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Esukārīsuttaṃ
6. 에수까리 경
436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그때 에수카리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갔다. 그는 세존과 반갑고 정중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esukārī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에수까리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esukārī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에수까리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고타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섬김에 네 종류가 있다고 정해 놓았습니다. 바라문을 위한 섬김, 끄샤뜨리야를 위한 섬김, 평민을 위한 섬김, 노예를 위한 섬김입니다.
‘‘brāhmaṇā, bho gotama, catasso pāricariyā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네 가지 섬김을 천명합니다 —
brāhmaṇ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khattiy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vess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sudd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바라문에 대한 섬김을 천명하고, 캇띠야에 대한 섬김을 천명하고, 웻사에 대한 섬김을 천명하고, 숫다에 대한 섬김을 천명합니다.
먼저 바라문을 위한 섬김은 이렇습니다. '바라문도 바라문을 섬겨도 되고, 끄샤뜨리야도 섬겨도 되고, 평민도 섬겨도 되고, 노예도 섬겨도 된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바라문들이 바라문을 위해 정한 섬김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brāhmaṇ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바라문에 대한 섬김을 이렇게 천명합니다 —
‘brāhmaṇo vā brāhmaṇaṃ paricareyya, khattiyo vā brāhmaṇaṃ paricareyya, vesso vā brāhmaṇaṃ paricareyya, suddo vā brāhmaṇaṃ paricareyyā’ti.
‘바라문이 바라문을 섬기거나, 캇띠야가 바라문을 섬기거나, 웻사가 바라문을 섬기거나, 숫다가 바라문을 섬겨야 한다.’라고.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brāhmaṇ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바라문에 대한 섬김으로 천명합니다.
다음으로 끄샤뜨리야를 위한 섬김은 이렇습니다. '끄샤뜨리야가 끄샤뜨리야를 섬겨도 되고, 평민이 섬겨도 되고, 노예가 섬겨도 된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끄샤뜨리야를 위해 바라문들이 정한 섬김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khattiy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캇띠야에 대한 섬김을 이렇게 천명합니다 —
‘khattiyo vā khattiyaṃ paricareyya, vesso vā khattiyaṃ paricareyya, suddo vā khattiyaṃ paricareyyā’ti.
‘캇띠야가 캇띠야를 섬기거나, 웻사가 캇띠야를 섬기거나, 숫다가 캇띠야를 섬겨야 한다.’라고.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khattiy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캇띠야에 대한 섬김으로 천명합니다.
평민을 위한 섬김은 이렇습니다. '평민이 평민을 섬겨도 되고, 노예가 섬겨도 된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평민을 위해 바라문들이 정한 섬김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vess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웻사에 대한 섬김을 이렇게 천명합니다 —
‘vesso vā vessaṃ paricareyya, suddo vā vessaṃ paricareyyā’ti.
‘웻사가 웻사를 섬기거나, 숫다가 웻사를 섬겨야 한다.’라고.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vess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웻사에 대한 섬김으로 천명합니다.
노예를 위한 섬김은 이렇습니다. '노예는 노예만 섬겨야 한다. 노예를 달리 누가 섬기겠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노예를 위해 바라문들이 정한 섬김입니다. 바라문들은 이렇게 네 가지 섬김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고타마 존자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sudd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숫다에 대한 섬김을 이렇게 천명합니다 —
‘suddova suddaṃ paricareyya.
‘숫다야말로 숫다를 섬겨야 한다.
Ko panañño suddaṃ paricarissatī’ti?
그 밖에 다른 누가 숫다를 섬기겠는가?’라고.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suddassa pāricariy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숫다에 대한 섬김으로 천명합니다.
Brāhmaṇā, bho gotama, imā catasso pāricariyā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 네 가지 섬김을 천명합니다.
Idha bhavaṃ gotamo kimāhā’’ti?
여기에 대해 고따마 존자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37
"바라문이여,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문들에게 '이 네 가지 섬김을 정해도 좋다.' 하고 허락해 주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Kiṃ pana, brāhmaṇa, sabbo loko brāhmaṇānaṃ etadabbhanujānāti –
“그런데 바라문이여, 온 세상이 바라문들에게 이것을 허락하는가 —
‘imā catasso pāricariyā paññapentū’’’ti?
