웠다.
日月周行世,此二不可施;
해와 달이 세상을 돌며 다니니, 이 둘은 베풀 수 없다;
주 日月周行世는 「해와 달이 세상을 두루 다닌다」. 不可施의 可는 가능.
餘者盡可施,意決無有難。』
나머지는 모두 베풀 수 있으니, 뜻이 정해져 어려움이 없다.』
주 餘者는 「나머지 것」. 無有難의 有는 존재 부정이라 「없다」로 흡수.
「爾時,定光佛復以此偈報梵志曰:
「그때 정광 부처님이 다시 이 게송으로 범지에게 답해 말했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復는 앞서 범지가 게송을 읊은 데 이은 응답이라 「다시」.
「『如汝所說施,亦不如來言;
「『네가 말한 베풂 같은 것은 또한 여래의 말과 같지 않다;
주 如汝所說施의 如는 「~ 같은 것」, 亦不如來言의 如는 「~와 같다」. 한 행에 같은 글자가 두 번 다른 쓰임으로 선다. 亦은 앞 행에서 꺼낸 비교를 부정으로 받는 자리라 「또한」을 세웠다.
當忍億劫苦,施頭身耳目。
억 겁의 괴로움을 참고, 머리와 몸, 귀와 눈을 베풀어야 한다;
주 當은 의무의 어미 「-야 한다」가 진다. 億劫은 숫자 그대로.
妻子國財寶,車馬僕從人;
아내와 아이, 나라와 재물과 보배, 수레와 말과 하인과 따르는 사람까지;
주 앞 행(0599b02.1)에서 이어져 베풀 대상이 된다. 妻子는 「아내와 아이」. 이 행에는 동사가 없고 앞 행의 施가 걸린다.
設能堪與者,今當授汝決。』
만약 줄 수 있는 이라면 지금 너에게 결정을 내려 주겠다.』
주 設…者는 가정, 能堪與의 能은 「수 있다」가 진다(堪과 겹쳐 하나로 흡수). 當은 어미 「-겠다」. 授決은 0599a19.1과 같게 「결정을 내려 주다」.
「爾時,摩納復說此偈:
「그때 마납이 다시 이 게송을 말했다:
주 같은 사람(초술 범지)을 이 좌표에서 摩納으로 쓴다. 한역이 같은 인물에 다른 칭호를 쓴다. 摩納은 한자대역 표에 音義 혼합으로 분류되나 慧琳 음의(0413a09)에 摩納婆의 음역(「年少淨行」)이라 하여 독음(마납)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大山熾如火,億劫堪頂戴;
「『큰 산이 불처럼 타올라도 억 겁을 머리에 이고 견딜 수 있어;
주 熾如火의 如는 비유. 堪頂戴의 堪은 「견딜 수 있다」, 頂戴는 「머리에 이다」(慧琳 음의 0430c10: 在首曰戴).
不能壞道意,唯願時授決。』
도의 뜻을 무너뜨릴 수 없으니, 오직 때맞춰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 道意는 「도의 뜻」. 能은 「수 있다」가 진다. 唯는 원망을 한정하는 뜻이 실려 「오직」을 세웠다. 청자가 윗사람이라 존댓말. 時는 「때맞춰」.
「爾時,定光如來默然不語。
「그때 정광 여래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默然不語의 不語는 표에 의역이라 「말하지 않았다」.
時,彼梵志手執五莖華,右膝著地,散定光如來,並作是說:『持是福祐,使將來世當如定光如來、至真、等正覺,而無有異!』即自散髮在于淤泥。
때에 저 범지가 손에 다섯 줄기 꽃을 쥐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정광 여래에게 뿌리며, 아울러 이렇게 말했다. 『이 복으로 장래 세상에 정광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과 같게 하여 다름이 없게 하소서!』 곧 머리카락을 풀어 진흙 위에 있게 했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두 곳; 持 (大) / 特 (宋). 福祐는 慧琳 음의(0336b21): 祐=助, 福助. 使…當如는 사역 「-게 하여」와 미래의 당위 어미가 겹쳐 「같게 하여」로 흡수. 自散髮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 在于淤泥는 「진흙 위에 있게 했다」(淤泥=水中青泥, 慧琳 0350b07).
