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ahāparinibbānasuttaṃ
3. 마하빠리닙바나 경
131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깃자꾸따 산에 머물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그때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는 왓지 사람들을 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저 왓지 사람들이 아무리 강성하고 위세가 크다 해도, 나는 그들을 뿌리 뽑고 멸망시키겠다. 재난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hoti.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 사람들을 치러 가고자 하였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했다 —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i vajjī’’ti.
“나는 이토록 큰 신통을 지니고 이토록 큰 위력을 지닌 이 왓지 사람들을 뿌리 뽑으리라, 왓지 사람들을 없애 버리리라, 왓지 사람들을 파멸과 재난에 빠뜨리리라.”
132
아자따삿뚜 왕은 마가다의 대신인 바라문 왓사까라를 불러 말했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세존께 가라. 가서 내 말을 전하며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라. 그리고 병은 없으신지, 괴로움은 없으신지 여쭈어라. 가뿐히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도 여쭈어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된다.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며 여쭙니다. 병은 없으신지, 괴로움은 없으신지, 가뿐히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요.’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ssakāraṃ brāhmaṇaṃ magadhamahāmattaṃ āmantesi –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을 불렀다 —
‘‘ehi tvaṃ, brāhmaṇ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오라, 바라문이여, 그대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가라.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
가서 내 말로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라 —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라고.
그런 다음 이렇게 말씀드려라. ‘세존이시여, 아자따삿뚜 왕은 왓지 사람들을 치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왓지 사람들이 아무리 강성하고 위세가 크다 해도, 나는 그들을 뿌리 뽑고 멸망시키겠다. 재난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세존께서 어떻게 답하시든 잘 새겨 두었다가 내게 알려 달라. 여래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Evañca vadehi –
그리고 이렇게 말하여라 —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 사람들을 치러 가고자 합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나는 이토록 큰 신통을 지니고 이토록 큰 위력을 지닌 이 왓지 사람들을 뿌리 뽑으리라, 왓지 사람들을 없애 버리리라, 파멸과 재난에 빠뜨리리라”라고.’
Yathā te bhagavā byākaroti, taṃ sādhukaṃ uggahetvā mama āroceyyāsi.
세존께서 그대에게 어떻게 대답하시든, 그것을 잘 새겨 두었다가 내게 알려라.
Na hi tathāgatā vitathaṃ bhaṇantī’’ti.
여래들께서는 사실과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왓사까라 바라문Vassakārabrāhmaṇo
133
왓사까라는 “알겠습니다, 대왕이시여” 하고 아자따삿뚜 왕에게 대답했다. 그는 훌륭한 수레들을 골라 채비하게 한 뒤, 그중 한 대에 올라 라자가하를 떠나 깃자꾸따 산으로 향했다.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수레로 갔고, 거기서부터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Evaṃ, bho’’ti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ssutv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etvā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rājagahamhā niyyāsi, yena gijjhakūṭo pabbato tena pāyāsi.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대답한 뒤, 훌륭한 수레들을 채비하고 훌륭한 수레에 올라, 훌륭한 수레들을 거느리고 라자가하를 나서서 독수리봉 산이 있는 곳으로 갔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o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수레로 가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왓사까라는 세존께 인사를 드렸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기쁘게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가 고따마 존자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며 여쭙니다. 병은 없으신지, 괴로움은 없으신지, 가뿐히 일어나시는지, 기력은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요. 고따마 존자시여, 아자따삿뚜 왕은 왓지 사람들을 치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왓지 사람들이 아무리 강성하고 위세가 크다 해도, 나는 그들을 뿌리 뽑고 멸망시키겠다. 재난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고따마 존자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고, 병 없으신지 탈 없으신지 거뜬하신지 기력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 사람들을 치러 가고자 합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나는 이토록 큰 신통을 지니고 이토록 큰 위력을 지닌 이 왓지 사람들을 뿌리 뽑으리라, 왓지 사람들을 없애 버리리라, 파멸과 재난에 빠뜨리리라’라고.”
왕의 쇠퇴하지 않는 법들Rājaaparihāniyadhammā
134
그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의 뒤에 서서 부채질을 해 드리고 있었다.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다고 하던가?”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ānand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ṃ bījayamāno.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의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왓지 사람들은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은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흩어지고, 화합하여 왓지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 bhav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을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어나며, 화합하여 왓지의 일들을 처리한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흩어지고, 화합하여 왓지의 일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왓지 사람들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어나며, 화합하여 왓지의 일들을 처리한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흩어지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지 않고, 정해진 것을 없애지 않는다고 하던가? 옛 왓지의 법에 정해진 대로 받아 지니고 따른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어나며, 화합하여 왓지의 일들을 처리할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제정되지 않은 것을 제정하지 않고, 제정된 것을 폐하지 않으며, 제정된 대로 옛 왓지의 법을 받아 지녀 행한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지 않고, 정해진 것을 없애지 않습니다. 옛 왓지의 법에 정해진 대로 받아 지니고 따른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왓지 사람들은 제정되지 않은 것을 제정하지 않고, 제정된 것을 폐하지 않으며, 제정된 대로 옛 왓지의 법을 받아 지녀 행한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지 않고, 정해진 것을 없애지 않으며, 옛 법에 정해진 대로 따르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왓지의 원로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한다고 하던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긴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ssa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iss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제정되지 않은 것을 제정하지 않고, 제정된 것을 폐하지 않으며, 제정된 대로 옛 왓지의 법을 받아 지녀 행할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antī’’’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왓지 사람들 가운데 왓지의 어른들인 이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들을 만한 것으로 여긴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원로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antī’’’ti.
‘왓지 사람들은 왓지 사람들 가운데 왓지의 어른들인 이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들을 만한 것으로 여긴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원로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하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양가의 여인들과 처녀들을 억지로 끌어다 힘으로 눌러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issanti garuṃ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왓지 사람들 가운데 왓지의 어른들인 이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들을 만한 것으로 여길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그 집안의 여인들과 집안의 처녀들을 끌어내어 억지로 데리고 살지 않는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양가의 여인들과 처녀들을 억지로 끌어다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왓지 사람들은 그 집안의 여인들과 집안의 처녀들을 끌어내어 억지로 데리고 살지 않는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양가의 여인들과 처녀들을 억지로 끌어다 힘으로 눌러 함께 살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안팎에 있는 왓지의 사당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한다고 하던가? 예전에 바치고 행해 온 법다운 제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그 집안의 여인들과 집안의 처녀들을 끌어내어 억지로 데리고 살지 않을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āni tān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은, 그 어떠한 것들이든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ntī’’’ti?
왓지 사람들의 왓지 성소들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그것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것들에 전에 주던 것, 전에 하던 것, 법다운 공물을 줄이지 않는다’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안팎에 있는 사당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합니다. 예전에 바치고 행해 온 법다운 제사도 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ntī’’’ti.
‘왓지 사람들은, 그 어떠한 것들이든 왓지 사람들의 왓지 성소들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그것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것들에 전에 주던 것, 전에 하던 것, 법다운 공물을 줄이지 않는다’고.”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안팎의 사당들을 공경하고 법다운 제사를 거르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아난다야, 그대는 어떻게 들었는가? 왓지 사람들은 아라한들을 법에 맞게 보호하고 지켜 주며 잘 마련해 둔다고 하던가?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은 왓지의 땅에 찾아오게 하고, 이미 온 아라한들은 편안히 지내게 한다고 하던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issanti garuṃ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이, 그 어떠한 것들이든 왓지 사람들의 왓지 성소들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그것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것들에 전에 주던 것, 전에 하던 것, 법다운 공물을 줄이지 않을 것인 한,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아난다여, 그대는 이렇게 들었는가 — ‘왓지 사람들에게는 아라한들에 대한 법다운 보호와 막음과 지킴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어떻게 하면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서 편안히 머물까 하는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은 아라한들을 법에 맞게 보호하고 지켜 주며 잘 마련해 둡니다.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은 왓지의 땅에 찾아오게 하고, 이미 온 아라한들은 편안히 지내게 한다고 합니다.”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이 아라한들을 그렇게 보살피는 동안에는, 아난다야,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왓지 사람들에게는 아라한들에 대한 법다운 보호와 막음과 지킴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어떻게 하면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서 편안히 머물까 하는 것이다’라고.”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bhavissati,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 아라한들에 대한 법다운 보호와 막음과 지킴이 잘 갖추어져, 어떻게 하면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아라한들이 그 나라에서 편안히 머물까 하는 그것이 있을 것인 한.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아난다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135
그러자 세존께서 마가다의 대신인 바라문 왓사까라를 부르셨다. “바라문이여, 나는 한때 웨살리의 사란다다 사당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왓지 사람들에게 쇠퇴하지 않게 하는 일곱 가지 법을 가르쳤다. 이 일곱 가지 법이 왓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그들이 이 법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바라문이여, 왓지 사람들에게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Atha kho bhagavā vassakāraṃ brāhmaṇaṃ magadhamahāmatt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을 부르셨다 —
‘‘ekamidāhaṃ, brāhmaṇa, samayaṃ vesāliyaṃ viharāmi sārandade cetiye.
“바라문이여, 한때 나는 웨살리의 사란다다 성소에 머물렀다.
Tatrāhaṃ vajjīnaṃ im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iṃ.
거기서 나는 왓지 사람들에게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설했다.
Yāvakīvañca, brāhmaṇa,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vajj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vajjī sandississanti, vuddhiyeva, brāhmaṇ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바라문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 왓지 사람들에게 머물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에서 왓지 사람들이 드러나 보일 것인 한, 바라문이여, 왓지 사람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왓사까라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법은 한 가지만 갖추어도 왓지 사람들에게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일곱 가지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자따삿뚜 왕은 전쟁으로는 왓지 사람들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만 뇌물로 구슬리거나 서로 이간질하는 경우는 다르겠지요.
Evaṃ vutte,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ekamekenapi, bho gotama, aparihāniyena dhammena samannāgatānaṃ vajjīnaṃ vuddhiyeva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고따마 존자시여, 쇠퇴하지 않는 법을 하나하나만 갖춘 왓지 사람들에게도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을 것입니다.
Ko pana vādo sattahi aparihāniyehi dhammehi.
하물며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 모두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Akaraṇīyāva, bho gotama, vajjī raññā māgadhena ajātasattunā vedehiputtena yadidaṃ yuddhassa, aññatra upalāpanāya aññatra mithubhedā.
고따마 존자시여, 왓지 사람들은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싸움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회유로써가 아니라면, 서로를 갈라놓음으로써가 아니라면.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처리할 일이 많습니다.” “바라문이여, 이제 그대가 알맞다고 여기는 때에 가도 좋다.” 왓사까라는 세존의 말씀에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Handa ca dāni mayaṃ, bho gotama, gacchāma, bahukiccā mayaṃ bahukaraṇīyā’’ti.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Yassadāni tvaṃ, brāhmaṇa, kālaṃ maññasī’’ti.
“바라문이여, 이제 그대가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면 그리하라.”
Atha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비구의 쇠퇴하지 않는 법들Bhikkhuaparihāniyadhammā
136
왓사까라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가서 라자가하 근처에 머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이게 하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이게 했다. 그런 뒤 세존께 다가갔다.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 vassakāre brāhmaṇe magadhamahāmatte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gaccha tvaṃ, ānanda, yāvatikā bhikkhū rājagaha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hī’’ti.
“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라자가하를 의지해 머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이게 하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yāvatikā bhikkhū rājagaha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라자가하를 의지해 머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이게 하고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절하고 한쪽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모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때가 알맞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sannipatito, bhante, bhikkhusaṅgh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ṃ maññatī’’ti.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모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신다면 그리하소서.”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당으로 가셨다.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게 하는 일곱 가지 법을 가르치겠다. 잘 들어라. 잘 새겨라. 말하겠다.” 비구들이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uṭṭhāyāsanā yena 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그러자 세존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당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satta vo, bhikkhave,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리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은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흩어지고, 화합하여 승가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그렇다. 비구들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지 않고, 정해진 것을 없애지 않으며, 정해진 학습 계율에 따라 받아 지니고 지키는 동안에도 그렇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자주 모이고 모임이 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어나며, 화합하여 승가의 일들을 처리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paññattaṃ na paññapessa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issanti,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제정되지 않은 것을 제정하지 않고, 제정된 것을 폐하지 않으며, 제정된 대로 학습 계목을 받아 지녀 행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경험 많고 오래전에 출가한 장로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승가의 아버지이자 승가의 인도자이다. 비구들이 이들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들고 공경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기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sakkarissanti garuṃ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장로이고 연륜이 깊고 오래전에 출가했으며 승가의 아버지이고 승가의 지도자인 그 비구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들을 만한 것으로 여길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다시 태어남으로 이끄는 갈애가 일어나더라도 그 힘에 끌려가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 숲속 처소를 소중히 여기는 동안에도 그렇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uppannāya taṇhāya ponobbhavikāya na vasaṃ gacch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이미 일어난 갈애의 지배 아래 들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āraññakesu senāsanesu sāpekkhā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숲의 거처를 바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저마다 스스로 마음챙김을 확립한다고 하자.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선량한 동료 수행자들은 어떻게 오게 하고, 이미 온 선량한 동료 수행자들은 어떻게 편안히 지내게 할까’ 하고 마음에 둔다고 하자. 그런 동안에는 비구들에게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비구들이 이 법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paccattaññeva satiṃ upaṭṭhapessanti –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저마다 안으로 마음챙김을 세울 것인 한 —
‘kinti an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āgaccheyyuṃ, 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phāsu vihareyyu’nti.
‘어떻게 하면 아직 오지 않은 훌륭한 동료 수행자들이 오고, 이미 온 훌륭한 동료 수행자들이 편안히 머물까’ 하고.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 비구들에게 머물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에서 비구들이 드러나 보일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137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게 하는 다른 일곱 가지 법도 가르치겠다. 잘 들어라. 잘 새겨라. 말하겠다.” 비구들이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또 다른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리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일을 즐기지 않고, 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일에 매달려 몰두하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잡담도 마찬가지다. 비구들이 잡담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거기에 매달려 몰두하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잠도 마찬가지다. 비구들이 잠을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거기에 매달려 몰두하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무리 짓기도 마찬가지다. 비구들이 무리 짓기를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거기에 매달려 몰두하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kammārāmā bhavissanti na kammaratā na kamm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일을 즐기지 않고, 일을 좋아하지 않고, 일 즐기기에 매이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bhassārāmā bhavissanti na bhassaratā na bhass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말을 즐기지 않고, 말을 좋아하지 않고, 말 즐기기에 매이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niddārāmā bhavissanti na niddāratā na nidd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잠을 즐기지 않고, 잠을 좋아하지 않고, 잠 즐기기에 매이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saṅgaṇikārāmā bhavissanti na saṅgaṇikaratā na saṅgaṇik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어울림을 즐기지 않고, 어울림을 좋아하지 않고, 어울림 즐기기에 매이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나쁜 욕심을 내지 않고, 나쁜 욕심에 끌려가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 나쁜 친구를 두지 않고, 나쁜 동무와 어울리지 않으며, 나쁜 길로 기울지 않는 동안에도 그렇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pāpicchā bhavissanti na pāpikānaṃ icchānaṃ vasaṃ ga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나쁜 바람을 품지 않고, 나쁜 바람들의 지배 아래 들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pāpamittā bhavissanti na pāpasahāyā na pāpasampavaṅk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나쁜 벗을 두지 않고, 나쁜 동무를 두지 않고, 나쁜 이와 어울리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보잘것없는 성취에 만족하여 도중에 멈추지 않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비구들이 이 법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oramattakena visesādhigamena antarāvosānaṃ āpajj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하찮은 정도의 특별한 얻음으로 중도에 그만두지 않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 비구들에게 머물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에서 비구들이 드러나 보일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138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게 하는 다른 일곱 가지 법도 가르치겠다. 비구들이 믿음이 있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동안, 두려워할 줄 아는 동안, 많이 배운 동안, 정진을 시작한 동안, 마음챙김이 확립된 동안, 지혜로운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비구들이 이 법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pe…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ddhā bhavissanti…pe… hirimanā bhavissanti… ottappī bhavissanti… bahussutā bhavissanti… āraddhavīriyā bhavissanti… upaṭṭhitassatī bhavissanti… paññavanto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또 다른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리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믿음을 지닌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지닌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잘못을 두려워하는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많이 배운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진을 다한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을 세운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지혜를 갖춘 자가 될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37.1 ~ PN:dn16/137.11에서 되살렸습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 비구들에게 머물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에서 비구들이 드러나 보일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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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게 하는 다른 일곱 가지 법도 가르치겠다. 잘 들어라. 잘 새겨라. 말하겠다.” 비구들이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또 다른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리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를 닦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 정진의 깨달음 요소, 기쁨의 깨달음 요소, 편안함의 깨달음 요소, 집중의 깨달음 요소, 평정의 깨달음 요소를 닦는 동안에도 그렇다.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비구들이 이 법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번영만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u sati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pe…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vīriya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pīti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passaddhi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samādhi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upekkhāsambojjhaṅgaṃ bhāve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을 가려내는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진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희열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고요함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삼매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평온의 깨달음 요소를 닦을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37.4에서 되살렸습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 비구들에게 머물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에서 비구들이 드러나 보일 것인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될 뿐 쇠퇴는 없다.
140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법을 일곱 가지 더 말해 주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일곱 가지 인식을 닦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무상하다는 인식, 무아라는 인식, 몸이 더럽다는 인식, 위험하다는 인식, 버린다는 인식, 탐욕이 사라진다는 인식, 소멸한다는 인식이다.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비구들이 이 법을 갖추고 있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는 법 일곱 가지를 또 가르치겠다. 그것을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niccasaññaṃ bhāvessanti…pe… anattasaññaṃ bhāvessanti… asubhasaññaṃ bhāvessanti… ādīnavasaññaṃ bhāvessanti… pahānasaññaṃ bhāvessanti… virāgasaññaṃ bhāvessanti… nirodhasaññaṃ bhāve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상하다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아라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버림이라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탐욕이 사라짐이라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소멸이라는 인식을 닦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41.4에서 되살렸습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는 이 일곱 가지 법이 비구들 가운데 머무는 한, 그리고 비구들이 쇠퇴하지 않는 이 일곱 가지 법에서 서로 알아보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141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게 하는 법을 여섯 가지 더 말해 주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함께 수행하는 이들에게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하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자애로운 말의 행위와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로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이 역시 드러내 놓고도 은밀하게도 해야 한다. 비구들이 법답고 정당하게 이익을 얻었다고 하자. 발우에 담긴 한 줌뿐이라도 혼자 챙기지 않고, 계를 지키는 도반들과 나누어 쓰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또 비구들이 깨지지 않고 구멍 나지 않고 얼룩지지 않는 계를 지니는 동안에도 그렇다. 이 계는 흠이 없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며, 집착에 물들지 않고 삼매로 이끈다. 이런 계를 도반들과 함께, 드러내 놓고도 은밀하게도 똑같이 지니며 지내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또 비구들이 성스러운 견해를 지니는 동안에도 그렇다. 이 견해는 벗어남으로 이끌고, 따르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끈다. 이런 견해를 도반들과 함께, 드러내 놓고도 은밀하게도 똑같이 지니며 지내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법이 비구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비구들이 이 법을 갖추고 있는 동안에는 번영만 있고 쇠퇴는 없을 것이다.”[불확실]
‘‘Cha, vo bhikkhave,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쇠퇴하지 않는 법 여섯 가지를 가르치겠다. 그것을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āpessan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갖추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mettaṃ vacīkammaṃ paccupaṭṭhāpessanti …pe…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āpessan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말의 행위를 갖추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갖추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41.4에서 되살렸습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e te lābhā dhammikā dhammaladdhā antamaso pattapariyāpannamattampi tathārūpehi lābhehi appaṭivibhattabhogī bhavissanti sīlavantehi sabrahmacārīhi sādhāraṇabhogī,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답고 법으로 얻은 소득이라면 하다못해 발우에 담긴 것만큼이라도, 그러한 소득을 나누지 않고 혼자 쓰는 일 없이, 계를 갖추고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 쓰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ni kāni sīlāni akhaṇḍāni acchiddāni asabalāni akammāsāni bhujissāni viññūpasatthāni aparāmaṭṭhāni samādhisaṃvattanikāni tathārūpesu sīlesu sīla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어떤 계든 깨지지 않고 뚫리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점 없으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가 기리고, 집착에 물들지 않아 삼매로 이끄는 그러한 계에서,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계를 같이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며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그 견해, 그러한 견해에서,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견해를 같이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ch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ch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비구들이여, 쇠퇴하지 않는 이 여섯 가지 법이 비구들 가운데 머무는 한, 그리고 비구들이 쇠퇴하지 않는 이 여섯 가지 법에서 서로 알아보는 한,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향상만이 기대되고 쇠퇴는 없다.”
142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시면서 비구들에게 이런 법문을 자주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며, 이것이 지혜이다.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삼매로 닦인 지혜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Tatra sud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nto gijjhakūṭe pabbat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시며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바로 이 법다운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닦인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온전히 번뇌들에서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143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가자. 암발랏티까로 가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이르러 왕의 별채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rājagah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에서 마음껏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ambalaṭṭhikā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야, 가자. 암발랏티까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ambalaṭṭhikā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이르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ti rājāgārake.
거기 암발랏티까의 왕의 객사에 세존께서 머무셨다.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의 왕의 별채에서도 비구들에게 이런 법문을 자주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며, 이것이 지혜이다.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삼매로 닦인 지혜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Tatrāpi sudaṃ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nto rājāgārak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서도 암발랏티까의 왕의 객사에 머무시며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바로 이 법다운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닦인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온전히 번뇌들에서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144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가자. 날란다로 가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날란다에 이르셨다. 그리고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암발랏티까에서 마음껏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nāḷandā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야, 가자. 날란다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nāḷand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nāḷandāyaṃ viharati pāvārikambavane.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날란다에 이르셨고, 거기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세존께서 머무셨다.
사리뿟따의 사자후Sāriputtasīhanādo
145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만큼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에 관하여 세존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찾을 수 없습니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렇게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세존보다 더 높이 아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곧 깨달음에서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있지 않습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참으로 당당한 말을 했다. 황소처럼 의젓한 말이다. 그대는 한쪽으로 단정 지어 사자후를 외쳤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만큼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에 관하여 세존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찾을 수 없습니다.’
‘‘Uḷārā kho te ayaṃ, sāriputta,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
“사리뿟따여, 그대는 드높고 황소처럼 당당한 말을 했고, 한쪽으로 단정했으며, 사자후를 외쳤다 —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렇게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세존보다 더 높이 아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곧 깨달음에서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있지 않습니다’라고.
사리뿟따여,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 정등각자들이 계셨다. 그 모든 세존들의 마음을 그대는 마음으로 꿰뚫어 알았느냐? ‘그분들은 계가 이러했고, 법이 이러했고, 지혜가 이러했고, 머묾이 이러했고, 해탈이 이러했다’ 하고 말이다.”
‘‘Kiṃ te, sāriputta, ye 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
“사리뿟따여, 그대는 과거세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었던 그 모든 세존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감싸 알았는가 —
‘evaṃsīl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계를 지니셨다고, 또 이런 법, 이런 통찰지를 지니셨고 이렇게 머무셨으며 이렇게 해탈하셨다고’ 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사리뿟따여, 미래에 있을 아라한 정등각자들은 어떠냐? 그 모든 세존들의 마음을 그대는 마음으로 꿰뚫어 알았느냐? ‘그분들은 계가 이러할 것이고, 법이 이러할 것이고, 지혜가 이러할 것이고, 머묾이 이러할 것이고, 해탈이 이러할 것이다’ 하고 말이다.”
‘‘Kiṃ pana te, sāriputta, ye 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
“그러면 사리뿟따여, 그대는 미래세에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될 그 모든 세존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감싸 알았는가 —
‘evaṃsīl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계를 지니실 것이라고, 또 이런 법, 이런 통찰지를 지니시고 이렇게 머무시며 이렇게 해탈하실 것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사리뿟따여, 지금의 아라한 정등각자인 나는 어떠냐? 그대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꿰뚫어 알았느냐? ‘세존께서는 계가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묾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하다’ 하고 말이다.”
‘‘Kiṃ pana te, sāriputta, ahaṃ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cetasā ceto paricca vidito –
“그러면 사리뿟따여, 그대는 지금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은 나를 마음으로 마음을 감싸 알았는가 —
‘‘evaṃsīlo bhagavā itipi, evaṃdhammo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bhagavā itipī’’’ti?
‘세존께서는 이런 계를 지니셨다고, 또 이런 법, 이런 통찰지를 지니셨고 이렇게 머무시며 이렇게 해탈하셨다고’ 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 정등각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지혜가 없지 않으냐. 그런데 사리뿟따여,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그처럼 당당한 말을 했느냐? 황소처럼 의젓한 말로 한쪽으로 단정 지어 사자후를 외쳤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만큼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에 관하여 세존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말이다.”
‘‘Ettha ca hi te, sāriputta,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natthi.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여기서 그대에게는 과거·미래·현재의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에 대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가 없다.
Atha kiñcarahi te ayaṃ, sāriputta, uḷārā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
그런데 어찌하여 사리뿟따여, 그대는 이 드높고 황소처럼 당당한 말을 했고, 한쪽으로 단정했으며, 사자후를 외쳤는가 —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렇게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세존보다 더 높이 아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곧 깨달음에서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있지 않습니다’라고?”
146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 정등각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법의 이치를 따라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왕의 변방에 튼튼한 보루와 튼튼한 성벽과 성문을 갖춘 성이 있습니다. 문은 하나뿐입니다. 그곳에는 영리하고 능숙하고 슬기로운 문지기가 있습니다. 문지기는 모르는 사람은 막고 아는 사람은 들여보냅니다. 이 문지기가 성의 둘레를 따라 순찰로를 걷습니다. 성벽의 이음매나 틈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빠져나갈 만한 구멍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성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덩치 큰 생명은 누구든 이 문으로만 들어오고 나간다.’ 세존이시여, 저도 이와 같이 법의 이치를 따라 알았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 정등각자들은 모두 다섯 가지 덮개를 버렸다. 지혜를 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도 버렸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굳게 세웠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았다. 그리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 미래에 있을 아라한 정등각자들도 모두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리고, 지혜를 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을 버릴 것이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굳게 세우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을 것이다. 그리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의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세존께서도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리셨다. 지혜를 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을 버리셨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굳게 세우시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으셨다. 그리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으셨다.’”
‘‘Na kho me, bhante,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atthi, api ca me dhammanvayo vidito.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과거·미래·현재의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에 대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법에 따른 추론이 알려져 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rañño paccantimaṃ nagaraṃ daḷhuddhāpaṃ daḷhapākāratoraṇaṃ ekadvāraṃ,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
세존이시여, 예컨대 왕의 변방 도시가 있어 성채가 튼튼하고 성벽과 성문이 튼튼하며 문이 하나뿐인데, 거기에 문지기가 있어 슬기로운 자요 노련한 자요 지혜로운 자로서, 모르는 이는 막고 아는 이는 들여보냅니다.
So tassa nagarassa samantā anupariyāyapathaṃ anukkamamāno na passeyya pākārasandhiṃ vā pākāravivaraṃ vā,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
그가 그 도시를 둘러싼 순찰로를 차례로 돌면서, 성벽의 이음매나 성벽의 틈은, 하다못해 고양이가 빠져나갈 만한 것조차 보지 못합니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 imaṃ nagaraṃ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 sabbe te imināva dvārena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ti.
‘덩치 있는 생명으로서 이 도시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 모두가 오직 이 문으로 들어오거나 나간다’라고.
Evameva kho me, bhante, dhammanvayo vidito –
세존이시여, 꼭 그와 같이 저에게 법에 따른 추론이 알려져 있습니다 —
‘ye te, bhan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iṃsu.
‘세존이시여, 과거세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었던 그 모든 세존들께서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통찰지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리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잘 세우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Yepi te, bhan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issanti.
세존이시여, 미래세에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될 그 모든 세존들께서도, 마음을 오염시키고 통찰지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리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잘 세우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으실 것입니다.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o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세존이시여, 지금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도, 마음을 오염시키고 통찰지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리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을 잘 세우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라고.”
147
세존께서는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서도 비구들에게 이런 법문을 자주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며, 이것이 지혜이다.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삼매로 닦인 지혜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Tatrapi sudaṃ bhagavā nāḷandāyaṃ viharanto pāvārikambavan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서도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시며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바로 이 법다운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닦인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온전히 번뇌들에서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계를 어긴 이의 위험Dussīlaādīnavā
148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가자. 빠딸리가마로 가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빠딸리가마에 이르셨다.
Atha kho bhagavā nāḷand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날란다에서 마음껏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pāṭali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야, 가자. 빠딸리가마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pāṭaligāmo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빠딸리가마에 이르셨다.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빠딸리가마에 도착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은 세존께 찾아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ssosuṃ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pāṭaligāmaṃ anuppatto’’ti.
“세존께서 빠딸리가마에 이르셨다고 한다”라고.
Atha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ā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한쪽에 앉은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희의 객사를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재가신자들은 승낙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객사로 갔다.
‘‘adhivāsetu no, bhante, bhagavā āvasathāgār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희 회관을 받아 주소서.”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Atha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yena āvasathāgāraṃ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은 세존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회관으로 갔다;
객사에 간 재가신자들은 바닥 전체에 깔개를 깔았다. 자리를 마련하고, 물 항아리를 놓고, 기름등을 걸었다. 그런 다음 세존께 찾아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객사 바닥 전체에 깔개를 깔았습니다. 자리를 마련했고, 물 항아리를 놓았고, 기름등을 걸었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원하시는 때에 오십시오.”
upasaṅkamitvā sabbasanthariṃ āvasathāgāraṃ santharitvā āsanāni paññapetvā udakamaṇikaṃ patiṭṭhāpetvā telapadīpaṃ ārop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가서 회관에 온통 자리를 깔고, 앉을 자리들을 마련하고, 물항아리를 놓고, 기름등불을 올린 뒤 세존께 나아갔다.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한쪽에 선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abbasantharisanthataṃ, bhante, āvasathāgāraṃ, āsanāni paññattāni, udakamaṇiko patiṭṭhāpito, telapadīpo āropito;
“세존이시여, 회관에 온통 자리를 깔았고, 앉을 자리들을 마련했으며, 물항아리를 놓았고, 기름등불을 올렸습니다;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ṃ maññatī’’ti.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그때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에 아랫옷을 두르셨다. 그리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비구 승가와 함께 객사로 가셨다. 객사에서 발을 씻고 안으로 들어가,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비구 승가도 발을 씻고 객사에 들어갔다. 비구들은 서쪽 벽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앉았다. 세존을 앞에 모신 것이다.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도 발을 씻고 객사에 들어갔다. 그들은 동쪽 벽에 기대어 서쪽을 향해 앉았다. 이들 또한 세존을 앞에 모신 것이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그때 세존께서 해 질 무렵에,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yena āvasathāgāraṃ tenupasaṅkami;
옷을 여미시고 발우와 가사를 드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회관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ṃ pavisitvā majjhimaṃ thambhaṃ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īdi.
가셔서 발을 씻으시고 회관에 드시어,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Bhikkhusaṅghopi kho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ṃ pavisitvā pacchimaṃ bhittiṃ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īdi bhagavantameva purakkhatvā.
비구 승가도 발을 씻고 회관에 들어가 서쪽 벽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Pāṭaligāmikāpi kho upāsakā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ṃ pavisitvā puratthimaṃ bhittiṃ nissāya pacchimābhimukhā nisīdiṃsu bhagavantameva purakkhatvā.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도 발을 씻고 회관에 들어가 동쪽 벽에 기대어 서쪽을 향해,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149
그때 세존께서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을 부르셨다. “장자들이여, 계를 어겨 계행이 나쁜 사람에게는 허물이 다섯 가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어긴 사람은 방일하기 때문에 크게 재산을 잃는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사람의 첫 번째 허물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어긴 사람에게는 나쁜 평판이 퍼진다. 이것이 두 번째 허물이다.
Atha kho bhagavā pāṭaligāmike upāsake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을 부르셨다 —
‘‘pañcime, gahapatayo, ādīnavā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장자들이여,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위험에는 이런 다섯 가지가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Idha,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pamādādhikaraṇaṃ mahatiṃ bhogajāniṃ nigacchati.
장자들이여, 여기 계를 어긴 자, 계를 무너뜨린 자는 게으름을 이유로 큰 재산을 잃는다.
Ayaṃ paṭham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첫 번째 위험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dussīlassa sīlavipannassa pāpako kittisaddo abbhuggaccha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어긴 자, 계를 무너뜨린 자에게는 나쁜 명성이 퍼진다.
Ayaṃ dutiy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두 번째 위험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어긴 사람은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감 없이 풀이 죽어서 간다. 끄샤트리아의 모임이든, 바라문의 모임이든, 장자의 모임이든, 사문의 모임이든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세 번째 허물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yaññadeva parisaṃ upasaṅkamati –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어긴 자, 계를 무너뜨린 자는 어떤 모임에 다가가든 —
yadi khattiyaparisaṃ yadi brāhmaṇaparisaṃ yadi gahapatiparisaṃ yadi samaṇaparisaṃ –
왕족의 모임이든 바라문의 모임이든 장자의 모임이든 사문의 모임이든 —
avisārado upasaṅkamati maṅkubhūto.
자신 없이, 주눅 든 채로 다가간다.
Ayaṃ tatiy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세 번째 위험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어긴 사람은 정신이 혼미한 채로 죽는다. 이것이 네 번째 허물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어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나쁜 갈래,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이 다섯 번째 허물이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계를 어겨 계행이 나쁜 사람의 다섯 가지 허물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sammūḷho kālaṅkaro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어긴 자, 계를 무너뜨린 자는 정신이 흐린 채로 죽는다.
Ayaṃ catutth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네 번째 위험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어긴 자, 계를 무너뜨린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Ayaṃ pañcam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다섯 번째 위험이다.
Ime kho, gahapatayo, pañca ādīnavā dussīlassa sīlavipattiyā.
장자들이여, 이것이 계를 어긴 자가 계를 무너뜨림으로 겪는 다섯 가지 위험이다.
계를 지킨 이의 이익Sīlavantaānisaṃsa
150
장자들이여, 계를 갖춘 계행이 좋은 사람에게는 이익이 다섯 가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장자들이여, 계행이 좋고 계를 갖춘 사람은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큰 재산을 얻는다. 이것이 계행이 좋은 사람의 첫 번째 이익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좋고 계를 갖춘 사람에게는 좋은 평판이 퍼진다. 이것이 두 번째 이익이다.
‘‘Pañcime, gahapatayo, ānisaṃsā sīlavato sīlasampadāya.
“장자들이여,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이익에는 이런 다섯 가지가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Idha,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appamādādhikaraṇaṃ mahantaṃ bhogakkhandhaṃ adhigacchati.
장자들이여, 여기 계를 지킨 자, 계를 갖춘 자는 게으르지 않음을 이유로 큰 재물 더미를 얻는다.
