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Ghoṭamukhasuttaṃ
4. 고따무카 경
412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우데나 존자가 바라나시의 케미야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바라문 고타무카가 볼일이 있어 바라나시에 와 있었다. 그는 산책 삼아 이리저리 거닐다가 케미야 망고 숲으로 찾아갔다. 마침 우데나 존자는 탁 트인 곳에서 거닐고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āyasmā udeno bārāṇasiyaṃ viharati khemiyambavane.
한때 우데나 존자가 바라나시의 케미야 망고 숲에 머물렀다.
Tena kho pana samayena ghoṭamukho brāhmaṇo bārāṇasiṃ anuppatto ho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때 고따무카 바라문이 무슨 볼일이 있어 바라나시에 다다라 있었다.
Atha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yena khemiyambavanaṃ tenupasaṅkami.
그때 고따무카 바라문이 다리를 풀려고 이리저리 거닐고 돌아다니다가 케미야 망고 숲으로 갔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udeno abbhokāse caṅkamati.
그때 우데나 존자는 노천에서 거닐고 있었다.
고타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이 오간 뒤, 그는 거니는 존자를 따라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yenāyasmā udeno tenupasaṅkami;
그때 고따무카 바라문이 우데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tā udenena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우데나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āyasmantaṃ udenaṃ caṅkamantaṃ anucaṅkamamāno evamāha –
기쁘고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거니는 우데나 존자를 따라 거닐면서 이렇게 말했다 —
"여보시오 사문이여, 나는 법답게 사는 출가 수행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나 뵙지 못했거나, 이 문제에 관한 법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불확실]
‘‘ambho samaṇa, ‘natthi dhammiko paribbajo’ –
“여보시오 사문, ‘법다운 유행 생활은 없다’ —
evaṃ me ettha hoti.
제게는 여기서 이렇게 여겨집니다.
Tañca kho bhavantarūpānaṃ vā adassanā, yo vā panettha dhammo’’ti.
그리고 그것은 존자 같은 분들을 뵙지 못한 탓이거나, 아니면 여기에 어떤 법이 있어서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이 말을 듣고 우데나 존자는 거닐던 길에서 내려와 처소로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고타무카 바라문도 길에서 내려와 처소로 들어가 한쪽에 섰다. 그에게 우데나 존자가 말했다.
Evaṃ vutte, āyasmā udeno caṅkamā orohitvā vihāraṃ pavis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이렇게 말하자, 우데나 존자는 거닐던 자리에서 내려와 처소에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Ghoṭamukhopi kho brāhmaṇo caṅkamā orohitvā vihāraṃ pavis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고따무카 바라문도 거닐던 자리에서 내려와 처소에 들어가 한쪽에 섰다.
Ekamantaṃ ṭhitaṃ kho ghoṭamukhaṃ brāhmaṇaṃ āyasmā udeno etadavoca –
한쪽에 선 고따무카 바라문에게 우데나 존자가 이렇게 말했다 —
"바라문이여, 자리들이 있소. 원한다면 앉으시오."
‘‘saṃvijjanti kho, brāhmaṇa, āsanāni.
“바라문이여, 자리들이 있다.
Sace ākaṅkhasi, nisīdā’’ti.
원한다면 앉아라.”
"저는 우데나 존자께서 권해 주시기를 기다리느라 앉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청을 받지도 않고 어찌 자리에 앉겠습니까?"[불확실]
‘‘Etadeva kho pana mayaṃ bhoto udenassa āgamayamānā (na) nisīdāma.
“저희는 우데나 존자의 바로 이것을 기다리면서 앉지 않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athañhi nāma mādiso pubbe animantito āsane nisīditabbaṃ maññeyyā’’ti?
저 같은 사람이 미리 청함을 받지도 않고서 어찌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여기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고타무카 바라문은 낮은 자리 하나를 집어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우데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그때 고따무카 바라문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āyasmantaṃ uden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고따무카 바라문이 우데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보시오 사문이여, 나는 법답게 사는 출가 수행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나 뵙지 못했거나, 이 문제에 관한 법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불확실]
‘‘ambho samaṇa, ‘natthi dhammiko paribbajo’ –
“여보시오 사문, ‘법다운 유행 생활은 없다’ —
evaṃ me ettha hoti.
제게는 여기서 이렇게 여겨집니다.
Tañca kho bhavantarūpānaṃ vā adassanā, yo vā panettha dhammo’’ti.
그리고 그것은 존자 같은 분들을 뵙지 못한 탓이거나, 아니면 여기에 어떤 법이 있어서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라문이여, 내 말에서 인정할 만한 것은 인정하고 반박할 만한 것은 반박하시오. 내 말뜻을 모르겠거든 그 자리에서 바로 내게 되물으시오. '우데나 존자여, 이것은 어떤 말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말이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오."
‘‘Sace kho pana me tvaṃ, brāhmaṇa, anuññeyyaṃ anujāneyyāsi, paṭikkositabbañca paṭikkoseyyāsi;
“바라문이여, 만일 그대가 내게 인정할 만한 것은 인정하고, 물리쳐야 할 것은 물리치며;
yassa ca pana me bhāsitassa atthaṃ na jāneyyāsi, mamaṃyeva tattha uttari paṭipuccheyyāsi –
또 내가 말한 것 가운데 그대가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바로 내게 더 되물어 —
‘idaṃ, bho udena, kathaṃ, imassa kvattho’ti?
‘우데나 존자여, 이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한다면,
Evaṃ katvā siyā no ettha kathāsallāpo’’ti.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여기서 대화가 있으면 좋겠다.”
"저는 존자의 말씀에서 인정할 만한 것은 인정하고 반박할 만한 것은 반박하겠습니다. 말씀의 뜻을 모르겠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여쭙겠습니다. '우데나 존자여, 이것은 어떤 말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이야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Anuññeyyaṃ khvāhaṃ bhoto udenassa anujānissāmi, paṭikkositabbañca paṭikkosissāmi;
“우데나 존자께 인정할 만한 것은 제가 인정하고, 물리쳐야 할 것은 물리치겠습니다;
yassa ca panāhaṃ bhoto udenassa bhāsitassa atthaṃ na jānissāmi, bhavantaṃyeva tattha udenaṃ uttari paṭipucchissāmi –
또 우데나 존자께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 제가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바로 우데나 존자께 더 되묻겠습니다 —
‘idaṃ, bho udena, kathaṃ, imassa kvattho’ti?
‘우데나 존자여, 이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Evaṃ katvā hotu no ettha kathāsallāpo’’ti.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여기서 대화가 있게 하십시오.”
413
"바라문이여,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소. 어떤 네 부류인가?
‘‘Cattārome, brāhmaṇa,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바라문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어 존재한다.
Katame cattāro?
어떤 넷인가?
첫째,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소. 둘째, 남을 괴롭히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소.
