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Aggaññasuttaṃ
4. 악간냐 경
111
와셋타와 바라드와자Vāseṭṭhabhāradvājā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뿝바라마, 미가라 어머니의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비구가 되기를 바라며, 비구들 틈에서 수습 기간을 지내고 있었다.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세존께서는 홀로 앉아 계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에서 내려오셨다. 그리고 강당 그늘진 탁 트인 곳을 거닐고 계셨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pubbārāme migāramātupāsād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동쪽 원림, 미가라 어머니의 강당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vāseṭṭhabhāradvājā bhikkhūsu parivasanti bhikkhubhāvaṃ ākaṅkhamānā.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비구가 되기를 바라며 비구들 곁에서 예비 기간을 지내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pāsādā orohitvā pāsādapacchāyāyaṃ abbhokāse caṅkamati.
그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강당에서 내려와 강당 그늘 아래 노천에서 거니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12
와셋타는 세존께서 그렇게 거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바라드와자를 불러 말했다. “벗이여 바라드와자, 저기 세존께서 저녁 무렵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 그늘진 곳을 거닐고 계시네. 우리 세존께 가 보세. 어쩌면 세존께 법문을 들을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니 말일세.” 바라드와자가 대답했다. “좋네, 벗이여.”[불확실]
Addasā kho vāseṭṭho bhagavantaṃ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aṃ pāsādā orohitvā pāsādapacchāyāyaṃ abbhokāse caṅkamantaṃ.
와셋타는 세존께서 해질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강당에서 내려와 강당 그늘 아래 노천에서 거니시는 것을 보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isvāna bhāradvājaṃ āmantesi –
보고서 바라드와자를 불렀다 —
‘‘ayaṃ, āvuso bhāradvāja, bhagavā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pāsādā orohitvā pāsādapacchāyāyaṃ abbhokāse caṅkamati.
“벗 바라드와자여, 저 세존께서 해질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강당에서 내려와 강당 그늘 아래 노천에서 거니십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Āyāmāvuso bhāradvāj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ssāma;
갑시다, 벗 바라드와자여, 세존께 나아갑시다;
appeva nāma labheyyāma bhagavato santikā dhammiṃ kathaṃ savanāyā’’ti.
혹시 세존 곁에서 법다운 말씀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vamāvuso’’ti kho bhāradvājo vāseṭṭhassa paccassosi.
“예, 벗이여” 하고 바라드와자가 와셋타에게 대답했다.
113
두 사람은 세존께 다가가 절을 올렸다. 그리고 거니시는 세존을 뒤따라 함께 걸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와셋타를 부르셨다.
Atha kho vāseṭṭhabhāradvāj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그리하여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bhagavantaṃ caṅkamantaṃ anucaṅkamiṃsu.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거니시는 세존을 따라 거닐었다.
Atha kho bhagavā vāseṭṭh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와셋타를 부르셨다 —
“와셋타여, 너희 두 사람은 바라문 가문에서 바라문의 혈통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바라문 집안을 떠나 집 없는 출가자가 되었다. 바라문들이 너희를 욕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느냐?”
‘‘tumhe khvattha, vāseṭṭha, brāhmaṇajaccā brāhmaṇakulīnā brāhmaṇakul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vo, vāseṭṭha, brāhmaṇā na akkosanti na paribhāsantī’’ti?
“와셋타여, 그대들은 바라문 태생이고 바라문 가문 출신이며, 바라문 가문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왔다. 와셋타여, 바라문들이 그대들을 욕하고 헐뜯지는 않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바라문들은 저희를 욕하고 비난합니다. 그것도 어울리는 꼴로, 빠짐없이 가득, 부족함 없이 비난합니다.” “와셋타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너희를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느냐?”[불확실]
‘‘Taggha no, bhante, brāhmaṇā akkosanti paribhāsanti attarūpāya paribhāsāya paripuṇṇāya, no aparipuṇṇāyā’’ti.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참으로 저희를 욕하고 헐뜯습니다. 제 딴에 어울리는 헐뜯음으로 온전히 헐뜯지, 어설프게 하지 않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thā kathaṃ pana vo, vāseṭṭha, brāhmaṇā akkosanti paribhāsanti attarūpāya paribhāsāya paripuṇṇāya, no aparipuṇṇāyā’’ti?
“와셋타여, 그러면 바라문들이 그대들을 어떤 식으로 욕하고 헐뜯는가 — 제 딴에 어울리는 헐뜯음으로 온전히 헐뜯지, 어설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라문만이 가장 뛰어난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천하다. 바라문만이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아들이다. 그의 입에서 태어난 친자식이고, 범천에게서 나고 범천이 만들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너희는 가장 뛰어난 계급을 버리고 천한 계급으로 넘어갔다. 머리 깎은 가짜 사문, 하인 같은 자들, 검은 자들, 범천의 발에서 난 자들에게 간 것이다. 이는 옳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저희를 어울리는 꼴로, 빠짐없이 가득, 부족함 없이 욕하고 비난합니다.”[불확실]
‘‘Brāhmaṇā, bhante, evamāhaṃsu –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brāhmaṇova seṭṭho vaṇṇo, hīn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으뜸가는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낮다.
Brāhmaṇova sukko vaṇṇo, kaṇh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흰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검다.
Brāhmaṇāva sujjhanti, no abrāhmaṇā.
바라문들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 아닌 자들은 그렇지 않다.
Brāhmaṇā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ā brahmajā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이니, 친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게서 났고, 범천이 지어냈고, 범천의 상속자다.
Te tumhe seṭṭhaṃ vaṇṇaṃ hitvā hīnamattha vaṇṇaṃ ajjhupagatā, yadidaṃ muṇḍake samaṇake ibbhe kaṇhe bandhupādāpacce.
그런데 그대들은 으뜸가는 계급을 버리고 낮은 계급으로 넘어갔다. 곧 까까머리 사이비 사문, 천한 것들, 검은 것들, 친족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에게로.
Tayidaṃ na sādhu, tayidaṃ nappatirūpaṃ, yaṃ tumhe seṭṭhaṃ vaṇṇaṃ hitvā hīnamattha vaṇṇaṃ ajjhupagatā yadidaṃ muṇḍake samaṇake ibbhe kaṇhe bandhupādāpacce’ti.
그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걸맞지 않다 — 그대들이 으뜸가는 계급을 버리고 낮은 계급으로, 곧 까까머리 사이비 사문, 천한 것들, 검은 것들, 친족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에게로 넘어간 것은.’
Evaṃ kho no, bhante, brāhmaṇā akkosanti paribhāsanti attarūpāya paribhāsāya paripuṇṇāya, no aparipuṇṇāyā’’ti.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저희를 욕하고 헐뜯습니다 — 제 딴에 어울리는 헐뜯음으로 온전히 헐뜯지, 어설프게 하지 않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14
“와셋타여, 그 바라문들은 옛일을 잊고서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는구나. ‘바라문만이 가장 뛰어난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천하다. 바라문만이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아들이며, 그의 입에서 태어난 친자식이고, 범천에게서 나고 범천이 만들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와셋타여, 바라문의 아내들도 달거리를 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인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지 않느냐. 그러면서도 그 바라문들은 자기도 모태에서 태어났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바라문만이 가장 뛰어난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천하다. 바라문만이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아들이며, 그의 입에서 태어난 친자식이고, 범천에게서 나고 범천이 만들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그들은 범천을 비방하고 거짓말을 하며, 많은 악업을 짓는 것이다.
‘‘Taggha vo, vāseṭṭha, brāhmaṇā porāṇaṃ assarantā evamāhaṃsu –
“와셋타여, 바라문들은 참으로 옛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한다 —
‘brāhmaṇova seṭṭho vaṇṇo, hīn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으뜸가는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낮다;
brāhmaṇova sukko vaṇṇo, kaṇh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흰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검다;
brāhmaṇāva sujjhanti, no abrāhmaṇā;
바라문들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 아닌 자들은 그렇지 않다;
brāhmaṇā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ā brahmajā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ti.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이니, 친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게서 났고, 범천이 지어냈고, 범천의 상속자다.’라고.
Dissanti kho pana, vāseṭṭha, brāhmaṇānaṃ brāhmaṇiyo utuniyopi gabbhiniyopi vijāyamānāpi pāyamānāpi.
그런데 와셋타여, 바라문들의 바라문 여인들이 달거리를 하고, 아이를 배고,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것이 보인다.
Te ca brāhmaṇā yonijāva samānā evamāhaṃsu –
그런데도 그 바라문들은 태에서 난 자들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
‘brāhmaṇova seṭṭho vaṇṇo, hīn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으뜸가는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낮다;
brāhmaṇova sukko vaṇṇo, kaṇh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흰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검다;
brāhmaṇāva sujjhanti, no abrāhmaṇā;
바라문들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 아닌 자들은 그렇지 않다;
brāhmaṇā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ā brahmajā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ti.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이니, 친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게서 났고, 범천이 지어냈고, 범천의 상속자다.’라고.
Te brahmānañceva abbhācikkhanti, musā ca bhāsanti, bahuñca apuññaṃ pasavanti.
그들은 범천에게 없는 말을 뒤집어씌우고, 거짓을 말하며, 많은 악덕을 쌓는다.
네 계급의 청정Catuvaṇṇasuddhi
115
“와셋타여, 계급은 네 가지다. 끄샤뜨리야, 바라문, 와이샤, 수드라이다. 끄샤뜨리야 가운데에도 이런 자가 있다. 산 목숨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진다. 애욕에 관해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한다.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한다.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다. 이런 법들은 좋지 않다고 불리고, 허물이 있다고 불리며,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불린다. 성자답지 못하다고 불리고, 어둡고 어두운 과보를 낳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꾸짖는다. 이런 법들이 끄샤뜨리야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서 보인다. 바라문 가운데에도, 와이샤 가운데에도 그러하다. 수드라 가운데에도 산 목숨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진다. 애욕에 관해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한다.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을 한다.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가 있다. 어둡고 어두운 과보를 낳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꾸짖는 이런 법들이 수드라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서도 보인다.
‘‘Cattārome, vāseṭṭha, vaṇṇā –
“와셋타여, 이 네 계급이 있다 —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왕족, 바라문, 평민, 천민.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kāmesumicchācārī musāvādī pisuṇavāco pharusavāco samphappalāpī abhijjhālu byāpannacitto micchādiṭṭhī.
와셋타여, 왕족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을 죽이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삿된 음행을 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삿된 견해를 지닌 자이다.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akusalā akusalasaṅkhātā sāvajjā sāvajjasaṅkhātā asevitabbā asevitabbasaṅkhātā naalamariyā naalamariyasaṅkhātā kaṇhā kaṇhavipākā viññugarahitā, khattiyepi te idhekacce sandissanti.
이와 같이, 와셋타여, 나쁘고 해로운 법들, 나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만한 것들, 나무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지 않은 것들,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검은 것들, 검은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나무라는 것들 — 왕족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pe… sudd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kāmesumicchācārī musāvādī pisuṇavāco pharusavāco samphappalāpī abhijjhālu byāpannacitto micchādiṭṭhī.
