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

SĀ 1

교차 검사교차 검사 12현대역 준비 중

(一)

(1)

주 한문 제목은 경 번호 「(一)」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0.3은 번호와 경 이름(Aniccasuttaṃ)을 함께 단다 — 한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 大正 교감주는 대응을 S. 22. 12-14로 든다 — 한역 한 경이 팔리 여러 경에 걸친다는 비정이므로 경 나눔(구조·배열)이 갈린다. 대응 후보는 sn22.12·sn22.13·sn22.14(莊春江+다카쿠스)·sn22.51(莊春江) 넷이고(합의 등급 multi_source), 작가에게 준 팔리 원문은 sn22.12뿐이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조각에 제공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0.3

AG:sa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회). 如는 「~같이」로 옮겼다. 팔리 「Evaṃ me sutaṃ」과 같음.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2:12.1

AG:sa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구속]). 舍衛는 정착어 「사위」, 國은 저본대로 붙여 「사위국」. 舍衛의 뜻 —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는 바른 범음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들은 이들의 성)·「聞物國」으로 풀며, 善見律을 끌어 「舍衛는 사람 이름(그 땅에 먼저 살던 이)」이라는 설도 싣는다. 전거 대장: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 — 팔리형·범어형 두 계통으로 갈린다(판정하지 않음; 전거 주의 「⚠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 3분할 표가 「보류(5자 이상)」로 둔 자리다. 한 원림의 고유명으로 판별했고, 지침 §⑤ 정착어 예시에 「기수급고독원」이 실려 있어 정착형으로 적었다. 이름의 뜻 — 祇樹 = 祇陀(바른 범음 誓多, 「勝」) 태자의 숲; 태자가 동산 땅은 팔고 나무는 남겨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했으므로 「祇樹」라 한다(慧琳 0368a03). 給孤獨 = 의역, 「친척 없는 외로운 이들을 돌보겠다고 서원한 큰 부자」에게 붙은 이름, 범어 阿那陀·옛 경의 阿那邠邸(慧琳 0368a05). 園 = 동산. 곧 「기타 태자의 숲,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다만 §⑤ 의역 예시는 給孤獨 자체를 뜻으로(「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옮기라 하므로, 복합 원림명 안에서 정착형과 의역 중 어느 쪽인지 유형 판별이 갈린다 —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전거 대장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대응: 팔리 12.2에는 「sāvatthiyaṃ」만 있고 「한때」·원림명·「머무셨다」가 없다(12.3 「Tatra kho…pe…」로 접힌 정형에 들 수 있으나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다) — 한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 보조 증언: sn22.13/13.1·sn22.14/14.1·sn22.51/51.1은 셋 다 「Sāvatthinidānaṃ」(사왓티를 인연으로 함) 한 낱말로 도입 정형을 줄였다 — 지명만 드러나고 「한때」·원림명·「머무셨다」는 그 축약 안쪽이라 읽지 못한다. 드러난 지명만 닿으므로 셋 다 일부. 보조 증언은 원림명이 드러나지 않아 유형 판별에 근거를 더하지 않으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은 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3:13.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

