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Vitakkasuttaṃ
1. 사유 경
38
이것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라한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나는 들었다.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요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
“비구들이여,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자주 일어난다. 안온한 생각과 멀리 떠남의 생각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해치지 않음을 즐기고 기뻐한다. 그런 여래에게는 이런 생각이 자주 일어난다. ‘이런 행동으로 나는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멀리 떠남을 즐기고 기뻐한다. 그런 여래에게는 이런 생각이 자주 일어난다. ‘해로운 것은 이미 모두 버렸다.’
‘‘Tathāgataṃ, bhikkhave,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dve vitakkā bahulaṃ samudācaranti –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에게는 두 가지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
khemo ca vitakko, paviveko ca.
안온한 사유와, 멀리 여읨이다.
Abyāpajjhārāmo, bhikkhave, tathāgato abyāpajjharato.
비구들이여, 여래는 악의 없음을 좋아하고 악의 없음을 즐긴다.
Tamenaṃ, bhikkhave, tathāgataṃ abyāpajjhārāmaṃ abyāpajjharat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ati –
비구들이여, 악의 없음을 좋아하고 악의 없음을 즐기는 그 여래에게는 바로 이런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
‘imāyāhaṃ iriyāya na kiñci byābādhemi tasaṃ vā thāvaraṃ vā’ti.
‘나는 이 몸가짐으로 움직이는 것이든 움직이지 않는 것이든 그 무엇도 해치지 않는다.’
‘‘Pavivekārāmo, bhikkhave, tathāgato pavivekarato.
“비구들이여, 여래는 멀리 여읨을 좋아하고 멀리 여읨을 즐긴다.
Tamenaṃ, bhikkhave, tathāgataṃ pavivekārāmaṃ pavivekarat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ati –
비구들이여, 멀리 여읨을 좋아하고 멀리 여읨을 즐기는 그 여래에게는 바로 이런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
‘yaṃ akusalaṃ taṃ pahīna’nti.
‘무엇이든 나쁘고 해로운 것, 그것은 버려졌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해치지 않음을 즐기고 기뻐하며 지내라. 그렇게 지내는 그대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이런 행동으로 우리는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멀리 떠남을 즐기고 기뻐하며 지내라. 그렇게 지내는 그대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무엇이 해로운 것인가, 무엇을 아직 버리지 못했는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Tasmātiha, bhikkhave, tumhepi abyāpajjhārāmā viharatha abyāpajjharatā.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너희도 악의 없음을 좋아하고 악의 없음을 즐기며 머물러라.
Tesaṃ vo, bhikkhave, tumhākaṃ abyāpajjhārāmānaṃ viharataṃ abyāpajjharatān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issati –
비구들이여, 악의 없음을 좋아하고 악의 없음을 즐기며 머무는 너희에게는 바로 이런 사유가 자주 일어날 것이다 —
‘imāya mayaṃ iriyāya na kiñci byābādhema tasaṃ vā thāvaraṃ vā’ti.
‘우리는 이 몸가짐으로 움직이는 것이든 움직이지 않는 것이든 그 무엇도 해치지 않는다.’
‘‘Pavivekārāmā, bhikkhave, viharatha pavivekaratā.
“비구들이여, 멀리 여읨을 좋아하고 멀리 여읨을 즐기며 머물러라.
Tesaṃ vo, bhikkhave, tumhākaṃ pavivekārāmānaṃ viharataṃ pavivekaratān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issati –
비구들이여, 멀리 여읨을 좋아하고 멀리 여읨을 즐기며 머무는 너희에게는 바로 이런 사유가 자주 일어날 것이다 —
‘kiṃ akusalaṃ, kiṃ appahīnaṃ, kiṃ pajahāmā’’’ti.
‘무엇이 나쁘고 해로운가, 무엇이 버려지지 않았는가, 무엇을 우리가 버리는가?’”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이렇게 전해 온다.
Etamatthaṃ bhagavā avoca.
세존께서 이 뜻을 말씀하셨다.
Tatthetaṃ iti vuccati –
이에 관하여 이렇게 설해진다 —
여래, 부처님, 어떤 것도 이겨내시는 분께는 두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불확실]
‘‘Tathāgataṃ buddhamasayhasāhinaṃ, duve vitakkā samudācaranti naṃ;
“여래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이겨 내신 부처님을, 두 가지 사유가 그분에게 자주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안온의 생각이 첫째라 말해졌고, 이어 멀리 떠남이 둘째로 밝혀졌다
Khemo vitakko paṭhamo udīrito, tato viveko dutiyo pakāsito.
안온한 사유가 첫째로 일러졌고, 그다음 멀리 여읨이 둘째로 밝혀졌다.
어둠을 몰아내고 저 언덕에 이른 대선인, 이를 곳에 이르러 자재하며 번뇌 없는 분
‘‘Tamonudaṃ pāragataṃ mahesiṃ, taṃ pattipattaṃ vasimaṃ anāsavaṃ;
“어둠을 몰아내신 분, 저 언덕에 이르신 분, 위대한 선인, 얻을 것을 얻으신 그분, 자재하신 분, 번뇌 없는 분,
번뇌의 독을 지나 갈애가 다한 곳에서 풀려난 그 성자, 마지막 몸을 지닌 분
Visantaraṃ taṇhakkhaye vimuttaṃ, taṃ ve muniṃ antimadehadhāriṃ;
독을 건너신 분, 갈애의 다함에서 해탈하신 분, 참으로 그 성자, 마지막 몸을 지니신 분,
마라를 버린 분, 늙음의 저 언덕에 이른 분이라 나는 부르노라
Mārañjahaṃ brūmi jarāya pāraguṃ.
마라를 버리신 분이라고, 늙음의 저 언덕에 이르신 분이라고 나는 말한다.
바위산 꼭대기에 선 이가 사방의 사람들을 둘러보듯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바위로 된 산꼭대기에 선 이가 사방으로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듯이,
그와 같이 슬기로운 이, 법으로 지은 누각에 올라 두루 보는 눈으로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o,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그와 같은, 법으로 된 궁전에 지혜로운 분, 두루 보는 눈을 지니신 분이 올라,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슬픔 여읜 이가 굽어본다 —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이들을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avekkhati jātijarābhibhūta’’nti.
슬픔에 잠기고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사람들을, 슬픔을 여읜 그분이 내려다본다.”
이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이 뜻도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Paṭhamaṃ.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