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āmaññaphalasuttaṃ
2. 사문됨의 결실 경
150
대신들과 나눈 이야기Rājāmaccakathā
나는 이렇게 들었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머물고 계셨다. 의사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이었다. 큰 비구 승가, 곧 비구 1,250명이 함께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jīvakassa komārabhaccassa ambavane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aḍḍhateḷasehi bhikkhusatehi.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로 이루어진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셨다.
그날은 포살일이었다. 꼬무다 달 넷째 달의 보름달이 뜬 밤, 위데히의 아들,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는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높은 궁전 위층에 앉아 있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adahuposathe pannarase komudiyā cātumāsiniyā puṇṇāya puṇṇamāya rattiyā rājāmaccaparivuto uparipāsādavaragato nisinno hoti.
그런데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포살일인 그날 보름, 넉 달마다 돌아오는 꼬무디의 만월, 꽉 찬 보름날 밤에, 대신들에 둘러싸여 궁전 꼭대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왕은 감흥어를 읊었다. “아, 달빛 환한 이 밤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참으로 곱고, 볼만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구나. 참으로 상서롭구나. 오늘 우리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 모신다면, 그를 모시는 동안 우리 마음이 맑아질까?”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adahuposathe udānaṃ udānesi –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포살일인 그날 이런 감흥어를 읊었다 —
‘‘ramaṇīyā vata bho dosinā ratti, abhirūpā vata bho dosinā ratti, dassanīyā vata bho dosinā ratti, pāsādikā vata bho dosinā ratti, lakkhaññā vata bho dosinā ratti.
“여보게들, 참으로 즐거운 달밤이로다. 여보게들, 참으로 아름다운 달밤이로다. 여보게들, 참으로 볼 만한 달밤이로다. 여보게들, 참으로 마음 맑아지는 달밤이로다. 여보게들, 참으로 상서로운 달밤이로다.
Kaṃ nu khvajja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payirupāseyyāma, yaṃ no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오늘 우리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가까이 섬길까? 우리가 가까이 섬기면 마음이 맑아질 그런 이를.”
151
이 말을 듣고 어느 대신이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뿌라나 깟사빠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뿌라나 깟사빠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뿌라나 깟사빠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Evaṃ vutte, aññatar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어떤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pūraṇo kassap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뿌라나 깟사빠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pūraṇaṃ kassap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뿌라나 깟사빠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pūraṇaṃ kassap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뿌라나 깟사빠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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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신도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막칼리 고살라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막칼리 고살라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막칼리 고살라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또 다른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makkhali gosāl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막칼리 고살라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makkhaliṃ gosāl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막칼리 고살라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makkhaliṃ gosāl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막칼리 고살라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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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신도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아지따 께사깜발라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아지따 께사깜발라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또 다른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ajito kesakambal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ajitaṃ kesakambal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아지따 께사깜발라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ajitaṃ kesakambal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아지따 께사깜발라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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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신도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빠꾸다 깟짜야나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빠꾸다 깟짜야나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빠꾸다 깟짜야나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또 다른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pakudho kaccāyan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빠꾸다 깟짜야나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pakudhaṃ kaccāyan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빠꾸다 깟짜야나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pakudhaṃ kaccāyan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빠꾸다 깟짜야나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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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신도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산자야 벨랏티뿟따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산자야 벨랏티뿟따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산자야 벨랏티뿟따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또 다른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sañcayaṃ belaṭṭhaputt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sañcayaṃ belaṭṭhaputt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산자야 벨랏타뿟따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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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신도 왕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폐하, 저 니간타 나따뿟따는 교단을 이끌고 제자 무리를 거느린 스승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은 교조이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니간타 나따뿟따를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니간타 나따뿟따를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있었다.
Aññataropi kho rājāmacco rājānaṃ māgadhaṃ ajātasattuṃ vedehiputtaṃ etadavoca –
또 다른 대신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ayaṃ, deva, nigaṇṭho nāṭaputt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
“신이시여, 이 니간타 나따뿟따는 무리를 거느린 이요 회중을 이끄는 이요 회중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지고 명성이 높으며 교단을 세운 이로서 많은 사람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연륜이 오래고 출가한 지 오래며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Taṃ devo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payirupāsatu.
신께서 그 니간타 나따뿟따를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니간타 나따뿟따를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하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자코 있었다.
꼬마라밧짜 지와까와 나눈 이야기Komārabhaccajīvakakat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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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의사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왕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지와까여, 그대는 왜 잠자코 있는가?”
Tena kho pana samayena jīvako komārabhacc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avidūre tuṇhībhūto nisinno hoti.
그런데 그때 지와까 꼬마라밧짜가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jīvakaṃ komārabhaccaṃ etadavoca –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지와까 꼬마라밧짜에게 이렇게 말했다 —
‘‘tvaṃ pana, samma jīvaka, kiṃ tuṇhī’’ti?
“그런데 벗 지와까여, 그대는 어찌하여 잠자코 있는가?”
“폐하, 세존께서 저희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십니다.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입니다. 큰 비구 승가, 곧 비구 1,250명과 함께이십니다. 세존께는 이런 아름다운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며, 밝은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분, 복된 길을 가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위없이 사람을 길들이는 분, 하늘과 사람의 스승, 깨달은 분, 세존이시다.’ 폐하께서는 세존을 찾아가 모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세존을 모시는 동안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릅니다.”
‘‘Ayaṃ, deva,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amhākaṃ ambavane vihara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aḍḍhateḷasehi bhikkhusatehi.
“신이시여, 이분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저희 망고 숲에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로 이루어진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십니다.
Taṃ kho pana bhagavantaṃ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그분 세존께는 이런 훌륭한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시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Taṃ devo bhagavantaṃ payirupāsatu.
신이시여, 그분 세존을 가까이 섬기소서.
Appeva nāma devassa bhagavantaṃ payirupāsato cittaṃ pasīdeyyā’ti.
신께서 세존을 가까이 섬기시면 아마도 마음이 맑아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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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와까여, 코끼리 수레를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폐하.” 지와까는 대답하고 암코끼리 500마리와 왕이 타는 수코끼리를 채비시켰다. 그런 뒤 왕에게 아뢰었다. “폐하, 코끼리 수레를 준비했습니다. 원하시는 때에 나서십시오.”[불확실]
‘‘Tena hi, samma jīvaka, hatthiyānāni kappāpehī’’ti.
“그렇다면 벗 지와까여, 코끼리 탈것들을 채비하게.”
‘‘Evaṃ, devā’’ti kho jīvako komārabhacc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ssuṇitvā pañcamattāni hatthinikāsatāni kappāpetvā rañño ca ārohaṇīyaṃ nāgaṃ,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vedesi –
“예, 신이시여” 하고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대답하고, 오백 마리 암코끼리를 채비하고 왕이 타실 코끼리도 채비한 뒤,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알렸다[불확실]
불확실 —
‘‘kappitāni kho te, deva, hatthiyānāni, yassadāni kālaṃ maññasī’’ti.
“신이시여, 코끼리 탈것들이 채비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소서.”
159
왕은 500마리 암코끼리에 여인들을 한 사람씩 태우고, 자신은 왕이 타는 수코끼리에 올랐다. 횃불을 밝혀 들게 하고 위풍당당한 왕의 위엄을 갖추어 라자가하를 나서, 지와까의 망고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망고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왕에게 두려움이 일었다. 몸이 굳고 털이 곤두섰다. 두렵고 놀란 왕은 지와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su hatthinikāsatesu paccekā itthiyo āropetvā ārohaṇīyaṃ nāgaṃ abhiruhitvā ukkāsu dhāriyamānāsu rājagahamhā niyyāsi mahaccarājānubhāvena, yena jīvakassa komārabhaccassa ambavanaṃ tena pāyāsi.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오백 마리 암코끼리에 여인들을 한 사람씩 태우고, 자기가 탈 코끼리에 올라, 횃불을 밝혀 들게 하고서 큰 왕의 위엄으로 라자가하를 나서서,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을 향해 나아갔다.
Atha kh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avidūre ambavanassa ahudeva bhayaṃ, ahu chambhitattaṃ, ahu lomahaṃso.
그런데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망고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두려움이 일고, 떨림이 일고, 털이 곤두섬이 일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īto saṃviggo lomahaṭṭhajāto jīvakaṃ komārabhaccaṃ etadavoca –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두렵고 떨리고 털이 곤두선 채 지와까 꼬마라밧짜에게 이렇게 말했다 —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속이거나 기만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를 적에게 넘기려는 것은 아니겠지? 1,250명이나 되는 큰 비구 승가에서 재채기 소리 하나, 기침 소리 하나,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다니, 어찌 된 일인가?”
‘‘kacci maṃ, samma jīvaka, na vañcesi?
“벗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Kacci maṃ, samma jīvaka, na palambhesi?
벗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홀리는 것은 아니겠지?
Kacci maṃ, samma jīvaka, na paccatthikānaṃ desi?
벗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적들에게 넘기는 것은 아니겠지?
Kathañhi nāma tāva mahato bhikkhusaṅghassa aḍḍhateḷasānaṃ bhikkhusatānaṃ neva khipitasaddo bhavissati, na ukkāsitasaddo na nigghoso’’ti.
어떻게 그토록 큰 비구 승가,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에게서 재채기 소리도 없고, 기침 소리도 없고, 아무 기척도 없단 말인가?”
“두려워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폐하, 저는 폐하를 속이지도 기만하지도 않습니다. 적에게 넘기지도 않습니다. 나아가십시오, 대왕이시여. 저기 둥근 누각에 등불들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Mā bhāyi, mahārāja, mā bhāyi, mahārāja.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Na taṃ deva, vañcemi;
신이시여, 저는 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na taṃ, deva, palambhāmi;
신이시여, 저는 신을 홀리지 않습니다.
na taṃ, deva, paccatthikānaṃ demi.
신이시여, 저는 신을 적들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Abhikkama, mahārāja, abhikkama, mahārāja, ete maṇḍalamāḷe dīpā jhāyantī’’ti.
대왕이시여, 나아가십시오. 대왕이시여, 나아가십시오. 저기 둥근 강당에 등불들이 타고 있습니다.”
사문됨의 결실에 대한 물음Sāmaññaphalapucchā
160
왕은 코끼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코끼리를 타고 가서, 내려서 걸어 둥근 누각의 문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지와까에게 물었다. “지와까여, 세존은 어디에 계신가?” “대왕이시여, 저분이 세존이십니다.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앉으시고, 비구 승가를 앞에 두고 계십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yāvatikā nāgassa bhūmi nāgena gantvā, nāgā paccorohitvā, pattikova yena maṇḍalamāḷassa dvāraṃ tenupasaṅkami;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코끼리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코끼리로 가서, 코끼리에서 내려, 걸어서 둥근 강당의 문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jīvakaṃ komārabhacc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지와까 꼬마라밧짜에게 이렇게 말했다 —
‘‘kahaṃ pana, samma jīvaka, bhagavā’’ti?
“그런데 벗 지와까여, 세존께서는 어디 계신가?”
‘‘Eso, mahārāja, bhagavā;
“대왕이시여, 저분이 세존이십니다.
eso, mahārāja, bhagavā majjhimaṃ thambhaṃ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inno purakkhato bhikkhusaṅghassā’’ti.
대왕이시여, 저분 세존께서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비구 승가의 앞자리에 모셔져 앉아 계십니다.”
161
왕은 세존께 다가가 한쪽에 섰다. 고요하고 또 고요한 비구 승가를 둘러보고는, 맑은 호수처럼 투명한 마음으로 감흥어를 읊었다. “지금 비구 승가가 지니고 있는 이 고요함을 나의 아들 우다이밧다 왕자도 갖추게 되기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사랑하는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하였구나.” 왕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우다이밧다 왕자는 제가 아끼는 아들입니다. 지금 비구 승가가 지니고 있는 이 고요함을 왕자도 갖추게 되기를 바랍니다.”[불확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다가가서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o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tuṇhībhūtaṃ tuṇhībhūtaṃ bhikkhusaṅghaṃ anuviloketvā rahadamiva vippasannaṃ udānaṃ udānesi –
한쪽에 선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잠잠하고 또 잠잠한, 맑은 못 같은 비구 승가를 둘러보고 이런 감흥어를 읊었다 —
‘‘iminā me upasamena udayabhaddo kumāro samannāgato hotu, yenetarahi upasamena bhikkhusaṅgho samannāgato’’ti.
“지금 비구 승가가 갖춘 이 고요함을, 내 우다야밧다 왕자도 갖추기를.”
‘‘Agamā kho tvaṃ, mahārāja, yathāpema’’nti.
“대왕이여, 그대는 애정이 가는 데로 갔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iyo me, bhante, udayabhaddo kumāro.
“세존이시여, 우다야밧다 왕자는 제게 사랑스럽습니다.
Iminā me, bhante, upasamena udayabhaddo kumāro samannāgato hotu yenetarahi upasamena bhikkhusaṅgho samannāgato’’ti.
세존이시여, 지금 비구 승가가 갖춘 이 고요함을 우다야밧다 왕자도 갖추기를 바랍니다.”
162
왕은 세존께 인사드리고 비구 승가를 향해 합장한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한 가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제 물음에 답해 주실 틈을 내 주시겠습니까?” “대왕이여, 묻고 싶은 대로 물으라.”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bhikkhusaṅghassa añjaliṃ paṇāmetvā, ekamantaṃ nisīdi.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비구 승가를 향해 합장하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puccheyyāmahaṃ, bhante, bhagavantaṃ kiñcideva desaṃ;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어떤 점을 여쭙고자 합니다.
sace me bhagavā okāsaṃ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세존께서 제 물음에 답해 주실 기회를 내어 주신다면 말입니다.”
‘‘Puccha, mahārāja, yadākaṅkhasī’’ti.
“대왕이여, 알고 싶은 것을 물어라.”
163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 부리는 이, 말 타는 이, 전차 모는 이, 활 쏘는 이, 깃발 드는 이, 천막 치는 이, 군량 나르는 이, 용맹한 왕자, 돌격병이 있습니다. 큰 코끼리 같은 장수, 용사, 가죽 갑옷 입은 병사, 노비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꾼, 숙수도 있습니다. 화환 만드는 이, 염색장이, 직조공, 대나무 세공인, 도공, 계산사, 서기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런 기술직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열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부모를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처자를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벗과 동료를 즐겁고 흡족하게 합니다. 또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높은 곳으로 이끄는 보시를 베풉니다. 그 보시는 천상에 이르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며 하늘나라로 이끕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의 열매처럼 지금 이 삶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Yathā nu kho imāni, bhante,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ṃ –
“세존이시여, 여기 여러 기술 분야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
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ā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ṃ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ippaphalaṃ upajīvanti;
코끼리몰이꾼, 기병, 전차병, 궁수, 기수, 부대장, 취사병, 힘센 무사, 왕자, 돌격병, 큰 용사, 용맹한 자, 가죽갑옷 무사, 하녀의 아들, 요리인, 이발사, 목욕 시중꾼, 조리사, 화환 만드는 이, 염색공, 직공, 갈대 세공인, 옹기장이, 회계인, 손셈하는 이, 그 밖에 이와 같은 여러 기술 분야들 — 그들은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te tena attānaṃ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ṃ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ṃ dakkhiṇaṃ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ṃ sukhavipākaṃ saggasaṃvattanikaṃ.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부모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처자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고 천상으로 이끄는 보시를 베풉니다.
Sakkā nu kho, bhante,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드러내 보이실 수 있겠습니까?”
164
“대왕이여, 그대는 이 질문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들은 어떻게 대답했는가? 말하기 괴롭지 않다면 말해 보라.”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나 세존 같은 분이 앉아 계신 곳에서라면 제게는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이여, 말해 보라.”
‘‘Abhijānāsi no tvaṃ, mahārāja, imaṃ pañhaṃ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대왕이여, 그대는 이 물음을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음을 아는가?”
‘‘Abhijānāmahaṃ, bhante, imaṃ pañhaṃ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세존이시여, 저는 이 물음을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음을 압니다.”
‘‘Yathā kathaṃ pana te, mahārāja, byākariṃsu, sace te agaru bhāsassū’’ti.
“대왕이여,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답했는가? 그대에게 번거롭지 않다면 말해 보아라.”
‘‘Na kho me, bhante, garu, yatthassa bhagavā nisinno, bhagavantarūpo v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앉아 계시거나 세존 같은 분이 계신 자리라면 제게 번거로울 것이 없습니다.”
‘‘Tena hi, mahārāja, bhāsassū’’ti.
“대왕이여,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Pūraṇakassapavādo
165
“세존이시여, 언젠가 저는 뿌라나 깟사빠를 찾아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뿌라나 깟사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깟사빠 존자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 부리는 이, 말 타는 이, 전차 모는 이, 활 쏘는 이, 깃발 드는 이, 천막 치는 이, 군량 나르는 이, 용맹한 왕자, 돌격병이 있습니다. 큰 코끼리 같은 장수, 용사, 가죽 갑옷 입은 병사, 노비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꾼, 숙수도 있습니다. 화환 만드는 이, 염색장이, 직조공, 대나무 세공인, 도공, 계산사, 서기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런 기술직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열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부모를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처자를 즐겁고 흡족하게 하고, 벗과 동료를 즐겁고 흡족하게 합니다. 또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높은 곳으로 이끄는 보시를 베풉니다. 그 보시는 천상에 이르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며 하늘나라로 이끕니다. 깟사빠 존자여, 그들의 열매처럼 지금 이 삶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불확실]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pūraṇo kassapo tenupasaṅkami;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다가갔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pūraṇena kassapena saddhiṃ sammodiṃ.
