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
9. 마음챙김의 확립에 관한 큰 경
37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 사람들의 땅에 머물고 계셨다. 꾸루 사람들의 읍인 깜마사담마였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ṃ nāma kurūnaṃ nigamo.
한때 세존께서 꾸루에 머무셨는데,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이었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bhikkhavo’’ti.
“비구들이여.”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d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요Uddeso
373
“비구들이여, 이 길은 오직 한 길로 곧장 나 있다.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슬픔과 한탄을 건너게 하고, 괴로움과 근심을 가라앉히는 길이다. 바른 방법을 얻고 열반을 몸소 실현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Ekāyano ayaṃ, bhikkhave, maggo sattānaṃ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ṃ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ṃ cattāro satipaṭṭhānā.
“비구들이여, 이 길은 하나로 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것이고,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것이고, 괴로움과 불만이 사라지게 하기 위한 것이고, 바른 방도를 얻기 위한 것이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Katame cattāro?
넷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문다. 이때도 열심히 노력하고,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 보며 머문다. 이때도 열심히 노력하고,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들에서 법을 따라 보며 머문다. 이때도 열심히 노력하고,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개요가 끝났다.
Uddeso niṭṭhito.
개요가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들숨날숨 절Kāyānupassanā ānāpānapabbaṃ
374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무는가?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숲이나 나무 아래, 빈 집으로 가서 앉는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운 채 마음챙김을 눈앞에 둔다.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두고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안다.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안다.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안다.
‘온몸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온몸을 느끼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비구들이여, 솜씨 좋은 선반공이나 그 제자가 줄을 길게 당기면 ‘길게 당긴다’고 안다. 짧게 당기면 ‘짧게 당긴다’고 안다. 비구도 이와 같다.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쉴 때도, 짧게 내쉴 때도 그렇게 안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bhamakāro vā bhamakārantevāsī vā dīghaṃ vā añchanto ‘dīghaṃ añch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añchanto ‘rassaṃ añchāmī’ti pajān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갈이장이나 갈이장이의 제자가 길게 돌리면서는 ‘길게 돌린다’고 알고, 짧게 돌리면서는 ‘짧게 돌린다’고 아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알고,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안다.
‘온몸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온몸을 느끼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이렇게 안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밖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물고,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물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눈앞에 확립된다. 이는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불확실]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들숨날숨 항목이 끝났다.
Ānāpānapabbaṃ niṭṭhitaṃ.
들숨날숨 절이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자세 절Kāyānupassanā iriyāpathapabbaṃ
375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갈 때는 ‘걷고 있다’고 안다. 서 있을 때는 ‘서 있다’고 알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다’고 안다. 몸이 어떤 자세를 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gacchanto vā ‘gacchāmī’ti pajānāti, ṭhito vā ‘ṭhitomhī’ti pajānāti, nisinno vā ‘nisinnomhī’ti pajānāti, sayāno vā ‘sayānomhī’ti pajānāti, yathā yathā vā panassa kāyo paṇihito hoti, tathā tathā naṃ pajānā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는 ‘걸어간다’고 알고, 서 있으면서는 ‘서 있다’고 알고, 앉아 있으면서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으면서는 ‘누워 있다’고 안다. 또 그의 몸이 어떠어떠하게 놓여 있든, 그렇게 그렇게 그것을 안다.
이렇게 안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밖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물고,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물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눈앞에 확립된다. 이는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불확실]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자세 항목이 끝났다.
Iriyāpathapabbaṃ niṭṭhitaṃ.
자세 절이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또렷이 알아차림 절Kāyānupassanā sampajānapabbaṃ
376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나아갈 때도 뒤로 물러날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팔다리를 굽힐 때도 펼 때도 그렇게 한다. 겉옷과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어 있고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에도 물러설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앞을 볼 때에도 둘러볼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굽힐 때에도 펼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겹옷과 발우와 옷을 지닐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씹을 때에도 맛볼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갈 때에도 설 때에도 앉을 때에도 잠들 때에도 깨어 있을 때에도 말할 때에도 잠잠할 때에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앞에서와 같이 몸에서 일어남과 사라짐도 따라 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4.10 ~ PN:dn22/374.12에서 되살렸습니다.
분명히 앎 항목이 끝났다.
Sampajānapabbaṃ niṭṭhitaṃ.
또렷이 알아차림 절이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역겨움에 마음 기울임 절Kāyānupassanā paṭikūlamanasikārapabbaṃ
377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살펴본다.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을 경계로 하여 갖가지 부정한 것들이 가득 찬 몸이라고 본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인 채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으로 살펴본다 —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톱과 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속의 음식,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이렇게 살펴본다.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살갗이 있고, 살, 힘줄, 뼈, 골수, 콩팥이 있고,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가 있고, 창자, 창자막, 위 속의 것, 똥이 있고,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가 있고,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이 가득 들어 있다. 논벼, 밭벼, 녹두, 콩, 참깨, 쌀이다.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ṃ sālīnaṃ vīhīnaṃ muggānaṃ māsānaṃ tilānaṃ taṇḍulānaṃ.
