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ahārāhulovādasuttaṃ
2. 마하라훌로와다 경
113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날 아침 세존께서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하러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라훌라 존자도 아침 일찍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었다. 그러고는 세존의 바로 뒤를 바짝 따라 걸었다. 세존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라훌라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āvatthi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하러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Āyasmāpi kho rāhulo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bhagavantaṃ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i.
라훌라 존자도 이른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세존을 바짝 뒤따랐다.
Atha kho bhagavā apaloketvā āyasmantaṃ rāhul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돌아보시고 라훌라 존자를 부르셨다 —
“라훌라야, 어떤 물질이든 다음과 같이 보아야 한다.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낮은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물질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세존이시여, 물질만 그렇습니까? 복되신 분이시여, 물질만 그렇습니까?” “라훌라야,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도, 의식도 그렇다.”
‘‘yaṃ kiñci, rāhula, rūpaṃ –
“라훌라야, 어떤 물질이든 —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nti.
모든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Rūpameva nu kho, bhagavā, rūpameva nu kho, sugatā’’ti?
“물질뿐입니까, 세존이시여? 물질뿐입니까,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Rūpampi, rāhula, vedanāpi, rāhula, saññāpi, rāhula, saṅkhārāpi, rāhula, viññāṇampi, rāhulā’’ti.
“라훌라야, 물질도 그렇고, 라훌라야, 느낌도 그렇고, 라훌라야, 인식도 그렇고, 라훌라야, 형성작용도 그렇고, 라훌라야, 의식도 그렇다.”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세존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가르침을 주셨다. 이런 상태로 누가 마을에 탁발하러 들어가겠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되돌아와 어느 나무 밑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운 채 마음챙김을 눈앞에 두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라훌라 존자가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라훌라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게. 라훌라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네.”
Atha kho āyasmā rāhulo ‘‘ko najja bhagavatā sammukhā ovādena ovadito gāmaṃ piṇḍāya pavisissatī’’ti tato paṭinivatti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때 라훌라 존자는 “오늘 세존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서 누가 마을에 탁발하러 들어가겠는가” 하고, 거기서 되돌아와 어떤 나무 밑에 앉았다 —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눈앞에 마음챙김을 세우고서.
Addasā kho āyasmā sāriputto āyasmantaṃ rāhulaṃ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innaṃ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사리뿟따 존자는 라훌라 존자가 어떤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눈앞에 마음챙김을 세우고서.
Disvāna āyasmantaṃ rāhulaṃ āmantesi –
보고서 라훌라 존자를 불렀다 —
‘‘ānāpānassati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 수행을 닦아라.
Ānāpānassati, rāhula, 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ti.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 수행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114
저녁이 되자 라훌라 존자는 홀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세존께 가서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 어떻게 많이 익혀야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습니까?”
Atha kho āyasmā rāhulo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라훌라 존자가 해질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rāhul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라훌라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kathaṃ bhāvitā nu kho, bhante, ānāpānassati,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ti?
“세존이시여, 들숨날숨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거듭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습니까?”
“라훌라야, 몸 안에 자기 것으로 있으면서 단단하고 거칠어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 있다. 이를테면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가 그렇다.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똥도 그렇다. 그 밖에도 그런 성질로 몸 안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라훌라야, 이것을 몸 안의 땅의 요소라고 한다. 몸 안의 땅의 요소든 몸 밖의 땅의 요소든, 모두 그저 땅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땅의 요소에 싫증을 내고, 땅의 요소에서 마음이 탐욕을 벗는다.”
‘‘Yaṃ kiñci, rāhula, ajjhattaṃ paccattaṃ kakkhaḷaṃ khari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라훌라야,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굳고 단단하고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이를테면 —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kakkhaḷaṃ kharigataṃ upādinnaṃ –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가슴막, 지라, 허파, 창자, 창자간막, 위 속의 것, 똥, 또는 그 밖에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굳고 단단하고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pathavīdhātu.
라훌라야, 이것을 안의 땅의 요소라 한다.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pathavīdhātu yā ca bāhirā pathavīdhātu, pathavīdhāturevesā.
