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DN 9

뽓타빠다 경

Poṭṭhapādasuttaṃ

검토 전교차 검사 265 · 검토 전 182

9. Poṭṭhapādasuttaṃ

9. 뽓타빠다 경

PN:dn9/0.3 · 교차 검사

406

뽓타빠다 유행자 이야기Poṭṭhapādaparibbājakavatthu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유행자 뽓타빠다는 말리까 원림에 있었다. 그곳은 띤두까 나무가 늘어선 한 홀 강당, 사마야빠와다까였다. 삼백 명쯤 되는 큰 유행자 무리가 그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날 아침 세존께서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를 드셨다. 그리고 탁발하러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PN:dn9/406.2 · 교차 검사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PN:dn9/406.3 · 교차 검사

Tena kho pana samayena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samayappavādake tindukācīre ekasālake mallikāya ārāme paṭivasati mahatiyā paribbājakaparisāya saddhiṃ tiṃsamattehi paribbājakasatehi.

그때 뽓타빠다 유행자는 말리까 원림에 있는, 토론장이 있고 띤두까 나무로 둘러싸이고 홀이 하나 있는 곳에서, 유행자 백 명 단위로 서른쯤 되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PN:dn9/406.4 · 교차 검사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사왓티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PN:dn9/406.5 · 교차 검사

407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사왓티에서 탁발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말리까 원림의 사마야빠와다까, 띤두까 나무 늘어선 한 홀 강당에 유행자 뽓타빠다가 있다. 그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강당으로 가셨다.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PN:dn9/407.1 · 교차 검사

‘‘atippago kho tāva sāvatthiyaṃ piṇḍāya carituṃ.

‘사왓티로 탁발하러 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PN:dn9/407.2 · 교차 검사

Yaṃnūnāhaṃ yena samayappavādako tindukācīro ekasālako mallikāya ārāmo, yena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tenupasaṅkameyya’’nti.

나는 토론장이 있고 띤두까 나무로 둘러싸이고 홀이 하나 있는 말리까 원림, 곧 뽓타빠다 유행자가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

PN:dn9/407.3 · 교차 검사

Atha kho bhagavā yena samayappavādako tindukācīro ekasālako mallikāya ārām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토론장이 있고 띤두까 나무로 둘러싸이고 홀이 하나 있는 말리까 원림으로 가셨다.

PN:dn9/407.4 · 교차 검사

408

그때 유행자 뽓타빠다는 큰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리는 높고 커다란 소리로 떠들썩하게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운 일 이야기, 전쟁 이야기가 오갔다. 음식, 마실 것, 옷, 잠자리, 꽃다발, 향 이야기도 있었다. 친척, 탈것, 마을, 읍, 도시, 지방 이야기도 나왔다.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길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들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갖가지 잡담이 이어졌다.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이야기했고, 이러저러하게 있다거나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mahatiyā paribbājakaparisāya saddhiṃ nisinno hoti unnādiniyā uccāsaddamahāsaddāya anekavihitaṃ tiracchānakathaṃ kathentiyā.

그때 뽓타빠다 유행자는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무리는 떠들썩하고 소리 높여 크게 떠들며 갖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PN:dn9/408.1 · 교차 검사

Seyyathidaṃ –

이를테면 —

PN:dn9/408.2 · 교차 검사

rājakathaṃ corakathaṃ mahāmattakathaṃ senākathaṃ bhayakathaṃ yuddhakathaṃ annakathaṃ pānakathaṃ vatthakathaṃ sayanakathaṃ mālākathaṃ gandhakathaṃ ñātikathaṃ yānakathaṃ gāmakathaṃ nigamakathaṃ nagarakathaṃ janapadakathaṃ itthikathaṃ sūrakathaṃ visikhākathaṃ kumbhaṭṭhānakathaṃ pubbapetakathaṃ nānattakathaṃ lokakkhāyikaṃ samuddakkhāyikaṃ itibhavābhavakathaṃ iti vā.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움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 이야기, 마을 이야기, 성읍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물 긷는 곳 이야기, 먼저 죽은 이들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된다는 존재와 비존재 이야기, 이런 것들이었다.

PN:dn9/408.3 · 교차 검사

409

유행자 뽓타빠다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 무리를 조용히 시켰다.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그분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함을 칭찬하는 분입니다. 우리 무리가 조용한 것을 보면 가까이 오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이 말에 유행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Addasā kho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dūratova āgacchantaṃ;

뽓타빠다 유행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PN:dn9/409.1 · 교차 검사

disvāna sakaṃ parisaṃ saṇṭhapesi –

보고서 자기 무리를 다잡았다 —

PN:dn9/409.2 · 교차 검사

‘‘appasaddā bhonto hontu, mā bhonto saddamakattha.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 소리 내지 마십시오.

PN:dn9/409.3 · 교차 검사

Ayaṃ samaṇo gotamo āgacchati.

이 사문 고따마가 옵니다.

PN:dn9/409.4 · 교차 검사

Appasaddakāmo kho so āyasmā appasaddassa vaṇṇavādī.

그 존자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칭찬합니다.

PN:dn9/409.5 · 교차 검사

Appeva nāma appasaddaṃ parisaṃ viditvā upasaṅkamitabbaṃ maññeyyā’’ti.

무리가 조용한 것을 알면 다가와야겠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PN:dn9/409.6 · 교차 검사

Evaṃ vutte te paribbājakā tuṇhī ahesuṃ.

이렇게 말하자 그 유행자들은 조용해졌다.

PN:dn9/409.7 · 교차 검사

410

세존께서는 유행자 뽓타빠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셨다. 뽓타빠다가 세존께 말했다. “세존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이곳까지 걸음해 주셨습니다. 앉으십시오. 이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뽓타빠다는 낮은 자리를 하나 골라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앉았는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었는가?”

Atha kho bhagavā yena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뽓타빠다 유행자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PN:dn9/410.1 · 교차 검사

Atha kho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뽓타빠다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PN:dn9/410.2 · 교차 검사

‘‘etu kho, bhante, bhagavā.

“세존이시여, 오십시오.

PN:dn9/410.3 · 교차 검사

Svāgataṃ,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잘 오셨습니다.

PN:dn9/410.4 · 교차 검사

Cirassaṃ kho, bhante, bhagavā imaṃ pariyāyamakāsi, yadidaṃ idhāgamanāy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오랜만에 이런 걸음을 하셨습니다, 곧 이곳에 오시는 걸음을.

PN:dn9/410.5 · 교차 검사

Nisīdatu, bhante, bhagavā, idaṃ āsanaṃ paññatta’’nti.

세존이시여, 앉으십시오. 이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PN:dn9/410.6 · 교차 검사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세존께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PN:dn9/410.7 · 교차 검사

Poṭṭhapādopi kho paribbājako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뽓타빠다 유행자도 낮은 자리 하나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PN:dn9/410.8 · 교차 검사

Ekamantaṃ nisinnaṃ kho poṭṭhapādaṃ paribbājak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뽓타빠다 유행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dn9/410.9 · 교차 검사

‘‘kāya nuttha, poṭṭhapāda,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뽓타빠다여, 그대들은 지금 여기서 무슨 이야기로 모여 앉아 있으며, 또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PN:dn9/410.10 · 교차 검사

인식의 완전한 소멸에 대한 이야기Abhisaññānirodhakathā

411

이 말씀에 뽓타빠다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는 접어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들으실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 혹은 그보다 더 전에, 여러 다른 종파의 사문과 바라문들이 구경거리 집회장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때 인식이 멈추는 일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이런 물음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인식이 멈추는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거기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인식은 원인도 조건도 없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인식이 생겨나면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인식이 사라지면 인식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그들은 인식이 멈추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소. 사람의 인식이야말로 그 사람의 자아요. 그 인식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것이오. 인식이 들어오면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인식이 나가면 인식이 없는 사람이 되오.’ 이렇게 또 어떤 이들은 인식이 멈추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소.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지닌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소. 그들이 이 사람의 인식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는 것이오. 끌어당기면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밀어내면 인식이 없는 사람이 되오.’ 이렇게도 어떤 이들은 인식이 멈추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소.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있소. 그들이 이 사람의 인식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는 것이오. 끌어당기면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밀어내면 인식이 없는 사람이 되오.’ 이렇게 또 어떤 이들은 인식이 멈추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는 바로 세존을 떠올렸습니다. ‘아, 참으로 세존이시다. 아,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이런 문제들에 가장 능통하신 분이니.’ 세존께서는 이 문제에 능통하시고, 인식이 멈추는 일을 잘 알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인식이 멈추는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불확실]

Evaṃ vutte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PN:dn9/411.1 · 교차 검사

‘‘tiṭṭhatesā, bhante, kathā, yāya mayaṃ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세존이시여, 저희가 지금 모여 앉아 나누던 그 이야기는 접어 두십시오.

PN:dn9/411.2 · 교차 검사

Nesā, bhante, kathā bhagavato dullabhā bhavissati pacchāpi savanāya.

세존이시여,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라도 들으시기에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PN:dn9/411.3 · 교차 검사

Purimāni, bhante, divasāni purimatarāni, nānātitthiyān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kotūhalasālāya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abhisaññānirodhe kathā udapādi –

세존이시여, 며칠 전, 그보다 더 앞선 날들에, 여러 외도의 사문·바라문들이 논쟁하는 집회장에 모여 앉아 함께 모였을 때 인식의 완전한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

PN:dn9/411.4 · 교차 검사

‘kathaṃ nu kho, bho, abhisaññānirodho hotī’ti?

‘여보시오, 인식의 완전한 소멸은 어떻게 있게 됩니까?’

PN:dn9/411.5 · 교차 검사

Tatrekacce evamāhaṃsu –

거기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PN:dn9/411.6 · 교차 검사

‘ahetū appaccayā purisassa saññā uppajjantipi nirujjhantipi.

‘사람의 인식은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PN:dn9/411.7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uppajjanti, saññī tasmiṃ samaye hoti.

일어나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있는 자가 됩니다.

PN:dn9/411.8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nirujjhanti, asaññī tasmiṃ samaye hotī’ti.

사라지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없는 자가 됩니다.’

PN:dn9/411.9 · 교차 검사

Ittheke abhisaññānirodhaṃ paññape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천명합니다.

PN:dn9/411.10 · 교차 검사

‘‘Tamañño evamāha –

그에게 다른 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PN:dn9/411.11 · 교차 검사

‘na kho pana metaṃ, bho, evaṃ bhavissati.

‘여보시오, 내게는 그것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PN:dn9/411.12 · 교차 검사

Saññā hi, bho, purisassa attā.

여보시오, 인식이야말로 사람의 자아입니다.

PN:dn9/411.13 · 교차 검사

Sā ca kho upetipi apetipi.

그런데 그것은 다가오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합니다.

PN:dn9/411.14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upeti, saññī tasmiṃ samaye hoti.

다가오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있는 자가 됩니다.

PN:dn9/411.15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apeti, asaññī tasmiṃ samaye hotī’ti.

떠나가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없는 자가 됩니다.’

PN:dn9/411.16 · 교차 검사

Ittheke abhisaññānirodhaṃ paññape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천명합니다.

PN:dn9/411.17 · 교차 검사

‘‘Tamañño evamāha –

그에게 다른 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PN:dn9/411.18 · 교차 검사

‘na kho pana metaṃ, bho, evaṃ bhavissati.

‘여보시오, 내게는 그것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PN:dn9/411.19 · 교차 검사

Santi hi, bho, samaṇabrāhmaṇā mahiddhikā mahānubhāvā.

여보시오,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닌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PN:dn9/411.20 · 교차 검사

Te imassa purisassa saññaṃ upakaḍḍhantipi apakaḍḍhantipi.

그들이 이 사람의 인식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끌어내기도 합니다.

