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9)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 「九」 하나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0.3은 품 안 번호 「4.」와 경 이름을 함께 지니므로 한쪽이 더 말하는 일부(partial)다. 15.0의 「15」는 같은 자리의 번호지만 번호 체계가 달라 엇갈림(divergent)으로 둔다. 대응 후보 합의 등급이 conflict다 — 다카쿠스 각주(0002a02)는 「S. 22, 15-17; 35. 182. Yad aniccaṃ」(PTS 번호, 여러 경을 함께 가리킴), 莊春江은 sn22.15 하나를 가리킨다. 이 산출은 투입된 sn22.15만으로 대조했다. 어느 계열이 맞는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0.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15:15.0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저본은 서두를 「Sāvatthinidānaṃ」 한 마디로 접어 두었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으로 둔다. 한문은 접지 않고 전문이다(생략표지 없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구속]). 舍衛=정착어 「사위」(_한자대역_3분할). 이름의 뜻: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는 正梵音을 「室羅伐悉底」로 들고 「聞者城」·「聞物國」으로 옮긴다(듣는 이들의 성, 온갖 것이 들리는 나라). 음역계통: 전거 대장은 팔리 후보 Sāvatthī,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를 함께 싣는다 — 확인된 두 계통으로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전거 표에 「⚠다른 부(DA)의 대역」 표시가 있다). 祇樹給孤獨園은 §⑤ 표가 정착어 예로 「기수급고독원」을 들므로 정착형으로 적었다. 그러나 _한자대역_3분할은 「祇樹給孤獨」을 보류(5자 이상, 판별 요)로 두었고 §⑤는 「給孤獨」을 의역 예(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로도 든다 — 유형이 갈려 로 남긴다. 뜻으로 풀면 「기타 태자의 숲, 외로운 이에게 베푸는 이의 동산」이다. 근거: 慧琳 0368a03 「祇樹」 — 正梵音 誓多, 此譯為勝, 태자가 나무를 남겨 공양했으므로 「祇樹」라 줄여 부른다. 慧琳 0368a05 「給孤獨」 — 義譯, 梵云 阿那陀, 外 「阿那邠邸」. 전거 대장의 팔리 후보는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팔리 저본은 「Sāvatthinidānaṃ」으로 접혀 있어 Sāvatthī 말고는 읽히지 않는다 — 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
爾時,世尊告諸比丘:「色無常,無常即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것은 내 것도 아니다.
주 世尊=세존·比丘=비구([구속]). 앞머리 「爾時,世尊告諸比丘」는 팔리에서 「Sāvatthinidānaṃ」 안으로 접혀 미대응이다. 팔리는 호격 「bhikkhave」를 발화 안에 두고 한역은 서술(告諸比丘)로 옮겼다 — 번역기법(호격 탈락),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팔리 15.5는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 세 항을 두는데 한역은 「非我所」(내 것이 아니다) 한 항만 둔다 — 일부(partial), 문장 유무. 팔리 15.5 뒷부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은 한역에서 다음 좌표(0002a04.1)로 따로 선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이 좌표는 「世尊」, 0.3·0002a10.1은 「佛」. 확정역이 각각 있으므로(세존/부처님) 그대로 두었다. 色·我는 _확정술어_아함판에 행이 없다: 色=「물질」(정착형 「색」도 후보), 非我=「내가 아니다」, 非我所=「내 것이 아니다」로 옮겼다(니까야 attā 확정역은 「자기 자신」 — 한역 「我」에 그것을 쓸지는 미결). 亦은 조사 「도」가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 即은 동일 서술로 「곧」을 세웠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2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3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5
如是觀者,名真實正觀。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을 진실하고 바른 관찰이라 한다.