“비구들이여,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난 자루에 갖가지 곡식이 가득 담겨 있는 것과 같으니, 곧 좋은 쌀, 벼, 녹두, 검은콩, 참깨, 찧은 쌀이다.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어 놓고 살펴본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풀어 놓고 살펴본다면 —
‘이것은 논벼, 이것은 밭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쌀이다.’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이것은 좋은 쌀, 이것은 벼, 이것은 녹두, 이것은 검은콩, 이것은 참깨, 이것은 찧은 쌀이다’라고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바로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을 경계로 하여 갖가지 부정한 것들이 가득 찬 몸이라고 살펴본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인 채 갖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으로 살펴본다 —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에서 시작하여 오줌에 이르기까지 있다.’ 이렇게 살펴본다.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pe… mutta’nti.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살갗이 있고, 살, 힘줄, 뼈, 골수, 콩팥이 있고, 염통, 간, 가로막, 지라, 허파가 있고, 창자, 창자막, 위 속의 것, 똥이 있고,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가 있고,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7.2에서 되살렸습니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앞에서와 같이 몸에서 일어남과 사라짐도 따라 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4.10 ~ PN:dn22/374.12에서 되살렸습니다.
혐오스러움에 마음을 기울이는 항목이 끝났다.
Paṭikūlamanasikārapabbaṃ niṭṭhitaṃ.
역겨움에 마음 기울임 절이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요소에 마음 기울임 절Kāyānupassanā dhātumanasikārapabbaṃ
378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한 그대로 요소별로 살펴본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 잡은 그대로 요소로 살펴본다 —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살펴본다.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솜씨 좋은 소백정이나 그 제자가 소를 잡아 네거리에 토막 내어 놓고 앉아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한 그대로 요소별로 살펴본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gāviṃ vadhitvā catumahāpathe bilaso vibhajitvā nisinno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아 네거리에서 부위별로 갈라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놓인 그대로 자리 잡은 그대로 요소로 살펴본다 —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살펴본다.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앞에서와 같이 몸에서 일어남과 사라짐도 따라 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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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에 마음을 기울이는 항목이 끝났다.
Dhātumanasikārapabbaṃ niṭṭhitaṃ.
요소에 마음 기울임 절이 끝났다.
몸을 거듭 살핌 — 아홉 가지 무덤터 절Kāyānupassanā navasivathikapabbaṃ
379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신을 버리는 곳에 버려진 시신을 본다고 하자. 죽은 지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난 시신이다. 부풀고 검푸르게 변하고 고름이 흐른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ekāhamataṃ vā dvīhamataṃ vā tīhamataṃ vā uddhumātakaṃ vinīlakaṃ vipubbakajātaṃ.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죽은 지 하루가 되었거나 죽은 지 이틀이 되었거나 죽은 지 사흘이 되어 부풀고 검푸르고 고름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준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을 지녔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앞에서와 같이 몸에서 일어남과 사라짐도 따라 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4.10 ~ PN:dn22/374.12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신을 버리는 곳에 버려진 시신을 본다고 하자. 까마귀, 솔개, 독수리, 왜가리가 쪼아 먹고 있다. 개, 호랑이, 표범, 자칼이 뜯어 먹고 있다. 갖가지 벌레들도 파먹고 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kākehi vā khajjamānaṃ kulalehi vā khajjamānaṃ gijjhehi vā khajjamānaṃ kaṅkehi vā khajjamānaṃ sunakhehi vā khajjamānaṃ byagghehi vā khajjamānaṃ dīpīhi vā khajjamānaṃ siṅgālehi vā khajjamānaṃ vividhehi vā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ṃ.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까마귀들에게 먹히거나 매들에게 먹히거나 독수리들에게 먹히거나 왜가리들에게 먹히거나 개들에게 먹히거나 호랑이들에게 먹히거나 표범들에게 먹히거나 승냥이들에게 먹히거나 온갖 작은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준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을 지녔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앞에서와 같이 몸에서 일어남과 사라짐도 따라 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4.10 ~ PN:dn22/374.12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신을 버리는 곳에 버려진 시신을 본다고 하자. 살과 피가 붙어 있고 힘줄로 이어진 해골이다. 살은 없고 피만 묻은 채 힘줄로 이어진 해골이다.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만 이어진 해골이다. 힘줄마저 풀려 뼈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기도 하다. 손뼈는 이쪽에, 발뼈는 저쪽에 있다. 발목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엉덩이뼈, 갈비뼈, 등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뼈, 두개골이 제각기 따로 놓여 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aṭṭhikasaṅkhalikaṃ s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asaṅkhalikaṃ nimaṃsalohitamakk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asaṅkhalikaṃ apagatamaṃsalohitaṃ nhārusambandhaṃ…pe…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 vidisā vikkhittāni, aññena hatthaṭṭhikaṃ aññena pādaṭṭhikaṃ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ṃ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ṃ aññena ūruṭṭhikaṃ aññena kaṭiṭṭhikaṃ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ṃ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ṃ aññena khandhaṭṭhikaṃ aññena gīvaṭṭhikaṃ aññena hanukaṭṭhikaṃ aññena dantaṭṭhikaṃ aññena sīsakaṭāhaṃ.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살과 피가 붙은 채 힘줄로 얽매인 해골인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살은 없고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얽매인 해골인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살과 피가 사라진 채 힘줄로 얽매인 해골인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이어진 데가 풀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뼈들인 것을 볼 수 있으니, 따로 손뼈, 따로 발뼈, 따로 복사뼈, 따로 정강이뼈, 따로 넓적다리뼈, 따로 엉덩이뼈, 따로 갈비뼈, 따로 등뼈, 따로 어깨뼈, 따로 목뼈, 따로 턱뼈, 따로 잇뼈, 따로 머리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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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준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을 지녔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pe…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4.10 ~ PN:dn22/374.13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비구들이여, 비구가 시신을 버리는 곳에 버려진 시신을 본다고 하자. 뼈들이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되어 있다. 해를 넘겨 무더기로 쌓여 있다. 썩어서 가루가 되어 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ṃ sivathikāya chaḍḍitaṃ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pe…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 …pe…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조개껍데기 빛깔에 가까운 흰 뼈들인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한 해가 넘어 무더기로 쌓인 뼈들인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무덤터에 버려진 시신이 썩어 가루가 된 뼈들인 것을 볼 수 있으니,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379.2 ~ PN:dn22/379.5에서 되살렸습니다.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준다.
