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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ṭis 62

Paṭis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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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Bhava-vibhavadiṭṭhiniddeso

15-16. 존재의 견해와 비존재의 견해에 대한 해설

PN:ps62/0.3 · 검토 전

148

움츠러드는 집착은 존재 견해다. 지나치게 내달리는 집착은 비존재 견해다.

Olīyanābhiniveso bhavadiṭṭhi.

뒤로 물러남에 대한 고집이 존재의 견해다.

PN:ps62/148.1 · 검토 전

Atidhāvanābhiniveso vibhavadiṭṭhi.

지나쳐 달림에 대한 고집이 비존재의 견해다.

PN:ps62/148.2 · 검토 전

즐거움에 빠진 견해에는 서른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존재 견해는 몇이고, 비존재 견해는 몇인가?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에는 스무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여기서도 존재 견해와 비존재 견해가 각각 몇인지 묻는다. 이렇게 이어 가서 세간론과 얽힌 견해의 여덟 가지 방식까지 묻는다.

Assādadiṭṭhiyā pañcatiṃsāya ākārehi abhiniveso kati bhavadiṭṭhiyo, kati vibhavadiṭṭhiyo?

달콤함의 견해로 서른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PN:ps62/148.3 · 검토 전

Attānudiṭṭhiyā vīsatiyā ākārehi abhiniveso kati bhavadiṭṭhiyo kati vibhavadiṭṭhiyo…pe… lokavādapaṭisaṃyuttāya diṭṭhiyā aṭṭhahi ākārehi abhiniveso kati bhavadiṭṭhiyo kati vibhavadiṭṭhiyo?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그릇된 견해로 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자기 존재의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자기 존재를 바탕으로 한 영원하다는 견해로 열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자기 존재를 바탕으로 한 끊어진다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과거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미래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로 마흔네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족쇄가 되는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자만에 묶인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자아론에 매인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세상론에 매인 견해로 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몇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몇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인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62:148.3에서 되살렸습니다.

PN:ps62/148.4 · 검토 전

즐거움에 빠진 견해의 서른다섯 가지 집착에는 존재 견해도 있고 비존재 견해도 있다.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의 스무 가지 집착 가운데 열다섯은 존재 견해이고, 다섯은 비존재 견해다. 그릇된 견해의 열 가지 집착은 모두 비존재 견해다. 유신견의 스무 가지 집착 가운데 열다섯은 존재 견해이고, 다섯은 비존재 견해다. 유신견의 대상을 두고 영원하다고 보는 견해는 열다섯 가지 집착이 있고, 모두 존재 견해다. 같은 대상을 두고 끊어진다고 보는 견해는 다섯 가지 집착이 있고, 모두 비존재 견해다.

Assādadiṭṭhiyā pañcatiṃsāya 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달콤함의 견해로 서른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5 · 검토 전

Attānudiṭṭhiyā vīsatiyā ākārehi abhiniveso pannarasa bhavadiṭṭhiyo, pañca vibhavadiṭṭhiyo.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열다섯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다섯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6 · 검토 전

Micchādiṭṭhiyā dasahi 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그릇된 견해로 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7 · 검토 전

Sakkāyadiṭṭhiyā vīsatiyā ākārehi abhiniveso pannarasa bhavadiṭṭhiyo, pañca vibhavadiṭṭhiyo.

자기 존재의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열다섯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다섯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8 · 검토 전

Sakkāyavatthukāya sassatadiṭṭhiyā pannarasahi 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bhavadiṭṭhiyo.

자기 존재를 바탕으로 한 영원하다는 견해로 열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9 · 검토 전

Sakkāyavatthukāya uccheda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자기 존재를 바탕으로 한 끊어진다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10 · 검토 전

‘세상은 영원하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는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존재 견해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도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비존재 견해다.

‘‘Sassato loko’’ti –

‘세상은 영원하다’고 –

PN:ps62/148.11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12 · 검토 전

‘‘Asassato loko’’ti –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

PN:ps62/148.13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14 · 검토 전

‘세상은 끝이 있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는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존재 견해도 있고 비존재 견해도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도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여기에도 존재 견해와 비존재 견해가 섞여 있다.