주 팔리 15.5 끝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에 대응한다. 팔리는 당위형 daṭṭhabba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한역은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을 … 이라 한다」고 명명한다 — 같은 자리에서 일부만 겹친다(yathābhūtaṃ↔真實, sammappaññāya의 「바른」↔正; 「지혜로」에 해당하는 말은 한역에 없다). 「如是觀者」의 者가 사람(관찰하는 이)인지 행위(관찰하는 것)인지 구문이 정하지 않는다 — 명명 「名…觀」에 맞춰 행위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5
如是受、想、行、識無常,無常即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
이와 같이 느낌·인식·형성·의식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것은 내 것도 아니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은 受·想·行·識 넷을 한 문장으로 묶고 정형구를 한 번만 둔다. 팔리는 vedanā를 따로 전문으로 펴고(15.6–15.9), saññā·saṅkhārā는 「…pe…」로 접은 채 viññāṇa와 함께 15.10에 나열한 뒤 정형구를 다시 편다(15.11–15.13) — 구조·배열이 다르다. 15.10은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해 미대응. 15.9·15.13의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 세 항에 한역은 「非我所」 한 항뿐이다(앞 좌표와 같은 갈림). 受는 _확정술어_아함판에서 [정형구 행](vedanā)일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문맥(오온 나열)으로 「느낌」으로 옮기고 을 남긴다. 想·行·識은 확정역 행이 없어 「인식·형성·의식」으로 옮겼다(정착형 「상·행·식」도 후보). 이문: 宋·元·明 세 본에 「非我者」의 「者」가 없다(app 0002002). 있든 없든 뜻은 같아 직역은 大正 본대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6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7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9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0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11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15:15.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13
如是觀者,名真實觀。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관찰이라 한다.
주 팔리 15.9·15.13 끝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에 대응한다(0002a04.1과 같은 갈림 — 당위↔명명). 이문: 大正은 「真實觀」, 宋·元·明 세 본은 「真實正觀」(app 0002003). 세 본을 따르면 0002a04.1과 같은 꼴이 되어 「바른」이 더해진다. 직역은 大正 본대로 「진실한 관찰」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9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15:15.13
「聖弟子!如是觀者,厭於色,厭受、想、行、識,厭故不樂,不樂故得解脫。
「성스러운 제자여! 이와 같이 관찰하는 이는 물질을 싫어하고, 느낌·인식·형성·의식을 싫어한다.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을 얻는다.
주 팔리 15.14는 「Evaṃ passaṃ…pe…」로 접혀 있어 이 자리(염오·이욕·해탈)를 읽을 수 없다 — 미대응. CBETA 구두는 「聖弟子!」를 호격으로 끊었고 직역은 그 구두를 따랐다. 그러나 붓다가 비구들에게 말하는 자리이고 「聖弟子如是觀者」를 「이와 같이 관찰하는 성스러운 제자는」으로 이어 읽으면 주어가 된다 — 끊는 자리가 둘이다. 「聖弟子」에 대응할 팔리 낱말은 15.14의 접힌 안쪽에 있어 투입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不樂」은 「즐거워하지 않는다」로 옮겼다 — 이 자리의 팔리 낱말도 접힌 안쪽이라 대조하지 않고 판정하지 않는다. 厭은 「싫어하다」. 得은 획득으로 읽어 「해탈을 얻는다」. 於는 조사 「을」이 진다. 전거 대장: 解脫 당대 범어 후보 mukti, 근대 Makṣa(그대로 인용, 판정 안 함).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4
解脫者真實智生:『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해탈한 이에게는 진실한 지혜가 생긴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행은 섰으며, 해야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음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팔리 15.14는 「…pe…」로 접혀 앞부분을 읽을 수 없고, 읽히는 끝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만 한역 「自知不受後有」와 겹친다 — 접힌 구간에 걸려 미대응으로 둔다. 梵行은 _한자대역_3분할에서 의역, _확정술어_아함판에서 [정형구 행](brahmacariya)일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 뜻으로 「청정한 행」으로 옮겼다(정형구 행 앞머리는 「청정한 삶」). 근거 인용: 慧琳 『一切經音義』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生은 두 갈래로 쓰였다 — 「智生」은 동사(생긴다), 「我生」은 명사(태어남, 정형구 행 jāti). 已는 완료 어미가 지므로 「이미」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自知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所作은 관형절 「해야 할 일」로 풀었다. 後有는 명사 「다음 존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15:15.14
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比丘=비구([구속]). 팔리 sn22.15는 15.14 「…pajānātī’’ti.」로 붓다의 발화를 닫고 15.15 「Catutthaṃ.」(경 차례 표시)로 끝난다. 끝맺음은 접히지 않았고 비구들이 기뻐했다는 맺음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absent). 이 좌표의 「佛」과 0002a03.1의 「世尊」은 한자 흔들림으로 그 좌표에서 신고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15: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