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왁가 빠알리Mahāvaggapāḷi
1. Mahāpadānasuttaṃ
1. 마하빠다나 경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1
전생에 관한 법담Pubbenivāsapaṭisaṃyuttakathā
이렇게 내가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머물고 계셨다. 아나타삔디까 원림의 까레리 오두막이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karerikuṭikāyaṃ.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의 까레리 나무 초막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공양을 마친 여러 비구가 탁발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까레리 나무 둘레의 둥근 강당에 모여 앉았다. 그때 전생에 관한 법담이 일어났다. ‘전생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전생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는 이야기였다.
Atha kho sambahulānaṃ bhikkhūnaṃ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ṃ karerimaṇḍalamāḷe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pubbenivāsapaṭisaṃyuttā dhammī kathā udapādi –
그때 여러 비구가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까레리 원형 정자에 함께 앉아 모였는데, 그들에게 전생에 관한 법담이 일어났다 —
‘‘itipi pubbenivāso, itipi pubbenivāso’’ti.
‘전생이란 이런 것, 전생이란 이런 것’ 하고.
2
세존께서는 맑고 깨끗한 하늘 귀로 비구들의 대화를 들으셨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귀였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 까레리 나무 둘레의 강당으로 가셨다.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불확실]
Assosi kho bhagav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tesaṃ bhikkhūnaṃ imaṃ kathāsallāpaṃ.
세존께서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그 비구들의 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셨다.
Atha kho bhagavā uṭṭhāyāsanā yena karerimaṇḍalamāḷ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까레리 원형 정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고,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앉았는가? 그대들이 하다가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kāya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로 여기 함께 앉아 있는가;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또 그대들의 무슨 이야기가 중간에 그쳤는가?”
이렇게 물으시자 비구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까레리 나무 둘레의 강당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때 전생에 관한 법담이 일어났습니다. ‘전생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전생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가 하다가 만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Evaṃ vutte te bhikkhū bhagavantaṃ etadavocuṃ –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idha, bhante, amhākaṃ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ānaṃ karerimaṇḍalamāḷe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pubbenivāsapaṭisaṃyuttā dhammī kathā udapādi –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가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까레리 원형 정자에 함께 앉아 모였는데, 저희에게 전생에 관한 법담이 일어났습니다 —
‘itipi pubbenivāso itipi pubbenivāso’ti.
‘전생이란 이런 것, 전생이란 이런 것’ 하고.
Ayaṃ kho no, bhante, antarākathā vippakatā.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의 중간에 그친 이야기입니다.
Atha bhagavā anuppatto’’ti.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전생에 관한 법담을 듣고 싶은가?
‘‘Iccheyyātha no tumhe, bhikkhave, pubbenivāsapaṭisaṃyuttaṃ dhammiṃ kathaṃ sotu’’n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전생에 관한 법담을 듣고 싶은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세존께서 전생에 관한 법담을 들려주십시오. 비구들이 세존께 듣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Etassa, bhagavā, kālo;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etassa, sugata, kālo;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yaṃ bhagavā pubbenivāsapaṭisaṃyuttaṃ dhammiṃ kathaṃ kareyya,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서 전생에 관한 법담을 해 주시면, 세존께 듣고 비구들이 새겨 지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잘 듣고 마음에 깊이 새겨라. 말하겠다.
‘‘Tena hi, bhikkhave, suṇātha,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비구들은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4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91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세상에 나셨다. 지금부터 31겁 전에는 시키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나셨다. 바로 그 31겁 중에는 웻사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나셨다. 바로 이 현겁에는 까꾸산다 세존, 꼬나가마나 세존, 깟사빠 세존이 각각 아라한, 정등각자로 나셨다. 그리고 나도 바로 이 현겁에 아라한, 정등각자로 세상에 나왔다.
‘‘Ito so, bhikkhave, ekanavutikappe y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구십일 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Ito so, bhikkhave, ekatiṃse kappe yaṃ sikh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삼십일 겁 전에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Tasmiññeva kho, bhikkhave, ekatiṃse kappe vessabh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바로 그 삼십일 겁에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akusandh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oṇāgaman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assap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ahaṃ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ppanno.
비구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지금 내가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이로서 세상에 났다.
5
비구들이여, 위빳시, 시키, 웻사부 세 분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는 모두 태생이 크샤트리아였다.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나셨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khattiy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캇띠야였고, 캇띠야 가문에 나셨다.
Sikh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khattiy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캇띠야였고, 캇띠야 가문에 나셨다.
Vessabh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khattiy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캇띠야였고, 캇띠야 가문에 나셨다.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세 분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는 모두 태생이 바라문이었다.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셨다.
Kakusandh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rāhmaṇo jātiyā ahosi, brāhmaṇ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바라문이었고, 바라문 가문에 나셨다.
Koṇāgaman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rāhmaṇo jātiyā ahosi, brāhmaṇ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바라문이었고, 바라문 가문에 나셨다.
Kassap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rāhmaṇo jātiyā ahosi, brāhmaṇ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바라문이었고, 바라문 가문에 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 아라한, 정등각자로서 태생이 크샤트리아였다.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났다.
Ahaṃ, bhikkhave,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ṃ, khattiyakule uppanno.
비구들이여, 지금 나는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이로서 태생으로 캇띠야였고, 캇띠야 가문에 났다.
6
비구들이여, 위빳시, 시키, 웻사부 세 분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는 성이 모두 꼰단냐였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꼰단냐였다.
Sikh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꼰단냐였다.
Vessabh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꼰단냐였다.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세 분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는 성이 모두 깟사빠였다.
Kakusandh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assap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깟사빠였다.
Koṇāgaman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assap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깟사빠였다.
Kassap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assap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깟사빠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 아라한, 정등각자로서 성이 고따마이다.
Ahaṃ, bhikkhave,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gotamo gottena ahosiṃ.
비구들이여, 지금 나는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이로서 가문이 고따마였다.
7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수명은 8만 년이었다. 시키 세존은 7만 년, 웻사부 세존은 6만 년이었다. 까꾸산다 세존은 4만 년, 꼬나가마나 세존은 3만 년이었다. 깟사빠 세존은 2만 년이었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ī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팔만 년이었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tta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칠만 년이었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ṭṭh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육만 년이었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cattālīsa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사만 년이었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iṃsa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삼만 년이었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vīsa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이만 년이었다.
비구들이여, 지금 나의 수명은 짧고 적고 덧없다. 오래 사는 사람도 백 년, 많아야 그보다 조금 더 살 뿐이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appakaṃ āyuppamāṇaṃ parittaṃ lahukaṃ;
비구들이여, 지금 나의 수명의 한도는 적고 짧고 가볍다;
yo ciraṃ jīvati, so vassasataṃ appaṃ vā bhiyyo.
오래 사는 이라도 백 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할 뿐이다.
8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는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시키 세존은 뿐다리까 나무 아래에서, 웻사부 세존은 살라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까꾸산다 세존은 시리사 나무 아래에서, 꼬나가마나 세존은 우둠바라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깟사빠 세존은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불확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pāṭaliyā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ikh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puṇḍarīk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뿐다리까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essabh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sāl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살라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
Kakusandh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sirīs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시리사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oṇāgaman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udumbar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우둠바라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
Kassapo,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nigrodh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 아라한, 정등각자로서 앗삿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
Ahaṃ, bhikkhave,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assatthassa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지금 나는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이로서 앗삿타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았다.
9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칸다띳사라는 이름의 한 쌍의 제자가 있었다. 으뜸가고 훌륭한 한 쌍이었다. 시키 세존에게는 아비부삼바와, 웻사부 세존에게는 소나웃따라라는 이름의 한 쌍이 있었다. 까꾸산다 세존에게는 위두라산지와, 꼬나가마나 세존에게는 비욧소웃따라라는 이름의 한 쌍이 있었다. 깟사빠 세존에게는 띳사바라드와자라는 이름의 한 쌍이 있었다. 이들도 모두 으뜸가고 훌륭한 한 쌍이었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aṇḍatiss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칸다와 띳사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bhibhūsambhav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비부와 삼바와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oṇuttar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소나와 웃따라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vidhurasañjīv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위두라와 산지와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hiyyosuttar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비요사와 웃따라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issabhāradvāj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띳사와 바라드와자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이름의 한 쌍의 제자가 있다. 으뜸가고 훌륭한 한 쌍이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sāriputtamoggallān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제자 한 쌍이 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다.
10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세 번의 제자 모임이 있었다. 한 모임은 비구 680만 명, 한 모임은 10만 명, 한 모임은 8만 명이었다. 이 세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불확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육백팔십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십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도 세 번의 제자 모임이 있었다. 한 모임은 비구 10만 명, 한 모임은 8만 명, 한 모임은 7만 명이었다. 이 세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ttat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십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칠만 비구였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도 세 번의 제자 모임이 있었다. 한 모임은 비구 8만 명, 한 모임은 7만 명, 한 모임은 6만 명이었다. 이 세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ttatibhikkhusahassāni,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ṭṭh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칠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육만 비구였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제자 모임이 한 번 있었다. 비구 4만 명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cattālīsabhikkhusahassāni.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사만 비구였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제자 모임이 한 번 있었다. 비구 3만 명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tiṃsabhikkhusahassāni.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삼만 비구였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제자 모임이 한 번 있었다. 비구 2만 명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vīsatibhikkhusahassāni.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이만 비구였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제자 모임이 한 번 있었다. 비구 1,250명의 모임이었다. 나의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ḍḍhateḷasāni bhikkhusatāni.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천이백오십 비구였다.
Mayhaṃ, bhikkhave,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11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에게는 아소까라는 비구가 시자였다. 시키 세존에게는 케망까라라는 비구가, 웻사부 세존에게는 우빠산따라는 비구가 시자였다. 까꾸산다 세존에게는 붓디자라는 비구가, 꼬나가마나 세존에게는 소띠자라는 비구가 시자였다. 깟사빠 세존에게는 삽바밋따라는 비구가 시자였다. 이들은 모두 으뜸가는 시자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ok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소까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emaṅkar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케망까라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upasant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우빠산따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uddhij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붓디자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otthij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솟티자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bbamitt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삽바밋따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아난다라는 비구가 시자이다. 으뜸가는 시자이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ānand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아난다라는 비구가 시자이니, 으뜸가는 시자이다.
12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반두마라는 왕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반두마띠라는 왕비였다. 반두마 왕의 수도는 반두마띠라는 도시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andhumā nāma rājā pitā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반두마라는 왕이 아버지였다.
Bandhum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반두마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Bandhumassa rañño bandhum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반두마 왕에게는 반두마띠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아루나라는 왕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빠바와띠라는 왕비였다. 아루나 왕의 수도는 아루나왓띠라는 도시였다.
‘‘Sikh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ruṇo nāma rājā pitā ahosi.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루나라는 왕이 아버지였다.
Pabhāv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빠바와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Aruṇassa rañño aruṇav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아루나 왕에게는 아루나와띠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숩빠띠따라는 왕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왓사왓띠라는 왕비였다. 숩빠띠따 왕의 수도는 아노마라는 도시였다.
‘‘Vessabhu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uppatito nāma rājā pitā ahosi.
“비구들이여,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숩빠띠따라는 왕이 아버지였다.
Vassav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왓사와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Suppatitassa rañño anomaṃ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숩빠띠따 왕에게는 아노마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아기닷따라는 바라문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위사카라는 바라문 여인이었다. 그때 케마라는 왕이 있었다. 케마 왕의 수도는 케마왓띠라는 도시였다.
‘‘Kakusandh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ggidatto nāma brāhmaṇo pitā ahosi.
“비구들이여,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악기닷따라는 바라문이 아버지였다.
Visākhā nāma brāhmaṇī mātā ahosi janetti.
위사카라는 바라문 여인이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khemo nāma rājā ahosi.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때에 케마라는 왕이 있었다.
Khemassa rañño khemav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케마 왕에게는 케마와띠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야냐닷따라는 바라문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웃따라라는 바라문 여인이었다. 그때 소바라는 왕이 있었다. 소바 왕의 수도는 소바왓띠라는 도시였다.
‘‘Koṇāgaman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yaññadatto nāma brāhmaṇo pitā ahosi.
“비구들이여,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얀냐닷따라는 바라문이 아버지였다.
Uttarā nāma brāhmaṇī mātā ahosi janetti.
웃따라라는 바라문 여인이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sobho nāma rājā ahosi.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때에 소바라는 왕이 있었다.
Sobhassa rañño sobhav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소바 왕에게는 소바와띠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아버지는 브라흐마닷따라는 바라문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다나왓띠라는 바라문 여인이었다. 그때 끼끼라는 왕이 있었다. 끼끼 왕의 수도는 바라나시라는 도시였다.
‘‘Kassapa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rahmadatto nāma brāhmaṇo pitā ahosi.
“비구들이여,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브라흐마닷따라는 바라문이 아버지였다.
Dhanavatī nāma brāhmaṇī mātā ahosi janetti.
다나와띠라는 바라문 여인이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kikī nāma rājā ahosi.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때에 끼끼라는 왕이 있었다.
Kikissa rañño bārāṇas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끼끼 왕에게는 바라나시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비구들이여, 지금 나의 아버지는 숫도다나라는 왕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마야라는 왕비였다. 수도는 까삘라왓투라는 도시였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suddhodano nāma rājā pitā ahosi.
“비구들이여, 지금 나에게는 숫도다나라는 왕이 아버지였다.
Māyā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마야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Kapilavatthu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ī’’ti.
까삘라왓투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마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uṭṭhāyāsanā vihāraṃ pāvisi.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처소로 드셨다.
13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비구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다.
Atha kho tesaṃ bhikkhūnaṃ acirapakkantassa bhagavato ayamantarākathā udapādi –
그때 세존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그 비구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다 —
벗이여, 놀랍다. 벗이여, 신기하다. 여래의 신통력은 얼마나 크고,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여래께서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하신다니!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불확실]
‘‘acchariyaṃ, āvuso, abbhutaṃ, āvuso,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여래의 크신 신통력과 크신 위력이여.
Yatra hi nām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issati, nāmatopi anussarissati, gottatopi anussariss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issati, sāvakayugatopi anussariss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issati –
여래께서는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해 내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해 내시니[불확실]
불확실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벗이여, 이 법의 영역은 오직 여래만이 잘 꿰뚫은 것일까? 이 법의 영역을 잘 꿰뚫었기에, 여래께서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아니면 천신들이 여래께 이 일을 알려 주었기에, 여래께서는 그렇게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Kiṃ nu kho, āvuso, tathāgatasseva nu kho esā dhammadhātu suppaṭividdhā, yassā dhammadhātuyā suppaṭividdhattā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벗이여, 어떻습니까, 여래께서만 이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으셨고, 그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으셨기에 여래께서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하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하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하시는 것입니까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udāhu devatā tathāgatassa etamatthaṃ ārocesuṃ, yen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아니면 천신들이 여래께 이 뜻을 알려 드려서, 그로 인해 여래께서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하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하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하시는 것입니까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이것이 그 비구들이 하다가 만 이야기였다.
Ayañca hidaṃ tesaṃ bhikkhūnaṃ antarākathā vippakatā hoti.
그리고 그 비구들의 이 이야기가 중간에 그친 것이었다.
14
그러자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 홀로 앉아 계시다가 일어나셨다. 까레리 나무 둘레의 강당으로 가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신 뒤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karerimaṇḍalamāḷo tenupasaṅkami;
그때 세존께서 저녁 무렵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까레리 원형 정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셨다;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다가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앉았는가? 그대들이 하다가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kāya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로 여기 함께 앉아 있는가;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또 그대들의 무슨 이야기가 중간에 그쳤는가?”
이렇게 물으시자 비구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저희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벗이여, 놀랍다. 벗이여, 신기하다. 여래의 신통력은 얼마나 크고,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여래께서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하신다니!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벗이여, 이 법의 영역은 오직 여래만이 잘 꿰뚫은 것일까? 이 법의 영역을 잘 꿰뚫었기에, 여래께서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아니면 천신들이 여래께 이 일을 알려 주었기에, 여래께서는 그렇게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께서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하신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하신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가 하다가 만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Evaṃ vutte te bhikkhū bhagavantaṃ etadavocuṃ –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idha, bhante, amhākaṃ acirapakkantassa bhagavato ayaṃ antarākathā udapādi –
“세존이시여, 여기 세존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가 일어났습니다 —
‘acchariyaṃ, āvuso, abbhutaṃ, āvuso,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yatra hi nām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issati, nāmatopi anussarissati, gottatopi anussariss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issati, sāvakayugatopi anussariss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issati –
‘참으로 놀랍습니다, 벗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벗이여. 여래의 크신 신통력과 크신 위력이여. 여래께서는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해 내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해 내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해 내시니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Kiṃ nu kho, āvuso, tathāgatasseva nu kho esā dhammadhātu suppaṭividdhā, yassā dhammadhātuyā suppaṭividdhattā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벗이여, 어떻습니까, 여래께서만 이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으셨고, 그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으셨기에 여래께서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하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하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하시는 것입니까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Udāhu devatā tathāgatassa etamatthaṃ ārocesuṃ, yen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아니면 천신들이 여래께 이 뜻을 알려 드려서, 그로 인해 여래께서 완전히 열반에 드시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너신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시고, 이름으로도 기억하시고, 가문으로도 기억하시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시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시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하시는 것입니까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Ayaṃ kho no, bhante, antarākathā vippakatā, atha bhagavā anuppatto’’ti.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의 중간에 그친 이야기인데,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15
비구들이여, 이 법의 영역은 오직 여래만이 잘 꿰뚫었다. 이 법의 영역을 잘 꿰뚫었기에, 여래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한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한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천신들도 여래에게 이 일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여래는 과거의 부처님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 번뇌의 번잡함이 끊어지고, 윤회의 길이 끊어지고, 윤회의 굴레가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는 그분들의 태생도 이름도 성도 수명도 기억한다. 한 쌍의 제자도 제자들의 모임도 기억한다. 그 부처님들은 이러이러한 태생이셨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이름과 성, 계행과 법, 지혜와 머묾과 해탈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Tathāgatassevesā, bhikkhave, dhammadhātu suppaṭividdhā, yassā dhammadhātuyā suppaṭividdhattā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비구들이여, 여래야말로 이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었으니, 그 법의 요소를 온전히 꿰뚫었기에 여래는 완전히 열반에 들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넌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가문으로도 기억하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Devatāpi tathāgatassa etamatthaṃ ārocesuṃ, yen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
천신들도 여래에게 이 뜻을 알려 주었으니, 그로 인해 여래는 완전히 열반에 들어 생각의 뒤엉킴을 끊고 가던 길을 끊고 윤회를 다하고 모든 괴로움을 건넌 과거의 부처님들을 두고,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가문으로도 기억하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고,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그분 세존들께서는 태생이 이러하셨다, 이렇게도. 이름이 이러하고, 가문이 이러하고, 계행이 이러하고, 법이 이러하고, 지혜가 이러하고, 머무심이 이러하고, 해탈이 이러한 그분 세존들이셨다, 이렇게도.’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전생에 관한 법담을 더 자세히 듣고 싶은가?
‘‘Iccheyyātha no tumhe, bhikkhave, bhiyyosomattāya pubbenivāsapaṭisaṃyuttaṃ dhammiṃ kathaṃ sotu’’n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전생에 관한 법담을 더욱더 듣고 싶은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세존께서 전생에 관한 법담을 더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비구들이 세존께 듣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Etassa, bhagavā, kālo;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etassa, sugata, kālo;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yaṃ bhagavā bhiyyosomattāya pubbenivāsapaṭisaṃyuttaṃ dhammiṃ kathaṃ kareyya,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서 전생에 관한 법담을 더욱더 해 주시면, 세존께 듣고 비구들이 새겨 지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잘 듣고 마음에 깊이 새겨라. 말하겠다.
‘‘Tena hi, bhikkhave,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비구들은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16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91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세상에 나셨다. 그분은 태생이 크샤트리아였고,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나셨다. 성은 꼰단냐, 수명은 8만 년이었다.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Ito so, bhikkhave, ekanavutikappe y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구십일 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khattiyakule udapād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캇띠야였고, 캇띠야 가문에 나셨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가문이 꼰단냐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ī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팔만 년이었다.
Vipassī, bhikkhav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pāṭaliyā mūle abhisambuddho.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깨달으셨다.
위빳시 세존에게는 칸다띳사라는 이름의 한 쌍의 제자가 있었다. 으뜸가고 훌륭한 한 쌍이었다. 제자 모임은 세 번 있었다. 한 모임은 비구 680만 명, 한 모임은 10만 명, 한 모임은 8만 명이었다. 이 세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이들만의 모임이었다. 시자는 아소까라는 비구였다. 으뜸가는 시자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aṇḍatiss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칸다와 띳사라는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상서로운 한 쌍이었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육백팔십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십만 비구였고,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ok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소까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다.
