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ubhasuttaṃ
10. 수바 경
444
수바 바라문 학도 이야기Subhamāṇavavatthu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물렀다.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또데야의 아들인 청년 수바도 볼일이 있어 사왓티에 와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āyasmā ānando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ciraparinibbute bhagavati.
한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지 오래지 않은 때에,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물렀다.
Tena kho pana samayena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sāvatthiyaṃ paṭivasa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무슨 볼일이 있어 사왓티에 머물고 있었다.
445
어느 날 청년 수바가 한 젊은이를 불러 말했다. “젊은이야, 사문 아난다가 계신 곳으로 가거라. 가서 내 말로 아난다께 문안을 여쭈어라. 병은 없으신지, 아프신 데는 없으신지, 몸은 가벼우시고 기력은 있으신지, 편히 지내시는지 여쭈어라. ‘또데야의 아들인 청년 수바가 아난다 존자께 문안드립니다.’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여라. ‘아난다 존자께서 연민을 내시어, 수바의 집을 한 번 찾아 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하고.”
Atha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aññataraṃ māṇavakaṃ āmantesi –
그때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어떤 젊은 학도를 불렀다 —
‘‘ehi tvaṃ, māṇavaka, yena samaṇo ānando tenupasaṅkama;
“젊은이여, 그대는 사문 아난다께 가거라.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samaṇaṃ ānandaṃ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가서 내 말로 사문 아난다께 병 없으신지, 괴로움 없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라 —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vantaṃ ānandaṃ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아난다 어르신께 병 없으신지, 괴로움 없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Evañca vadehi –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려라 —
‘sādhu kira bhavaṃ ānando yena subhassa māṇavassa todeyy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atu anukampaṃ upādāyā’’’ti.
‘부디 아난다 어르신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으로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446
젊은이는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아난다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운 인사와 정중한 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드렸다.
‘‘Evaṃ, bho’’ti kho so māṇavako subhassa māṇavassa todeyyaputtassa paṭissutvā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예, 어르신이시여” 하고 그 젊은 학도는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대답하고,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o māṇavak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그 젊은 학도가 아난다 존자께 이렇게 여쭈었다 —
“또데야의 아들인 청년 수바가 아난다 존자님께 문안드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아프신 데는 없으신지, 몸은 가벼우시고 기력은 있으신지, 편히 지내시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 연민을 내시어, 수바의 집을 한 번 찾아 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하고요.”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vantaṃ ānandaṃ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아난다 어르신께 병 없으신지, 괴로움 없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evañca vadeti –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sādhu kira bhavaṃ ānando yena subhassa māṇavassa todeyy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atu anukampaṃ upādāyā’’’ti.
‘부디 아난다 어르신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으로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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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아난다 존자가 젊은이에게 말했다. “젊은이야,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는 오늘 약을 한 번 먹었다. 어쩌면 내일은 때와 형편을 보아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taṃ māṇavak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가 그 젊은 학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
‘‘akālo kho, māṇavaka.
“젊은이여, 지금은 때가 아니다.
Atthi me ajja bhesajjamattā pītā.
오늘 나는 약을 한 모금 마셨다.
Appevanāma svepi upasaṅkameyyāma kālañca samayañca upādāyā’’ti.
아마도 내일쯤, 때와 시기를 보아 찾아갈 수 있겠다.”
젊은이는 “알겠습니다, 존자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 수바에게 갔다. 가서 말씀드렸다. “주인님의 말씀을 저희가 아난다 존자님께 전했습니다. ‘또데야의 아들인 청년 수바가 아난다 존자님께 문안드립니다. 병은 없으신지, 아프신 데는 없으신지, 몸은 가벼우시고 기력은 있으신지, 편히 지내시는지 여쭙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 연민을 내시어, 수바의 집을 한 번 찾아 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하고요.
‘‘Evaṃ, bho’’ti kho so māṇavako āyasmato ānandassa paṭissutvā uṭṭhāyāsanā yena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tenupasaṅkami;
“예, 어르신이시여” 하고 그 젊은 학도는 아난다 존자께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갔다.
upasaṅkamitvā subhaṃ māṇavaṃ todeyyaputtaṃ etadavoca, ‘‘avocumhā kho mayaṃ bhoto vacanena taṃ bhavantaṃ ānandaṃ –
가서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 “어르신의 말씀대로 저희가 저 아난다 어르신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vantaṃ ānandaṃ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evañca vadeti –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아난다 어르신께 병 없으신지, 괴로움 없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sādhu kira bhavaṃ ānando yena subhassa māṇavassa todeyy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atu anukampaṃ upādāyā’’’ti.
“부디 아난다 어르신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으로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주인님, 사문 아난다 존자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는 오늘 약을 한 번 먹었다. 어쩌면 내일은 때와 형편을 보아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주인님, 이만해도 적은 일이 아닙니다. 아난다 존자께서 내일 찾아오시겠다고 틈을 내어 주셨으니까요.”
Evaṃ vutte, bho, samaṇo ānando m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르신이시여, 사문 아난다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akālo kho, māṇavaka.
‘젊은이여, 지금은 때가 아니다.
Atthi me ajja bhesajjamattā pītā.
오늘 나는 약을 한 모금 마셨다.
Appevanāma svepi upasaṅkameyyāma kālañca samayañca upādāyā’ti.
아마도 내일쯤, 때와 시기를 보아 찾아갈 수 있겠다.’
Ettāvatāpi kho, bho, katameva etaṃ, yato kho so bhavaṃ ānando okāsamakāsi svātanāyapi upasaṅkamanāyā’’ti.
어르신이시여, 저 아난다 어르신께서 내일 찾아오실 틈을 내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일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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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아난다 존자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었다. 그리고 쩨따까 비구를 수행원으로 삼아 청년 수바의 집으로 갔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tassā rattiyā accayena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cetakena bhikkhunā pacchāsamaṇena yena subhassa māṇavassa todeyy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는 그 밤이 지나고,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쩨따까 비구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삼아,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으로 갔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데야의 아들인 청년 수바가 아난다 존자에게 왔다. 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운 인사와 정중한 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Atha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그때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또데이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아난다 존자께 이렇게 여쭈었다 —
“아난다 존자께서는 고따마 존자를 오랫동안 곁에서 모시며 가까이 따르셨습니다. 그러니 고따마 존자께서 어떤 가르침들을 칭찬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무엇에 이끌어 자리 잡게 하셨는지도 아실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떤 가르침들을 칭찬하셨습니까? 또 사람들을 무엇에 이끌어 자리 잡게 하셨습니까?”
‘‘bhavañhi ānando tassa bhoto gotamassa dīgharattaṃ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아난다 어르신께서는 고따마 존자를 오래도록 시봉하신 분이고, 가까이 머무신 분이며, 곁에서 다니신 분입니다.
Bhavametaṃ ānando jāneyya, yesaṃ so bhavaṃ gotamo dhammānaṃ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i.
아난다 어르신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 고따마 존자께서 어떤 법들을 칭찬하셨는지, 그리고 어디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셨는지를.
Katamesānaṃ kho, bho ānanda, dhammānaṃ so bhavaṃ gotamo vaṇṇavādī ahosi;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떤 법들을 칭찬하셨습니까?
k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ī’’ti?