와셋타여, 바라문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을 죽이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삿된 음행을 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삿된 견해를 지닌 자이다. 이와 같이, 와셋타여, 나쁘고 해로운 법들, 나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만한 것들, 나무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지 않은 것들,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검은 것들, 검은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나무라는 것들 — 바라문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와셋타여, 평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을 죽이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삿된 음행을 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삿된 견해를 지닌 자이다. 이와 같이, 와셋타여, 나쁘고 해로운 법들, 나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만한 것들, 나무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지 않은 것들,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검은 것들, 검은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나무라는 것들 — 평민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와셋타여, 천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을 죽이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삿된 음행을 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자이고, 탐내는 자이고, 성내는 마음을 지닌 자이고, 삿된 견해를 지닌 자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15.3 ~ PN:dn27/115.4에서 되살렸습니다.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akusalā akusalasaṅkhātā…pe… kaṇhā kaṇhavipākā viññugarahitā;
이와 같이, 와셋타여, 나쁘고 해로운 법들, 나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만한 것들, 나무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지 않은 것들,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검은 것들, 검은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나무라는 것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15.4에서 되살렸습니다.
suddepi te idhekacce sandissanti.
천민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와셋타여, 끄샤뜨리야 가운데에는 이런 자도 있다.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을 멀리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멀리한다. 애욕에 관한 잘못, 거짓말, 이간하는 말을 멀리한다.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도 멀리한다.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으며, 바른 견해를 가졌다. 이런 법들은 선하다고 불리고, 허물이 없다고 불리며, 가까이해야 한다고 불린다. 성자답다고 불리고, 밝고 밝은 과보를 낳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한다. 이런 법들이 끄샤뜨리야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서 보인다. 바라문 가운데에도, 와이샤 가운데에도 그러하다. 수드라 가운데에도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을 멀리하고,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으며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있다. 밝고 밝은 과보를 낳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는 이런 법들이 수드라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서도 보인다.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musāvādā paṭivirato,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anabhijjhālu abyāpannacitto, sammādiṭṭhī.
“와셋타여, 왕족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없고, 바른 견해를 지닌다.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kusalā kusalasaṅkhātā anavajjā anavajjasaṅkhātā sevitabbā sevitabbasaṅkhātā alamariyā alamariyasaṅkhātā sukkā sukkavipākā viññuppasatthā, khattiyepi te idhekacce sandissanti.
이와 같이, 와셋타여, 유익한 법들,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데 없는 것들, 나무랄 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해야 할 것들, 가까이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은 것들, 걸맞다고 여겨지는 것들, 흰 것들, 흰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것들 — 왕족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pe… sudd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pe… anabhijjhālu, abyāpannacitto, sammādiṭṭhī.
와셋타여, 바라문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없고, 바른 견해를 지닌다. 이와 같이, 와셋타여, 유익한 법들,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데 없는 것들, 나무랄 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해야 할 것들, 가까이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은 것들, 걸맞다고 여겨지는 것들, 흰 것들, 흰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것들 — 바라문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와셋타여, 평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없고, 바른 견해를 지닌다. 이와 같이, 와셋타여, 유익한 법들,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데 없는 것들, 나무랄 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해야 할 것들, 가까이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은 것들, 걸맞다고 여겨지는 것들, 흰 것들, 흰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것들 — 평민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와셋타여, 천민도 여기 어떤 이는 산 생명 죽이기를 삼가고, 주지 않은 것 가지기를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하는 말을 삼가고, 거친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며, 탐내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없고, 바른 견해를 지닌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15.8 ~ PN:dn27/115.9에서 되살렸습니다.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kusalā kusalasaṅkhātā anavajjā anavajjasaṅkhātā sevitabbā sevitabbasaṅkhātā alamariyā alamariyasaṅkhātā sukkā sukkavipākā viññuppasatthā;
이와 같이, 와셋타여, 유익한 법들,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나무랄 데 없는 것들, 나무랄 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까이해야 할 것들, 가까이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 성스러운 이에게 걸맞은 것들, 걸맞다고 여겨지는 것들, 흰 것들, 흰 과보를 낳는 것들,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것들;
suddepi te idhekacce sandissanti.
천민에게도 여기 어떤 이들에게 그것들이 나타난다.
116
“와셋타여, 이 네 계급에는 어두운 법과 밝은 법이 뒤섞여 있다. 지혜로운 이들이 꾸짖는 것도, 칭찬하는 것도 함께 있다. 그런데도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라문만이 가장 뛰어난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천하다. 바라문만이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아들이며, 그의 입에서 태어난 친자식이고, 범천에게서 나고 범천이 만들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지혜로운 이들은 그들의 이런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 네 계급 가운데 누군가 비구가 되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자. 번뇌가 다하고, 수행을 마치고, 할 일을 다했다.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다. 존재의 속박을 모두 끊고, 바르게 알아 해탈했다. 그런 사람이 법에 따라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리는 것이다. 법에 어긋나게 그리 불리는 것이 아니다. 와셋타여, 법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다. 지금 이 생에서도, 죽은 뒤에도 그렇다.
‘‘Imesu kho, vāseṭṭha, catūsu vaṇṇesu evaṃ ubhayavokiṇṇesu vattamānesu kaṇhasukkesu dhammesu viññugarahitesu ceva viññuppasatthesu ca yadettha brāhmaṇā evamāhaṃsu –
“와셋타여, 이 네 계급이 이렇게 둘이 섞인 채로 굴러가고, 검고 흰 법들이 지혜로운 이에게 나무람을 받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는데, 여기서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한 것 —
‘brāhmaṇova seṭṭho vaṇṇo, hīn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으뜸가는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낮다;
brāhmaṇova sukko vaṇṇo, kaṇhā aññe vaṇṇā;
바라문만이 흰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검다;
brāhmaṇāva sujjhanti, no abrāhmaṇā;
바라문들만이 깨끗해지고, 바라문 아닌 자들은 그렇지 않다;
brāhmaṇā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ā brahmajā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ti.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이니, 친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게서 났고, 범천이 지어냈고, 범천의 상속자다.’라고 한 것,
Taṃ tesaṃ viññū nānujānanti.
그것을 지혜로운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Imesañhi, vāseṭṭha, catunnaṃ vaṇṇānaṃ yo hoti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 nesaṃ aggamakkhāyati dhammeneva, no adhammena.
와셋타여, 이 네 계급 가운데 누구든 비구가 되어 아라한이고, 번뇌를 다했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기 목적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남김없이 부수었고, 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린다 — 법에 따라서지, 법 아닌 것에 따라서가 아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법이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다 — 지금 여기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117
“와셋타여, 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지금 이 생에서도, 죽은 뒤에도 그렇다.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야 한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이렇게 알고 있다. ‘사문 고따마는 바로 이웃한 사꺄 가문에서 출가했다.’ 그런데 사꺄족은 빠세나디 왕에게 복속해 있다. 사꺄족은 왕에게 몸을 낮추어 절하고, 일어나 맞이하고, 합장하고, 예를 갖춘다. 그런데 빠세나디 왕은 바로 그 절과 맞이함과 합장과 예를 여래께 올린다. 그가 ‘사문 고따마는 좋은 태생이고 나는 나쁜 태생이다. 사문 고따마는 힘이 세고 나는 약하다. 사문 고따마는 단정하고 나는 못생겼다. 사문 고따마는 위세가 크고 나는 위세가 작다.’ 하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법을 존중하고, 무겁게 여기고, 받들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법에 예를 다하여, 빠세나디 왕은 여래께 몸을 낮추고 절하고, 일어나 맞이하고,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다. 와셋타여, 법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지금 이 생에서도, 죽은 뒤에도 그렇다.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아야 한다.
‘‘Tadamināpetaṃ, vāseṭṭh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dhammov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이런 방식으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 법이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으뜸임을, 지금 여기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Jānāti kho, vāseṭṭha, rājā pasenadi kosalo –
“와셋타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안다 —
‘samaṇo gotamo anantarā sakyakulā pabbajito’ti.
‘사문 고따마는 바로 사꺄 가문에서 집을 떠났다.’라고.
Sakyā kho pana, vāseṭṭha,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anuyuttā bhavanti.
그런데 와셋타여, 사꺄족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딸려 있다.
Karonti kho, vāseṭṭha, sakyā raññe pasenadimhi kosale nipaccakāraṃ abhivādanaṃ paccuṭṭhānaṃ añjalikammaṃ sāmīcikammaṃ.
와셋타여, 사꺄족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엎드림과 인사와 자리에서 일어남과 합장과 예의 바른 행위를 한다.
Iti kho, vāseṭṭha, yaṃ karonti sakyā raññe pasenadimhi kosale nipaccakāraṃ abhivādanaṃ paccuṭṭhānaṃ añjalikammaṃ sāmīcikammaṃ, karoti taṃ rājā pasenadi kosalo tathāgate nipaccakāraṃ abhivādanaṃ paccuṭṭhānaṃ añjalikammaṃ sāmīcikammaṃ, na naṃ ‘sujāto samaṇo gotamo, dujjātohamasmi.
이와 같이, 와셋타여, 사꺄족이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에게 하는 그 엎드림과 인사와 자리에서 일어남과 합장과 예의 바른 행위, 그것을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여래에게 한다 — 엎드림과 인사와 자리에서 일어남과 합장과 예의 바른 행위를. 그것은 여래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좋은 가문에 태어났고, 나는 나쁜 가문에 태어났다.
Balavā samaṇo gotamo, dubbalohamasmi.
사문 고따마는 힘이 세고, 나는 힘이 약하다.
Pāsādiko samaṇo gotamo, dubbaṇṇohamasmi.
사문 고따마는 보기 좋고, 나는 볼품없다.
Mahesakkho samaṇo gotamo, appesakkhohamasmī’ti.
사문 고따마는 세력이 크고, 나는 세력이 작다.’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Atha kho naṃ dhammaṃyeva sakkaronto dhammaṃ garuṃ karonto dhammaṃ mānento dhammaṃ pūjento dhammaṃ apacāyamāno evaṃ rājā pasenadi kosalo tathāgate nipaccakāraṃ karoti, abhivādanaṃ paccuṭṭhānaṃ añjalikammaṃ sāmīcikammaṃ.
오히려 법을 존중하고, 법을 무겁게 여기고, 법을 받들고, 법을 공경하고, 법에 예를 갖추어, 그렇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여래에게 엎드림을 하고, 인사와 자리에서 일어남과 합장과 예의 바른 행위를 한다.