Ayaṃ paṭhamo ānisaṃso sīlavato sīlasampadāya.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첫 번째 이익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sīlavato sīlasampannassa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a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지킨 자, 계를 갖춘 자에게는 훌륭한 명성이 퍼진다.
Ayaṃ dutiyo ānisaṃso sīlavato sīlasampadāya.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두 번째 이익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좋고 계를 갖춘 사람은 어떤 모임에 가든 자신감 있게 위축되지 않고 간다. 끄샤트리아의 모임이든, 바라문의 모임이든, 장자의 모임이든, 사문의 모임이든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익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yaññadeva parisaṃ upasaṅkamati –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지킨 자, 계를 갖춘 자는 어떤 모임에 다가가든 —
yadi khattiyaparisaṃ yadi brāhmaṇaparisaṃ yadi gahapatiparisaṃ yadi samaṇaparisaṃ visārado upasaṅkamati amaṅkubhūto.
왕족의 모임이든 바라문의 모임이든 장자의 모임이든 사문의 모임이든, 자신 있게, 주눅 들지 않고 다가간다.
Ayaṃ tatiyo ānisaṃso sīlavato sīlasampadāya.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세 번째 이익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좋고 계를 갖춘 사람은 정신이 혼미하지 않은 채로 죽는다. 이것이 네 번째 이익이다. 또한 장자들이여, 계행이 좋고 계를 갖춘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이익이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계를 갖춘 계행이 좋은 사람의 다섯 가지 이익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asammūḷho kālaṅkaro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지킨 자, 계를 갖춘 자는 정신이 흐리지 않은 채로 죽는다.
Ayaṃ catuttho ānisaṃso sīlavato sīlasampadāya.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네 번째 이익이다.
‘‘Puna caparaṃ,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또한 장자들이여, 계를 지킨 자, 계를 갖춘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Ayaṃ pañcamo ānisaṃso sīlavato sīlasampadāya.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다섯 번째 이익이다.
Ime kho, gahapatayo, pañca ānisaṃsā sīlavato sīlasampadāyā’’ti.
장자들이여, 이것이 계를 지킨 자가 계를 갖춤으로 얻는 다섯 가지 이익이다.”
151
세존께서는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을 밤이 깊도록 법문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런 뒤 이렇게 말씀하시며 돌려보내셨다. “장자들이여, 밤이 깊었다. 이제 그대들이 원하는 때에 돌아가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재가신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떠나갔다. 세존께서는 그들이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어 있는 처소로 들어가셨다.
Atha kho bhagavā pāṭaligāmike upāsake bahudeva rattiṃ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uyyojesi –
그때 세존께서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을 밤이 이슥하도록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쳐 보이시고, 권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신 뒤 물러가게 하셨다 —
‘‘abhikkantā kho, gahapatayo, ratti, yassadāni tumhe kālaṃ maññathā’’ti.
“장자들이여, 밤이 깊었다. 이제 그대들이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그때다.”
‘‘Evaṃ, bhante’’ti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to paṭissu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amiṃsu.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세존께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떠났다.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su pāṭaligāmikesu upāsakesu suññāgāraṃ pāvisi.
그때 세존께서는 빠딸리가마의 재가신자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빈 처소에 드셨다.
빠딸리뿟따 성의 건설Pāṭaliputtanagaramāpanaṃ
152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성을 쌓고 있었다. 수많은 신들도 수천 명씩 무리 지어 이 마을의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힘센 신들이 차지한 터에서는 힘센 왕과 대신들의 마음이 그곳에 집을 짓고 싶은 쪽으로 기울었다. 중간 정도의 신들이 차지한 터에서는 중간 정도의 왕과 대신들이, 낮은 신들이 차지한 터에서는 낮은 왕과 대신들이 같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i vajjīnaṃ paṭibāhāya.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 사람들을 막기 위해 빠딸리 마을에 성을 짓고 있었다.
Tena samay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
그때 아주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수천이나 되게 집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Yasmiṃ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위력이 큰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위력이 큰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Yasmiṃ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중간의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중간의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Yasmiṃ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낮은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낮은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세존께서는 사람의 눈을 넘어선 맑고 신성한 눈으로 이 모습을 보셨다. 신들이 수천 명씩 무리 지어 빠딸리 마을의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 올 무렵 새벽에 일어나신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Addasā kho bhagav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t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세존께서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신성한 눈으로, 그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수천이나 되게 집터를 차지하는 것을 보셨다.
Atha kho bhagavā rattiyā paccūsasamayaṃ paccuṭṭhāya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밤이 새벽으로 바뀔 무렵에 일어나시어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누가 빠딸리 마을에 성을 쌓고 있느냐?"<br>"세존이시여,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입니다. 왓지족을 막으려고 이 마을에 성을 쌓고 있습니다."<br>"아난다야, 마치 삼십삼천의 신들과 의논이라도 한 듯하구나. 나는 사람의 눈을 넘어선 맑고 신성한 눈으로 보았다. 수많은 신들이 수천 명씩 무리 지어 이곳의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힘센 신들이 차지한 곳에서는 힘센 왕과 대신들의 마음이 그곳에 집을 짓고 싶은 쪽으로 기운다. 중간 정도의 신들이 차지한 곳에서는 중간 정도의 왕과 대신들의 마음이, 낮은 신들이 차지한 곳에서는 낮은 왕과 대신들의 마음이 그렇게 기운다. 아난다야, 교양 있는 이들이 사는 땅이 닿고 상인들의 길이 닿는 곳까지, 이곳은 으뜸가는 도시가 될 것이다. 짐 꾸러미를 풀어 거래하는 빠딸리뿟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야, 빠딸리뿟따에는 세 가지 재난이 닥칠 것이다. 불과 물과 내분이다."[불확실]
‘‘ke nu kho, ānanda,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ī’’ti?
“아난다여, 누가 빠딸리 마을에 성을 짓고 있는가?”
‘‘Sunidhavassakārā, bhante,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i vajjīnaṃ paṭibāhāyā’’ti.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 사람들을 막기 위해 빠딸리 마을에 성을 짓고 있습니다.”
‘‘Seyyathāpi, ānanda, devehi tāvatiṃsehi saddhiṃ mantetvā, evameva kho, ānand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i vajjīnaṃ paṭibāhāya.
“아난다여, 마치 삼십삼천의 신들과 의논이라도 한 듯이, 꼭 그와 같이, 아난다여,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 사람들을 막기 위해 빠딸리 마을에 성을 짓고 있다.
Idhāhaṃ, ānanda, addasaṃ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아난다여, 나는 여기서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신성한 눈으로, 아주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수천이나 되게 집터를 차지하는 것을 보았다.
Yasmiṃ, ānanda,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아난다여, 위력이 큰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위력이 큰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Yasmiṃ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중간의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중간의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Yasmiṃ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낮은 신들이 집터를 차지한 곳에서는, 그곳에 낮은 왕들과 왕의 대신들의 마음이 거처를 지으려고 기운다.
Yāvatā, ānanda, ariyaṃ āyatanaṃ yāvatā vaṇippatho idaṃ agganagaraṃ bhavissati pāṭaliputtaṃ puṭabhedanaṃ.
아난다여, 아리야의 영역이 미치는 곳까지, 상인의 길이 미치는 곳까지, 이 빠딸리뿟따가 으뜸가는 도시가 되어 짐을 푸는 곳이 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āṭaliputtassa kho, ānanda, tayo antarāyā bhavissanti –
아난다여, 빠딸리뿟따에는 세 가지 재난이 있을 것이다 —
aggito vā udakato vā mithubhedā vā’’ti.
불로 인한 것이거나 물로 인한 것이거나 서로 갈라섬으로 인한 것이다.”
153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고 오래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두 대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ekamantaṃ ṭhitā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다가가서는 세존과 함께 기뻐하며 인사를 나누었고,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님, 저희의 청을 받아 오늘 비구 승가와 함께 공양을 들어 주십시오."<br>세존께서는 말없이 청을 받아들이셨다. 두 대신은 세존께서 청을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기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adhivāsetu no bhavaṃ gotamo ajja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고따마 존자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오늘 저희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yena sako āvasath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기들의 처소로 갔다;
숙소에 돌아온 두 대신은 맛있는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했다. 그리고 세존께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br>"고따마 존자님,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다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upasaṅkamitvā sake āvasath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ṃ ārocāpesuṃ –
가서는 자기들의 처소에서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준비하게 한 뒤, 세존께 때를 알리게 했다 —
‘‘kālo, bho gotama, niṭṭhitaṃ bhatta’’nti.
“고따마 존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드셨다. 그리고 비구 승가와 함께 두 대신의 숙소로 가셨다. 그곳에 이르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두 대신은 붓다를 으뜸으로 한 비구 승가에 맛있는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올려 배불리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신 것을 보고, 두 대신은 낮은 자리 하나를 골라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다음 게송으로 축원하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yena sunidhavassakārānaṃ magadhamahāmattānaṃ āvasath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비구 승가와 함께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의 처소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uddhappamukhaṃ bhikkhusaṅghaṃ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uṃ sampavāresuṃ.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부처님을 앞세운 비구 승가를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으로 손수 흡족하게 대접하고 만족시켰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ṃ bhuttāviṃ onītapattapāṇiṃ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거두시자,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e kho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bhagavā imāhi gāthāhi anumodi –
한쪽에 앉은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에게 세존께서 이 게송들로 기쁨을 나누셨다 —
‘슬기로운 이가 머물 곳을 / 어느 땅에 정하거든
‘‘Yasmiṃ padese kappeti, vāsaṃ paṇḍitajātiyo;
“슬기로운 이가 어느 곳에 거처를 마련하거든,
계를 지키고 절제하는 / 청정한 삶의 이들에게 거기서 공양하라
Sīlavantettha bhojetvā, saññate brahmacārayo.
그곳에서 계를 지닌 이들, 자제하는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을 공양하고,
‘그곳에 깃들어 사는 / 신들을 향해 공덕을 돌려라
‘‘Yā tattha devatā āsuṃ, tāsaṃ dakkhiṇamādise;
그곳에 있던 신들, 그들에게 그 보시를 회향하라.
공양받은 신들은 그를 받들고 / 존중받은 신들은 그를 존중하리라
Tā pūjitā pūjayanti, mānitā mānayanti naṃ.
그들은 받들어지면 받들고, 존중받으면 그를 존중한다.
‘그리하여 신들이 그를 아끼니 / 어머니가 제 몸으로 낳은 아들 아끼듯
‘‘Tato naṃ anukampanti, mātā puttaṃva orasaṃ;
그러면 어머니가 친아들을 아끼듯, 그들이 그를 아낀다.
신들이 아끼는 사람은 / 언제나 좋은 일을 보리라’
Devatānukampito poso, sadā bhadrāni passatī’’ti.
신들이 아끼는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을 본다.”
세존께서는 두 대신에게 이 게송들로 축원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불확실]
Atha kho bhagavā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imāhi gāthāhi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그때 세존께서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에게 이 게송들로 기쁨을 나누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54
그때 두 대신은 세존의 바로 뒤를 바짝 따라가며 이렇게 말했다.<br>"오늘 사문 고따마께서 나가시는 문을 '고따마의 문'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강가강을 건너시는 나루는 '고따마의 나루'라 부르게 될 것이다."<br>그리하여 세존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불확실]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ṃ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ā honti –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있었다 —
‘‘yenajja samaṇo gotamo dvārena nikkhamissati, taṃ gotamadvāraṃ nāma bhavissati.
“오늘 사문 고따마가 어느 문으로 나가시든, 그 문은 고따마의 문이라는 이름이 될 것이다.
Yena titthena gaṅgaṃ nadiṃ tarissati, taṃ gotamatitthaṃ nāma bhavissatī’’ti.
어느 나루로 강가 강을 건너시든, 그 나루는 고따마의 나루라는 이름이 될 것이다.”
Atha kho bhagavā yena dvārena nikkhami, taṃ gotamadvāraṃ nāma ahosi.
그때 세존께서 어느 문으로 나가시니, 그 문은 고따마의 문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이윽고 세존께서는 강가강으로 가셨다. 그때 강가강은 물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올라 까마귀가 앉아서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찾았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찾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너편으로 가고 싶어 작은 뗏목을 엮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yena gaṅgā nadī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강가 강으로 가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gaṅgā nadī pūrā hoti samatittikā kākapeyyā.
그때 강가 강은 물이 가득 차 언덕과 나란하여, 까마귀도 마실 만했다.
Appekacce manussā nāvaṃ pariyesanti, appekacce uḷumpaṃ pariyesanti, appekacce kullaṃ bandhanti apārā, pāraṃ gantukāmā.
어떤 사람들은 배를 찾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이쪽 기슭에서 저쪽으로 가려고 뗏목을 엮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거나 폈던 팔을 굽히듯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추셨다. 강가강 이쪽 기슭에서 사라져, 비구 승가와 함께 저쪽 기슭에 나타나셨다.
Atha kho bhagavā –
그때 세존께서는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 –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꼭 그와 같이 —
gaṅgāya nadiyā orimatīre antarahito pārimatīre paccuṭṭhāsi saddhiṃ bhikkhusaṅghena.
강가 강 이쪽 기슭에서 사라져 비구 승가와 함께 저쪽 기슭에 나타나셨다.
세존께서는 건너편 기슭에서 그 사람들을 보셨다. 배를 찾는 사람, 뗏목을 찾는 사람, 건너가고 싶어 작은 뗏목을 엮는 사람들이었다. 세존께서는 이 일의 뜻을 아시고, 바로 그때 이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Addasā kho bhagavā te manusse appekacce nāvaṃ pariyesante appekacce uḷumpaṃ pariyesante appekacce kullaṃ bandhante apārā pāraṃ gantukāme.
세존께서는 그 사람들이 어떤 이는 배를 찾고 어떤 이는 뗏목을 찾고 어떤 이는 이쪽 기슭에서 저쪽으로 가려고 뗏목을 엮는 것을 보셨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아시고 그때 이 감흥어를 읊으셨다 —
‘웅덩이를 버려두고 다리를 놓아 / 넓은 물을 건너는 이들이 있건만
‘‘Ye taranti aṇṇavaṃ saraṃ, setuṃ katvāna visajja pallalāni;
“다리를 놓고 늪을 버려두고서 바다 같은 물을 건너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뗏목을 엮느라 애쓰는데 / 슬기로운 이들은 이미 건넜네’
Kullañhi jano bandhati, tiṇṇā medhāvino janā’’ti.
사람들은 뗏목을 엮지만, 지혜로운 이들은 이미 건넜다.”
첫 번째 낭송 분량이 끝났다.
Paṭhamabhāṇavāro.
첫 번째 송출품.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이야기Ariyasaccakathā
155
그 뒤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br>"아난다야, 가자. 꼬띠 마을로 가자."<br>"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br>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띠 마을에 이르러 그곳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āyāmānanda, yena koṭi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꼬띠 마을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koṭigāmo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띠 마을로 가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koṭigāme viharati.
거기서 세존께서는 꼬띠 마을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br>"비구들아, 나와 너희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세월 달리고 헤매며 윤회해 왔다. 어떤 네 가지인가?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다. 괴로움이 일어난다는 거룩한 진리다.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거룩한 진리다. 괴로움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다. 이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그토록 오랜 세월 윤회해 왔다.<br>비구들아, 이제 나는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를 깨달아 꿰뚫었다. 괴로움이 일어난다는 진리도,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진리도, 괴로움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라는 진리도 깨달아 꿰뚫었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끊어졌고, 존재로 이끄는 끈은 다했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Catunnaṃ, bhikkhave, ariyasacc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도 그대들도 이 긴 세월을 달려왔고 윤회해 왔다.
Katamesaṃ catunnaṃ?
어떤 넷인가?
Dukk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도 그대들도 이 긴 세월을 달려왔고 윤회해 왔다.
Dukkhasamuday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도 그대들도 이 긴 세월을 달려왔고 윤회해 왔다.
Dukkhanirod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도 그대들도 이 긴 세월을 달려왔고 윤회해 왔다.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도 그대들도 이 긴 세월을 달려왔고 윤회해 왔다.
Tayidaṃ,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dāni punabbhavo’’ti.
비구들이여, 이제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고,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고,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존재에 대한 갈애가 끊어졌고, 존재로 이끄는 것이 다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뒤 스승께서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스승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서
‘‘Catunnaṃ ariyasaccānaṃ, yathābhūtaṃ adassanā;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탓에,
기나긴 세월을 떠돌았네 / 이 생 저 생 태어나면서
Saṃsitaṃ dīghamaddhānaṃ, tāsu tāsveva jātisu.
이런저런 태어남 속에서 긴 세월을 윤회했다.
이제 그 진리들을 보았고 / 존재로 끄는 줄도 뽑혔네
Tāni etāni diṭṭhāni, bhavanetti samūhatā;
이제 그것들을 보았고, 존재로 이끄는 것이 뽑혔으며,
괴로움의 뿌리는 잘렸으니 /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네’
Ucchinnaṃ mūlaṃ dukkhassa, natthi dāni punabbhavo’’ti.
괴로움의 뿌리가 끊어졌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세존께서는 꼬띠 마을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비구들에게 바로 이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br>"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고, 이것이 통찰지이다.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삼매로 닦인 통찰지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온전히 벗어난다.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Tatrapi sudaṃ bhagavā koṭi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 꼬띠 마을에 머무시면서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 법다운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를 잘 닦은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를 잘 닦은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를 잘 닦은 마음은 번뇌에서 바르게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돌아오지 않는 법이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들Anāvattidhammasambodhiparāyaṇā
156
세존께서는 꼬띠 마을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br>"아난다야, 가자. 나띠까로 가자."<br>"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br>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나띠까에 이르러, 그곳에서도 벽돌집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koṭigām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꼬띠 마을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āyāmānanda, yena nātikā tenup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나띠까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nātikā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나띠까로 가셨다.
Tatrapi sudaṃ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거기서도 세존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가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여쭈었다.<br>"세존이시여, 살하라는 비구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난다라는 비구니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수닷따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br>세존이시여, 수자따라는 여성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꾹꾸따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깔림바, 니까따, 까띳사하, 뚯타, 산뚯타, 밧다, 수밧다라는 재가신자들이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으며, 죽은 뒤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āḷho nāma, bhante, bhikkhu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세존이시여, 살하라는 비구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Nandā nāma, bhante, bhikkhunī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세존이시여, 난다라는 비구니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녀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Sudatt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세존이시여, 수닷따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Sujātā nāma, bhante, upāsikā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세존이시여, 수자따라는 여자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녀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Kukkuṭ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세존이시여, 꾹꾸따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Kāḷimbo nāma, bhante, upāsako…pe… nikaṭo nāma, bhante, upāsako… kaṭissaho nāma, bhante, upāsako… 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san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bhaddo nāma, bhante, upāsako… subhadd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ti?
세존이시여, 깔림바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니까따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까띳사하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뚯타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산뚯타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밧다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수밧다라는 재가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며, 다음 생은 어떠합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56.13에서 되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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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비구 살하는 번뇌가 다했다.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지냈다.<br>아난다야, 비구니 난다는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가 다했다. 홀연히 그곳에 태어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br>아난다야, 재가신자 수닷따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다. 그래서 한 번만 돌아오는 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 딱 한 번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br>아난다야, 여성 재가신자 수자따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여 흐름에 든 이가 되었다.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깨달음을 향해 확정되어 있다.<br>아난다야, 재가신자 꾹꾸따는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가 다했다. 홀연히 그곳에 태어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br>재가신자 깔림바, 니까따, 까띳사하, 뚯타, 산뚯타, 밧다, 수밧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가 다했다. 홀연히 그곳에 태어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br>아난다야, 나띠까에서 죽은 쉰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도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가 다했다. 홀연히 그곳에 태어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br>아난다야, 나띠까에서 죽은 아흔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은 세 가지 족쇄가 다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다. 그래서 한 번만 돌아오는 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 딱 한 번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br>아난다야, 나띠까에서 죽은 오백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은 세 가지 족쇄가 다하여 흐름에 든 이가 되었다.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깨달음을 향해 확정되어 있다."
‘‘Sāḷho, ānanda, bhikkhu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아난다여, 살하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렀다.
Nandā, ānanda, bhikkhunī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Sudatto, ānanda, upāsako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i.
아난다여, 수닷따 재가신자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돌아오는 이가 되어 이 세상에 한 번만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Sujātā, ānanda, upāsikā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아난다여, 수자따 여자 재가신자는 세 가지 족쇄가 다하여, 흐름에 든 이가 되어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
Kukkuṭ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아난다여, 꾹꾸따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Kāḷimbo, ānanda, upāsako…pe… nikaṭo, ānanda, upāsako… kaṭissaho, ānanda, upāsako… tuṭṭho, ānanda, upāsako … santuṭṭho, ānanda, upāsako… bhaddo, ānanda, upāsako… subhadd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아난다여, 깔림바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니까따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까띳사하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뚯타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산뚯타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밧다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아난다여, 수밧다 재가신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57.5에서 되살렸습니다.
Paropaññāsaṃ,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재가신자 쉰 명 남짓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홀연히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며,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녔다.
Sādhikā navuti,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ino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nti.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재가신자 아흔 명 남짓이 세 가지 족쇄가 다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돌아오는 이가 되어 이 세상에 한 번만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Sātirekāni, ānanda, pañcasatāni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재가신자 오백 명 남짓이 세 가지 족쇄가 다하여, 흐름에 든 이가 되어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Dhammādāsadhammapariyāyā
158
"아난다야, 사람으로 태어난 이가 죽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누가 죽을 때마다 여래를 찾아와 이 뜻을 묻는다면, 아난다야, 그것은 여래를 번거롭게 하는 일이다.<br>그러니 아난다야,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을 설하겠다. 이것을 갖춘 거룩한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밝힐 수 있다.<br>'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으로 태어나는 길도 다했다. 아귀의 영역도 다했고, 악처와 괴로운 곳과 파멸의 길도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로서 떨어지지 않는 법을 지니고, 깨달음을 향해 확정되어 있다.'"
‘‘Anacchariyaṃ kho panetaṃ, ānanda, yaṃ manussabhūto kālaṅkareyya.
“아난다여, 사람으로 태어난 이가 죽는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Tasmiṃyeva kālaṅkate tathāgataṃ upasaṅkamitvā etamatthaṃ pucchissatha, vihesā hesā, ānanda, tathāgatassa.
그렇게 죽는 이마다 여래에게 다가와 이 뜻을 그대들이 묻는다면, 아난다여, 그것은 여래에게 성가신 일이다.
Tasmātihānanda, dhammādāsaṃ nāma dhammapariyāyaṃ desessāmi,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
그러므로 아난다여, 나는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을 설하겠다. 그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기를 두고 이렇게 밝힐 수 있다 —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태를 다했고, 아귀의 세계를 다했으며,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를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니,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
159
"아난다야, 거룩한 제자가 이것을 갖추면 원할 때 스스로 자신에 대해 밝힐 수 있다고 했다. 그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은 무엇인가?<br>'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으로 태어나는 길도 다했다. 아귀의 영역도 다했고, 악처와 괴로운 곳과 파멸의 길도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로서 떨어지지 않는 법을 지니고, 깨달음을 향해 확정되어 있다.'<br>아난다야, 여기 거룩한 제자는 붓다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br>'그분 세존은 공양받아 마땅한 분, 바르고 완전하게 깨달은 분, 지혜와 실천을 갖춘 분, 행복한 길로 가신 분이다. 세간을 아는 분, 위없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분,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다. 깨달은 분이며 세존이시다.'<br>법에 대해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br>'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고, 때를 가리지 않는다.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어 준다. 지혜로운 이라면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다.'<br>승가에 대해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br>'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하고, 곧게 수행하고, 바른 이치로 수행하고, 합당하게 수행한다. 곧 네 쌍으로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 세존의 제자 승가는 공양받을 만하고, 손님으로 대접받을 만하다. 보시받을 만하고, 합장 받을 만하다.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br>또 거룩한 이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다. 그 계는 깨지지 않고, 뚫리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흠이 없다.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며, 집착되지 않고, 삼매로 이끈다.<br>아난다야, 이것이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이다. 이것을 갖춘 거룩한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밝힐 수 있다.<br>'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으로 태어나는 길도 다했다. 아귀의 영역도 다했고, 악처와 괴로운 곳과 파멸의 길도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로서 떨어지지 않는 법을 지니고, 깨달음을 향해 확정되어 있다.'"
‘‘Katamo ca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
아난다여, 그러면 그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기를 두고 이렇게 밝힐 수 있다 —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태를 다했고, 아귀의 세계를 다했으며,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를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니,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라고.
‘‘Idhānanda, ariyasāvak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시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부처님이시고, 세존이시다.’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법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고, 시간을 두지 않으며, 와서 보라 할 만하고, 향상으로 이끌며,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승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ti.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하고, 곧게 실천하며, 이치에 맞게 실천하고, 올바르게 실천한다. 곧 네 쌍의 사람이요 여덟 부류의 인간이니, 이 세존의 제자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대접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 hoti akhaṇḍehi acchiddehi asabalehi akammāsehi bhujissehi viññūpasatthehi aparāmaṭṭhehi samādhisaṃvattanikehi.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다 — 깨지지 않고, 뚫리지 않고, 얼룩 없고, 점 없고,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가 기리고, 집착에 물들지 않아 삼매로 이끄는 계를.
‘‘Ayaṃ kho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그 법의 거울이라는 법문이다. 그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기를 두고 이렇게 밝힐 수 있다 —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태를 다했고, 아귀의 세계를 다했으며,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를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니,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
세존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비구들에게 바로 이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br>"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고, 이것이 통찰지이다. 계로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삼매로 닦인 통찰지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온전히 벗어난다.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Tatrapi sudaṃ bhagavā nātike viharanto giñjakāvasath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시면서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 법다운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를 잘 닦은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를 잘 닦은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를 잘 닦은 마음은 번뇌에서 바르게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160
세존께서는 나띠까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br>"아난다야, 가자. 웨살리로 가자."<br>"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br>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웨살리에 이르러 암바빨리 숲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Atha kho bhagavā nātik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나띠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āyāmānanda, yena vesālī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웨살리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vesālī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웨살리로 가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ambapālivane.
거기서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암바빨리 숲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아,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지내야 한다.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br>비구들아, 비구는 어떻게 마음챙김을 갖추는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며 지낸다. 열심히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들에서 법을 따라 관찰하며 지낸다. 이때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비구들아, 이렇게 비구는 마음챙김을 갖춘다.<br>비구들아, 비구는 어떻게 알아차림을 갖추는가? 여기 비구는 나아가고 물러설 때 알아차리며 행한다. 앞을 보고 둘러볼 때, 팔다리를 굽히고 펼 때도 알아차리며 행한다. 겉옷과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알아차리며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알아차리며 행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어 있고 말하고 침묵할 때에도 알아차리며 행한다. 비구들아, 이렇게 비구는 알아차림을 갖춘다.<br>비구들아,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지내야 한다.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챙기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Vedanāsu vedanānupassī…pe… citte cittānupassī…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60.9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는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또렷이 알아차리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겉가사와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또렷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ti.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
기녀 암바빨리Ambapālīgaṇikā
161
기녀 암바팔리가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웨살리에 도착해 자기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Assosi kho ambapālī gaṇikā –
기녀 암바빨리는 들었다 —
‘‘bhagavā kira vesāliṃ anuppatto vesāliyaṃ viharati mayhaṃ ambavane’’ti.
“세존께서 웨살리에 이르시어 웨살리의 내 망고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
암바팔리는 아름다운 수레를 여러 대 채비하게 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수레에 올라, 나머지 수레를 거느리고 웨살리를 나섰다. 그녀는 자기 동산으로 향했다.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는 수레로 가고, 거기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vesāliyā niyyāsi.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게 하고,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웨살리에서 나섰다.
Yena sako ārāmo tena pāyāsi.
자기 원림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로 가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암바팔리는 세존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녀에게 법문으로 가르침을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마음을 일으키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가르침을 받아 마음이 일어나고 기뻐진 암바팔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ambapāliṃ gaṇikaṃ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한쪽에 앉은 기녀 암바빨리에게 세존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ṃsitā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세존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시자,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제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말없이 청을 받아들이셨다. 암바팔리는 그 청이 받아들여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떠났다.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공양을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웨살리의 릿차위들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웨살리에 도착해 암바팔리 숲에 머물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릿차위들은 아름다운 수레를 여러 대 채비하게 했다.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수레에 올라, 나머지 수레를 거느리고 웨살리를 나섰다.
Assosuṃ kho vesālikā licchavī –
웨살리의 릿차위들은 들었다 —
‘‘bhagavā kira vesāliṃ anuppatto vesāliyaṃ viharati ambapālivane’’ti.
“세존께서 웨살리에 이르시어 웨살리의 암바빨리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
Atha kho te licchavī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vesāliyā niyyiṃsu.
그때 그 릿차위들은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게 하고,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웨살리에서 나섰다.
릿차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푸른색이었다. 푸른 빛깔에 푸른 옷을 입고 푸른 장신구를 달았다. 어떤 이들은 노란색이었다. 노란 빛깔에 노란 옷을 입고 노란 장신구를 달았다. 어떤 이들은 붉은색이었다. 붉은 빛깔에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장신구를 달았다. 또 어떤 이들은 흰색이었다. 흰 빛깔에 흰옷을 입고 흰 장신구를 달았다.
Tatra ekacce licchavī nīlā honti nīlavaṇṇā nīlavatthā nīl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pītā honti pītavaṇṇā pītavatthā pīt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lohitā honti lohitavaṇṇā lohitavatthā lohit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odātā honti odātavaṇṇā odātavatthā odātālaṅkārā.
거기서 어떤 릿차위들은 푸른색이었으니 푸른 빛깔에 푸른 옷에 푸른 장신구였고, 어떤 릿차위들은 노란색이었으니 노란 빛깔에 노란 옷에 노란 장신구였고, 어떤 릿차위들은 붉은색이었으니 붉은 빛깔에 붉은 옷에 붉은 장신구였고, 어떤 릿차위들은 흰색이었으니 흰 빛깔에 흰 옷에 흰 장신구였다.
그런데 암바팔리가 젊은 릿차위들의 수레와 정면으로 부딪치도록 수레를 몰았다. 차축은 차축에, 바퀴는 바퀴에, 멍에는 멍에에 부딪쳤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daharānaṃ daharānaṃ licchavīnaṃ akkhena akkhaṃ cakkena cakkaṃ yugena yugaṃ paṭivaṭṭesi.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젊고 젊은 릿차위들의 굴대에 굴대를, 바퀴에 바퀴를, 멍에에 멍에를 부딪쳤다.
릿차위들이 암바팔리에게 말했다. "이보게 암바팔리, 어찌하여 젊은 릿차위들의 수레에 차축과 차축, 바퀴와 바퀴, 멍에와 멍에를 부딪치며 달리는가?" "도련님들, 제가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하는 공양에 세존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Atha kho te licchavī ambapāliṃ gaṇikaṃ etadavocuṃ –
그때 그 릿차위들이 기녀 암바빨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
‘‘kiṃ, je ambapāli, daharānaṃ daharānaṃ licchavīnaṃ akkhena akkhaṃ cakkena cakkaṃ yugena yugaṃ paṭivaṭṭesī’’ti?
“이봐 암바빨리, 어째서 젊고 젊은 릿차위들의 굴대에 굴대를, 바퀴에 바퀴를, 멍에에 멍에를 부딪치는가?”
‘‘Tathā hi pana me, ayyaputtā, bhagavā nimantito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도련님들, 저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공양에 세존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이보게 암바팔리, 십만 냥을 줄 테니 그 공양을 우리에게 넘기게." "도련님들, 웨살리를 그 수입까지 통째로 주신다 해도 저는 이 공양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Dehi, je ambapāli, etaṃ bhattaṃ satasahassenā’’ti.
“이봐 암바빨리, 그 공양을 십만에 내놓아라.”
‘‘Sacepi me, ayyaputtā, vesāliṃ sāhāraṃ dassatha, evamahaṃ taṃ bhattaṃ na dassāmī’’ti.
“도련님들, 웨살리를 그 딸린 고장까지 저에게 주신다 해도, 저는 그 공양을 내놓지 않겠습니다.”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기며 탄식했다. "아아, 우리가 망고 아가씨에게 지고 말았구나! 우리가 망고 아가씨에게 지고 말았구나!" 그러고는 암바팔리 숲으로 나아갔다.[불확실]
Atha kho te licchavī aṅguliṃ phoṭesuṃ –
그때 그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겼다 —
‘‘jitamha vata bho ambakāya, jitamha vata bho ambakāyā’’ti.
“여보게들, 우리가 참으로 망고 여인에게 졌네. 여보게들, 우리가 참으로 망고 여인에게 졌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e licchavī yena ambapālivanaṃ tena pāyiṃsu.
그때 그 릿차위들은 암바빨리 숲으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릿차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그러고는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신들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구들은 릿차위의 무리를 보아라. 릿차위의 무리를 눈여겨보아라. 마음에 새겨 두어라. 이들은 삼십삼천의 신들과 같구나."
Addasā kho bhagavā te licchavī dūratova āgacchante.
세존께서는 그 릿차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Disvāna bhikkhū āmantesi –
보시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
‘‘yesaṃ, bhikkhave, bhikkhūnaṃ devā tāvatiṃsā adiṭṭhapubbā, o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들이 서른셋 하늘의 신들을 아직 본 적이 없다면, 비구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보아라;
apa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
비구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바라보아라;
upasaṃhara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 –
비구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견주어 보아라 —
tāvatiṃsasadisa’’nti.
서른셋 하늘과 같다고.”
릿차위들은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는 수레로 가고, 거기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그들은 세존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문으로 가르침을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마음을 일으키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가르침을 받아 마음이 일어나고 기뻐진 릿차위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te licchavī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때 그 릿차위들은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로 가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e kho te licchavī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한쪽에 앉은 그 릿차위들에게 세존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te licchavī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ṃsit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그때 그 릿차위들은 세존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시자,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내일 비구 승가와 함께 저희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 릿차위들에게 말씀하셨다. "릿차위들이여, 나는 이미 내일 기녀 암바팔리의 공양을 받기로 했다."
‘‘adhivāsetu no,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공양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Atha kho bhagavā te licchavī etadavoca –
그때 세존께서 그 릿차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adhivutthaṃ kho me, licchavī, svātanāya ambapāliyā gaṇikāya bhatta’’nti.
“릿차위들이여, 내일 공양은 기녀 암바빨리에게 이미 허락했다.”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기며 탄식했다. "아아, 우리가 망고 아가씨에게 지고 말았구나! 우리가 망고 아가씨에게 지고 말았구나!" 그래도 그들은 세존의 말씀에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떠났다.[불확실]
Atha kho te licchavī aṅguliṃ phoṭesuṃ –
그때 그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겼다 —
‘‘jitamha vata bho ambakāya, jitamha vata bho ambakāyā’’ti.
“여보게들, 우리가 참으로 망고 여인에게 졌네. 여보게들, 우리가 참으로 망고 여인에게 졌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e licchav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amiṃsu.