위빳시 세존의 아버지는 반두마라는 왕이었다. 어머니, 곧 낳아 주신 분은 반두마띠라는 왕비였다. 반두마 왕의 수도는 반두마띠라는 도시였다.
Vipassissa, bhikkhave,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andhumā nāma rājā pitā ahosi.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반두마라는 왕이 아버지였다.
Bandhum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반두마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분이었다.
Bandhumassa rañño bandhum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반두마 왕에게는 반두마띠라는 도시가 도읍이었다.
보살의 정해진 이치Bodhisattadhammatā
17
비구들이여, 그때 보살 위빳시는 뚜시따천에서 죽었다. 그는 바른 새김과 알아차림을 지닌 채 어머니의 태에 들었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odhisatto tusitā kāyā cavitvā sato sampajāno mātukucchiṃ okkami.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은 도솔천 무리에서 죽어,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18
비구들이여, 보살이 뚜시따천에서 죽어 어머니의 태에 들 때에는 으레 이러하다.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세상에 나타난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세계에도,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세계에도 그렇다. 해와 달은 그토록 큰 신통과 위력을 지녔어도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어둡고 닫힌 곳, 칠흑 같은 어둠이 덮인 곳이다. 그런 곳에도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나타난다.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도 그 빛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이곳에 다른 중생들도 태어났구나.’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크게 흔들리며 뒤흔들린다. 또한 세상에는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나타난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tusitā kāyā cavitvā mātukucchiṃ okkam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도솔천 무리에서 죽어 어머니의 태에 들 때.
Atha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ppamāṇo uḷāro obhāso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그때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에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Yāpi tā lokantarikā aghā asaṃvutā andhakārā andhakāratimisā, yattha pime candimasūriyā evaṃmahiddhikā evaṃmahānubhāvā ābhāya nānubhonti, tatthapi appamāṇo uḷāro obhāso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텅 비고 막힘없고 어둡고 캄캄한 암흑인 그곳들, 그토록 큰 신통과 그토록 큰 위력을 지닌 이 달과 해도 빛으로 미치지 못하는 그곳에도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Yepi tattha sattā upapannā, tepi tenobhāsena aññamaññaṃ sañjānanti –
거기에 태어난 중생들도 그 빛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
‘aññepi kira, bho, santi sattā idhūpapannā’ti.
‘여보시오, 참으로 여기 태어난 다른 중생들도 있군요.’
Ayañca dasasahassī lokadhātu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몹시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Appamāṇo ca uḷāro obhāso loke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그리고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세상에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19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네 천자가 사방에서 보호하러 찾아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존재든, 그 누구도 보살이나 보살의 어머니를 해치지 못하게 하라.’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cattāro naṃ devaputtā catuddisaṃ rakkhāya upagacchanti –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네 신의 아들이 네 방향을 지키려고 그에게 다가온다 —
‘mā naṃ bodhisattaṃ vā bodhisattamātaraṃ vā manusso vā amanusso vā koci vā viheṭhesī’ti.
‘사람이든 사람 아닌 자든 그 누구도 보살이나 보살의 어머니를 해치지 못하게 하라.’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0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는 본래 계를 지키는 사람이다.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음행을 삼간다. 거짓말을 삼가고, 방일의 바탕이 되는 곡주와 과일주도 삼간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pakatiyā sīlavatī bodhisattamātā hoti, viratā pāṇātipātā, viratā adinnādānā, viratā kāmesumicchācārā, viratā musāvādā, viratā surāmerayamajjappamādaṭṭhānā.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는 본래 계를 지녀,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그릇된 행위를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술과 발효주 따위 취하게 하는 것으로 방일하게 되는 일을 삼간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1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는 남자들에게 애욕 섞인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욕정에 물든 어떤 남자도 감히 그녀를 범할 수 없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na bodhisattamātu purisesu mānasaṃ uppajjati kāmaguṇūpasaṃhitaṃ, anatikkamanīyā ca bodhisattamātā hoti kenaci purisena rattacittena.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에게는 남자들에 대해 감각적 욕망의 대상과 결부된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보살의 어머니는 욕정에 물든 마음을 지닌 어떤 남자도 범할 수 없는 이가 된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2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누리게 된다. 그녀는 그 대상을 갖추고 그 속에서 즐긴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lābhinī bodhisattamātā hoti pañcannaṃ kāmaguṇānaṃ.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얻는 이가 된다.
Sā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ā samaṅgībhūtā paricāreti.
그녀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두루 지녀 즐긴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3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병도 생기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지 않고 편안하다. 배 속에 있는 보살이 온몸과 손발을 갖추고 감각기관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도 들여다보듯 본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na bodhisattamātu kocideva ābādho uppajj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에게는 어떤 병도 일어나지 않는다.
Sukhinī bodhisattamātā hoti akilantakāyā, bodhisattañca bodhisattamātā tirokucchigataṃ passati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보살의 어머니는 편안하고 몸이 지치지 않으며, 보살의 어머니는 태 안에 있는 보살이 크고 작은 팔다리를 모두 갖추고 감각 기능이 온전한 것을 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품질이 좋은 유리 보석이 있다고 하자. 팔각으로 잘 다듬어졌고, 맑고 투명하여 흐림이 없으며, 모든 면이 완벽하다. 거기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혹은 옅은 황색의 실이 꿰어져 있다.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손에 들고 살펴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품질이 좋고 팔각으로 잘 다듬어진 유리 보석이다. 맑고 투명하여 흐림 없이 모든 면이 완벽하구나. 그 속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혹은 옅은 황색의 실이 꿰어져 있구나.’[불확실]
Seyyathāpi, bhikkhave,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비구들이여, 마치 아름답고 품질 좋고 여덟 면으로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모든 면에서 온전한 묘안석 보배가 있다고 하자.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거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옅은 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그것을 눈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 살펴본다면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이것은 아름답고 품질 좋고 여덟 면으로 잘 다듬어져 맑고 투명하고 흐림 없이 모든 면에서 온전한 묘안석 보배다.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그리고 거기에 푸른 실이나 노란 실이나 붉은 실이나 흰 실이나 옅은 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병도 생기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지 않고 편안하다. 배 속에 있는 보살이 온몸과 손발을 갖추고 감각기관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도 들여다보듯 본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Evameva kho,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na bodhisattamātu kocideva ābādho uppajjati, sukhinī bodhisattamātā hoti akilantakāyā, bodhisattañca bodhisattamātā tirokucchigataṃ passati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 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에게는 어떤 병도 일어나지 않고, 보살의 어머니는 편안하고 몸이 지치지 않으며, 보살의 어머니는 태 안에 있는 보살이 크고 작은 팔다리를 모두 갖추고 감각 기능이 온전한 것을 본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4
비구들이여, 보살이 태어난 지 이레가 되면 으레 보살의 어머니는 목숨을 마친다. 그리고 뚜시따천에 다시 태어난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sattāhajāte bodhisatte bodhisattamātā kālaṅkaroti tusitaṃ kāyaṃ upapajj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태어난 지 이레가 되면 보살의 어머니는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 무리에 태어난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5
비구들이여, 다른 여인들은 아홉 달이나 열 달 동안 아이를 배 속에 품었다가 낳는다. 그러나 보살의 어머니는 그렇게 낳지 않는다. 보살의 어머니는 꼭 열 달 동안 보살을 배 속에 품었다가 낳는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thā aññā itthikā nava vā dasa vā māse gabbhaṃ kucchinā pariharitvā vijāyanti, na hevaṃ bodhisattaṃ bodhisattamātā vijāy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다른 여인들은 아홉 달이나 열 달을 태에 아이를 품었다가 낳지만, 보살의 어머니는 보살을 그렇게 낳지 않는다.
Daseva māsāni bodhisattaṃ bodhisattamātā kucchinā pariharitvā vijāyati.
보살의 어머니는 꼭 열 달을 보살을 태에 품었다가 낳는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6
비구들이여, 다른 여인들은 앉거나 누워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보살의 어머니는 그렇게 낳지 않는다. 보살의 어머니는 선 채로 보살을 낳는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thā aññā itthikā nisinnā vā nipannā vā vijāyanti, na hevaṃ bodhisattaṃ bodhisattamātā vijāy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다른 여인들은 앉거나 누워서 낳지만, 보살의 어머니는 보살을 그렇게 낳지 않는다.
Ṭhitāva bodhisattaṃ bodhisattamātā vijāyati.
보살의 어머니는 선 채로 보살을 낳는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7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신들이 먼저 받아 안는다. 사람들은 그다음에 받는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devā paṭhamaṃ paṭiggaṇhanti, pacchā manussā.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신들이 먼저 받고 사람들이 나중에 받는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8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보살이 땅에 닿기도 전에 네 천자가 받는다. 그들은 보살을 어머니 앞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왕비님, 기뻐하십시오. 큰 위력을 지닌 아드님이 태어났습니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ppattova bodhisatto pathaviṃ hoti, cattāro naṃ devaputtā paṭiggahetvā mātu purato ṭhapenti –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보살이 아직 땅에 닿기 전에 네 신의 아들이 그를 받아 어머니 앞에 놓으며 —
‘attamanā, devi, hohi;
‘기뻐하십시오, 왕비시여.
mahesakkho te putto uppanno’ti.
당신께 큰 위덕을 지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29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깨끗한 몸으로 나온다. 양수에도, 점액에도, 피에도, 그 어떤 더러운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 보석을 카시 지방의 비단 위에 놓으면, 보석이 비단을 더럽히지도 않고 비단이 보석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둘 다 깨끗하기 때문이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visadova nikkhamati amakkhito udena amakkhito semhena amakkhito ruhirena amakkhito kenaci asucinā suddho visado.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깨끗한 채로 나오니, 물에 더럽혀지지 않고, 점액에 더럽혀지지 않고, 피에 더럽혀지지 않고, 어떤 더러운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아 청정하고 깨끗하다.
Seyyathāpi, bhikkhave, maṇiratanaṃ kāsike vatthe nikkhittaṃ neva maṇiratanaṃ kāsikaṃ vatthaṃ makkheti, nāpi kāsikaṃ vatthaṃ maṇiratanaṃ makkheti.
비구들이여, 마치 까시 산 천 위에 놓인 보석 보배가 까시 산 천을 더럽히지도 않고, 까시 산 천이 그 보석 보배를 더럽히지도 않는 것과 같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Ubhinnaṃ suddhattā.
둘 다 깨끗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깨끗한 몸으로 나온다. 양수에도, 점액에도, 피에도, 그 어떤 더러운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나온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Evameva kho,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visadova nikkhamati amakkhito, udena amakkhito semhena amakkhito ruhirena amakkhito kenaci asucinā suddho visado.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깨끗한 채로 나오니, 더럽혀지지 않고, 물에 더럽혀지지 않고, 점액에 더럽혀지지 않고, 피에 더럽혀지지 않고, 어떤 더러운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아 청정하고 깨끗하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30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하늘에서 두 줄기 물이 나타난다.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따뜻하다. 이 물로 보살과 어머니를 씻긴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dve udakassa dhārā antalikkhā pātubhavanti –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두 줄기 물이 허공에서 나타난다 —
ekā sītassa ekā uṇhassa yena bodhisattassa udakakiccaṃ karonti mātu ca.
하나는 찬물, 하나는 더운물이니, 그것으로 보살과 어머니를 씻기는 일을 한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31
비구들이여, 갓 태어난 보살은 으레 두 발로 고르게 땅을 딛고 서서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걷는다. 그 위로 흰 일산이 받쳐진다. 보살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황소처럼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나는 세상에서 맏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sampatijāto bodhisatto samehi pādehi patiṭṭhahitvā uttarābhimukho sattapadavītihārena gacchati setamhi chatte anudhāriyamāne, sabbā ca disā anuviloketi, āsabhiṃ vācaṃ bhāsati ‘aggohamasmi lokassa, jeṭṭhohamasmi lokassa, seṭṭhohamasmi lokassa,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갓 태어난 보살은 두 발을 고르게 딛고 서서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으로 나아가고, 흰 일산이 위에 받쳐진 채 모든 방향을 둘러보고서 황소처럼 당당한 말을 한다 —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나는 세상에서 맏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32
비구들이여,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에는 으레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세상에 나타난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세계에도,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세계에도 그렇다. 해와 달은 그토록 큰 신통과 위력을 지녔어도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어둡고 닫힌 곳, 칠흑 같은 어둠이 덮인 곳이다. 그런 곳에도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나타난다.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도 그 빛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한다. ‘벗들이여, 이곳에 다른 중생들도 태어났구나.’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크게 흔들리며 뒤흔들린다. 세상에는 신들의 위력마저 뛰어넘는 한량없고 드넓은 빛이 나타난다. 이 일에는 이러한 법칙이 있다.
‘‘Dhammatā esā,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tha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ppamāṇo uḷāro obhāso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해진 이치다 —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그때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에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Yāpi tā lokantarikā aghā asaṃvutā andhakārā andhakāratimisā, yattha pime candimasūriyā evaṃmahiddhikā evaṃmahānubhāvā ābhāya nānubhonti, tatthapi appamāṇo uḷāro obhāso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텅 비고 막힘없고 어둡고 캄캄한 암흑인 그곳들, 그토록 큰 신통과 그토록 큰 위력을 지닌 이 달과 해도 빛으로 미치지 못하는 그곳에도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Yepi tattha sattā upapannā, tepi tenobhāsena aññamaññaṃ sañjānanti –
거기에 태어난 중생들도 그 빛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
‘aññepi kira, bho, santi sattā idhūpapannā’ti.
‘여보시오, 참으로 여기 태어난 다른 중생들도 있군요.’
Ayañca dasasahassī lokadhātu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ppamāṇo ca uḷāro obhāso loke pātubhavati atikkammeva devānaṃ devānubhāvaṃ.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몹시 흔들리고 뒤흔들리며, 헤아릴 수 없고 훌륭한 빛이 세상에 나타난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서.
Ayamettha dhammatā.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이치다.
서른두 가지 대인상Dvattiṃsamahāpurisalakkhaṇā
33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반두마 왕에게 알렸다. ‘폐하, 왕자님이 태어났습니다. 폐하께서 보아 주십시오.’
‘‘Jāte kho pana, bhikkhave, vipassimhi kumāre bandhumato rañño paṭivedesuṃ –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반두마 왕에게 알렸다 —
‘putto te, deva, jāto, taṃ devo passatū’ti.
‘신이시여, 당신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신께서 그를 보십시오.’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를 보고 나서 관상 보는 바라문들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관상 보는 바라문들이여, 왕자를 보시오.’
Addasā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ṃ kumāraṃ, disvā nemitte brāhmaṇe āmantāpetvā etadavoca –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를 보았고, 보고 나서 관상 보는 바라문들을 불러오게 하여 이렇게 말했다 —
‘passantu bhonto nemittā brāhmaṇā kumāra’nti.
‘존자들인 관상 바라문들은 왕자를 보라.’
비구들이여, 관상 보는 바라문들도 위빳시 왕자를 보고 나서 반두마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 기뻐하십시오. 큰 위력을 지닌 아드님이 태어났습니다. 대왕께는 이익이며, 대왕께는 큰 복입니다. 이런 아드님이 가문에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Addasaṃsu kho, bhikkhave, nemittā brāhmaṇā vipassiṃ kumāraṃ, disvā bandhumantaṃ rājān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관상 바라문들은 위빳시 왕자를 보았고, 보고 나서 반두마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
‘attamano, deva, hohi, mahesakkho te putto uppanno, lābhā te, mahārāja, suladdhaṃ te, mahārāja, yassa te kule evarūpo putto uppanno.
‘기뻐하십시오, 신이시여. 당신께 큰 위덕을 지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시여, 당신께 이익입니다. 대왕이시여, 당신께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당신의 가문에 이런 아들이 태어났으니.
폐하, 이 왕자님은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고 계십니다. 이를 갖춘 대인에게는 오직 두 갈래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습니다.
Ayañhi, deva, kumāro dvattiṃsamahāpurisalakkhaṇehi samannāgato, yehi samannāgatassa mahāpurisassa dveva gatiyo bhavanti anaññā.
신이시여, 이 왕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었으니, 그것을 갖춘 대인에게는 두 가지 갈 곳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집에서 살면 전륜왕이 되어, 법에 따라 다스리는 법왕으로서 사방을 정복합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를 갖춥니다. 그의 일곱 가지 보배는 이러합니다. 곧 수레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보석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장군 보배입니다.
Sace agāraṃ ajjhāvasati, rājā hot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vī jana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만일 집에 머물면 전륜왕이 되니, 법에 맞고 법다운 왕이며, 사방을 다스리고, 정복을 이루고, 나라의 안정을 이루고, 일곱 보배를 갖춥니다.
Tassimāni sattaratanāni bhavanti.
그에게는 이 일곱 보배가 있습니다.
Seyyathidaṃ –
곧 —
cakkaratanaṃ hatthiratanaṃ assaratanaṃ maṇiratanaṃ itthiratanaṃ gahapatiratanaṃ pariṇāyakaratanameva sattamaṃ.
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구슬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참모 보배입니다.
또 그에게는 용맹하고 영웅다운 모습으로 적군을 쳐부수는 아들이 천 명이 넘게 있습니다.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도 칼도 쓰지 않고 법으로 이겨서 다스립니다. 그러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세상의 덮개를 걷어 내는 아라한 정등각자가 됩니다.
Parosahassaṃ kho panassa puttā bhavanti sūrā vīraṅgarūpā parasenappamaddanā.
그리고 그에게는 천이 넘는 아들이 있으니, 용감하고 영웅의 모습을 갖추고 적군을 쳐부숩니다.
So imaṃ pathaviṃ sāgarapariyantaṃ adaṇḍena asatthena dhammena abhivijiya ajjhāvasati.
그는 바다에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 없이, 무기 없이, 법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며 삽니다.
Sace kho pa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arahaṃ hoti sammāsambuddho loke vivaṭacchado.
그러나 만일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아라한이 되고 바르게 깨달은 이가 되어 세상에서 덮개를 걷어냅니다.
34
폐하, 이 왕자님이 갖춘 서른두 가지 대인상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를 갖춘 대인에게는 오직 두 갈래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습니다.[불확실]
‘Katamehi cāyaṃ, deva, kumāro dvattiṃsamahāpurisalakkhaṇehi samannāgato, yehi samannāgatassa mahāpurisassa dveva gatiyo bhavanti anaññā.
‘그러면 신이시여, 이 왕자는 어떤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었기에, 그것을 갖춘 대인에게는 두 가지 갈 곳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집에서 살면 전륜왕이 되어, 법에 따라 다스리는 법왕으로서 사방을 정복합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를 갖춥니다. 그의 일곱 가지 보배는 이러합니다. 곧 수레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보석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장군 보배입니다.[불확실]
Sace agāraṃ ajjhāvasati, rājā hot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pī jana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만일 집에 머물면 전륜왕이 되니, 법에 맞고 법다운 왕이며, 사방을 다스리고, 정복을 이루고, 나라의 안정을 이루고, 일곱 보배를 갖춥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imāni sattaratanāni bhavanti.
그에게는 이 일곱 보배가 있습니다.
Seyyathidaṃ –
곧 —
cakkaratanaṃ hatthiratanaṃ assaratanaṃ maṇiratanaṃ itthiratanaṃ gahapatiratanaṃ pariṇāyakaratanameva sattamaṃ.
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구슬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참모 보배입니다.
또 그에게는 용맹하고 영웅다운 모습으로 적군을 쳐부수는 아들이 천 명이 넘게 있습니다.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도 칼도 쓰지 않고 법으로 이겨서 다스립니다. 그러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세상의 덮개를 걷어 내는 아라한 정등각자가 됩니다.
Parosahassaṃ kho panassa puttā bhavanti sūrā vīraṅgarūpā parasenappamaddanā.
그리고 그에게는 천이 넘는 아들이 있으니, 용감하고 영웅의 모습을 갖추고 적군을 쳐부숩니다.
So imaṃ pathaviṃ sāgarapariyantaṃ adaṇḍena asatthena dhammena abhivijiya ajjhāvasati.
그는 바다에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 없이, 무기 없이, 법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며 삽니다.
Sace kho pa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arahaṃ hoti sammāsambuddho loke vivaṭacchado.
그러나 만일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아라한이 되고 바르게 깨달은 이가 되어 세상에서 덮개를 걷어냅니다.
35
폐하, 이 왕자님은 발바닥이 평평하여 땅에 잘 놓입니다. 이렇게 발바닥이 평평하여 땅에 잘 놓이는 것, 이것 또한 이 대인의 대인상입니다.
‘Ayañhi, deva, kumāro suppatiṭṭhitapādo.
‘신이시여, 이 왕자는 발이 평평하게 잘 놓여 있습니다.
Yaṃ pāyaṃ, deva, kumāro suppatiṭṭhitapādo.
