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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54

뽀딸리야 경

Potaliyasutt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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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otaliyasuttaṃ

4. 뽀딸리야 경

PN:mn54/0.3 · 검토 전

31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앙구따라빠 사람들의 땅에 머무셨다. 아빠나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날 오전에 세존께서는 채비를 갖추고 발우와 겉옷을 챙겨 아빠나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탁발을 마치고 공양을 드신 뒤에는 낮 동안 머물 숲으로 가셨다. 숲으로 들어가 한 나무 아래에 앉아 쉬셨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PN:mn54/31.1 · 검토 전

ekaṃ samayaṃ bhagavā aṅguttarāpesu viharati āpaṇaṃ nāma aṅguttarāpānaṃ nigamo.

한때 세존께서 앙굿따라빠에 머무셨는데, 앙굿따라빠 사람들의 성읍인 아빠나라는 곳이었다.

PN:mn54/31.2 · 검토 전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āpaṇaṃ piṇḍāya pāvisi.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을 갖춰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아빠나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PN:mn54/31.3 · 검토 전

Āpaṇe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yenaññataro vanasaṇḍo tenupasaṅkami divāvihārāya.

아빠나에서 탁발하고,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낮 동안 머물려고 어떤 숲으로 다가가셨다.

PN:mn54/31.4 · 검토 전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divāvihāraṃ nisīdi.

그 숲에 들어가 어떤 나무 밑에 낮 동안 머물려고 앉으셨다.

PN:mn54/31.5 · 검토 전

그때 장자 포탈리야도 그 숲으로 갔다. 속옷과 겉옷을 단정히 갖춰 입고, 우산을 쓰고 신을 신은 채였다. 산책 삼아 이리저리 거닐다가 닿은 길이었다. 그는 세존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정답고 기억에 남을 말을 주고받은 뒤에는 한쪽에 섰다.[불확실]

Potaliyopi kho gahapati sampannanivāsanapāvuraṇo chattupāhanāhi jaṅghāvihāraṃ anucaṅkamamāno anuvicaramāno yena so vanasaṇḍo tenupasaṅkami;

뽀딸리야 장자 역시 속옷과 겉옷을 잘 갖춰 입고 양산과 신을 갖추고, 산책 삼아 이리저리 거닐고 돌아다니다가 그 숲으로 다가갔다;

PN:mn54/31.6 · 검토 전

upasaṅkamitvā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다가가서 그 숲에 들어가 세존께 다가갔다;

PN:mn54/31.7 · 검토 전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기쁘게 인사를 나누었다.

PN:mn54/31.8 · 검토 전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31.9 · 검토 전

한쪽에 서 있는 포탈리야에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여, 자리가 있다. 원한다면 앉도록 하라. 포탈리야는 ‘사문 고타마가 나를 장자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화가 나고 언짢아서 말없이 있었다. 세존께서는 두 번째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 번째에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자리가 있다. 원한다면 앉도록 하라. 이번에도 포탈리야는 ‘사문 고타마가 나를 장자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화가 나고 언짢은 채로 세존께 말했다.

Ekamantaṃ ṭhitaṃ kho potaliyaṃ gahapati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선 뽀딸리야 장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mn54/31.10 · 검토 전

‘‘saṃvijjanti kho, gahapati, āsanāni;

“장자여, 자리가 있다;

PN:mn54/31.11 · 검토 전

sace ākaṅkhasi nisīdā’’ti.

원한다면 앉아라.”

PN:mn54/31.12 · 검토 전

Evaṃ vutte, potaliyo gahapati ‘‘gahapativādena maṃ samaṇo gotamo samudācaratī’’ti kupito anattamano tuṇhī ahosi.

이렇게 말씀하시자, 뽀딸리야 장자는 ‘사문 고따마가 나를 장자라는 말로 부르는구나’ 하고 성이 나고 언짢아져 잠자코 있었다.

PN:mn54/31.13 · 검토 전

Dutiyampi kho bhagavā…pe… tatiyampi kho bhagavā potaliyaṃ gahapatiṃ etadavoca –

두 번째로도 세존께서 뽀딸리야 장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장자여, 자리가 있다; 원한다면 앉아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뽀딸리야 장자는 ‘사문 고따마가 나를 장자라는 말로 부르는구나’ 하고 성이 나고 언짢아져 잠자코 있었다. 세 번째로도 세존께서 뽀딸리야 장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31.10 ~ PN:mn54/31.13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31.14 · 검토 전

‘‘saṃvijjanti kho, gahapati, āsanāni;

“장자여, 자리가 있다;

PN:mn54/31.15 · 검토 전

sace ākaṅkhasi nisīdā’’ti.

원한다면 앉아라.”

PN:mn54/31.16 · 검토 전

‘‘Evaṃ vutte, potaliyo gahapati gahapativādena maṃ samaṇo gotamo samudācaratī’’ti kupito anattaman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뽀딸리야 장자는 ‘사문 고따마가 나를 장자라는 말로 부르는구나’ 하고 성이 나고 언짢아져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PN:mn54/31.17 · 검토 전

고타마 존자님, 저를 장자라고 부르시는 것은 걸맞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대의 거동과 생김새와 특징은 장자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포탈리야가 말했다. 그렇지만 고타마 존자님, 저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고 모든 거래를 끊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장자여, 그대는 어떻게 모든 일을 그만두고 모든 거래를 끊었다는 것인가? 포탈리야가 대답했다. 고타마 존자님, 저에게 있던 재물이든 곡식이든 은이든 금이든 모두 아들들에게 상속으로 넘겨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충고도 비난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먹고 입을 것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고타마 존자님, 이렇게 저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고 모든 거래를 끊었습니다.

‘‘tayidaṃ, bho gotama, nacchannaṃ, tayidaṃ nappatirūpaṃ, yaṃ maṃ tvaṃ gahapativādena samudācarasī’’ti.

“고따마 존자시여, 저를 장자라는 말로 부르시는 그것은 온당하지 않고, 그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PN:mn54/31.18 · 검토 전

‘‘Te hi te, gahapati, ākārā, te liṅgā, te nimittā yathā taṃ gahapatissā’’ti.