Idha, brāhmaṇa, ekacco puggalo attantapo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이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parantapo hoti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이다.
셋째,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며, 자신과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소. 넷째,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고, 자신과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도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 있소.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attantapo ca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은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이며,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이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o puggalo nevattantapo hoti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은 자기를 태우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며, 남을 태우는 자도 아니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다.
이 사람은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으므로, 바로 이 생에서 갈애가 사라지오. 불이 꺼지듯 평온해지고 시원해져서, 행복을 느끼며 청정한 마음으로 지내오. 바라문이여, 이 네 부류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대의 마음에 드시오?"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그는 자기를 태우지 않고 남을 태우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이 없고, 꺼졌고, 서늘해졌고, 즐거움을 누리며, 신성이 된 자기로 머문다.
Imesaṃ, brāhmaṇa, catunnaṃ puggalānaṃ katamo te puggalo cittaṃ ārādhetī’’ti?
바라문이여, 이 네 부류의 사람 가운데 그대에게는 어떤 사람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가?”
"우데나 존자여,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Yvāyaṃ, bho udena,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ayaṃ me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이 사람은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yopāyaṃ, bho udena,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ayampi me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우데나 존자여,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이 사람도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yopāyaṃ, bho udena,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ayampi me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하며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이 사람도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고,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이 생에서 갈애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평온해지고 시원해져서, 행복을 느끼며 청정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제 마음에 듭니다."
yo ca kho ayaṃ, bho uden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그러나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며 남을 태우는 자도 아니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닌 이 사람, 그는 자기를 태우지 않고 남을 태우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이 없고, 꺼졌고, 서늘해졌고, 즐거움을 누리며, 신성이 된 자기로 머뭅니다.
Ayameva me puggalo cittaṃ ārādhetī’’ti.
바로 이 사람이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런데 어째서 이 세 부류의 사람은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않소?"
‘‘Kasmā pana te, brāhmaṇa, ime tayo puggalā cittaṃ nārādhentī’’ti?
“바라문이여, 그러면 왜 이 세 부류의 사람은 그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는가?”
"우데나 존자여,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기 자신을 뜨겁게 달구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Yvāyaṃ, bho udena,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ttānaṃ sukhakāmaṃ dukkhapaṭikkūlaṃ ātāpeti paritāpeti;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그는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기를 태우고 지집니다;
iminā me ayaṃ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이 때문에 제게 이 사람은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남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남을 뜨겁게 달구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Yopāyaṃ, bho udena,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paraṃ sukhakāmaṃ dukkhapaṭikkūlaṃ ātāpeti paritāpeti;
우데나 존자여,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그는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남을 태우고 지집니다;
iminā me ayaṃ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이 때문에 제게 이 사람은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신과 남을 모두 뜨겁게 달구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Yopāyaṃ, bho udena,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ttānañca parañca sukhakāmaṃ dukkhapaṭikkūlaṃ ātāpeti paritāpeti;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하며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이 사람, 그는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기와 남을 태우고 지집니다;
iminā me ayaṃ puggalo cittaṃ nārādheti.
이 때문에 제게 이 사람은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바로 이 생에서 갈애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평온해지고 시원해져서, 행복을 느끼며 청정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신과 남을 달구지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제 마음에 듭니다."
Yo ca kho ayaṃ, bho uden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so attānañca parañca sukhakāmaṃ dukkhapaṭikkūlaṃ neva ātāpeti na paritāpeti;
그러나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며 남을 태우는 자도 아니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닌 이 사람, 그는 자기를 태우지 않고 남을 태우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이 없고, 꺼졌고, 서늘해졌고, 즐거움을 누리며, 신성이 된 자기로 머무는데, 그는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자기와 남을 태우지도 않고 지지지도 않습니다;
iminā me ayaṃ puggalo cittaṃ ārādhetī’’ti.
이 때문에 제게 이 사람은 마음을 흡족하게 합니다.”
414
"바라문이여, 두 부류의 무리가 있소. 어떤 두 부류인가?
‘‘Dvemā, brāhmaṇa, parisā.
“바라문이여, 이런 두 무리가 있다.
Katamā dve?
어떤 둘인가?
한 무리는 보석과 귀고리에 깊이 빠져 집착하오. 그래서 아들과 아내를 구하고, 남녀 종을 구하고, 논밭과 집터를 구하고, 금과 은을 구하오. 다른 무리는 보석과 귀고리에 집착하지 않소. 그래서 아들과 아내, 남녀 종, 논밭과 집터, 금과 은을 버리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였소.
Idha, brāhmaṇa, ekaccā parisā 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puttabhariyaṃ pariyesati, dāsidāsaṃ pariyesati, khettavatthuṃ pariyesati, jātarūparajataṃ pariyesati.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무리는 보석과 귀걸이에 깊이 물들어 아들과 아내를 찾고, 하녀와 하인을 찾고, 밭과 집터를 찾고, 금과 은을 찾는다.
‘‘Idha pana, brāhmaṇa, ekaccā parisā a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puttabhariyaṃ pahāya, dāsidāsaṃ pahāya, khettavatthuṃ pahāya, jātarūparajataṃ pa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바라문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무리는 보석과 귀걸이에 물들지 않아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하녀와 하인을 버리고, 밭과 집터를 버리고, 금과 은을 버리고,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바라문이여, 이 출가한 사람은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고,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도 않소. 그는 바로 이 생에서 갈애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평온해지고 시원해져서, 행복을 느끼며 청정한 마음으로 지내오.
Svāyaṃ, brāhmaṇ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은 자기를 태우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며, 남을 태우는 자도 아니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다.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그는 자기를 태우지 않고 남을 태우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이 없고, 꺼졌고, 서늘해졌고, 즐거움을 누리며, 신성이 된 자기로 머문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런 사람을 어느 무리에서 더 많이 보시오? 보석과 귀고리에 빠져 처자와 종, 논밭과 집터, 금과 은을 구하는 무리요? 아니면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 모두 버리고 집을 떠나 출가한 무리요?"
Idha katamaṃ tvaṃ, brāhmaṇa, puggalaṃ katamāya parisāya bahulaṃ samanupassasi –
바라문이여, 여기서 그대는 어떤 사람을 어떤 무리에서 더 많이 보는가 —
yā cāyaṃ parisā 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puttabhariyaṃ pariyesati dāsidāsaṃ pariyesati khettavatthuṃ pariyesati jātarūparajataṃ pariyesati, yā cāyaṃ parisā a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puttabhariyaṃ pahāya dāsidāsaṃ pahāya khettavatthuṃ pahāya jātarūparajataṃ pa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ti?
보석과 귀걸이에 깊이 물들어 아들과 아내를 찾고 하녀와 하인을 찾고 밭과 집터를 찾고 금과 은을 찾는 이 무리와, 보석과 귀걸이에 물들지 않아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하녀와 하인을 버리고 밭과 집터를 버리고 금과 은을 버리고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이 무리 가운데서?”
