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evijjasuttaṃ
13. 세 베다에 밝은 이 경
518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오백 명쯤 되는 큰 비구 승단과 함께 꼬살라 지방을 돌아다니셨다. 그러다 꼬살라 사람들의 바라문 마을인 마나사까따에 이르셨다. 세존께서는 마나사까따 북쪽, 아찌라와띠 강가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lesu cārikaṃ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pañcamattehi bhikkhusatehi yena manasākaṭaṃ nāma kosalānaṃ brāhmaṇagāmo tadavasari.
한때 세존께서 꼬살라에서 편력하시다가,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오백 명쯤 되는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 사람들의 바라문 마을인 마나사까따라는 곳에 이르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ra sudaṃ bhagavā manasākaṭe viharati uttarena manasākaṭassa aciravatiyā nadiyā tīre ambavane.
그곳 마나사까따에서 세존께서는 마나사까따의 북쪽, 아찌라와띠 강 기슭 망고 숲에 머무셨다.
519
그 무렵 이름 높고 부유한 바라문들이 여럿 마나사까따에 살고 있었다.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이야 바라문이 그들이다. 그 밖에도 이름 높고 부유한 바라문들이 더 있었다.[불확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bhiññātā abhiññātā brāhmaṇamahāsālā manasākaṭe paṭivasanti, seyyathidaṃ –
그때 이름나고 이름난 부유한 바라문들이 여럿 마나사까따에 살고 있었으니, 이러하다[불확실]
불확실 —
caṅkī brāhmaṇo tārukkho brāhmaṇo pokkharasāti brāhmaṇo jāṇusoṇi brāhmaṇo todeyyo brāhmaṇo aññ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brāhmaṇamahāsālā.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이야 바라문, 그리고 다른 이름나고 이름난 부유한 바라문들이다.
520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라는 두 바라문 청년이 산책 삼아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 옳은 길과 그른 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와셋타 청년이 말했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일세.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네.” 바라드와자 청년도 말했다. “따룩카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일세.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네.” 와셋타 청년은 바라드와자 청년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바라드와자 청년도 와셋타 청년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Atha kho vāseṭṭhabhāradvājānaṃ māṇavānaṃ jaṅghavihāraṃ anucaṅkamantānaṃ anuvicarantānaṃ maggāmagge kathā udapādi.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두 청년이 다리를 풀며 이리저리 거닐고 이리저리 다닐 적에, 길과 길 아님을 두고 이야기가 일어났다.
Atha kho vāseṭṭho māṇavo evamāha –
그때 와셋타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pokkharasāti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뽁카라사띠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Bhāradvājopi māṇavo evamāha –
바라드와자 청년도 이렇게 말했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tārukkhe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따룩카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Neva kho asakkhi vāseṭṭho māṇavo bhāradvājaṃ māṇavaṃ saññāpetuṃ, na pana asakkhi bhāradvājo māṇavopi vāseṭṭhaṃ māṇavaṃ saññāpetuṃ.
와셋타 청년은 바라드와자 청년을 납득시킬 수 없었고, 바라드와자 청년 또한 와셋타 청년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521
그러자 와셋타 청년이 바라드와자 청년을 불러 말했다. “바라드와자여, 사까 족의 아들로서 사까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께서 지금 마나사까따 북쪽, 아찌라와띠 강가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시네. 그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는 이런 좋은 명성이 널리 퍼져 있다네. ‘그분은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밝은 지혜와 바른 행실을 갖추셨고, 좋은 길을 가셨으며, 세상을 아신다. 위없는 분이시고, 사람을 길들이는 길잡이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깨달은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바라드와자여, 우리 사문 고따마께 가 보세. 가서 이 일을 여쭤 보세. 그분이 설명해 주시는 대로 우리가 받아 지니도록 하세.” “좋네.” 바라드와자 청년이 와셋타 청년에게 대답했다.[불확실]
Atha kho vāseṭṭho māṇavo bhāradvājaṃ māṇavaṃ āmantesi –
그때 와셋타 청년이 바라드와자 청년을 불렀다[불확실]
불확실 —
‘‘ayaṃ kho, bhāradvāja, samaṇ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manasākaṭe viharati uttarena manasākaṭassa aciravatiyā nadiyā tīre ambavane.
“바라드와자여, 사꺄의 아들로서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마나사까따의 북쪽, 아찌라와띠 강 기슭 망고 숲에 머물고 있다.
Taṃ kho pana bhavantaṃ gotamaṃ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그 고따마 존자께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다: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고, 사람을 길들이는 마부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yāma, bho bhāradvāja, yena samaṇo gotamo tenupasaṅkamissāma;
가자, 여보게 바라드와자여, 사문 고따마가 있는 곳으로 가자.
upasaṅkamitvā etamatthaṃ samaṇaṃ gotamaṃ pucchissāma.
가서 이 일을 사문 고따마에게 물어보자.
Yathā no samaṇo gotamo byākarissati, tathā naṃ dhāressāmā’’ti.
사문 고따마가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대로, 그대로 그것을 받아 지니자.”
‘‘Evaṃ, bho’’ti kho bhāradvājo māṇavo vāseṭṭhassa māṇavassa paccassosi.
“그렇게 하자, 여보게” 하고 바라드와자 청년은 와셋타 청년에게 대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길과 길 아님에 대한 이야기Maggāmaggakathā
522
그리하여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두 청년은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와셋타 청년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는 산책하며 이리저리 거닐다가 옳은 길과 그른 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자 바라드와자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룩카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일로 저희 사이에 다툼이 있고, 논쟁이 있고, 의견이 갈립니다.”[불확실]
Atha kho vāseṭṭhabhāradvājā māṇa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두 청년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ṃsu.
다가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vāseṭṭh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와셋타 청년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dha, bho gotama, amhākaṃ jaṅghavihāraṃ anucaṅkamantānaṃ anuvicarantānaṃ maggāmagge kathā udapādi.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희가 다리를 풀며 이리저리 거닐고 이리저리 다닐 적에, 길과 길 아님을 두고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Ahaṃ evaṃ vadāmi –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pokkharasāti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뽁카라사띠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Bhāradvājo māṇavo evamāha –
바라드와자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tārukkhe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따룩카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Ettha, bho gotama, attheva viggaho, atthi vivādo, atthi nānāvādo’’ti.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에 다툼이 있고, 논쟁이 있고, 서로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523
“와셋타여, 그러니까 그대는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그리고 바라드와자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지. ‘따룩카 바라문이 가르친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그렇다면 와셋타여, 그대들은 무엇을 두고 다투고, 무엇을 두고 논쟁하며, 무엇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가?”
‘‘Iti kira, vāseṭṭha, tvaṃ evaṃ vadesi –
“와셋타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렇게 말하고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pokkharasāti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뽁카라사띠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Bhāradvājo māṇavo evamāha –
바라드와자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지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yvāyaṃ akkhāto brāhmaṇena tārukkhen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 바라문 따룩카가 일러 준 이 길이 그것이다.’
Atha kismiṃ pana vo, vāseṭṭha, viggaho, kismiṃ vivādo, kismiṃ nānāvādo’’ti?
그렇다면 와셋타여, 그대들에게 무엇에 다툼이 있고, 무엇에 논쟁이 있고, 무엇에 서로 다른 주장이 있는가?”