“장자여, 그대의 그 모습들, 그 표시들, 그 표상들이 꼭 장자의 것과 같기 때문이다.”

PN:mn54/31.19 · 검토 전

‘‘Tathā hi pana me, bho gotama, sabbe kammantā paṭikkhittā, sabbe vohārā samucchinnā’’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도 저는 모든 일거리를 물리쳤고, 모든 거래를 끊었습니다.”

PN:mn54/31.20 · 검토 전

‘‘Yathā kathaṃ pana te, gahapati, sabbe kammantā paṭikkhittā, sabbe vohārā samucchinnā’’ti?

“장자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모든 일거리를 물리쳤고, 모든 거래를 끊었는가?”

PN:mn54/31.21 · 검토 전

‘‘Idha me, bho gotama, yaṃ ahosi dhanaṃ vā dhaññaṃ vā rajataṃ vā jātarūpaṃ vā sabbaṃ taṃ puttānaṃ dāyajjaṃ niyyātaṃ, tatthāhaṃ anovādī anupavādī ghāsacchādanaparamo viharāmi.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에게 있던 재물이든 곡식이든 은이든 금이든, 그 모두를 아들들에게 유산으로 넘겨주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저는 충고하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으며, 먹을 것과 입을 것만을 전부로 삼아 지냅니다.

PN:mn54/31.22 · 검토 전

Evaṃ kho me, bho gotama, sabbe kammantā paṭikkhittā, sabbe vohārā samucchinnā’’ti.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모든 일거리를 물리쳤고, 모든 거래를 끊었습니다.”

PN:mn54/31.23 · 검토 전

장자여, 그대가 말하는 거래의 끊음과 성인의 율에서 말하는 거래의 끊음은 서로 다르다.

‘‘Aññathā kho tvaṃ, gahapati, vohārasamucchedaṃ vadasi,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o hotī’’ti.

“장자여, 그대가 말하는 거래 끊음은 다르고, 성자의 율에서의 거래 끊음은 또 다르다.”

PN:mn54/31.24 · 검토 전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성인의 율에서는 거래를 끊는다는 것이 어떠합니까? 성인의 율에서 거래가 끊어지는 그대로, 세존께서 저에게 법을 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여, 잘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말하겠다. 포탈리야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Yathā kathaṃ pana, bhante,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o ho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성자의 율에서 거래 끊음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PN:mn54/31.25 · 검토 전

Sādhu me, bhante, bhagavā tathā dhammaṃ desetu yathā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o hotī’’ti.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는 성자의 율에서 거래 끊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렇게 법을 설해 주소서.”

PN:mn54/31.26 · 검토 전

‘‘Tena hi, gahapati,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그렇다면 장자여,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PN:mn54/31.27 · 검토 전

‘‘Evaṃ, bhante’’ti kho potaliyo gahapati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뽀딸리야 장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PN:mn54/31.28 · 검토 전

32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성인의 율에서 거래를 끊는 데 이르는 법은 여덟 가지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mn54/32.1 · 검토 전

‘‘aṭṭha kho ime, gahapati, dhammā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āya saṃvattanti.

“장자여, 이 여덟 가지 법이 성자의 율에서 거래를 끊음으로 이끈다.

PN:mn54/32.2 · 검토 전

Katame aṭṭha?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PN:mn54/32.3 · 검토 전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음에 의지하여 도둑질을 버려야 한다.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 탐착과 욕심이 없음에 의지하여 탐착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비난과 분노가 없음에 의지하여 비난과 분노를 버려야 한다. 성냄과 번민이 없음에 의지하여 성냄과 번민을 버려야 한다. 지나친 교만이 없음에 의지하여 지나친 교만을 버려야 한다.

Apāṇātipātaṃ nissāya pāṇātipāto pahātabbo;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

PN:mn54/32.4 · 검토 전

dinnādānaṃ nissāya adinnādānaṃ pahātabbaṃ;

주어진 것을 가짐에 의지하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버려야 한다;

PN:mn54/32.5 · 검토 전

saccavācaṃ nissāya musāvādo pahātabbo;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

PN:mn54/32.6 · 검토 전

apisuṇaṃ vācaṃ nissāya pisuṇā vācā pahātabbā;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

PN:mn54/32.7 · 검토 전

agiddhilobhaṃ nissāya giddhilobho pahātabbo;

탐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탐하고 욕심냄을 버려야 한다;

PN:mn54/32.8 · 검토 전

anindārosaṃ nissāya nindāroso pahātabbo;

헐뜯지 않고 성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헐뜯고 성냄을 버려야 한다;

PN:mn54/32.9 · 검토 전

akkodhūpāyāsaṃ nissāya kodhūpāyāso pahātabbo;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분노와 짜증을 버려야 한다;

PN:mn54/32.10 · 검토 전

anatimānaṃ nissāya atimāno pahātabbo.

오만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오만을 버려야 한다.

PN:mn54/32.11 · 검토 전

장자여, 이 여덟 가지 법은 요약하여 말했을 뿐 자세히 나누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인의 율에서 거래를 끊는 데 이르는 법이다.

Ime kho, gahapati, aṭṭha dhammā saṃkhittena vuttā, vitthārena avibhattā,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āya saṃvattantī’’ti.

장자여,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나누지 않은 이 여덟 가지 법이 성자의 율에서 거래를 끊음으로 이끈다.”

PN:mn54/32.12 · 검토 전

세존이시여, 성인의 율에서 거래를 끊는 데 이르는 이 여덟 가지 법을 세존께서는 요약하여 말씀하셨을 뿐 자세히 나누지는 않으셨습니다. 부디 가엾이 여기시어 자세히 나누어 설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장자여, 잘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말하겠다. 포탈리야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Ye me, bhante, bhagavatā aṭṭha dhammā saṃkhittena vuttā, vitthārena avibhattā,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āya saṃvattanti, sādhu me, bhante, bhagavā ime aṭṭha dhamme vitthārena vibhajatu anukampaṃ upādāyā’’t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나누지 않으신, 성자의 율에서 거래를 끊음으로 이끄는 그 여덟 가지 법을,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저를 연민히 여기시어 이 여덟 가지 법을 자세히 나누어 주소서.”