So imameva kāyaṃ upasaṃharati –
그는 바로 이 몸을 그것에 견주어 본다 —
‘이 몸도 이런 성질을 지녔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ayampi kho kāyo evaṃdhammo evaṃbhāvī evaṃanatīto’ti.
‘이 몸도 이런 성질이고,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안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밖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물고,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물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몸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눈앞에 확립된다. 이는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불확실]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몸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따라 보며 머문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아홉 가지 시신 버리는 곳의 항목이 끝났다.
Navasivathikapabbaṃ niṭṭhitaṃ.
아홉 가지 무덤터 절이 끝났다.
몸을 따라 보는 열네 가지가 끝났다.
Cuddasa kāyānupassanā niṭṭhitā.
열네 가지 몸을 거듭 살핌이 끝났다.
느낌을 거듭 살핌Vedanānupassanā
380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무는가?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Idha, bhikkhave, bhikkhu sukhaṃ vā vedanaṃ vedayamāno ‘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Dukkhaṃ vā vedanaṃ vedayamāno ‘duk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Adukkhamasukhaṃ vā vedanaṃ vedayamāno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을 떠난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을 떠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Sāmisaṃ vā sukhaṃ vedanaṃ vedayamāno ‘sāmisaṃ 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ṃ vā sukhaṃ vedanaṃ vedayamāno ‘nirāmisaṃ 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세속을 벗어난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을 벗어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을 떠난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을 떠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Sāmisaṃ vā dukkhaṃ vedanaṃ vedayamāno ‘sāmisaṃ duk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ṃ vā dukkhaṃ vedanaṃ vedayamāno ‘nirāmisaṃ duk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세속을 벗어난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을 벗어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속을 떠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는 ‘세속을 떠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Sāmisaṃ vā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ayamāno ‘sāmisaṃ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ṃ vā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ayamāno ‘nirāmisaṃ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ayāmī’ti pajānāti.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세속을 벗어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는 ‘세속을 벗어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이렇게 안으로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문다. 밖으로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물고, 안팎으로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문다.
Iti ajjhattaṃ v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 느낌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물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따라 보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느낌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느낌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거나, 느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느낌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눈앞에 확립된다. 이는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불확실]
‘Atthi vedan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느낌이 있다’는 그의 마음챙김이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계속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리고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보며 머문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도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느낌을 따라 보는 항목이 끝났다.
Vedanānupassanā niṭṭhitā.
느낌을 거듭 살핌이 끝났다.
마음을 거듭 살핌Cittānupassanā
381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을 ‘탐욕을 떠난 마음이다’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성냄을 떠난 마음은 ‘성냄을 떠난 마음이다’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이다’라고 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든 마음이다’라고 알고, 산란한 마음은 ‘산란한 마음이다’라고 안다. 넓어진 마음을 ‘넓어진 마음이다’라고 알고, 넓어지지 않은 마음을 ‘넓어지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안다.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은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더 위가 없는 마음은 ‘더 위가 없는 마음이다’라고 안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다’라고 알고,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다’라고 안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다’라고 안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Saṅ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안다.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위없는 마음을 ‘위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이렇게 그는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낸다. 밖으로도 관찰하고, 안팎으로도 관찰하며 지낸다. 또 마음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지낸다.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그에게 또렷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도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낸다. 마음을 관찰하는 부분이 끝났다.[불확실]
Iti ajjhattaṃ v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이렇게 그는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citt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citt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cittasmiṃ viharati, ‘atthi citta’n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마음에서 일어남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마음에서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마음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마음이 있다’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현전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Cittānupassanā niṭṭhitā.
마음을 거듭 살핌이 끝났다.