AG:sa1/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當觀色無常。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을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구속]).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諸는 「-들」로 흡수. 色: 아함판 확정 술어에 행이 없다 — 다섯 무더기의 첫째 자리로 판단해 「물질」로 옮겼다(「색」으로 둘지는 정도평 판단) → [불확실:확정역_부재]. 無常은 정착 술어 「무상」. 대응: 팔리 12.3은 「Tatra kho…pe…」로 도입부(세존이 비구들에게 말함에 해당)를 접었다 — 그 부분은 접힌 안쪽이라 대응을 세우지 않는다. 이어 팔리는 다섯 무더기가 무상하다고 한 문장에 서술하고 「관찰하라」는 동사가 없다. 한역은 「觀」을 세우고 물질만 먼저 말한 뒤 나머지 넷을 a09.1에서 따로 말한다 → 구조·배열. 한역의 「觀」은 팔리 12.4 「Evaṃ passaṃ」(이와 같이 보면)의 보는 동작과 닿는다. 보조 증언 sn22.51/51.2 「Aniccaññeva, bhikkhave, bhikkhu rūpaṃ aniccanti passati」는 물질만 먼저 따로 들어 「무상하다고 본다(passati)」고 말한다 — 한역 「觀色無常」의 보는 동작과 물질 단독 배열이 여기와 닿는다. 다만 팔리는 비구를 주어로 한 3인칭 서술이고 한역은 「當」의 명령이며, 팔리는 「anicca-eva」(바로 무상하다고)로 강조를 더한다 → 일부. sn22.51의 도입부(세존이 비구들에게 말함)는 51.1 「Sāvatthinidānaṃ」 축약 안쪽이라 대응을 세우지 않는다. 구조·배열 신고는 본 후보 sn22.12 기준으로 유지한다(sn22.51은 한역처럼 물질을 따로 먼저 말한다). 比丘: 전거 대장 팔리 bhikkhu / 근대 범어 비정 Bhikṣu — 두 계통(판정하지 않음; 근대는 大正 편자 비정). 慧琳 0482a20은 比丘를 「梵云苾蒭」로 들고 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 다섯 뜻을 단다.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분을 여기서 「世尊」, 0.3·a15.1에서 「佛」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각각 확정역 「세존」·「부처님」으로 옮겼다). 전거 대장의 無常 당대 범어 후보 「aditya」는 무상과 뜻이 닿지 않아 참고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2

AG:sa1/0001a07.1 · 교차 검사

如是觀者,則為正觀。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다.

주 為는 여기서 계사(「~이다」)로 읽었다 — 為…所 피동 구문이 아니다. 則은 귀결로 어미에 흡수, 者는 「~하는 것」. 팔리 12.4 「Evaṃ passaṃ」(이와 같이 보면)이 「如是觀」에 닿지만, 팔리에는 「그것이 바른 관찰이다」라는 판정 문장이 없고 대신 주어 「배운 성스러운 제자(sutavā ariyasāvako)」와 염오(nibbindati)가 바로 이어진다 → 한쪽이 더/덜 말함. 「正觀」 단계는 한역에만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4

AG:sa1/0001a07.2 · 교차 검사

正觀者,則生厭離;厭離者,喜貪盡;喜貪盡者,說心解脫。

바르게 관찰하는 이는 싫어하여 떠남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쁨과 탐냄이 다하며, 기쁨과 탐냄이 다한 이를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말한다.