그때 그 릿차위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162
암바팔리는 그 밤이 지나자 자기 동산에서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했다. 그리고 세존께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ārām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ṃ ārocāpesi –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그 밤이 지나고 자기 원림에서 훌륭한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하게 하고서, 세존께 때를 알리게 하였다 —
‘‘kālo, bhante, niṭṭhitaṃ bhatta’’nti.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챙기셨다. 그러고는 비구 승가와 함께 암바팔리의 처소로 가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암바팔리는 붓다를 으뜸으로 하는 비구 승가에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올렸다. 모두가 배불리 들도록 대접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yena ambapāliyā gaṇikāy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오전에 옷을 갖추어 입으시고 발우와 가사를 드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기녀 암바빨리의 처소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uddhappamukhaṃ bhikkhusaṅghaṃ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붓다를 앞세운 비구 승가를 훌륭한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으로 손수 흡족하게 대접하고 만족하게 하였다.
세존께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거두신 것을 보고, 암바팔리는 낮은 자리를 하나 가져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동산을 붓다를 으뜸으로 하는 비구 승가에 드리겠습니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ntaṃ bhuttāviṃ onītapattapāṇiṃ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그때 기녀 암바빨리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거두시자, 어떤 낮은 자리를 잡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ā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기녀 암바빨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māhaṃ, bhante, ārāmaṃ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mmī’’ti.
“세존이시여, 저는 이 원림을 붓다를 앞세운 비구 승가에 바칩니다.”
세존께서는 그 동산을 받으셨다. 그리고 암바팔리에게 법문으로 가르침을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마음을 일으키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그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Paṭiggahesi bhagavā ārāmaṃ.
세존께서 그 원림을 받으셨다.
Atha kho bhagavā ambapāliṃ gaṇikaṃ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그때 세존께서 기녀 암바빨리를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암바팔리 숲에 머무시는 동안, 비구들에게 줄곧 이런 법문을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선정이며, 이것이 통찰지이다. 계로 닦인 선정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선정으로 닦인 통찰지도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통찰지로 닦인 마음은 번뇌에서 온전히 벗어난다. 그 번뇌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이다."
Tatrapi sud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nto ambapālivan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세존께서는 웨살리에 머무시면서 거기 암바빨리 숲에서도 비구들에게 바로 이 법다운 말씀을 자주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고, 이것이 통찰지이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잘 닦인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잘 닦인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잘 닦인 마음은 번뇌들에서 온전히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웰루와 마을에서 안거에 드심Veḷuvagāmavassūpagamanaṃ
163
세존께서는 암바팔리 숲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가자. 벨루와가마로 가자."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ambapālivan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암바빨리 숲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veḷuvagāmako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야, 가자. 웰루와가마까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벨루와가마에 이르셨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르셨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veḷuvagāmako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웰루와가마까로 가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veḷuvagāmake viharati.
거기서 세존께서 웰루와가마까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저마다 웨살리 주변에서 친한 이나 아는 이, 도와줄 이를 찾아 우안거를 지내도록 하여라. 나는 바로 이 벨루와가마에서 우안거를 지내겠다." 비구들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웨살리 주변에서 친한 이나 아는 이, 도와줄 이를 찾아 우안거를 지냈다. 세존께서는 바로 그 벨루와가마에서 우안거를 지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etha tumhe, bhikkhave, samantā vesāliṃ yathāmittaṃ yathāsandiṭṭhaṃ yathāsambhattaṃ vassaṃ upetha.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웨살리 주위에서 벗이 있는 대로, 아는 이가 있는 대로, 가까운 이가 있는 대로 안거에 들어라.
Ahaṃ pana idheva veḷuvagāmake vassaṃ upagacchāmī’’ti.
나는 여기 웰루와가마까에서 안거에 들겠다.”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ṭissutvā samantā vesāliṃ yathāmittaṃ yathāsandiṭṭhaṃ yathāsambhattaṃ vassaṃ upagacchiṃsu.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한 뒤, 웨살리 주위에서 벗이 있는 대로, 아는 이가 있는 대로, 가까운 이가 있는 대로 안거에 들었다.
Bhagavā pana tattheva veḷuvagāmake vassaṃ upagacchi.
그러나 세존께서는 바로 거기 웰루와가마까에서 안거에 드셨다.
164
그런데 우안거에 드신 세존께 심한 병이 생겼다. 죽음에 이를 만큼 극심한 고통이 일어났다. 세존께서는 그 고통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분명히 알아차리며, 괴로워하지 않고 견디어 내셨다.
Atha kho bhagavato vassūpagatassa kharo ābādho uppajji, 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그때 안거에 드신 세존께 모진 병이 생겨, 죽음에 이를 듯한 격심한 느낌들이 일었다.
Tā sudaṃ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세존께서는 그것들을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괴로워하지 않고 견디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시중드는 이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비구 승가를 둘러보지도 않은 채 내가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병을 정진의 힘으로 물리치고, 수명의 지속을 붙들어 두고 지내는 것이 좋겠다."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metaṃ patirūpaṃ, yvāhaṃ anāmantetvā upaṭṭhāke anapaloketvā bhikkhusaṅghaṃ parinibbāyeyyaṃ.
“시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구 승가에 말하지 않고 내가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은 나에게 마땅하지 않다.
Yaṃnūnāhaṃ imaṃ ābādhaṃ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ṃ adhiṭṭhāya vihareyya’’nti.
차라리 나는 이 병을 정진으로 물리치고 목숨의 형성을 다잡아 머물리라.”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병을 정진의 힘으로 물리치고 수명의 지속을 붙드신 채 지내셨다. 그러자 병이 가라앉았다. 세존께서는 병석에서 일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병의 기운이 남아 있는 가운데 거처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거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bhagavā taṃ ābādhaṃ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ṃ adhiṭṭhāya vihāsi.
그때 세존께서 그 병을 정진으로 물리치시고 목숨의 형성을 다잡아 머무셨다.
Atha kho bhagavato so ābādho paṭipassambhi.
그러자 세존의 그 병이 가라앉았다.
Atha kho bhagavā gilānā vuṭṭhito aciravuṭṭhito gelaññā vihārā nikkhamma vihārapacchāyāyaṃ paññatte āsane nisīdi.
그때 세존께서 병에서 일어나시어, 앓이에서 일어나신 지 오래지 않아 거처에서 나와 거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편안하신 모습을 뵈니 기쁩니다. 세존이시여, 견디어 내시는 모습도 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몸이 독에 취한 듯 힘이 없었습니다. 방향도 분간되지 않았습니다. 세존의 병환 때문에 법도 제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약간의 위안은 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대해 무언가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드시지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diṭṭho me, bhante, bhagavato phāsu;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편안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diṭṭhaṃ me, bhante, bhagavato khamanīyaṃ, api ca me, bhante, madhurakajāto viya kāyo.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견디실 만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세존이시여, 제 몸은 취한 듯했습니다.
Disāpi me na pakkhāyanti;
저에게는 방향조차 분간되지 않았습니다;
dhammāpi maṃ na paṭibhanti bhagavato gelaññena, api ca me, bhante, ahosi kācideva assāsamattā –
세존의 병환 때문에 법들조차 저에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만한 안도는 있었습니다 —
‘na tāva bhagavā parinibbāyissati, na yāva bhagavā bhikkhusaṅ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atī’’’ti.
‘세존께서 비구 승가를 두고 무언가를 말씀하시기 전에는,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지 않으리라.’”
165
"아난다여, 비구 승가가 나에게 무엇을 더 바라느냐? 나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법을 가르쳐 왔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법에 관해 스승이 움켜쥔 주먹이 없다.
‘‘Kiṃ panānanda, bhikkhusaṅgho mayi paccāsīsati?
“아난다야, 그런데 비구 승가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Desito, ānanda, mayā dhammo anantaraṃ abāhiraṃ karitvā.
아난다야, 나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법을 설했다.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아난다야, 여래에게는 법에 대해 스승의 주먹이 없다.
아난다여, 누군가 '내가 비구 승가를 이끌겠다.' 하거나 '비구 승가는 나를 따르는 것이다.' 하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라면 비구 승가에 대해 무언가 말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여래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다. 그러니 여래가 비구 승가에 대해 한 번이라도 무언가 말하겠느냐?[불확실]
Yassa nūna, ānanda, evamassa –
아난다야, 누구든 이렇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so nūna, ānanda, bhikkhusaṅ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eyya.
‘나는 비구 승가를 이끌리라’거나 ‘비구 승가는 나에게 딸렸다’고 여긴다면, 아난다야, 그런 이라면 비구 승가를 두고 무언가를 말할 것이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
아난다야, 여래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다 —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나는 비구 승가를 이끌리라’거나 ‘비구 승가는 나에게 딸렸다’고.
Sakiṃ, ānanda, tathāgato bhikkhusaṅ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issati.
아난다야, 여래가 어찌 비구 승가를 두고 무언가를 말하겠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고 낡았다. 나이 들어 노년에 이르렀고 생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내 나이는 여든이다. 낡은 수레가 가죽 끈으로 동여매어 간신히 굴러가듯, 여래의 몸도 꼭 그처럼 동여매어 간신히 굴러가는 듯하다.
Ahaṃ kho panānanda, etarahi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아난다야, 나는 이제 늙고 노쇠하고 나이 들고 세월이 흘러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Āsītiko me vayo vattati.
내 나이 여든이 되었다.
Seyyathāpi, ānanda, jajjarasakaṭaṃ veṭhamissakena yāpeti, evameva kho, ānanda, veṭhamissakena maññe tathāgatassa kāyo yāpeti.
아난다야,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얽어매어 굴러가듯, 아난다야, 여래의 몸도 얽어매어 굴러가는 듯하다.
그래도 여래가 모든 표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느낌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물 때에는, 여래의 몸이 한결 편안하다.[불확실]
Y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o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ekaccānaṃ vedanānaṃ nirodhā animittaṃ cetosamādhiṃ upasampajja viharati, phāsutaro, ānanda, tasmiṃ samaye tathāgatassa kāyo hoti.
아난다야, 여래가 모든 표상에 마음 기울이지 않고 어떤 느낌들이 소멸하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물 때, 아난다야, 그때 여래의 몸은 더 편안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너희는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마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고 지내라.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아난다야, 그러므로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고,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고 머물라.
아난다여, 비구가 어떻게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는가? 어떻게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가? 또 어떻게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지내는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지켜보며 지낸다. 열심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길들인다.
Kathañc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아난다야,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머무는가?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아난다야,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느낌들에서도, 마음에서도, 법들에서도 법을 지켜보며 지낸다. 열심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길들인다.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느낌들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법들에서 법을 거듭 살피며 머문다. 부지런히 힘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고,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다스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65.15에서 되살렸습니다.
아난다여, 이렇게 비구는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는다.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다.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고 지낸다.
Evaṃ kho, 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아난다야, 이렇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머문다.
아난다여, 지금이든 내가 떠난 뒤든 이렇게 지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 이들이다.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배우기를 바라는 나의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 될 것이다."[불확실]
Ye hi keci, ānanda, etarahi vā mama vā accayena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tamatagge me te, ānanda,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아난다야, 지금이든 내가 떠난 뒤든 누구든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머물 이들, 아난다야, 배우기를 바라는 그 비구들이야말로 나에게 으뜸이 될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둘째 암송분이 끝났다.
Dutiyabhāṇavāro.
두 번째 송출 단락.
표상과 광명에 관한 이야기Nimittobhāsakathā
166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아래옷을 두르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탁발하러 웨살리로 들어가셨다. 탁발을 마치고 식사한 뒤 돌아오신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앉을 자리를 챙기거라. 낮 동안 쉬러 짜빨라 탑묘로 가자." 아난다 존자는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앉을 자리를 들고 세존의 바로 뒤를 따라갔다. 세존께서 짜빨라 탑묘에 이르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웨살리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웨살리에서 탁발하시고, 공양을 마치신 뒤 탁발에서 돌아오시어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gaṇhāhi, ānanda, nisīdanaṃ, yena cāpālaṃ cetiyaṃ tenupasaṅkamissāma divā vihārāyā’’ti.
“아난다여, 좌구를 들어라. 짜빨라 탑묘로 가자, 낮 동안 머물기 위하여.”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nisīdanaṃ ādāya bhagavantaṃ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하고, 좌구를 들고 세존을 바로 뒤에서 뒤따랐다.
Atha kho bhagavā yena cāpālaṃ cetiy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짜빨라 탑묘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시어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Āyasmāpi kho ānand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167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 탑묘도, 고따마까 탑묘도,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다. 바후뿟따 탑묘도, 사란다다 탑묘도,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다. 아난다야,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토대를 닦고 거듭 익혀 수레처럼 부리고 터전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그것을 꾸준히 이어 가며 쌓고 잘 다스렸다면 어떨까.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는 바로 그렇게 네 가지 신통의 토대를 닦고 거듭 익혀 잘 다스렸다. 그러니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 있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ānand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gotamak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attamb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bahuputt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ārandad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cāpālaṃ cetiyaṃ.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 아난다여, 그러니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뚜렷한 암시를 주시고 뚜렷한 빛을 보이셨다. 그런데도 아난다 존자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부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부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하늘과 사람들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세존께 간청하지 않았다. 마라에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Ev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이렇게 세존께서 이토록 뚜렷한 표상을 지으시고 이토록 뚜렷한 광명을 지으셨는데도, 아난다 존자는 꿰뚫어 알지 못했다;
na bhagavantaṃ yāci –
세존께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yathā taṃ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하고 — 마라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자가 그러하듯.
두 번째로도,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 탑묘도, 고따마까 탑묘도,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다. 바후뿟따 탑묘도, 사란다다 탑묘도,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다. 아난다야,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토대를 닦고 거듭 익혀 수레처럼 부리고 터전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그것을 꾸준히 이어 가며 쌓고 잘 다스렸다면 어떨까.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는 바로 그렇게 네 가지 신통의 토대를 닦고 거듭 익혀 잘 다스렸다. 그러니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 있다."
Dutiyampi kho bhagavā…pe… ta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두 번째로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 아난다여, 그러니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이렇게 세존께서 이토록 뚜렷한 표상을 지으시고 이토록 뚜렷한 광명을 지으셨는데도, 아난다 존자는 꿰뚫어 알지 못했다; 세존께 청하지 않았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하고 — 마라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자가 그러하듯.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67.2 ~ PN:dn16/167.7에서 되살렸습니다.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gotamak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attamb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bahuputt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ārandad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cāpālaṃ cetiyaṃ.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게 세우고 익숙하게 하고 잘 시작하였다. 아난다여, 그러니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거나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 있다.”
이번에도 세존께서 뚜렷한 암시를 주시고 뚜렷한 빛을 보이셨다. 그런데도 아난다 존자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부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부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하늘과 사람들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세존께 간청하지 않았다. 마라에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Ev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이렇게 세존께서 이토록 뚜렷한 표상을 지으시고 이토록 뚜렷한 광명을 지으셨는데도, 아난다 존자는 꿰뚫어 알지 못했다;
na bhagavantaṃ yāci –
세존께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yathā taṃ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유익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하고 — 마라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자가 그러하듯.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이제 가 보거라. 네가 알맞다고 여기는 대로 하여라." 아난다 존자는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인사한 뒤, 멀지 않은 어느 나무 밑에 가서 앉았다.[불확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gaccha tvaṃ, ānanda, yassadāni kālaṃ maññasī’’ti.
“아난다여, 그대는 가거라. 이제 그대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avidūre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 앉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라의 청에 관한 이야기Mārayācanakathā
168
아난다 존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악마 빠삐만이 세존께 다가왔다. 그는 가까이 와서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빠삐만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의 비구 제자들이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살게 되기 전에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히게 되기 전에도 그렇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하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비구 제자들은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닙니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삽니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힙니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합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Atha kho māro pāpimā acirapakkante āyasmante ānande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악한 자 마라가 세존께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와서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māro pāpimā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악한 자 마라가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 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ī’ti.
‘악한 자여,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 나의 비구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게 되고,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Etarahi kho pana, bhante, bhikkhū bhagavato sāva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n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은 비구들이 세존의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합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세존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의 비구니 제자들이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살게 되기 전에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히게 되기 전에도 그렇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하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비구니 제자들은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닙니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삽니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힙니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합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ī’ti.
‘악한 자여,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 나의 비구니들이 여자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게 되고,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Etarahi kho pana, bhante, bhikkhuniyo bhagavato sāvi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n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은 비구니들이 세존의 여자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합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세존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의 재가신자 제자들이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살게 되기 전에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히게 되기 전에도 그렇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하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재가신자 제자들은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닙니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삽니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힙니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합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ī’ti.
‘악한 자여,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게 되고,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Etarahi kho pana, bhante, upāsakā bhagavato sāva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n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은 재가신자들이 세존의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합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세존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의 재가신녀 제자들이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살게 되기 전에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히게 되기 전에도 그렇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하게 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재가신녀 제자들은 영리하고 잘 길들여지고 두려움이 없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닙니다.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닦고 바르게 행하며 법에 따라 삽니다. 제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전하고 설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이하고 쉽게 밝힙니다. 일어난 다른 주장을 이치에 맞게 잘 꺾은 뒤 놀라운 힘이 깃든 법을 설합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ī’ti.
‘악한 자여,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여자 재가신자들이 여자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게 되고,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Etarahi kho pana, bhante, upāsikā bhagavato sāvi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n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은 여자 재가신자들이 세존의 여자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훈련되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잘 지니고, 법을 법에 따라 실천하고, 올바른 길을 따라 실천하며, 법에 맞게 살아가는 이가 되어,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알리고 설하고 드러내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히 하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논파하고서 경이로운 법을 설합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세존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이 청정한 삶이 번영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전에는, 나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 사방에 두루 미치고 하늘과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기 전에도 그렇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청정한 삶은 번영하고 널리 퍼졌으며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사방에 두루 미치고 하늘과 사람들에게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idaṃ brahmacariyaṃ na iddhaṃ 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악한 자여,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이 청정한 삶이 번성하고 융성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두루 퍼져서, 신과 인간에게 잘 드러나게 되기까지는.’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ṃ iddhaṃ ceva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ṃ.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은 세존의 청정한 삶이 번성하고 융성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두루 퍼져서, 신과 인간에게 잘 드러났습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ti.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 악마 빠삐만에게 말씀하셨다. "빠삐만아, 걱정하지 마라. 여래의 열반은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Evaṃ vutte bhagavā māraṃ pāpim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 악한 자 마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appossukko tvaṃ, pāpima, hohi,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악한 자여, 그대는 마음을 놓아라. 오래지 않아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수명의 형성을 놓아 버림Āyusaṅkhāraossajjanaṃ
169
그러고서 세존께서는 짜빨라 탑묘에서 바르게 알아차리며 수명의 의지를 내려놓으셨다. 세존께서 수명의 의지를 내려놓자 큰 땅이 흔들렸다. 무섭고 소름 끼치는 일이었고, 하늘의 북소리도 울려 퍼졌다. 세존께서는 이 일을 아시고 바로 그때 이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Atha kho bhagavā cāpāle cetiye sato sampajāno āyusaṅkhāraṃ ossaji.
그때 세존께서 짜빨라 탑묘에서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수명의 형성을 놓아 버리셨다.
Ossaṭṭhe ca bhagavatā āyusaṅkhāre mahābhūmicālo ahosi bhiṃsanako salomahaṃso,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세존께서 수명의 형성을 놓아 버리시자 큰 지진이 일어났으니, 무섭고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으며, 하늘 북이 터져 울렸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아시고 그때에 이 감흥어를 읊으셨다 —
헤아릴 것도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생겨나는 바탕도 / 존재를 짓는 행(行)마저 성자는 내려놓았네[불확실]
‘‘Tulamatulañca sambhavaṃ, bhavasaṅkhāramavassaji muni;
“헤아릴 수 있는 것과 헤아릴 수 없는 것, 그 생겨남을 — 성인은 존재의 형성을 놓아 버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안으로 기뻐하며 마음 모아 고요히 / 스스로 난 갑옷을 깨뜨리듯 부수었네[불확실]
Ajjhattarato samāhito, abhindi kavacamivattasambhava’’nti.
안으로 기뻐하고 삼매에 들어, 갑옷을 부수듯 자기에게서 생긴 것을 부수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큰 지진의 원인Mahābhūmicālahetu
170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일었다.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땅의 흔들림은 참으로 크구나. 아주 커서 무섭고 소름이 끼치는구나. 하늘의 북소리도 울렸다. 이렇게 큰 땅의 흔들림이 나타난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일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땅의 흔들림은 참으로 크고, 아주 커서 무섭고 소름이 끼칩니다. 하늘의 북소리도 울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큰 땅의 흔들림이 나타난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mahā vatāyaṃ bhūmicālo;
“아, 참으로 놀랍구나. 아,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지진은 참으로 크구나;
sumahā vatāyaṃ bhūmicālo bhiṃsanako salomahaṃso;
이 지진은 참으로 아주 크고, 무섭고 털이 곤두서는구나;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하늘 북도 터져 울렸다.
Ko nu kho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큰 지진이 나타나는 데에는 도대체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는가?”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가서, 다가가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mahā vatāyaṃ, bhante, bhūmicālo;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지진은 참으로 큽니다;
sumahā vatāyaṃ, bhante, bhūmicālo bhiṃsanako salomahaṃso;
세존이시여, 이 지진은 참으로 아주 크고, 무섭고 털이 곤두섭니다;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하늘 북도 터져 울렸습니다.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세존이시여, 큰 지진이 나타나는 데에는 도대체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171
"아난다야, 큰 땅이 흔들리는 데에는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아난다야, 이 큰 땅은 물 위에 있고, 물은 바람 위에 있으며, 바람은 허공에 있다. 큰 바람이 부는 때가 있다. 큰 바람이 불면 물이 흔들리고, 물이 흔들리면 땅이 흔들린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첫 번째 원인이고 첫 번째 조건이다.
‘‘Aṭṭha kho ime, ānand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아난다여, 큰 지진이 나타나는 데에는 이런 여덟 가지 원인, 여덟 가지 조건이 있다.
Katame aṭṭha?
여덟이란 무엇인가?
Ayaṃ, ānanda, mahāpathavī udake patiṭṭhitā, udakaṃ vāte patiṭṭhitaṃ, vāto ākāsaṭṭho.
아난다여, 이 큰 땅은 물 위에 서 있고, 물은 바람 위에 서 있으며, 바람은 허공에 서 있다.
Hoti kho so, ānanda, samayo, yaṃ mahāvātā vāyanti.
아난다여, 큰 바람이 부는 그런 때가 있다.
Mahāvātā vāyantā udakaṃ kampenti.
큰 바람이 불면서 물을 흔든다.
Udakaṃ kampitaṃ pathaviṃ kampeti.
흔들린 물이 땅을 흔든다.
Ayaṃ paṭhamo hetu pa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첫째 원인이요 첫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신통력을 지닌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혹은 큰 신통력과 위력을 지닌 신이 있다고 하자. 그가 땅의 인식은 작게, 물의 인식은 한량없이 닦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이 땅을 흔들고 뒤흔들고 마구 흔들어 떨게 한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두 번째 원인이고 두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samaṇo vā hoti brāhmaṇo vā iddhimā cetovasippatto, devo vā mahiddhiko mahānubhāvo, tassa parittā pathavīsaññā bhāvitā hoti, appamāṇā āposaññā.
아난다여, 또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신통을 갖추어 마음의 자재를 얻었거나, 신이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녔는데, 그에게 땅에 대한 인식은 좁게 닦여 있고 물에 대한 인식은 한량없이 닦여 있다.
So imaṃ pathaviṃ kampeti saṅkampeti sampakampeti sampavedheti.
그가 이 땅을 흔들고 뒤흔들고 온통 뒤흔들고 요동치게 한다.
Ayaṃ dutiyo hetu dutiy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둘째 원인이요 둘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보살이 도솔천의 몸에서 떠나 바르게 알아차리며 어머니의 태에 든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세 번째 원인이고 세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bodhisatto tusitakāyā cavitvā sat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보살이 뚜시따 무리에서 목숨을 마치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어머니의 태에 들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tatiyo hetu tatiy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셋째 원인이요 셋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보살이 바르게 알아차리며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네 번째 원인이고 네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bodhisatto sato sampajāno mātukucchismā nikkham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보살이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catuttho hetu catutth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넷째 원인이요 넷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다섯 번째 원인이고 다섯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을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pañcamo hetu pañc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다섯째 원인이요 다섯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린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여섯 번째 원인이고 여섯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e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릴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chaṭṭho hetu chaṭṭh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여섯째 원인이요 여섯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여래가 바르게 알아차리며 수명의 의지를 내려놓는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일곱 번째 원인이고 일곱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sato sampajāno āyusaṅkhāraṃ ossajj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여래가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수명의 형성을 놓아 버릴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sattamo hetu satt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일곱째 원인이요 일곱째 조건이다.
또 아난다야, 여래가 남음 없는 열반의 영역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그때에도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마구 흔들리며 떤다.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여덟 번째 원인이고 여덟 번째 조건이다. 아난다야, 이것이 큰 땅이 흔들리는 여덟 가지 원인, 여덟 가지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아난다여, 또한 여래가 취착의 자취가 남지 않은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들 때, 그때 이 땅은 흔들리고 뒤흔들리고 온통 뒤흔들리고 요동친다.
Ayaṃ aṭṭhamo hetu aṭ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여덟째 원인이요 여덟째 조건이다.
Ime kho, ānanda, aṭṭh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아난다여, 이것이 큰 지진이 나타나는 여덟 가지 원인, 여덟 가지 조건이다.”
여덟 무리Aṭṭha parisā
172
"아난다야, 모임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왕족의 모임, 바라문의 모임, 장자의 모임, 사문의 모임이 있다. 사천왕천의 모임, 삼십삼천의 모임, 마라의 모임, 범천의 모임도 있다.
‘‘Aṭṭha kho imā, ānanda, parisā.
“아난다여, 이런 여덟 무리가 있다.
Katamā aṭṭha?
여덟이란 무엇인가?
Khattiyaparisā, brāhmaṇaparisā, gahapatiparisā, samaṇaparisā, cātumahārājikaparisā, tāvatiṃsaparisā, māraparisā, brahmaparisā.
끄샤뜨리야 무리, 바라문 무리, 장자 무리, 사문 무리, 사대왕천 무리, 삼십삼천 무리, 마라 무리, 범천 무리이다.
아난다야, 나는 수백의 왕족 모임에 가 본 일을 기억한다. 그곳에서도 나는 먼저 함께 앉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토론에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빛이 어떠하면 내 얼굴빛도 그와 같이 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면 내 목소리도 그와 같이 했다. 그러고서 법을 이야기하여 보여 주고, 북돋고, 격려하고, 기쁘게 했다. 내가 말하는 동안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말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신인가,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법을 이야기하여 보여 주고 북돋고 격려하고 기쁘게 한 뒤에 나는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라진 이는 누구인가? 신인가,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ānanda, anekasataṃ khattiyaparisaṃ upasaṅkamitā.
아난다여, 나는 수백의 끄샤뜨리야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ṃ 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은 적이 있고,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전에 함께 대화에 든 적이 있다.
Tattha yādisako tesaṃ vaṇṇo hoti, tādisako mayhaṃ vaṇṇo hoti.
거기서 그들의 용모가 어떠하든 내 용모도 그와 같았다.
Yādisako tesaṃ saro hoti, tādisako mayhaṃ saro hoti.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든 내 목소리도 그와 같았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mi samādapemi samuttejemi sampahaṃsemi.
나는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했다.
Bhāsamānañca maṃ na jānanti –
그런데 말하는 나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
‘ko nu kho ayaṃ bhāsati devo vā manusso vā’ti?
‘말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신인가, 사람인가?’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antaradhāyāmi.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 뒤 나는 사라졌다.
Antarahitañca maṃ na jānanti –
그런데 사라진 나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
‘ko nu kho ayaṃ antarahito devo vā manusso vā’ti?
‘사라진 이 사람은 도대체 신인가, 사람인가?’
아난다야, 나는 바라문 모임, 장자 모임, 사문 모임에도 수백 번 가 본 일을 기억한다. 사천왕천 모임, 삼십삼천 모임, 마라 모임, 범천 모임에도 그렇다. 그곳에서도 나는 먼저 함께 앉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토론에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빛이 어떠하면 내 얼굴빛도 그와 같이 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면 내 목소리도 그와 같이 했다. 그러고서 법을 이야기하여 보여 주고, 북돋고, 격려하고, 기쁘게 했다. 내가 말하는 동안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말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신인가,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법을 이야기하여 보여 주고 북돋고 격려하고 기쁘게 한 뒤에 나는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라진 이는 누구인가? 신인가,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ānanda, anekasataṃ brāhmaṇaparisaṃ…pe… gahapatiparisaṃ… samaṇaparisaṃ… cātumahārājikaparisaṃ… tāvatiṃsaparisaṃ… māraparisaṃ… brahmaparisaṃ upasaṅkamitā.
아난다여, 나는 수백의 바라문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장자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사문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사대왕천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삼십삼천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마라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수백의 범천 무리에 다가간 이였음을 기억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72.4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ṃ 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거기서도 나는 전에 함께 앉은 적이 있고,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전에 함께 대화에 든 적이 있다.
Tattha yādisako tesaṃ vaṇṇo hoti, tādisako mayhaṃ vaṇṇo hoti.
거기서 그들의 용모가 어떠하든 내 용모도 그와 같았다.
Yādisako tesaṃ saro hoti, tādisako mayhaṃ saro hoti.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든 내 목소리도 그와 같았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mi samādapemi samuttejemi sampahaṃsemi.
나는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했다.
Bhāsamānañca maṃ na jānanti –
그런데 말하는 나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
‘ko nu kho ayaṃ bhāsati devo vā manusso vā’ti?
‘말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신인가, 사람인가?’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antaradhāyāmi.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 뒤 나는 사라졌다.
Antarahitañca maṃ na jānanti –
그런데 사라진 나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
‘ko nu kho ayaṃ antarahito devo vā manusso vā’ti?
‘사라진 이 사람은 도대체 신인가, 사람인가?’
아난다야, 이것이 여덟 가지 모임이다."
Imā kho, ānanda, aṭṭha parisā.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무리다.
여덟 가지 제압의 경지Aṭṭha abhibhāyatanāni
173
"아난다야, 넘어서는 경지가 여덟 가지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안으로 형상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형상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ṭṭha kho imāni, ānanda, abhibhāyatanāni.
“아난다여, 이런 여덟 가지 제압의 경지가 있다.
Katamāni aṭṭha?
여덟이란 무엇인가?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작고 빛깔이 곱거나 흉하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paṭh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첫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형상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흉하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dutiy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둘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작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형상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작고 빛깔이 곱거나 흉하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tatiy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셋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추한 형상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한량없고 빛깔이 곱거나 흉하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catutth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넷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푸른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푸르고, 푸른 빛깔이고, 푸르게 드러나고 푸르게 빛난다. 이를테면 푸르고 푸른 빛깔이고 푸르게 드러나고 푸르게 빛나는 아마의 꽃과 같다. 혹은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과 같다. 그 천도 푸르고 푸른 빛깔이고, 푸르게 드러나고 푸르게 빛난다. 이처럼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드러나고 푸르게 빛난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
Seyyathāpi nāma umāpupp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마치 아마 꽃이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또는 마치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 산 천이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꼭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푸르고, 푸른 빛깔이며,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pañc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다섯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노란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노랗고, 노란 빛깔이고, 노랗게 드러나고 노랗게 빛난다. 이를테면 노랗고 노란 빛깔이고 노랗게 드러나고 노랗게 빛나는 까니까라의 꽃과 같다. 혹은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과 같다. 그 천도 노랗고 노란 빛깔이고, 노랗게 드러나고 노랗게 빛난다. 이처럼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드러나고 노랗게 빛난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난다.
Seyyathāpi nāma kaṇikārapupp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마치 깐니까라 꽃이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나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또는 마치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 산 천이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나는 것과 같다.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꼭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노랗고, 노란 빛깔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랗게 빛난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chaṭṭh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여섯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붉은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붉고, 붉은 빛깔이고, 붉게 드러나고 붉게 빛난다. 이를테면 붉고 붉은 빛깔이고 붉게 드러나고 붉게 빛나는 반두지와까의 꽃과 같다. 혹은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과 같다. 그 천도 붉고 붉은 빛깔이고, 붉게 드러나고 붉게 빛난다. 이처럼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드러나고 붉게 빛난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
Seyyathāpi nāma bandhujīvakapupp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마치 반두지와까 꽃이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나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또는 마치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 산 천이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나는 것과 같다.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꼭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붉고, 붉은 빛깔이며,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satt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일곱째 제압의 경지다.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흰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희고, 흰 빛깔이고, 희게 드러나고 희게 빛난다. 이를테면 희고 흰 빛깔이고 희게 드러나고 희게 빛나는 샛별과 같다. 혹은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과 같다. 그 천도 희고 흰 빛깔이고, 희게 드러나고 희게 빛난다. 이처럼 안으로 형상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밖으로 형상들을 본다. 그 형상들은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드러나고 희게 빛난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알고 본다' 하고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넘어서는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어떤 이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
Seyyathāpi nāma osadhitārakā odātā odātavaṇṇā odātanidassanā odātanibhāsā.
마치 샛별이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나는 것과 같다.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odātaṃ odātavaṇṇaṃ odātanidassanaṃ odātanibhāsaṃ.
또는 마치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 산 천이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나는 것과 같다.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꼭 그와 같이,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보는데, 그것들은 희고, 흰 빛깔이며,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그것들을 제압하고서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그렇게 인식한다.
Idaṃ aṭṭhamaṃ abhibhāyatanaṃ.
이것이 여덟째 제압의 경지다.
아난다야, 이것이 여덟 가지 넘어서는 경지이다."
Imāni kho, ānanda, aṭṭha abhibhāyatanāni.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가지 제압의 경지다.
여덟 가지 해탈Aṭṭha vimokkhā
174
“아난다여, 해탈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첫째 해탈은 몸에 물질의 상을 지닌 채 바깥의 물질을 보는 것이다. 둘째 해탈은 안으로 물질의 상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바깥의 물질을 보는 것이다. 셋째 해탈은 ‘아름답다’는 한 가지 생각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넷째 해탈은 물질에 대한 모든 생각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다. 부딪침에 대한 생각이 가라앉고, 갖가지 생각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허공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허공의 경지에 들어 머문다. 다섯째 해탈은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다. ‘의식은 끝이 없다’ 하며 무한한 의식의 경지에 들어 머문다. 여섯째 해탈은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하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면,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일곱째 해탈이다.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면,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덟째 해탈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가지 해탈이다.
‘‘Aṭṭha kho ime, ānanda, vimokkhā.
“아난다여, 이 여덟 가지 해탈이 있다.
Katame aṭṭha?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ṃ paṭhamo vimokkho.
물질을 지닌 이가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ṃ dutiyo vimokkho.
안으로 물질이 없다고 인식하는 이가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ṃ tatiyo vimokkho.
‘아름답다’는 것에만 마음이 기운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atuttho vimokkho.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pañcamo vimokkho.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haṭṭho vimokkho.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
Ayaṃ sattamo vimokkho.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aṭṭhamo vimokkho.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Ime kho, ānanda, aṭṭha vimokkhā.
