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
(11)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 (一一)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0.3은 품 안 번호 7과 경 이름(Sahetuaniccasutta)을 함께 단다 — 팔리 쪽이 더 말한다(일부). 번호 체계가 달라(雜阿含 일련번호 11 / 상윳따 품 안 번호 7, 우리 PN 누적 18) 번호끼리는 대조하지 않는다. 교감주(大正)는 S. 22. 18-19 Hetu로 두 경을 가리키고, 팔리증언 대응 후보도 sn22.18(莊春江+다카쿠스)·sn22.19(다카쿠스) 둘이다(multi_source). 이번 투입물에는 sn22.18만 있어, 아래 苦·非我 단락(0002a27.1 등)이 sn22.19 쪽에 걸리는지는 보지 못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18.1은 Sāvatthinidānaṃ(사왓티 인연) 한 낱말로 경 머리를 접었다. 개경 정형구가 그 접힌 안쪽에 들 것이나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이 서지 않는다 — 미대응. 如是我聞은 이 아함 전권 1332회의 개경 정형구다(정형구 표).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주 佛=「부처님」(확정 술어 [구속] No.253). 舍衛는 정착어 「사위」로 적는다. 뜻: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바른 범음을 室羅伐悉底로, 뜻을 「聞者城(듣는 이의 성)」으로 풀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본래 그 땅에 먼저 살던 사람 이름이라는 설도 싣는다(참고 인용, 확정역 아님). 음역계통: 전거 대장에 팔리형 Sāvatthī / 당대 범어형 śravasthi가 둘 다 선다 — 판정하지 않는다(전거 표 ⚠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로 왔으나 이 자리에서는 정형구 조각이 아니라 장소 이름이다. §⑤가 정착어 예로 「기수급고독원」을 들므로 정착형으로 적었다. 다만 給孤獨은 §⑤ 의역 예(「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이기도 해서 복합 이름 안에서 정착형과 의역 중 어느 쪽을 따를지가 서지 않는다 —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뜻: 祇樹 = 祇陀(慧琳 0368a03: 바른 범음 誓多, 뜻 「勝」) 태자의 숲, 給孤獨 =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범어 阿那陀, 뜻 「無親屬」; 古經은 阿那邠邸), 園 = 동산. 즉 「승(勝) 태자의 숲,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전거 대장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팔리 18.1은 Sāvatthi만 드러내고 나머지는 접혀 있어 미대응으로 둔다. 보조 증언 sn22.19/19.1도 같은 Sāvatthinidānaṃ(접힌 인연)이라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을 덧붙인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1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9:19.1
爾時,世尊告諸比丘:「色無常,若因、若緣生諸色者,彼亦無常。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무상하다. 원인이든 조건이든 색들을 생기게 하는 것, 그것 또한 무상하다.
주 世尊=「세존」(No.252), 比丘=「비구」(No.265) [구속].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붓다)을 0.3·0002b02.1에서는 佛, 여기서는 世尊으로 적는다 — 확정역이 각각 있으므로 각기 고정했다. 음역계통: 比丘 ← 팔리 bhikkhu / 근대 범어 비정 Bhikṣu(전거 대장) — 판정하지 않는다. 爾時世尊告諸比丘 부분은 팔리 18.1의 접힌 인연 안에 들 자리라 미대응이다. 若因、若緣: 배선 앵커는 若을 가정 「-면」으로 달았으나, 이 자리의 若…若은 두 항을 늘어놓는 「~이든 ~이든」 구문이고 뒤의 者…彼(…하는 것, 그것)가 주제를 받는다 — 가정 어미로 옮기면 구문이 무너지므로 나열로 옮겼다. 팔리 18.3 Yopi hetu, yopi paccayo(어떤 원인이든 어떤 조건이든)와 구조가 맞는다. 諸色은 복수만 표시하므로 「색들」로 옮겼다. 亦은 앞의 色과 같이 무상하다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色·因·緣은 확정 술어 표에 없다 — 色은 한국 불교 정착 술어 「색」, 因·緣은 「원인」·「조건」으로 옮겼고 정본 행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남긴다. 팔리 18.2의 호격 bhikkhave는 한역이 告諸比丘로 앞에 세웠다. 보조 증언 sn22.19: 19.1은 접힌 인연(Sāvatthinidānaṃ)이라 미대응. 19.2 Rūpaṃ … dukkhaṃ·19.3 … sopi dukkho는 같은 자리(색 / 그 원인·조건)에 서술어를 dukkha(괴로움)로 세워 한역의 無常(무상)과 엇갈린다 — 엇갈림. 若因、若緣의 나열 짜임(Yopi hetu yopi paccayo)은 19.3에서도 같다. 저본은 한문이므로 직역 본문은 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8:18.2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8:18.3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9:19.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9:19.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9:19.3
無常因、無常緣所生諸色,云何有常?