Imināpi kho etaṃ, vāseṭṭh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dhammov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이런 방식으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 법이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으뜸임을, 지금 여기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118
“와셋타여, 너희는 태생도 이름도 성씨도 가문도 저마다 다른 채로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되었다. 누가 ‘당신들은 누구요?’ 하고 물으면, 너희는 ‘우리는 사꺄의 아들인 사문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와셋타여, 여래에 대한 믿음이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굳건한 사람이 있다. 세상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신, 마라, 범천도 그를 흔들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합당하다.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그의 입에서 태어난 친자식이며, 법에서 나고 법이 만들었으며, 법의 상속자이다.’ 왜 그런가? 와셋타여, 이것들은 모두 여래를 가리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법의 몸’이라고도 하고, ‘범천의 몸’이라고도 한다. ‘법이 된 분’이라고도 하고, ‘범천이 된 분’이라고도 한다.
‘‘Tumhe khvattha, vāseṭṭha, nānājacc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kul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와셋타여, 그대들은 저마다 태생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가문이 다른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왔다.
‘Ke tumhe’ti –
‘그대들은 누구인가?’ 하고 —
puṭṭhā samānā ‘samaṇā sakyaputtiyāmhā’ti –
물으면 그대들은 ‘우리는 사꺄의 아들인 사문이다.’라고 —
paṭijānātha.
밝힌다.
Yassa kho panassa, vāseṭṭha, tathāgate saddhā niviṭṭhā mūlajātā patiṭṭhitā daḷhā asaṃhāriy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ṃ, tassetaṃ kallaṃ vacanāya –
와셋타여, 누구든 여래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굳게 서고, 단단하여,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든 흔들 수 없게 된 이라면, 그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걸맞다 —
‘bhagavatomhi putto oraso mukhato jā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dāyādo’ti.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친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법에서 났고, 법이 지어냈고, 법의 상속자다.’라고.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Tathāgatassa hetaṃ, vāseṭṭha, adhivacanaṃ ‘dhammakāyo’ itipi, ‘brahmakāyo’ itipi, ‘dhammabhūto’ itipi, ‘brahmabhūto’ itipi.
와셋타여, 여래에게는 이런 이름들이 있다 — ‘법의 몸’이라고도, ‘범천의 몸’이라고도, ‘진리이신 분’이라고도, ‘신성이신 분’이라고도 한다.
119
“와셋타여,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때에 이 세상이 무너지는 때가 온다. 세상이 무너질 때면 대부분의 중생은 광음천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닌다. 기쁨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며, 허공을 다닌다. 아름다운 곳에 머물면서 길고 긴 세월을 산다.
‘‘Hoti kho so, vāseṭṭha, samayo y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ṃ loko saṃvaṭṭati.
“와셋타여, 언젠가 어느 때,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이 세상이 무너지는, 그런 때가 있다.
Saṃ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saṃvattanikā honti.
세상이 무너질 때, 대개 중생들은 빛나는 신들의 세계로 가게 된다.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기쁨을 먹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을 다니고, 아름다움에 머물며,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낸다.
“와셋타여,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때에 이 세상이 다시 생겨나는 때가 온다. 세상이 다시 생겨날 때면 대부분의 중생은 광음천의 몸을 마치고 이 세상으로 온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닌다. 기쁨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며, 허공을 다닌다. 아름다운 곳에 머물면서 길고 긴 세월을 산다.
‘‘Hoti kho so, vāseṭṭha, samayo y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ṃ loko vivaṭṭati.
“와셋타여, 언젠가 어느 때,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이 세상이 다시 펼쳐지는, 그런 때가 있다.
Vi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kāyā cavitvā itthattaṃ āgacchanti.
세상이 펼쳐질 때, 대개 중생들은 빛나는 신들의 무리에서 죽어 이곳으로 온다.
Ted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그들은 여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기쁨을 먹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을 다니고, 아름다움에 머물며,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낸다.
맛있는 땅이 나타남Rasapathavipātubhāvo
120
“와셋타여, 그때는 모든 것이 하나의 물로 되어 있다. 짙은 어둠, 눈먼 어둠뿐이다. 해와 달도 보이지 않고, 별과 별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밤과 낮도 보이지 않고, 달과 반달도 보이지 않는다. 계절과 해도 보이지 않고, 여자와 남자도 보이지 않는다. 중생은 그저 중생이라고만 불린다. 와셋타여, 그러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때에 그 중생들에게 물 위로 맛 좋은 땅이 퍼져 나왔다. 끓인 우유가 식으면서 위에 막이 생기듯이 그렇게 나타났다. 그것은 빛깔도 좋고 향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잘 만든 버터기름이나 생버터 같은 빛깔이었다. 또 티 없는 야생 꿀 같은 맛이었다.[불확실]
‘‘Ekodakībhūtaṃ kho pana, vāseṭṭha, tena samayena hoti andhakāro andhakāratimisā.
“와셋타여, 그때는 온통 물뿐이었고, 어둠이 있었고, 캄캄한 암흑이었다.
Na candimasūriyā paññāyanti, na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paññāyanti, na rattindivā paññāyanti, na māsaḍḍhamāsā paññāyanti, na utusaṃvaccharā paññāyanti, na itthipumā paññāyanti, sattā sattātveva saṅkhyaṃ gacchanti.
달과 해가 드러나지 않고, 별자리와 별들이 드러나지 않고, 밤과 낮이 드러나지 않고, 달과 반달이 드러나지 않고, 계절과 해가 드러나지 않고, 여자와 남자가 드러나지 않고, 중생들은 그저 ‘중생’이라고만 헤아려졌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ha kho tesaṃ, vāseṭṭha, sattān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rasapathavī udakasmiṃ samatani;
그러다가, 와셋타여, 그 중생들에게 언젠가 어느 때,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맛있는 땅이 물 위에 퍼졌다;
seyyathāpi nāma payaso tattassa nibbāyamānassa upari santānakaṃ hoti, evameva pāturahosi.
마치 뜨겁게 데운 우유가 식으면서 그 위에 엷은 막이 생기듯, 꼭 그렇게 나타났다.
Sā ahosi vaṇṇasampannā gandhasampannā rasasampannā, seyyathāpi nāma sampannaṃ vā sappi sampannaṃ vā navanītaṃ evaṃvaṇṇā ahosi.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기를 갖추고, 맛을 갖추었으니, 마치 잘 여문 버터기름이나 잘 여문 생버터 같은, 그런 빛깔이었다.
Seyyathāpi nāma khuddamadhuṃ aneḷakaṃ, evamassādā ahosi.
마치 잡것 섞이지 않은 들벌 꿀 같은, 그런 맛이었다.
와셋타여, 그때 욕심 많은 어떤 중생이 있었다. 그가 ‘아,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며 맛 좋은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았다. 맛을 보자 그 맛이 그를 사로잡았고, 갈애가 그에게 일어났다. 와셋타여, 다른 중생들도 그 중생을 본받아 맛 좋은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았다. 맛을 본 그들에게도 그 맛이 사로잡았고, 갈애가 일어났다.[불확실]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lolajātiko –
그러다가, 와셋타여, 성질이 들뜬 어떤 중생이 —
‘ambho, kimevidaṃ bhavissatī’ti rasapathaviṃ aṅguliyā sāyi.
‘아, 이것이 대체 무엇일까?’ 하며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았다.
Tassa rasapathaviṃ aṅguliyā sāyato acchādesi, taṇhā cassa okkami.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는 그에게 그 맛이 배어들었고, 그에게 갈애가 들어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ññepi kho, vāseṭṭha, sattā tassa sattassa diṭṭhānugatiṃ āpajjamānā rasapathaviṃ aṅguliyā sāyiṃsu.
와셋타여, 다른 중생들도 그 중생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여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았다.
Tesaṃ rasapathaviṃ aṅguliyā sāyataṃ acchādesi, taṇhā ca tesaṃ okkami.
맛있는 땅을 손가락으로 맛보는 그들에게 그 맛이 배어들었고, 그들에게 갈애가 들어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달과 해 등의 출현Candimasūriyādipātubhāvo
121
와셋타여, 그때 중생들은 맛 나는 땅을 손으로 떠서 덩이를 지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생들의 스스로 나는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달과 해가 나타났다. 달과 해가 나타나자 별자리와 뭇별이 나타났다. 그다음에는 밤과 낮이 갈리고, 한 달과 반 달이 갈렸다. 마침내 계절과 해도 갈렸다. 와셋타여, 이렇게 이 세상은 다시 펼쳐져 나온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ṃ hatthehi āluppakārakaṃ upakkamiṃsu paribhuñjituṃ.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맛의 땅을 손으로 덩어리 지어 떼어 내며 먹기 시작했다.
Yato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ṃ hatthehi āluppakārakaṃ upakkamiṃsu paribhuñjituṃ.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맛의 땅을 손으로 덩어리 지어 떼어 내며 먹기 시작하자,
Atha tesaṃ sattānaṃ sayaṃpabhā antaradhāyi.
그러자 그 중생들의 스스로 내던 빛이 사라졌다.
Sayaṃpabhāya antarahitāya candimasūriyā pāturahesuṃ.
스스로 내던 빛이 사라지자 달과 해가 나타났다.
Candimasūriyesu pātubhūtesu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pāturahesuṃ.
달과 해가 나타나자 별자리와 별들이 나타났다.
Nakkhattesu tārakarūpesu pātubhūtesu rattindivā paññāyiṃsu.
별자리와 별들이 나타나자 밤과 낮이 드러났다.
Rattindivesu paññāyamānesu māsaḍḍhamāsā paññāyiṃsu.
밤과 낮이 드러나자 달과 반달이 드러났다.
Māsaḍḍhamāsesu paññāyamānesu utusaṃvaccharā paññāyiṃsu.
달과 반달이 드러나자 계절과 해가 드러났다.
Ettāvatā kho, vāseṭṭha, ayaṃ loko puna vivaṭṭo hoti.
와셋타여, 이만큼으로 이 세상은 다시 펼쳐진 것이 된다.
122
와셋타여, 중생들은 맛 나는 땅을 먹으며 그것으로 살아갔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오래 먹을수록 중생들의 몸은 거칠고 단단해졌다. 얼굴빛에도 좋고 나쁨이 드러났다. 어떤 이들은 얼굴빛이 고왔고, 어떤 이들은 나빴다. 얼굴빛이 고운 이들은 나쁜 이들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우리가 저들보다 얼굴빛이 더 곱다. 저들은 우리보다 더 나쁘다.” 얼굴빛을 내세워 교만하고 잘난 체하자, 그들에게서 맛 나는 땅이 사라졌다. 그들은 모여들어 탄식했다. “아, 맛이여! 아, 맛이여!”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얻으면 이렇게 말한다. “아, 맛이여! 아, 맛이여!” 아주 오래된 태초의 말을 따라 하면서도, 그 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맛의 땅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다.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tathā tathā tesaṃ sattānaṃ (rasapathaviṃ paribhuñjantānaṃ) kharattañceva kāyasmiṃ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맛의 땅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낼수록, 그만큼 (맛의 땅을 먹는) 그 중생들의 몸에는 거칠음이 스며들었고, 용모의 다름이 드러났다.