다가가서 뿌라나 깟사빠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pūraṇaṃ kassap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아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kassapa,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ṃ –
‘깟사빠 존자시여, 여기 여러 기술 분야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
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ā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ṃ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ippaphalaṃ upajīvanti;
코끼리몰이꾼, 기병, 전차병, 궁수, 기수, 부대장, 취사병, 힘센 무사, 왕자, 돌격병, 큰 용사, 용맹한 자, 가죽갑옷 무사, 하녀의 아들, 요리인, 이발사, 목욕 시중꾼, 조리사, 화환 만드는 이, 염색공, 직공, 갈대 세공인, 옹기장이, 회계인, 손셈하는 이, 그 밖에 이와 같은 여러 기술 분야들 — 그들은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te tena attānaṃ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ṃ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ṃ dakkhiṇaṃ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ṃ sukhavipākaṃ saggasaṃvattanikaṃ.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부모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처자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고 천상으로 이끄는 보시를 베풉니다.
Sakkā nu kho, bho kassap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깟사빠 존자시여,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드러내 보이실 수 있겠습니까?’
166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뿌라나 깟사빠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스스로 행하든 시키든, 베든 베게 하든, 지지든 지지게 하든 악은 생기지 않습니다. 슬픔을 주든 주게 하든, 괴롭히든 괴롭히게 하든, 떨든 떨게 하든 그에게 악은 없습니다. 생명을 죽이든 죽이게 하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든 악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담을 뚫든, 약탈하든, 외딴집을 털든, 길목을 막든 악은 없습니다. 남의 아내에게 가든, 거짓말을 하든, 그렇게 행하는 사람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한 덩이 살점, 한 무더기 고기로 만든다 해도 그로 말미암은 악은 없습니다. 악이 찾아오는 일도 없습니다. 갠지스강 남쪽 기슭으로 가서 죽이고 죽이게 하고, 베고 베게 하고, 지지고 지지게 한다 해도 그로 말미암은 악은 없습니다. 악이 찾아오는 일도 없습니다. 갠지스강 북쪽 기슭으로 가서 베풀고 베풀게 하고, 제사 지내고 제사 지내게 한다 해도 그로 말미암은 공덕은 없습니다. 공덕이 찾아오는 일도 없습니다. 보시로도, 자기 절제로도, 계율을 지킴으로도, 진실한 말로도 공덕은 없습니다. 공덕이 찾아오는 일도 없습니다.’”
‘‘Evaṃ vutte, bhante, pūraṇo kassap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뿌라나 깟사빠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karoto kho, mahārāja, kārayato, chindato chedāpayato, pacato pācāpayato socayato, socāpayato, kilamato kilamāpayato, phandato phandāpayato, pāṇamatipātāpayato, adinnaṃ ādiyato, sandhiṃ chindato, nillopaṃ harato, ekāgārikaṃ karoto, paripanthe tiṭṭhato, paradāraṃ gacchato, musā bhaṇato, karoto na karīyati pāpaṃ.
‘대왕이시여, 행하고 행하게 하고, 자르고 자르게 하고, 지지고 지지게 하고, 슬프게 하고 슬프게 만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지치게 만들게 하고, 떨게 하고 떨게 만들게 하고, 살아 있는 것을 죽이게 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담을 뚫고, 노략질을 하고, 외딴집을 털고, 길목에 숨어 기다리고, 남의 아내에게 가고, 거짓을 말하더라도,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습니다.
Khurapariyantena cepi cakkena yo imissā pathaviyā pāṇe ekaṃ maṃsakhalaṃ ekaṃ maṃsapuñjaṃ kareyya, natthi tatonidānaṃ pāpaṃ, natthi pāpassa āgamo.
면도날처럼 날 선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이, 하나의 살무더기로 만든다 해도, 그 때문에 생기는 악은 없고, 악이 돌아옴도 없습니다.
Dakkhiṇaṃ cepi gaṅgāya tīraṃ gaccheyya hananto ghātento chindanto chedāpento pacanto pācāpento, natthi tatonidānaṃ pāpaṃ, natthi pāpassa āgamo.
강가 강 남쪽 기슭으로 가서 죽이고 죽이게 하고, 자르고 자르게 하고, 지지고 지지게 한다 해도, 그 때문에 생기는 악은 없고, 악이 돌아옴도 없습니다.
Uttarañcepi gaṅgāya tīraṃ gaccheyya dadanto dāpento yajanto yajāpento, natthi tatonidānaṃ puññaṃ, natthi puññassa āgamo.
강가 강 북쪽 기슭으로 가서 주고 주게 하고, 제사 지내고 제사 지내게 한다 해도, 그 때문에 생기는 공덕은 없고, 공덕이 돌아옴도 없습니다.
Dānena damena saṃyamena saccavajjena natthi puññaṃ, natthi puññassa āgamo’ti.
보시로도, 길들임으로도, 절제로도, 진실을 말함으로도 공덕은 없고, 공덕이 돌아옴도 없습니다.’
“이렇게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를 묻는 제게 행위가 없다는 가르침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는 것 같습니다.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꼭 그처럼,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를 묻는 제게 행위가 없다는 가르침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뿌라나 깟사빠의 말에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불만의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Itthaṃ kho me, bhante, pūraṇo kassap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akiriy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뿌라나 깟사빠는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질문받고서도 행위 없음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me, bhante, pūraṇo kassap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akiriy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꼭 그와 같이 뿌라나 깟사빠는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질문받고서도 행위 없음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내 나라 안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무랄 생각을 하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pūraṇassa kassap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뿌라나 깟사빠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기뻐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은 채,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내뱉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Makkhaligosālavādo
167
“세존이시여, 또 언젠가 저는 막칼리 고살라를 찾아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막칼리 고살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살라 존자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기술의 열매로 살아갑니다. 고살라 존자여, 그들의 열매처럼 지금 이 삶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makkhali gosālo tenupasaṅkamiṃ;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막칼리 고살라에게 다가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makkhalinā gosālena saddhiṃ sammodiṃ.
다가가서 막칼리 고살라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makkhaliṃ gosāl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아 저는 막칼리 고살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gosāla, puthusippāyatanāni…pe… sakkā nu kho, bho gosāl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고살라 존자시여, 여기 여러 기술 분야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 코끼리몰이꾼, 기병, 전차병, 궁수, 기수, 부대장, 취사병, 힘센 무사, 왕자, 돌격병, 큰 용사, 용맹한 자, 가죽갑옷 무사, 하녀의 아들, 요리인, 이발사, 목욕 시중꾼, 조리사, 화환 만드는 이, 염색공, 직공, 갈대 세공인, 옹기장이, 회계인, 손셈하는 이, 그 밖에 이와 같은 여러 기술 분야들 — 그들은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부모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처자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고 천상으로 이끄는 보시를 베풉니다. 고살라 존자시여,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드러내 보이실 수 있겠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65.5 ~ PN:dn2/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168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막칼리 고살라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중생이 오염되는 데에는 원인도 조건도 없습니다. 중생은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오염됩니다. 깨끗해지는 데에도 원인도 조건도 없고, 중생은 원인 없이 조건 없이 깨끗해집니다. 스스로 짓는 힘도 없고, 남이 짓는 힘도 없고, 사람이 짓는 힘도 없습니다. 능력도, 정진도, 사람의 기력도, 사람의 노력도 없습니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영혼은 자유가 없고 힘이 없고 노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운명과 만남과 본성에 따라 변화하며, 여섯 가지 계급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을 뿐입니다. 중생에게는 주요한 모태가 140만 가지 있고, 또 6천 가지, 또 600가지가 있습니다. 업은 500가지, 또 5가지, 또 3가지가 있고, 온전한 업과 반쪽 업이 있습니다. 길은 62가지, 중간 겁은 62가지, 계급은 6가지, 사람의 단계는 8가지입니다. 아지와까는 4,900, 유행자는 4,900, 용의 거처는 4,900입니다. 기능은 2,000, 지옥은 3,000, 먼지의 세계는 36가지입니다. 생각이 있는 모태 7가지, 생각이 없는 모태 7가지, 마디에서 나는 모태 7가지가 있습니다. 하늘 존재 7가지, 사람 7가지, 귀신 7가지, 호수 7가지, 매듭 7가지, 매듭 700가지가 있습니다. 절벽 7가지, 절벽 700가지, 꿈 7가지, 꿈 700가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840만 큰 겁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이든 현명한 이든 그 동안 윤회하며 떠돌다가 마침내 괴로움을 끝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계행이나 서원이나 고행이나 청정한 수행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 이미 익은 업은 닿는 대로 없애겠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됫박으로 잰 듯 정해져 있습니다. 윤회에는 한도가 있어서,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고 높아지거나 낮아지지도 않습니다. 실타래를 던지면 풀리는 데까지 풀리며 굴러가듯, 어리석은 이든 현명한 이든 윤회하며 떠돌다가 괴로움을 끝낼 것입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nte, makkhali gosāl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막칼리 고살라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natthi mahārāja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ahetū a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대왕이시여, 중생들이 더러워지는 데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습니다.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중생들은 더러워집니다.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ahetū apaccayā sattā visujjhanti.
중생들이 깨끗해지는 데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습니다.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중생들은 깨끗해집니다.
Natthi attakāre, natthi parakāre, natthi purisakāre, natthi balaṃ, natthi vīriyaṃ, natthi purisathāmo, natthi purisaparakkamo.
자기가 짓는 일도 없고, 남이 짓는 일도 없고, 사람이 짓는 일도 없으며,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사람의 기력도 없고, 사람의 분발도 없습니다.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모든 중생, 모든 숨 쉬는 것, 모든 존재하는 것, 모든 목숨 있는 것은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우연과 본성에 따라 달라지며 여섯 부류의 태생 가운데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Cuddasa kho panimāni yonipamukhasatasahassāni saṭṭhi ca satāni cha ca satāni pañca ca kammuno satāni pañca ca kammāni tīṇi ca kammāni kamme ca aḍḍhakamme ca dvaṭṭhipaṭipadā dvaṭṭhantarakappā chaḷābhijātiyo aṭṭha purisabhūmiyo ekūnapaññāsa ājīvakasate ekūnapaññāsa paribbājakasate ekūnapaññāsa nāgāvāsasate vīse indriyasate tiṃse nirayasate chattiṃsa rajodhātuyo satta saññīgabbhā satta asaññīgabbhā satta nigaṇṭhigabbhā satta devā satta mānusā satta pisācā satta sarā satta pavuṭā satta pavuṭasatāni satta papātā satta papātasatāni satta supinā satta supinasatāni cullāsīti mahākappino satasahassāni, yāni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ṃsaritvā dukkhassantaṃ karissanti.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 백사십만 가지 주된 생류와 육천 가지와 육백 가지, 오백 가지 업과 다섯 가지 업과 세 가지 업, 온전한 업과 반쪽 업, 예순두 가지 길과 예순두 중간겁, 여섯 부류의 태생, 여덟 단계의 사람, 사천구백 가지 아지위까, 사천구백 가지 유행자, 사천구백 가지 용의 거처, 이천 가지 기능, 삼천 가지 지옥, 서른여섯 가지 티끌의 요소, 일곱 가지 인식 있는 태와 일곱 가지 인식 없는 태와 일곱 가지 마디에서 나는 태, 일곱 종류의 신과 일곱 종류의 인간과 일곱 종류의 삐사짜, 일곱 호수, 일곱 매듭과 칠백 매듭, 일곱 벼랑과 칠백 벼랑, 일곱 꿈과 칠백 꿈, 팔백사십만 대겁 — 미련한 자든 슬기로운 자든 이것들을 내달리고 흘러 다닌 뒤에야 괴로움의 끝을 보게 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ttha natthi ‘‘imināhaṃ sīlena vā vatena vā tapena vā brahmacariyena vā aparipakkaṃ vā kammaṃ paripācessāmi, paripakkaṃ vā kammaṃ phussa phussa byantiṃ karissāmī’ti hevaṃ natthi.
거기에는 ‘나는 이 계로써, 또는 서원으로써, 또는 고행으로써, 또는 청정한 삶으로써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고, 익은 업은 겪고 겪어서 끝내리라’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Doṇamite sukhadukkhe pariyantakate saṃsāre, natthi hāyanavaḍḍhane, natthi ukkaṃsāvakaṃse.
즐거움과 괴로움은 되로 되어 놓은 듯 정해져 있고 윤회는 끝이 매겨져 있으니, 줄고 늘어남도 없고, 나아지고 못해짐도 없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nāma suttaguḷe khitte nibbeṭhiyamānameva paleti, evameva bāle ca paṇḍite ca sandhāvitvā saṃsaritvā dukkhassantaṃ karissantī’ti.
마치 실뭉치를 던지면 풀리는 데까지 굴러가듯이, 꼭 그와 같이 미련한 자든 슬기로운 자든 내달리고 흘러 다닌 뒤에야 괴로움의 끝을 보게 됩니다.’
169
“이렇게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를 묻는 제게 윤회에 의한 청정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는 것 같습니다.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꼭 그처럼, 세존이시여, 막칼리 고살라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를 묻는 제게 윤회에 의한 청정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막칼리 고살라의 말에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불만의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Itthaṃ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saṃsārasuddhi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막칼리 고살라는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질문받고서도 윤회로 깨끗해짐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me, bhante, makkhali gosāl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saṃsārasuddhi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꼭 그와 같이 막칼리 고살라는 눈에 보이는 사문됨의 결실을 질문받고서도 윤회로 깨끗해짐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내 나라 안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무랄 생각을 하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makkhalissa gosāl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막칼리 고살라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기뻐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은 채,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내뱉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아지따 께사깜발라의 주장Ajitakesakambalavādo
170
“세존이시여, 언젠가 저는 아지따 께사깜발라를 찾아갔습니다. 그와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지따 존자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기술과 직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결실을 지금 여기에서 누립니다. 그처럼 사문의 삶에도 지금 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다고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ajito kesakambalo tenupasaṅkamiṃ;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아지따 께사깜발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ajitena kesakambalena saddhiṃ sammodiṃ.
찾아가서 아지따 께사깜발라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ajitaṃ kesakambal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은 저는 아지따 께사깜발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ajita, puthusippāyatanāni…pe… sakkā nu kho, bho ajit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아지따 존자시여, 이 여러 기술 분야들이 그러하듯, 이를테면 — 코끼리 부리는 자, 말 타는 자, 전차 모는 자, 활 쏘는 자, 깃발 드는 자, 부대를 배치하는 자, 군량을 나누어 주는 자, 높은 무관, 왕자, 앞장서 돌진하는 자, 큰 코끼리 같은 용사, 용사, 가죽 갑옷 두른 전사, 여종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드는 자, 과자 만드는 자, 화환 만드는 자, 빨래하는 자, 베 짜는 자, 갈대 세공하는 자, 옹기장이, 셈하는 자, 손셈하는 자, 또 이와 같은 갈래의 다른 여러 기술 분야들이 있어, 그들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자식과 아내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움을 과보로 하고 천상으로 이어지는 보시를 베풉니다. 아지따 존자시여, 바로 그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밝혀 보일 수 있겠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65.5 ~ PN:dn2/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171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보시한 것도 없고 제사 지낸 것도 없고 공양 올린 것도 없습니다. 선하고 악한 행위의 과보도 없습니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바르게 도달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사문과 바라문도 없습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알아 직접 증명하여 알리는 이들 말입니다. 이 사람은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죽을 때가 되면 흙의 요소는 땅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물의 요소는 물의 몸으로, 불의 요소는 불의 몸으로, 바람의 요소는 바람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감각 기능들은 허공으로 옮겨 갑니다. 상여를 다섯째로 하여 네 사람이 시신을 메고 갑니다. 화장터에 이르기까지는 그의 발자취가 눈에 보입니다. 뼈는 비둘기 빛깔이 되고, 바치던 공물은 재가 되어 사라집니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들이 만들어 낸 가르침일 뿐입니다. 무언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은 속이 비고 거짓이며 헛소리입니다.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집니다.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nte, ajito kesakambal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natthi, mahārāja, dinnaṃ, natthi yiṭṭhaṃ, natthi hutaṃ,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natthi ayaṃ loko, natthi paro loko, natthi mātā, natthi pitā, natthi sattā opapātikā, n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ṃ parañca lo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i.
‘대왕이여, 보시도 없고, 공양도 없고, 헌공도 없으며,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도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서 알리는, 바르게 나아가고 바르게 실천하는 사문과 바라문도 세상에 없다.
Cātumahābhūtiko ayaṃ puriso, yadā kālaṅkaroti, pathavī pathavikāyaṃ anupeti anupagacchati, āpo āpokāyaṃ anupeti anupagacchati, tejo tejokāyaṃ anupeti anupagacchati, vāyo vāyokāyaṃ anupeti anupagacchati, ākāsaṃ indriyāni saṅkamanti.