PN:mn54/32.13 · 검토 전

‘‘Tena hi, gahapati,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그렇다면 장자여,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PN:mn54/32.14 · 검토 전

‘‘Evaṃ, bhante’’ti kho potaliyo gahapati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뽀딸리야 장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PN:mn54/32.15 · 검토 전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mn54/32.16 · 검토 전

33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살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살생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살생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살생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살생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살생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살생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살생을 삼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pāṇātipātaṃ nissāya pāṇātipāt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3.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3.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pāṇātipāt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살생하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3.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pāṇātipāt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pāṇātipāt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pāṇātipāt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pāṇātipātapaccayā.

그런데 내가 살생하는 자라면, 살생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살생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살생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3.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pāṇātipāt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살생이다.

PN:mn54/33.5 · 검토 전

Ye ca pāṇātipāt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살생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살생을 그친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3.6 · 검토 전

‘Apāṇātipātaṃ nissāya pāṇātipāto pahātabbo’ti –

‘살생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살생을 버려야 한다’ –

PN:mn54/33.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3.8 · 검토 전

34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음에 의지하여 도둑질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도둑질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도둑질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도둑질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도둑질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도둑질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도둑질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도둑질을 삼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음에 의지하여 도둑질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Dinnādānaṃ nissāya adinnādānaṃ pahātabba’n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주어진 것을 가짐에 의지하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4.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4.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adinnādāy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4.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adinnādāy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adinnādān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adinnādān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adinnādānapaccayā.

그런데 내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라면,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4.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adinnādānaṃ.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이다.

PN:mn54/34.5 · 검토 전

Ye ca adinnādān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adinnādānā paṭivirata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그친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4.6 · 검토 전

‘Dinnādānaṃ nissāya adinnādānaṃ pahātabba’nti –

‘주어진 것을 가짐에 의지하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짐을 버려야 한다’ –

PN:mn54/34.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4.8 · 검토 전

35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거짓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거짓말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거짓말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거짓말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거짓말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거짓말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삼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Saccavācaṃ nissāya musāvād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5.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5.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musāvād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거짓말하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5.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musāvād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musāvād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musāvād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musāvādapaccayā.

그런데 내가 거짓말하는 자라면, 거짓말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거짓말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거짓말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5.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musāvād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거짓말이다.

PN:mn54/35.5 · 검토 전

Ye ca musāvād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musāvādā paṭivirata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거짓말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거짓말을 그친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5.6 · 검토 전

‘Saccavācaṃ nissāya musāvādo pahātabbo’ti –

‘진실한 말에 의지하여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 –

PN:mn54/35.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5.8 · 검토 전

36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이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이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이간하는 말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이간하는 말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이간하는 말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이간하는 말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이간하는 말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간하는 말을 삼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pisuṇaṃ vācaṃ nissāya pisuṇā vācā pahātabb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6.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6.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pisuṇavāco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6.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pisuṇavāco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pisuṇavācā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pisuṇavācā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pisuṇavācāpaccayā.

그런데 내가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라면,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6.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pisuṇā vācā.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이간하는 말이다.

PN:mn54/36.5 · 검토 전

Ye ca pisuṇavācā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a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이간하는 말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이간하는 말을 그친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6.6 · 검토 전

‘Apisuṇaṃ vācaṃ nissāya pisuṇā vācā pahātabbā’ti –

‘이간하지 않는 말에 의지하여 이간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 –

PN:mn54/36.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6.8 · 검토 전

37

‘탐착과 욕심이 없음에 의지하여 탐착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탐착하고 욕심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탐착하고 욕심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탐착과 욕심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탐착과 욕심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탐착과 욕심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탐착과 욕심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탐착과 욕심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탐착과 욕심을 삼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탐착과 욕심이 없음에 의지하여 탐착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giddhilobhaṃ nissāya giddhilobh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탐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탐하고 욕심냄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7.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7.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giddhilobh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탐하고 욕심내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7.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giddhilobh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giddhilobh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giddhilobh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giddhilobhapaccayā.

그런데 내가 탐하고 욕심내는 자라면, 탐하고 욕심냄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탐하고 욕심냄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탐하고 욕심냄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7.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giddhilobh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탐하고 욕심냄이다.

PN:mn54/37.5 · 검토 전

Ye ca giddhilobh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giddhilobhā paṭivirata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탐하고 욕심냄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탐하고 욕심냄을 그친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7.6 · 검토 전

‘Agiddhilobhaṃ nissāya giddhilobho pahātabbo’ti –

‘탐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탐하고 욕심냄을 버려야 한다’ –

PN:mn54/37.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7.8 · 검토 전

38

‘비난과 분노가 없음에 의지하여 비난과 분노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비난하고 화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비난하고 화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비난과 분노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비난과 분노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비난과 분노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비난과 분노가 속박이고 덮개이다. 비난과 분노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비난과 분노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비난과 분노가 없음에 의지하여 비난과 분노를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nindārosaṃ nissāya nindāros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헐뜯지 않고 성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헐뜯고 성냄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8.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8.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nindāros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헐뜯고 성내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8.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nindāros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nindāros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nindāros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nindārosapaccayā.

그런데 내가 헐뜯고 성내는 자라면, 헐뜯고 성냄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헐뜯고 성냄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헐뜯고 성냄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8.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nindāros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헐뜯고 성냄이다.