신이시여, 이 왕자가 발이 평평하게 잘 놓여 있다는 것,
Idampissa mahāpurisassa mahāpurisalakkhaṇaṃ bhavati.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폐하, 이 왕자님의 발바닥에는 바퀴 무늬가 생겨 있습니다. 천 개의 살과 테와 바퀴통을 갖추어 모든 면이 완전한 무늬입니다. 이런 바퀴 무늬가 발바닥에 생겨 있는 것, 이것 또한 이 대인의 대인상입니다.
‘Imassa, deva, kumārassa heṭṭhā pādatalesu cakkāni jātāni sahassārāni sanemikāni sanābhikāni sabbākāraparipūrāni.
‘신이시여, 이 왕자의 두 발바닥 아래에는 바퀴가 생겨나 있으니, 바퀴살이 천 개이고 테가 있고 바퀴통이 있고 모든 면에서 온전합니다.
Yampi, imassa deva, kumārassa heṭṭhā pādatalesu cakkāni jātāni sahassārāni sanemikāni sanābhikāni sabbākāraparipūrāni, idampissa mahāpurisassa mahāpurisalakkhaṇaṃ bhavati.
신이시여, 이 왕자의 두 발바닥 아래에 바퀴가 생겨나 있어 바퀴살이 천 개이고 테가 있고 바퀴통이 있고 모든 면에서 온전하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발뒤꿈치가 길고…
‘Ayañhi deva, kumāro āyatapaṇhī…pe…
‘신이시여, 이 왕자는 발꿈치가 깁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발꿈치가 길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손가락이 길고…
‘Ayañhi, deva, kumāro dīghaṅgulī…
‘신이시여, 이 왕자는 손가락이 깁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손가락이 길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손발이 부드럽고 말랑하며…
‘Ayañhi, deva, kumāro mudutalunahatthapād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손발이 부드럽고 연합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손발이 부드럽고 연하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손발에 그물 같은 무늬가 있고…
‘Ayañhi, deva kumāro jālahatthapād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손발에 그물 무늬가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손발에 그물 무늬가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발목이 높이 솟아 있고…
‘Ayañhi, deva, kumāro ussaṅkhapādo…
‘신이시여, 이 왕자는 발등이 높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발등이 높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종아리가 영양처럼 곧고 매끈하며…
‘Ayañhi, deva, kumāro eṇijaṅgh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장딴지가 사슴과 같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장딴지가 사슴과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선 채로 몸을 굽히지 않고도 두 손바닥이 무릎에 닿아 쓰다듬을 수 있고…
‘Ayañhi, deva, kumāro ṭhitakova anonamanto ubhohi pāṇitalehi jaṇṇukāni parimasati parimajjati…
‘신이시여, 이 왕자는 선 채로 굽히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두 무릎을 만지고 쓰다듬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선 채로 굽히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두 무릎을 만지고 쓰다듬는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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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음경이 감추어져 있고…
‘Ayañhi, deva, kumāro kosohitavatthaguyho…
‘신이시여, 이 왕자는 감출 곳이 주머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감출 곳이 주머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살빛이 황금 같고 살갗이 금처럼 빛나며…
‘Ayañhi, deva, kumāro suvaṇṇavaṇṇo kañcanasannibhattaco…
‘신이시여, 이 왕자는 황금빛이고 살갗이 금과 같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황금빛이고 살갗이 금과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살갗이 곱습니다. 살갗이 고운 덕에 먼지와 때가 몸에 묻지 않습니다…
‘Ayañhi, deva, kumāro sukhumacchavī;
‘신이시여, 이 왕자는 살갗이 미세합니다.
sukhumattā chaviyā rajojallaṃ kāye na upalimpati …
살갗이 미세하여 먼지와 때가 몸에 묻지 않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살갗이 미세하여 먼지와 때가 몸에 묻지 않는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털이 한 올씩 납니다. 털이 털구멍마다 한 올씩 나 있습니다…
‘Ayañhi, deva, kumāro ekekalomo;
‘신이시여, 이 왕자는 털이 하나씩 납니다.
ekekāni lomāni lomakūpesu jātāni…
털구멍마다 털이 하나씩 생겨나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털구멍마다 털이 하나씩 생겨나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털끝이 위로 솟았습니다. 위로 솟은 털은 푸르고 눈화장 빛깔로 검으며, 소용돌이쳐 오른쪽으로 말려 있습니다…
‘Ayañhi, deva, kumāro uddhaggalomo;
‘신이시여, 이 왕자는 털끝이 위로 향합니다.
uddhaggāni lomāni jātāni nīlāni añjanavaṇṇāni kuṇḍalāvaṭṭāni dakkhiṇāvaṭṭakajātāni…
털이 끝을 위로 하여 생겨나 있고, 검푸르고 먹빛이며 고리처럼 감기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털이 끝을 위로 하여 생겨나 있고 검푸르고 먹빛이며 고리처럼 감기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몸이 범천처럼 곧고…
‘Ayañhi, deva, kumāro brahmujugatto…
‘신이시여, 이 왕자는 몸이 범천처럼 곧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몸이 범천처럼 곧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몸의 일곱 군데가 두툼하고…
‘Ayañhi, deva, kumāro sattussad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일곱 군데가 두툼합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일곱 군데가 두툼하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상체가 사자 같고…
‘Ayañhi, deva, kumāro sīhapubbaddhakāy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상체가 사자와 같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상체가 사자와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35.2 ~ PN:dn14/35.3에서 되살렸습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두 어깨 사이가 메워져 있고…
‘Ayañhi, deva, kumāro citantaraṃso …
‘신이시여, 이 왕자는 두 어깨 사이가 꽉 차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두 어깨 사이가 꽉 차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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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니그로다 나무처럼 균형이 잡혀서, 몸의 길이만큼 두 팔 벌린 길이가 되고 두 팔 벌린 길이만큼 몸의 길이가 되며…
‘Ayañhi, deva, kumāro nigrodhaparimaṇḍalo yāvatakvassa kāyo tāvatakvassa byāmo, yāvatakvassa byāmo, tāvatakvassa kāyo…
‘신이시여, 이 왕자는 니그로다 나무처럼 균형이 잡혀, 그의 몸의 길이만큼 두 팔을 편 길이가 되고, 두 팔을 편 길이만큼 몸의 길이가 됩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니그로다 나무처럼 균형이 잡혀 그의 몸의 길이만큼 두 팔을 편 길이가 되고 두 팔을 편 길이만큼 몸의 길이가 된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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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어깨가 고르게 둥글고…
‘Ayañhi, deva, kumāro samavaṭṭakkhandh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어깨가 고르게 둥급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어깨가 고르게 둥글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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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맛을 느끼는 감각이 으뜸이고…
‘Ayañhi, deva, kumāro rasaggasaggī…
‘신이시여, 이 왕자는 맛을 느끼는 감각이 가장 뛰어납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맛을 느끼는 감각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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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턱이 사자 같고…
‘Ayañhi, deva, kumāro sīhahanu…
‘신이시여, 이 왕자는 턱이 사자와 같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턱이 사자와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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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이가 마흔 개이고…
‘Ayañhi, deva, kumāro cattālīsadant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이가 마흔 개입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이가 마흔 개라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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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이가 가지런하고…
‘Ayañhi, deva, kumāro samadant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이가 고릅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이가 고르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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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이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고…
‘Ayañhi, deva, kumāro aviraḷadant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이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이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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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송곳니가 아주 희고…
‘Ayañhi, deva, kumāro susukkadāṭh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송곳니가 아주 흽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송곳니가 아주 희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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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혀가 길고 넓으며…
‘Ayañhi, deva, kumāro pahūtajivho…
‘신이시여, 이 왕자는 혀가 넓고 깁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혀가 넓고 길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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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범천 같은 목소리에 가릉빈가 같은 음성으로 말하고…
‘Ayañhi, deva, kumāro brahmassaro karavīkabhāṇī…
‘신이시여, 이 왕자는 목소리가 범천과 같고 까라위까 새처럼 말합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목소리가 범천과 같고 까라위까 새처럼 말한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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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눈동자가 짙푸르고…
‘Ayañhi, deva, kumāro abhinīlanetto…
‘신이시여, 이 왕자는 눈이 아주 검푸릅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눈이 아주 검푸르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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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은 속눈썹이 송아지처럼 길고…
‘Ayañhi, deva, kumāro gopakhum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속눈썹이 소와 같습니다. 신이시여, 이 왕자가 속눈썹이 소와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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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왕자님의 두 눈썹 사이에는 희고 부드러운 솜 같은 털이 나 있습니다. 이렇게 털이 나 있는 것, 이것 또한 이 대인의 대인상입니다.
Imassa, deva, kumārassa uṇṇā bhamukantare jātā odātā mudutūlasannibhā.
신이시여, 이 왕자의 눈썹 사이에는 흰 털이 생겨나 있으니, 희고 부드러운 솜과 같습니다.
Yampi imassa deva kumārassa uṇṇā bhamukantare jātā odātā mudutūlasannibhā, idampimassa mahāpurisassa mahāpurisalakkhaṇaṃ bhavati.
신이시여, 이 왕자의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생겨나 있어 희고 부드러운 솜과 같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폐하, 이 왕자님은 머리 위가 터번을 두른 듯 솟아 있습니다. 이렇게 머리 위가 솟아 있는 것, 이것 또한 이 대인의 대인상입니다.
‘Ayañhi, deva, kumāro uṇhīsasīso.
‘신이시여, 이 왕자는 정수리가 터번 모양으로 솟아 있습니다.
Yaṃ pāyaṃ, deva, kumāro uṇhīsasīso, idampissa mahāpurisassa mahāpurisalakkhaṇaṃ bhavati.
신이시여, 이 왕자가 정수리가 터번 모양으로 솟아 있다는 것, 이것도 그 대인에게 있는 대인상입니다.
36
폐하, 이 왕자님은 이러한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고 계십니다. 이를 갖춘 대인에게는 오직 두 갈래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습니다.
‘Imehi kho ayaṃ, deva, kumāro dvattiṃsamahāpurisalakkhaṇehi samannāgato, yehi samannāgatassa mahāpurisassa dveva gatiyo bhavanti anaññā.
‘신이시여, 이 왕자는 이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었으니, 그것을 갖춘 대인에게는 두 가지 갈 곳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집에서 살면 전륜왕이 되어, 법에 따라 다스리는 법왕으로서 사방을 정복합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를 갖춥니다. 그의 일곱 가지 보배는 이러합니다. 곧 수레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보석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장군 보배입니다.
Sace agāraṃ ajjhāvasati, rājā hot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vī jana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만일 집에 머물면 전륜왕이 되니, 법에 맞고 법다운 왕이며, 사방을 다스리고, 정복을 이루고, 나라의 안정을 이루고, 일곱 보배를 갖춥니다.
Tassimāni sattaratanāni bhavanti.
그에게는 이 일곱 보배가 있습니다.
Seyyathidaṃ –
곧 —
cakkaratanaṃ hatthiratanaṃ assaratanaṃ maṇiratanaṃ itthiratanaṃ gahapatiratanaṃ pariṇāyakaratanameva sattamaṃ.
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구슬 보배, 여인 보배, 장자 보배, 그리고 일곱째로 참모 보배입니다.
또 그에게는 용맹하고 영웅다운 모습으로 적군을 쳐부수는 아들이 천 명이 넘게 있습니다.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도 칼도 쓰지 않고 법으로 이겨서 다스립니다. 그러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세상의 덮개를 걷어 내는 아라한 정등각자가 됩니다.’
Parosahassaṃ kho panassa puttā bhavanti sūrā vīraṅgarūpā parasenappamaddanā.
그리고 그에게는 천이 넘는 아들이 있으니, 용감하고 영웅의 모습을 갖추고 적군을 쳐부숩니다.
So imaṃ pathaviṃ sāgarapariyantaṃ adaṇḍena asatthena dhammena abhivijiya ajjhāvasati.
그는 바다에 둘러싸인 이 땅을 몽둥이 없이, 무기 없이, 법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며 삽니다.
Sace kho pa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arahaṃ hoti sammāsambuddho loke vivaṭacchado’ti.
그러나 만일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아라한이 되고 바르게 깨달은 이가 되어 세상에서 덮개를 걷어냅니다.’
위빳시라는 이름Vipassīsamaññā
37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은 관상 보는 바라문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바라는 것을 모두 채워 흡족하게 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위빳시 왕자에게 유모들을 붙여 주었다. 어떤 유모는 젖을 먹이고, 어떤 유모는 목욕을 시키고, 어떤 유모는 안아 주고, 어떤 유모는 품에 안아 돌보았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nemitte brāhmaṇe ahatehi vatthehi acchādāpetvā sabbakāmehi santappesi.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관상 바라문들에게 새 옷을 입히게 하고 온갖 원하는 것으로 흡족하게 했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ssa kumārassa dhātiyo upaṭṭhāpesi.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에게 유모들을 두어 시중들게 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ññā khīraṃ pāyenti, aññā nhāpenti, aññā dhārenti, aññā aṅkena pariharanti.
어떤 이들은 젖을 먹이고, 어떤 이들은 목욕시키고, 어떤 이들은 안아 들고, 어떤 이들은 품에 안고 다녔다.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가 태어나자 밤낮으로 흰 일산을 받쳐 들었다. ‘찬 기운이나 더운 기운, 풀잎, 먼지, 이슬이 왕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라.’
Jātassa kho pana, bhikkhave, vipassissa kumārassa setacchattaṃ dhārayittha divā ceva rattiñca –
비구들이여, 태어난 위빳시 왕자에게는 낮에도 밤에도 흰 일산이 받쳐졌다 —
‘mā naṃ sītaṃ vā uṇhaṃ vā tiṇaṃ vā rajo vā ussāvo vā bādhayitthā’ti.
‘추위나 더위나 풀이나 먼지나 이슬이 그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라.’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존재였다.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 흰 연꽃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처럼, 위빳시 왕자도 그러했다. 그는 이 품에서 저 품으로 안겨 다녔다.[불확실]
Jāto kho pana,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uno janassa piyo ahosi manāpo.
비구들이여, 태어난 위빳시 왕자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uppalaṃ vā padumaṃ vā puṇḍarīkaṃ vā bahuno janassa piyaṃ manāpaṃ;
비구들이여,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듯이,
evamev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uno janassa piyo ahosi manāpo.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vāssudaṃ aṅkeneva aṅkaṃ parihariyati.
그는 이 품에서 저 품으로 안겨 다녔다.
38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목소리가 곱고, 낭랑하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웠다. 히말라야 산에 사는 가릉빈가라는 새도 목소리가 곱고, 낭랑하고,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위빳시 왕자의 목소리도 꼭 그러했다.[불확실]
‘‘Jāto kho pana, bhikkhave, vipassī kumāro mañjussaro ca ahosi vaggussaro ca madhurassaro ca pemaniyassaro ca.
“비구들이여, 태어난 위빳시 왕자는 목소리가 곱고, 아름답고, 감미롭고, 정겨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himavante pabbate karavīkā nāma sakuṇajāti mañjussarā ca vaggussarā ca madhurassarā ca pemaniyassarā ca;
비구들이여, 마치 히말라야 산에 까라위까라는 새의 종류가 있어 목소리가 곱고, 아름답고, 감미롭고, 정겹듯이,
evamev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mañjussaro ca ahosi vaggussaro ca madhurassaro ca pemaniyassaro ca.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목소리가 곱고, 아름답고, 감미롭고, 정겨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39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가 태어나자 업의 과보로 생긴 하늘눈이 나타났다. 그는 그 눈으로 밤낮으로 사방 한 요자나를 보았다.
‘‘Jātassa kho pana, bhikkhave, vipassissa kumārassa kammavipākajaṃ dibbacakkhu pāturahosi yena sudaṃ samantā yojanaṃ passati divā ceva rattiñca.
“비구들이여, 태어난 위빳시 왕자에게는 업의 과보로 생긴 하늘눈이 나타나, 그것으로 낮에도 밤에도 사방 1요자나를 보았다.
40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삼십삼천의 신들처럼 눈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왕자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살펴본다’고 했다. 그래서 위빳시 왕자에게 ‘위빳시, 위빳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Jāto kho pana, bhikkhave, vipassī kumāro animisanto pekkhati seyyathāpi devā tāvatiṃsā.
“비구들이여, 태어난 위빳시 왕자는 서른셋 하늘의 신들처럼 눈을 깜박이지 않고 보았다.
‘Animisanto kumāro pekkhatī’ti kho, bhikkhave, vipassissa kumārassa ‘vipassī vipassī’ tveva samaññā udapādi.
‘왕자가 눈을 깜박이지 않고 본다’고 하여,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에게 ‘위빳시, 위빳시’라는 이름이 생겼다.
41
비구들이여, 그러고 나서 반두마 왕은 재판정에 앉아 위빳시 왕자를 무릎에 앉히고 사안을 가르쳤다. 그때 위빳시 왕자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사안을 거듭 살펴 이치에 맞게 판단했다. 그러자 ‘왕자가 사안을 거듭 살펴 이치에 맞게 판단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위빳시 왕자에게는 ‘위빳시, 위빳시’라는 이름이 더욱 굳어졌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atthakaraṇe nisinno vipassiṃ kumāraṃ aṅke nisīdāpetvā atthe anusāsati.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위빳시 왕자를 무릎에 앉히고 사안을 처리했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pituaṅke nisinno viceyya viceyya atthe panāyati ñāyena.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왕자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하나하나 가려내고 가려내어 이치에 따라 사안을 판결했다.
Viceyya viceyya kumāro atthe panāyati ñāyenāti kho, bhikkhave, vipassissa kumārassa bhiyyosomattāya ‘vipassī vipassī’ tveva samaññā udapādi.
‘왕자가 하나하나 가려내고 가려내어 이치에 따라 사안을 판결한다’고 하여,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에게 ‘위빳시, 위빳시’라는 이름이 더욱더 널리 생겼다.
42
비구들이여, 그러고 나서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를 위해 세 채의 궁전을 짓게 했다. 우기용 한 채, 겨울용 한 채, 여름용 한 채였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하여 위빳시 왕자는 우기 궁전에서 넉 달 동안 지냈다. 남자 없이 여인들만이 연주하는 음악 속에서 즐기며 아래층 궁전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첫 번째 암송 분량이 끝났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ssa kumārassa tayo pāsāde kārāpesi, ekaṃ vassikaṃ ekaṃ hemantikaṃ ekaṃ gimhikaṃ;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를 위해 세 채의 궁전을 짓게 했으니, 하나는 우기용이고 하나는 겨울용이고 하나는 여름용이었다.
pañca kāmaguṇāni upaṭṭhāpesi.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어 두게 했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vassike pāsāde cattāro māse nippurisehi tūriyehi paricārayamāno na heṭṭhāpāsādaṃ orohatī’’ti.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왕자는 우기의 궁전에서 넉 달 동안 남자가 섞이지 않은 악사들의 연주로 즐기며 아래층 궁전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Paṭhamabhāṇavāro.
첫 번째 송출 단락.
늙은 사람Jiṇṇapuriso
43
비구들이여, 그 뒤로 여러 해, 여러 백 년, 여러 천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비파시 왕자가 마부를 불렀다. “여보게 마부, 좋은 수레들을 채비하게. 경치 좋은 동산으로 가세.”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했다. 그는 수레들을 채비해 놓고 왕자에게 아뢰었다. “전하, 수레들을 채비하였습니다. 편하신 때에 가시지요.” 그러자 왕자는 좋은 수레에 올라, 수레들을 거느리고 동산으로 나갔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ūnaṃ vassānaṃ bahūnaṃ vassasatānaṃ bahūnaṃ vassasahassānaṃ accayena sārathiṃ āmante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여러 해가, 여러 백 해가, 여러 천 해가 지난 뒤에 마부를 불렀다 —
‘yojehi, samma sārathi,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uyyānabhūmiṃ gacchāma subhūmidassanāyā’ti.
‘여보게 마부여,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어라. 좋은 땅을 보러 동산으로 가자.’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etvā vipassissa kumārassa paṭivedesi –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고 위빳시 왕자에게 알렸다 —
‘yuttāni kho te, deva,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assa dāni kālaṃ maññasī’ti.
‘신이시여, 당신의 좋고 좋은 수레들이 매어졌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uyyānabhūmiṃ niyyāsi.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동산으로 나갔다.
44
비구들이여, 동산으로 가던 왕자는 길에서 한 사람을 보았다. 늙어서 서까래처럼 등이 굽은 사람이었다.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떨면서 걸어가는, 병들고 젊음이 다한 사람이었다. 왕자는 마부를 불러 물었다. “마부여, 저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머리카락도 몸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구나.” “전하, 저이는 늙은이라고 합니다.” “늙은이란 무엇인가?” “늙은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전하. 저이는 이제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마부여, 그러면 나도 늙는 법이어서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전하도 저희도 모두 늙는 법입니다. 아무도 늙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다. 내궁에 돌아간 왕자는 괴롭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다니!”[불확실]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purisaṃ jiṇṇaṃ gopānasivaṅkaṃ bhoggaṃ daṇḍaparāyanaṃ pavedhamānaṃ gacchantaṃ āturaṃ gatayobba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늙어 서까래처럼 굽고 휘어지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떨면서 걸어가는, 병들고 젊음이 지나간 사람을 보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isvā sārathiṃ āmantesi –
보고서 마부를 불렀다 —
‘ayaṃ pana, samma sārathi, puriso kiṃkato?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Kesāpissa na yathā aññesaṃ, kāyopissa na yathā aññesa’nti.