이 사람은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다. 죽을 때가 되면 땅은 땅의 무더기로 들어가고 돌아가며, 물은 물의 무더기로 들어가고 돌아가며, 불은 불의 무더기로 들어가고 돌아가며, 바람은 바람의 무더기로 들어가고 돌아가며, 감각 기능들은 허공으로 옮겨 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sandipañcamā purisā mataṃ ādāya gacchanti.
상여를 다섯째로 한 사람들이 주검을 메고 간다.
Yāvāḷāhanā padāni paññāyanti.
화장터에 이르기까지 발자국이 드러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āpotakāni aṭṭhīni bhavanti, bhassantā āhutiyo.
뼈는 잿빛 비둘기 색이 되고, 헌공은 재로 끝난다.
Dattupaññattaṃ yadidaṃ dānaṃ.
보시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정해 놓은 것이다.
Tesaṃ tucchaṃ musā vilāpo ye keci atthikavādaṃ vadanti.
무엇이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그들의 말은 공허하고 거짓이며 헛소리다.
Bāle ca paṇḍite ca kāyassa bhedā ucchijjanti vinassanti, na honti paraṃ maraṇā’ti.
미련한 자든 슬기로운 자든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지니, 죽은 뒤에는 없다.’
172
세존이시여, 이처럼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단멸론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꼭 그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단멸론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나라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아지따 께사깜발라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되받아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Itthaṃ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ucched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단멸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ajito kesakambal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ucchedaṃ byākāsi.
바로 그와 같이 세존이시여,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단멸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자가 어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꾸짖어야겠다고 여기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ajitassa kesakambal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아지따 께사깜발라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채, 못마땅했지만 못마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빠꾸다 깟짜야나의 주장Pakudhakaccāyanavādo
173
세존이시여, 또 언젠가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를 찾아갔습니다. 그와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기술과 직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결실을 지금 여기에서 누립니다. 그처럼 사문의 삶에도 지금 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다고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pakudho kaccāyano tenupasaṅkamiṃ;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pakudhena kaccāyanena saddhiṃ sammodiṃ.
찾아가서 빠꾸다 깟짜야나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pakudhaṃ kaccāyan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은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kaccāyana, puthusippāyatanāni…pe… sakkā nu kho, bho kaccāyan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깟짜야나 존자시여, 이 여러 기술 분야들이 그러하듯, 이를테면 — 코끼리 부리는 자, 말 타는 자, 전차 모는 자, 활 쏘는 자, 깃발 드는 자, 부대를 배치하는 자, 군량을 나누어 주는 자, 높은 무관, 왕자, 앞장서 돌진하는 자, 큰 코끼리 같은 용사, 용사, 가죽 갑옷 두른 전사, 여종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드는 자, 과자 만드는 자, 화환 만드는 자, 빨래하는 자, 베 짜는 자, 갈대 세공하는 자, 옹기장이, 셈하는 자, 손셈하는 자, 또 이와 같은 갈래의 다른 여러 기술 분야들이 있어, 그들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자식과 아내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움을 과보로 하고 천상으로 이어지는 보시를 베풉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바로 그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밝혀 보일 수 있겠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65.5 ~ PN:dn2/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174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빠꾸다 깟짜야나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이 일곱 가지 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 낸 것도 아니며, 창조된 것도 아니고, 창조한 자도 없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석녀처럼 아무것도 낳지 않습니다. 산봉우리처럼 우뚝하고, 성문 앞 기둥처럼 굳건히 서 있습니다.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즐거움이나 괴로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일곱 가지란 무엇입니까? 땅의 몸, 물의 몸, 불의 몸, 바람의 몸, 즐거움, 괴로움, 그리고 일곱째인 영혼입니다. 이 일곱 가지 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 낸 것도 아니며, 창조된 것도 아니고, 창조한 자도 없습니다. 석녀처럼 아무것도 낳지 않습니다. 산봉우리처럼 우뚝하고, 성문 앞 기둥처럼 굳건히 서 있습니다.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즐거움이나 괴로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죽이는 자도 죽이게 하는 자도 없습니다. 듣는 자도 듣게 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알게 하는 자도 없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누군가의 머리를 베더라도 그 누구도 누구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칼은 단지 일곱 가지 몸 사이의 빈틈으로 지나갔을 뿐입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nte, pakudho kaccāyan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빠꾸다 깟짜야나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sattime, mahārāja, kāyā akaṭā akaṭavidhā animmitā animmātā vañjhā kūṭaṭṭhā esikaṭṭhāyiṭṭhitā.
‘대왕이여, 이 일곱 무더기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지게 된 것도 아니며, 지어지지 않았고, 지은 자도 없으며, 새끼를 치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기둥처럼 굳게 서 있다.
Te na iñjanti, na vipariṇamanti, na aññamaññaṃ byābādhenti, nālaṃ aññamaññassa sukhāya vā dukkhāya vā sukhadukkhāya vā.
그것들은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서로에게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기에 넉넉하지 않다.
Katame satta?
무엇이 일곱인가?
Pathavikāyo, āpokāyo, tejokāyo, vāyokāyo, sukhe, dukkhe, jīve sattame –
땅의 무더기, 물의 무더기, 불의 무더기, 바람의 무더기, 즐거움, 괴로움, 그리고 일곱째로 영혼이다 —
ime satta kāyā akaṭā akaṭavidhā animmitā animmātā vañjhā kūṭaṭṭhā esikaṭṭhāyiṭṭhitā.
이 일곱 무더기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지게 된 것도 아니며, 지어지지 않았고, 지은 자도 없으며, 새끼를 치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기둥처럼 굳게 서 있다.
Te na iñjanti, na vipariṇamanti, na aññamaññaṃ byābādhenti, nālaṃ aññamaññassa sukhāya vā dukkhāya vā sukhadukkhāya vā.
그것들은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서로에게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기에 넉넉하지 않다.
Tattha natthi hantā vā ghātetā vā, sotā vā sāvetā vā, viññātā vā viññāpetā vā.
거기에는 죽이는 자도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들려주는 자도 없으며, 아는 자도 알게 하는 자도 없다.
Yopi tiṇhena satthena sīsaṃ chindati, na koci kiñci jīvitā voropeti;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자르는 자가 있다 해도, 누구도 그 무엇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sattannaṃ tveva kāyānamantarena satthaṃ vivaramanupatatī’ti.
다만 일곱 무더기 사이의 빈틈으로 칼이 지나갈 뿐이다.’
175
세존이시여, 이처럼 빠꾸다 깟짜야나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엉뚱한 것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꼭 그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엉뚱한 것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나라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되받아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Itthaṃ kho me, bhante, pakudho kaccāyan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aññena aññ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빠꾸다 깟짜야나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다른 것을 두고 딴것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pakudho kaccāyan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aññena aññaṃ byākāsi.
바로 그와 같이 세존이시여, 빠꾸다 깟짜야나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다른 것을 두고 딴것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자가 어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꾸짖어야겠다고 여기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pakudhassa kaccāyan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으며,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채, 못마땅했지만 못마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주장Nigaṇṭhanāṭaputtavādo
176
세존이시여, 또 언젠가 저는 니간타 나따뿟따를 찾아갔습니다. 그와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악기웻사나 존자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기술과 직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결실을 지금 여기에서 누립니다. 그처럼 사문의 삶에도 지금 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다고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nigaṇṭho nāṭaputto tenupasaṅkamiṃ;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니간타 나따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nigaṇṭhena nāṭaputtena saddhiṃ sammodiṃ.
찾아가서 니간타 나따뿟따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nigaṇṭhaṃ nāṭaputt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은 저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aggivessana, puthusippāyatanāni…pe… sakkā nu kho, bho aggivessan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악기웨사나 존자시여, 이 여러 기술 분야들이 그러하듯, 이를테면 — 코끼리 부리는 자, 말 타는 자, 전차 모는 자, 활 쏘는 자, 깃발 드는 자, 부대를 배치하는 자, 군량을 나누어 주는 자, 높은 무관, 왕자, 앞장서 돌진하는 자, 큰 코끼리 같은 용사, 용사, 가죽 갑옷 두른 전사, 여종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드는 자, 과자 만드는 자, 화환 만드는 자, 빨래하는 자, 베 짜는 자, 갈대 세공하는 자, 옹기장이, 셈하는 자, 손셈하는 자, 또 이와 같은 갈래의 다른 여러 기술 분야들이 있어, 그들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자식과 아내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움을 과보로 하고 천상으로 이어지는 보시를 베풉니다. 악기웨사나 존자시여, 바로 그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밝혀 보일 수 있겠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65.5 ~ PN:dn2/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177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니간타는 네 가지 금계로 단속합니다. 대왕이여, 니간타가 네 가지 금계로 단속한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대왕이여, 니간타는 모든 물을 막아 악을 피합니다. 모든 물로 악을 씻어 내고, 모든 물로 악을 털어 냅니다. 또 모든 물에 스며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렇게 니간타는 네 가지 금계로 단속합니다. 니간타가 이처럼 네 가지 금계로 단속하게 되면, 그를 일컬어 니간타라 합니다. 그는 마음이 이르렀고 마음이 절제되었고 마음이 굳게 섰다고 말합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 나따뿟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idha,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ṃvarasaṃvuto hoti.
‘대왕이여, 여기 니간타는 네 겹의 단속으로 단속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athañca,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ṃvarasaṃvuto hoti?
대왕이여, 어떻게 니간타가 네 겹의 단속으로 단속되는가?
Idha, mahārāja, nigaṇṭho sabbavārivārito ca hoti, sabbavāriyutto ca, sabbavāridhuto ca, sabbavāriphuṭo ca.
대왕이여, 여기 니간타는 모든 단속으로 단속되고, 모든 단속에 매여 있고, 모든 단속으로 씻겨 있고, 모든 단속으로 가득 차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kho, mahārāja, nigaṇṭho cātuyāmasaṃvarasaṃvuto hoti.
대왕이여, 이렇게 니간타는 네 겹의 단속으로 단속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to kho, mahārāja, nigaṇṭho evaṃ cātuyāmasaṃvarasaṃvuto hoti;
대왕이여, 니간타가 이렇게 네 겹의 단속으로 단속되기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ṃ vuccati, mahārāja, nigaṇṭho gatatto ca yatatto ca ṭhitatto cā’ti.
대왕이여, 이런 니간타를 두고 자기를 완성한 자요, 자기를 다스린 자요, 자기가 굳게 선 자라고 한다.’
178
세존이시여, 이처럼 니간타 나따뿟따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네 가지 금계의 단속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꼭 그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네 가지 금계의 단속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나라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되받아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Itthaṃ kho m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cātuyāmasaṃvar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네 겹의 단속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nigaṇṭho nāṭaputt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cātuyāmasaṃvaraṃ byākāsi.
바로 그와 같이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네 겹의 단속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자가 어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꾸짖어야겠다고 여기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nigaṇṭhassa nāṭaputt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채, 못마땅했지만 못마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산자야 벨랏타뿟따의 주장Sañcayabelaṭṭhaputtavādo
179
세존이시여, 또 언젠가 저는 산자야 벨랏티뿟따를 찾아갔습니다. 그와 반갑고 정중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산자야 존자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기술과 직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결실을 지금 여기에서 누립니다. 그처럼 사문의 삶에도 지금 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다고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Ekamidāhaṃ, bhante, samayaṃ yena sañcayo belaṭṭhaputto tenupasaṅkamiṃ;
“세존이시여, 한때 저는 산자야 벨랏타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upasaṅkamitvā sañcayena belaṭṭhaputtena saddhiṃ sammodiṃ.
찾아가서 산자야 벨랏타뿟따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ahaṃ bhante, sañcayaṃ belaṭṭhaputtaṃ etadavocaṃ –
세존이시여, 한쪽에 앉은 저는 산자야 벨랏타뿟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o sañcaya, puthusippāyatanāni…pe… sakkā nu kho, bho sañcaya,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산자야 존자시여, 이 여러 기술 분야들이 그러하듯, 이를테면 — 코끼리 부리는 자, 말 타는 자, 전차 모는 자, 활 쏘는 자, 깃발 드는 자, 부대를 배치하는 자, 군량을 나누어 주는 자, 높은 무관, 왕자, 앞장서 돌진하는 자, 큰 코끼리 같은 용사, 용사, 가죽 갑옷 두른 전사, 여종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드는 자, 과자 만드는 자, 화환 만드는 자, 빨래하는 자, 베 짜는 자, 갈대 세공하는 자, 옹기장이, 셈하는 자, 손셈하는 자, 또 이와 같은 갈래의 다른 여러 기술 분야들이 있어, 그들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자식과 아내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움을 과보로 하고 천상으로 이어지는 보시를 베풉니다. 산자야 존자시여, 바로 그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밝혀 보일 수 있겠습니까?’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65.5 ~ PN:dn2/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180
세존이시여, 이렇게 묻자 산자야 벨랏티뿟따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세상이 있습니까?” 하고 대왕께서 물으시고 제가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저 세상이 있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도 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저 세상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선하고 악한 행위의 과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지도 않습니까. 이렇게 대왕께서 물으시고 제가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렇게 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도 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습니다.’[불확실]
‘‘Evaṃ vutt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maṃ etadavoca –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atthi paro lokoti iti ce maṃ pucchasi, atthi paro lokoti iti ce me assa, atthi paro lokoti iti te naṃ byākareyyaṃ.
‘「저 세상은 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저 세상은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저 세상은 있다」고 답하겠다.
Evantipi me no, tathātipi me no, aññathātipi me no, notipi me no, no notipi me no.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Natthi paro loko…pe… atthi ca natthi ca paro loko…pe… nevatthi na natthi paro loko…pe… atthi sattā opapātikā…pe… natthi sattā opapātikā…pe… atthi ca natthi ca sattā opapātikā…pe… nevatthi na natthi sattā opapātikā…pe…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pe…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pe…atthi ca natthi ca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pe… nevatthi na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pe…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pe…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pe…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pe…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iti ce maṃ pucchas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iti ce me assa,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iti te naṃ byākareyyaṃ.
「저 세상은 없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저 세상은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저 세상은 없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없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없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잘하고 잘못한 행위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겠다.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그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답하겠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180.2 ~ PN:dn2/180.3에서 되살렸습니다.
Evantipi me no, tathātipi me no, aññathātipi me no, notipi me no, no notipi me no’ti.
「이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그러하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다」는 것도 내게는 아니다.’
181
세존이시여, 이처럼 산자야 벨랏티뿟따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얼버무림으로 답했습니다.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로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로 답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꼭 그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 제게 얼버무림으로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 사문과 바라문들 가운데 가장 어리석고 가장 미혹하구나.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묻는데 어찌 얼버무려 답한단 말인가.’ 그때 저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나라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산자야 벨랏티뿟따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언짢았지만 언짢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되받아치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Itthaṃ kho m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ṃ byākāsi.
세존이시여, 이렇게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얼버무림을 답했습니다.
Seyyathāpi, bhante, ambaṃ vā puṭṭho labujaṃ byākareyya, labujaṃ vā puṭṭho ambaṃ byākareyya;
세존이시여, 마치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고, 빵나무 열매를 물었는데 망고를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sañcayo belaṭṭhaputto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ṃ byākāsi.
바로 그와 같이 세존이시여,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은 저에게 얼버무림을 답했습니다.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ayañca im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bbabālo sabbamūḷho.
‘이 사문과 바라문들 가운데 이 사람이 가장 미련하고 가장 어리석다.
Kathañhi nām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ṭṭho samāno vikkhepaṃ byākarissatī’ti.
어찌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물었는데 얼버무림을 답한단 말인가.’
Tassa mayhaṃ, bhante, etadahosi –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불확실]
불확실 —
‘kathañhi nāma mādiso samaṇaṃ vā brāhmaṇaṃ vā vijite vasantaṃ apasādetabbaṃ maññeyyā’ti.
‘나 같은 자가 어찌 내 영토에 사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꾸짖어야겠다고 여기겠는가.’
So kho ahaṃ, bhante, sañcayassa belaṭṭhaputtassa bhāsitaṃ neva abhinandiṃ nappaṭikkosiṃ.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산자야 벨랏타뿟따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anattamano anattamanavācaṃ anicchāretvā tameva vācaṃ anuggaṇhanto anikkujjanto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
기뻐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채, 못마땅했지만 못마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뒤엎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첫 번째,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Paṭhamasandiṭṭhikasāmaññaphalaṃ
182
그래서 저는 세존께도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직과 직업이 있습니다.