Ekidaṃ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ṃ sattā dubbaṇṇā.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좋았고,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나빴다.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
거기서 용모가 좋은 그 중생들은 용모가 나쁜 중생들을 업신여겼다 —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우리는 저들보다 용모가 낫고, 저들은 우리보다 용모가 못하다’라고.
Tesaṃ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ṃ rasapathavī antaradhāyi.
용모에 대한 오만을 조건으로 자만과 오만의 성품을 지니게 된 그들에게서 맛의 땅이 사라졌다.
Rasāya pathaviyā antarahitāya sannipatiṃsu.
맛의 땅이 사라지자 그들은 한데 모였다.
Sannipatitvā anutthuniṃsu –
모여서 탄식했다 —
‘aho rasaṃ, aho rasa’nti!
‘아, 그 맛이여! 아, 그 맛이여!’라고.
Tadetarahipi manussā kañcideva surasaṃ labhitvā evamāhaṃsu –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무엇이든 맛있는 것을 얻으면 이렇게 말한다 —
‘aho rasaṃ, aho rasa’nti!
‘아, 그 맛이여! 아, 그 맛이여!’라고.
Tadeva porāṇaṃ aggaññaṃ akkharaṃ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ṃ ājānanti.
그들은 그 옛 태초의 말을 그대로 따라 외울 뿐, 그 뜻은 알지 못한다.
땅버섯의 출현Bhūmipappaṭakapātubhāvo
123
와셋타여, 맛 나는 땅이 사라지자 땅버섯이 나타났다. 우산버섯이 돋듯이 나타났다. 빛깔도 향기도 맛도 갖추고 있었다. 빛깔은 잘 만든 버터나 생버터와 같았고, 맛은 티 없는 꿀처럼 달았다. 중생들은 땅버섯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살아가며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오래 먹을수록 중생들의 몸은 더욱 거칠고 단단해졌다. 얼굴빛에도 좋고 나쁨이 드러났다. 어떤 이들은 얼굴빛이 고왔고, 어떤 이들은 나빴다. 얼굴빛이 고운 이들은 나쁜 이들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우리가 저들보다 얼굴빛이 더 곱다. 저들은 우리보다 더 나쁘다.” 얼굴빛을 내세워 교만하고 잘난 체하자, 그들에게서 땅버섯이 사라졌다.
‘‘Atha kho tesaṃ, vāseṭṭha, sattānaṃ rasāya pathaviyā antarahitāya bhūmipappaṭako pāturahosi.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에게 맛의 땅이 사라지자 땅버섯이 나타났다.
Seyyathāpi nāma ahicchattako, evameva pāturahosi.
마치 버섯과 같이, 꼭 그와 같이 나타났다.
So ahosi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eyyathāpi nāma sampannaṃ vā sappi sampannaṃ vā navanītaṃ evaṃvaṇṇo ahosi.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추었으니, 마치 잘 여문 버터기름이나 잘 여문 생버터와 같은, 그런 빛깔이었다.
Seyyathāpi nāma khuddamadhuṃ aneḷakaṃ, evamassādo ahosi.
마치 잡것이 섞이지 않은 작은 벌의 꿀과 같이, 그런 맛이었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bhūmipappaṭakaṃ upakkamiṃsu paribhuñjituṃ.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땅버섯을 먹기 시작했다.
Te t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그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다.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bhūmipappaṭak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tathā tathā tesaṃ sattānaṃ bhiyyoso 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ṃ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땅버섯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낼수록, 그만큼 그 중생들의 몸에는 거칠음이 더욱 심하게 스며들었고, 용모의 다름이 드러났다.
Ekidaṃ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ṃ sattā dubbaṇṇā.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좋았고,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나빴다.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
거기서 용모가 좋은 그 중생들은 용모가 나쁜 중생들을 업신여겼다 —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우리는 저들보다 용모가 낫고, 저들은 우리보다 용모가 못하다’라고.
Tesaṃ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ṃ bhūmipappaṭako antaradhāyi.
용모에 대한 오만을 조건으로 자만과 오만의 성품을 지니게 된 그들에게서 땅버섯이 사라졌다.
덩굴의 출현Padālatāpātubhāvo
124
땅버섯이 사라지자 덩굴풀이 나타났다. 죽순이 돋듯이 나타났다. 빛깔도 향기도 맛도 갖추고 있었다. 빛깔은 잘 만든 버터나 생버터와 같았고, 맛은 티 없는 꿀처럼 달았다. 와셋타여, 중생들은 덩굴풀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살아가며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오래 먹을수록 중생들의 몸은 더욱 거칠고 단단해졌다. 얼굴빛에도 좋고 나쁨이 드러났다. 어떤 이들은 얼굴빛이 고왔고, 어떤 이들은 나빴다. 얼굴빛이 고운 이들은 나쁜 이들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우리가 저들보다 얼굴빛이 더 곱다. 저들은 우리보다 더 나쁘다.” 얼굴빛을 내세워 교만하고 잘난 체하자, 그들에게서 덩굴풀이 사라졌다. 그들은 모여들어 탄식했다. “아, 우리에게 있었는데! 우리에게서 덩굴풀이 사라져 버렸구나!”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이렇게 말한다. “아, 우리에게 있었는데! 우리에게서 사라져 버렸구나!” 아주 오래된 태초의 말을 따라 하면서도, 그 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Bhūmipappaṭake antarahite padālatā pāturahosi, seyyathāpi nāma kalambukā, evameva pāturahosi.
“땅버섯이 사라지자 덩굴이 나타났으니, 마치 메꽃 덩굴과 같이, 꼭 그와 같이 나타났다.
Sā ahosi vaṇṇasampannā gandhasampannā rasasampannā, seyyathāpi nāma sampannaṃ vā sappi sampannaṃ vā navanītaṃ evaṃvaṇṇā ahosi.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추었으니, 마치 잘 여문 버터기름이나 잘 여문 생버터와 같은, 그런 빛깔이었다.
Seyyathāpi nāma khuddamadhuṃ aneḷakaṃ, evamassādā ahosi.
마치 잡것이 섞이지 않은 작은 벌의 꿀과 같이, 그런 맛이었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padālataṃ upakkamiṃsu paribhuñjituṃ.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덩굴을 먹기 시작했다.
Te t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그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다.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padālat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tathā tathā tesaṃ sattānaṃ bhiyyoso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ṃ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덩굴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낼수록, 그만큼 그 중생들의 몸에는 거칠음이 더욱 심하게 스며들었고, 용모의 다름이 드러났다.
Ekidaṃ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ṃ sattā dubbaṇṇā.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좋았고, 어떤 중생들은 용모가 나빴다.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
거기서 용모가 좋은 그 중생들은 용모가 나쁜 중생들을 업신여겼다 —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우리는 저들보다 용모가 낫고, 저들은 우리보다 용모가 못하다’라고.
Tesaṃ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ṃ padālatā antaradhāyi.
용모에 대한 오만을 조건으로 자만과 오만의 성품을 지니게 된 그들에게서 덩굴이 사라졌다.
‘‘Padālatāya antarahitāya sannipatiṃsu.
“덩굴이 사라지자 그들은 한데 모였다.
Sannipatitvā anutthuniṃsu –
모여서 탄식했다 —
‘ahu vata no, ahāyi vata no padālatā’ti!
‘아, 우리에게 있었는데! 아, 우리에게서 덩굴이 없어졌구나!’라고.
Tadetarahipi manussā kenaci dukkhadhammena phuṭṭhā evamāhaṃsu –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무슨 괴로운 일에 닿으면 이렇게 말한다 —
‘ahu vata no, ahāyi vata no’ti!
‘아, 우리에게 있었는데! 아, 우리에게서 없어졌구나!’라고.
Tadeva porāṇaṃ aggaññaṃ akkharaṃ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ṃ ājānanti.
그들은 그 옛 태초의 말을 그대로 따라 외울 뿐, 그 뜻은 알지 못한다.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의 출현Akaṭṭhapākasālipātubhāvo
125
와셋타여, 덩굴풀이 사라지자 가꾸지 않아도 익는 벼가 나타났다. 겨도 껍질도 없이 깨끗하고 향기로운 벼였다. 알맹이가 그대로 쌀이었다. 저녁밥으로 저녁에 베어 가면 아침에 다시 자라 익어 있었다. 아침밥으로 아침에 베어 가도 저녁이면 다시 익어 있었다. 베어 낸 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와셋타여, 중생들은 이 벼를 먹으며 그것으로 살아갔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Atha kho tesaṃ, vāseṭṭha, sattānaṃ padālatāya antarahitāya akaṭṭhapāko sāli pāturahosi akaṇo athuso suddho sugandho taṇḍulapphalo.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에게 덩굴이 사라지자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이 나타났으니, 겨가 없고 껍질이 없고 깨끗하고 향기롭고 알곡이 여문 것이었다.
Yaṃ taṃ sāyaṃ sāyamāsāya āharanti, pāto taṃ hoti pakkaṃ paṭivirūḷhaṃ.
저녁에 저녁밥으로 거두어 오면, 아침에 그것은 익어서 다시 자라 있었다.
Yaṃ taṃ pāto pātarāsāya āharanti, sāyaṃ taṃ hoti pakkaṃ paṭivirūḷhaṃ;
아침에 아침밥으로 거두어 오면, 저녁에 그것은 익어서 다시 자라 있었다;
nāpadānaṃ paññāyati.
베어 낸 자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akaṭṭhapākaṃ sāl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다.
여자와 남자의 표징의 출현Itthipurisaliṅgapātubhāvo
126
와셋타여, 오래 먹을수록 중생들의 몸은 더욱 거칠고 단단해졌다. 얼굴빛에도 좋고 나쁨이 드러났다. 여자에게는 여성의 모습이, 남자에게는 남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자는 남자를 지나치게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남자도 여자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서로 그렇게 바라보던 그들에게 애욕이 일어났다. 몸에는 열기가 퍼졌다. 그 열기 때문에 그들은 성교를 했다. 와셋타여, 이를 본 중생들은 흙을 던지고, 재를 던지고, 쇠똥을 던졌다. 그러면서 외쳤다. “더러운 것은 사라져라! 더러운 것은 사라져라!” “어찌 한 중생이 다른 중생에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오늘날에도 어떤 지방에서는 신부를 데려갈 때 흙을 던지고, 재를 던지고, 쇠똥을 던진다. 아주 오래된 태초의 풍습을 따라 하면서도, 그 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불확실]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akaṭṭhapākaṃ sāl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ṃsu, tathā tathā tesaṃ sattānaṃ bhiyyoso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ṃ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itthiyā ca itthiliṅgaṃ pāturahosi purisassa ca purisaliṅgaṃ.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낼수록, 그만큼 그 중생들의 몸에는 거칠음이 더욱 심하게 스며들었고, 용모의 다름이 드러났으며, 여자에게는 여자의 표징이, 남자에게는 남자의 표징이 나타났다.
Itthī ca purisaṃ ativelaṃ upanijjhāyati puriso ca itthiṃ.
여자는 남자를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았고, 남자는 여자를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았다.