그의 머리카락도 남들과 같지 않고, 그의 몸도 남들과 같지 않구나.’
‘Eso kho, deva, jiṇṇo nām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늙은이라 합니다.’
‘Kiṃ paneso, samma sārathi, jiṇṇ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늙은이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jiṇṇo nāma.
‘신이시여, 저 사람은 늙은이라 합니다.
Na dāni tena ciraṃ jīvitabbaṃ bhavissatī’ti.
이제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jarādhammo, jaraṃ anatī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jarādhammā, jaraṃ anatītā’ti.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비구들이여, 거기 궁에 이른 위빳시 왕자는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다니!’
45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이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마부여, 왕자가 동산 나들이를 즐거워하더냐? 동산에서 기뻐하더냐?” “전하, 왕자님은 즐거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산에서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자가 동산으로 가다가 무엇을 보았느냐?” “전하, 왕자님은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늙어서 서까래처럼 등이 굽은 사람이었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떨면서 걸어가는, 병들고 젊음이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본 왕자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마부여, 저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머리카락도 몸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구나.’ 제가 ‘전하, 저이는 늙은이라고 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왕자님은 ‘늙은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저는 ‘늙은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저이는 이제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왕자님이 ‘그러면 나도 늙는 법이어서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하시기에, 저는 ‘전하도 저희도 모두 늙는 법이어서 늙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왕자님은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전하, 저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왕자님은 내궁에 돌아가셔서 괴로워하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십니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다니!’ 하고 말입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sārathiṃ āmantāpetvā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이렇게 말했다 —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였는가?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였는가?’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ddas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무엇을 보았는가?’
‘Addasā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purisaṃ jiṇṇaṃ gopānasivaṅkaṃ bhoggaṃ daṇḍaparāyanaṃ pavedhamānaṃ gacchantaṃ āturaṃ gatayobbanaṃ.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늙어 서까래처럼 굽고 휘어지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떨면서 걸어가는, 병들고 젊음이 지나간 사람을 보았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isvā maṃ etadavoca –
보고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ayaṃ pana, samma sārathi, puriso kiṃkato, kesāpissa na yathā aññesaṃ, kāyopissa na yathā aññesa’’n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그의 머리카락도 남들과 같지 않고, 그의 몸도 남들과 같지 않구나.”
‘‘Eso kho, deva, jiṇṇo nām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늙은이라 합니다.”
‘‘Kiṃ paneso, samma sārathi, jiṇṇ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늙은이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jiṇṇo nāma na dāni tena ciraṃ jīvitabbaṃ bhavissatī’’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늙은이라 합니다. 이제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jarādhammo, jaraṃ anatī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jarādhammā, jaraṃ anatītā’’ti.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ahaṃ, deva,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ṃ.
“예, 신이시여” 하고, 신이시여, 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So kho, deva,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신이시여, 그 왕자는 궁에 이르러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다니!”’
병든 사람Byādhitapuriso
46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파시 왕자가 왕위를 잇지 않으면 어쩌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쩌나.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맞게 되면 어쩌나.” 그래서 왕은 왕자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더욱 넘치게 마련해 주었다. 왕자가 왕위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고, 출가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틀리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자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푹 잠겨, 그것을 갖추고 즐기며 지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뒤, 왕자는 다시 앞서처럼 마부를 불러 동산으로 나갔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assa rañño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Mā heva kho vipassī kumāro na rajjaṃ kāresi, mā heva vipassī kumār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 mā heva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saccaṃ assa vacana’nti.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지 않는 일이 없기를, 위빳시 왕자가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기를,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참이 되는 일이 없기를.’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ssa kumārassa bhiyyosomattāya pañca kāmaguṇāni upaṭṭhāpesi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더욱더 넘치도록 마련해 주었다 —
‘yathā vipassī kumāro rajjaṃ kareyya, yathā vipassī kumāro 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yathā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micchā assa vacana’nti.
‘이리하여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도록, 이리하여 위빳시 왕자가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이리하여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그르게 되도록.’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왕자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두루 지녀 즐겼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ūnaṃ vassānaṃ…pe…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여러 해가, 여러 백 해가, 여러 천 해가 지난 뒤에 마부를 불렀다 — ‘여보게 마부여,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어라. 좋은 땅을 보러 동산으로 가자.’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고 위빳시 왕자에게 알렸다 — ‘신이시여, 당신의 좋고 좋은 수레들이 매어졌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동산으로 나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43.1 ~ PN:dn14/43.5에서 되살렸습니다.
47
비구들이여, 동산으로 가던 왕자는 길에서 또 한 사람을 보았다. 병들어 괴로워하는 중환자였다. 자기 똥오줌 속에 누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일으켜 주고 눕혀 주어야 했다. 왕자는 마부를 불러 물었다. “마부여, 저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눈도 목소리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구나.” “전하, 저이는 병자라고 합니다.” “병자란 무엇인가?” “병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전하. 어쩌면 저 병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마부여, 그러면 나도 병드는 법이어서 병듦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전하도 저희도 모두 병드는 법입니다. 아무도 병듦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다. 내궁에 돌아간 왕자는 괴롭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고 병듦이 나타나다니!”[불확실]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purisaṃ ābādhikaṃ dukkhitaṃ bāḷhagilānaṃ sake muttakarīse palipannaṃ semānaṃ aññehi vuṭṭhāpiyamānaṃ aññehi saṃvesiyamā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병들어 괴로워하고 몹시 앓아 제 똥오줌에 빠져 누운 채 남들이 일으켜 주고 남들이 눕혀 주는 사람을 보았다.
Disvā sārathiṃ āmantesi –
보고서 마부를 불렀다 —
‘ayaṃ pana, samma sārathi, puriso kiṃkato?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Akkhīnipissa na yathā aññesaṃ, saropissa na yathā aññesa’nti?
그의 눈도 남들과 같지 않고, 그의 목소리도 남들과 같지 않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so kho, deva, byādhito nām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병자라 합니다.’
‘Kiṃ paneso, samma sārathi, byādhi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병자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byādhito nāma appeva nāma tamhā ābādhā vuṭṭhaheyy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병자라 합니다. 혹시라도 그는 그 병에서 일어날지 모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byādhidhammo, byādhiṃ anatī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byādhidhammā, byādhiṃ anatītā’ti.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비구들이여, 거기 궁에 이른 위빳시 왕자는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i, byādhi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고 병이 드러나다니!’
48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이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마부여, 왕자가 동산 나들이를 즐거워하더냐? 동산에서 기뻐하더냐?” “전하, 왕자님은 즐거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산에서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자가 동산으로 가다가 무엇을 보았느냐?” “전하, 왕자님은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병들어 괴로워하는 중환자였습니다. 자기 똥오줌 속에 누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일으켜 주고 눕혀 주어야 했습니다. 그를 본 왕자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마부여, 저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눈도 목소리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구나.’ 제가 ‘전하, 저이는 병자라고 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왕자님은 ‘병자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저는 ‘병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저 병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하고 답하였습니다. 왕자님이 ‘그러면 나도 병드는 법이어서 병듦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하시기에, 저는 ‘전하도 저희도 모두 병드는 법이어서 병듦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왕자님은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전하, 저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왕자님은 내궁에 돌아가셔서 괴로워하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십니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고 병듦이 나타나다니!’ 하고 말입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sārathiṃ āmantāpetvā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이렇게 말했다 —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였는가?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였는가?’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ddas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무엇을 보았는가?’
‘Addasā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purisaṃ ābādhikaṃ dukkhitaṃ bāḷhagilānaṃ sake muttakarīse palipannaṃ semānaṃ aññehi vuṭṭhāpiyamānaṃ aññehi saṃvesiyamānaṃ.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병들어 괴로워하고 몹시 앓아 제 똥오줌에 빠져 누운 채 남들이 일으켜 주고 남들이 눕혀 주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Disvā maṃ etadavoca –
보고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ayaṃ pana, samma sārathi, puriso kiṃkato, akkhīnipissa na yathā aññesaṃ, saropissa na yathā aññesa’’n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그의 눈도 남들과 같지 않고, 그의 목소리도 남들과 같지 않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so kho, deva, byādhito nām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병자라 합니다.”
‘‘Kiṃ paneso, samma sārathi, byādhi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병자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byādhito nāma appeva nāma tamhā ābādhā vuṭṭhaheyyā’’ti.
“신이시여, 저 사람은 병자라 합니다. 혹시라도 그는 그 병에서 일어날지 모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byādhidhammo, byādhiṃ anatī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byādhidhammā, byādhiṃ anatītā’’ti.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ahaṃ, deva,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ṃ.
“예, 신이시여” 하고, 신이시여, 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So kho, deva,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신이시여, 그 왕자는 궁에 이르러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i, byādhi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고 병이 드러나다니!’”
죽은 사람Kālaṅkatapuriso
49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파시 왕자가 왕위를 잇지 않으면 어쩌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쩌나.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맞게 되면 어쩌나.” 그래서 왕은 왕자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더욱 넘치게 마련해 주었다. 왕자가 왕위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고, 출가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틀리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자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푹 잠겨, 그것을 갖추고 즐기며 지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뒤, 왕자는 다시 앞서처럼 마부를 불러 동산으로 나갔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assa rañño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mā heva kho vipassī kumāro na rajjaṃ kāresi, mā heva vipassī kumār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 mā heva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saccaṃ assa vacana’nti.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지 않는 일이 없기를, 위빳시 왕자가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기를,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참이 되는 일이 없기를.’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ssa kumārassa bhiyyosomattāya pañca kāmaguṇāni upaṭṭhāpesi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더욱더 넘치도록 마련해 주었다 —
‘yathā vipassī kumāro rajjaṃ kareyya, yathā vipassī kumāro 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yathā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micchā assa vacana’nti.
‘이리하여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도록, 이리하여 위빳시 왕자가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이리하여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그르게 되도록.’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왕자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두루 지녀 즐겼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ūnaṃ vassānaṃ…pe…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여러 해가, 여러 백 해가, 여러 천 해가 지난 뒤에 마부를 불렀다 — ‘여보게 마부여,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어라. 좋은 땅을 보러 동산으로 가자.’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좋고 좋은 수레들을 매고 위빳시 왕자에게 알렸다 — ‘신이시여, 당신의 좋고 좋은 수레들이 매어졌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동산으로 나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43.1 ~ PN:dn14/43.5에서 되살렸습니다.
50
비구들이여, 동산으로 가던 왕자는 길에서 많은 사람을 보았다.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여러 빛깔의 천을 마련하고 있었다. 왕자는 마부를 불러 물었다. “마부여, 저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빛깔의 천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전하, 죽은 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죽은 이가 있는 쪽으로 수레를 몰게.”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그쪽으로 수레를 몰았다. 왕자는 죽은 사람의 주검을 보고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여, 죽은 이란 무엇인가?” “죽은 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전하.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척 혈족도 저이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이 또한 어머니나 아버지나 다른 친척 혈족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부여, 그러면 나도 죽는 법이어서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임금도 왕비도 다른 친척 혈족도 나를 보지 못하게 되는가? 나 또한 임금도 왕비도 다른 친척 혈족도 보지 못하게 되는가?” “전하도 저희도 모두 죽는 법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임금도 왕비도 다른 친척 혈족도 전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도 그분들을 보지 못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다. 내궁에 돌아간 왕자는 괴롭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고 병듦이 나타나고 죽음이 나타나다니!”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mahājanakāyaṃ sannipatitaṃ nānārattānañca dussānaṃ vilātaṃ kayiramā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천으로 상여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Disvā sārathiṃ āmantesi –
보고서 마부를 불렀다 —
‘kiṃ nu kho, so, samma sārathi, mahājanakāyo sannipatito nānārattānañca dussānaṃ vilātaṃ kayiratī’ti?
‘여보게 마부여, 저 많은 사람들은 어찌하여 모여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천으로 상여를 만들고 있는가?’
‘Eso kho, deva, kālaṅkato nāmā’ti.
‘신이시여, 저것은 죽은 이라 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yena so kālaṅkato tena rathaṃ pese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저 죽은 이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아라.’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yena so kālaṅkato tena rathaṃ pesesi.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저 죽은 이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았다.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petaṃ kālaṅkataṃ, disvā sārathiṃ āmantesi –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죽어서 떠난 이를 보았다. 보고서 마부를 불렀다 —
‘kiṃ panāyaṃ, samma sārathi, kālaṅka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죽은 이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kālaṅkato nāma.
‘신이시여, 저것은 죽은 이라 합니다.
Na dāni taṃ dakkhanti mātā vā pitā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sopi na dakkhissati mātaraṃ vā pitara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그를 보지 못하고, 그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maraṇadhammo maraṇaṃ anatīto;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mampi na dakkhanti devo vā devī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나를 보지 못하고,
ahampi na dakkhissāmi devaṃ vā devi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나도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maraṇadhammā maraṇaṃ anatītā;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ampi na dakkhanti devo vā devī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당신을 보지 못하고,
tvampi na dakkhissasi devaṃ vā devi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당신도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
‘예, 신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비구들이여, 거기 궁에 이른 위빳시 왕자는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i, byādhi paññāyissati, maraṇaṃ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고 병이 드러나고 죽음이 드러나다니!’
51
비구들이여, 그러자 반두마 왕이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마부여, 왕자가 동산 나들이를 즐거워하더냐? 동산에서 기뻐하더냐?” “전하, 왕자님은 즐거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산에서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자가 동산으로 가다가 무엇을 보았느냐?” “전하, 왕자님은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빛깔의 천을 마련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것을 보신 왕자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마부여, 저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빛깔의 천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제가 ‘전하, 죽은 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왕자님은 ‘그렇다면 그 죽은 이가 있는 쪽으로 수레를 몰게’ 하셨습니다. 전하, 저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그쪽으로 수레를 몰았습니다. 왕자님은 죽은 사람의 주검을 보시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마부여, 죽은 이란 무엇인가?’ 저는 ‘죽은 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척 혈족도 저이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이 또한 어머니나 아버지나 다른 친척 혈족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왕자님이 ‘그러면 나도 죽는 법이어서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임금도 왕비도 다른 친척 혈족도 나를 보지 못하게 되는가? 나 또한 그분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가?’ 하시기에, 저는 ‘전하도 저희도 모두 죽는 법이어서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임금도 왕비도 다른 친척 혈족도 전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전하께서도 그분들을 보지 못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왕자님은 ‘그렇다면 오늘은 동산 나들이를 그만두겠다. 여기서 곧장 내궁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전하, 저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곧장 내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왕자님은 내궁에 돌아가셔서 괴로워하고 마음이 언짢아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십니다.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부끄럽구나.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나타나고 병듦이 나타나고 죽음이 나타나다니!’ 하고 말입니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sārathiṃ āmantāpetvā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반두마 왕은 마부를 불러오게 하여 이렇게 말했다 —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kacci, samma sārathi,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였는가?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였는가?’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bhiramittha, na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yā attamano ahosī’ti.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에서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ddas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ti?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무엇을 보았는가?’
‘Addasā kho, deva,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mahājanakāyaṃ sannipatitaṃ nānārattānañca dussānaṃ vilātaṃ kayiramānaṃ.
‘신이시여, 왕자는 동산으로 나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천으로 상여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Disvā maṃ etadavoca –
보고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kiṃ nu kho, so, samma sārathi, mahājanakāyo sannipatito nānārattānañca dussānaṃ vilātaṃ kayiratī’’ti?
“여보게 마부여, 저 많은 사람들은 어찌하여 모여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천으로 상여를 만들고 있는가?”
‘‘Eso kho, deva, kālaṅkato nāmā’’ti.
“신이시여, 저것은 죽은 이라 합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yena so kālaṅkato tena rathaṃ pese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저 죽은 이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아라.”
‘‘Evaṃ devā’’ti kho ahaṃ, deva,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yena so kālaṅkato tena rathaṃ pesesiṃ.
“예, 신이시여” 하고, 신이시여, 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저 죽은 이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았습니다.
Addasā kho, deva, kumāro petaṃ kālaṅkataṃ, disvā maṃ etadavoca –
신이시여, 왕자는 죽어서 떠난 이를 보았습니다. 보고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kiṃ panāyaṃ, samma sārathi, kālaṅka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죽은 이란 무엇인가?”
‘‘Eso kho, deva, kālaṅkato nāma.
“신이시여, 저것은 죽은 이라 합니다.
Na dāni taṃ dakkhanti mātā vā pitā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sopi na dakkhissati mātaraṃ vā pitara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그를 보지 못하고, 그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Kiṃ pana, samma sārathi, ahampi maraṇadhammo maraṇaṃ anatīto;
“그러면 여보게 마부여, 나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mampi na dakkhanti devo vā devī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나를 보지 못하고,
ahampi na dakkhissāmi devaṃ vā devi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나도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하는가?”
‘‘Tvañca, deva, mayañcamha sabbe maraṇadhammā maraṇaṃ anatītā;
“신이시여, 당신도 저희도 모두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tampi na dakkhanti devo vā devī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ā, tvampi na dakkhissasi devaṃ vā deviṃ vā aññe vā ñātisālohite’’ti.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당신을 보지 못하고, 당신도 왕도 왕비도 다른 친족과 혈육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alaṃ dānajja uyyānabhūmiyā,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이제 오늘 동산은 그만이다. 여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가라.’
‘‘‘Evaṃ, devā’’ti kho ahaṃ, deva,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ṃ.
“‘예, 신이시여” 하고, 신이시여, 저는 위빳시 왕자에게 대답하고서 거기서 바로 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So kho, deva, kumāro antepuraṃ gato dukkhī dummano pajjhāyati –
신이시여, 그 왕자는 궁에 이르러 괴롭고 풀죽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
‘‘dhiratthu kira bho jāti nāma, yatra hi nāma jātassa jarā paññāyissati, byādhi paññāyissati, maraṇaṃ paññāyissatī’’’ti.
“아, 태어남이란 참으로 저주스럽구나 — 태어난 자에게 늙음이 드러나고 병이 드러나고 죽음이 드러나다니!”’
출가자Pabbajito
52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이런 생각을 했다. “위빠시 왕자가 왕위를 잇지 않으면 어쩌나.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쩌나. 점성가 바라문들의 말이 맞아떨어지면 어쩌나.” 그래서 왕은 왕자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즐거움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마련해 주었다. 왕자가 왕위를 이어 주기를, 출가하지 않기를, 점성가 바라문들의 말이 틀린 것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위빠시 왕자는 그곳에서 다섯 가지 감각적 즐거움에 푹 잠겨 마음껏 누리며 지냈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assa rañño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mā heva kho vipassī kumāro na rajjaṃ kāresi, mā heva vipassī kumār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 mā heva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saccaṃ assa vacana’nti.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빳시 왕자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사실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Atha kho, bhikkhave, bandhumā rājā vipassissa kumārassa bhiyyosomattāya pañca kāmaguṇāni upaṭṭhāpesi –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 왕은 위빳시 왕자에게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더욱더 넘치도록 마련해 주었다 —
‘yathā vipassī kumāro rajjaṃ kareyya, yathā vipassī kumāro 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yathā nemittānaṃ brāhmaṇānaṃ micchā assa vacana’nti.
‘이렇게 하여 위빳시 왕자가 왕위를 다스리도록, 이렇게 하여 위빳시 왕자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도록, 이렇게 하여 점치는 바라문들의 말이 그릇되도록.’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kumāro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왕자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두루 지니고서 즐겼다.
그렇게 여러 해, 수백 년, 수천 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위빠시 왕자가 마부를 불러 말했다. “이보게 마부, 좋은 수레들을 채비하게. 동산으로 나가 경치 좋은 곳을 구경하러 가세.”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수레들을 채비했다. 그리고 왕자에게 아뢰었다. “전하, 좋은 수레들을 채비해 두었습니다. 이제 가시기 좋은 때라고 여기시면 나서십시오.” 비구들이여, 위빠시 왕자는 가장 좋은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다른 수레들을 거느리고 동산으로 나갔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ahūnaṃ vassānaṃ bahūnaṃ vassasatānaṃ bahūnaṃ vassasahassānaṃ accayena sārathiṃ āmante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왕자는 여러 해, 여러 백 년, 여러 천 년이 지난 뒤에 마부를 불렀다 —
‘yojehi, samma sārathi,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uyyānabhūmiṃ gacchāma subhūmidassanāyā’ti.
‘여보게 마부여, 좋고 좋은 수레들을 채비하게. 좋은 땅을 보러 동산으로 가세.’[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etvā vipassissa kumārassa paṭivedesi –
‘예, 전하’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께 대답하고서 좋고 좋은 수레들을 채비하고 위빳시 왕자께 아뢰었다 —
‘yuttāni kho te, deva,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assa dāni kālaṃ maññasī’ti.