『若如來授我決者,便當以足蹈我髮上過。』
『만약 여래가 나에게 결정을 내려 주신다면, 곧 발로 내 머리카락 위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주 若…者는 가정 어미가 진다. 當은 어미. 以足은 수단이라 「발로」. 청자가 윗사람이라 존댓말로 통일. 「밟고 지나가십시오」는 요청의 어미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 서술문(「지나갈 것이다」)일 수도 있다.
「比丘當知:爾時,定光如來觀察梵志心中所念,便告梵志曰:『汝將來世當作釋迦文佛、如來、至真、等正覺。』
「비구들이여, 알라. 그때 정광 여래가 범지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살펴, 곧 범지에게 말했다. 『너는 장래 세상에 석가문 부처님,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될 것이다.』
주 저본 이문: 定光 (大) / 錠光 (元·明). 觀察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어 「살피다」. 釋迦文佛의 釋迦文은 慧琳 음의(0485b20)에 釋迦牟尼의 약칭이라 하나 후대 주석이므로 인용만 한다. 한역자가 소리로 옮긴 이름이라 독음(석가문)하고 佛은 확정역 부처님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붓다(정광 여래)의 발화는 평서.
「時,超術梵志有同學,名曇摩留支,在如來邊,見定光佛授超術梵志決,又足蹈髮上。
「때에 초술 범지에게 동학이 있었는데, 이름은 담마류지였다. 여래 곁에 있으면서 정광 부처님이 초술 범지에게 결정을 내려 주고 또 발로 머리카락 위를 밟는 것을 보았다.
주 저본 이문: 時 (大) / 爾時 (宋·元·明); 定光 (大) / 錠光 (元·明). 曇摩留支는 음역(한자대역 표)이라 독음(담마류지). 同學은 「동학」(함께 배운 이). 在如來邊의 如來와 見定光佛의 定光佛은 같은 분이나 한역이 달리 부른다 — 둘 다 확정역이 있다(여래·부처님).
見已,便作是說:『此禿頭沙門何忍,乃舉足蹈此清淨梵志髮上?
보고 나서 곧 이렇게 말했다. 『이 머리 깎은 사문이 어찌 차마 발을 들어 이 깨끗한 범지의 머리카락 위를 밟는가?
주 沙門은 음역(한자대역 표)이라 독음(사문, 한국 정착형과 같다). 清淨은 표에 의역(팔리 Sobhavatī는 DA 도시 이름으로 동형이의 경고가 붙었으나 이 좌표에서는 梵志를 꾸미는 형용)이라 「깨끗한」. 何忍은 「어찌 차마」, 乃는 「이에」.
此非人行!』」
이는 사람의 행이 아니다!』」
주 끝의 」는 0599b15.1에서 시작한 붓다 인용을 닫는다.
佛告諸比丘:「爾時耶若達梵志者,豈異人乎?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그때 야약달 범지라는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주 佛은 확정역(부처님). 耶若達은 음역으로 독음(야약달). 앵커가 耶를 의문종결로, 若을 가정으로 표시했으나 이름 안의 글자다. 豈異人乎는 반문. 붓다의 발화는 평서.
莫作是觀。
이렇게 보지 말라.
주 莫은 금지(「-지 말라」). 作是觀은 「이렇게 보다」로 풀었다.
所以然者,爾時耶若達者,今白淨王是。
그러한 까닭은, 그때의 야약달은 지금의 희고 깨끗한 왕이다.
주 白淨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어(팔리 Upavāna는 MA 동형이의 경고가 붙었다) 뜻으로 「희고 깨끗한」. 한국 불교계에서 흔히 정반왕으로 부르는 인물과 겹쳐 보이나 본문에 들이지 않는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耶若達의 耶·若은 이름 안의 글자다(앵커의 耶 의문종결·若 가정 표시는 해당 없음).
爾時八萬四千梵志上坐者,今提婆達兜身是也。
그때 팔만사천 범지의 윗자리 앉은 이는 지금의 제바달두 몸이 그것이다.