그리고 어디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셨습니까?”
449
“젊은 바라문이여, 세존께서는 세 가지 무더기를 칭찬하셨다. 또 사람들을 그 세 가지에 이끌어 자리 잡게 하셨다. 어떤 세 가지인가?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 성스러운 지혜의 무더기이다. 젊은 바라문이여, 세존께서는 이 세 가지 무더기를 칭찬하셨다. 또 사람들을 그 세 가지에 이끌어 자리 잡게 하셨다.”
‘‘Tiṇṇaṃ kho, māṇava, khandhānaṃ so bhagavā vaṇṇavādī ahosi;
“바라문 학도여, 세존께서는 세 가지 다발을 칭찬하셨다.
e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i.
그리고 여기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셨다.
Katamesaṃ tiṇṇaṃ?
어떤 셋인가?
Ariyassa sīlakkhandhassa, ariyassa samādhikkhandhassa, ariyassa paññākkhandhassa.
성스러운 계의 다발, 성스러운 삼매의 다발, 성스러운 지혜의 다발이다.
Imesaṃ kho, māṇava, tiṇṇaṃ khandhānaṃ so bhagavā vaṇṇavādī ahosi;
바라문 학도여, 세존께서는 이 세 가지 다발을 칭찬하셨다.
e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ī’’ti.
그리고 여기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셨다.”
계의 다발Sīlakkhand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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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존자님, 고따마 존자께서 칭찬하시고 사람들을 이끌어 자리 잡게 하신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란 어떤 것입니까?”
‘‘Katamo pana so, bho ānanda, ariyo sīlakkhandho, yassa so bhavaṃ gotamo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ī’’ti?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칭찬하시고, 여기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신 그 성스러운 계의 다발이란 무엇입니까?”
“젊은 바라문이여, 여래께서 세상에 나타나신다. 그분은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밝은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 바르게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위없는 분이시다. 사람을 길들이는 마부, 하늘과 인간의 스승, 깨달은 분, 세존이시다. 그분은 하늘 신들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눈앞에 확인하신다. 사문과 바라문, 하늘 신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다. 그분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가르침을 설하신다. 뜻과 표현을 갖추어 설하시고,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수행의 삶을 드러내 보이신다.
‘‘Idha, māṇav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바라문 학도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고, 위없는 분이고, 길들일 사람을 이끄시는 분이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고, 깨달으신 분, 세존이다.
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그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를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서 알린다.
So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그는 법을 설한다 —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그 삶을 드러낸다.
그 가르침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어느 집안에든 태어난 사람이 듣는다. 그는 가르침을 듣고 여래께 믿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믿음을 갖춘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집에 사는 삶은 비좁고 먼지 이는 길이다. 출가의 삶은 탁 트인 허공과 같다. 집에 살면서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깨끗한 수행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소라껍데기처럼 닦인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Taṃ dhammaṃ suṇāti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ññatarasmiṃ vā kule paccājāto.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다른 어떤 가문에 태어난 이가 그 법을 듣는다.
So taṃ dhammaṃ sutvā 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So tena saddhāpaṭilābhena samannāgat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그렇게 얻은 믿음을 지니고 이렇게 성찰한다:
‘sambādho gharāvāso rajopatho, abbhokāso pabbajjā,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ṅ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재가의 삶은 갑갑하고 티끌 이는 길이며, 출가는 확 트인 것이다. 집에 살면서 이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청정한, 소라처럼 매끈한 청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걸치고 집에서 나와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리라.’
그는 얼마 뒤 적은 재산이든 많은 재산이든 버린다. 적은 친족이든 많은 친족이든 버린다.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계율 조항의 단속으로 몸가짐을 다듬어 지낸다. 행동과 활동 영역을 갖추고, 사소한 허물에서도 두려움을 본다. 배울 계율을 받아 익히고, 몸과 말의 행위가 착하며, 생계가 깨끗하다. 계를 갖추고 감각 기능의 문을 지키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고 만족할 줄 안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mahant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app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mahant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그는 뒷날 적은 재산 무더기를 버리거나 많은 재산 무더기를 버리고, 적은 친척 무리를 버리거나 많은 친척 무리를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걸치고 집에서 나와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n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kāyakammavacīkammena samannāgato kusalena, parisuddhājīvo, sīlasampanno, indriyesu guttadvāro,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santuṭṭho.
그는 이렇게 출가하여,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머문다 — 행실과 다니는 곳을 갖추고, 아주 작은 허물에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 조항들을 받아 익히고, 유익한 몸의 행위와 말의 행위를 갖추고, 생계가 청정하고, 계를 갖추고, 감각 기능들의 문을 지키고,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고, 만족한다.
451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어떻게 계를 갖추는가? 여기 비구는 산 것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삼간다.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애롭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연민하며 지낸다.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가 산 것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삼가며,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애롭고,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연민하며 지내는 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이하 194번부터 210번까지의 항목은 이와 같이 펼쳐서 읽어야 한다.[불확실]
‘‘Kathañca, māṇava, bhikkhu sīlasampann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어떻게 계를 갖추는가?
Idha, māṇava, bhikkhu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살생을 버리고 살생에서 떠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고 연민을 지녀, 모든 숨 쉬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머문다.
Yampi, māṇava, bhikkhu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살생을 버리고 살생에서 떠나며,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고 연민을 지녀, 모든 숨 쉬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머무는 것 —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Yathā 194 yāva 210 anucchedesu evaṃ vitthāretabbaṃ).
(194절부터 210절까지에서와 같이 이렇게 자세히 펼쳐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또 어떤 존경받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믿음으로 올린 음식을 먹으면서도 천한 기술과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액막이 의식, 소원 성취 의식, 귀신 의식, 땅 의식, 비를 내리게 하는 의식, 비를 그치게 하는 의식, 집터 의식, 집터 정화 의식, 입 헹구는 의식, 목욕시키는 의식, 불에 공물을 바치는 의식이 있다. 구토시키는 일, 설사시키는 일, 위로 약을 쓰는 일, 아래로 약을 쓰는 일, 머리를 치료하는 일, 귀 기름 치료, 눈 치료, 코 치료, 안약 넣기, 안약 다시 넣기도 있다. 눈 의술, 외과 수술, 어린이 치료, 뿌리 약 처방, 약초를 풀어 주는 일도 있다. 비구는 이런 천한 기술과 그릇된 생계에서 벗어나 삼간다. 어떤 존경받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믿음으로 올린 음식을 먹으면서도 액막이 의식에서 시작해 약초를 풀어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런 생계로 살아간다. 비구는 그런 천한 기술과 그릇된 생계에서 벗어나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seyyathidaṃ –
“또 어떤 사문과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보시한 음식을 먹고서 이러한 하찮은 재주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 이를테면 —
santikammaṃ paṇidhikammaṃ bhūtakammaṃ bhūrikammaṃ vassakammaṃ vossakammaṃ vatthukammaṃ vatthuparikammaṃ ācamanaṃ nhāpanaṃ juhanaṃ vamanaṃ virecanaṃ uddhaṃvirecanaṃ adhovirecanaṃ sīsavirecanaṃ kaṇṇatelaṃ nettatappanaṃ natthukammaṃ añjanaṃ paccañjanaṃ sālākiyaṃ sallakattiyaṃ dārakatikicchā mūlabhesajjānaṃ anuppadānaṃ osadhīnaṃ paṭimokkho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달래는 의식, 서원을 갚는 의식, 귀신을 부리는 의식, 땅에 관한 의식, 비를 부르는 의식, 정을 끊는 의식, 집터를 다지는 의식, 집터를 손질하는 일, 입을 헹구는 의식, 목욕시키기, 불에 바치기, 토하게 하기, 설사시키기, 위로 쏟아 내게 하기, 아래로 쏟아 내게 하기, 머리를 씻어 내리기, 귀에 넣는 기름, 눈을 적시는 약, 코에 넣는 약, 안약 바르기, 안약 덧바르기, 눈 수술, 칼 쓰는 수술, 아이 치료, 뿌리 약을 주는 일, 약초를 쓰고 거두는 일 — 이렇거나 이러한 하찮은 재주로 살아가는 그릇된 생계에서 그는 떠난다.