"우데나 존자여,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고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 생에서 갈애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평온해지고 시원해져서, 행복을 느끼며 청정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그런 사람은 보석과 귀고리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무리에서 더 많이 보입니다."
‘‘Yvāyaṃ, bho uden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우데나 존자여, 자기를 태우는 자도 아니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니며 남을 태우는 자도 아니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자도 아닌 이 사람, 그는 자기를 태우지 않고 남을 태우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이 없고, 꺼졌고, 서늘해졌고, 즐거움을 누리며, 신성이 된 자기로 머뭅니다;
imāhaṃ puggalaṃ yāyaṃ parisā a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puttabhariyaṃ pahāya dāsidāsaṃ pahāya khettavatthuṃ pahāya jātarūparajataṃ pa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imissaṃ parisāyaṃ bahulaṃ samanupassāmī’’ti.
저는 이 사람을, 보석과 귀걸이에 물들지 않아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하녀와 하인을 버리고 밭과 집터를 버리고 금과 은을 버리고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 그 무리, 이 무리에서 더 많이 봅니다.”
"바라문이여, 방금 그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소? '여보시오 사문이여, 나는 법답게 사는 출가 수행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나 뵙지 못했거나, 이 문제에 관한 법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불확실]
‘‘Idāneva kho pana te, brāhmaṇa, bhāsitaṃ –
“그런데 바라문이여, 그대는 방금 이렇게 말했다 —
‘mayaṃ evaṃ ājānāma –
‘저희는 이렇게 압니다 —
ambho samaṇa, natthi dhammiko paribbajo, evaṃ me ettha hoti.
여보시오 사문, 법다운 유행 생활은 없다, 제게는 여기서 이렇게 여겨집니다.
Tañca kho bhavantarūpānaṃ vā adassanā, yo vā panettha dhammo’’’ti.
그리고 그것은 존자 같은 분들을 뵙지 못한 탓이거나, 아니면 여기에 어떤 법이 있어서입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우데나 존자여, 제 말은 분명히 앞뒤를 살피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법답게 사는 출가 수행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자께서도 저를 그렇게 받아들여 주십시오. 존자께서는 네 부류의 사람을 간략하게만 말씀하시고 자세히 풀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불확실]
‘‘Addhā mesā, bho udena, sānuggahā vācā bhāsitā.
“우데나 존자여, 참으로 그 말씀은 저를 도우려고 해 주신 말씀입니다.
‘Atthi dhammiko paribbajo’ –
‘법다운 유행 생활은 있다’ —
evaṃ me ettha hoti.
제게는 여기서 이렇게 여겨집니다.
Evañca pana maṃ bhavaṃ udeno dhāretu.
그러니 우데나 존자께서는 저를 이렇게 지녀 주십시오.
Ye ca me bhotā udenena cattāro puggalā saṃkhittena vuttā vitthārena avibhattā, sādhu me bhavaṃ, udeno ime cattāro puggale vitthārena vibhajatu anukampaṃ upādāyā’’ti.
그리고 우데나 존자께서 제게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나누어 주지 않으신 네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부디 우데나 존자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이 네 부류의 사람을 자세히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들으시오. 잘 마음에 새기시오. 말하겠소." 고타무카 바라문이 "그러겠습니다, 존자여." 하고 대답했다. 우데나 존자가 이렇게 말했다.[불확실]
‘‘Tena hi, brāhmaṇa,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o’’ti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āyasmato udenassa paccassosi.
“예, 존자시여” 하고 고따무카 바라문이 우데나 존자께 대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yasmā udeno etadavoca –
우데나 존자가 이렇게 말했다 —
415
"바라문이여,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오? 이런 사람이오. 옷을 입지 않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며, 손을 핥아먹소. '오시오' 해도 가지 않고 '서시오' 해도 서지 않소. 가져온 음식도, 자기를 위해 따로 만든 음식도, 초대도 받지 않소.
‘‘Katamo ca, brāhmaṇa,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인가?
Idha, brāhmaṇa, ekacco puggalo acelako hoti muttācāro hatthāpalekhano naehibhaddantiko natiṭṭhabhaddantiko, nābhihaṭaṃ na uddissakataṃ na nimantanaṃ sādiyati.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옷을 벗은 자이고, 관습을 버린 자이고, 손을 핥는 자이고, ‘오십시오’ 해도 오지 않는 자이고, ‘멈추십시오’ 해도 멈추지 않는 자이며, 가져다 놓은 것도 자기를 위해 지은 것도 초대받은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솥에서 바로 퍼 주는 음식을 받지 않소. 그릇에서 바로 퍼 주는 음식도 받지 않소. 문지방 너머로 주는 것, 막대기 너머로 주는 것, 절굿공이 너머로 주는 것도 받지 않소. 둘이 함께 먹는 데서도 받지 않소. 임신한 여인, 젖먹이는 여인, 남자와 함께 있는 여인에게서도 받지 않소. 기근 때 모아 둔 곳, 개가 기다리는 곳, 파리 떼가 날아드는 곳에서도 받지 않소. 물고기도 고기도 먹지 않고, 곡주도 과실주도 쌀뜨물도 마시지 않소.[불확실]
So na kumbhimukhā paṭiggaṇhāti, na kaḷopimukhā paṭiggaṇhāti, na eḷakamantaraṃ, na daṇḍamantaraṃ, na musalamantaraṃ, na dvinnaṃ bhuñjamānānaṃ, na gabbhiniyā, na pāyamānāya, na purisantaragatāya, na saṅkittīsu, na yattha sā upaṭṭhito hoti, na yattha makkhikā saṇḍasaṇḍacārinī, na macchaṃ na maṃsaṃ, na suraṃ na merayaṃ na thusodakaṃ pivati.