‘전하, 좋고 좋은 수레들이 채비되었습니다. 이제 지금이 그때라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uyyānabhūmiṃ niyyāsi.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왕자는 좋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고 좋은 수레들로 동산을 향해 나아갔다.
53
비구들이여, 동산으로 나가던 위빠시 왕자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두른 출가자 한 사람을 보았다. 왕자는 마부를 불러 물었다. “이보게 마부, 저 사람은 어찌 된 사람인가? 머리도 다른 사람들 같지 않고, 옷도 다른 사람들 같지 않구나.” “전하, 저 사람은 출가자라고 합니다.” “이보게 마부, 출가자란 무엇인가?”[불확실]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uyyānabhūmiṃ niyyanto purisaṃ bhaṇḍuṃ pabbajitaṃ kāsāyavasanaṃ.
“비구들이여, 위빳시 왕자는 동산으로 나아가다가 머리를 깎고 황갈색 옷을 걸친 출가자인 사람을 보았다.
Disvā sārathiṃ āmantesi –
보고서 마부를 불렀다 —
‘ayaṃ pana, samma sārathi, puriso kiṃkato?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이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īsaṃpissa na yathā aññesaṃ, vatthānipissa na yathā aññesa’nti?
그의 머리도 다른 이들 같지 않고, 그의 옷들도 다른 이들 같지 않구나.’
‘Eso kho, deva, pabbajito nāmā’ti.
‘그는, 전하, 출가자라 하는 이입니다.’
‘Kiṃ paneso, samma sārathi, pabbaji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마부여, 출가자라 하는 이는 무엇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전하, 출가자란 이런 사람입니다. 법답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바르게 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한 일을 좋아하고, 복이 되는 일을 좋아합니다. 해치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뭇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보게 마부, 그 출가자는 참으로 훌륭하구나. 법답게 사는 것, 바르게 행하는 것, 선한 일을 하는 것, 복이 되는 일을 하는 것, 해치지 않는 것, 뭇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좋아한다니 말일세. 그러니 마부여, 그 출가자가 있는 쪽으로 수레를 몰게.”[불확실]
‘Eso kho, deva, pabbajito nāma sādhu dhammacariyā sādhu samacariyā sādhu kusalakiriyā sādhu puññakiriyā sādhu avihiṃsā sādhu bhūtānukampā’ti.
‘그는, 전하, 출가자라 하는 이이니, 법답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고르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유익한 행위가 훌륭하고, 공덕이 되는 행위가 훌륭하고, 해치지 않음이 훌륭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가엾이 여김이 훌륭합니다.’
‘Sādhu kho so, samma sārathi, pabbajito nāma, sādhu dhammacariyā sādhu samacariyā sādhu kusalakiriyā sādhu puññakiriyā sādhu avihiṃsā sādhu bhūtānukampā.
‘여보게 마부여, 그 출가자라 하는 이는 훌륭하구나. 법답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고르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유익한 행위가 훌륭하고, 공덕이 되는 행위가 훌륭하고, 해치지 않음이 훌륭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가엾이 여김이 훌륭하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na hi, samma sārathi, yena so pabbajito tena rathaṃ pesehī’t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그 출가자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한 뒤 그 출가자가 있는 쪽으로 수레를 몰았다. 위빠시 왕자는 출가자에게 말했다. “이보게, 그대는 어찌 된 사람인가? 머리도 다른 사람들 같지 않고, 옷도 다른 사람들 같지 않구려.” “전하, 저는 출가자라고 합니다.” “이보게, 출가자란 무엇인가?”[불확실]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yena so pabbajito tena rathaṃ pesesi.
‘예, 전하’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께 대답하고서 그 출가자가 있는 곳으로 수레를 몰았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taṃ pabbajitaṃ etadavoca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왕자는 그 출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tvaṃ pana, samma, kiṃkato, sīsampi te na yathā aññesaṃ, vatthānipi te na yathā aññesa’nti?
‘그런데 여보게, 그대는 어찌 된 것인가? 그대의 머리도 다른 이들 같지 않고, 그대의 옷들도 다른 이들 같지 않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haṃ kho, deva, pabbajito nāmā’ti.
‘저는, 전하, 출가자라 하는 이입니다.’
‘Kiṃ pana tvaṃ, samma, pabbajito nāmā’ti?
‘그런데 여보게, 출가자라 하는 그대는 무엇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전하, 저는 출가자입니다. 법답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바르게 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한 일을 좋아하고, 복이 되는 일을 좋아합니다. 해치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뭇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보게,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출가자로군. 법답게 사는 것, 바르게 행하는 것, 선한 일을 하는 것, 복이 되는 일을 하는 것, 해치지 않는 것, 뭇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좋아한다니 말일세.”[불확실]
‘Ahaṃ kho, deva, pabbajito nāma, sādhu dhammacariyā sādhu samacariyā sādhu kusalakiriyā sādhu puññakiriyā sādhu avihiṃsā sādhu bhūtānukampā’ti.
‘저는, 전하, 출가자라 하는 이이니, 법답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고르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유익한 행위가 훌륭하고, 공덕이 되는 행위가 훌륭하고, 해치지 않음이 훌륭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가엾이 여김이 훌륭합니다.’
‘Sādhu kho tvaṃ, samma, pabbajito nāma sādhu dhammacariyā sādhu samacariyā sādhu kusalakiriyā sādhu puññakiriyā sādhu avihiṃsā sādhu bhūtānukampā’ti.
‘여보게, 그대는 출가자라 하는 이이니 훌륭하구나. 법답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고르게 살아감이 훌륭하고, 유익한 행위가 훌륭하고, 공덕이 되는 행위가 훌륭하고, 해치지 않음이 훌륭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가엾이 여김이 훌륭하구나.’[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보살의 출가Bodhisattapabbajjā
54
비구들이여, 그러고서 위빠시 왕자는 마부를 불러 말했다. “마부여, 수레를 가지고 여기서 곧장 궁으로 돌아가게. 나는 바로 이곳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겠네. 가사를 두르고 집을 떠나 출가하겠네.” 마부는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했다. 그는 수레를 가지고 곧장 궁으로 돌아갔다. 위빠시 왕자는 바로 그곳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았다. 가사를 두르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sārathiṃ āmante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왕자는 마부를 불렀다 —
‘tena hi, samma sārathi, rathaṃ ādāya itova antepuraṃ paccaniyyāhi.
‘그렇다면 여보게 마부여, 수레를 가지고 여기서 곧바로 왕궁으로 돌아가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haṃ pana idhev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ssāmī’ti.
그러나 나는 바로 여기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겠다.’
‘Evaṃ, devā’ti kho, bhikkhave, sārathi vipassissa kumārassa paṭissutvā rathaṃ ādāya tatova antepuraṃ paccaniyyāsi.
‘예, 전하’ 하고, 비구들이여, 마부는 위빳시 왕자께 대답하고서 수레를 가지고 거기서 곧바로 왕궁으로 돌아갔다.
Vipassī pana kumāro tatthev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
그러나 위빳시 왕자는 바로 그곳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큰 무리가 뒤따라 출가함Mahājanakāyaanupabbajjā
55
비구들이여, 반두마티 왕도에 사는 많은 사람들, 팔만사천 명이 소식을 들었다. “위빠시 왕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두른 채 집을 떠나 출가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법과 율은 결코 하찮지 않다. 이 출가도 결코 하찮지 않다. 위빠시 왕자가 집을 떠나 출가했으니 말이다. 왕자도 출가하는데, 하물며 우리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Assosi kho, bhikkhave,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mahājanakāyo caturāsīti pāṇasahassāni –
“비구들이여, 반두마띠 왕도의 큰 무리인 팔만 사천 생명이 들었다 —
‘vipassī kira kumāro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ti.
‘위빳시 왕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고 한다.’
Sutvāna tesaṃ etadahosi –
듣고서 그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hi nūna so orako dhammavinayo, na sā orakā pabbajjā, yattha vipassī kumāro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위빳시 왕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법과 율은 참으로 하찮지 않고, 그 출가도 하찮지 않다.
Vipassīpi nāma kumāro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ssati, kimaṅgaṃ pana maya’nti.
위빳시 왕자마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데, 하물며 우리이겠는가.’
비구들이여, 그 팔만사천 명의 사람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둘렀다. 그리고 집을 떠나 출가한 보살 위빠시를 따라 출가했다. 보살 위빠시는 그 무리에 둘러싸여 마을과 소도시, 지방과 왕도를 두루 돌아다녔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janakāyo caturāsīti pāṇasahassāni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vipassiṃ bodhisattaṃ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aṃ anupabbajiṃsu.
“비구들이여, 그때 그 큰 무리인 팔만 사천 생명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 옷들을 걸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위빳시 보살을 따라 출가했다.
Tāya sudaṃ, bhikkhave, parisāya parivuto vipassī bodhisatto gāmanigamajanapadarājadhānīsu cārikaṃ carati.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은 그 무리에 둘러싸여 마을과 성읍과 지방과 왕도들을 두루 다녔다.
56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는 홀로 한적한 곳에 들어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무리 속에 뒤섞여 지내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지내면 어떨까.” 보살 위빠시는 얼마 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지냈다. 팔만사천 출가자들은 한쪽 길로 가고, 보살 위빠시는 다른 길로 갔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비구들이여, 그때 홀로 있으며 고요히 머물던 위빳시 보살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metaṃ patirūpaṃ yohaṃ ākiṇṇo viharāmi, yaṃnūnāhaṃ eko gaṇamhā vūpakaṭṭho vihareyya’nti.
‘내가 붐비는 가운데 머무는 것은 나에게 알맞지 않다. 나는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머무는 것이 어떨까.’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odhisatto aparena samayena eko gaṇamhā vūpakaṭṭho vihāsi, aññeneva tāni caturāsīti pabbajitasahassāni agamaṃsu, aññena maggena vipassī bodhisatto.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은 훗날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머물렀고, 그 팔만 사천 출가자들은 바로 다른 길로 갔으며, 위빳시 보살은 다른 길로 갔다.
보살의 골똘함Bodhisattaabhiniveso
57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는 거처에 들어 홀로 한적한 곳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아, 이 세상은 괴로운 처지에 빠져 있구나. 태어나고 늙고 죽고 스러지고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한다.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체 언제쯤 드러날까?”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vāsūpagat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비구들이여, 그때 거처에 들어 홀로 있으며 고요히 머물던 위빳시 보살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cchaṃ vatāyaṃ loko āpanno, jāyati ca jīyati ca mīyati ca cavati ca upapajjati ca, atha ca panimassa dukkhassa nissaraṇaṃ nappajānāti jarāmaraṇassa, kudāssu nāma imassa dukkhassa nissaraṇaṃ paññāyissati jarāmaraṇassā’ti?
‘이 세상은 참으로 괴로움에 빠졌구나.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 가고 다시 태어나는데, 그러면서도 이 괴로움에서,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남을 알지 못한다. 언제쯤에야 이 괴로움에서,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남이 드러날까?’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 kiṃpaccayā jarāmaraṇa’nti?
‘무엇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jātiyā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태어남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존재가 있을 때 태어남이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jāti hoti, kiṃpaccayā jātī’ti?
‘무엇이 있을 때 태어남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bhave kho sati jāti hoti, bhavapaccayā jātī’ti.
‘존재가 있을 때 태어남이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존재가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집착이 있을 때 존재가 있다.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bhavo hoti, kiṃpaccayā bhavo’ti?
‘무엇이 있을 때 존재가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upādāne kho sati bhavo hoti, upādānapaccayā bhavo’ti.
‘취착이 있을 때 존재가 있다.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집착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집착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갈애가 있을 때 집착이 있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upādānaṃ hoti, kiṃpaccayā upādāna’nti?
‘무엇이 있을 때 취착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취착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taṇhāya kho sati upādānaṃ hoti, taṇhāpaccayā upādāna’nti.
‘갈애가 있을 때 취착이 있다.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갈애가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느낌이 있을 때 갈애가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taṇhā hoti, kiṃpaccayā taṇhā’ti?
‘무엇이 있을 때 갈애가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vedanāya kho sati taṇhā hoti, vedanāpaccayā taṇhā’ti.
‘느낌이 있을 때 갈애가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느낌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접촉이 있을 때 느낌이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vedanā hoti, kiṃpaccayā vedanā’ti?
‘무엇이 있을 때 느낌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phasse kho sati vedanā hoti, phassapaccayā vedanā’ti.
‘접촉이 있을 때 느낌이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접촉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여섯 감각 영역이 있을 때 접촉이 있다. 여섯 감각 영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phasso hoti, kiṃpaccayā phasso’ti?
‘무엇이 있을 때 접촉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saḷāyatane kho sati phasso hoti, saḷāyatanapaccayā phasso’ti.
‘여섯 감각 영역이 있을 때 접촉이 있다. 여섯 감각 영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정신과 물질이 있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saḷāyatanaṃ hoti, kiṃpaccayā saḷāyatana’nti?
‘무엇이 있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nāmarūpe kho sati saḷāyatanaṃ hoti,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nti.
‘정신과 물질이 있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정신과 물질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의식이 있을 때 정신과 물질이 있다.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nāmarūpaṃ hoti, kiṃpaccayā nāmarūpa’nti?
‘무엇이 있을 때 정신과 물질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viññāṇe kho sati nāmarūpaṃ hoti,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의식이 있을 때 정신과 물질이 있다.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의식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정신과 물질이 있을 때 의식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sati viññāṇaṃ hoti, kiṃpaccayā viññāṇa’nti?
‘무엇이 있을 때 의식이 있는가? 무엇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nāmarūpe kho sati viññāṇaṃ hoti,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정신과 물질이 있을 때 의식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58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의식은 정신과 물질에서 되돌아올 뿐, 그 너머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paccudāvattati kho idaṃ viññāṇaṃ nāmarūpamhā, nāparaṃ gacchati.
‘이 의식은 정신과 물질에서 되돌아온다. 그 너머로는 가지 않는다.
이 정도에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스러지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곧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고, 여섯 감각 영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Ettāvatā jāyetha vā jiyyetha vā miyyetha vā cavetha vā upapajjetha vā, yadidaṃ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이만큼으로 태어나거나 늙거나 죽거나 옮겨 가거나 다시 태어난다. 곧,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영역이 있고, 여섯 감각 영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가 일어난다.”[불확실]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일어남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59
비구들이여, “일어남, 일어남” 하는 순간이었다. 보살 위빠시에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눈이 생기고, 앎이 생기고, 지혜가 생겼다.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Samudayo samudayo’ti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일어남, 일어남’ 하고,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에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60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늙음과 죽음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태어남이 없을 때 늙음과 죽음이 없다.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i, kissa nirodhā jarāmaraṇ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늙음과 죽음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jātiyā kho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i, jātinirodhā jarāmaraṇanirodho’ti.
‘태어남이 없을 때 늙음과 죽음이 없다. 태어남이 소멸하기에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태어남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태어남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존재가 없을 때 태어남이 없다. 존재가 사라지면 태어남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jāti na hoti, kissa nirodhā jāti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태어남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태어남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bhave kho asati jāti na hoti, bhavanirodhā jātinirodho’ti.
‘존재가 없을 때 태어남이 없다. 존재가 소멸하기에 태어남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존재가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집착이 없을 때 존재가 없다. 집착이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bhavo na hoti, kissa nirodhā bhav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존재가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존재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upādāne kho asati bhavo na hoti,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ti.
‘취착이 없을 때 존재가 없다. 취착이 소멸하기에 존재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집착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집착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갈애가 없을 때 집착이 없다. 갈애가 사라지면 집착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upādānaṃ na hoti, kissa nirodhā upādān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취착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취착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taṇhāya kho asati upādānaṃ na hoti, taṇhānirodhā upādānanirodho’ti.
‘갈애가 없을 때 취착이 없다. 갈애가 소멸하기에 취착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갈애가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갈애가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느낌이 없을 때 갈애가 없다. 느낌이 사라지면 갈애가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taṇhā na hoti, kissa nirodhā taṇhā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갈애가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갈애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vedanāya kho asati taṇhā na hoti, vedanānirodhā taṇhānirodho’ti.
‘느낌이 없을 때 갈애가 없다. 느낌이 소멸하기에 갈애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느낌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접촉이 없을 때 느낌이 없다.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vedanā na hoti, kissa nirodhā vedanā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느낌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느낌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phasse kho asati vedanā na hoti,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ti.
‘접촉이 없을 때 느낌이 없다. 접촉이 소멸하기에 느낌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접촉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접촉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여섯 감각 영역이 없을 때 접촉이 없다. 여섯 감각 영역이 사라지면 접촉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phasso na hoti, kissa nirodhā phass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접촉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접촉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saḷāyatane kho asati phasso na hoti,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ti.
‘여섯 감각 영역이 없을 때 접촉이 없다. 여섯 감각 영역이 소멸하기에 접촉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여섯 감각 영역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정신과 물질이 없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없다.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여섯 감각 영역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saḷāyatanaṃ na hoti, kissa nirodhā saḷāyatan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여섯 감각 영역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nāmarūpe kho asati saḷāyatanaṃ na hoti,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ti.
‘정신과 물질이 없을 때 여섯 감각 영역이 없다.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기에 여섯 감각 영역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정신과 물질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의식이 없을 때 정신과 물질이 없다. 의식이 사라지면 정신과 물질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nāmarūpaṃ na hoti, kissa nirodhā nāmarūp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정신과 물질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정신과 물질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viññāṇe kho asati nāmarūpaṃ na hoti,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ti.
‘의식이 없을 때 정신과 물질이 없다. 의식이 소멸하기에 정신과 물질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의식이 없는가? 무엇이 사라지면 의식이 사라지는가?” 보살은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끝에 지혜로 꿰뚫어 깨달았다. “정신과 물질이 없을 때 의식이 없다.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의식이 사라진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mhi nu kho asati viññāṇaṃ na hoti, kissa nirodhā viññāṇanirodho’ti?
‘무엇이 없을 때 의식이 없는가? 무엇이 소멸하기에 의식의 소멸이 있는가?’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 데서 통찰지로 꿰뚫음이 있었다 —
‘nāmarūpe kho asati viññāṇaṃ na hoti,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ti.
‘정신과 물질이 없을 때 의식이 없다.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기에 의식의 소멸이 있다.’
61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얻었다. 곧 이러하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dhigato kho myāyaṃ maggo sambodhāya yadidaṃ –
‘나는 바른 깨달음으로 가는 이 길을 얻었다. 곧 —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의식이 사라지고, 의식이 사라지면 정신과 물질이 사라진다.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여섯 감각 영역이 사라지고, 여섯 감각 영역이 사라지면 접촉이 사라진다.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지고, 느낌이 사라지면 갈애가 사라진다. 갈애가 사라지면 집착이 사라지고, 집착이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진다. 존재가 사라지면 태어남이 사라진다.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사라진다.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vedanānirodhā taṇhānirodho, taṇhā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기에 의식의 소멸이 있고, 의식이 소멸하기에 정신과 물질의 소멸이 있고,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기에 여섯 감각 영역의 소멸이 있고, 여섯 감각 영역이 소멸하기에 접촉의 소멸이 있고, 접촉이 소멸하기에 느낌의 소멸이 있고, 느낌이 소멸하기에 갈애의 소멸이 있고, 갈애가 소멸하기에 취착의 소멸이 있고, 취착이 소멸하기에 존재의 소멸이 있고, 존재가 소멸하기에 태어남의 소멸이 있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소멸한다.
이렇게 해서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가 사라진다.”[불확실]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i’.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소멸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62
비구들이여, “사라짐, 사라짐” 하는 순간이었다. 보살 위빠시에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눈이 생기고, 앎이 생기고, 지혜가 생겼다.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Nirodho nirodho’ti kho, bhikkhave, vipassissa bodhisattassa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소멸, 소멸’ 하고,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에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63
비구들이여, 보살 위빠시는 얼마 뒤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지켜보며 지냈다. “이것이 물질이고,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고,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고,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도적 형성이고, 이것이 의도적 형성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의도적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고,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 이렇게 다섯 무더기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지켜보며 지내던 그는, 오래지 않아 집착 없이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이 해탈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odhisatto aparena samayen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āsi –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은 훗날 다섯 취착 무더기에 대해 일어남과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머물렀다 —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이것이 물질,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이것이 느낌,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이것이 인식,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ṃ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ṃ atthaṅgamo;
이것이 형성작용, 이것이 형성작용의 일어남, 이것이 형성작용의 사라짐;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tass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ino viharato na 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ī’’ti.
이것이 의식,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 하고. 다섯 취착 무더기에 대해 일어남과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머무는 그에게 오래지 않아 취착하지 않고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
둘째 암송 분량이 끝났다.
Dutiyabhāṇavāro.
두 번째 송출품.