‘이 네 가지 섬김을 천명하라.’라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이여,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궁핍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원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고깃덩이를 억지로 떠안기며 말한다. '이보게, 이 고기를 먹어야 하네. 값도 치러야 하고.' 바라문들도 이와 같다. 그들은 사문과 바라문들의 동의도 없이 이 네 가지 섬김을 정해 놓았다.
‘‘Seyyathāpi, brāhmaṇa, puriso daliddo assako anāḷhiyo.
“바라문이여, 예컨대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궁핍하다고 하자.
Tassa akāmassa bilaṃ olaggeyyuṃ –
원하지 않는 그에게 고깃덩이를 떠맡긴다 —
‘idaṃ te, ambho purisa, maṃsaṃ khāditabbaṃ, mūlañca anuppadātabba’nti.
‘여보게, 이 사람아, 이 고기는 그대가 먹어야 하고, 값은 치러야 하네.’라고.
Evameva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appaṭiññāya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tha ca panimā catasso pāricariyā paññapenti.
바라문이여, 이와 꼭 같이 바라문들은 그 사문·바라문들의 동의도 없이, 그런데도 이 네 가지 섬김을 천명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이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도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섬길수록 그 섬김 때문에 나빠지기만 하고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는 섬겨서는 안 된다고 나는 말한다. 반대로 섬길수록 그 섬김 때문에 나아지고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는 섬겨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Nāhaṃ, brāhmaṇa, ‘sabbaṃ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모두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nāhaṃ, brāhmaṇa, ‘sabbaṃ na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모두를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Yaṃ hissa, brāhmaṇa, paricarato pāricariyāhetu pāpiyo assa na seyyo, nāhaṃ taṃ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그를 섬기는 자가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yañca khvāssa, brāhmaṇa,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eyyo assa na pāpiyo tamahaṃ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그러나 그를 섬기는 자가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끄샤뜨리야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섬길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사람과, 섬길수록 나아지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대는 이 가운데 누구를 섬기겠는가?' 끄샤뜨리야가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를 나쁘게 만들 사람이라면 섬기지 않겠습니다. 나를 나아지게 할 사람이라면 섬기겠습니다.'
Khattiyaṃ cepi, brāhmaṇa, evaṃ puccheyyuṃ –
바라문이여, 만일 캇띠야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yaṃ vā t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pāpiyo assa na seyyo, yaṃ vā t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eyyo assa na pāpiyo;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와,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kamettha paricareyyāsī’ti, khattiyopi hi, brāhmaṇa, sammā byākaramāno evaṃ byākareyya –
여기서 그대는 누구를 섬기겠는가?’라고. 바라문이여, 캇띠야도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yañhi m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pāpiyo assa na seyyo, nāhaṃ taṃ paricareyyaṃ;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지 않겠다;
yañca kho m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eyyo assa na pāpiyo tamahaṃ paricareyya’nti.
그러나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겠다.’라고.
바라문에게도, 평민에게도, 노예에게도 똑같이 물을 수 있다. '섬길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사람과, 섬길수록 나아지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대는 이 가운데 누구를 섬기겠는가?' 노예 또한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를 나쁘게 만들 사람이라면 섬기지 않겠습니다. 나를 나아지게 할 사람이라면 섬기겠습니다.'
Brāhmaṇaṃ cepi, brāhmaṇa…pe… vessaṃ cepi, brāhmaṇa…pe… suddaṃ cepi, brāhmaṇa, evaṃ puccheyyuṃ –
바라문이여, 만일 바라문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와,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여기서 그대는 누구를 섬기겠는가?’라고. 바라문이여, 바라문도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겠다.’라고. 바라문이여, 만일 웻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와,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여기서 그대는 누구를 섬기겠는가?’라고. 바라문이여, 웻사도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겠다.’라고. 바라문이여, 만일 숫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37.12 ~ PN:mn96/437.16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 vā t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pāpiyo assa na seyyo, yaṃ vā t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eyyo assa na pāpiyo;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와, 그대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그대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kamettha paricareyyāsī’ti, suddopi hi, brāhmaṇa, sammā byākaramāno evaṃ byākareyya –
여기서 그대는 누구를 섬기겠는가?’라고. 바라문이여, 숫다도 바르게 대답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yañhi m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pāpiyo assa na seyyo, nāhaṃ taṃ paricareyyaṃ;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빠지고 더 나아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지 않겠다;
yañca kho me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eyyo assa na pāpiyo tamahaṃ paricareyya’nti.