Tesaṃ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taṃ sārāgo udapādi, pariḷāho kāyasmiṃ okkami.
서로를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는 그들에게 애욕이 일어났고, 몸에 애욕의 불길이 스며들었다.
Te pariḷāhapaccayā methunaṃ dhammaṃ paṭiseviṃsu.
그들은 그 불길을 조건으로 성행위의 법을 행하였다.
‘‘Ye kho pana te, vāseṭṭha, tena samayena sattā passanti methunaṃ dhammaṃ paṭisevante, aññe paṃsuṃ khipanti, aññe seṭṭhiṃ khipanti, aññe gomayaṃ khipanti –
“그런데 와셋타여, 그때 성행위의 법을 행하는 이들을 본 중생들은, 어떤 이들은 흙을 던지고, 어떤 이들은 재를 던지고, 어떤 이들은 소똥을 던졌다[불확실]
불확실 —
‘nassa asuci, nassa asucī’ti.
‘부정한 것은 사라져라, 부정한 것은 사라져라!’라고.
‘Kathañhi nāma satto sattassa evarūpaṃ karissatī’ti!
‘어떻게 중생이 중생에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라고.
Tadetarahipi manussā ekaccesu janapadesu vadhuyā nibbuyhamānāya aññe paṃsuṃ khipanti, aññe seṭṭhiṃ khipanti, aññe gomayaṃ khipanti.
오늘날에도 어떤 지방에서는 신부를 데려갈 때 사람들이, 어떤 이들은 흙을 던지고, 어떤 이들은 재를 던지고, 어떤 이들은 소똥을 던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deva porāṇaṃ aggaññaṃ akkharaṃ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ṃ ājānanti.
그들은 그 옛 태초의 말을 그대로 따라 외울 뿐, 그 뜻은 알지 못한다.
성행위의 법의 자행Methunadhammasamācāro
127
와셋타여, 그때 옳지 못하다고 여기던 일을 오늘날에는 옳다고 여긴다. 그때 성교를 한 중생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와셋타여, 중생들은 그 옳지 못한 일에 지나치게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 일을 가리려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Adhammasammataṃ kho pana, vāseṭṭha, tena samayena hoti, tadetarahi dhammasammataṃ.
“그런데 와셋타여, 그때에는 법답지 않다고 여겨진 것이, 오늘날에는 법답다고 여겨진다.
Ye kho pana, vāseṭṭha, tena samayena sattā methunaṃ dhammaṃ paṭisevanti, te māsampi dvemāsampi na labhanti gāmaṃ vā nigamaṃ vā pavisituṃ.
와셋타여, 그때 성행위의 법을 행하는 중생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가지 못했다.
Yato kho te, vāseṭṭha, sattā tasmiṃ asaddhamme ativelaṃ pātabyataṃ āpajjiṃsu.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그 나쁜 법에 지나치게 빠져들자,
Atha agārāni upakkamiṃsu kātuṃ tasseva asaddhammassa paṭicchādanatthaṃ.
그러자 그들은 바로 그 나쁜 법을 감추기 위하여 집을 짓기 시작했다.
와셋타여, 그때 게으른 성품의 한 중생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보게,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가! 저녁밥을 위해 저녁에, 아침밥을 위해 아침에 벼를 가져오고 있으니. 차라리 저녁과 아침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오면 어떨까!” 그는 정말로 두 끼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다. 와셋타여, 그러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보게, 벼를 가지러 가세.” “되었네, 이 사람아. 나는 저녁과 아침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네.” 그 말을 들은 중생은 그의 방식을 따라 이틀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다. “이렇게 해도 좋겠구나, 과연.”[불확실]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assa sattassa alasajātikassa etadahosi –
그리고 와셋타여, 게으른 성품을 지닌 어떤 중생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ambho, kimevāhaṃ vihaññāmi sāliṃ āharanto sāyaṃ sāyamāsāya pāto pātarāsāya!
‘아, 나는 어찌하여 저녁에 저녁밥으로, 아침에 아침밥으로 쌀을 거두어 오느라 이렇게 시달리는가!
Yaṃnūnāhaṃ sāliṃ āhareyyaṃ sakiṃdeva sāyapātarāsāyā’ti!
차라리 내가 저녁밥과 아침밥을 위해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오면 어떨까!’라고.
‘‘Atha kho so, vāseṭṭha, satto sāliṃ āhāsi sakiṃdeva sāyapātarāsāya.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저녁밥과 아침밥을 위해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다.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yena so satto tenupasaṅkami;
그리고 와셋타여, 어떤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aṃ sattaṃ etadavoca –
다가가서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
‘ehi, bho satta, sālāhāraṃ gamissāmā’ti.
‘오시오, 벗이여 중생이여, 쌀을 거두러 갑시다.’
‘Alaṃ, bho satta, āhato me sāli sakiṃdeva sāyapātarāsāyā’ti.
‘됐소, 벗이여 중생이여. 나는 저녁밥과 아침밥을 위해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소.’
Atha kho so, vāseṭṭha, satto tassa sattassa diṭṭhānugatiṃ āpajjamāno sāliṃ āhāsi sakiṃdeva dvīhāya.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이 한 것을 보고 따라 하며 이틀치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다.
‘Evampi kira, bho, sādhū’ti.
‘벗이여, 이렇게 하는 것도 참으로 좋구려.’
와셋타여, 이번에는 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보게, 벼를 가지러 가세.” “되었네, 이 사람아. 나는 이틀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네.” 그 중생도 그의 방식을 따라 나흘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다. “이렇게 해도 좋겠구나, 과연.”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yena so satto tenupasaṅkami;
“그리고 와셋타여, 어떤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aṃ sattaṃ etadavoca –
다가가서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
‘ehi, bho satta, sālāhāraṃ gamissāmā’ti.
‘오시오, 벗이여 중생이여, 쌀을 거두러 갑시다.’
‘Alaṃ, bho satta, āhato me sāli sakiṃdeva dvīhāyā’ti.
‘됐소, 벗이여 중생이여. 나는 이틀치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소.’
Atha kho so, vāseṭṭha, satto tassa sattassa diṭṭhānugatiṃ āpajjamāno sāliṃ āhāsi sakiṃdeva catūhāya, ‘evampi kira, bho, sādhū’ti.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이 한 것을 보고 따라 하며 나흘치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다. ‘벗이여, 이렇게 하는 것도 참으로 좋구려.’
와셋타여, 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보게, 벼를 가지러 가세.” “되었네, 이 사람아. 나는 나흘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네.” 그 중생도 그의 방식을 따라 여드레 몫의 벼를 한 번에 가져왔다. “이렇게 해도 좋겠구나, 과연.” 와셋타여, 중생들은 이렇게 벼를 쌓아 두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겨가 쌀알을 감쌌고 껍질도 쌀알을 감쌌다. 베어 낸 벼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베어 낸 자리가 눈에 띄었고, 벼는 무더기무더기로 서 있게 되었다.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yena so satto tenupasaṅkami;
“그리고 와셋타여, 어떤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taṃ sattaṃ etadavoca –
다가가서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
‘ehi, bho satta, sālāhāraṃ gamissāmā’ti.
‘오시오, 벗이여 중생이여, 쌀을 거두러 갑시다.’
‘Alaṃ, bho satta, āhato me sāli sakideva catūhāyā’ti.
‘됐소, 벗이여 중생이여. 나는 나흘치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소.’
Atha kho so, vāseṭṭha, satto tassa sattassa diṭṭhānugatiṃ āpajjamāno sāliṃ āhāsi sakideva aṭṭhāhāya, ‘evampi kira, bho, sādhū’ti.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이 한 것을 보고 따라 하며 여드레치 쌀을 한 번에 거두어 왔다. ‘벗이여, 이렇게 하는 것도 참으로 좋구려.’
‘‘Yato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annidhikārakaṃ sāliṃ upakkamiṃsu paribhuñjituṃ.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쌀을 쌓아 두고서 먹기 시작하자,
Atha kaṇopi taṇḍulaṃ pariyonandhi, thusopi taṇḍulaṃ pariyonandhi;
그러자 겨도 쌀알을 감쌌고, 껍질도 쌀알을 감쌌다;
lūnampi nappaṭivirūḷhaṃ, apadānaṃ paññāyittha, saṇḍasaṇḍā sālayo aṭṭhaṃsu.
베어도 다시 자라지 않았고, 베어 낸 자리가 드러났으며, 쌀은 무더기 무더기로 서 있었다.
쌀의 분배Sālivibhāgo
128
와셋타여, 중생들은 모여서 탄식했다. “여러분, 나쁜 것들이 중생들 사이에 나타났구나. 우리는 예전에 마음으로 이루어져 기쁨을 음식 삼았고, 스스로 빛을 내며 허공을 다녔다. 아름답게 머물면서 아주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다 긴 세월이 지나 맛 나는 땅이 물 위에 퍼져 나타났다. 빛깔도 향기도 맛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그 땅을 손으로 떠서 덩이를 지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의 스스로 나는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달과 해가 나타났다. 달과 해가 나타나자 별자리와 뭇별이 나타났다. 그러자 밤과 낮이 갈렸고, 한 달과 반 달이 갈렸다. 이어서 계절과 해도 갈렸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annipatiṃsu, sannipatitvā anutthuniṃsu –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한데 모였고, 모여서 탄식했다 —
‘pāpakā vata, bho, dhammā sattesu pātubhūtā.
‘벗들이여, 참으로 나쁜 법들이 중생들 가운데 나타났구려.
Mayañhi pubbe manomayā ahumh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mhā.
우리는 전에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였고, 희열을 먹이로 삼았고, 스스로 빛났고, 허공을 다녔고, 아름다움에 머물면서 오랜 긴 세월을 지냈소.
Tesaṃ no amhākaṃ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rasapathavī udakasmiṃ samatani.
그런 우리에게 어느 때 어느 즈음, 긴 세월이 지난 뒤에 맛의 땅이 물 위에 퍼졌소.
Sā ahosi vaṇṇasampannā gandhasampannā rasasampannā.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추었소.
Te mayaṃ rasapathaviṃ hatthehi āluppakārakaṃ upakkamimha paribhuñjituṃ, tesaṃ no rasapathaviṃ hatthehi āluppakārakaṃ upakkamataṃ paribhuñjituṃ sayaṃpabhā antaradhāyi.
우리는 그 맛의 땅을 손으로 덩어리 지어 떼어 내며 먹기 시작했고, 맛의 땅을 손으로 덩어리 지어 떼어 내며 먹기 시작한 우리에게서 스스로 내던 빛이 사라졌소.
Sayaṃpabhāya antarahitāya candimasūriyā pāturahesuṃ, candimasūriyesu pātubhūtesu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pāturahesuṃ, nakkhattesu tārakarūpesu pātubhūtesu rattindivā paññāyiṃsu, rattindivesu paññāyamānesu māsaḍḍhamāsā paññāyiṃsu.
