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atokāriñāṇaniddeso
5. 마음챙겨 행하는 이의 앎에 대한 해설
163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의 서른두 가지 앎이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가 숲이나 나무 밑이나 빈집으로 간다. 거기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운 채, 얼굴 앞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Katamāni bāttiṃsa satokārissa ñāṇāni?
마음챙겨 행하는 이의 서른두 가지 앎이란 무엇인가?
Idha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동으로 가거나 빈 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확립하고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안다.
So satova assasati sato passasati.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안다.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안다.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온몸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희열을 알아차리며, 즐거움을 알아차리며,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마음을 알아차리며,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이어서 ‘마음을 집중하며, 마음을 풀어주며, 무상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또 ‘여읨을 관찰하며, 소멸을 관찰하며,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Pītipaṭisaṃvedī…pe… sukhapaṭisaṃvedī…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cittapaṭisaṃvedī… abhippamodayaṃ cittaṃ… samādahaṃ cittaṃ… vimocayaṃ cittaṃ… aniccānupassī… virāgānupassī… nirodhānupassī…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희열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희열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행복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행복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해탈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을 해탈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무상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무상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힌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3.8 ~ PN:ps67/163.11에서 되살렸습니다.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164
‘여기’란 이 견해, 이 인내, 이 취향, 이 받아들임을 뜻한다. 또 이 법, 이 율, 이 법과 율을 뜻한다. 그리고 이 가르침, 이 청정한 삶, 이 스승의 가르침도 가리킨다. 그래서 ‘여기’라고 말한다.[불확실]
Idhāti imissā diṭṭhiyā, imissā khantiyā, imissā ruciyā, imasmiṃ ādāye, imasmiṃ dhamme, imasmiṃ vinaye, imasmiṃ dhammavinaye, imasmiṃ pāvacane, imasmiṃ brahmacariye, imasmiṃ satthusāsane.
‘여기’란 이 견해에서, 이 인정에서, 이 선호에서, 이 받아들임에서, 이 법에서, 이 율에서, 이 법과 율에서, 이 가르침에서, 이 청정한 삶에서, 이 스승의 교법에서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idhā’’ti.
‘여기’라고.
‘비구’란 선한 범부인 비구, 배우는 이, 또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지닌 아라한을 말한다. ‘숲’이란 성문 기둥 밖으로 나가면 그곳이 모두 숲이다.
Bhikkhūti puthujjanakalyāṇako vā hoti bhikkhu sekkho vā arahā vā akuppadhammo.
‘비구’란 훌륭한 범부인 비구이거나, 유학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성품을 지닌 아라한이다.
Araññanti nikkhamitvā bahi indakhīlā sabbametaṃ araññaṃ.
‘숲’이란, 나가서 인다의 기둥 바깥, 이 모두가 숲이다.
‘나무 밑’이란 비구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둔 곳이다. 침상, 의자, 방석, 돗자리, 가죽 조각, 풀 깔개, 잎 깔개, 짚 깔개가 놓인 곳이다. 비구는 거기서 거닐고, 서고, 앉고, 눕는다.
Rukkhamūlanti yattha bhikkhuno āsanaṃ paññattaṃ hoti mañco vā pīṭhaṃ vā bhisi vā taṭṭikā vā cammakhaṇḍo vā tiṇasantharo vā paṇṇasantharo vā palālasantharo vā, tattha bhikkhu caṅkamati vā tiṭṭhati vā nisīdati vā seyyaṃ vā kappeti.
‘나무 밑동’이란, 비구에게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곳 — 침상이든 의자든 방석이든 깔개든 가죽 조각이든 풀자리든 잎자리든 짚자리든 — 거기서 비구가 거닐거나 서거나 앉거나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곳이다.
‘빈’이란 재가자든 출가자든 누구에게도 붐비지 않는 곳이다. ‘집’이란 승원, 반 지붕 집, 누각, 전각, 동굴을 말한다.
Suññanti kenaci anākiṇṇaṃ hoti gahaṭṭhehi vā pabbajitehi vā.
‘빈’이란, 재가자로든 출가자로든 누구로도 붐비지 않는 것이다.
Agāranti vihāro aḍḍhayogo pāsādo hammiyaṃ guhā.
‘집’이란 정사, 반쯤 지은 집, 누각, 다락집, 동굴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는 것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는 뜻이다. ‘몸을 곧게 세우고’는 몸이 곧고 바르게 놓여 있다는 뜻이다.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ti nisinno hoti pallaṅkaṃ ābhujitvā.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다.
Ujuṃ kāyaṃ paṇidhāyāti ujuko hoti kāyo ṭhito supaṇihito.
‘몸을 곧추세우고’란, 몸이 곧고 서 있고 잘 세워져 있는 것이다.
‘얼굴 앞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는 것은 이렇다. ‘앞’은 붙잡는다는 뜻이고, ‘얼굴’은 벗어나 나아간다는 뜻이며, ‘마음챙김’은 확립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얼굴 앞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고 말한다.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ti.
‘마음챙김을 앞에 확립하고’란.
Parīti pariggahaṭṭho.
‘빠리’란 감싸 쥠의 뜻이다.
Mukhanti niyyānaṭṭho.
‘무카’란 벗어남의 뜻이다.
Satīti upaṭṭhānaṭṭho.
‘사띠’란 확립의 뜻이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ti.
‘마음챙김을 앞에 확립하고’라고.
165
‘마음챙기며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내쉰다’는 것은, 서른두 가지 방식으로 마음챙기며 행한다는 뜻이다.
Satova assasati, sato passasatīti bāttiṃsāya ākārehi sato kārī hoti.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란, 서른두 가지 방식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되는 것이다.
길게 들이쉬는 쪽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가 된다.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길게 내쉬는 쪽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가 된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짧게 들이쉬는 쪽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가 된다.
Rass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짧은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짧게 내쉬는 쪽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가 된다. 이어서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들이쉬는 쪽으로도, 내쉬는 쪽으로도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가 된다.
Rass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짧은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vasena paṭinissaggānupassī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해탈하게 하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마음을 해탈하게 하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무상을 거듭 살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무상을 거듭 살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소멸을 거듭 살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소멸을 거듭 살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을 통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5.2 ~ PN:ps67/165.8에서 되살렸습니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ato kārī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마음챙겨 행하는 이가 된다.
첫 번째 네 가지에 대한 해설Paṭhamacatukkaniddeso
166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아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Kathaṃ dīghaṃ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는 것은 어떻게인가?
긴 들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긴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긴 들숨날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이렇게 긴 들숨날숨을 헤아려 들이쉬고 내쉴 때 의욕이 일어난다.
Dīghaṃ 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 dīghaṃ 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passasati,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긴 들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고, 긴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내쉬고,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chando uppajjati.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열의가 일어난다.
의욕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쉰다. 같은 의욕으로 더 미세한 긴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긴 들숨날숨 역시 그렇게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passasati,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열의를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고, 열의를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내쉬고, 열의를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의욕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날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내쉰다. 그때 기쁨이 일어난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pāmojjaṃ uppajjati.
열의를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기쁨이 일어난다.
기쁨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쉰다. 같은 기쁨으로 더 미세한 긴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긴 들숨날숨 역시 그렇게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passasati,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기쁨을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고, 기쁨을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내쉬고, 기쁨을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기쁨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날숨을 오래 이어지는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내쉰다. 그때 마음이 긴 들숨날숨에서도 돌아선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dīghaṃ assāsapassāsaṃ addhān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dīghaṃ assāsapassāsāpi cittaṃ vivattati, upekkhā saṇṭhāti.
기쁨을 통해 그보다 더 미세한 긴 들숨과 날숨을 긴 동안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긴 들숨과 날숨으로부터도 마음이 돌아서고, 평온이 자리 잡는다.
이 아홉 가지 방식으로 긴 들숨날숨은 몸이다. 확립이 마음챙김이고, 관찰이 앎이다.
Imehi navahākārehi dīghaṃ assāsapassāsā kāyo.
이 아홉 가지 방식으로 긴 들숨과 날숨이 몸이다.
Upaṭṭhānaṃ sati.
확립이 마음챙김이다.
Anupassanā ñāṇaṃ.
거듭 살핌이 앎이다.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을 관찰한다. 그래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Kāyo upaṭṭhānaṃ, no sati;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kāy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kāye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167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몸을 관찰하는 것인가?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그 몸을 어떻게 거듭 살피는가?
무상한 것으로 관찰하지 항상한 것으로 관찰하지 않고, 괴로움으로 관찰하지 즐거움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무아로 관찰하지 자아로 관찰하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고, 탐욕에서 벗어나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으키지 않고, 내려놓지 움켜쥐지 않는다.
Aniccato anupassati, no niccato.
무상으로 거듭 살피지, 항상함으로 거듭 살피지 않는다.
Dukkhato anupassati, no sukhato.
괴로움으로 거듭 살피지, 즐거움으로 거듭 살피지 않는다.
Anattato anupassati, no attato.
무아로 거듭 살피지, 자아로 거듭 살피지 않는다.
Nibbindati, no nandati.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Virajjati, no rajjati.
탐욕을 떠나지, 탐욕에 물들지 않는다.
Nirodheti, no samudeti.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Paṭinissajjati, no ādiyati.
놓아버리지, 취하지 않는다.
무상한 것으로 관찰하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괴로움으로 관찰하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로 관찰하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리고, 탐욕에서 벗어나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리고, 내려놓으면서 움켜쥠을 버린다. 이렇게 그 몸을 관찰한다.
Aniccato anupassanto niccasaññaṃ pajahati.
무상으로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Dukkhato anupassanto sukhasaññaṃ pajahati.
괴로움으로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Anattato anupassanto attasaññaṃ pajahati.
무아로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Nibbindanto nandiṃ pajahati.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즐김을 버린다.
Virajjanto rāgaṃ pajahati.
탐욕을 떠나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Nirodhento samudayaṃ pajahati.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Paṭinissajjanto ādānaṃ pajahati.
놓아버리는 이는 취함을 버린다.
Ev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
이렇게 그 몸을 거듭 살핀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거기서 생긴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의 닦음,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의 닦음이 있다. 또 그에 알맞은 정진을 이끈다는 뜻의 닦음,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이 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 –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tattha jātānaṃ dhammānaṃ anativattanaṭṭhena bhāvanā, indriyānaṃ ekarasaṭṭhena bhāvanā, tadupagavīriyavāhanaṭṭhena bhāvanā,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맞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난다. 그 느낌들은 분명히 알려진 채 머물고, 분명히 알려진 채 사라진다. 인식들도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생각들도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Dīgh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긴 들숨과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사유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가? 먼저, 느낌의 일어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Kathaṃ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는 것은 어떻게인가?
Kathaṃ vedanāya uppādo vidito hoti?
느낌의 생겨남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하여,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Avijjāsamudayā vedanāsamudayoti –
‘무명의 일어남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있다’고 —
paccayasamudayaṭṭhena vedanāya uppādo vidito hoti.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Taṇhāsamudayā vedanāsamudayoti… kammasamudayā vedanāsamudayoti…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ti paccayasamudayaṭṭhena vedanāya uppādo vidito hoti.
‘갈애의 일어남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업의 일어남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접촉의 일어남으로 느낌의 일어남이 있다’고,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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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bbattilakkhaṇaṃ passatopi vedanāya uppādo vidito hoti.
생겨남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Evaṃ vedanāya uppādo vidito hoti.
이렇게 느낌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느낌의 나타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상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무너짐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괴로움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무아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텅 빔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vedanāya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느낌의 확립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niccato manasikaroto k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Dukkhato manasikaroto b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괴로움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Anattato manasikaroto suññ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아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비어 있음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Evaṃ vedanāya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이렇게 느낌의 확립이 알려진다.
느낌의 사라짐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하여,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느낌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느낌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변해 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vedan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느낌의 사라짐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vijjānirodhā vedanānirodhoti –
‘무명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이 있다’고 —
paccayanirodhaṭṭhena vedan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Taṇhānirodhā vedanānirodhoti …pe… kammanirodhā vedanānirodhoti…pe…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ti paccayanirodhaṭṭhena vedan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갈애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이 있다’고,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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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ariṇāmalakkhaṇaṃ passatopi vedan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변하여 달라짐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Evaṃ vedan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분명히 알려진 채 머물고, 분명히 알려진 채 사라진다.
Evaṃ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가? 먼저, 인식의 일어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Kathaṃ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는 것은 어떻게인가?
Kathaṃ saññāya uppādo vidito hoti?
인식의 생겨남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하여,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Avijjāsamudayā saññāsamudayoti –
‘무명의 일어남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있다’고 —
paccayasamudayaṭṭhena saññāya uppādo vidito hoti.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Taṇhāsamudayā saññāsamudayoti…pe… kammasamudayā saññāsamudayoti…pe… phassasamudayā saññāsamudayoti –
‘갈애의 일어남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업의 일어남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접촉의 일어남으로 인식의 일어남이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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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cayasamudayaṭṭhena saññāya uppādo vidito hoti.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Nibbattilakkhaṇaṃ passatopi saññāya uppādo vidito hoti.
생겨남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Evaṃ saññāya uppādo vidito hoti.