주 사슬 대조 — 한역: 바른 관찰 → 싫어하여 떠남이 생김 → 기쁨과 탐냄이 다함 → 마음이 해탈했다고 말함. 팔리: 봄 → 염오(nibbindati, 12.4) → 염오하여 사라진다(virajjati, 12.5) → 사라짐으로 해탈한다(vimuccati, 12.6). 한역 「厭離」는 nibbidā 자리(12.4) → 일부(팔리는 다섯 무더기 각각에 대해 염오한다고 펴서 말한다). 12.5 자리에서 팔리는 「사라짐(virāga)」을, 한역은 「기쁨과 탐냄이 다함(喜貪盡)」을 말한다 → 엇갈림. 12.6 해탈 자리에서 한역은 「說」(…라고 말한다)을 더 둔다 → 일부. 보조 증언 sn22.51은 이 사슬을 한역과 같은 고리로 말한다: 51.4 「Sammā passaṃ nibbindati」(바르게 보면서 염오한다) ↔ 「正觀者,則生厭離」 → 같음(바르게 봄=正觀, 염오=厭離; 한역 「生」은 동사 자리를 나누었을 뿐 뜻이 같다). 51.5 「Nandikkhayā rāgakkhayo, rāgakkhayā nandikkhayo」(기쁨이 다함으로 탐냄이 다하고, 탐냄이 다함으로 기쁨이 다한다) ↔ 「厭離者,喜貪盡」 → 일부(팔리는 둘이 서로 원인이 되는 왕복을 말하고 염오를 조건으로 걸지 않는다; 한역은 왕복 없이 「다함」 하나를 싫어하여 떠난 이에게 건다). 51.6 「Nandirāgakkhayā cittaṃ vimuttaṃ suvimuttanti vuccati」(기쁨·탐냄이 다함으로 마음이 해탈했다, 잘 해탈했다고 일컬어진다) ↔ 「喜貪盡者,說心解脫」 → 일부(팔리가 「suvimuttaṃ」(잘 해탈한)을 더한다). 한역 「說」은 팔리 「vuccati」(일컬어진다)와 자리가 맞는다. a07.2 「正觀」은 51.3 「sammādiṭṭhi」(바른 견해) 자리와 닿는다(대상 좌표 밖이라 참고만). 者(셋)는 「~하는 이」로 읽었다(a12.1 「心解脫者」와 맞춤). 조건(「~하면」)이나 주제(「~란」)로도 읽힌다. 보조 증언은 이를 가르지 못한다 — 51.4는 현재분사(passaṃ, 보는 이/보면서)라 사람 읽기와 닿지만, 51.5·51.6은 탈격(-khayā, 다함으로)이라 원인·조건 읽기와 닿는다. 「說」의 주어가 드러나지 않는 점은 팔리가 수동(vuccati)이어서 일반 주어(「~라고 한다」)로 읽는 쪽과 닿으나, 者 읽기가 남으므로 → [불확실:격·태·구문] 유지. 喜貪은 「기쁨과 탐냄」(병렬)으로 끊었다. sn22.51/51.5가 nandi(기쁨)와 rāga(탐냄)를 따로 세워 서로의 원인으로 말하므로 두 항 병렬로 끊는 읽기에 증언 근거가 선다(51.6은 두 항을 묶은 복합어 nandirāga) — 앞 작가의 [불확실:구두·분절]을 걷는다(근거 sn22.51/51.5). 본문은 바꾸지 않았다. 心解脫: 3분할 「의역」 — 뜻으로 「마음이 해탈함」. 「해탈」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로 두었다(「풀려남」으로 더 풀지는 정도평 판단). 則은 어미에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2:12.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1:5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6

AG:sa1/0001a08.1 · 교차 검사

「如是觀受、想、行、識無常。

"이와 같이 느낌·인식·형성·의식을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주 受·想·行·識은 아함판 확정 술어에 행이 없다(受는 [정형구 행]에 vedanā로만 걸리며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다섯 무더기의 나머지 넷으로 판단해 문맥대로 「느낌·인식·형성·의식」으로 옮겼다 → [불확실:확정역_부재]. 이 좌표에는 當이 없다 — a07.1 「當觀色無常」을 이어 받는 지시로 읽어 명령형으로 옮겼으나 서술형(「관찰한다」)으로도 읽힌다 → [불확실:격·태·구문]. 팔리 12.3은 다섯을 한 문장에 묶어 「무상하다」고 서술한다. 한역은 물질과 나머지 넷을 두 번에 나누고 그 뒤 정관·해탈 사슬을 각각 되풀이한다 → 구조·배열. 보조 증언 sn22.51은 무더기를 하나씩 따로 들어 「무상하다고 본다」를 말한다 — 51.7 느낌(vedanā), 51.12 인식(saññā)…pe…형성(saṅkhārā), 51.17 의식(viññāṇa). 한역은 넷을 한 문장에 묶었고 팔리는 세 문장으로 나누어(51.12는 인식과 형성 사이를 …pe…로 접음) 말한다 → 각각 일부. 51.12의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다. 무더기 묶음마다 사슬을 되풀이하는 짜임은 sn22.51이 한역과 같은 쪽이다(묶는 단위는 다르다). 팔리 51.7도 비구를 주어로 한 3인칭 서술이라, 이 좌표를 명령으로 읽을지 서술로 읽을지는 증언이 가르지 않는다 → [불확실:격·태·구문] 유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7

AG:sa1/0001a09.1 · 교차 검사

如是觀者,則為正觀。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다.