‘‘Antavā loko’’ti –

‘세상은 끝이 있다’고 –

PN:ps62/148.15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16 · 검토 전

‘‘Anantavā loko’’ti –

‘세상은 끝이 없다’고 –

PN:ps62/148.17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18 · 검토 전

‘생명이 곧 몸이다’라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는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비존재 견해다. ‘생명과 몸은 서로 다르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도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존재 견해다.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

‘그 생명이 곧 그 몸이다’고 –

PN:ps62/148.19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20 · 검토 전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

‘생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고 –

PN:ps62/148.21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22 · 검토 전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는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존재 견해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도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비존재 견해다.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다’고 –

PN:ps62/148.23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24 · 검토 전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

‘여래는 죽은 뒤에 없다’고 –

PN:ps62/148.25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26 · 검토 전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는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존재 견해도 있고 비존재 견해도 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극단을 붙드는 견해에도 다섯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여기에도 존재 견해와 비존재 견해가 섞여 있다.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

PN:ps62/148.27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여래는 죽은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

PN:ps62/148.28 · 검토 전

antaggāhikāya diṭṭhiyā pañcah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극단을 붙잡는 견해로 다섯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29 · 검토 전

과거를 따라 보는 견해에는 열여덟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존재 견해도 있고 비존재 견해도 있다. 미래를 따라 보는 견해에는 마흔네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여기에도 존재 견해와 비존재 견해가 섞여 있다. 속박이 되는 견해에는 열여덟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여기에도 두 가지 견해가 섞여 있다.

Pubbantānudiṭṭhiyā aṭṭhārasahi 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과거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0 · 검토 전

Aparantānudiṭṭhiyā catucattārīsāya 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미래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로 마흔네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1 · 검토 전

Saññojanikāya diṭṭhiyā aṭṭhārasahi 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족쇄가 되는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2 · 검토 전

‘나다’라고 하는 교만에 묶인 견해에는 열여덟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비존재 견해다. ‘내 것이다’라고 하는 교만에 묶인 견해에도 열여덟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것은 모두 존재 견해다.

Ahanti –

‘나’라고 –

PN:ps62/148.33 · 검토 전

mānavinibandhāya diṭṭhiyā aṭṭhārasahi 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vibhavadiṭṭhiyo.

자만에 묶인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4 · 검토 전

Mamanti –

‘내 것’이라고 –

PN:ps62/148.35 · 검토 전

mānavinibandhāya diṭṭhiyā aṭṭhārasahi ākārehi abhiniveso sabbāva tā bhavadiṭṭhiyo.

자만에 묶인 견해로 열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6 · 검토 전

자아론과 얽힌 견해에는 스무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열다섯은 존재 견해이고, 다섯은 비존재 견해다. 세간론과 얽힌 견해에는 여덟 가지 방식의 집착이 있다. 이 가운데 존재 견해도 있고 비존재 견해도 있다.

Attavādapaṭisaṃyuttāya diṭṭhiyā vīsatiyā ākārehi abhiniveso pannarasa bhavadiṭṭhiyo, pañca vibhavadiṭṭhiyo.

자아론에 매인 견해로 스무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열다섯 가지가 존재의 견해이고, 다섯 가지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7 · 검토 전

Lokavādapaṭisaṃyuttāya diṭṭhiyā aṭṭhahi ākārehi abhiniveso siyā bhavadiṭṭhiyo, siyā vibhavadiṭṭhiyo.

세상론에 매인 견해로 여덟 가지 방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어떤 것은 존재의 견해이고, 어떤 것은 비존재의 견해이다.

PN:ps62/148.38 · 검토 전

이 모든 견해는 즐거움에 빠진 견해다.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다. 그릇된 견해다. 유신견이다. 극단을 붙드는 견해다. 속박이 되는 견해이고, 자아론과 얽힌 견해이기도 하다.

Sabbāva tā diṭṭhiyo assāda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달콤함의 견해다.

PN:ps62/148.39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attānu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다.

PN:ps62/148.40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micchā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그릇된 견해다.

PN:ps62/148.41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sakkāya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자기 존재의 견해다.

PN:ps62/148.42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antaggāhik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극단을 붙잡는 견해다.

PN:ps62/148.43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saññojanik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족쇄가 되는 견해다.

PN:ps62/148.44 · 검토 전

Sabbāva tā diṭṭhiyo attavādapaṭisaṃyutt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모두 자아론에 매인 견해다.