이렇게 인식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인식의 나타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상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무너짐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괴로움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무아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텅 빔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saññāya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인식의 확립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niccato manasikaroto k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Dukkhato manasikaroto b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괴로움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Anattato manasikaroto suññ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아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비어 있음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Evaṃ saññāya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이렇게 인식의 확립이 알려진다.
인식의 사라짐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하여,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인식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인식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변해 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saññ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인식의 사라짐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vijjānirodhā saññānirodhoti –
‘무명의 소멸로 인식의 소멸이 있다’고 —
paccayanirodhaṭṭhena saññ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Taṇhānirodhā saññānirodhoti…pe… kammanirodhā saññānirodhoti…pe… phassanirodhā saññānirodhoti –
‘갈애의 소멸로 인식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의 소멸로 인식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의 소멸로 인식의 소멸이 있다’고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55 ~ PN:ps67/167.56에서 되살렸습니다.
paccayanirodhaṭṭhena saññ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Vipariṇāmalakkhaṇaṃ passatopi saññ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변하여 달라짐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Evaṃ saññāya atthaṅgamo vidito hoti.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분명히 알려진 채 머물고, 분명히 알려진 채 사라진다.
Evaṃ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어떻게 생각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가? 먼저, 생각들의 일어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Kathaṃ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사유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는 것은 어떻게인가?
Kathaṃ vitakkānaṃ uppādo vidito hoti?
사유들의 생겨남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여,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생각들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일어나므로 생각이 일어난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생각들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생각들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생각들의 일어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Avijjāsamudayā vitakkasamudayoti –
‘무명의 일어남으로 사유의 일어남이 있다’고 —
paccayasamudayaṭṭhena vitakkānaṃ uppādo vidito hoti.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Taṇhāsamudayā vitakkasamudayoti…pe… kammasamudayā vitakkasamudayoti…pe… saññāsamudayā vitakkasamudayoti –
‘갈애의 일어남으로 사유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업의 일어남으로 사유의 일어남이 있다’고 —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인식의 일어남으로 사유의 일어남이 있다’고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64 ~ PN:ps67/167.65에서 되살렸습니다.
paccayasamudayaṭṭhena vitakkānaṃ uppādo vidito hoti.
조건의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Nibbattilakkhaṇaṃ passatopi vitakkānaṃ uppādo vidito hoti.
생겨남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Evaṃ vitakkānaṃ uppādo vidito hoti.
이렇게 사유들의 생겨남이 알려진다.
생각들의 나타남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상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무너짐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괴로움으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무아로 마음에 새기는 이에게는 텅 빔으로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생각들의 나타남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vitakkānaṃ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사유들의 확립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niccato manasikaroto k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Dukkhato manasikaroto bhay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괴로움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Anattato manasikaroto suññat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무아로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비어 있음이라는 확립이 알려진다.
Evaṃ vitakkānaṃ upaṭṭhānaṃ viditaṃ hoti.
이렇게 사유들의 확립이 알려진다.
생각들의 사라짐은 어떻게 분명히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생각이 소멸한다’고 하여,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생각들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생각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업이 소멸하므로 생각이 소멸한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생각이 소멸한다’고 하여도 같다. 모두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으로 생각들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변해 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생각들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생각들의 사라짐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vitakkānaṃ atthaṅgamo vidito hoti?
사유들의 사라짐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Avijjānirodhā vitakkanirodhoti –
‘무명의 소멸로 사유의 소멸이 있다’고 —
paccayanirodhaṭṭhena vitakkānaṃ atthaṅgamo vidito hoti.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Taṇhānirodhā vitakkanirodhoti…pe… kammanirodhā vitakkanirodhoti…pe… saññānirodhā vitakkanirodhoti –
‘갈애의 소멸로 사유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의 소멸로 사유의 소멸이 있다’고 —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의 소멸로 사유의 소멸이 있다’고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76 ~ PN:ps67/167.77에서 되살렸습니다.
paccayanirodhaṭṭhena vitakkānaṃ atthaṅgamo vidito hoti.
조건의 소멸이라는 뜻에서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Vipariṇāmalakkhaṇaṃ passatopi vitakkānaṃ atthaṅgamo vidito hoti.
변하여 달라짐의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Evaṃ vitakkānaṃ atthaṅgamo vidito hoti.
이렇게 사유들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생각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분명히 알려진 채 머물고, 분명히 알려진 채 사라진다.
Evaṃ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이렇게 사유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러 있고, 알려진 채로 스러져 간다.
168
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영역을 알고,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 이어서 길을 한데 모으고 법들을 한데 모은다. 그리고 영역을 알고,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
Dīgh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gocarañca pajānāti, samatthañca paṭivijjhati…pe… maggaṃ samodhāneti, dhamme samodhāneti, gocarañca pajānāti, samatthañca paṭivijjhati.
긴 들숨과 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꿰뚫어 아는 이는 기능들을 모으고, 영역을 꿰뚫어 알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 힘들을 모으고, 영역을 꿰뚫어 알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고, 영역을 꿰뚫어 알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 도를 모으고, 법들을 모으고, 영역을 꿰뚫어 알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2.32에서 되살렸습니다.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기능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확신하는 뜻으로 믿음의 기능을, 분발하는 뜻으로 정진의 기능을 한데 모은다. 확립하는 뜻으로 마음챙김의 기능을,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삼매의 기능을 한데 모은다. 보는 뜻으로 지혜의 기능을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기능들을 이 대상에 한데 모은다. 그래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고 말한다.
Indriyāni samodhānetīti kathaṃ indriyāni samodhāneti?
‘기능들을 모은다’란, 어떻게 기능들을 모으는가?
Adhimokkhaṭṭhena saddhindriyaṃ samodhāneti, paggahaṭṭhena vīriyindriyaṃ samodhāneti,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ndriyaṃ samodhāneti, avikkhepaṭṭhena samādhindriyaṃ samodhāneti, dassanaṭṭhena paññindriyaṃ samodhāneti.
확신이라는 뜻에서 믿음의 기능을 모으고, 다잡음이라는 뜻에서 정진의 기능을 모으고, 확립이라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기능을 모으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삼매의 기능을 모으고, 봄이라는 뜻에서 지혜의 기능을 모은다.
Ayaṃ puggalo imāni indriyāni imasmiṃ ārammaṇe samodhāneti.
이 사람은 이 기능들을 이 대상에서 모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indriyāni samodhānetī’’ti.
‘기능들을 모은다’고.
‘영역을 안다’는 것은, 그에게 대상인 것이 그에게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영역인 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안다’는 것의 주체는 사람이고, 아는 일이 지혜이다.
Gocarañca pajānātīti yaṃ tassa ārammaṇaṃ, taṃ tassa gocaraṃ.
‘그리고 영역을 꿰뚫어 안다’란, 그에게 대상인 것, 그것이 그에게 영역이다.
Yaṃ tassa gocaraṃ, taṃ tassa ārammaṇaṃ.
그에게 영역인 것, 그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Pajānātīti puggalo.
‘꿰뚫어 안다’란 사람이다.
Pajānanā paññā.
꿰뚫어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이 확립되는 것이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마음이 굳게 서는 것이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뜻’이란 허물이 없다는 뜻, 번뇌가 없다는 뜻, 깨끗하다는 뜻, 으뜸이라는 뜻이다. ‘꿰뚫는다’는 것은 대상이 확립된다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는 뜻을 꿰뚫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굳게 선다는 뜻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도 꿰뚫는다는 것이다.
Samanti ārammaṇassa upaṭṭhānaṃ samaṃ, cittassa avikkhepo samaṃ, cittassa adhiṭṭhānaṃ samaṃ, cittassa vodānaṃ samaṃ.
‘고름’이란 대상의 확립이 고름이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 고름이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 고름이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 고름이다.
Atthoti anavajjaṭṭho nikkilesaṭṭho vodānaṭṭho paramaṭṭho.
‘뜻’이란 허물없음의 뜻, 오염 없음의 뜻, 깨끗이 함의 뜻, 으뜸의 뜻이다.
Paṭivijjhatīti ārammaṇassa upaṭṭh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avikkhep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adhiṭṭh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vod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꿰뚫는다’란 대상의 확립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라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고.
‘힘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힘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믿음 없음에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믿음의 힘을,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정진의 힘을 한데 모은다. 방일에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마음챙김의 힘을, 들뜸에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삼매의 힘을 한데 모은다.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지혜의 힘을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힘들을 이 대상에 한데 모은다. 그래서 ‘힘들을 한데 모은다’고 말한다.
Balāni samodhānetīti kathaṃ balāni samodhāneti?
‘힘들을 모은다’란, 어떻게 힘들을 모으는가?
Assaddhiye akampiyaṭṭhena saddhābalaṃ samodhāneti, kosajje akampiyaṭṭhena vīriyabalaṃ samodhāneti, pamāde akampiyaṭṭhena satibalaṃ samodhāneti, uddhacce akampiyaṭṭhena samādhibalaṃ samodhāneti, avijjāya akampiyaṭṭhena paññābalaṃ samodhāneti.
믿음 없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을 모으고,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을 모으고, 방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을 모으고, 들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을 모으고,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을 모은다.
Ayaṃ puggalo imāni balāni imasmiṃ ārammaṇe samodhāneti.
이 사람은 이 힘들을 이 대상에서 모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balāni samodhānetīti.
힘들을 모은다고.
‘영역을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Gocarañca pajānātīti…pe… tena vuccati –
‘그리고 영역을 꿰뚫어 안다’란, 그에게 대상인 것, 그것이 그에게 영역이다. 그에게 영역인 것, 그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꿰뚫어 안다’란 사람이다. 꿰뚫어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의 확립이 고름이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 고름이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 고름이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 고름이다. ‘뜻’이란 허물없음의 뜻, 오염 없음의 뜻, 깨끗이 함의 뜻, 으뜸의 뜻이다. ‘꿰뚫는다’란 대상의 확립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라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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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고.
‘깨달음의 요소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깨달음의 요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확립하는 뜻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 요소를, 가려내는 뜻으로 법을 가려냄의 깨달음 요소를 한데 모은다. 분발하는 뜻으로 정진의 깨달음 요소를, 번져 가는 뜻으로 희열의 깨달음 요소를 한데 모은다. 가라앉는 뜻으로 고요함의 깨달음 요소를,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삼매의 깨달음 요소를 한데 모은다. 숙고하는 뜻으로 평정의 깨달음 요소를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깨달음의 요소들을 이 대상에 한데 모은다. 그래서 ‘깨달음의 요소들을 한데 모은다’고 말한다.
Bojjhaṅge samodhānetīti kathaṃ bojjhaṅge samodhāneti?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은다’란, 어떻게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는가?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pavicayaṭṭhena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paggahaṭṭhena vīriya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pharaṇaṭṭhena pīti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upasamaṭṭhena passaddhi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avikkhepaṭṭhena samādhi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paṭisaṅkhānaṭṭhena upekkhāsambojjhaṅgaṃ samodhāneti.
확립이라는 뜻에서 마음챙김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가려냄이라는 뜻에서 법을 가려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다잡음이라는 뜻에서 정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퍼짐이라는 뜻에서 희열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가라앉음이라는 뜻에서 고요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삼매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으고, 되살펴 봄이라는 뜻에서 평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를 모은다.
Ayaṃ puggalo ime bojjhaṅge imasmiṃ ārammaṇe samodhāneti.
이 사람은 이 깨달음의 요소들을 이 대상에서 모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bojjhaṅge samodhānetī’’ti.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은다’고.
‘영역을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Gocarañca pajānātīti…pe… tena vuccati –
‘그리고 영역을 꿰뚫어 안다’란, 그에게 대상인 것, 그것이 그에게 영역이다. 그에게 영역인 것, 그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꿰뚫어 안다’란 사람이다. 꿰뚫어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의 확립이 고름이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 고름이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 고름이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 고름이다. ‘뜻’이란 허물없음의 뜻, 오염 없음의 뜻, 깨끗이 함의 뜻, 으뜸의 뜻이다. ‘꿰뚫는다’란 대상의 확립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라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8.7 ~ PN:ps67/168.13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고.
‘길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길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보는 뜻으로 바른 견해를, 겨냥하는 뜻으로 바른 생각을 한데 모은다. 붙드는 뜻으로 바른 말을, 일으키는 뜻으로 바른 행위를 한데 모은다. 깨끗이 하는 뜻으로 바른 생계를, 분발하는 뜻으로 바른 노력을 한데 모은다. 확립하는 뜻으로 바른 마음챙김을,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바른 삼매를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길을 이 대상에 한데 모은다. 그래서 ‘길을 한데 모은다’고 말한다.
Maggaṃ samodhānetīti kathaṃ maggaṃ samodhāneti?
‘도를 모은다’란, 어떻게 도를 모으는가?
Dassanaṭṭhena sammādiṭṭhiṃ samodhāneti, abhiniropanaṭṭhena sammāsaṅkappaṃ samodhāneti, pariggahaṭṭhena sammāvācaṃ samodhāneti, samuṭṭhānaṭṭhena sammākammantaṃ samodhāneti, vodānaṭṭhena sammāājīvaṃ samodhāneti, paggahaṭṭhena sammāvāyāmaṃ samodhāneti, upaṭṭhānaṭṭhena sammāsatiṃ samodhāneti, avikkhepaṭṭhena sammāsamādhiṃ samodhāneti.