그러나 내가 섬길 때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되는 자, 그를 나는 섬기겠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 나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도, 큰 재산을 지닌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더 낫다고도, 더 나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Nāhaṃ, brāhmaṇa, ‘uccākulīnatā seyyaṃso’ti vadāmi, na panāhaṃ, brāhmaṇa, ‘uccākulīnatā pāpiyaṃso’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나은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바라문이여,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못한 것이다’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nāhaṃ, brāhmaṇa, ‘uḷāravaṇṇatā seyyaṃso’ti vadāmi, na panāhaṃ, brāhmaṇa, ‘uḷāravaṇṇatā pāpiyaṃso’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이 더 나은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바라문이여, 나는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이 더 못한 것이다’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nāhaṃ, brāhmaṇa, ‘uḷārabhogatā seyyaṃso’ti vadāmi, na panāhaṃ, brāhmaṇa, ‘uḷārabhogatā pāpiyaṃso’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나은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바라문이여,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못한 것이다’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438
바라문이여, 높은 가문에 태어났어도 어떤 이는 생명을 해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애욕을 행한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을 한다. 또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으며, 그릇된 견해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낫지는 않다고 말한다.
‘‘Uccākulīnopi hi, brāhmaṇa, idhekacco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 kāmesumicchācārī hoti, musāvādī hoti, pisuṇāvāco hoti, pharusāvāco hoti, samphappalāpī hoti, abhijjhālu hoti, byāpannacitto hoti, micchādiṭṭhi hoti.
“바라문이여, 높은 가문에 태어난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은 마음이며, 삿된 견해를 가진다.
Tasmā ‘na uccākulīnatā seyyaṃso’ti vadāmi.
그러므로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높은 가문에 태어났어도 어떤 이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애욕을 삼간다.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도 삼간다. 또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품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Uccākulīnopi hi, brāhmaṇa, idhekacc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nabhijjhālu hoti, abyāpannacitto hoti, sammādiṭṭhi hoti.
바라문이여, 높은 가문에 태어난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는 일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일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이며, 바른 견해를 가진다.
Tasmā ‘na uccākulīnatā pāpiyaṃso’ti vadāmi.
그러므로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난 것이 더 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439
바라문이여, 빼어난 용모를 지녔어도, 큰 재산을 지녔어도 어떤 이는 생명을 해치고 …… 그릇된 견해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낫지는 않다고 말한다. 큰 재산을 지녔어도 어떤 이는 생명을 해치는 일을 삼가고 …… 바른 견해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Uḷāravaṇṇopi hi, brāhmaṇa…pe… uḷārabhogopi hi, brāhmaṇa, idhekacco pāṇātipātī hoti…pe… micchādiṭṭhi hoti.
“바라문이여, 빼어난 용모를 지닌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은 마음이며, 삿된 견해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는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빼어난 용모를 지닌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는 일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일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이며, 바른 견해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는 ‘빼어난 용모를 지닌 것이 더 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큰 재산을 지닌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고, 거짓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은 마음이며, 삿된 견해를 가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38.1 ~ PN:mn96/438.4에서 되살렸습니다.
Tasmā ‘na uḷārabhogatā seyyaṃso’ti vadāmi.
그러므로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Uḷārabhogopi hi, brāhmaṇa, idhekacc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바라문이여, 큰 재산을 지닌 자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것을 죽이는 일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가고, 감각적 욕망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일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이며, 바른 견해를 가진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38.3에서 되살렸습니다.
Tasmā ‘na uḷārabhogatā pāpiyaṃso’ti vadāmi.
그러므로 나는 ‘큰 재산을 지닌 것이 더 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이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섬길수록 그 섬김 때문에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지혜가 자란다면, 그는 섬겨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섬겨도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는 섬겨서는 안 된다고 나는 말한다."
Nāhaṃ, brāhmaṇa, ‘sabbaṃ paricaritabba’nti vadāmi, na panāhaṃ, brāhmaṇa, ‘sabbaṃ na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나는 ‘모두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바라문이여, 나는 ‘모두를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Yaṃ hissa, brāhmaṇa, paricarato pāricariyāhetu saddhā vaḍḍhati, sīlaṃ vaḍḍhati, sutaṃ vaḍḍhati, cāgo vaḍḍhati, paññā vaḍḍhati, tamahaṃ ‘paricaritabba’nti (vadāmi.