법을 거듭 살핌 — 장애 절Dhammānupassanā nīvaraṇapabbaṃ
382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다섯 가지 장애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장애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장애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
‘‘Idha, bhikkhave, bhikkhu santaṃ vā ajjhattaṃ kāmacchandaṃ ‘atthi me ajjhattaṃ kāmacchand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kāmacchandaṃ ‘natthi me ajjhattaṃ kāmacchand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kāmacchan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kāmacchand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kāmacchand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알고, 안에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악의가 있으면 ‘내 안에 악의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악의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의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악의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byāpādaṃ ‘atthi me ajjhattaṃ byāpād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byāpādaṃ ‘natthi me ajjhattaṃ byāpād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byāpā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byāpād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byāpād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악의가 있으면 ‘내 안에 악의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악의가 없으면 ‘내 안에 악의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악의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나른함과 졸음이 있으면 ‘내 안에 나른함과 졸음이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나른함과 졸음이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나른함과 졸음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나른함과 졸음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나른함과 졸음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thinamiddhaṃ ‘atthi me ajjhattaṃ thinamiddha’n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thinamiddhaṃ ‘natthi me ajjhattaṃ thinamiddha’n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thinamiddh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thinamiddh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thinamiddh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해태와 혼침이 있으면 ‘내 안에 해태와 혼침이 있다’라고 알고, 안에 해태와 혼침이 없으면 ‘내 안에 해태와 혼침이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들뜸과 후회가 있으면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uddhaccakukkuccaṃ ‘atthi me ajjhattaṃ uddhaccakukkucca’n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uddhaccakukkuccaṃ ‘natthi me ajjhattaṃ uddhaccakukkucca’n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uddhaccakukkucc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들뜸과 후회가 있으면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들뜸과 후회가 없으면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의심이 있으면 ‘내 안에 의심이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의심이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의심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의심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vicikicchaṃ ‘atthi me ajjhattaṃ vicikicchā’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vicikicchaṃ ‘natthi me ajjhattaṃ vicikicchā’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āya vicikicchāy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āya vicikicchāy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āya vicikicchāy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의심이 있으면 ‘내 안에 의심이 있다’라고 알고, 안에 의심이 없으면 ‘내 안에 의심이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의심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의심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밖으로도 관찰하고, 안팎으로도 관찰하며 지낸다. 또 법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지낸다. ‘법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그에게 또렷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도 다섯 가지 장애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장애를 다루는 부분이 끝났다.[불확실]
‘‘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법에서 일어남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법들이 있다’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현전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다섯 장애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Nīvaraṇapabbaṃ niṭṭhitaṃ.
장애 절이 끝났다.
법을 거듭 살핌 — 무더기 절Dhammānupassanā khandhapabbaṃ
383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비구는 어떻게 이 다섯 무더기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여기 비구는 이렇게 안다. ‘이것이 물질이고,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고,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고,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취착 무더기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취착 무더기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이것이 물질,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이것이 느낌,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이것이 인식,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
이것이 형성들이고, 이것이 형성들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형성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고,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밖으로도 관찰하고, 안팎으로도 관찰하며 지낸다. 또 법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지낸다. ‘법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그에게 또렷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도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무더기를 다루는 부분이 끝났다.[불확실]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ṃ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ṃ atthaṅgamo,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이것이 형성작용, 이것이 형성작용의 일어남, 이것이 형성작용의 사라짐, 이것이 의식,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라고.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법에서 일어남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법들이 있다’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현전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다섯 취착 무더기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handhapabbaṃ niṭṭhitaṃ.
무더기 절이 끝났다.
법을 거듭 살핌 — 감각장소 절Dhammānupassanā āyatanapabbaṃ
384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과 밖의 여섯 감각 영역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비구는 어떻게 안과 밖의 여섯 감각 영역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팎의 여섯 감각장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안팎의 여섯 감각장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눈을 알고 형상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ñca pajānāti, rūp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알고 형색을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귀를 알고 소리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Sotañca pajānāti, sadd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귀를 알고 소리를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코를 알고 냄새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Ghānañca pajānāti, gandh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코를 알고 냄새를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혀를 알고 맛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Jivhañca pajānāti, ras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혀를 알고 맛을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몸을 알고 닿는 대상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Kāyañca pajānāti, phoṭṭhabb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몸을 알고 감촉을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음을 알고 법들을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속박도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속박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속박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버려진 속박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안다.[불확실]
‘‘Manañca pajānāti, dhamm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ṃ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ṃyojan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ṃyojan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마노를 알고 법을 알며, 그 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것을 알며, 버려진 족쇄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밖으로도 관찰하고, 안팎으로도 관찰하며 지낸다. 또 법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지낸다. ‘법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그에게 또렷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도 안과 밖의 여섯 감각 영역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감각 영역을 다루는 부분이 끝났다.[불확실]
‘‘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법에서 일어남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법들이 있다’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현전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안팎의 여섯 감각장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Āyatanapabbaṃ niṭṭhitaṃ.
감각장소 절이 끝났다.
법을 거듭 살핌 — 깨달음 요소 절Dhammānupassanā bojjhaṅgapabbaṃ
385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비구는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깨달음의 요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깨달음의 요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안에 마음챙김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마음챙김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마음챙김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마음챙김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마음챙김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Idha, bhikkhave, bhikkhu santaṃ vā ajjhattaṃ sati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sa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sati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sa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t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t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안에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그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그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dhammavica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정진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정진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정진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정진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정진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vīriya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vīri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vīriya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vīri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vīriya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vīriya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정진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기쁨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기쁨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기쁨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기쁨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기쁨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pīti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pī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pīti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pī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pīt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pīt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희열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고요함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고요함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고요함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고요함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고요함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passaddhi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passad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passaddhi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passad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passaddh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passad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집중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집중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집중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집중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집중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samādhi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samā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samādhi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samā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삼매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안에 평정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평정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평정 깨달음 요소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평정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안다. 이미 생긴 평정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써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안다.
‘‘Santaṃ vā ajjhattaṃ upekkhāsambojjhaṅgaṃ ‘atthi me ajjhattaṃ upekkhā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upekkhāsambojjhaṅgaṃ ‘natthi me ajjhattaṃ upekkhā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upekkhā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upekkhā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안에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 ‘내 안에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라고 알고, 안에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 ‘내 안에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라고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을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 요소가 닦음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안다.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밖으로도 관찰하고, 안팎으로도 관찰하며 지낸다. 또 법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지낸다. ‘법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그에게 또렷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오직 앎과 되새김에 필요한 만큼이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내며, 세상의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도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깨달음의 요소를 다루는 부분이 끝났다.[불확실]
‘‘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이렇게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법에서 일어남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의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또는 ‘법들이 있다’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현전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챙김을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비구는 일곱 깨달음의 요소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Bojjhaṅgapabbaṃ niṭṭhitaṃ.