Yampi, māṇava, bhikkhu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seyyathidaṃ, santikammaṃ paṇidhikammaṃ…pe… osadhīnaṃ paṭimokkho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어떤 사문과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보시한 음식을 먹고서 이러한 하찮은 재주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가는 것 — 이를테면 달래는 의식, 서원을 갚는 의식, 귀신을 부리는 의식, 땅에 관한 의식, 비를 부르는 의식, 정을 끊는 의식, 집터를 다지는 의식, 집터를 손질하는 일, 입을 헹구는 의식, 목욕시키기, 불에 바치기, 토하게 하기, 설사시키기, 위로 쏟아 내게 하기, 아래로 쏟아 내게 하기, 머리를 씻어 내리기, 귀에 넣는 기름, 눈을 적시는 약, 코에 넣는 약, 안약 바르기, 안약 덧바르기, 눈 수술, 칼 쓰는 수술, 아이 치료, 뿌리 약을 주는 일, 약초를 쓰고 거두는 일 — 이렇거나 이러한 하찮은 재주로 살아가는 그릇된 생계에서 떠나는 것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51.7에서 되살렸습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452
젊은 바라문이여, 이렇게 계를 갖춘 비구는 계를 단속하므로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비유하면 머리에 관정을 받은 왕족 출신의 왕이 적을 모두 쓰러뜨린 것과 같다. 그는 적대자로부터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그처럼 이렇게 계를 갖춘 비구도 계를 단속하므로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누린다.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이렇게 계를 갖춘다.
‘‘Sa kho so, māṇava, bhikkhu evaṃ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sīlasaṃvarato.
“바라문 학도여, 이렇게 계를 갖춘 그 비구는 어디로부터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 곧 계의 단속으로 말미암아.
Seyyathāpi, māṇava, rājā khattiyo muddhāvasitto nihatapaccāmitt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paccatthikato.
바라문 학도여, 마치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이 적을 무찌르고 나서 어디로부터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 곧 원수로 말미암아.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evaṃ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sīlasaṃvarato.
바라문 학도여, 꼭 이와 같이 이렇게 계를 갖춘 비구는 어디로부터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 곧 계의 단속으로 말미암아.
So iminā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navajj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느낀다.
Evaṃ kho, māṇava, bhikkhu sīlasampann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이렇게 계를 갖춘다.
453
젊은 바라문이여, 이것이 세존께서 칭찬하시고 사람들을 이끌어 자리 잡게 하신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Ayaṃ kho so, māṇava, ariyo sīlakkhandho yassa so bhagavā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i.
“바라문 학도여, 이것이 세존께서 칭찬하시고, 여기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신 그 성스러운 계의 다발이다.
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nti.
그리고 여기에는 더 해야 할 것이 있다.”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신기합니다, 아난다 존자님!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는 원만하고 모자람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원만한 계의 무더기를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에게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렇게 원만한 계의 무더기를 자신에게서 보았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만하면 해냈다. 우리는 사문의 목적에 이르렀다. 우리에게는 더 해야 할 일이 없다.’ 그런데도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하고요.”
‘‘Acchariyaṃ, bho ānanda, abbhutaṃ, bho ānanda!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So cāyaṃ, bho ānanda, ariyo sīlakkhandho paripuṇṇo, no aparipuṇṇo.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은 원만하고, 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Evaṃ paripuṇṇaṃ cāhaṃ, bho, ānanda, ariyaṃ sīlakkhandhaṃ ito bahiddhā aññesu samaṇabrāhmaṇesu na samanupassāmi.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저는 이렇게 원만한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이 밖의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에게서 보지 못합니다.
Evaṃ paripuṇṇañca, bho ānanda, ariyaṃ sīlakkhandhaṃ ito bahiddhā aññe samaṇabrāhmaṇā attani samanupasseyyuṃ, te tāvatakeneva attamanā assu –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이 밖의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렇게 원만한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자기 안에서 본다면, 그들은 그만큼으로 흡족해할 것입니다 —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karaṇīya’nti.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만하면 다 했다, 우리는 사문의 목적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더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Atha ca pana bhavaṃ ānando evamāha –
그런데 아난다 어르신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nti.
‘그리고 여기에는 더 해야 할 것이 있다.’”
삼매의 다발Samādhikkhandho
454
“아난다 존자님, 고따마 존자께서 칭찬하시고 사람들을 이끌어 자리 잡게 하신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란 어떤 것입니까?”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어떻게 감각 기능의 문을 지키는가?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고도 그 겉모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세부 특징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마음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실천한다. 눈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Katamo pana so, bho ānanda, ariyo samādhikkhandho, yassa so bhavaṃ gotamo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ī’’ti?
“아난다 어르신이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칭찬하시고, 여기에 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리 잡게 하고 세우신 그 성스러운 삼매의 다발이란 무엇입니까?”
‘‘Kathañca, māṇav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어떻게 감각 기능들의 문을 지키는가?
Idha, māṇava,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눈의 기능을 지키고, 눈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닿음을 느끼고,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그렇다. 그는 겉모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부 특징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마음 상태들이 스며든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실천한다.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그는 이 성스러운 감각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흐트러짐 없는 행복을 누린다.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이렇게 감각 기능의 문을 지킨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귀의 기능을 지키고, 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코로 냄새를 맡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코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코의 기능을 지키고, 코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혀로 맛을 보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혀의 기능을 지키고, 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몸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몸의 기능을 지키고, 몸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54.3 ~ PN:dn10/454.4에서 되살렸습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마음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byāsek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감각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느낀다.
Evaṃ kho, māṇav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이렇게 감각 기능들의 문을 지킨다.
455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어떻게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는가? 여기 비구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 분명히 알고 행한다. 앞을 보고 둘러볼 때, 몸을 굽히고 펼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겉옷과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그렇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그렇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고 행한다.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이렇게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춘다.
‘‘Kathañca, māṇav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는가?
Idha, māṇava,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의와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Evaṃ kho, māṇav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이렇게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춘다.
456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어떻게 만족하는가? 여기 비구는 몸을 가릴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그는 어디로 가든 가진 것만 지니고 간다. 비유하면 날개 달린 새가 어디로 날아가든 날개의 무게만 지니고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처럼 비구는 몸을 가릴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그는 어디로 가든 가진 것만 지니고 간다.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이렇게 만족한다.