범천의 청에 관한 이야기Brahmayācanakathā
64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차라리 법을 설하면 어떨까.’ 비구들이여, 그러다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다시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내가 얻은 이 법은 깊어서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고요하고 뛰어나다. 헤아림으로는 닿을 수 없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좋아하며, 집착에서 기쁨을 얻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이치가 보기 어렵다. 이것이 의지해 일어나는 연기라는 이치이다. 또 모든 형성이 가라앉고, 모든 집착의 바탕을 놓아 버리게 된다. 갈애가 다하고 욕망이 사라져 소멸하면 열반에 이른다. 이 이치 또한 보기 어렵다. 내가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로일 뿐이고 괴로움일 뿐이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dhammaṃ deseyya’nti.
‘나는 법을 설하면 어떨까.’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dhigato kho myāyaṃ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빼어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고, 미묘하여, 슬기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ṃ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한다.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ṃ idaṃ ṭhānaṃ yadidaṃ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리는 보기 어렵다 — 곧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함께 일어남이다.
Idam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이 도리도 보기 어렵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Ahañceva kho pana dhammaṃ deseyyaṃ, pare ca me na ājāneyyuṃ;
그런데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남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그것은 내게 피곤이 될 것이고, 그것은 내게 성가심이 될 것이다.’
65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게송들이 떠올랐다.[불확실]
‘‘Apissu, bhikkhave,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ṃsu pubbe assutapubbā –
“그리고 또,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이 게송들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애써 겨우 얻은 이 법을, / 이제 와 펼쳐 보여 무엇하리.
‘Kicchena me adhigataṃ, halaṃ dāni pakāsituṃ;
‘애써 내가 얻었으니, 이제 굳이 밝힐 것 없다;
탐욕과 성냄에 휘둘린 이들이 / 이 법을 쉬이 깨치지 못하리.
Rāgadosaparet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탐욕과 성냄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 법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흐름을 거스르는 미묘한 법, / 깊고 보기 어려운 섬세한 법을
‘Paṭisotagāmiṃ nipuṇaṃ, gambhīraṃ duddasaṃ aṇuṃ;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것을;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하리, / 어둠의 덩어리에 덮였으니.’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한다, 어둠 덩어리에 덮여서.’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이렇게 곰곰이 헤아리셨다. 그러자 그분의 마음은 애써 법을 설하는 쪽이 아니라 느긋하게 지내는 쪽으로 기울었다.
‘‘Itiha,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ṃ nami, no dhammadesanāya.
“비구들이여, 이렇게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성찰하시자, 마음은 애쓰지 않음으로 기울었고, 법을 설함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66
비구들이여, 그때 어떤 대범천이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의 마음속 생각을 자기 마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세상이 망하는구나. 아, 세상이 사라지는구나.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의 마음이 법을 설하는 쪽이 아니라 느긋하게 지내는 쪽으로 기울다니.’ 비구들이여, 그러자 대범천은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듯 순식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 앞에 나타났다.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었다. 세존이 계신 쪽으로 합장하여 절한 뒤에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아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Atha kho, bhikkhave, aññatarassa mahābrahmun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어떤 대범천이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마음속 생각을 자기 마음으로 알고서,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ṃ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아, 세상이 망한다. 아, 세상이 파멸한다.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마음이 애쓰지 않음으로 기울고 법을 설함으로는 기울지 않다니.’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evameva brahmaloke antarahit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purato pāturahosi.
그와 같이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dakkhiṇaṃ jāṇumaṇḍalaṃ pathaviyaṃ nihantvā yena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enañjaliṃ paṇāme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합장하여 인사드리고,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ṃ, desetu sugato dhammaṃ,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법을 설하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법을 설하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법을 듣지 못하여 그들은 쇠퇴합니다. 법을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67
비구들이여, 대범천이 이렇게 말하자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나에게도 이런 생각이 있었다. “차라리 법을 설하면 어떨까.” 범천이여, 내게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내가 얻은 이 법은 깊어서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고요하고 뛰어나다. 헤아림으로는 닿을 수 없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좋아하며, 집착에서 기쁨을 얻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이치가 보기 어렵다. 이것이 의지해 일어나는 연기라는 이치이다. 또 모든 형성이 가라앉고, 모든 집착의 바탕을 놓아 버리게 된다. 갈애가 다하고 욕망이 사라져 소멸하면 열반에 이른다. 이 이치 또한 보기 어렵다. 내가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로일 뿐이고 괴로움일 뿐이다.” 범천이여, 그때 내게도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게송들이 떠올랐다.[불확실]
‘‘Evaṃ vutte,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aṃ mahābrahmān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드리자,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그 대범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mayhampi kho, brahme, etadahosi –
‘범천이여, 내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dhammaṃ deseyya’’nti.
“나는 법을 설하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rahme, etadahosi –
범천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dhigato kho myāyaṃ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빼어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고, 미묘하여, 슬기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ṃ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한다.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ṃ idaṃ ṭhānaṃ yadidaṃ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리는 보기 어렵다 — 곧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함께 일어남이다.
Idam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이 도리도 보기 어렵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Ahañceva kho pana dhammaṃ deseyyaṃ, pare ca me na ājāneyyuṃ;
그런데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남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그것은 내게 피곤이 될 것이고, 그것은 내게 성가심이 될 것이다.”
Apissu maṃ, brahm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ṃsu pubbe assutapubbā –
범천이여, 그리고 또 내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이 게송들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애써 겨우 얻은 이 법을, / 이제 와 펼쳐 보여 무엇하리.
‘‘Kicchena me adhigataṃ, halaṃ dāni pakāsituṃ;
“애써 내가 얻었으니, 이제 굳이 밝힐 것 없다;
탐욕과 성냄에 휘둘린 이들이 / 이 법을 쉬이 깨치지 못하리.
Rāgadosaparet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탐욕과 성냄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 법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흐름을 거스르는 미묘한 법, / 깊고 보기 어려운 섬세한 법을
‘‘Paṭisotagāmiṃ nipuṇaṃ, gambhīraṃ duddasaṃ aṇuṃ;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것을;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하리, / 어둠의 덩어리에 덮였으니.’’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한다, 어둠 덩어리에 덮여서.”
범천이여, 이렇게 곰곰이 헤아리자 내 마음은 애써 법을 설하는 쪽이 아니라 느긋하게 지내는 쪽으로 기울었다.’
‘Itiha me, brahm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ṃ nami, no dhammadesanāyā’ti.
‘범천이여, 이렇게 성찰하는 내게 마음은 애쓰지 않음으로 기울었고, 법을 설함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68
비구들이여, 대범천은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복되신 분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아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Dutiyampi kho, bhikkhave, so mahābrahmā…pe… tatiyampi kho, bhikkhave, so mahābrahm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법을 설하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법을 설하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못하여 그들은 쇠퇴합니다. 법을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도,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그 대범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범천이여, 내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나는 법을 설하면 어떨까.” 범천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내가 얻은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빼어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고, 미묘하여, 슬기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한다.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리는 보기 어렵다 — 곧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함께 일어남이다. 이 도리도 보기 어렵다 — 곧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 바탕을 놓아버림, 갈애의 다함, 탐욕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다. 그런데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남들이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피곤이 될 것이고, 그것은 내게 성가심이 될 것이다.” 범천이여, 그리고 또 내게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놀랍지 않은 이 게송들이 떠올랐다 — “애써 내가 얻었으니, 이제 굳이 밝힐 것 없다; 탐욕과 성냄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 법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흐름을 거슬러 가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것을; 탐욕에 물든 이들은 보지 못한다, 어둠 덩어리에 덮여서.” 범천이여, 이렇게 성찰하는 내게 마음은 애쓰지 않음으로 기울었고, 법을 설함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세 번째로도,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66.5 ~ PN:dn14/67.16에서 되살렸습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ṃ, desetu sugato dhammaṃ,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법을 설하소서.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법을 설하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못하여 그들은 쇠퇴합니다. 법을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69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범천의 청을 알아차리셨다. 그리고 중생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피셨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살피시니 여러 중생이 보였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과 많이 낀 중생, 날카로운 능력을 가진 중생과 무딘 능력을 가진 중생이 있었다. 성품이 좋은 중생과 나쁜 중생, 가르치기 쉬운 중생과 어려운 중생도 있었다. 또 내세와 허물의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이들이 있었고, 그렇게 보지 못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 모두를 보셨다. 비유하자면 푸른 연꽃 못, 붉은 연꽃 못, 흰 연꽃 못에서 이런 일이 있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지만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물속에 잠긴 채 자란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과 같은 높이로 서 있다. 어떤 연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랐지만 물 위로 솟아올라 서 있어서, 물에 젖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똑같이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셨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과 많이 낀 중생, 날카로운 능력을 가진 중생과 무딘 능력을 가진 중생이 보였다. 성품이 좋은 중생과 나쁜 중생, 가르치기 쉬운 중생과 어려운 중생도 보였다. 또 내세와 허물의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이들이 있었고, 그렇게 보지 못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 모두를 보셨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rahmuno ca ajjhesanaṃ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ṃ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si.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범천의 청을 아시고, 또 중생들에 대한 연민을 연유하여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ddasā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과 티끌이 많은 중생들, 기능이 예리한 이들과 기능이 둔한 이들, 자질이 좋은 이들과 자질이 나쁜 이들, 가르치기 쉬운 이들과 가르치기 어려운 이들, 저세상과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며 사는 어떤 이들과, 저세상과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지 않고 사는 어떤 이들을 보셨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마치 푸른 연꽃 못이나 붉은 연꽃 못이나 흰 연꽃 못에서, 어떤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물속에 잠겨 자라고.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samodakaṃ ṭhitāni.
어떤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과 나란한 높이에 서 있고.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어떤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 물 위로 솟아올라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Evamev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nto addasa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바로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과 티끌이 많은 중생들, 기능이 예리한 이들과 기능이 둔한 이들, 자질이 좋은 이들과 자질이 나쁜 이들, 가르치기 쉬운 이들과 가르치기 어려운 이들, 저세상과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며 사는 어떤 이들과, 저세상과 허물에 대한 두려움을 보지 않고 사는 어떤 이들을 보셨다.
70
비구들이여, 그러자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의 마음속 생각을 자기 마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gāthāhi ajjhabhāsi –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마음속 생각을 자기 마음으로 알고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게송으로 아뢰었다 —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선 이가 / 사방의 사람들을 두루 굽어보듯이,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바위산 꼭대기에 선 이가 사방의 사람들을 두루 보듯이;
그처럼 슬기로운 분, 두루 보는 눈이시여, / 법으로 지은 누각에 오르시어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a,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그와 같이, 지혜로우신 분이시여, 법으로 된 누각에 오르시어, 두루 보는 눈을 지니신 분이시여.
근심을 여읜 분이시여, 근심에 빠진 사람들을,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슬픔을 여의신 분이시여,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이들을 굽어보소서.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ṃ;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일어나소서, 영웅이여, 싸움에 이기신 분이여,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일어서소서, 영웅이시여, 싸움에서 이기신 분이시여,
길잡이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을 거니소서.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무리를 이끄는 분이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을 다니소서.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Desassu bhagavā dhammaṃ,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알아들을 이들이 있으오리다.’
Aññātāro bhavissantī’ti.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71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그 대범천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aṃ mahābrahmānaṃ gāthāya ajjhabhā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그 대범천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노라.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내어놓으라.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귀 있는 이들은 믿음을 내라;
괴롭힐까 여겨 나는 말하지 않았노라, 몸에 밴 그 법을,
Vihiṃsasaññī paguṇaṃ na bhāsiṃ,
해침이 되리라는 생각에 나는 익숙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 가운데 빼어난 그 법을, 범천이여.’
Dhammaṃ paṇītaṃ manujesu brahme’ti.
사람들 가운데 빼어난 법을, 범천이여.’
비구들이여, 그러자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해 주시겠다는 허락을 내려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올린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katāvakāso khomhi vipassinā bhagav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hammadesanāyā’ti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 antaradhāyi.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나는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얻었다’ 하고,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으뜸가는 두 제자Aggasāvakayugaṃ
72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비구들이여, 그러다 세존께 다시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반두마띠 왕도에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가 있다. 두 사람은 총명하고 영리하며 지혜롭다. 오래전부터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사람들이다. 차라리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에게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그들이라면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나는 누구에게 먼저 법을 설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까?’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tadaho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yaṃ kho khaṇḍo c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paṭivasanti paṇḍitā viyattā medhāvino dīgharattaṃ apparajakkhajātikā.
‘이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은 반두마띠 왕도에 살고 있는데, 슬기롭고, 밝고, 총명하며, 오랫동안 눈에 티끌이 적은 이들이다.
Yaṃnūnāhaṃ khaṇḍassa ca rājaputtassa, tissassa ca purohitaputtassa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te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ntī’ti.
나는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에게 먼저 법을 설하면 어떨까. 그들은 이 법을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73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듯 순식간에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 사라지셨다. 그리고 반두마띠 왕도의 케마 사슴동산에 나타나셨다. 비구들이여, 세존께서는 동산지기를 부르셨다. ‘여보게 동산지기, 그대는 반두마띠 왕도로 들어가라.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에게 이렇게 전하라.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오시어 케마 사슴동산에 계십니다. 그분께서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동산지기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고는 반두마띠 왕도로 들어가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에게 말했다. ‘여러분,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오시어 케마 사슴동산에 계십니다. 그분께서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불확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evameva bodhirukkhamūle antarahit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kheme migadāye pāturahosi.
그와 같이 보리수 아래에서 사라져 반두마띠 왕도의 케마 녹야원에 나타나셨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dāyapālaṃ āmante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원림지기를 부르셨다[불확실]
불확실 —
‘ehi tvaṃ, samma dāyapāla,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pavisitvā khaṇḍañca rājaputtaṃ tissañca purohitaputtaṃ evaṃ vadehi –
‘오너라, 벗 원림지기여, 그대는 반두마띠 왕도에 들어가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
vipassī, bhant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anuppatto kheme migadāye viharati, so tumhākaṃ dassanakāmo’t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이르시어 케마 녹야원에 머무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뵙고자 하십니다.’
‘Evaṃ, bhante’ti kho, bhikkhave, dāyapāl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paṭissutvā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pavisitvā khaṇḍañca rājaputtaṃ tissañca purohitaputtaṃ etadavoca –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여, 원림지기는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대답하고, 반두마띠 왕도에 들어가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vipassī, bhante,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anuppatto kheme migadāye viharat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이르시어 케마 녹야원에 머무십니다;
so tumhākaṃ dassanakāmo’ti.
그분께서 여러분을 뵙고자 하십니다.’
74
비구들이여, 그러자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는 좋은 수레들을 채비하게 했다. 두 사람은 저마다 좋은 수레에 올라 반두마띠 왕도를 나섰다. 그들은 케마 사슴동산으로 향했다.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수레로 가서 내린 다음, 걸어서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Atha kho, bhikkhave, khaṇḍo c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niyyiṃsu.
“그때, 비구들이여,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은 좋은 수레들을 매게 하고, 좋은 수레에 올라, 좋은 수레들로 반두마띠 왕도에서 나갔다.
Yena khemo migadāyo tena pāyiṃsu.
케마 녹야원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enupasaṅkamiṃsu.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로 가서,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75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먼저 베풂의 이야기, 계율의 이야기,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하셨다. 또 욕망의 허물과 하찮음과 오염을 밝히고, 욕망을 벗어남의 이로움도 밝히셨다. 이윽고 세존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셨다. 그들의 마음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장애에서 벗어나 고양되고 맑아져 있었다. 그러자 붓다들께서 으뜸으로 설하시는 가르침을 밝히셨다. 곧 괴로움과 그 쌓임, 소멸, 그리고 길이다. 때 없는 깨끗한 천이 물감을 잘 받아들이듯, 바로 그 자리에서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열렸다. ‘일어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소멸하는 성질이 있다.’
‘‘Tes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anupubbiṃ kathaṃ kathesi, seyyathidaṃ –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르는 말씀을 하셨다, 곧 —
dānakathaṃ sīlakathaṃ saggakathaṃ kām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ekkhamme ānisaṃsaṃ pakāsesi.
보시에 관한 말씀, 계에 관한 말씀, 천상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감각적 욕망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 출리의 이로움을 밝히셨다.
Yadā te bhagavā aññāsi kallacitte muducitte vinīvaraṇacitte udaggacitte pasannacitte, atha yā buddhānaṃ sāmukkaṃsikā dhammadesanā, taṃ pakāsesi –
세존께서 그들이 마음이 준비되고, 마음이 부드럽고, 마음이 장애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드높아지고, 마음이 깨끗해진 것을 아셨을 때, 그때 부처님들의 드높은 법문, 그것을 밝히셨다 —
dukkhaṃ samudayaṃ nirodhaṃ maggaṃ.
괴로움, 일어남, 소멸, 길을.
Seyyathāpi nāma suddhaṃ vatthaṃ apagatakāḷakaṃ sammadeva rajanaṃ paṭiggaṇheyya, evameva khaṇḍassa ca rājaputtassa tissassa ca purohitaputtassa tasmiṃyeva āsane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 –
마치 얼룩이 지워진 깨끗한 천이 물감을 제대로 받아들이듯이, 바로 그와 같이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겼다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다 사라지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76
그들은 법을 보았고, 법에 이르렀고, 법을 알았고, 법에 깊이 들어갔다. 의심을 건너 망설임이 사라졌다. 자신감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에 남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덮인 것을 열어 보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리라” 하며 기름등을 들어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도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세존 곁에서 출가할 수 있기를, 구족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불확실]
‘‘Te diṭṭhadhammā pattadhammā viditadhammā pariyogāḷhadhamm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ṃ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uṃ –
“그들은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알았고, 법에 깊이 들어갔으며,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이 사라졌고, 두려움 없음에 이르렀으며,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게 되어,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이 형색들을 보리라” 하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te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에도 귀의합니다.
Labheyyāma may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āma upasampada’nti.
세존이시여, 저희가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77
비구들이여,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는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자 곁에서 출가하였고 구족계도 받았다. 세존께서는 법에 맞는 이야기로 그들을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셨다. 형성된 것들의 허물과 하찮음과 오염을, 또 열반의 이로움을 밝히셨다. 이렇게 가르쳐 보이고 북돋우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시자, 그들의 마음은 오래지 않아 집착 없이 번뇌에서 벗어났다.
‘‘Alatthuṃ kho, bhikkhave, khaṇḍo c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ntike pabbajjaṃ alatthuṃ upasampadaṃ.
“비구들이여, 칸다 왕자와 띳사 제관의 아들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T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법에 맞는 말씀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셨다;
saṅkhār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ibbāne ānisaṃsaṃ pakāsesi.
형성작용들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 열반의 이로움을 밝히셨다.
Tesaṃ vipassinā bhagav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hammiyā kathāya sandassiyamānānaṃ samādapiyamānānaṃ samuttejiyamānānaṃ sampahaṃsiyamānānaṃ na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ṃsu.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법에 맞는 말씀으로 가르쳐 보이시고 격려하시고 북돋우시고 기쁘게 하시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오래지 않아 취착하지 않고 번뇌들에서 해탈했다.
큰 무리의 출가Mahājanakāyapabbajjā
78
비구들이여, 반두마띠 왕도의 많은 사람들, 팔만 사천 명이 이런 소문을 들었다.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오셨다는 것이었다. 케마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신다고도 했다. 또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가 위빳시 세존 곁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친 채 집을 떠나 출가했다고 했다.
‘‘Assosi kho, bhikkhave,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mahājanakāyo caturāsītipāṇasahassāni –
“비구들이여, 반두마띠 왕도의 큰 무리, 팔만사천 생명이 들었다 —
‘vipassī kira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anuppatto kheme migadāye viharat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이르러 케마 녹야원에 머무신다.
Khaṇḍo ca kir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ntike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ti.
그리고 왕자 칸다와 궁중 제관의 아들 띳사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곁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법과 율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 출가도 하찮은 것이 아니다. 왕자 칸다와 사제의 아들 띳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집을 떠나 출가하지 않았는가. 그 두 사람도 출가했는데, 하물며 우리야 말해 무엇하랴."
Sutvāna nesaṃ etadahosi –
듣고서 그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hi nūna so orako dhammavinayo, na sā orakā pabbajjā, yattha khaṇḍo c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참으로 그 법과 율은 하찮은 것이 아니고, 그 출가도 하찮은 것이 아니다. 거기서 왕자 칸다와 궁중 제관의 아들 띳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Khaṇḍo ca rājaputto tisso ca purohitaputto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ssanti, kimaṅgaṃ pana maya’nti.
왕자 칸다와 궁중 제관의 아들 띳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할 것인데, 하물며 우리야 어떻겠는가.’