아난다여, 이것이 그 여덟 가지 해탈이다.
175
아난다여, 한때 나는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가, 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머물렀다. 막 깨달음을 이룬 때였다. 그때 악마 파피만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파피만이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나는 파피만의 말을 듣고 이렇게 답했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uruvelāyaṃ viharām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e paṭhamābhisambuddho.
“아난다여, 한때 나는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가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에, 갓 바르게 깨달은 채로 머물렀다.
Atha kho, ānanda, māro pāpimā yenāhaṃ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여, 악한 자 마라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와서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ānanda, māro pāpimā m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악한 자 마라는, 아난다여, 내게 이렇게 말했다 —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ti.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Evaṃ vutte ahaṃ, ānanda, māraṃ pāpimantaṃ etadavocaṃ –
그렇게 말하자, 아난다여, 나는 악한 자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내 제자인 비구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그렇다. 슬기롭고 잘 길들여졌으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많이 배워 법을 지니고,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따라 바르게 행하며,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 자기 스승에게 배운 것을 남에게 말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어 나누고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일어난 다른 이들의 주장을 법에 따라 잘 꺾고, 신통 같은 놀라운 힘으로 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내 제자인 비구니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그렇다. 슬기롭고 잘 길들여졌으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많이 배워 법을 지니고,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따라 바르게 행하며,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 자기 스승에게 배운 것을 남에게 말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어 나누고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일어난 다른 이들의 주장을 법에 따라 잘 꺾고, 신통 같은 놀라운 힘으로 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내 제자인 재가신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그렇다. 슬기롭고 잘 길들여졌으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많이 배워 법을 지니고,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따라 바르게 행하며,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 자기 스승에게 배운 것을 남에게 말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어 나누고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일어난 다른 이들의 주장을 법에 따라 잘 꺾고, 신통 같은 놀라운 힘으로 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내 제자인 여성 재가신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그렇다. 슬기롭고 잘 길들여졌으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많이 배워 법을 지니고, 법과 그에 맞는 실천을 따라 바르게 행하며,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 자기 스승에게 배운 것을 남에게 말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세우고 열어 보이고 풀어 나누고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일어난 다른 이들의 주장을 법에 따라 잘 꺾고, 신통 같은 놀라운 힘으로 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이 청정한 수행이 번영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한다. 두루 확산되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에게 잘 선포되기 전에는 그렇다.’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i.
‘악한 자여, 나의 비구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i.
‘악한 자여, 나의 비구니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i.
‘악한 자여, 나의 남자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i.
‘악한 자여, 나의 여자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idaṃ brahmacariyaṃ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악한 자여, 나의 이 청정한 삶이 번성하고 융성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미치고 두루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알려지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176
아난다여, 바로 오늘 짜빨라 탑묘에서 악마 파피만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파피만이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나는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내 제자인 비구들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그렇다. 비구니들과 재가신자들, 여성 재가신자들이 갖추어지기 전에도 그렇다. 이 청정한 수행이 번영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두루 확산되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에게 잘 선포되기 전에는 그렇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의 청정한 수행은 번영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두루 확산되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에게 잘 선포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Idāneva kho,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māro pāpimā yenāhaṃ tenupasaṅkami;
“아난다여, 바로 오늘 지금 짜빨라 탑묘에서, 악한 자 마라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와서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ānanda, māro pāpimā m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악한 자 마라는, 아난다여, 내게 이렇게 말했다 —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pe…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pe…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pe…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pe… yāva me idaṃ brahmacariyaṃ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악한 자여, 나의 비구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악한 자여, 나의 비구니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악한 자여, 나의 남자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악한 자여, 나의 여자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잘 닦이고, 자신 있고, 많이 배우고, 법을 지니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고, 바른 길을 걷고, 법을 따라 살며,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익혀서 일러 주고, 설하고, 알려 주고, 세워 주고, 드러내고, 나누어 밝히고, 환히 드러내며, 일어난 남의 주장을 법답게 잘 눌러 꺾고서 신통을 갖춘 법을 설하게 되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악한 자여, 나의 이 청정한 삶이 번성하고 융성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미치고 두루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알려지기까지는,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75.8 ~ PN:dn16/175.12에서 되살렸습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ṃ iddhañceva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ṃ.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청정한 삶은 번성하고 융성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에게 미치고 두루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알려졌습니다.
Parinibbātu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dāni, bhante, bhagavato’ti.
세존이시여, 이제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177
아난다여, 파피만이 이렇게 말하기에 나는 그에게 답했다. ‘악한 자여, 마음 쓰지 말라. 여래의 완전한 열반은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아난다여, 바로 오늘 짜빨라 탑묘에서 여래는 또렷이 깨어 알아차린 채 목숨을 이루는 힘을 놓아 버렸다.”
‘‘Evaṃ vutte, ahaṃ, ānanda, māraṃ pāpimantaṃ etadavocaṃ –
“그렇게 말하자, 아난다여, 나는 악한 자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
‘appossukko tvaṃ, pāpima, hohi, na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악한 자여, 그대는 마음을 놓아라. 오래지 않아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Idāneva kho,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tathāgatena satena sampajānena āyusaṅkhāro ossaṭṭho’’ti.
아난다여, 바로 오늘 지금 짜빨라 탑묘에서,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는 여래에 의해 수명의 형성이 놓였다.”
아난다가 청한 이야기Ānandayācanakathā
178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께서도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난다여, 이제 그만두어라. 여래에게 청하지 말라. 아난다여, 지금은 여래에게 청할 때가 아니다.” 아난다 존자는 두 번째로도 청했다. 세 번째로도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께서도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Alaṃdāni, ānanda.
“아난다여, 이제 그만하여라.
Mā tathāgataṃ yāci, akālodāni, ānanda, tathāgataṃ yācanāyā’’ti.
여래에게 청하지 마라. 아난다여, 이제는 여래에게 청할 때가 아니다.”
Dutiyampi kho āyasmā ānando…pe… tatiy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아난다여, 이제 그만하여라. 여래에게 청하지 마라. 아난다여, 이제는 여래에게 청할 때가 아니다.” 세 번째로도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78.1 ~ PN:dn16/178.4에서 되살렸습니다.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아난다여, 너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아난다여, 너는 왜 여래를 세 번이나 졸라 대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 앞에서 직접 이렇게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았다고 하자. 그가 그것을 꾸준히 익히고 쌓고 잘 다져 놓았다면,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 있다.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았다. 그것을 꾸준히 익히고 쌓고 잘 다져 놓았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도 있고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너는 그것을 믿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아난다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고 너의 허물이다. 여래가 뚜렷한 암시를 보이고 뚜렷한 빛을 드러냈는데도, 너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께서도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말이다. 아난다여, 네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두 번은 네 말을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고 너의 허물이다.
‘‘Saddahasi tvaṃ, ānanda, tathāgatassa bodhi’’nti?
“아난다여,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Atha kiñcarahi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vatatiyakaṃ abhinippīḷesī’’ti?
“그렇다면 아난다여, 어찌하여 그대는 여래를 세 번까지 다그쳤는가?”
‘‘Sammukhā metaṃ, bhante,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세존 앞에서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그러니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Saddahasi tvaṃ, ānandā’’ti?
“아난다여, 그대는 믿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yaṃ tvaṃ tathāgatena evaṃ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가 잘못한 것이고, 이것은 바로 그대가 그르친 것이다. 여래가 그렇게 뚜렷한 표상을 짓고 뚜렷한 빛을 지었는데도, 그대는 꿰뚫어 알지 못하여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아난다여, 만약 그대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그대의 말을 두 번만은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가 잘못한 것이고, 이것은 바로 그대가 그르친 것이다.
179
아난다여, 한때 나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그곳에서도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아난다여, 독수리봉 산도 아름답다.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았다고 하자. 그가 그것을 꾸준히 익히고 쌓고 잘 다져 놓았다면,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 있다.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았다. 그것을 꾸준히 익히고 쌓고 잘 다져 놓았다. 그러니 여래는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도 있고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그때에도 여래가 뚜렷한 암시를 보이고 뚜렷한 빛을 드러냈는데도, 너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께서도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말이다. 아난다여, 네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두 번은 네 말을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고 너의 허물이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rājagahe viharāmi gijjhakūṭe pabbate.
“아난다여, 한때 나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Tatrāpi kho tāhaṃ, ānanda, āmantesiṃ –
아난다여, 거기서도 나는 그대를 불렀다 —
‘ramaṇīyaṃ, ānanda, rājagahaṃ, ramaṇīyo, ānanda, gijjhakūṭo pabbato.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아난다여, 독수리봉 산은 아름답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 그러니 원하기만 하면, 아난다여, 여래는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
아난다여, 그렇게 여래가 뚜렷한 표상을 짓고 뚜렷한 빛을 지었는데도, 그대는 꿰뚫어 알지 못하여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아난다여, 만약 그대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그대의 말을 두 번은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가 잘못한 것이고, 이것은 바로 그대가 그르친 것이다.
180
아난다여, 또 한때 나는 같은 라자가하의 여러 곳에 머물렀다. 고따마 니그로다 나무 아래와 도둑 절벽, 웹바라 산기슭의 칠엽굴에 머물렀다. 이시길리 산기슭의 검은 바위, 시타 숲의 뱀 머리 동굴, 따뽀다 승원에도 머물렀다. 대숲의 칼란다까 먹이터, 지와까의 망고 숲, 맛다꾸치의 사슴동산에도 머물렀다. 그곳에서도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독수리봉 산도 아름답고, 고따마 니그로다도 아름답고, 도둑 절벽도 아름답다. 웹바라 산기슭의 칠엽굴도, 이시길리 산기슭의 검은 바위도 아름답다. 시타 숲의 뱀 머리 동굴도, 따뽀다 승원도 아름답다. 대숲의 칼란다까 먹이터도, 지와까의 망고 숲도, 맛다꾸치의 사슴동산도 아름답다.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았다고 하자. 그가 그것을 꾸준히 익히고 쌓고 잘 다져 놓았다면,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 있다.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여래도 마찬가지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는 대로 한 겁 동안 머물 수도 있고 한 겁이 다 차도록 머물 수도 있다.’ 그때에도 여래가 뚜렷한 암시를 보이고 뚜렷한 빛을 드러냈는데도, 너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르게 가신 분께서도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하늘 사람과 인간들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말이다. 아난다여, 네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두 번은 네 말을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고 너의 허물이다.”[불확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gotamanigrodhe…p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corapapāt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vebhārapasse sattapaṇṇiguhāyaṃ…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isigilipasse kāḷasilāyaṃ…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sītavane sappasoṇḍikapabbhār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tapodārām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jīvakambavan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maddakucchismiṃ migadāye tatrāpi kho tāhaṃ, ānanda, āmantesiṃ –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그 라자가하의 고따마 니그로다 나무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도둑 벼랑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웨바라 산기슭 삿따빤니 동굴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이시길리 산기슭 검은 바위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시따 숲 삽빠손디까 바위굴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따뽀다 원림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먹이 주는 곳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지와까 망고 숲에 머물렀다. 바로 그 라자가하의 맏다꿋치 사슴 동산에 머물렀다. 거기서도 아난다여, 나는 그대를 불렀다[불확실]
불확실 —
‘ramaṇīyaṃ, ānanda, rājagahaṃ, ramaṇīyo gijjhakūṭo pabbato, ramaṇīyo gotamanigrodho, ramaṇīyo corapapāto, ramaṇīyā vebhārapasse sattapaṇṇiguhā, ramaṇīyā isigilipasse kāḷasilā, ramaṇīyo sītavane sappasoṇḍikapabbhāro, ramaṇīyo tapodārāmo, ramaṇīyo veḷuvane kalandakanivāpo, ramaṇīyaṃ jīvakambavanaṃ, ramaṇīyo maddakucchismiṃ migadāyo.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독수리봉 산은 아름답다. 고따마 니그로다 나무는 아름답다. 도둑 벼랑은 아름답다. 웨바라 산기슭의 삿따빤니 동굴은 아름답다. 이시길리 산기슭의 검은 바위는 아름답다. 시따 숲의 삽빠손디까 바위굴은 아름답다. 따뽀다 원림은 아름답다. 대나무 숲의 다람쥐 먹이 주는 곳은 아름답다. 지와까의 망고 숲은 아름답다. 맏다꿋치의 사슴 동산은 아름답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pe…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굳건히 세우고, 익숙해지고, 잘 착수했다. 그러니 원하기만 하면, 아난다여, 여래는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의 남은 기간을 머물 수도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79.4 ~ PN:dn16/179.5에서 되살렸습니다.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
아난다여, 그렇게 여래가 뚜렷한 표상을 짓고 뚜렷한 빛을 지었는데도, 그대는 꿰뚫어 알지 못하여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무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아난다여, 만약 그대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그대의 말을 두 번만은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가 잘못한 것이고, 이것은 바로 그대가 그르친 것이다.
181
아난다야, 나는 한때 바로 이곳 웨살리의 우데나 탑묘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야,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구나.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았다고 하자. 수레처럼 다루고 터전으로 삼고 쌓고 익혀 잘 갖추었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가 바로 그렇게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잘 갖추었다. 그러니 여래도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는 이처럼 뚜렷한 암시를 주고 뚜렷한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도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여래에게 이렇게 청하지도 않았다. ‘세존이시여,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아난다야, 네가 청했더라면 여래는 두 번은 네 말을 물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너 자신의 잘못이고 너 자신의 허물이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udene cetiye.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이 웨살리의 우데나 탑묘에 머물렀다.
Tatrāpi kho tāhaṃ, ānanda, āmantesiṃ –
아난다여, 거기서도 나는 그대에게 말했다 —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고,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거듭 실행하고 몸에 익히고 잘 시작했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할 때까지 머물 수도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거듭 실행하고 몸에 익히고 잘 시작했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할 때까지 머물 수도 있다.’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
아난다여, 이렇게 여래가 뚜렷한 표상을 지어 보이고 뚜렷한 빛을 드러내 보였는데도, 그대는 꿰뚫어 알지 못했고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물러 주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물러 주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리와 행복을 위해.’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아난다여, 만약 그대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그대의 말을 두 번은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의 잘못이고, 바로 그대의 허물이다.
182
아난다야, 나는 한때 바로 이곳 웨살리의 고따마까 탑묘에 머물렀다. 삿땀바 탑묘에도, 바후뿟따 탑묘에도, 사란다다 탑묘에도 머물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 짜빨라 탑묘에서 너에게 말했다. ‘아난다야,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고따마까 탑묘도,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구나. 바후뿟따 탑묘도, 사란다다 탑묘도,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누구든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닦고 거듭 닦았다고 하자. 수레처럼 다루고 터전으로 삼고 쌓고 익혀 잘 갖추었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가 바로 그렇게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잘 갖추었다. 그러니 여래도 원하기만 하면 한 겁 동안, 혹은 한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 있다.’ 아난다야, 여래는 이처럼 뚜렷한 암시를 주고 뚜렷한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도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여래에게 이렇게 청하지도 않았다. ‘세존이시여,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한 겁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세상을 가엾이 여기시어,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아난다야, 네가 청했더라면 여래는 두 번은 네 말을 물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야, 이것은 너 자신의 잘못이고 너 자신의 허물이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gotamake cetiye …pe…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sattambe cetiye…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bahuputte cetiye…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sārandade cetiye… idāneva kho tāhaṃ,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āmantesiṃ –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이 웨살리의 고따마까 탑묘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이 웨살리의 삿땀바 탑묘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이 웨살리의 바후뿟따 탑묘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한때 나는 바로 이 웨살리의 사란다다 탑묘에 머물렀다. 그리고 바로 지금, 아난다여, 오늘 나는 짜빨라 탑묘에서 그대에게 말했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81.1에서 되살렸습니다.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gotamak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attamb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bahuputt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ārandad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cāpālaṃ cetiyaṃ.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고,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아난다여, 누구든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거듭 실행하고 몸에 익히고 잘 시작했다면, 그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할 때까지 머물 수도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거듭 실행하고 몸에 익히고 잘 시작했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한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할 때까지 머물 수도 있다.’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
아난다여, 이렇게 여래가 뚜렷한 표상을 지어 보이고 뚜렷한 빛을 드러내 보였는데도, 그대는 꿰뚫어 알지 못했고 여래에게 청하지 않았다 —
‘tiṭṭhatu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세존께서는 한 겁을 머물러 주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한 겁을 머물러 주소서 —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리와 행복을 위해.’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아난다여, 만약 그대가 여래에게 청했더라면 여래는 그대의 말을 두 번은 물리쳤겠지만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그러니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그대의 잘못이고, 바로 그대의 허물이다.
183
아난다야, 내가 전에 미리 말하지 않았더냐?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갈라지고 헤어지고 달라지게 마련이다.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진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부디 무너지지 말기를” 하고 바란들 어찌 그렇게 되겠느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난다야, 여래는 수명을 이어 가는 힘을 이미 버렸다. 뱉어 냈고, 풀어 놓았고, 내려놓았고, 놓아 보냈다. 그리고 단호하게 선언하였다. ‘여래는 오래지 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여래가 목숨을 위해 그 말을 다시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Nanu etaṃ,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ṃ –
“아난다여, 내가 이것을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고 갈라지고 달라지기 마련이다.
Taṃ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vata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아난다여, 여기서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 — 태어났고 존재하게 되었고 형성되었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을 두고 ‘무너지지 말라’ 한들, 그런 도리는 없다.’
Yaṃ kho panetaṃ, ānanda, tathāgatena cattaṃ vantaṃ muttaṃ pahīnaṃ paṭinissaṭṭhaṃ ossaṭṭho āyusaṅkhāro, ekaṃsena vācā bhāsitā –
아난다여, 여래가 버리고 토해 내고 놓아 버리고 끊고 내던지고 내려놓은 수명의 형성작용을 두고, 여래는 단호하게 말했다 —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여래의 완전한 열반은 머지않다.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Tañca tathāgato jīvitahetu puna paccāvami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데 여래가 목숨을 위해 그것을 다시 삼키리라는 것, 그런 도리는 없다.
“아난다야, 가자.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가자.” “예,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가셨다. 도착하여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가서 웨살리 근처에 사는 비구들을 모두 시중드는 강당에 모이게 하여라.” “예,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웨살리 근처에 사는 비구들을 모두 시중드는 강당에 모이게 했다. 그런 뒤 세존께 가서 절을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모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마땅하다고 여기시는 때에 말씀해 주십시오.”
Āyāmānanda, yena 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yena 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다가가서는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gaccha tvaṃ, ānanda,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hī’’ti.
“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웨살리에 의지해 머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아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한 뒤, 웨살리에 의지해 머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당에 모으고 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가서는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sannipatito, bhante, bhikkhusaṅgh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ṃ maññatī’’ti.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모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그때입니다.”
184
그러자 세존께서는 시중드는 강당으로 가셨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곧바로 알아서 가르친 법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법들을 잘 배워 익히고 닦고 거듭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청정한 수행이 오래 이어지고 오래 머물게 하라.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일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며,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일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곧바로 알아서 가르친 그 법들이란 무엇인가? 그대들이 잘 배워 익히고 닦고 거듭 실천하면, 청정한 수행이 오래 이어지고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이 되는 법들이다. 곧 이러한 것들이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네 가지 바른 노력, 네 가지 신통의 바탕, 다섯 가지 기능,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그리고 성스러운 여덟 갈래의 길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곧바로 알아서 가르친 법들이다. 그대들은 이 법을 잘 배워 익히고 닦고 거듭 실천하라. 그리하여 이 청정한 수행이 오래 이어지고 오래 머물게 하라.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일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며,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일이다.”
Atha kho bhagavā yen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집회당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tasmātiha, bhikkhave, ye te mayā dhammā abhiññā desitā, t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그러니 내가 곧바로 알아 설한 그 법들을 그대들은 잘 익힌 뒤 가까이하고 닦고 많이 익혀야 한다. 그래야 이 청정한 삶이 오래가고 길이 머물 것이며, 그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리와 행복을 위한 것이 된다.
Katame ca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내가 곧바로 알아 설한, 그대들이 잘 익힌 뒤 가까이하고 닦고 많이 익혀야 할, 그리하여 이 청정한 삶이 오래가고 길이 머물며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리와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그 법들이란 무엇인가?
Seyyathidaṃ –
곧 —
cattāro satipaṭṭhānā cattāro sammappadhānā cattāro iddhipādā pañcindriyāni pañca balāni satta bojjhaṅgā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네 가지 바른 노력, 네 가지 성취수단, 다섯 가지 기능,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다.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내가 곧바로 알아 설한, 그대들이 잘 익힌 뒤 가까이하고 닦고 많이 익혀야 할, 그리하여 이 청정한 삶이 오래가고 길이 머물며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리와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그 법들이다.”
185
이어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한다.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이루어라. 여래는 오래지 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되신 분이자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handa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자, 이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한다. 형성작용들은 무너지는 법이니, 불방일로 성취하라.
Na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여래의 완전한 열반은 머지않다.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스승으로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
–
—
“내 나이 이미 무르익고 /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네.[불확실]
‘‘Paripakko vayo mayhaṃ, parittaṃ mama jīvitaṃ;
“내 나이는 무르익었고, 내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대들 두고 나는 가리니 / 스스로 의지처를 이루었네.
Pahāya vo gamissāmi, kataṃ me saraṇamattano.
그대들을 두고 나는 가리라, 나는 나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방일 않고 마음 챙기며 / 계를 잘 지니라, 비구들이여.
‘‘Appamattā satīmanto, susīlā hotha bhikkhavo;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을 챙기며 계를 잘 지녀라;
생각을 고요히 가다듬어 / 제 마음을 지켜 살피라.
Susamāhitasaṅkappā, sacittamanurakkhatha.
생각을 잘 가다듬고, 제 마음을 잘 지켜라.
이 법과 율에서 / 방일 없이 머무는 이는
‘‘Yo imasmiṃ dhammavinaye, appamatto vihassati;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이는;
나고 도는 윤회를 버리고 / 괴로움의 끝을 보리라.”
Pahāya jātisaṃsāraṃ,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태어남과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을 끝내리라.”
셋째 암송 분량이 끝났다.
Tatiyo bhāṇavāro.
세 번째 송출품.
코끼리의 돌아봄Nāgāpalokitaṃ
186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를 챙겨 탁발하러 웨살리로 들어가셨다. 웨살리에서 탁발을 마치고 식사를 한 뒤 돌아오셨다. 그러고는 코끼리가 돌아보듯 몸을 온전히 돌려 웨살리를 바라보시며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아난다야, 가자. 반다 마을로 가자.” “예,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반다 마을에 이르러 그곳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웨살리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paṭikkanto nāgāpalokitaṃ vesāliṃ apaloke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웨살리에서 탁발하시고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오시어, 코끼리가 돌아보듯 웨살리를 돌아보시고는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idaṃ pacchimakaṃ, ānanda, tathāgatassa vesāliyā dassanaṃ bhavissati.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Āyāmānanda, yena bhaṇḍa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반다가마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bhaṇḍagāmo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반다가마로 가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ti.
거기서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그대들도 이렇게 오랜 세월 달려 다니며 윤회해 왔다. 어떤 네 가지인가? 성스러운 계, 성스러운 삼매, 성스러운 통찰지, 성스러운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그대들도 이렇게 오랜 세월 달려 다니며 윤회해 왔다. 성스러운 삼매도 그랬다. 성스러운 통찰지도 그랬다. 성스러운 해탈도 그랬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성스러운 계를 깨달아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와 성스러운 통찰지와 성스러운 해탈도 깨달아 꿰뚫었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끊어졌고 존재로 이끄는 줄은 다했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catunnaṃ, bhikkhave, dhamm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와 그대들은 오랜 세월 치달리고 윤회했다.
Katamesaṃ catunnaṃ?
그 넷은 무엇인가?
Ariyassa, bhikkhave, sīl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ṃ 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와 그대들은 오랜 세월 치달리고 윤회했다.
Ariyassa, bhikkhave, samādhi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ṃ 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와 그대들은 오랜 세월 치달리고 윤회했다.
Ariyāya, bhikkhave, paññāy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ṃ 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와 그대들은 오랜 세월 치달리고 윤회했다.
Ariyāya, bhikkhave, vimuttiy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ṃ 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한 탓에, 이렇게 나와 그대들은 오랜 세월 치달리고 윤회했다.
Tayidaṃ, bhikkhave, ariyaṃ sīl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ariyo samādhi anubuddho paṭividdho, ariyā paññā anubuddhā paṭividdhā, ariyā vimutti anubuddhā paṭividdhā,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비구들이여, 이제 그 성스러운 계를 깨달아 꿰뚫었고, 성스러운 삼매를 깨달아 꿰뚫었고,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달아 꿰뚫었고, 성스러운 해탈을 깨달아 꿰뚫었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끊어졌고, 존재로 이끄는 것은 다했으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되신 분이자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스승으로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
“계와 삼매와 통찰지, / 위없는 해탈이라.
‘‘Sīlaṃ samādhi paññā ca, vimutti ca anuttarā;
“계와 삼매와 통찰지, 그리고 위없는 해탈;
이 법들을 깨달으셨네 / 명성 높은 고따마께서.
Anubuddhā ime dhammā, gotamena yasassinā.
명성 높은 고따마께서, 이 법들을 깨달으셨다.
이렇게 붓다께서 두루 알고 /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셨네.
‘‘Iti buddho abhiññāya, dhammamakkhāsi bhikkhunaṃ;
“이렇게 붓다께서는 곧바로 아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밝히셨다;
괴로움 끝낸 스승, 눈 갖추신 분 / 완전한 열반에 드셨네.”
Dukkhassantakaro satthā, cakkhumā parinibbuto’’ti.
괴로움을 끝내신 스승, 눈 있는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세존께서는 반다 마을에 머무시는 그때에도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문을 자주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며, 이것이 통찰지이다. 계로 길러진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삼매로 길러진 통찰지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통찰지로 길러진 마음은 번뇌들에서 온전히 벗어난다. 곧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Tatrāpi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서도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 머무시며 비구들에게 자주 이런 법다운 말씀을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무르익은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무르익은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무르익은 마음은 번뇌들에서 온전히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네 가지 큰 근거에 대한 말씀Catumahāpadesakathā
187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반다 마을에 마음 가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가자. 핫티 마을로, 암바 마을로, 잠부 마을로, 보가나가라로 가자.” “예,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보가나가라에 이르러, 그곳의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 거기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네 가지 큰 기준을 가르치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말하겠다.”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bhaṇḍagām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반다가마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hatthigāmo, yena ambagāmo, yena jambugāmo, yena bhoganagar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핫티가마로, 암바가마로, 잠부가마로, 보가나가라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bhoganagaraṃ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보가나가라로 가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bhoganagare viharati ānande cetiye.
거기서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cattārome, bhikkhave, mahāpades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비구들이여, 나는 이 네 가지 큰 근거를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188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벗이여, 저는 세존 앞에서 직접 이것을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을 기뻐해서도 안 되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기뻐하지도 비난하지도 말고, 그 구절과 표현들을 잘 받아 배워라. 그런 다음 경에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지도 않고 율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이 비구가 잘못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것을 버려라.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고 율에도 나타난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다. 이 비구가 잘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첫째 큰 기준으로 기억하라.
‘‘Idh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sammukhā metaṃ, āvuso,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벗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았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은 기뻐할 것도 아니고 배척할 것도 아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기뻐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익힌 뒤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지 않고 율에도 비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imassa ca bhikkhuno duggahita’nti.
이 비구가 잘못 익힌 것이다.’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비구들이여, 이렇게 이것을 버려라.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고 율에도 비친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다;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
이 비구가 잘 익힌 것이다.’
Idaṃ, bhikkhave, paṭham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비구들이여, 이것을 첫 번째 큰 근거로 지녀라.
또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처소에 장로와 우두머리를 갖춘 승가가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그 승가에게서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을 기뻐해서도 안 되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기뻐하지도 비난하지도 말고, 그 구절과 표현들을 잘 받아 배워라. 그런 다음 경에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지도 않고 율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그 승가가 잘못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것을 버려라.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고 율에도 나타난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다. 그 승가가 잘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둘째 큰 기준으로 기억하라.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
“또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amukasmiṃ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어느 거처에 승가가 머무는데, 장로들이 있고 지도자들이 있다.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나는 그 승가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았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은 기뻐할 것도 아니고 배척할 것도 아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기뻐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익힌 뒤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지 않고 율에도 비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tassa ca saṅghassa duggahita’nti.
그 승가가 잘못 익힌 것이다.’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비구들이여, 이렇게 이것을 버려라.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고 율에도 비친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다;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
그 승가가 잘 익힌 것이다.’
Idaṃ, bhikkhave, dutiy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비구들이여, 이것을 두 번째 큰 근거로 지녀라.
또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처소에 많이 배우고 전승을 이어받은 여러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법의 요목을 지닌 분들입니다. 저는 그 장로들에게서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을 기뻐해서도 안 되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앞에서와 같이 살펴서, 경에 들어맞지도 않고 율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그 장로들이 잘못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것을 버려라. 앞에서와 같이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고 율에도 나타난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다. 그 장로들이 잘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셋째 큰 기준으로 기억하라.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
“또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amukasmiṃ nāma āvāse sambahulā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어느 거처에 여러 장로 비구가 머무는데, 많이 배웠고, 전승을 이어받았고,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논모를 지닌 이들이다.
Tesaṃ me therānaṃ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나는 그 장로들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았다 —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pe…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은 기뻐할 것도 아니고 배척할 것도 아니다. 기뻐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익힌 뒤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지 않고 율에도 비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88.16 ~ PN:dn16/188.18에서 되살렸습니다.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tesañca therānaṃ duggahita’nti.
그 장로들이 잘못 익힌 것이다.’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비구들이여, 이렇게 이것을 버려라.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pe…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고 율에도 비친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188.22에서 되살렸습니다.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다;
tesañca therānaṃ suggahita’nti.
그 장로들이 잘 익힌 것이다.’
Idaṃ, bhikkhave, tatiy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비구들이여, 이것을 세 번째 큰 근거로 지녀라.
또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처소에 많이 배우고 전승을 이어받은 한 분의 장로 비구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분은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법의 요목을 지닌 분입니다. 저는 그 장로에게서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을 기뻐해서도 안 되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기뻐하지도 비난하지도 말고, 그 구절과 표현들을 잘 받아 배워라. 그런 다음 경에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지도 않고 율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그 장로가 잘못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것을 버려라.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에 들어맞고 율에도 나타난다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다. 그 장로가 잘 배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넷째 큰 기준으로 기억하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네 가지 큰 기준을 기억하라.”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
“또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amukasmiṃ nāma āvāse 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어느 거처에 한 장로 비구가 머무는데, 많이 배웠고, 전승을 이어받았고, 법을 지니고, 율을 지니고, 논모를 지닌 이다.
Tassa me ther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나는 그 장로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았다 —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율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은 기뻐할 것도 아니고 배척할 것도 아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i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기뻐하지도 배척하지도 않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익힌 뒤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지 않고 율에도 비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tassa ca therassa duggahita’nti.
그 장로가 잘못 익힌 것이다.’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비구들이여, 이렇게 이것을 버려라.
Tāni ca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
그것들을 경에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볼 때 경에도 들어맞고 율에도 비친다면, 여기서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분명 이것은 그분 세존의 말씀이다;
tassa ca therassa suggahita’nti.
그 장로가 잘 익힌 것이다.’
Idaṃ, bhikkhave, catutth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번째 큰 근거로 지녀라.
Ime kho, bhikkhave, cattāro mahāpadese dhāreyyāthā’’ti.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큰 근거를 지녀라.”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탑묘에 머무시는 그때에도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문을 자주 하셨다. “이것이 계이고, 이것이 삼매이며, 이것이 통찰지이다. 계로 길러진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삼매로 길러진 통찰지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통찰지로 길러진 마음은 번뇌들에서 온전히 벗어난다. 곧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Tatrapi sudaṃ bhagavā bhoganagare viharanto ānande cetiy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
거기서도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탑묘에 머무시며 비구들에게 자주 이런 법다운 말씀을 하셨다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이것이 계다, 이것이 삼매다, 이것이 통찰지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계로 무르익은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삼매로 무르익은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통찰지로 무르익은 마음은 번뇌들에서 온전히 해탈한다. 곧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다.”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이야기Kammāraputtacundavatthu
189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파바로 가자."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파바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bhoganagar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pāvā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빠와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pāvā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에 이르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pāvāyaṃ viharati cundassa kammāraputtassa ambavane.
거기 빠와에서 세존께서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파바에 도착하시어 내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쭌다는 세존을 찾아갔다.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Assosi kho cundo kammāraputto –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들었다 —
‘‘bhagavā kira pāvaṃ anuppatto, pāvāyaṃ viharati mayhaṃ ambavane’’ti.
“세존께서 빠와에 이르셨다고 한다. 빠와의 내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쪽에 앉은 쭌다에게 법을 이야기해 주셨다.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그러자 쭌다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내일 저의 공양을 비구 승가와 함께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말없이 받아들이셨다. 쭌다는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물러갔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cundaṃ kammāraputtaṃ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한쪽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세존께서는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ṃsit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의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북돋워지고, 격려받고, 기뻐하며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물러갔다.
쭌다는 그날 밤이 지나자 자기 집에서 맛있는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했다. 돼지고기 부드러운 요리도 넉넉히 장만했다. 그러고는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아래옷을 두르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 드셨다. 그리고 비구 승가와 함께 쭌다의 집으로 가셨다.[불확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nivesan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pahūtañca sūkaramaddavaṃ bhagavato kālaṃ ārocāpesi –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그 밤이 지나고, 자기 집에서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그리고 넉넉한 연한 돼지고기를 마련하게 한 뒤, 세존께 때를 알리게 했다[불확실]
불확실 —
‘‘kālo, bhante, niṭṭhitaṃ bhatta’’nti.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yena cundassa kammār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을 갖춰 입으시고 발우와 가사를 드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집으로 가셨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쭌다를 불러 말씀하셨다. "쭌다여, 네가 장만한 돼지고기 부드러운 요리는 내게 올려라. 그 밖에 장만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은 비구 승가에 올려라."[불확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cundaṃ kammāraputtaṃ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를 부르셨다 —
‘‘yaṃ te, cunda, sūkaramaddavaṃ paṭiyattaṃ, tena maṃ parivisa.
“쭌다여, 네가 마련한 연한 돼지고기로는 나를 대접하여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ṃ panaññ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attaṃ, tena bhikkhusaṅghaṃ parivisā’’ti.
그 밖에 마련한 씹을 것과 먹을 것으로는 비구 승가를 대접하여라.”
쭌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돼지고기 부드러운 요리는 세존께 올렸다. 그 밖의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은 비구 승가에 올렸다.[불확실]
‘‘Evaṃ, bhante’’t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yaṃ ahosi sūkaramaddavaṃ paṭiyattaṃ, tena bhagavantaṃ parivi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대답한 뒤, 마련되어 있던 연한 돼지고기로 세존을 대접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ṃ panaññ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attaṃ, tena bhikkhusaṅghaṃ parivisi.
