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오)
주 경 번호 표지(제목). 증언(팔리·산스크리트)이 투입되지 않아 대응은 미대응(unaligned)으로 둔다. 「없음확인」이 아니라 아직 안 본 것이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한문 개경 정형구 `聞如是`(이 아함 전권 453회, 이 경 1회). 한문에는 주어 `我`가 없으므로 본문에 「나는」을 세우지 않았다. 앵커 如×1은 정형구 속 `如是`로 보아 「이와 같이」로 옮겼다. 증언 미투입.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같은 경 다음 좌표(0594c21.1)에서는 `世尊`(확정역 「세존」)이 쓰여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舍衛(정착어 사위): 사위는 코살라의 도성으로, 음의(慧琳 0367c24)는 「室羅伐悉底… 此譯云聞者城」, 법경경은 「聞物國」으로 옮긴다고 전한다(들을 만한 것이 있는 땅이라는 뜻의 풀이). 전거 대장은 팔리형 Sāvatthī, 당대 범어형 śravasthi를 함께 싣는다(⚠다른 부 DA의 대역) — 두 계통이 함께 서므로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 대역표가 「보류」로 올린 5자 덩어리라서 이름인지 먼저 가렸다. 慧琳 0368a03은 祇樹를 「祇陀(太子)가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해 줄여 부른 말」로, 0368a05는 給孤獨을 「阿那陀… 의역, 친속 없는 이를 구제하기를 맹세한 큰 부호의 호칭」으로 풀이한다. 곧 「기타 태자의 숲 +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이 뜻이다.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을 썼으나 의역으로 풀 수도 있는 자리라서 유형 판정을 남긴다. 팔리 대응 후보(Jetavana, Anāthapiṇḍika)는 전거 대장 기준이며 증언 본문은 아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爾時,世尊告諸比丘:「有此二法,令人無有智慧。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법이 사람에게 지혜가 없게 한다.
주 `世尊`은 [구속] 확정역 「세존」, `比丘`는 「비구」. 앞뒤 좌표(0.3, 0594c27.2)에서는 `佛`이 쓰이며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앵커: `令`은 사역이라 「-게 한다」로 옮겼다(令人無有智慧 → 사람에게 지혜가 없게 한다). `有此二法`의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기보다 뒤 구절의 주어를 세우는 자리로 보아 「이 두 법이」로 주어화하고 「있어」를 붙이지 않았다. `諸`는 복수이나 「비구들」로 한 번만 반영했다. 사전 二法 ①: 이 경 6좌표 외 증일아함 22경에서 「有此二法」 꼴로 쓰인다.
云何為二法?
무엇이 두 법인가?
주 `云何`는 의문사구라 어미 의문형이 지므로 「무엇이」 하나로 옮기고 `為`는 별도로 세우지 않았다(`為二法` = 두 법이 되는가).
不喜問勝人,但貪睡眠無精進意。
뛰어난 사람에게 묻기를 기뻐하지 않고, 잠과 졸음을 탐하여 정진하는 뜻이 없는 것이다.
주 `但`은 한정 뜻이 아니라 앞 절에 이은 접속 기능으로 보아 흡수했다. `睡眠`은 대역표(의역)에 따라 음독하지 않고 뜻으로 「잠과 졸음」이라 옮겼다(이 경 2곳 통일). 음의(慧琳 0323b10): 睡는 앉아 조는 것, 眠은 눕는 것. 전거 대장의 팔리 후보 Thīnamiddha는 ⚠다른 부(SA)의 대역이며 증언 본문이 아니다. `勝人`은 「나은/뛰어난 사람」으로 읽었다. `貪`은 사전 貪 ①에서 이 경 외에도 「貪…」 꼴 용례가 보인다. `精進`은 「정진」, `意`는 「뜻」(사전 意 ①: 증일아함 701회, 이 경 2곳).
是謂,比丘!有此二法,令人無有智慧。
이를 일러 말한다, 비구여! 이 두 법이 사람에게 지혜가 없게 한다.
주 `是謂`는 결론 표지로 「이를 일러 말한다」로 옮겼다. `比丘`는 단수 호격으로 쓰여 「비구여」로 했다. 앞 좌표 0594c21.1의 「이 두 법이 사람에게 지혜가 없게 한다」와 한문이 같은 사안이나 사유를 지어내지 않고 한문대로 옮겼다. 앵커 `令`·`有`는 앞과 같이 처리.
復有二法,令人成大智慧。
다시 두 법이 사람을 큰 지혜를 이루게 한다.
주 `復`은 앞 단락과의 반복·대비를 뜻하는 「다시」로 세웠다. `令人成大智慧`는 사역 「-게 한다」(사람이 큰 지혜를 이루게 한다). `大智慧`는 한 덩어리로 보아 「큰 지혜」로 옮겼다(사전 大智 ①·慧 ①: 증일아함 3경·22경에 한정된 쓰임). `有二法`의 `有`는 주어화.
云何為二法,好問他義,不貪睡眠有精進意。
무엇이 두 법인가? 다른 이의 뜻을 묻기를 좋아하고, 잠과 졸음을 탐하지 않아 정진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주 저본 이문: `為`가 【宋】【元】【明】에 없다(교감주 〔為〕-【三】). 어느 쪽이든 「무엇이 두 법인가」로 뜻이 같아 본문은 대정본을 따랐다. `他義`는 앞 좌표의 「勝人에게 묻다」와 대를 이루는 자리인데 `他`가 `自`와 짝을 이루지 않으므로 「남」을 강조하지 않고 「다른 이의」로 풀었다. `他義`가 「다른 이의 뜻」인지 「다른 이에게 뜻을(을 두고)」인지는 한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有精進意`의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로 보아 「정진하는 뜻이 있는」으로 살렸다(앞의 `無精進意`와 짝).
是謂,比丘!有此二法,令人有智慧,當學遠離惡法。
이를 일러 말한다, 비구여! 이 두 법이 사람에게 지혜가 있게 하니, 악한 법을 멀리 떠나기를 배우라.
주 저본 이문: `學`이 【宋】【元】【明】에 없다(교감주 〔學〕-【三】). 이 경우 「當遠離惡法」이 되어 「멀리 떠나라」로 읽힌다. 대정본을 따라 `學`을 살렸다. `當`은 당위·미래라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遠離`는 「멀리 떠나다」, `惡法`은 「악한 법」(사전 遠離 ①: 증일아함 40회, 「當學遠離…」 꼴 용례가 다수). `令人有智慧`는 사역.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當作是學`은 `當`이 어미로 흡수되어 「이렇게 배우라」(붓다의 발화는 평서·명령의 평어). `如是`는 직전 말씀을 받는 「이와 같이」. `諸比丘`는 「비구들이여」.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여기서는 `佛`(확정역 「부처님」)이고 0594c21.1에서는 `世尊`(「세존」)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앵커 `所說`의 `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정형 종결구(사전 歡喜 ①: 증일아함 451경 중 450경에서 「所說 歡喜 奉行」)로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