봄이라는 뜻에서 바른 견해를 모으고, 마음을 얹음이라는 뜻에서 바른 사유를 모으고, 감싸 쥠이라는 뜻에서 바른 말을 모으고, 일으켜 세움이라는 뜻에서 바른 행위를 모으고, 깨끗이 함이라는 뜻에서 바른 생계를 모으고, 다잡음이라는 뜻에서 바른 정진을 모으고, 확립이라는 뜻에서 바른 마음챙김을 모으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바른 삼매를 모은다.
Ayaṃ puggalo imaṃ maggaṃ imasmiṃ ārammaṇe samodhāneti.
이 사람은 이 도를 이 대상에서 모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maggaṃ samodhānetī’’ti.
‘도를 모은다’고.
‘영역을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Gocarañca pajānātīti…pe… tena vuccati –
‘그리고 영역을 꿰뚫어 안다’란, 그에게 대상인 것, 그것이 그에게 영역이다. 그에게 영역인 것, 그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꿰뚫어 안다’란 사람이다. 꿰뚫어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의 확립이 고름이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 고름이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 고름이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 고름이다. ‘뜻’이란 허물없음의 뜻, 오염 없음의 뜻, 깨끗이 함의 뜻, 으뜸의 뜻이다. ‘꿰뚫는다’란 대상의 확립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굳게 세움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깨끗이 함이라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8.7 ~ PN:ps67/168.13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른 뜻을 꿰뚫는다’고.
‘법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법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지배하는 뜻으로 기능들을, 흔들리지 않는 뜻으로 힘들을 한데 모은다. 벗어나게 하는 뜻으로 깨달음의 요소들을, 원인이라는 뜻으로 길을 한데 모은다. 확립하는 뜻으로 마음챙김의 확립을, 애쓰는 뜻으로 바른 노력을 한데 모은다. 이루어지는 뜻으로 신통의 바탕을, 그러하다는 뜻으로 진리를 한데 모은다.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사마타를, 관찰하는 뜻으로 위빠사나를 한데 모은다. 한 맛이라는 뜻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서로 넘어서지 않는 뜻으로 쌍으로 묶임을 한데 모은다.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을,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마음의 청정을 한데 모은다. 보는 뜻으로 견해의 청정을, 풀려나는 뜻으로 해탈을 한데 모은다. 꿰뚫는 뜻으로 명지를, 내던지는 뜻으로 풀려남을 한데 모은다. 끊어 없애는 뜻으로 다함에 대한 앎을, 가라앉는 뜻으로 일어나지 않음에 대한 앎을 한데 모은다. 뿌리라는 뜻으로 의욕을, 일으키는 뜻으로 마음에 새김을 한데 모은다. 모이는 뜻으로 접촉을, 함께 모이는 뜻으로 느낌을 한데 모은다. 으뜸이라는 뜻으로 삼매를, 지배하는 뜻으로 마음챙김을 한데 모은다. 그 위라는 뜻으로 지혜를, 알맹이라는 뜻으로 풀려남을 한데 모은다. 끝이라는 뜻으로 불사에 잠긴 열반을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법들을 이 대상에 한데 모은다. 그래서 ‘법들을 한데 모은다’고 말한다.
Dhamme samodhānetīti kathaṃ dhamme samodhāneti?
‘법들을 모은다’란, 어떻게 법들을 모으는가?
Ādhipateyyaṭṭhena indriyāni samodhāneti, akampiyaṭṭhena balāni samodhāneti, niyyānaṭṭhena bojjhaṅge samodhāneti, hetuṭṭhena maggaṃ samodhāneti,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paṭṭhānaṃ samodhāneti, padahanaṭṭhena sammappadhānaṃ samodhāneti, ijjhanaṭṭhena iddhipādaṃ samodhāneti tathaṭṭhena saccaṃ samodhāneti, avikkhepaṭṭhena samathaṃ samodhāneti, anupassanaṭṭhena vipassanaṃ samodhāneti, ekarasaṭṭhena samathavipassanaṃ samodhāneti, anativattanaṭṭhena yuganaddhaṃ samodhāneti,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ṃ samodhāneti, avikkhepaṭṭhena cittavisuddhiṃ samodhāneti, dassanaṭṭhena diṭṭhivisuddhiṃ samodhāneti, vimuttaṭṭhena vimokkhaṃ samodhāneti, paṭivedhaṭṭhena vijjaṃ samodhāneti, pariccāgaṭṭhena vimuttiṃ samodhāneti, samucchedaṭṭhena khaye ñāṇaṃ samodhāneti, paṭippassaddhaṭṭhena anuppāde ñāṇaṃ samodhāneti, chandaṃ mūlaṭṭhena samodhāneti, manasikāraṃ samuṭṭhānaṭṭhena samodhāneti, phassaṃ samodhānaṭṭhena samodhāneti, vedanaṃ samosaraṇaṭṭhena samodhāneti, samādhiṃ pamukhaṭṭhena samodhāneti, satiṃ ādhipateyyaṭṭhena samodhāneti, paññaṃ tatuttaraṭṭhena samodhāneti, vimuttiṃ sāraṭṭhena samodhāneti, amatogadhaṃ nibbānaṃ pariyosānaṭṭhena samodhāneti.
지배라는 뜻에서 기능들을 모으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힘들을 모으며, 벗어남이라는 뜻에서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고, 원인이라는 뜻에서 도를 모으며, 확립이라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확립을 모으고, 애쓴다는 뜻에서 바른 노력을 모으며,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성취수단을 모으고, 있는 그대로라는 뜻에서 진리를 모으며,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사마타를 모으고, 거듭 살핌이라는 뜻에서 위빳사나를 모으며, 한맛이라는 뜻에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모으고,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함께 묶임을 모으며,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을 모으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을 모으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을 모으고, 벗어났다는 뜻에서 해탈을 모으며, 꿰뚫음이라는 뜻에서 명지를 모으고, 온전히 버림이라는 뜻에서 해탈을 모으며, 끊어 버림이라는 뜻에서 다함에 대한 앎을 모으고, 가라앉음이라는 뜻에서 일어나지 않음에 대한 앎을 모으며, 열의를 뿌리라는 뜻에서 모으고, 마음 기울임을 일어남이라는 뜻에서 모으며, 접촉을 한데 모임이라는 뜻에서 모으고, 느낌을 모여듦이라는 뜻에서 모으며, 삼매를 앞장선다는 뜻에서 모으고, 마음챙김을 지배라는 뜻에서 모으며, 통찰지를 그보다 위라는 뜻에서 모으고, 해탈을 핵심이라는 뜻에서 모으며, 불사에 잠기는 열반을 마침이라는 뜻에서 모은다.
Ayaṃ puggalo ime dhamme imasmiṃ ārammaṇe samodhāneti.
이 사람은 이 법들을 이 대상에서 모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dhamme samodhānetī’’ti.
‘법들을 모은다’고.
‘영역을 안다’는 것은, 그에게 대상인 것이 그에게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영역인 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안다’는 것의 주체는 사람이고, 아는 일이 지혜이다.
Gocarañca pajānātīti yaṃ tassa ārammaṇaṃ, taṃ tassa gocaraṃ.
‘활동 영역도 분명히 안다’란, 그에게 대상인 것, 그것이 그에게 활동 영역이다.
Yaṃ tassa gocaraṃ, taṃ tassa ārammaṇaṃ pajānātīti puggalo.
그에게 활동 영역인 것, 그것이 그에게 대상이다. ‘분명히 안다’란 사람이다.
Pajānanā paññā.
분명히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이 확립되는 것이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마음이 굳게 서는 것이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뜻’이란 허물이 없다는 뜻, 번뇌가 없다는 뜻, 깨끗하다는 뜻, 으뜸이라는 뜻이다. ‘꿰뚫는다’는 것은 대상이 확립된다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는 뜻을 꿰뚫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굳게 선다는 뜻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도 꿰뚫는다는 것이다.
Samanti ārammaṇassa upaṭṭhānaṃ samaṃ, cittassa avikkhepo samaṃ, cittassa adhiṭṭhānaṃ samaṃ, cittassa vodānaṃ samaṃ.
‘고름’이란, 대상의 확립이 고름이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이 고름이며, 마음의 굳건함이 고름이고, 마음의 깨끗함이 고름이다.
Atthoti anavajjaṭṭho nikkilesaṭṭho vodānaṭṭho paramaṭṭho.
‘뜻’이란 허물없음의 뜻, 오염 없음의 뜻, 깨끗함의 뜻, 으뜸의 뜻이다.
Paṭivijjhatīti ārammaṇassa upaṭṭh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avikkhep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adhiṭṭh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cittassa vodānaṭṭhaṃ paṭivijjhati.
‘꿰뚫는다’란, 대상의 확립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을 꿰뚫으며, 마음의 굳건함이라는 뜻을 꿰뚫고, 마음의 깨끗함이라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도 꿰뚫는다’고.
169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아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Kathaṃ rassaṃ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어떻게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아는가?
짧은 들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짧은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짧은 들숨날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이렇게 짧은 들숨날숨을 헤아려 들이쉬고 내쉴 때 의욕이 일어난다.
Rassaṃ 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 rassaṃ 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passasati,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짧은 들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고, 짧은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내쉬며,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chando uppajjati.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열의가 일어난다.
의욕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쉰다. 같은 의욕으로 더 미세한 짧은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짧은 들숨날숨 역시 그렇게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
열의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쉰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passasati.
열의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내쉰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열의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의욕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날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내쉰다. 그때 기쁨이 일어난다.
Chand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pāmojjaṃ uppajjati.
열의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환희가 일어난다.
기쁨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쉰다. 같은 기쁨으로 더 미세한 짧은 날숨도 그렇게 헤아려 내쉰다. 짧은 들숨날숨 역시 그렇게 헤아려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passasati,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ipi passasatipi.
환희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고, 환희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내쉬며, 환희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한다.
기쁨에 힘입어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날숨을 잠깐인 것으로 헤아려 들이쉬고 내쉰다. 그때 마음이 짧은 들숨날숨에서도 돌아선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āmojjavasena tato sukhumataraṃ rassaṃ assāsapassāsaṃ ittarasaṅkhāte assasatopi passasatopi rassā assāsapassāsā cittaṃ vivattati, upekkhā saṇṭhāti.
환희의 힘으로 그보다 더 미세한 짧은 들숨과 날숨을 짧은 시간이라 헤아려지는 동안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하는 이에게, 짧은 들숨과 날숨에서 마음이 돌아서고 평온이 자리 잡는다.
이 아홉 가지 방식으로 짧은 들숨날숨은 몸이고,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을 관찰한다. 그래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Imehi navahākārehi rassā assāsapassāsā kāyo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이 아홉 가지 방식으로 짧은 들숨과 날숨은 몸이고, 확립은 마음챙김이며, 거듭 살핌은 앎이다.
Kāyo upaṭṭhānaṃ, no sati;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kāy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kāye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몸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몸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몸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을 여의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으키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움켜쥐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즐김을 버린다. 탐욕을 여의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움켜쥠을 버린다. 이렇게 그 몸을 거듭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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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며,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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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난다. 앞에서와 같이, 짧은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이후는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Rass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viditā vedanā uppajjanti…pe… rass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pe… tena vuccati –
짧은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짧은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는 기능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힘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도를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법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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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도 꿰뚫는다’고.
170
어떻게 ‘온몸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온몸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Kathaṃ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몸’에는 두 가지 몸이 있다. 이름의 몸과 물질의 몸이다. 무엇이 이름의 몸인가? 느낌, 인식, 의도, 접촉, 마음에 새김, 이름, 이름의 몸, 그리고 마음의 형성작용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이것이 이름의 몸이다. 무엇이 물질의 몸인가? 네 가지 큰 요소, 네 가지 큰 요소에서 파생된 물질, 들숨과 날숨이다. 또 표상과 그에 매인 것, 그리고 몸의 형성작용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이것이 물질의 몸이다.
Kāyoti dve kāyā –
‘몸’이란 두 가지 몸이다 —
nāmakāyo ca rūpakāyo ca.
정신의 몸과 물질의 몸이다.
Katamo nāmakāyo?
무엇이 정신의 몸인가?
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o, manasikāro, nāmañca nāmakāyo ca, ye ca vuccanti cittasaṅkhārā –
느낌, 인식, 의도, 접촉, 마음 기울임, 그리고 이름과 정신의 몸, 또 마음의 작용이라 불리는 것들 —
ayaṃ nāmakāyo.
이것이 정신의 몸이다.
Katamo rūpakāyo?
무엇이 물질의 몸인가?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rūpaṃ, assāso ca passāso ca, nimittañca upanibandhanā, ye ca vuccanti kāyasaṅkhārā –
네 가지 큰 요소와 네 가지 큰 요소에서 파생된 물질, 들숨과 날숨, 표상과 매어 둠, 또 몸의 작용이라 불리는 것들 —
ayaṃ rūpakāyo.