그 밖에 마련한 씹을 것과 먹을 것으로는 비구 승가를 대접했다.
그러자 세존께서 쭌다를 불러 말씀하셨다. "쭌다여, 남은 돼지고기 부드러운 요리는 구덩이에 묻어라. 쭌다여, 이 세상에는 하늘과 마라와 범천이 있고, 사문과 바라문과 하늘 사람과 인간이 있다. 이 모든 중생 가운데 여래를 빼고는, 그것을 먹어서 제대로 소화시킬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한다."[불확실]
Atha kho bhagavā cundaṃ kammāraputt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를 부르셨다 —
‘‘yaṃ te, cunda, sūkaramaddavaṃ avasiṭṭhaṃ, taṃ sobbhe nikhaṇāhi.
“쭌다여, 네게 남은 연한 돼지고기는 그것을 구덩이에 묻어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āhaṃ taṃ, cunda,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assa taṃ paribhuttaṃ sammā pariṇāmaṃ gaccheyya aññatra tathāgatassā’’ti.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그것을 먹고 제대로 삭일 수 있는 이를 나는 여래 말고는 보지 못한다.”
쭌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한 뒤, 남은 요리를 구덩이에 묻었다. 그러고는 세존께 가서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법을 이야기해 주셨다.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해 주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불확실]
‘‘Evaṃ, bhante’’t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yaṃ ahosi sūkaramaddavaṃ avasiṭṭhaṃ, taṃ sobbhe nikhaṇi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대답한 뒤, 남아 있던 연한 돼지고기를 구덩이에 묻고 세존께 다가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cundaṃ kammāraputtaṃ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한쪽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세존께서는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가셨다.
190
쭌다의 공양을 드신 세존께 심한 병이 났다. 피가 섞인 설사가 나고, 죽을 만큼 모진 고통이 이어졌다. 그래도 세존께서는 마음을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괴로워하지 않고 그 고통을 견디셨다. 그러다가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쿠시나라로 가자."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Atha kho bhagavato cundassa kammāraputtassa bhattaṃ bhuttāvissa kharo ābādho uppajji, lohitapakkhandikā pa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공양을 드신 세존께 모진 병이 생겨, 피 섞인 설사와 함께 죽음에 이를 만큼 심한 느낌이 일어났다.
Tā sudaṃ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세존께서는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시달리지 않고 그 느낌을 견디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āyāmānanda, yena kusinārā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꾸시나라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대장장이 쭌다의 공양을 드시고서 / 나는 이렇게 들었다네 —
Cundassa bhattaṃ bhuñjitvā, kammārassāti me sutaṃ;
대장장이 쭌다의 공양을 드시고 나서라고, 나는 이렇게 들었네;
슬기로운 그분께 병이 닥쳐왔네 / 죽음에 닿을 만큼 모질고 거센 병이.
Ābādhaṃ samphusī dhīro, pabāḷhaṃ māraṇantikaṃ.
굳건하신 분께서 병에 닿으셨네, 죽음에 이를 만큼 심한 병에.
수까라맛다와를 드시고 나서[불확실]
Bhuttassa ca sūkaramaddavena,
연한 돼지고기를 드신 그분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스승께 모진 병이 일어났다네.
Byādhippabāḷho udapādi satthuno;
스승께 모진 병이 일어났네;
설사를 하시면서 세존께서 이르셨네,
Virecamāno bhagavā avoca,
설사를 하시며 세존께서 말씀하셨네,
“나는 이제 꾸시나라 도성으로 가리라.”
Gacchāmahaṃ kusināraṃ nagaranti.
“나는 꾸시나라 성으로 가리라”고.
마실 물 길어 오기Pānīyāharaṇaṃ
191
세존께서는 길에서 벗어나 어느 나무 밑으로 가셨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를 위해 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아다오.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다. 앉고 싶구나."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고는 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았다. 세존께서 그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다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를 위해 마실 물을 좀 가져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다. 마시고 싶구나."
Atha kho bhagavā maggā okkamma yena aññataraṃ rukkhamūl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는 길에서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iṅgha me tvaṃ, ānanda,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sīdissāmī’’ti.
“아난다여, 부디 대의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아 다오. 아난다여, 나는 지쳤다. 앉아야겠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대의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았다.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세존께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iṅgha me tvaṃ, ānanda, pānīyaṃ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아난다여, 부디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마르다. 물을 마셔야겠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난다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방금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지나갔습니다. 바퀴에 짓이겨진 물은 얕아지고, 휘저어져 흐리게 흐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멀지 않은 곳에 까꾸타 강이 있습니다. 맑고 달고 시원하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물가도 들어가기 좋은 아름다운 강입니다. 세존께서는 그곳에서 물도 드시고 몸도 식히실 수 있을 것입니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dān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taṃ cakkacchinnaṃ udakaṃ parittaṃ luḷitaṃ āvilaṃ sandati.
“세존이시여, 방금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바퀴에 갈린 그 물은 얕고 흐트러지고 탁하게 흐릅니다.
Ayaṃ, bhante, kakudhā nadī avidūre acchodakā sātodakā sītodakā setodakā suppatitthā ramaṇīyā.
세존이시여, 멀지 않은 곳에 이 까꾸타 강이 있습니다. 물이 맑고, 물맛이 좋고, 물이 차갑고, 물이 깨끗하며, 강기슭이 좋고, 아름답습니다.
Ettha bhagavā pānīyañca pivissati, gattāni ca sītī karissatī’’ti.
거기서 세존께서 물도 드시고 몸도 시원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존께서 두 번째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를 위해 마실 물을 좀 가져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다. 마시고 싶구나." 아난다 존자는 두 번째로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방금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지나갔습니다. 바퀴에 짓이겨진 물은 얕아지고, 휘저어져 흐리게 흐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멀지 않은 곳에 까꾸타 강이 있습니다. 맑고 달고 시원하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물가도 들어가기 좋은 아름다운 강입니다. 세존께서는 그곳에서 물도 드시고 몸도 식히실 수 있을 것입니다."
Du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두 번째로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iṅgha me tvaṃ, ānanda, pānīyaṃ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아난다여, 부디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마르다. 물을 마셔야겠다.”
Dutiy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dān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taṃ cakkacchinnaṃ udakaṃ parittaṃ luḷitaṃ āvilaṃ sandati.
“세존이시여, 방금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바퀴에 갈린 그 물은 얕고 흐트러지고 탁하게 흐릅니다.
Ayaṃ, bhante, kakudhā nadī avidūre acchodakā sātodakā sītodakā setodakā suppatitthā ramaṇīyā.
세존이시여, 멀지 않은 곳에 이 까꾸타 강이 있습니다. 물이 맑고, 물맛이 좋고, 물이 차갑고, 물이 깨끗하며, 강기슭이 좋고, 아름답습니다.
Ettha bhagavā pānīyañca pivissati, gattāni ca sītīkarissatī’’ti.
거기서 세존께서 물도 드시고 몸도 시원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존께서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를 위해 마실 물을 좀 가져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다. 마시고 싶구나."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고는 발우를 들고 그 개울로 갔다. 그 개울은 바퀴에 짓이겨져 얕고 흐리게 흐르던 물이었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게, 흐려지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Ta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iṅgha me tvaṃ, ānanda, pānīyaṃ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아난다여, 부디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다오. 아난다여, 나는 목마르다. 물을 마셔야겠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pattaṃ gahetvā yena sā nadikā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발우를 들고 그 시내로 갔다.
Atha kho sā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āyasmante ānande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ittha.
그러자 바퀴에 갈려 얕고 흐트러지고 탁하게 흐르던 그 시내가, 아난다 존자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고 흐리지 않게 흘렀다.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여래의 신통력과 위력은 대단하다. 바퀴에 짓이겨져 얕고 흐리게 흐르던 이 개울이, 내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게, 흐려지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여래의 크신 신통력과 크신 위력이여.
Ayañhi sā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mayi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atī’’ti.
바퀴에 갈려 얕고 흐트러지고 탁하게 흐르던 이 시내가, 내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고 흐리지 않게 흐르다니.”
아난다 존자는 발우에 마실 물을 떠서 세존께 갔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신통력과 위력은 대단합니다. 세존이시여, 바퀴에 짓이겨져 얕고 흐리게 흐르던 그 개울이, 제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게, 흐려지지 않은 채 흘렀습니다. 세존이시여, 물을 드십시오. 행복한 길을 가신 분이시여, 물을 드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물을 드셨다.
Pattena pānīyaṃ ādāy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발우로 마실 물을 떠서 세존께 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여래의 크신 신통력과 크신 위력이여.
Idāni sā bhante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mayi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ittha.
세존이시여, 방금 바퀴에 갈려 얕고 흐트러지고 탁하게 흐르던 그 시내가, 제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고 흐리지 않게 흘렀습니다.
Pivatu bhagavā pānīyaṃ pivatu sugato pānīya’’nti.
세존이시여, 물을 드십시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물을 드십시오.”
Atha kho bhagavā pānīyaṃ apāyi.
그때 세존께서는 물을 드셨다.
말라의 아들 뿍꾸사 이야기Pukkusamallaputtavatthu
192
그때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인 말라족의 뿍꾸사가 쿠시나라에서 파바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뿍꾸사는 세존께서 어느 나무 밑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그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말씀드렸다.[불확실]
Tena rokho pana samayena pukkuso mallaputto āḷārassa kālāmassa sāvako kusinārāya pāvaṃ addhānamaggappaṭippanno hoti.
그때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인 말라의 아들 뿍꾸사가 꾸시나라에서 빠와로 먼 길을 가고 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ddasā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ṃ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innaṃ.
말라의 아들 뿍꾸사는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 계신 세존을 보았다.
Dis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보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말라의 아들 뿍꾸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출가한 분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으로 지내시는군요. 세존이시여, 예전에 알라라 깔라마께서 길을 가시다가 길에서 벗어나 멀지 않은 어느 나무 밑에 앉으셨습니다. 낮 동안 쉬려고 앉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알라라 깔라마의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수레 행렬의 뒤를 바싹 따라오다가 알라라 깔라마께 다가갔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santena vata, bhante,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출가한 이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에 머뭅니다.
Bhūtapubbaṃ, bhante, āḷāro kālāmo addhānamaggappaṭippanno maggā okkamma avidūre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divāvihāraṃ nisīdi.
세존이시여, 예전에 알라라 깔라마가 먼 길을 가다가 길에서 벗어나, 멀지 않은 곳의 어떤 나무 아래에 낮 동안 머물려고 앉았습니다.
Atha kho,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āḷāraṃ kālāmaṃ nissāya nissāya atikkamiṃsu.
그때, 세존이시여, 수레 오백 대가량이 알라라 깔라마의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갔습니다.
Atha kho, bhante, aññataro puriso tassa sakaṭasatthassa piṭṭhito piṭṭhito āgacchant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그 수레 행렬의 바로 뒤를 따라오다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존자님,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지나간 것을 보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소.' '그러면 존자님,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소리도 듣지 못했소.' '그러면 존자님,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자고 있지 않았소.' '그러면 존자님, 의식이 있으셨습니까?' '그렇소, 벗이여.'
‘ap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addasā’ti?
‘어르신이시여,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addasa’nti.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다.’
‘Kiṃ pana, bhante, saddaṃ assosī’ti?
‘그러면 어르신이시여,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saddaṃ assosi’nti.
‘벗이여,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Kiṃ pana, bhante, sutto ahosī’ti?
‘그러면 어르신이시여,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sutto ahosi’nti.
‘벗이여,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
‘Kiṃ pana, bhante, saññī ahosī’ti?
‘그러면 어르신이시여, 인식이 있으셨습니까?’
‘Evamāvuso’ti.
‘그렇다, 벗이여.’
'존자님께서는 의식이 있고 깨어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존자님의 겉옷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는데도요?' '그렇소, 벗이여.'
‘So tvaṃ, bhante,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addasa, na pana saddaṃ assosi;
‘어르신이시여, 그러면 어르신께서는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apisu te, bhante, saṅghāṭi rajena okiṇṇā’ti?
게다가 어르신이시여, 어르신의 대의가 먼지로 뒤덮여 있지 않습니까?’
‘Evamāvuso’ti.
‘그렇다, 벗이여.’
세존이시여, 그러자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출가한 분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으로 지내시는구나. 의식이 있고 깨어 있는데도,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시다니!' 그 사람은 알라라 깔라마께 깊은 믿음을 드러내고 떠나갔습니다."
Atha kho, bhante, tassa purisassa etadahosi –
그때, 세존이시여,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santena vata bho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출가한 이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에 머뭅니다.
Yatra hi nāma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dakkhati, na pana saddaṃ sossatī’ti!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Āḷāre kālāme uḷāraṃ pasādaṃ pavedetvā pakkāmī’’ti.
그러고는 알라라 깔라마에 대해 크나큰 믿음을 드러내고 물러갔습니다.”
193
"뿍꾸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운가? 의식이 있고 깨어 있는데 오백 대쯤 되는 수레가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간다. 그런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쪽인가? 아니면 의식이 있고 깨어 있는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쪽인가?" "세존이시여, 수레가 몇 대이든 대수가 아닙니다. 오백 대든 육백 대든 칠백 대든 팔백 대든 구백 대든, 천 대든 십만 대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런데도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야말로 더 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렵습니다."
‘‘Taṃ kiṃ maññasi, pukkusa, katamaṃ nu kho dukkarataraṃ vā durabhisambhavataraṃ vā –
“뿍꾸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하기 어렵고 더 이루기 어려운가 —
yo vā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ṃ suṇeyya;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을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인가;
yo vā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ṃ suṇeyyā’’ti?
아니면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인가?”
‘‘Kiñhi, bhante, karissanti pañca vā sakaṭasatāni cha vā sakaṭasatāni satta vā sakaṭasatāni aṭṭha vā sakaṭasatāni nava vā sakaṭasatāni, sakaṭasahassaṃ vā sakaṭasatasahassaṃ vā.
“세존이시여, 수레 오백 대나 육백 대나 칠백 대나 팔백 대나 구백 대나, 수레 천 대나 수레 십만 대인들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Atha kho etadeva dukkarataraṃ ceva durabhisambhavatarañca yo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ṃ suṇeyyā’’ti.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 더 하기 어렵고 더 이루기 어렵습니다.”
"뿍꾸사여, 한번은 내가 아뚜마의 겨 창고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졌다. 겨 창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농부 형제 두 사람과 소 네 마리가 죽었다. 그러자 아뚜마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이 죽은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때 나는 겨 창고에서 나와, 창고 문 앞 열린 곳에서 거닐고 있었다.
‘‘Ekamidāhaṃ, pukkusa, samayaṃ ātumāyaṃ viharāmi bhusāgāre.
“뿍꾸사여, 한때 나는 아뚜마의 곡식 창고에 머물렀다.
Tena kho pana samayena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avidūre bhusāgārassa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그때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쳐, 곡식 창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농부 형제 둘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다.
Atha kho, pukkusa, ātumāya mahājanakāyo nikkhamitvā yena te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tenupasaṅkami.
그때, 뿍꾸사여, 아뚜마에서 큰 사람 무리가 나와, 죽은 그 농부 형제 둘과 황소 네 마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Tena kho panāhaṃ, pukkusa, samayena bhusāgārā nikkhamitvā bhusāgāradvāre abbhokāse caṅkamāmi.
그런데 뿍꾸사여, 그때 나는 곡식 창고에서 나와 창고 문 앞 트인 곳에서 거닐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내게 인사하고 한쪽에 섰다. 뿍꾸사여, 한쪽에 선 그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벗이여, 이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모여 있는가?'
Atha kho, pukkusa, aññataro puriso tamhā mahājanakāyā yenāhaṃ tenupasaṅkami;
그때, 뿍꾸사여, 그 큰 사람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와서 내게 인사드리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aṃ kho ahaṃ, pukkusa, taṃ purisaṃ etadavocaṃ –
뿍꾸사여, 한쪽에 선 그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
‘kiṃ nu kho eso, āvuso, mahājanakāyo sannipatito’ti?
‘벗이여, 도대체 저 큰 사람 무리는 무슨 일로 모인 것인가?’
'세존이시여, 방금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농부 형제 두 사람과 소 네 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당신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바로 여기에 있었소.'
‘Idāni, bhante,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세존이시여, 방금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쳐, 농부 형제 둘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습니다.
Ettheso mahājanakāyo sannipatito.
그래서 저 큰 사람 무리가 여기 모인 것입니다.
Tvaṃ pana, bhante, kva ahosī’ti?
그런데 세존이시여, 당신께서는 어디 계셨습니까?’
‘Idheva kho ahaṃ, āvuso, ahosi’nti.
‘벗이여, 나는 바로 여기 있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소.' '그러면 세존이시여,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소리도 듣지 못했소.' '그러면 세존이시여,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자고 있지 않았소.' '그러면 세존이시여, 의식이 있으셨습니까?' '그렇소, 벗이여.'
‘Kiṃ pana, bhante, addasā’ti?
‘그러면 세존이시여, 보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addasa’nti.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다.’
‘Kiṃ pana, bhante, saddaṃ assosī’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saddaṃ assosi’nti.
‘벗이여,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Kiṃ pana, bhante, sutto ahosī’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Na kho ahaṃ, āvuso, sutto ahosi’nti.
‘벗이여,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
‘Kiṃ pana, bhante, saññī ahosī’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인식이 있으셨습니까?’
‘Evamāvuso’ti.
‘그렇다, 벗이여.’
'세존께서는 의식이 있고 깨어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지는데, 보지도 듣지도 못하셨단 말입니까?' '그렇소, 벗이여.'" "뿍꾸사여, 그러자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출가한 분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으로 지내시는구나. 의식이 있고 깨어 있는데도,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시다니!' 그는 내게 깊은 믿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게 인사한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하고 떠나갔다."
‘So tvaṃ, bhante,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addasa, na pana saddaṃ assosī’ti?
‘세존이시여, 그러면 당신께서는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Evamāvuso’’ti?
‘그렇다, 벗이여.’
‘‘Atha kho, pukkusa, purisassa etadahosi –
그때, 뿍꾸사여,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santena vata bho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출가한 이들은 참으로 고요한 머묾에 머뭅니다.
Yatra hi nāma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dakkhati, na pana saddaṃ sossatī’ti.
인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우르릉 울리고 번갯줄기가 뻗치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Mayi uḷāraṃ pasādaṃ pavedetvā m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ī’’ti.
그러고는 내게 크나큰 믿음을 드러내고, 내게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물러갔다.”
이 말씀을 듣고 말라족의 뿍꾸사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졌던 믿음을 큰 바람에 날려 보내겠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셨습니다. 또 '눈 있는 사람은 보리라' 하고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어 올리듯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하고,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Evaṃ vutte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말라의 아들 뿍꾸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esāhaṃ, bhante, yo me āḷāre kālāme pasādo taṃ mahāvāte vā ophuṇāmi sīghasotāya vā nadiyā pavāhemi.
“세존이시여, 저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두었던 그 믿음을 큰 바람에 까부르거나 물살 빠른 강에 흘려보내겠습니다.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라’며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똑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이시여,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194
그러고 나서 말라족의 뿍꾸사는 어떤 사람을 불렀다. "여보게, 금빛으로 빛나는 한 벌의 옷을 가져오게나. 내가 입으려고 갖춰 둔 것이네." 그 사람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인님" 하고 대답하고는 금빛 옷 한 벌을 가져왔다. 뿍꾸사는 그 옷을 세존께 올렸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금빛으로 빛나는 한 벌의 옷입니다. 세존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십시오."
Atha kho pukkuso mallaputto aññataraṃ purisaṃ āmantesi –
그때 말라의 아들 뿍꾸사는 어떤 사람을 불렀다 —
‘‘iṅgha me tvaṃ, bhaṇe,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āharā’’ti.
“여보게, 부디 내게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을 가져오게.”
‘‘Evaṃ, bhante’’ti kho so puriso pukkusassa mallaputtassa paṭissutvā taṃ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āhari.
“예, 어르신이시여” 하고 그 사람은 말라의 아들 뿍꾸사에게 대답한 뒤, 그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을 가져왔다.
Atha kho pukkuso mallaputto taṃ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bhagavato upanāmesi –
그때 말라의 아들 뿍꾸사는 그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을 세존께 올렸다 —
‘‘idaṃ, bhante,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taṃ m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ṃ upādāyā’’ti.
“세존이시여, 이것은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입니다. 세존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이것을 받아 주십시오.”
"그렇다면 뿍꾸사여, 한 장은 내게 입히고 한 장은 아난다에게 입혀라." 뿍꾸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장은 세존께, 한 장은 아난다 존자에게 입혀 드렸다. 세존께서는 뿍꾸사에게 법을 이야기해 주셨다.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뿍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린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하고 떠나갔다.
‘‘Tena hi, pukkusa, ekena maṃ acchādehi, ekena ānanda’’nti.
“그렇다면 뿍꾸사여, 하나로는 나를 덮고, 하나로는 아난다를 덮어라.”
‘‘Evaṃ, bhante’’ti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ekena bhagavantaṃ acchādeti, ekena āyasmantaṃ ānanda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말라의 아들 뿍꾸사는 세존께 대답한 뒤, 하나로는 세존을 덮어 드리고 하나로는 아난다 존자를 덮어 드렸다.
Atha kho bhagavā pukkusaṃ mallaputtaṃ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그때 세존께서는 말라의 아들 뿍꾸사에게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ṃsit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그때 말라의 아들 뿍꾸사는 세존의 법다운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북돋워지고, 격려받고,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물러갔다.
195
뿍꾸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난다 존자는 그 금빛 옷 한 벌을 세존의 몸에 대어 드렸다. 그런데 세존의 몸에 닿은 옷이 빛을 잃은 듯 보였다.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살갗 빛깔은 어쩌면 이토록 깨끗하고 맑습니까. 세존이시여, 금빛으로 빛나던 이 옷이 세존의 몸에 닿자 빛을 잃은 듯 보입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acirapakkante pukkuse mallaputte taṃ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bhagavato kāyaṃ upanāmesi.
그때 아난다 존자는 말라의 아들 뿍꾸사가 물러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을 세존의 몸에 대어 올렸다.
Taṃ bhagavato kāyaṃ upanāmitaṃ hataccikaṃ viya khāyati.
세존의 몸에 대어 올린 그것은 빛을 잃은 불꽃처럼 보였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yāva parisuddho, bhante, tathāgatassa chavivaṇṇo pariyodāto.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살빛이 이토록 맑고 환합니다.
Idaṃ, bhante,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bhagavato kāyaṃ upanāmitaṃ hataccikaṃ viya khāyatī’’ti.
세존이시여, 이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 입을 수 있게 마름한 것을 세존의 몸에 대어 올리니 빛을 잃은 불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 아난다여. 정말 그렇다, 아난다여. 두 때에 여래의 몸은 유난히 깨끗해지고 살갗 빛깔이 맑아진다. 어떤 두 때인가?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밤, 그리고 남음 없는 열반의 경지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밤이다. 아난다여, 이 두 때에 여래의 몸은 유난히 깨끗해지고 살갗 빛깔이 맑아진다.
‘‘Evametaṃ, ānanda, evametaṃ, ānanda dvīsu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kāyo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그러하다, 아난다여. 그러하다, 아난다여. 두 때에 여래의 몸은 유난히 맑고 살빛이 환하다.
Katamesu dvīsu?
어떤 두 때인가?
Yañca, ānanda, rattiṃ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ati, yañca rattiṃ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아난다여, 여래가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완전히 깨닫는 밤과, 취착의 남음이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밤이다.
Imesu kho, ānanda, dvīsu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kāyo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아난다여, 이 두 때에 여래의 몸은 유난히 맑고 살빛이 환하다.
아난다여, 오늘 밤 마지막 시각에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장소는 쿠시나라의 우빠왓따나, 말라족의 살라 숲이다. 쌍을 이룬 살라나무 사이에서다. 아난다여, 까꾸타 강으로 가자."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Ajja kho, panānanda, rattiyā pacchime yāme kusinārāyaṃ upavattane mallānaṃ sālavane antarena yamakasālān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그런데 아난다여, 오늘 밤 마지막 경에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에서, 쌍둥이 살라나무 사이에서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Āyāmānanda,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ssāmā’’ti.
아난다여, 가자. 까꾸타 강으로 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금빛 윤기 흐르는 옷 한 벌을 / 뿍꾸사가 받들어 올렸다네.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pukkuso abhihārayi;
금빛 나는 고운 옷 한 벌을 뿍꾸사가 가져다 올렸네;
그 옷을 몸에 두르신 스승께서는 / 황금빛으로 환히 빛나셨네.
Tena acchādito satthā, hemavaṇṇo asobhathāti.
그것을 걸치신 스승께서 황금빛으로 빛나셨네.
196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까꾸타 강으로 가셨다. 강에 들어가 목욕하고 물도 마신 다음, 물에서 올라와 망고 숲으로 가셨다. 망고 숲에 이르러 쭌다까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쭌다까여, 나를 위해 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아다오. 쭌다까여, 나는 피곤하다. 눕고 싶구나." 쭌다까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고는 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았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까꾸타 강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kakudhaṃ nadiṃ ajjhogāhetvā nhatvā ca pivitvā ca paccuttaritvā yena ambavanaṃ tenupasaṅkami.
다가가서 까꾸타 강에 들어가 목욕하시고 물을 드시고 물에서 오르신 뒤, 망고 숲으로 가셨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cundakaṃ āmantesi –
다가가서 쭌다까 존자를 부르셨다 —
‘‘iṅgha me tvaṃ, cundaka,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hi, kilantosmi, cundaka, nipajjissāmī’’ti.
“쭌다까여, 부디 대의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아 다오. 쭌다까여, 나는 지쳤다. 누워야겠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cundak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쭌다까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대의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았다.
세존께서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사자처럼 누우셨다. 발 위에 발을 포개고, 마음을 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일어날 것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쭌다까 존자는 그곳 세존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karitvā.
그때 세존께서는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시어, 발 위에 발을 포개시고,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일어날 생각을 마음에 두셨다.
Āyasmā pana cundako tattheva bhagavato purato nisīdi.
쭌다까 존자는 바로 거기 세존 앞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까꾸다 강에 이르시니
Gantvāna buddho nadikaṃ kakudhaṃ,
붓다께서 까꾸타 시내에 이르시니,
맑은 물, 단 물, 티 없이 깨끗한 물이었네.
Acchodakaṃ sātudakaṃ vippasannaṃ;
물이 맑고 물맛이 좋고 투명한 곳;
스승께서 물에 드셨네, 지친 기색도 없이 —
Ogāhi satthā akilantarūpo,
스승께서 지친 기색 없이 들어가셨네,
세상에 견줄 이 없는 여래께서.
Tathāgato appaṭimo ca loke.
세상에 견줄 이 없는 여래께서.
몸 씻고 물 마시고 스승께서 물에서 나오시니
Nhatvā ca pivitvā cudatāri satthā,
목욕하시고 물 드시고 스승께서 물에서 오르시니,
비구 대중 한가운데 받들려 가시었네.
Purakkhato bhikkhugaṇassa majjhe;
비구 무리 한가운데 앞세워져;
여기 이 법을 말씀하고 펴시는 세존,
Vattā pavattā bhagavā idha dhamme,
여기 법을 말씀하시고 굴려 오신 세존,
큰 선인께서 망고 숲에 이르셨네.
Upāgami ambavanaṃ mahesi.
큰 선인께서 망고 숲에 이르셨네.
쭌다까라는 비구를 부르시어
Āmantayi cundakaṃ nāma bhikkhuṃ,
쭌다까라는 이름의 비구를 부르시어,
“네 겹으로 깔아 다오, 내가 누우리라.”
Catugguṇaṃ santhara me nipajjaṃ;
“네 겹으로 깔아 다오, 내가 누우려 한다”;
스스로를 닦으신 분의 분부 받은 쭌다는
So codito bhāvitattena cundo,
닦으신 분의 이르심을 받은 그 쭌다는,
네 겹으로 얼른 자리를 깔았다네.
Catugguṇaṃ santhari khippameva.
네 겹으로 곧바로 깔아 드렸네.
스승께서 누우셨네, 지친 기색도 없이.
Nipajji satthā akilantarūpo,
스승께서 지친 기색 없이 누우셨고,
쭌다도 그곳, 그분 앞에 앉았다네.
Cundopi tattha pamukhe nisīdīti.
쭌다도 거기 앞자리에 앉았네.
197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혹 누군가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뉘우침이 일게 할지도 모른다. '쭌다여, 그대는 이득이 없었고 복을 놓쳤구려. 여래께서 그대가 올린 마지막 탁발 음식을 드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니.' 하고 말이다. 아난다여, 쭌다의 그런 뉘우침은 이렇게 풀어 주어야 한다. '쭌다여, 그대는 이득을 얻었고 복을 잘 받았소. 여래께서 그대가 올린 마지막 탁발 음식을 드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니.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siyā kho, panānanda, cundassa kammāraputtassa koci vippaṭisāraṃ uppādeyya –
“그런데 아난다여, 누군가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이런 뉘우침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
‘tassa te, āvuso cunda, alābhā tassa te dulladdhaṃ, yassa te tathāgato pacchimaṃ piṇḍapātaṃ paribhuñjitvā parinibbuto’ti.
‘벗 쭌다여, 그대에게는 손해다, 그대에게는 불행이다. 여래께서 그대의 마지막 탁발 음식을 드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니.’
Cundassa, ānanda, kammāraputtassa evaṃ vippaṭisāro paṭivinetabbo –
아난다여,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뉘우침은 이렇게 없애 주어야 한다 —
‘tassa te, āvuso cunda, lābhā tassa te suladdhaṃ, yassa te tathāgato pacchimaṃ piṇḍapātaṃ paribhuñjitvā parinibbuto.
‘벗 쭌다여, 그대에게는 이득이다, 그대에게는 큰 행운이다. 여래께서 그대의 마지막 탁발 음식을 드시고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니.
쭌다여, 나는 이 말씀을 세존께 직접 듣고 직접 받아 지녔소. 두 가지 탁발 음식은 그 결실이 같고 과보가 같소. 다른 어떤 탁발 음식보다도 훨씬 큰 결실과 훨씬 큰 이익이 있다고 하셨소. 어떤 두 가지인가? 하나는 그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탁발 음식이오. 다른 하나는 그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남음 없는 열반의 경지로 완전한 열반에 드신 탁발 음식이오. 이 두 가지 탁발 음식은 결실이 같고 과보가 같소. 다른 어떤 탁발 음식보다도 훨씬 큰 결실과 훨씬 큰 이익이 있소.[불확실]
Sammukhā metaṃ, āvuso cunda,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벗 쭌다여, 나는 이것을 세존 앞에서 직접 들었고 직접 받았다 —
dve me piṇḍapātā samasamaphalā samavipākā, ativiya aññehi piṇḍapātehi mahapphalatarā ca mahānisaṃsatarā ca.
나의 이 두 가지 탁발 음식은 그 과보가 똑같고 그 결실이 똑같으며, 다른 탁발 음식들보다 훨씬 더 큰 과보가 있고 훨씬 더 큰 이익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atame dve?
어떤 두 가지인가?
Yañca piṇḍapātaṃ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ati, yañca piṇḍapātaṃ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여래가 그것을 먹고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완전히 깨닫는 탁발 음식과, 여래가 그것을 먹고 취착의 남음이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탁발 음식이다.
Ime dve piṇḍapātā samasamaphalā samavipākā, ativiya aññehi piṇḍapātehi mahapphalatarā ca mahānisaṃsatarā ca.
이 두 가지 탁발 음식은 그 과보가 똑같고 그 결실이 똑같으며, 다른 탁발 음식들보다 훨씬 더 큰 과보가 있고 훨씬 더 큰 이익이 있다.
쭌다 존자는 수명을 늘리는 업을 쌓았소. 아름다운 모습과 행복을 가져오는 업도 쌓았소. 명성과 하늘나라와 주도권을 가져오는 업도 쌓았소.' 아난다여, 쭌다의 뉘우침은 이렇게 풀어 주어야 한다."
Āyu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vaṇṇ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sukh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yas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sagg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ādhipateyy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nti.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수명으로 이끄는 업을 쌓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업을 쌓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즐거움으로 이끄는 업을 쌓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명성으로 이끄는 업을 쌓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천상으로 이끄는 업을 쌓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 존자는 권세로 이끄는 업을 쌓았다.’
Cundassa, ānanda, kammāraputtassa evaṃ vippaṭisāro paṭivinetabbo’’ti.
아난다여,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뉘우침은 이렇게 없애 주어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아시고, 그 순간 이 감흥어를 읊으셨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아시고 그 자리에서 이런 감흥어를 읊으셨다 —
“베푸는 이에게는 공덕이 자라나고
‘‘Dadato puññaṃ pavaḍḍhati,
“베푸는 이에게 공덕이 자라고,
스스로 다스리는 이에겐 원한이 쌓이지 않네.
Saṃyamato veraṃ na cīyati;
절제하는 이에게 원한이 쌓이지 않는다;
선한 이는 악한 것을 버리나니
Kusalo ca jahāti pāpakaṃ,
유익한 이는 나쁜 것을 버리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하여 온전히 꺼진다네.”
Rāgadosamohakkhayā sanibbuto’’ti.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하여 스스로 고요해진다.”
넷째 송출품이 끝났다.
Catuttho bhāṇavāro.
네 번째 송출품.
쌍쌍의 살라나무Yamakasālā
198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가자. 히란냐와띠강 건너편으로 가겠다. 꾸시나라 말라족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이다."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āyāmānanda,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가자, 아난다여. 히란냐와띠 강 저편 기슭이 있는 곳으로, 꾸시나라에 있는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히란냐와띠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꾸시나라 말라족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이었다. 그곳에 이르러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쌍을 이룬 살라나무 사이에 침상을 하나 펴 다오. 머리가 북쪽으로 가게 해라. 아난다야, 나는 피곤하다. 누워야겠다."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쌍을 이룬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가게 침상을 펴 드렸다. 세존께서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사자처럼 누우셨다. 발 위에 발을 포개고,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신 채였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히란냐와띠 강 저편 기슭이 있는 곳으로, 꾸시나라에 있는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iṅgha me tvaṃ, ānanda,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pajjissāmī’’ti.
“자,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쌍쌍의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는 침상을 펴 다오. 아난다여, 나는 지쳤다. 누우려 한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하고서, 쌍쌍의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는 침상을 폈다.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그때 세존께서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사자처럼 누우시어, 발 위에 발을 포개시고, 마음챙기시고 또렷이 알아차리셨다.
그때 쌍을 이룬 살라나무들은 철이 아닌데도 가지마다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 꽃들이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졌다. 하늘의 만다라와 꽃도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꽃들 역시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졌다. 하늘의 전단향 가루도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가루 역시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졌다. 하늘의 악기들이 여래께 공양하려고 허공에서 울렸다. 하늘의 노래도 여래께 공양하려고 허공에서 이어졌다.
Tena kho pana samayena yamakasālā sabbaphāliphullā honti akālapupphehi.