524
“옳은 길과 그른 길을 두고서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따르바나 계통, 따잇띠리야 계통, 찬도가 계통, 바우리자 계통의 바라문들은 서로 다른 길을 말합니다. 그래도 그 길들은 모두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을이나 읍내 가까이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 길들은 모두 그 마을로 모입니다. 그처럼 이 바라문들도 서로 다른 길을 말하지만, 그 길들은 모두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불확실]
‘‘Maggāmagge, bho gotama.
“길과 길 아님에 대해서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ñcāpi, bho gotama, brāhmaṇā nānāmagge paññapenti, addhariyā brāhmaṇā tittiriyā brāhmaṇā chandokā brāhmaṇā bavhārijjhā brāhmaṇā, atha kho sabbāni tāni niyyānikā niyyan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이 여러 갈래 길을 일러 주기는 합니다 — 앗다리야 바라문들, 띳띠리야 바라문들, 찬도까 바라문들, 바브하릿자 바라문들이 그러합니다 — 그러나 그 길들은 모두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gāmassa vā nigamassa vā avidūre bahūni cepi nānāmaggāni bhavanti, atha kho sabbāni tāni gāmasamosaraṇāni bhavanti;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갈래 길이 많이 있더라도, 그 길들은 모두 마을로 모이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bho gotama, kiñcāpi brāhmaṇā nānāmagge paññapenti, addhariyā brāhmaṇā tittiriyā brāhmaṇā chandokā brāhmaṇā bavhārijjhā brāhmaṇā, atha kho sabbāni tāni niyyānikā niyyan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바로 이와 같이,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이 여러 갈래 길을 일러 주기는 합니다 — 앗다리야 바라문들, 띳띠리야 바라문들, 찬도까 바라문들, 바브하릿자 바라문들이 그러합니다 — 그러나 그 길들은 모두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와셋타 청년에게 캐물음Vāseṭṭhamāṇavānuyogo
525
“와셋타여, 그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끌어 준다’고 말합니다.”
‘‘Niyyantīti vāseṭṭha vadesi’’?
“‘이끌어 낸다’고 와셋타여, 그대는 말하는가?”
‘‘Niyyantīti, bho gotama, vadāmi’’.
“‘이끌어 냅니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말합니다.”
‘‘Niyyantīti, vāseṭṭha, vadesi’’?
“‘이끌어 낸다’고, 와셋타여, 그대는 말하는가?”
‘‘Niyyantīti, bho gotama, vadāmi’’.
“‘이끌어 냅니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말합니다.”
‘‘Niyyantīti, vāseṭṭha, vadesi’’?
“‘이끌어 낸다’고, 와셋타여, 그대는 말하는가?”
‘‘Niyyantī’’ti, bho gotama, vadāmi’’.
“‘이끌어 냅니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와셋타여, 삼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와셋타여, 그 바라문들의 스승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와셋타여, 스승의 스승 가운데는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와셋타여, 칠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계보를 통틀어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ṃ pana, vāseṭṭha,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abrāhmaṇ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ti?
“그렇다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바라문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ṃ pana, vāseṭṭha,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ācariy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ti?
“그렇다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스승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ṃ pana, vāseṭṭha,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ācariyapācariy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ti?
“그렇다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스승의 스승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ṃ pana, vāseṭṭha,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yāva sattamā ācariyāmahayugā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ti?
“그렇다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일곱째 대에 이르는 스승들의 계보에서 범천을 직접 본 이가 있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26
“그렇다면 와셋타여, 삼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에게는 옛 선인들이 있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전한 이들이다. 지금의 삼베다 바라문들은 그들이 노래하고 말하고 모아 둔 옛 만뜨라의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말한다. 이미 말해진 것을 다시 말하고, 이미 읊어진 것을 다시 읊는다. 그 선인들은 아따까, 와마까, 와마데와, 웨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캇사빠, 박구이다. 그들도 이렇게 말했던가?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우리는 본다.’”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Kiṃ pana, vāseṭṭha, yep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pubbakā isayo mantānaṃ kattāro mantānaṃ pavattāro, yesamidaṃ etarahi tevijjā brāhmaṇā porāṇaṃ mantapadaṃ gītaṃ pavuttaṃ samihitaṃ, tadanugāyanti, tadanubhāsanti, bhāsitamanubhāsanti, vācitamanuvācenti, seyyathidaṃ –
“그렇다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옛 선인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만뜨라를 전한 이들 — 지금의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그들의 오래된 만뜨라 구절, 곧 노래되고 읊어지고 모아진 것을 그대로 따라 노래하고, 그대로 따라 읊고, 말해진 것을 따라 말하고, 외게 한 것을 따라 외게 하거니와 — 이러하다 —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다.
Tepi evamāhaṃsu –
그들도 이렇게 말했는가 —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ti?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는 이것을 본다 —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편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라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27
“와셋타여, 그렇다면 삼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들의 스승 가운데도 없고, 스승의 스승 가운데도 없다. 칠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계보 가운데도 없다. 옛 선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전한 이들이다. 지금의 삼베다 바라문들은 그들이 노래하고 말하고 모아 둔 옛 만뜨라의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말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읊는다. 그 선인들은 아따까, 와마까, 와마데와, 웨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캇사빠, 박구이다.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우리는 본다.’ 그런데도 바로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 그것과 함께하는 길을 우리는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Iti kira, vāseṭṭha, n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abrāhmaṇ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
“와셋타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바라문은 한 사람도 없다.
N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ācariy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스승은 한 사람도 없다.
N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ācariyapācariy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본 스승의 스승은 한 사람도 없다.
N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yāva sattamā ācariyāmahayugā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 가운데 일곱째 대에 이르는 스승들의 계보에서 범천을 직접 본 이는 아무도 없다.
Ye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pubbakā isayo mantānaṃ kattāro mantānaṃ pavattāro, yesamidaṃ etarahi tevijjā brāhmaṇā porāṇaṃ mantapadaṃ gītaṃ pavuttaṃ samihitaṃ, tadanugāyanti, tadanubhāsanti, bhāsitamanubhāsanti, vācitamanuvācenti, seyyathidaṃ –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옛 선인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만뜨라를 전한 이들 — 지금의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그들의 오래된 만뜨라 구절, 곧 노래되고 읊어지고 모아진 것을 그대로 따라 노래하고, 그대로 따라 읊고, 말해진 것을 따라 말하고, 외게 한 것을 따라 외게 하거니와 — 이러하다 —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tepi na evamāhaṃsu –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ti.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는 이것을 본다 —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편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라고.
Teva tevijjā brāhmaṇā evamāhaṃsu –
바로 그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했다 —
‘yaṃ na jānāma, yaṃ na passāma,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ma.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일러 준다.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
528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훌륭하구나, 와셋타여. 그런데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자기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와셋타여, 이를테면 장님들이 줄줄이 서로를 붙잡고 서 있다고 하자. 앞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뒷사람도 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꼭 그 장님의 줄과 같다. 앞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뒷사람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삼베다 바라문들의 이 말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이름뿐이고 알맹이가 없는 텅 빈 말일 뿐이다.”[불확실]
‘‘Sādhu, vāseṭṭha,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aṃ na jānanti, yaṃ na passanti,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ssanti.
“훌륭하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리라는 것[불확실]
불확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 — 그런 도리는 없다.
529
‘‘Seyyathāpi, vāseṭṭha, andhaveṇi paramparasaṃsattā purimopi na passati, majjhimopi na passati, pacchimopi na passati.