바라문이여, 그를 섬기는 자가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믿음이 자라나고, 계가 자라나고, 배움이 자라나고, 베풂이 자라나고, 통찰지가 자라난다면, 나는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Yaṃ hissa, brāhmaṇa, paricarato pāricariyāhetu na saddhā vaḍḍhati, na sīlaṃ vaḍḍhati, na sutaṃ vaḍḍhati, na cāgo vaḍḍhati, na paññā vaḍḍhati, nāhaṃ taṃ ‘paricaritabba’nti) vadāmī’’ti.
바라문이여, 그를 섬기는 자가 섬김을 원인으로 하여 믿음이 자라나지 않고, 계가 자라나지 않고, 배움이 자라나지 않고, 베풂이 자라나지 않고, 통찰지가 자라나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440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에수카리 바라문이 다시 말씀드렸다. "고타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재산에도 네 종류가 있다고 정해 놓았습니다.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 끄샤뜨리야의 고유한 재산, 평민의 고유한 재산, 노예의 고유한 재산입니다.
Evaṃ vutte, esukārī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에수까리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brāhmaṇā, bho gotama, cattāri dhanāni paññapenti –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네 가지 재산을 천명합니다 —
brāhmaṇ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khattiy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vess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sudd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을 천명하고, 캇띠야의 고유한 재산을 천명하고, 웻사의 고유한 재산을 천명하고, 숫다의 고유한 재산을 천명합니다.
바라문들이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한 것은 탁발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바라문이 이 고유한 재산을 업신여기고 탁발을 하지 않는다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입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brāhmaṇ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bhikkhācariyaṃ;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으로 탁발하며 다니는 것을 천명합니다;
bhikkhācariyañca pana brāhmaṇo sandhanaṃ atimaññamāno akiccakārī hoti gopova adinnaṃ ādiyamānoti.
그런데 바라문이 고유한 재산인 탁발하며 다니는 것을 업신여기면,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자가 됩니다.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brāhmaṇ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바라문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합니다.
끄샤뜨리야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한 것은 활과 화살통입니다. 끄샤뜨리야가 이 고유한 재산을 업신여기고 쓰지 않는다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입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끄샤뜨리야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khattiy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dhanukalāpaṃ;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캇띠야의 고유한 재산으로 활과 화살통을 천명합니다;
dhanukalāpañca pana khattiyo sandhanaṃ atimaññamāno akiccakārī hoti gopova adinnaṃ ādiyamānoti.
그런데 캇띠야가 고유한 재산인 활과 화살통을 업신여기면,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자가 됩니다.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khattiy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캇띠야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합니다.
평민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한 것은 농사와 소 기르기입니다. 평민이 이 고유한 재산을 업신여기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입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평민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vess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kasigorakkhaṃ;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웻사의 고유한 재산으로 농사와 소치기를 천명합니다;
kasigorakkhañca pana vesso sandhanaṃ atimaññamāno akiccakārī hoti gopova adinnaṃ ādiyamānoti.
그런데 웻사가 고유한 재산인 농사와 소치기를 업신여기면,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자가 됩니다.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vess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웻사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합니다.
노예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한 것은 낫과 멜대입니다. 노예가 이 고유한 재산을 업신여기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입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이것이 노예의 고유한 재산으로 정해진 것입니다.[불확실]
Tatridaṃ, bho gotama, brāhmaṇā sudd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asitabyābhaṅgiṃ;
고따마 존자시여, 그중에서 바라문들은 숫다의 고유한 재산으로 낫과 멜대를 천명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sitabyābhaṅgiñca pana suddo sandhanaṃ atimaññamāno akiccakārī hoti gopova adinnaṃ ādiyamānoti.
그런데 숫다가 고유한 재산인 낫과 멜대를 업신여기면,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소치기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자가 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ṃ kho, bho gotama, brāhmaṇā suddassa sandhanaṃ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을 바라문들은 숫다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네 가지 재산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고타마 존자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Brāhmaṇā, bho gotama, imāni cattāri dhanāni paññapenti.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 네 가지 재산을 천명합니다.
Idha bhavaṃ gotamo kimāhā’’ti?