그는 항아리 아가리에서 받지 않고, 단지 아가리에서 받지 않고,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도, 몽둥이를 사이에 두고도, 절굿공이를 사이에 두고도,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도, 임신한 여자에게서도, 젖 먹이는 여자에게서도, 남자와 함께 있는 여자에게서도, 음식을 나누어 주는 자리에서도, 개가 지켜 서 있는 곳에서도, 파리 떼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받지 않으며, 생선도 고기도 받지 않고, 곡주도 과일주도 쌀뜨물 술도 마시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한 집에서만 얻어 한 입만 먹기도 하고, 두 집에서 얻어 두 입만 먹기도 하오. 이렇게 늘려 일곱 집에서 얻어 일곱 입만 먹기도 하오. 한 번 올린 음식으로 살기도 하고, 두 번 올린 음식으로 살기도 하오. 이렇게 늘려 일곱 번 올린 음식으로 살기도 하오.[불확실]
So ekāgāriko vā hoti ekālopiko, dvāgāriko vā hoti dvālopiko…pe… sattāgāriko vā hoti sattālopiko;
그는 한 집만 다니는 자이고 한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두 집만 다니는 자이고 두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세 집만 다니는 자이고 세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네 집만 다니는 자이고 네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다섯 집만 다니는 자이고 다섯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여섯 집만 다니는 자이고 여섯 덩이만 먹는 자이거나, 일곱 집만 다니는 자이고 일곱 덩이만 먹는 자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kissāpi dattiyā yāpeti, dvīhipi dattīhi yāpeti…pe… sattahipi dattīhi yāpeti;
한 접시로도 지내고, 두 접시로도 지내고, 세 접시로도 지내고, 네 접시로도 지내고, 다섯 접시로도 지내고, 여섯 접시로도 지내고, 일곱 접시로도 지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기도 하고, 이틀에 한 끼만 먹기도 하오. 이렇게 늘려 이레에 한 끼만 먹기도 하오. 이처럼 보름 동안 돌아가며 먹는 식사법에 몰두하여 지내오.
ekāhikampi āhāraṃ āhāreti, dvīhikampi āhāraṃ āhāreti…pe… sattāhikampi āhāraṃ āhāreti –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사흘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나흘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닷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엿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이레에 한 번 음식을 먹기도 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45:470.5에서 되살렸습니다.
iti evarūpaṃ addhamāsikaṃ pariyāyabhattabhojanānuyogamanuyutto viharati.
이렇게 이런 식으로 보름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때에만 밥을 먹는 수행에 몰두하여 머문다.
그는 채소를 먹소. 피를 먹기도 하고, 야생 쌀이나 가죽 부스러기를 먹기도 하오. 수초, 쌀겨, 밥 눌은 것, 깻묵, 풀, 소똥을 먹기도 하오. 숲속의 뿌리와 열매를 먹고 떨어진 열매로 살아가기도 하오.
So sākabhakkho vā hoti, sāmākabhakkho vā hoti, nīvārabhakkho vā hoti, daddulabhakkho vā hoti, haṭabhakkho vā hoti, kaṇabhakkho vā hoti, ācāmabhakkho vā hoti, piññākabhakkho vā hoti, tiṇabhakkho vā hoti, gomayabhakkho vā hoti, vanamūlaphalāhāro yāpeti pavattaphalabhojī.
그는 나물을 먹는 자이거나, 피를 먹는 자이거나, 들벼를 먹는 자이거나, 가죽 부스러기를 먹는 자이거나, 물풀을 먹는 자이거나, 쌀겨를 먹는 자이거나, 밥물을 먹는 자이거나, 깻묵을 먹는 자이거나, 풀을 먹는 자이거나, 쇠똥을 먹는 자이며, 숲의 뿌리와 열매를 먹고 지내고 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옷도 갖가지로 입소. 삼베옷, 삼베 섞인 천, 시체를 쌌던 천, 누더기, 나무껍질 천을 입소. 영양 가죽과 그 조각도 입소. 쿠사 풀, 나무껍질, 나무판자로 엮은 옷도 입소. 머리카락으로 짠 담요, 짐승 털로 짠 담요, 올빼미 깃털로 만든 옷도 입소.
So sāṇānipi dhāreti, masāṇānipi dhāreti, chavadussānipi dhāreti, paṃsukūlānipi dhāreti, tirīṭānipi dhāreti, ajinampi dhāreti, ajinakkhipampi dhāreti, kusacīrampi dhāreti, vākacīrampi dhāreti, phalakacīrampi dhāreti, kesakambalampi dhāreti, vāḷakambalampi dhāreti, ulūkapakkhampi dhāreti;
그는 삼베옷도 걸치고, 섞어 짠 옷도 걸치고, 시체를 쌌던 천도 걸치고, 버려진 천 조각도 걸치고, 로드라 나무껍질 옷도 걸치고, 영양 가죽도 걸치고, 영양 가죽을 쪼갠 것도 걸치고, 꾸사풀 옷도 걸치고, 나무껍질 옷도 걸치고, 나무판자 옷도 걸치고, 사람 머리카락으로 짠 담요도 걸치고, 말총 담요도 걸치고, 올빼미 깃털 옷도 걸친다;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일에 몰두하여 실제로 뽑기도 하오. 앉기를 마다하고 계속 서 있기도 하오. 쪼그려 앉는 수행에 몰두하여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하오. 가시 위에서 지내며 가시 침상에 눕기도 하오. 저녁까지 합해 하루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일에도 몰두하오. 이처럼 몸을 달구고 괴롭히는 갖가지 일에 몰두하며 지내오.
kesamassulocakopi hoti kesamassulocanānuyogamanuyutto, ubbhaṭṭhakopi hoti āsanapaṭikkhitto, ukkuṭikopi hoti ukkuṭikappadhānamanuyutto, kaṇṭakāpassayikopi hoti kaṇṭakāpassaye seyyaṃ kappeti;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자이기도 하고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자이며, 늘 서 있는 자이기도 하고 자리를 마다한 자이며, 쭈그려 앉는 자이기도 하고 쭈그려 앉는 정진에 몰두한 자이며, 가시 자리에 눕는 자이기도 하고 가시 자리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sāyatatiyakampi udakorohanānuyogamanuyutto viharati –
저녁을 세 번째로 삼아 물에 내려가는 수행에 몰두하여 머문다 —
iti evarūpaṃ anekavihitaṃ kāyassa ātāpanaparitāpanānuyogamanuyutto viharati.
이렇게 이런 여러 가지로 몸을 태우고 지지는 수행에 몰두하여 머문다.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 하오.
Ayaṃ vuccati, brāhmaṇa,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이를 두고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이라 한다.
416
"바라문이여, 남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오? 이런 사람이오. 양을 잡는 자, 돼지를 잡는 자, 새를 잡는 자, 사슴을 잡는 사냥꾼이오. 잔인한 자, 물고기를 잡는 자, 도둑, 도둑을 죽이는 자, 소를 잡는 자, 감옥을 지키는 자도 그렇소. 그 밖에 다른 잔혹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렇소.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을 남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 하오.
‘‘Katamo ca, brāhmaṇa,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인가?
Idha, brāhmaṇa, ekacco puggalo orabbhiko hoti sūkariko sākuṇiko māgaviko luddo macchaghātako coro coraghātako goghātako bandhanāgāriko –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을 잡는 자이고, 돼지를 잡는 자이고, 새를 잡는 자이고, 사슴을 잡는 자이고, 사냥꾼이고, 물고기를 죽이는 자이고, 도둑이고, 도둑을 죽이는 자이고, 소를 잡는 자이고, 옥지기이다 —
ye vā panaññepi keci kurūrakammantā.