PN:mn54/38.5 · 검토 전

Ye ca nindāros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anindārosi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헐뜯고 성냄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헐뜯지 않고 성내지 않는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8.6 · 검토 전

‘Anindārosaṃ nissāya nindāroso pahātabbo’ti –

‘헐뜯지 않고 성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헐뜯고 성냄을 버려야 한다’ –

PN:mn54/38.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8.8 · 검토 전

39

‘성냄과 번민이 없음에 의지하여 성냄과 번민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성내고 번민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성내고 번민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성냄과 번민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성냄과 번민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성냄과 번민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성냄과 번민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성냄과 번민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성냄과 번민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성냄과 번민이 없음에 의지하여 성냄과 번민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kkodhūpāyāsaṃ nissāya kodhūpāyās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분노와 짜증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39.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39.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kodhūpāyās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분노하고 짜증내는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39.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kodhūpāyās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kodhūpāyās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kodhūpāyās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kodhūpāyāsapaccayā.

그런데 내가 분노하고 짜증내는 자라면, 분노와 짜증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분노와 짜증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분노와 짜증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39.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kodhūpāyās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분노와 짜증이다.

PN:mn54/39.5 · 검토 전

Ye ca kodhūpāyās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akkodhūpāyāsi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분노와 짜증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는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39.6 · 검토 전

‘Akkodhūpāyāsaṃ nissāya kodhūpāyāso pahātabbo’ti –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음에 의지하여 분노와 짜증을 버려야 한다’ –

PN:mn54/39.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39.8 · 검토 전

40

‘지나친 교만이 없음에 의지하여 지나친 교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장자여, 여기 성인의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어떤 속박 때문에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속박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도 지나친 교만 때문에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명한 이들도 살펴본 뒤 지나친 교만 때문에 나를 꾸짖을 것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지나친 교만 때문에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바로 지나친 교만이 속박이고 덮개이다. 지나친 교만 때문에 번뇌와 괴로움과 열기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교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교만이 없음에 의지하여 지나친 교만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Anatimānaṃ nissāya atimāno pahātabb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오만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PN:mn54/40.1 · 검토 전

Idha,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0.2 · 검토 전

‘yesaṃ kho ahaṃ saṃyojanānaṃ hetu atimānī assaṃ, tesāhaṃ saṃyojanānaṃ pahānāya samucchedāya paṭipanno.

‘어떤 족쇄들 때문에 내가 오만한 자가 된다면, 그 족쇄들을 버리고 끊기 위해 나는 길에 들어섰다.

PN:mn54/40.3 · 검토 전

Ahañceva kho pana atimānī assaṃ, attāpi maṃ upavadeyya atimānapaccayā, anuviccāpi maṃ viññū garaheyyuṃ atimānapaccay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atimānapaccayā.

그런데 내가 오만한 자라면, 오만을 조건으로 나 자신도 나를 꾸짖을 것이고, 오만을 조건으로 지혜로운 이들도 살펴본 뒤 나를 나무랄 것이며, 오만을 조건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나쁜 곳이 예상된다.

PN:mn54/40.4 · 검토 전

Etadeva kho pana saṃyojanaṃ etaṃ nīvaraṇaṃ yadidaṃ atimāno.

그리고 바로 이것이 족쇄이고 이것이 장애이니, 곧 오만이다.

PN:mn54/40.5 · 검토 전

Ye ca atimānapaccayā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anatimānissa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또 오만을 조건으로 일어날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 오만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괴롭히고 애태우는 번뇌들이 그렇게 있지 않다.’

PN:mn54/40.6 · 검토 전

‘Anatimānaṃ nissāya atimāno pahātabbo’ti –

‘오만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오만을 버려야 한다’ –

PN:mn54/40.7 · 검토 전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PN:mn54/40.8 · 검토 전

41

장자여, 이 여덟 가지 법은 요약하여 말했고 또 자세히 나누었다. 이것들은 성인의 율에서 거래를 끊는 데 이르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성인의 율에서 모든 면에서, 모든 것에 걸쳐, 모든 방식으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은 아직 아니다.

‘‘Ime kho, gahapati, aṭṭha dhammā saṃkhittena vuttā, vitthārena vibhattā, ye ariyassa vinaye vohārasamucchedāya saṃvattanti;

“장자여,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나눈 이 여덟 가지 법이 성자의 율에서 거래를 끊음으로 이끈다;

PN:mn54/41.1 · 검토 전

na tveva tāva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hotī’’ti.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성자의 율에서 온통 모두, 모든 방식으로 모두 거래 끊음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PN:mn54/41.2 · 검토 전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성인의 율에서는 어떻게 모든 면에서, 모든 것에 걸쳐, 모든 방식으로 거래가 끊어집니까? 그렇게 거래가 끊어지는 그대로, 세존께서 저에게 법을 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여, 잘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말하겠다. 포탈리야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Yathā kathaṃ pana, bhante,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ho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성자의 율에서 온통 모두, 모든 방식으로 모두 거래 끊음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PN:mn54/41.3 · 검토 전

Sādhu me, bhante, bhagavā tathā dhammaṃ desetu yathā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hotī’’ti.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는 성자의 율에서 온통 모두, 모든 방식으로 모두 거래 끊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렇게 법을 설해 주소서.”

PN:mn54/41.4 · 검토 전

‘‘Tena hi, gahapati,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그렇다면 장자여, 마음을 다해 잘 들어라. 이제 말하리라.”

PN:mn54/41.5 · 검토 전

‘‘Evaṃ, bhante’’ti kho potaliyo gahapati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뽀딸리야 장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PN:mn54/41.6 · 검토 전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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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욕망의 위험에 대한 이야기Kāmādīnavakathā

42

장자여, 굶주려 기운이 빠진 개 한 마리가 도살장 앞에 서 있다고 하자. 그때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의 도제가 살을 말끔히 발라낸 뼈다귀를 개 앞에 던져 주었다고 하자. 그 뼈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다.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개가 이 뼈다귀를 핥는다고 굶주림과 허기가 가시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세존이시여, 그 뼈다귀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개는 그저 지치고 시달리기만 할 것입니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뼈다귀와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바른 통찰로 본 제자는 갖가지 대상에 기대는 다양한 평온을 멀리한다. 그리고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 이 평온에서는 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남김없이 사라진다.

‘‘Seyyathāpi, gahapati, kukkuro jighacchādubbalyapareto goghātakasūnaṃ paccupaṭṭhito assa.