와셋타여, 마치 눈먼 이들이 줄지어 앞뒤로 서로 붙잡고 있어, 앞선 이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이도 보지 못하고, 뒤선 이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andhaveṇūpamaṃ maññ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bhāsitaṃ, purimopi na passati, majjhimopi na passati, pacchimopi na passati.
바로 이와 같이,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눈먼 이들의 줄과 같다고 나는 여긴다. 앞선 이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이도 보지 못하고, 뒤선 이도 보지 못한다.
Tesamidaṃ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bhāsitaṃ hassakaññeva sampajjati, nāmakaññeva sampajjati, rittakaññeva sampajjati, tucchakaññeva sampajjati.
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고, 이름뿐인 것이 될 뿐이고, 텅 빈 것이 될 뿐이고, 헛된 것이 될 뿐이다.
530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베다 바라문들도,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해와 달을 본다. 그들은 해와 달이 떠오르는 곳과 지는 곳을 향해 간청하고, 찬양하고, 합장하고 절하면서 그 둘을 따라 돈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삼베다 바라문들도,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해와 달을 봅니다. 그들은 해와 달이 떠오르는 곳과 지는 곳을 향해 간청하고, 찬양하고, 합장하고 절하면서 그 둘을 따라 돕니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passanti tevijjā brāhmaṇā candimasūriye, aññe cāpi bahujanā, yato ca candimasūriyā uggacchanti, yattha ca ogacchanti, āyācanti thomayanti pañjalikā namassamānā anuparivattan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달과 해를 보고, 달과 해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지 보며, 빌고 기리고 합장하여 절하며 따라 도는가?”
‘‘Evaṃ, bho gotama, passanti tevijjā brāhmaṇā candimasūriye, aññe cāpi bahujanā, yato ca candimasūriyā uggacchanti, yattha ca ogacchanti, āyācanti thomayanti pañjalikā namassamānā anuparivattantī’’ti.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달과 해를 보고, 달과 해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지 보며, 빌고 기리고 합장하여 절하며 따라 돕니다.”
531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베다 바라문들도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해와 달을 보고, 그것이 떠오르는 곳과 지는 곳을 향해 간청하고 찬양하고 합장하고 절하면서 따라 돈다. 그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이 해와 달과 함께하는 길을 이렇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해와 달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들은 해와 달을 보고 그것을 따라 돌면서도, 해와 달과 함께하는 길조차 가르치지 못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해와 달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이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yaṃ passanti tevijjā brāhmaṇā candimasūriye, aññe cāpi bahujanā, yato ca candimasūriyā uggacchanti, yattha ca ogacchanti, āyācanti thomayanti pañjalikā namassamānā anuparivattanti, pahonti tevijjā brāhmaṇā candimasūriy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desetuṃ –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달과 해를 보고, 달과 해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지 보며, 빌고 기리고 합장하여 절하며 따라 도는데,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달과 해와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줄 수 있는가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candimasūriyānaṃ sahabyatāy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달과 해와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Iti kira, vāseṭṭha, yaṃ passanti tevijjā brāhmaṇā candimasūriye, aññe cāpi bahujanā, yato ca candimasūriyā uggacchanti, yattha ca ogacchanti, āyācanti thomayanti pañjalikā namassamānā anuparivattanti, tesampi nappahonti candimasūriy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desetuṃ –
“와셋타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달과 해를 보고, 달과 해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지 보며, 빌고 기리고 합장하여 절하며 따라 도는데도, 그들조차 달과 해와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줄 수 없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candimasūriyānaṃ sahabyatāy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달과 해와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고.
532
“그러니 삼베다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그들의 스승 가운데도 없고, 스승의 스승 가운데도 없다. 칠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계보 가운데도 없다. 삼베다 바라문들에게는 옛 선인들이 있다. 그들은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전한 이들이다. 지금의 삼베다 바라문들은 그들이 노래하고 말하고 모아 둔 옛 만뜨라의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말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읊는다. 그 선인들은 아따까, 와마까, 와마데와, 웨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캇사빠, 박구이다.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우리는 본다.’ 그런데도 바로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 그것과 함께하는 길을 우리는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Iti pana na kira tevijjehi brāhmaṇehi brahmā sakkhidiṭṭho.
그런데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범천을 직접 본 일은 없다.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ap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yāva sattamā ācariyāmahayug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일곱째 대에 이르는 스승들의 계보에서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Ye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pubbakā isayo mantānaṃ kattāro mantānaṃ pavattāro, yesamidaṃ etarahi tevijjā brāhmaṇā porāṇaṃ mantapadaṃ gītaṃ pavuttaṃ samihitaṃ, tadanugāyanti, tadanubhāsanti, bhāsitamanubhāsanti, vācitamanuvācenti, seyyathidaṃ –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옛 선인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만뜨라를 전한 이들 — 지금의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그들의 오래된 만뜨라 구절, 곧 노래되고 읊어지고 모아진 것을 그대로 따라 노래하고, 그대로 따라 읊고, 말해진 것을 따라 말하고, 외게 한 것을 따라 외게 하거니와 — 이러하다 —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tepi na evamāhaṃsu –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ti.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는 이것을 본다 —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편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라고.
Teva tevijjā brāhmaṇā evamāhaṃsu –
바로 그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했다 —
‘‘yaṃ na jānāma, yaṃ na passāma,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ma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일러 준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라고.
533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훌륭하구나, 와셋타여. 그런데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자기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불확실]
‘‘Sādhu, vāseṭṭha,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aṃ na jānanti, yaṃ na passanti,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ssanti –
“훌륭하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리라는 것[불확실]
불확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 — 그런 도리는 없다.
고장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의 비유Janapadakalyāṇīupamā
534
“와셋타여,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이 지방 최고의 미인이 크샤트리아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평민 여인인지, 노예 계급 여인인지 그대는 아는가?’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이 지방 최고의 미인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느 집안 사람인지 그대는 아는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갈색인지 황금빛인지도 아는가? 어느 마을, 어느 읍내, 어느 도시에 사는지도 아는가?’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여인을 원하고 사랑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Seyyathāpi, vāseṭṭha, puriso evaṃ vadeyya –
와셋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
‘‘ahaṃ yā imasmiṃ janapade janapadakalyāṇī, taṃ icchāmi, taṃ kāmemī’’ti.
‘나는 이 고장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 그 여인을 원하고 그 여인을 바란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
‘여보시오,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바라는 그 고장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 그 여인을 그대는 아는가 —
khattiyī vā brāhmaṇī vā vessī vā suddī vā’’ti?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웻사 여인인지, 숫다 여인인지?’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
‘여보시오,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바라는 그 고장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 그 여인을 그대는 아는가 —
evaṃnāmā evaṃgottāti vā, dīghā vā rassā vā majjhimā vā kāḷī vā sāmā vā maṅguracchavī vāti, amukasmiṃ gāme vā nigame vā nagare vā’’ti?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라든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살빛이 검은지 거무스름한지 누르께한지, 어느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ṃ tvaṃ icchasi kāmesī’’ti?
‘여보시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 여인을 그대가 원하고 바라는가?’