그런데 안의 땅의 요소든 밖의 땅의 요소든, 그것은 바로 땅의 요소다.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
그것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pathavīdhātuyā nibbindati, pathavīdhātuyā cittaṃ virājeti’’.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땅의 요소를 싫어하여 떠나고, 땅의 요소에 대해 마음의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115
“라훌라야, 물의 요소란 무엇인가? 물의 요소에는 안의 것도 있고 밖의 것도 있다. 안의 물의 요소란 무엇인가? 몸 안에 자기 것으로 있으면서 물이며 물에 속하고,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이 그렇다.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도 그렇다. 그 밖에도 그런 성질로 몸 안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라훌라야, 이것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한다. 몸 안의 물의 요소든 몸 밖의 물의 요소든, 모두 그저 물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물의 요소에 싫증을 내고, 물의 요소에서 마음이 탐욕을 벗는다.”
‘‘Katamā ca, rāhula, āp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물의 요소란 무엇인가?
Āp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물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도 있고 밖의 것일 수도 있다.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āp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안의 물의 요소란 무엇인가?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āpo āp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물이고 물에 속하며 취착된 것, 이를테면 —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ṃ,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āpo āpogataṃ upādinnaṃ –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또는 그 밖에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물이고 물에 속하며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āpodhātu.
라훌라야, 이것을 안의 물의 요소라 한다.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āpodhātu yā ca bāhirā āpodhātu āpodhāturevesā.
그런데 안의 물의 요소든 밖의 물의 요소든, 그것은 바로 물의 요소다.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
그것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āpodhātuyā nibbindati, āp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물의 요소를 싫어하여 떠나고, 물의 요소에 대해 마음의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116
“라훌라야, 불의 요소란 무엇인가? 불의 요소에는 안의 것도 있고 밖의 것도 있다. 안의 불의 요소란 무엇인가? 몸 안에 자기 것으로 있으면서 불이며 불에 속하고,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몸을 데우는 것, 늙게 하는 것,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그렇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제대로 소화시키는 것도 그렇다. 그 밖에도 그런 성질로 몸 안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라훌라야, 이것을 몸 안의 불의 요소라고 한다. 몸 안의 불의 요소든 몸 밖의 불의 요소든, 모두 그저 불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불의 요소에 싫증을 내고, 불의 요소에서 마음이 탐욕을 벗는다.”
‘‘Katamā ca, rāhula, tej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불의 요소란 무엇인가?
Tej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불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도 있고 밖의 것일 수도 있다.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tej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안의 불의 요소란 무엇인가?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tejo tej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불이고 불에 속하며 취착된 것, 이를테면 —
yena ca santappati yena ca jīrīyati yena ca pariḍay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sammā pariṇāmaṃ gaccha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tejo tejogataṃ upādinnaṃ –
그것으로 데워지고, 그것으로 늙어 가고, 그것으로 타오르고, 그것으로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잘 소화되는 것, 또는 그 밖에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불이고 불에 속하며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tejodhātu.
라훌라야, 이것을 안의 불의 요소라 한다.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tejodhātu yā ca bāhirā tejodhātu tejodhāturevesā.
그런데 안의 불의 요소든 밖의 불의 요소든, 그것은 바로 불의 요소다.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
그것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tejodhātuyā nibbindati, tej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불의 요소를 싫어하여 떠나고, 불의 요소에 대해 마음의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117
“라훌라야, 바람의 요소란 무엇인가? 바람의 요소에는 안의 것도 있고 밖의 것도 있다. 안의 바람의 요소란 무엇인가? 몸 안에 자기 것으로 있으면서 바람이며 바람에 속하고,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위로 올라가는 바람,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배 속의 바람이 그렇다. 창자 속의 바람, 온몸의 마디마디로 퍼지는 바람, 들숨과 날숨도 그렇다. 그 밖에도 그런 성질로 몸 안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라훌라야, 이것을 몸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한다. 몸 안의 바람의 요소든 몸 밖의 바람의 요소든, 모두 그저 바람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바람의 요소에 싫증을 내고, 바람의 요소에서 마음이 탐욕을 벗는다.”
‘‘Katamā ca, rāhula, vāy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바람의 요소란 무엇인가?
