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Kosambiyasuttaṃ
8. 꼬삼비 경
491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코삼비의 고시타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mbiyaṃ viharati ghositārāme.
한때 세존께서 꼬삼비의 고시따 원림에 머무셨다.
그때 코삼비의 비구들은 다투고 말싸움하고 논쟁하는 일로 날을 보냈다.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며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했고 납득하지도 않았다. 이해시키지도 못했고 이해하지도 않았다.
Tena kho pana samayena kosambiyaṃ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그때 꼬삼비의 비구들은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냈다.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nti na ca saññattiṃ upenti,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nti, na ca nijjhattiṃ upenti.
그들은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납득에 이르지도 못했으며,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에 이르지도 못했다.
어느 날 한 비구가 세존을 찾아갔다.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코삼비의 비구들이 다투고 말싸움하고 논쟁하며 지냅니다.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고 있습니다. 서로 납득시키지도 납득하지도 않고, 이해시키지도 이해하지도 않습니다."[불확실]
Atha kho aññataro bhikkhu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idha, bhante, kosambiyaṃ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nti, na ca saññattiṃ upenti,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nti, na ca nijjhattiṃ upentī’’ti.
“세존이시여, 여기 꼬삼비에서 비구들이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냅니다. 그들은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납득에 이르지도 못하며,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에 이르지도 못합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한 비구를 부르셨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내 말로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전하라. '스승께서 벗들을 부르십니다.'" 그 비구는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답했다. 그리고 그 비구들을 찾아가 말했다. "스승께서 벗들을 부르십니다."
Atha kho bhagavā aññataraṃ bhikkhu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어떤 비구를 부르셨다 —
‘‘ehi tvaṃ, bhikkhu, mama vacanena te bhikkhū āmantehi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로 그 비구들을 부르라 —
‘satthā vo āyasmante āmantetī’’’ti.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십니다’라고.”
‘‘Evaṃ, bhante’’ti kho so bhikkhu bhagavato paṭissutvā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i;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e bhikkhū etadavoca –
다가가서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tthā āyasmante āmantetī’’ti.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십니다.”
비구들이 "알겠소, 벗이여" 하고 답했다. 그들은 세존을 찾아가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다투고 말싸움하고 논쟁하며 지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고, 납득시키지도 납득하지도 않고, 이해시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tassa bhikkhuno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러겠습니다, 벗이여” 하고 그 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e kho te bhikkhū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saccaṃ kira tumhe, bhikkhav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tha,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tha, na ca saññattiṃ upetha,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tha, na ca nijjhattiṃ upethā’’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내고,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납득에 이르지도 못하며,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에 이르지도 못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하고 비구들이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다투며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던 그때, 함께 수행하는 이들에게 사랑 어린 몸의 행위가 나타나 있었는가?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한결같이 말이다. 사랑 어린 말의 행위도, 사랑 어린 마음의 행위도 그러했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yasmiṃ tumhe samay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tha, api nu tumhākaṃ tasmiṃ samaye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mettaṃ vacīkammaṃ…pe…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내는 그때에, 그대들에게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가 갖추어져 있는가? 자애로운 말의 행위가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갖추어져 있는가?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가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갖추어져 있는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48:492.6에서 되살렸습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그때 그대들에게는 사랑 어린 몸의 행위가 나타나 있지 않았다.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마찬가지였다. 말의 행위도, 마음의 행위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다투는가? 어찌하여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며 지내는가?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납득하지도 않고, 이해시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가?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롭지 못하고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Iti kira, bhikkhave, yasmiṃ tumhe samaye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tha, neva tumhākaṃ tasmiṃ samaye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na mettaṃ vacīkammaṃ…pe… na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그대들이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내는 그때에, 그대들에게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자애로운 말의 행위가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가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48:492.6에서 되살렸습니다.
Atha kiñcarahi tumhe, moghapurisā, kiṃ jānantā kiṃ passantā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tha,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tha, na ca saññattiṃ upetha,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tha, na ca nijjhattiṃ upetha?
그렇다면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기에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내고,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납득에 이르지도 못하며,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에 이르지도 못하는가?
Tañhi tumhākaṃ, moghapurisā, bhavissati dīgharattaṃ ahitāya dukkhāyā’’ti.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롭지 않음과 괴로움이 될 것이다.”