‘‘Sohaṃ, bhante, bhagavantampi pucchāmi –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세존께도 여쭙습니다 —
‘yathā nu kho imāni, bhante, puthusippāyatanāni seyyathidaṃ –
‘세존이시여, 이를테면 이런 여러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
코끼리 부대, 기마병, 전차병, 궁수, 군기를 든 자, 군영을 꾸리는 자, 식량을 나르는 자가 있습니다. 용맹한 왕족, 돌격하는 장수, 큰 코끼리 같은 용사, 날랜 병사, 가죽옷을 입은 전사, 노비의 아들도 있습니다. 그 밖에 요리사, 이발사, 목욕시키는 사람, 조리사, 화환 만드는 사람, 염색공, 직조공, 대바구니 만드는 사람, 옹기장이, 계산가, 인장 새기는 사람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그 밖의 갖가지 기술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열매로 생계를 꾸립니다. 그 열매로 자신을 즐겁고 흡족하게 합니다. 부모와 처자도, 벗과 신하도 그렇게 합니다. 또 사문과 바라문에게는 위로 향하는 보시를 베풉니다. 하늘에 이르고 즐거운 결실을 낳아 천상으로 이끄는 보시입니다.
hatthārohā assārohā rathikā dhanuggahā celakā calakā piṇḍadāyakā uggā rājaputtā pakkhandino mahānāgā sūrā cammayodhino dāsikaputtā āḷārikā kappakā nhāpakā sūdā mālākārā rajakā pesakārā naḷakārā kumbhakārā gaṇakā muddikā, yāni vā panaññānipi evaṃgatāni puthusippāyatanāni, te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ippaphalaṃ upajīvanti, te tena attānaṃ sukhenti pīṇenti, mātāpitaro sukhenti pīṇenti, puttadāraṃ sukhenti pīṇenti, mittāmacce sukhenti pīṇenti, samaṇabrāhmaṇesu uddhaggikaṃ dakkhiṇaṃ patiṭṭhapenti sovaggikaṃ sukhavipākaṃ saggasaṃvattanikaṃ.
코끼리 부대원, 기병, 전차병, 궁수, 기수, 부대 편성관, 배식병, 권세 있는 자, 왕자, 돌격병, 큰 코끼리 같은 용사, 용사, 가죽 갑옷 무사, 하녀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시중드는 이, 조리사, 화환 만드는 이, 염색공, 직조공, 갈대 세공인, 옹기장이, 회계사, 계산원, 그리고 그 밖에 이와 같은 여러 기술 분야들 — 그들은 지금 여기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로 살아가며, 그것으로 자신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부모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아내와 자식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벗과 동료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위로 향하고 하늘로 이끌며 즐거움을 과보로 하고 천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시를 베풉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도 제게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Sakkā nu kho me, bhante,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세존이시여, 저에게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183
대왕이여,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묻겠으니,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로 대답해 보아라.
‘‘Sakkā, mahārāja.
“가능하다, 대왕이여.
Tena hi, mahārāj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그렇다면 대왕이여, 이 일을 두고 내가 그대에게 도로 물으리라.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그대에게 옳게 여겨지는 대로 그것에 답하라.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종이요 일꾼인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자. 그는 그대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눕는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받들어 하고, 그대 마음에 들게 행동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그대의 얼굴빛을 살핀다. 그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자.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복의 갈 길, 복의 과보가 이러하구나.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런데 아자따삿뚜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갖추어 누리니, 마치 천신 같다. 그에 비해 나는 그의 종이요 일꾼이어서 그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눕는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받들어 하고, 마음에 들게 행동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그의 얼굴빛을 살핀다. 나도 복을 지어야겠다. 차라리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그가 얼마 뒤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고 하자. 이렇게 출가한 그는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며 지낸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기만 하면 만족하고,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긴다.[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idha te assa puriso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그대에게 한 사람이 있어, 종이고 일꾼이며,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받들고, 마음에 들게 행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얼굴빛을 살핀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puññānaṃ gati, puññānaṃ vipāko.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공덕이 가는 곳이여, 공덕의 과보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manusso;
이 마가다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도 사람이고,
ahampi manusso.
나도 사람이다.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devo maññe.
그런데 이 마가다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두루 갖추고 온전히 지녀서 즐기니, 신인가 싶을 정도다.
Ahaṃ panamhissa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그런데 나는 그의 종이고 일꾼이며,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받들고, 마음에 들게 행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얼굴빛을 살핀다.
So vatassāhaṃ puññāni kareyyaṃ.
나야말로 공덕을 지어야겠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So aparena samayen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그는 그 뒤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ṃvuto vihareyya, vācāya saṃvuto vihareyya, manasā saṃvuto vihareyya,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몸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말로 단속하며 지내고, 마음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지냄을 크게 기뻐한다.
그런데 그대의 신하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알린다고 하자. ‘폐하, 아시는지요. 폐하의 종이요 일꾼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눕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받들어 하며,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며 지냅니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기만 하면 만족하고,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그러면 그대는 이렇게 말하겠는가? ‘그 사람을 내게 데려오라. 다시 종이요 일꾼이 되게 하라.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눕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받들어 하며,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다정하게 말하게 하라.’
Taṃ ce te purisā evamāroceyyuṃ –
그런데 그대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알린다면 —
‘yagghe deva jāneyyāsi, yo te so puriso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
‘신이시여, 알아 두소서. 그대의 그 사람, 종이고 일꾼이며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받들고 마음에 들게 행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얼굴빛을 살피던 그 사람이 —
so, dev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신이시여, 그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ṃvuto viharati, vācāya saṃvuto viharati, manasā saṃvuto viharati,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몸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말로 단속하며 지내고, 마음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지냄을 크게 기뻐합니다.’
Api nu tvaṃ evaṃ vadeyyāsi –
그때 그대는 이렇게 말하겠는가 —
‘etu me, bho, so puriso, punadeva hotu dāso kammakāro pubbuṭṭhāyī pacchānipātī kiṅkārapaṭissāvī manāpacārī piyavādī mukhullokako’ti?
‘여보게, 그 사람을 내게 데려오라. 다시 종이고 일꾼이며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받들고 마음에 들게 행하며 다정하게 말하고 얼굴빛을 살피는 자가 되게 하라.’”
184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그에게 인사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를 권할 것입니다. 옷과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에 쓰는 약과 필수품도 마련해 올리겠습니다. 법도에 맞게 그를 지키고 보호할 준비도 해 주겠습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Atha kho naṃ mayameva abhivādeyyāmapi, paccuṭṭheyyāmapi, āsanenapi nimanteyyāma, abhinimanteyyāmapi naṃ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dhammikampissa rakkhāvaraṇaguttiṃ saṃvidaheyyāmā’’ti.
오히려 저희가 그에게 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자리를 권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에 필요한 약품을 갖추어 청하며, 그를 법답게 지키고 감싸고 보호할 것입니다.”
185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정이 이러하다면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사정이 이러하다면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먼저 밝힌 열매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이다.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yadi evaṃ sante hoti vā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no vā’’ti?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hoti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nti.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분명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 있습니다.”
‘‘Idaṃ kho te, mahārāja, mayā paṭhamaṃ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tta’’nti.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밝힌 첫 번째,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다.”
두 번째,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Dutiyasandiṭṭhikasāmaññaphalaṃ
186
세존이시여,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를 또 다른 것으로도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묻겠으니,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로 대답해 보아라.
‘‘Sakkā pana, bhante, aññampi evameva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nti?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또 하나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Sakkā, mahārāja.
“가능하다, 대왕이여.
Tena hi, mahārāja, taññevettha paṭipucchissāmi.
그렇다면 대왕이여, 이 일을 두고 내가 그대에게 도로 물으리라.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그대에게 옳게 여겨지는 대로 그것에 답하라.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사람 하나가 있다고 하자. 그는 농부이자 가장으로, 세금을 바치며 곡식 더미를 불려 가는 사람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자.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복의 갈 길, 복의 과보가 이러하구나.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런데 아자따삿뚜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갖추어 누리니, 마치 천신 같다. 그에 비해 나는 농부이자 가장으로, 세금을 바치며 곡식 더미를 불려 가는 사람이다. 나도 복을 지어야겠다. 차라리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그가 얼마 뒤 적든 많든 재산을 버리고, 적든 많든 친척 무리를 떠났다고 하자.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고 하자. 이렇게 출가한 그는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며 지낸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기만 하면 만족하고,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긴다.[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idha te assa puriso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그대에게 한 사람이 있어, 농부이고 살림을 꾸리는 가장이며, 세금을 내고, 재산을 불린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puññānaṃ gati, puññānaṃ vipāko.
‘참으로 놀랍구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공덕이 가는 곳이여, 공덕의 과보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manusso, ahampi manusso.
이 마가다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Ayañhi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devo maññe.
그런데 이 마가다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을 두루 갖추고 온전히 지녀서 즐기니, 신인가 싶을 정도다.
Ahaṃ panamhissa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그런데 나는 그에게 딸린 농부이고 살림을 꾸리는 가장이며, 세금을 내고, 재산을 불린다.
So vatassāhaṃ puññāni kareyyaṃ.
나야말로 공덕을 지어야겠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So aparena samayena app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mahant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app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mahant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그는 그 뒤에 적은 재산 더미를 버리거나 많은 재산 더미를 버리고, 적은 친족 무리를 버리거나 많은 친족 무리를 버리고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ṃvuto vihareyya, vācāya saṃvuto vihareyya, manasā saṃvuto vihareyya,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몸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말로 단속하며 지내고, 마음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지냄을 크게 기뻐한다.
그런데 그대의 신하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알린다고 하자. ‘폐하, 아시는지요. 폐하의 농부이자 가장으로, 세금을 바치며 곡식 더미를 불려 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며 지냅니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기만 하면 만족하고, 홀로 떨어져 있기를 즐깁니다.’ 그러면 그대는 이렇게 말하겠는가? ‘그 사람을 내게 데려오라. 다시 농부이자 가장으로, 세금을 바치며 곡식 더미를 불려 가는 사람이 되게 하라.’
Taṃ ce te purisā evamāroceyyuṃ –
그런데 그대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알린다면 —
‘yagghe, deva jāneyyāsi, yo te so puriso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
‘신이시여, 알아 두소서. 그대의 그 사람, 농부이고 살림을 꾸리는 가장이며 세금을 내고 재산을 불리던 그 사람이 —
so dev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신이시여, 그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āyena saṃvuto viharati, vācāya saṃvuto viharati, manasā saṃvuto viharati, ghāsacchādanaparamatāya santuṭṭho, abhirato paviveke’’ti.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몸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말로 단속하며 지내고, 마음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지냄을 크게 기뻐합니다.’
Api nu tvaṃ evaṃ vadeyyāsi –
그때 그대는 이렇게 말하겠는가 —
‘etu me, bho, so puriso, punadeva hotu kassako gahapatiko karakārako rāsivaḍḍhako’ti?
‘여보게, 그 사람을 내게 데려오라. 다시 농부이고 살림을 꾸리는 가장이며 세금을 내고 재산을 불리는 자가 되게 하라.’”
187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그에게 인사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를 권할 것입니다. 옷과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에 쓰는 약과 필수품도 마련해 올리겠습니다. 법도에 맞게 그를 지키고 보호할 준비도 해 주겠습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Atha kho naṃ mayameva abhivādeyyāmapi, paccuṭṭheyyāmapi, āsanenapi nimanteyyāma, abhinimanteyyāmapi naṃ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ehi, dhammikampissa rakkhāvaraṇaguttiṃ saṃvidaheyyāmā’’ti.
오히려 저희가 그에게 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자리를 권하고,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에 필요한 약품을 갖추어 청하며, 그를 법답게 지키고 감싸고 보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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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정이 이러하다면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사정이 이러하다면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두 번째로 밝힌 열매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이다.
‘‘Taṃ kiṃ maññasi, mahārāja?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Yadi evaṃ sante hoti vā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no vā’’ti?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hoti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nti.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분명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 있습니다.”
‘‘Idaṃ kho te, mahārāja, mayā dutiyaṃ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tta’’nti.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밝힌 두 번째,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다.”
더 뛰어난 사문됨의 결실Paṇītatarasāmaññaphalaṃ
189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열매 가운데, 이것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한 것도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대왕이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 두어라. 이제 말하겠다. 마가다의 왕,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Sakkā pana, bhante, aññampi diṭṭheva dhamme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aññapetuṃ 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ā’’ti?
“세존이시여, 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을 또 하나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Sakkā, mahārāja.
“가능하다, 대왕이여.
Tena hi, mahārāja, suṇo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그러면 대왕이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마가다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세존께 대답했다.
190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 세상에 여래가 나타난다. 그분은 공양받을 만한 분이요, 바르고 온전하게 깨달은 분이다. 밝은 지혜와 실천을 갖추었고, 바른 길을 걸어 이르신 분이며, 세상을 아는 분이다. 사람을 길들이는 위없는 조련사이고, 하늘 사람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은 분이고, 세존이다. 그는 천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계를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알고 직접 깨닫는다. 사문과 바라문, 하늘 사람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그것을 널리 알린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뜻과 표현을 갖추어 설한다. 온전하고 완전하며 청정한 수행의 삶을 드러내 보인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idha, mahārāj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대왕이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으신 분, 세존이시다.
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그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를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서 알린다.
So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그는 법을 설한다 —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그 삶을 드러낸다.
191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어느 가문에든 다시 태어난 사람이 그 법을 듣는다.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믿음을 얻은 그는 이렇게 곰곰이 생각한다. ‘재가의 삶은 비좁고 먼지가 이는 길이다. 출가의 삶은 탁 트인 허공 같다. 집에 머무는 사람이 청정한 수행의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그 삶은 완전히 원만하고 완전히 청정하며, 소라껍데기처럼 맑게 닦인 것이다. 차라리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Taṃ dhammaṃ suṇāti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ññatarasmiṃ vā kule paccājāto.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다른 어떤 가문에 태어난 이가 그 법을 듣는다.
So taṃ dhammaṃ sutvā 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So tena saddhāpaṭilābhena samannāgat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그렇게 얻은 믿음을 지니고 이렇게 성찰한다:
‘sambādho gharāvāso rajopatho, abbhokāso pabbajjā.
‘재가의 삶은 갑갑하고 티끌 이는 길이며, 출가는 확 트인 것이다.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ṅ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집에 살면서 이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청정한, 소라처럼 매끈한 청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192
그는 얼마 뒤 적든 많든 재산을 버리고, 적든 많든 친척 무리를 떠난다.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mahant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app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mahant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그는 그 뒤에 적은 재산 더미를 버리거나 많은 재산 더미를 버리고, 적은 친족 무리를 버리거나 많은 친족 무리를 버리고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193
이렇게 출가한 그는 계율의 단속으로 몸을 단속하며 지낸다. 행동거지와 탁발 다니는 곳이 올바르고, 작은 허물에서도 두려움을 본다. 배울 항목들을 받아 지니고 익힌다. 몸과 말의 행위가 선하고 생활이 청정하며, 계를 갖추었다.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어 만족한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kāyakammavacīkammena samannāgato kusalena, parisuddhājīvo sīlasampanno, indriyesu guttadvāro,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santuṭṭho.
“그는 그렇게 출가하여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지내고, 행실과 다닐 곳을 갖추고, 아주 작은 허물에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 계목들을 받아 지녀 익히고, 유익한 몸의 행위와 말의 행위를 갖추고, 생계가 청정하고, 계를 갖추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지키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고, 만족한다.
짧은 계Cūḷasīlaṃ
194
대왕이여, 비구는 어떻게 계를 갖추는가? 여기 비구는 산 생명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그 일에서 벗어나 있다.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애로운 마음으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이로움을 가엾이 여기며 지낸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īlasampanno hoti?
“대왕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계를 갖춘 자가 되는가?
Idha, mahārāja, bhikkhu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살생을 버리고 살생을 삼간다.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고 연민을 지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의 이익을 바라며 지낸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그런 일에서 벗어나 있다. 준 것만 받고 주기를 기다리며, 훔치지 않아 스스로 깨끗하게 지낸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청정하지 못한 성행위를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산다. 멀리 떠나 있고, 성교라는 속된 일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ti.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간다. 주는 것만 받고 주는 것만 바라며, 훔치지 않아 스스로 깨끗해진 채로 지낸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Abrahmacariyaṃ pahāya brahmacārī hoti ārācārī virato methunā gāmadhammā.
청정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사는 자가 되어, 멀리 떨어져 지내고, 저속한 짓인 성행위를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에서 벗어나 있다. 참말을 하고, 진실을 지키며, 믿을 만하고,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Musāvādaṃ pahāy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saccavādī saccasandho theto paccayiko avisaṃvādako lokassa.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삼간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에 이어져 있으며,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하며,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그런 말에서 벗어나 있다. 여기서 들은 것을 저기에 옮겨 이쪽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저기서 들은 것을 이쪽에 옮겨 저쪽 사람들을 갈라놓지도 않는다. 이처럼 갈라진 이들은 화해시키고, 화합한 이들은 더욱 북돋운다. 화합을 즐기고 기뻐하고 반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Pisuṇaṃ vācaṃ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삼간다.
ito sutvā na amutra akkhātā imesaṃ bhedāya;
여기서 듣고 저기 가서 옮겨 이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amutra vā sutvā na imesaṃ akkhātā, amūsaṃ bhedāya.
저기서 듣고 여기 와서 옮겨 저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Iti bhinnānaṃ vā sandhātā, sahitānaṃ vā anuppadātā, samaggārāmo samaggarato samagganandī samaggakaraṇiṃ vācaṃ bhāsitā hoti.
이렇게 갈라진 이들을 이어 주고, 화합한 이들을 북돋우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기뻐하여,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거친 말을 버리고 거친 말에서 벗어나 있다. 허물이 없고 귀에 즐거우며 정이 가고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한다. 세련되어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을 한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Pharusaṃ vācaṃ pahāy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거친 말을 버리고 거친 말을 삼간다.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iṃ vācaṃ bhāsitā hoti.