PN:dn9/411.21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upakaḍḍhanti, saññī tasmiṃ samaye hoti.

끌어들이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있는 자가 됩니다.

PN:dn9/411.22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apakaḍḍhanti, asaññī tasmiṃ samaye hotī’ti.

끌어내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없는 자가 됩니다.’

PN:dn9/411.23 · 교차 검사

Ittheke abhisaññānirodhaṃ paññape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천명합니다.

PN:dn9/411.24 · 교차 검사

‘‘Tamañño evamāha –

그에게 다른 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PN:dn9/411.25 · 교차 검사

‘na kho pana metaṃ, bho, evaṃ bhavissati.

‘여보시오, 내게는 그것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PN:dn9/411.26 · 교차 검사

Santi hi, bho, devatā mahiddhikā mahānubhāvā.

여보시오,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있습니다.

PN:dn9/411.27 · 교차 검사

Tā imassa purisassa saññaṃ upakaḍḍhantipi apakaḍḍhantipi.

그들이 이 사람의 인식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끌어내기도 합니다.

PN:dn9/411.28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upakaḍḍhanti, saññī tasmiṃ samaye hoti.

끌어들이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있는 자가 됩니다.

PN:dn9/411.29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apakaḍḍhanti, asaññī tasmiṃ samaye hotī’ti.

끌어내는 때에는 그때 인식이 없는 자가 됩니다.’

PN:dn9/411.30 · 교차 검사

Ittheke abhisaññānirodhaṃ paññape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천명합니다.

PN:dn9/411.31 · 교차 검사

‘‘Tassa mayhaṃ, bhante, bhagavantaṃyeva ārabbha sati udapād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바로 세존을 두고 이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PN:dn9/411.32 · 교차 검사

‘aho nūna bhagavā, aho nūna sugato, yo imesaṃ dhammānaṃ sukusalo’ti.

‘아, 세존이시라면, 아,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라면, 이 법들에 아주 밝으신 분이실 텐데.’

PN:dn9/411.33 · 교차 검사

Bhagavā, bhante, kusalo, bhagavā pakataññū abhisaññānirodhassa.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능숙하시고, 세존께서는 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훤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PN:dn9/411.34 · 교차 검사

Kathaṃ nu kho, bhante, abhisaññānirodho hotī’’ti?

세존이시여, 인식의 완전한 소멸은 어떻게 있게 됩니까?”

PN:dn9/411.35 · 교차 검사

원인이 있는 인식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Sahetukasaññuppādanirodhakathā

412

“뽓타빠다여, 그중에는 이렇게 말한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사람의 인식은 원인도 조건도 없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틀렸다. 그들의 말은 출발부터 어긋나 있다. 왜 그런가? 사람의 인식은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어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Tatra, poṭṭhapād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māhaṃsu –

“뽓타빠다여, 거기서 이렇게 말한 그 사문·바라문들이 있으니 —

PN:dn9/412.1 · 교차 검사

‘ahetū appaccayā purisassa saññā uppajjantipi nirujjhantipī’ti, āditova tesaṃ aparaddhaṃ.

‘사람의 인식은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고 한 그들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PN:dn9/412.2 · 교차 검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dn9/412.3 · 교차 검사

Sahetū hi, poṭṭhapāda, sappaccayā purisassa saññā uppajjantipi nirujjhantipi.

뽓타빠다여, 사람의 인식은 원인이 있어서, 조건이 있어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PN:dn9/412.4 · 교차 검사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2.5 · 교차 검사

413

뽓타빠다가 물었다. “그 닦음이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다. 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이다. 이렇게 앞서 설한 대로 자세한 설명이 그대로 이어진다. 뽓타빠다여, 이렇게 비구는 계를 갖춘다. 이어지는 내용도 앞서 설한 대로다. 비구는 자기 안에서 다섯 가지 장애가 사라진 것을 본다. 그러면 기쁨이 일어난다. 기쁜 이에게는 환희가 일어나고, 환희로운 마음으로 몸이 편안해진다. 몸이 편안해지면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운 이의 마음은 집중된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법에서도 벗어난다. 그리하여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전에 지녔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떠남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불확실]

‘‘Kā ca sikkhā’’ti?

“그러면 무엇이 배움입니까?”

PN:dn9/413.1 · 교차 검사

Bhagavā avoca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PN:dn9/413.2 · 교차 검사

‘‘idha, poṭṭhapād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pe… (yathā 190-212 anucchedesu, evaṃ vitthāretabbaṃ).

“뽓타빠다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으신 분, 세존이시다 (190~212 단락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상세히 펼쳐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90.2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13.3 · 교차 검사

Evaṃ kho, poṭṭhapāda, bhikkhu sīlasampanno hoti…pe… tassime pañca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갖춘 자가 된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장애가 자기 안에서 버려진 것을 살펴보며 기쁨이 생기고, 기뻐하는 그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에 찬 마음을 지닌 그의 몸이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한 그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그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13.4 · 교차 검사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PN:dn9/413.5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kām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6 · 교차 검사

Viveka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viveka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7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8 · 교차 검사

Ayaṃ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이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9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하여 거친 생각도 미세한 생각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떠남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삼매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PN:dn9/413.10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viveka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11 · 교차 검사

Samādhi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samādhi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12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13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14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환희에서도 마음이 멀어져 평온하게 머문다. 새김이 있고 알아차림이 있으며,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은 이를 두고 ‘평온하고 새김이 있으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삼매에서 생긴 환희와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평온과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가시어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그것을 이렇게 일컫는다 —

PN:dn9/413.15 · 교차 검사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그렇게 제3선에 들어 머문다.

PN:dn9/413.16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samādhijapītisukhasukhumasacc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17 · 교차 검사

Upekkhāsukh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upekkhāsukh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평온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평온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18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19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20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가라앉았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새김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평온과 즐거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려,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PN:dn9/413.21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upekkhāsukhasukhumasacc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평온과 행복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22 · 교차 검사

Adukkhamasukh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adukkhamasukh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23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24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25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모두 뛰어넘는다. 부딪힘에 대한 인식은 가라앉고, 여러 가지 다른 인식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러고는 ‘허공은 끝이 없다’며 공간이 끝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물질에 대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공간이 끝없는 경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dn9/413.26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rūp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물질에 대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27 · 교차 검사

Ākāsān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ākāsān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28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29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30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공간이 끝없는 경지를 모두 뛰어넘는다. 그러고는 ‘의식은 끝이 없다’며 의식이 끝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공간이 끝없는 경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의식이 끝없는 경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dn9/413.31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ākāsān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허공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32 · 교차 검사

Viññāṇ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viññāṇ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33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34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35 · 교차 검사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모두 뛰어넘는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의식이 끝없는 경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은 사라진다. 그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다. 그는 그때 오직 그 인식만을 지닌 이가 된다. 이렇게도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생겨나고, 닦음에 따라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이것 또한 닦음이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Puna caparaṃ, poṭṭhapāda,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PN:dn9/413.36 · 교차 검사

Tassa yā purimā viññāṇañcāyatanasukhumasaccasaññā, sā nirujjhati.

그에게 이전의 의식이 무한한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 그것이 사라진다.

PN:dn9/413.37 · 교차 검사

Ākiñcaññāyatanasukhumasaccasaññā tasmiṃ samaye hoti, ākiñcaññāyatanasukhumasaccasaññīyeva tasmiṃ samaye hoti.

그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이 있고, 그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라는 미세하고 참된 인식을 지닌 자일 뿐이다.

PN:dn9/413.38 · 교차 검사

Evampi sikkhā ekā saññā uppajjati, sikkhā ekā saññā nirujjhati.

이와 같이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배움으로써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PN:dn9/413.39 · 교차 검사

Ayampi sikkhā’’ti bhagavā avoca.

이것도 배움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PN:dn9/413.40 · 교차 검사

414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서 자기 인식을 지니게 된다. 거기서 다음 단계로, 또 그다음 단계로 차례차례 나아가 인식의 정점에 이른다. 인식의 정점에 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나에게 좋지 않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낫다. 내가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어내면, 지금의 이 인식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 대신 거친 다른 인식들이 생겨날 것이다. 차라리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뜻도 지어내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생각하지도 않고 뜻을 지어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니 그 인식들은 사라지고, 거친 다른 인식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에 닿는다. 뽓타빠다여,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 알아차리며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증득이 있게 된다. 뽓타빠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지금까지 이렇게 차례차례 알아차리며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증득을 들은 적이 있는가?”

‘‘Yato kho, poṭṭhapāda, bhikkhu idha sakasaññī hoti, so tato amutra tato amutra anupubbena saññaggaṃ phusati.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서 자기 인식을 지닌 자가 된 때부터, 그는 거기서 저기로, 거기서 저기로 차례차례 인식의 정점에 닿는다.

PN:dn9/414.1 · 교차 검사

Tassa saññagge ṭhitassa evaṃ hoti –

인식의 정점에 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PN:dn9/414.2 · 교차 검사

‘cetayamānassa me pāpiyo, acetayamānassa me seyyo.

‘의도하는 나에게는 더 나쁘고, 의도하지 않는 나에게는 더 낫다.

PN:dn9/414.3 · 교차 검사

Ahañceva kho pana ceteyyaṃ, abhisaṅkhareyyaṃ, imā ca me saññā nirujjheyyuṃ, aññā ca oḷārikā saññā uppajjeyyuṃ;

그런데 내가 의도하고 지어내면, 나의 이 인식들은 사라지고 다른 거친 인식들이 일어날 것이다.

PN:dn9/414.4 · 교차 검사

yaṃnūnāhaṃ na ceva ceteyyaṃ na ca abhisaṅkhareyya’nti.

그러니 나는 의도하지도 말고 지어내지도 말아야겠다.’

PN:dn9/414.5 · 교차 검사

So na ceva ceteti, na ca abhisaṅkharoti.

그는 의도하지도 않고 지어내지도 않는다.

PN:dn9/414.6 · 교차 검사

Tassa acetayato anabhisaṅkharoto tā ceva saññā nirujjhanti, aññā ca oḷārikā saññā na uppajjanti.

의도하지 않고 지어내지 않는 그에게 그 인식들은 사라지고, 다른 거친 인식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PN:dn9/414.7 · 교차 검사

So nirodhaṃ phusati.

그는 소멸에 닿는다.

PN:dn9/414.8 · 교차 검사

Evaṃ kho, poṭṭhapāda, anupubbābhisaññānirodha-sampajāna-samāpatti hoti.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차례차례 인식이 완전히 소멸함에 또렷이 알아차리며 드는 증득이 있다.

PN:dn9/414.9 · 교차 검사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api nu te ito pubbe evarūpā anupubbābhisaññānirodha-sampajāna-samāpatti sutapubbā’’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전에 이와 같은, 차례차례 인식이 완전히 소멸함에 또렷이 알아차리며 드는 증득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PN:dn9/414.10 · 교차 검사

뽓타빠다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서 자기 인식을 지니게 된다. 거기서 다음 단계로, 또 그다음 단계로 차례차례 나아가 인식의 정점에 이른다. 인식의 정점에 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나에게 좋지 않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낫다. 내가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어내면, 이 인식들은 사라지고 거친 다른 인식들이 생겨날 것이다. 차라리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뜻도 지어내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생각하지도 않고 뜻을 지어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니 그 인식들은 사라지고, 거친 다른 인식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에 닿는다. 뽓타빠다여,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 알아차리며 인식의 소멸에 이르는 증득이 있게 된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뽓타빠다여.”