492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이 있다.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에게 사랑 어린 몸의 행위를 한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한결같이 그렇게 한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에게 사랑 어린 말의 행위를 한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한결같이 그렇게 한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에게 사랑 어린 마음의 행위를 한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한결같이 그렇게 한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chayime, bhikkhave, dhammā sāraṇīyā piyakaraṇā garukaraṇā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nti.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법은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Katame cha?
그 여섯은 무엇인가?
Idha, bhikkhave, bhikkhuno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에게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몸의 행위가 갖추어져 있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no mettaṃ vacī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말의 행위가 갖추어져 있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i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no mettaṃ mano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가 갖추어져 있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에 맞게 얻은 이익을 나누어 쓴다. 발우에 담긴 한 끼 몫밖에 안 되는 것이라도 그렇다. 그런 이익을 따로 챙기지 않고, 계를 지키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과 함께 쓴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과 같은 계를 지니고 지낸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그렇다. 그 계는 깨지지 않고 구멍 나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흐려지지 않은 계이다. 자유롭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고, 집착에 물들지 않으며, 삼매로 이끄는 계이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ye te lābhā dhammikā dhammaladdhā antamaso pattapariyāpannamattampi, tathārūpehi lābhehi appaṭivibhattabhogī hoti sīlavantehi sabrahmacārīhi sādhāraṇabhogī.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다운 이득, 법대로 얻은 이득이라면 발우에 담긴 것만큼이라도, 그런 이득을 나누지 않고 혼자 누리지 않으며, 계를 갖추고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 누린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yāni tāni sīlāni akhaṇḍāni acchiddāni asabalāni akammāsāni bhujissāni viññuppasatthāni aparāmaṭṭhāni samādhisaṃvattanikāni tathārūpesu sīlesu sīlasāmaññagato vihara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지러지지 않고 뚫리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티 없으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가 기리며, 집착에 물들지 않아 삼매로 이끄는 계들, 그런 계들 안에서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계를 함께하며 지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함께 수행하는 이들과 같은 견해를 지니고 지낸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 않는 데서나 그렇다. 그 견해는 거룩하고 벗어남으로 이끈다.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견해이다. 이것 또한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는 법이다.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법이다.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며 존중받게 하여, 화합과 다툼 없음과 일치와 하나됨으로 이끄는 법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o vihara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며 그것을 행하는 이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어 내는 견해, 그런 견해 안에서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과 드러내 놓고도 은밀히도 견해를 함께하며 지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이 법도 정답고,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Ime kho, bhikkhave, cha sāraṇīyā dhammā piyakaraṇā garukaraṇā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n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정다운 법이니, 애정을 일으키고, 존중을 일으키며, 서로 거두어 줌으로, 다툼 없음으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법 가운데 으뜸이고, 거두어 모으며,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 바로 거룩하고 벗어남으로 이끄는 견해,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뾰족지붕 집에서는 꼭대기 마룻대가 으뜸이다. 서까래를 거두어 모으고 하나로 묶는 것도 마룻대이다. 그와 같이 이 여섯 가지 법 가운데 으뜸이고 거두어 모으며 하나로 묶는 것도 바로 그 견해이다. 거룩하고 벗어남으로 이끌며,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견해이다."[불확실]
Imesaṃ kho, bhikkhave, channaṃ sāraṇīyānaṃ dhammānaṃ etaṃ aggaṃ etaṃ saṅgāhikaṃ etaṃ saṅghāṭanikaṃ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정다운 법 가운데 이것이 으뜸이고, 이것이 하나로 묶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로 잇는 것이다 —
yadidaṃ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곧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며 그것을 행하는 이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어 내는 저 견해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kūṭāgārassa etaṃ aggaṃ etaṃ saṅgāhikaṃ etaṃ saṅghāṭanikaṃ yadidaṃ kūṭaṃ;
비구들이여, 마치 뾰족지붕 집에서 이것이 으뜸이고 이것이 하나로 묶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로 잇는 것이니, 곧 꼭대기이듯;
evameva kho, bhikkhave, imesaṃ channaṃ sāraṇīyānaṃ dhammānaṃ etaṃ aggaṃ etaṃ saṅgāhikaṃ etaṃ saṅghāṭanikaṃ yadidaṃ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정다운 법 가운데 이것이 으뜸이고 이것이 하나로 묶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로 잇는 것이니, 곧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며 그것을 행하는 이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어 내는 저 견해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493
"비구들이여, 그러면 거룩하고 벗어남으로 이끌며, 그대로 행하는 이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견해란 어떤 것인가? 여기 비구가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집에 간다. 그곳에서 이렇게 살펴본다. '내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사로잡힘이 있는가? 그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사실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되는 것 말이다.'[불확실]
‘‘Kathañca, bhikkhave,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그 견해가 성스럽고 벗어나게 하며 그것을 행하는 이를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끌어 내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iti paṭisañcikkha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성찰한다 —
‘atthi nu kho me taṃ pariyuṭṭhānaṃ ajjhattaṃ appahīnaṃ, yenāhaṃ pariyuṭṭhānena pariyuṭṭhitacitto yathābhūtaṃ nappajāneyyaṃ na passeyya’nti?