흠 없고 귀에 즐거우며, 정겹고 마음에 닿으며,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쓸데없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에서 벗어나 있다. 때에 맞게, 사실대로, 이로운 말, 법다운 말, 율에 맞는 말을 한다. 간직할 만한 말을 때에 맞게 하되, 근거를 들어 적절히 맺고 이로움이 담기게 한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Samphappalāpaṃ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kālavādī bhūtavādī atthavādī dhammavādī vinayavādī, nidhānavatiṃ vācaṃ bhāsitā hoti kālena sāpadesaṃ pariyantavatiṃ atthasaṃhitaṃ.
쓸데없는 말을 버리고 쓸데없는 말을 삼간다. 때에 맞게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뜻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한다. 담아 둘 만한 말을, 때에 맞게, 근거를 들어, 한도를 지켜, 이익에 맞게 한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씨앗과 식물을 해치는 일에서 벗어나 있다. 중간 내용은 생략한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가 아닌 때의 식사를 삼간다. 춤, 노래, 음악, 구경거리를 보는 일에서 벗어나 있다. 화환, 향, 화장품을 쓰거나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서도 벗어나 있다. 높고 큰 침상에서 자는 일에서도 벗어나 있다. 금과 은, 날곡식과 날고기를 받지 않는다. 여자와 소녀, 남녀 노비를 받는 일에서도 벗어나 있다. 염소와 양, 닭과 돼지,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 밭과 땅까지 받지 않는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오가는 일에 매이는 데서 벗어나 있고, 사고파는 일도 하지 않는다. 저울과 금속과 되를 속이지 않는다. 뇌물, 사기, 기만, 부정한 거래에서도 벗어나 있다. 베고, 죽이고, 묶고, 길목에서 빼앗고, 약탈하고, 폭력을 쓰는 일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불확실]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pe… ekabhattiko hoti rattūparato virato vikālabhojanā.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일을 삼간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삼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춤과 노래와 연주와 구경거리 보는 일을 삼간다.
Mālāgandhavilepanadhāraṇ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화환과 향과 바르는 향을 지니고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삼간다.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높고 큰 침상을 삼간다.
Jātarūparajat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금과 은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dhaññ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곡식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maṃ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고기를 받는 일을 삼간다.
Itthikumāri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여자와 소녀를 받는 일을 삼간다.
Dāsidā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여자 종과 남자 종을 받는 일을 삼간다.
Ajeḷa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염소와 양을 받는 일을 삼간다.
Kukkuṭasūkar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닭과 돼지를 받는 일을 삼간다.
Hatthigavassavaḷav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을 받는 일을 삼간다.
Khettavatthu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밭과 땅을 받는 일을 삼간다.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심부름꾼 노릇과 전갈을 나르는 일을 삼간다.
Kayavikkayā paṭivirato hoti.
사고파는 일을 삼간다.
Tulākūṭakaṃsakūṭamānakūṭā paṭivirato hoti.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되를 속이는 일을 삼간다.
Ukkoṭanavañcananikatisāciyogā paṭivirato hoti.
뇌물과 속임수와 사기와 부정한 짓을 삼간다.
Chedanavadhabandhanaviparāmosaālopasahasākārā paṭivirato hoti.
자르고 죽이고 묶고 길에서 털고 빼앗고 힘으로 억누르는 일을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작은 계를 마친다.
Cūḷasīlaṃ niṭṭhitaṃ.
짧은 계가 끝났다.
중간 계Majjhimasīlaṃ
195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씨앗과 초목을 해치는 일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가지 끝으로 번식하는 것이 있다. 다섯째는 씨앗으로 번식하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씨앗과 초목을 해치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mūlabījaṃ khandhabījaṃ phaḷubījaṃ aggabījaṃ bījabījameva pañcamaṃ, iti evarūpā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
뿌리로 번식하는 씨앗,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마디로 번식하는 씨앗, 순으로 번식하는 씨앗, 그리고 다섯째로 씨앗으로 번식하는 씨앗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196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물건을 쌓아 두고 쓰는 생활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음식, 마실 것, 옷, 탈것을 쌓아 둔다. 침구와 향, 먹을거리를 쌓아 두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쌓아 두고 쓰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sannidhikāraparibhog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물건을 쌓아 두고 쓰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annasannidhiṃ pānasannidhiṃ vatthasannidhiṃ yānasannidhiṃ sayanasannidhiṃ gandhasannidhiṃ āmisasannidhiṃ, iti vā iti evarūpā sannidhikāraparibhogā paṭivirato hoti.
음식을 쌓아 둠, 마실 것을 쌓아 둠, 옷을 쌓아 둠, 탈것을 쌓아 둠, 잠자리를 쌓아 둠, 향을 쌓아 둠, 재물을 쌓아 둠,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물건을 쌓아 두고 쓰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197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눈을 어지럽히는 구경거리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춤, 노래, 악기 연주, 공연, 이야기 낭송이 있다. 손뼉 치며 하는 음악, 심벌즈와 항아리 북 연주, 화려한 곡예도 있다. 천민의 연극, 장대 곡예, 뼈 씻기 놀이를 보러 가기도 한다.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염소, 숫양, 닭, 메추라기를 싸움 붙이는 구경도 있다. 막대 싸움, 주먹 싸움, 씨름도 있다. 모의 전투, 군대 열병, 진법 훈련, 군대 사열 같은 것도 구경한다. 그는 이처럼 눈을 어지럽히는 구경거리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visūkadassan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구경거리를 보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naccaṃ gītaṃ vāditaṃ pekkhaṃ akkhānaṃ pāṇissaraṃ vetāḷaṃ kumbhathūṇaṃ sobhanakaṃ caṇḍālaṃ vaṃsaṃ dhovanaṃ hatthiyuddhaṃ assayuddhaṃ mahiṃsayuddhaṃ usabhayuddhaṃ ajayuddhaṃ meṇḍayuddhaṃ kukkuṭayuddhaṃ vaṭṭakayuddhaṃ daṇḍayuddhaṃ muṭṭhiyuddhaṃ nibbuddhaṃ uyyodhikaṃ balaggaṃ senābyūhaṃ anīkadassanaṃ iti vā iti evarūpā 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춤, 노래, 기악, 연극, 이야기 낭송, 손장단, 타악 연주, 항아리북, 예인들이 바치는 공연, 짠달라의 곡예, 장대타기, 씻기 의식, 코끼리 싸움, 말 싸움, 물소 싸움, 황소 싸움, 염소 싸움, 숫양 싸움, 닭 싸움, 메추라기 싸움, 몽둥이 싸움, 주먹 싸움, 맨손 격투, 싸움터, 군대 사열, 군진 배치, 군대 점검,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구경거리를 보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198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도박과 방일의 바탕이 되는 놀이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여덟 칸 놀이와 열 칸 놀이가 있다. 허공에 판을 그리는 놀이, 건너뛰기 놀이도 있다. 쌓은 것을 건드리지 않고 빼는 놀이, 주사위 놀이, 공 치기도 한다. 막대 점치기, 공놀이, 풀피리 불기, 쟁기 놀이, 재주넘기, 바람개비 놀이도 있다. 잎사귀 말로 되질하는 놀이, 장난감 수레 놀이, 장난감 활 놀이를 하기도 한다. 글자 맞히기, 마음 알아맞히기, 흉내 내기 같은 것도 있다. 그는 이처럼 도박과 방일의 바탕이 되는 놀이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방일의 바탕인 노름에 몰두하는 일에 매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aṭṭhapadaṃ dasapadaṃ ākāsaṃ parihārapathaṃ santikaṃ khalikaṃ ghaṭikaṃ salākahatthaṃ akkhaṃ paṅgacīraṃ vaṅkakaṃ mokkhacikaṃ ciṅgulikaṃ pattāḷhakaṃ rathakaṃ dhanukaṃ akkharikaṃ manesikaṃ yathāvajjaṃ iti vā iti evarūpā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ā paṭivirato hoti.
여덟 줄 판놀이, 열 줄 판놀이, 허공 판놀이, 미로 놀이, 막대 뽑기, 주사위 판놀이, 막대치기, ‘막대 한 줌’ 놀이, 주사위 놀이, 풀피리, 장난감 쟁기, 재주넘기, 장난감 바람개비, 나뭇잎 됫박, 장난감 수레, 장난감 활, 글자 알아맞히기, 마음 알아맞히기, 남의 흠 흉내 내기,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방일의 바탕인 노름에 몰두하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199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높고 호화로운 침구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다리가 높은 긴 의자와 짐승 모양을 새긴 침상이 있다. 긴 털 모포, 갖가지 무늬를 수놓은 모포, 흰 양모 이불도 있다. 꽃무늬를 넣은 솜 이불, 솜을 둔 이불, 동물 무늬를 수놓은 깔개도 있다. 양쪽에 긴 술이 달린 모포와 한쪽에 술이 달린 모포가 있다. 보석을 박은 덮개와 비단 깔개도 있다. 열여섯 명이 춤출 만한 큰 양탄자도 있다. 코끼리, 말, 수레에 까는 깔개도 있다. 영양 가죽을 이어 만든 깔개와 가젤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깔개도 있다. 위에 덮개가 달린 것, 양쪽 끝에 붉은 베개가 놓인 것도 있다. 그는 이처럼 높고 호화로운 침구를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불확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uccāsayanamahāsayan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높고 큰 침상을 쓰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āsandiṃ pallaṅkaṃ gonakaṃ cittakaṃ paṭikaṃ paṭalikaṃ tūlikaṃ vikatikaṃ uddalomiṃ ekantalomiṃ kaṭṭissaṃ koseyyaṃ kuttakaṃ hatthattharaṃ assattharaṃ rathattharaṃ ajinappaveṇiṃ kadalimigapavarapaccattharaṇaṃ sauttaracchadaṃ ubhatolohitakūpadhānaṃ iti vā iti evarūpā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긴 안락의자, 다리 달린 긴 침상, 털 긴 양탄자, 무늬 놓은 모직 깔개, 모직 천 깔개, 두껍게 수놓은 모직 깔개, 솜 이불, 갖가지 무늬를 넣은 모직 깔개, 양쪽에 술을 단 모직 깔개, 한쪽에 술을 단 모직 깔개, 보석을 수놓은 비단 덮개, 비단 깔개, 모조 깔개, 코끼리 등 깔개, 말 등 깔개, 수레 깔개, 검은 영양 가죽 깔개, 상질의 사슴 가죽으로 만든 깔개, 위에 닫집을 단 것, 양쪽에 붉은 베개를 둔 것,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높고 큰 침상을 그는 삼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0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향유를 바르고, 몸을 주무르고, 목욕시키고, 안마를 받는다. 거울을 보고, 눈 화장을 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바른다. 얼굴에 분이나 연고를 바르기도 한다. 팔찌, 머리 장식, 지팡이, 약통, 칼, 일산을 지닌다. 수놓은 신발, 터번, 보석, 불자를 쓰기도 한다. 흰 옷이나 긴 술이 달린 옷을 입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nuyog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ucchādanaṃ parimaddanaṃ nhāpanaṃ sambāhanaṃ ādāsaṃ añjanaṃ mālāgandhavilepanaṃ mukhacuṇṇaṃ mukhalepanaṃ hatthabandhaṃ sikhābandhaṃ daṇḍaṃ nāḷikaṃ asiṃ chattaṃ citrupāhanaṃ uṇhīsaṃ maṇiṃ vālabījaniṃ odātāni vatthāni dīghadasāni iti vā iti evarūpā 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nuyogā paṭivirato hoti.
몸에 문질러 바르기, 주무르기, 목욕시키기, 안마하기, 거울, 눈 화장먹, 화환과 향과 바르는 향, 얼굴 분, 얼굴에 바르는 크림, 팔찌, 상투 끈, 지팡이, 약통, 칼, 양산, 무늬 놓은 신발, 두건, 보석, 총채, 흰 옷, 긴 술을 단 옷,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1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잡담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들이다. 임금, 도둑, 대신, 군대 이야기가 있다. 두려운 일과 전쟁 이야기도 있다. 음식, 마실 것, 옷, 침구, 꽃다발, 향 이야기도 한다. 친척과 탈것 이야기도 한다. 마을, 소읍, 도시, 지방 이야기도 있다.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길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가 있다. 죽은 이 이야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있다. 세상 이야기, 바다 이야기, 이러저러하게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잡담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tiracchānakath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쓸데없는 이야기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rājakathaṃ corakathaṃ mahāmattakathaṃ senākathaṃ bhayakathaṃ yuddhakathaṃ annakathaṃ pānakathaṃ vatthakathaṃ sayanakathaṃ mālākathaṃ gandhakathaṃ ñātikathaṃ yānakathaṃ gāmakathaṃ nigamakathaṃ nagarakathaṃ janapadakathaṃ itthikathaṃ sūrakathaṃ visikhākathaṃ kumbhaṭṭhānakathaṃ pubbapetakathaṃ nānattakathaṃ lokakkhāyikaṃ samuddakkhāyikaṃ itibhavābhavakathaṃ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kathāya paṭivirato hoti.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 이야기, 군대 이야기,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마실 것 이야기, 옷 이야기, 잠자리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족 이야기, 탈것 이야기, 마을 이야기, 읍 이야기, 도시 이야기, 지방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가 이야기, 죽은 이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세상의 유래 이야기, 바다의 유래 이야기, 있음과 없음에 대한 이런 이야기,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쓸데없는 이야기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2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말다툼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 법과 율을 모른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네가 어떻게 이 법과 율을 알겠느냐. 너는 잘못 가고 있다. 나는 바르게 가고 있다. 내 말은 일관되고 네 말은 일관되지 않다. 너는 먼저 말할 것을 나중에 말했고, 나중에 말할 것을 먼저 말했다. 네가 오래 익힌 것은 뒤집혔다. 네 주장은 논박되었다. 너는 궁지에 몰렸다. 가서 주장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라. 할 수 있다면 풀어 보라.” 그는 이처럼 말다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불확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viggāhikakath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다투는 말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na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si, ah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mi, kiṃ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issasi, micchā 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 paṭipanno, sahitaṃ me, asahitaṃ te, pure vacanīyaṃ pacchā avaca, pacchā vacanīyaṃ pure avaca, adhiciṇṇaṃ te viparāvattaṃ, āropito te vādo, niggahito tvama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iti vā iti evarūpāya viggāhikakathāya paṭivirato hoti.
‘너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네가 어찌 이 법과 율을 알겠는가? 너는 그릇되게 실천하고 있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고 있다. 내 말은 조리 있고, 네 말은 조리 없다. 먼저 말할 것을 나중에 말했고, 나중에 말할 것을 먼저 말했다. 네가 익혀 온 것이 뒤집혔다. 네게 논박이 씌워졌다. 너는 제압되었다. 네 주장을 벗어나려거든 가서 애써 보아라. 할 수 있거든 풀어 보아라.’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다투는 말을 그는 삼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3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심부름과 전령 노릇에 몰두한다. 임금, 왕의 대신, 크샤트리아,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의 심부름이다.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이것을 가져가라. 저쪽에서 이것을 가져오라.” 이런 식이다. 그는 이처럼 심부름하고 전령으로 다니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ṃ dūteyyapahiṇagamanānuyogaṃ anuyuttā vihara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이 심부름과 전갈로 다니는 일에 몰두하여 지낸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khattiyānaṃ, brāhmaṇānaṃ, gahapatikānaṃ, kumārānaṃ –
왕들에게, 왕의 대신들에게, 끄샤뜨리야들에게, 바라문들에게, 장자들에게, 왕자들에게 —
‘idha gaccha, amutrāgaccha, idaṃ hara, amutra idaṃ āharā’ti iti vā iti evarūpā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여기로 가라, 저기서 오라, 이것을 가져가라, 저기서 이것을 가져오라’ 하는 것,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심부름과 전갈로 다니는 일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4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속임수를 쓰는 자가 된다. 아첨하는 자, 암시를 주어 얻어내는 자, 몰아세우는 자가 되기도 한다. 이익으로 이익을 좇는 자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속이고 아첨하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여기까지가 중간 계행이다.[불확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kuhakā ca honti lapakā ca nemittikā ca nippesikā ca lābhena lābhaṃ nijigīṃsitāro ca.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속임수를 쓰는 자가 되고, 아첨하는 자가 되고, 넌지시 떠보는 자가 되고, 으르는 자가 되고, 이득으로 이득을 좇는 자가 된다.
Iti evarūpā kuhanalapanā paṭivirato hoti.
이와 같은 속임수와 아첨을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Majjhimasīlaṃ niṭṭhitaṃ.
