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7)
주 한문 저본은 경 번호 「七」만 두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0.3은 품 안 번호 「8」과 경 이름(Abhinandana)을 함께 두고, 29.0은 상윳따 안 누적 번호 「29」다. 번호가 다른 것은 두 전승의 경 배열·번호 체계가 달라서 생긴 것으로 보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大正 교감주는 이 경을 S. 22. 29. Abhinandana에 대응시킨다.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 SF 좌표를 달지 않는다(이하 모든 좌표 같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29:29.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는 머리말을 「Sāvatthinidānaṃ」(사왓티 인연) 한 낱말로 접어 두었다. 「如是我聞」에 해당할 자리가 그 접힌 안쪽에 있으므로 「없음 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둔다. 「如」는 「~와 같이」로 받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29:29.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구속]). 「舍衛」는 한자대역 표의 정착어(사위)대로 「사위국」으로 적었다. 이름의 뜻: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는 바른 범음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듣는 이의 성) 또는 法鏡經의 「聞物國」으로 풀며,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그 땅에 먼저 살던 사람 이름이고 왕이 그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삼았다는 설도 전한다. 음역 전거(음역전거_대장)는 팔리 후보 Sāvatthī,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를 들어 두 계통이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대장 주의: 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은 지침 §⑤ 표가 정착어 예로 드는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뜻: 「祇」는 음역(一切經音義(慧琳) 0368a03: 바른 범음 「誓多」, 「勝」으로 번역, 바사닉왕의 태자 이름), 「樹」는 뜻(나무 — 태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으므로 「祇樹」), 「給孤獨」은 뜻(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같은 책 0368a05: 범어 「阿那陀」, 「無親屬」, 외로운 이를 구하기로 서원한 부호의 호칭), 「園」은 동산. 한자대역 3분할은 「祇樹給孤獨」을 5자 이상이라 「보류」로 분류하고 신고를 요구하므로 신고한다 — 이름임은 분명하며 지침 §⑤의 정착어 예를 따랐다. 팔리는 「Sāvatthinidānaṃ」으로 사왓티만 드러내고 숲·동산 이름과 「一時」는 접힌 안쪽에 있어, 한문이 더 말하는 꼴(일부)로 매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29.1
爾時,世尊告諸比丘:「於色愛喜者,則於苦愛喜;於苦愛喜者,則於苦不得解脫。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색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는 괴로움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괴로움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는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불확실]
불확실 「世尊」=세존([구속]). 앞 좌표의 「佛」과 이 좌표의 「世尊」 — 한역이 같은 분을 다른 한자로 부른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爾時世尊告諸比丘」에 해당할 자리는 팔리에서 「Sāvatthinidānaṃ」 안에 접혀 있어 29.1은 미대응으로 둔다(팔리 29.2는 호격 bhikkhave만 문장 안에 둔다). 「諸」는 「-들」로 흡수했다. 「於」는 목적어를 표시하는 조사 「-을」로, 「者」는 「~하는 이」로, 「則」은 문장 연결에 흡수했다. 「愛喜」: 한자대역 3분할은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해 을 요구하나, 「愛」·「喜」 두 자 모두 뜻글자로 쓰였고 소리를 옮긴 흔적이 없어 뜻으로 옮겼다(음역전거_대장은 팔리 후보 Nandi). 확정역이 없어 「좋아하고 기뻐하다」로 두 자를 두 동사로 살렸고, 「애착하여 기뻐하다」 등 다른 후보가 있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단다. 「色」은 오온의 이름이며 정착 술어 「색」으로 두었다. 「解脫」은 정착 술어 「해탈」, 「不得」은 「-하지 못한다」로 흡수했다(음역전거_대장 당대 후보 aprapati·mukti는 참고만). 팔리 29.3은 끝에 「vadāmi」(나는 말한다)가 있으나 한문에는 그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 한쪽에만 있는 말이라 일부로 매겼다. 팔리 29.2는 한문 「於色愛喜者則於苦愛喜」와 같은 것을 말한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29:29.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29:29.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29.3
如是受、想、行、識愛喜者,則愛喜苦;愛喜苦者,則於苦不得解脫。
이와 같이 수·상·행·식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는 괴로움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괴로움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는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주 「受」는 확정술어 [정형구 행] 표에 걸린 한자로 낱말 확정역이 없다. 이 자리는 「色」 다음의 오온 나열이므로 동사 「받다」가 아니라 오온의 하나(느낌)로 판별했고, 오온 이름 넷을 정착 술어 「수·상·행·식」으로 두었다. 「수」/「느낌」 두 후보가 서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단다(「愛喜」의 역어 선택도 앞 좌표와 같은 사안). 한문은 앞 좌표의 「於苦愛喜」를 여기서 「愛喜苦」(於 없이 동사-목적어)로 쓰는데, 둘 다 「괴로움을」로 옮겨진다. 팔리 29.4는 「…」로 느낌·인식·형성·의식 각각의 문장을 접어 나열하고, 한문은 「如是」로 넷을 한 문장에 묶었다 — 말하는 것은 같다. 팔리 29.5의 「vadāmi」(나는 말한다)는 한문에 없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29:29.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29.5
「諸比丘!於色不愛喜者,則不喜於苦;不喜於苦者,則於苦得解脫。
“비구들이여, 색을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는 괴로움을 기뻐하지 않는다. 괴로움을 기뻐하지 않는 이는 괴로움에서 해탈한다.