스스로 내던 빛이 사라지자 달과 해가 나타났고, 달과 해가 나타나자 별자리와 별들이 나타났고, 별자리와 별들이 나타나자 밤과 낮이 드러났고, 밤과 낮이 드러나자 달과 반달이 드러났소.
Māsaḍḍhamāsesu paññāyamānesu utusaṃvaccharā paññāyiṃsu.
달과 반달이 드러나자 계절과 해가 드러났소.
우리는 맛 나는 땅을 먹으며 그것으로 살아갔고,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우리에게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나타나자 맛 나는 땅이 사라졌다. 그러자 땅버섯이 나타났다. 빛깔도 향기도 맛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땅버섯을 먹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살아가며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또 나타나자 땅버섯이 사라졌다. 그러자 덩굴풀이 나타났다. 이것도 빛깔도 향기도 맛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덩굴풀을 먹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살아가며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또 나타나자 덩굴풀이 사라졌다.
Te mayaṃ rasapathav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mhā.
우리는 맛의 땅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소.
Tesaṃ no pāpakānaṃyeva akusalānaṃ dhammānaṃ pātubhāvā rasapathavī antaradhāyi.
그런 우리에게 오직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맛의 땅이 사라졌소.
Rasapathaviyā antarahitāya bhūmipappaṭako pāturahosi.
맛의 땅이 사라지자 땅버섯이 나타났소.
So ahosi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추었소.
Te mayaṃ bhūmipappaṭakaṃ upakkamimha paribhuñjituṃ.
우리는 땅버섯을 먹기 시작했소.
Te mayaṃ t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mhā.
우리는 그것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소.
Tesaṃ no pāpakānaṃyeva akusalānaṃ dhammānaṃ pātubhāvā bhūmipappaṭako antaradhāyi.
그런 우리에게 오직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땅버섯이 사라졌소.
Bhūmipappaṭake antarahite padālatā pāturahosi.
땅버섯이 사라지자 덩굴이 나타났소.
Sā ahosi vaṇṇasampannā gandhasampannā rasasampannā.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추었소.
Te mayaṃ padālataṃ upakkamimha paribhuñjituṃ.
우리는 덩굴을 먹기 시작했소.
Te mayaṃ ta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mhā.
우리는 그것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소.
Tesaṃ no pāpakānaṃyeva akusalānaṃ dhammānaṃ pātubhāvā padālatā antaradhāyi.
그런 우리에게 오직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덩굴이 사라졌소.
그러자 가꾸지 않아도 익는 벼가 나타났다. 겨도 껍질도 없이 깨끗하고 향기로운 벼였다. 알맹이가 그대로 쌀이었다. 저녁밥으로 저녁에 베어 오면 아침에 다시 자라 익어 있었다. 아침밥으로 아침에 베어 와도 저녁이면 다시 익어 있었다. 베어 낸 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이 벼를 먹으며 그것으로 살아갔고,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나쁘고 해로운 것들이 나타나자, 겨가 쌀알을 감싸고 껍질도 쌀알을 감쌌다. 베어 낸 벼는 다시 자라지 않았고, 베어 낸 자리가 눈에 띄었으며, 벼는 무더기무더기로 서 있게 되었다. 자, 우리가 벼를 나누고 경계를 세우자!” 와셋타여, 그리하여 중생들은 벼를 나누고 경계를 세웠다.
Padālatāya antarahitāya akaṭṭhapāko sāli pāturahosi akaṇo athuso suddho sugandho taṇḍulapphalo.
덩굴이 사라지자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이 나타났으니, 겨가 없고 껍질이 없고 깨끗하고 향기롭고 알곡이 여문 것이었소.
Yaṃ taṃ sāyaṃ sāyamāsāya āharāma, pāto taṃ hoti pakkaṃ paṭivirūḷhaṃ.
저녁에 저녁밥으로 거두어 오면, 아침에 그것은 익어서 다시 자라 있었소.
Yaṃ taṃ pāto pātarāsāya āharāma, sāyaṃ taṃ hoti pakkaṃ paṭivirūḷhaṃ.
아침에 아침밥으로 거두어 오면, 저녁에 그것은 익어서 다시 자라 있었소.
Nāpadānaṃ paññāyittha.
베어 낸 자리가 드러나지 않았소.
Te mayaṃ akaṭṭhapākaṃ sāliṃ paribhuñjantā taṃbhakkhā tadāhārā ciraṃ dīghamaddhānaṃ aṭṭhamhā.
우리는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먹으면서 그것을 먹이로 삼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긴 세월을 지냈소.
Tesaṃ no pāpakānaṃyeva akusalānaṃ dhammānaṃ pātubhāvā kaṇopi taṇḍulaṃ pariyonandhi, thusopi taṇḍulaṃ pariyonandhi, lūnampi nappaṭivirūḷhaṃ, apadānaṃ paññāyittha, saṇḍasaṇḍā sālayo ṭhitā.
그런 우리에게 오직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겨도 쌀알을 감쌌고, 껍질도 쌀알을 감쌌고, 베어도 다시 자라지 않았고, 베어 낸 자리가 드러났으며, 쌀은 무더기 무더기로 서 있게 되었소.
Yaṃnūna mayaṃ sāliṃ vibhajeyyāma, mariyādaṃ ṭhapeyyāmā’ti!
우리가 쌀을 나누고 경계를 정하면 어떻겠소!’라고.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āliṃ vibhajiṃsu, mariyādaṃ ṭhapesuṃ.
그리고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쌀을 나누었고 경계를 정했다.
129
와셋타여, 그때 욕심 많은 한 중생이 있었다. 그는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은 주지도 않았는데 가져다 먹었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나쁜 짓을 하고 있네.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도 않았는데 가져다 먹다니. 이보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게.” 그는 “알겠소, 여러분”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두 번째에도 같은 짓을 했고, 사람들은 같은 말로 타일렀다. 와셋타여, 세 번째에도 그는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도 않았는데 가져다 먹었다.[불확실]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lolajātiko sakaṃ bhāgaṃ parirakkhanto aññataraṃ bhāgaṃ adinnaṃ ādiyitvā paribhuñji.
“그리고 와셋타여, 탐욕스러운 성품을 지닌 어떤 중생이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었다.
Tamenaṃ aggahesuṃ, gahetvā etadavocuṃ –
그들은 그를 붙잡았고, 붙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
‘pāpakaṃ vata, bho satta, karosi, yatra hi nāma sakaṃ bhāgaṃ parirakkhanto aññataraṃ bhāgaṃ adinnaṃ ādiyitvā paribhuñjasi.
‘벗이여 중생이여, 그대는 참으로 나쁜 짓을 하는구려.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다니.
Māssu, bho satta, punapi evarūpamakāsī’ti.
벗이여 중생이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Evaṃ, bho’ti kho, vāseṭṭha, so satto tesaṃ sattānaṃ paccassosi.
‘그러겠소, 벗이여’ 하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들에게 대답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utiyampi kho, vāseṭṭha, so satto…pe… tatiyampi kho, vāseṭṭha, so satto sakaṃ bhāgaṃ parirakkhanto aññataraṃ bhāgaṃ adinnaṃ ādiyitvā paribhuñji.
와셋타여, 두 번째로도 그 중생은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었다. 그들은 그를 붙잡았고, 붙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 ‘벗이여 중생이여, 그대는 참으로 나쁜 짓을 하는구려.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다니. 벗이여 중생이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그러겠소, 벗이여’ 하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들에게 대답했다. 와셋타여, 세 번째로도 그 중생은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29.1 ~ PN:dn27/129.5에서 되살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나쁜 짓을 하고 있네.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도 않았는데 가져다 먹다니. 이보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게.” 그러고는 어떤 이들은 손으로 때렸고, 어떤 이들은 흙덩이로 때렸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로 때렸다. 와셋타여, 그때부터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일이 생겼다. 꾸짖음이 생겼고, 거짓말이 생겼고, 몽둥이를 드는 일이 생겼다.
Tamenaṃ aggahesuṃ, gahetvā etadavocuṃ –
그들은 그를 붙잡았고, 붙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
‘pāpakaṃ vata, bho satta, karosi, yatra hi nāma sakaṃ bhāgaṃ parirakkhanto aññataraṃ bhāgaṃ adinnaṃ ādiyitvā paribhuñjasi.
‘벗이여 중생이여, 그대는 참으로 나쁜 짓을 하는구려. 제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것을 가져다 먹다니.
Māssu, bho satta, punapi evarūpamakāsī’ti.
벗이여 중생이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Aññe pāṇinā pahariṃsu, aññe leḍḍunā pahariṃsu, aññe daṇḍena pahariṃsu.
어떤 이들은 손으로 때렸고, 어떤 이들은 흙덩이로 때렸고, 어떤 이들은 몽둥이로 때렸다.
Tadagge kho, vāseṭṭha, adinnādānaṃ paññāyati, garahā paññāyati, musāvādo paññāyati, daṇḍādānaṃ paññāyati.
와셋타여, 그때부터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이 드러났고, 비난이 드러났고, 거짓말이 드러났고, 몽둥이를 드는 일이 드러났다.
마하삼마따 왕Mahāsammatarājā
130
바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이 한곳에 모여 탄식하였다. ‘아, 중생들 사이에 나쁜 것들이 나타났구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비난과 거짓말, 게다가 매를 드는 일까지 드러나다니. 우리가 한 사람을 뽑아 세우면 어떨까. 그가 꾸짖을 만한 이는 바르게 꾸짖고, 비난할 만한 이는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이는 바르게 내쫓게 하자. 그 대신 우리는 그에게 벼의 몫을 나누어 주자.’[불확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annipatiṃsu, sannipatitvā anutthuniṃsu –
“그때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모였고, 모여서 탄식했다 —
‘pāpakā vata bho dhammā sattesu pātubhūtā, yatra hi nāma adinnādānaṃ paññāyissati, garahā paññāyissati, musāvādo paññāyissati, daṇḍādānaṃ paññāyissati.
‘여보시오, 참으로 나쁜 법들이 중생들 사이에 나타났습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알려지고, 비난이 알려지고, 거짓말이 알려지고, 몽둥이를 드는 일이 알려질 것입니다.
Yaṃnūna mayaṃ ekaṃ sattaṃ sammanneyyāma, yo no sammā khīyitabbaṃ khīyeyya, sammā garahitabbaṃ garaheyya, sammā pabbājetabbaṃ pabbājeyya.
우리가 한 중생을 뽑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해 나무랄 만한 자를 바르게 나무라고, 비난할 만한 자를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자를 바르게 내쫓도록 말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ayaṃ panassa sālīnaṃ bhāgaṃ anuppadassāmā’ti.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쌀의 몫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하고.