깨달음 요소 절이 끝났다.
법을 거듭 살핌 — 진리 절Dhammānupassanā saccapabbaṃ
386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비구는 어떻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또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첫째 암송 분량이 끝났다.
Idha, bhikkhave, bhikkhu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Paṭhamabhāṇavāro niṭṭhito.
첫 번째 송출분이 끝났다.
괴로움의 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Dukkhasaccaniddeso
387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슬픔과 탄식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약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다.[불확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maraṇampi dukkh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pi dukkhā, appiyehi sampayogopi dukkho, piyehi vippayogopi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고, 근심·탄식·육체적 괴로움·정신적 괴로움·절망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니,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388
비구들이여,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여러 중생이 저마다 속한 중생의 부류에서 태어난다. 생겨나고, 모태에 들고, 나타난다. 무더기들이 드러나고, 감각의 영역들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태어남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jāti?
“비구들이여,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Yā tesaṃ tesaṃ sattānaṃ tamhi tamhi sattanikāye jāti sañjāti okkanti abhinibbatti khandhānaṃ pātubhāvo āyatanānaṃ paṭilābho, ayaṃ vuccati, bhikkhave, jāti.
이런저런 중생들이 이런저런 중생 무리에 태어남, 생겨남, 들어감, 나타남, 무더기들이 드러남, 감각장소들을 얻음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태어남이라 한다.
389
비구들이여, 늙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중생이 저마다 속한 중생의 부류에서 늙는다. 쇠약해지고, 이가 빠지고, 머리가 세고, 살갗이 쭈그러든다. 수명이 줄고, 감각기능이 무르익어 시든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
.
‘‘Katamā ca, bhikkhave, jarā?
“비구들이여, 늙음이란 무엇인가?
Yā tesaṃ tesaṃ sattānaṃ tamhi tamhi sattanikāye jarā jīraṇatā khaṇḍiccaṃ pāliccaṃ valittacatā āyuno saṃhāni indriyānaṃ paripāko, ayaṃ vuccati, bhikkhave, jarā.
이런저런 중생들이 이런저런 중생 무리에서 늙음, 노쇠함, 이가 빠짐, 머리가 셈, 살갗이 주름짐, 수명이 줄어듦, 기능들이 무르익어 쇠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390
비구들이여, 죽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중생이 저마다 속한 중생의 부류에서 떠나고, 사라지고, 흩어지고, 자취를 감춘다. 죽음이 닥쳐 목숨을 마친다. 무더기들이 무너지고, 몸이 버려지고, 생명의 기능이 끊어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maraṇaṃ?
“비구들이여, 죽음이란 무엇인가?
Yaṃ tesaṃ tesaṃ sattānaṃ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ṃ maccu maraṇaṃ kālakiriyā khandhānaṃ bhedo kaḷevarassa nikkhepo jīvitindriyassupacchedo, idaṃ vuccati, bhikkhave, maraṇaṃ.
이런저런 중생들이 이런저런 중생 무리에서 목숨이 다함, 옮겨감, 무너짐, 자취를 감춤, 죽음, 죽어감, 때를 마침, 무더기들이 무너짐, 몸을 내려놓음, 생명의 기능이 끊어짐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391
비구들이여, 슬픔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 슬픔, 슬퍼함, 슬픈 상태가 생긴다. 속으로 앓는 슬픔, 속으로 깊이 사무치는 슬픔도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슬픔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soko?
“비구들이여, 근심이란 무엇인가?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soko socanā socitattaṃ antosoko antoparisoko, ayaṃ vuccati, bhikkhave, soko.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부딪힌 이의 근심, 근심함, 근심에 잠김, 안으로 근심함, 안으로 깊이 근심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근심이라 한다.
392
비구들이여, 탄식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이 있다. 그는 울부짖고 탄식한다. 울부짖는 일, 탄식하는 일이 있고, 울부짖는 상태, 탄식하는 상태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탄식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paridevo?
“비구들이여, 탄식이란 무엇인가?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devo paridevo ādevanā paridevanā ādevitattaṃ paridevitatt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paridevo.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부딪힌 이의 비탄, 탄식, 비탄함, 탄식함, 비탄에 잠김, 탄식에 잠김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탄식이라 한다.
393
비구들이여, 고통이란 무엇인가? 몸에 속한 괴로움, 몸에 속한 불쾌함이 있다. 몸의 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쾌한 느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고통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ṃ?
“비구들이여, 육체적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dukkhaṃ kāyikaṃ asātaṃ kāya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ṃ.
비구들이여, 몸으로 느끼는 괴로움, 몸으로 느끼는 불쾌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롭고 불쾌한 느낌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육체적 괴로움이라 한다.
394
비구들이여, 근심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속한 괴로움, 마음에 속한 불쾌함이 있다.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쾌한 느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근심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omanassaṃ?
“비구들이여, 정신적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Yaṃ kho, bhikkhave, cetasikaṃ dukkhaṃ cetasikaṃ asātaṃ mano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domanassaṃ.
비구들이여, 마음으로 느끼는 괴로움, 마음으로 느끼는 불쾌함,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롭고 불쾌한 느낌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정신적 괴로움이라 한다.
395
비구들이여, 절망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닿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 낙심, 절망, 낙심한 상태, 절망한 상태가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절망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upāyāso?