주 저본 이문: 身 있음 (大) / 없음 (宋·元·明). 본문은 大正대로 身을 옮겼다. 提婆達兜는 음역(한자대역 표)이라 독음(제바달두; 慧琳 음의 0820b02: 達兜=提婆達多). 也는 판단종결이라 흡수.
時超術梵志者,即我身是也。
때에 초술 범지라는 이는 곧 내 몸이 그것이다.
주 저본 이문: 身 있음 (大) / 없음 (宋·元·明). 즉(即)은 동일 지시의 뜻이 실려 「곧」.
是時梵志女賣華者,今瞿夷是也。
이때 꽃을 판 범지의 딸은 지금의 구이가 그것이다.
주 瞿夷는 음역(한자대역 표)이라 독음(구이). 慧琳 음의(0397c02)에 羅侯羅母의 이름이라 하나 후대 주석이라 인용만 한다.
爾時祠主者,今執杖梵志是也。
그때 제사의 주인은 지금의 지팡이를 쥔 범지가 그것이다.
주 祠主는 「제사의 주인」. 執杖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어 「지팡이를 쥔」.
爾時曇摩留支,口所造行,吐不善響,今曇摩留支是也。
그때 담마류지가 입으로 지은 행으로 좋지 않은 소리를 토했는데, 지금의 담마류지가 그것이다.
주 口所造行은 「입으로 지은 행」(所를 관형절로 풀었다). 吐不善響은 「좋지 않은 소리를 토했다」. 이 구간 앞쪽 내용은 알 수 없다 — 어떤 일을 가리키는지 이 구간 밖 문맥이 필요하다 [불확실:저본_근거부족].
然復曇摩留支無數劫中恒作畜生,最後受身在大海作魚,身長七百由旬,從彼命終,來生此間,與善知識從事,恒親近在善知識,習諸善法,根門通利。
그러나 다시 담마류지는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늘 축생이 되었고, 마지막에 몸을 받아 큰 바다에서 물고기가 되었는데 몸의 길이가 칠백 유순이었다.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이곳에 와 태어나, 좋은 벗과 함께 일하며 늘 좋은 벗을 가까이하여 여러 좋은 법을 익히니, 감관의 문이 통하고 날카로웠다.
주 저본 이문: 저본 [*] 표기 (大·CBETA 결자 표시); 在 있음 (大) / 없음 (宋·元·明). 본문은 大正대로 「늘 좋은 벗을 가까이」에 在를 흡수했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善知識은 표에 의역으로 분류되어 「좋은 벗」(팔리 Kallavālamutta-gāma는 지명이라 동형이의로 보인다). 由旬은 표에 音義 혼합이나 단위 이름이라 한국 정착형 「유순」(慧琳 음의 0484a15 참조). 然復은 「그러나 다시」. 根門通利는 「감관의 문이 통하고 날카롭다」.
以此因緣故,我言:『久來此間。』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와 있다』고 말했다.
주 以此因緣故는 「이러한 인연 때문에」. 久來此間은 「오래전부터 이곳에」로 풀었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 이 구간 밖 문맥(붓다가 앞서 한 말)이 필요하다.
曇摩留支亦復自陳:『如是,世尊!久來此間。』
담마류지도 또한 다시 스스로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오래전부터 이곳에 와 있습니다.』
주 亦復는 붓다의 말에 이은 호응이라 「또한 다시」를 세웠다. 自陳의 自는 대조가 없어 흡수하되 陳은 「말씀드리다」. 청자가 세존이라 존댓말.
是故,諸比丘!常當修習身、口、意行。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늘 몸과 입과 뜻의 행을 닦고 익혀야 한다.
주 是故는 「그러므로」. 常當은 「늘 …해야 한다」(當은 어미가 진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처럼,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워야 한다.」
주 如是는 앞 말을 받는 「이처럼」. 當作是學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 정형구 표의 `亦如是`는 이 좌표에 없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聞佛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佛은 확정역(부처님). 歡喜奉行은 경 끝의 맺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