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Aṭṭhakanāgarasuttaṃ
2. 앗타까나가라 경
17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즈음 앗타카나가라 출신의 다사마 장자가 볼일이 있어 빠딸리뿌따에 와 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ekaṃ samayaṃ āyasmā ānando vesāliyaṃ viharati beluvagāmake.
한때 아난다 존자가 웨살리의 벨루와가마까에 머물렀다.
Tena kho pana samayena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aṃ anuppatto hoti kenacideva karaṇīyena.
그런데 그때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가 무슨 볼일이 있어 빠딸리뿟따에 와 있었다.
다사마 장자는 꾹꾸따 동산에 있는 어떤 비구를 찾아갔다. 그는 비구에게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비구에게 물었다.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yena kukkuṭārāmo yena 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
그러자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꾹꾸따 원림으로, 어떤 비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aṃ bhikkhu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는 그 비구에게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taṃ bhikkhu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가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아난다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저희는 아난다 존자를 꼭 뵙고 싶습니다." "장자여,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kahaṃ nu kho, bhante, āyasmā ānando etarahi viharati?
“존자시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Dassanakāmā hi mayaṃ taṃ āyasmantaṃ ānanda’’nti.
저희는 그 아난다 존자를 뵙고 싶습니다.”
‘‘Eso, gahapati, āyasmā ānando vesāliyaṃ viharati beluvagāmake’’ti.
“장자여, 그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의 벨루와가마까에 머문다.”
다사마 장자는 빠딸리뿌따에서 볼일을 마쳤다. 그러고는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로 아난다 존자를 찾아갔다. 그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e taṃ karaṇīyaṃ tīretvā yena vesālī yena beluvagāmako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그러자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빠딸리뿟따에서 그 볼일을 마치고, 웨살리로, 벨루와가마까로, 아난다 존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18
한쪽에 앉은 다사마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 아시고 보시는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는 한 가지 가르침을 말씀해 두셨습니까?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낼 때, 풀려나지 못한 마음이 풀려납니다. 다하지 못한 번뇌가 다하고,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가르침 말입니다."
Ekamantaṃ nisinno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atthi nu kho, bhante ānand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ṃ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ṃ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ī’’ti?
“아난다 존자시여,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을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까?”
"장자여, 있습니다. 아시고 보시는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는 한 가지 가르침을 말씀해 두셨습니다.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낼 때, 풀려나지 못한 마음이 풀려납니다. 다하지 못한 번뇌가 다하고,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가르침입니다."
‘‘Atthi kho, gahapati,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ṃ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ṃ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ī’’ti.
“장자여,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을 말씀하신 것이 있다.”
"아난다 존자님, 그렇다면 세존께서 말씀해 두신 그 한 가지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낼 때, 풀려나지 못한 마음이 풀려납니다. 다하지 못한 번뇌가 다하고,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가르침 말입니다."
‘‘Katamo pana, bhante ānand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ṃ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ṃ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ī’’ti?
“그러면 아난다 존자시여,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그것은 무엇입니까?”
19
"장자여, 여기 비구가 있습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납니다. 그리고 생각과 숙고가 있고,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첫째 선정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번뇌의 소멸에 이릅니다. 만일 번뇌가 소멸하지 않으면, 그 법에 대한 애착과 기쁨 때문에 낮은 단계에 묶는 다섯 족쇄가 다합니다. 그리하여 홀연히 생겨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됩니다. 장자여, 이것 또한 세존께서 말씀해 두신 한 가지 가르침입니다.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낼 때, 풀려나지 못한 마음이 풀려납니다. 다하지 못한 번뇌가 다하고,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가르침입니다."