Iti puṭṭho ‘‘āmā’’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535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536
“와셋타여, 그처럼 삼베다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그들의 스승 가운데도, 스승의 스승 가운데도 없다. 칠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계보 가운데도 없다. 삼베다 바라문들에게는 옛 선인들이 있다. 그들은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전한 이들이다. 지금의 삼베다 바라문들은 그들이 노래하고 말하고 모아 둔 옛 만뜨라의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말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읊는다. 그 선인들은 아따까, 와마까, 와마데와, 웨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캇사빠, 박구이다.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우리는 본다.’ 그런데도 바로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 그것과 함께하는 길을 우리는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na kira tevijjehi brāhmaṇehi brahmā sakkhidiṭṭho,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ap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바로 이와 같이, 와셋타여,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yāva sattamā ācariyāmahayug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일곱째 대에 이르는 스승들의 계보에서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Ye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pubbakā isayo mantānaṃ kattāro mantānaṃ pavattāro, yesamidaṃ etarahi tevijjā brāhmaṇā porāṇaṃ mantapadaṃ gītaṃ pavuttaṃ samihitaṃ, tadanugāyanti, tadanubhāsanti, bhāsitamanubhāsanti, vācitamanuvācenti, seyyathidaṃ –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옛 선인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만뜨라를 전한 이들 — 지금의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그들의 오래된 만뜨라 구절, 곧 노래되고 읊어지고 모아진 것을 그대로 따라 노래하고, 그대로 따라 읊고, 말해진 것을 따라 말하고, 외게 한 것을 따라 외게 하거니와 — 이러하다 —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tepi na evamāhaṃsu –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ti.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는 이것을 본다 —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편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라고.
Teva tevijjā brāhmaṇā evamāhaṃsu –
바로 그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했다 —
‘‘yaṃ na jānāma, yaṃ na passāma,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ma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일러 준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라고.
537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훌륭하구나, 와셋타여. 그런데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자기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불확실]
‘‘Sādhu, vāseṭṭha,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aṃ na jānanti, yaṃ na passanti,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ssanti –
“훌륭하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리라는 것[불확실]
불확실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 — 그런 도리는 없다.
사다리 비유Nisseṇīupamā
538
“와셋타여,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자.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가 오르려는 그 누각이 동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아는가? 높은지 낮은지 중간쯤인지도 아는가?’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그 누각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Seyyathāpi, vāseṭṭha, puriso cātumahāpathe nisseṇiṃ kareyya –
와셋타여, 마치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
pāsādassa ārohaṇāya.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ssa tvaṃ pāsādassa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si, jānāsi taṃ pāsādaṃ –
‘여보시오, 이 사람아, 그대가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그 누각, 그 누각을 그대는 아는가 —
puratthimāya vā disāya dakkhiṇāya vā disāya pacchimāya vā disāya uttarāya vā disāya ucco vā nīco vā majjhimo vā’’ti?
동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높은지 낮은지 중간인지?’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y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ssa tvaṃ pāsādassa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sī’’ti?
‘여보시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 누각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가?’
Iti puṭṭho ‘‘āmā’’ti vadeyya.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539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540
“와셋타여, 그처럼 삼베다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그들의 스승 가운데도, 스승의 스승 가운데도 없다. 칠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계보 가운데도 없다. 삼베다 바라문들에게는 옛 선인들이 있다. 그들은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전한 이들이다. 지금의 삼베다 바라문들은 그들이 노래하고 말하고 모아 둔 옛 만뜨라의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말하고, 다시 말하고, 다시 읊는다. 그 선인들은 아따까, 와마까, 와마데와, 웨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캇사빠, 박구이다.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우리는 본다.’ 그런데도 바로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 그것과 함께하는 길을 우리는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다.’ 와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분명히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정이 이렇다면 삼베다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na kira tevijjehi brāhmaṇehi brahmā sakkhidiṭṭho,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ācariyapācariyehi brahmā sakkhidiṭṭho, na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yāva sattamā ācariyāmahayugehi brahmā sakkhidiṭṭho.
“바로 이와 같이, 와셋타여,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스승의 스승들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고,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일곱째 대에 이르는 스승들의 계보에서도 범천을 직접 본 일이 없다.
Yepi kira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pubbakā isayo mantānaṃ kattāro mantānaṃ pavattāro, yesamidaṃ etarahi tevijjā brāhmaṇā porāṇaṃ mantapadaṃ gītaṃ pavuttaṃ samihitaṃ, tadanugāyanti, tadanubhāsanti, bhāsitamanubhāsanti, vācitamanuvācenti, seyyathidaṃ –
듣건대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옛 선인들, 만뜨라를 지은 이들이자 만뜨라를 전한 이들 — 지금의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그들의 오래된 만뜨라 구절, 곧 노래되고 읊어지고 모아진 것을 그대로 따라 노래하고, 그대로 따라 읊고, 말해진 것을 따라 말하고, 외게 한 것을 따라 외게 하거니와 — 이러하다 —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tepi na evamāhaṃsu –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밋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 그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ti.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는 이것을 본다 —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편에 있는지, 범천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라고.
Teva tevijjā brāhmaṇā evamāhaṃsu –
바로 그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했다 —
‘‘yaṃ na jānāma, yaṃ na passāma,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ma,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ā’’ti.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일러 준다.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라고.
541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nanu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훌륭하구나, 와셋타여. 그런데 그 삼베다 바라문들은 자기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 길이야말로 곧은 길이고 바로 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범천과 함께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불확실]
‘‘Sādhu, vāseṭṭha.
“훌륭하다, 와셋타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aṃ na jānanti, yaṃ na passanti, tassa sahabyatāya maggaṃ desessanti.
와셋타여, 세 베다에 밝은 바라문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것과 함께함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리라는 것 —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byatāyā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것만이 곧은 길이고, 이것이 곧바른 행로이며, 벗어나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함께함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 — 그런 도리는 없다.
아찌라와띠 강의 비유Aciravatīnadīupamā
542
바셋타여, 아찌라와띠강에 물이 가득 차서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넘실댄다고 해 보자. 그때 어떤 사람이 저쪽 기슭을 바라고 찾으며 건너가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그는 이쪽 기슭에 선 채 저쪽 기슭을 향해 외친다. "건너편 기슭이여, 이리 오라. 건너편 기슭이여, 이리 오라."[불확실]
‘‘Seyyathāpi, vāseṭṭha, ayaṃ aciravatī nadī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와셋타여, 예컨대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로 가득 차서 언저리까지 차오르고 까마귀가 마실 만하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pāratthiko pāragavesī pāragāmī pāraṃ taritukāmo.
그때 저편 기슭을 바라고, 저편 기슭을 찾고, 저편 기슭으로 가려 하고,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온다고 하자.
So orime tīre ṭhito pārimaṃ tīraṃ avheyya –
그는 이편 기슭에 서서 저편 기슭을 부른다 —
‘‘ehi pārāpāraṃ, ehi pārāpāra’’nti.