PN:ps62/148.45 · 검토 전

있음이라는 견해와 없음이라는 견해, / 이 둘에 사변가들은 기대어 서 있고,

Bhavañca diṭṭhiṃ vibhavañca diṭṭhiṃ, etaṃ dvayaṃ takkikā nissitāse;

존재의 견해와 비존재의 견해, 이 둘에 사변하는 이들이 의지해 있다.

PN:ps62/148.46 · 검토 전

이 둘이 그치는 곳엔 앎이 없으니, / 그리하여 세상은 뒤바뀐 인식에 머무네.

Tesaṃ nirodhamhi na hatthi ñāṇaṃ, yatthāyaṃ loko viparītasaññīti.

그들에게는 소멸에 대한 앎이 참으로 없으니, 거기에서 이 세상은 뒤바뀐 인식을 지닌다.

PN:ps62/148.47 · 검토 전

149

“비구들이여, 하늘사람과 인간은 두 가지 견해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이들은 움츠러들고,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내달린다. 눈 있는 이들은 바르게 본다.

‘‘Dvīhi, bhikkhave, diṭṭhigatehi pariyuṭṭhitā devamanussā olīyanti eke, atidhāvanti eke;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에 사로잡혀 신과 인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뒤로 물러나고, 어떤 이들은 지나쳐 달린다.

PN:ps62/149.1 · 검토 전

cakkhumanto ca passanti.

그리고 눈 있는 이들은 본다.

PN:ps62/149.2 · 검토 전

비구들이여, 어떤 이들은 어떻게 움츠러드는가? 하늘사람과 인간은 존재를 즐기고, 존재에 기뻐하고, 존재에 흡족해한다. 존재가 사라지는 가르침을 들려주어도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뛰어들지 않는다. 맑아지지도, 자리 잡지도, 확신하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떤 이들은 움츠러든다.

Kathañca, bhikkhave, olīyanti eke?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이들은 뒤로 물러나는가?

PN:ps62/149.3 · 검토 전

Bhavārāmā, bhikkhave, devamanussā bhavaratā bhavasammuditā.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존재를 즐기고, 존재를 기뻐하고, 존재에 흡족해한다.

PN:ps62/149.4 · 검토 전

Tesaṃ bhavanirodhāya dhamme desiyamāne cittaṃ na pakkhandati na 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ādhimuccati.

그들에게 존재의 소멸을 위한 법이 설해질 때, 마음이 뛰어들지 않고, 밝아지지 않고, 머물지 않고, 기울지 않는다.

PN:ps62/149.5 · 검토 전

Evaṃ kho, bhikkhave, olīyanti eke.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떤 이들은 뒤로 물러난다.

PN:ps62/149.6 · 검토 전

비구들이여, 어떤 이들은 어떻게 지나치게 내달리는가? 또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존재에 시달리고 진저리를 낸다. 넌더리를 내면서 비존재를 반긴다. ‘여보시오, 이 자아는 몸이 무너진 뒤 끊어지고 사라진다고 하오.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고, 뛰어나고, 있는 그대로요.’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내달린다.

‘‘Kathañca, bhikkhave, atidhāvanti eke?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이들은 지나쳐 달리는가?

PN:ps62/149.7 · 검토 전

Bhaveneva kho paneke aṭṭīyamānā harāyamānā jigucchamānā vibhavaṃ abhinandanti –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존재를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역겨워하여 비존재를 기뻐한다 –

PN:ps62/149.8 · 검토 전

‘‘yato kira, bho, ayaṃ att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ṃ maraṇā,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etaṃ yāthāvanti.

“여보시오, 이 자아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끊어지고 사라져 죽은 뒤에는 없다고 하니,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며 이것은 참으로 그러하다”고.

PN:ps62/149.9 · 검토 전

Evaṃ kho, bhikkhave, atidhāvanti eke.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떤 이들은 지나쳐 달린다.

PN:ps62/149.10 · 검토 전

비구들이여, 눈 있는 이들은 어떻게 바르게 보는가? 여기 비구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렇게 보고서 그것에 싫증을 낸다. 탐욕이 옅어지고 사라지도록 닦아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눈 있는 이들은 바르게 본다.

‘‘Kathañca, bhikkhave, cakkhumanto ca passan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눈 있는 이들은 보는가?

PN:ps62/149.11 · 검토 전

Idha, bhikkhave, bhikkhu bhūtaṃ bhūtato pass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생겨난 것을 생겨난 것으로 본다.