여기에 대해 고따마 존자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41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허락해 주었는가? ‘이 네 가지를 재산으로 내세워도 좋다.’ 아닙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Kiṃ pana, brāhmaṇa, sabbo loko brāhmaṇānaṃ etadabbhanujānāti –
“그런데 바라문이여, 온 세상이 바라문들에게 이것을 허락하는가 —
‘imāni cattāri dhanāni paññapentū’’’ti?
‘이 네 가지 재산을 천명하라’고?”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이여,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라.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궁핍한 사람이 있다. 그는 원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억지로 이렇게 떠안긴다. ‘이보게, 이 고기를 먹게. 그리고 그 값을 치러야 하네.’ 바라문들도 이와 같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았는데, 바라문들은 이 네 가지를 재산으로 내세운다.
‘‘Seyyathāpi, brāhmaṇa, puriso daliddo assako anāḷhiyo.
“바라문이여, 예컨대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궁핍하다.
Tassa akāmassa bilaṃ olaggeyyuṃ –
그가 원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고깃덩이를 떠맡긴다 —
‘idaṃ te, ambho purisa, maṃsaṃ khāditabbaṃ, mūlañca anuppadātabba’nti.
‘여보게 사람아, 이 고기는 그대가 먹어야 하고, 값은 치러야 한다’고.
Evameva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appaṭiññāya tes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tha ca panimāni cattāri dhanāni paññapenti.
바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그 사문과 바라문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그런데도 이 네 가지 재산을 천명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성스러운 출세간의 법을 사람의 참된 재산이라고 말한다.
Ariyaṃ kho ahaṃ, brāhmaṇa, lokuttaraṃ dhammaṃ purisassa sandhanaṃ paññapemi.
바라문이여, 나는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선 법을 사람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한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옛 가문의 내력을 되새겨 보면, 사람은 어디에 태어나든 바로 그곳에 따라 불린다.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나면 ‘크샤트리아’,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면 ‘바라문’이라 불린다. 바이샤 가문에 태어나면 ‘바이샤’, 수드라 가문에 태어나면 ‘수드라’라 불린다.
Porāṇaṃ kho panassa mātāpettikaṃ kulavaṃsaṃ anussarato yattha yattheva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tena teneva saṅkhyaṃ gacchati.
그런데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옛 가문의 계보를 떠올려 볼 때,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어디어디에서 있게 되면 바로 그것 그것으로 헤아려진다.
Khattiy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khattiy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있게 되면 ‘끄샤뜨리야’라고만 헤아려진다;
brāhmaṇ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brāhmaṇ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바라문 가문에서 있게 되면 ‘바라문’이라고만 헤아려진다;
vess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vess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와이샤 가문에서 있게 되면 ‘와이샤’라고만 헤아려진다;
sudd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sudd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수드라 가문에서 있게 되면 ‘수드라’라고만 헤아려진다.
바라문이여, 불도 마찬가지다. 불은 무엇을 연료로 삼아 타든 바로 그 연료의 이름으로 불린다. 장작으로 타면 ‘장작불’, 나뭇조각으로 타면 ‘나뭇조각불’이라 불린다. 풀로 타면 ‘풀불’, 쇠똥으로 타면 ‘쇠똥불’이라 불린다.
Seyyathāpi, brāhmaṇa, yaṃyadeva paccayaṃ paṭicca aggi jalati tena teneva saṅkhyaṃ gacchati.
바라문이여, 예컨대 어떤 어떤 조건을 의지하여 불이 타면 바로 그것 그것으로 헤아려진다.
Kaṭṭhañce paṭicca aggi jalati ‘kaṭṭhaggi’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장작을 의지하여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고만 헤아려진다;
sakalikañce paṭicca aggi jalati ‘sakalikaggi’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나뭇조각을 의지하여 불이 타면 ‘나뭇조각불’이라고만 헤아려진다;
tiṇañce paṭicca aggi jalati ‘tiṇaggi’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풀을 의지하여 불이 타면 ‘풀불’이라고만 헤아려진다;
gomayañce paṭicca aggi jalati ‘gomayaggi’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쇠똥을 의지하여 불이 타면 ‘쇠똥불’이라고만 헤아려진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나는 성스러운 출세간의 법을 사람의 참된 재산이라고 말한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옛 가문의 내력을 되새겨 보면, 사람은 어디에 태어나든 바로 그곳에 따라 불린다.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나면 ‘크샤트리아’,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면 ‘바라문’이라 불린다. 바이샤 가문에 태어나면 ‘바이샤’, 수드라 가문에 태어나면 ‘수드라’라 불린다.