또는 그 밖에 잔인한 일을 업으로 삼는 어떤 이들이다.
Ayaṃ vuccati, brāhmaṇa,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이를 두고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이라 한다.
417
"바라문이여,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오? 이런 사람이오. 정수리에 관정을 받은 왕족 출신의 왕이거나, 큰 부를 가진 바라문이오.
‘‘Katamo ca, brāhmaṇa,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하며,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인가?
Idha, brāhmaṇa, ekacco puggalo rājā vā hoti khattiyo muddhāvasitto, brāhmaṇo vā mahāsālo.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정수리에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산을 가진 바라문이다.
그는 도시 동쪽에 새 집회장을 짓게 하오.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거친 영양 가죽을 두르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오. 사슴뿔로 등을 긁으면서, 왕비와 바라문 사제를 데리고 새 집회장에 들어가오. 거기서 덮개 없는 맨바닥에 푸른 풀을 바르고 눕소.
So puratthimena nagarassa navaṃ santhāgāraṃ kārāpetvā kesamassuṃ ohāretvā kharājinaṃ nivāsetvā sappitelena kāyaṃ abbhañjitvā magavisāṇena piṭṭhiṃ kaṇḍuvamāno navaṃ santhāgāraṃ pavisati saddhiṃ mahesiyā brāhmaṇena ca purohitena.
그는 도성 동쪽에 새 집회당을 짓게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영양 가죽을 두르고, 버터기름과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으면서 왕비와 바라문 제관과 함께 새 집회당에 들어간다.
So tattha anantarahitāya bhūmiyā haritupalittāya seyyaṃ kappeti.
그는 거기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풀을 바른 땅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새끼를 거느린 같은 빛깔의 암소 한 마리의 젖을 이렇게 나누오. 한쪽 젖통의 젖으로는 왕이 살아가오. 두 번째 젖통의 젖으로는 왕비가 살아가오. 세 번째 젖통의 젖으로는 바라문 사제가 살아가오. 네 번째 젖통의 젖은 불에 공물로 바치오. 나머지로는 송아지가 살아가오.
Ekissāya gāviyā sarūpavacchāya yaṃ ekasmiṃ thane khīraṃ hoti tena rājā yāpeti, yaṃ dutiyasmiṃ thane khīraṃ hoti tena mahesī yāpeti, yaṃ tatiyasmiṃ thane khīraṃ hoti tena brāhmaṇo purohito yāpeti, yaṃ catutthasmiṃ thane khīraṃ hoti tena aggiṃ juhati, avasesena vacchako yāpeti.
제 새끼와 같은 빛깔의 송아지를 둔 어미 소 한 마리에서, 첫째 젖꼭지에 있는 젖으로 왕이 지내고, 둘째 젖꼭지에 있는 젖으로 왕비가 지내고, 셋째 젖꼭지에 있는 젖으로 바라문 제관이 지내고, 넷째 젖꼭지에 있는 젖으로 불에 바치고, 남은 것으로 송아지가 지낸다.
그는 이렇게 말하오. '이만큼의 황소를 제사를 위해 죽여라. 이만큼의 어린 수소를 제사를 위해 죽여라. 이만큼의 어린 암소를 제사를 위해 죽여라. 이만큼의 염소와 양과 말도 제사를 위해 죽여라. 이만큼의 나무를 제사 기둥을 위해 베어라. 이만큼의 풀을 제사 자리를 위해 베어라.'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ettakā usabhā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vacchatarā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vacchatariyo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ajā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urabbhā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assā haññantu yaññatthāya, ettakā rukkhā chijjantu yūpatthāya, ettakā dabbhā lūyantu barihisatthāyā’ti.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황소를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수송아지를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암송아지를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염소를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숫양을 죽여라, 제사를 위해 이만큼의 말을 죽여라, 제사 기둥을 위해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 제사 자리 풀을 위해 이만큼의 답바풀을 베어라.’라고.
그에게 '종'이니 '심부름꾼'이니 '일꾼'이니 하는 사람들은 매질과 두려움에 시달리오. 눈물 젖은 얼굴로 울면서 일을 하오.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 하오.
Yepissa te honti ‘dāsā’ti vā ‘pessā’ti vā ‘kammakarā’ti vā tepi daṇḍatajjitā bhayatajjitā assumukhā rudamānā parikammāni karonti.
‘종’이라거나 ‘심부름꾼’이라거나 ‘일꾼’이라 하는 그의 사람들도 몽둥이에 위협당하고 두려움에 위협당하여 눈물 젖은 얼굴로 울면서 준비하는 일들을 한다.
Ayaṃ vuccati, brāhmaṇa,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이를 두고 자기를 태우는 자이고 자기를 지지는 수행에 몰두하며, 남을 태우는 자이고 남을 지지는 수행에 몰두한 사람이라 한다.
418
바라문이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그런 일에 매달리지도 않으며, 남을 괴롭히지 않고 그런 일에 매달리지도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스스로도 남도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갈애가 사라지고 꺼져 시원해진다. 즐거움을 느끼며 범천처럼 맑은 존재로 지낸다.
‘‘Katamo ca, brāhmaṇ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도 않으며,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도 않는 사람인가;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 없고 고요히 꺼지고 서늘해져 행복을 느끼며 신성이 된 자신으로 머무는 사람인가?
바라문이여, 이 세상에 여래가 나타난다. 그분은 공양받아 마땅하고, 바르고 완전하게 깨달았다. 밝은 지혜와 실천을 갖추었고, 잘 가셨으며, 세상을 아신다. 사람을 길들이는 위없는 조련사이고,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은 분이자 세존이다. 그는 하늘 신들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몸소 겪는다. 사문과 바라문, 신과 사람이 사는 이 무리도 그렇게 안 뒤에 널리 알린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가르친다. 뜻과 표현을 갖춘 그 법으로, 온전히 가득 차고 맑고 깨끗한 청정한 수행을 드러내 보인다.
Idha, brāhmaṇ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바라문이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다스릴 만한 사람을 이끄시는 위없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그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를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서 알린다.
So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그는 법을 설한다 —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그 삶을 드러낸다.
집주인이나 집주인의 아들, 혹은 어느 집안에 다시 태어난 사람이 그 법을 듣는다. 그는 법을 듣고 여래에게 믿음을 얻는다. 믿음을 얻은 그는 이렇게 곰곰이 생각한다.
Taṃ dhammaṃ suṇāti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ññatarasmiṃ vā kule paccājāto.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다른 어떤 가문에 태어난 이가 그 법을 듣는다.
So taṃ dhammaṃ sutvā 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So tena saddhāpaṭilābhena samannāgat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그렇게 얻은 믿음을 지니고 이렇게 성찰한다:
‘집에 사는 삶은 비좁고 먼지가 이는 길이다. 집을 떠난 삶은 탁 트인 열린 하늘 같다. 집에 살면서 온전히 가득 차고 맑으며, 조개껍데기를 갈아 놓은 듯 윤이 나는 청정한 수행을 닦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sambādho gharāvāso rajopatho abbhokāso pabbajjā.