PN:ps62/149.12 · 검토 전

Bhūtaṃ bhūtato disvā bhūt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생겨난 것을 생겨난 것으로 보고서, 생겨난 것에 대해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가 된다.

PN:ps62/149.13 · 검토 전

Evaṃ kho, bhikkhave, cakkhumanto ca passan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눈 있는 이들은 본다.

PN:ps62/149.14 · 검토 전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고, / 있음을 넘어섬도 보아서

‘‘Yo bhūtaṃ bhūtato disvā, bhūtassa ca atikkamaṃ;

“생겨난 것을 생겨난 것으로 보고, 또 생겨난 것을 넘어섬을 보아,

PN:ps62/149.15 · 검토 전

있는 그대로를 굳게 믿으면, / 있음에 대한 갈애가 다하네.

Yathābhūtedhimuccati, bhavataṇhā parikkhayā.

있는 그대로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존재에 대한 갈애가 다하여.

PN:ps62/149.16 · 검토 전

그는 참으로 있음을 두루 안 이, / 있음과 없음에 갈애를 떠났으니,

‘‘Sa ve bhūtapariññāto, vītataṇho bhavābhave;

“그는 참으로 생겨난 것을 온전히 안 이이며, 이런저런 존재에 대한 갈애를 떠난 이다.

PN:ps62/149.17 · 검토 전

있음이 스러졌기에 비구는 / 다시 태어남으로 오지 않네.

Bhūtassa vibhavā bhikkhu, nāgacchati punabbhava’’nti.

생겨난 것이 사라졌기에 비구는 다시 태어남으로 오지 않는다”고.

PN:ps62/149.18 · 검토 전

150

견해가 어그러진 사람이 셋, 견해가 갖추어진 사람이 셋 있다. 견해가 어그러진 세 사람은 누구인가? 외도, 외도의 제자, 그리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다. 이들이 견해가 어그러진 세 사람이다. 견해가 갖추어진 세 사람은 누구인가? 여래, 여래의 제자, 그리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다. 이들이 견해가 갖추어진 세 사람이다.

Tayo puggalā vipannadiṭṭhī, tayo puggalā sampannadiṭṭhī.

세 부류의 사람은 견해가 무너진 이이고, 세 부류의 사람은 견해를 갖춘 이다.

PN:ps62/150.1 · 검토 전

Katame tayo puggalā vipannadiṭṭhī?

어떤 세 부류의 사람이 견해가 무너진 이인가?

PN:ps62/150.2 · 검토 전

Titthiyo ca, titthiyasāvako ca, yo ca micchādiṭṭhiko –

다른 교파의 스승과 다른 교파의 스승의 제자와 그릇된 견해를 가진 이 –

PN:ps62/150.3 · 검토 전

ime tayo puggalā vipannadiṭṭhī.

이 세 부류의 사람이 견해가 무너진 이다.

PN:ps62/150.4 · 검토 전

Katame tayo puggalā sampannadiṭṭhī?

어떤 세 부류의 사람이 견해를 갖춘 이인가?

PN:ps62/150.5 · 검토 전

Tathāgato ca, tathāgatasāvako ca, yo ca sammādiṭṭhiko –

여래와 여래의 제자와 바른 견해를 가진 이 –

PN:ps62/150.6 · 검토 전

ime tayo puggalā sampannadiṭṭhī.

이 세 부류의 사람이 견해를 갖춘 이다.

PN:ps62/150.7 · 검토 전

성내고 원한을 품으며, / 남의 덕을 깎아내리는 사람,

‘‘Kodhano upanāhī ca, pāpamakkhī ca yo naro;

“성내고 원한을 품으며, 악하게 남의 공을 덮는 사람,

PN:ps62/150.8 · 검토 전

견해가 그릇되고 속이는 자, / 그를 천한 이라 알아야 하네.

Vipannadiṭṭhi māyāvī, taṃ jaññā vasalo iti’’.

견해가 무너지고 속임수를 쓰는 이, 그를 천한 자라고 알아야 한다.”

PN:ps62/150.9 · 검토 전

성내지 않고 원한 품지 않아, / 맑고 깨끗함에 이른 사람,

Akkodhano anupanāhī, visuddho suddhataṃ gato;

성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으며, 깨끗하고 청정함에 이른 이,

PN:ps62/150.10 · 검토 전

견해를 갖춘 슬기로운 이, / 그를 고귀한 이라 알아야 하네.