Evameva kho ahaṃ, brāhmaṇa, ariyaṃ lokuttaraṃ dhammaṃ purisassa sandhanaṃ paññapemi.
바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선 법을 사람의 고유한 재산으로 천명한다.
Porāṇaṃ kho panassa mātāpettikaṃ kulavaṃsaṃ anussarato yattha yattheva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tena teneva saṅkhyaṃ gacchati.
그런데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옛 가문의 계보를 떠올려 볼 때,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어디어디에서 있게 되면 바로 그것 그것으로 헤아려진다.
‘‘Khattiy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khattiy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끄샤뜨리야 가문에서 있게 되면 ‘끄샤뜨리야’라고만 헤아려진다;
brāhmaṇ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brāhmaṇ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바라문 가문에서 있게 되면 ‘바라문’이라고만 헤아려진다;
vess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vess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와이샤 가문에서 있게 되면 ‘와이샤’라고만 헤아려진다;
sudd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sudd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만일 자기 존재의 태어남이 수드라 가문에서 있게 되면 ‘수드라’라고만 헤아려진다.
바라문이여,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청정하지 못한 성생활을 삼가며, 거짓말을 삼간다. 이간하는 말과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도 삼간다. 그리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이렇게 하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Khattiy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abrahmacariy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nabhijjhālu hoti, abyāpannacitto hoti,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끄샤뜨리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한다고 하자.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바이샤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한다고 하자.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수드라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한다고 하자.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Brāhmaṇ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바라문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Vess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와이샤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Sudd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수드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442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지방에서 원한 없고 해침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이는 바라문뿐인가?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못하는가? 아닙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brāhmaṇa, brāhmaṇova nu kho pahoti asmiṃ padese averaṃ abyābajjhaṃ mettacittaṃ bhāvetuṃ, no khattiyo no vesso no suddo’’ti?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만이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고, 끄샤뜨리야는 못 하고 와이샤도 못 하고 수드라도 못 하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크샤트리아도 이 지방에서 원한 없고 해침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그렇습니다. 네 계급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Khattiyopi hi, bho gotama, pahoti asmiṃ padese averaṃ abyābajjhaṃ mettacittaṃ bhāvetuṃ;
고따마 존자시여, 끄샤뜨리야도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brāhmaṇopi hi, bho gotama… vessopi hi, bho gotama… suddopi hi, bho gotama… sabbepi hi, bho gotama, cattāro vaṇṇā pahonti asmiṃ padese averaṃ abyābajjhaṃ mettacittaṃ bhāvetu’’nti.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도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이샤도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수드라도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네 계급 모두가 이곳에서 원한 없고 괴롭힘 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2.3에서 되살렸습니다.
바라문이여, 그와 같이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Evameva kho, brāhmaṇa, khattiyakulā cepi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끄샤뜨리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바라문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바이샤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수드라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한다고 하자.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Brāhmaṇakulā cepi, brāhmaṇa… vessakulā cepi, brāhmaṇa… sudd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바라문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와이샤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수드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443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목욕 도구를 들고 강에 가서 몸의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는 이는 바라문뿐인가?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못하는가? 아닙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Taṃ kiṃ maññasi, brāhmaṇa, brāhmaṇova nu kho pahoti sottisināniṃ ādāya nadiṃ gantvā rajojallaṃ pavāhetuṃ, no khattiyo no vesso no suddo’’ti?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만이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고, 끄샤뜨리야는 못 하고 와이샤도 못 하고 수드라도 못 하는가?”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크샤트리아도 목욕 도구를 들고 강에 가서 몸의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그렇습니다. 네 계급 모두 씻어 낼 수 있습니다.
Khattiyopi hi, bho gotama, pahoti sottisināniṃ ādāya nadiṃ gantvā rajojallaṃ pavāhetuṃ;
고따마 존자시여, 끄샤뜨리야도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brāhmaṇopi hi, bho gotama… vessopi hi, bho gotama … suddopi hi, bho gotama… sabbepi hi, bho gotama, cattāro vaṇṇā pahonti sottisināniṃ ādāya nadiṃ gantvā rajojallaṃ pavāhetu’’nti.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도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이샤도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수드라도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네 계급 모두가 때 미는 도구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3.3에서 되살렸습니다.