이것이 물질의 몸이다.
어떻게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지는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어떻게 그 몸들이 알려지는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들이 알려진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들이 알려진다.
짧은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짧은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Rass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짧은 들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들이 알려진다.
Rass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짧은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들이 알려진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되돌아보는 이에게,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정진을 붙드는 이에게,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마음을 집중하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지혜로 아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완전히 알아야 할 것을 완전히 아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도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그 몸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Āvajj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jān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ss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ccavekkh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cittaṃ adhiṭṭhah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saddhāya adhimucc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vīriyaṃ paggaṇh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satiṃ upaṭṭhāpay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cittaṃ samādah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ññāya pajān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abhiññeyyaṃ abhijān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riññeyyaṃ parijān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pahātabbaṃ pajah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bhāvetabbaṃ bhāvaya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sacchikātabbaṃ sacchikaroto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돌이켜 보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분명히 아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보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살펴보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마음을 굳건히 하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정진을 다잡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통찰지로 분명히 아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을 온전히 아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지며,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몸들이 알려진다.
Evaṃ te kāyā paṭividitā honti.
이렇게 그 몸들이 알려진다.
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은 몸이고,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을 관찰한다. 그래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 kāyo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온몸을 느끼는 들숨과 날숨은 몸이고, 확립은 마음챙김이며, 거듭 살핌은 앎이다.
Kāyo upaṭṭhānaṃ, no sati.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kāy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kāye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몸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몸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몸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을 여의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으키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움켜쥐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즐김을 버린다. 탐욕을 여의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움켜쥠을 버린다. 이렇게 그 몸을 거듭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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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며,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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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마음의 청정이 있고, 보는 뜻으로 견해의 청정이 있다. 거기서 단속하는 뜻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는 뜻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보는 뜻이 높은 지혜의 공부이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 avikkhepaṭṭhena cittavisuddhi, dassanaṭṭhena diṭṭhivisuddhi.
온몸을 느끼는 들숨과 날숨에 대해,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Yo tattha saṃvaraṭṭho, ayaṃ adhisīlasikkhā.
거기서 단속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다.
Yo tattha avikkhepaṭṭho, ayaṃ adhicittasikkhā.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다.
Yo tattha dassanaṭṭho, ayaṃ adhipaññāsikkhā.
거기서 봄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마음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힌다. 되돌아보며, 마음을 굳게 세우며,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힌다. 정진을 붙들며,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마음을 집중하며 익힌다. 지혜로 알며 익힌다.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완전히 알아야 할 것을 완전히 알며 익힌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Imā tisso sikkhāyo āvajjanto sikkhati, jānanto sikkhati, passanto sikkhati, paccavekkhanto sikkhati, cittaṃ adhiṭṭhahanto sikkhati, saddhāya adhimuccanto sikkhati, vīriyaṃ paggaṇhanto sikkhati, satiṃ upaṭṭhapento sikkhati, cittaṃ samādahanto sikkhati, paññāya pajānanto sikkha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sikkhati,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sikkhati, pahātabbaṃ pajahanto sikkhati, bhāvetabbaṃ bhāvento sikkhati, sacchikātabbaṃ sacchikaronto sikkhati.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며,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며, 마음을 굳건히 하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며,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며,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며,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을 온전히 알면서 익히며,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며,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난다. 앞에서와 같이, 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이후는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viditā vedanā uppajjanti…pe…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pe… tena vuccati –
온몸을 느끼는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온몸을 느끼는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는 기능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힘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도를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법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말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9 ~ PN:ps67/168.1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도 꿰뚫는다’고.
171
어떻게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몸의 형성작용인가? 긴 들숨은 몸에 속한다. 이 법들은 몸에 매인 몸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몸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Kathaṃ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o kāyasaṅkhāro?
무엇이 몸의 작용인가?
Dīghaṃ assāsā kāyikā.
긴 들숨은 몸에 속한 것이다.
Ete dhammā kāyapaṭibaddhā kāyasaṅkhārā.
이 법들은 몸에 매여 있으니 몸의 작용이다.
Te kāy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몸의 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면서 익힌다.
긴 날숨은 몸에 속한다. 이 법들은 몸에 매인 몸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몸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짧은 들숨과 짧은 날숨도 그렇다.
Dīghaṃ passāsā kāyikā.
긴 날숨은 몸에 속한 것이다.
Ete dhammā kāyapaṭibaddhā kāyasaṅkhārā.
이 법들은 몸에 매여 있으니 몸의 작용이다.
Te kāy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몸의 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면서 익힌다.
Rassaṃ assāsā rassaṃ passāsā.
짧은 들숨과 짧은 날숨이다.
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과 온몸을 알아차리는 날숨은 몸에 속한다. 이 법들은 몸에 매인 몸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몸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ā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āsā kāyikā.
온몸을 느끼는 들숨과 온몸을 느끼는 날숨은 몸에 속한 것이다.
Ete dhammā kāyapaṭibaddhā kāyasaṅkhārā.
이 법들은 몸에 매여 있으니 몸의 작용이다.
Te kāy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몸의 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면서 익힌다.
어떤 모양의 몸의 형성작용으로 몸이 굽혀지고, 구부러지고, 숙여지고, 기운다. 또 흔들리고, 떨리고, 움직이고, 진동한다. 그는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또 어떤 모양의 몸의 형성작용으로는 몸이 굽혀지지 않고, 구부러지지 않고, 숙여지지 않고, 기울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고, 떨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진동하지 않는다. 그런 고요하고 미세한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불확실]
Yathārūpehi kāyasaṅkhārehi yā kāyassa ānamanā vinamanā sannamanā paṇamanā iñjanā phandanā calanā pakampanā –
그러한 몸의 작용들로 몸에 굽힘, 젖힘, 오므림, 폄, 움직임, 떨림, 흔들림, 진동이 있는 그것에 대해[불확실]
불확실 —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Yathārūpehi kāyasaṅkhārehi yā kāyassa na ānamanā na vinamanā na sannamanā na paṇamanā aniñjanā aphandanā acalanā akampanā santaṃ sukhumaṃ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그러한 몸의 작용들로 몸에 굽힘도 없고 젖힘도 없고 오므림도 없고 폄도 없으며, 움직임 없고 떨림 없고 흔들림 없고 진동 없는, 고요하고 미세한 그것에 대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고 하자. 또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바람을 얻는 일도, 들숨날숨도 드러나지 않는다. 들숨날숨 마음챙김도, 들숨날숨 마음챙김의 삼매도 드러나지 않는다. 또 슬기로운 이들이 그 증득에 들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는다.
Iti kir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참으로 이와 같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Evaṃ sante vātūpaladdhiyā ca pabhāvanā na hoti, assāsapassāsānañca pabhāvanā na hoti, ānāpānassatiyā ca pabhāvanā na hoti, ānāpānassatisamādhissa ca pabhāvanā na hoti;
그렇다면 바람을 얻음도 이루어지지 않고, 들숨과 날숨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도 이루어지지 않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na ca naṃ taṃ samāpattiṃ paṇḍitā samāpajjantipi vuṭṭhahantipi.
그리고 슬기로운 자들이 그 증득에 들지도 못하고 거기서 나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고 하자. 또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바람을 얻는 일도, 들숨날숨도, 들숨날숨 마음챙김도 드러난다. 들숨날숨 마음챙김의 삼매도 드러난다. 또 슬기로운 이들이 그 증득에 들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Iti kir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참으로 이와 같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Evaṃ sante vātūpaladdhiyā ca pabhāvanā hoti, assāsapassāsānañca pabhāvanā hoti, ānāpānassatiyā ca pabhāvanā hoti.
그렇다면 바람을 얻음도 이루어지고, 들숨과 날숨도 이루어지며,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도 이루어진다.
Ānāpānassatisamādhissa ca pabhāvanā hoti;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도 이루어진다;
tañca naṃ samāpattiṃ paṇḍitā samāpajjantipi vuṭṭhahantipi.
그리고 슬기로운 자들이 그 증득에 들기도 하고 거기서 나오기도 한다.
어떤 것과 같은가? 예컨대 징을 두드리면 처음에는 거친 소리가 난다. 거친 소리의 표상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살폈다. 그래서 거친 소리가 사라져도 그 뒤에 미세한 소리가 난다. 미세한 소리의 표상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살폈다. 그래서 미세한 소리가 사라져도, 그 뒤에는 미세한 소리의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서도 마음이 이어진다.
Yathā kathaṃ viya?
그것은 무엇과 같은가?
Seyyathāpi kaṃse ākoṭite paṭhamaṃ oḷārikā saddā pavattanti.
마치 청동 징을 두드리면 처음에는 거친 소리들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Oḷārikānaṃ saddānaṃ nimittaṃ suggahitattā sumanasikatattā sūpadhāritattā niruddhepi oḷārike sadde, atha pacchā sukhumakā saddā pavattanti.
거친 소리들의 표상을 잘 붙잡았고 잘 마음 기울였고 잘 간직했기에, 거친 소리들이 그쳤어도 그 뒤에 미세한 소리들이 일어난다.
Sukhumakānaṃ saddānaṃ nimittaṃ suggahitattā sumanasikatattā sūpadhāritattā niruddhepi sukhumake sadde, atha pacchā sukhumasaddanimittārammaṇatāpi cittaṃ pavattati.
미세한 소리들의 표상을 잘 붙잡았고 잘 마음 기울였고 잘 간직했기에, 미세한 소리들이 그쳤어도 그 뒤에 미세한 소리의 표상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거친 들숨날숨이 일어난다. 거친 들숨날숨의 표상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살폈다. 그래서 거친 들숨날숨이 사라져도 그 뒤에 미세한 들숨날숨이 일어난다. 미세한 들숨날숨의 표상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살폈다. 그래서 미세한 들숨날숨이 사라져도, 그 뒤에 그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서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
Evamevaṃ paṭhamaṃ oḷārikā assāsapassāsā pavattanti;
꼭 이와 같이 처음에는 거친 들숨과 날숨이 일어난다;
oḷārikānaṃ assāsapassāsānaṃ nimittaṃ suggahitattā sumanasikatattā sūpadhāritattā niruddhepi oḷārike assāsapassāse, atha pacchā sukhumakā assāsapassāsā pavattanti.
거친 들숨과 날숨의 표상을 잘 붙잡았고 잘 마음 기울였고 잘 간직했기에, 거친 들숨과 날숨이 그쳤어도 그 뒤에 미세한 들숨과 날숨이 일어난다.
Sukhumakānaṃ assāsapassāsānaṃ nimittaṃ suggahitattā sumanasikatattā sūpadhāritattā niruddhepi sukhumake assāsapassāse, atha pacchā sukhumakaassāsapassāsānaṃ nimittārammaṇatāpi cittaṃ na vikkhepaṃ gacchati.
미세한 들숨과 날숨의 표상을 잘 붙잡았고 잘 마음 기울였고 잘 간직했기에, 미세한 들숨과 날숨이 그쳤어도 그 뒤에 미세한 들숨과 날숨의 표상을 대상으로 삼아도 마음이 흩어짐에 이르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바람을 얻는 일도, 들숨날숨도 드러난다. 들숨날숨 마음챙김도, 들숨날숨 마음챙김의 삼매도 드러난다. 또 슬기로운 이들이 그 증득에 들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Evaṃ sante vātūpaladdhiyā ca pabhāvanā hoti, assāsapassāsānañca pabhāvanā hoti, ānāpānassatiyā ca pabhāvanā hoti, ānāpānassatisamādhissa ca pabhāvanā hoti;
그렇다면 바람을 얻음도 이루어지고, 들숨과 날숨도 이루어지며,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도 이루어지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도 이루어진다;
tañca naṃ samāpattiṃ paṇḍitā samāpajjantipi vuṭṭhahantipi.
그리고 슬기로운 자들이 그 증득에 들기도 하고 거기서 나오기도 한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은 몸이고,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몸을 관찰한다. 그래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ā kāyo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과 날숨은 몸이고, 확립은 마음챙김이며, 거듭 살핌은 앎이다.
Kāyo upaṭṭhānaṃ, no sati;
몸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kāy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몸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kāye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몸에서 몸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몸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몸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kāy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몸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을 여의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으키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움켜쥐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없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즐김을 버린다. 탐욕을 여의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움켜쥠을 버린다. 이렇게 그 몸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며,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마음의 청정이 있고, 보는 뜻으로 견해의 청정이 있다. 거기서 단속하는 뜻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는 뜻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보는 뜻이 높은 지혜의 공부이다.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 avikkhepaṭṭhena cittavisuddhi, dassanaṭṭhena diṭṭhivisuddh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과 날숨에 대해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Yo tattha saṃvaraṭṭho, ayaṃ adhisīlasikkhā;
거기서 단속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다;
yo tattha avikkhepaṭṭho, ayaṃ adhicittasikkhā;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다;
yo tattha dassanaṭṭho ayaṃ adhipaññāsikkhā.