‘‘No hetaṃ, bhante.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PN:dn9/414.11 · 교차 검사

Evaṃ kho ahaṃ, bhante, bhagavato bhāsitaṃ ājānāmi –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을 이렇게 압니다 —

PN:dn9/414.12 · 교차 검사

‘yato kho, poṭṭhapāda, bhikkhu idha sakasaññī hoti, so tato amutra tato amutra anupubbena saññaggaṃ phusati, tassa saññagge ṭhitassa evaṃ hoti –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서 자기 인식을 지닌 자가 된 때부터, 그는 거기서 저기로, 거기서 저기로 차례차례 인식의 정점에 닿고, 인식의 정점에 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PN:dn9/414.13 · 교차 검사

‘‘cetayamānassa me pāpiyo, acetayamānassa me seyyo.

“의도하는 나에게는 더 나쁘고, 의도하지 않는 나에게는 더 낫다.

PN:dn9/414.14 · 교차 검사

Ahañceva kho pana ceteyyaṃ abhisaṅkhareyyaṃ, imā ca me saññā nirujjheyyuṃ, aññā ca oḷārikā saññā uppajjeyyuṃ;

그런데 내가 의도하고 지어내면, 나의 이 인식들은 사라지고 다른 거친 인식들이 일어날 것이다.

PN:dn9/414.15 · 교차 검사

yaṃnūnāhaṃ na ceva ceteyyaṃ, na ca abhisaṅkhareyya’’nti.

그러니 나는 의도하지도 말고 지어내지도 말아야겠다.”

PN:dn9/414.16 · 교차 검사

So na ceva ceteti, na cābhisaṅkharoti, tassa acetayato anabhisaṅkharoto tā ceva saññā nirujjhanti, aññā ca oḷārikā saññā na uppajjanti.

그는 의도하지도 않고 지어내지도 않으며, 의도하지 않고 지어내지 않는 그에게 그 인식들은 사라지고, 다른 거친 인식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PN:dn9/414.17 · 교차 검사

So nirodhaṃ phusati.

그는 소멸에 닿는다.

PN:dn9/414.18 · 교차 검사

Evaṃ kho, poṭṭhapāda, anupubbābhisaññānirodha-sampajāna-samāpatti hotī’’’ti.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차례차례 인식이 완전히 소멸함에 또렷이 알아차리며 드는 증득이 있다.’”

PN:dn9/414.19 · 교차 검사

‘‘Evaṃ, poṭṭhapādā’’ti.

“그렇다, 뽓타빠다여.”

PN:dn9/414.20 · 교차 검사

415

뽓타빠다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식의 정점이 하나뿐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여럿이라고도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답하셨다. “뽓타빠다여, 나는 인식의 정점이 하나라고도 말하고, 여럿이라고도 말한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인식의 정점이 하나라고도 하시고 여럿이라고도 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소멸에 닿는 방식이 어떠한가에 따라 나는 그에 맞게 인식의 정점을 말한다. 이렇게 나는 인식의 정점이 하나라고도 말하고 여럿이라고도 말한다.”

‘‘Ekaññeva nu kho, bhante, bhagavā saññaggaṃ paññapeti, udāhu puthūpi saññagge paññapetī’’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식의 정점을 하나만 천명하십니까, 아니면 여럿을 천명하십니까?”

PN:dn9/415.1 · 교차 검사

‘‘Ekampi kho ahaṃ, poṭṭhapāda, saññaggaṃ paññapemi, puthūpi saññagge paññapemī’’ti.

“뽓타빠다여, 나는 인식의 정점을 하나로도 천명하고, 여럿으로도 천명한다.”

PN:dn9/415.2 · 교차 검사

‘‘Yathā kathaṃ pana, bhante, bhagavā ekampi saññaggaṃ paññapeti, puthūpi saññagge paññapetī’’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세존께서는 인식의 정점을 하나로도 천명하시고, 여럿으로도 천명하십니까?”

PN:dn9/415.3 · 교차 검사

‘‘Yathā yathā kho, poṭṭhapāda, nirodhaṃ phusati, tathā tathāhaṃ saññaggaṃ paññapemi.

“뽓타빠다여, 소멸에 닿는 그만큼 그만큼, 나는 그만큼 그만큼 인식의 정점을 천명한다.

PN:dn9/415.4 · 교차 검사

Evaṃ kho ahaṃ, poṭṭhapāda, ekampi saññaggaṃ paññapemi, puthūpi saññagge paññapemī’’ti.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나는 인식의 정점을 하나로도 천명하고, 여럿으로도 천명한다.”

PN:dn9/415.5 · 교차 검사

416

뽓타빠다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인식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앎이 생깁니까? 앎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인식이 생깁니까? 아니면 인식과 앎이 앞뒤 없이 함께 생깁니까?” 세존께서 답하셨다. “뽓타빠다여, 인식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앎이 생긴다. 인식이 생김으로써 앎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안다. ‘이것을 조건으로 나에게 앎이 생겼구나.’ 뽓타빠다여, 이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인식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앎이 생긴다는 것, 인식이 생김으로써 앎이 생긴다는 것을.”

‘‘Saññā nu kho, bhante, paṭhamaṃ uppajjati, pacchā ñāṇaṃ, udāhu ñāṇaṃ paṭhamaṃ uppajjati, pacchā saññā, udāhu saññā ca ñāṇañca apubbaṃ acarimaṃ uppajjantī’’ti?

“세존이시여, 인식이 먼저 일어나고 앎이 나중입니까, 아니면 앎이 먼저 일어나고 인식이 나중입니까, 아니면 인식과 앎이 앞도 뒤도 없이 함께 일어납니까?”

PN:dn9/416.1 · 교차 검사

‘‘Saññā kho, poṭṭhapāda, paṭhamaṃ uppajjati, pacchā ñāṇaṃ, saññuppādā ca pana ñāṇuppādo hoti.

“뽓타빠다여, 인식이 먼저 일어나고 앎이 나중이며, 인식이 일어남으로부터 앎의 일어남이 있다.

PN:dn9/416.2 · 교차 검사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PN:dn9/416.3 · 교차 검사

‘idappaccayā kira me ñāṇaṃ udapādī’ti.

‘이것을 조건으로 나에게 앎이 일어났구나.’

PN:dn9/416.4 · 교차 검사

Iminā kho 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

뽓타빠다여, 이 방식으로 이것을 알아야 한다 —

PN:dn9/416.5 · 교차 검사

yathā saññā paṭhamaṃ uppajjati, pacchā ñāṇaṃ, saññuppādā ca pana ñāṇuppādo hotī’’ti.

인식이 먼저 일어나고 앎이 나중이며, 인식이 일어남으로부터 앎의 일어남이 있다는 것을.”

PN:dn9/416.6 · 교차 검사

인식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Saññāattakathā

417

“세존이시여, 인식이 사람의 자아입니까? 아니면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습니까?”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떤 자아를 인정하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거친 자아를 인정합니다. 그 자아는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되어 있으며 덩어리 음식을 먹고 삽니다.” “뽓타빠다여, 그대의 자아가 정말 그렇게 거칠다고 하자.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되어 있으며 덩어리 음식을 먹고 사는 자아라고 하자. 그래도 그대에게는 인식이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게 된다. 이것은 이렇게도 알 수 있다. 거친 이 자아는 그대로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다고 알아야 한다.”[불확실]

‘‘Saññā nu kho, bhante, purisassa attā, udāhu aññā saññā añño attā’’ti?

“세존이시여, 인식이 사람의 자아입니까, 아니면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릅니까?”

PN:dn9/417.1 · 검토 전

‘‘Kaṃ pana tvaṃ, poṭṭhapāda, attānaṃ paccesī’’ti?

“그런데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떤 것을 자아로 여기는가?”

PN:dn9/417.2 · 검토 전

‘‘Oḷārikaṃ kho ahaṃ, bhante, attānaṃ paccemi rūpiṃ cātumahābhūtikaṃ kabaḷīkārāhārabhakkha’’nti.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을 지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거친 자아를 자아로 여깁니다.”

PN:dn9/417.3 · 검토 전

‘‘Oḷāriko ca hi te, poṭṭhapāda, attā abhavissa rūpī cātumahābhūtiko kabaḷīkārāhārabhakkho.

“뽓타빠다여, 설령 그대의 자아가 물질을 지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거친 것이라 하자.

PN:dn9/417.4 · 검토 전

Evaṃ santaṃ kho te, poṭṭhapāda,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그렇게 있을 때에도 그대에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를 것이다.

PN:dn9/417.5 · 검토 전

Tadamināp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그러니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7.6 · 검토 전

Tiṭṭhateva sāyaṃ, poṭṭhapāda, oḷāriko attā rūpī cātumahābhūtiko kabaḷīkārāhārabhakkho, atha imassa purisassa aññā ca saññā uppajjanti, aññā ca saññā nirujjhanti.

뽓타빠다여, 물질을 지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그 거친 자아가 그대로 있다 하자. 그런데도 이 사람에게 어떤 인식들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들은 사라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17.7 · 검토 전

Iminā kho 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ti.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 이것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7.8 · 검토 전

418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인정합니다. 그 자아는 온갖 지체와 기관을 갖추었고 감각기능에 결함이 없습니다.” “뽓타빠다여, 그대의 자아가 정말 그렇다고 하자.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온갖 지체와 기관을 갖추었으며 감각기능에 결함이 없는 자아라고 하자. 그래도 그대에게는 인식이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게 된다. 이것도 이렇게 알 수 있다. 이 자아는 그대로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도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다고 알아야 한다.”

‘‘Manomayaṃ kho ahaṃ, bhante, attānaṃ paccemi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nti.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크고 작은 지체를 갖추고 기능이 모자람 없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자아로 여깁니다.”

PN:dn9/418.1 · 검토 전

‘‘Manomayo ca hi te, poṭṭhapāda, attā abhavissa sabbaṅgapaccaṅgī ahīnindriyo, evaṃ santampi kho te, poṭṭhapāda,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설령 그대의 자아가 모든 크고 작은 지체를 갖추고 기능이 모자람 없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자. 뽓타빠다여, 그렇게 있을 때에도 그대에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를 것이다.

PN:dn9/418.2 · 검토 전

Tadamināp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그러니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8.3 · 검토 전

Tiṭṭhateva sāyaṃ, poṭṭhapāda, manomayo attā sabbaṅgapaccaṅgī ahīnindriyo, atha imassa purisassa aññā ca saññā uppajjanti, aññā ca saññā nirujjhanti.

뽓타빠다여, 모든 크고 작은 지체를 갖추고 기능이 모자람 없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 자아가 그대로 있다 하자. 그런데도 이 사람에게 어떤 인식들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들은 사라진다.

PN:dn9/418.4 · 검토 전

Imināpi kho 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ti.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8.5 · 검토 전

419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인정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의 자아가 정말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래도 그대에게는 인식이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게 된다. 이것도 이렇게 알 수 있다.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이 자아는 그대로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인식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도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다고 알아야 한다.”

‘‘Arūpiṃ kho ahaṃ, bhante, attānaṃ paccemi saññāmaya’’nti.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자아로 여깁니다.”

PN:dn9/419.1 · 검토 전

‘‘Arūpī ca hi te, poṭṭhapāda, attā abhavissa saññāmayo, evaṃ santampi kho te, poṭṭhapāda,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설령 그대의 자아가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자. 뽓타빠다여, 그렇게 있을 때에도 그대에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를 것이다.

PN:dn9/419.2 · 검토 전

Tadamināp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

뽓타빠다여, 그러니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9.3 · 검토 전

Tiṭṭhateva sāyaṃ, poṭṭhapāda, arūpī attā saññāmayo, atha imassa purisassa aññā ca saññā uppajjanti, aññā ca saññā nirujjhanti.

뽓타빠다여,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그 자아가 그대로 있다 하자. 그런데도 이 사람에게 어떤 인식들은 일어나고 어떤 인식들은 사라진다.

PN:dn9/419.4 · 검토 전

Imināpi kho etaṃ, poṭṭhapā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aññāva saññā bhavissati añño attā’’ti.