“장자여, 예를 들어 굶주림과 쇠약에 시달리는 개가 소 잡는 백정의 도살장 곁에 서 있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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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enaṃ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aṭṭhikaṅkalaṃ sunikkantaṃ nikkantaṃ nimmaṃsaṃ lohitamakkhitaṃ upasumbheyya.

그 개에게 솜씨 좋은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살을 잘 발라내고 발라내어 고기라고는 없이 피만 묻은 뼈다귀를 던져 준다고 하자.

PN:mn54/42.2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api nu kho so kukkuro amuṃ aṭṭhikaṅkalaṃ sunikkantaṃ nikkantaṃ nimmaṃsaṃ lohitamakkhitaṃ palehanto jighacchādubbalyaṃ paṭivineyyā’’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개가 살을 잘 발라내고 발라내어 고기라고는 없이 피만 묻은 저 뼈다귀를 핥는다고 해서 굶주림과 쇠약을 없앨 수 있겠는가?”

PN:mn54/42.3 · 검토 전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PN:mn54/42.4 · 검토 전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54/42.5 · 검토 전

‘‘Aduñhi, bhante, aṭṭhikaṅkalaṃ sunikkantaṃ nikkantaṃ nimmaṃsaṃ lohitamakkhitaṃ.

“세존이시여, 저 뼈다귀는 살을 잘 발라내고 발라내어 고기라고는 없이 피만 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PN:mn54/42.6 · 검토 전

Yāvadeva pana so kukkur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 개에게는 오직 피로와 곤경의 몫만 돌아갈 뿐입니다.”

PN:mn54/42.7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2.8 · 검토 전

‘aṭṭhikaṅkal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

‘감각적 욕망은 뼈다귀와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PN:mn54/42.9 · 검토 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yāyaṃ upekkhā nānattā nānattasitā taṃ abhinivajjetvā, yāyaṃ upekkhā ekattā ekattasitā yattha sabbaso lokāmisūpādānā aparisesā nirujjhanti tamevūpekkhaṃ bhāveti.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PN:mn54/42.10 · 검토 전

43

장자여, 독수리나 왜가리나 매가 고깃덩이를 물고 날아간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독수리와 왜가리와 매들이 계속 뒤쫓아 덮쳐 온다. 그들은 고깃덩이를 쪼아 대며 빼앗으려 할 것이다.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새가 고깃덩이를 얼른 놓지 않으면, 그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롭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고깃덩이와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바른 통찰로 본 제자는 갖가지 대상에 기대는 다양한 평온을 멀리한다. 그리고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 이 평온에서는 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불확실]

‘‘Seyyathāpi, gahapati, gijjho vā kaṅko vā kulalo vā maṃsapesiṃ ādāya uḍḍīyeyya.

“장자여, 예를 들어 독수리나 왜가리나 매가 고깃덩이를 물고 날아오른다고 하자.

PN:mn54/43.1 · 검토 전

Tamenaṃ gijjhāpi kaṅkāpi kulalāpi anupatitvā anupatitvā vitaccheyyuṃ vissajjeyyuṃ.

그러면 다른 독수리들과 왜가리들과 매들이 거듭 뒤쫓아 그것을 쪼아 대고 뜯어 갈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3.2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sace so gijjho vā kaṅko vā kulalo vā taṃ maṃsapesiṃ na khippameva paṭinissajjeyya, so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 독수리나 왜가리나 매가 그 고깃덩이를 얼른 놓아 버리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지 않겠는가?”

PN:mn54/43.3 · 검토 전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3.4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3.5 · 검토 전

‘maṃsapes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

‘감각적 욕망은 고깃덩이와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PN:mn54/43.6 · 검토 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yāyaṃ upekkhā nānattā nānattasitā taṃ abhinivajjetvā yāyaṃ upekkhā ekattā ekattasitā yattha sabbaso lokāmisūpādānā aparisesā nirujjhanti tamevūpekkhaṃ bhāveti.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PN:mn54/43.7 · 검토 전

44

장자여, 어떤 사람이 활활 타는 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간다고 하자.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타는 횃불을 얼른 놓지 않으면, 불길이 그의 손을 태울 것이다. 팔도 태우고, 몸의 다른 부분까지 태울 것이다. 그러면 그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롭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풀 횃불과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바른 통찰로 본 제자는, 앞에서와 같이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불확실]

‘‘Seyyathāpi, gahapati, puriso ādittaṃ tiṇukkaṃ ādāya paṭivātaṃ gaccheyya.

“장자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타오르는 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간다고 하자.

PN:mn54/44.1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sace so puriso taṃ ādittaṃ tiṇukkaṃ na khippameva paṭinissajjeyya tassa sā ādittā tiṇukkā hatthaṃ vā daheyya bāhuṃ vā daheyya aññataraṃ vā aññataraṃ vā aṅgapaccaṅgaṃ daheyya, so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 사람이 타오르는 그 풀 횃불을 얼른 놓아 버리지 않는다면, 타오르는 그 풀 횃불이 그의 손을 태우거나 팔을 태우거나 몸의 이런저런 부위를 태울 것이고, 그로 인해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지 않겠는가?”

PN:mn54/44.2 · 검토 전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4.3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4.4 · 검토 전

‘tiṇukk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

‘감각적 욕망은 풀 횃불과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PN:mn54/44.5 · 검토 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pe… tamevūpekkhaṃ bhāveti.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42.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44.6 · 검토 전

45

장자여, 사람 키보다 깊은 숯불 구덩이가 있다고 하자. 구덩이에는 불꽃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리는 숯이 가득하다. 그때 한 사람이 온다. 그는 살고 싶어 하고 죽고 싶어 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한다. 힘센 두 사람이 그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는다. 그리고 그를 숯불 구덩이 쪽으로 끌고 간다.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버티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숯불 구덩이에 떨어지면, 그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 것이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숯불 구덩이와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바른 통찰로 본 제자는, 앞에서와 같이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불확실]

‘‘Seyyathāpi, gahapati, aṅgārakāsu sādhikaporisā, pūrā aṅgārānaṃ vītaccikānaṃ vītadhūmānaṃ.