바라문이여, 그와 같이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Evameva kho, brāhmaṇa, khattiyakulā cepi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끄샤뜨리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바라문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바이샤 가문에서 출가한 사람도, 수드라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한다고 하자.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Brāhmaṇakulā cepi, brāhmaṇa… vessakulā cepi, brāhmaṇa… sudd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라문이여, 바라문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와이샤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수드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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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정수식을 받은 크샤트리아 왕이 있다. 그가 여러 출신의 사람 백 명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러분, 크샤트리아 가문, 바라문 가문, 왕족 가문에 태어난 이들은 위쪽 부싯나무를 가져오시오. 사까나무, 살라나무, 살랄라나무, 전단나무, 빠두마까나무로 만든 것이오. 그것으로 불을 일으켜 열을 피워 내시오.’ ‘또 여러분,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대나무 세공 가문, 수레 만드는 가문, 청소부 가문에 태어난 이들은 위쪽 부싯나무를 가져오시오. 개 먹이통, 돼지 먹이통, 빨래통, 아주까리나무로 만든 것이오. 그것으로 불을 일으켜 열을 피워 내시오.’[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brāhmaṇa, idha rājā khattiyo muddhāvasitto nānājaccānaṃ purisānaṃ purisasataṃ sannipāteyya –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머리에 물을 부어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이 갖가지 태생의 사람 백 명을 한자리에 모은다고 하자 —
‘āyantu bhonto ye tattha khattiyakulā brāhmaṇakulā rājaññakulā uppannā sākassa vā sālassa vā salaḷassa vā candanassa vā padumak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ntu, tejo pātukarontu;
‘여러분, 그 가운데 끄샤뜨리야 가문·바라문 가문·왕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은 오시오. 사까 나무나 살라 나무나 살랄라 나무나 전단 나무나 빠두마까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불을 일으키고 불꽃을 드러내시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yantu pana bhonto ye tattha caṇḍālakulā nesādakulā venakulā rathakārakulā pukkusakulā uppannā sāpānadoṇiyā vā sūkaradoṇiyā vā rajakadoṇiyā vā eraṇḍakaṭṭh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ṃ abhinibbattentu, tejo pātukarontū’’’ti?
그리고 여러분, 그 가운데 짠달라 가문·사냥꾼 가문·바구니 짜는 가문·수레 만드는 가문·쓰레기 치우는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은 오시오. 개 밥그릇이나 돼지 여물통이나 빨래통이나 아주까리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불을 일으키고 불꽃을 드러내시오’라고?”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샤트리아 가문, 바라문 가문, 왕족 가문에 태어난 이들이 불을 일으켰다고 하자. 사까나무, 살라나무, 살랄라나무, 전단나무, 빠두마까나무로 만든 위쪽 부싯나무로 일으킨 불이다. 그 불은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환하겠는가? 그 불로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대나무 세공 가문, 수레 만드는 가문, 청소부 가문에 태어난 이들도 불을 일으켰다고 하자. 개 먹이통, 돼지 먹이통, 빨래통, 아주까리나무로 만든 위쪽 부싯나무로 일으킨 불이다. 그 불은 불꽃도 없고, 빛깔도 곱지 않고, 환하지도 않겠는가? 그 불로는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겠는가?[불확실]
‘‘Taṃ kiṃ maññasi, brāhmaṇa, yo evaṃ nu kho so khattiyakulā brāhmaṇakulā rājaññakulā uppannehi sākassa vā sālassa vā salaḷassa vā candanassa vā padumak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 abhinibbatto tejo pātukato so eva nu khvāss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a tena ca sakkā agginā aggikaraṇīyaṃ kātuṃ;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여 끄샤뜨리야 가문·바라문 가문·왕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 사까 나무나 살라 나무나 살랄라 나무나 전단 나무나 빠두마까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일으킨 불, 드러낸 불꽃, 바로 그 불만이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광채가 나며, 그 불로만 불로 할 일을 할 수 있겠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o pana so caṇḍālakulā nesādakulā venakulā rathakārakulā pukkusakulā uppannehi sāpānadoṇiyā vā sūkaradoṇiyā vā rajakadoṇiyā vā eraṇḍakaṭṭh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 abhinibbatto tejo pātukato svāssa aggi na ceva accimā na ca vaṇṇavā na ca pabhassaro na ca tena sakkā agginā aggikaraṇīyaṃ kātu’’nti?