‘재가의 삶은 갑갑하고 티끌 이는 길이며, 출가는 확 트인 것이다.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ṅ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집에 살면서 이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청정한, 소라처럼 매끈한 청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리라.’
그는 얼마 뒤 재산을 버린다. 적든 많든 버리고, 친족도 적든 많든 버린다.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색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mahant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app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mahant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그는 훗날 적은 재산 더미를 버리거나 큰 재산 더미를 버리고, 적은 친족 무리를 버리거나 큰 친족 무리를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든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비구들의 배움과 생활 방식을 갖춘다.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그로부터 멀리 떠난다.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비롭게 지낸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이익을 위해 연민한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bhikkhūnaṃ sikkhāsājīvasamāpanno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그는 이렇게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과 생활 규범을 갖추고, 살생을 버리고 살생을 삼간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아, 부끄러움을 알고 연민을 지니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머문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그로부터 멀리 떠난다. 주는 것만 받고 주기를 기다리며, 훔치려는 마음 없이 스스로 깨끗하게 지낸다. 청정하지 못한 행을 버리고 청정하게 행한다. 성적인 일, 세속의 일을 멀리하며 하지 않는다.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간다. 주는 것만 받고 주는 것만 바란다.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ti.
도둑질하지 않아 스스로 깨끗해진 자신으로 머문다.
‘‘Abrahmacariyaṃ pahāya brahmacārī hoti ārācārī virato methunā gāmadhammā.
청정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산다. 멀찍이 떨어져 지내며, 저속한 짓인 성행위를 삼간다.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로부터 멀리 떠난다. 참말을 하고 참말에 충실하다. 믿을 만하고 미더우며,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Musāvādaṃ pahāy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saccavādī saccasandho theto paccayiko avisaṃvādako lokassa.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삼간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에 매이며,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그로부터 멀리 떠난다. 여기서 들은 것을 저기에 가서 전해 이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저기서 들은 것을 여기에 와서 전해 저 사람들을 갈라놓지도 않는다. 갈라진 이들은 화합시키고, 화합한 이들은 더욱 북돋운다. 화합을 즐기고 기뻐하며, 화합을 만드는 말을 한다.
‘‘Pisuṇaṃ vācaṃ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삼간다;
ito sutvā na amutra akkhātā imesaṃ bhedāya, amutra vā sutvā na imesaṃ akkhātā amūsaṃ bhedāya.
여기서 듣고 저기 가서 이들을 갈라놓으려고 말하지 않고, 저기서 듣고 여기 와서 저들을 갈라놓으려고 말하지 않는다.
Iti bhinnānaṃ vā sandhātā sahitānaṃ vā anuppadātā, samaggārāmo samaggarato samagganandī samaggakaraṇiṃ vācaṃ bhāsitā hoti.
이렇게 갈라진 이들을 화해시키고 화합한 이들을 북돋우며,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반기며, 화합을 이루는 말을 한다.
거친 말을 버리고 거친 말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가 하는 말은 흠이 없고 귀에 즐겁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와닿으며, 예의 바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이다.
‘‘Pharusaṃ vācaṃ pahāy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거친 말을 버리고 거친 말을 삼간다.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iṃ vācaṃ bhāsitā hoti.
흠 없고 귀에 즐거우며, 정겹고 마음에 닿으며,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쓸데없는 말을 버리고 쓸데없는 말로부터 멀리 떠난다. 때에 맞게, 사실대로 말한다. 이로운 말, 법에 맞는 말, 율에 맞는 말을 한다. 마음에 새길 만한 말을 때에 맞게 한다. 근거를 들어 절제 있게, 이익이 되도록 말한다.
‘‘Samphappalāpaṃ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kālavādī bhūtavādī atthavādī dhammavādī vinayavādī, nidhānavatiṃ vācaṃ bhāsitā kālena sāpadesaṃ pariyantavatiṃ atthasaṃhitaṃ.
쓸데없는 잡담을 버리고 쓸데없는 잡담을 삼간다. 때에 맞게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이익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새겨 둘 만한 말을 때에 맞게, 근거를 갖추어, 절도 있게, 이익에 맞게 한다.
그는 씨앗과 풀과 나무를 해치는 일에서 멀리 떠난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 아닌 때의 식사를 삼간다. 춤과 노래와 음악과 구경거리를 멀리한다. 꽃다발과 향과 화장품으로 몸을 꾸미는 일도 멀리한다. 높고 큰 침상도 멀리한다.
‘‘So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일을 삼간다.
Ekabhattiko hoti rattūparato virato vikālabhojanā.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 아닌 때에 먹는 일을 삼간다.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춤과 노래와 연주와 구경거리를 보는 일을 삼간다.
Mālāgandhavilepanadhāraṇ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화환과 향과 바르는 기름을 지니고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삼간다.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높고 큰 침상을 삼간다.
금과 은을 받는 일을 멀리한다. 익히지 않은 곡식과 날고기를 받는 일도 멀리한다. 여자와 소녀, 남녀 노비를 받는 일도 멀리한다. 염소와 양, 닭과 돼지를 받는 일도 멀리한다.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을 받는 일도 멀리한다. 논밭과 땅을 받는 일도 멀리한다.
Jātarūparajat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금과 은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dhaññ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곡식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maṃ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고기를 받는 일을 삼간다.
Itthikumāri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여자와 소녀를 받는 일을 삼간다.
Dāsidā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여종과 남종을 받는 일을 삼간다.
Ajeḷa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염소와 양을 받는 일을 삼간다.
Kukkuṭasūkar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닭과 돼지를 받는 일을 삼간다.
Hatthigavassavaḷav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을 받는 일을 삼간다.
Khettavatthu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밭과 땅을 받는 일을 삼간다.
심부름을 하거나 소식을 전하러 다니는 일을 멀리한다. 사고파는 일도 멀리한다. 저울과 금속과 되를 속이는 일도 멀리한다. 뇌물과 속임수와 사기와 비뚤어진 수단도 멀리한다. 베고 죽이고 묶고 약탈하고 노략질하고 폭력을 쓰는 일도 멀리한다.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심부름과 전갈을 다니는 일을 삼간다.
Kayavikkayā paṭivirato hoti.
사고파는 일을 삼간다.
Tulākūṭakaṃsakūṭamānakūṭā paṭivirato hoti.
저울을 속이고 그릇을 속이고 되를 속이는 일을 삼간다.
Ukkoṭanavañcananikatisāciyogā paṭivirato hoti.
뇌물과 속임과 사기와 간계를 삼간다.