‘‘Kathañca, māṇa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어떻게 만족하는가?
Idha, māṇa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몸을 돌보는 옷과 배를 돌보는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떠나든 그것만 지니고 떠난다.
Seyyathāpi, māṇava, pakkhī sakuṇo yena yeneva ḍeti, sapattabhārova ḍeti;
바라문 학도여,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로 날아가든 제 날개만을 짐으로 지고 날아가듯이,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바라문 학도여, 꼭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돌보는 옷과 배를 돌보는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떠나든 그것만 지니고 떠난다.
Evaṃ kho, māṇa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이렇게 만족한다.
457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이 성스러운 감각 기능의 단속과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 이 성스러운 만족도 갖추었다. 그런 그는 한적한 거처를 찾는다. 숲, 나무 밑, 산, 골짜기, 산속 동굴, 무덤, 깊은 숲, 탁 트인 땅, 짚더미 같은 곳이다. 그는 식사 뒤에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몸을 곧게 세우고 알아차림을 눈앞에 둔다.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감각 기능의 단속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만족을 갖추어, 외딴 거처를 찾아든다 — 숲, 나무 밑, 산, 골짜기, 산의 동굴, 무덤터, 숲속 깊은 곳, 노지, 짚더미.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워 앉는다 — 마음챙김을 앞에 세우고서.
458
그는 세간의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익을 연민하며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고 그것 없이 지낸다. 빛을 떠올리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아 해태와 혼침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고 지낸다.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지낸다. 해로움과 이로움을 가르는 일에 망설임이 없어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이 사라진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모든 숨 쉬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고,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해태와 혼침을 버리고 해태와 혼침이 사라져 머물며, 빛을 인식하고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고 머물며,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머물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어찌할 바를 묻지 않고,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459
젊은 바라문이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을 벌였다고 하자. 그의 사업이 잘되었다. 그는 옛 빚을 모두 갚았고, 처자를 부양할 돈까지 남았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사업이 잘되었다. 그래서 옛 빚을 모두 갚았고, 처자를 부양할 돈까지 남았다.’ 그는 이 때문에 기쁨을 얻고 마음이 흐뭇해질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iṇaṃ ādāya kammante payojeyya.
“바라문 학도여, 마치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을 벌인다고 하자.
Tassa te kammantā samijjheyyuṃ.
그 사업이 잘되었다고 하자.
So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ṃ kareyya, siyā cassa uttariṃ avasiṭṭhaṃ dārabharaṇāya.
그래서 그가 옛 빚의 밑돈을 다 갚고도, 아내를 부양할 것이 더 남았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iṇaṃ ādāya kammante payojesiṃ.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사업을 벌였다.
Tassa me te kammantā samijjhiṃsu.
그런 나에게 그 사업이 잘되었다.
Sohaṃ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ṃ akāsiṃ, atthi ca me uttariṃ avasiṭṭhaṃ dārabharaṇāyā’ti.
그래서 나는 옛 빚의 밑돈을 다 갚았고, 아내를 부양할 것도 더 남아 있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원인으로 기쁨을 얻고, 즐거운 마음에 이를 것이다.
460
젊은 바라문이여,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고 있다고 하자.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몸에 힘도 없다. 그가 얼마 뒤 그 병에서 벗어났다. 음식이 입에 맞고 몸에 힘도 붙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병이 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고 몸에 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병에서 벗어났다. 음식이 입에 맞고 몸에 힘도 있다.’ 그는 이 때문에 기쁨을 얻고 마음이 흐뭇해질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ābādhiko assa dukkhito bāḷhagilāno;
“바라문 학도여, 마치 어떤 사람이 병들어 괴롭고 몹시 앓는다고 하자.
bhattañcassa nacchādeyya, na cassa kāye balamattā.
그에게 음식이 받지 않고, 몸에 기력이 없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ābādhā mucceyya, bhattañcassa chādeyya, siyā cassa kāye balamattā.
그가 뒷날 그 병에서 벗어나고, 음식이 받고, 몸에 기력이 있게 되었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ābādhiko ahosiṃ dukkhito bāḷhagilāno, bhattañca me nacchādesi, na ca me āsi kāye balamattā.
‘나는 전에 병들어 괴롭고 몹시 앓았다. 음식이 받지 않았고, 몸에 기력이 없었다.
Somhi etarahi tamhā ābādhā mutto bhattañca me chādeti, atthi ca me kāye balamattā’ti.
그런 내가 이제 그 병에서 벗어났고, 음식이 받고, 몸에 기력이 있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원인으로 기쁨을 얻고, 즐거운 마음에 이를 것이다.
461
젊은 바라문이여,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자. 그가 얼마 뒤 무사히 안전하게 그 감옥에서 풀려났다. 재산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사히 안전하게 그 감옥에서 풀려났다. 재산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는 이 때문에 기쁨을 얻고 마음이 흐뭇해질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bandhanāgāre baddho assa.
“바라문 학도여, 마치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bandhanāgārā mucceyya sotthinā abbhayena, na cassa kiñci bhogānaṃ vayo.
그가 뒷날 그 감옥에서 무사히 두려움 없이 풀려나고, 재산이 조금도 축나지 않았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bandhanāgāre baddho ahosiṃ.
‘나는 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다.
Somhi etarahi tamhā bandhanāgārā mutto sotthinā abbhayena, natthi ca me kiñci bhogānaṃ vayo’ti.
그런 내가 이제 그 감옥에서 무사히 두려움 없이 풀려났고, 내 재산은 조금도 축나지 않았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원인으로 기쁨을 얻고, 즐거운 마음에 이를 것이다.
462
젊은 바라문이여,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남에게 매여 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다. 그가 얼마 뒤 그 종살이에서 풀려났다. 이제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고 남에게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종살이를 했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남에게 매여 있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종살이에서 풀려났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고 남에게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는 이 때문에 기쁨을 얻고 마음이 흐뭇해질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dāso assa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ṃgamo.
“바라문 학도여, 마치 어떤 사람이 종이어서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dāsabyā mucceyya,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ṃgamo.
그가 뒷날 그 종살이에서 풀려나 제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으며, 자유로운 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dāso ahosiṃ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ṃgamo.
‘나는 전에 종이어서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했다.
Somhi etarahi tamhā dāsabyā mutto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ṃgamo’ti.
그런 내가 이제 그 종살이에서 풀려나 제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으며, 자유로운 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원인으로 기쁨을 얻고, 즐거운 마음에 이를 것이다.
463
젊은 바라문이여, 또 비유하면 재산과 재물을 가진 어떤 사람이 사막길에 들어섰다고 하자. 그곳은 먹을 것이 귀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길이다. 그가 얼마 뒤 그 사막을 건너, 무사히 안전하고 두려움 없는 마을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재산과 재물을 가지고 먹을 것이 귀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사막을 건너, 무사히 안전하고 두려움 없는 마을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는 이 때문에 기쁨을 얻고 마음이 흐뭇해질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ṃ paṭipajjeyya dubbhikkhaṃ sappaṭibhayaṃ.
“바라문 학도여, 마치 재산 있고 재물 있는 어떤 사람이 먹을 것이 없고 두려움이 도사린 사막 길에 들어선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ṃ kantāraṃ nitthareyya, sotthinā gāmantaṃ anupāpuṇeyya khemaṃ appaṭibhayaṃ.