‘이편으로 오라, 저 건너편이여. 이편으로 오라, 저 건너편이여’ 하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543
바셋타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부르고 청하고 바라고 기뻐한다고 해서, 아찌라와띠강의 저쪽 기슭이 이쪽으로 오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api nu tassa purisassa avhāyanahetu vā āyācanahetu vā patthanahetu vā abhinandanahetu vā acir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orimaṃ tīraṃ āgaccheyy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부른 까닭으로, 빈 까닭으로, 바란 까닭으로, 기뻐한 까닭으로 아찌라와띠 강의 저편 기슭이 이편 기슭으로 오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44
바셋타여, 삼명 바라문들도 바로 그와 같다. 그들은 바라문을 바라문답게 만드는 법은 버렸다. 그리고 바라문답지 못하게 만드는 법을 받아 지니고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드라를 부른다. 소마를 부른다. 바루나를 부른다. 이사나를 부른다. 쁘라자빠띠를 부른다. 범천을 부른다. 마힛디를 부른다. 야마를 부른다." 바셋타여, 이런 삼명 바라문들이 아무리 부르고 청하고 바라고 기뻐한다 해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날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evamāhaṃsu –
“와셋타여, 이와 꼭 같이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 그 법들을 버린 채 지내고, 바라문을 만들지 못하는 법들, 그 법들을 받아 지닌 채 지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
‘‘indamavhayāma, somamavhayāma, varuṇamavhayāma, īsānamavhayāma, pajāpatimavhayāma, brahmamavhayāma, mahiddhimavhayāma, yamamavhayāmā’’ti.
‘우리는 인다를 부른다, 우리는 소마를 부른다, 우리는 와루나를 부른다, 우리는 이사나를 부른다, 우리는 빠자빠띠를 부른다, 우리는 브라흐마를 부른다, 우리는 마힛디를 부른다, 우리는 야마를 부른다’ 하고.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avhāyanahetu vā āyācanahetu vā patthanahetu vā abhinandanahetu 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brahmānaṃ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와셋타여, 그런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 그 법들을 버린 채 지내고, 바라문을 만들지 못하는 법들, 그 법들을 받아 지닌 채 지내면서, 부른 까닭으로, 빈 까닭으로, 바란 까닭으로, 기뻐한 까닭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545
바셋타여, 아찌라와띠강에 물이 가득 차서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넘실댄다고 해 보자. 그때 어떤 사람이 저쪽 기슭을 바라고 찾으며 건너가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그는 이쪽 기슭에서 단단한 쇠사슬에 두 팔을 뒤로 꺾인 채 꽁꽁 묶여 있다.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eyyathāpi, vāseṭṭha, ayaṃ aciravatī nadī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와셋타여, 예컨대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로 가득 차서 언저리까지 차오르고 까마귀가 마실 만하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pāratthiko pāragavesī pāragāmī pāraṃ taritukāmo.
그때 저편 기슭을 바라고, 저편 기슭을 찾고, 저편 기슭으로 가려 하고,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온다고 하자.
So orime tīre daḷhāya anduyā pacchābāhaṃ gāḷhabandhanaṃ baddho.
그런데 그는 이편 기슭에서 튼튼한 쇠사슬로 두 팔이 등 뒤로 단단히 결박되어 묶여 있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api nu so puriso aciravatiyā nadiyā orimā tīrā pārimaṃ tīraṃ gaccheyy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아찌라와띠 강의 이편 기슭에서 저편 기슭으로 가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46
바셋타여, 삼명 바라문들도 바로 그와 같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성스러운 이의 율에서는 쇠사슬이라고도 하고 속박이라고도 한다. 다섯이란 무엇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들이다. 바랄 만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귀엽고, 욕망을 일으키고 탐나게 하는 것들이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들, 코로 알 수 있는 냄새들, 혀로 알 수 있는 맛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들도 마찬가지다. 이것들도 모두 바랄 만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귀엽고, 욕망을 일으키고 탐나게 하는 것들이다. 바셋타여, 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성스러운 이의 율에서는 쇠사슬이라고도 하고 속박이라고도 한다. 삼명 바라문들은 이 다섯 가지에 집착하고 빠져들고 매달린다.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날 지혜도 없이 그것을 즐긴다. 바셋타여, 바라문을 바라문답게 만드는 법은 버리고 바라문답지 못하게 만드는 법은 받아 지니는 삼명 바라문들이 있다. 이들은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고 빠져들고 매달려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날 지혜도 없이 즐긴다. 욕망의 쇠사슬에 묶인 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리라는 것, 그럴 수는 없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pañcime kāmaguṇā ariyassa vinaye andūtipi vuccanti, bandhanantipi vuccanti.
“와셋타여, 이와 꼭 같이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은 성자의 율에서 쇠사슬이라고도 불리고 결박이라고도 불린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은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감각적 욕망과 맞물려 있고, 탐할 만한 것이다.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은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감각적 욕망과 맞물려 있고, 탐할 만한 것이다.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은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감각적 욕망과 맞물려 있고, 탐할 만한 것이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은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감각적 욕망과 맞물려 있고, 탐할 만한 것이다.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은 원할 만하고, 마음에 들고, 흡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감각적 욕망과 맞물려 있고, 탐할 만한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3:546.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ā ariyassa vinaye andūtipi vuccanti, bandhanantipi vuccanti.
“와셋타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은 성자의 율에서 쇠사슬이라고도 불리고 결박이라고도 불린다.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kāmaguṇe tevijjā brāhmaṇā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와셋타여,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에 묶이고 빠지고 푹 잠긴 채,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지혜로 그것들을 누린다.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pañca kāmaguṇe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ā kāmandubandhanabadd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brahmānaṃ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와셋타여, 그런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 그 법들을 버린 채 지내고, 바라문을 만들지 못하는 법들, 그 법들을 받아 지닌 채 지내면서,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가닥에 묶이고 빠지고 푹 잠긴 채,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지혜로 그것들을 누리면서, 감각적 욕망의 쇠사슬과 결박에 묶인 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547
바셋타여, 아찌라와띠강에 물이 가득 차서 까마귀가 앉아 마실 만큼 넘실댄다고 해 보자. 그때 어떤 사람이 저쪽 기슭을 바라고 찾으며 건너가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그는 이쪽 기슭에서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있다.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eyyathāpi, vāseṭṭha, ayaṃ aciravatī nadī pūrā udakassa samatittikā kākapeyyā.
“와셋타여, 예컨대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로 가득 차서 언저리까지 차오르고 까마귀가 마실 만하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pāratthiko pāragavesī pāragāmī pāraṃ taritukāmo.
그때 저편 기슭을 바라고, 저편 기슭을 찾고, 저편 기슭으로 가려 하고,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온다고 하자.
So orime tīre sasīsaṃ pārupitvā nipajjeyya.
그런데 그는 이편 기슭에서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api nu so puriso aciravatiyā nadiyā orimā tīrā pārimaṃ tīraṃ gaccheyy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아찌라와띠 강의 이편 기슭에서 저편 기슭으로 가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48
바셋타여, 삼명 바라문들도 바로 그와 같다. 이 다섯 가지 덮개를 성스러운 이의 율에서는 가림이라고도 하고, 덮개라고도 하고, 휘감음이라고도 하고, 칭칭 감음이라고도 한다. 다섯이란 무엇인가? 욕망의 덮개, 악의의 덮개, 해태와 혼침의 덮개, 들뜸과 후회의 덮개, 의심의 덮개이다. 바셋타여, 이 다섯 가지 덮개를 성스러운 이의 율에서는 가림이라고도 하고, 덮개라고도 하고, 휘감음이라고도 하고, 칭칭 감음이라고도 한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pañcime nīvaraṇā ariyassa vinaye āvaraṇātipi vuccanti, nīvaraṇātipi vuccanti, onāhanātipi vuccanti, pariyonāhanātipi vuccanti.