Sampannadiṭṭhi medhāvī, taṃ jaññā ariyo itīti.

견해를 갖추고 지혜로운 이, 그를 성스러운 이라고 알아야 한다고.

PN:ps62/150.11 · 검토 전

어그러진 견해가 셋, 갖추어진 견해가 셋 있다. 어그러진 견해 셋은 무엇인가?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것은 어그러진 견해다. ‘이것이 나다’라는 것도 어그러진 견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것도 어그러진 견해다. 이것이 어그러진 세 가지 견해다.

Tisso vipannadiṭṭhiyo, tisso sampannadiṭṭhiyo.

세 가지 무너진 견해가 있고, 세 가지 갖춘 견해가 있다.

PN:ps62/150.12 · 검토 전

Katamā tisso vipannadiṭṭhiyo?

어떤 것이 세 가지 무너진 견해인가?

PN:ps62/150.13 · 검토 전

Etaṃ mamāti –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

PN:ps62/150.14 · 검토 전

vipannadiṭṭhi.

무너진 견해다.

PN:ps62/150.15 · 검토 전

Esohamasmīti –

‘이것이 나다’라고 –

PN:ps62/150.16 · 검토 전

vipannadiṭṭhi.

무너진 견해다.

PN:ps62/150.17 · 검토 전

Eso me attāti –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

PN:ps62/150.18 · 검토 전

vipannadiṭṭhi.

무너진 견해다.

PN:ps62/150.19 · 검토 전

Imā tisso vipannadiṭṭhiyo.

이것이 세 가지 무너진 견해다.

PN:ps62/150.20 · 검토 전

갖추어진 견해 셋은 무엇인가?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 하나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것이 그 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이 그 셋이다. 이것이 갖추어진 세 가지 견해다.

Katamā tisso sampannadiṭṭhiyo?

어떤 것이 세 가지 갖춘 견해인가?

PN:ps62/150.21 · 검토 전

Netaṃ mamāti –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

PN:ps62/150.22 · 검토 전

sampannadiṭṭhi.

갖춘 견해다.

PN:ps62/150.23 · 검토 전

Nesohamasmīti –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

PN:ps62/150.24 · 검토 전

sampannadiṭṭhi.

갖춘 견해다.

PN:ps62/150.25 · 검토 전

Na meso attāti –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PN:ps62/150.26 · 검토 전

sampannadiṭṭhi.

갖춘 견해다.

PN:ps62/150.27 · 검토 전

Imā tisso sampannadiṭṭhiyo.

이것이 세 가지 갖춘 견해다.

PN:ps62/150.28 · 검토 전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것은 어떤 견해인가? 견해는 몇 가지이며, 어느 쪽 극단에 붙들린 견해인가? ‘이것이 나다’라는 것은 어떤 견해인가? 견해는 몇 가지이며, 어느 쪽 극단에 붙들린 견해인가?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것도 같은 식으로 묻는다.

Etaṃ mamāti –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

PN:ps62/150.29 · 검토 전

kā diṭṭhi, kati diṭṭhiyo, katam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이것은 어떤 견해이며, 몇 가지 견해이며, 그 견해들은 어느 끝에 붙들린 것인가?

PN:ps62/150.30 · 검토 전

Esohamasmīti –

‘이것이 나다’라고 –

PN:ps62/150.31 · 검토 전

kā diṭṭhi, kati diṭṭhiyo, katam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이것은 어떤 견해이며, 몇 가지 견해이며, 그 견해들은 어느 끝에 붙들린 것인가?

PN:ps62/150.32 · 검토 전

Eso me attāti –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

PN:ps62/150.33 · 검토 전

kā diṭṭhi, kati diṭṭhiyo, katam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이것은 어떤 견해이며, 몇 가지 견해이며, 그 견해들은 어느 끝에 붙들린 것인가?

PN:ps62/150.34 · 검토 전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것은 과거를 따라 보는 견해다. 견해는 열여덟 가지다. 그 견해들은 과거의 극단에 붙들린 것이다.

Etaṃ mamāti –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

PN:ps62/150.35 · 검토 전

pubbantānudiṭṭhi.

과거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다.

PN:ps62/150.36 · 검토 전

Aṭṭhārasa diṭṭhiyo.

열여덟 가지 견해다.