거기서 봄의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마음 기울이며 익히고, 앞에서와 같이,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난다. 앞에서와 같이, 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이후는 앞에서와 같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Imā tisso sikkhāyo āvajjanto sikkhati…pe… sacchikātabbaṃ sacchikaronto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viditā vedanā uppajjanti…pe…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pe… tena vuccati –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며,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며, 마음을 굳건히 하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며,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며,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며,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을 온전히 알면서 익히며,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며,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머물며,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는 기능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힘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깨달음의 요소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도를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법들을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며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말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9 ~ PN:ps67/170.33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도 꿰뚫는다’고.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데에는 여덟 가지 관찰의 앎과 여덟 가지 확립의 새김이 있다. 네 가지 경전의 사례도 있다. 여기까지가 한 독송 분량이다.
Aṭṭha anupassanāñāṇāni, aṭṭha ca upaṭṭhānānussatiyo, cattāri suttantikavatthūni kāye kāyānupassanāya.
몸에서 몸을 거듭 살핌에는 여덟 가지 거듭 살핌의 앎과 여덟 가지 확립에 대한 거듭 떠올림, 그리고 네 가지 경에 따른 근거가 있다.
Bhāṇavāro.
바나와라.
두 번째 네 개조의 해설Dutiyacatukkaniddeso
172
어떻게 ‘희열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희열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희열인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희열과 기쁨이 일어난다. 희열과 기쁨이란 희열, 기쁨, 즐거워함, 크게 즐거워함, 웃음이다. 또 큰 웃음, 만족, 들뜬 환희, 마음의 흡족함이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희열과 기쁨이 일어난다. 앞에서와 같이, 짧은 들숨으로, 짧은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도 희열과 기쁨이 일어난다. 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으로도, 날숨으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으로도, 날숨으로도 마찬가지로 희열과 기쁨이 일어난다. 희열과 기쁨이란 희열, 기쁨, 즐거워함, 크게 즐거워함, 웃음이다. 또 큰 웃음, 만족, 들뜬 환희, 마음의 흡족함이다. 이것이 희열이다.[불확실]
Kathaṃ ‘‘pīti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pīti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희열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희열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ā pīti?
무엇이 희열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pīti pāmojjaṃ.
긴 들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희열과 환희가 일어난다.
Yā pīti pāmojjaṃ āmodanā pamodanā hāso pahāso vitti odagyaṃ attamanatā.
희열이며 환희이며 기꺼워함이며 기뻐함이며 웃음이며 큰 웃음이며 흡족함이며 의기양양함이며 만족인 것.
Cittassa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pīti pāmojjaṃ…pe… rassaṃ assāsavasena, rassaṃ passāsavasena,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vasena,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āsavasen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vasen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pīti pāmojjaṃ.
마음의. 긴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희열과 환희가 일어난다. 희열이며 환희이며 기꺼워함이며 기뻐함이며 웃음이며 큰 웃음이며 흡족함이며 의기양양함이며 마음의 만족인 것. 짧은 들숨의 힘으로, 짧은 날숨의 힘으로, 온몸을 느끼는 들숨의 힘으로, 온몸을 느끼는 날숨의 힘으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의 힘으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희열과 환희가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2.4에서 되살렸습니다.
Yā pīti pāmojjaṃ āmodanā pamodanā hāso pahāso vitti odagyaṃ attamanatā cittassa –
희열이며 환희이며 기꺼워함이며 기뻐함이며 웃음이며 큰 웃음이며 흡족함이며 의기양양함이며 마음의 만족인 것 —
ayaṃ pīti.
이것이 희열이다.
어떻게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지는가? 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진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진다. 짧은 들숨으로, 짧은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온몸을 알아차리는 들숨으로도, 날숨으로도 마찬가지로 확립된다.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으로도, 날숨으로도 마찬가지로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어떻게 그 희열이 알려지는가?
Dīgh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과 날숨의 힘으로 마음의 한 끝에 모임과 흩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진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진다.
Rassaṃ assāsavasena…pe… rassaṃ passāsavasena…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āsavasena…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āsavasen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āsavasena…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짧은 들숨을 통해, 짧은 날숨을 통해,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되돌아보는 이에게,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정진을 붙드는 이에게,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마음을 집중하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지혜로 아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완전히 알아야 할 것을 완전히 아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도 분명히 알려진다.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도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그 희열이 분명히 알려진다.
Āvajjato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jānato…pe… passato… paccavekkhato… cittaṃ adhiṭṭhahato… saddhāya adhimuccato… vīriyaṃ paggaṇhato… satiṃ upaṭṭhāpayato… cittaṃ samādahato… paññāya pajānato… abhiññeyyaṃ abhijānato… pariññeyyaṃ parijānato… pahātabbaṃ pajahato… bhāvetabbaṃ bhāvayato… sacchikātabbaṃ sacchikaroto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보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되살펴보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정진을 다잡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통찰지로 아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아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지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19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sā pīti paṭividitā hoti.
이와 같이 그 희열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느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관찰한다. 그래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Pīti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vedan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희열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느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Vedan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vedan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vedanāsu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으로 관찰한다.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느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느낌을 거듭 살피는가?
Aniccato anupassati…pe… ev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희열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희열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Pīti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pīti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희열을 느끼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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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3
어떻게 ‘즐거움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즐거움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즐거움’에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이다. 무엇이 몸의 즐거움인가? 몸에 속한 기분 좋은 것, 몸의 즐거움, 몸의 접촉에서 생긴 기분 좋은 것이다. 또 즐겁게 느껴진 것, 몸의 접촉에서 생긴 기분 좋고 즐거운 느낌이다. 이것이 몸의 즐거움이다. 무엇이 마음의 즐거움인가? 마음에 속한 기분 좋은 것, 마음의 즐거움,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기분 좋은 것이다. 또 즐겁게 느껴진 것,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기분 좋고 즐거운 느낌이다. 이것이 마음의 즐거움이다.
Kathaṃ ‘‘sukh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ukh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행복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행복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Sukhanti dve sukhāni –
‘행복’이란 두 가지 행복이다 —
kāyikañca sukhaṃ, cetasikañca sukhaṃ.
몸에 속한 행복과 마음에 속한 행복이다.
Katamaṃ kāyikaṃ sukhaṃ?
몸에 속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Yaṃ kāyikaṃ sātaṃ kāyikaṃ sukhaṃ, kāyasamphassajaṃ sātaṃ sukhaṃ vedayitaṃ, kāyasamphassajā sātā sukhā vedanā –
몸에 속하고 흐뭇한 것, 몸에 속한 행복, 몸의 접촉에서 생겨 흐뭇하고 행복하게 느껴진 것, 몸의 접촉에서 생겨 흐뭇하고 행복한 느낌 —
idaṃ kāyikaṃ sukhaṃ.
이것이 몸에 속한 행복이다.
Katamaṃ cetasikaṃ sukhaṃ?
마음에 속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Yaṃ cetasikaṃ sātaṃ cetasikaṃ sukhaṃ, cetosamphassajaṃ sātaṃ sukhaṃ vedayitaṃ, cetosamphassajā sātā sukhā vedanā –
마음에 속하고 흐뭇한 것, 마음에 속한 행복,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 흐뭇하고 행복하게 느껴진 것,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 흐뭇하고 행복한 느낌 —
idaṃ cetasikaṃ sukhaṃ.
이것이 마음에 속한 행복이다.
어떻게 그 즐거움들이 분명히 알려지는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즐거움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즐거움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앞에서와 같이,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즐거움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그 즐거움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te sukhā paṭividitā honti?
어떻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는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sukh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sukhā paṭividitā honti…pe… sacchikātabbaṃ sacchikaroto te sukh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보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되살펴보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정진을 다잡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통찰지로 아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아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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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ṃ te sukhā paṭividitā honti.
이와 같이 그 행복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즐거움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느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관찰한다. 그래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Sukh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vedan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행복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느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Vedan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vedan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vedanāsu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으로 관찰한다.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느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느낌을 거듭 살피는가.
Aniccato anupassati…pe… ev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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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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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즐거움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Sukh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sukh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행복을 느끼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행복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행복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29 ~ PN:ps67/170.33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4
어떻게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마음의 형성작용인가? 긴 들숨에 따라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긴 날숨에 따라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앞에서와 같이, 즐거움을 알아차리는 들숨에 따라서도, 날숨에 따라서도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이것이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Kathaṃ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o cittasaṅkhāro?
마음의 작용이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긴 들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Dīghaṃ p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긴 날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pe… sukhapaṭisaṃvedī assāsavasena… sukhapaṭisaṃvedī p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짧은 들숨을 통한, 짧은 날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4.3에서 되살렸습니다.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 –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
ayaṃ cittasaṅkhāro.
이것이 마음의 작용이다.
어떻게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이 분명히 알려지는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앞에서와 같이,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te cittasaṅkhārā paṭividitā honti?
어떻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는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cittasaṅkhār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cittasaṅkhārā paṭividitā honti…pe… sacchikātabbaṃ sacchikaroto te cittasaṅkhārā paṭividitā hon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보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되살펴보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정진을 다잡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통찰지로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지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11 ~ PN:ps67/170.19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te cittasaṅkhārā paṭividitā honti.
이와 같이 그 마음의 작용들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느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관찰한다. 그래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vedan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vedan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느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 ñāṇena taṃ vedan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vedanāsu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으로 관찰한다.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느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느낌을 거듭 살피는가?
Aniccato anupassati…pe… ev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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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5
어떻게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마음의 형성작용인가? 긴 들숨에 따라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Kathaṃ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o cittasaṅkhāro?
마음의 작용이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긴 들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Te citt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마음의 작용들을 가라앉히며, 소멸시키며, 고요히 하며 익힌다.
긴 날숨에 따라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알아차리는 들숨에 따라서도, 날숨에 따라서도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마음의 형성작용이다. 그는 그 마음의 형성작용들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고요하게 하며 익힌다.
Dīghaṃ p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긴 날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Te citt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마음의 작용들을 가라앉히며, 소멸시키며, 고요히 하며 익힌다.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āsavasena…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passāsavasena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인식과 느낌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
ete dhammā cittapaṭibaddhā cittasaṅkhārā.
이 법들은 마음에 매인 것이고 마음의 작용이다.
Te cittasaṅkhāre passambhento nirodhento vūpasamento sikkhati.
그 마음의 작용들을 가라앉히며, 소멸시키며, 고요히 하며 익힌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으로 느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관찰한다. 그래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avasena vedan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을 통해 느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Vedan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느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vedan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vedanāsu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느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vedan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느낌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느낌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데에는 여덟 가지 관찰의 앎과 여덟 가지 확립의 새김이 있다. 네 가지 경전의 사례도 있다.[불확실]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29 ~ PN:ps67/170.33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Aṭṭha anupassanāñāṇāni aṭṭha ca upaṭṭhānānussatiyo cattāri suttantikavatthūni vedanāsu vedanānupassanāya.
느낌에서 느낌을 거듭 살핌에는 여덟 가지 거듭 살핌의 앎, 여덟 가지 확립의 따라 챙김, 네 가지 경에 근거한 사항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 번째 네 겹의 해설Tatiyacatukkaniddeso
176
어떻게 ‘마음을 알아차리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마음을 알아차리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그 마음인가? 긴 들숨에 따라 의식이 마음이다. 마음, 마노, 마음씀, 가슴, 맑은 것이다. 또 마노, 마노의 영역, 마노의 기능이다. 그리고 의식, 의식의 무더기, 그에 맞는 마노의식의 요소이다. 긴 날숨에 따라서도 의식이 마음이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몸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에 따라서도 의식이 마음이다. 마음의 형성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에 따라서도 의식이 마음이다. 마음, 마노, 마음씀, 가슴, 맑은 것이다. 또 마노, 마노의 영역, 마노의 기능이다. 그리고 의식, 의식의 무더기, 그에 맞는 마노의식의 요소이다. 이것이 마음이다.
Kathaṃ ‘‘citt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aṃ taṃ cittaṃ?
그 마음이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긴 들숨을 통한 의식이 마음이다.
Yaṃ cittaṃ mano mānasaṃ hadayaṃ paṇḍaraṃ mano manāyatanaṃ manindriyaṃ viññāṇaṃ viññāṇakkhandho tajjā manoviññāṇadhātu.
마음이고 마노이고 마음 씀이고 심장이고 밝은 것이고 마노이고 마노의 감각장소이고 마노의 기능이고 의식이고 의식의 무더기이고 그에 걸맞은 마노의 의식 요소인 것.
Dīghaṃ passāsavasena …pe…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āsavasena…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p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긴 날숨을 통한, 짧은 들숨을 통한, 짧은 날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한 의식이 마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6.3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 cittaṃ mano mānasaṃ hadayaṃ paṇḍaraṃ mano mānayatanaṃ manindriyaṃ viññāṇaṃ viññāṇakkhandho tajjā manoviññāṇadhātu –
마음이고 마노이고 마음 씀이고 심장이고 밝은 것이고 마노이고 마노의 감각장소이고 마노의 기능이고 의식이고 의식의 무더기이고 그에 걸맞은 마노의 의식 요소인 것 —
idaṃ cittaṃ.
이것이 마음이다.
어떻게 그 마음이 분명히 알려지는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이 분명히 알려진다. 긴 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이 분명히 알려진다. 앞에서와 같이,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마음이 분명히 알려진다. 이렇게 그 마음이 분명히 알려진다.