중간 계가 끝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큰 계Mahāsīlaṃ
205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신체 부위로 점치기, 징조 보기, 천변지이 풀이, 꿈 풀이, 몸의 상 보기가 있다. 쥐가 쏜 자국 풀이도 있다. 불, 국자, 겨, 쌀겨, 쌀알에 바치는 제사가 있다. 연유, 기름, 입, 피에 바치는 제사도 있다. 사지 점술, 집터 점술, 밭터 점술, 길흉 점술도 있다. 귀신 부리는 주술과 흙집 주술이 있다. 뱀, 독, 전갈, 쥐, 새, 까마귀 주술도 있다. 남은 수명 점치기, 화살 막는 주문, 짐승 소리 풀이도 있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불확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aṅgaṃ nimittaṃ uppātaṃ supinaṃ lakkhaṇaṃ mūsikacchinnaṃ aggihomaṃ dabbihomaṃ thusahomaṃ kaṇahomaṃ taṇḍulahomaṃ sappihomaṃ telahomaṃ mukhahomaṃ lohitahomaṃ aṅgavijjā vatthuvijjā khattavijjā sivavijjā bhūtavijjā bhūrivijjā ahivijjā visavijjā vicchikavijjā mūsikavijjā sakuṇavijjā vāyasavijjā pakkajjhānaṃ saraparittāṇaṃ migacakkaṃ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신체 특징 보기, 징조 보기, 이변 보기, 꿈 풀이, 길상 표시 보기, 쥐가 쏠은 자국 보기, 불 공양, 국자 공양, 겉겨 공양, 쌀겨 공양, 쌀 공양, 버터기름 공양, 기름 공양, 입으로 하는 공양, 피 공양, 신체 특징을 아는 술법, 터를 아는 술법, 정치의 술법, 자칼 울음을 아는 술법, 귀신을 다루는 술법, 땅을 아는 술법, 뱀을 다루는 술법, 독을 다루는 술법, 전갈을 다루는 술법, 쥐를 다루는 술법, 새를 아는 술법, 까마귀를 아는 술법, 수명 점치기, 화살을 막는 주문, 들짐승 소리로 치는 점,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6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 보고 길흉을 말한다. 보석, 옷, 몽둥이, 칼날 달린 무기, 검, 화살, 활, 병장기의 상이 있다. 여자, 남자, 소년, 소녀, 남자 종, 여자 종의 상도 있다.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암소의 상을 보기도 한다. 염소, 숫양, 닭, 메추라기, 도마뱀의 상도 본다. 귀고리, 거북, 사슴의 상을 보는 것도 있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불확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maṇilakkhaṇaṃ vatthalakkhaṇaṃ daṇḍalakkhaṇaṃ satthalakkhaṇaṃ asilakkhaṇaṃ usulakkhaṇaṃ dhanulakkhaṇaṃ āvudhalakkhaṇaṃ itthilakkhaṇaṃ purisalakkhaṇaṃ kumāralakkhaṇaṃ kumārilakkhaṇaṃ dāsalakkhaṇaṃ dāsilakkhaṇaṃ hatthilakkhaṇaṃ assalakkhaṇaṃ mahiṃsalakkhaṇaṃ usabhalakkhaṇaṃ golakkhaṇaṃ ajalakkhaṇaṃ meṇḍalakkhaṇaṃ kukkuṭalakkhaṇaṃ vaṭṭakalakkhaṇaṃ godhālakkhaṇaṃ kaṇṇikalakkhaṇaṃ kacchapalakkhaṇaṃ migalakkhaṇaṃ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보석의 길상 표시, 옷의 길상 표시, 지팡이의 길상 표시, 칼의 길상 표시, 검의 길상 표시, 화살의 길상 표시, 활의 길상 표시, 무기의 길상 표시, 여자의 길상 표시, 남자의 길상 표시, 소년의 길상 표시, 소녀의 길상 표시, 남종의 길상 표시, 여종의 길상 표시, 코끼리의 길상 표시, 말의 길상 표시, 물소의 길상 표시, 씨황소의 길상 표시, 소의 길상 표시, 염소의 길상 표시, 숫양의 길상 표시, 닭의 길상 표시, 메추라기의 길상 표시, 도마뱀의 길상 표시, 긴귀사슴의 길상 표시, 거북의 길상 표시, 사슴의 길상 표시,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7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렇게 예언한다. “임금들이 출정할 것이다. 출정하지 않을 것이다. 안쪽 임금들이 쳐들어가고 바깥쪽 임금들이 물러날 것이다. 바깥쪽 임금들이 쳐들어가고 안쪽 임금들이 물러날 것이다. 안쪽 임금들이 이기고 바깥쪽 임금들이 질 것이다. 바깥쪽 임금들이 이기고 안쪽 임금들이 질 것이다. 이렇게 이 편은 이기고 저 편은 질 것이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raññaṃ niyyānaṃ bhavissati, raññaṃ aniyyānaṃ bhavissati, abbhantarānaṃ raññaṃ upayānaṃ bhavissati, bāhirānaṃ raññaṃ apayānaṃ bhavissati, bāhirānaṃ raññaṃ upayānaṃ bhavissati, abbhantarānaṃ raññaṃ apayānaṃ bhavissati, abbhantarānaṃ raññaṃ jayo bhavissati, bāhirānaṃ raññaṃ parājayo bhavissati, bāhirānaṃ raññaṃ jayo bhavissati, abbhantarānaṃ raññaṃ parājayo bhavissati, iti imassa jayo bhavissati, imassa parājayo bhavissati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왕들의 출정이 있으리라, 왕들의 출정이 없으리라, 안쪽 왕들의 진격이 있으리라, 바깥 왕들의 후퇴가 있으리라, 바깥 왕들의 진격이 있으리라, 안쪽 왕들의 후퇴가 있으리라, 안쪽 왕들의 승리가 있으리라, 바깥 왕들의 패배가 있으리라, 바깥 왕들의 승리가 있으리라, 안쪽 왕들의 패배가 있으리라, 그리하여 이 사람의 승리가 있으리라, 이 사람의 패배가 있으리라,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8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렇게 예언한다.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과 별의 가림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제 길로 갈 것이고, 제 길을 벗어날 것이다. 별들도 제 길로 갈 것이고, 제 길을 벗어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지고 하늘이 불타듯 붉어질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고 흐려지고 맑아질 것이다.” 또 이렇게도 예언한다. “월식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일식과 별의 가림도 각각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해와 달이 제 길로 가는 것도, 제 길을 벗어나는 것도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별들이 제 길로 가는 것도, 제 길을 벗어나는 것도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유성이 떨어지는 것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늘이 붉어지는 것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진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천둥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고 흐려지고 맑아지는 것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candaggāho bhavissati, sūriyaggāho bhavissati, nakkhattaggāho bhavissati, candimasūriyānaṃ pathagamanaṃ bhavissati, candimasūriyānaṃ uppathagamanaṃ bhavissati, nakkhattānaṃ pathagamanaṃ bhavissati, nakkhattānaṃ uppathagamanaṃ bhavissati, ukkāpāto bhavissati, disāḍāho bhavissati, bhūmicālo bhavissati, devadudrabhi bhavissati, candimasūriyanakkhattānaṃ uggamanaṃ ogama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bhavissati, evaṃvipāko candaggāho bhavissati, evaṃvipāko sūriyaggāho bhavissati, evaṃvipāko nakkhattaggāho bhavissati, evaṃvipākaṃ candimasūriyānaṃ pathagamanaṃ bhavissati, evaṃvipākaṃ candimasūriyānaṃ uppathagamanaṃ bhavissati, evaṃvipākaṃ nakkhattānaṃ pathagamanaṃ bhavissati, evaṃvipākaṃ nakkhattānaṃ uppathagamanaṃ bhavissati, evaṃvipāko ukkāpāto bhavissati, evaṃvipāko disāḍāho bhavissati, evaṃvipāko bhūmicālo bhavissati, evaṃvipāko devadudrabhi bhavissati, evaṃvipākaṃ candimasūriyanakkhattānaṃ uggamanaṃ ogama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bhavissati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월식이 있으리라, 일식이 있으리라, 별이 가려짐이 있으리라, 달과 해가 궤도를 따라 감이 있으리라, 달과 해가 궤도를 벗어나 감이 있으리라, 별들이 궤도를 따라 감이 있으리라, 별들이 궤도를 벗어나 감이 있으리라, 유성이 떨어짐이 있으리라, 하늘이 붉게 탐이 있으리라, 땅이 흔들림이 있으리라, 하늘 북이 울림이 있으리라, 달과 해와 별들의 뜸과 짐과 흐려짐과 맑아짐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월식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일식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별의 가려짐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달과 해의 궤도 순행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달과 해의 궤도 이탈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별들의 궤도 순행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별들의 궤도 이탈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유성의 떨어짐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하늘의 붉게 탐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땅의 흔들림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하늘 북의 울림이 있으리라, 이러이러한 과보를 가진 달과 해와 별들의 뜸과 짐과 흐려짐과 맑아짐이 있으리라,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09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렇게 예언한다. “비가 알맞게 올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풍년이 들 것이고, 흉년이 들 것이다. 평안할 것이고, 두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병이 돌 것이고, 건강할 것이다.” 손가락 셈, 계산, 헤아림, 시 짓기, 세속 철학도 이런 기술에 든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suvuṭṭhikā bhavissati, dubbuṭṭhikā bhavissati, subhikkhaṃ bhavissati, dubbhikkhaṃ bhavissati, khemaṃ bhavissati, bhayaṃ bhavissati, rogo bhavissati, ārogyaṃ bhavissati, muddā, gaṇanā, saṅkhānaṃ, kāveyyaṃ, lokāyataṃ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비가 잘 오리라, 비가 오지 않으리라, 먹을 것이 넉넉하리라, 굶주림이 있으리라, 평안하리라, 두려움이 있으리라, 병이 있으리라, 건강하리라, 손가락셈, 셈하기, 계산, 시 짓기, 세간의 자연 철학,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10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신부를 맞아들이는 날과 시집보내는 날을 잡아 준다. 화합시키는 주술과 갈라서게 하는 주술을 건다. 빚을 거두는 주술과 재물을 흩는 주술도 있다. 사랑받게 하는 주술과 미움받게 하는 주술도 있다. 태아를 해치는 주술, 혀를 묶는 주술, 턱을 굳게 하는 주술도 있다. 손, 턱, 귀에 거는 주문이 있다. 거울, 소녀, 신에게 묻는 점도 있다. 해를 받드는 의식과 대범천을 받드는 의식을 치른다. 입에서 불을 뿜는 술법과 복을 부르는 의식도 있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āvāhanaṃ vivāhanaṃ saṃvaraṇaṃ vivaraṇaṃ saṅkiraṇaṃ vikiraṇaṃ subhagakaraṇaṃ dubbhagakaraṇaṃ viruddhagabbhakaraṇaṃ jivhānibandhanaṃ hanusaṃhananaṃ hatthābhijappanaṃ hanujappanaṃ kaṇṇajappanaṃ ādāsapañhaṃ kumārikapañhaṃ devapañhaṃ ādiccupaṭṭhānaṃ mahatupaṭṭhānaṃ abbhujjalanaṃ sirivhāyanaṃ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신부 맞아들이기, 신부 보내기, 묶어 두기, 풀어 놓기, 재물 모으기, 재물 흩기, 행운을 만들어 주기, 불운을 만들어 주기, 죽은 태를 되살리는 처방, 혀를 묶는 주문, 턱을 잠그는 주문, 손을 돌리게 하는 주문, 턱에 거는 주문, 귀에 거는 주문, 거울에 물어보기, 어린 소녀에게 물어보기, 신에게 물어보기, 해를 섬기기, 큰 신을 섬기기, 저절로 불붙게 하기, 행운의 여신 시리를 부르기,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11
어떤 사문과 바라문은 신자들이 올린 공양을 먹으면서도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된 생계를 꾸려 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재앙을 가라앉히는 의식, 소원을 비는 의식, 귀신 달래는 의식이 있다. 흙집 의식, 비를 부르는 의식, 비를 그치게 하는 의식도 있다. 집터 의식과 집터 정화 의식이 있다. 입 헹구는 의식, 목욕시키는 의식, 불에 바치는 의식도 있다. 구토시키는 약과 설사시키는 약이 있다. 위로 내리는 약과 아래로 내리는 약도 있다. 머리를 비우는 약, 귀에 넣는 기름, 눈을 씻는 약, 코에 넣는 약도 있다. 안약과 덧바르는 약도 있다. 눈병 치료, 외과 수술, 아이 치료도 한다. 뿌리 약을 건네고 약초를 거두어 푸는 일도 한다. 그는 이처럼 쓸데없는 기술로 그릇되게 생계를 꾸리는 일을 삼간다. 이것도 그의 계행이다.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ena jīvitaṃ kappenti.
또 어떤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믿음으로 보시된 음식을 먹고서,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로 살아간다.
Seyyathidaṃ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santikammaṃ paṇidhikammaṃ bhūtakammaṃ bhūrikammaṃ vassakammaṃ vossakammaṃ vatthukammaṃ vatthuparikammaṃ ācamanaṃ nhāpanaṃ juhanaṃ vamanaṃ virecanaṃ uddhaṃvirecanaṃ adhovirecanaṃ sīsavirecanaṃ kaṇṇatelaṃ nettatappanaṃ natthukammaṃ añjanaṃ paccañjanaṃ sālākiyaṃ sallakattiyaṃ dārakatikicchā, mūlabhesajjānaṃ anuppadānaṃ, osadhīnaṃ paṭimokkho iti vā iti evarūpāya tiracchānavijjāya micchājīvā paṭivirato hoti.
신을 달래는 의식, 서원을 갚는 의식, 귀신을 위한 의식, 땅을 위한 의식, 비를 부르는 의식, 정욕을 없애는 의식, 터를 잡는 의식, 터를 손보는 일, 의례로 씻기, 목욕시키기, 헌공하기, 토하게 하기, 설사시키기, 위로 토하게 하기, 아래로 설사시키기, 머리를 씻어 내리기, 귀에 넣는 기름, 눈을 씻는 약, 코 치료, 눈에 바르는 약, 덧바르는 안약, 탐침 시술, 외과 시술, 소아 치료, 뿌리 약을 주는 일, 약초를 쓰는 일, 이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저열한 술법에 의한 그릇된 생계를 그는 삼간다.
Idampissa hoti sīlasmiṃ.
이것도 그의 계에 속한다.
212
대왕이여, 이렇게 계행을 갖춘 비구는 계로 단속하는 데서 비롯하여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비유하면 이렇다.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 왕이 적을 모두 물리쳤다고 하자. 그 왕은 적대하는 쪽에서 오는 두려움을 어디에서도 보지 않는다. 바로 그처럼, 대왕이여, 계행을 갖춘 비구도 계로 단속하는 데서 비롯하여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그는 이 거룩한 계의 무더기를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계행을 갖춘 이가 된다. 여기까지가 큰 계행이다.[불확실]
‘‘Sa kho so, mahārāja, bhikkhu evaṃ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sīlasaṃvarato.
대왕이여, 이와 같이 계를 갖춘 그 비구는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곧 계를 단속함으로 그러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
비유하자면 —
mahārāja, rājā khattiyo muddhābhisitto nihatapaccāmitt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paccatthikato;
대왕이여, 머리에 관정을 받고 적을 무찌른 끄샤뜨리야 왕이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곧 적으로부터 그러하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īlasampanno na kutoci bhayaṃ samanupassati, yadidaṃ sīlasaṃvarato.
대왕이여, 꼭 이와 같이 이렇게 계를 갖춘 비구는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곧 계를 단속함으로 그러하다.
So iminā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navajj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느낀다.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sīlasampanno hoti.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갖춘 자가 된다.
Mahāsīlaṃ niṭṭhitaṃ.
큰 계가 끝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감각 기능의 단속Indriyasaṃvaro
213
대왕이여, 비구는 어떻게 감각기능의 문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가?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전체 모습에 붙들리지 않는다. 세부 모습에도 붙들리지 않는다.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그에게 흘러들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막으려고 수행한다. 눈의 기능을 지키고 눈의 기능을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도,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혀로 맛을 볼 때도 같다. 몸으로 닿는 것을 느낄 때도 같다.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전체 모습에 붙들리지 않고 세부 모습에 붙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그에게 흘러들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막으려고 수행한다.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마음의 기능을 단속한다. 그는 이 거룩한 감각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즐거움을 느낀다.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감각기능의 문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불확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대왕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 기능의 문을 지키는 자가 되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ha, mahārāja,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물질을 보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는 그에게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불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며, 눈의 기능을 지키고, 눈의 기능에 단속을 갖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pe… jivhāya rasaṃ sāyitvā…pe…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pe…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코로 냄새를 맡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혀로 맛을 보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213.2에서 되살렸습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 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는 그에게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불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며,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마음의 기능에 단속을 갖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byāsek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감각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섞임 없는 행복을 느낀다.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 기능의 문을 지키는 자가 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Satisampajaññaṃ
214
대왕이여, 비구는 어떻게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는가?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앞으로 나아갈 때와 뒤로 물러설 때 분명히 알며 행한다. 앞을 볼 때와 둘러볼 때도 그렇게 한다. 몸을 굽힐 때와 펼 때도 그렇게 한다. 겉옷과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그렇게 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그렇게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고 말하고 잠자코 있을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한다.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춘다.[불확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대왕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춘 자가 되는가?
Idha, mahārāja,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겹옷과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춘 자가 된다.