“와셋타여, 이와 꼭 같이 이 다섯 가지 장애는 성자의 율에서 가로막음이라고도 불리고, 장애라고도 불리고, 덮어씌움이라고도 불리고, 온통 덮어씌움이라고도 불린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Kāmacchandanīvaraṇaṃ, byāpādanīvaraṇaṃ, thinamiddhanīvaraṇaṃ, uddhaccakukkuccanīvaraṇaṃ, vicikicchānīvaraṇaṃ.
감각적 욕망의 장애, 악의의 장애, 해태와 혼침의 장애, 들뜸과 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Ime kho, vāseṭṭha, pañca nīvaraṇā ariyassa vinaye āvaraṇātipi vuccanti, nīvaraṇātipi vuccanti, onāhanātipi vuccanti, pariyonāhanātipi vuccanti.
와셋타여, 이 다섯 가지 장애는 성자의 율에서 가로막음이라고도 불리고, 장애라고도 불리고, 덮어씌움이라고도 불리고, 온통 덮어씌움이라고도 불린다.
549
바셋타여, 삼명 바라문들은 바로 이 다섯 가지 덮개에 가려지고 덮이고 휘감기고 칭칭 감겨 있다. 바라문을 바라문답게 만드는 법은 버리고 바라문답지 못하게 만드는 법은 받아 지니는 이들이 그런 채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리라는 것, 그럴 수는 없다.
‘‘Imehi kho, vāseṭṭha, pañcahi nīvaraṇehi tevijjā brāhmaṇā āvuṭā nivuṭā onaddhā pariyonaddhā.
“와셋타여,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 다섯 가지 장애에 가로막히고 둘러싸이고 덮이고 온통 덮여 있다.
Te vata,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ārak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pañcahi nīvaraṇehi āvuṭā nivuṭā onaddhā pariyonaddh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brahmānaṃ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와셋타여, 그런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 그 법들을 버린 채 지내고, 바라문을 만들지 못하는 법들, 그 법들을 받아 지닌 채 지내면서, 다섯 가지 장애에 가로막히고 둘러싸이고 덮이고 온통 덮인 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맞대어 봄에 대한 이야기Saṃsandanakathā
550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로하고 나이 많은 바라문 스승들과 그 스승의 스승들이 하는 말을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범천은 소유가 있는가, 없는가? 소유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한을 품은 마음인가, 원한 없는 마음인가? 원한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의를 품은 마음인가, 악의 없는 마음인가? 악의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더럽혀진 마음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재한가, 자재하지 못한가? 자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kinti te sutaṃ brāhmaṇānaṃ vudd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sapariggaho vā brahmā apariggaho v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이 들고 연로한 바라문들, 스승들과 스승들의 스승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 범천은 소유가 있는가, 소유가 없는가?”
‘‘Apariggaho, bho gotama’’.
“소유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ti?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Averacitto, bho gotama’’.
“원한이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byāpajjacitto vā abyāpajjacitto vā’’ti?
“악의가 있는 마음인가, 악의가 없는 마음인가?”
‘‘Abyāpajjacitto, bho gotama’’.
“악의가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ṃkiliṭṭhacitto vā asaṃkiliṭṭhacitto vā’’ti?
“오염된 마음인가,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가?”
‘‘Asaṃkiliṭṭhacitto, bho gotama’’.
“오염되지 않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ti?
“제 뜻대로 하는 이인가,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인가?”
‘‘Vasavattī, bho gotama’’.
“제 뜻대로 하는 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명 바라문들은 소유가 있는가, 없는가? 소유가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한을 품은 마음인가, 원한 없는 마음인가? 원한을 품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의를 품은 마음인가, 악의 없는 마음인가? 악의를 품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더럽혀진 마음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인가? 더럽혀진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재한가, 자재하지 못한가? 자재하지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sapariggahā vā tevijjā brāhmaṇā apariggahā v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가 있는가, 소유가 없는가?”
‘‘Sapariggahā, bho gotama’’.
“소유가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veracittā vā averacittā vā’’ti?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Saveracittā, bho gotama’’.
“원한이 있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byāpajjacittā vā abyāpajjacittā vā’’ti?
“악의가 있는 마음인가, 악의가 없는 마음인가?”
‘‘Sabyāpajjacittā, bho gotama’’.
“악의가 있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ṃkiliṭṭhacittā vā asaṃkiliṭṭhacittā vā’’ti?
“오염된 마음인가,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가?”
‘‘Saṃkiliṭṭhacittā, bho gotama’’.
“오염된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ti?
“제 뜻대로 하는 이인가,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인가?”
‘‘Avasavattī, bho gotama’’.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551
그렇다면, 바셋타여, 삼명 바라문들은 소유가 있는데 범천은 소유가 없다. 소유가 있는 삼명 바라문들이 소유 없는 범천과 어울리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좋다, 바셋타여. 소유가 있는 삼명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 없는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리라는 것, 그럴 수는 없다. 또 삼명 바라문들은 원한을 품은 마음인데 범천은 원한 없는 마음이다. 삼명 바라문들은 악의를 품은 마음인데 범천은 악의 없는 마음이다. 삼명 바라문들은 더럽혀진 마음인데 범천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이다. 삼명 바라문들은 자재하지 못한데 범천은 자재하다. 그런데 자재하지 못한 삼명 바라문들이 자재한 범천과 어울리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좋다, 바셋타여. 자재하지 못한 삼명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재한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리라는 것, 그럴 수는 없다.
‘‘Iti kira, vāseṭṭha, sapariggahā tevijjā brāhmaṇā apariggaho brahmā.
“와셋타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가 있고, 범천은 소유가 없다.
Api nu kho sapariggahānaṃ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pariggahena brahmunā saddhiṃ saṃsandati sametī’’ti?
소유가 있는,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소유가 없는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ādhu, vāseṭṭha, te vata, vāseṭṭha, sapariggahā tevijjā brāhmaṇ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ariggahassa brahmuno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소유가 있는,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가 없는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Iti kira, vāseṭṭha, saveracittā tevijjā brāhmaṇā, averacitto brahmā…pe… sabyāpajjacittā tevijjā brāhmaṇā abyāpajjacitto brahmā… saṃkiliṭṭhacittā tevijjā brāhmaṇā asaṃkiliṭṭhacitto brahmā… avasavattī tevijjā brāhmaṇā vasavattī brahmā, api nu kho avasavattīnaṃ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vasavattinā brahmunā saddhiṃ saṃsandati sametī’’ti?
“와셋타여, 그렇다면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원한이 있는 마음이고, 범천은 원한이 없는 마음이다. 원한이 있는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원한이 없는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원한이 있는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원한이 없는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악의가 있는 마음이고, 범천은 악의가 없는 마음이다. 악의가 있는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악의가 없는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악의가 있는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의가 없는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오염된 마음이고, 범천은 오염되지 않은 마음이다. 오염된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오염된 마음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이고, 범천은 제 뜻대로 하는 이이다.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제 뜻대로 하는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3:551.1 ~ PN:dn13/551.4에서 되살렸습니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ādhu, vāseṭṭha, te vata, vāseṭṭha, avasavattī tevijjā brāhmaṇ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vasavattissa brahmuno sahabyūpagā bhav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제 뜻대로 하는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없다.
552
바셋타여, 그런데 삼명 바라문들은 여기서 주저앉는다. 주저앉아서는 낙담에 이르면서도 마른 땅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명 바라문들의 이 삼명을 '삼명의 불모지'라고도 하고, '삼명의 황무지'라고도 하고, '삼명의 파멸'이라고도 한다.[불확실]
‘‘Idha kho pana te, vāseṭṭha, tevijjā brāhmaṇā āsīditvā saṃsīdanti, saṃsīditvā visāraṃ pāpuṇanti, sukkhataraṃ maññe taranti.