PN:ps62/150.37 · 검토 전

Pubb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과거의 끝에 붙들린 것이다.

PN:ps62/150.38 · 검토 전

‘이것이 나다’라는 것은 미래를 따라 보는 견해다. 견해는 마흔네 가지다. 그 견해들은 미래의 극단에 붙들린 것이다.

Esohamasmīti –

‘이것이 나다’라고 –

PN:ps62/150.39 · 검토 전

aparantānudiṭṭhi.

미래의 끝을 따라 보는 견해다.

PN:ps62/150.40 · 검토 전

Catucattārīsaṃ diṭṭhiyo.

마흔네 가지 견해다.

PN:ps62/150.41 · 검토 전

Apar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미래의 끝에 붙들린 것이다.

PN:ps62/150.42 · 검토 전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것은 스무 가지 대상을 가진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다. 곧 스무 가지 대상을 가진 유신견이다. 유신견을 으뜸으로 하는 견해는 예순두 가지다. 그 견해들은 과거와 미래의 극단에 붙들린 것이다.

Eso me attāti –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

PN:ps62/150.43 · 검토 전

vīsativatthukā attānudiṭṭhi.

스무 가지를 바탕으로 한, 자아를 따라 보는 견해다.

PN:ps62/150.44 · 검토 전

Vīsativatthukā sakkāyadiṭṭhi.

스무 가지를 바탕으로 한 자기 존재의 견해다.

PN:ps62/150.45 · 검토 전

Sakkāyadiṭṭhippamukhāni dvāsaṭṭhi diṭṭhigatāni.

자기 존재의 견해를 앞세운 예순두 가지 견해다.

PN:ps62/150.46 · 검토 전

Pubbantāparantānuggahitā tā diṭṭhiyo.

그 견해들은 과거의 끝과 미래의 끝에 붙들린 것이다.

PN:ps62/150.47 · 검토 전

151

“비구들이여, 나에게서 궁극에 이른 이들은 누구든 견해를 갖춘 이들이다. 이렇게 견해를 갖춘 이들 가운데 다섯은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다른 다섯은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Ye keci, bhikkhave, mayi niṭṭhaṃ gatā, sabbe te diṭṭhisampannā.

“비구들이여, 누구든 나에 대해 확신에 이른 이들은 모두 견해를 갖춘 이들이다.

PN:ps62/151.1 · 검토 전

Tesaṃ diṭṭhisampannān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견해를 갖춘 그들 가운데 다섯에게는 여기에서 완성이 있고, 다섯에게는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

PN:ps62/151.2 · 검토 전

어떤 다섯이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르는가? 일곱 번까지만 태어나는 이가 있다. 가문에서 가문으로 가는 이, 한 번만 더 싹틔우는 이, 한 번 돌아오는 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아라한이 된 이가 있다. 이 다섯이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Kata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어떤 다섯에게 여기에서 완성이 있는가?

PN:ps62/151.3 · 검토 전

Sattakkhattuparamassa, kolaṃkolassa, ekabījissa, sakadāgāmissa, yo ca diṭṭheva dhamme arahā –

일곱 번을 넘지 않는 이, 가문에서 가문으로 가는 이, 한 씨앗만 남은 이, 한 번 돌아오는 이,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아라한인 이 –

PN:ps62/151.4 · 검토 전

i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이 다섯에게 여기에서 완성이 있다.

PN:ps62/151.5 · 검토 전

어떤 다섯이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르는가? 중간에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가 있다. 태어난 뒤 곧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 애쓰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 애써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가 있다. 그리고 위로 흐름을 타고 아카니타천으로 가는 이가 있다. 이 다섯이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Kata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어떤 다섯에게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는가?

PN:ps62/151.6 · 검토 전

Antarāparinibbāyissa, upahaccaparinibbāyissa, asaṅkhāraparinibbāyissa, sasaṅkhāraparinibbāyissa, uddhaṃsotassa, akaniṭṭhagāmino –

중간에 완전히 꺼지는 이, 다다라서 완전히 꺼지는 이, 지음 없이 완전히 꺼지는 이, 지음으로 완전히 꺼지는 이, 위로 흐르는 이, 가장 높은 하늘로 가는 이 –

PN:ps62/151.7 · 검토 전

i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이 다섯에게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

PN:ps62/151.8 · 검토 전

비구들이여, 나에게서 궁극에 이른 이들은 누구든 견해를 갖춘 이들이다. 이렇게 견해를 갖춘 이들 가운데 이 다섯은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또 이 다섯은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Ye keci, bhikkhave, mayi niṭṭhaṃ gatā, sabbe te diṭṭhisampannā.