무상한 원인과 무상한 조건이 생기게 한 색들이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주 팔리 18.4는 aniccasambhūta(무상한 것에서 생겨난) 한 복합어인데 한역은 無常因·無常緣 두 항으로 풀어 앞 문장의 因·緣을 되받는다. 팔리의 호격 bhikkhave는 한역에 없다(호격 탈락). 둘 다 인도어 구문을 한문으로 옮기며 생긴 자리로 보아 번역기법을 함께 적는다 — 저본 차이의 증거로 쓰지 않는다. 所生은 관형절 「생기게 한」으로, 有常은 「항상하겠는가」로 흡수했다(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술어 常에 걸림). 팔리 kuto niccaṃ bhavissati(어디서 항상하겠는가)와 云何有常은 같은 반문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4
如是受、想、行、識無常,若因、若緣生諸識者,彼亦無常。
이와 같이 수·상·행·식은 무상하다. 원인이든 조건이든 식들을 생기게 하는 것, 그것 또한 무상하다.[불확실]
불확실 팔리는 느낌·인식·형성·의식마다 「~은 무상하다 / 그 원인·조건도 무상하다」를 따로 되풀이하는데(18.5~18.12), 한역은 如是로 受·想·行·識의 무상을 한 문장에 묶고 원인·조건 문장은 識에 대해서만 한 번 적는다 — 팔리가 더 말한다(일부). 如是는 정형구 표의 생략 표지 목록에 없으므로 [생략표지]로 신고하지 않고 한문대로 「이와 같이」로 두었다. 팔리 18.8은 saññā 쪽을 「…」로 스스로 접어(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想의 원인·조건 문장 유무를 읽을 수 없다 — 미대응. 受는 정형구 행(No.28, vedanā)에만 있고 낱말 확정역이 없어, 지시대로 문맥(오온의 하나)에 따라 옮기고 을 남긴다. 受·想·行·識은 한국 불교 정착 술어 「수·상·행·식」으로 적었으나 정본 행이 없다 — [불확실:확정역_부재]. 亦은 앞의 識과 같이 무상하다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보조 증언 sn22.19: 19.5는 느낌·인식·형성·의식을 한 좌표에 늘어놓고 각각 dukkha(괴로움)로 서술하며, 19.6은 원인·조건 문장을 의식에 대해서만 적는다 — 같은 자리에서 서술어가 한역의 無常(무상)과 엇갈린다(엇갈림). 드러난 짜임(네 무더기 나열 뒤 원인·조건 문장은 識 하나)은 한역의 如是 묶음과 겉모양이 같으나, 19.5 안의 「…」가 각 무더기의 되풀이를 편집상 접은 것인지 문자만으로 가를 수 없으므로 구조가 같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6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9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1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8:18.1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9:19.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9:19.6
無常因、無常緣所生諸識,云何有常?
무상한 원인과 무상한 조건이 생기게 한 식들이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주 팔리는 느낌(18.7)·형성(18.10)·의식(18.13)마다 반문을 따로 두는데 한역은 識 하나에만 둔다(앞 좌표의 如是 묶음과 같은 짜임) — 팔리가 더 말한다. 18.13과는 내용이 맞되, 앞 좌표(0002a23.1)와 같이 aniccasambhūta 한 복합어를 無常因·無常緣 두 항으로 풀고 호격 bhikkhave가 없다 — 번역기법. 보조 증언 sn22.19/19.7 Dukkhasambhūtaṃ … viññāṇaṃ kuto sukhaṃ bhavissati!는 같은 자리(의식에 대한 반문)이나 「괴로움에서 생긴 것이 어찌 즐겁겠는가」로 세워 한역의 無常/常과 엇갈린다 — 엇갈림.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8:18.1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9:19.7
如是,諸比丘!色無常,受、想、行、識無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색은 무상하고, 수·상·행·식은 무상하다.