바셋타여, 그리하여 그 중생들은 자기들 가운데 가장 잘생기고 보기 좋고 단정하고 위엄 있는 이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와 주십시오, 그대여. 꾸짖을 만한 이는 바르게 꾸짖어 주십시오. 비난할 만한 이는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이는 바르게 내쫓아 주십시오. 그 대신 우리가 그대에게 벼의 몫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바셋타여, 그 중생은 ‘좋습니다, 여러분’ 하고 응낙하였다. 그러고는 꾸짖을 만한 이를 바르게 꾸짖고, 비난할 만한 이를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이를 바르게 내쫓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불확실]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yo nesaṃ satto abhirūpataro ca dassanīyataro ca pāsādikataro ca mahesakkhataro ca taṃ sattaṃ upasaṅkamitvā etadavocuṃ –
“그때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자기들 가운데 더 잘생기고 더 보기 좋고 더 마음에 들고 더 위엄 있는 중생, 그 중생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
‘ehi, bho satta, sammā khīyitabbaṃ khīya, sammā garahitabbaṃ garaha, sammā pabbājetabbaṃ pabbājehi.
‘오시오, 여보시오 중생이여. 나무랄 만한 자를 바르게 나무라고, 비난할 만한 자를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자를 바르게 내쫓으십시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ayaṃ pana te sālīnaṃ bhāgaṃ anuppadassāmā’ti.
그러면 우리는 그대에게 쌀의 몫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하고.
‘Evaṃ, bho’ti kho, vāseṭṭha, so satto tesaṃ sattānaṃ paṭissuṇitvā sammā khīyitabbaṃ khīyi, sammā garahitabbaṃ garahi, sammā pabbājetabbaṃ pabbājesi.
‘그러겠습니다, 여러분’ 하고 와셋타여, 그 중생은 그 중생들에게 대답하고서, 나무랄 만한 자를 바르게 나무라고, 비난할 만한 자를 바르게 비난하고, 내쫓을 만한 자를 바르게 내쫓았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e panassa sālīnaṃ bhāgaṃ anuppadaṃsu.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쌀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131
바셋타여, 대중이 뽑은 이라는 뜻에서 ‘마하삼마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첫째 이름이다. 논밭의 주인이라는 뜻에서는 ‘크샤트리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둘째 이름이다. 법으로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한다는 뜻에서는 ‘라자’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셋째 이름이다. 바셋타여, 이렇게 크샤트리아 집단은 옛날의 으뜸가는 이름에서 생겨났다.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지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서로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법에 따라서였지 법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불확실]
‘‘Mahājanasammatoti kho, vāseṭṭha, ‘mahāsammato, mahāsammato’ tveva paṭham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큰 무리가 뽑았다’ 해서 와셋타여, ‘마하삼마따, 마하삼마따’라는 첫째 낱말이 생겨났다.
Khettānaṃ adhipatīti kho, vāseṭṭha, ‘khattiyo, khattiyo’ tveva dutiy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밭들의 주인이다’ 해서 와셋타여, ‘캇띠야, 캇띠야’라는 둘째 낱말이 생겨났다.
Dhammena pare rañjetīti kho, vāseṭṭha, ‘rājā, rājā’ tveva tatiy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법으로 남들을 기쁘게 한다’ 해서 와셋타여, ‘라자, 라자’라는 셋째 낱말이 생겨났다.
Iti kho, vāseṭṭha, evametassa khattiyamaṇḍalassa porāṇena aggaññena akkharena abhinibbatti ahosi tesaṃyeva sattānaṃ, anaññesaṃ.
이와 같이 와셋타여, 이 캇띠야 무리의 생겨남은 옛적의 근원적인 낱말로 이루어졌으니,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고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disānaṃyeva, no asadisānaṃ.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Dhammeneva, no adhammena.
법에 따라서였지,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바라문의 무리Brāhmaṇamaṇḍalaṃ
132
바셋타여, 그러자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몇몇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중생들 사이에 나쁜 것들이 나타났구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과 비난과 거짓말, 매를 드는 일, 내쫓는 일까지 드러나다니. 우리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털어 내면 어떨까.’ 그들은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털어 냈다. 바셋타여, 나쁘고 해로운 것들을 털어 낸다는 뜻에서 ‘바라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첫째 이름이다.[불확실]
‘‘Atha kho tesaṃ, vāseṭṭha, sattānaṃyeva ekaccānaṃ etadahosi –
“그때 와셋타여,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pāpakā vata, bho, dhammā sattesu pātubhūtā, yatra hi nāma adinnādānaṃ paññāyissati, garahā paññāyissati, musāvādo paññāyissati, daṇḍādānaṃ paññāyissati, pabbājanaṃ paññāyissati.
‘여보시오, 참으로 나쁜 법들이 중생들 사이에 나타났습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알려지고, 비난이 알려지고, 거짓말이 알려지고, 몽둥이를 드는 일이 알려지고, 내쫓는 일이 알려질 것입니다.
Yaṃnūna mayaṃ pāpake akusale dhamme vāheyyāmā’ti.
우리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몰아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Te pāpake akusale dhamme vāhesuṃ.
그들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몰아냈다.
Pāpake akusale dhamme vāhentīti kho, vāseṭṭha, ‘brāhmaṇā, brāhmaṇā’ tveva paṭham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몰아낸다’ 해서 와셋타여,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첫째 낱말이 생겨났다.
그들은 숲속 외딴곳에 잎으로 오두막을 짓고 그 안에서 선정을 닦았다. 숯불도 피우지 않고 연기도 내지 않았으며 절굿공이도 내려놓은 채였다. 저녁밥과 아침밥 때가 되면 마을과 읍과 도성으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했다. 먹을 것을 얻으면 다시 숲속 외딴곳의 오두막으로 돌아가 선정을 닦았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중생들은 숲속 외딴곳에 잎으로 오두막을 짓고 그 안에서 선정을 닦습니다. 숯불도 연기도 없이 절굿공이도 내려놓은 채, 저녁밥과 아침밥 때가 되면 마을과 읍과 도성으로 내려와 먹을 것을 구합니다. 먹을 것을 얻으면 다시 숲속 외딴곳의 오두막으로 돌아가 선정을 닦습니다.’ 바셋타여, 선정을 닦는다는 뜻에서 ‘자야까’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둘째 이름이다.
Te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iyo karitvā paṇṇakuṭīsu jhāyanti vītaṅgārā vītadhūmā pannamusalā sāyaṃ sāyamāsāya pāto pātarāsāya gāmanigamarājadhāniyo osaranti ghāsamesamānā.
그들은 숲속에 나뭇잎 오두막을 짓고 나뭇잎 오두막에서 선정을 닦는다. 숯불도 없고 연기도 없고 절굿공이도 내려놓은 채, 저녁에는 저녁밥을 위해 아침에는 아침밥을 위해 마을과 성읍과 왕도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한다.
Te ghāsaṃ paṭilabhitvā punadeva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īsu jhāyanti.
그들은 먹을 것을 얻고 나서 다시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선정을 닦는다.
Tamenaṃ manussā disvā evamāhaṃsu –
그런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
‘ime kho, bho, sattā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iyo karitvā paṇṇakuṭīsu jhāyanti, vītaṅgārā vītadhūmā pannamusalā sāyaṃ sāyamāsāya pāto pātarāsāya gāmanigamarājadhāniyo osaranti ghāsamesamānā.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숲속에 나뭇잎 오두막을 짓고 나뭇잎 오두막에서 선정을 닦습니다. 숯불도 없고 연기도 없고 절굿공이도 내려놓은 채, 저녁에는 저녁밥을 위해 아침에는 아침밥을 위해 마을과 성읍과 왕도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합니다.
Te ghāsaṃ paṭilabhitvā punadeva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īsu jhāyantī’ti, jhāyantīti kho, vāseṭṭha, ‘jhāyakā, jhāyakā’ tveva dutiy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그들은 먹을 것을 얻고 나서 다시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선정을 닦습니다.’ 하고. ‘선정을 닦는다’ 해서 와셋타여, ‘자야까, 자야까’라는 둘째 낱말이 생겨났다.
바셋타여,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몇몇은 숲속 외딴곳의 오두막에서 선정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마을 가까이, 읍 가까이로 내려와 책을 지으며 지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중생들은 숲속 외딴곳의 오두막에서 선정을 이루지 못하고, 마을 가까이, 읍 가까이로 내려와 책을 지으며 지냅니다. 이제는 선정을 닦지 않는군요.’ 바셋타여, 이제는 선정을 닦지 않는다는 뜻에서 ‘앗자야까’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것이 셋째 이름이다. 그때에는 낮추어 보는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높이 받드는 이름이다. 바셋타여, 이렇게 바라문 집단은 옛날의 으뜸가는 이름에서 생겨났다.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지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고, 서로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또 법에 따라서였지 법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불확실]
Tesaṃyeva kho, vāseṭṭha, sattānaṃ ekacce sattā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īsu taṃ jhānaṃ anabhisambhuṇamānā gāmasāmantaṃ nigamasāmantaṃ osaritvā ganthe karontā acchanti.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와셋타여,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그 선정을 감당하지 못하여 마을 가까이로, 성읍 가까이로 내려가 책을 지으며 지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menaṃ manussā disvā evamāhaṃsu –
그런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
‘ime kho, bho, sattā araññāyatane paṇṇakuṭīsu taṃ jhānaṃ anabhisambhuṇamānā gāmasāmantaṃ nigamasāmantaṃ osaritvā ganthe karontā acchanti, na dānime jhāyantī’ti.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숲속의 나뭇잎 오두막에서 그 선정을 감당하지 못하여 마을 가까이로, 성읍 가까이로 내려가 책을 지으며 지냅니다. 이제 이들은 선정을 닦지 않습니다.’ 하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 dānime jhāyantīti kho, vāseṭṭha, ‘ajjhāyakā ajjhāyakā’ tveva tatiyaṃ akkharaṃ upanibbattaṃ.
‘이제 이들은 선정을 닦지 않는다’ 해서 와셋타여, ‘앗자야까, 앗자야까’라는 셋째 낱말이 생겨났다.
Hīnasammataṃ kho pana, vāseṭṭha, tena samayena hoti, tadetarahi seṭṭhasammataṃ.
그런데 와셋타여, 그때에는 그것이 낮게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높게 여겨진다.
Iti kho, vāseṭṭha, evametassa brāhmaṇamaṇḍalassa porāṇena aggaññena akkharena abhinibbatti ahosi tesaṃyeva sattānaṃ, anaññesaṃ sadisānaṃyeva no asadisānaṃ dhammeneva, no adhammena.
이와 같이 와셋타여, 이 바라문 무리의 생겨남은 옛적의 근원적인 낱말로 이루어졌으니,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고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으며,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고, 법에 따라서였지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웻사의 무리Vessamaṇḍalaṃ
133
바셋타여,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몇몇은 성교하는 법을 받아들여 여러 가지 생업에 종사하였다. 성교하는 법을 받아들여 여러 가지 생업에 종사한다는 뜻에서 ‘바이샤’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바셋타여, 이렇게 바이샤 집단은 옛날의 으뜸가는 이름에서 생겨났다.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지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고, 서로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또 법에 따라서였지 법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불확실]
‘‘Tesaṃyeva kho, vāseṭṭha, sattānaṃ ekacce sattā methunaṃ dhammaṃ samādāya visukammante payojesuṃ.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와셋타여, 성행위를 받아들여 갖가지 생업에 종사했다.