‘내게 안으로 버려지지 않은 그 사로잡힘이 있는가, 그 사로잡힘으로 마음이 사로잡혀 내가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될 그런 사로잡힘이?’라고.
비구들이여, 비구가 감각적 욕망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마음은 사로잡힌 것이다. 악의에 사로잡혀 있어도, 해태와 혼침에, 들뜸과 후회에, 의심에 사로잡혀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있어도, 저 세상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다투고 말싸움하고 논쟁하며 서로를 입의 칼로 찌르고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 마음은 사로잡힌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안다. '내 안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사로잡힘이 없다. 그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사실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되는 일이 없다. 내 마음은 진리를 깨닫는 쪽으로 잘 향해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첫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bhikkhu kāmarāgapariyuṭṭhi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감각적 욕망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byāpādapariyuṭṭhi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악의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thīnamiddhapariyuṭṭhi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uddhaccakukkuccapariyuṭṭhi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vicikicchāpariyuṭṭhi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idhalokacintāya pasu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이 세상에 대한 생각에 매여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paralokacintāya pasuto ho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저세상에 대한 생각에 매여 있으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ace, bhikkhave, bhikkhu bhaṇḍanajāto kalahajāto vivādāpanno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o viharati, pariyuṭṭhitacittova hoti.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다툼이 일고 싸움이 일어 논쟁에 빠져 서로를 말의 창으로 찌르며 지내면, 그는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natthi kho me taṃ pariyuṭṭhānaṃ ajjhattaṃ appahīnaṃ, yenāhaṃ pariyuṭṭhānena pariyuṭṭhitacitto yathābhūtaṃ nappajāneyyaṃ na passeyyaṃ.
‘내게는 안으로 버려지지 않은 그 사로잡힘, 그 사로잡힘으로 마음이 사로잡혀 내가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될 그런 사로잡힘이 없다.
Suppaṇihitaṃ me mānasaṃ saccānaṃ bodhāyā’ti.
내 마음은 진리들을 깨닫는 쪽으로 잘 놓여 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assa paṭham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첫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4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나는 이 견해를 가까이하고 닦고 거듭 익히면서, 안으로 고요함을 얻고 있는가? 안으로 평온함을 얻고 있는가?' 그는 이렇게 안다. '나는 이 견해를 가까이하고 닦고 거듭 익히면서, 안으로 고요함을 얻고 있고 안으로 평온함도 얻고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둘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imaṃ nu kho ahaṃ diṭṭhiṃ āsevanto bhāvento bahulīkaronto labhāmi paccattaṃ samathaṃ, labhāmi paccattaṃ nibbuti’nti?
‘내가 이 견해를 익히고 닦고 거듭 익히면, 스스로 그침을 얻고 스스로 꺼짐을 얻는가?’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imaṃ kho ahaṃ diṭṭhiṃ āsevanto bhāvento bahulīkaronto labhāmi paccattaṃ samathaṃ, labhāmi paccattaṃ nibbuti’nti.
‘내가 이 견해를 익히고 닦고 거듭 익히면, 스스로 그침을 얻고 스스로 꺼짐을 얻는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damassa dutiy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두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5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내가 지닌 이런 견해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지니고 있는가?' 그는 이렇게 안다. '내가 지닌 이런 견해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지니고 있지 않다.' 이것이 그가 얻은 셋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 rūpāyāhaṃ diṭṭhiyā samannāgato, atthi nu kho ito bahiddhā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samannāgato’ti?
‘내가 갖춘 것과 같은 그런 견해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갖추고 있는가?’라고.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yathārūpāyāhaṃ diṭṭhiyā samannāgato, natthi ito bahiddhā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samannāgato’ti.