“비구들이여, 절망이란 무엇인가?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yāso upāyāso āyāsitattaṃ upāyāsitatt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upāyāso.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일에 부딪힌 이의 실망, 절망, 실망에 빠짐, 절망에 빠짐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절망이라 한다.
396
비구들이여,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여기 어떤 사람에게 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달갑지 않은 것들이 있다.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이다. 또 그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해로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고 안전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이나 사람들과 함께하고 어울리고 모이고 뒤섞이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이라 한다.[불확실]
‘‘Katamo ca, bhikkhave, appiyehi sampayogo dukkho?
“비구들이여,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Idha yassa te honti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rūpā saddā gandhā rasā phoṭṭhabbā dhammā, ye vā panassa te honti anatthakāmā ahitakāmā aphāsukakāmā ayogakkhemakāmā, yā tehi saddhiṃ saṅgati samāgamo samodhānaṃ missībhāvo, ayaṃ vuccati, bhikkhave, appiyehi sampayogo dukkho.
여기 어떤 이에게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이 있거나, 그가 잘되지 않기를 바라고 이롭지 않기를 바라고 편안하지 않기를 바라고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모이고 만나고 어울리고 섞이는 것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괴로움이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397
비구들이여,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여기 어떤 사람에게 원하고 마음에 들고 즐거운 것들이 있다.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이다. 또 그의 이익을 바라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편안하기를 바라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친구, 동료, 친척이다. 그런 것이나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모이지 못하고 뒤섞이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piyehi vippayogo dukkho?
“비구들이여,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Idha yassa te ho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rūpā saddā gandhā rasā phoṭṭhabbā dhammā, ye vā panassa te honti atthakāmā hitakāmā phāsukakāmā yogakkhemakāmā mātā vā pitā vā bhātā vā bhaginī vā mittā vā amaccā vā ñātisālohitā vā, yā tehi saddhiṃ asaṅgati asamāgamo asamodhānaṃ amissībhāvo, ayaṃ vuccati, bhikkhave, piyehi vippayogo dukkho.
여기 어떤 이에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이 있거나, 그가 잘되기를 바라고 이롭기를 바라고 편안하기를 바라고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이들, 곧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나 자매나 친구나 동료나 친척과 혈육이 있어, 그들과 함께 모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섞이지 못하는 것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라 한다.
398
비구들이여,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태어나는 성질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태어나는 성질을 지니지 않았으면! 그래서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늙는 성질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늙는 성질을 지니지 않았으면! 그래서 늙음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병드는 성질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병드는 성질을 지니지 않았으면! 그래서 병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죽는 성질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죽는 성질을 지니지 않았으면! 그래서 죽음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슬픔과 탄식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을 겪는 성질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그런 성질을 지니지 않았으면! 그래서 슬픔과 탄식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Katamañca, bhikkhave,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비구들이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Jātidhammān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 icchā uppajjati –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aho vata mayaṃ na jāti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jāti āgaccheyyā’ti.
‘아, 우리가 태어나기 마련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태어남이 오지 않았으면!’
Na kho panetaṃ icchāya pattabbaṃ, idampi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그러나 이것은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Jarādhammān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 icchā uppajjati –
비구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aho vata mayaṃ na jarā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jarā āgaccheyyā’ti.
‘아, 우리가 늙기 마련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늙음이 오지 않았으면!’
Na kho panetaṃ icchāya pattabbaṃ, idampi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그러나 이것은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Byādhidhammān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ṃ na byādhi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byādhi āgaccheyyā’ti.
비구들이여,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아, 우리가 병들기 마련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병이 오지 않았으면!’
Na kho panetaṃ icchāya pattabbaṃ, idampi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그러나 이것은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Maraṇadhammān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ṃ na maraṇa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maraṇaṃ āgaccheyyā’ti.
비구들이여, 죽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아, 우리가 죽기 마련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죽음이 오지 않았으면!’
Na kho panetaṃ icchāya pattabbaṃ, idampi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그러나 이것은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naṃ, bhikkhave, sattānaṃ evaṃ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ṃ na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 āgaccheyyu’nti.
비구들이여, 근심·탄식·육체적 괴로움·정신적 괴로움·절망을 겪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아, 우리가 근심·탄식·육체적 괴로움·정신적 괴로움·절망을 겪기 마련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괴로움·정신적 괴로움·절망이 오지 않았으면!’
Na kho panetaṃ icchāya pattabbaṃ, idampi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그러나 이것은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399
비구들이여, 요약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곧 이러하다. 집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형성작용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들을 요약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라 한다.[불확실]
‘‘Katame ca, bhikkhave,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비구들이여,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idaṃ –
곧 이러하다 —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의식의 무더기다.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비구들이여, 이들을 일러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일어남의 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Samudayasaccaniddeso
400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바로 그 갈애이다.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며, 이것저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갈애이다. 곧 이러하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 –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기쁨을 찾는 바로 이 갈애이니, 곧 이러하다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 갈애는 어디에서 일어나며, 어디에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한 것,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한 것은 무엇인가?
‘‘Sā kho panesā, bhikkhave, taṇhā kattha uppajjamānā uppajjati, kattha nivisamānā nivis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 일어나며, 어디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가?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Kiñca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그러면 세상에서 무엇이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인가?