만족Santoso
215
대왕이여, 비구는 어떻게 만족할 줄 아는가? 비구는 몸을 지탱할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어디로 가든 그것만 챙겨서 떠난다. 날개 달린 새는 어디로 날아가든 자기 날개만 지고 날아간다. 비구도 이와 같다. 몸을 지탱할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하고, 어디로 가든 그것만 챙겨서 떠난다.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만족할 줄 안다.[불확실]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그러면, 대왕이여, 어떻게 비구가 만족하는가?
Idha,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여기, 대왕이여, 비구는 몸을 보살피는 가사와 배를 보살피는 탁발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떠나가든 그것만을 지니고 떠나간다.
Seyyathāpi, mahārāja, pakkhī sakuṇo yena yeneva ḍeti, sapattabhārova ḍeti.
예컨대, 대왕이여, 날개 달린 새는 어디로 날아가든 제 날개만을 짐으로 지고 난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몸을 보살피는 가사와 배를 보살피는 탁발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떠나가든 그것만을 지니고 떠나간다.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santuṭṭho hoti.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만족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장애를 버림Nīvaraṇappahānaṃ
216
이 비구는 거룩한 계의 무더기를 갖추고, 거룩한 감각기능의 단속을 갖춘다. 거룩한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갖추고, 거룩한 만족도 갖춘다. 그리고 한적한 거처를 찾는다. 숲, 나무 밑, 산, 골짜기, 산굴, 무덤, 깊은 숲, 노지, 짚더미 같은 곳이다.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오면 자리에 앉는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운 채, 얼굴 앞에 마음챙김을 둔다.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고, 이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만족을 갖추어, 외딴 처소를 찾는다 — 숲, 나무 밑, 산, 협곡, 산속 동굴, 무덤가, 밀림, 노천, 짚더미를.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며 마음챙김을 앞에 확립하고 앉는다.
217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진 마음으로 지내며, 마음을 탐욕에서 맑힌다. 악의와 분노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모든 생명의 이로움을 연민하며, 마음을 악의와 분노에서 맑힌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고 빛을 떠올리며 지낸다.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면서, 마음을 해태와 혼침에서 맑힌다.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은 채 지낸다.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여, 마음을 들뜸과 후회에서 맑힌다.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지낸다. 좋은 일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지 않으며, 마음을 의심에서 맑힌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이 사라진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고,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해태와 혼침을 버리고 해태와 혼침이 사라진 채 머물며, 광명을 인식하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은 채 머물며, 안으로 고요해진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선 채 머물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갈팡질팡하지 않고,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218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을 벌인다고 하자. 그 사업이 잘 풀린다. 그는 옛 빚의 원금을 갚고도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돈이 남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사업을 벌였다. 그 사업이 잘 풀렸다. 그래서 옛 빚의 원금을 갚았고,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돈도 남았다.’ 그는 이 일로 기쁨을 얻고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iṇaṃ ādāya kammante payojeyya.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을 벌인다고 하자.
Tassa te kammantā samijjheyyuṃ.
그 사업이 그에게 잘된다고 하자.
So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ṃ kareyya, siyā cassa uttariṃ avasiṭṭhaṃ dārabharaṇāya.
그래서 그가 예전의 빚 원금을 다 갚아 없애고, 게다가 아내를 부양할 것까지 남는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iṇaṃ ādāya kammante payojesiṃ.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사업을 벌였다.
Tassa me te kammantā samijjhiṃsu.
그 사업이 내게 잘되었다.
Sohaṃ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iṃ akāsiṃ, atthi ca me uttariṃ avasiṭṭhaṃ dārabharaṇāyā’ti.
그래서 나는 예전의 빚 원금을 다 갚아 없앴고, 게다가 내게는 아내를 부양할 것까지 남아 있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환희를 얻고 기쁨에 이를 것이다.
219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는다고 하자. 밥이 입에 맞지 않고 몸에는 힘이 없다. 그러다 얼마 뒤 병에서 벗어나, 밥이 입에 맞고 몸에도 힘이 생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전에 병이 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았다. 밥은 입에 맞지 않았고 몸에는 힘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병에서 벗어났다. 밥이 입에 맞고 몸에도 힘이 있다.’ 그는 이 일로 기쁨을 얻고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ābādhiko assa dukkhito bāḷhagilāno;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병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는다고 하자;
bhattañcassa nacchādeyya, na cassa kāye balamattā.
그에게 음식이 받지 않고, 몸에 기운이라고는 없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ābādhā mucceyya;
그가 나중에 그 병에서 벗어난다고 하자;
bhattaṃ cassa chādeyya, siyā cassa kāye balamattā.
그에게 음식이 받고, 몸에 기운도 생긴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ābādhiko ahosiṃ dukkhito bāḷhagilāno;
‘나는 전에 병들어 괴로워하며 몹시 앓았다;
bhattañca me nacchādesi, na ca me āsi kāye balamattā.
내게 음식이 받지 않았고, 내 몸에 기운이라고는 없었다.
Somhi etarahi tamhā ābādhā mutto;
그런 내가 지금은 그 병에서 벗어났다;
bhattañca me chādeti, atthi ca me kāye balamattā’ti.
내게 음식이 받고, 내 몸에 기운도 있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환희를 얻고 기쁨에 이를 것이다.
220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자. 그가 얼마 뒤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감옥에서 풀려난다. 재산도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풀려났다. 내 재산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는 이 일로 기쁨을 얻고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bandhanāgāre baddho assa.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bandhanāgārā mucceyya sotthinā abbhayena, na cassa kiñci bhogānaṃ vayo.
그가 나중에 그 감옥에서 무사히 탈 없이 풀려나고, 그의 재산도 조금도 축나지 않는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bandhanāgāre baddho ahosiṃ, somhi etarahi tamhā bandhanāgārā mutto sotthinā abbhayena.
‘나는 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런 내가 지금은 그 감옥에서 무사히 탈 없이 풀려났다.
Natthi ca me kiñci bhogānaṃ vayo’ti.
그리고 내 재산은 조금도 축나지 않았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환희를 얻고 기쁨에 이를 것이다.
221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종이라고 하자.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있으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다. 그가 얼마 뒤 종살이에서 벗어난다. 이제 자기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전에 종이어서 내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있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종살이에서 벗어났다. 내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는 이 일로 기쁨을 얻고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dāso assa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ṃgamo.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종이어서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mhā dāsabyā mucceyya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ṃgamo.
그가 나중에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 제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dāso ahosiṃ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ṃgamo.
‘나는 전에 종이어서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했다.
Somhi etarahi tamhā dāsabyā mutto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ṃgamo’ti.
그런 내가 지금은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 제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환희를 얻고 기쁨에 이를 것이다.
222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재산과 물건을 지닌 채 사막길에 들어선다고 하자. 식량이 귀하고 위험한 길이다. 그가 얼마 뒤 안전하게 사막을 건너, 평안하고 위험 없는 마을 가까이에 닿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전에 재산과 물건을 지닌 채 식량이 귀하고 위험한 사막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안전하게 사막을 건너, 평안하고 위험 없는 마을 가까이에 닿았다.’ 그는 이 일로 기쁨을 얻고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ṃ paṭipajjeyya dubbhikkhaṃ sappaṭibhayaṃ.
“예컨대, 대왕이여, 재물과 재산을 지닌 어떤 사람이 먹을 것이 없고 무서운 사막 길에 들어선다고 하자.
So aparena samayena taṃ kantāraṃ nitthareyya sotthinā, gāmantaṃ anupāpuṇeyya khemaṃ appaṭibhayaṃ.
그가 나중에 그 사막을 무사히 건너, 안전하고 무섭지 않은 마을 어귀에 이른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ṃ paṭipajjiṃ dubbhikkhaṃ sappaṭibhayaṃ.
‘나는 전에 재물과 재산을 지니고 먹을 것이 없고 무서운 사막 길에 들어섰다.
Somhi etarahi taṃ kantāraṃ nitthiṇṇo sotthinā, gāmantaṃ anuppatto khemaṃ appaṭibhaya’nti.
그런 내가 지금은 그 사막을 무사히 건너, 안전하고 무섭지 않은 마을 어귀에 이르렀다.’
So tatonidānaṃ labhetha pāmojjaṃ, adhigaccheyya somanassaṃ.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환희를 얻고 기쁨에 이를 것이다.
223
대왕이여, 비구는 이 다섯 덮개가 아직 버려지지 않았음을 자기 안에서 본다. 그것은 빚과 같고, 병과 같고, 감옥과 같고, 종살이와 같고, 사막길과 같다. 반대로 다섯 덮개가 버려졌음을 자기 안에서 본다. 그것은 빚 없음과 같고, 건강과 같고, 감옥에서 풀려남과 같다. 또 자유와 같고, 평안한 땅과 같다. 이렇게 다섯 덮개가 버려졌음을 보는 사람에게 기쁨이 일어나고, 기쁜 이에게 희열이 일어난다. 희열에 찬 마음에서 몸이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한 이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운 이의 마음은 집중된다.[불확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yathā iṇaṃ yathā rogaṃ yathā bandhanāgāraṃ yathā dāsabyaṃ yathā kantāraddhānamaggaṃ, evaṃ ime pañca nīvaraṇe appahīne attani samanupassa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빚과 같이, 병과 같이, 감옥과 같이, 종살이와 같이, 사막 길과 같이, 그와 같이 아직 버려지지 않은 이 다섯 장애를 자기 안에서 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24
‘‘Seyyathāpi, mahārāja, yathā āṇaṇyaṃ yathā ārogyaṃ yathā bandhanāmokkhaṃ yathā bhujissaṃ yathā khemantabhūmiṃ;
“예컨대, 대왕이여, 빚 없음과 같이, 병 없음과 같이, 감옥에서 풀려남과 같이, 자유의 몸과 같이, 안전한 땅과 같이;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버려진 이 다섯 장애를 자기 안에서 본다.
225
‘‘Tass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버려진 이 다섯 장애를 자기 안에서 보는 그에게 환희가 생기고, 환희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며, 희열에 찬 이의 몸은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한 이는 행복을 느끼며, 행복한 이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초선Paṭhamajjhānaṃ
226
그는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고 해로운 것들에서 떠난다. 그리고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이 선정에는 일으킨 생각과 머문 생각이 있고,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다. 그는 바로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시고 스며들게 한다. 몸을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227
대왕이여, 솜씨 좋은 목욕 시종이나 그 제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놋쇠 대야에 목욕 가루를 뿌리고 물을 조금씩 끼얹어 가며 반죽한다. 그러면 목욕 가루 덩어리는 물기가 배어들고 물기로 가득 차서, 속과 겉이 물기로 젖는다. 그래도 물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ṃ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ṃ paripphosakaṃ sanneyya, sāyaṃ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aṇī;
“예컨대, 대왕이여, 솜씨 좋은 목욕 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놋대야에 목욕 가루를 뿌려 넣고 물을 조금씩 뿌려 가며 반죽하면, 그 목욕 가루 덩이는 물기가 배어들고 물기에 잠겨 안팎으로 물기가 스며들되 물이 흘러내리지는 않는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제2선Dutiyajjhānaṃ
228
대왕이여, 비구는 다시 둘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일으킨 생각과 머문 생각이 가라앉아 안으로 맑아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일으킨 생각도 머문 생각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있다. 그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Puna caparaṃ, mahārāj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또, 대왕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229
대왕이여, 밑에서 물이 솟는 깊은 호수가 있다고 하자. 이 호수에는 동쪽도 남쪽도 서쪽도 북쪽도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없다. 하늘도 때때로 알맞은 비를 내려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로 그 호수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호수를 차가운 물로 적시고 스며들게 한다. 물은 호수를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진다. 호수 어디에도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으로 적신다.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udakarahado gambhīro ubbhidodako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ṃ, devo ca na kālenakālaṃ sammādhāraṃ anuppaveccheyya.
“예컨대, 대왕이여, 깊은 못에 물이 밑에서 솟아오르는데, 그 못에는 동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어귀도 없고, 남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어귀도 없고, 서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어귀도 없고, 북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어귀도 없으며, 하늘도 때때로 흡족한 비를 내려 주지 않는다고 하자.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ṃ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그렇더라도 바로 그 못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올라 바로 그 못을 시원한 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할 것이니, 그 못 어디에도 시원한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ṃ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제3선Tatiyajjhānaṃ
230
대왕이여, 비구는 다시 희열에서 마음이 떠나 평온하게 지낸다.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은 이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즐겁게 지낸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셋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 없는 즐거움으로 적신다.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희열 없는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mahārāj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다시 또, 대왕이여, 비구는 희열이 잦아들어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불확실]
불확실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무는 이’라고 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
So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그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231
대왕이여, 푸른 연꽃 연못이나 붉은 연꽃 연못이나 흰 연꽃 연못이 있다고 하자. 그 가운데 어떤 푸른 연꽃과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은 물속에서 나고 자란다. 물 위로 솟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자란다. 그 꽃들은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이 적시고 스며들어 가득 차고 두루 퍼진다. 푸른 연꽃이든 붉은 연꽃이든 흰 연꽃이든, 차가운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희열 없는 즐거움으로 적신다. 스며들게 하고, 가득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한다. 온몸 어디에도 희열 없는 즐거움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ṃ uppalānaṃ vā padumānaṃ vā puṇḍarīkānaṃ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ṃ assa;
“예컨대, 대왕이여, 청련 못이나 홍련 못이나 백련 못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은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지 않은 채 물속에 잠겨 자라는데, 그것들은 꼭대기까지도 뿌리까지도 시원한 물에 적셔지고 흠뻑 적셔지고 채워지고 두루 퍼져 있으니,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 어디에도 시원한 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ṃ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희열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니,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희열이 없는 행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제4선Catutthajjhānaṃ
232
대왕이여, 비구는 다시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가라앉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는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Puna caparaṃ, mahārāj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다시 또, 대왕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말미암아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무니, 그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두루 채우고 앉아 있으며,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33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머리까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고 하자.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있다. 온몸 어디에도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ṃ pārupi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ṃ assa;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흰 천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온몸 어디에도 흰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imameva kāyaṃ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ṃ ho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바로 이 몸을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두루 채우고 앉아 있으며, 그의 온몸 어디에도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통찰의 앎Vipassanāñāṇaṃ
234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는 앎과 봄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겼고, 밥과 죽으로 자라난다.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지는,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고 여기에 묶여 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앎과 봄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이 나의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이 쌓인 것이며, 무상하여 문질러 주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법이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묶여 있다.’
235
대왕이여, 아름답고 품질 좋은 유리 보석이 있다고 하자. 팔각으로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며 흐림이 없다. 모든 면에서 흠 없이 갖추어져 있다. 그 보석에는 푸른 실, 노란 실, 붉은 실, 흰 실, 또는 연한 갈색 실이 꿰어 있다.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손에 쥐고 살펴본다. ‘이것은 아름답고 품질 좋은 유리 보석이다. 팔각으로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며 흐림이 없다. 모든 면에서 흠 없이 갖추어져 있다. 그 안에 푸른 실, 노란 실, 붉은 실, 흰 실, 또는 연한 갈색 실이 꿰어 있구나.’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앎과 봄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네 가지 큰 요소로 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겼고, 밥과 죽으로 자라난다. 문지르고 주무르면 부서지고 흩어지는,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고 여기에 묶여 있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예컨대, 대왕이여, 아름답고 질 좋고 여덟 모가 나고 잘 다듬어졌으며,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온갖 모양새를 갖춘 유리 보석이 있다고 하자.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거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담황색 실이 꿰어져 있다고 하자.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손에 들고 살펴본다면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이 유리 보석은 아름답고 질 좋고 여덟 모가 나고 잘 다듬어졌으며,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온갖 모양새를 갖추었다;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그리고 거기에는 이 실이 꿰어져 있으니,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담황색 실이다’라고 할 것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앎과 봄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이 나의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이 쌓인 것이며, 무상하여 문질러 주고 주물러 주어야 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법이다;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그리고 나의 이 의식은 여기에 기대어 있고 여기에 묶여 있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마음으로 이룬 신통의 앎Manomayiddhiñāṇaṃ
236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일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그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팔다리와 온갖 부분을 갖추었고, 감각기능에도 모자람이 없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그는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내니,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팔다리와 작은 팔다리를 모두 갖추고 감각기능이 모자람 없는 몸이다.
237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문자풀에서 속대를 뽑아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문자풀이고 이것은 속대다. 문자풀과 속대는 서로 다르다. 속대는 문자풀에서 뽑혀 나왔을 뿐이다.’ 또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는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서로 다르다. 칼은 칼집에서 뽑혀 나왔을 뿐이다.’ 또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바구니에서 뱀을 꺼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바구니다. 뱀과 바구니는 서로 다르다. 뱀은 바구니에서 꺼내졌을 뿐이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일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낸다. 그 몸은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팔다리와 온갖 부분을 갖추었고, 감각기능에도 모자람이 없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muñjamhā īsikaṃ pavāheyya.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문자 풀에서 속대를 뽑아낸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muñjo, ayaṃ īsikā, añño muñjo, aññā īsikā, muñjamhā tveva īsikā pavāḷhā’ti.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속대다. 문자 풀은 다른 것이고 속대는 다른 것이다. 다만 문자 풀에서 속대가 뽑혀 나왔을 뿐이다.’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siṃ kosiyā pavāheyya.