그때 쌍쌍의 살라나무가 때 아닌 꽃들로 온통 활짝 피어 있었다.
Te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었다.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만다라와 꽃들도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고,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었다.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전단향 가루들도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고,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었다.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악기들도 여래를 공양하려고 공중에서 울렸다.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노래들도 여래를 공양하려고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199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야, 쌍을 이룬 살라나무들이 철이 아닌데도 가지마다 꽃이 가득 피었구나. 그 꽃들이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진다. 하늘의 만다라와 꽃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 꽃들 역시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진다. 하늘의 전단향 가루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 가루 역시 여래께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 위로 떨어져 흩어지고 쌓이고 뿌려진다. 하늘의 악기들이 여래께 공양하려고 허공에서 울린다. 하늘의 노래도 여래께 공양하려고 허공에서 이어진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sabbaphāliphullā kho, ānanda, yamakasālā akālapupphehi.
“아난다여, 쌍쌍의 살라나무가 때 아닌 꽃들로 온통 활짝 피었다.
Te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는다.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만다라와 꽃들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고,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는다.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전단향 가루들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고, 그것들은 여래를 공양하려고 여래의 몸에 뿌리고 흩뿌리고 온통 덮는다.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악기들도 여래를 공양하려고 공중에서 울린다.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하늘의 노래들도 여래를 공양하려고 공중에서 울려 퍼진다.
그러나 아난다야, 이 정도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높이고 공양하고 예우하는 것은 아니다. 아난다야, 비구든 비구니든 재가신자든 여성 재가신자든, 법에 맞게 법을 실천하고 바르게 행하며 법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다. 그가 가장 훌륭한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높이고 공양하고 예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야, '우리는 법에 맞게 법을 실천하고 바르게 행하며 법을 따라 살아가겠다.' 하고 마음먹어라. 아난다야, 너희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Na kho, ānanda, ettāvatā tathāgato sakkato vā hoti garukato vā mānito vā pūjito vā apacito vā.
아난다여, 여래는 이만큼으로 존경받거나 존중받거나 받들어지거나 공양받거나 예우받는 것이 아니다.
Yo kho, ānanda, bhikkhu vā bhikkhunī vā upāsako vā upāsikā vā dhammānudhammappaṭipanno viharati sāmīcippaṭipanno anudhammacārī, so tathāgataṃ sakkaroti garuṃ karoti māneti pūjeti apaciyati, paramāya pūjāya.
아난다여, 비구든 비구니든 남자 재가신자든 여자 재가신자든,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며 머물고 바르게 실천하며 법을 따라 살아가는 이, 그가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공양하고 예우하는 것이니, 최상의 공양으로 그리하는 것이다.
Tasmātihānanda,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viharissāma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ti.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법에 따라 법을 실천하며 머물고, 바르게 실천하며 법을 따라 살아가는 이가 되리라’ —
Evañhi vo, ānanda, sikkhitabba’’nti.
아난다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빠와나 장로Upavāṇatthero
200
그때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 앞에 서서 부채질을 해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존께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셨다. "비켜라, 비구여. 내 앞에 서 있지 마라." 그러자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빠와나 존자는 오랫동안 세존의 시자로서 늘 곁에서 가까이 모셔 왔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마지막 때에 이르러 그를 물리치신다. "비켜라, 비구여. 내 앞에 서 있지 마라." 하고 말씀하신다. 대체 어떤 이유, 어떤 까닭으로 세존께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시는 것일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이 무엇일까?'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upavāṇo bhagavato purato ṭhito hoti bhagavantaṃ bījayamāno.
그때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 앞에 서서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si –
그때 세존께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셨다 —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비구여, 물러가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yaṃ kho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ṃ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이 우빠와나 존자는 오랫동안 세존의 시자로서 곁에 머물며 가까이에서 지내 왔다.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
그런데도 세존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신다 —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비구여, 물러가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Ko nu kho hetu, ko paccayo, yaṃ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세존께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시는가 —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비구여, 물러가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빠와나 존자는 오랫동안 세존의 시자로서 늘 곁에서 가까이 모셔 왔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마지막 때에 이르러 그를 물리치십니다. '비켜라, 비구여. 내 앞에 서 있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이유, 어떤 까닭으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yaṃ, bhante,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ṃ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세존이시여, 이 우빠와나 존자는 오랫동안 세존의 시자로서 곁에 머물며 가까이에서 지내 왔습니다.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
그런데도 세존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십니다 —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비구여, 물러가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aṃ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
세존이시여,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세존께서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치십니까 —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비구여, 물러가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아난다야, 시방 열 곳 세계의 신들이 대부분 여래를 뵈려고 모여 있다. 아난다야, 꾸시나라 말라족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 둘레로 열두 요자나 땅에는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가득하다. 머리카락 끝으로 찌를 만한 빈자리조차 없다. 아난다야, 신들이 불평하고 있다. '우리는 여래를 뵈려고 먼 길을 왔다.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는 아주 드물게, 이따금 세상에 나오시는 분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마지막 시분에 여래께서 반열반하실 것이다. 이 위력 큰 비구가 세존 앞에 서서 가리고 있으니, 우리는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뵐 수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Yebhuyyena, ānanda, dasasu lokadhātūsu devatā sannipatitā tathāgataṃ dassanāya.
“아난다여, 열 세계의 신들이 여래를 뵈려고 거의 다 모였다.
Yāvatā, ānand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samantato dvādasa yojanāni, natthi so padeso vālaggakoṭinitudanamattopi mahesakkhāhi devatāhi apphuṭo.
아난다여, 꾸시나라에 있는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나무 숲은 사방으로 열두 요자나에 이르는데, 그 안에는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채우지 않은 자리가 털끝으로 찌를 만큼도 없다.
Devatā, ānanda, ujjhāyanti –
아난다여, 신들이 못마땅해한다 —
‘dūrā ca vatamha āgatā tathāgataṃ dassanāya.
‘우리는 참으로 멀리서 여래를 뵈려고 왔다.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은 어쩌다 한 번 세상에 나오신다.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바로 오늘 밤 마지막 야경에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Ayañca mahesakkho bhikkhu bhagavato purato ṭhito ovārento, na mayaṃ labhāma pacchime kāle tathāgataṃ dassanāyā’’’ti.
그런데 이 큰 위력을 지닌 비구가 세존 앞에 서서 가리고 있으니, 우리는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뵙지 못한다.’”
201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떤 신들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아난다야, 허공에 있으면서 땅에 있다는 생각을 지닌 신들이 있다. 그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두 팔을 들고 운다. 베어진 것처럼 쓰러지고 이리저리 뒹굴며 말한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신다. 복되게 가신 분이 너무 일찍 반열반하신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진다.' 아난다야, 땅 위에 있으면서 땅에 있다는 생각을 지닌 신들도 있다. 그들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두 팔을 들고 운다. 베어진 것처럼 쓰러지고 이리저리 뒹굴며 말한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신다. 복되게 가신 분이 너무 일찍 반열반하신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진다.' 그러나 탐욕을 떠난 신들은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며 참아 낸다. '지어진 모든 것은 덧없다. 그런 것을 여기서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하면서."[불확실]
‘‘Kathaṃbhūtā pana, bhante, bhagavā devatā manasikarotī’’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신들을 어떠한 상태로 마음에 두십니까?”
‘‘Santānanda, devatā ākāse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아난다여, 허공에 있으면서 땅이라고 인식하는 신들이 있으니, 그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군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aṃāyissatī’ti.
‘너무 빨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너무 빨리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너무 빨리 세상에서 눈이 사라지려 한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ntānanda, devatā pathaviyaṃ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아난다여, 땅에 있으면서 땅이라고 인식하는 신들이 있으니, 그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군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āyissatī’’’ti.
‘너무 빨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너무 빨리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너무 빨리 세상에서 눈이 사라지려 한다’라고.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
그러나 탐욕을 여읜 신들, 그들은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견딘다 —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형성작용은 무상하다.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절실히 느끼게 하는 네 곳Catusaṃvejanīyaṭṭhānāni
202
"세존이시여, 예전에는 안거를 마친 비구들이 사방에서 여래를 뵈러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마음을 닦는 비구들을 뵐 수 있었고 가까이서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저희가 마음을 닦는 비구들을 뵐 수도, 가까이서 모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
‘‘Pubbe, bhante, disāsu vassaṃ vuṭṭhā bhikkhū āgacchanti tathāgataṃ dassanāya.
“세존이시여, 예전에는 여러 지방에서 안거를 마친 비구들이 여래를 뵈려고 왔습니다.
Te mayaṃ labh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labhāma payirupāsanāya.
그래서 저희는 존경할 만한 비구들을 뵐 수 있었고, 가까이 모실 수 있었습니다.
Bhagavato pana mayaṃ, bhante, accayena na labhiss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na labhissāma payirupāsanāyā’’ti.
그러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가시고 나면 저희는 존경할 만한 비구들을 뵐 수 없고, 가까이 모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난다야,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가 보고 마음을 일깨울 만한 곳이 네 군데 있다. 어떤 네 곳인가? '여기서 여래께서 태어나셨다.' 하는 곳은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가 보고 마음을 일깨울 만한 곳이다. '여기서 여래께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하는 곳도 그러하다. '여기서 여래께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하는 곳도 그러하다. '여기서 여래께서 남음 없는 열반의 영역으로 반열반하셨다.' 하는 곳도 그러하다. 아난다야, 이 네 곳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가 보고 마음을 일깨울 만한 곳이다.
‘‘Cattārimān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ṃvejanīyāni ṭhānāni.
“아난다여,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곳이 이 넷이다.
Katamāni cattāri?
무엇이 넷인가?
‘Idha tathāgato jā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 —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곳이다.
‘Idha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 —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곳이다.
‘Idha tathāgatena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n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에 의해 위없는 법륜이 굴려졌다’ —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곳이다.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남김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곳이다.
Imāni kho, ānanda, cattāri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ṃvejanīyāni ṭhānāni.
아난다여,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보아야 할, 절실히 느껴야 할 네 곳이다.
아난다야, 믿음 있는 비구와 비구니, 재가신자와 여성 재가신자들이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여래께서 태어나셨다.' 하며 오고, '여기서 여래께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하며 올 것이다. '여기서 여래께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하며 오고, '여기서 여래께서 남음 없는 열반의 영역으로 반열반하셨다.' 하며 올 것이다. 아난다야, 누구든 탑묘를 돌아다니며 맑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몸이 무너진 뒤 죽어서 좋은 곳인 하늘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Āgamissanti kho, ānanda, saddhā bhikkhū bhikkhuniyo upāsakā upāsikāyo –
아난다여, 믿음 있는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남자 재가신자들과 여자 재가신자들이 올 것이다 —
‘idha tathāgato jāto’tipi, ‘idha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pi, ‘idha tathāgatena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ntipi,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pi.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도,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라고도, ‘여기서 여래에 의해 위없는 법륜이 굴려졌다’라고도, ‘여기서 여래가 남김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라고도 하면서.
Ye hi keci, ānanda, cetiyacārikaṃ āhiṇḍantā pasannacittā kālaṅkarissanti, sabbe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antī’’ti.
아난다여, 누구든 탑묘를 찾아 순례하며 다니다가 마음이 맑아진 채로 목숨을 마치면, 그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아난다의 질문 이야기Ānandapucchākathā
203
"세존이시여, 여인들에게 저희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보지 않는 것이다, 아난다야." "세존이시여, 보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아난다야." "세존이시여, 말을 걸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난다야, 마음챙김을 확립해야 한다."[불확실]
‘‘Kathaṃ mayaṃ, bhante, mātugāme paṭipajjāmā’’ti?
“세존이시여, 저희는 여인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Adassanaṃ, ānandā’’ti.
“아난다여, 보지 않는 것이다.”
‘‘Dassane, bhagavā, sati kathaṃ paṭipajjitabba’’nti?
“세존이시여, 보게 되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nālāpo, ānandā’’ti.
“아난다여,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Ālapantena pana, bhante, kathaṃ paṭipajjitabb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말을 걸게 되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Sati, ānanda, upaṭṭhāpetabbā’’ti.
“아난다여, 마음챙김을 세워야 한다.”
204
"세존이시여, 저희는 여래의 시신을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아난다야, 너희는 여래의 시신을 공양하는 일에 매이지 마라. 어서 참된 목적을 위해 힘쓰고 정진하여라. 참된 목적을 향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머물러라. 아난다야, 여래에게 깊이 믿음을 낸 현명한 끄샤뜨리야들과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있다. 그들이 여래의 시신을 공양할 것이다."
‘‘Kathaṃ mayaṃ,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āmā’’ti?
“세존이시여, 저희는 여래의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Abyāvaṭā tumhe, ānanda, hotha tathāgatassa sarīrapūjāya.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의 몸을 공양하는 일에 마음 쓰지 마라.
Iṅgha tumhe, ānanda, sāratthe ghaṭatha anuyuñjatha, sāratth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tha.
자, 아난다여, 그대들은 핵심이 되는 목적에 힘쓰고 몰두하라. 핵심이 되는 목적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물러라.
Santānanda,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tathāgate abhippasannā, te tathāgatassa sarīrapūjaṃ karissantī’’ti.
아난다여, 여래를 깊이 믿는 지혜로운 끄샤뜨리야들도, 지혜로운 바라문들도, 지혜로운 장자들도 있으니, 그들이 여래의 몸을 공양할 것이다.”
205
"세존이시여, 그러면 여래의 시신은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아난다야, 전륜왕의 시신을 모시는 것처럼 여래의 시신도 모셔야 한다." "세존이시여, 전륜왕의 시신은 어떻게 모십니까?" "아난다야, 전륜왕의 시신은 새 천으로 감싼다. 그 위를 잘 다듬은 솜으로 감싸고,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이런 방식으로 오백 벌의 천으로 전륜왕의 시신을 감싼다. 그런 다음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으로 덮는다. 온갖 향을 쌓아 화장단을 만들고, 전륜왕의 시신을 태운다. 그리고 네거리에 전륜왕의 탑을 세운다. 아난다야, 이렇게 전륜왕의 시신을 모신다. 아난다야, 전륜왕의 시신을 모시는 것처럼 여래의 시신도 모셔야 한다. 네거리에 여래의 탑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가루향을 올리거나 절을 하거나 마음을 맑게 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얻을 것이다."
‘‘Kathaṃ pana,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몸을 다루듯이, 그렇게 여래의 몸을 다루어야 한다.”
‘‘Kathaṃ pana, bhante,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그러면 세존이시여, 전륜성왕의 몸은 어떻게 다룹니까?”
‘‘Rañño, ānanda, cakkavattissa sarīraṃ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몸은 새 천으로 감고, 새 천으로 감은 다음 타낸 솜으로 감고, 타낸 솜으로 감은 다음 새 천으로 감는다.
Eten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ṃ citakaṃ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jhāpenti.
이런 방식으로 오백 겹의 천으로 전륜성왕의 몸을 감고서,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으로 덮은 다음, 온갖 향으로 화장 더미를 만들어 전륜성왕의 몸을 태운다.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ṃ karonti.
네거리에 전륜성왕의 탑을 세운다.
Evaṃ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몸은 이렇게 다룬다.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ṃ.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몸을 다루듯이, 그렇게 여래의 몸을 다루어야 한다.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네거리에 여래의 탑을 세워야 한다.
Tattha ye mālaṃ vā gandhaṃ vā cuṇṇakaṃ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ṃ vā pasādessanti tesaṃ taṃ bhavissa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a.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가루를 올리거나 절을 하거나 마음을 맑히는 이들, 그들에게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탑을 세울 만한 사람Thūpārahapuggalo
206
"아난다야, 탑을 세울 만한 이가 넷 있다. 어떤 넷인가? 아라한이자 정등각자인 여래가 탑을 세울 만한 이다. 홀로 깨달은 이가 탑을 세울 만한 이다.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한 이다. 전륜왕이 탑을 세울 만한 이다.
‘‘Cattārome, ānanda, thūpārahā.
“아난다여, 탑을 세울 만한 이가 이 넷이다.
Katame cattāro?
무엇이 넷인가?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ti.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하고, 홀로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하고,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하고, 전륜성왕이 탑을 세울 만하다.
아난다야, 어떤 이유로 아라한이자 정등각자인 여래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가? 아난다야, '이것은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탑이다.'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혀 몸이 무너진 뒤 죽어서 좋은 곳인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야, 이것이 아라한이자 정등각자인 여래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 이유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어떤 이치를 두고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한가?
‘Ayaṃ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아난다여, ‘이것은 그분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탑이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히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이 이치를 두고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하다.
아난다야, 어떤 이유로 홀로 깨달은 이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가? 아난다야, '이것은 저 세존, 홀로 깨달은 이의 탑이다.'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혀 몸이 무너진 뒤 죽어서 좋은 곳인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야, 이것이 홀로 깨달은 이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 이유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어떤 이치를 두고 홀로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한가?
‘Ayaṃ tassa bhagavato pacceka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아난다여, ‘이것은 그분 세존·홀로 깨달으신 분의 탑이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히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이 이치를 두고 홀로 깨달으신 분이 탑을 세울 만하다.
아난다야, 어떤 이유로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가? 아난다야, '이것은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제자의 탑이다.'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혀 몸이 무너진 뒤 죽어서 좋은 곳인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야, 이것이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한 이인 이유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아난다여, 어떤 이치를 두고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한가?
‘Ayaṃ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āvak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아난다여, ‘이것은 그분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제자의 탑이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히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아난다여, 이 이치를 두고 여래의 제자가 탑을 세울 만하다.
아난다야, 어떤 이유로 전륜왕이 탑을 세울 만한 이인가? 아난다야, '이것은 법대로 다스린 저 법의 왕의 탑이다.'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혀 몸이 무너진 뒤 죽어서 좋은 곳인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야, 이것이 전륜왕이 탑을 세울 만한 이인 이유다. 아난다야, 이 넷이 탑을 세울 만한 이들이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아난다여, 어떤 이치를 두고 전륜성왕이 탑을 세울 만한가?
‘Ayaṃ tassa dhammikassa dhammarañño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아난다여, ‘이것은 그 법다운 법왕의 탑이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맑힌다.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맑히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아난다여, 이 이치를 두고 전륜성왕이 탑을 세울 만하다.
Ime kho, ānanda cattāro thūpārahā’’ti.
아난다여, 이것이 탑을 세울 만한 넷이다.”
아난다의 놀라운 법Ānandaacchariyadhammo
207
그때 아난다 존자는 처소로 들어가 문빗장에 기대어 서서 울고 있었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남은 사람이고 해야 할 일도 남았다. 그런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스승님께서 열반에 드시려는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vihāraṃ pavisitvā kapisīsaṃ ālambitvā rodamāno aṭṭhāsi –
그때 아난다 존자는 정사에 들어가 문설주에 기대어 울면서 서 있었다 —
‘‘ahañca vatamhi sekho sakaraṇīyo, satthu ca me parinibbānaṃ bhavissati, yo mama anukampako’’ti.
‘나는 참으로 아직 배우는 이요 할 일이 남은 자인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나의 스승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하고.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어디 있느냐?” 비구들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처소로 들어가 문빗장에 기대어 서서 울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남은 사람이고 해야 할 일도 남았는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스승님께서 열반에 드시려는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한 비구를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여, 가서 내 말로 아난다를 불러라. ‘벗이여 아난다,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하고 전하여라.”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kahaṃ nu kho, bhikkhave, ānando’’ti?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어디 있느냐?”
‘‘Eso, bhante, āyasmā ānando vihāraṃ pavisitvā kapisīsaṃ ālambitvā rodamāno ṭhito –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정사에 들어가 문설주에 기대어 울면서 서 있습니다 —
‘ahañca vatamhi sekho sakaraṇīyo, satthu ca me parinibbānaṃ bhavissati, yo mama anukampako’’’ti.
‘나는 참으로 아직 배우는 이요 할 일이 남은 자인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나의 스승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려 한다’ 하면서 말입니다.”
Atha kho bhagavā aññataraṃ bhikkhu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어떤 비구를 부르셨다 —
‘‘ehi tvaṃ, bhikkhu, mama vacanena ānandaṃ āmantehi –
“비구여, 그대는 가서 내 말로 아난다를 불러라 —
‘satthā taṃ, āvuso ānanda, āmantetī’’’ti.
‘아난다 벗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 비구는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하고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가까이 가서 말했다. “벗이여 아난다,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아난다 존자는 “알겠습니다, 벗이여.” 하고 세존께 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so bhikkhu bhagavato paṭissutvā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tthā taṃ, āvuso ānanda, āmantetī’’ti.
“아난다 벗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Evamāvuso’’ti kho āyasmā ānando tassa bhikkhuno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러겠네, 벗이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ānand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만두어라, 아난다야.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마라. 내가 전에 미리 말하지 않았더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달라지고 헤어지고 떨어지게 마련이다.’ 아난다야,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바랄 수 있겠느냐. 생겨나 존재하고 만들어진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런 것이 ‘여래의 몸만은 무너지지 말기를.’ 하고 바란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난다야, 너는 오랜 세월 여래를 모셔 왔다. 몸의 행동으로는 자애롭고 이로우며 즐겁고 둘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게 모셨다. 말의 행동으로도, 마음의 행동으로도 똑같이 모셨다. 아난다야, 너는 공덕을 지었다. 이제 정진에 힘써라. 머지않아 번뇌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불확실]
‘‘alaṃ, ānanda, mā soci mā paridevi, nanu etaṃ,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ṃ –
“그만두어라, 아난다야. 슬퍼하지 마라, 탄식하지 마라. 아난다야, 내가 이것을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고 갈라지고 달라지기 마련이다’라고;
taṃ kutettha, ānanda, labbhā.
아난다야,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vata tathāgatassāpi sarīraṃ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태어났고 생겨났고 지어졌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 그것이 여래의 몸이라 하여도 ‘부디 무너지지 말라’ 하는, 그런 도리는 없다.
Dīgharattaṃ kho te, ānanda, tathāgato paccupaṭṭhito mettena kāya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vacī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mano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아난다야, 오랜 세월 너는 자애로운 몸의 행위로, 이롭고 즐겁고 둘이 아니고 한량없는 몸의 행위로 여래를 섬겨 왔고, 자애로운 말의 행위로, 이롭고 즐겁고 둘이 아니고 한량없는 말의 행위로 섬겨 왔고,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로, 이롭고 즐겁고 둘이 아니고 한량없는 마음의 행위로 섬겨 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atapuññosi tvaṃ, ānanda, padhānamanuyuñja, khippaṃ hohisi anāsavo’’ti.
아난다야, 너는 공덕을 지은 사람이다. 정진에 힘써라. 머지않아 번뇌 없는 이가 될 것이다.”
208
세존께서 다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나간 세월에도 아라한이자 바르게 깨달은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께도 가장 훌륭한 시자는 지금 나의 아난다 같은 이였다. 앞으로 올 세월에도 아라한이자 바르게 깨달은 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분들께도 가장 훌륭한 시자는 지금 나의 아난다 같은 이일 것이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현명하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슬기롭다. 그는 누가 여래를 뵈러 올 때인지 안다. 지금은 비구들이 올 때, 지금은 비구니들이 올 때라고 안다. 지금은 남자 재가신자들이, 지금은 여자 재가신자들이 올 때라고 안다. 왕과 대신들,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과 그 제자들이 올 때도 안다.”[불확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yepi te, bhikkhav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ṃ etapparamāyeva upaṭṭhākā ahesuṃ, seyyathāpi mayhaṃ ānando.
“비구들이여, 지난 시절에 계셨던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 그분 세존들께도 시자는 꼭 이만한 정도였다, 나에게 아난다가 그러하듯이.
Yepi te, bhikkhav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ṃ etapparamāyeva upaṭṭhākā bhavissanti, seyyathāpi mayhaṃ ānando.
비구들이여, 앞으로 올 시절에 계실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 그분 세존들께도 시자는 꼭 이만한 정도일 것이다, 나에게 아난다가 그러하듯이.
Paṇḍito, bhikkhave, ānando;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슬기로운 자다;
medhāvī, bhikkhave, ānando.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총명한 자다.
Jānāti ‘ayaṃ kālo tathāgataṃ dassanāya upasaṅkamituṃ bhikkhūnaṃ, ayaṃ kālo bhikkhunīnaṃ, ayaṃ kālo upāsakānaṃ, ayaṃ kālo upāsikānaṃ, ayaṃ kālo rañño rājamahāmattānaṃ titthiyānaṃ titthiyasāvakāna’nti.
그는 안다 — ‘지금은 비구들이 여래를 뵈러 다가올 때다, 지금은 비구니들이 올 때다, 지금은 재가신자들이 올 때다, 지금은 여자 재가신자들이 올 때다, 지금은 왕과 왕의 대신들과 다른 교단의 스승들과 그 제자들이 올 때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09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특징이 네 가지 있다. 그 네 가지는 무엇인가? 비구들의 모임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비구니들의 모임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남자 재가신자들의 모임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여자 재가신자들의 모임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 특징이다.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Katame cattāro?
넷이란 무엇인가?
Sace, bhikkhave, bhikkhu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비구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Sace, bhikkhave, bhikkhunī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bhikkhunī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비구니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Sace, bhikkhave, upāsaka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재가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upāsaka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재가신자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Sace, bhikkhave, upāsikā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여자 재가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upāsikā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여자 재가신자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다.
비구들이여, 전륜왕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특징이 네 가지 있다. 그 네 가지는 무엇인가? 크샤트리아들의 모임이 전륜왕을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전륜왕은 입을 다문다. 바라문들의 모임도, 장자들의 모임도, 사문들의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전륜왕을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사문들의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전륜왕은 입을 다문다.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raññe cakkavattimhi.
“비구들이여, 전륜왕에게는 이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Katame cattāro?
넷이란 무엇인가?
Sace, bhikkhave, khattiyaparisā rājānaṃ cakkavatti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왕족 무리가 전륜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khattiyaparisā hoti.
비구들이여, 왕족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그때 전륜왕은 침묵한다.
Sace bhikkhave, brāhmaṇaparisā…pe… gahapatiparisā…pe… samaṇaparisā rājānaṃ cakkavatti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바라문 무리가 전륜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거기서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바라문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 전륜왕은 침묵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장자 무리가 전륜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거기서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장자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 전륜왕은 침묵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사문 무리가 전륜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209.18 ~ PN:dn16/209.21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전륜왕이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samaṇaparisā hoti,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사문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때 전륜왕은 침묵한다.
비구들이여, 꼭 그처럼 아난다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 특징이 있다. 비구들의 모임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비구니들의 모임도, 남자 재가신자들의 모임도, 여자 재가신자들의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난다를 뵈러 오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아난다가 법을 말해 주면, 그 말을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여자 재가신자들의 모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아난다는 입을 다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 특징이다.”
Evameva kho, bhikkhave, cattārom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Sace, bhikkhave, bhikkhu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비구들이여, 비구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Sace, bhikkhave bhikkhunīparisā…pe… upāsakaparisā…pe… upāsikā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비구니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재가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재가신자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여자 재가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209.26 ~ PN:dn16/209.29에서 되살렸습니다.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말하면, 그 말로도 그 무리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Atittāva, bhikkhave, upāsikāparisā hoti.
비구들이여, 여자 재가신자 무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그때 아난다는 침묵한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다.”
마하수닷사나 경 설법Mahāsudassanasuttadesanā
210
이 말씀을 듣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작은 도시, 외진 도시, 변두리 도시에서 반열반에 드시지 마소서. 세존이시여, 다른 큰 도시들이 있습니다. 참파, 라자가하, 사왓티, 사케타, 코삼비, 바라나시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곳에서 반열반하소서. 그곳에는 여래를 깊이 믿는 크샤트리아 대부호와 바라문 대부호와 장자 대부호가 많습니다. 그들이 여래의 사리를 정성껏 모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작은 도시, 외진 도시, 변두리 도시’라고 말하지 마라.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mā, bhante, bhagavā imasmiṃ khuddakanagarake ujjaṅgalanagarake sākhānagarake parinibbāy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 작은 성읍, 메마른 성읍, 곁가지 성읍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마소서.
Santi, bhante, aññāni mahānagarāni, seyyathidaṃ –
세존이시여, 다른 큰 도시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
campā rājagahaṃ sāvatthī sāketaṃ kosambī bārāṇasī;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입니다;
ettha bhagavā parinibbāyatu.
그곳에서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소서.
Ettha bahū khattiyamahāsālā, brāhmaṇamahāsālā gahapatimahāsālā tathāgate abhippasannā.
그곳에는 왕족 대부호, 바라문 대부호, 장자 대부호가 많고, 그들은 여래께 깊은 믿음을 지녔습니다.
Te tathāgatassa sarīrapūjaṃ karissantī’’ti ‘‘māhevaṃ, ānanda, avaca;
그들이 여래의 유해에 공양을 올릴 것입니다.” “아난다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māhevaṃ, ānanda, avaca –
아난다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
‘khuddakanagarakaṃ ujjaṅgalanagarakaṃ sākhānagaraka’nti.
‘작은 성읍, 메마른 성읍, 곁가지 성읍’이라고.
아난다야, 옛날에 마하수닷사나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전륜왕이자 법다운 법의 왕이었다. 사방을 정복하고 나라를 굳게 다졌으며, 일곱 가지 보배를 갖추었다. 그 왕에게는 지금의 이 쿠시나라가 쿠사와티라는 수도였다. 동서로는 길이가 십이 요자나, 남북으로는 너비가 칠 요자나였다. 쿠사와티는 번영하고 풍요로웠다. 사람이 많아 붐볐고 먹을 것이 넉넉했다. 신들의 수도 알라카만다는 번영하고 풍요로우며 야차들로 붐비고 먹을 것이 넉넉하다. 쿠사와티도 꼭 그러했다. 쿠사와티에서는 밤낮으로 열 가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코끼리 소리, 말 소리, 수레 소리, 큰북 소리, 작은북 소리, 비파 소리, 노랫소리, 소라 소리, 징 소리, 손뼉 소리가 났다. 열 번째는 ‘먹어라, 마셔라, 들어라.’ 하는 소리였다.[불확실]
‘‘Bhūtapubbaṃ, ānanda, rājā mahāsudassano nāma ahos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vī janap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아난다야, 옛날에 마하수닷사나라는 왕이 있었으니, 전륜왕이며 법다운 법왕이며 사방 끝까지 다스리는 이며 정복을 이룬 이며 나라의 안정을 얻은 이며 일곱 가지 보배를 갖춘 이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Rañño, ānanda, mahāsudassanassa ayaṃ kusinārā kusāvatī nāma rājadhānī ahosi, puratthimena ca pacchimena ca dvādasayojanāni āyāmena;
아난다야, 마하수닷사나 왕에게는 이 꾸시나라가 꾸사와띠라는 이름의 왕도였으니, 동쪽으로 서쪽으로 길이가 열두 요자나였고;
uttarena ca dakkhiṇena ca sattayojanāni vitthārena.
북쪽으로 남쪽으로 너비가 일곱 요자나였다.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아난다야, 꾸사와띠 왕도는 번영하고 풍요롭고 사람이 많고 인파가 붐비고 먹을 것이 넉넉했다.
Seyyathāpi, ānanda, devānaṃ āḷakamandā nāma rājadhānī iddhā ceva hot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yakkhā ca subhikkhā ca;
아난다야, 마치 신들의 알라까만다라는 왕도가 번영하고 풍요롭고 사람이 많고 약카가 붐비고 먹을 것이 넉넉하듯이;
evameva kho, ānanda, kusāvatī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아난다야, 꼭 그와 같이 꾸사와띠 왕도는 번영하고 풍요롭고 사람이 많고 인파가 붐비고 먹을 것이 넉넉했다.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dasahi saddehi avivittā ahosi divā ceva rattiñca, seyyathidaṃ –
아난다야, 꾸사와띠 왕도는 밤낮으로 열 가지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이를테면 —
hatthisaddena assasaddena rathasaddena bherisaddena mudiṅgasaddena vīṇāsaddena gītasaddena saṅkhasaddena sammasaddena pāṇitāḷasaddena ‘asnātha pivatha khādathā’ti dasamena saddena.
코끼리 소리, 말 소리, 수레 소리, 큰북 소리, 작은북 소리, 비파 소리, 노랫소리, 소라 소리, 바라 소리, 손뼉 소리, 그리고 ‘드시오, 마시오, 잡수시오’ 하는 열 번째 소리였다.
아난다야, 너는 쿠시나라로 들어가 쿠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려라.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시간대에 여래께서 반열반하실 것이다. 와셋타들이여, 와서 뵈어라. 와서 뵈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우리 마을 가까이에서 여래께서 반열반하셨는데도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뵙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라.’” 아난다 존자는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쿠시나라로 들어갔다.
‘‘Gaccha tvaṃ, ānanda, kusināraṃ pavisitv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ārocehi –
“아난다야, 너는 가서 꾸시나라에 들어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알려라 —
‘ajja kho, vāseṭṭhā,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야경에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Abhikkamatha vāseṭṭhā, abhikkamatha vāseṭṭhā.
와셋타들이여, 나아오라, 와셋타들이여, 나아오라.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
나중에 뉘우치지 마라 —
amhākañca no gāmakkhett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ahosi, na mayaṃ labhimhā pacchime kāle tathāgataṃ dassanāyā’’’ti.
우리 마을 땅에서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었는데, 우리는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뵙지 못했다’라고.”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attadutiyo kusināraṃ pāvi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고, 옷을 여미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한 사람을 동무 삼아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말라들의 예경Mallānaṃ vandanā
211
마침 그때 쿠시나라의 말라족이 어떤 일 때문에 회관에 모여 있었다. 아난다 존자는 그 회관으로 가서 말라족에게 알렸다.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시간대에 여래께서 반열반하실 것이다. 와셋타들이여, 와서 뵈어라. 와서 뵈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우리 마을 가까이에서 여래께서 반열반하셨는데도, 우리는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뵙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라.”
Tena kho pana samayena kosinārakā mallā sandhāgāre sannipatitā hon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무슨 볼일이 있어 회당에 모여 있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sandhāgāraṃ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 말라들의 회당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ārocesi –
다가가서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알렸다 —
‘‘ajja kho, vāseṭṭhā,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야경에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Abhikkamatha vāseṭṭhā abhikkamatha vāseṭṭhā.
와셋타들이여, 나아오라, 와셋타들이여, 나아오라.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
나중에 뉘우치지 마라 —
‘amhākañca no gāmakkhett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ahosi, na mayaṃ labhimhā pacchime kāle tathāgataṃ dassanāyā’’’ti.
‘우리 마을 땅에서 여래의 완전한 열반이 있었는데, 우리는 마지막 때에 여래를 뵙지 못했다’라고.”
아난다 존자의 말을 듣고 말라족 남자들과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아내들은 슬퍼하고 마음이 아파 괴로움에 잠겼다. 어떤 이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었다. 팔을 들어 올리고 울기도 했고, 베어진 나무처럼 쓰러지기도 했다. 이리저리 뒹굴며 말했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시는구나. 잘 건너가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시는구나.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는구나.”