뽓타빠다여, 이런 방식으로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른지를.”

PN:dn9/419.5 · 검토 전

420

“세존이시여, 제가 이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인식이 사람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는지를 말입니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견해도 다르고 인내하는 바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수행도 다르고 스승도 다르다. 그래서 이것을 알기 어렵다. 인식이 사람의 자아인지, 인식은 따로 있고 자아도 따로 있는지를 말이다.” “세존이시여, 저처럼 견해와 인내와 취향과 수행과 스승이 다르면 그것을 알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 점을 알기 어렵다면, 세계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이런 주장은 어떻습니까?”

‘‘Sakkā panetaṃ, bhante, mayā ñātuṃ –

“세존이시여, 제가 이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

PN:dn9/420.1 · 검토 전

‘saññā purisassa attā’ti vā ‘aññāva saññā añño attāti vā’ti?

‘인식이 사람의 자아다’라거나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르다’라고?”

PN:dn9/420.2 · 검토 전

‘‘Dujjānaṃ kho etaṃ, poṭṭhapāda, tayā aññadiṭṭhikena aññakhantikena aññarucikena aññatrāyogena aññatrācariyakena –

“뽓타빠다여, 견해가 다르고 받아들임이 다르고 좋아함이 다르고 닦는 바가 다르고 스승이 다른 그대가 이것을 알기는 어렵다 —

PN:dn9/420.3 · 검토 전

‘saññā purisassa attā’ti vā, ‘aññāva saññā añño attāti vā’’’ti.

‘인식이 사람의 자아다’라거나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르다’라고.”

PN:dn9/420.4 · 검토 전

‘‘Sace taṃ, bhante, mayā dujjānaṃ aññadiṭṭhikena aññakhantikena aññarucikena aññatrāyogena aññatrācariyakena –

“세존이시여, 만약 견해가 다르고 받아들임이 다르고 좋아함이 다르고 닦는 바가 다르고 스승이 다른 제가 이것을 알기 어렵다면 —

PN:dn9/420.5 · 검토 전

‘saññā purisassa attā’ti vā, ‘aññāva saññā añño attā’ti vā;

‘인식이 사람의 자아다’라거나 ‘인식이 다르고 자아가 다르다’라고 말입니다;

PN:dn9/420.6 · 검토 전

‘kiṃ pana, bhante, sassato loko,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됩니까?’

PN:dn9/420.7 · 검토 전

“뽓타빠다여,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하는 주장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계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하는 주장은 어떻습니까?” “뽓타빠다여, 이것도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이런 주장들은 어떻습니까? ‘세계는 끝이 있다’거나 ‘끝이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이 몸이다’라거나 ‘생명은 따로 있고 몸도 따로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모두에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하고 덧붙인다면 어떻습니까?” “뽓타빠다여, 이것도 나는 답하지 않았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하는 데까지 모두 그렇다.”

Abyākataṃ kho etaṃ, poṭṭhapāda, mayā –

뽓타빠다여, 이것은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이다 —

PN:dn9/420.8 · 검토 전

‘sassato loko,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는 것은.”

PN:dn9/420.9 · 검토 전

‘‘Kiṃ pana, bhante, ‘asassato loko,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됩니까?”

PN:dn9/420.10 · 검토 전

‘‘Etampi kho, poṭṭhapāda, mayā abyākataṃ –

“뽓타빠다여, 이것도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이다 —

PN:dn9/420.11 · 검토 전

‘asassato loko,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는 것은.”

PN:dn9/420.12 · 검토 전

‘‘Kiṃ pana, bhante, ‘antavā loko…pe… ‘anantavā loko … ‘taṃ jīvaṃ taṃ sarīraṃ…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ṃ…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상은 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생명이 그 몸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20.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20.13 · 검토 전

‘‘Etampi kho, poṭṭhapāda, mayā abyākataṃ –

“뽓타빠다여, 이것도 내가 답하지 않은 것이다 —

PN:dn9/420.14 · 검토 전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는 것은.”

PN:dn9/420.15 · 검토 전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왜 이것들에 답하지 않으셨습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이익이 되지 않고 법에 이롭지 않으며 청정한 삶의 시작도 되지 않는다. 싫어해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엇에 답하셨습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답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하고도 답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왜 이것에 답하셨습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이익이 되고 법에 이로우며 청정한 삶의 시작이 된다. 싫어해 떠남으로,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소멸로 이어진다. 고요함으로, 곧바른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답했다.”

‘‘Kasmā panetaṃ, bhante, bhagavatā abyākat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답하지 않으셨습니까?”

PN:dn9/420.16 · 검토 전

‘‘Na hetaṃ, poṭṭhapāda, atthasaṃhitaṃ na dhammasaṃhitaṃ nādibrahmacariyakaṃ,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tasmā etaṃ mayā abyākata’’nti.

“뽓타빠다여, 이것은 이익과 이어지지 않고 법과 이어지지 않으며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되지 않고,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로 앎으로도 온전한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답하지 않았다.”

PN:dn9/420.17 · 검토 전

‘‘Kiṃ pana, bhante, bhagavatā byākat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엇을 답하셨습니까?”

PN:dn9/420.18 · 검토 전

‘‘Idaṃ dukkhanti kho, poṭṭhapāda, mayā byākataṃ.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답했다.

PN:dn9/420.19 · 검토 전

Ayaṃ dukkhasamuday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byākataṃ.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답했다.

PN:dn9/420.20 · 검토 전

Ayaṃ dukkhanirodh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byākataṃ.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답했다.

PN:dn9/420.21 · 검토 전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kho, poṭṭhapāda, mayā byākata’’nti.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답했다.”

PN:dn9/420.22 · 검토 전

‘‘Kasmā panetaṃ, bhante, bhagavatā byākat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답하셨습니까?”

PN:dn9/420.23 · 검토 전

‘‘Etañhi, poṭṭhapāda, atthasaṃhitaṃ, etaṃ dhammasaṃhitaṃ, etaṃ ādibrahmacariyakaṃ, et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뽓타빠다여, 이것은 이익과 이어지고, 이것은 법과 이어지며, 이것은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되고, 이것은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곧바로 앎으로, 온전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PN:dn9/420.24 · 검토 전

tasmā etaṃ mayā byākata’’nti.

그래서 나는 이것을 답했다.”

PN:dn9/420.25 · 검토 전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그렇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좋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불확실]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PN:dn9/420.26 · 검토 전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ṃ maññatī’’ti.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20.27 · 검토 전

Atha kho bhaga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20.28 · 검토 전

421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유행자들이 사방에서 뽓타빠다 유행자를 몰아세웠다. 말의 칼날로 찔러 대듯 했다. “뽓타빠다 존자는 사문 고따마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맞장구를 치는구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그렇습니다’ 하고 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한쪽으로 단정해서 가르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오. 세계가 영원한지 영원하지 않은지, 끝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소. 생명이 곧 몸인지, 생명은 따로 있고 몸도 따로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소. 여래가 죽은 뒤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도 어느 쪽이든 그렇소.”[불확실]

Atha kho te paribbājakā acirapakkantassa bhagavato poṭṭhapādaṃ paribbājakaṃ samantato vācā sannitodakena sañjhabbharimakaṃsu –

그러자 그 유행자들은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뽓타빠다 유행자를 사방에서 말로 찔러 대며 비웃었다[불확실]

불확실 —

PN:dn9/421.1 · 검토 전

‘‘evameva panāyaṃ bhavaṃ poṭṭhapādo yaññadeva samaṇo gotamo bhāsati, taṃ tadevassa abbhanumodati –

“이 뽓타빠다 존자는 사문 고따마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마다 이렇게 맞장구를 친다 —

PN:dn9/421.2 · 검토 전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ā’ti.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라고.

PN:dn9/421.3 · 검토 전

Na kho pana mayaṃ kiñci samaṇassa gotamassa ekaṃsikaṃ dhammaṃ desitaṃ ājānāma –

그런데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확정된 법을 설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 —

PN:dn9/421.4 · 검토 전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vā,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vā,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ti.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있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없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하는 것을.”

PN:dn9/421.5 · 검토 전

이 말을 듣고 뽓타빠다 유행자는 그 유행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나 역시 사문 고따마가 한쪽으로 단정해서 가르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세계는 영원하다’에서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있는 그대로이고 참되고 틀림없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법이 그렇게 서 있음과 법의 정해진 이치를 알려 주십니다. 사문 고따마께서 이렇게 알려 주시는데, 나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잘 말씀하신 것을 잘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불확실]

Evaṃ vutte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te paribbājake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뽓타빠다 유행자는 그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PN:dn9/421.6 · 검토 전

‘‘ahampi kho, bho, na kiñci samaṇassa gotamassa ekaṃsikaṃ dhammaṃ desitaṃ ājānāmi –

“여러분, 나 또한 사문 고따마가 확정된 법을 설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

PN:dn9/421.7 · 검토 전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있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없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하는 것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21.5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21.8 · 검토 전

api ca samaṇo gotamo bhūtaṃ tacchaṃ tathaṃ paṭipadaṃ paññapeti dhammaṭṭhitataṃ dhammaniyāmataṃ.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실제이고 참되고 여실한 도닦음을, 법의 확립됨과 법의 결정됨을 알려 줍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21.9 · 검토 전

Bhūtaṃ kho pana tacchaṃ tathaṃ paṭipadaṃ paññapentassa dhammaṭṭhitataṃ dhammaniyāmataṃ, kathañhi nāma mādiso viññū samaṇassa gotamassa subhāsitaṃ subhāsitato nābbhanumodeyyā’’ti?

그런데 실제이고 참되고 여실한 도닦음을, 법의 확립됨과 법의 결정됨을 알려 주는 분에 대하여, 나 같은 지혜로운 이가 어찌 사문 고따마의 훌륭한 말씀을 훌륭한 말씀으로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PN:dn9/421.10 · 검토 전

찟따 핫티사리뿟따와 뽓타빠다 이야기Cittahatthisāriputtapoṭṭhapādavatthu

422

그러고 나서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와 뽓타빠다 유행자가 세존을 찾아갔다. 찟따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뽓타빠다 유행자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나눈 뒤, 그도 한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뽓타빠다 유행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Atha kho dvīhatīhassa accayena citto ca hatthisāriputto poṭṭhapādo ca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러고 나서 이삼 일이 지난 뒤에 찟따 핫티사리뿟따와 뽓타빠다 유행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PN:dn9/422.1 · 검토 전

upasaṅkamitvā citto hatthisāriputt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PN:dn9/422.2 · 검토 전

Poṭṭhapādo pana paribbājako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그러나 뽓타빠다 유행자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PN:dn9/422.3 · 검토 전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PN:dn9/422.4 · 검토 전

Ekamantaṃ nisinno kho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뽓타빠다 유행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PN:dn9/422.5 · 검토 전

“세존이시여, 그때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유행자들이 사방에서 저를 몰아세웠습니다. 말의 칼날로 찔러 대듯 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뽓타빠다 존자는 사문 고따마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맞장구를 치는구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그렇습니다 하고 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한쪽으로 단정해서 가르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오. 세계가 영원한지 영원하지 않은지, 끝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소. 생명이 곧 몸인지, 생명은 따로 있고 몸도 따로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소. 여래가 죽은 뒤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도 어느 쪽이든 그렇소.’ 하고 말했습니다.

‘‘tadā maṃ, bhante, te paribbājakā acirapakkantassa bhagavato samantato vācāsannitodakena sañjhabbharimakaṃsu –

“세존이시여, 그때 그 유행자들은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를 사방에서 말로 찔러 대며 비웃었습니다 —

PN:dn9/422.6 · 검토 전

‘evameva panāyaṃ bhavaṃ poṭṭhapādo yaññadeva samaṇo gotamo bhāsati, taṃ tadevassa abbhanumodati –

‘이 뽓타빠다 존자는 사문 고따마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마다 이렇게 맞장구를 친다 —

PN:dn9/422.7 · 검토 전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ā’’ti.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라고.