주 a07.2와 같은 문장. 한역은 물질(a07.2)과 나머지 넷(이 좌표)에 각각 되풀이하고 팔리는 한 번만 말한다. 직역층은 반복을 전문으로 둔다. 為는 계사, 則은 어미에 흡수. 「正觀」 판정 문장은 한역에만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4

AG:sa1/0001a10.1 · 교차 검사

正觀者,則生厭離;厭離者,喜貪盡;喜貪盡者,說心解脫。

바르게 관찰하는 이는 싫어하여 떠남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쁨과 탐냄이 다하며, 기쁨과 탐냄이 다한 이를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말한다.

주 a08.1과 같은 문장을 전문으로 둔다. 者 읽기·12.5 자리의 엇갈림·sn22.51 고리별 대조는 a08.1과 같은 사안이고, 喜貪 끊기는 a08.1에서 sn22.51/51.5를 근거로 병렬로 정했다. 본 후보 sn22.12는 이 사슬을 한 번만 말한다. 보조 증언 sn22.51은 사슬을 무더기마다 되풀이한다 — 느낌 뒤(51.9–51.11), 인식…형성 뒤(51.14–51.16), 의식 뒤(51.19–51.21). 한역은 느낌·인식·형성·의식 넷을 묶어 한 번(a10.2) 말하므로 팔리의 세 벌이 이 좌표 하나에 걸린다 — 고리마다 a08.1과 같은 꼴(같음·일부·일부)을 달았다. 되풀이 횟수가 갈리는 것은 구조·배열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2:12.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1:5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1:51.1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1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1:51.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20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1:51.21

AG:sa1/0001a10.2 · 교차 검사

「如是,比丘!心解脫者,若欲自證,則能自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이는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스스로 증득할 수 있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행은 섰고, 해야 할 일은 했으니,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스스로 안다.'"

주 若은 연결어미 「-면」, 能은 「-ㄹ 수 있다」, 則은 귀결로 흡수. 所作은 관형절 「해야 할 일」. 已(셋)는 완료 어미 「-었-」이 진다고 보아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自(셋): 「自證」·「自知」는 남을 거치지 않고 제 안에서 증득하고 안다는 뜻이 실린 자리로 보아 「스스로」를 세웠다. 다만 이 경 안에 自↔他 대조가 명시되지는 않으므로 단순 재귀로 흡수할지 정도평 확인이 필요하다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證은 「증득」으로 옮겼다. 後有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명사 「존재」, 受는 여기서 동사 「받다」(vedanā 아님). 梵行: 3분할 「의역」 — 慧琳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을 근거로 「청정한 행」으로 옮겼다([정형구 행]의 「청정한 삶」은 확정 문자열이 아니므로 쓰지 않음). 生은 [정형구 행] jāti 자리 — 「태어남」. 比丘는 수 표지가 없다 — 청중이 「諸比丘」이므로 「비구들이여」로 옮겼다. 붓다 발화는 평서. 대응: 팔리 12.7은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인데, 같은 자리에서 한역은 「마음이 해탈한 이는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증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엇갈림. 12.8: 팔리에는 일인칭이 없고(Khīṇā jāti), 「nāparaṃ itthattāya」(이러한 상태로 다시는 없다)를 한역은 「不受後有」(뒤의 존재를 받지 않는다)로 말하며, 팔리 「pajānāti」 ↔ 한역 「自知」 → 일부(개별 어휘). 보조 증언: sn22.51은 51.21 「…suvimuttanti vuccatī''ti」에서 설법이 끝나고(51.22는 경 번호) 해탈의 앎이나 「태어남은 다했다」 정형이 없다 — 51.21 뒤 자리에 없음확인. sn22.13/13.3·sn22.14/14.6–14.7의 같은 정형은 괴로움·무아 관찰의 맺음이라 a14.1(「亦復如是」)에 걸었다. 自의 「스스로」 문제는 보조 증언도 가르지 못한다(sn22.14/14.7도 pajānāti뿐, 재귀 표지 없음)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유지.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2:12.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2:12.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1:51.21