“장자여, 예를 들어 사람 키가 넘는 숯불 구덩이가 있어, 불꽃도 없고 연기도 없는 숯불로 가득 차 있다고 하자.

PN:mn54/45.1 · 검토 전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paṭikkūlo.

그때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온다고 하자.

PN:mn54/45.2 · 검토 전

Tamenaṃ dve balavanto purisā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ṃ upakaḍḍheyyuṃ.

그러면 힘센 두 사람이 그의 양팔을 잡고 숯불 구덩이 쪽으로 끌어당긴다고 하자.

PN:mn54/45.3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api nu so puriso iticiticeva kāyaṃ sannāmeyyā’’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지 않겠는가?”

PN:mn54/45.4 · 검토 전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5.5 · 검토 전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54/45.6 · 검토 전

‘‘Viditañhi, bhante, tassa purisassa imañcāhaṃ aṅgārakāsuṃ papatissāmi,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issām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내가 이 숯불 구덩이에 떨어지면 그로 인해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으리라’고 알기 때문입니다.”

PN:mn54/45.7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5.8 · 검토 전

‘aṅgārakās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

‘감각적 욕망은 숯불 구덩이와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PN:mn54/45.9 · 검토 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pe… tamevūpekkhaṃ bhāveti.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42.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45.10 · 검토 전

46

장자여, 어떤 사람이 꿈에서 아름다운 정원과 숲, 아름다운 땅과 연못을 본다고 하자. 그러나 잠에서 깨고 나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꿈과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숙고하고서, 앞에서와 같이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

‘‘Seyyathāpi, gahapati, puriso supinakaṃ passeyya ārāmarāmaṇeyyakaṃ vanarāmaṇeyyakaṃ bhūmirāmaṇeyyakaṃ pokkharaṇirāmaṇeyyakaṃ.

“장자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아름다운 동산과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연못을 본다고 하자.

PN:mn54/46.1 · 검토 전

So paṭibuddho na kiñci paṭipasseyya.

그러나 그는 깨어나면 아무것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PN:mn54/46.2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6.3 · 검토 전

‘supinak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pe… tamevūpekkhaṃ bhāveti.

‘감각적 욕망은 꿈과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42.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46.4 · 검토 전

47

장자여, 어떤 사람이 남에게 물건을 빌렸다고 하자. 탈것과 값비싼 보석 귀걸이를 빌린 것이다. 그는 빌린 물건으로 치장하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장터로 나아간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부자로군. 부자들은 이렇게 재물을 누리는가 보다.’ 그런데 물건 주인들이 어디서든 그를 보면, 그 자리에서 자기 물건을 가져가 버린다.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낙담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세존이시여, 주인들이 자기 물건을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빌린 물건과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숙고하고서, 앞에서와 같이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불확실]

‘‘Seyyathāpi, gahapati, puriso yācitakaṃ bhogaṃ yācitvā yānaṃ vā poriseyyaṃ pavaramaṇikuṇḍalaṃ.

“장자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빌린 재물을, 곧 훌륭한 마차와 값진 보석 귀걸이를 빌린다고 하자.

PN:mn54/47.1 · 검토 전

So tehi yācitakehi bhogehi purakkhato parivuto antarāpaṇaṃ paṭipajjeyya.

그는 그 빌린 재물을 앞세우고 그것에 둘러싸여 시장 거리로 나선다고 하자.

PN:mn54/47.2 · 검토 전

Tamenaṃ jano disvā evaṃ vadeyya –

그를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PN:mn54/47.3 · 검토 전

‘bhogī vata, bho, puriso, evaṃ kira bhogino bhogāni bhuñjantī’ti.

‘참으로 재산 많은 사람이구나. 재산 많은 이들은 이렇게 재산을 누리는구나.’

PN:mn54/47.4 · 검토 전

Tamenaṃ sāmikā yattha yattheva passeyyuṃ tattha tattheva sāni hareyyuṃ.

그런데 주인들이 그를 보는 곳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 것을 도로 가져갈 것이다.

PN:mn54/47.5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alaṃ nu kho tassa purisassa aññathattāyā’’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PN:mn54/47.6 · 검토 전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7.7 · 검토 전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54/47.8 · 검토 전

‘‘Sāmino hi, bhante, sāni harantī’’ti.

“세존이시여, 주인들이 자기 것을 도로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PN:mn54/47.9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7.10 · 검토 전

‘yācitak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pe… tamevūpekkhaṃ bhāveti.

‘감각적 욕망은 빌린 물건과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42.10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47.11 · 검토 전

48

장자여, 마을이나 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울창한 숲이 있다고 하자. 그 숲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에는 잘 익은 열매가 가득 달려 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다. 그때 열매를 바라고 열매를 찾아 돌아다니던 사람이 온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 열매 가득한 그 나무를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 나무에는 열매가 가득한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구나. 나는 나무에 오를 줄 안다. 이 나무에 올라가 마음껏 먹고 주머니도 채워야겠다.’ 그는 나무에 올라가 마음껏 먹고 주머니도 가득 채운다.

‘‘Seyyathāpi, gahapati, gāmassa vā nigamassa vā avidūre tibbo vanasaṇḍo.

“장자여, 예를 들어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거진 숲이 있다고 하자.

PN:mn54/48.1 · 검토 전

Tatrassa rukkho sampannaphalo ca upapannaphalo ca, na cassu kānici phalāni bhūmiyaṃ patitāni.

그곳에 열매가 잘 익고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가 있는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다고 하자.

PN:mn54/48.2 · 검토 전

Atha puriso āgaccheyya phalatthiko phalagavesī phalapariyesanaṃ caramāno.

그때 열매를 원하고 열매를 찾아 열매를 구하러 다니는 어떤 사람이 온다고 하자.

PN:mn54/48.3 · 검토 전

So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taṃ rukkhaṃ passeyya sampannaphalañca upapannaphalañca.