그가 뒷날 그 사막을 건너, 무사히 마을 어귀에 이르러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ṃ paṭipajjiṃ dubbhikkhaṃ sappaṭibhayaṃ.
‘나는 전에 재산 있고 재물 있는 몸으로 먹을 것이 없고 두려움이 도사린 사막 길에 들어섰다.
Somhi etarahi kantāraṃ nitthiṇṇo, sotthinā gāmantaṃ anuppatto khemaṃ appaṭibhaya’nti.
그런 내가 이제 사막을 건넜고, 무사히 마을 어귀에 이르러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원인으로 기쁨을 얻고, 즐거운 마음에 이를 것이다.
464
이처럼 젊은 바라문이여, 비구는 이 다섯 가지 덮개가 아직 버려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자기 안에서 본다. 빚처럼, 병처럼, 감옥처럼, 종살이처럼, 사막길처럼 본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yathā iṇaṃ yathā rogaṃ yathā bandhanāgāraṃ yathā dāsabyaṃ yathā kantāraddhānamaggaṃ, evaṃ ime pañca nīvaraṇe appahīne attani samanupassati.
“바라문 학도여, 꼭 이와 같이 비구는 빚과 같이, 병과 같이, 감옥과 같이, 종살이와 같이, 사막 길과 같이 — 이 다섯 장애가 자기 안에서 버려지지 않았음을 본다.
465
젊은 바라문이여, 이를테면 빚이 없는 상태와 같고, 병이 없는 건강과 같다. 감옥에서 풀려남과 같고, 자유인과 같고, 안전한 땅과 같다. 이처럼 비구는 이 다섯 가지 덮개가 버려졌을 때, 그것을 그렇게 자기 안에서 본다.
‘‘Seyyathāpi, māṇava, yathā āṇaṇyaṃ yathā ārogyaṃ yathā bandhanāmokkhaṃ yathā bhujissaṃ yathā khemantabhūmiṃ.
“바라문 학도여, 마치 빚 없음과 같이, 병 없음과 같이, 감옥에서 풀려남과 같이, 자유로운 몸과 같이, 안전한 땅과 같이.
Evameva bhikkhu 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i.
꼭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다섯 장애가 자기 안에서 버려졌음을 본다.
466
이 다섯 가지 덮개가 버려진 것을 자기 안에서 보는 그에게 기쁨이 생긴다. 기쁜 이에게는 희열이 생기고, 희열에 찬 이는 몸이 편안해진다. 몸이 편안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집중된다.
‘‘Tass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이 다섯 장애가 자기 안에서 버려졌음을 보는 그에게 기쁨이 생기고,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에 찬 이의 몸은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한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467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난다. 해로운 상태에서도 멀리 떠난다. 그러고는 대상을 향한 생각과 곳곳을 살피는 헤아림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는 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신다. 기쁨과 즐거움이 몸에 스며들어 가득 차고 두루 번진다. 그래서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솜씨 좋은 목욕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놋쇠 대야에 목욕 가루를 흩어 놓는다고 하자. 그가 물을 조금씩 뿌려 가며 가루를 반죽하면,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어 흠뻑 젖는다. 안팎이 물기로 가득하지만 물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번지게 한다.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Seyyathāpi, māṇava,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ṃ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ṃ paripphosakaṃ sandeyya.
젊은이여, 마치 솜씨 좋은 목욕 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청동 대야에 목욕 가루를 쏟아 넣고 물을 거듭거듭 뿌려 가며 이겨 놓는 것과 같다.
Sāyaṃ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aṇī.
그 목욕 가루 덩어리는 물기가 배어들고 물기에 젖어, 안팎으로 물기가 두루 스몄으되 물방울이 흘러내리지는 않는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나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대상을 향한 생각과 살피는 헤아림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는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온통 적시고 가득 채운다. 닿지 않는 곳은 온몸 어디에도 없다. 이것 또한 그의 삼매에 속한다.
Yampi, māṇava,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젊은이여, 비구가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무는 것,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가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여,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
Idampissa hoti samādhismiṃ.
이것도 그에게 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468
젊은이여, 다시 비구는 생각과 헤아림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인다. 그리하여 생각도 헤아림도 없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는 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시고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운다. 두루 번져서,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Puna caparaṃ, māṇav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또, 젊은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 깊은 호수가 있다고 하자. 이 호수에는 동쪽에도 남쪽에도 서쪽에도 북쪽에도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없다. 하늘이 때맞춰 비를 넉넉히 내려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호수 바닥에서 찬 물줄기가 솟아올라 호수를 적시고 가득 채운다. 찬 물이 닿지 않는 곳은 호수 어디에도 없다.[불확실]
‘‘Seyyathāpi, māṇava,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젊은이여, 마치 깊고 물이 솟아오르는 못과 같다.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devo ca na kālena kālaṃ sammā dhāraṃ anupaveccheyya.
그 못에는 동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어귀도 없고, 남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어귀도 없고, 서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어귀도 없고, 북쪽에서 물이 흘러드는 어귀도 없으며, 하늘도 때때로 알맞게 비를 내려 주지 않는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ṃ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그런데도 바로 그 못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바로 그 못을 차가운 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여, 그 못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생각과 헤아림이 가라앉아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물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번지게 한다. 그 기쁨과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이것 또한 그의 삼매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비구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무는 것, 그가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여,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68.1 ~ PN:dn10/468.2에서 되살렸습니다.
Idampissa hoti samādhismiṃ.
이것도 그에게 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469
젊은이여, 다시 비구는 기쁨이 가시고 평온하게 머문다.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또렷이 깨어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은 이것을 두고 ‘평온하고 알아차림이 있으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한다. 비구는 이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기쁨이 없는 이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번지게 한다. 그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māṇav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다시 또, 젊은이여, 비구는 희열이 스러지고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이렇게 일컫는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푸른 연꽃 못이나 붉은 연꽃 못이나 흰 연꽃 못이 있다고 하자. 그 가운데 어떤 연꽃은 물속에서 나고 물속에서 자란다.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겨 자란다. 이 꽃들은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찬 물에 젖고 스며들어 가득 찬다. 그래서 찬 물이 닿지 않는 곳은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 어디에도 없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기쁨이 가시고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Seyyathāpi, māṇav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ṃ uppalānaṃ vā padumānaṃ vā puṇḍarīkānaṃ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젊은이여, 마치 청련 못이나 홍련 못이나 백련 못에서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라는데, 그것들은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적셔 들고 두루 적셔지고 가득 차고 온통 퍼져 있어,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pe…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비구가 희열이 스러지고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일컫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무는 것[불확실]
불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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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쁨 없는 이 즐거움으로 바로 이 몸을 적시고 가득 채워 두루 번지게 한다. 그 즐거움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이것 또한 그의 삼매에 속한다.
So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셔 들게 하고 두루 적시고 가득 채우고 온통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ssa hoti samādhismiṃ.
이것도 그에게 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470
젊은이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린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알아차림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그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다.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Puna caparaṃ, māṇav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또, 젊은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갖춘 제4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두루 채운 채 앉아 있으니;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어떤 사람이 머리까지 흰 천을 둘러쓰고 앉아 있다고 하자. 흰 천이 닿지 않는 곳은 그의 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리고, 앞서 기쁨과 근심도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은 평온과 알아차림으로 청정하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ṃ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ṃ assa.