‘내가 갖춘 것과 같은 그런 견해를, 이 밖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갖추고 있지 않다’라고.
Idamassa tatiy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세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6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본성을 나도 지니고 있다.'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본성이란 어떤 것인가?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본성이 있다. 비록 죄를 지을 때가 있더라도, 벗어날 길이 있는 죄라면 곧바로 스승이나 지혜로운 도반들에게 말하고 드러내고 밝힌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앞으로 조심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어리고 여린 아기가 반듯이 누운 채 손이나 발로 숯불을 건드리면 곧바로 움츠린다. 그것처럼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본성이 있다. 비록 죄를 지을 때가 있더라도, 벗어날 길이 있는 죄라면 곧바로 스승이나 지혜로운 도반들에게 말하고 드러내고 밝힌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앞으로 조심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안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본성을 나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넷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dhamm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성품을, 나도 그런 성품을 지녔다’라고.
Kathaṃrūpāya ca, bhikkhave,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비구들이여,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성품을 지녔는가?
Dhammatā esā, bhikkhave,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다 —
‘kiñcāpi tathārūpiṃ āpattiṃ āpajjati, yathārūpāya āpattiyā vuṭṭhānaṃ paññāyati, atha kho naṃ khippameva satthari vā viññūsu vā sabrahmacārīsu deseti vivarati uttānīkaroti;
‘그가 비록 그런 죄를 짓더라도, 곧 그 죄에서 벗어남이 알려져 있는 그런 죄를 짓더라도, 그는 곧바로 그것을 스승께나 지혜로운 이들에게나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밝히고 드러내고 훤히 밝힌다;
desetvā vivaritvā uttānīkatvā āyatiṃ saṃvaraṃ āpajjati’.
밝히고 드러내고 훤히 밝힌 뒤 앞으로 삼가 지킨다.’
Seyyathāpi, bhikkhave, daharo kumāro mando uttānaseyyako hatthena vā pādena vā aṅgāraṃ akkamitvā khippameva paṭisaṃharati;
비구들이여, 마치 어리고 철없어 반듯이 누워 지내는 어린아이가 손이나 발로 숯불을 밟으면 곧바로 거두어들이듯;
evameva kho, bhikkhave, dhammatā esā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다 —
‘kiñcāpi tathārūpiṃ āpattiṃ āpajjati yathārūpāya āpattiyā vuṭṭhānaṃ paññāyati, atha kho naṃ khippameva satthari vā viññūsu vā sabrahmacārīsu deseti vivarati uttānīkaroti;
‘그가 비록 그런 죄를 짓더라도, 곧 그 죄에서 벗어남이 알려져 있는 그런 죄를 짓더라도, 그는 곧바로 그것을 스승께나 지혜로운 이들에게나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밝히고 드러내고 훤히 밝힌다;
desetvā vivaritvā uttānīkatvā āyatiṃ saṃvaraṃ āpajjati’.
밝히고 드러내고 훤히 밝힌 뒤 앞으로 삼가 지킨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dhamm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성품을, 나도 그런 성품을 지녔다’라고.
Idamassa catutth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네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7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본성을 나도 지니고 있다.'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본성이란 어떤 것인가?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본성이 있다. 함께 수행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여러 할 일에 열심히 나서더라도, 그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더 높은 계의 공부, 더 높은 마음의 공부, 더 높은 지혜의 공부를 향한 바람이다. 비구들이여, 갓 새끼를 낳은 암소는 풀을 뜯어 먹으면서도 송아지를 살핀다. 그것처럼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본성이 있다. 함께 수행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여러 할 일에 열심히 나서더라도, 그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더 높은 계의 공부, 더 높은 마음의 공부, 더 높은 지혜의 공부를 향한 바람이다. 그는 이렇게 안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본성을 나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다섯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dhamm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성품을, 나도 그런 성품을 지녔다’라고.
Kathaṃrūpāya ca, bhikkhave,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비구들이여,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성품을 지녔는가?
Dhammatā esā, bhikkhave,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다 —
‘kiñcāpi yāni tāni sabrahmacārīnaṃ uccāvacāni kiṃkaraṇīyāni tattha ussukkaṃ āpanno hoti, atha khvāssa tibbāpekkhā hoti adhisīlasikkhāya adhicittasikkhāya adhipaññāsikkhāya’.