Idamāyasmato ānandassa vacanaṃ sutvā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appekacce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아난다 존자의 이 말을 듣고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비통해하고 풀 죽고 마음의 괴로움에 사무쳐, 어떤 이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이 쓰러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āyissatī’ti.
‘세존께서 너무 빨리 완전한 열반에 드시는구나,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너무 빨리 완전한 열반에 드시는구나, 세상에서 눈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구나’ 하고.
말라족 남자들과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아내들은 슬픔과 괴로움에 잠긴 채 웁와따나 살라나무 숲에 있는 아난다 존자에게로 갔다.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라족을 한 사람씩 세존께 인사드리게 하면, 인사드리기도 전에 이 밤이 샐 것이다. 그러니 집안별로 나누어 인사드리게 하면 어떨까. “세존이시여, 아무개 말라가 아들과 아내와 일행과 대신들을 데리고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아난다 존자는 말라족을 집안별로 나누어 세존께 인사드리게 했다. “세존이시여, 아무개 말라가 아들과 아내와 일행과 대신들을 데리고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첫째 시간대가 가기 전에 쿠시나라의 말라족 모두를 세존께 인사드리게 했다.
Atha kho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yena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비통해하고 풀 죽고 마음의 괴로움에 사무쳐,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sace kho ahaṃ kosinārake malle ekamekaṃ bhagavantaṃ vandāpessāmi, avandito bhagavā kosinārakehi mallehi bhavissati, athāyaṃ ratti vibhāyissati.
‘만일 내가 꾸시나라의 말라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세존께 예경하게 한다면, 세존께서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예경받지 못한 채로 계실 것이고, 그러는 사이 이 밤이 새고 말 것이다.
Yaṃnūnāhaṃ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ṃ vandāpeyyaṃ –
차라리 내가 꾸시나라의 말라들을 가문 단위 가문 단위로 세워 세존께 예경하게 하면 어떨까 —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세존이시여, 아무개 말라가 아들과 아내와 무리와 신하들과 함께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경드립니다」라고.’
Atha kho āyasmā ānando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ṃ vandāpesi –
그때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을 가문 단위 가문 단위로 세워 세존께 예경하게 했다 —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세존이시여, 아무개 말라가 아들과 아내와 무리와 신하들과 함께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경드립니다’라고.
Atha kho āyasmā ānando etena upāyena paṭhameneva yāmena kosinārake malle bhagavantaṃ vandāpesi.
그때 아난다 존자는 이 방편으로 첫 번째 야경 동안에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세존께 예경하게 했다.
수밧다 유행자 이야기Subhaddaparibbājakavatthu
212
그때 꾸시나라에 수밧다라는 유행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이런 소문을 들었다. "오늘 밤 마지막 시각에 사문 고따마께서 반열반에 드신다고 한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 들고 어른인 스승들과 그 스승의 스승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여래, 곧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은 아주 드물게, 이따금씩만 세상에 나타난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마지막 시각에 사문 고따마께서 반열반에 드신다.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나는 사문 고따마를 믿는다. 사문 고따마라면 내가 이 의문을 버리도록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paribbājako kusinārāyaṃ paṭivasati.
그때 수밧다라는 이름의 유행자가 꾸시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Assosi kho subhaddo paribbājako –
수밧다 유행자는 들었다 —
‘‘ajja kir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ī’’ti.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사문 고따마의 완전한 열반이 있으리라고 한다.”
Atha kho subhaddassa paribbājakassa etadahosi –
그때 수밧다 유행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sutaṃ kho pana metaṃ paribbājakānaṃ vuḍḍ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
‘나는 나이 들고 연로한, 스승이며 스승의 스승인 유행자들이 말하는 것을 이렇게 들었다 —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때때로 어쩌다 한 번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사문 고따마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
Atthi ca me ayaṃ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ṃ pasanno ahaṃ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a’’’nti.
그런데 내게 이런 의문이 일어났다. 나는 사문 고따마에 대해 이런 믿음이 있다 —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이 의문을 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다”고.’
수밧다는 말라족의 살라나무 숲 우빠왓따나로 아난다 존자를 찾아갔다. 가까이 가서 말했다. "아난다 존자님, 저는 나이 들고 어른인 유행자 스승들과 그 스승의 스승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래, 곧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은 아주 드물게, 이따금씩만 세상에 나타난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마지막 시각에 사문 고따마께서 반열반에 드신다고 합니다. 제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사문 고따마를 믿습니다. 사문 고따마라면 제가 이 의문을 버리도록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부디 제가 사문 고따마를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yena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그때 수밧다 유행자는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 숲, 아난다 존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sutaṃ metaṃ, bho ānanda, paribbājakānaṃ vuḍḍ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나이 들고 연로한, 스승이며 스승의 스승인 유행자들이 말하는 것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때때로 어쩌다 한 번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사문 고따마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Atthi ca me ayaṃ kaṅkhādhammo uppanno –
그런데 제게 이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
evaṃ pasanno ahaṃ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a’nti.
저는 사문 고따마에 대해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제가 이 의문을 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다’고.
Sādhāhaṃ, bho ānanda, labheyyaṃ samaṇaṃ gotamaṃ dassanāyā’’ti.
아난다 존자시여, 부디 제가 사문 고따마를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그만두시오, 수밧다 벗이여. 여래를 괴롭히지 마시오. 세존께서는 지쳐 계시오."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subhaddaṃ paribbājak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alaṃ, āvuso subhadda, mā tathāgataṃ viheṭhesi, kilanto bhagavā’’ti.
“그만두라, 벗 수밧다여.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다.”
수밧다는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같은 말을 했다. "아난다 존자님, 저는 나이 들고 어른인 유행자 스승들과 그 스승의 스승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래, 곧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은 아주 드물게, 이따금씩만 세상에 나타난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마지막 시각에 사문 고따마께서 반열반에 드신다고 합니다. 제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사문 고따마를 믿습니다. 사문 고따마라면 제가 이 의문을 버리도록 법을 설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부디 제가 사문 고따마를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Dutiyampi kho subhaddo paribbājako…pe… tatiyampi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수밧다 유행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나이 들고 연로한, 스승이며 스승의 스승인 유행자들이 말하는 것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 ‘때때로 어쩌다 한 번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사문 고따마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 이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 저는 사문 고따마에 대해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제가 이 의문을 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다’고. 아난다 존자시여, 부디 제가 사문 고따마를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로도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만두라, 벗 수밧다여.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다.” 세 번째로도 수밧다 유행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212.11 ~ PN:dn16/212.18에서 되살렸습니다.
‘‘sutaṃ metaṃ, bho ānanda, paribbājakānaṃ vuḍḍ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나이 들고 연로한, 스승이며 스승의 스승인 유행자들이 말하는 것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때때로 어쩌다 한 번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들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사문 고따마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Atthi ca me ayaṃ kaṅkhādhammo uppanno –
그런데 제게 이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
evaṃ pasanno ahaṃ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a’nti.
저는 사문 고따마에 대해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제가 이 의문을 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설해 주실 수 있다’고.
Sādhāhaṃ, bho ānanda, labheyyaṃ samaṇaṃ gotamaṃ dassanāyā’’ti.
아난다 존자시여, 부디 제가 사문 고따마를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세 번째에도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만두시오, 수밧다 벗이여. 여래를 괴롭히지 마시오. 세존께서는 지쳐 계시오."
Tatiyampi kho āyasmā ānando subhaddaṃ paribbājakaṃ etadavoca –
세 번째로도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alaṃ, āvuso subhadda, mā tathāgataṃ viheṭhesi, kilanto bhagavā’’ti.
“그만두라, 벗 수밧다여.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다.”
213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수밧다가 나누는 이 대화를 들으셨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그만두어라. 수밧다를 막지 마라. 수밧다가 여래를 만나도록 하여라. 수밧다가 내게 무엇을 묻든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지,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또 내가 답하면 그는 곧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Assosi kho bhagavā āyasmato ānandassa subhaddena paribbājakena saddhiṃ imaṃ kathāsallāpaṃ.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수밧다 유행자와 나눈 이 대화를 들으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alaṃ, ānanda, mā subhaddaṃ vāresi, labhataṃ, ānanda, subhaddo tathāgataṃ dassanāya.
“그만두어라, 아난다여. 수밧다를 막지 말라. 아난다여, 수밧다가 여래를 뵙게 하라.
Yaṃ kiñci maṃ subhaddo pucchissati, sabbaṃ taṃ aññāpekkhova pucchissati, no vihesāpekkho.
수밧다가 내게 무엇을 묻든, 그 모두를 알고자 하여 물을 것이지 괴롭히려고 묻지 않을 것이다.
Yaṃ cassāhaṃ puṭṭho byākarissāmi, t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그리고 내가 물음을 받아 대답하는 것을, 그는 곧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수밧다에게 말했다. "가시오, 수밧다 벗이여. 세존께서 그대에게 기회를 허락하셨소." 수밧다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세존과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subhaddaṃ paribbājak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gacchāvuso subhadda, karoti te bhagavā okāsa’’nti.
“벗 수밧다여, 가라. 세존께서 그대에게 기회를 주신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수밧다 유행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수밧다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고따마 존자님, 승가를 이끌고 무리를 거느리는 교조들이 있습니다. 무리의 스승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아,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사문과 바라문들입니다.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띠뿟따, 니간타 나따뿟따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 주장하는 대로 정말 알았습니까? 아니면 모두 알지 못했습니까? 혹은 일부는 알았고 일부는 알지 못했습니까?"
‘‘yeme, bho gotama, samaṇabrāhmaṇā saṅghino gaṇino gaṇācariyā ñātā yasassino titthakarā sādhusammatā bahujanassa, seyyathidaṃ –
“고따마 존자시여, 무리를 거느리고 무리를 이끌며 무리의 스승이고, 이름이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이 사문·바라문들, 곧 —
pūraṇo kassapo, makkhali gosālo, ajito kesakambalo, pakudho kaccāyano, sañcayo belaṭṭhaputto, nigaṇṭho nāṭaputto,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ṃsu, sabbeva na abbhaññiṃsu, udāhu ekacce abbhaññiṃsu, ekacce na abbhaññiṃsū’’ti?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타뿟따, 니간타 나따뿟따 — 이들은 모두 자기 주장대로 곧바로 알았습니까, 모두가 알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이는 알았고 어떤 이는 알지 못했습니까?”
"그만두어라, 수밧다. 그 문제는 접어 두어라. 이들이 모두 알았는지, 모두 알지 못했는지, 아니면 일부만 알았는지 하는 문제 말이다. 수밧다야, 내가 너에게 법을 설해 주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말해 주겠다." 수밧다는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laṃ, subhadda, tiṭṭhatetaṃ –
“그만두어라, 수밧다여. 그것은 그대로 두어라 —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ṃsu, sabbeva na abbhaññiṃsu, udāhu ekacce abbhaññiṃsu, ekacce na abbhaññiṃsū’ti.
‘이들은 모두 자기 주장대로 곧바로 알았는가, 모두가 알지 못했는가, 아니면 어떤 이는 알았고 어떤 이는 알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Dhammaṃ te, subhadda, desessāmi;
수밧다여,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다;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karohi, bhāsissāmī’’ti.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수밧다 유행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214
"수밧다야, 어떤 법과 율에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 없으면, 그곳에는 첫째 사문도 없다. 둘째 사문도 없고, 셋째 사문도 없고, 넷째 사문도 없다. 어떤 법과 율에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 있으면, 그곳에는 첫째 사문도 있고, 둘째, 셋째, 넷째 사문도 있다. 수밧다야,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 있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첫째 사문이 있고, 둘째, 셋째, 넷째 사문이 있다. 다른 이들의 가르침에는 사문이 없다. 수밧다야, 이 비구들이 바르게 지내기만 한다면 세상은 아라한이 없는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Yasmiṃ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발견되지 않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발견되지 않는다.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발견되지 않는다.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발견되지 않는다.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발견되지 않는다.
Yasmiñca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그러나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발견되면, 거기에는 사문도 발견되고,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발견되고,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발견되고,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발견된다.
Imasmiṃ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idheva, subhadd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i.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발견된다. 수밧다여, 바로 여기에 사문이 있고, 여기에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이들의 교설에는 사문이 없어 텅 비었다.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ṃ,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그리고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은 아라한들로 텅 비지 않을 것이다.”
“스물아홉 나이에, 수밧다여,
‘‘Ekūnatiṃso vayasā subhadda,
“나이 스물아홉에, 수밧다여,
무엇이 선한가 찾아 나는 집을 떠났네.
Yaṃ pabbajiṃ kiṃkusalānuesī;
무엇이 유익한지 찾아 나는 출가했네;
쉰 해에 몇 해를 더 보냈다네,
Vassāni paññāsa samādhikāni,
쉰 해 남짓한 세월이 흘렀네,
집을 떠난 그날로부터, 수밧다여.
Yato ahaṃ pabbajito subhadda.
내가 출가한 뒤로, 수밧다여.
바른 길, 그 법의 한 자락이라도 걷는 이는[불확실]
Ñāyassa dhammassa padesavattī,
바른 이치의 법이 미치는 자리에 머무는 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이 밖에서는 사문조차 없다네.”
Ito bahiddhā samaṇopi natthi.
이 밖에는 사문이 없네.
"다른 이들의 가르침에는 둘째 사문도, 셋째 사문도, 넷째 사문도 없다. 다른 이들의 가르침에는 사문이 없다. 수밧다야, 이 비구들이 바르게 지내기만 한다면 세상은 아라한이 없는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Dutiyopi samaṇo natthi.
“두 번째 사문도 없다.
Tatiyopi samaṇo natthi.
세 번째 사문도 없다.
Catutthopi samaṇo natthi.
네 번째 사문도 없다.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i.
다른 이들의 교설에는 사문이 없어 텅 비었다.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ṃ,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그리고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은 아라한들로 텅 비지 않을 것이다.”
215
이 말씀을 듣고 수밧다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사람은 형상을 보리라.' 하며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과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도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불확실]
Evaṃ vutte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밧다 유행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라’며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Labheyyāh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aṃ upasampada’’nti.
세존이시여,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수밧다야, 전에 다른 교단에 있던 사람이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으려면 넉 달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보내야 한다. 넉 달이 지난 뒤 비구들의 마음이 흡족하면 그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가 되게 한다. 다만 이 일에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안다."
‘‘Yo kho, subhadda, aññatitthiyapubbo imasmiṃ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ṃ, ākaṅkhati upasampadaṃ, so cattāro māse parivasati.
“수밧다여, 전에 다른 교단에 있던 이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면, 그는 넉 달 동안 따로 지낸다.
Catunnaṃ mā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마음이 내키면 비구가 되도록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준다.
Api ca mettha puggalavemattatā viditā’’ti.
다만 이 일에서 나는 사람마다 다름이 있음을 안다.”
"세존이시여, 전에 다른 교단에 있던 이들이 넉 달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보내고, 비구들의 마음이 흡족해야 비로소 출가와 구족계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사 년이라도 그 기간을 보내겠습니다. 사 년이 지난 뒤 비구들의 마음이 흡족하면 저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 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Sace, bhante, aññatitthiyapubbā imasmiṃ dhammavinaye ākaṅkhantā pabbajjaṃ ākaṅkhantā upasampadaṃ cattāro māse parivasanti, catunnaṃ mā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세존이시여, 전에 다른 교단에 있던 이들이 이 법과 율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여 넉 달 동안 따로 지내고,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마음이 내키면 비구가 되도록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준다면,
Ahaṃ cattāri vassāni parivasissāmi, catunnaṃ vassānaṃ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u upasampādentu bhikkhubhāvāyā’’ti.
저는 네 해를 따로 지내겠습니다. 네 해가 지나 비구들이 마음이 내키면 비구가 되도록 저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그렇다면 수밧다를 출가시켜라." 아난다 존자는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밧다가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난다 벗이여, 그대들은 복이 많습니다. 스승 앞에서 제자로서 관정을 받았으니, 참으로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tenahānanda, subhaddaṃ pabbājehī’’ti.
“그렇다면 아난다여, 수밧다를 출가시켜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그때 수밧다 유행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lābhā vo, āvuso ānanda;
“벗 아난다여, 그대들에게는 이득입니다;
suladdhaṃ vo, āvuso ānanda, ye ettha satthu sammukhā antevāsikābhisekena abhisittā’’ti.
벗 아난다여, 그대들에게는 잘 얻은 것입니다 — 여기 스승 앞에서 제자로 삼는 관정을 받으신 분들이니.”
수밧다는 세존 곁에서 출가했고 구족계도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밧다 존자는 홀로 떨어져 지내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했다. 그러다 오래지 않아 위없는 수행의 완성에 이르렀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서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를 지금 여기서 스스로 곧바로 알아 몸소 체득하고 머물렀다. 그리고 "태어남은 다했고, 수행의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 하고 알았다. 수밧다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세존께서 살아 계실 때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은 마지막 제자였다. 다섯째 암송분이 끝났다.
Alat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alattha upasampadaṃ.
수밧다 유행자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subhadd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 –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수밧다 존자는 홀로 떨어져 머물며, 게으르지 않고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아 지내다가,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하여 갖추어 머물렀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다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그는 분명히 알았다.
Aññataro kho panāyasmā subhaddo arahataṃ ahosi.
그리하여 수밧다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So bhagavato pacchimo sakkhisāvako ahosīti.
그는 세존을 직접 뵌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Pañcamo bhāṇavāro.
다섯 번째 암송 단락.
여래의 마지막 말씀Tathāgatapacchimavācā
216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너희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 아난다야,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정해 준 법과 율이 내가 떠난 뒤 너희의 스승이다. 지금은 비구들이 서로를 '벗이여' 하고 부르지만, 내가 떠난 뒤에는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연장자인 비구는 후배 비구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성으로 부르거나 '벗이여' 하고 불러도 된다. 후배 비구는 연장자인 비구를 '큰스님' 또는 '존자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떠난 뒤 사소하고 작은 학습 계율들은 없애도 좋다. 그리고 내가 떠난 뒤 찬나 비구에게는 범단을 내려라."[불확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siyā kho panānanda, tumhākaṃ evamassa –
“아난다여, 그대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atītasatthukaṃ pāvacanaṃ, natthi no satthā’ti.
‘가르침은 스승이 지나가 버린 것이 되었고, 우리에게 스승은 없다’고.
Na kho panetaṃ, ānanda, evaṃ daṭṭhabbaṃ.
그러나 아난다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아난다여, 내가 그대들에게 설하고 제정한 법과 율, 그것이 내가 떠난 뒤 그대들의 스승이다.
Yathā kho panānanda, etarahi bhikkhū aññamaññaṃ āvusovādena samudācaranti, na kho mamaccayena evaṃ samudācaritabbaṃ.
아난다여, 지금 비구들이 서로 ‘벗이여’라는 말로 부르는 것처럼, 내가 떠난 뒤에는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Theratarena, ānanda, bhikkhunā navakataro bhikkhu nāmena vā gottena vā āvusovādena vā samudācaritabbo.
아난다여, 더 나이 든 비구는 더 젊은 비구를 이름으로나 성으로나 ‘벗이여’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Navakatarena bhikkhunā therataro bhikkhu ‘bhante’ti vā ‘āyasmā’ti vā samudācaritabbo.
더 젊은 비구는 더 나이 든 비구를 ‘존자시여’라거나 ‘존자여’라고 불러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kaṅkhamāno, ānanda, saṅ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atu.
아난다여,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떠난 뒤 사소하고 자잘한 학습계율들은 없애도 좋다.
Channassa, ānanda, bhikkhuno mamaccayena brahmadaṇḍo dātabbo’’ti.
아난다여, 내가 떠난 뒤 찬나 비구에게는 브라흐마의 벌을 주어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이시여, 범단이란 무엇입니까?" "아난다야, 찬나 비구는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이든 해도 된다. 비구들은 그에게 말을 걸어서도, 타일러서도, 가르쳐서도 안 된다."
‘‘Katamo pana, bhante, brahmadaṇḍo’’ti?
“세존이시여, 브라흐마의 벌이란 무엇입니까?”
‘‘Channo, ānanda, bhikkhu yaṃ iccheyya, taṃ vadeyya.
“아난다여, 찬나 비구는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하라.
So bhikkhūhi neva vattabbo, na ovaditabbo, na anusāsitabbo’’ti.
그를 두고 비구들은 말도 걸지 말고, 훈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야 한다.”
217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단 한 비구에게라도 부처님이나 법, 승가, 길, 수행 방법에 대해 의심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물어라, 비구들이여.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세존께 직접 여쭙지 못했다.' 하고 말이다." 그러나 비구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
“비구들이여, 한 비구에게라도 부처님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승가에 대해서나 길에 대해서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나 의혹이 있을 수 있다. 비구들이여, 물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ṃ sakkhimhā bhagavantaṃ sammukhā paṭipucchitu’’’ nti.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세존께 마주하여 되묻지 못했다’고.”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잠자코 있었다.
세존께서는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단 한 비구에게라도 부처님이나 법, 승가, 길, 수행 방법에 대해 의심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물어라, 비구들이여.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세존께 직접 여쭙지 못했다.' 하고 말이다." 세 번째에도 비구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Dutiyampi kho bhagavā…pe… tatiyampi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두 번째로도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한 비구에게라도 부처님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승가에 대해서나 길에 대해서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나 의혹이 있을 수 있다. 비구들이여, 물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세존께 마주하여 되묻지 못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잠자코 있었다.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6:217.1 ~ PN:dn16/217.4에서 되살렸습니다.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
“비구들이여, 한 비구에게라도 부처님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승가에 대해서나 길에 대해서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나 의혹이 있을 수 있다. 비구들이여, 물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ṃ sakkhimhā bhagavantaṃ sammukhā paṭipucchitu’’’ nti.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세존께 마주하여 되묻지 못했다’고.”
Ta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세 번째로도 그 비구들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 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벗이 벗에게 대신 전해 주어라." 그러나 이번에도 비구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siyā kho pana, bhikkhave, satthugāravenapi na puccheyyātha.
“비구들이여, 스승에 대한 존경 때문에 묻지 못할 수도 있다.
Sahāyakopi, bhikkhave, sahāyakassa ārocetū’’ti.
비구들이여, 벗이 벗에게 알려 주어라.”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비구 승가를 이만큼 믿습니다. 단 한 비구에게도 부처님이나 법, 승가, 길, 수행 방법에 대한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다고 말입니다." "아난다야, 너는 믿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는구나. 그러나 이 일은 여래가 직접 알고 있다. 이 비구 승가에는 단 한 비구에게도 부처님이나 법, 승가, 길, 수행 방법에 대한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다. 아난다야, 이 오백 비구 가운데 가장 뒤처진 비구라도 흐름에 든 이다. 그는 악한 곳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지니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해져 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evaṃ pasanno ahaṃ, bhante, imasmiṃ bhikkhusaṅghe, ‘natthi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ti.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비구 승가에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 ‘이 비구 승가에는 한 비구에게도 부처님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승가에 대해서나 길에 대해서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나 의혹이 없다’고.”
‘‘Pasādā kho tvaṃ, ānanda, vadesi, ñāṇameva hettha, ānanda, tathāgatassa.
“아난다여, 그대는 믿음으로 말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여기에는 여래에게 앎이 있다.
Natthi imasmiṃ bhikkhusaṅgh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이 비구 승가에는 한 비구에게도 부처님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승가에 대해서나 길에 대해서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나 의혹이 없다.
Imesañhi, ānanda, pañcannaṃ bhikkhusatānaṃ yo pacchimako bhikkhu, so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아난다여, 이 오백 비구 가운데 가장 뒤처진 비구라도 흐름에 든 이여서,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정해져 나아간다.”
218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자, 비구들이여, 이제 너희에게 당부한다. 모든 형성된 것은 스러지는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너희 일을 이루어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ti.
“자, 이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한다. 형성작용들은 사라지는 성질을 지녔다. 불방일로 이루어라.”
Ayaṃ tathāgatassa pacchimā vācā.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완전한 열반에 대한 이야기Parinibbutakathā
219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초선에 드셨고, 초선에서 나와 이선에, 이선에서 나와 삼선에, 삼선에서 나와 사선에 드셨다. 사선에서 나와 공간이 끝없음의 경지에 드셨다. 거기서 나와 의식이 끝없음의 경지에, 거기서 나와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드셨다. 다시 거기서 나와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이어 인식과 느낌이 그친 경지에 드셨다.
Atha kho bhagavā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그때 세존께서 초선에 드셨다. 초선에서 나오셔서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나오셔서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나오셔서 제4선에 드셨다.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ṃ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jji.
제4선에서 나오셔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 드셨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드셨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드셨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드셨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드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아누릇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누릇다 존자님,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아난다 벗이여, 세존께서는 아직 반열반에 드신 것이 아니오. 인식과 느낌이 그친 경지에 들어 계신 것이오."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인식과 느낌이 그친 경지에서 나와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드셨다. 거기서 나와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의식이 끝없음의 경지에, 공간이 끝없음의 경지에 차례로 드셨다. 이어 사선, 삼선, 이선, 초선으로 내려오셨다. 초선에서 나와 다시 이선에, 이선에서 나와 삼선에, 삼선에서 나와 사선에 드셨다. 사선에서 나오신 직후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셨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āyasmantaṃ anuruddhaṃ etadavoca –
그때 아난다 존자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parinibbuto, bhante anuruddha, bhagavā’’ti.
“아누룻다 존자시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Nāvuso ānanda, bhagavā parinibbuto,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nno’’ti.
“벗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니다.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드신 것이다.”
Atha kho bhagavā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ṃ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samanantarā bhagavā parinibbāyi.
그때 세존께서 인식과 느낌의 소멸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드셨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드셨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드셨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 드셨다. 공간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나오셔서 제4선에 드셨다. 제4선에서 나오셔서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나오셔서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나오셔서 초선에 드셨다. 초선에서 나오셔서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나오셔서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나오셔서 제4선에 드셨다. 제4선에서 나오신 바로 그 직후에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220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반열반과 동시에 온 땅이 크게 흔들렸다. 두렵고 소름 끼치는 일이 일어났고, 하늘의 북들도 울렸다. 또 반열반과 동시에 범천 사함빠띠가 이 게송을 읊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mahābhūmicālo ahosi bhiṃsanako salomahaṃso.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 완전한 열반과 함께 큰 지진이 일어났으니, 무섭고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그리고 하늘 북들이 터져 울렸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brahmāsahampati imaṃ gāthaṃ abhāsi –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 완전한 열반과 함께 사함빠띠 범천이 이 게송을 읊었다 —
“세상의 모든 존재가 / 마침내 이 몸을 내려놓으리라.
‘‘Sabbeva nikkhipissanti, bhūtā loke samussayaṃ;
“세상의 존재들은 모두 이 몸 덩어리를 내려놓으리라;
세상에 견줄 이 없는 / 이런 스승조차도,
Yattha etādiso satthā, loke appaṭipuggalo;
이 세상에 견줄 이 없는 이러한 스승께서,
힘을 갖추신 여래, 정각자께서도 /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니.”
Tathāgato balappatto, sambuddho parinibbuto’’ti.
힘을 갖추신 여래, 깨달으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거늘.”
221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반열반과 동시에 신들의 왕 삭까가 이 게송을 읊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sakko devānamindo imaṃ gāthaṃ abhāsi –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 완전한 열반과 함께 신들의 왕 삭까가 이 게송을 읊었다 —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덧없어 / 생겨나고 스러지는 것이 그 본성이라.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아, 형성작용들은 무상하여, 일어났다 사라지는 성질을 지녔네;
생겨났다 사라지나니 / 그것들이 고요히 가라앉음이 곧 행복이라.”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나니, 그것들이 가라앉음이 행복이네.”
222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반열반과 동시에 아누릇다 존자가 이 게송들을 읊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anuruddho imā gāthāyo abhāsi –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 완전한 열반과 함께 아누룻다 존자가 이 게송들을 읊었다 —
“들숨 날숨이 그쳤으니 / 마음 우뚝하신 여여한 분이여.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들숨도 날숨도 없었네, 마음이 굳건히 선 그런 분께는;
흔들림 없이 고요를 향해 / 성자께서 때를 맞이하셨네.
Anejo santimārabbha, yaṃ kālamakarī muni.
동요 없이 고요에 의지하여, 성자께서 때를 마치셨을 때.
움츠러듦 없는 마음으로 / 그분은 느낌을 견디어 내셨네.
‘‘Asallīnena cittena, vedanaṃ ajjhavāsayi;
“움츠러들지 않은 마음으로 느낌을 견디셨네;
등불이 꺼지듯 / 마음의 해탈이 이루어졌네.”
Pajjotasseva nibbānaṃ, vimokkho cetaso ahū’’ti.
등불이 꺼지듯, 마음의 해탈이 있었네.”
223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반열반과 동시에 아난다 존자가 이 게송을 읊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ānando imaṃ gāthaṃ abhāsi –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 완전한 열반과 함께 아난다 존자가 이 게송을 읊었다 —
“그때 두려움이 있었네 / 그때 소름이 돋았네,
‘‘Tadāsi yaṃ bhiṃsanakaṃ, tadāsi lomahaṃsanaṃ;
“그때 두려움이 있었고, 그때 털이 곤두섰네;
모든 면에서 뛰어나신 / 정각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
Sabbākāravarūpete, sambuddhe parinibbute’’ti.
온갖 훌륭한 모습을 두루 갖추신 깨달으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을 때.”
224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한 비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두 팔을 들고 울부짖었다. 몸이 베인 듯 쓰러지고,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좋은 길로 가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셨다." 하면서였다. 그러나 탐욕을 여읜 비구들은 마음을 챙기고 분명히 알면서 참아 냈다. "형성된 것은 덧없다. 여기서 달리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였다.
Parinibbute bhagavati ye te tattha bhikkhū avītarāgā appekacce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ṃ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hito’’ti.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거기 있던 비구들 가운데 탐욕을 여의지 못한 이들은 더러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뒹굴고 굴렀다 — “너무 이르게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세상에서 눈이 사라졌다”고.
Ye pana te bhikkhū vītarāgā, te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
그러나 탐욕을 여읜 비구들은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견뎠다 —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형성작용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겠는가”라고.
225
그때 아누릇다 존자가 비구들을 불러 말했다. "그만두시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탄식하지 마시오. 벗들이여, 세존께서 미리 말씀해 두시지 않았소?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달라지고 헤어지고 바뀌게 마련이다.' 라고 말이오. 벗들이여, 여기서 달리 어떻게 할 수 있겠소. '생겨나고 있고 지어졌고 무너지는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벗들이여, 신들이 불평하고 있소." "아누릇다 존자님, 존자께서는 신들이 어떠하다고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아난다 벗이여, 허공에서 땅이라는 생각을 지닌 신들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고 있소. 두 팔을 들고 울고, 몸이 베인 듯 쓰러지고, 이리저리 몸부림치고 있소.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좋은 길로 가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셨다.' 하면서 말이오. 아난다 벗이여, 땅에서 땅이라는 생각을 지닌 신들도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고 있소. 두 팔을 들고 울고, 몸이 베인 듯 쓰러지고, 이리저리 몸부림치고 있소.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좋은 길로 가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셨다.' 하면서 말이오. 그러나 탐욕을 여읜 신들은 마음을 챙기고 분명히 알면서 참아 내고 있소. '형성된 것은 덧없다. 여기서 달리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말이오." 그리하여 아누릇다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그 밤의 남은 시간을 법을 이야기하며 보냈다.
Atha kho āyasmā anuruddho bhikkhū āmantesi –
그때 아누룻다 존자가 비구들을 불렀다 —
‘‘alaṃ,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그만두라,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비탄해하지 말라.
Nanu etaṃ, āvuso, bhagavatā paṭikacceva akkhātaṃ –
벗들이여, 세존께서 미리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갈라짐이 있고, 떨어짐이 있고, 달라짐이 있다’고.
Taṃ kutettha, āvuso, labbhā.
벗들이여,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겠는가.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vata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태어났고 존재하게 되었고 형성되었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을 두고, 그것이 부디 무너지지 말라’ 함은, 그런 도리는 있을 수 없다.
Devatā, āvuso, ujjhāyantī’’ti.
벗들이여, 신들이 못마땅해한다.”
‘‘Kathaṃbhūtā pana, bhante, āyasmā anuruddho devatā manasi karotī’’ti?
“존자시여,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신들을 어떤 상태로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Santāvuso ānanda, devatā ākāse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벗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이라는 인식을 지닌 신들이 있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뒹굴고 구른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ṃ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hito’ti.
‘너무 이르게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세상에서 눈이 사라졌다’고.
Santāvuso ānanda, devatā pathaviyā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벗 아난다여, 땅에서 땅이라는 인식을 지닌 신들이 있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뒹굴고 구른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ṃ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hito’ti.
‘너무 이르게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세상에서 눈이 사라졌다’고.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
그러나 탐욕을 여읜 신들은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견딘다 —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형성작용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겠는가’라고.”
Atha kho 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ānando taṃ rattāvasesaṃ dhammiyā kathāya vītināmesuṃ.
그때 아누룻다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그 밤이 새도록 법다운 이야기로 지새웠다.
226
그러고 나서 아누릇다 존자가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했다. "아난다 벗이여, 꾸시나라로 들어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리시오.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지금이 때라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Atha kho āyasmā anuruddho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아누룻다 존자가 아난다 존자를 불렀다 —
‘‘gacchāvuso ānanda, kusināraṃ pavisitv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ārocehi –
“벗 아난다여, 가라. 꾸시나라에 들어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알려라 —
‘parinibbuto, vāseṭṭhā, bhagavā, yassadāni kālaṃ maññathā’’’ti.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고.”
아난다 존자는 "예, 존자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전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한 사람을 동반하여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어떤 일 때문에 회관에 모여 있었다. 아난다 존자는 그 회관으로 찾아가 말라족에게 알렸다.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지금이 때라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āyasmato anuruddhassa paṭissut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attadutiyo kusināraṃ pāvisi.
“예, 존자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께 응답한 뒤, 아침에 옷을 갖추어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한 사람을 벗 삼아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Tena kho pana samayena kosinārakā mallā sandhāgāre sannipatitā honti teneva karaṇīyena.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바로 그 일 때문에 회당에 모여 있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sandhāgāraṃ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의 회당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ārocesi –
다가가서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알렸다 —
‘parinibbuto, vāseṭṭhā, bhagavā, yassadāni kālaṃ maññathā’ti.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고.
아난다 존자의 이 말을 듣고 말라족 남자들과 그 아들들, 며느리들과 아내들은 괴로워하고 낙담하며 마음의 고통에 사로잡혔다. 어떤 이들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고, 두 팔을 들고 울고, 몸이 베인 듯 쓰러지고,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좋은 길로 가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에 드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셨다."
Idamāyasmato ānandassa vacanaṃ sutvā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appekacce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아난다 존자의 이 말을 듣고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괴로워하고 풀이 죽고 마음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더러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울부짖고, 팔을 치켜들고 울부짖고, 잘린 듯 쓰러지고, 뒹굴고 굴렀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ṃ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hito’’ti.
“너무 이르게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너무 이르게 세상에서 눈이 사라졌다”고.