Vāy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바람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도 있고 밖의 것일 수도 있다.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vāyo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안의 바람의 요소란 무엇인가?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vāyo vāy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바람이고 바람에 속하며 취착된 것, 이를테면 —
uddhaṅgamā vātā, adhogamā vātā, kucchisayā vātā, koṭṭhāsayā vātā, aṅgamaṅgānusārino vātā, assāso passāso, i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vāyo vāyogataṃ upādinnaṃ –
위로 가는 바람, 아래로 가는 바람, 배 속의 바람, 창자 속의 바람, 팔다리를 따라 도는 바람, 들숨과 날숨, 이런 것들, 또는 그 밖에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바람이고 바람에 속하며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vāyodhātu.
라훌라야, 이것을 안의 바람의 요소라 한다.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vāyodhātu yā ca bāhirā vāyodhātu vāyodhāturevesā.
그런데 안의 바람의 요소든 밖의 바람의 요소든, 그것은 바로 바람의 요소다.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
그것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vāyodhātuyā nibbindati, vāy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바람의 요소를 싫어하여 떠나고, 바람의 요소에 대해 마음의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118
“라훌라야, 허공의 요소란 무엇인가? 허공의 요소에는 안의 것도 있고 밖의 것도 있다. 안의 허공의 요소란 무엇인가? 몸 안에 자기 것으로 있으면서 허공이며 허공에 속하고,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귓구멍, 콧구멍, 입의 문이 그렇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삼키는 곳도 그렇다. 그것이 머무는 곳, 그것이 아래로 나가는 곳도 그렇다. 그 밖에도 몸 안에 있으면서 허공이며 허공에 속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빈 틈이고 구멍이며, 살과 피가 닿지 않고 살과 피에 둘러싸여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이 그렇다. 라훌라야, 이것을 몸 안의 허공의 요소라고 한다. 몸 안의 허공의 요소든 몸 밖의 허공의 요소든, 모두 그저 허공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허공의 요소에 싫증을 내고, 허공의 요소에서 마음이 탐욕을 벗는다.”
‘‘Katamā ca, rāhula, ākāsa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허공의 요소란 무엇인가?
Ākāsa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허공의 요소는 안의 것일 수도 있고 밖의 것일 수도 있다.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ākāsadhātu?
그러면 라훌라야, 안의 허공의 요소란 무엇인가?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ākāsaṃ ākāsa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허공이고 허공에 속하며 취착된 것, 이를테면 —
kaṇṇacchiddaṃ nāsacchiddaṃ mukhadvāraṃ,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ajjhoharati, yatth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santiṭṭ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adhobhāgaṃ nikkhama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ākāsaṃ ākāsagataṃ, aghaṃ aghagataṃ, vivaraṃ vivaragataṃ, asamphuṭṭhaṃ, maṃsalohitehi upādinnaṃ –
귓구멍, 콧구멍, 입, 그것으로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삼키는 것,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머무는 곳, 그것으로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아래로 나가는 것, 또는 그 밖에 안에 있고 자기에게 속하며 허공이고 허공에 속하며, 비었고 빈 곳에 속하며, 틈이고 틈에 속하며, 살과 피에 닿지 않았고, 취착된 것은 무엇이든 —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ākāsadhātu.
라훌라야, 이것을 안의 허공의 요소라 한다.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ākāsadhātu yā ca bāhirā ākāsadhātu ākāsadhāturevesā.
그런데 안의 허공의 요소든 밖의 허공의 요소든, 그것은 바로 허공의 요소다.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
그것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ākāsadhātuyā cittaṃ nibbindati, ākāsadhātuyā cittaṃ virājeti.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허공의 요소에 대해 마음이 싫어하여 떠나고, 허공의 요소에 대해 마음의 탐욕이 사라지게 한다.