그는 그 숲에 들어가, 열매가 잘 익고 열매가 가득 달린 그 나무를 볼 것이다.

PN:mn54/48.4 · 검토 전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PN:mn54/48.5 · 검토 전

‘ayaṃ kho rukkho sampannaphalo ca upapannaphalo ca, natthi ca kānici phalāni bhūmiyaṃ patitāni.

‘이 나무는 열매가 잘 익고 열매가 가득 달렸는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다.

PN:mn54/48.6 · 검토 전

Jānāmi kho panāhaṃ rukkhaṃ ārohituṃ.

그런데 나는 나무에 오를 줄 안다.

PN:mn54/48.7 · 검토 전

Yaṃnūnāhaṃ imaṃ rukkhaṃ ārohitvā yāvadatthañca khādeyyaṃ ucchaṅgañca pūreyya’nti.

그러니 나는 이 나무에 올라가 실컷 먹고 옷자락에도 가득 채우리라.’

PN:mn54/48.8 · 검토 전

So taṃ rukkhaṃ ārohitvā yāvadatthañca khādeyya ucchaṅgañca pūreyya.

그는 그 나무에 올라가 실컷 먹고 옷자락에도 가득 채울 것이다.

PN:mn54/48.9 · 검토 전

그런데 열매를 바라고 찾아 돌아다니던 두 번째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온다. 그도 숲으로 들어가 열매 가득한 그 나무를 본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나무에는 열매가 가득한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구나. 그러나 나는 나무에 오를 줄 모른다. 이 나무를 밑동부터 베어 넘겨서 마음껏 먹고 주머니도 채워야겠다.’ 그는 나무를 밑동부터 베어 버린다.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저 올라가 있던 사람이 얼른 내려오지 않으면, 쓰러지는 나무에 깔리고 만다. 손이 부러지거나 발이 부러지거나 몸의 다른 곳이 부러질 것이다. 그러면 그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괴롭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도 이렇게 숙고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하셨다.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그 속에는 재난이 훨씬 크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바른 통찰로 본 제자는 갖가지 대상에 기대는 다양한 평온을 멀리한다. 그리고 하나에 기대는 한결같은 평온을 닦는다. 이 평온에서는 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불확실]

Atha dutiyo puriso āgaccheyya phalatthiko phalagavesī phalapariyesanaṃ caramāno tiṇhaṃ kuṭhāriṃ ādāya.

그때 열매를 원하고 열매를 찾아 열매를 구하러 다니는 두 번째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온다고 하자.

PN:mn54/48.10 · 검토 전

So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taṃ rukkhaṃ passeyya sampannaphalañca upapannaphalañca.

그는 그 숲에 들어가, 열매가 잘 익고 열매가 가득 달린 그 나무를 볼 것이다.

PN:mn54/48.11 · 검토 전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PN:mn54/48.12 · 검토 전

‘ayaṃ kho rukkho sampannaphalo ca upapannaphalo ca, natthi ca kānici phalāni bhūmiyaṃ patitāni.

‘이 나무는 열매가 잘 익고 열매가 가득 달렸는데, 땅에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없다.

PN:mn54/48.13 · 검토 전

Na kho panāhaṃ jānāmi rukkhaṃ ārohituṃ.

그런데 나는 나무에 오를 줄 모른다.

PN:mn54/48.14 · 검토 전

Yaṃnūnāhaṃ imaṃ rukkhaṃ mūlato chetvā yāvadatthañca khādeyyaṃ ucchaṅgañca pūreyya’nti.

그러니 나는 이 나무를 밑동부터 잘라 실컷 먹고 옷자락에도 가득 채우리라.’

PN:mn54/48.15 · 검토 전

So taṃ rukkhaṃ mūlatova chindeyya.

그는 그 나무를 밑동째 자를 것이다.

PN:mn54/48.16 · 검토 전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amuko yo so puriso paṭhamaṃ rukkhaṃ ārūḷho sace so na khippameva oroheyya tassa so rukkho papatanto hatthaṃ vā bhañjeyya pādaṃ vā bhañjeyya aññataraṃ vā aññataraṃ vā aṅgapaccaṅgaṃ bhañjeyya, so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저 나무에 올라간 저 사람이 얼른 내려오지 않는다면, 그 나무가 넘어지면서 그의 손을 부러뜨리거나 발을 부러뜨리거나 몸의 이런저런 부위를 부러뜨릴 것이고, 그로 인해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지 않겠는가?”

PN:mn54/48.17 · 검토 전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54/48.18 · 검토 전

‘‘Evameva kho, gahapati,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장자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PN:mn54/48.19 · 검토 전

‘rukkhaphalūpamā kāmā vuttā bhagavatā bahudukkhā bahupāyāsā, ādīnavo ettha bhiyyo’ti.

‘감각적 욕망은 나무 열매와 같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많고 고뇌가 많으며, 여기에는 위험이 더 크다.’

PN:mn54/48.20 · 검토 전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yāyaṃ upekkhā nānattā nānattasitā taṃ abhinivajjetvā yāyaṃ upekkhā ekattā ekattasitā yattha sabbaso lokāmisūpādānā aparisesā nirujjhanti tamevūpekkhaṃ bhāveti.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고서, 여러 가지에 속하고 여러 가지에 의지한 저 평온은 피하고, 하나에 속하고 하나에 의지한 저 평온, 곧 세상의 미끼에 대한 취착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 그 평온만을 닦는다.

PN:mn54/48.21 · 검토 전

49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맑아진 이 위없는 경지에 의지한다. 그리하여 갖가지 전생을 기억해 낸다. 한 생, 두 생 하는 식으로, 모습과 내용을 갖추어 기억해 낸다.

‘‘Sa kho so, gahapati, ariyasāvako imaṃyeva anuttar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āgamma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장자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바로 이 위없는,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곧 —

PN:mn54/49.1 · 검토 전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도,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도,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도 기억한다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지녔다.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지녔다.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와 같이 특징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54:49.2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54/49.2 · 검토 전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맑아진 이 위없는 경지에 의지한다. 그리고 맑고 사람의 눈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천하고 귀한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이들을 본다.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 가는 것도 안다.