주 이문: 大正은 「於」를 두고 宋·元·明 세 판본은 「於」 하나가 없다(app 0001009). 이 좌표의 「於」 넷 가운데 어느 것인지 교감주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於」는 조사로 흡수되므로 어느 쪽이든 직역문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문은 「不愛喜」(색 자리)와 「不喜」(괴로움 자리)를 섞어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팔리는 양쪽 다 nābhinandati)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고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는」/「기뻐하지 않는」으로 갈라 옮김). 「得解脫」의 「得」은 「해탈한다」에 흡수했다. 팔리 29.6의 「ca kho」(그러나)는 한문에 따로 없고 호격 「諸比丘」로 단락이 바뀐다. 팔리 29.7의 「vadāmi」는 한문에 없다. 「愛喜」 역어 선택은 0001c12.1과 같은 사안.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29:29.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29.7
如是受、想、行、識不愛喜者,則不喜於苦;不喜於苦者,則於苦得解脫。」
이와 같이 수·상·행·식을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는 괴로움을 기뻐하지 않는다. 괴로움을 기뻐하지 않는 이는 괴로움에서 해탈한다.”
주 앞 좌표와 같이 「不愛喜」/「不喜」가 섞인다(한자 흔들림). 「受」의 역어와 「愛喜」의 역어 선택은 0001c14.1과 같은 사안. 팔리 29.8은 「…」로 각 문장을 접어 나열하고, 한문은 「如是」로 묶었다 — 말하는 것은 같다. 팔리 29.9의 「vadāmi」(나는 말한다)는 한문에 없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29:29.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29:29.9
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구속]). 이 경 안에서 「佛」과 「世尊」이 섞인다(한자 흔들림).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는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이 「悅」로 풀며, 경 본문의 「愛喜」·「喜」와는 다른 한자이므로 「기뻐하며」로 두었다. 팔리는 29.9의 인용 종결(ti) 뒤에 29.10 「Aṭṭhamaṃ」(여덟째, 경 순번 표시)만 있고 비구들이 기뻐하며 받들었다는 맺음말이 없다 — 팔리 원문 전체가 투입되어 있어 없음을 확인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29:29.10
無常及苦、空非我、正思惟
무상과 괴로움, 공과 내가 아님, 바르게 생각함
주 이 두 줄(0001c20.1·0001c21.1)은 앞의 여러 경 제목을 묶는 섭송(攝頌)으로 보인다. 팔리 sn22.29 본문에는 이런 줄이 없으나, 팔리 전승은 이런 요약 게송을 품 끝에 두므로 이 경 밖에 대응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은 투입되지 않았다 — 없음 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둔다. 구두: CBETA는 「無常及苦、空非我、正思惟」로 끊었으나, 다섯 자 게송 행으로 보면 「無常及苦空/非我正思惟」로도 끊기며, 「苦·空·非我」가 각각 경 이름인지 한 경의 내용인지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직역은 CBETA 구두를 따랐다. 「無常」은 정착 술어 「무상」. 음역전거_대장이 「無常」에 당대 후보 aditya를 대나 뜻이 맞지 않아 보여(표면 동형 의심) 쓰지 않았다. 「思惟」는 한자대역 표가 의역으로 분류하므로 뜻으로 「생각함」이라 옮겼다(대장 주의: 다른 부(MA)의 대역, 팔리 후보 Bhāvana — 참고만). 「非我」는 「내가 아님」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29:29.10
無知等四種及於色喜樂
알지 못함 등 네 가지, 그리고 색을 기뻐하고 즐거워함
주 앞 좌표와 이어지는 섭송의 둘째 줄. 「於色喜樂」이 이 경(sa7)을 가리키는 제목으로 보이는데, 본문은 「愛喜」를 쓰고 섭송은 「喜樂」을 쓴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옮김). 「於」는 조사 「-을」로 흡수했다. 「無知等四種」은 「알지 못함」을 이름으로 하는 네 경을 묶는 말로 보인다. 팔리 대응은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29:2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