Methunaṃ dhammaṃ samādāya visukammante payojentīti kho, vāseṭṭha, ‘vessā, vessā’ tveva akkharaṃ upanibbattaṃ.
‘성행위를 받아들여 갖가지 생업에 종사한다’ 해서 와셋타여, ‘웻사, 웻사’라는 낱말이 생겨났다.
Iti kho, vāseṭṭha, evametassa vessamaṇḍalassa porāṇena aggaññena akkharena abhinibbatti ahosi tesaññeva sattānaṃ anaññesaṃ sadisānaṃyeva, no asadisānaṃ, dhammeneva no adhammena.
이와 같이 와셋타여, 이 웻사 무리의 생겨남은 옛적의 근원적인 낱말로 이루어졌으니,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고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으며,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고, 법에 따라서였지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숫다의 무리Suddamaṇḍalaṃ
134
바셋타여,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나머지는 거칠고 비천하게 살았다. 거칠고 비천하게 산다는 뜻에서 ‘수드라’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바셋타여, 이렇게 수드라 집단은 옛날의 으뜸가는 이름에서 생겨났다.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지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고, 서로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또 법에 따라서였지 법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불확실]
‘‘Tesaññeva kho, vāseṭṭha, sattānaṃ ye te sattā avasesā te luddācārā khuddācārā ahesuṃ.
“바로 그 중생들 가운데 남은 중생들, 그들은 와셋타여, 거친 일을 하고 자잘한 일을 하는 이들이 되었다.
Luddācārā khuddācārāti kho, vāseṭṭha, ‘suddā, suddā’ tveva akkharaṃ upanibbattaṃ.
‘거친 일을 하고 자잘한 일을 한다’ 해서 와셋타여, ‘숫다, 숫다’라는 낱말이 생겨났다.
Iti kho, vāseṭṭha, evametassa suddamaṇḍalassa porāṇena aggaññena akkharena abhinibbatti ahosi tesaṃyeva sattānaṃ anaññesaṃ, sadisānaṃyeva no asadisānaṃ, dhammeneva, no adhammena.
이와 같이 와셋타여, 이 숫다 무리의 생겨남은 옛적의 근원적인 낱말로 이루어졌으니,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고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으며,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고, 법에 따라서였지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135
바셋타여, 크샤트리아도 자기 본분을 비난하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서던 때가 있었다. ‘나는 사문이 되리라.’ 바라문도 그러했고 바이샤도 그러했다. 수드라도 자기 본분을 비난하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섰다. ‘나는 사문이 되리라.’ 바셋타여, 이 네 집단에서 사문 집단이 생겨났다.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지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고, 서로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다. 또 법에 따라서였지 법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불확실]
‘‘Ahu kho so, vāseṭṭha, samayo, yaṃ khattiyopi sakaṃ dhammaṃ garah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
“와셋타여, 캇띠야도 자기 법을 나무라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그런 때가 있었다 —
‘samaṇo bhavissāmī’ti.
‘나는 사문이 되겠다’ 하고.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pe… suddopi kho, vāseṭṭha, sakaṃ dhammaṃ garah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
바라문도 와셋타여, 자기 법을 나무라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나는 사문이 되겠다’ 하고. 웻사도 와셋타여, 자기 법을 나무라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나는 사문이 되겠다’ 하고. 숫다도 와셋타여, 자기 법을 나무라며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35.1 ~ PN:dn27/135.2에서 되살렸습니다.
‘samaṇo bhavissāmī’ti.
‘나는 사문이 되겠다’ 하고.
Imehi kho, vāseṭṭha, catūhi maṇḍalehi samaṇamaṇḍalassa abhinibbatti ahosi, tesaṃyeva sattānaṃ anaññesaṃ, sadisānaṃyeva no asadisānaṃ, dhammeneva no adhammena.
와셋타여, 이 네 무리에서 사문 무리의 생겨남이 있었으니, 바로 그 중생들에게서였고 다른 이들에게서가 아니었으며, 같은 이들에게서였지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가 아니었고, 법에 따라서였지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나쁜 행위 등에 대한 이야기Duccaritādikathā
136
바셋타여, 크샤트리아라도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니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릇된 견해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그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나쁜 행선지, 나락, 지옥에 태어난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사문도 마찬가지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나쁜 행선지, 나락, 지옥에 태어난다. 바셋타여, 크샤트리아라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고 바른 견해를 지니면 어떻게 되겠느냐. 바른 견해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그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사문도 그러하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고 바른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uccaritaṃ caritvā vācāya duccaritaṃ caritvā manasā duccaritaṃ caritvā micchādiṭṭhik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와셋타여, 캇띠야도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 suddopi kho, vāseṭṭha… samaṇ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uccaritaṃ caritvā vācāya duccaritaṃ caritvā manasā duccaritaṃ caritvā micchādiṭṭhik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jjati.
바라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웻사도 와셋타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숫다도 와셋타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사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그릇된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36.1에서 되살렸습니다.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sucaritaṃ caritvā vācāya sucaritaṃ caritvā manasā sucaritaṃ caritvā sammādiṭṭhik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와셋타여, 캇띠야도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 suddopi kho, vāseṭṭha… samaṇ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sucaritaṃ caritvā vācāya sucaritaṃ caritvā manasā sucaritaṃ caritvā sammādiṭṭhik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바라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웻사도 와셋타여,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숫다도 와셋타여,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사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36.3에서 되살렸습니다.
137
바셋타여, 크샤트리아라도 몸과 말과 마음으로 두 가지를 하여 뒤섞인 견해를 지니는 수가 있다. 그 뒤섞인 견해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그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사문도 마찬가지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두 가지를 하여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그에 따른 행동을 받아들이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다.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vayakārī, vācāya dvayakārī, manasā dvayakārī, vimissadiṭṭhik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khadukkhappaṭisaṃvedī hoti.
“와셋타여, 캇띠야도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말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다 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 이가 된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 …pe… vessopi kho, vāseṭṭha… suddopi kho, vāseṭṭha… samaṇ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vayakārī, vācāya dvayakārī, manasā dvayakārī, vimissadiṭṭhik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khadukkhappaṭisaṃvedī hoti.
바라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말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다 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 이가 된다. 웻사도 와셋타여,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말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다 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 이가 된다. 숫다도 와셋타여,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말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다 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 이가 된다. 사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말로 두 가지를 다 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다 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니면, 뒤섞인 견해에 따른 업을 받아 지닌 까닭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는 이가 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37.1에서 되살렸습니다.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의 닦음Bodhipakkhiyabhāvanā
138
바셋타여, 크샤트리아라도 몸을 단속하고 말을 단속하고 마음을 단속할 수 있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세상에서 바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라문도, 바이샤도, 수드라도, 사문도 마찬가지다.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고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세상에서 바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불확실]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saṃvuto vācāya saṃvuto manasā saṃvuto sattannaṃ bodhipakkhiyānaṃ dhammānaṃ bhāvanamanvāya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ati.
“와셋타여, 캇띠야도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을 닦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Brāhmaṇopi kho, vāseṭṭha…pe… vessopi kho vāseṭṭha… suddopi kho, vāseṭṭha … samaṇ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saṃvuto vācāya saṃvuto manasā saṃvuto sattannaṃ bodhipakkhiyānaṃ dhammānaṃ bhāvanamanvāya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ati.
바라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을 닦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웻사도 와셋타여,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을 닦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숫다도 와셋타여,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을 닦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사문도 와셋타여,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에 속하는 법들을 닦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DN 27:138.1에서 되살렸습니다.
139
바셋타여, 이 네 계급 가운데 아라한이 된 비구가 있다. 번뇌가 다하고, 수행을 마치고, 할 일을 해내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존재의 속박을 끊고, 바른 앎으로 해탈한 이다. 그가 바로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린다. 그것은 법에 따른 것이지 법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법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기 때문이다.
‘‘Imesañhi, vāseṭṭha, catunnaṃ vaṇṇānaṃ yo hoti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 nesaṃ aggamakkhāyati dhammeneva.
“와셋타여, 이 네 계급 가운데 아라한이고, 번뇌를 다했고,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기 목표에 이르렀고, 존재의 족쇄를 남김없이 부수었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비구가 있으면, 그가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한다 — 법에 따라서다.
No adhammena.
법이 아닌 것으로가 아니다.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ṃ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와셋타여, 사람들 가운데서는 법이 으뜸이니, 지금 여기서도 그러하고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다.
140
바셋타여, 범천 사낭꾸마라도 이런 게송을 읊었다.
‘‘Brahmunā pesā, vāseṭṭha, sanaṅkumārena gāthā bhāsitā –
“와셋타여, 이 게송은 사낭꾸마라 범천이 읊은 것이다 —
“사람들 가운데 가문을 믿고 따지는 이들에겐 / 끄샤뜨리야가 으뜸이라네.
‘Khattiyo seṭṭho janetasmiṃ, ye gottapaṭisārino;
‘가문을 따지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캇띠야가 으뜸이고,
밝은 지혜와 바른 행을 갖춘 이야말로 / 신과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네.”
Vijjācaraṇasampanno, so seṭṭho devamānuse’ti.
앎과 실천을 갖춘 이, 그가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다.’ 하고.
바셋타여, 범천 사낭꾸마라의 이 게송은 잘 노래한 것이지 잘못 노래한 것이 아니다. 잘 말한 것이지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뜻이 담긴 것이지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고 인정한다. 바셋타여, 나도 이렇게 말한다.[불확실]
‘‘Sā kho panesā, vāseṭṭha, brahmunā sanaṅkumārena gāthā sugītā, no duggītā.
“그런데 와셋타여, 사낭꾸마라 범천이 읊은 이 게송은 잘 읊은 것이지 잘못 읊은 것이 아니다.
Subhāsitā, no dubbhāsitā.
잘 말한 것이지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Atthasaṃhitā, no anatthasaṃhitā.
이익에 맞는 것이지 이익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Anumatā mayā.
나도 그것을 옳다고 여긴다.
Ahampi, vāseṭṭha, evaṃ vadāmi –
와셋타여, 나도 이렇게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
“사람들 가운데 가문을 믿고 따지는 이들에겐 / 끄샤뜨리야가 으뜸이라네.
‘Khattiyo seṭṭho janetasmiṃ, ye gottapaṭisārino;
‘가문을 따지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캇띠야가 으뜸이고,
밝은 지혜와 바른 행을 갖춘 이야말로 / 신과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네.”
Vijjācaraṇasampanno, so seṭṭho devamānuse’ti.
앎과 실천을 갖춘 이, 그가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다.’ 하고.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셋타와 바라드와자는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 《아깐냐 경》, 넷째를 마친다.[불확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ttamanā vāseṭṭhabhāradvājā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Aggaññasuttaṃ niṭṭhitaṃ catutthaṃ.
「악간냐 경」이 끝났다. 넷째 경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