PN:dn9/422.8 · 검토 전

Na kho pana mayaṃ kiñci samaṇassa gotamassa ekaṃsikaṃ dhammaṃ desitaṃ ājānāma –

그런데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확정된 법을 설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 —

PN:dn9/422.9 · 검토 전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vā,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vā,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ti.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있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없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하는 것을’이라고.

PN:dn9/422.10 · 검토 전

세존이시여, 이 말을 듣고 저는 그 유행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 역시 사문 고따마가 한쪽으로 단정해서 가르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세계는 영원하다는 것에서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있는 그대로이고 참되고 틀림없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법이 그렇게 서 있음과 법의 정해진 이치를 알려 주십니다. 사문 고따마께서 이렇게 알려 주시는데, 나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잘 말씀하신 것을 잘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Evaṃ vuttāhaṃ, bhante, te paribbājake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저는 그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PN:dn9/422.11 · 검토 전

‘ahampi kho, bho, na kiñci samaṇassa gotamassa ekaṃsikaṃ dhammaṃ desitaṃ ājānāmi –

‘여러분, 나 또한 사문 고따마가 확정된 법을 설한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

PN:dn9/422.12 · 검토 전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vā;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있다”라거나, “세상은 끝이 없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거나 하는 것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22.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22.13 · 검토 전

api ca samaṇo gotamo bhūtaṃ tacchaṃ tathaṃ paṭipadaṃ paññapeti dhammaṭṭhitataṃ dhammaniyāmataṃ.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실제이고 참되고 여실한 도닦음을, 법의 확립됨과 법의 결정됨을 알려 줍니다.

PN:dn9/422.14 · 검토 전

Bhūtaṃ kho pana tacchaṃ tathaṃ paṭipadaṃ paññapentassa dhammaṭṭhitataṃ dhammaniyāmataṃ, kathañhi nāma mādiso viññū samaṇassa gotamassa subhāsitaṃ subhāsitato nābbhanumodeyyā’’ti?

그런데 실제이고 참되고 여실한 도닦음을, 법의 확립됨과 법의 결정됨을 알려 주는 분에 대하여, 나 같은 지혜로운 이가 어찌 사문 고따마의 훌륭한 말씀을 훌륭한 말씀으로 기뻐하지 않겠습니까?’라고.”

PN:dn9/422.15 · 검토 전

423

“뽓타빠다여, 그 유행자들은 모두 눈먼 이들이고 눈이 없는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 눈이 있는 사람은 그대 하나뿐이다. 뽓타빠다여, 나는 한쪽으로 단정하는 법도 가르쳐 알렸고,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도 가르쳐 알렸다. 내가 가르쳐 알린,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이란 어떤 것인가? ‘세계는 영원하다’는 것은 내가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으로 가르쳐 알린 것이다. ‘세계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그렇다. ‘세계는 끝이 있다’와 ‘끝이 없다’,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이 몸이다’와 ‘생명은 따로 있고 몸도 따로 있다’도 그렇다.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하는 것도 그렇다.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 역시 내가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으로 가르쳐 알린 것이다.

‘‘Sabbeva kho ete, poṭṭhapāda, paribbājakā andhā acakkhukā;

“뽓타빠다여, 그 유행자들은 모두 눈먼 자들이고 눈이 없는 자들이다;

PN:dn9/423.1 · 검토 전

tvaṃyeva nesaṃ eko cakkhumā.

그들 가운데 오직 그대만이 눈 있는 자다.

PN:dn9/423.2 · 검토 전

Ekaṃsikāpi hi kho, poṭṭhapāda, may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뽓타빠다여, 나는 확정된 법들도 설하고 알렸다;

PN:dn9/423.3 · 검토 전

anekaṃsikāpi hi kho, poṭṭhapāda, may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뽓타빠다여, 나는 확정되지 않은 법들도 설하고 알렸다.

PN:dn9/423.4 · 검토 전

‘‘Katame ca te, poṭṭhapāda, mayā an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러면 뽓타빠다여, 내가 그대에게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들은 무엇인가?

PN:dn9/423.5 · 검토 전

‘Sassato lok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an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3.6 · 검토 전

‘asassato lok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an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3.7 · 검토 전

‘antavā loko’ti kho poṭṭhapāda…pe… ‘anantavā loko’ti kho poṭṭhapāda…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kho poṭṭhapāda…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kho poṭṭhapād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kho poṭṭhapād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kho poṭṭhapāda…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kho poṭṭhapāda…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kho, poṭṭhapāda, mayā an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있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없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내가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23.7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23.8 · 검토 전

뽓타빠다여, 내가 왜 이것들을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으로 가르쳐 알렸는가? 이것들은 이익이 되지 않고 법에 이롭지 않으며 청정한 삶의 시작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싫어해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고요함으로도, 곧바른 앎으로도,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법으로 가르쳐 알렸다.

‘‘Kasmā ca te, poṭṭhapāda, mayā an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러면 뽓타빠다여, 어찌하여 내가 그대에게 그것들을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렸는가?

PN:dn9/423.9 · 검토 전

Na hete, poṭṭhapāda, atthasaṃhitā na dhammasaṃhitā na ādibrahmacariyakā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nti.

뽓타빠다여, 이것들은 이익과 이어지지 않고 법과 이어지지 않으며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되지 않고,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함으로도 곧바로 앎으로도 온전한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는다.

PN:dn9/423.10 · 검토 전

Tasmā te mayā an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확정되지 않은 법으로 설하고 알렸다.”

PN:dn9/423.11 · 검토 전

확정된 법Ekaṃsikadhammo

424

뽓타빠다여, 내가 가르쳐 알린, 한쪽으로 단정하는 법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것은 내가 한쪽으로 단정하는 법으로 가르쳐 알린 것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라는 것도 그렇다. 뽓타빠다여, 내가 왜 이것들을 한쪽으로 단정하는 법으로 가르쳐 알렸는가? 이것들은 이익이 되고 법에 이로우며 청정한 삶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싫어해 떠남으로,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소멸로 이어진다. 고요함으로, 곧바른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한쪽으로 단정하는 법으로 가르쳐 알렸다.”

‘‘Katame ca te,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러면 뽓타빠다여, 내가 그대에게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들은 무엇인가?

PN:dn9/424.1 · 검토 전

Idaṃ dukkhanti kho,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4.2 · 검토 전

Ayaṃ dukkhasamuday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4.3 · 검토 전

Ayaṃ dukkhanirodhoti kho,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4.4 · 검토 전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kho,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o dhammo desito paññatto.

뽓타빠다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는 것은 내가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린 것이다.

PN:dn9/424.5 · 검토 전

‘‘Kasmā ca te, poṭṭhapāda, mayā 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러면 뽓타빠다여, 어찌하여 내가 그대에게 그것들을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렸는가?

PN:dn9/424.6 · 검토 전

Ete, poṭṭhapāda, atthasaṃhitā, ete dhammasaṃhitā, ete ādibrahmacariyakā ete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nti.

뽓타빠다여, 이것들은 이익과 이어지고, 이것들은 법과 이어지며, 이것들은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되고, 이것들은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곧바로 앎으로, 온전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PN:dn9/424.7 · 검토 전

Tasmā te mayā ekaṃsikā dhammā desitā paññattā.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확정된 법으로 설하고 알렸다.

PN:dn9/424.8 · 검토 전

425

“뽓타빠다여,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묻는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소’ 하고 인정하면,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알고 보면서 지냅니까?’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이 오로지 즐겁기만 한 자아임을 안 적이 있습니까? 하룻밤이나 하루 낮, 혹은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만이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Santi, poṭṭhapād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뽓타빠다여,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PN:dn9/425.1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5.2 · 검토 전

Tyāh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

PN:dn9/425.3 · 검토 전

‘saccaṃ kira tumhe āyasmanto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그대 존자들은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가 —

PN:dn9/425.4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5.5 · 검토 전

Te ce me evaṃ puṭṭhā ‘āmā’ti paṭijānanti.

그들이 내게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렇습니다’라고 인정한다면.

PN:dn9/425.6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5.7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ntasukhaṃ lok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알고 보면서 머무는가?’

PN:dn9/425.8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5.9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5.10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ṃ vā rattiṃ ekaṃ vā divasaṃ upaḍḍhaṃ vā rattiṃ upaḍḍhaṃ vā divasaṃ ekantasukhiṃ attānaṃ sañjānā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하룻밤이나 하루 낮, 또는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 동안이라도 자아가 한결같이 즐겁다고 인식하는가?’

PN:dn9/425.11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5.12 · 검토 전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까?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수행이어서,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게 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난 신들의 말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벗들이여, 잘 수행하십시오. 곧게 수행하십시오.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도록 말입니다. 벗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수행하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하는 소리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5.13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jānātha –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아는가 —

PN:dn9/425.14 · 검토 전

‘‘ayaṃ maggo ayaṃ paṭipad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ā’’’ti?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한 길은 이것이고 도닦음은 이것이다”라고?’

PN:dn9/425.15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5.16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5.17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yā tā devat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 tāsaṃ bhāsamānānaṃ saddaṃ suṇātha –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난 신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가 —

PN:dn9/425.18 · 검토 전

‘‘suppaṭipannāttha, mārisā, ujuppaṭipannāttha, māris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a;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하여 잘 실천했습니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곧게 실천했습니다;

PN:dn9/425.19 · 검토 전

mayampi hi, mārisā, evaṃpaṭipann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ti?

존자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실천하여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났습니다”라고?’

PN:dn9/425.20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5.21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PN:dn9/425.22 · 검토 전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됩니다.”

PN:dn9/425.23 · 검토 전

426

“뽓타빠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한다. 나는 그 여인을 사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그 지방의 미녀가 어느 계급인지 아시오? 크샤트리아 계급인지, 바라문 계급인지, 평민 계급인지, 노예 계급인지 말이오.’ 그는 ‘모릅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말할 것이다. ‘그 미녀가 이러이러한 이름에 이러이러한 가문인지 아시오?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갈색인지 노르스름한지 아시오? 어느 마을이나 읍이나 도시에 사는지도 아시오?’ 그는 ‘모릅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또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사람을 원하고 사랑한다는 말이오?’ 그는 ‘그렇습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Seyyathāpi, poṭṭhapāda, puriso evaṃ vadeyya –

“뽓타빠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PN:dn9/426.1 · 검토 전

‘ahaṃ yā imasmiṃ janapade janapadakalyāṇī, taṃ icchāmi taṃ kāmemī’ti.

‘나는 이 지방에서 으뜸가는 미인, 그 여인을 원하고 그 여인을 바란다’라고.

PN:dn9/426.2 · 검토 전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26.3 · 검토 전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khattiyī vā brāhmaṇī vā vessī vā suddī vā’ti?

‘여보게, 그대가 원하고 바라는 그 미인, 그대는 그 미인이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와이샤 여인인지 수드라 여인인지 아는가?’

PN:dn9/426.4 · 검토 전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PN:dn9/426.5 · 검토 전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26.6 · 검토 전

‘ambho purisa, yaṃ tvaṃ janapadakalyāṇiṃ icchasi kāmesi,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evaṃnāmā evaṃgottāti vā, dīghā vā rassā vā majjhimā vā kāḷī vā sāmā vā maṅguracchavī vāti, amukasmiṃ gāme vā nigame vā nagare vā’ti?

‘여보게, 그대가 원하고 바라는 그 미인, 그대는 그 미인이 이런 이름이고 이런 성씨라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중간이라거나, 살빛이 검거나 가무잡잡하거나 누르스름하다거나, 어느 마을이나 읍이나 도시에 산다거나 하는 것을 아는가?’