Kathaṃ taṃ cittaṃ paṭividitaṃ hoti?
어떻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는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cittaṃ paṭividitaṃ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sati upaṭṭhitā hoti.
긴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cittaṃ paṭividitaṃ hoti…pe… sacchikātabbaṃ sacchikaroto taṃ cittaṃ paṭividitaṃ ho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짧은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보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되살펴보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굳게 세우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믿음으로 확신하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정진을 다잡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통찰지로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아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지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이에게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11 ~ PN:ps67/170.19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taṃ cittaṃ paṭividitaṃ hoti.
이와 같이 그 마음이 꿰뚫어 알려진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의식인 마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관찰한다. 그래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Citt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마음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의식이 마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Cittaṃ upaṭṭhānaṃ, no sati;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citt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citte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마음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마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마음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Citt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cittapaṭisaṃved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을 느끼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마음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마음을 느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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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7
어떻게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마음의 크나큰 기쁨인가? 긴 들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의 크나큰 기쁨이 일어난다. 마음의 즐거워함, 크게 즐거워함, 웃음, 큰 웃음, 만족, 들뜬 환희, 마음의 흡족함이다. 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도 마음의 크나큰 기쁨이 일어난다. 마음의 즐거워함, 크게 즐거워함, 웃음, 큰 웃음, 만족, 들뜬 환희, 마음의 흡족함이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들숨으로도, 날숨으로도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도 마음의 크나큰 기쁨이 일어난다. 마음의 즐거워함, 크게 즐거워함, 웃음, 큰 웃음, 만족, 들뜬 환희, 마음의 흡족함이다. 이것이 마음의 크나큰 기쁨이다.[불확실]
Kathaṃ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abhippamod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고,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o cittassa abhippamodo?
마음의 큰 기쁨이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cittassa abhippamodo.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의 큰 기쁨이 일어난다.
Yā cittassa āmodanā pamodanā hāso pahāso vitti odagyaṃ attamanatā.
마음의 즐거워함, 기뻐함, 웃음, 큰 웃음, 만족, 의기양양함, 흡족함인 것.
Cittassa dīgh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cittassa abhippamodo.
마음의 것이다. 긴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의 큰 기쁨이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ā cittassa āmodanā pamodanā hāso pahāso vitti odagyaṃ attamanatā cittassa…pe… cittapaṭisaṃvedī assāsavasena… cittapaṭisaṃvedī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uppajjati cittassa abhippamodo.
마음의 즐거워함, 기뻐함, 웃음, 큰 웃음, 만족, 의기양양함, 흡족함인 것, 마음의 것이다. 짧은 들숨을 통해, 짧은 날숨을 통해,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해, 마음을 느끼는 들숨을 통해, 마음을 느끼는 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마음의 큰 기쁨이 일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7.3에서 되살렸습니다.
Yā cittassa āmodanā pamodanā hāso pahāso vitti odagyaṃ attamanatā cittassa –
마음의 즐거워함, 기뻐함, 웃음, 큰 웃음, 만족, 의기양양함, 흡족함인 것 —
ayaṃ cittassa abhippamodo.
이것이 마음의 큰 기쁨이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으로 의식인 마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관찰한다. 그래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의식이 마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Cittaṃ upaṭṭhānaṃ, no sati;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citt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citte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마음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마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cittaṃ anupassatī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마음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지, 즐거움이라고 살피지 않는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기뻐하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는 이는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거듭 살피는 이는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는 이는 기뻐함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는 이는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는 이는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는 이는 붙잡음을 버린다. 이와 같이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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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걸맞은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의 단속이라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봄이라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계의 배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음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마음의 배움이다. 거기서 봄이라는 뜻,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배움이다. 이 세 가지 배움을 마음을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보며 익히고, 되살펴보며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며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며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익히고, 통찰지로 알며 익히고,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며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며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며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며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진다.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모임을, 흩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29 ~ PN:ps67/170.33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8
어떻게 ‘마음을 집중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마음을 집중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엇이 삼매인가? 긴 들숨에 따라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다. 마음의 머묾, 자리 잡음, 굳게 섬, 흩어지지 않음, 어지럽지 않음이다. 또 어지럽지 않은 마음의 상태, 고요, 삼매의 기능, 삼매의 힘, 바른 삼매이다. 긴 날숨에 따라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집중하는 들숨과 날숨에 따라서도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다. 마음의 머묾, 자리 잡음, 굳게 섬, 흩어지지 않음, 어지럽지 않음이다. 또 어지럽지 않은 마음의 상태, 고요, 삼매의 기능, 삼매의 힘, 바른 삼매이다. 이것이 삼매이다.
Kathaṃ ‘‘samādah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samādah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Katamo samādhi?
삼매란 무엇인가?
Dīghaṃ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 yā cittassa ṭhiti saṇṭhiti avaṭṭhiti avisāhāro avikkhepo avisāhaṭamānasatā samatho samādhindriyaṃ samādhibalaṃ sammāsamādhi.
긴 들숨을 통한 마음이 한 끝에 모임,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니, 마음의 머묾, 함께 머묾, 굳게 머묾, 흩뜨리지 않음, 흩어지지 않음, 마음이 흩뜨려지지 않은 상태, 고요함, 삼매의 기능, 삼매의 힘, 바른 삼매인 것이다.
Dīgh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pe… samādahaṃ cittaṃ assāsavasena…pe… samādahaṃ cittaṃ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ādhi.
긴 날숨을 통한 마음이 한 끝에 모임,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다. 짧은 들숨을 통한, 짧은 날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온몸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희열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행복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날숨을 통한, 마음을 느끼는 들숨을 통한, 마음을 느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들숨을 통한,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는 날숨을 통한,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을 통한,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날숨을 통한 마음이 한 끝에 모임, 흩어지지 않음이 삼매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8.3에서 되살렸습니다.
Yā cittassa ṭhiti saṇṭhiti avaṭṭhiti avisāhāro avikkhepo avisāhaṭamānasatā samatho samādhindriyaṃ samādhibalaṃ sammāsamādhi –
마음의 머묾, 함께 머묾, 굳게 머묾, 흩뜨리지 않음, 흩어지지 않음, 마음이 흩뜨려지지 않은 상태, 고요함, 삼매의 기능, 삼매의 힘, 바른 삼매인 것 —
ayaṃ samādhi.
이것이 삼매이다.
마음을 집중하는 들숨날숨으로 의식인 마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관찰한다. 그래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Samādah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의식이 마음이다. 확립은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은 앎이다.
Cittaṃ upaṭṭhānaṃ, no sati;
마음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은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확립이면서 또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aṃ cittaṃ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citte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마음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마음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마음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이렇게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6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니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마음을 집중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집중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Samādahaṃ cittaṃ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samādah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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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79
어떻게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마음을 풀어주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탐욕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탐욕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성냄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성냄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어리석음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자만에서, 견해에서, 의심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해태에서, 들뜸에서, 부끄러움 없음에서도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두려워함 없음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두려워함 없음에서 마음을 풀어주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Kathaṃ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Rāgato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rāgato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탐욕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탐욕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Dosato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dosato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성냄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성냄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Mohato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pe… mānato vimocayaṃ cittaṃ… diṭṭhiyā vimocayaṃ cittaṃ… vicikicchāya vimocayaṃ cittaṃ… thinato vimocayaṃ cittaṃ… uddhaccato vimocayaṃ cittaṃ… ahirikato vimocayaṃ cittaṃ… ‘‘anottappato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anottappato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리석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어리석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자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자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견해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견해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심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심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해태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해태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들뜸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들뜸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부끄러움 없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부끄러움 없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두려움 없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두려움 없음에서 마음을 해탈케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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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풀어주는 들숨날숨으로 의식인 마음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마음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마음을 관찰한다.
Vimoc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viññāṇaṃ cittaṃ upaṭṭhānaṃ sati…pe….
마음을 해탈케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의식이 마음이니, 나타남이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이 앎이다. 마음은 나타남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나타남이면서 마음챙김이다.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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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upassatīti kath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pe… evaṃ taṃ cittaṃ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마음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이렇게 그 마음을 거듭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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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마음을 풀어주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풀어주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데에는 여덟 가지 관찰의 앎과 여덟 가지 확립의 새김이 있다. 네 가지 경전의 사례도 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니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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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moc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vimocayaṃ cittaṃ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마음을 해탈케 하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마음을 해탈케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마음을 해탈케 하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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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Aṭṭha anupassanāñāṇāni aṭṭha ca upaṭṭhānānussatiyo cattāri suttantikavatthūni citte cittānupassanāya.
마음에서 마음을 거듭 살핌에는 여덟 가지 거듭 살피는 앎과 여덟 가지 나타남에 대한 계속해서 마음챙김, 그리고 네 가지 경에 근거한 사항이 있다.
네 번째 네 가지 조의 해설Catutthacatukkaniddeso
180
어떻게 ‘무상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무상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무상’이란, 무엇이 무상한가? 다섯 무더기가 무상하다. 어떤 뜻으로 무상한가?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뜻으로 무상하다.
Kathaṃ ‘‘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Aniccanti kiṃ aniccaṃ?
‘무상함’이란, 무엇이 무상한가?
Pañcakkhandhā aniccā.
다섯 무더기가 무상하다.
Kenaṭṭhena aniccā?
어떤 뜻에서 무상한가?
Uppādavayaṭṭhena aniccā.
일어나고 무너진다는 뜻에서 무상하다.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사라짐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보는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보는가?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을 보는 이는 스물다섯 가지 특징을 본다. 사라짐을 보는 이도 스물다섯 가지 특징을 본다. 다섯 무더기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는 이는 이 쉰 가지 특징을 본다.
Pañcannaṃ khandhānaṃ udayaṃ passanto kati lakkhaṇāni passati, vayaṃ passanto kati lakkhaṇāni passati, udayabbayaṃ passanto kati lakkhaṇāni passati?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보고, 무너짐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보며, 일어남과 무너짐을 보는 이는 몇 가지 특징을 보는가?
Pañcannaṃ khandhānaṃ udayaṃ passanto pañcavīsati lakkhaṇāni passati, vayaṃ passanto pañcavīsati lakkhaṇāni passati.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을 보는 이는 스물다섯 가지 특징을 보고, 무너짐을 보는 이는 스물다섯 가지 특징을 본다.
Pañcannaṃ khandhānaṃ udayabbayaṃ passanto imāni paññāsa lakkhaṇāni passati.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과 무너짐을 보는 이는 이 쉰 가지 특징을 본다.
‘물질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물질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느낌에서, 인식에서, 형성작용들에서, 의식에서, 눈에서도 ‘무상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힌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늙음과 죽음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Rūpe 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rūpe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물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Vedanāya…pe…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akkhusmiṃ…pe… jarāmaraṇe 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jarāmaraṇe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성작용들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성작용들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 대한 인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 대한 의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 대한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땅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땅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물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바람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바람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허공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허공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땅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땅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물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불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불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바람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바람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푸른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푸른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노란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노란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붉은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붉은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흰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흰색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허공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허공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식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식의 까시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머리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머리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털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손발톱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손발톱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이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이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살갗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살갗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살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살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힘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힘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골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골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콩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콩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염통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염통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근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근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지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지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허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허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큰창자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큰창자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작은창자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작은창자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위 속의 음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위 속의 음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쓸개즙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쓸개즙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가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가래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고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고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땀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굳기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굳기름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기름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기름기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콧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콧물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관절활액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관절활액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오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오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의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색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색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리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리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냄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냄새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맛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맛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촉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촉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법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법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의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눈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눈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코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코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몸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몸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노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노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생명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생명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여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여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남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남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즐거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즐거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괴로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괴로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기쁨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기쁨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불만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불만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평온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평온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믿음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믿음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정진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정진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마음챙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마음챙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삼매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삼매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통찰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통찰지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완전히 앎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완전히 앎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완전히 안 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완전히 안 자의 기능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각적 욕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각적 욕망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색계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색계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무색계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무색계의 요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색계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색계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무색계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무색계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인식이 있는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인식이 있는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인식이 없는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인식이 없는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한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한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네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네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다섯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다섯 무더기의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제1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제1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제2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제2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제3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제3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제4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제4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자애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자애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연민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연민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평온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평온의 마음해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무명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무명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형성작용들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형성작용들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의식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정신·물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정신·물질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여섯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여섯 감각장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접촉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느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갈애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취착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취착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존재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태어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태어남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늙음과 죽음에서 무상함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0.9에서 되살렸습니다.
무상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법들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법들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관찰한다. 그래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Anicc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dhamm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무상함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법들이니, 나타남이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이 앎이다.