‘‘Idha, gahapati,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idampi paṭhamaṃ jhānaṃ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이 제1선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No ce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Ayampi kho, gahapati,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ṃ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ṃ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20
"또 장자여, 비구는 생각과 숙고가 가라앉습니다. 안이 맑고 고요해지는 둘째 선정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둘째 선정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이하는 앞에서와 같습니다. 그는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pe…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6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idampi kho dutiyaṃ jhānaṃ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이 제2선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3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기쁨에 대한 탐착마저 사라져 셋째 선정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셋째 선정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이하는 앞에서와 같습니다. 그는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pītiyā ca virāgā…pe…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희열이 가시어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껴,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말하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8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idampi kho tatiyaṃ jhānaṃ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pe…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이 제3선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3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즐거움마저 버리고 넷째 선정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넷째 선정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이하는 앞에서와 같습니다. 그는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pe…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행복을 버리고 괴로움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30에서 되살렸습니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idampi kho catutthaṃ jhānaṃ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이 제4선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3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자애가 담긴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지냅니다. 둘째 방향, 셋째 방향, 넷째 방향도 그와 같이 합니다. 이렇게 위와 아래, 옆으로 모든 곳에 마음이 닿습니다.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며, 온 세상을 자애가 담긴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지냅니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이 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자애로 풀려난 마음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이하는 앞에서와 같이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자기처럼 여겨, 온 세상을 자애이 함께한 마음으로, 광대하고 크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ayampi kho mett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이 자애의 마음해탈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pe…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5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연민이 담긴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는 마음으로, 평온이 담긴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지냅니다. 둘째 방향, 셋째 방향, 넷째 방향도 그와 같이 합니다. 이렇게 위와 아래, 옆으로 모든 곳에 마음이 닿습니다.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며, 온 세상을 평온이 담긴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지냅니다. 그 마음은 넓고 크고 한량이 없으며, 원한도 악의도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평온으로 풀려난 마음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이하는 앞에서와 같이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karuṇāsahagatena cetasā…pe… muditāsahagatena cetasā…pe…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렇게 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20.10에서 되살렸습니다.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자기처럼 여겨, 온 세상을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광대하고 크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ayampi kho upekkh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이 평온의 마음해탈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5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모두 넘어섭니다. 부딪침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허공은 끝이 없다' 하며 허공이 끝없는 경지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허공이 끝없는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이하는 앞에서와 같이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 쓰지 않아, ‘허공이 무한하다’며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ayampi kho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이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pe…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5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허공이 끝없는 경지를 모두 넘어섭니다. 그리고 '의식은 끝이 없다' 하며 의식이 끝없는 경지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의식이 끝없는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이하는 앞에서와 같이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됩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허공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의식이 무한하다’며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들어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ayampi kho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이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pe…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2:19.5 ~ PN:mn52/19.7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장자여, 비구는 의식이 끝없는 경지를 모두 넘어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하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지냅니다. 그는 이렇게 돌이켜 살핍니다. '이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지어지고 의도되어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덧없고 소멸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번뇌의 소멸에 이릅니다. 만일 번뇌가 소멸하지 않으면, 그 법에 대한 애착과 기쁨 때문에 낮은 단계에 묶는 다섯 족쇄가 다합니다. 그리하여 홀연히 생겨나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가 됩니다. 장자여, 이것 또한 세존께서 말씀해 두신 한 가지 가르침입니다.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지낼 때, 풀려나지 못한 마음이 풀려납니다. 다하지 못한 번뇌가 다하고,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가르침입니다."
‘‘Puna caparaṃ, gahapati,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다시 또 비구는 의식이 무한한 경지를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머문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이렇게 성찰한다 —
‘ayampi kho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이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도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무엇이든 지어진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며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꿰뚫어 안다.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그는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함에 이른다.
No ce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만약 번뇌가 다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법에 대한 탐욕과 그 법에 대한 기쁨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다하여 화생하는 자가 되어,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들고 그 세상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을 지닌 자가 된다.
Ayampi kho, gahapati,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ṃ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ṃ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ṃ yogakkhemaṃ anupāpuṇātī’’ti.