PN:dn9/426.7 · 검토 전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PN:dn9/426.8 · 검토 전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26.9 · 검토 전

‘ambho purisa, y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ṃ tvaṃ icchasi kāmesī’ti?

‘여보게,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원하고 바라는가?’

PN:dn9/426.10 · 검토 전

Iti puṭṭho ‘āmā’ti vadeyya.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PN:dn9/426.11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PN:dn9/426.12 · 검토 전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됩니다.”

PN:dn9/426.13 · 검토 전

“뽓타빠다여, 바로 그와 같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묻는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소’ 하고 인정하면,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알고 보면서 지냅니까?’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이 오로지 즐겁기만 한 자아임을 안 적이 있습니까? 하룻밤이나 하루 낮, 혹은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만이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Evameva kho, poṭṭhapād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뽓타빠다여, 꼭 이와 같이,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저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PN:dn9/426.14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6.15 · 검토 전

Tyāh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

PN:dn9/426.16 · 검토 전

‘saccaṃ kira tumhe āyasmanto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그대 존자들은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가 —

PN:dn9/426.17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6.18 · 검토 전

Te ce me evaṃ puṭṭhā ‘āmā’ti paṭijānanti.

그들이 내게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렇습니다’라고 인정한다면.

PN:dn9/426.19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6.20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ntasukhaṃ lok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알고 보면서 머무는가?’

PN:dn9/426.21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6.22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6.23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ṃ vā rattiṃ ekaṃ vā divasaṃ upaḍḍhaṃ vā rattiṃ upaḍḍhaṃ vā divasaṃ ekantasukhiṃ attānaṃ sañjānā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하룻밤이나 하루 낮, 또는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 동안이라도 자아가 한결같이 즐겁다고 인식하는가?’

PN:dn9/426.24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6.25 · 검토 전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까?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수행이어서,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게 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난 신들의 말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벗들이여, 잘 수행하십시오. 곧게 수행하십시오.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도록 말입니다. 벗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수행하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하는 소리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6.26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jānātha –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아는가 —

PN:dn9/426.27 · 검토 전

‘‘ayaṃ maggo ayaṃ paṭipad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ā’ti?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한 길은 이것이고 도닦음은 이것이다”라고?’

PN:dn9/426.28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6.29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6.30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yā tā devat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 tāsaṃ bhāsamānānaṃ saddaṃ suṇātha –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난 신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가 —

PN:dn9/426.31 · 검토 전

‘‘suppaṭipannāttha, mārisā, ujuppaṭipannāttha, māris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a;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하여 잘 실천했습니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곧게 실천했습니다;

PN:dn9/426.32 · 검토 전

mayampi hi, mārisā, evaṃpaṭipann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ti?

존자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실천하여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났습니다”라고?’

PN:dn9/426.33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6.34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PN:dn9/426.35 · 검토 전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됩니다.”

PN:dn9/426.36 · 검토 전

427

“뽓타빠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큰 사거리에서 궁전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이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그 궁전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아시오? 동쪽인지 남쪽인지 서쪽인지 북쪽인지 말이오. 높은지 낮은지 중간쯤인지도 아시오?’ 그는 ‘모릅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궁전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든다는 말이오?’ 그는 ‘그렇습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이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Seyyathāpi, poṭṭhapāda, puriso cātumahāpathe nisseṇiṃ kareyya pāsādassa ārohaṇāya.

“뽓타빠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려고 네거리에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자.

PN:dn9/427.1 · 검토 전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27.2 · 검토 전

‘ambho purisa, yassa tvaṃ pāsādassa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si, jānāsi taṃ pāsādaṃ puratthimāya vā disāya dakkhiṇāya vā disāya pacchimāya vā disāya uttarāya vā disāya ucco vā nīco vā majjhimo vā’ti?

‘여보게, 그대가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그 누각,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높은지 낮은지 중간인지 아는가?’

PN:dn9/427.3 · 검토 전

Iti puṭṭho ‘no’ti vadeyya.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PN:dn9/427.4 · 검토 전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27.5 · 검토 전

‘ambho purisa, y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ssa tvaṃ pāsādassa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sī’ti?

‘여보게,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 누각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가?’

PN:dn9/427.6 · 검토 전

Iti puṭṭho ‘āmā’ti vadeyya.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PN:dn9/427.7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PN:dn9/427.8 · 검토 전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됩니다.”

PN:dn9/427.9 · 검토 전

“뽓타빠다여, 바로 그와 같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묻는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이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자아는 오로지 즐겁기만 하고 병이 없으며, 죽은 뒤에도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소’ 하고 인정하면,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알고 보면서 지냅니까?’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이 오로지 즐겁기만 한 자아임을 안 적이 있습니까? 하룻밤이나 하루 낮, 혹은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만이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Evameva kho, poṭṭhapād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뽓타빠다여, 꼭 이와 같이,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저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PN:dn9/427.10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7.11 · 검토 전

Tyāhaṃ upasaṅkamitvā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

PN:dn9/427.12 · 검토 전

‘saccaṃ kira tumhe āyasmanto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그대 존자들은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가 —

PN:dn9/427.13 · 검토 전

‘‘ekant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자아는 죽은 뒤에 한결같이 즐겁고 병이 없다”라고?’

PN:dn9/427.14 · 검토 전

Te ce me evaṃ puṭṭhā ‘āmā’ti paṭijānanti.

그들이 내게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렇습니다’라고 인정한다면.

PN:dn9/427.15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7.16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ntasukhaṃ lok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알고 보면서 머무는가?’

PN:dn9/427.17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7.18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7.19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ekaṃ vā rattiṃ ekaṃ vā divasaṃ upaḍḍhaṃ vā rattiṃ upaḍḍhaṃ vā divasaṃ ekantasukhiṃ attānaṃ sañjānāth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하룻밤이나 하루 낮, 또는 반나절 밤이나 반나절 낮 동안이라도 자아가 한결같이 즐겁다고 인식하는가?’

PN:dn9/427.20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7.21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7.22 · 검토 전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까?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수행이어서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존자들이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난 신들의 말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벗들이여, 잘 수행하십시오. 곧게 수행하십시오.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를 몸소 이루도록 말입니다. 벗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수행하여 오로지 즐겁기만 한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하는 소리 말입니다.’ 그들은 ‘아니오’ 하고 답한다. 뽓타빠다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이렇다면 그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api pana tumhe āyasmanto jānātha ayaṃ maggo ayaṃ paṭipad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ā’ti?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한 길은 이것이고 도닦음은 이것이라고 아는가?’

PN:dn9/427.23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7.24 · 검토 전

‘‘Tyāhaṃ evaṃ vadāmi –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PN:dn9/427.25 · 검토 전

‘api pana tumhe āyasmanto yā tā devat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 tāsaṃ devatānaṃ bhāsamānānaṃ saddaṃ suṇātha- ‘‘suppaṭipannāttha, mārisā, ujuppaṭipannāttha, māris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a;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난 신들, 그 신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가 —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를 몸소 실현하기 위하여 잘 실천했습니다.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곧게 실천했습니다;

PN:dn9/427.26 · 검토 전

mayampi hi, mārisā, evaṃ paṭipannā ekantasukhaṃ lokaṃ upapannā’ti?

존자들이여, 우리도 이렇게 실천하여 한결같이 즐거운 세계에 태어났습니다”라고?’

PN:dn9/427.27 · 검토 전

Iti puṭṭhā ‘‘no’’ti vadanti.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PN:dn9/427.28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PN:dn9/427.29 · 검토 전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됩니다.”

PN:dn9/427.30 · 검토 전

세 가지 자아 획득Tayo attapaṭilābhā

428

포타파다여, 내가 말하는 자기 존재의 얻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거친 것,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 물질이 없는 것이다.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무엇인가? 물질의 형상을 지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덩이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무엇인가? 물질의 형상을 지니되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크고 작은 모든 지체를 갖추었으며, 감각기관이 온전한 것이다. 이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무엇인가? 물질의 형상이 없이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Tayo kho me, poṭṭhapāda, attapaṭilābhā –

“뽓타빠다여, 나에게는 이런 세 가지 자아 획득이 있다 —

PN:dn9/428.1 · 교차 검사

oḷāriko attapaṭilābho, manomayo attapaṭilābho, arūpo attapaṭilābho.

거친 자아 획득,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다.

PN:dn9/428.2 · 교차 검사

Katamo ca, poṭṭhapāda, oḷāriko attapaṭilābho?

그런데 뽓타빠다여, 거친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

PN:dn9/428.3 · 교차 검사

Rūpī cātumahābhūtiko kabaḷīkārāhārabhakkho, ayaṃ oḷāriko attapaṭilābho.

물질을 지녔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것, 이것이 거친 자아 획득이다.

PN:dn9/428.4 · 교차 검사

Katamo manomayo attapaṭilābho?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

PN:dn9/428.5 · 교차 검사

Rūpī manomayo sabbaṅgapaccaṅgī ahīnindriyo, ayaṃ manomayo attapaṭilābho.

물질을 지녔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모두 갖추었고 기능들이 모자라지 않은 것, 이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다.

PN:dn9/428.6 · 교차 검사

Katamo arūpo attapaṭilābho?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

PN:dn9/428.7 · 교차 검사

Arūpī saññāmayo, ayaṃ arūpo attapaṭilābho.

물질이 없고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 이것이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다.

PN:dn9/428.8 · 교차 검사

429

포타파다여, 나는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마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 그대들이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포타파다여,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날 것이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되겠지. 그러나 그렇게 지내는 것은 괴로울 것이다.’ 포타파다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그때에는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 새김과 알아차림도 있어서 지내는 것이 즐겁다.

‘‘Oḷārikassapi kho ahaṃ, poṭṭhapāda, attapaṭilābhassa pahānāya dhammaṃ desemi –

“뽓타빠다여, 나는 거친 자아 획득을 버리게 하려고도 법을 설한다 —

PN:dn9/429.1 · 교차 검사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그대들이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29.2 · 교차 검사

Siyā kho pana te, poṭṭhapāda, evamassa –

그런데 뽓타빠다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PN:dn9/429.3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dukkho ca kho vihāroti, na kho panetaṃ, poṭṭhapāda, evaṃ daṭṭhabbaṃ.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기는 하겠지만, 머묾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그러나 뽓타빠다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PN:dn9/429.4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ceva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ca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pāmujjaṃ ceva bhavissati pīti ca passaddhi ca sati ca sampajaññañca sukho ca vihāro.

오염시키는 법들도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도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며, 기쁨도 있을 것이고 희열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또렷이 알아차림과 행복한 머묾도 있을 것이다.

PN:dn9/429.5 · 교차 검사

430

포타파다여, 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마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 그대들이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포타파다여,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날 것이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되겠지. 그러나 그렇게 지내는 것은 괴로울 것이다.’ 포타파다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그때에는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 새김과 알아차림도 있어서 지내는 것이 즐겁다.

‘‘Manomayassapi kho ahaṃ, poṭṭhapāda, attapaṭilābhassa pahānāya dhammaṃ desemi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뽓타빠다여, 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을 버리게 하려고도 법을 설한다 — ‘그대들이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0.1 · 교차 검사

Siyā kho pana te, poṭṭhapāda, evamassa –

그런데 뽓타빠다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PN:dn9/430.2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dukkho ca kho vihāro’ti, na kho panetaṃ, poṭṭhapāda, evaṃ daṭṭhabbaṃ.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기는 하겠지만, 머묾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그러나 뽓타빠다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PN:dn9/430.3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ceva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ca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pāmujjaṃ ceva bhavissati pīti ca passaddhi ca sati ca sampajaññañca sukho ca vihāro.