AG:sa1/0001a12.1 · 교차 검사

「如觀無常,苦、空、非我亦復如是。」

"무상을 관찰하듯이, 괴로움·공·자기 자신이 아님도 이와 같다."

주 如(둘): 앞 如는 「~듯이」, 뒤 如是는 「이와 같다」. 亦復는 조사 「도」가 지므로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復는 여기서 반복이 아니라 亦과 어울린 강조). 非我: 아함판 확정 술어에 행이 없다 — 프로젝트 니까야 규정(attā=「자기 자신」)을 따라 「자기 자신이 아님」으로 옮겼다. 空: 확정역 없음, 정착 술어 「공」으로 두었다(「비어 있음」도 후보) → [불확실:확정역_부재]. 대응: 본 후보 sn22.12는 12.8에서 설법이 끝나고(12.9 「Paṭhamaṃ」은 경 번호) 괴로움·공·무아로 관찰을 넓히는 문장이 없다 — 그 자리(12.8 뒤)에 없음확인. 보조 증언: 大正 교감주가 대응을 S. 22. 12-14로 묶은 대로, 한역이 이 한 문장으로 줄여 가리키는 것을 팔리는 별개의 두 경으로 펴서 말한다 — sn22.13(Dukkhasutta) 13.2 「다섯 무더기는 괴로움(dukkha)이다」 + 13.3 「Evaṃ passaṃ…pe… pajānātī''ti」(사슬은 접힘), sn22.14(Anattasutta) 14.2 「다섯 무더기는 무아(anattā)이다」 + 14.3–14.7 사슬과 맺음 정형 전문. 한역 「苦」 ↔ dukkha, 「非我」 ↔ anattā. 한역은 「亦復如是」 한 마디로 무상의 관찰·사슬·맺음을 그대로 옮겨 적용하라 하고 팔리는 펴서 말하므로, 한쪽이 덜 말해 각 항 일부. 13.3의 접힌 안쪽과, 한역이 펴지 않은 사슬 안쪽(12.5 자리 같은 엇갈림이 여기서도 서는지)은 대조하지 못했다. 세 경의 내용을 한 경에 묶은 것은 구조·배열. 「空」은 세 팔리 후보 어디에도 대응하는 경이 없다 — sn22.12–14는 무상·괴로움·무아 셋뿐이다 → 개별 어휘(한역이 한 항을 더 말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12.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3:1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3:13.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4:14.7

AG:sa1/0001a14.1 · 교차 검사

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구속]).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 諸는 「-들」. 歡喜 — 慧琳 0753a01 「鄭注禮記云歡喜悅也」. 한자 흔들림: 같은 분을 a07.1은 「世尊」, 여기와 0.3은 「佛」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대응: 팔리 sn22.12는 12.8 「pajānātī''ti」로 끝나고 대중이 기뻐하며 받들었다는 맺음 정형이 없다(12.9는 경 번호) — 12.8 뒤 자리에 없음확인. 보조 증언 sn22.13(13.3 「pajānātī''ti」로 끝나고 13.4는 경 번호)·sn22.14(14.7로 끝나고 14.8은 경 번호)·sn22.51(51.21 「vuccatī''ti」로 끝나고 51.22는 경 번호)에도 맺음 정형이 없다 — 각각 마지막 설법 좌표 뒤 자리에 없음확인. 13.3의 …pe…는 인용 부호 안쪽에서 닫히므로 맺음 정형 자리에 걸리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2:12.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3:13.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4:14.7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1:51.21

AG:sa1/0001a15.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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