세상에서 눈은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감촉도, 마음의 대상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의식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접촉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의 인식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의도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갈애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숙고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거기에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거룩한 진리라 한다.[불확실]
Cakkhu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눈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Sotaṃ loke…pe… ghānaṃ loke… jivhā loke… kāyo loke… man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코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마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Rūpā loke… saddā loke… gandhā loke… rasā loke… phoṭṭhabbā loke… dhamm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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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khuviññāṇaṃ loke… sotaviññāṇaṃ loke… ghānaviññāṇaṃ loke… jivhāviññāṇaṃ loke… kāyaviññāṇaṃ loke… manoviññāṇ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눈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귀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코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혀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몸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마음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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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khusamphasso loke… sotasamphasso loke… ghānasamphasso loke… jivhāsamphasso loke… kāyasamphasso loke… manosamphass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눈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Cakkhusamphassajā vedanā loke… sotasamphassajā vedanā loke… ghānasamphassajā vedanā loke… jivhāsamphassajā vedanā loke… kāyasamphassajā vedanā loke… manosamphassajā vedan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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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saññā loke… saddasaññā loke… gandhasaññā loke… rasasaññā loke… phoṭṭhabbasaññā loke… dhammasaññ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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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sañcetanā loke… saddasañcetanā loke… gandhasañcetanā loke… rasasañcetanā loke… phoṭṭhabbasañcetanā loke… dhammasañcetan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Rūpataṇhā loke… saddataṇhā loke… gandhataṇhā loke… rasataṇhā loke… phoṭṭhabbataṇhā loke… dhammataṇh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Rūpavitakko loke… saddavitakko loke… gandhavitakko loke… rasavitakko loke… phoṭṭhabbavitakko loke… dhammavitakk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Rūpavicāro loke… saddavicāro loke… gandhavicāro loke… rasavicāro loke… phoṭṭhabbavicāro loke… dhammavicār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아 자리 잡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400.7에서 되살렸습니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소멸의 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Nirodhasaccaniddeso
401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이 가시어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을 놓아 버리고, 내던지고, 풀려나고,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 갈애는 어디에서 끊어지며, 어디에서 소멸하는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한 것,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한 것은 무엇인가?
‘‘Sā kho panesā, bhikkhave, taṇhā kattha pahīyamānā pahīyati, ka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 갈애는 어디서 버려져 버려지며, 어디서 소멸하여 소멸하는가?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Kiñca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그러면 세상에서 무엇이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인가?
세상에서 눈은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감촉도, 마음의 대상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의식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접촉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의 인식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의도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갈애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세상에서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숙고도 사랑스럽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 갈애가 끊어지고 거기에서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거룩한 진리라 한다.[불확실]
Cakkhu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눈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Sotaṃ loke…pe… ghānaṃ loke… jivhā loke… kāyo loke… man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코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마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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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ā loke… saddā loke… gandhā loke… rasā loke… phoṭṭhabbā loke… dhamm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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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khuviññāṇaṃ loke… sotaviññāṇaṃ loke… ghānaviññāṇaṃ loke… jivhāviññāṇaṃ loke… kāyaviññāṇaṃ loke… manoviññāṇ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눈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귀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코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혀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몸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마음의 의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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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khusamphasso loke… sotasamphasso loke… ghānasamphasso loke… jivhāsamphasso loke… kāyasamphasso loke… manosamphass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눈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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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khusamphassajā vedanā loke… sotasamphassajā vedanā loke … ghānasamphassajā vedanā loke… jivhāsamphassajā vedanā loke… kāyasamphassajā vedanā loke… manosamphassajā vedan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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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saññā loke… saddasaññā loke… gandhasaññā loke… rasasaññā loke… phoṭṭhabbasaññā loke… dhammasaññ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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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sañcetanā loke… saddasañcetanā loke… gandhasañcetanā loke… rasasañcetanā loke… phoṭṭhabbasañcetanā loke… dhammasañcetan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에 대한 의도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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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taṇhā loke… saddataṇhā loke… gandhataṇhā loke… rasataṇhā loke… phoṭṭhabbataṇhā loke… dhammataṇhā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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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vitakko loke… saddavitakko loke… gandhavitakko loke… rasavitakko loke… phoṭṭhabbavitakko loke… dhammavitakk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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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ūpavicāro loke… saddavicāro loke… gandhavicāro loke… rasavicāro loke… phoṭṭhabbavicāro loke… dhammavicāro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갈애는 버려져 버려지고, 거기서 소멸하여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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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길의 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Maggasaccaniddeso
402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바로 이 여덟 갈래의 거룩한 길이다. 곧 이러하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바로 이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길이니, 곧 이러하다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다.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을 아는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을 아는 지혜가 있다.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을 아는 지혜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견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Yaṃ kho, bhikkhave, dukkhe ñāṇaṃ, dukkhasamudaye ñāṇaṃ, dukkhanirodhe ñāṇaṃ,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ñāṇ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diṭṭhi.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앎,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앎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떠나려는 생각, 해치려 하지 않는 생각, 해코지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saṅkappo?
“비구들이여, 바른 사유란 무엇인가?
Nekkhammasaṅkappo abyāpādasaṅkappo avihiṃsāsaṅkappo,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saṅkappo.
출리의 사유, 악의 없음의 사유, 해치지 않음의 사유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sammāvācā?
“비구들이여,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
Musāvādā veramaṇī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samphappalāpā veramaṇī,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vācā.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행위란 무엇인가? 산 생명을 죽이는 일,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 감각적 쾌락에 관한 잘못된 행동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행위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kammanto?
“비구들이여, 바른 행위란 무엇인가?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adinnādānā veramaṇī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kammanto.