“그런데 와셋타여, 여기서 그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발을 들여놓았다가 가라앉고, 가라앉고서는 흩어짐에 이르며, 마른땅을 건너는 줄로 여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mā idaṃ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tevijjāiriṇantipi vuccati, tevijjāvivanantipi vuccati, tevijjābyasanantipi vuccatī’’ti.
그러므로 세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이것은 ‘세 베다의 황무지’라고도 불리고, ‘세 베다의 민둥땅’이라고도 불리고, ‘세 베다의 재앙’이라고도 불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553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청년 바셋타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범천과 함께하는 길을 안다'고 들었습니다.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나사까따는 여기서 가깝지 않은가? 멀지 않은 곳 아닌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나사까따는 여기서 가깝고, 멀지 않습니다.
Evaṃ vutte, vāseṭṭh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utaṃ metaṃ, bho gotama, samaṇo gotamo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jānā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사문 고따마는 범천들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을 안다’고.”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Āsanne ito manasākaṭaṃ, na ito dūre manasākaṭa’’nti?
마나사까따는 여기서 가깝고, 여기서 멀지 않은가?”
‘‘Evaṃ, bho gotama, āsanne ito manasākaṭaṃ, na ito dūre manasākaṭa’’nti.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나사까따는 여기서 가깝고,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554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마나사까따를 막 떠나온 사람들이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묻는다. 바셋타여, 그렇게 길을 질문받았을 때 그 사람이 머뭇거리거나 망설이는 일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왜 그런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 사람은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라서 마나사까따의 모든 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셋타여,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길을 물으면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때가 있다. 그러나 여래는 그렇지 않다. 범천의 세계나 그곳으로 가는 길을 질문받아도 결코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바셋타여, 나는 범천을 안다. 범천의 세계를 알고, 그곳으로 가는 길도 안다. 어떻게 걸어서 범천의 세계에 태어났는지도 나는 안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idhassa puriso manasākaṭe jātasaṃvaddho.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하자.
Tamenaṃ manasākaṭato tāvadeva avasaṭaṃ manasākaṭassa maggaṃ puccheyyuṃ.
마나사까따에서 막 나온 그에게 사람들이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묻는다고 하자.
Siyā nu kho, vāseṭṭha, tassa purisassa manasākaṭe jātasaṃvaddhassa manasākaṭassa maggaṃ puṭṭhassa dandhāyitattaṃ vā vitthāyitattaṃ vā’’ti?
와셋타여,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란 그 사람이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머뭇거림이나 멈칫함이 있겠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mu hi, bho gotama, puriso manasākaṭe jātasaṃvaddho, tassa sabbāneva manasākaṭassa maggāni suviditān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 사람은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그에게는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이 모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Siyā kho, vāseṭṭha, tassa purisassa manasākaṭe jātasaṃvaddhassa manasākaṭassa maggaṃ puṭṭhassa dandhāyitattaṃ vā vitthāyitattaṃ vā, na tveva tathāgatassa brahmaloke vā brahmalokagāminiyā vā paṭipadāya puṭṭhassa dandhāyitattaṃ vā vitthāyitattaṃ vā.
“와셋타여, 마나사까따에서 나고 자란 그 사람이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머뭇거림이나 멈칫함이 있을 수는 있어도, 여래가 범천의 세계나 범천의 세계로 이끄는 도닦음을 물었을 때에는 머뭇거림도 멈칫함도 결코 없다.
Brahmānaṃ cāhaṃ, vāseṭṭha, pajānāmi brahmalokañca brahmalokagāminiñca paṭipadaṃ, yathā paṭipanno ca brahmalokaṃ upapanno, tañca pajānāmī’’ti.
와셋타여, 나는 범천들을 꿰뚫어 알고, 범천의 세계와 범천의 세계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도를 닦아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지, 그것도 꿰뚫어 안다.”
555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청년 바셋타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범천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에게 범천과 함께하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바라문 사람들을 건져 올려 주십시오. 그렇다면 바셋타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러겠습니다." 하고 바라문 청년 바셋타가 세존께 대답했다.[불확실]
Evaṃ vutte, vāseṭṭh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utaṃ metaṃ, bho gotama, samaṇo gotamo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desetī’’ti.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사문 고따마는 범천들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다’고.”
‘‘Sādhu no bhavaṃ gotamo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desetu ullumpatu bhavaṃ gotamo brāhmaṇiṃ paja’’nti.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에게 범천들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바라문의 후손들을 건져 주소서.”
‘‘Tena hi, vāseṭṭha, suṇāhi;
“그렇다면 와셋타여, 들어라.
sādhukaṃ manasi karohi;
마음을 잘 기울여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o’’ti kho vāseṭṭho māṇavo bhagavato paccassosi.
“예, 존자시여” 하고 와셋타 바라문 학도가 세존께 대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범천의 세계로 가는 길에 대한 가르침Brahmalokamaggadesanā
556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셋타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온다.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이다. 이하는 앞선 경들에서 펼친 그대로 이어진다. 바셋타여, 이렇게 비구는 계를 갖추게 된다. 그렇게 나아가 자기 안에서 다섯 가지 덮개가 사라진 것을 보면 기쁨이 일어난다. 기쁜 이에게는 희열이 일어나고, 희열에 찬 이는 몸이 편안해진다. 몸이 편안해진 이는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이의 마음은 집중된다. 그는 자애가 깃든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지낸다. 둘째, 셋째, 넷째 방향도 그렇게 한다. 이렇게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을 채운다. 모든 것을 자기와 같이 여기며, 온 세상을 자애가 깃든 마음으로 가득 채우며 지낸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다. 바셋타여, 힘센 소라고둥 부는 이가 어렵지 않게 사방에 소리를 알리는 것과 같다. 바로 그렇게 자애로 닦은 마음의 해탈 안에서는 한계 지어진 행위가 남지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바셋타여, 이것 또한 범천과 함께하는 길이다.[불확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idha, vāseṭṭh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pe… (yathā 190-212 anucchedesu evaṃ vitthāretabbaṃ).
“와셋타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니, (190~212 문단에서와 같이 이렇게 상세히 펼쳐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kho, vāseṭṭha, bhikkhu sīlasampanno hoti…pe… tass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와셋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갖춘 자가 된다. 그에게 이 다섯 가지 장애가 버려졌음을 자신에게서 볼 때 환희가 생기고,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Tathā dutiyaṃ.
두 번째도 그렇게 한다.
Tathā tatiyaṃ.
세 번째도 그렇게 한다.
Tathā catutthaṃ.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존재를 자기처럼 여겨,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온 세상을 광대하고 크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이 가득 채우고 머문다.
‘‘Seyyathāpi, vāseṭṭha, balavā saṅkhadhamo appakasireneva catuddisā viññāpeyya;
“와셋타여, 마치 힘센 소라고둥 부는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네 방향에 알릴 수 있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evaṃ bhāvitāya mettāya cetovimuttiyā yaṃ pamāṇakataṃ kammaṃ na taṃ tatrāvasissati, na taṃ tatrāvatiṭṭhati.