오염시키는 법들도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도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며, 기쁨도 있을 것이고 희열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또렷이 알아차림과 행복한 머묾도 있을 것이다.

PN:dn9/430.4 · 교차 검사

431

포타파다여, 나는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마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 그대들이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포타파다여,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날 것이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되겠지. 그러나 그렇게 지내는 것은 괴로울 것이다.’ 포타파다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그때에는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 새김과 알아차림도 있어서 지내는 것이 즐겁다.

‘‘Arūpassapi kho ahaṃ, poṭṭhapāda, attapaṭilābhassa pahānāya dhammaṃ desemi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뽓타빠다여, 나는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을 버리게 하려고도 법을 설한다 — ‘그대들이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1.1 · 교차 검사

Siyā kho pana te, poṭṭhapāda, evamassa –

그런데 뽓타빠다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PN:dn9/431.2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dukkho ca kho vihāro’ti, na kho panetaṃ, poṭṭhapāda, evaṃ daṭṭhabbaṃ.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기는 하겠지만, 머묾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그러나 뽓타빠다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PN:dn9/431.3 · 교차 검사

Saṃkilesikā ceva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ca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i, pāmujjaṃ ceva bhavissati pīti ca passaddhi ca sati ca sampajaññañca sukho ca vihāro.

오염시키는 법들도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도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며, 기쁨도 있을 것이고 희열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또렷이 알아차림과 행복한 머묾도 있을 것이다.

PN:dn9/431.4 · 교차 검사

432

포타파다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벗이여, 그대들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는데, 그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고 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벗이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치는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Pare ce, poṭṭhapāda, amhe evaṃ puccheyyuṃ –

“뽓타빠다여, 만일 남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2.1 · 교차 검사

‘katamo pana so, āvuso, oḷāriko attapaṭilābho, yassa tumhe pahānāya dhammaṃ deseth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tesaṃ mayaṃ evaṃ puṭṭhā evaṃ byākareyyāma –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거친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PN:dn9/432.2 · 교차 검사

‘ayaṃ vā so, āvuso, oḷāriko attapaṭilābho, yassa mayaṃ pahānāya dhammaṃ desem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벗이여, 바로 이것이 그 거친 자아 획득이다.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우리가 법을 설하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2.3 · 교차 검사

433

포타파다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벗이여, 그대들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는데,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고 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벗이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Pare ce, poṭṭhapāda, amhe evaṃ puccheyyuṃ –

“뽓타빠다여, 만일 남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3.1 · 교차 검사

‘katamo pana so, āvuso, manomayo attapaṭilābho, yassa tumhe pahānāya dhammaṃ deseth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라고.

PN:dn9/433.2 · 교차 검사

Tesaṃ mayaṃ evaṃ puṭṭhā evaṃ byākareyyāma –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PN:dn9/433.3 · 교차 검사

‘ayaṃ vā so, āvuso, manomayo attapaṭilābho yassa mayaṃ pahānāya dhammaṃ desem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벗이여, 바로 이것이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다.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우리가 법을 설하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3.4 · 교차 검사

434

포타파다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벗이여, 그대들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친다는데, 그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고 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벗이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치는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포타파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다면 이치에 맞는 말이 됩니다.

‘‘Pare ce, poṭṭhapāda, amhe evaṃ puccheyyuṃ –

“뽓타빠다여, 만일 남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4.1 · 교차 검사

‘katamo pana so, āvuso, arūpo attapaṭilābho, yassa tumhe pahānāya dhammaṃ deseth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tesaṃ mayaṃ evaṃ puṭṭhā evaṃ byākareyyāma –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PN:dn9/434.2 · 교차 검사

‘ayaṃ vā so, āvuso, arūpo attapaṭilābho yassa mayaṃ pahānāya dhammaṃ desem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벗이여, 바로 이것이 그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다.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우리가 법을 설하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4.3 · 교차 검사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근거 있는 말이 되지 않는가?”

PN:dn9/434.4 · 교차 검사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근거 있는 말이 됩니다.”

PN:dn9/434.5 · 교차 검사

435

포타파다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궁전에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다리를 바로 그 궁전 아래에 만든다.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이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그 궁전을 아시오? 동쪽에 있소, 남쪽에 있소, 서쪽에 있소, 북쪽에 있소? 높소, 낮소, 아니면 중간쯤이오?’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하자. ‘벗들이여, 내가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궁전은 바로 이 궁전이오. 나는 바로 이 궁전 아래에 사다리를 만들고 있소.’ 포타파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 됩니다.

‘‘Seyyathāpi, poṭṭhapāda, puriso nisseṇiṃ kareyya pāsādassa ārohaṇāya tasseva pāsādassa heṭṭhā.

“뽓타빠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려고 바로 그 누각 아래에서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자.

PN:dn9/435.1 · 교차 검사

Tamenaṃ evaṃ vadeyyuṃ –

그에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

PN:dn9/435.2 · 교차 검사

‘ambho purisa, yassa tvaṃ pāsādassa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si, jānāsi taṃ pāsādaṃ, puratthimāya vā disāya dakkhiṇāya vā disāya pacchimāya vā disāya uttarāya vā disāya ucco vā nīco vā majjhimo vā’ti?

‘여보시오, 그대가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그 누각을 그대는 아는가? 동쪽 방향에 있는지, 남쪽 방향에 있는지, 서쪽 방향에 있는지, 북쪽 방향에 있는지, 높은지 낮은지 중간인지?’라고.

PN:dn9/435.3 · 교차 검사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dn9/435.4 · 교차 검사

‘ayaṃ vā so, āvuso, pāsādo, yassāhaṃ ārohaṇāya nisseṇiṃ karomi, tasseva pāsādassa heṭṭhā’ti.

‘벗이여, 바로 이것이 그 누각이다. 내가 오르려고 사다리를 만드는 곳은 바로 그 누각 아래다’라고.

PN:dn9/435.5 · 교차 검사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있는 말이 되지 않는가?”

PN:dn9/435.6 · 교차 검사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근거 있는 말이 됩니다.”

PN:dn9/435.7 · 교차 검사

436

포타파다여, 바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벗이여, 그대들이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치는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고 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내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벗이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버리게 하려고 법을 가르치는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다. 그렇게 실천하면 번뇌를 일으키는 법은 버리게 되고, 맑게 하는 법은 자라난다. 지혜의 완성과 충만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 포타파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다면 이치에 맞는 말이 됩니다.

‘‘Evameva kho, poṭṭhapāda, pare ce amhe evaṃ puccheyyuṃ –

“뽓타빠다여, 꼭 이와 같이, 만일 남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6.1 · 교차 검사

‘katamo pana so, āvuso, oḷāriko attapaṭilābho…pe… katamo pana so, āvuso, manomayo attapaṭilābho…pe… katamo pana so, āvuso, arūpo attapaṭilābho, yassa tumhe pahānāya dhammaṃ deseth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tesaṃ mayaṃ evaṃ puṭṭhā evaṃ byākareyyāma –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거친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벗이여,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그대들이 법을 설하는, 그리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게 되는, 그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32.2 ~ PN:dn9/433.2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36.2 · 교차 검사

‘ayaṃ vā so, āvuso, arūpo attapaṭilābho, yassa mayaṃ pahānāya dhammaṃ desema,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i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벗이여, 바로 이것이 그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다.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우리가 법을 설하고, 그대로 따라 행하면 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법들은 버려지고, 깨끗하게 하는 법들은 더욱 늘어나며, 통찰지의 원만함과 광대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 것이다’라고.

PN:dn9/436.3 · 교차 검사

‘‘Taṃ kiṃ maññasi, poṭṭhapāda, nanu evaṃ sante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근거 있는 말이 되지 않는가?”

PN:dn9/436.4 · 교차 검사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s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ī’’ti.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다면 근거 있는 말이 됩니다.”

PN:dn9/436.5 · 교차 검사

437

이 말씀을 듣고 찟따 핫티사리뿟따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도 헛되고, 물질이 없는 것도 헛됩니다.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그에게 참입니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거친 것도 헛되고, 물질이 없는 것도 헛됩니다.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그에게 참입니다.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거친 것도 헛되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도 헛됩니다.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그에게 참입니다.

Evaṃ vutte citto hatthi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찟따 핫티사리뿟따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PN:dn9/437.1 · 교차 검사

‘‘yasmiṃ, bhante,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 moghassa tasmiṃ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 mogho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세존이시여, 거친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 그에게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은 헛되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도 헛됩니다;

PN:dn9/437.2 · 교차 검사

oḷāriko vāssa attapaṭilābho tasmiṃ samaye sacco hoti.

그때 그에게는 거친 자아 획득만이 참됩니다.

PN:dn9/437.3 · 교차 검사

Yasmiṃ, bhante,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 moghass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 mogho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세존이시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 그에게 거친 자아 획득은 헛되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도 헛됩니다;

PN:dn9/437.4 · 교차 검사

manomayo vāssa attapaṭilābho tasmiṃ samaye sacco hoti.

그때 그에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만이 참됩니다.

PN:dn9/437.5 · 교차 검사

Yasmiṃ, bhante, samaye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moghass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 mogho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

“세존이시여,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 그에게 거친 자아 획득은 헛되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도 헛됩니다;

PN:dn9/437.6 · 교차 검사

arūpo vāssa attapaṭilābho tasmiṃ samaye sacco hotī’’ti.

그때 그에게는 물질 없는 자아 획득만이 참됩니다.”

PN:dn9/437.7 · 교차 검사

찟따여,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거친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찟따여,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거친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Yasmiṃ, citta,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arūp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거친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PN:dn9/437.8 · 교차 검사

oḷāriko attapaṭilābho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37.9 · 교차 검사

Yasmiṃ, citta,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arūp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PN:dn9/437.10 · 교차 검사

manomayo attapaṭilābho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37.11 · 교차 검사

Yasmiṃ, citta, samaye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manomay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PN:dn9/437.12 · 교차 검사

arūpo attapaṭilābho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37.13 · 교차 검사

438

찟따여, 누가 그대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그대는 과거에 있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대는 미래에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 아니다. 그대는 지금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물으면 찟따여,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누가 저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과거에 있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미래에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Sace taṃ, citta, evaṃ puccheyyuṃ –

“찟따여, 만일 그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8.1 · 교차 검사

‘ahosi tvaṃ atītamaddhānaṃ, na tvaṃ nāhosi;

‘그대는 과거에 있었는가, 그대는 없지 않았는가;

PN:dn9/438.2 · 교차 검사

bhavissasi tvaṃ anāgatamaddhānaṃ, na tvaṃ na bhavissasi;

그대는 미래에 있을 것인가, 그대는 없지 않을 것인가;

PN:dn9/438.3 · 교차 검사

atthi tvaṃ etarahi, na tvaṃ natthī’ti, evaṃ puṭṭho tvaṃ, citta, kinti byākareyyāsī’’ti?

그대는 지금 있는가, 그대는 없지 않은가?’라고. 찟따여,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PN:dn9/438.4 · 교차 검사

‘‘Sace maṃ, bhante, evaṃ puccheyyuṃ –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8.5 · 교차 검사

‘ahosi tvaṃ atītamaddhānaṃ, na tvaṃ na ahosi;

‘그대는 과거에 있었는가, 그대는 없지 않았는가;

PN:dn9/438.6 · 교차 검사

bhavissasi tvaṃ anāgatamaddhānaṃ, na tvaṃ na bhavissasi;

그대는 미래에 있을 것인가, 그대는 없지 않을 것인가;

PN:dn9/438.7 · 교차 검사

atthi tvaṃ etarahi, na tvaṃ natthī’ti.

그대는 지금 있는가, 그대는 없지 않은가?’라고.