Chedanavadhabandhanaviparāmosaālopasahasākārā paṭivirato hoti.
베고 죽이고 묶고 노상에서 털고 약탈하고 힘으로 빼앗는 일을 삼간다.
그는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어디를 가든 지닌 것만 챙겨서 간다.
‘‘So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그는 몸을 보살피는 옷과 배를 보살피는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가든 그것만 지니고 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를 날아가든 자기 날개만 짐으로 지고 날아가듯, 비구도 그렇다.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탁발 음식에 만족하고, 어디를 가든 지닌 것만 챙겨서 간다.
Seyyathāpi nāma pakkhī sakuṇo yena yeneva ḍeti sapattabhārova ḍeti, evame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로 날아가든 제 날개만 지고 날아가듯,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살피는 옷과 배를 보살피는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가든 그것만 지니고 간다.
그는 이 거룩한 계의 무더기를 갖춘다. 그리하여 안으로 허물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So iminā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navajj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느낀다.
419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겉모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부 모습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 같은 해롭고 좋지 못한 마음 상태가 흘러들 것이다. 그는 그것을 막으려고 수행한다. 눈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So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로 인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아 나가고, 눈의 기능을 지키며, 눈의 기능에 단속을 갖춘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닿음을 느낄 때도 그렇다. 마음으로 법을 알 때에도 겉모습과 세부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 같은 해롭고 좋지 못한 마음 상태가 흘러들 것이다. 그는 그것을 막으려고 수행한다.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한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n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37:308.5에서 되살렸습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로 인해 탐욕과 근심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닦아 나가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며, 마음의 기능에 단속을 갖춘다.
그는 이 거룩한 감각 기능의 단속을 갖춘다. 그리하여 안으로 흠 없이 맑은 즐거움을 느낀다.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byāsek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느낀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 분명히 알며 행한다. 앞을 보고 둘러볼 때, 몸을 굽히고 펼 때도 그렇다. 가사와 발우와 옷을 지닐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그렇다. 대소변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어 있고 말하고 침묵할 때에도 분명히 알며 행한다.
‘‘So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그는 나아갈 때도 물러설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겉옷과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그는 이 거룩한 계의 무더기, 거룩한 만족, 거룩한 감각 기능의 단속, 거룩한 알아차림을 갖추었다. 그런 그는 외딴 거처를 찾는다. 숲, 나무 밑, 산, 골짜기, 산속 동굴, 공동묘지, 깊은 숲, 열린 공터, 짚더미 같은 곳이다. 그는 공양 뒤 탁발에서 돌아와 앉는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운 채 마음챙김을 눈앞에 둔다.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만족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어, 한적한 거처를 가까이한다 — 숲, 나무 아래, 산, 골짜기, 산굴, 무덤가, 숲속 깊은 곳, 노천, 짚더미를.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눈앞에 두고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 탐욕이 사라진 마음으로 지내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악의와 미움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이익을 위해 연민하며, 악의와 미움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이 사라진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고,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해이함과 졸음을 버린다. 그것이 사라진 채 밝음을 떠올리고,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으로 지내며 해이함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들뜸과 후회를 버린다. 들뜨지 않은 채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지내며,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의심을 버리고 건넌다. 좋은 마음 상태들에 대해 의문 없이 지내며,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ī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ī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게으름과 졸음을 버리고 게으름과 졸음이 사라진 채 머물며, 빛을 인식하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게으름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은 채 머물며,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머물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어떻게’ 하고 갸웃거리지 않고,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그는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린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나고 해로운 마음 상태에서 멀리 떠난다. 그렇게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이 선정에는 생각과 숙고가 있고, 홀로 떨어져 있음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장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생각과 숙고가 가라앉아 안이 맑아지고, 마음이 한곳으로 모인다. 생각도 숙고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기쁨이 옅어져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으로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거룩한 이들은 이를 ‘평온하고 마음챙김이 있으며 즐겁게 지낸다’고 말한다. 그는 이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희열에 대한 탐욕이 사라져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들이 이렇게 일컫는 그것을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그보다 앞서 흐뭇함과 근심은 이미 사라졌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맑아진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문다.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려,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
420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깨끗하고 맑으며,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한다. 그는 갖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을 기억한다. 세계가 무너지는 여러 겁, 세계가 생겨나는 여러 겁, 무너지고 생겨나는 여러 겁도 기억한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 겁도, 여러 팽창 겁도, 여러 수축·팽창 겁도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였다. 이런 모습에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런 수명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씨였다. 이런 모습에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런 수명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렇게 모습과 상세한 내용까지 갖추어 갖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저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수명이 다했다;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나는 거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수명이 다했다;
so tato cuto idhūpapanno’ti.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렇게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깨끗하고 맑으며,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그는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한다. 그는 맑고 인간의 눈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업대로 가는 것도 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그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하고 빼어나며, 아름답고 추하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
‘참으로 이 존재들은 몸으로 나쁜 행을 했고, 말과 마음으로도 나쁜 행을 했다. 거룩한 이들을 비방했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 견해에 따라 행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처,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으로 좋은 행을 했고, 말과 마음으로도 좋은 행을 했다. 거룩한 이들을 비방하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그 견해에 따라 행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pe…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말로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갖추고, 성자들을 비방하며,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1:18.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pe…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러나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말로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갖추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1:18.4에서 되살렸습니다.
이렇게 그는 맑고 인간의 눈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는 이, 나쁜 곳에 가는 이를 본다.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업대로 가는 것도 안다.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렇게 그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저열하고 빼어나며, 아름답고 추하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깨끗하고 맑으며,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진다.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그는 번뇌를 없애는 앎으로 마음을 향한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또 ‘이것들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난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 하는 앎이 생긴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수행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가 없다’ 하고 안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할 일은 다 마쳤다, 이 상태로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안다.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그런 일에 매달리지도 않으며, 남을 괴롭히지 않고 그런 일에 매달리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그는 스스로도 남도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갈애가 사라지고 꺼져 시원해진다. 즐거움을 느끼며 범천처럼 맑은 존재로 지낸다.
‘‘Ayaṃ vuccati, brāhmaṇa,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바라문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도 않으며,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몰두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ī’’ti.
그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굶주림 없고 고요히 꺼지고 서늘해져 행복을 느끼며 신성이 된 자신으로 머문다.”
421
우데나 존자가 이렇게 말하자 고타무카 바라문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우데나 존자님. 훌륭하십니다, 우데나 존자님!
Evaṃ vutte, ghoṭamukho brāhmaṇo āyasmantaṃ uden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고따무카 바라문이 우데나 존자께 이렇게 말했다 —
‘‘abhikkantaṃ, bho udena, abhikkantaṃ, bho udena!