와셋타여, 이와 꼭 같이 이렇게 닦은 자애의 마음의 해탈(心解脫)에는, 한량 있게 지은 업이 거기에 남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Ayampi kho, vāseṭṭha,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o.
와셋타여, 이것도 범천들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이다.
다시 바셋타여, 비구는 연민이 깃든 마음으로, 기쁨이 깃든 마음으로, 평온이 깃든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지낸다. 둘째, 셋째, 넷째 방향도 그렇게 한다. 이렇게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을 채운다. 모든 것을 자기와 같이 여기며, 온 세상을 평온이 깃든 마음으로 가득 채우며 지낸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다. 바셋타여, 힘센 소라고둥 부는 이가 어렵지 않게 사방에 소리를 알리는 것과 같다. 바로 그렇게 닦은 평온한 마음의 해탈 안에서는 한계 지어진 행위가 남지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바셋타여, 이것이 범천과 함께하는 길이다.
‘‘Puna caparaṃ, vāseṭṭha, bhikkhu karuṇāsahagatena cetasā…pe… muditāsahagatena cetasā…pe…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다시 와셋타여, 비구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3:556.4에서 되살렸습니다.
Tathā dutiyaṃ.
두 번째도 그렇게 한다.
Tathā tatiyaṃ.
세 번째도 그렇게 한다.
Tathā catutthaṃ.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존재를 자기처럼 여겨,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온 세상을 광대하고 크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이 가득 채우고 머문다.
‘‘Seyyathāpi, vāseṭṭha, balavā saṅkhadhamo appakasireneva catuddisā viññāpeyya.
“와셋타여, 마치 힘센 소라고둥 부는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네 방향에 알릴 수 있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vāseṭṭha, evaṃ bhāvitāya upekkhāya cetovimuttiyā yaṃ pamāṇakataṃ kammaṃ na taṃ tatrāvasissati, na taṃ tatrāvatiṭṭhati.
와셋타여, 이와 꼭 같이 이렇게 닦은 평온의 마음의 해탈(心解脫)에는, 한량 있게 지은 업이 거기에 남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Ayaṃ kho, vāseṭṭha,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o.
와셋타여, 이것이 범천들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이다.
557
바셋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지내는 비구는 소유가 있는가, 없는가? 소유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한을 품은 마음인가, 원한 없는 마음인가? 원한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의를 품은 마음인가, 악의 없는 마음인가? 악의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더럽혀진 마음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재한가, 자재하지 못한가? 자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바셋타여, 비구는 소유가 없고 범천도 소유가 없다. 소유 없는 비구가 소유 없는 범천과 어울리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바셋타여. 소유 없는 그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 없는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는 것, 이것은 가능하다.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 evaṃvihārī bhikkhu sapariggaho vā apariggaho vā’’ti?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머무는 비구는 소유가 있는가, 소유가 없는가?”
‘‘Apariggaho, bho gotama’’.
“소유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ti?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Averacitto, bho gotama’’.
“원한이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byāpajjacitto vā abyāpajjacitto vā’’ti?
“악의가 있는 마음인가, 악의가 없는 마음인가?”
‘‘Abyāpajjacitto, bho gotama’’.
“악의가 없는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aṃkiliṭṭhacitto vā asaṃkiliṭṭhacitto vā’’ti?
“오염된 마음인가,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가?”
‘‘Asaṃkiliṭṭhacitto, bho gotama’’.
“오염되지 않은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ti?
“제 뜻대로 하는 이인가,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이인가?”
‘‘Vasavattī, bho gotama’’.
“제 뜻대로 하는 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Iti kira, vāseṭṭha, apariggaho bhikkhu, apariggaho brahmā.
“와셋타여, 그렇다면 비구는 소유가 없고, 범천도 소유가 없다.
Api nu kho apariggahassa bhikkhuno apariggahena brahmunā saddhiṃ saṃsandati sametī’’ti?
소유가 없는 비구가 소유가 없는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Evaṃ, bho gotama’’.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ādhu, vāseṭṭha, so vata vāseṭṭha apariggaho bhikkh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ariggahassa brahmuno sahabyūpago bhavissatī’’ti, ṭhānametaṃ vijjati.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소유가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가 없는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있다.
558
그렇다면, 바셋타여, 비구는 원한 없는 마음이고 범천도 원한 없는 마음이다. 비구는 악의 없는 마음이고 범천도 악의 없는 마음이다. 비구는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이고 범천도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이다. 비구는 자재하고 범천도 자재하다. 그런데 자재한 비구가 자재한 범천과 어울리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바셋타여. 자재한 그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재한 범천과 함께하는 곳에 태어나는 것, 이것은 가능하다.
‘‘Iti kira, vāseṭṭha, averacitto bhikkhu, averacitto brahmā…pe… abyāpajjacitto bhikkhu, abyāpajjacitto brahmā… asaṃkiliṭṭhacitto bhikkhu, asaṃkiliṭṭhacitto brahmā… vasavattī bhikkhu, vasavattī brahmā, api nu kho vasavattissa bhikkhuno vasavattinā brahmunā saddhiṃ saṃsandati sametī’’ti?
“와셋타여, 그렇다면 비구는 원한이 없는 마음이고, 범천도 원한이 없는 마음이다. 원한이 없는 마음인 비구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원한이 없는 마음인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원한이 없는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있다. 비구는 악의가 없는 마음이고, 범천도 악의가 없는 마음이다. 악의가 없는 마음인 비구가 악의가 없는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악의가 없는 마음인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의가 없는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있다. 비구는 오염되지 않은 마음이고, 범천도 오염되지 않은 마음이다.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비구가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있다. 비구는 제 뜻대로 하는 이이고, 범천도 제 뜻대로 하는 이이다. 제 뜻대로 하는 비구가 제 뜻대로 하는 범천과 서로 만나고 서로 맞겠는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3:557.11 ~ PN:dn13/557.14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bho gotama’’.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ādhu, vāseṭṭha, so vata, vāseṭṭha, vasavattī bhikkh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vasavattissa brahmuno sahabyūpago bhavissatīti, ṭhānametaṃ vijjatī’’ti.
“좋다, 와셋타여. 와셋타여, 그런 제 뜻대로 하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제 뜻대로 하는 범천과 함께하는 자가 되리라 — 그런 도리는 있다.”
559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청년 바셋타와 바라드와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 주듯, 덮인 것을 열어 보여 주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도록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주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고따마 존자를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법과 비구 승가도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지처로 삼은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테윗자 경이 끝났다. 열세 번째이다.[불확실]
Evaṃ vutte, vāseṭṭhabhāradvājā māṇav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들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고.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이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te may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희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e no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e saraṇaṃ gate’’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vijjasuttaṃ niṭṭhitaṃ terasamaṃ.
떼윗자 경이 끝났다. 열세 번째다.
Sīlakkhandhavaggo niṭṭhito.
계의 무더기 품이 끝났다.
Tassuddānaṃ –
그 목록은 이러하다 —
Brahmāsāmaññaambaṭṭha,
브라흐마, 사문됨, 암밧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ṇakūṭamahālijālinī;
소나, 꾸따, 마할리, 잘리니;[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īhapoṭṭhapādasubho kevaṭṭo,
시하, 뽓타빠다, 수바, 께왓따,
Lohiccatevijjā terasāti.
로힛짜, 떼윗자 — 열셋이다.
Sīlakkhandhavaggapāḷi niṭṭhitā.
계의 무더기 품 성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