PN:dn9/438.8 · 교차 검사

Evaṃ puṭṭho ahaṃ, bhante, evaṃ byākareyyaṃ –

세존이시여,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PN:dn9/438.9 · 교차 검사

‘ahosāhaṃ atītamaddhānaṃ, nāhaṃ na ahosiṃ;

‘나는 과거에 있었고, 나는 없지 않았다;

PN:dn9/438.10 · 교차 검사

bhavissāmahaṃ anāgatamaddhānaṃ, nāhaṃ na bhavissāmi;

나는 미래에 있을 것이고, 나는 없지 않을 것이다;

PN:dn9/438.11 · 교차 검사

atthāhaṃ etarahi, nāhaṃ natthī’ti.

나는 지금 있고, 나는 없지 않다’라고.

PN:dn9/438.12 · 교차 검사

Evaṃ puṭṭho ahaṃ, bhante, evaṃ byākareyya’’nti.

세존이시여,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PN:dn9/438.13 · 교차 검사

그러면 찟따여, 누가 그대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네가 과거에 얻었던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너에게 참이고, 미래의 것도 현재의 것도 헛되다는 말인가? 네가 미래에 얻을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너에게 참이고,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헛되다는 말인가? 네가 지금 얻고 있는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너에게 참이고, 과거의 것도 미래의 것도 헛되다는 말인가?’ 이렇게 물으면 찟따여,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누가 저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내가 과거에 얻었던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그때에는 나에게 참이었다. 미래의 것도 현재의 것도 헛되다. 내가 미래에 얻을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그때에는 나에게 참일 것이다.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헛되다. 내가 지금 얻고 있는 자기 존재의 얻음만이 지금 나에게 참이다. 과거의 것도 미래의 것도 헛되다.’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Sace pana taṃ, citta, evaṃ puccheyyuṃ –

“찟따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8.14 · 교차 검사

‘yo te ahosi atīt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nāgato, mogho paccuppanno?

‘그대에게 있었던 과거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미래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된가?

PN:dn9/438.15 · 교차 검사

Yo te bhavissati anāgat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tīto, mogho paccuppanno?

그대에게 있을 미래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된가?

PN:dn9/438.16 · 교차 검사

Yo te etarahi paccuppann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tīto, mogho anāgato’ti.

그대에게 지금 있는 현재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미래의 것도 헛된가?’라고.

PN:dn9/438.17 · 교차 검사

Evaṃ puṭṭho tvaṃ, citta, kinti byākareyyāsī’’ti?

찟따여,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PN:dn9/438.18 · 교차 검사

‘‘Sace pana maṃ, bhante, evaṃ puccheyyuṃ –

“세존이시여, 그런데 만일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PN:dn9/438.19 · 교차 검사

‘yo te ahosi atīt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nāgato, mogho paccuppanno.

‘그대에게 있었던 과거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미래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되다.

PN:dn9/438.20 · 교차 검사

Yo te bhavissati anāgat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tīto, mogho paccuppanno.

그대에게 있을 미래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되다.

PN:dn9/438.21 · 교차 검사

Yo te etarahi paccuppanno attapaṭilābho, sova t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tīto, mogho anāgato’ti.

그대에게 지금 있는 현재의 자아 획득, 그대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만이 참되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미래의 것도 헛되다’라고.

PN:dn9/438.22 · 교차 검사

Evaṃ puṭṭho ahaṃ, bhante, evaṃ byākareyyaṃ –

세존이시여,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PN:dn9/438.23 · 교차 검사

‘yo me ahosi atīto attapaṭilābho, sova me attapaṭilābho tasmiṃ samaye sacco ahosi, mogho anāgato, mogho paccuppanno.

‘나에게 있었던 과거의 자아 획득, 나에게는 그때 바로 그 자아 획득이 참되었고, 미래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되다.

PN:dn9/438.24 · 교차 검사

Yo me bhavissati anāgato attapaṭilābho, sova me attapaṭilābho tasmiṃ samaye sacco bhavissati, mogho atīto, mogho paccuppanno.

나에게 있을 미래의 자아 획득, 나에게는 그때 바로 그 자아 획득이 참될 것이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현재의 것도 헛되다.

PN:dn9/438.25 · 교차 검사

Yo me etarahi paccuppanno attapaṭilābho, sova me attapaṭilābho sacco, mogho atīto, mogho anāgato’ti.

나에게 지금 있는 현재의 자아 획득, 나에게는 바로 그 자아 획득이 참되고, 과거의 것은 헛되며, 미래의 것도 헛되다’라고.

PN:dn9/438.26 · 교차 검사

Evaṃ puṭṭho ahaṃ, bhante, evaṃ byākareyya’’nti.

세존이시여,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PN:dn9/438.27 · 교차 검사

439

찟따여, 그와 같이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거친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Evameva kho, citta, y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arūp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꼭 이와 같이, 거친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PN:dn9/439.1 · 교차 검사

Oḷāriko attapaṭilābho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39.2 · 교차 검사

Yasmiṃ, citta,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pe… yasmiṃ, citta, samaye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manomay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찟따여,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37.10 ~ PN:dn9/437.11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39.3 · 교차 검사

arūpo attapaṭilābho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39.4 · 교차 검사

440

찟따여, 비유하자면 소에게서 젖이 나고, 젖에서 굳은 젖이 되고, 굳은 젖에서 생버터가 되고, 생버터에서 정제 버터가 되고, 정제 버터에서 그 가장 맑은 정수가 된다. 젖일 때에는 그것을 굳은 젖이라고도, 생버터라고도, 정제 버터라고도, 정제 버터의 정수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젖이라고만 헤아린다. 굳은 젖일 때에도, 생버터일 때에도, 정제 버터일 때에도, 정제 버터의 정수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정제 버터의 정수일 때에는 그것을 젖이라고도, 굳은 젖이라고도, 생버터라고도, 정제 버터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정제 버터의 정수라고만 헤아린다. 이와 같이 찟따여, 거친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도,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거친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없는 자기 존재의 얻음이라고만 헤아린다. 찟따여, 이것들은 세상의 일컬음이고 세상의 말이다. 세상의 쓰임이고 세상의 개념이다. 여래는 이것들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쓴다.

‘‘Seyyathāpi, citta, gavā khīraṃ, khīramhā dadhi, dadhimhā navanītaṃ, navanītamhā sappi, sappimhā sappimaṇḍo.

“찟따여, 예를 들어 소에서 우유가 생기고, 우유에서 응유가, 응유에서 생버터가, 생버터에서 버터기름이, 버터기름에서 버터기름의 정수가 생긴다.

PN:dn9/440.1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khīraṃ hoti, neva tasmiṃ samaye dadhīti saṅkhaṃ gacchati, na navanītanti saṅkhaṃ gacchati, na sappīti saṅkhaṃ gacchati, na sappimaṇḍoti saṅkhaṃ gacchati;

우유일 때는 그때 응유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생버터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의 정수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PN:dn9/440.2 · 교차 검사

khīraṃ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우유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40.3 · 교차 검사

Yasmiṃ samaye dadhi hoti…pe… navanītaṃ hoti… sappi hoti… sappimaṇḍo hoti, neva tasmiṃ samaye khīranti saṅkhaṃ gacchati, na dadhīti saṅkhaṃ gacchati, na navanītanti saṅkhaṃ gacchati, na sappīti saṅkhaṃ gacchati;

응유일 때는 그때 우유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생버터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의 정수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응유라고만 헤아려진다. 생버터일 때는 그때 우유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응유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의 정수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생버터라고만 헤아려진다. 버터기름일 때는 그때 우유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응유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생버터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의 정수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버터기름이라고만 헤아려진다. 버터기름의 정수일 때는 그때 우유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응유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생버터라고도 헤아려지지 않고, 버터기름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40.2 ~ PN:dn9/440.3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40.4 · 교차 검사

sappimaṇḍo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버터기름의 정수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40.5 · 교차 검사

Evameva kho, citta, y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 hoti…pe… yasmiṃ, citta, samaye manomayo attapaṭilābho hoti…pe… yasmiṃ, citta, samaye arūpo attapaṭilābho hoti, neva tasmiṃ samaye oḷārik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na manomayo attapaṭilābhoti saṅkhaṃ gacchati;

찟따여, 꼭 이와 같이, 거친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때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찟따여,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 있을 때, 그때는 거친 자아 획득이라고 헤아려지지 않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 획득이라고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9:437.8 ~ PN:dn9/437.11에서 되살렸습니다.

PN:dn9/440.6 · 교차 검사

arūpo attapaṭilābho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

그때는 물질 없는 자아 획득이라고만 헤아려진다.

PN:dn9/440.7 · 교차 검사

Imā kho citta, lokasamaññā lokaniruttiyo lokavohārā lokapaññattiyo, yāhi tathāgato voharati aparāmasa’’nti.

찟따여, 이것들은 세상의 통칭이고 세상의 언어이며 세상의 관용어이고 세상의 개념이다. 여래는 이것들로 말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PN:dn9/440.8 · 교차 검사

441

이 말씀을 듣고 유행자 포타파다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눈 있는 이들은 형상들을 보리라’ 하고 밝혀 주신 것과 같습니다. 저는 세존께, 그리고 법과 비구 승가에 의지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지처로 삼은 재가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불확실]

Evaṃ vutte, poṭṭhapā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자 뽓타빠다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PN:dn9/441.1 · 교차 검사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PN:dn9/441.2 · 교차 검사

Abhikkantaṃ, bhante,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세존이시여,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주듯 —

PN:dn9/441.3 · 교차 검사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리라’ 하시듯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41.4 · 교차 검사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이처럼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PN:dn9/441.5 · 교차 검사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PN:dn9/441.6 · 교차 검사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이시여,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PN:dn9/441.7 · 교차 검사

찟따 핫티사리뿟따의 구족계Cittahatthisāriputtaupasampadā

442

한편 찟따 핫티사리뿟따도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눈 있는 이들은 형상들을 보리라’ 하고 밝혀 주신 것과 같습니다. 저는 세존께, 그리고 법과 비구 승가에 의지하겠습니다.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고 싶습니다. 구족계도 받고 싶습니다.[불확실]

Citto pana hatthi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런데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PN:dn9/442.1 · 교차 검사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PN:dn9/442.2 · 교차 검사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PN:dn9/442.3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마치, 세존이시여,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주듯 —

PN:dn9/442.4 · 교차 검사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리라’ 하시듯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dn9/442.5 · 교차 검사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이처럼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PN:dn9/442.6 · 교차 검사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PN:dn9/442.7 · 교차 검사

Labheyyāh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aṃ upasampada’’nti.

세존이시여,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PN:dn9/442.8 · 교차 검사

443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도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존자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힘써 정진하며 지냈다. 그러다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이루어 지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을 다 마쳤으니,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올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히 알았다. 존자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포타파다 경」 아홉째가 끝났다.

Alattha kho citto hatthisāriputt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alattha upasampadaṃ.

찟따 핫티사리뿟따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PN:dn9/443.1 · 교차 검사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citto hatthisāriputt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 cirasseva –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찟따 핫티사리뿟따 존자는 홀로 물러나 부지런하고 열심이며 스스로 다잡아 머물면서, 오래지 않아 —

PN:dn9/443.2 · 교차 검사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

PN:dn9/443.3 · 교차 검사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완전히 알아 실현하고서 이르러 머물렀다.

PN:dn9/443.4 · 교차 검사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살아 마쳤다, 할 일은 다 했다,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

PN:dn9/443.5 · 교차 검사

abbhaññāsi.

그는 분명히 알았다.

PN:dn9/443.6 · 교차 검사

Aññataro kho panāyasmā citto hatthisāriputto arahataṃ ahosīti.

그리하여 찟따 핫티사리뿟따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PN:dn9/443.7 · 교차 검사

Poṭṭhapāda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뽓타빠다 경이 끝났다. 아홉 번째.

PN:dn9/443.8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