Dhamm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법들은 나타남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나타남이면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dhamme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dhammesu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법들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법들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e dhamme anupassati…pe… evaṃ te dhamme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법들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이렇게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6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니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무상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무상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Aniccānupass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anicc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무상함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무상함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무상함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9 ~ PN:ps67/167.82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어떻게 ‘여읨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여읨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물질의 위험을 보고, 물질을 여의는 데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물질에서 여읨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물질에서 여읨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느낌, 인식, 형성작용들, 의식, 눈의 위험을 보고 그것들을 여의는 데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늙음과 죽음의 위험을 보고 늙음과 죽음을 여의는 데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늙음과 죽음에서 여읨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여읨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Kathaṃ ‘‘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Rūpe ādīnavaṃ disvā rūpavirāg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물질에서 위험을 보고 물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Rūpe 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rūpe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물질에서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질에서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Vedanāya…pe…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akkhusmiṃ…pe… jarāmaraṇe ādīnavaṃ disvā jarāmaraṇavirāg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성작용들에서 위험을 보고 형성작용들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에서 위험을 보고 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에서 위험을 보고 귀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에서 위험을 보고 코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에서 위험을 보고 혀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에서 위험을 보고 몸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의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땅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땅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물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물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바람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바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땅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땅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물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물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불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바람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바람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푸른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푸른색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노란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노란색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붉은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붉은색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흰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흰색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까시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머리털에서 위험을 보고 머리털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털에서 위험을 보고 몸털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손발톱에서 위험을 보고 손발톱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이빨에서 위험을 보고 이빨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살갗에서 위험을 보고 살갗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살에서 위험을 보고 살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힘줄에서 위험을 보고 힘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뼈에서 위험을 보고 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골수에서 위험을 보고 골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콩팥에서 위험을 보고 콩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염통에서 위험을 보고 염통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간에서 위험을 보고 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근막에서 위험을 보고 근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지라에서 위험을 보고 지라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파에서 위험을 보고 허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큰창자에서 위험을 보고 큰창자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작은창자에서 위험을 보고 작은창자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위 속의 음식에서 위험을 보고 위 속의 음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똥에서 위험을 보고 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쓸개즙에서 위험을 보고 쓸개즙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가래에서 위험을 보고 가래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고름에서 위험을 보고 고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피에서 위험을 보고 피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땀에서 위험을 보고 땀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굳기름에서 위험을 보고 굳기름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물에서 위험을 보고 눈물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기름기에서 위험을 보고 기름기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침에서 위험을 보고 침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콧물에서 위험을 보고 콧물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관절활액에서 위험을 보고 관절활액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오줌에서 위험을 보고 오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뇌에서 위험을 보고 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맛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법의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맛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법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생명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생명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여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여자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남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남자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즐거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즐거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괴로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괴로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기쁨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기쁨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만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불만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평온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평온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믿음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믿음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정진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정진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음챙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마음챙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삼매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삼매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통찰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통찰지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완전히 앎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완전히 앎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완전히 안 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완전히 안 자의 기능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각적 욕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각적 욕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색계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색계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색계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무색계의 요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색계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색계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없는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없는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한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한 무더기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네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네 무더기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다섯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다섯 무더기의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1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1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2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2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3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3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4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4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자애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자애의 마음해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연민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연민의 마음해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평온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평온의 마음해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명에서 위험을 보고 무명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성작용들에서 위험을 보고 형성작용들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정신·물질에서 위험을 보고 정신·물질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여섯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여섯 감각장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접촉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느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갈애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취착에서 위험을 보고 취착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존재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태어남에서 위험을 보고 태어남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늙음과 죽음에서 위험을 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한 탐욕의 사라짐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0.23에서 되살렸습니다.
‘‘Jarāmaraṇe 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jarāmaraṇe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늙음과 죽음에서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늙음과 죽음에서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여읨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법들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법들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관찰한다. 그래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Virāg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dhamm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법들이니, 나타남이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이 앎이다.
Dhamm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법들은 나타남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나타남이면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dhamme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dhammesu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법들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법들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e dhamme anupassati…pe… evaṃ te dhamme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법들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이렇게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 ~ PN:ps67/167.16에서 되살렸습니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니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여읨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여읨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Virāgānupass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virāg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탐욕의 사라짐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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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어떻게 ‘소멸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소멸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물질의 위험을 보고, 물질의 소멸에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물질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물질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느낌, 인식, 형성작용들, 의식, 눈의 위험을 보고 그것들의 소멸에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늙음과 죽음의 위험을 보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Kathaṃ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Rūpe ādīnavaṃ disvā rūpanirodh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물질에서 위험을 보고 물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Rūpe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rūpe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물질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질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Vedanāya…pe…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akkhusmiṃ…pe… jarāmaraṇe ādīnavaṃ disvā jarāmaraṇanirodh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성작용들에서 위험을 보고 형성작용들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서 위험을 보고 맛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서 위험을 보고 법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인식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인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의도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의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에서 위험을 보고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땅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땅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물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물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불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바람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바람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땅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땅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물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물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불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바람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바람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푸른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푸른색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노란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노란색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붉은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붉은색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흰색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흰색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의 까시나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까시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머리털에서 위험을 보고 머리털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털에서 위험을 보고 몸털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손발톱에서 위험을 보고 손발톱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이빨에서 위험을 보고 이빨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살갗에서 위험을 보고 살갗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살에서 위험을 보고 살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힘줄에서 위험을 보고 힘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뼈에서 위험을 보고 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골수에서 위험을 보고 골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콩팥에서 위험을 보고 콩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염통에서 위험을 보고 염통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간에서 위험을 보고 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근막에서 위험을 보고 근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지라에서 위험을 보고 지라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파에서 위험을 보고 허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큰창자에서 위험을 보고 큰창자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작은창자에서 위험을 보고 작은창자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위 속의 음식에서 위험을 보고 위 속의 음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똥에서 위험을 보고 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쓸개즙에서 위험을 보고 쓸개즙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가래에서 위험을 보고 가래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고름에서 위험을 보고 고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피에서 위험을 보고 피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땀에서 위험을 보고 땀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굳기름에서 위험을 보고 굳기름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물에서 위험을 보고 눈물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기름기에서 위험을 보고 기름기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침에서 위험을 보고 침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콧물에서 위험을 보고 콧물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관절활액에서 위험을 보고 관절활액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오줌에서 위험을 보고 오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뇌에서 위험을 보고 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맛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의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법의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색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형색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소리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소리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냄새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냄새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맛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맛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촉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촉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법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법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의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의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눈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눈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코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코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몸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몸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노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마노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생명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생명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여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여자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남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남자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즐거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괴로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괴로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기쁨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기쁨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불만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불만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평온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평온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믿음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믿음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정진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정진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마음챙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마음챙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삼매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삼매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통찰지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통찰지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완전히 앎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완전히 앎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완전히 안 자의 기능에서 위험을 보고 완전히 안 자의 기능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각적 욕망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감각적 욕망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색계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색계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색계의 요소에서 위험을 보고 무색계의 요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감각적 욕망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색계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색계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색계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무색계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없는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없는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한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한 무더기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네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네 무더기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다섯 무더기의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다섯 무더기의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1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1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2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2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3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3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제4선에서 위험을 보고 제4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자애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자애의 마음해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연민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연민의 마음해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평온의 마음해탈에서 위험을 보고 평온의 마음해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에서 위험을 보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무명에서 위험을 보고 무명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형성작용들에서 위험을 보고 형성작용들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의식에서 위험을 보고 의식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정신·물질에서 위험을 보고 정신·물질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여섯 감각장소에서 위험을 보고 여섯 감각장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접촉에서 위험을 보고 접촉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느낌에서 위험을 보고 느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갈애에서 위험을 보고 갈애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취착에서 위험을 보고 취착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존재에서 위험을 보고 존재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태어남에서 위험을 보고 태어남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늙음과 죽음에서 위험을 보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0.39에서 되살렸습니다.
‘‘Jarāmaraṇe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jarāmaraṇe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181
몇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하는가?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다.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한다. 어떤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는가?
Katihākārehi avijjāya ādīnavo hoti?
몇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는가?
Katihākārehi avijjā nirujjhati?
몇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하는가?
Pañcahākārehi avijjāya ādīnavo hoti.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다.
Aṭṭhahākārehi avijjā nirujjhati.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한다.
Katamehi pañcahākārehi avijjāya ādīnavo hoti?
어떤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는가?
무상하다는 뜻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고, 괴롭다는 뜻으로도 무명에 위험이 있다. 무아라는 뜻으로, 뜨겁게 괴롭힌다는 뜻으로, 변해 간다는 뜻으로도 무명에 위험이 있다.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다.
Aniccaṭṭhena avijjāya ādīnavo hoti, dukkhaṭṭhena avijjāya ādīnavo hoti, anattaṭṭhena avijjāya ādīnavo hoti, santāpaṭṭhena avijjāya ādīnavo hoti, vipariṇāmaṭṭhena avijjāya ādīnavo hoti –
무상하다는 뜻에서 무명에 위험이 있고, 괴롭다는 뜻에서 무명에 위험이 있고, 자아가 아니라는 뜻에서 무명에 위험이 있고, 애태운다는 뜻에서 무명에 위험이 있고, 변하여 달라진다는 뜻에서 무명에 위험이 있다 —
imehi pañcahākārehi avijjāya ādīnavo hoti.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이 있다.
어떤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하는가? 원인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일어남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근원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한다. 인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조건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한다. 앎이 일어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소멸이 나타나므로 무명이 소멸한다.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한다.
Katamehi aṭṭhahākārehi avijjā nirujjhati?
어떤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하는가?
Nidānanirodhena avijjā nirujjhati, samudayanirodhena avijjā nirujjhati, jātinirodhena avijjā nirujjhati, pabhavanirodhena avijjā nirujjhati, hetunirodhena avijjā nirujjhati, paccayanirodhena avijjā nirujjhati, ñāṇuppādena avijjā nirujjhati, nirodhupaṭṭhānena avijjā nirujjhati –
근원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일어남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발생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원인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조건이 소멸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앎이 일어나므로 무명이 소멸하고, 소멸이 나타나므로 무명이 소멸한다 —
imehi aṭṭhahākārehi avijjā nirujjhati.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한다.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의 위험을 본다.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이 소멸함에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무명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고, ‘무명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Imehi pañcahākārehi avijjāya ādīnavaṃ disvā –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무명에 위험을 보고 —
imehi aṭṭhahākārehi avijjānirodh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무명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Avijjāya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avijjāya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무명의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무명의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몇 가지 방식으로 형성작용들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형성작용들이 소멸하는가? 앞에서와 같이 묻는다. 몇 가지 방식으로 의식에 위험이 있고 의식이 소멸하는가? 이름과 물질에, 여섯 감역에, 접촉에, 느낌에도 그렇게 묻는다. 갈애에, 취착에, 존재에, 태어남에도 위험이 있고 그것이 소멸하는가를 묻는다. 끝으로 몇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가?
Katihākārehi saṅkhāresu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saṅkhārā nirujjhanti…pe… katihākārehi viññāṇ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viññāṇaṃ nirujjhati… katihākārehi nāmarūp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nāmarūpaṃ nirujjhati… katihākārehi saḷāyatan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saḷāyatanaṃ nirujjhati… katihākārehi phass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phasso nirujjhati… katihākārehi vedanāya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vedanā nirujjhati… katihākārehi taṇhāya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taṇhā nirujjhati… katihākārehi upādān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upādānaṃ nirujjhati… katihākārehi bhav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bhavo nirujjhati… katihākārehi jātiyā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jāti nirujjhati… katihākārehi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katihākārehi jarāmaraṇaṃ nirujjhati?
몇 가지 방식으로 형성작용들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형성작용들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의식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의식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정신·물질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정신·물질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여섯 감각장소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여섯 감각장소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접촉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접촉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느낌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느낌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갈애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갈애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취착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취착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존재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존재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태어남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태어남이 소멸하는가? 몇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몇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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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어떤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는가? 무상하다는 뜻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괴롭다는 뜻으로, 무아라는 뜻으로도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뜨겁게 괴롭힌다는 뜻으로, 변해 간다는 뜻으로도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Pañcahākārehi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aṭṭhahākārehi jarāmaraṇaṃ nirujjhati.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Katamehi pañcahākārehi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어떤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는가?
Aniccaṭṭhena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dukkhaṭṭhena…pe… anattaṭṭhena…pe… santāpaṭṭhena…pe… vipariṇāmaṭṭhena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
무상하다는 뜻에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괴롭다는 뜻에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자아가 아니라는 뜻에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애태운다는 뜻에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고, 변하여 달라진다는 뜻에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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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hi pañcahākārehi jarāmaraṇe ādīnavo hoti.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이 있다.
어떤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가? 원인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일어남이 소멸하므로,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그렇다. 근원이 소멸하므로, 인이 소멸하므로, 조건이 소멸하므로 그렇다. 앎이 일어나므로, 소멸이 나타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Katamehi aṭṭhahākārehi jarāmaraṇaṃ nirujjhati?
어떤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가?
Nidānanirodhena jarāmaraṇaṃ nirujjhati, samudayanirodhena…pe… jātinirodhena…pe… pabhavanirodhena … hetunirodhena… paccayanirodhena… ñāṇuppādena…pe… nirodhupaṭṭhānena jarāmaraṇaṃ nirujjhati –
근원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일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발생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원인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조건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앎이 일어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고, 소멸이 나타나므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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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hi aṭṭhahākārehi jarāmaraṇaṃ nirujjhati.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의 위험을 본다.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이 소멸함에 의욕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선다.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Imehi pañcahākārehi jarāmaraṇe ādīnavaṃ disvā imehi aṭṭhahākārehi jarāmaraṇanirodhe chandajāto hoti saddhādhimutto, cittañcassa svādhiṭṭhitaṃ.