주 다섯 무더기의 무상을 다시 모아 말하는 이 맺음 문장은 팔리 sn22.18에 없다. 이 자리가 놓일 팔리 좌표는 18.13과 18.14 사이이고, 18.14의 …pe…는 Evaṃ passaṃ 뒤를 접은 것이라 이 자리에 걸리지 않는다 — 없음확인. 보조 증언 sn22.19도 보았다: 이 자리가 놓일 19.7(의식 반문)과 19.8 사이에 이런 맺음 문장이 없고, 19.8의 …pe…도 Evaṃ passaṃ 뒤를 접은 것이라 이 자리에 걸리지 않는다 — 없음확인(sn22.19). 比丘=「비구」[구속].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8:18.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9:19.8
無常者則是苦,苦者則非我,非我者則非我所。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운 것은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주 無常→苦→非我→非我所로 이어지는 사슬은 팔리 sn22.18의 드러난 본문에 없고, 18.14의 …pe…는 Evaṃ passaṃ 뒤를 접은 것이라 이 자리에 걸리지 않는다 — 없음확인(sn22.18 한정). 보조 증언 sn22.19(Sahetudukkhasuttaṃ, 교감주 S. 22. 18-19·다카쿠스 후보)를 보았다: 다섯 무더기와 그 원인·조건을 dukkha(괴로움)로 서술하나(19.2~19.7) 無常→苦→非我→非我所 사슬은 드러난 본문에 없다. 사슬이 놓일 자리는 19.7과 19.8 사이이고, 19.8의 …pe…는 Evaṃ passaṃ 뒤를 접은 것이라 이 자리에 걸리지 않는다 — 없음확인(sn22.19 한정). 한역의 苦는 sn22.19의 주제어 dukkha와 낱말이 겹치지만, 사슬 문장으로서의 대응은 두 팔리 경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다. 則×3은 「~은 ~이다」의 계사 문장에 흡수했다. 我·我所: 니까야 확정 술어 attā=「자기 자신」이 있으나 아함판 확정 술어 표에 我는 없고, 한문 我는 같은 경 0002a29.1 정형구(我生已盡)에서 1인칭 「나」로도 쓰여 한 경 안에서 통일하려고 「나」·「나의 것」으로 옮겼다 — 「자기 자신」 쪽과 가르지 못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苦는 「괴로움」, 苦者는 명사화 「괴로운 것」.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8:18.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9:19.8
「聖弟子!如是觀者,厭於色,厭於受、想、行、識。
성스러운 제자로서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는 색을 싫어하고, 수·상·행·식을 싫어한다.
주 CBETA 구두는 「聖弟子!」로 끊어 호격으로 읽고 새 인용 부호 「를 연다. 그러나 붓다는 이 경에서 비구들에게 말하고 있고, 聖弟子 뒤의 如是觀者가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로 주어 자리를 받으므로 聖弟子를 주어(그 이의 신분)로 읽었다 — 호격으로 끊으면 「성스러운 제자여!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는…」이 된다. 한문에 구두가 없어 어느 쪽인지 문자만으로 서지 않는다 — [불확실:구두·분절]. 인용 부호도 0002a22.1에서 연 것을 이어 0002a29.1에서 닫았다. 팔리 18.14 Evaṃ passaṃ(이와 같이 보는) 뒤가 …pe…로 접혀 있어 주어(성스러운 제자 여부)와 염오 대상 나열을 대조할 수 없다 — 미대응. 보조 증언 sn22.19/19.8도 Evaṃ passaṃ…pe…로 같은 자리를 접어 대조할 수 없다 — 미대응. 於×2는 목적격 조사가 졌다. 厭은 「싫어한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1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9:19.8
厭者不樂,不樂則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싫어하는 이는 즐거워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알고 본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섰으며, 해야 할 일은 했으니, 다음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解脫知見:『…』는 「해탈하면 알고 본다」(조건+동사)로도, 「해탈의 앎과 봄(은 이러하다)」(명사구 주제)로도 읽힌다 — 구문이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앞의 則 사슬(不樂則解脫)을 이어 조건+동사로 옮겼다. 生·梵行은 확정 술어 표에서 정형구 행(No.25 jāti, No.51 brahmacariya)으로만 왔다 —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태어남」, 梵行은 3분할 표 의역 유형에 따라 뜻으로 「청정한 삶」으로 옮기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梵: 慧琳 0698c19 「此云清淨」, 참고 인용). 已×3은 완료 어미가 져서 「이미」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自知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後有의 有는 존재 동사가 아니라 명사(뒤의 있음)라 「다음의 존재」로 옮겼다. 不樂은 한문대로 「즐거워하지 않는다」로 옮겼다 — 팔리 쪽 이 자리는 18.14가 …pe…로 접혀 있어 읽지 못했으므로 대조하지 않고 갈림을 세우지 않는다(팔리에 이 자리 낱말이 무엇일지 추정해 적지 않는다). 18.14 끝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다시 이러한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안다)만 드러나 自知不受後有와 겹쳐 보이나, 구간 대부분이 접혀 있어 미대응으로 둔다. 보조 증언 sn22.19/19.8도 같은 꼴(Evaṃ passaṃ…pe…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이라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을 덧붙인다. 붓다 발화의 끝(인용 닫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8:18.14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9:19.8
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sn22.18은 18.14의 「…pajānātī’’ti」로 끝나고 18.15는 경 번호(Sattamaṃ)뿐이어서, 비구들이 기뻐하며 받드는 맺음 정형구가 없다. 팔리의 접힘(Sāvatthinidānaṃ, 18.14 …pe…)은 경 머리와 본문 중간에 걸린 것이라 이 자리는 접힌 구간이 아니다 — 없음확인. 佛=「부처님」(No.253), 比丘=「비구」[구속].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는 慧琳 0753a01 「悅也」(참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8: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