‘그가 비록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의 크고 작은 온갖 할 일에 열심을 내더라도, 그에게는 높은 계의 공부와 높은 마음의 공부와 높은 지혜의 공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다.’
Seyyathāpi, bhikkhave, gāvī taruṇavacchā thambañca ālumpati vacchakañca apacinati;
비구들이여, 마치 어린 송아지를 둔 어미 소가 풀을 뜯으면서도 송아지를 살피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bhikkhave, dhammatā esā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다 —
‘kiñcāpi yāni tāni sabrahmacārīnaṃ uccāvacāni kiṃkaraṇīyāni tattha ussukkaṃ āpanno hoti, atha khvāssa tibbāpekkhā hoti adhisīlasikkhāya adhicittasikkhāya adhipaññāsikkhāya’.
‘그가 비록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의 크고 작은 온갖 할 일에 열심을 내더라도, 그에게는 높은 계의 공부와 높은 마음의 공부와 높은 지혜의 공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dhamm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성품을, 나도 그런 성품을 지녔다’라고.
Idamassa pañcam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다섯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8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힘을 나도 지니고 있다.'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힘이란 어떤 것인가?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힘이 있다. 여래가 알린 법과 율이 설해질 때, 그는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 마음에 새기고 온 마음을 기울여 귀를 모아 법을 듣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힘을 나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여섯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rūpāya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bal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힘을, 나도 그런 힘을 지녔다’라고.
Kathaṃrūpāya ca, bhikkhave,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비구들이여,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힘을 지녔는가?
Balatā esā, bhikkhave,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yaṃ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aṭṭhiṃkatvā manasikatvā sabbacetasā samannāharitvā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힘이 있으니,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밝히신 법과 율이 설해질 때 마음에 새기고 마음을 기울이고 온 마음을 모아 귀 기울여 법을 듣는 것이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yathārūpāya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bal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힘을, 나도 그런 힘을 지녔다’라고.
Idamassa chaṭṭh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여섯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499
"또한 비구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살펴본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힘을 나도 지니고 있다.' 비구들이여,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힘이란 어떤 것인가?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힘이 있다. 여래가 알린 법과 율이 설해질 때, 그는 뜻을 알아 기쁨을 얻는다. 법을 알아 기쁨을 얻고, 법에 닿아 있는 환희도 얻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니는 그런 힘을 나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가 얻은 일곱째 앎이다. 거룩하고 세속을 넘어서며, 범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rūpāya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bal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힘을, 나도 그런 힘을 지녔다’라고.
Kathaṃrūpāya ca, bhikkhave,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비구들이여,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힘을 지녔는가?
Balatā esā, bhikkhave,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yaṃ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desiyamāne labhati atthavedaṃ, labhati dhammavedaṃ, labhati 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에게는 이런 힘이 있으니,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밝히신 법과 율이 설해질 때 뜻에서 오는 감동을 얻고, 법에서 오는 감동을 얻으며, 법과 이어진 기쁨을 얻는 것이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yathārūpāya balatāya diṭṭhisampanno puggalo samannāgato, ahampi tathārūpāya balatāya samannāgato’ti.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이 지닌 그런 힘을, 나도 그런 힘을 지녔다’라고.
Idamassa sattamaṃ ñāṇaṃ adhigataṃ hoti ariyaṃ lokuttaraṃ asādhāraṇaṃ puthujjanehi.
이것이 그가 얻은 일곱 번째 앎이니, 성스럽고 세간을 넘어서며 범부들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500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를 갖춘 거룩한 제자에게는 예류과를 이루기에 알맞은 본성이 잘 갖추어져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를 갖춘 거룩한 제자는 예류과를 갖춘 사람이다."[불확실]
‘‘Evaṃ sattaṅgasamannāgatassa kho, bhikkhave, ariyasāvakassa dhammatā susamanniṭṭhā hoti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의 성품은 흐름에 듦의 결실을 실현하기에 잘 다져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 sattaṅgasamannāgato kho, bhikkhave, ariyasāvako sotāpattiphalasamannāgato hotī’’ti.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듦의 결실을 갖춘 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코삼비 경」, 여덟째 경을 마친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Kosambiyasuttaṃ niṭṭhitaṃ aṭṭhamaṃ.
꼬삼비 경이 끝났다. 여덟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