그런데 짠달라 가문·사냥꾼 가문·바구니 짜는 가문·수레 만드는 가문·쓰레기 치우는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 개 밥그릇이나 돼지 여물통이나 빨래통이나 아주까리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일으킨 불, 드러낸 불꽃, 그 불은 불꽃도 없고 빛깔도 곱지 않고 광채도 나지 않으며, 그 불로는 불로 할 일을 할 수 없겠는가?”
아닙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크샤트리아 가문, 바라문 가문, 왕족 가문에 태어난 이들이 위쪽 부싯나무로 일으킨 불은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환합니다. 그 불로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짠달라 가문, 사냥꾼 가문, 대나무 세공 가문, 수레 만드는 가문, 청소부 가문에 태어난 이들이 위쪽 부싯나무로 일으킨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불도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환합니다. 그 불로도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모든 불은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환합니다. 어떤 불로든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불확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Yopi hi so, bho gotama, khattiyakulā brāhmaṇakulā rājaññakulā uppannehi sākassa vā sālassa vā salaḷassa vā candanassa vā padumak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 abhinibbatto tejo pātukato svāss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a tena ca sakkā agginā aggikaraṇīyaṃ kātuṃ;
고따마 존자시여, 끄샤뜨리야 가문·바라문 가문·왕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 사까 나무나 살라 나무나 살랄라 나무나 전단 나무나 빠두마까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일으킨 불, 드러낸 불꽃, 그 불도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광채가 나며, 그 불로 불로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opi so caṇḍālakulā nesādakulā venakulā rathakārakulā pukkusakulā uppannehi sāpānadoṇiyā vā sūkaradoṇiyā vā rajakadoṇiyā vā eraṇḍakaṭṭhassa vā uttarāraṇiṃ ādāya aggi abhinibbatto tejo pātukato svāss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a tena ca sakkā agginā aggikaraṇīyaṃ kātuṃ.
짠달라 가문·사냥꾼 가문·바구니 짜는 가문·수레 만드는 가문·쓰레기 치우는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 개 밥그릇이나 돼지 여물통이나 빨래통이나 아주까리 나무의 윗 부싯목을 가지고 일으킨 불, 드러낸 불꽃, 그 불도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광채가 나며, 그 불로 불로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Sabbopi hi, bho gotama, aggi accimā ceva vaṇṇavā ca pabhassaro ca sabbenapi sakkā agginā aggikaraṇīyaṃ kātu’’nti.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불이든 다 불꽃이 있고 빛깔이 곱고 광채가 나며, 어떤 불로든 다 불로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와 같이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는 것에서 시작해 바른 견해를 지니기까지 앞서와 같이 한다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Evameva kho, brāhmaṇa, khattiyakulā cepi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바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끄샤뜨리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바라문 가문, 바이샤 가문, 수드라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여래께서 일러 주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청정하지 못한 성생활을 삼가며, 거짓말을 삼간다. 이간하는 말과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도 삼간다. 그리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며, 바른 견해를 지닌다. 이렇게 하면 그는 바른 길, 곧 유익한 법을 이룬 사람이다.
Brāhmaṇakulā cepi, brāhmaṇa… vessakulā cepi, brāhmaṇa… suddakulā cepi, brāhmaṇ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o ca tathāgatappaveditaṃ dhammavinayaṃ āgamm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abrahmacariy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nabhijjhālu hoti, abyāpannacitto hoti, sammādiṭṭhi hoti, ārādhako hoti ñāyaṃ dhammaṃ kusala’’nti.
바라문이여, 바라문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와이샤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바라문이여, 수드라 가문에서라도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그가 여래께서 선언하신 법과 율에 의지하여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기를 삼가고, 청정하지 않은 삶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탐내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지니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그는 올바른 길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 자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96:441.25에서 되살렸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에수까리 바라문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훌륭합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 주시듯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고타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에수까리 경이 끝났다. 여섯째이다.
Evaṃ vutte, esukārī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에수까리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pe…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고따마 존자시여,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거나, 덮인 것을 열어 보이거나,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거나, 어둠 속에서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라’며 기름 등불을 들어 주는 것과 같이, 바로 이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0:486.3 ~ PN:mn100/486.6에서 되살렸습니다.
Esukārī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에수까리 경이 끝났다. 여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