또는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낸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si, ayaṃ kosi, añño asi, aññā kosi, kosiyā tveva asi pavāḷho’’ti.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은 다른 것이고 칼집은 다른 것이다. 다만 칼집에서 칼이 뽑혀 나왔을 뿐이다.’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hiṃ karaṇḍā uddhareyya.
또는 예컨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바구니에서 뱀을 꺼낸다고 하자.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ahi, ayaṃ karaṇḍo.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바구니다.
Añño ahi, añño karaṇḍo, karaṇḍā tveva ahi ubbhato’ti.
뱀은 다른 것이고 바구니는 다른 것이다. 다만 바구니에서 뱀이 꺼내졌을 뿐이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 내는 데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그는 이 몸에서 다른 몸을 만들어 내니, 물질로 되어 있고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팔다리와 작은 팔다리를 모두 갖추고 감각기능이 모자람 없는 몸이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여러 가지 신통의 앎Iddhividhañāṇaṃ
238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는 신통의 힘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신통을 경험한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벽과 담과 산을 허공을 가듯 걸림 없이 지나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솟았다 잠겼다 하고, 물 위도 땅 위처럼 가라앉지 않고 걷는다. 허공에서는 가부좌한 채 날개 달린 새처럼 날아간다. 이처럼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닌 저 해와 달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자유자재로 오간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여러 가지 신통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그는 갖가지 신통을 몸소 겪는다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가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마치 물속에서처럼 솟았다 잠겼다 한다.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ā.
물 위에서도 갈라지지 않는 물 위를 마치 땅 위에서처럼 걸어간다.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나아간다.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이처럼 크나큰 신통과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까지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범천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지배력을 미친다.
239
대왕이여, 솜씨 좋은 옹기장이나 그 제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잘 이긴 진흙으로 어떤 그릇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또 대왕이여, 솜씨 좋은 상아 세공사나 그 제자가 잘 다듬은 상아로 어떤 상아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또 대왕이여, 솜씨 좋은 금 세공사나 그 제자가 잘 단련한 금으로 어떤 금 세공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 더러움이 사라져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통의 힘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쏟는다. 그는 갖가지 신통을 경험한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벽과 담과 산을 허공을 가듯 걸림 없이 지나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솟았다 잠겼다 하고, 물 위도 땅 위처럼 가라앉지 않고 걷는다. 허공에서는 가부좌한 채 날개 달린 새처럼 날아간다. 이처럼 큰 신통과 큰 위력을 지닌 저 해와 달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자유자재로 오간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의 결실이다. 앞선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빼어나다.
‘‘Seyyathāpi, mahārāja, dakkho kumbhakāro vā kumbh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āya mattikāya yaṃ yadeva bhājan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예컨대, 대왕이여, 솜씨 좋은 옹기장이나 그 제자가 잘 이겨 놓은 진흙으로 어떤 그릇 모양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낸다고 하자.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dakkho dantakāro vā dant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dantasmiṃ yaṃ yadeva dant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예컨대, 대왕이여, 솜씨 좋은 상아 세공인이나 그 제자가 잘 다듬어 놓은 상아로 어떤 상아 모양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낸다고 하자.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dakkho suvaṇṇakāro vā suvaṇṇakārantevāsī vā suparikammakatasmiṃ suvaṇṇasmiṃ yaṃ yadeva suvaṇṇavikatiṃ ākaṅkheyya, taṃ tadeva kareyya abhinipphādeyya.
또는 예컨대, 대왕이여, 솜씨 좋은 금 세공인이나 그 제자가 잘 다듬어 놓은 금으로 어떤 금 모양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내고 이루어 낸다고 하자.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iddhividh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바로 이와 같이, 대왕이여, 비구는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여러 가지 신통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향하게 한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그는 갖가지 신통을 몸소 겪는다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가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마치 물속에서처럼 솟았다 잠겼다 한다.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ā.
물 위에서도 갈라지지 않는 물 위를 마치 땅 위에서처럼 걸어간다.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가부좌한 채 나아간다.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āmasati parimajjati.
이처럼 크나큰 신통과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까지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범천의 세계까지도 몸으로 지배력을 미친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빼어나다.
신성한 귀의 앎Dibbasotañāṇaṃ
240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그는 하늘귀의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귀로 두 가지 소리를 모두 듣습니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입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성한 귀의 요소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 신들의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를,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241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가 큰북 소리도 듣고 작은북 소리도 듣습니다. 소라고둥과 꽹과리와 장구 소리도 듣습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알 것입니다. ‘이것은 큰북 소리구나, 이것은 작은북 소리구나, 이것은 소라고둥과 꽹과리와 장구 소리구나.’ 대왕이여,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하늘귀의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귀로 두 가지 소리를 모두 듣습니다.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입니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눈앞에서 누리는 사문의 열매입니다. 앞서 말한 눈앞의 열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불확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addhānamaggappaṭipanno.
대왕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고 있다고 하자.
So suṇeyya bherisaddampi mudiṅgasaddam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ampi.
그는 큰북 소리도 듣고, 작은북 소리도 듣고, 소라와 요발과 딩딤북 소리도 들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bherisaddo’ itipi, ‘mudiṅgasaddo’ itipi, ‘saṅkhapaṇavadindimasaddo’ itipi.
‘큰북 소리다’라고도, ‘작은북 소리다’라고도, ‘소라와 요발과 딩딤북 소리다’라고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dibbāya sotadhātuyā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대왕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a.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 신들의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를,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남의 마음을 아는 앎Cetopariyañāṇaṃ
242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그는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압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은 탐욕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성냄을 떠난 마음은 성냄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은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든 마음임을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임을 압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임을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임을 압니다.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은 그런 마음임을 알고, 더 위가 없는 마음은 그런 마음임을 압니다. 집중된 마음은 집중된 마음임을 알고, 집중되지 않은 마음은 집중되지 않은 마음임을 압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임을 알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한 마음임을 압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남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그는 다른 중생들, 다른 개인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위축된 마음은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위없는 마음은 ‘위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243
대왕이여, 꾸미기를 좋아하는 젊은 여자나 남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맑고 깨끗한 거울이나 투명한 물그릇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봅니다. 얼굴에 점이 있으면 ‘점이 있구나’ 하고 알고, 점이 없으면 ‘점이 없구나’ 하고 압니다. 대왕이여,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압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탐욕을 떠난 마음은 탐욕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성냄을 떠난 마음은 성냄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은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임을 압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든 마음임을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임을 압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임을 알고,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임을 압니다.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은 그런 마음임을 알고, 더 위가 없는 마음은 그런 마음임을 압니다. 집중된 마음은 집중된 마음임을 알고, 집중되지 않은 마음은 집중되지 않은 마음임을 압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임을 알고, 해탈하지 못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한 마음임을 압니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눈앞에서 누리는 사문의 열매입니다. 앞서 말한 눈앞의 열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Seyyathāpi, mahārāja,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jāneyya;
대왕이여, 예를 들면 젊고 한창때이며 몸단장을 좋아하는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밝은 거울이나 맑은 물그릇에 제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티가 있으면 ‘티가 있다’고 알고, 티가 없으면 ‘티가 없다’고 아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대왕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그는 다른 중생들, 다른 개인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안다. 위축된 마음은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진 마음은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은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위없는 마음은 ‘위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전생을 기억하는 앎Pubbenivāsānussatiñāṇaṃ
244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그는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지난 삶을 기억해 냅니다. 이를테면 이러합니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을 기억합니다. 세계가 무너지는 오랜 세월과 다시 생겨나는 오랜 세월,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오랜 세월도 여러 번씩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다.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다.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여러 가지 지난 삶을 모습과 내용까지 갖추어 기억해 냅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그는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세계가 수축하는 겁도 여럿, 세계가 팽창하는 겁도 여럿,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여럿을.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살았다.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살았다.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렇게 그는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245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간다고 합시다. 그는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갑니다. 그러고는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 마을에서 또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다시 내 마을로 돌아왔다.’ 대왕이여,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지난 삶을 기억해 냅니다. 이를테면 이러합니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을 기억합니다. 세계가 무너지는 오랜 세월과 다시 생겨나는 오랜 세월, 무너지고 다시 생겨나는 오랜 세월도 여러 번씩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다.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 이런 모습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다.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여러 가지 지난 삶을 모습과 내용까지 갖추어 기억해 냅니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눈앞에서 누리는 사문의 열매입니다. 앞서 말한 눈앞의 열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sakamhā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tamhāpi gāmā aññaṃ gāmaṃ gaccheyya.
대왕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고,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갈 것이다.
So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ccheyya.
그는 그 마을에서 다시 제 마을로 돌아올 것이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sakamhā gāmā amuṃ gāmaṃ agacchiṃ, tatrāpi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tamhāpi gāmā amuṃ gāmaṃ agacchiṃ, tatrāpi evaṃ aṭṭhāsiṃ, evaṃ nisīdiṃ, evaṃ abhāsiṃ, evaṃ tuṇhī ahosiṃ, somhi tamhā gāmā sakaṃyeva gāmaṃ paccāgato’ti.
‘나는 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 마을에서 또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았고,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서 나는 그 마을에서 다시 내 마을로 돌아왔다’라고.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대왕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그는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세계가 수축하는 겁도 여럿, 세계가 팽창하는 겁도 여럿,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여럿을. ‘저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살았다.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을 살았다.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신성한 눈의 앎Dibbacakkhuñāṇaṃ
246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그는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봅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줄을 압니다. ‘아,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릇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의 곳, 지옥에 태어났다. 또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봅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줄을 압니다.[불확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 죽어 가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훌륭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그리고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아, 이 중생들은 몸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말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또 이 중생들은 몸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말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 죽어 가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훌륭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그리고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47
대왕이여, 네거리 한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다고 합시다. 눈 밝은 사람이 그 위에 서서 내려다봅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 것이 보입니다. 길을 따라 오가기도 하고, 네거리 한가운데 앉아 있기도 한 것이 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알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고, 저 사람들은 나오고, 저 사람들은 길을 따라 오가고, 저 사람들은 네거리 한가운데 앉아 있구나.’ 대왕이여,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봅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줄을 압니다. ‘아,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릇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의 곳, 지옥에 태어났다. 또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천한 이와 귀한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봅니다. 그리고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줄을 압니다. 대왕이여, 이것 또한 눈앞에서 누리는 사문의 열매입니다. 앞서 말한 눈앞의 열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불확실]
‘‘Seyyathāpi, mahārāja, majjhe siṅghāṭake pāsādo.
대왕이여, 예를 들면 네거리 한가운데에 누각이 있다고 하자.
Tattha cakkhumā puriso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ṃ pavisantepi nikkhamantepi rathikāyapi vīthiṃ sañcarante majjhe siṅghāṭake nisinnepi.
눈 있는 사람이 거기 서서 보면,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큰길로 거리를 오가기도 하고, 네거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기도 한 것을 볼 것이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ete manussā gehaṃ pavisanti, ete nikkhamanti, ete rathikāya vīthiṃ sañcaranti, ete majjhe siṅghāṭake nisinnā’ti.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간다. 이들은 나온다. 이들은 큰길로 거리를 오간다. 이들은 네거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라고.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대왕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 죽어 가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훌륭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그리고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아, 이 중생들은 몸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말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또 이 중생들은 몸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말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 죽어 가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훌륭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번뇌를 다하는 앎Āsavakkhayañāṇaṃ
248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그는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압니다. 또 ‘이것들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납니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납니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 하는 앎이 생깁니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번뇌들이 다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들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이루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와 같은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라고 안다.
249
대왕이여, 산골짜기에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은 호수가 있다고 합시다. 눈 밝은 사람이 물가에 서서 봅니다. 조개와 굴, 자갈과 조약돌, 물고기 떼가 오가기도 하고 머물러 있기도 한 것이 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알 것입니다. ‘이 호수는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구나. 그 안에 조개와 굴, 자갈과 조약돌, 물고기 떼가 오가기도 하고 머물러 있기도 하구나.’ 대왕이여,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집니다. 티끌과 오염이 가시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아 흔들림이 없게 되면,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입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압니다. 또 ‘이것들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납니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납니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 하는 앎이 생깁니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왕이여, 이것이 눈앞에서 누리는 사문의 열매입니다. 앞서 말한 눈앞의 열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대왕이여, 이 열매보다 더 높거나 더 수승한 눈앞의 사문의 열매는 달리 없습니다.
‘‘Seyyathāpi, mahārāj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산 위에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은 물웅덩이가 있다고 하자.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눈 있는 사람이 물가에 서서 보면, 조개와 소라도, 자갈과 조약돌도, 물고기 떼도, 움직이는 것도 멈추어 있는 것도 볼 것이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yaṃ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이 물웅덩이는 맑고 투명하며 흐리지 않다.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거기에 이 조개와 소라도, 자갈과 조약돌도, 물고기 떼도 있어,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어 있기도 하다’라고.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대왕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들이 다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돌린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들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이루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와 같은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라고 안다.
Idaṃ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
대왕이여, 이것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이니, 앞의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Imasmā ca pana, mahārāja, sandiṭṭhikā sāmaññaphalā aññaṃ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uttaritaraṃ vā paṇītataraṃ vā natthī’’ti.
대왕이여, 그리고 이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사문됨의 결실보다 더 높거나 더 훌륭한,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다른 사문됨의 결실은 없다.
아자따삿투가 재가신자임을 밝힘Ajātasattuupāsakattapaṭivedanā
250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의 아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드러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사람은 형상을 보리라’ 하고 기름등불을 들어 올리듯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저는 어리석고 미혹하고 서툴렀던 탓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왕위를 탐하여, 법을 따르는 법왕이셨던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주십시오.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단속하겠습니다.”[불확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왕 웨데히뿟따 아자따삿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고, 덮인 것을 열어 보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고,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리라’ 하며 어둠 속에 기름등불을 드는 것과 같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ante,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ṃ.
세존이시여,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Accayo maṃ, bhante, accagamā yathābālaṃ yathāmūḷhaṃ yathāakusalaṃ, yohaṃ pitaraṃ dhammikaṃ dhammarājānaṃ issariyakāraṇā jīvitā voropesiṃ.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자답게, 미혹한 자답게, 선하지 못한 자답게 제게 잘못이 덮쳤습니다. 저는 권력 때문에 법답고 법다운 왕이신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Tassa me, bhante bhagavā accayaṃ accayato paṭiggaṇhātu āyatiṃ saṃvarāyā’’ti.
세존이시여, 그러니 세존께서는 저의 그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 주시어, 앞으로 삼가게 해 주소서.
251
“대왕이여, 참으로 그대는 어리석고 미혹하고 서툴러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법을 따르는 법왕이셨던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그대는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에 따라 뉘우쳤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대왕이여,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에 따라 뉘우치며 앞으로 단속하게 되는 것은, 성자의 가르침 안에서 성장하는 일입니다.”
‘‘Taggha tvaṃ, mahārāja, accayo accagamā yathābālaṃ yathāmūḷhaṃ yathāakusalaṃ, yaṃ tvaṃ pitaraṃ dhammikaṃ dhammarājānaṃ jīvitā voropesi.
대왕이여, 참으로 그대에게 잘못이 덮쳤다. 어리석은 자답게, 미혹한 자답게, 선하지 못한 자답게, 그대가 법답고 법다운 왕인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그것이 그러하다.
Yato ca kho tvaṃ, mahārāja, accayaṃ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ṃ paṭikarosi, taṃ te mayaṃ paṭiggaṇhāma.
대왕이여, 그러나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답게 바로잡았으니,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Vuddhihesā, mahārāja, ariyassa vinaye, yo accayaṃ accayato disvā yathādhammaṃ paṭikaroti, āyatiṃ saṃvaraṃ āpajjatī’’ti.
대왕이여,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답게 바로잡아 앞으로 삼가는 것,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는 향상이다.
252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의 아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처리할 일도 많습니다.” “대왕이여, 마땅하다고 여기시는 때에 가십시오.”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의 아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고맙게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떠났다.[불확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왕 웨데히뿟따 아자따삿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handa ca dāni mayaṃ, bhante, gacchāma bahukiccā mayaṃ bahukaraṇīyā’’ti.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Yassadāni tvaṃ, mahārāja, kālaṃ maññasī’’ti.
대왕이여, 이제 그대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그러자 마가다의 왕 웨데히뿟따 아자따삿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함께 기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253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자따삿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왕은 무너졌다. 비구들이여, 이 왕은 망가졌다. 비구들이여, 이 왕이 법을 따르는 법왕이셨던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겼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에 즐거워하였다. 「사문과경」이 둘째로 끝났다.[불확실]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assa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bhikkhū āmantesi –
마가다의 왕 웨데히뿟따 아자따삿투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khatāyaṃ, bhikkhave, rājā.
비구들이여, 이 왕은 스스로를 해쳤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hatāyaṃ, bhikkhave, rājā.
비구들이여, 이 왕은 스스로를 망쳤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cāyaṃ, bhikkhave, rājā pitaraṃ dhammikaṃ dhammarājānaṃ jīvitā na voropessatha, imasmiññeva āsane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ppajjissathā’’ti.
비구들이여, 만일 이 왕이 법답고 법다운 왕인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더라면, 바로 이 자리에서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겼을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Sāmaññaphal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사문됨의 결실 경이 끝났다.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