젊은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흰 천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앉아 있어,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두루 채운 채 앉아 있어,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이여, 비구가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갖춘 제4선에 들어 머무는 것,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0.2 ~ PN:dn10/470.3에서 되살렸습니다.
그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다. 그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다. 이것 또한 그의 삼매에 속한다.
So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두루 채운 채 앉아 있으니;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ssa hoti samādhismiṃ.
이것도 그에게 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471
젊은이여, 세존께서 찬탄하신 것이 바로 이 거룩한 삼매의 무더기다.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이끌어 이 삼매에 자리 잡게 하셨다. 그런데 이 위에도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Ayaṃ kho so, māṇava, ariyo samādhikkhandho yassa so bhagavā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i.
젊은이여, 이것이 바로 그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이니, 세존께서 칭찬하여 말씀하신 것이고, 세존께서 이 사람들을 그리로 이끌어 들이고 자리 잡게 하고 굳게 세우신 것이다.
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nti.
그리고 여기에는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신기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거룩한 삼매의 무더기는 모자람 없이 가득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저는 이렇게 갖추어진 삼매의 무더기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Acchariyaṃ, bho ānanda, abbhutaṃ, bho ānanda!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So cāyaṃ, bho ānanda, ariyo samādhikkhandho paripuṇṇo, no aparipuṇṇo.
아난다 존자시여, 이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는 온전히 갖추어졌고, 모자라지 않습니다.
Evaṃ paripuṇṇaṃ cāhaṃ, bho ānanda, ariyaṃ samādhikkhandhaṃ ito bahiddhā aññesu samaṇabrāhmaṇesu na samanupassāmi.
아난다 존자시여, 이토록 온전히 갖추어진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를 저는 이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서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런 삼매의 무더기를 자신에게서 보았다면, 그들은 그것만으로 흡족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해냈다. 우리는 사문의 목적에 이르렀다. 우리가 더 해야 할 일은 없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위에도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Evaṃ paripuṇṇañca, bho ānanda, ariyaṃ samādhikkhandhaṃ ito bahiddhā aññe samaṇabrāhmaṇā attani samanupasseyyuṃ, te tāvatakeneva attamanā assu –
아난다 존자시여, 이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이 이토록 온전히 갖추어진 성스러운 삼매의 무더기를 자기 안에서 본다면, 그들은 그만한 것으로도 흡족해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karaṇīya’nti.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다 했다, 우리는 사문의 목적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더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Atha ca pana bhavaṃ ānando evamāha –
그런데도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nti.
‘여기에는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통찰지의 무더기Paññākkhandho
472
아난다 존자여,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께서 찬탄하시고 사람들을 이끌어 자리 잡게 하신 그 거룩한 지혜의 무더기란 무엇입니까?
‘‘Katamo pana so, bho ānanda, ariyo paññākkhandho, yassa bho bhavaṃ gotamo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ī’’ti?
그렇다면 아난다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칭찬하여 말씀하셨고, 이 사람들을 그리로 이끌어 들이고 자리 잡게 하고 굳게 세우신 그 성스러운 통찰지의 무더기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진다.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는 앎과 봄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자란다. 덧없고,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고 여기에 매여 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앎과 봄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이 나의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자라났으며, 무상하여 문질러 씻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매여 있다’고.
젊은이여, 빛나고 순수한 혈통의 팔각 유리 보석이 있다고 하자. 잘 갈고 닦여 맑고 투명하며 흐림이 없고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 이 보석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 붉은 실, 흰 실, 또는 옅은 황색 실이 꿰어져 있다. 눈 밝은 사람이 보석을 손에 쥐고 살펴보며 이렇게 안다. ‘이것은 빛나고 순수한 혈통의 팔각 유리 보석이다. 잘 갈고 닦여 맑고 투명하며 흐림이 없고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 여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 붉은 실, 흰 실, 또는 옅은 황색 실이 꿰어져 있다.’
‘‘Seyyathāpi, māṇav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젊은이여, 마치 아름답고 훌륭하며 여덟 모가 나고 잘 다듬어진 유리 보배 구슬이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온갖 좋은 점을 다 갖추었는데,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거기에 파랗거나 노랗거나 붉거나 희거나 옅은 빛깔의 실이 꿰어져 있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손에 놓고 살펴본다면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이 유리 보배 구슬은 아름답고 훌륭하며 여덟 모가 나고 잘 다듬어졌고,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온갖 좋은 점을 다 갖추었다.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그리고 여기에는 파랗거나 노랗거나 붉거나 희거나 옅은 빛깔의 실이 꿰어져 있다’고 할 것이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고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앎과 봄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자란다. 덧없고,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고 여기에 매여 있다.’[불확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앎과 봄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이 나의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자라났으며, 무상하여 문질러 씻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매여 있다’고.
젊은이여, 비구는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앎과 봄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 몸이 덧없다는 것을 안다. 또 자신의 의식이 이 몸에 매여 있다는 것도 안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앎과 봄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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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evaṃ pajānāti…pe… ettha paṭibaddhanti.
그는 이렇게 안다 — ‘이 나의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자라났으며, 무상하여 문질러 씻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매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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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에게 통찰지에 속하는 것이다.
473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고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그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 몸에서 또 하나의 몸을 만들어 낸다. 이 몸은 물질적이고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크고 작은 모든 지체를 갖추고 감각기관에 모자람이 없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어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그는 이 몸에서 다른 몸을, 형상을 지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온갖 크고 작은 부분을 갖추고 감각 기능에 모자람이 없는 몸을 지어낸다.
젊은이여, 어떤 사람이 문자 풀에서 속대를 뽑아낸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풀이고 이것은 속대다. 풀과 속대는 서로 다르다. 속대는 바로 이 풀에서 뽑아낸 것이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muñjamhā īsikaṃ pavāheyya.
젊은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문자 풀에서 속대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muñjo ayaṃ īsikā;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속대다;
añño muñjo aññā īsikā;
문자 풀도 다르고 속대도 다르다;
muñjamhā tveva īsikā pavāḷhā’ti.
그러나 속대는 문자 풀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또 젊은이여,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는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서로 다르다. 칼은 바로 이 칼집에서 뽑아낸 것이다.’
Seyyathā vā pana, māṇava, puriso asiṃ kosiyā pavāheyya.
또는 젊은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뽑아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si, ayaṃ kosi;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añño asi, aññā kosi;
칼도 다르고 칼집도 다르다;
kosiyā tveva asi pavāḷho’ti.
그러나 칼은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또 젊은이여, 어떤 사람이 바구니에서 뱀을 꺼낸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바구니다. 뱀과 바구니는 서로 다르다. 뱀은 바로 이 바구니에서 꺼낸 것이다.’
Seyyathā vā pana, māṇava, puriso ahiṃ karaṇḍā uddhareyya.
또는 젊은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뱀을 바구니에서 꺼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hi, ayaṃ karaṇḍo;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바구니다;
añño ahi, añño karaṇḍo;
뱀도 다르고 바구니도 다르다;
karaṇḍā tveva ahi ubbhato’ti.