119
“라훌라야, 땅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땅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사람들은 땅에 깨끗한 것도 버리고 더러운 것도 버린다. 똥도 오줌도 침도 고름도 피도 버린다. 그래도 땅은 그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역겨워하지 않는다. 라훌라야, 너도 그와 같이 땅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Pathavī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땅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Pathavī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땅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Seyyathāpi, rāhula, pathaviyā sucimpi nikkhipanti, asucimpi nikkhipanti, gūthagatampi nikkhipanti, muttagatampi nikkhipanti, kheḷagatampi nikkhipanti, pubbagatampi nikkhipanti, lohitagatampi nikkhipanti, na ca tena pathavī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라훌라야, 마치 사람들이 땅에 깨끗한 것도 던져 놓고, 더러운 것도 던져 놓고, 똥도 던져 놓고, 오줌도 던져 놓고, 침도 던져 놓고, 고름도 던져 놓고, 피도 던져 놓지만, 그렇다고 땅이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과 같이 —
evameva kho tvaṃ, rāhula, pathavīsamaṃ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꼭 그와 같이 너는 땅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Pathavī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땅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라훌라야, 물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물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사람들은 물로 깨끗한 것도 씻고 더러운 것도 씻는다. 똥 묻은 것도 오줌 묻은 것도 침 묻은 것도 고름 묻은 것도 피 묻은 것도 씻는다. 그래도 물은 그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역겨워하지 않는다. 라훌라야, 너도 그와 같이 물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Āp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물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Āp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물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Seyyathāpi, rāhula, āpasmiṃ sucimpi dhovanti, asucimpi dhovanti, gūthagatampi dhovanti, muttagatampi dhovanti, kheḷagatampi dhovanti, pubbagatampi dhovanti, lohitagatampi dhovanti, na ca tena āp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라훌라야, 마치 사람들이 물에 깨끗한 것도 씻고, 더러운 것도 씻고, 똥도 씻고, 오줌도 씻고, 침도 씻고, 고름도 씻고, 피도 씻지만, 그렇다고 물이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과 같이 —
evameva kho tvaṃ, rāhula, āp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꼭 그와 같이 너는 물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Āp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물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라훌라야, 불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불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불은 깨끗한 것도 태우고 더러운 것도 태운다. 똥 묻은 것도 오줌 묻은 것도 침 묻은 것도 고름 묻은 것도 피 묻은 것도 태운다. 그래도 불은 그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역겨워하지 않는다. 라훌라야, 너도 그와 같이 불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Tej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불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Tej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불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Seyyathāpi, rāhula, tejo sucimpi dahati, asucimpi dahati, gūthagatampi dahati, muttagatampi dahati, kheḷagatampi dahati, pubbagatampi dahati, lohitagatampi dahati, na ca tena tej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라훌라야, 마치 불이 깨끗한 것도 태우고, 더러운 것도 태우고, 똥도 태우고, 오줌도 태우고, 침도 태우고, 고름도 태우고, 피도 태우지만, 그렇다고 불이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과 같이 —
evameva kho tvaṃ, rāhula, tej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꼭 그와 같이 너는 불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Tej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불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라훌라야,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바람은 깨끗한 것에도 불고 더러운 것에도 분다. 똥 묻은 것에도 오줌 묻은 것에도 침 묻은 것에도 고름 묻은 것에도 피 묻은 것에도 분다. 그래도 바람은 그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역겨워하지 않는다. 라훌라야, 너도 그와 같이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Vāy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Vāy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Seyyathāpi, rāhula, vāyo sucimpi upavāyati, asucimpi upavāyati, gūthagatampi upavāyati, muttagatampi upavāyati, kheḷagatampi upavāyati, pubbagatampi upavāyati, lohitagatampi upavāyati, na ca tena vāy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라훌라야, 마치 바람이 깨끗한 것에도 불어 닿고, 더러운 것에도 불어 닿고, 똥에도 불어 닿고, 오줌에도 불어 닿고, 침에도 불어 닿고, 고름에도 불어 닿고, 피에도 불어 닿지만, 그렇다고 바람이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과 같이 —
evameva kho tvaṃ, rāhula, vāy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꼭 그와 같이 너는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Vāyo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바람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라훌라야,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허공은 어디에도 자리 잡지 않는다. 너도 그와 같이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마음에 드는 접촉이든 들지 않는 접촉이든 일어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Ākāsa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Ākāsa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Seyyathāpi, rāhula, ākāso na katthaci patiṭṭhito;
라훌라야, 마치 허공이 어디에도 발붙이지 않는 것과 같이 —
evameva kho tvaṃ, rāhula, ākāsasamaṃ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꼭 그와 같이 너는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아라.
Ākāsasam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라훌라야, 네가 허공과 같은 수행을 닦으면, 일어난 마음에 드는 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물지 못한다.