그리하여 비구들이여, 반두마띠 왕도의 팔만 사천 명이 왕도를 나섰다. 그들은 케마 사슴동산의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 찾아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janakāyo caturāsītipāṇasahassāni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nikkhamitvā yena khemo migadāyo yena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비구들이여, 그 큰 무리, 팔만사천 생명은 반두마띠 왕도에서 나와 케마 녹야원으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79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라 가르침을 펴셨다. 먼저 베풂의 이야기, 계행의 이야기,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어 욕망의 어두운 면과 하찮음과 더러움을 밝히시고, 욕망을 떠나는 일의 이로움도 밝혀 주셨다. 그들의 마음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막힘이 없어지고 들떠 올라 맑아졌다고 아시자, 세존께서는 깨달은 분들만이 펼치시는 으뜸가는 가르침을 밝히셨다. 괴로움,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사라짐, 그리고 그리로 이끄는 길이었다. 때 없는 깨끗한 천이 물감을 잘 받아들이듯, 바로 그 자리에서 팔만 사천 명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열렸다. 일어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사라지는 성질이 있다는 눈이었다.
‘‘Tes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anupubbiṃ kathaṃ kathes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르는 말씀을 하셨다.
Seyyathidaṃ –
곧 이러하다 —
dānakathaṃ sīlakathaṃ saggakathaṃ kām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ekkhamme ānisaṃsaṃ pakāsesi.
보시에 관한 이야기, 계에 관한 이야기, 천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고,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을, 출리의 이익을 드러내셨다.
Yadā te bhagavā aññāsi kallacitte muducitte vinīvaraṇacitte udaggacitte pasannacitte, atha yā buddhānaṃ sāmukkaṃsikā dhammadesanā, taṃ pakāsesi –
세존께서 그들의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부드럽고, 장애가 걷히고, 드높고, 맑아진 것을 아셨을 때, 그때 붓다들의 드높은 법문, 그것을 드러내셨다 —
dukkhaṃ samudayaṃ nirodhaṃ maggaṃ.
괴로움과 일어남과 소멸과 길을.
Seyyathāpi nāma suddhaṃ vatthaṃ apagatakāḷakaṃ sammadeva rajanaṃ paṭiggaṇheyya, evameva tesaṃ caturāsītipāṇasahassānaṃ tasmiṃyeva āsane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 –
마치 얼룩이 지워진 깨끗한 천이 물감을 고루 잘 받아들이듯, 바로 그와 같이 그 팔만사천 생명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먼지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났다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다 사라지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80
그들은 법을 보았고, 법에 이르렀고, 법을 알았고, 법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을 떠났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 안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일러 주듯, 눈 있는 이들이 보라고 어둠 속에 기름등을 들어 주듯, 세존께서는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세존 곁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바랍니다."[불확실]
‘‘Te diṭṭhadhammā pattadhammā viditadhammā pariyogāḷhadhamm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ṃ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uṃ –
“그들은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에 깊이 들어가, 의심을 건너고 의혹이 사라지고 두려움 없음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게 되어,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바로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드러내셨습니다.
Ete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Labheyyāma may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āma upasampada’’nti.
세존이시여,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81
비구들이여, 그 팔만 사천 명은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도 받았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문으로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지어진 것들의 어두운 면과 하찮음과 더러움을 밝히시고, 열반의 이로움도 밝혀 주셨다. 이렇게 법문을 듣고 나자, 오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은 달라붙음 없이 번뇌에서 풀려났다.
‘‘Alatthuṃ kho, bhikkhave, tāni caturāsītipāṇasahassāni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ntike pabbajjaṃ, alatthuṃ upasampadaṃ.
“비구들이여, 그 팔만사천 생명은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T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법다운 말씀으로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saṅkhār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ibbāne ānisaṃsaṃ pakāsesi.
형성된 것들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을, 열반의 이익을 드러내셨다.
Tesaṃ vipassinā bhagav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hammiyā kathāya sandassiyamānānaṃ samādapiyamānānaṃ samuttejiyamānānaṃ sampahaṃsiyamānānaṃ na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ṃsu.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는 동안, 오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은 취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먼저 출가한 이들의 법 꿰뚫음Purimapabbajitānaṃ dhammābhisamayo
82
비구들이여, 먼저 출가했던 팔만 사천 명의 출가자들도 이런 소문을 들었다.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오셨다는 것이었다. 케마 사슴동산에 머물며 법을 설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그 출가자들은 케마 사슴동산의 위빳시 세존께 찾아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Assosuṃ kho, bhikkhave, tāni purimāni caturāsītipabbajitasahassāni –
“비구들이여, 먼저 출가한 그 팔만사천 출가자가 들었다 —
‘vipassī kira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anuppatto kheme migadāye viharati, dhammañca kira desetī’t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반두마띠 왕도에 이르러 케마 녹야원에 머무시며, 법을 설하신다.’
Atha kho, bhikkhave, tāni caturāsītipabbajitasahassāni 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yena khemo migadāyo yena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enupasaṅkamiṃsu;
그때, 비구들이여, 그 팔만사천 출가자는 반두마띠 왕도로, 케마 녹야원으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83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라 가르침을 펴셨다. 먼저 베풂의 이야기, 계행의 이야기,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어 욕망의 어두운 면과 하찮음과 더러움을 밝히시고, 욕망을 떠나는 일의 이로움도 밝혀 주셨다. 그들의 마음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막힘이 없어지고 들떠 올라 맑아졌다고 아시자, 세존께서는 깨달은 분들만이 펼치시는 으뜸가는 가르침을 밝히셨다. 괴로움,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사라짐, 그리고 그리로 이끄는 길이었다. 때 없는 깨끗한 천이 물감을 잘 받아들이듯, 바로 그 자리에서 팔만 사천 명의 출가자들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열렸다. 일어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사라지는 성질이 있다는 눈이었다.
‘‘Tes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anupubbiṃ kathaṃ kathes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차례를 따르는 말씀을 하셨다.
Seyyathidaṃ –
곧 이러하다 —
dānakathaṃ sīlakathaṃ saggakathaṃ kām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ekkhamme ānisaṃsaṃ pakāsesi.
보시에 관한 이야기, 계에 관한 이야기, 천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고,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을, 출리의 이익을 드러내셨다.
Yadā te bhagavā aññāsi kallacitte muducitte vinīvaraṇacitte udaggacitte pasannacitte, atha yā buddhānaṃ sāmukkaṃsikā dhammadesanā, taṃ pakāsesi –
세존께서 그들의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부드럽고, 장애가 걷히고, 드높고, 맑아진 것을 아셨을 때, 그때 붓다들의 드높은 법문, 그것을 드러내셨다 —
dukkhaṃ samudayaṃ nirodhaṃ maggaṃ.
괴로움과 일어남과 소멸과 길을.
Seyyathāpi nāma suddhaṃ vatthaṃ apagatakāḷakaṃ sammadeva rajanaṃ paṭiggaṇheyya, evameva tesaṃ caturāsītipabbajitasahassānaṃ tasmiṃyeva āsane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 –
마치 얼룩이 지워진 깨끗한 천이 물감을 고루 잘 받아들이듯, 바로 그와 같이 그 팔만사천 출가자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먼지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났다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다 사라지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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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법을 보았고, 법에 이르렀고, 법을 알았고, 법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을 떠났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 안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일러 주듯, 눈 있는 이들이 보라고 어둠 속에 기름등을 들어 주듯, 세존께서는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세존 곁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바랍니다."[불확실]
‘‘Te diṭṭhadhammā pattadhammā viditadhammā pariyogāḷhadhamm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ṃ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uṃ –
“그들은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에 깊이 들어가, 의심을 건너고 의혹이 사라지고 두려움 없음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게 되어,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바로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드러내셨습니다.
Ete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Labheyyāma may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āma upasampada’’nti.
세존이시여, 세존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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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 팔만 사천 명의 출가자들은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 곁에서 출가하고 구족계도 받았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문으로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격려하시고, 기쁘게 해 주셨다. 지어진 것들의 어두운 면과 하찮음과 더러움을 밝히시고, 열반의 이로움도 밝혀 주셨다. 이렇게 법문을 듣고 나자, 오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은 달라붙음 없이 번뇌에서 풀려났다.
‘‘Alatthuṃ kho, bhikkhave, tāni caturāsītipabbajitasahassāni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antike pabbajjaṃ alatthuṃ upasampadaṃ.
“비구들이여, 그 팔만사천 출가자는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곁에서 출가를 얻었고 구족계를 얻었다.
T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법다운 말씀으로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saṅkhār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ibbāne ānisaṃsaṃ pakāsesi.
형성된 것들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을, 열반의 이익을 드러내셨다.
Tesaṃ vipassinā bhagav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hammiyā kathāya sandassiyamānānaṃ samādapiyamānānaṃ samuttejiyamānānaṃ sampahaṃsiyamānānaṃ na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ṃsu.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법다운 말씀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북돋우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는 동안, 오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은 취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유행을 허락함Cārikāanujānanaṃ
86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띠 왕도에는 육백팔십만 명의 큰 비구 승가가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 홀로 한적한 곳에 고요히 앉아 계시다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육백팔십만 명이나 되는 큰 비구 승가가 머물고 있다. 이제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해 주면 어떨까."
‘‘Tena kho pana, bhikkhave, samayena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mahābhikkhusaṅgho paṭivasat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비구들이여, 그때 반두마띠 왕도에는 큰 비구 승가가, 육백팔십만 비구가 머물고 있었다.
Atha kho, bhikkhave,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홀로 한적한 곳에 가 앉아 계실 때 이런 마음의 생각이 일어났다 —
‘mahā kho etarahi bhikkhusaṅgh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paṭivasat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yaṃnūnāhaṃ bhikkhū anujāneyyaṃ –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큰 비구 승가가, 육백팔십만 비구가 머물고 있다. 내가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하면 어떨까 —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 두루 다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고, 하늘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여 청정한 수행을 널리 알려라.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뜻과 표현을 갖추었고, 온전히 완전하고 깨끗하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다.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다. 법을 이해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다만 육 년마다 한 번씩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와야 한다."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
mā ekena dve agamittha;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desetha, bhikkhave, dhammaṃ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ha.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해 쇠퇴한다. 법을 아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Api ca channaṃ ch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upasaṅkamitabbā pātimokkhuddesāyā’’’ti.
다만 여섯 해가 지날 때마다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와야 한다.’
87
그러자 비구들이여, 어떤 대범천이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의 마음속 생각을 알아차렸다.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거나 폈던 팔을 굽히는 것처럼 순식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세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여 인사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bhikkhave, aññataro mahābrahmā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그때, 비구들이여, 어떤 대범천이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마음속 생각을 마음으로 알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Evameva brahmaloke antarahito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purato pāturahosi.
바로 그와 같이 범천 세계에서 사라져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yena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tenañjaliṃ paṇāme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합장하고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이렇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하게 가신 분이시여. 세존이시여,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육백팔십만 명이나 되는 큰 비구 승가가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해 주십시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 두루 다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고, 하늘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여 청정한 수행을 널리 알려라.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뜻과 표현을 갖추었고, 온전히 완전하고 깨끗하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이해하는 이들도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가 비구들이 육 년마다 한 번씩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Mahā kho, bhante, etarahi bhikkhusaṅgh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paṭivasat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anujānātu, bhante, bhagavā bhikkhū –
세존이시여,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큰 비구 승가가, 육백팔십만 비구가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허락하소서 —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
mā ekena dve agamittha;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desetha, bhikkhave, dhammaṃ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ha.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해 쇠퇴한다. 법을 아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Api ca, bhante, mayaṃ tathā karissāma yathā bhikkhū channaṃ ch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upasaṅkamissanti pātimokkhuddesāyā’ti.
다만 세존이시여, 저희는 비구들이 여섯 해가 지날 때마다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오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Idamavoca, bhikkhave, so mahābrahmā, idaṃ vatvā vipassi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 antaradhāyi.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88
그러자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저녁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홀로 한적한 곳에 고요히 앉아 있는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육백팔십만 명이나 되는 큰 비구 승가가 머물고 있다. 이제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해 주면 어떨까."
‘‘Atha kho,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bhikkhū āmantesi –
“그때, 비구들이여,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저녁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비구들을 부르셨다 —
‘idha mayhaṃ, bhikkhave,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비구들이여, 여기 홀로 한적한 곳에 가 앉아 있는 나에게 이런 마음의 생각이 일어났다 —
mahā kho etarahi bhikkhusaṅgh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paṭivasat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큰 비구 승가가, 육백팔십만 비구가 머물고 있다.
Yaṃnūnāhaṃ bhikkhū anujāneyyaṃ –
내가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하면 어떨까 —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 두루 다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고, 하늘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여 청정한 수행을 널리 알려라.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뜻과 표현을 갖추었고, 온전히 완전하고 깨끗하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다.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다. 법을 이해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다만 육 년마다 한 번씩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와야 한다."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
mā ekena dve agamittha;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desetha, bhikkhave, dhammaṃ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ha.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해 쇠퇴한다. 법을 아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Api ca, channaṃ ch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upasaṅkamitabbā pātimokkhuddesāyāti.
다만 여섯 해가 지날 때마다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와야 한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어떤 대범천이 내 마음속 생각을 알아차렸다.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거나 폈던 팔을 굽히는 것처럼 순식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내가 있는 쪽을 향해 합장하여 인사드렸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bhikkhave, aññataro mahābrahmā mam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 brahmaloke antarahito mama purato pāturahosi.
‘그때, 비구들이여, 어떤 대범천이 내 마음속 생각을 마음으로 알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바로 그와 같이 범천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 yenāhaṃ tenañjaliṃ paṇāmetvā maṃ etadavoca –
그때,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나에게 합장하고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하게 가신 분이시여. 세존이시여,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육백팔십만 명이나 되는 큰 비구 승가가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에게 이렇게 허락해 주십시오."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Mahā kho, bhante, etarahi bhikkhusaṅgho bandhumatiyā rājadhāniyā paṭivasat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세존이시여, 지금 반두마띠 왕도에는 큰 비구 승가가, 육백팔십만 비구가 머물고 있습니다.
Anujānātu, bhante, bhagavā bhikkhū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허락하소서 —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 두루 다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고, 하늘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라. 이하는 앞과 같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이해하는 이들도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가 비구들이 육 년마다 한 번씩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
mā ekena dve agamittha;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desetha, bhikkhave, dhammaṃ…pe…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해 쇠퇴한다. 법을 아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86.6에서 되살렸습니다.
Api ca, bhante, mayaṃ tathā karissāma, yathā bhikkhū channaṃ ch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upasaṅkamissanti pātimokkhuddesāyā’’ti.
다만 세존이시여, 저희는 비구들이 여섯 해가 지날 때마다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오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이렇게 말하고는 내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한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Idamavoca, bhikkhave, so mahābrahmā, idaṃ vatvā m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tattheva antaradhāyi’.
비구들이여, 그 대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에게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돈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나는 허락한다. 길을 떠나 두루 다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세상을 가엾이 여기고, 하늘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여 청정한 수행을 널리 알려라.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뜻과 표현을 갖추었고, 온전히 완전하고 깨끗하다.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다.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다. 법을 이해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다만 비구들이여, 육 년마다 한 번씩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와야 한다.
‘‘‘Anujānāmi, bhikkhave, caratha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나는 허락한다.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익과 이로움과 행복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
mā ekena dve agamittha;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desetha, bhikkhave, dhammaṃ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ha.
비구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해 쇠퇴한다. 법을 아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Api ca, bhikkhave, channaṃ ch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upasaṅkamitabbā pātimokkhuddesāyā’ti.
다만 비구들이여, 여섯 해가 지날 때마다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와야 한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대부분의 비구들이 하루 만에 지방으로 길을 떠났다.
Atha kho, bhikkhave, bhikkhū yebhuyyena ekāheneva janapadacārikaṃ pakkamiṃsu.
그때,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대부분 하루 만에 지방 유행을 떠났다.
89
그때 잠부디빠에는 팔만 사천 곳의 거처가 있었다. 한 해가 지나자 신들이 소리 내어 알렸다. "여러분, 한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다섯 해가 남았습니다. 다섯 해가 지나면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가야 합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jambudīpe caturāsīti āvāsasahassāni honti.
“그때 잠부디빠에는 팔만사천 거처가 있었다.
Ekamhi hi vasse nikkhante devatā saddamanussāvesuṃ –
한 해가 지나자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
‘nikkhantaṃ kho, mārisā, ekaṃ vassaṃ;
‘어르신들이시여, 한 해가 지났습니다;
pañca dāni vassāni sesāni;
이제 다섯 해가 남았습니다;
pañcannaṃ vassānaṃ acca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upasaṅkamitabbā pātimokkhuddesāyā’ti.
다섯 해가 지나면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가야 합니다.’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나고, 네 해가 지나고, 다섯 해가 지났을 때에도 신들은 그렇게 소리 내어 알렸다. "여러분, 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한 해가 남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가야 합니다."
Dvīsu vassesu nikkhantesu… tīsu vassesu nikkhantesu… catūsu vassesu nikkhantesu… pañcasu vassesu nikkhantesu devatā saddamanussāvesuṃ –
두 해가 지났을 때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세 해가 지났을 때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네 해가 지났을 때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다섯 해가 지났을 때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89.6에서 되살렸습니다.
‘nikkhantāni kho, mārisā, pañcavassāni;
‘어르신들이시여, 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ekaṃ dāni vassaṃ sesaṃ;
이제 한 해가 남았습니다;
ekassa vassassa accayena bandhumatī rājadhānī upasaṅkamitabbā pātimokkhuddesāyā’ti.
한 해가 지나면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가야 합니다.’
여섯 해가 지났을 때에도 신들은 소리 내어 알렸다. "여러분, 여섯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계율 외우기를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찾아갈 때입니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통력으로, 어떤 이들은 신들의 신통력으로 하루 만에 반두마띠 왕도에 찾아갔다. 그리고 계율 외우기에 참여했다.
Chasu vassesu nikkhantesu devatā saddamanussāvesuṃ –
여섯 해가 지나자 신들이 소리를 높여 알렸다 —
‘nikkhantāni kho, mārisā, chabbassāni, samayo dāni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upasaṅkamituṃ pātimokkhuddesāyā’ti.
‘어르신들이시여, 여섯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갈 때입니다.’
Atha kho te, bhikkhave, bhikkhū appekacce sakena iddhānubhāvena appekacce devatānaṃ iddhānubhāvena ekāheneva bandhumatiṃ rājadhāniṃ upasaṅkamiṃsu pātimokkhuddesāyāti.
그때,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어떤 이들은 자기의 신통력으로, 어떤 이들은 신들의 신통력으로 하루 만에 계목 송출을 위해 반두마띠 왕도로 갔다.
90
비구들이여, 그곳에서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비구 승가에게 이렇게 계율을 외워 주셨다.
‘‘Tatra sudaṃ, bhikkhave,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bhikkhusaṅghe evaṃ pātimokkhaṃ uddisa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위빳시 세존·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비구 승가에서 이렇게 계목을 읊으셨다 —
‘참고 견디는 인내야말로 으뜸가는 고행이요,
‘Khantī paramaṃ tapo titikkhā,
‘참음, 곧 견딤이 으뜸가는 고행이다,
열반이 으뜸이라고 깨달은 분들은 말하나니,
Nibbānaṃ paramaṃ vadanti buddhā;
붓다들은 열반을 으뜸이라 말한다;
남을 해치는 이는 출가한 이가 아니고,
Na hi pabbajito parūpaghātī,
남을 해치는 이는 출가자가 아니며,
남을 괴롭히는 이는 사문이 아니다.
Na samaṇo hoti paraṃ viheṭhayanto.
남을 괴롭히는 이는 사문이 아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유익한 것을 갖추어,
‘Sabbapāpassa akaraṇaṃ, kusalassa upasampadā;
‘모든 악을 짓지 않음, 유익함을 갖춤;
제 마음을 맑게 하라, 이것이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이다.
Sacittapariyodapanaṃ, etaṃ buddhānasāsanaṃ.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함, 이것이 붓다들의 가르침이다.
‘헐뜯지 말고 해치지 말며, 계목의 단속을 지키고,
‘Anūpavādo anūpaghāto, pātimokkhe ca saṃvaro;
‘비난하지 않음, 해치지 않음, 계목에서의 단속;
먹는 데 알맞음을 알며, 외진 거처에 머물고,
Mattaññutā ca bhattasmiṃ, pantañca sayanāsanaṃ;
먹는 데 양을 앎, 외딴 처소;
높은 마음에 힘쓰라, 이것이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이다.’
Adhicitte ca āyogo, etaṃ buddhānasāsana’nti.
높은 마음에 힘씀, 이것이 붓다들의 가르침이다.’
신들의 알림Devatārocanaṃ
91
비구들이여, 한때 나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에 있는 큰 살라 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홀로 한적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있던 때였다. 그때 마음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불확실]
‘‘Ekamidāhaṃ, bhikkhave, samayaṃ ukkaṭṭhāyaṃ viharāmi subhagavane sālarājamūle.
“비구들이여, 한때 나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 살라나무 왕의 뿌리 밑에 머물렀다.