그러나 뱀은 바구니에서 꺼내어진 것이다’라고.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마음이 집중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나머지는 앞에서와 같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pe….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어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며, 이 몸에서 다른 몸을, 형상을 지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온갖 크고 작은 부분을 갖추고 감각 기능에 모자람이 없는 몸을 지어낸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어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 그가 이 몸에서 다른 몸을, 형상을 지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온갖 크고 작은 부분을 갖추고 감각 기능에 모자람이 없는 몸을 지어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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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에게 통찰지에 속하는 것이다.
474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고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그는 여러 가지 신통의 힘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신통을 누린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담이나 성벽이나 산도 허공을 가듯 거리낌 없이 지나간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여러 가지 신통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그는 여러 가지 신통을 몸소 겪는다.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나타났다 사라지고, 담을 넘고 성벽을 넘고 산을 넘어 걸림 없이 가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물속인 듯 솟았다 잠겼다 한다. 물 위에서도 땅 위를 걷듯 가라앉지 않고 걸어간다. 허공에서도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날아간다. 이토록 큰 신통과 위력을 지닌 해와 달조차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멀리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솟았다 잠겼다 하기를 마치 물에서처럼 한다.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aṃ.
물 위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가기를 마치 땅에서처럼 한다.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 가기를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Imepi candimasūriye evaṃ mahiddhike evaṃ 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힘을 미친다.
젊은이여, 솜씨 좋은 옹기장이나 그 제자가 잘 이긴 진흙으로 원하는 그릇을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고 하자. 또 솜씨 좋은 상아 세공사나 그 제자가 잘 다듬은 상아로 원하는 세공품을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고 하자. 또 솜씨 좋은 금세공사나 그 제자가 잘 정련한 금으로 원하는 금붙이를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고 하자.
‘‘Seyyathāpi, māṇava, dakkho kumbhakāro vā kumbh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āya mattikāya yaññadeva bhājan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젊은이여, 마치 솜씨 좋은 옹기장이나 그 제자가 잘 이겨 놓은 진흙으로 어떤 그릇 모양이든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을 만들어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māṇava, dakkho dantakāro vā dant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dantasmiṃ yaññadeva dant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젊은이여, 마치 솜씨 좋은 상아 세공인이나 그 제자가 잘 다듬어 놓은 상아로 어떤 상아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을 만들어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māṇava, dakkho suvaṇṇakāro vā suvaṇṇ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suvaṇṇasmiṃ yaññadeva suvaṇṇ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젊은이여, 마치 솜씨 좋은 금 세공인이나 그 제자가 잘 다듬어 놓은 금으로 어떤 금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을 만들어 이루어 내는 것과 같다.
젊은이여, 비구도 이와 같다. 마음이 집중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여러 가지 신통의 힘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신통을 누린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멀리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 …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바로 이와 같이, 젊은이여,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여러 가지 신통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며, 여러 가지 신통을 몸소 겪는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여러 가지 신통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4.1 ~ PN:dn10/474.2에서 되살렸습니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그는 여러 가지 신통을 몸소 겪는다.
Ekopi hutvā bahudhā hoti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담을 넘고 성벽을 넘고 산을 넘어 걸림 없이 가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솟았다 잠겼다 하기를 마치 물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가기를 마치 땅에서처럼 한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 가기를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힘을 미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4.3 ~ PN:dn10/474.9에서 되살렸습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에게 통찰지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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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하늘귀의 능력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맑고 청정한 하늘귀로 소리를 듣는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 두 가지를 모두 듣는다.
‘‘So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성한 귀 요소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그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 요소로,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신성한 소리와 인간의 소리, 그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젊은이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고 있다고 하자. 그가 북소리와 작은북 소리, 소라고둥과 큰북과 장구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알 것이다. ‘이것은 북소리다, 이것은 작은북 소리다, 이것은 소라고둥과 큰북과 장구 소리다.’ 젊은이여, 이와 꼭 같이 비구는 …중략….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addhānamaggappaṭipanno.
젊은이여, 예를 들면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So suṇeyya bherisaddampi mudiṅgasaddam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ampi.
그는 북소리도 듣고, 장구 소리도 듣고, 소라와 자바라와 큰북 소리도 들을 것이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bherisaddo itipi mudiṅgasaddo iti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o iti’pi.
‘이것은 북소리다, 이것은 장구 소리다, 이것은 소라와 자바라와 큰북 소리다’라고.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젊은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 요소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젊은이여, 비구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하늘귀의 능력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맑고 청정한 하늘귀로 소리를 듣는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 두 가지를 모두 듣는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 요소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그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 요소로,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신성한 소리와 인간의 소리, 그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의 통찰지에 속한다.
476
마음이 이렇게 안정되고 깨끗하고 맑아졌다고 하자.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고 다루기 좋아졌다고 하자. 그리고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능력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은 ‘탐욕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성냄을 떠난 마음은 ‘성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은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든 마음’이라고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라고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더 위가 있는 마음은 ‘더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더 위가 없는 마음은 ‘더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안정된 마음은 ‘안정된 마음’이라고 안다. 안정되지 않은 마음은 ‘안정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둘러 알아,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탐욕이 없는 마음은 탐욕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성냄이 없는 마음은 성냄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축된 마음은 위축된 마음이다’라고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다’라고 알고,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다’라고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없는 마음은 위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다’라고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알고,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다’라고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안다.
젊은이여, 비유하자면 몸치장을 좋아하는 젊은 여자나 남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깨끗하고 맑은 거울이나 투명한 물그릇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본다. 그러면 점이 있으면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으면 ‘점이 없다’고 안다. 그것과 같다.
‘‘Seyyathāpi, māṇava,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jāneyya.
젊은이여, 예를 들면 젊고 한창때이며 몸단장을 좋아하는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맑은 거울이나 맑은 물그릇에 제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고, 점이 있으면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으면 ‘점이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젊은이여, 이와 꼭 같이 비구는 …중략…. 젊은이여, 비구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능력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중략…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p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parasattānaṃ pu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pe…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둘러 알아,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탐욕이 없는 마음은 탐욕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성냄이 없는 마음은 성냄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축된 마음은 위축된 마음이다’라고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다’라고 알고,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다’라고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위없는 마음은 위없는 마음이다’라고 알고,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다’라고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알고,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다’라고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다’라고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2에서 되살렸습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의 통찰지에 속한다.
477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낸다. 이를테면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을 기억한다.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도 기억한다.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을 기억하고, 세계가 무너지는 많은 겁에 걸친 생도 기억한다. 세계가 다시 생겨나는 많은 겁,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많은 겁에 걸친 생도 기억한다.
‘‘So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Seyyathidaṃ,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곧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우주가 수축하는 여러 겁, 우주가 팽창하는 여러 겁, 우주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과 이런 가문을 지녔다. 이런 용모를 하고 이런 음식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거기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과 이런 가문을 지녔다. 이런 용모를 하고 이런 음식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그곳에서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 이렇게 그는 갖가지 전생을 그 모습과 사정까지 자세히 기억해 낸다.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나는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so tato cuto idhūpapanno’ti.
나는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와 같이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젊은이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갔다고 하자. 그는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떠올릴 것이다. ‘나는 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 마을에서 또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는 그 마을에서 내 마을로 돌아왔다.’