붓다의 유해 공양Buddhasarīrapūjā
227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이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여보게들, 꾸시나라에 있는 향과 꽃다발과 악기를 모두 한곳에 모으시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purise āṇāpesuṃ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
‘‘tena hi, bhaṇe, kusinārāyaṃ gandhamālañca sabbañca tāḷāvacaraṃ sannipātethā’’ti.
“여봐라, 그렇다면 꾸시나라에 향과 화환과 온갖 악기를 모아라.”
말라족은 향과 꽃다발과 악기, 그리고 옷감 오백 벌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말라족의 우빠왓따나 살라 숲, 세존의 몸을 모신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세존의 몸을 공경하고 받들며 공양했다. 천으로 천막을 치고 둥근 천막 모양의 공양 처소도 꾸몄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gandhamālañca sabbañca tāḷāvacaraṃ pañca ca dussayugasatāni ādāya yena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yena bhagavato sarīraṃ tenupasaṅkamiṃsu;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향과 화환과 온갖 악기와 오백 쌍의 천을 가지고, 말라들의 우빠왓따나 살라 숲으로, 세존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o sarīraṃ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celavitānāni karontā maṇḍalamāḷe paṭiyādentā ekadivasaṃ vītināmesuṃ.
다가가서는 세존의 유해를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천 차양을 만들고 원형 천막을 마련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때 말라족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세존의 몸을 화장하기에 너무 늦었다. 내일 화장하도록 하자.” 그래서 이튿날에도 똑같이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공양하며 천막과 공양 처소를 꾸몄다. 사흘째, 나흘째, 닷새째, 엿새째도 그렇게 보냈다.[불확실]
Atha kho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etadahosi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ativikālo kho ajja bhagavato sarīraṃ jhāpetuṃ, sve dāni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jhāpessāmā’’ti.
“오늘은 세존의 유해를 화장하기에 너무 늦었다. 내일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화장하자.”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aṃ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celavitānāni karontā maṇḍalamāḷe paṭiyādentā dutiyampi divasaṃ vītināmesuṃ, tatiyampi divasaṃ vītināmesuṃ, catutthampi divasaṃ vītināmesuṃ, pañcamampi divasaṃ vītināmesuṃ, chaṭṭhampi divasaṃ vītināmesuṃ.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세존의 유해를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천 차양을 만들고 원형 천막을 마련하면서 둘째 날도 보냈고, 셋째 날도 보냈고, 넷째 날도 보냈고, 다섯째 날도 보냈고, 여섯째 날도 보냈다.
이렛날이 되자 말라족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공양하면서 세존의 몸을 모시고 가자. 성의 남쪽으로 남쪽 길을 따라가서 성 밖 남쪽의 바깥길에서 화장하자.”[불확실]
Atha kho sattamaṃ divasaṃ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etadahosi –
그때 일곱째 날에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dakkhiṇena dakkhiṇaṃ nagarassa haritvā bāhirena bāhiraṃ dakkhiṇato nagarassa bhagavato sarīraṃ jhāpessāmā’’ti.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남쪽으로 도시의 남쪽을 거쳐 옮기고, 바깥으로 도시의 바깥을 거쳐 도시의 남쪽에서 세존의 유해를 화장하자.”
228
그런데 그때 말라족의 우두머리 여덟 사람이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었다. 그리고 “우리가 세존의 몸을 들어 올리자” 하며 나섰다. 그러나 들어 올리지 못했다. 말라족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님,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은 우두머리 여덟 사람이 세존의 몸을 들어 올리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들어 올리지 못합니다. 무슨 원인이고 무슨 까닭입니까?”
Tena kho pana samayena aṭṭha mallapāmokkhā sīsaṃ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uccāressāmā’’ti na sakkonti uccāretuṃ.
그때 여덟 명의 말라 우두머리가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고서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들어 올리자” 하였으나 들어 올릴 수 없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ṃ anuruddhaṃ etadavocuṃ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아누룻다 존자께 이렇게 여쭈었다 —
‘‘ko nu kho, bhante anuruddha, hetu ko paccayo, yenime aṭṭha mallapāmokkhā sīsaṃ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uccāressāmā’ti na sakkonti uccāretu’’nti?
“아누룻다 존자시여, 무슨 원인 무슨 조건으로 이 여덟 말라 우두머리가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고서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들어 올리자’ 하는데도 들어 올릴 수 없습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과 천신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존자님, 그러면 천신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Aññathā kho, vāseṭṭhā, tumhākaṃ adhippāyo, aññathā devatānaṃ adhippāyo’’ti.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이 다르고 신들의 뜻이 다르다.”
‘‘Kathaṃ pana, bhante, devatānaṃ adhippāyo’’ti?
“그렇다면 존자시여, 신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은 이러하다.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세존의 몸을 공경하고 받들며 공양하겠다. 성의 남쪽으로 남쪽 길을 따라 모시고 가서, 성 밖 남쪽의 바깥길에서 화장하겠다.’
‘‘Tumhākaṃ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은 이러하다 —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dakkhiṇena dakkhiṇaṃ nagarassa haritvā bāhirena bāhiraṃ dakkhiṇato nagarassa bhagavato sarīraṃ jhāpessāmā’ti;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남쪽으로 도시의 남쪽을 거쳐 옮기고, 바깥으로 도시의 바깥을 거쳐 도시의 남쪽에서 세존의 유해를 화장하자’고;
와셋타들이여, 천신들의 뜻은 이러하다. ‘우리는 하늘의 춤과 노래와 음악과 향으로 세존의 몸을 공경하고 받들며 공양하겠다. 성의 북쪽으로 북쪽 길을 따라 모시고 가겠다. 북문으로 성안에 들어가 한가운데를 지나, 동문으로 나오겠다. 그리고 성 동쪽 말라족의 사당 마꾸따반다나에서 화장하겠다.’” “존자님, 천신들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devatānaṃ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은 이러하다 —
‘mayaṃ bhagavato sarīraṃ dibbehi naccehi gītehi vādit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uttarena uttaraṃ nagarassa haritvā uttarena dvārena nagaraṃ pavesetvā majjhena majjhaṃ nagarassa haritvā puratthimena dvārena nikkhamitvā puratthimato nagarassa makuṭabandhanaṃ nāma mallānaṃ cetiyaṃ ettha bhagavato sarīraṃ jhāpessāmā’ti.
‘우리가 세존의 유해를 하늘의 춤과 노래와 음악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북쪽으로 도시의 북쪽을 거쳐 옮기고,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가, 가운데로 도시의 한가운데를 거쳐 옮기고, 동문으로 나가,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이름의 말라들의 탑묘, 거기서 세존의 유해를 화장하자’고.”
‘‘Yathā, bhante, devatānaṃ adhippāyo, tathā hotū’’ti.
“존자시여, 신들의 뜻대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229
그러자 꾸시나라 온 도시가 만다라 꽃으로 덮였다. 골목 어귀와 쓰레기 더미와 오물 구덩이까지 무릎 높이로 쌓였다. 천신들과 말라족은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을 아울러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세존의 몸을 공경하고 공양했다. 성의 북쪽으로 북쪽 길을 따라 모시고 가서, 북문으로 들어가 성의 한가운데를 지났다. 동문으로 나온 뒤에는 성 동쪽의 마꾸따반다나에 세존의 몸을 모셔 두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kusinārā yāva sandhisamalasaṃkaṭīrā jaṇṇumattena odhinā mandāravapupphehi santhatā hoti.
그때 꾸시나라는 골목과 도랑과 쓰레기 더미에 이르기까지 무릎 높이만큼 만다라와 꽃으로 덮여 있었다.
Atha kho devatā ca kosinārakā ca mallā bhagavato sarīraṃ dibbehi ca mānusakehi ca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ṃ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uttarena uttaraṃ nagarassa haritvā uttarena dvārena nagaraṃ pavesetvā majjhena majjhaṃ nagarassa haritvā puratthimena dvārena nikkhamitvā puratthimato nagarassa makuṭabandhanaṃ nāma mallānaṃ cetiyaṃ ettha ca bhagavato sarīraṃ nikkhipiṃsu.
그때 신들과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세존의 유해를 하늘의 것과 인간의 것인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북쪽으로 도시의 북쪽을 거쳐 옮기고,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가, 가운데로 도시의 한가운데를 거쳐 옮기고, 동문으로 나가,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이름의 말라들의 탑묘, 바로 거기에 세존의 유해를 모셨다.
230
말라족이 아난다 존자에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 저희는 여래의 몸을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와셋타들이여, 전륜왕의 몸을 모시듯 여래의 몸도 모셔야 한다.” “전륜왕의 몸은 어떻게 모십니까?”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uṃ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아난다 존자께 이렇게 여쭈었다 —
‘‘kathaṃ mayaṃ, bhante ānanda,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āmā’’ti?
“아난다 존자시여, 저희가 여래의 유해를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Yathā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해를 모시는 것처럼, 그렇게 여래의 유해도 모셔야 한다.”
‘‘Kathaṃ pana, bhante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그렇다면 아난다 존자시여, 전륜성왕의 유해는 어떻게 모십니까?”
“와셋타들이여, 전륜왕의 몸은 먼저 새 천으로 감싼다. 그 위를 잘 빗은 솜으로 감싸고,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이렇게 오백 벌의 천으로 몸을 감싸서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는다. 다른 쇠통으로 위를 덮는다. 그러고는 온갖 향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아 화장한다. 그런 다음 큰 사거리에 전륜왕의 탑을 세운다.
‘‘Rañño, vāseṭṭhā, cakkavattissa sarīraṃ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해를 새 천으로 감고, 새 천으로 감은 뒤 손질한 솜으로 감고, 손질한 솜으로 감은 뒤 새 천으로 감는다.
Etena 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ṃ citakaṃ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jhāpenti.
이런 방식으로 오백 쌍의 천으로 전륜성왕의 유해를 감고, 쇠로 된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으로 덮고, 온갖 향으로 장작더미를 만들어 전륜성왕의 유해를 화장한다.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ṃ karonti.
네거리에 전륜성왕의 탑을 세운다.
와셋타들이여, 전륜왕의 몸은 이렇게 모신다. 여래의 몸도 그렇게 모셔야 한다.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꽃다발이나 향이나 가루를 올리고 예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맑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Evaṃ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해는 이렇게 모신다.
Yathā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ṃ.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해를 모시는 것처럼, 그렇게 여래의 유해도 모셔야 한다.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네거리에 여래의 탑을 세워야 한다.
Tattha ye mālaṃ vā gandhaṃ vā cuṇṇakaṃ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ṃ vā pasādessanti, tesaṃ taṃ bhavissa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향가루를 올리거나 절하거나 마음을 밝히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말라족은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여보게들, 말라족이 가진 잘 빗은 솜을 모두 모으시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purise āṇāpesuṃ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
‘‘tena hi, bhaṇe, mallānaṃ vihataṃ kappāsaṃ sannipātethā’’ti.
“여봐라, 그렇다면 말라들의 손질한 솜을 모아라.”
그러고는 세존의 몸을 새 천으로 감쌌다. 그 위를 잘 빗은 솜으로 감싸고, 다시 새 천으로 감쌌다. 이렇게 오백 벌의 천으로 감싼 몸을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으로 덮었다. 온갖 향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아 그 위에 세존의 몸을 올렸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aṃ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suṃ,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suṃ.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세존의 유해를 새 천으로 감은 뒤 손질한 솜으로 감았고, 손질한 솜으로 감은 뒤 새 천으로 감았다.
Etena upāyena pañcahi yugasatehi bhagavato sarīraṃ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ṃ citakaṃ karitvā bhagavato sarīraṃ citakaṃ āropesuṃ.
이런 방식으로 오백 쌍의 천으로 세존의 유해를 감고, 쇠로 된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으로 덮고, 온갖 향으로 장작더미를 만들어 세존의 유해를 장작더미에 올렸다.
마하깟사빠 장로 이야기Mahākassapattheravatthu
231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는 오백 명쯤 되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있었다.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가는 큰길을 가던 중이었다. 존자는 길에서 벗어나 어느 나무 아래에 앉았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mahākassapo pāvāya kusināraṃ addhānamaggappaṭippanno ho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pañcamattehi bhikkhusatehi.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오백 명쯤 되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먼 길을 가고 있었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maggā okkamma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는 길에서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때 어떤 아지위카 수행자가 꾸시나라에서 오고 있었다. 만다라 꽃을 들고 빠와로 가는 큰길을 걷는 중이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그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aññataro ājīvako kusinārāya mandāravapupphaṃ gahetvā pāvaṃ addhānamaggappaṭippanno hoti.
그때 어떤 아지와까가 꾸시나라에서 만다라와 꽃을 가지고 빠와로 먼 길을 가고 있었다.
Addasā kho āyasmā mahākassapo taṃ ājīvakaṃ dūratova āgacchantaṃ, disvā taṃ ājīvakaṃ etadavoca –
마하깟사빠 존자는 그 아지와까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고, 보고서 그 아지와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
“벗이여, 그대는 우리 스승을 아는가?” “예, 벗이여, 압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는 오늘로 이레 전에 반열반하셨습니다. 이 만다라 꽃은 그때 거기서 가져온 것입니다.”
‘‘apāvuso, amhākaṃ satthāraṃ jānāsī’’ti?
“벗이여, 그대는 우리 스승을 아는가?”
‘‘Āmāvuso, jānāmi, ajja sattāhaparinibbuto samaṇo gotamo.
“그렇습니다, 벗이여, 압니다. 오늘로 사문 고따마께서 반열반하신 지 이레째입니다.
Tato me idaṃ mandāravapupphaṃ gahita’’nti.
그래서 제가 이 만다라와 꽃을 가져왔습니다.”
아직 탐욕을 떠나지 못한 비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팔을 뻗어 울부짖었다. 잘려 나간 사람처럼 쓰러지고, 이리저리 구르고 뒹굴었다. “세존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셨다. 복되신 분께서 너무 일찍 반열반하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일찍 사라지셨다.”[불확실]
Tattha ye te bhikkhū avītarāgā appekacce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
거기서 탐욕을 여의지 못한 비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팔을 뻗어 울부짖고, 베인 듯 쓰러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다[불확실]
불확실 —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ṃ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hito’’ti.
“세존께서 너무 빨리 반열반하셨다.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너무 빨리 반열반하셨다. 세상의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그러나 탐욕을 떠난 비구들은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놓지 않고 참아 냈다. “형성된 것들은 덧없다. 그런데 여기서 어찌 다른 것을 바라겠는가.”[불확실]
Ye pana te bhikkhū vītarāgā, te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
그러나 탐욕을 여읜 비구들은 마음을 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견뎠다[불확실]
불확실 —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형성작용은 무상하다.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겠는가.”
232
그때 그 모임에 수밧다라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이 들어 출가한 이였다. 그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그만하시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마시오, 탄식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 대사문에게서 잘 벗어났소.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vuddhapabbajito tassaṃ parisāyaṃ nisinno hoti.
그때 수밧다라는 이름의 늦게 출가한 이가 그 무리에 앉아 있었다.
Atha kho subhaddo vuddhapabbajito te bhikkhū etadavoca –
그때 늦게 출가한 수밧다가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alaṃ,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sumuttā mayaṃ tena mahāsamaṇena.
“됐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라, 비탄하지 말라. 우리는 그 큰 사문에게서 잘 벗어났다.
우리는 시달렸소. ‘이것은 그대들에게 허용되고, 이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는 말에 말이오. 이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으면 되오.”
Upaddutā ca homa –
우리는 시달렸다 —
‘idaṃ vo kappati, idaṃ vo na kappatī’ti.
‘이것은 그대들에게 맞다, 이것은 그대들에게 맞지 않다’고.
Idāni pana mayaṃ yaṃ icchissāma, taṃ karissāma, yaṃ na icchissāma, na taṃ karissāmā’’ti.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원하는 것은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존자가 비구들을 불러 말했다. “그만하게,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게. 세존께서 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불확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bhikkhū āmantesi –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비구들을 불렀다[불확실]
불확실 —
‘‘alaṃ,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됐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라, 비탄하지 말라.
Nanu etaṃ, āvuso, bhagavatā paṭikacceva akkhātaṃ –
벗들이여, 세존께서 이것을 미리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헤어지고 떨어지고 달라지게 마련이다.’ 벗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어찌 다른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생겨나고 존재하고 만들어졌고 무너지는 것이 있다. 그것이 여래의 몸조차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고 떨어지고 달라진다’고.
Taṃ kutettha, āvuso, labbhā.
벗들이여, 여기서 그것을 어찌 얻겠는가.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tathāgatassāpi sarīraṃ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태어나고 생겨나고 형성되어 부서지기 마련인 그것이, 여래의 몸이라 해도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런 도리는 없다.”
233
그때 말라족의 우두머리 네 사람이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었다. 그들은 “우리가 세존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하며 나섰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 못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cattāro mallapāmokkhā sīsaṃ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
그때 네 명의 말라 우두머리가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고서 —
‘‘mayaṃ bhagavato citakaṃ āḷimpessāmā’’ti na sakkonti āḷimpetuṃ.
“우리가 세존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하였으나 불을 붙일 수 없었다.
말라족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님,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은 우두머리 네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붙이지 못합니다. 무슨 원인이고 무슨 까닭입니까?”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ṃ anuruddhaṃ etadavocuṃ –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아누룻다 존자께 이렇게 여쭈었다 —
‘‘ko nu kho, bhante anuruddha, hetu ko paccayo, yenime cattāro mallapāmokkhā sīsaṃ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
“아누룻다 존자시여, 무슨 원인 무슨 조건으로 이 네 말라 우두머리가 머리를 감고 새 옷을 입고서 —
‘mayaṃ bhagavato citakaṃ āḷimpessāmā’ti na sakkonti āḷimpetu’’nti?
‘우리가 세존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하는데도 불을 붙일 수 없습니까?”
“와셋타들이여, 천신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존자님, 그러면 천신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Aññathā kho, vāseṭṭhā, devatānaṃ adhippāyo’’ti.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이 다르다.”
‘‘Kathaṃ pana, bhante, devatānaṃ adhippāyo’’ti?
“그렇다면 존자시여, 신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와셋타들이여, 천신들의 뜻은 이러하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오백 명쯤 되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오고 있다.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오는 큰길을 가는 중이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기 전에는 장작더미에 불이 붙지 않을 것이다.’”
‘‘Devatānaṃ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은 이러하다 —
‘ayaṃ āyasmā mahākassapo pāvāya kusināraṃ addhānamaggappaṭippan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pañcamattehi bhikkhusatehi.
‘이 마하깟사빠 존자가 오백 명쯤 되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먼 길을 오고 있다.
Na tāva bhagavato citako pajjalissati, yāvāyasmā mahākassapo bhagavato pāde sirasā na vandissatī’’’ti.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하기 전까지는 세존의 장작더미에 불이 붙지 않을 것이다’고.”
“존자님, 천신들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Yathā, bhante, devatānaṃ adhippāyo, tathā hotū’’ti.
“존자시여, 신들의 뜻대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234
마하깟사빠 존자는 꾸시나라 말라족의 사당 마꾸따반다나로 갔다. 세존의 장작더미가 있는 곳이었다. 존자는 가사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한 채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다. 그러고는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했다. 오백 명의 비구들도 똑같이 가사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해서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다. 그리고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했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yena kusinārā makuṭabandhanaṃ nāma mallānaṃ cetiyaṃ, yena bhagavato citako tenupasaṅkami;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는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이름의 말라들의 탑묘로, 세존의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ekaṃsaṃ cīvaraṃ katvā añjaliṃ paṇāmetvā tikkhattuṃ citakaṃ padakkhiṇaṃ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
다가가서는 가사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하고서,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했다.
Tānipi kho pañcabhikkhusatāni ekaṃsaṃ cīvaraṃ katvā añjaliṃ paṇāmetvā tikkhattuṃ citakaṃ padakkhiṇaṃ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ṃsu.
그 오백 명의 비구들도 가사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하고서,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했다.
마하깟사빠 존자와 오백 명의 비구들이 절을 올리자, 세존의 장작더미는 저절로 불타올랐다.
Vandite ca panāyasmatā mahākassapena tehi ca pañcahi bhikkhusatehi sayameva bhagavato citako pajjali.
마하깟사빠 존자와 그 오백 명의 비구들이 절하자, 세존의 장작더미는 저절로 타올랐다.
235
세존의 몸이 타는 동안 살갗도, 가죽도, 살도, 힘줄도, 관절의 윤활액도 재나 그을음을 남기지 않았다. 사리만 남았다. 버터나 기름이 탈 때 재도 그을음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았다. 세존의 몸이 탈 때도 그러했다. 살갗이든 가죽이든 살이든 힘줄이든 관절의 윤활액이든, 재도 그을음도 보이지 않았고 사리만 남았다.
Jhāyamānassa kho pana bhagavato sarīrassa yaṃ ahosi chavīti vā cammanti vā maṃsanti vā nhārūti vā lasikāti vā, tassa neva chārikā paññāyittha, na masi;
세존의 유해가 타는 동안, 살갗이라 하든 속살가죽이라 하든 살이라 하든 힘줄이라 하든 관절액이라 하든, 있던 그것은 재도 검댕도 보이지 않았다;
sarīrāneva avasissiṃsu.
오직 유해만 남았다.
Seyyathāpi nāma sappissa vā telassa vā jhāyamānassa neva chārikā paññāyati, na masi;
마치 버터기름이나 기름이 탈 때 재도 검댕도 보이지 않듯이;
evameva bhagavato sarīrassa jhāyamānassa yaṃ ahosi chavīti vā cammanti vā maṃsanti vā nhārūti vā lasikāti vā, tassa neva chārikā paññāyittha, na masi;
바로 이와 같이 세존의 유해가 타는 동안, 살갗이라 하든 속살가죽이라 하든 살이라 하든 힘줄이라 하든 관절액이라 하든, 있던 그것은 재도 검댕도 보이지 않았다;
sarīrāneva avasissiṃsu.
오직 유해만 남았다.
오백 벌의 천 가운데 가장 안쪽 것과 가장 바깥쪽 것, 두 벌만은 타지 않았다. 세존의 몸이 다 타자 하늘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 물이 장작더미의 불을 껐다.
Tesañca pañcannaṃ dussayugasatānaṃ dveva dussāni na ḍayhiṃsu yañca sabbaabbhantarimaṃ yañca bāhiraṃ.
그 오백 쌍의 천 가운데 두 벌만은 타지 않았으니, 맨 안쪽의 것과 맨 바깥쪽의 것이었다.
Daḍḍhe ca kho pana bhagavato sarīre antalikkhā udakadhārā pātubhavitvā bhagavato citakaṃ nibbāpesi.
세존의 유해가 다 타자, 공중에서 물줄기가 나타나 세존의 장작더미를 껐다.
샘물 저장소에서도 물이 솟아올라 불을 껐다. 꾸시나라의 말라족도 온갖 향을 푼 물로 세존의 장작더미의 불을 껐다.[불확실]
Udakasālatopi abbhunnamitvā bhagavato citakaṃ nibbāpesi.
물의 살라 나무에서도 물이 솟구쳐 올라 세존의 장작더미를 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osinārakāpi mallā sabbagandhodakena bhagavato citakaṃ nibbāpesuṃ.
꾸시나라의 말라들도 온갖 향물로 세존의 장작더미를 껐다.
그러고 나서 말라족은 세존의 사리를 이레 동안 회관에 모셔 두었다. 창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활로 담을 쳤다. 그리고 춤과 노래와 음악과 꽃다발과 향으로 공경하고 받들며 공양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āni sattāhaṃ sandhāgāre sattipañjaraṃ karitvā dhanupākāraṃ parikkhipāpetv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iṃsu garuṃ kariṃsu mānesuṃ pūjesuṃ.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세존의 유해를 이레 동안 집회당에 모시고, 창으로 우리를 만들고 활로 담을 둘러치게 한 뒤,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했다.
유해 사리의 분배Sarīradhātuvibhājanaṃ
236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가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는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나도 크샤트리아입니다. 나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나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i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가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i –
그때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ahampi khattiyo, ahampi arahāmi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ah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나도 끄샤뜨리야다. 나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나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웨살리의 릿차위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우리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vesālikā licchavī –
웨살리의 릿차위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vesālikā licchavī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웨살리의 릿차위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는 우리 친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십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kapilavatthuvāsī sakyā –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kapilavatthuvāsī saky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 amhākaṃ ñātiseṭṭho,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는 우리의 으뜸가는 친족이시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우리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allakappakā bulayo –
알라깝빠의 불리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allakappakā bulayo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알라깝빠의 불리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우리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rāmagāmakā koḷiyā –
라마가마의 꼴리야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rāmagāmakā koḷiy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라마가마의 꼴리야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웨타디빠의 바라문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도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는 크샤트리아이시고 나는 바라문입니다. 나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나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i kho veṭṭhadīpako brāhmaṇo –
웻타디빠의 바라문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veṭṭhadīpako brāhmaṇo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i –
그때 웻타디빠의 바라문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ahaṃ pismi brāhmaṇo, ahampi arahāmi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ah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세존께서는 끄샤뜨리야이시고 나는 바라문이다. 나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나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빠와의 말라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우리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pāveyyakā mallā –
빠와의 말라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pāveyyakā mall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빠와의 말라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이런 말을 듣고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세존께서는 우리 마을 땅에서 반열반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를 나누어 드리지 않겠습니다.”
Evaṃ vutte kosinārakā mallā te saṅghe gaṇe etadavocuṃ –
이렇게 말하자, 꾸시나라의 말라들이 그 무리와 모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bhagavā amhākaṃ gāmakkhette parinibbuto, na mayaṃ dass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nti.
“세존께서는 우리 마을 땅에서 반열반하셨다. 우리는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도 주지 않겠다.”
237
이렇게 말하자 도나 바라문이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Evaṃ vutte doṇo brāhmaṇo te saṅghe gaṇe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도나 바라문이 그 무리와 모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러분, 들어 주오, 나의 이 한마디를.
‘‘Suṇantu bhonto mama ekavācaṃ,
“존자들이여, 저의 한마디를 들으십시오,
우리의[불확실]
Amhāka;
우리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부처님은 인욕을 가르치신 분이셨소.
Buddho ahu khantivādo;
붓다께서는 인욕을 말씀하신 분이셨습니다;
어찌 옳다 하리오, 가장 높으신 분의[불확실]
Na hi sādhu yaṃ uttamapuggalassa,
참으로 좋지 않습니다, 으뜸가는 분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유골 몫을 두고서 서로 맞붙는다면.
Sarīrabhāge siyā sampahāro.
유해 몫을 두고 다툼이 있다면.
여러분 모두 함께 한마음이 되어[불확실]
Sabbeva bhonto sahitā samaggā,
존자들이여, 모두 함께 화합하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서로 기꺼이 여덟 몫으로 나눕시다.
Sammodamānā karomaṭṭhabhāge;
기쁘게 여덟 몫으로 나눕시다;
사방 곳곳에 탑을 널리 세웁시다,
Vitthārikā hontu disāsu thūpā,
탑들이 사방에 널리 퍼지고,
눈 갖추신 그분께 뭇사람이 믿음 내도록.’’
Bahū janā cakkhumato pasannā’’ti.
많은 사람이 눈 가지신 분께 청정한 믿음을 내기를.”
238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그대가 직접 세존의 사리를 여덟 몫으로 고르게 잘 나누어 주시오.” 도나 바라문은 “그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고 답했다. 그는 무리들의 말에 따라 사리를 여덟 몫으로 고르게 나누었다. 그런 뒤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 항아리를 제게 주십시오. 저도 항아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그들은 도나 바라문에게 항아리를 주었다.[불확실]
‘‘Tena hi, brāhmaṇa, tvaññeva bhagavato sarīrāni aṭṭhadhā samaṃ savibhattaṃ vibhajāhī’’ti.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그대가 세존의 유해를 여덟 몫으로 고르게 잘 나누어라.”
‘‘Evaṃ, bho’’ti kho doṇo brāhmaṇo tesaṃ saṅghānaṃ gaṇānaṃ paṭissutvā bhagavato sarīrāni aṭṭhadhā samaṃ suvibhattaṃ vibhajitvā te saṅghe gaṇe etadavoca –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고 도나 바라문은 그 무리와 모임들에게 대답한 뒤, 세존의 유해를 여덟 몫으로 고르게 잘 나누고서 그 무리와 모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불확실]
불확실 —
‘‘imaṃ me bhonto tumbaṃ dadantu ahampi tumbassa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존자들이여, 저에게 이 항아리를 주십시오. 저도 항아리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Adaṃsu kho te doṇassa brāhmaṇassa tumbaṃ.
그들은 도나 바라문에게 항아리를 주었다.
삐빠리와나의 모리야족도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자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크샤트리아이고 우리도 크샤트리아입니다. 우리도 세존의 사리 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리겠습니다.”
Assosuṃ kho pippalivaniyā moriyā –
삡빨리와나의 모리야들이 들었다 —
‘‘bhagavā kira kusinārāyaṃ parinibbuto’’ti.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한다.”
Atha kho pippalivaniyā moriyā kosinārakānaṃ mallānaṃ dūtaṃ pāhesuṃ –
그때 삡빨리와나의 모리야들은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냈다 —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aṃ,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 가운데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리겠다.”
“세존의 사리는 남은 몫이 없습니다. 이미 다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숯이나 가져가십시오.” 그들은 거기서 숯을 가져갔다.
‘‘Natthi bhagavato sarīrānaṃ bhāgo, vibhattāni bhagavato sarīrāni.
“세존의 유해에는 몫이 없다. 세존의 유해는 이미 나누어졌다.
Ito aṅgāraṃ harathā’’ti.
여기서 숯을 가져가라.”
Te tato aṅgāraṃ hariṃsu.
그들은 거기서 숯을 가져갔다.
사리탑 공양Dhātuthūpapūjā
239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는 라자가하에서 세존의 사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렸다. 웨살리의 릿차위족도 웨살리에서, 까삘라왓투의 사꺄족도 까삘라왓투에서,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알라깝빠에서 똑같이 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rājagah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āsi.
그때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는 라자가하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Vesālikāpi licchavī vesāli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웨살리의 릿차위들도 웨살리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Kapilavatthuvāsīpi sakyā kapilavatthusmi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들도 까삘라왓투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Allakappakāpi bulayo allakapp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알라깝빠의 불리들도 알라깝빠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라마가마의 꼴리야족은 라마가마에서, 웨타디빠의 바라문은 웨타디빠에서, 빠와의 말라족은 빠와에서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렸다. 꾸시나라의 말라족도 꾸시나라에서 그렇게 했다.
Rāmagāmakāpi koḷiyā rāmagām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라마가마의 꼴리야들도 라마가마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Veṭṭhadīpakopi brāhmaṇo veṭṭhadīp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āsi.
웻타디빠의 바라문도 웻타디빠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Pāveyyakāpi mallā pāvā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빠와의 말라들도 빠와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Kosinārakāpi mallā kusinārā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꾸시나라의 말라들도 꾸시나라에 세존의 유해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도나 바라문은 항아리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렸다. 삐빠리와나의 모리야족은 삐빠리와나에서 숯으로 탑을 세우고 공양 의식을 올렸다. 이렇게 사리탑이 여덟, 아홉째가 항아리 탑, 열째가 숯 탑이었다. 옛날에 이러했다고 한다.
Doṇopi brāhmaṇo tumbassa thūpañca mahañca akāsi.
도나 바라문도 항아리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Pippalivaniyāpi moriyā pippalivane aṅgā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삡빨리와나의 모리야들도 삡빨리와나에 숯으로 탑을 세우고 큰 공양을 올렸다.
Iti aṭṭha sarīrathūpā navamo tumbathūpo dasamo aṅgārathūpo.
이렇게 여덟 개의 유해탑과, 아홉째로 항아리탑과, 열째로 숯탑이 있었다.
Evametaṃ bhūtapubbanti.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240
눈 갖추신 분의 사리는 여덟 도나인데, 그 가운데 일곱 도나는 잠부디빠에서 공양받는다.
Aṭṭhadoṇaṃ cakkhumato sarīraṃ, sattadoṇaṃ jambudīpe mahenti.
눈 가지신 분의 유해는 여덟 도나, 일곱 도나를 잠부디빠에서 사람들이 공양한다.
한 도나는 사람 중 으뜸이신 분의 것, / 라마가마에서 용왕이 받드네.
Ekañca doṇaṃ purisavaruttamassa, rāmagāme nāgarājā maheti.
한 도나는 으뜸가는 사람의 것으로, 라마가마에서 용왕이 공양한다.
송곳니 하나는 삼십삼천이 받들고, / 또 하나는 간다라 도성에서 섬김받네.[불확실]
Ekāhi dāṭhā tidivehi pūjitā, ekā pana gandhārapure mahīyati;
어금니 하나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공양받고, 또 하나는 간다라의 도시에서 받들어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깔링가 왕의 나라에 또 하나 있고, / 남은 하나는 용왕이 받드네.
Kāliṅgarañño vijite punekaṃ, ekaṃ pana nāgarājā maheti.
다시 하나는 깔링가 왕의 나라에서, 또 하나는 용왕이 공양한다.
바로 그분의 위광으로 이 땅이,
Tasseva tejena ayaṃ vasundharā,
바로 그 위력으로 이 대지는,
이 대지가 으뜸 공양으로 꾸며졌네.
Āyāgaseṭṭhehi mahī alaṅkatā;
으뜸가는 공양처들로 장엄되었다;
이렇게 눈 갖추신 분의 이 유골은
Evaṃ imaṃ cakkhumato sarīraṃ,
이렇게 눈 가지신 분의 이 유해는,
존귀한 이 가운데 존귀한 이들이 정성껏 받들었네.
Susakkataṃ sakkatasakkatehi.
공경받는 이들에게 잘 공경받았다.
신들의 왕, 용들의 왕, 사람의 왕이 받들었고,
Devindanāgindanarindapūjito,
신들의 왕과 용들의 왕과 사람들의 왕에게 공양받고,
사람 가운데 으뜸인 이들도 그렇게 받들었네.
Manussindaseṭṭhehi tatheva pūjito;
사람들의 으뜸가는 왕들에게도 그와 같이 공양받았다;
그분께 합장하고 절하라, 이 기회를 얻었으니.
Taṃ vandatha pañjalikā labhitvā,
그대들은 합장하고 그것을 얻어 예배하라,
부처님은 참으로 백 겁에도 만나기 어려우니.
Buddho have kappasatehi dullabhoti.
붓다께서는 참으로 백 겁에도 만나기 어렵다.
마흔 개 가지런한 치아와 / 머리털과 몸털 그 모두를
Cattālīsa samā dantā, kesā lomā ca sabbaso;
마흔 개의 고른 이와, 머리카락과 몸의 털 모두;
신들이 하나씩 모셔 갔네, / 세계에서 세계로 이어 가며.[불확실]
Devā hariṃsu ekekaṃ, cakkavāḷaparamparāti.
신들이 하나씩 가져갔으니, 우주에서 우주로 차례차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하빠리닙바나 경, 셋째 경이 끝났다.
Mahāparinibbānasuttaṃ niṭṭhitaṃ tatiyaṃ.
마하빠리닙바나 경이 끝났다. 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