“비구들이여, 누구든 나에 대해 확신에 이른 이들은 모두 견해를 갖춘 이들이다.

PN:ps62/151.9 · 검토 전

Tesaṃ diṭṭhisampannānaṃ i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i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견해를 갖춘 그들 가운데 이 다섯에게는 여기에서 완성이 있고, 이 다섯에게는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

PN:ps62/151.10 · 검토 전

비구들이여, 나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누구든 흐름에 든 이들이다. 이렇게 흐름에 든 이들 가운데 다섯은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다른 다섯은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Ye keci, bhikkhave, mayi aveccappasannā, sabbe te sotāpannā.

“비구들이여, 누구든 나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닌 이들은 모두 흐름에 든 이들이다.

PN:ps62/151.11 · 검토 전

Tesaṃ sotāpannān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흐름에 든 그들 가운데 다섯에게는 여기에서 완성이 있고, 다섯에게는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

PN:ps62/151.12 · 검토 전

어떤 다섯이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르는가? 일곱 번까지만 태어나는 이가 있다. 가문에서 가문으로 가는 이, 한 번만 더 싹틔우는 이, 한 번 돌아오는 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아라한이 된 이가 있다. 이 다섯이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Kata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어떤 다섯에게 여기에서 완성이 있는가?

PN:ps62/151.13 · 검토 전

Sattakkhattuparamassa, kolaṃkolassa, ekabījissa, sakadāgāmissa, yo ca diṭṭheva dhamme arahā –

일곱 번을 넘지 않는 이, 가문에서 가문으로 가는 이, 한 씨앗만 남은 이, 한 번 돌아오는 이,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아라한인 이 –

PN:ps62/151.14 · 검토 전

i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이 다섯에게 여기에서 완성이 있다.

PN:ps62/151.15 · 검토 전

어떤 다섯이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르는가? 중간에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가 있다. 태어난 뒤 곧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 애쓰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 애써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이가 있다. 그리고 위로 흐름을 타고 아카니타천으로 가는 이가 있다. 이 다섯이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Kata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어떤 다섯에게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는가?

PN:ps62/151.16 · 검토 전

Antarāparinibbāyissa, upahaccaparinibbāyissa, asaṅkhāraparinibbāyissa, sasaṅkhāraparinibbāyissa, uddhaṃsotassa, akaniṭṭhagāmino –

중간에 완전히 꺼지는 이, 다다라서 완전히 꺼지는 이, 지음 없이 완전히 꺼지는 이, 지음으로 완전히 꺼지는 이, 위로 흐르는 이, 가장 높은 하늘로 가는 이 –

PN:ps62/151.17 · 검토 전

i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이 다섯에게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

PN:ps62/151.18 · 검토 전

비구들이여, 나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누구든 흐름에 든 이들이다. 이렇게 흐름에 든 이들 가운데 이 다섯은 이 세상에서 궁극에 이른다. 또 이 다섯은 이 세상을 떠나서 궁극에 이른다.”

‘‘Ye keci, bhikkhave, mayi aveccappasannā, sabbe te sotāpannā.

“비구들이여, 누구든 나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닌 이들은 모두 흐름에 든 이들이다.

PN:ps62/151.19 · 검토 전

Tesaṃ sotāpannānaṃ imes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흐름에 든 그들 가운데 이 다섯에게는 여기에서 완성이 있다.

PN:ps62/151.20 · 검토 전

Imesaṃ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ti’’.

이 다섯에게는 여기를 떠나 완성이 있다”고.

PN:ps62/151.21 · 검토 전

존재 견해와 비존재 견해에 대한 해설, 열여섯째. 견해에 관한 논의를 마친다.

Bhavavibhavadiṭṭhiniddeso soḷasamo.

존재의 견해와 비존재의 견해에 대한 해설, 열여섯 번째.

PN:ps62/151.22 · 검토 전

Diṭṭhikathā niṭṭhitā.

견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PN:ps62/151.23 · 검토 전

3.

3.

PN:ps62/151.24 · 검토 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이야기Ānāpānassatikat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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