‘‘Seyyathāpi, māṇava, puriso sakamhā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젊은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고;
tamhāpi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가고;
so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ccheyya.
그가 그 마을에서 자기 마을로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sakamhā gāmā amuṃ gāmaṃ agacchiṃ, tatra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나는 자기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고, 거기서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침묵했다.
So tamhāpi gāmā amuṃ gāmaṃ gacchiṃ, tatrāpi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나는 그 마을에서 또 저 마을로 갔고,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침묵했다.
Somhi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to’ti.
나는 그 마을에서 자기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젊은이여, 이와 꼭 같이 비구는 …중략…. 젊은이여, 비구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낸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한 번의 생을 …중략… 이렇게 그는 갖가지 전생을 그 모습과 사정까지 자세히 기억해 낸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Seyyathidaṃ –
곧 —
ekampi jātiṃ…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우주가 수축하는 여러 겁, 우주가 팽창하는 여러 겁, 우주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나는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누렸다; 나는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7.3 ~ PN:dn10/477.7에서 되살렸습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의 통찰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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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중생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아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맑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또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것을 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그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하거나 뛰어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좋은 곳에 갔거나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보며,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
‘참으로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릇된 견해에 따른 행위를 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의 곳, 지옥에 태어났다. 한편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바른 견해에 따른 행위를 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이렇게 그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맑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또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것을 안다.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행을 갖추었고, 말로 나쁜 행을 갖추었고, 마음으로 나쁜 행을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그러나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은 행을 갖추었고, 말로 좋은 행을 갖추었고, 마음으로 좋은 행을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와 같이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하거나 뛰어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좋은 곳에 갔거나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보며,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젊은이여, 비유하자면 큰 사거리 한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고, 눈 밝은 사람이 그 위에 서 있다고 하자. 그는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 것을 본다. 길을 오가기도 하고, 사거리 한가운데 앉아 있기도 한 것을 본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알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고, 저 사람들은 나온다. 이 사람들은 길을 오가고, 저 사람들은 사거리 한가운데 앉아 있다.’
‘‘Seyyathāpi, māṇava, majjhesiṅghāṭake pāsādo, tattha cakkhumā puriso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ṃ pavisantepi nikkhamantepi rathikāyapi vīthiṃ sañcarante majjhesiṅghāṭake nisinnepi.
젊은이여, 예를 들면 네거리 한가운데에 저택이 있고, 눈 있는 사람이 거기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길을 따라 거리를 오가는 것도, 네거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도 보는 것과 같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ete manussā gehaṃ pavisanti, ete nikkhamanti, ete rathikāya vīthiṃ sañcaranti, ete majjhesiṅghāṭake nisinnā’ti.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간다, 이 사람들은 나온다, 이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거리를 오간다, 이 사람들은 네거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라고.
젊은이여, 이와 꼭 같이 비구는 …중략…. 젊은이여, 비구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중생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아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맑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또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것을 안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6.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그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하거나 뛰어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좋은 곳에 갔거나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보며,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의 통찰지에 속한다.
479
마음이 이렇게 안정되고 깨끗하고 맑아졌다고 하자.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고 다루기 좋아졌다고 하자. 그리고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번뇌가 다했음을 아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그리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또 ‘이것들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그리고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난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는 앎이 생긴다. 그리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으며,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번뇌를 다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다 살았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젊은이여, 비유하자면 산속 골짜기에 맑고 투명하고 흐리지 않은 호수가 있다고 하자. 눈 밝은 사람이 그 기슭에 서서 본다. 조개와 껍데기, 조약돌과 자갈, 물고기 떼가 헤엄치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한 것이 보인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알 것이다. ‘이 호수는 맑고 투명하고 흐리지 않다. 저기 조개와 껍데기, 조약돌과 자갈, 물고기 떼가 헤엄치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하다.’
‘‘Seyyathāpi, māṇav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젊은이여, 예를 들면 산속에 맑고 깨끗하고 흐리지 않은 호수가 있는 것과 같다.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ka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거기서 눈 있는 사람이 기슭에 서서 조개와 소라도, 자갈과 조약돌도, 물고기 떼가 다니거나 멈춰 있는 것도 볼 것이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이 호수는 맑고 깨끗하고 흐리지 않다.
Tatrime sippika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거기 이 조개와 소라도, 자갈과 조약돌도, 물고기 떼도 다니고 멈춰 있다’라고.
젊은이여, 이와 꼭 같이 비구는 …중략…. 젊은이여, 비구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 …중략…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번뇌가 다했음을 아는 지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중략…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난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는 앎이 생긴다. 그리고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으며, 더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다. 이것 또한 그의 지혜에 속한다.
Evameva kho, māṇava, bhikkhu…pe… yampi, māṇav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p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젊은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를 다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젊은이여, 비구가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를 다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하는 것도,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9.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pe…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며,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0:479.2 ~ PN:dn10/479.3에서 되살렸습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다 살았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도 그의 통찰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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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지혜의 무더기다. 세존께서는 이를 칭찬하셨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여기에 이끌어 들여 자리 잡게 하셨다. 이 위에는 더 해야 할 일이 없다.[불확실]
‘‘Ayaṃ kho, so māṇava, ariyo paññākkhandho yassa so bhagavā vaṇṇavādī ahosi, yattha ca imaṃ janataṃ samādapesi nivesesi patiṭṭhāpesi.
젊은이여, 이것이 바로 그분 세존께서 칭찬하신 성스러운 통찰지의 무더기이며, 세존께서 이 사람들을 여기에 이끌어 들이고, 자리 잡게 하고, 굳게 서게 하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nti.
그리고 여기에는 더 해야 할 것이 없다.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신기합니다, 아난다 존자님! 아난다 존자님, 이 성스러운 지혜의 무더기는 완전하여 모자람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완전한 성스러운 지혜의 무더기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위에는 더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훌륭합니다, 아난다 존자님. 훌륭합니다, 아난다 존자님! 아난다 존자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리라’ 하며 기름등불을 들어 올리듯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난다 존자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저는 그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가르침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아난다 존자님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불확실]
‘‘Acchariyaṃ, bho ānanda, abbhutaṃ, bho ānanda!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신기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So cāyaṃ, bho ānanda, ariyo paññākkhandho paripuṇṇo, no aparipuṇṇo.
아난다 존자시여, 이 성스러운 통찰지의 무더기는 온전히 갖추어졌고,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Evaṃ paripuṇṇaṃ cāhaṃ, bho ānanda, ariyaṃ paññākkhandhaṃ ito bahiddhā aññesu samaṇabrāhmaṇesu na samanupassāmi.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이처럼 온전히 갖추어진 성스러운 통찰지의 무더기를 이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서는 보지 못합니다.
Natthi cevettha uttarikaraṇīyaṃ.
그리고 여기에는 더 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Abhikkantaṃ, bho ānanda, abhikkantaṃ, bho ānanda!
훌륭하십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Seyyathāpi, bho ānand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아난다 존자시여, 예를 들면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등을 들어 주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otā ānand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sāhaṃ, bho ānand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그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ānand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아난다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수바경이 끝났다. 열 번째 경이다.[불확실]
Subh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수바 경이 끝났다. 열 번째.[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