산 것을 죽이는 일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그릇된 행위를 삼가는 것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생계란 무엇인가?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린다. 그리고 바른 생계로 삶을 꾸려 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생계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ājīvo?
“비구들이여, 바른 생계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ariyasāvako micchāājīvaṃ pahāya sammāājīvena jīvitaṃ kappeti,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ājīvo.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삶을 꾸린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노력이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이를 위해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것들은 버리려 한다. 이를 위해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아직 생기지 않은 좋고 이로운 것들은 일으키려 한다. 이를 위해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이미 생긴 좋고 이로운 것들은 머물러 사라지지 않게 하려 한다. 더욱 늘어나고 널리 퍼져, 닦아서 완전해지게 하려 한다. 이를 위해 의욕을 내고, 애쓰고, 정진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노력이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vāyāmo?
“비구들이여, 바른 정진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하고, 잊지 않고, 더욱 자라게 하고, 넓히고, 닦아 완성하려고 열의를 내고, 애쓰고, 정진을 다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쓴다.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vāyāmo.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열심히, 알아차리며,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열심히, 알아차리며,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열심히, 알아차리며,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들에서 법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열심히, 알아차리며,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불확실]
‘‘Katamā ca, bhikkhave, sammāsati?
“비구들이여, 바른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sati.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바른 삼매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서 완전히 떨어지고, 해로운 것들에서 떨어진다. 그리하여 생각과 고찰이 있고, 떨어짐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생각과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하여 생각도 고찰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기쁨에서도 마음이 멀어져 평온하게 머문다.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이라 부르는 셋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린다. 이전의 즐거움과 근심이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삼매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라 한다.[불확실]
‘‘Katamo ca, bhikkhave, sammāsamādhi?
“비구들이여, 바른 삼매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희열이 식어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samādhi.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403
이처럼 그는 안으로 법들에서 법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법들에서 법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법들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사라지는 모습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따라서도 지켜보며 머문다. ‘법들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확립된다. 지혜와 거듭 알아차림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된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붙들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처럼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법들에서 법을 따라 지켜보며 머문다. 진리의 항목이 끝났다. 법을 따라 지켜봄이 끝났다.[불확실]
‘‘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또는 법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물고, 법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또는 ‘법이 있다’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확립되나니, 오직 앎을 위한 만큼, 오직 거듭 마음챙기기 위한 만큼이다.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서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Saccapabbaṃ niṭṭhitaṃ.
진리의 절이 끝났다.
Dhammānupassanā niṭṭhitā.
법을 거듭 살핌이 끝났다.
404
비구들이여, 누구든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칠 년 동안 이처럼 닦는다고 하자.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남음이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얻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자. 육 년, 오 년, 사 년, 삼 년, 이 년, 일 년을 닦는다 해도 같다. 비구들이여, 일 년도 그만두자.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ṃ bhāveyya sattavassāni, tassa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diṭṭheva dhamme aññā;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년 동안 닦으면,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 지금 여기서 완전한 앎에 이르거나,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
취착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된다.
‘‘Tiṭṭhantu, bhikkhave, sattavassāni.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자.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ṃ bhāveyya cha vassāni…pe… pañca vassāni… cattāri vassāni… tīṇi vassāni… dve vassāni… ekaṃ vassaṃ… tiṭṭhatu, bhikkhave, ekaṃ vassaṃ.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 동안 닦으면,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 지금 여기서 완전한 앎에 이르거나, 취착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된다. 오 년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사 년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삼 년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이 년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일 년 동안 닦아도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일 년도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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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누구든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일곱 달 동안 이처럼 닦는다고 하자.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남음이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얻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일곱 달은 그만두자. 여섯 달, 다섯 달, 넉 달, 석 달, 두 달, 한 달, 반 달을 닦는다 해도 같다. 비구들이여, 반 달도 그만두자.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ṃ bhāveyya sattamāsāni, tassa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diṭṭheva dhamme aññā;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 동안 닦으면,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 지금 여기서 완전한 앎에 이르거나,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
취착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된다.
‘‘Tiṭṭhantu, bhikkhave, satta māsāni.
“비구들이여, 일곱 달은 그만두자.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ṃ bhāveyya cha māsāni…pe… pañca māsāni… cattāri māsāni… tīṇi māsāni … dve māsāni… ekaṃ māsaṃ… aḍḍhamāsaṃ… tiṭṭhatu, bhikkhave, aḍḍhamāso.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여섯 달 동안 닦으면,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 지금 여기서 완전한 앎에 이르거나, 취착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된다. 다섯 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넉 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석 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두 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한 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고, 반달 동안 닦아도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반달도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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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누구든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레 동안 이처럼 닦는다고 하자.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지금 이 생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남음이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얻는 것이다.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ṃ bhāveyya sattāhaṃ, tassa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diṭṭheva dhamme aññā;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이레 동안 닦으면, 그에게는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 지금 여기서 완전한 앎에 이르거나,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취착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된다.”
405
비구들이여, 오직 한 길이 있다.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길이다. 그 길은 슬픔과 탄식을 건너게 하고, 고통과 근심을 사라지게 한다. 바른 방법을 얻게 하고, 열반을 직접 깨닫게 한다. 바로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내가 앞서 한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아홉째, 대념처경이 끝났다.
‘‘Ekāyano ayaṃ, bhikkhave, maggo sattānaṃ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ṃ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ṃ cattāro satipaṭṭhānāti.
“비구들이여, 이 길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건너게 하고,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고, 바른 이치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하나로 난 길이니,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nti.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마하사띠빳타나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