장자여, 이것도 아시고 보시는 분,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 세존께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스스로 다잡아 머무는 비구의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 해탈하고, 다하지 않은 번뇌가 다하며,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르게 되는, 그런 한 가지 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21
이 말을 듣고 앗타카나가라 출신의 다사마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님, 어떤 사람이 보물 창고 입구 하나를 찾다가 단번에 열한 개를 만났다고 해 봅시다. 저도 그와 같습니다. 저는 죽음 없는 문 하나를 찾다가 수행을 통해 단번에 열한 개를 얻었습니다.
Evaṃ vutte,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
이렇게 말하자,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seyyathāpi, bhante ānanda, puriso ekaṃva nidhimukhaṃ gavesanto sakideva ekādasa nidhimukhāni adhigaccheyya;
“아난다 존자시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보물 창고의 입구 하나만을 찾다가 단번에 보물 창고의 입구 열한 개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ahaṃ, bhante, ekaṃ amatadvāraṃ gavesanto sakideva ekādasa amatadvārāni alatthaṃ bhāvanāya.
존자시여, 그와 같이 저도 하나의 불사의 문을 찾다가 단번에 열한 개의 불사의 문을 닦음으로써 얻었습니다.
존자님, 또 어떤 사람의 집에 문이 열한 개 있는데 그 집에 불이 났다고 해 봅시다. 그는 문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와 같습니다. 이 죽음 없는 문 열한 개 가운데 어느 한 문으로든 저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Seyyathāpi, bhante, purisassa agāraṃ ekādasadvāraṃ, so tasmiṃ agāre āditte ekamekenapi dvārena sakkuṇeyya attānaṃ sotthiṃ kātuṃ;
존자시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문이 열한 개인 집이 있는데, 그 집에 불이 났을 때 그는 그 어느 문으로도 자기 몸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ahaṃ, bhante, imesaṃ ekādasannaṃ amatadvārānaṃ ekamekenapi amatadvārena sakkuṇissāmi attānaṃ sotthiṃ kātuṃ.
존자시여, 그와 같이 저도 이 열한 개의 불사의 문 가운데 그 어느 불사의 문으로도 저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님,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도 스승을 위해서는 스승에게 드릴 사례를 구해 마련합니다. 하물며 제가 아난다 존자께 공양을 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불확실]
Imehi nāma, bhante, aññatitthiyā ācariyassa ācariyadhanaṃ pariyesissanti, kimaṅgaṃ panāhaṃ āyasmato ānandassa pūjaṃ na karissāmī’’ti!
존자시여, 이런 법들을 두고 다른 외도들이라면 스승에게 스승의 사례를 구할 터인데, 하물며 제가 어찌 아난다 존자께 공양을 올리지 않겠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사마 장자는 빠딸리뿌따와 웨살리의 비구 승가를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대접해 배불리 드시게 했다. 또 비구 한 분 한 분에게 옷감 한 벌씩을 입혀 드렸다. 아난다 존자에게는 세 벌 가사를 걸쳐 드렸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를 위해 오백 칸의 처소를 짓게 했다.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akañca vesālikañca bhikkhusaṅghaṃ sannipātetv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ekamekañca bhikkhuṃ paccekaṃ dussayugena acchādesi, āyasmantañca ānandaṃ ticīvarena acchādesi, āyasmato ca ānandassa pañcasatavihāraṃ kārāpesīti.
그러자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빠딸리뿟따와 웨살리의 비구 승가를 모아, 훌륭한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으로 손수 대접하여 만족시키고 흡족하게 하였으며, 비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옷 한 벌씩을 드리고, 아난다 존자께는 세 벌 가사를 드렸으며, 아난다 존자를 위해 오백 냥짜리 승원을 짓게 하였다.
앗타카나가라 경, 둘째 경이 끝났다.
Aṭṭhakanāgar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앗타까나가라 경이 끝났다.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