‘‘Sa kho so, gahapati, ariyasāvako imaṃyeva anuttar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āgamma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p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장자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바로 이 위없는,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에 의지하여,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보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쁘게 행하고, 말로 나쁘게 행하고, 마음으로 나쁘게 행하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에 따라 행하였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게 행하고, 말로 좋게 행하고, 마음으로 좋게 행하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에 따라 행하였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며, 저열한 이와 뛰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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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mn54/49.3 · 검토 전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맑아진 이 위없는 경지에 의지한다. 그리고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의 해탈을 이룬다. 그것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이루어 머문다. 장자여, 여기까지가 성스러운 율에서 세속의 관행이 모든 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다.

‘‘Sa kho so, gahapati, ariyasāvako imaṃyeva anuttar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āgamma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장자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바로 이 위없는,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에 의지하여,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문다.

PN:mn54/49.4 · 검토 전

Ettāvatā kho, gahapati,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hoti.

장자여, 이만큼이 성스러운 율에서 온전히 남김없이, 온갖 방식으로 모두 거래를 끊은 것이다.”

PN:mn54/49.5 · 검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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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스러운 율에서는 세속의 관행이 모든 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완전히 끊어진다. 그대는 그러한 끊어짐이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저와는 너무나 멉니다. 저는 성스러운 율이 말하는 완전한 끊어짐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yathā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hoti, api nu tvaṃ evarūpaṃ vohārasamucchedaṃ attani samanupassasī’’ti?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스러운 율에서 온전히 남김없이, 온갖 방식으로 모두 거래를 끊는 것이 이러한데, 그대는 이와 같은 거래의 끊음을 자기 안에서 보는가?”

PN:mn54/50.1 · 검토 전

‘‘Ko cāhaṃ, bhante, ko ca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o!

“세존이시여, 저는 무엇이고, 성스러운 율에서 온전히 남김없이, 온갖 방식으로 모두 거래를 끊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PN:mn54/50.2 · 검토 전

Ārakā ahaṃ, bhante, ariyassa vinaye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vohārasamucchedā.

세존이시여, 저는 성스러운 율에서 온전히 남김없이, 온갖 방식으로 모두 거래를 끊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PN:mn54/50.3 · 검토 전

세존이시여, 저희는 전에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교단의 유행 수행자들은 명마가 아닌데도 명마라고 여겼습니다. 명마가 아닌 그들에게 명마의 먹이를 먹이고, 명마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반면에 비구들은 명마인데도 명마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명마인 그분들에게 명마가 아닌 이의 먹이를 먹이고, 명마가 아닌 이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는 다릅니다. 다른 교단의 유행 수행자들이 명마가 아니면 아니라고 알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명마가 아닌 이의 먹이를 먹이고, 그런 자리에 앉히겠습니다. 비구들이 명마이면 명마라고 알겠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명마의 먹이를 먹이고, 명마의 자리에 앉히겠습니다.

Mayañhi, bhante, pubbe aññatitthiye paribbājake an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āti amaññimha, an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abhojanaṃ bhojimha, an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aṭhāne ṭhapimha;

세존이시여, 저희는 전에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혈통 좋은 이가 아닌데도 혈통 좋은 이라고 여겼고, 혈통 좋은 이가 아닌데도 혈통 좋은 이에게 주는 음식을 먹였으며, 혈통 좋은 이가 아닌데도 혈통 좋은 이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PN:mn54/50.4 · 검토 전

bhikkhū pana mayaṃ, bhante, 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āti amaññimha, 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abhojanaṃ bhojimha, 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aṭhāne ṭhapimha;

그러나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혈통 좋은 이인데도 혈통 좋은 이가 아니라고 여겼고, 혈통 좋은 이인데도 혈통 좋은 이에게 주지 않는 음식을 먹였으며, 혈통 좋은 이인데도 혈통 좋은 이의 자리가 아닌 곳에 앉혔습니다.

PN:mn54/50.5 · 검토 전

idāni pana mayaṃ, bhante, aññatitthiye paribbājake an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āti jānissāma, an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abhojanaṃ bhojessāma, anājānīyeva samāne anājānīyaṭhāne ṭhapessāma.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는 다른 교단의 유행자들이 혈통 좋은 이가 아니면 혈통 좋은 이가 아니라고 알겠고, 혈통 좋은 이가 아니면 혈통 좋은 이가 아닌 이에게 주는 음식을 먹이겠으며, 혈통 좋은 이가 아니면 혈통 좋은 이가 아닌 이의 자리에 앉히겠습니다.

PN:mn54/50.6 · 검토 전

Bhikkhū pana mayaṃ, bhante, 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āti jānissāma 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abhojanaṃ bhojessāma, ājānīyeva samāne ājānīyaṭhāne ṭhapessāma.

그리고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혈통 좋은 이이면 혈통 좋은 이라고 알겠고, 혈통 좋은 이이면 혈통 좋은 이에게 주는 음식을 먹이겠으며, 혈통 좋은 이이면 혈통 좋은 이의 자리에 앉히겠습니다.

PN:mn54/50.7 · 검토 전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에게 사문들을 향한 사랑과 믿음과 존경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들어, 눈 있는 사람이 모양을 볼 수 있게 하듯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겠습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포탈리야 경이 끝났다. 네 번째.

Ajanesi vata me, bhante, bhagavā samaṇesu samaṇappemaṃ, samaṇesu samaṇappasādaṃ, samaṇesu samaṇagāravaṃ.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제게 사문들에 대한 사문의 애정을, 사문들에 대한 사문의 믿음을, 사문들에 대한 사문의 존경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PN:mn54/50.8 · 검토 전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PN:mn54/50.9 · 검토 전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이 형상을 보게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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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mevaṃ kho, bhante,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PN:mn54/50.11 · 검토 전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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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이시여,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PN:mn54/50.13 · 검토 전

Potaliy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뽀딸리야 경이 끝났다. 네 번째다.

PN:mn54/50.14 · 검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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