120
“라훌라야, 자애를 닦아라. 자애를 닦으면 성냄이 버려질 것이다. 연민을 닦아라. 연민을 닦으면 해치려는 마음이 버려질 것이다. 함께 기뻐함을 닦아라. 그렇게 하면 불만이 버려질 것이다. 평온을 닦아라. 평온을 닦으면 반감이 버려질 것이다. 몸의 더러움을 살피는 수행을 닦아라. 그렇게 하면 애욕이 버려질 것이다. 덧없다는 인식을 닦아라. 그렇게 하면 ‘내가 있다’는 교만이 버려질 것이다.”
‘‘Met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자애 수행을 닦아라.
Mett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byāpādo so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자애 수행을 닦으면, 악의라는 것,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Karuṇ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연민 수행을 닦아라.
Karuṇ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vihesā sā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연민 수행을 닦으면, 해치려는 마음이라는 것,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Mudi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함께 기뻐함 수행을 닦아라.
Mudit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arati sā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함께 기뻐함 수행을 닦으면, 싫증이라는 것,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Upekk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평온 수행을 닦아라.
Upekkh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paṭigho so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평온 수행을 닦으면, 미움이라는 것,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Asub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더러움 수행을 닦아라.
Asubh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rāgo so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더러움 수행을 닦으면, 탐욕이라는 것,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Aniccasaññ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무상하다는 인식 수행을 닦아라.
Aniccasaññ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asmimāno so pahīyissati.
라훌라야, 네가 무상하다는 인식 수행을 닦으면, ‘나’라는 자만, 그것이 버려질 것이다.
121
“라훌라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그러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어떻게 많이 익혀야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Ānāpānassati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 수행을 닦아라.
Ānāpānassati hi te, rāhula,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라훌라야, 네가 들숨날숨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Kathaṃ bhāvitā ca, rāhula, ānāpānassati,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그러면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거듭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라훌라야, 여기 비구가 숲에 가거나 나무 밑에 가거나 빈집에 간다.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눈앞에 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고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고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안다.
Idha, rāhula,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라훌라야,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앉는다 —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눈앞에 마음챙김을 세우고서.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그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v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익힌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기쁨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기쁨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 ‘마음을 고요히 모으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을 고요히 모으면서 내쉬리라.’ ‘마음을 해방시키면서 들이쉬리라.’ ‘마음을 해방시키면서 내쉬리라.’ ‘덧없음을 따라 살피면서 들이쉬리라.’ ‘덧없음을 따라 살피면서 내쉬리라.’ ‘탐욕이 사라짐을 따라 살피면서 들이쉬리라.’ ‘탐욕이 사라짐을 따라 살피면서 내쉬리라.’ ‘소멸을 따라 살피면서 들이쉬리라.’ ‘소멸을 따라 살피면서 내쉬리라.’ ‘내려놓음을 따라 살피면서 들이쉬리라.’ ‘내려놓음을 따라 살피면서 내쉬리라.’
‘Sabbakāya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sabbakāyap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Pīti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희열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pītip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희열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sukha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행복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sukhap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행복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cittasaṅkhāra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cittasaṅkhārap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의 작용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Citta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cittap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abhippamod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기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abhippamod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기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samādah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삼매에 모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samādah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삼매에 모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벗어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마음을 벗어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무상함을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무상함을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탐욕이 사라짐을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탐욕이 사라짐을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소멸을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소멸을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내려놓음을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 하며 익히고,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내려놓음을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 하며 익힌다.
라훌라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이렇게 닦고 익히면, 마지막 숨들마저도 알아차리는 가운데 사라진다.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사라지지 않는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훌라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라훌라를 위한 큰 가르침의 경』 둘째가 끝났다.
‘‘Evaṃ bhāvitā kho, rāhula, ānāpānassati, ev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Evaṃ bhāvitāya, rāhula, ānāpānassatiyā, evaṃ bahulīkatāya yepi te carimakā assāsā tepi viditāva nirujjhanti no aviditā’’ti.
라훌라야, 들숨날숨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마지막 들숨들마저도 알아차린 채로 사라지고, 알지 못한 채로 사라지지 않는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āyasmā rāhul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라훌라 존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Mahārāhulovād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마하라훌로와다 경이 끝났다.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