Tassa mayhaṃ, bhikkhave,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비구들이여, 홀로 물러나 한적히 머물던 그런 내게 이런 마음의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정거천의 신들을 빼면, 내가 한 번도 태어나 살아 보지 않은 중생의 처소는 찾기 어렵다. 이 긴 세월 동안 그랬다. 그러니 이제 정거천의 신들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na kho so sattāvāso sulabharūpo, yo mayā anāvutthapubbo iminā dīghena addhunā aññatra suddhāvāsehi devehi.
‘정거천 신들 말고는,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전에 살아 본 적 없는 그런 중생의 거처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Yaṃnūnāhaṃ yena suddhāvāsā devā tenupasaṅkameyya’nti.
나는 정거천 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면 어떨까.’
비구들이여, 힘센 사내가 굽혔던 팔을 펴거나 폈던 팔을 굽히듯, 눈 깜짝할 사이였다. 나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 살라 나무 아래에서 사라져, 아위하천의 신들 사이에 나타났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 ukkaṭṭhāyaṃ subhagavane sālarājamūle antarahito avihesu devesu pāturahosiṃ.
그러자 비구들이여,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꼭 그처럼 나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 살라나무 왕의 뿌리 밑에서 사라져 아위하 신들 가운데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 수십만의 신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가까이 와서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asmiṃ, bhikkhave, devanikāye anekāni devatāsahassāni anekāni devatāsatasahassāni yenāhaṃ tenupasaṅkamiṃsu;
비구들이여,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의 신들이, 수십만의 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다가와서 내게 절하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bhikkhave, tā devat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한쪽에 선 그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존자시여,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그분은 태생이 끄샤뜨리야로,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나셨습니다. 성은 꼰단냐였고, 수명은 8만 년이었습니다.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불확실]
‘ito so, mārisā, ekanavutikappe y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어르신이시여, 지금으로부터 아흔한 번째 겁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khattiyakule udapād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왕족이셨고, 왕족 가문에 나셨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성씨로는 꼰단냐셨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ī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팔만 년이었습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pāṭaliyā mūle abhisambuddho.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빠딸리 나무 뿌리 밑에서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위빳시 세존께는 칸다와 띠사라는 한 쌍의 상수 제자가 있었습니다.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큰 모임은 세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비구 680만 명이 모였고, 또 한 번은 10만 명이, 또 한 번은 8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 세 번의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분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aṇḍatiss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칸다와 띳사라는 상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한 제자들의 모임은 육백팔십만 비구였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ṃ.
한 제자들의 모임은 십만 비구였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습니다.
시자는 아소까라는 비구였습니다.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세존의 아버지는 반두마라는 왕이었고, 어머니는 반두마띠라는 왕비로 세존을 낳으신 분이었습니다. 반두마 왕의 수도는 반두마띠라는 도시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집을 떠나 출가하셨고, 이렇게 정진하셨습니다. 이렇게 깨달으셨고, 이렇게 법의 바퀴를 굴리셨습니다. 존자시여, 우리는 위빳시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심을 떠나 이곳에 태어났습니다.” 이하 생략.[불확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ok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소까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andhumā nāma rājā pitā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반두마라는 왕이 아버지셨습니다.
Bandhum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반두마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Bandhumassa rañño bandhum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반두마 왕에게는 반두마띠라는 성이 왕도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vaṃ abhinikkhamanaṃ ahosi evaṃ pabbajjā evaṃ padhānaṃ evaṃ abhisambodhi evaṃ dhammacakkappavattan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집을 떠나심이 이러했고, 출가가 이러했고, 정진이 이러했고, 온전한 깨달음이 이러했고, 법의 바퀴를 굴리심이 이러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mayaṃ, mārisā, vipassimhi bhagavati brahmacariyaṃ caritvā kāmesu kāmacchandaṃ virājetvā idhūpapannā’ti …pe…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위빳시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같은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 수십만의 신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가까이 와서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asmiṃyeva kho, bhikkhave, devanikāye anekāni devatāsahassāni anekāni devatāsatasahassāni yenāhaṃ tenupasaṅkamiṃsu;
“비구들이여, 바로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의 신들이, 수십만의 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다가와서 내게 절하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bhikkhave, tā devat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한쪽에 선 그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존자시여, 바로 이 현겁에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지금 세상에 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태생이 끄샤뜨리야로,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나셨습니다. 성은 고따마이십니다. 세존의 수명은 짧아서 얼마 되지 않고 덧없이 빠릅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라야 백 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삽니다. 세존께서는 앗왓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imasmiṃyeva kho, mārisā, bhaddakappe bhagavā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ppanno.
‘어르신이시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세존께서 지금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으로 세상에 나셨습니다.
Bhagavā, mārisā, khattiyo jātiyā khattiyakule uppanno.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태생으로 왕족이시고, 왕족 가문에 나셨습니다.
Bhagavā, mārisā, gotamo gottena.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성씨로는 고따마이십니다.
Bhagavato, mārisā, appakaṃ āyuppamāṇaṃ parittaṃ lahukaṃ yo ciraṃ jīvati, so vassasataṃ appaṃ vā bhiyyo.
어르신이시여, 세존의 수명의 한도는 적고 짧고 가볍습니다. 오래 사는 이라도 백 년, 혹은 그보다 조금 더입니다.
Bhagavā, mārisā, assatthassa mūle abhisambuddho.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앗삿타 나무 뿌리 밑에서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세존께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한 쌍의 상수 제자가 있었습니다.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큰 모임은 한 번 있었는데, 비구 1,250명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분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시자는 아난다라는 비구였습니다.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세존의 아버지는 숫도다나라는 왕이었고, 어머니는 마야라는 왕비로 세존을 낳으신 분이었습니다. 수도는 까삘라왓투라는 도시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집을 떠나 출가하셨고, 이렇게 정진하셨습니다. 이렇게 깨달으셨고, 이렇게 법의 바퀴를 굴리셨습니다. 존자시여, 우리는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심을 떠나 이곳에 태어났습니다.”
Bhagavato, mārisā, sāriputtamoggallān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상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Bhagavato, mārisā,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ḍḍhateḷasāni bhikkhusatāni.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천이백오십 비구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습니다.
Bhagavato, mārisā, ānand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아난다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suddhodano nāma rājā pitā ahosi.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숫도다나라는 왕이 아버지셨습니다.
Māyā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마야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Kapilavatthu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까삘라왓투라는 성이 왕도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evaṃ abhinikkhamanaṃ ahosi evaṃ pabbajjā evaṃ padhānaṃ evaṃ abhisambodhi evaṃ dhammacakkappavattan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의 집을 떠나심이 이러했고, 출가가 이러했고, 정진이 이러했고, 온전한 깨달음이 이러했고, 법의 바퀴를 굴리심이 이러했습니다.
Te mayaṃ, mārisā, bhagavati brahmacariyaṃ caritvā kāmesu kāmacchandaṃ virājetvā idhūpapannā’ti.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92
비구들이여, 그다음 나는 아위하천의 신들과 함께 아따빠천의 신들에게 갔다. 이하 생략. 다시 나는 아위하천과 아따빠천의 신들과 함께 수닷사천의 신들에게 갔다. 이어 아위하천, 아따빠천, 수닷사천의 신들과 함께 수닷시천의 신들에게 갔다. 마지막으로 이 네 하늘의 신들, 곧 아위하천, 아따빠천, 수닷사천, 수닷시천의 신들과 함께 아까니타천의 신들에게 갔다.[불확실]
‘‘Atha khvāhaṃ, bhikkhave, avihehi devehi saddhiṃ yena atappā devā tenupasaṅkamiṃ…pe… atha khvāhaṃ, bhikkhave, avihehi ca devehi atappehi ca devehi saddhiṃ yena sudassā devā tenupasaṅkamiṃ.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아위하 신들과 함께 아땁빠 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아위하 신들과 아땁빠 신들과 함께 수닷사 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avihehi ca devehi atappehi ca devehi sudassehi ca devehi saddhiṃ yena sudassī devā tenupasaṅkamiṃ.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아위하 신들과 아땁빠 신들과 수닷사 신들과 함께 수닷시 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Atha khvāhaṃ, bhikkhave, avihehi ca devehi atappehi ca devehi sudassehi ca devehi sudassīhi ca devehi saddhiṃ yena akaniṭṭhā devā tenupasaṅkamiṃ.
그러자 비구들이여, 나는 아위하 신들과 아땁빠 신들과 수닷사 신들과 수닷시 신들과 함께 아까닛타 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비구들이여,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 수십만의 신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asmiṃ, bhikkhave, devanikāye anekāni devatāsahassāni anekāni devatāsatasahassāni yenāhaṃ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비구들이여,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의 신들이, 수십만의 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다가와서 내게 절하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bhikkhave, tā devat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한쪽에 선 그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존자시여,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그분은 태생이 끄샤뜨리야였고,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나셨습니다. 성은 꼰단냐였고, 수명은 8만 년이었습니다. 빠딸리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ito so, mārisā, ekanavutikappe yaṃ vipassī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어르신이시여, 지금으로부터 아흔한 번째 겁에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hattiyo jātiyā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태생으로 왕족이셨습니다.
Khattiyakule udapādi.
왕족 가문에 나셨습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koṇḍañño gottena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성씨로는 꼰단냐셨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ītivassasahassāni āyuppamāṇaṃ ahos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수명의 한도는 팔만 년이었습니다.
Vipassī, mārisā,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pāṭaliyā mūle abhisambuddho.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는 빠딸리 나무 뿌리 밑에서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위빳시 세존께는 칸다와 띠사라는 한 쌍의 상수 제자가 있었습니다.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큰 모임은 세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비구 680만 명이 모였고, 또 한 번은 10만 명이, 또 한 번은 8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 세 번의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분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시자는 아소까라는 비구였습니다.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세존의 아버지는 반두마라는 왕이었고, 어머니는 반두마띠라는 왕비로 세존을 낳으신 분이었습니다. 반두마 왕의 수도는 반두마띠라는 도시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집을 떠나 출가하셨고, 이렇게 정진하셨습니다. 이렇게 깨달으셨고, 이렇게 법의 바퀴를 굴리셨습니다. 존자시여, 우리는 위빳시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심을 떠나 이곳에 태어났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khaṇḍatiss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칸다와 띳사라는 상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세 번 있었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ṭṭhasaṭṭhibhikkhusatasahassaṃ.
한 제자들의 모임은 육백팔십만 비구였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bhikkhusatasahassaṃ.
한 제자들의 모임은 십만 비구였습니다.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sītibhikkhusahassāni.
한 제자들의 모임은 팔만 비구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e tayo sāvakānaṃ sannipātā ahesuṃ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이 세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asok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hosi aggupaṭṭhāko.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아소까라는 비구가 시자였으니,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bandhumā nāma rājā pitā ahosi bandhumatī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는 반두마라는 왕이 아버지셨고, 반두마띠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Bandhumassa rañño bandhumatī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반두마 왕에게는 반두마띠라는 성이 왕도였습니다.
Vipassissa, mārisā,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evaṃ abhinikkhamanaṃ ahosi evaṃ pabbajjā evaṃ padhānaṃ evaṃ abhisambodhi, evaṃ dhammacakkappavattanaṃ.
어르신이시여,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집을 떠나심이 이러했고, 출가가 이러했고, 정진이 이러했고, 온전한 깨달음이 이러했고, 법의 바퀴를 굴리심이 이러했습니다.
Te mayaṃ, mārisā, vipassimhi bhagavati brahmacariyaṃ caritvā kāmesu kāmacchandaṃ virājetvā idhūpapannā’ti.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위빳시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비구들이여, 같은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 수십만의 신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가까이 와서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asmiṃyeva kho, bhikkhave, devanikāye anekāni devatāsahassāni anekāni devatāsatasahassāni yenāhaṃ tenupasaṅkamiṃsu;
비구들이여, 바로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의 신들이, 수십만의 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다가와서 내게 절하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bhikkhave, tā devat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한쪽에 선 그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존자시여, 지금으로부터 31겁 전에 시키 세존께서 나셨습니다. 이하 생략. 우리는 시키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31겁 중에 웻사부 세존께서 나셨습니다. 이하 생략. 우리는 웻사부 세존 밑에서 살았습니다. 이하 생략. 바로 이 현겁에는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세존께서 나셨습니다. 이하 생략. 우리는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심을 떠나 이곳에 태어났습니다.”[불확실]
‘ito so, mārisā, ekatiṃse kappe yaṃ sikhī bhagavā…pe… te mayaṃ, mārisā, sikhimhi bhagavati tasmiññeva kho mārisā, ekatiṃse kappe yaṃ vessabhū bhagavā…pe… te mayaṃ, mārisā, vessabhumhi bhagavati…pe… imasmiṃyeva kho, mārisā, bhaddakappe kakusandho koṇāgamano kassapo bhagavā…pe… te mayaṃ, mārisā, kakusandhamhi koṇāgamanamhi kassapamhi bhagavati brahmacariyaṃ caritvā kāmesu kāmacchandaṃ virājetvā idhūpapannā’ti.
‘어르신이시여, 지금으로부터 서른한 번째 겁에 시키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시키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어르신이시여, 바로 그 서른한 번째 겁에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웻사부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어르신이시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들께서 세상에 나셨습니다.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까꾸산다 세존, 꼬나가마나 세존, 깟사빠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14:92.6 ~ PN:dn14/92.22에서 되살렸습니다.
93
비구들이여, 같은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 수십만의 신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가까이 와서 인사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asmiṃyeva kho, bhikkhave, devanikāye anekāni devatāsahassāni anekāni devatāsatasahassāni yenāhaṃ tenupasaṅkamiṃsu;
“비구들이여, 바로 그 신들의 무리에서 수천의 신들이, 수십만의 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upasaṅkamitvā m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다가와서 내게 절하고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ā kho, bhikkhave, tā devat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한쪽에 선 그 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존자시여, 바로 이 현겁에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지금 세상에 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태생이 끄샤뜨리야로,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나셨습니다. 성은 고따마이십니다. 세존의 수명은 짧아서 얼마 되지 않고 덧없이 빠릅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라야 백 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삽니다. 세존께서는 앗왓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imasmiṃyeva kho, mārisā, bhaddakappe bhagavā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uppanno.
‘어르신이시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세존께서 지금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으로 세상에 나셨습니다.
Bhagavā, mārisā, khattiyo jātiyā, khattiyakule uppanno.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태생으로 왕족이시고, 왕족 가문에 나셨습니다.
Bhagavā, mārisā, gotamo gottena.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성씨로는 고따마이십니다.
Bhagavato, mārisā, appakaṃ āyuppamāṇaṃ parittaṃ lahukaṃ yo ciraṃ jīvati, so vassasataṃ appaṃ vā bhiyyo.
어르신이시여, 세존의 수명의 한도는 적고 짧고 가볍습니다. 오래 사는 이라도 백 년, 혹은 그보다 조금 더입니다.
Bhagavā, mārisā, assatthassa mūle abhisambuddho.
어르신이시여, 세존께서는 앗삿타 나무 뿌리 밑에서 온전히 깨달으셨습니다.
세존께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한 쌍의 상수 제자가 있었습니다.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큰 모임은 한 번 있었는데, 비구 1,250명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모두 번뇌가 다한 분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아난다라는 비구가 으뜸가는 시자로 있었습니다. 세존의 아버지는 숫도다나라는 왕이었고, 어머니는 마야라는 왕비로 세존을 낳으신 분이었습니다. 수도는 까삘라왓투라는 도시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집을 떠나 출가하셨고, 이렇게 정진하셨습니다. 이렇게 깨달으셨고, 이렇게 법의 바퀴를 굴리셨습니다. 존자시여, 우리는 세존 밑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심을 떠나 이곳에 태어났습니다.”
Bhagavato, mārisā, sāriputtamoggallān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상수 제자 한 쌍이 있었으니, 으뜸가는 훌륭한 한 쌍이었습니다.
Bhagavato, mārisā,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aḍḍhateḷasāni bhikkhusatāni.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제자들의 모임이 한 번 있었으니, 천이백오십 비구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ayaṃ eko sāvakānaṃ sannipāto ahosi sabbesaṃyeva khīṇāsavān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이 한 번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모두가 번뇌를 다한 이들이었습니다.
Bhagavato, mārisā, ānando nāma bhikkhu upaṭṭhāko aggupaṭṭhāko ahosi.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아난다라는 비구가 시자, 으뜸가는 시자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suddhodano nāma rājā pitā ahosi.
어르신이시여, 세존께는 숫도다나라는 왕이 아버지셨습니다.
Māyā nāma devī mātā ahosi janetti.
마야라는 왕비가 어머니, 낳아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Kapilavatthu nāma nagaraṃ rājadhānī ahosi.
까삘라왓투라는 성이 왕도였습니다.
Bhagavato, mārisā, evaṃ abhinikkhamanaṃ ahosi, evaṃ pabbajjā, evaṃ padhānaṃ, evaṃ abhisambodhi, evaṃ dhammacakkappavattanaṃ.
어르신이시여, 세존의 집을 떠나심이 이러했고, 출가가 이러했고, 정진이 이러했고, 온전한 깨달음이 이러했고, 법의 바퀴를 굴리심이 이러했습니다.
Te mayaṃ, mārisā, bhagavati brahmacariyaṃ caritvā kāmesu kāmacchandaṃ virājetvā idhūpapannā’ti.
어르신이시여, 저희는 세존께 청정한 삶을 닦고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구를 씻어 내고서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94
비구들이여, 이처럼 여래는 이 법의 세계를 철저히 꿰뚫고 있다. 이 법의 세계를 꿰뚫었기에, 여래는 이미 완전한 열반에 든 과거의 붓다들을 기억한다. 번뇌의 증식을 끊고, 윤회의 길을 끊고, 윤회의 굴림을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는 그분들을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성으로도 기억한다. 수명으로도, 상수 제자 한 쌍으로도,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러한 태생이셨다’ 하고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러한 이름과 성을 지니셨다. 이러한 계행, 이러한 법, 이러한 지혜, 이러한 머묾, 이러한 해탈을 갖추신 분들이셨다’ 하고도 기억한다.
‘‘Iti kho, bhikkhave, tathāgatassevesā dhammadhātu suppaṭividdhā, yassā dhammadhātuyā suppaṭividdhattā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바로 이 법의 요소가 잘 꿰뚫어져 있다. 그 법의 요소가 잘 꿰뚫어졌기 때문에 여래는, 지나간 부처님들, 완전히 열반에 드시고 헛된 펼침을 끊으시고 길을 끊으시고 윤회를 다하시고 모든 괴로움을 넘어서신 그분들을,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성씨로도 기억하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고, 상수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 ‘세존이신 그분들께서는 이러한 태생이셨다’라고도.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세존이신 그분들께서는 이러한 이름, 이러한 성씨, 이러한 계, 이러한 법, 이러한 지혜, 이러한 머묾, 이러한 해탈을 지닌 분들이셨다’라고도.
신들도 여래에게 이 일을 일러 주었다. 그래서 여래는 이미 완전한 열반에 든 과거의 붓다들을 기억한다. 번뇌의 증식을 끊고, 윤회의 길을 끊고, 윤회의 굴림을 다하여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분들이다. 여래는 그분들을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성으로도 기억한다. 수명으로도, 상수 제자 한 쌍으로도,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러한 태생이셨다’ 하고 기억한다. ‘그분들은 이러한 이름과 성을 지니셨다. 이러한 계행, 이러한 법, 이러한 지혜, 이러한 머묾, 이러한 해탈을 갖추신 분들이셨다’ 하고도 기억한다.”
‘‘Devatāpi tathāgatassa etamatthaṃ ārocesuṃ, yena tathāgato atīte buddhe parinibbute chinnapapañce chinnavaṭume pariyādinnavaṭṭe sabbadukkhavītivatte jātitopi anussarati, nāmatopi anussarati, gottatopi anussarati, āyuppamāṇatopi anussarati, sāvakayugatopi anussarati, sāvakasannipātatopi anussarati ‘evaṃjacc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신들도 여래에게 이 뜻을 알렸으니, 그로써 여래는, 지나간 부처님들, 완전히 열반에 드시고 헛된 펼침을 끊으시고 길을 끊으시고 윤회를 다하시고 모든 괴로움을 넘어서신 그분들을, 태생으로도 기억하고, 이름으로도 기억하고, 성씨로도 기억하고, 수명의 한도로도 기억하고, 상수 제자 한 쌍으로도 기억하고, 제자들의 모임으로도 기억한다 — ‘세존이신 그분들께서는 이러한 태생이셨다’라고도.
‘Evaṃnāmā evaṃgottā evaṃsīlā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세존이신 그분들께서는 이러한 이름, 이러한 성씨, 이러한 계, 이러한 법, 이러한 지혜, 이러한 머묾, 이러한 해탈을 지닌 분들이셨다’라고도.”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마하빠다나 경, 첫째 마침.[불확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Mahāpadān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마하빠다나 경이 끝났다. 첫 번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