“훌륭하십니다, 우데나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우데나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올려, 눈 있는 사람이 형상을 보게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데나 존자님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Seyyathāpi, bho uden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우데나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듯 —
evamevaṃ bhotā uden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우데나 존자께서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우데나 존자님께 귀의하겠습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겠습니다. 우데나 존자님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sāhaṃ bhavantaṃ uden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는 우데나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uden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우데나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바라문이여, 나에게 귀의하지 마라. 내가 귀의한 세존께 귀의하라.”
‘‘Mā kho maṃ tvaṃ, brāhmaṇa, saraṇaṃ agamāsi.
“바라문이여, 그대는 나에게 귀의하지 마라.
Tameva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hi yamahaṃ saraṇaṃ gato’’ti.
내가 귀의한 세존, 바로 그분께 귀의하라.”
“우데나 존자님, 고따마 어른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공양받아 마땅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 말입니다.” “바라문이여, 공양받아 마땅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는 지금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Kahaṃ pana, bho udena, etarahi so bhavaṃ gotamo viharati arahaṃ sammāsambuddho’’ti?
“그러면 우데나 존자시여,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그 고따마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Parinibbuto kho, brāhmaṇa, etarah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ti.
“바라문이여,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 그분께서는 지금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우데나 존자님, 고따마 어른이 십 요자나 떨어진 곳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희는 그분을 뵈러 십 요자나를 가겠습니다. 공양받아 마땅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니까요. 이십, 삼십, 사십, 오십 요자나 떨어진 곳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 고따마 어른을 뵈러 오십 요자나라도 가겠습니다. 백 요자나 떨어진 곳에 계시다 해도, 뵈러 백 요자나라도 가겠습니다.
‘‘Sacepi mayaṃ, bho udena, suṇ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dasasu yojanesu, dasapi mayaṃ yojanāni gacch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dassanāya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우데나 존자시여, 만일 저희가 그 고따마 존자께서 열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듣는다면, 저희는 열 요자나라도 가서 그 고따마 존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뵈올 것입니다.
Sacepi mayaṃ, bho udena, suṇ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vīsatiyā yojanesu… tiṃsāya yojanesu… cattārīsāya yojanesu… paññāsāya yojanesu, paññāsampi mayaṃ yojanāni gacch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dassanāya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우데나 존자시여, 만일 저희가 그 고따마 존자께서 스무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서른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마흔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쉰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듣는다면, 저희는 쉰 요자나라도 가서 그 고따마 존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뵈올 것입니다.
Yojanasate cepi mayaṃ, bho udena, suṇ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yojanasatampi mayaṃ gaccheyyāma taṃ bhavantaṃ gotamaṃ dassanāya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우데나 존자시여, 만일 저희가 그 고따마 존자께서 백 요자나 거리에 계시다고 듣는다면, 저희는 백 요자나라도 가서 그 고따마 존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뵈올 것입니다.
그런데 우데나 존자님, 그 고따마 어른께서는 이미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열반에 드신 고따마 어른께 저희는 귀의하겠습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겠습니다. 우데나 존자님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Yato ca kho, bho udena, parinibbuto so bhavaṃ gotamo, parinibbutampi mayaṃ t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그러나 우데나 존자시여, 그 고따마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으므로, 저희는 완전한 열반에 드신 그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uden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ṃ.
우데나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우데나 존자님, 앙가 왕은 저에게 날마다 일정한 보시 몫을 내려 줍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날마다 우데나 존자님께 올리겠습니다.”
Atthi ca me, bho udena, aṅgarājā devasikaṃ niccabhikkhaṃ dadāti, tato ahaṃ bhoto udenassa ekaṃ niccabhikkhaṃ dadāmī’’ti.
그리고 우데나 존자시여, 앙가 왕이 저에게 날마다 정기 보시를 줍니다. 그중에서 저는 우데나 존자께 정기 보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여, 앙가 왕은 그대에게 날마다 얼마를 내려 주는가?” “우데나 존자님, 오백 까하빠나입니다.” “바라문이여, 우리에게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Kiṃ pana te, brāhmaṇa, aṅgarājā devasikaṃ niccabhikkhaṃ dadātī’’ti?
“바라문이여, 앙가 왕이 그대에게 날마다 어떤 정기 보시를 주는가?”
‘‘Pañca, bho udena, kahāpaṇasatānī’’ti.
“우데나 존자시여, 오백 까하빠나입니다.”
‘‘Na kho no, brāhmaṇa, kappati jātarūparajataṃ paṭiggahetu’’nti.
“바라문이여, 우리에게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데나 존자님을 위해 정사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나에게 정사를 지어 주고 싶다면,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공양당을 지어 주어라.”
‘‘Sace taṃ bhoto udenassa na kappati vihāraṃ bhoto udenassa kārāpessāmī’’ti.
“그것이 우데나 존자께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데나 존자를 위해 거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Sace kho me tvaṃ, brāhmaṇa, vihāraṃ, kārāpetukāmo, pāṭaliputte saṅghassa upaṭṭhānasālaṃ kārāpehī’’ti.
“바라문이여, 그대가 나를 위해 거처를 짓고자 한다면,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집회당을 지어라.”
“우데나 존자님께서 저를 승가에 보시하도록 이끌어 주시니, 저는 더욱 기쁘고 흡족합니다. 우데나 존자님, 저는 이 날마다의 보시 몫과 다른 날마다의 보시 몫으로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공양당을 짓겠습니다.”
‘‘Imināpāhaṃ bhoto udenassa bhiyyosomattāya attamano abhiraddho yaṃ maṃ bhavaṃ udeno saṅghe dāne samādapeti.
“우데나 존자께서 저를 승가에 보시하도록 이끌어 주셨으니, 이것으로 저는 우데나 존자께 더욱더 마음이 흡족하고 기쁩니다.
Esāhaṃ, bho udena, etissā ca niccabhikkhāya aparāya ca niccabhikkhāya pāṭaliputte saṅghassa upaṭṭhānasālaṃ kārāpessāmī’’ti.
우데나 존자시여, 저는 이 정기 보시와 또 다른 정기 보시로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집회당을 짓겠습니다.”
그리하여 고타무카 바라문은 이 날마다의 보시 몫과 다른 날마다의 보시 몫으로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공양당을 지었다. 그 공양당은 지금 ‘고타무키’라고 불린다.
Atha kho ghoṭamukho brāhmaṇo etissā ca niccabhikkhāya aparāya ca niccabhikkhāya pāṭaliputte saṅghassa upaṭṭhānasālaṃ kārāpesi.
그리하여 고따무카 바라문은 이 정기 보시와 또 다른 정기 보시로 빠딸리뿟따에 승가를 위한 집회당을 짓게 했다.
Sā etarahi ‘ghoṭamukhī’ti vuccatīti.
그것은 지금 ‘고따무키’라고 불린다.
고타무카의 경, 넷째가 끝났다.
Ghoṭamukh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고따무카 경이 끝났다.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