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에 위험을 보고, 이 여덟 가지 방식으로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열의가 생기고 믿음으로 확신하며, 그의 마음은 잘 굳게 서 있다.
‘‘Jarāmaraṇe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jarāmaraṇe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늙음과 죽음에서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소멸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법들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법들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관찰한다. 그래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Nirodh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dhamm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소멸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법들이니, 나타남이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이 앎이다.
Dhamm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법들은 나타남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나타남이면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dhamme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dhammesu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법들을 관찰하는 것인가? 앞에서와 같이, 이렇게 그 법들을 관찰한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Anupassatīti kathaṃ te dhamme anupassati…pe… evaṃ te dhamme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법들을 거듭 살피는가?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이렇게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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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āvanāti catasso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니 —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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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소멸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Nirodhānupass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pe… nirodh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pe…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소멸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소멸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소멸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9 ~ PN:ps67/167.82에서 되살렸습니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182
어떻게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또 어떻게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히는가? ‘내려놓음’에는 두 가지 내려놓음이 있다. 버리는 내려놓음과 뛰어드는 내려놓음이다. 물질을 버린다. 이것이 버리는 내려놓음이다. 물질의 소멸인 열반으로 마음이 뛰어든다. 이것이 뛰어드는 내려놓음이다.
Kathaṃ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어떻게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는가?
Paṭinissaggāti dve paṭinissaggā –
‘놓아버림’이란 두 가지 놓아버림이니 —
pariccāgapaṭinissaggo ca pakkhandanapaṭinissaggo ca.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과 뛰어듦이라는 놓아버림이다.
Rūpaṃ pariccajatīti –
‘물질을 완전히 버린다’고 —
pariccāgapaṭinissaggo.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Rūpanirodhe nibbāne cittaṃ pakkhandatīti –
‘물질의 소멸인 열반으로 마음이 뛰어든다’고 —
pakkhandanapaṭinissaggo.
뛰어듦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물질에서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물질에서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느낌, 인식, 형성작용들, 의식, 눈을 버린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늙음과 죽음을 버린다. 이것이 버리는 내려놓음이다. 늙음과 죽음의 소멸인 열반으로 마음이 뛰어든다. 이것이 뛰어드는 내려놓음이다. ‘늙음과 죽음에서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들이쉬리라’ 하고 익익힌다. ‘늙음과 죽음에서 내려놓음을 관찰하며 내쉬리라’ 하고 익힌다.
‘‘Rū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rūpe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물질에서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물질에서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Vedanaṃ…pe… saññaṃ… saṅkhāre… viññāṇaṃ… cakkhuṃ…pe… jarāmaraṇaṃ pariccajatīti –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성작용들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에 대한 의도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땅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물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불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바람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허공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땅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물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불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바람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푸른색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노란색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붉은색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흰색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허공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의식의 까시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머리털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털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손발톱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이빨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살갗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살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힘줄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뼈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골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콩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염통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간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근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지라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허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큰창자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작은창자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위 속의 음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쓸개즙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가래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고름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피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땀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굳기름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물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기름기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침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콧물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관절활액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오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의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색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소리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냄새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맛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촉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법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의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눈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코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몸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노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생명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여자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남자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즐거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괴로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기쁨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불만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평온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믿음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정진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마음챙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삼매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통찰지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완전히 앎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완전히 안 자의 기능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각적 욕망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색계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무색계의 요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감각적 욕망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색계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무색계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인식이 있는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인식이 없는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한 무더기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네 무더기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다섯 무더기의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제1선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제2선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제3선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제4선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자애의 마음해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연민의 마음해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함께 기뻐함의 마음해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평온의 마음해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무명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형성작용들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의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정신·물질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여섯 감각장소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접촉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느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갈애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취착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존재를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태어남을 완전히 버린다’고 —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늙음과 죽음을 완전히 버린다’고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2.4 ~ PN:ps67/182.5에서 되살렸습니다.
pariccāgapaṭinissaggo.
완전히 버림이라는 놓아버림이다.
Jarāmaraṇanirodhe nibbāne cittaṃ pakkhandatīti –
‘늙음과 죽음의 소멸인 열반으로 마음이 뛰어든다’고 —
pakkhandanapaṭinissaggo.
뛰어듦이라는 놓아버림이다.
‘‘Jarāmaraṇe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jarāmaraṇe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늙음과 죽음에서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늙음과 죽음에서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내려놓음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법들은 확립이고, 마음챙김이고, 관찰이고, 앎이다. 법들은 확립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확립이기도 하고 마음챙김이기도 하다. 그 마음챙김과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관찰한다. 그래서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dhammā upaṭṭhānaṃ sati anupassanā ñāṇaṃ.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법들이니, 나타남이 마음챙김이고 거듭 살핌이 앎이다.
Dhammā upaṭṭhānaṃ, no sati;
법들은 나타남이지 마음챙김이 아니다;
sati upaṭṭhānañceva sati ca.
마음챙김은 나타남이면서 마음챙김이다.
Tāya satiyā tena ñāṇena te dhamme anupassati.
그 마음챙김으로, 그 앎으로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dhammesu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bhāvanā’’ti.
‘법에서 법을 거듭 살피는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라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 법들을 관찰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으로 관찰하지 항상한 것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내려놓지 움켜쥐지 않는다. 무상한 것으로 관찰하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내려놓으면서 움켜쥠을 버린다. 이렇게 그 법들을 관찰한다.
Anupassatīti kathaṃ te dhamme anupassati?
‘거듭 살핀다’란, 어떻게 그 법들을 거듭 살피는가?
Aniccato anupassati, no niccato…pe… paṭinissajjati, no ādiyati.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지, 항상하다고 살피지 않는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지, 즐겁다고 살피지 않는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지, 자아라고 살피지 않는다. 싫어하여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탐욕이 사라지지, 탐하지 않는다. 소멸시키지,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놓아버리지, 붙잡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3 ~ PN:ps67/167.8에서 되살렸습니다.
Aniccato anupassanto niccasaññaṃ pajahati…pe… paṭinissajjanto ādānaṃ pajahati.
무상하다고 거듭 살피면서 항상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롭다고 거듭 살피면서 즐겁다는 인식을 버린다. 자아가 아니라고 거듭 살피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버린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즐김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지면서 탐욕을 버린다. 소멸시키면서 일어남을 버린다. 놓아버리면서 붙잡음을 버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0 ~ PN:ps67/167.15에서 되살렸습니다.
Evaṃ te dhamme anupassati.
이렇게 그 법들을 거듭 살핀다.
‘닦음’에는 네 가지 닦음이 있다. 거기서 생긴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의 닦음이 있다. 앞에서와 같이, 거듭 익힌다는 뜻의 닦음까지이다.
Bhāvanāti catasso bhāvanā.
‘닦음’이란 네 가지 닦음이다.
Tattha jātānaṃ dhammānaṃ anativattanaṭṭhena bhāvanā…pe… āsevanaṭṭhena bhāvanā.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서로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기능들이 한 맛이라는 뜻에서 닦음이고, 그에 어울리는 정진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닦음이고, 거듭 익힌다는 뜻에서 닦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18에서 되살렸습니다.
내려놓음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을 단속하는 뜻으로 계의 청정이 있다. 흩어지지 않는 뜻으로 마음의 청정이 있고, 보는 뜻으로 견해의 청정이 있다. 거기서 단속하는 뜻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거기서 흩어지지 않는 뜻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거기서 보는 뜻이 높은 지혜의 공부이다.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passāsānaṃ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 avikkhepaṭṭhena cittavisuddhi, dassanaṭṭhena diṭṭhivisuddhi.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은 단속한다는 뜻에서 계의 청정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의 청정이며, 본다는 뜻에서 견해의 청정이다.
Yo tattha saṃvaraṭṭho, ayaṃ adhisīlasikkhā;
거기서 단속한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계의 공부이다;
yo tattha avikkhepaṭṭho, ayaṃ adhicittasikkhā;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마음의 공부이다;
yo tattha dassanaṭṭho, ayaṃ adhipaññāsikkhā –
거기서 본다는 뜻인 것, 이것이 높은 통찰지의 공부이다 —
이 세 가지 공부를 마음 기울이며 익히고, 알며 익히고, 앞에서와 같이,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며 익힌다.
imā tisso sikkhāyo āvajjanto sikkhati jānanto sikkhati…pe… sacchikātabbaṃ sacchikaronto sikkhati.
이 세 가지 공부를 돌이켜 보면서 익히고, 알면서 익히고, 보면서 익히고, 살펴보면서 익히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서 익히고,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익히고, 정진을 다잡으면서 익히고,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 익히고,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면서 익히고, 통찰지로 분명히 알면서 익히고,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익히고, 두루 알아야 할 것을 두루 알면서 익히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서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을 닦으면서 익히고,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면서 익힌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70.33에서 되살렸습니다.
내려놓음을 관찰하는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에게 느낌들이 분명히 알려진 채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앞에서와 같이, 이 들숨날숨으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흩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런 이는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영역을 알고,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 힘들을 한데 모으고, 깨달음의 요소들을 한데 모은다. 길을 한데 모으고, 법들을 한데 모은다. 영역을 알고,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to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aṃ avikkhepaṃ pajānanto indriyāni samodhāneti gocarañca pajānāti samatthañca paṭivijjhati;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이에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느낌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인식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가는가?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갈애가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업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인식이 일어나므로 일으킨 생각이 일어난다’고 — 조건이 일어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생겨나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일어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지는가? 무상하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다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괴롭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두려움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자아가 아니라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에게 공함으로 나타남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나타남이 알려진다. 어떻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지는가? ‘무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갈애가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업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인식이 소멸하므로 일으킨 생각이 소멸한다’고 — 조건이 소멸한다는 뜻에서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변하여 달라지는 특징을 보는 이에게도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의 사라짐이 알려진다. 이렇게 일으킨 생각들이 알려진 채로 일어나고, 알려진 채로 나타나 있고, 알려진 채로 사라져 간다.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날숨을 통해 마음의 한곳에 집중됨과 흔들리지 않음을 분명히 알면서 기능들을 한데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7.20 ~ PN:ps67/167.82에서 되살렸습니다.
balāni samodhāneti… bojjhaṅge samodhāneti… maggaṃ samodhāneti… dhamme samodhāneti gocarañca pajānāti samatthañca paṭivijjhati.
힘들을 한데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깨달음의 요소들을 한데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도를 한데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법들을 한데 모으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알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82.31에서 되살렸습니다.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기능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가? 확신하는 뜻으로 믿음의 기능을 한데 모은다. 앞에서와 같이 이어, 그래서 ‘고름과 그 뜻을 꿰뚫는다’고 말한다.
Indriyāni samodhānetīti kathaṃ indriyāni samodhāneti?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란, 어떻게 기능들을 한데 모으는가?
Adhimokkhaṭṭhena saddhindriyaṃ samodhāneti…pe… tena vuccati –
확신한다는 뜻에서 믿음의 기능을 한데 모으고, 다잡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기능을 한데 모으고, 나타난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기능을 한데 모으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기능을 한데 모으고, 본다는 뜻에서 통찰지의 기능을 한데 모은다. 이 사람은 이 대상에서 이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기능들을 한데 모은다’라고. ‘그리고 활동 영역을 분명히 안다’란, 그의 대상인 것 그것이 그의 활동 영역이다. 그의 활동 영역인 것 그것이 그의 대상이다. ‘분명히 안다’란 사람이다. 분명히 앎이 통찰지다. ‘고름’이란 대상의 나타남이 고름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이 고름이고, 마음이 굳게 섬이 고름이고, 마음이 깨끗함이 고름이다. ‘뜻’이란 허물없다는 뜻, 오염이 없다는 뜻, 깨끗하다는 뜻, 궁극이라는 뜻이다. ‘꿰뚫는다’란 대상이 나타난다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굳게 선다는 뜻을 꿰뚫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을 꿰뚫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7:168.3 ~ PN:ps67/168.14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tthañca paṭivijjhatī’’ti.
‘그리고 고름의 뜻을 꿰뚫는다’라고.
법들에서 법을 관찰하는 데에는 여덟 가지 관찰의 앎과 여덟 가지 확립의 새김이 있다. 네 가지 경전의 사례도 있다. 이것이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의 서른두 가지 앎이다. 마음챙기며 행하는 이의 앎의 해설, 다섯째.
Aṭṭha anupassane ñāṇāni aṭṭha ca upaṭṭhānānussatiyo cattāri suttantikavatthūni dhammesu dhammānupassanāya.
법에서 법을 거듭 살핌에는 여덟 가지 거듭 살핌에 대한 앎과 여덟 가지 나타남에 대한 계속해서 마음챙김, 그리고 네 가지 경에 근거한 사항이 있다.
Imāni bāttiṃsa satokārissa ñāṇāni.
이것이 서른두 가지, 마음챙기는 이의 앎이다.
Satokāriñāṇaniddeso pañcamo.
마음챙기는 이의 앎에 대한 해설, 다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